Another Fantasy

동양신화

150 位人物

這是怎樣的世界?

산 너머에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이 산다는 걸, 옛사람들은 알고 있었어요. 호랑이 한 마리가 산신이 되어 바위에 앉아 있고, 깊은 강 아래엔 용왕이 궁궐을 짓고 사는 세계예요. 이곳은 한국·중국·일본의 오래된 무속 이야기가 한데 섞인 가공의 산천이에요. 하늘과 땅과 저승이 겹쳐 있어서, 인간의 마을 바로 옆에 신령의 길이 지나간답니다.

이 세계에서 산군(山君)은 산을 통째로 다스리는 호랑이 신령이에요. 용왕은 사해(四海)의 물을 쥐고 있고, 도깨비는 다리 어귀에서 밤마다 씨름 상대를 기다리지요. 박수무당이 굿을 올리면 하늘에 닿는 북소리가 신령들을 불러 모으고, 마을 하나의 운명이 그 한 판 안에서 가려진답니다. 여기서는 인간이 신령보다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게 예의예요.

이 세계에서 제일 짜릿한 건 산천 어디에나 영물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에요. 바위틈의 묵은 여우, 저수지 아래를 지키는 이무기, 부적 한 장으로 봉인된 무시무시한 신검(神劍)이 길목마다 기다려요. 풍수 지관은 땅의 기운을 읽어 마을 자리를 정하고, 부적 화공은 붓 한 번으로 귀신을 막아낸답니다. 무서울 것 같아도, 사실 이 세계는 인간과 신령이 서로 예를 갖추며 공존하는 곳이에요.

만약 네가 이 세계에 태어난다면 어떤 역할을 맡고 싶어요? 산신각을 지키는 든든한 지킴이가 될 수도 있고, 호랑이 산군에게 직접 명을 받는 천제(天帝)의 사신이 될 수도 있어요. 혹은 도깨비 시장 한복판에서 목청 높여 물건을 파는 호객꾼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답니다. 어느 자리든, 이 산천의 무게를 등에 지고 걸어가는 순간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거예요.

世界設定

한국·중국·일본 동양 무속 신앙이 혼재된 가공의 산천(山川). 호랑이 산군, 용왕, 도깨비, 구미호, 귀신이 일상에 깃들어 있다.

這個世界的關鍵詞

  • 산군
  • 용왕
  • 도깨비
  • 영물
  • 산신각
  • 굿
  • 부적
  • 호랑이
  • 풍수
  • 호환(虎患)

這個世界的人們

  • 산악대신왕(山岳大神王)

    산군(山君)

    산을 다스리는 호랑이 산신, 산의 으뜸

    이 산은 내 산이다. 인사 없이 들어선 자에게는 길을 한 번 잃게 한다.

    산군은 한 산 단위의 호랑이 신령으로, 산 한 곳의 모든 영물·짐승·풍수를 자기 발걸음 아래 두고 있는 자다. 외형은 거대한 백호(白虎) 또는 평소에는 갓을 쓴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산기슭 다관에 앉기도 한다. 본인은 인간을 무조건 적으로 보지 않으며, 산문 입구에서 자기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자에게는 산속 길을 잠깐 빌려준다.

    다만 산군의 산에서 함부로 영물을 사냥한 자는, 산에서 나오기 전 반드시 한 번 길을 잃는다. 호환(虎患)의 진짜 원인은 호랑이의 분노가 아니라, 산군에게 인사를 잊은 인간의 발걸음이다. 산은 늘 먼저 인사한 자에게만 길을 보여준다.

    우리 후대 산군들이 즉위 첫 사흘에 그 마른 다래나무 그루터기 앞에 한 발걸음을 정중히 멈추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산이 인간을 한 번 살린 자리는, 그 산이 자기 무게를 가장 작게 줄여 본 자리라는 뜻이지요.

    삼대 백두산군 호단(虎丹) — 백두산(한반도 북단의 큰 산) 한 자락을 사백 년 정중히 다스린 노(老)산군이자 평생 호환을 단 두 번만 일으킨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마을의 야사로 길게 남아 있다.

    어느 한겨울 새벽 호단은 산문 입구의 마른 다래나무(산군이 즐겨 발톱을 갈던 옛 나무) 아래에서 길을 잃은 어린 약초꾼 막동(당시 일곱 살, 부친상 직후 첫 산행) 한 명을 발견했다. 호단은 그 자리에서 갓을 쓴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막동을 자기 도포 안에 정중히 품고는, 새벽 두 시진을 그 다래나무 아래에 앉아 막동의 한 호흡을 데웠다. 호단은 그 두 시진 동안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았으며, 새벽이 밝자 막동을 산문 향꾼의 향로(香爐) 옆까지 정중히 데려다 두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 막동은 평생 영약 채집 산꾼이 되어 그 다래나무 아래에 새벽마다 작은 술 한 잔을 따랐고, 그의 후손은 사대(四代)에 걸쳐 산문 향꾼 일을 맡았다. 호단은 그 일 외에 평생 단 한 번도 인간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 마른 다래나무는 지금도 산문 입구에 그루터기로 남아 있다.

    후대 산군들은 즉위 첫 사흘을 그 그루터기 앞에 한 발걸음 절을 올리는 자세로 시작하는 관례를 따른다.

  • 사해용제(四海龍帝)

    용왕(龍王)

    사해의 물길을 호령하는 용궁의 황제

    이 바다의 한 호흡 한 호흡이 내 결재 위에서 굴러간다. 어부여, 그대의 하루도 그렇다.

    용왕은 한 바다 단위 또는 한 큰 강 단위의 용족 신령으로, 외형은 거대한 청룡 또는 평소에는 푸른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의 모습이다. 본인은 한 시즌의 풍어(豊漁)·해일·태풍을 모두 자기 결재 안에서 굴러가게 하며, 인접 어촌의 풍어제(豊漁祭)에 정중히 모셔지는 손님이다. 어촌 사람들이 풍어제를 한 해 거르면 용왕의 결재가 묘하게 늦어져 그 어촌의 그물이 한 시즌 비는 일이 흔하다.

    본인은 그 결재의 무게를 알기에 매년 한 번은 인계의 어촌에 직접 손님으로 내려가, 작은 술 한 잔을 받아 간다. 가장 큰 바다의 진짜 결재는 어촌 한 노인의 술 한 잔에서 시작된다.

    우리 후대 용왕들이 풍어제 첫 잔을 늘 빈 자리 한 곳에 먼저 따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큰 바다 한 시즌의 무게가 사실은 노어부 한 분의 마른 손바닥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뜻이지요.

    동해 사대 용왕 청린(靑鱗) — 동해(한반도 동쪽 큰 바다) 한 자락을 삼백 년 정중히 다스린 자이자 평생 큰 해일을 단 한 번도 일으키지 않은 청룡 — 의 일화 가운데 어촌 야사에 가장 길게 남은 것은 '한 잔의 마른 술'이다.

    묘진포(卯津浦, 동해 남단 작은 어촌)의 노어부 강만춘(평생 풍어제 첫 잔을 따른 일흔의 어부) 이 그해 풍어제 새벽에 술 한 잔을 따르려다 손이 미끄러져 잔을 깨뜨렸다. 어촌은 그해 풍어가 어그러질 줄 알고 새벽부터 통곡했으나, 청린은 푸른 도포의 사내 모습으로 그 자리에 직접 내려와 깨진 잔 자리에 자기 손바닥을 한 박자 댔다. 청린은 강만춘의 마른 손바닥에 자기 비늘 한 조각을 정중히 올려놓고는 "그대 손금이 곧 내 결재요"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바다로 돌아갔다.

    그해 묘진포의 그물은 사대(四代)에 걸쳐 가장 무거웠으며, 강만춘의 손바닥에 올려진 비늘 한 조각은 지금도 어촌 사당 한 자락에 정중히 모셔져 있다. 강만춘 사후 그 비늘 자리에는 늘 작은 술 한 잔이 비어 있으며, 후대 용왕들은 풍어제 첫 잔을 그 빈 자리에 먼저 따르는 자세로 즉위 첫 새벽을 시작한다.

  • 도깨비대왕(大王)

    도깨비 대장

    온갖 도깨비를 거느리는 도깨비 대장

    씨름 한 판 어떠시오? 이기면 술 사주고, 지면 그대 다리 한 짝 빌려가오.

    도깨비 대장은 한 산기슭·한 다리(橋) 단위의 도깨비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로, 외형은 짙은 색 도포에 머리에는 뿔 같은 상투, 손에는 도깨비방망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적은 아니며,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씨름 한 판을 청해 이긴 자에게는 작은 보물을 주고 진 자에게는 다리 한 짝을 잠깐 묶어두는 식의 장난을 즐긴다. 도깨비방망이 한 번이면 술 한 동이가 나오고, 두 번이면 작은 금덩이 한 개가 나온다.

    다만 세 번을 넘기면 보물 대신 그 자리에서 새벽 닭이 울어버려 도깨비들이 흩어지는 식의 자기 규칙이 있다. 도깨비 대장의 진짜 강함은 방망이가 아니라, 자기 무리가 새벽 닭에 흩어질 시간을 정확히 외우는 자세다.

    우리 후대 대장들이 첫 씨름판 직전에 그 떡시루 자리를 한 번 들여다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도깨비의 진짜 보물은 방망이가 아니라, 한 끼 떡 한 시루를 같이 나눈 인간 한 사람의 이름이오.

    노돌다리(老石橋, 한반도 중부 산기슭의 옛 돌다리) 칠대 도깨비 대장 외뿔돌쇠 — 평생 씨름판에서 단 두 번만 인간에게 진 자이자 진 두 번 모두 같은 인간에게 진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마을의 야사로 길게 남았다.

    그가 두 번 모두 진 상대는 산기슭 떡장수 박만배(평생 새벽 떡시루 한 채만 끌고 다닌 평민) 한 사람이었다. 첫 씨름판에서 박만배가 외뿔돌쇠의 도깨비방망이를 빼앗는 대신 자기 떡시루를 다리 위에 정중히 올려놓고 "한 시루 같이 드시오"라고 청한 사실은 도깨비 무리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된다. 외뿔돌쇠는 그 떡 한 시루 앞에서 무리 전부가 한 박자 멈춘 사실을 그날 처음 깨달았고, 자기 도깨비방망이 대신 떡시루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두 번째 씨름은 박만배의 회갑(回甲) 새벽에 다리 위에서 다시 열렸으며, 외뿔돌쇠는 일부러 한 박자 늦게 발을 디뎌 다시 졌다. 박만배 사후 외뿔돌쇠는 그 떡시루 자리에 매년 새벽 닭 직전 작은 술 한 잔을 따르는 관례를 만들었으며, 노돌다리의 후대 대장들은 즉위 첫 씨름판 직전에 그 떡시루 자리를 한 번 들여다보는 자세를 따른다.

  • 박수대법사(博數大法師)

    박수무당

    신을 부르는 사내 무당의 큰 법사

    이 굿 한 판이면, 마을의 다음 한 시즌이 조용해질 거외다.

    박수무당은 한 마을의 굿·치성·해원(解寃)을 책임지는 남자 무속인으로, 외형은 흰 한복 두루마기, 머리에 갓, 손에 부채와 작은 방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의 모든 가구의 가족사·이웃 갈등·옛 한(恨)을 거의 정확히 외우고 있어, 굿 한 판을 시작하기 전에 어느 한(恨)을 어떤 순서로 풀지 머리속 표로 정한다. 그래서 박수의 굿 한 판은 단순 의식이 아니라 한 마을의 한 시즌 갈등 정리 회의에 가깝다.

    굿이 끝난 새벽, 박수는 늘 가장 먼저 마을 어귀로 나가 작은 향 한 개비를 피우고 마을의 다음 한 시즌을 기원한다. 마을의 진짜 이장은 박수의 부채 끝에 있다.

    우리 후대 박수들이 자기 부채 첫 펼침을 마을 어귀 우물 자리에서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굿청 한 판의 진짜 시작은 마당 한 자리가 아니라, 한 마을이 평생 길어 마신 우물 한 두레박 위에 있다는 뜻이지요.

    한천박수 백련(白蓮) — 한천골(寒泉골, 강원 산골 깊은 마을) 일대를 사십 년 끌어간 박수이자 평생 부채를 단 두 번만 자기 머리 위로 올린 자 — 의 일화는 인근 산기슭 마을의 야사로 길게 남았다.

    한천골에 두 가문 — 산기슭 가지가(家) 와 강가 부씨가(家) — 가 우물 한 자리를 두고 삼대(三代) 동안 다툰 옛 한(恨)이 있었고, 어느 시즌 두 가문의 어린 손자 둘이 그 우물 자리에서 동시에 빠져 둘 다 살아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백련은 그날 굿청을 가지가의 마당이 아니라 그 우물 자리 옆에 차렸고, 두 가문 어른들에게 우물 한 두레박 물을 같이 길어 같은 향로(香爐)에 한 번씩 따르게 했다. 향로의 향이 새벽까지 식지 않은 사실을 두 가문 어른들이 같이 본 그 한 박자 위에서 옛 한(恨) 한 줄이 풀렸고, 두 어린 손자는 그 새벽에 우물 옆에서 깨어났다. 백련은 그 일 외에 평생 부채를 자기 머리 위로 한 번 더 올렸는데, 그 한 번은 한천골 마을 어귀 우물에 자기 부채를 마지막으로 묻은 회갑 새벽이었다.

    후대 한천골 박수들은 즉위 첫 굿청을 그 우물 자리에서 시작하는 자세를 따른다.

  • 영물추적자(靈物追跡者)

    영물 추적꾼

    신령한 짐승을 쫓는 떠돌이 추적꾼

    이 발자국, 일반 짐승이 아닙디다. 이쪽은 따라가지 않는 게 좋소.

    영물 추적꾼은 산기슭 마을의 평민 사냥꾼이지만, 일반 짐승이 아니라 산군 휘하의 영물(靈物)·반(半)신령 짐승의 발자국을 추적하는 데 능한 자다. 외형은 단정한 사냥복, 등에 작은 활, 허리에 작은 부적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영물을 사냥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물의 발자국이 어느 골짜기에 어느 시기 나타나는지를 한 시즌마다 마을 박수무당에게 보고해, 마을이 호환(虎患)을 미리 피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냥꾼이 아니라 "산문 안내인"이라 부른다. 산은 자기 안에서 인간을 가장 잘 안내하는 한 사람을 늘 한 명만 골라둔다는 마을 격언이, 그의 발자국 한 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우리 후대 추적꾼들이 첫 산행에 자기 활시위를 일부러 한 번 풀어두고 떠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영물의 발자국 앞에서 활을 들지 않은 자만이 그 산의 한 줄을 받아 적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두모령(斗母嶺, 한반도 중부 산기슭 큰 마을) 영물 추적꾼 산쇠(山釗) — 평생 활시위를 단 한 번도 영물에게 당기지 않은 평민이자 마을의 호환을 사십 년 막아낸 자 — 의 일화는 두모령 마을의 야사로 길게 남았다.

    어느 늦가을 산쇠는 두모령 북쪽 골짜기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발자국 — 산군 휘하의 백호 장군 휘하 어린 영물 흰여우 한 마리 — 의 자국을 발견했고, 그 자국이 마을 어린아이들의 등굣길 한 자락과 정확히 겹치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산쇠는 활을 들지 않은 채 그 자국을 박수무당 백련(앞서 (340004)에 등장한 한천박수의 사형 조카) 에게 한 시진 만에 정중히 보고했고, 백련은 그 시즌 등굣길을 한 자락 옆 골짜기로 옮기는 결재를 마을에 내렸다. 그해 두모령 어린아이 한 명도 호환을 입지 않았으며, 흰여우는 마을 한 자락을 비키며 자기 한 시즌을 정중히 마쳤다. 산쇠는 그 일 외에 평생 단 한 번도 자기 활시위를 영물에게 당기지 않았으며, 회갑 새벽 자기 활을 두모령 산문 향꾼의 향로 옆에 정중히 풀어두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후대 두모령 추적꾼들은 첫 산행에 활시위를 일부러 한 번 풀어두고 떠나는 자세를 따른다.

  • 옥황천제존(玉皇天帝尊)

    천제(天帝)

    하늘 위 모든 신을 다스리는 천제

    내 결재 한 줄에 한 시대의 별자리가 정해진다. 다만 그 한 줄도 늘 늦는다.

    천제는 동양 신화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하늘의 임금으로, 산군과 용왕과 염라의 결재를 한 줄로 묶어 한 시대의 천기(天機)를 정한다. 외형은 옥좌에 앉은 백발의 노인, 짙은 자색 도포에 별자리가 수놓인 어의(御衣), 손에는 작은 옥홀(玉笏)이 표준이다. 본인은 천계의 모든 신령과 인계의 모든 산천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한 별이 떨어진 자리의 인간 한 명의 한 호흡까지 안다.

    다만 천제의 결재는 늘 한 박자 늦는데, 그 늦은 한 박자가 인간이 스스로 정할 여백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별의 추락이 아니라, 인간 한 명의 짧은 한 호흡 위에 천제가 잠시 멈추는 그 침묵이다. 천계의 진짜 위엄은 옥좌의 높이가 아니라, 그 침묵의 길이에 있다.

    우리 후대 천제들이 즉위 첫 결재로 가장 작은 별 하나를 옥홀로 가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그 별 하나의 빛이 인계 어느 마을 한 노인의 한 호흡과 평생 묶여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요.

    사대 천제 자미(紫微) — 천계 역사상 옥홀을 단 세 번만 들어 올린 자이자 평생 큰 별 한 자리도 자기 결재로 떨어뜨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옥황 비서감의 두루마리에 가장 길게 남아 있다.

    어느 한겨울 새벽 인계 백수촌(白水村, 한반도 남단 작은 어촌)의 노어부 송갑생(평생 작은 그물 한 채만 끌고 다닌 일흔의 어부) 한 명의 한 호흡이 끊어질 자리에 한 별이 같이 떨어질 운명이었다. 옥황 비서감 채현운(앞서 (340023)에서 다뤄질 초대 비서감) 이 그 한 줄 결재를 자미께 정중히 올렸을 때, 자미는 옥홀을 들지 않고 옥좌 옆에 한 박자 멈춰 앉아 그 별과 송갑생의 한 호흡을 같이 들었다. 자미는 그 별을 한 호흡만큼 옆 자리로 정중히 옮겨 두었고, 송갑생은 그 새벽에 그물 한 채를 더 들고 바다로 나갔다.

    송갑생은 그날 이후 십이 년을 더 살며 어촌의 풍어제를 매년 정중히 주관했고, 옮겨진 그 별은 천계 명부에 '갑생성(甲生星)'으로 정중히 등재되었다. 자미 사후 갑생성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한 호흡 늦게 빛나며, 후대 천제들은 즉위 첫 결재를 그 별 한 자리에 옥홀을 가리는 자세로 시작한다.

  • 염라대왕(閻羅大王)

    염라(閻羅)

    저승의 명부를 펴 망자를 심판하는 대왕

    이 명부 한 줄, 그대 이름이오. 변명은 받아두겠으나, 결재는 이미 하늘에서 끝났소.

    염라는 저승 시왕(十王)의 정점에 앉은 자로, 인간 한 명의 한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 명부로 결재한다. 외형은 짙은 흑포, 머리에 옛 관(冠), 한 손에 명부(冥府)의 두루마리, 옆에는 늘 저승사자 둘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인간의 평소 발걸음·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인간이 자기 변명을 시작하기 전에 그 변명의 끝을 먼저 안다.

    그래도 염라는 변명을 끝까지 들어주는데, 그 한 박자 인내가 인간이 자기 한 생애를 스스로 정리할 마지막 여백이기 때문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죄인의 명부가 아니라, 어린 영혼의 한 줄 위에 염라가 잠시 붓을 멈추는 그 호흡이다. 저승의 진짜 무게는 형벌이 아니라, 그 호흡의 길이에 있다.

    우리 후대 염라들이 즉위 첫 결재로 강아지 한 마리의 명부 한 줄을 가장 먼저 받아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명부의 첫 줄이 가벼워야, 인간의 한 생애 맨 끝 줄을 정중히 받칠 수 있다는 뜻이오.

    시대 염라 한율(閻律) — 저승 시왕 역사상 명부 두루마리 한 권을 통째로 다시 쓴 유일한 자 — 의 일화는 저승사자 도반들 사이에서 '되돌아간 한 줄'로 길게 회자된다.

    한율은 즉위 첫 새벽 인계 백사동(白沙洞, 한반도 남단 옛 어촌) 한 자락의 다섯 살 어린아이 단이(端伊)의 명부 한 줄을 받아들었다. 단이는 그날 새벽 우물에 빠져 한 호흡을 잃을 자리였으나, 한율은 명부의 그 한 줄을 자기 옥붓으로 한 박자 길게 늘여 단이의 한 호흡 옆에 정중히 빈 칸을 한 자리 만들어 두었다. 그 빈 칸 위에 단이의 어미가 우물 한 두레박을 정확히 한 박자 먼저 길어 올린 사실이 그 새벽 천계 별자리에 정중히 등재되었으며, 단이는 일흔까지 살아 평생 어촌 풍어제 첫 잔을 따랐다.

    한율은 그 일 외에 평생 명부 한 줄을 늘인 적이 없으며, 자기 임기 마지막 새벽에 그 한 줄 자리를 다시 정중히 봉(封)했다. 그 봉인된 한 줄은 지금도 명부 두루마리 첫 권 한 자락에 비어 있으며, 후대 염라들은 즉위 첫 결재로 그 빈 줄 자리에 자기 옥붓을 한 번 정중히 올린 다음 자기 명부를 시작한다. 저승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은 그 빈 줄이라는 격언이 시왕(十王) 사이에 정중히 남아 있다.

  • 백호서방장(白虎西方將)

    백호 장군

    서방을 지키는 백호 신장

    내 발걸음 한 번에 산기슭 한 마을의 새벽이 정해진다. 그러니 발걸음을 함부로 옮기지 않는다.

    백호 장군은 산군 휘하의 정예 영물 호랑이로, 한 산기슭 한 자락의 호환(虎患)·영물 분쟁·산문 경계를 직접 통솔하는 자다. 외형은 평소에는 거대한 흰 호랑이, 인간 모습일 때는 짙은 색 무사 도포에 머리에 갓, 허리에 한 자루 호아도(虎牙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산기슭 모든 영물의 평소 발걸음·옛 분기 산문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산군이 산 전체의 결재를 본다면, 백호 장군은 산기슭 한 자락의 새벽 한 호흡을 본다. 그래서 그가 한 번 발걸음을 옮긴 골짜기에는 그 시즌 호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마을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발걸음은 큰 사냥이 아니라, 인간 마을의 새벽 한 끼 위에 잠시 멈추는 그 한 박자다.

    우리 후대 백호 장군들이 첫 산문 순찰에 자기 호아도(虎牙刀)를 일부러 한 박자 늦게 차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산기슭 한 자락의 새벽 한 끼는 칼보다 한 박자의 멈춤이 먼저 지킨다는 뜻이오.

    묘향산 칠대 백호 장군 설풍(雪風) — 묘향산(평안도 큰 산) 한 자락을 이백 년 정중히 순찰한 영물 호랑이이자 평생 호아도(虎牙刀)를 단 한 번만 뽑은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마을의 야사에 길게 남았다.

    어느 한겨울 새벽 묘향산 북쪽 골짜기 작은 마을 어귀의 노부부 가옥 한 채가 큰 눈사태 한 줄에 깔릴 자리에 있었다. 설풍은 그 한 박자 전 골짜기 입구에서 인간 모습의 무사 도포로 바꿔 입고 그 가옥 마당 한가운데에 정중히 자기 호아도 한 자루를 비스듬히 꽂아 두었다. 그 호아도가 눈의 결을 한 박자 옆 골짜기로 정중히 흘려보내, 가옥 한 채와 노부부의 새벽 한 끼는 그대로 보전됐다. 설풍은 그 일 외에 평생 호아도를 다시 뽑지 않았으며, 그 호아도는 지금도 묘향산 산기슭 작은 사당 한 자락에 정중히 모셔져 있다. 그 노부부의 손자 한 명은 평생 영약 채집 산꾼이 되어 매년 새벽 그 사당에 작은 술 한 잔을 정중히 따랐고, 그의 후손 사대(四代)가 같은 자리를 지킨다.

    후대 백호 장군들은 첫 산문 순찰에 자기 호아도를 그 사당 자리 옆에 한 번 정중히 비스듬히 세우는 자세를 따른다.

  • 용궁사신군(龍宮使臣君)

    사해 용궁 사신

    사해 용궁의 칙사로 파견된 사신

    용왕 폐하의 결재 한 줄을 가져왔소. 어촌의 다음 한 시즌은 그대들 손에 달렸소.

    사해 용궁 사신은 용왕의 직속 사절로, 인계 어촌·강기슭 마을·산천 신령에게 용궁의 결재 한 줄을 정중히 전하는 자다. 외형은 짙은 청색 도포, 어깨에 푸른 비늘 망토, 허리에 작은 용궁 인장과 한 자루 패검(佩劍)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어촌의 풍어제 일정·옛 분기 용왕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촌 한 노인의 술 한 잔이 어느 시각 용궁에 닿을지 정확히 안다.

    그래서 어촌 사람들은 사신이 마을에 들른 새벽이 그 시즌 풍어의 한 줄 약속이라 믿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전언은 큰 해일 경고가 아니라, 신참 어부의 첫 출항 위에 사신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그 한 박자다. 용궁의 진짜 결재는 사신의 고갯짓 한 번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사신들이 어촌 첫 출입에 자기 패검을 정중히 어선의 뱃머리에 비스듬히 기대 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신참 어부의 첫 노 한 번 위에 용궁의 한 줄이 닿는 자리는 칼이 아니라 그 비스듬한 자세에 있다는 뜻이오.

    동해 십이대 사해 사신 백란(白瀾) — 평생 어촌 풍어제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자이자 어선 뱃머리에 자기 패검을 단 한 번 똑바로 세운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어촌 야사로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첫 출항 새벽 묘진포(앞서 (340002) 용왕 일화에 등장한 어촌)의 신참 어부 강만춘의 손자 강도식(평생 작은 어선 한 채만 끌고 다닌 스무 살의 어부) 이 첫 노를 정성껏 들어 올렸다. 백란은 그 자리에 자기 패검을 도식의 뱃머리에 정중히 비스듬히 기대 두고는, 한 박자 늦게 자기 고개를 한 번 숙였다. 그 한 번의 고개 숙임에 동해 한 자락의 결재 한 줄이 도식의 첫 노 위에 정중히 닿았고, 도식은 그날 첫 출항에서 가장 무거운 그물 한 채를 정중히 끌어 올렸다. 도식은 그 일 이후 평생 동해 풍어제 첫 잔을 따랐으며, 그의 어선은 사대(四代)가 끝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백란이 그날 비스듬히 기대 둔 패검 자국 한 줄은 지금도 묘진포 사당 한 자락의 작은 어선 모형 뱃머리에 정중히 새겨져 있다.

    후대 사해 사신들은 어촌 첫 출입에 자기 패검을 그 어선 모형 자리에 한 번 정중히 비스듬히 기대 두는 자세를 따른다.

  • 신검봉인사(神劍封印師)

    신검(神劍) 봉인사

    신령한 검을 봉하여 다스리는 술사

    이 검은 뽑는 자의 검이 아니오. 다만 다음 한 시대를 정중히 기다리는 자의 검이오.

    신검 봉인사는 산신각 깊은 곳 또는 옛 사당 한 자락에서 한 자루 신검(神劍)을 봉인하고 그 다음 주인을 기다리는 자다. 외형은 흰 도포 두루마기, 가슴팍에 신검 봉인 인장, 한 손에 작은 봉인 부적 묶음과 한 자루 패도(佩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신검의 봉인 자리·옛 분기 봉인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신검 한 자루가 다음 한 시대에 누구의 손에 닿을지 절반쯤 안다.

    그래도 봉인사는 그 답을 절대 먼저 말하지 않으며, 다음 주인이 스스로 산문 앞에 도달할 때까지 침묵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봉인은 큰 신검이 아니라, 어린 후보가 산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그 한 박자 위에 있다. 신검의 진짜 무게는 칼날이 아니라, 봉인사의 그 한 박자 침묵에 있다.

    우리 후대 봉인사들이 즉위 첫 사흘에 그 천마검의 봉인 자리 앞에 자기 패도(佩刀)를 거꾸로 꽂아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검 한 자루를 안 뽑은 시간이, 그 검을 정중히 다음 한 시대로 옮겨 주는 유일한 결재라는 뜻이오.

    단군산(檀君山, 신단수가 자리한 한반도 북부 옛 성산) 칠대 신검 봉인사 무영(無影) — 평생 봉인 부적을 단 한 번도 자기 패도(佩刀) 위에 올리지 않은 자이자 신검 천마검(天魔劍, 산군의 첫 호아도가 변화한 옛 신검) 한 자루를 백 년 정중히 기다린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한겨울 새벽 단군산 산문 앞에 어린 떠돌이 검객 진성호(당시 열다섯, 부친상 직후 첫 발걸음의 평민) 한 명이 한 박자 멈췄을 때, 무영은 그 한 박자를 백 년 동안 기다린 자세로 정중히 받아 주었다. 진성호는 천마검 봉인 자리 앞에서 다시 한 박자 멈추고는, 검을 뽑지 않고 정중히 한 번 절을 올린 다음 그대로 산을 내려갔다. 무영은 그 절 한 번 위에서 봉인 부적을 자기 패도 위에 한 번도 올리지 않은 채 봉인 한 줄을 그대로 다시 정중히 닫았다. 진성호는 평생 떠돌이 검객으로 살며 천마검을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며, 단군산 산문 앞에 작은 술 한 잔만 매년 새벽 따랐다. 무영 사후 천마검은 봉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그 봉인 부적은 진성호가 그날 한 번 절을 올린 자리 위에 한 박자 떨어진 채 보관되어 있다.

    후대 봉인사들은 즉위 첫 사흘을 그 봉인 부적 한 장을 정중히 들여다보는 자세로 시작하는 관례를 따른다.

  • 풍수지관사(風水地官師)

    풍수 지관

    산천의 기운을 가려내는 풍수 지관

    이 자리, 묘 자리로는 좋소. 다만 산군의 발걸음이 새벽마다 지나가니 인사부터 드리시오.

    풍수 지관은 한 마을·한 가문의 묏자리·집터·산문 자리를 정중히 잡아주는 평민 출신 학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도포, 어깨에 작은 풍수 가방, 한 손에 패철(佩鐵, 풍수 나침반)과 작은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묏자리의 옛 분기 결재·산군 발걸음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그가 잡아준 묏자리는 다음 세 세대의 가문이 산군에게 호환을 입지 않는다는 마을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가문의 묏자리가 아니라, 신참 농부의 첫 집터 한 자리 위에 패철을 정중히 올려주는 그 한 박자다. 풍수의 진짜 결재는 옛 가문의 묘가 아니라, 새벽 한 끼의 집터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지관들이 첫 출장에 자기 패철을 일부러 한 박자 늦게 펼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패철의 한 줄이 정확하기 전에 그 자리의 새벽 한 끼 냄새를 먼저 맡아야 한다는 뜻이오.

    청송 풍수 지관 도진(道珍) — 청송골(靑松골, 경상도 산기슭 큰 마을) 일대를 사십 년 잡아준 학자이자 평생 자기 가문 묘 한 자리도 잡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마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새벽 청송골의 신참 농부 김달수(스무 살, 부친상 직후 첫 집터를 정해야 했던 평민) 가 가난한 살림으로 도진에게 집터 한 자리를 청했다. 도진은 패철을 들고 그 자리에 도착해, 패철의 바늘 한 줄이 정확히 가리키는 자리 대신 한 자락 옆 — 산군의 새벽 발걸음이 정중히 비키는 작은 골짜기 안쪽 — 으로 집터를 정중히 옮겨 잡았다. 그 한 박자 옆 자리는 패철 상으로는 차상(次上)이었으나, 산군의 발걸음 한 줄 위에서는 가장 정중한 자리였다. 김달수는 그 집터에서 사대(四代)에 걸쳐 호환을 단 한 번도 입지 않았으며, 도진의 가문은 그의 회갑 뒤 자기 묏자리를 김달수가 정중히 잡아주는 자세로 평생 갚았다. 청송골 야사에서는 풍수의 진짜 결재가 패철의 한 줄이 아니라 도진의 한 박자 늦은 발걸음 위에 있다고 전한다.

    후대 청송 지관들은 첫 출장에 패철을 한 박자 늦게 펼치는 자세를 따른다.

  • 부적화공사(符籍畫工師)

    부적 화공

    부적의 획을 그어내는 화공

    이 부적 한 장, 한 가족의 한 시즌을 막아주오. 그러니 한 획도 흔들지 않소.

    부적 화공은 박수무당 휘하 또는 사찰 한 자락에서 부적(符籍)을 한 장 한 장 정중히 그려내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짙은 회색 작업 도포, 가슴팍에 작은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주사(朱砂) 붓과 옛 황지(黃紙)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부적의 옛 도안·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한 가족의 한 시즌을 어느 부적 한 장으로 막을지 정확히 안다.

    부적의 한 획이 흔들리면 그 부적은 단순 종이로 전락하고, 한 획이 정확하면 그 부적이 한 가족의 한 시즌을 막아낸다. 가장 무거운 한 장 부적은 큰 굿청의 큰 부적이 아니라, 신참 부모가 처음 들고 온 어린아이의 한 장 보호 부적이다. 부적 화공의 진짜 절기는 한 획의 호흡이다.

    우리 후대 화공들이 첫 부적 한 장을 새벽 첫 빛 한 줄 위에서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주사(朱砂)의 한 획은 손이 그리는 게 아니라, 새벽 한 호흡이 손목을 정중히 빌려 가는 거라는 뜻이오.

    백악사(白岳寺, 경기 산기슭 옛 사찰) 부적 화공 묵헌(默軒) — 평생 부적 한 획을 흔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자이자 자기 주사 붓을 단 한 자루로 사십 년 끌어간 자 — 의 일화는 사찰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한겨울 새벽 백악사 산문 앞에 신참 부모 한 쌍 — 정주(靜州, 경기 작은 마을)의 농부 박재만과 그 처 윤씨 — 이 갓 백일을 지난 아이의 보호 부적 한 장을 청하러 도착했다. 묵헌은 새벽 첫 빛 한 줄이 백악사 마루에 닿는 그 한 박자를 정중히 기다렸다가, 그 한 박자 위에서 주사 붓을 들어 한 획에 부적을 완성했다. 그 부적 한 장은 그 시즌 그 아이의 한 호흡 위에 정중히 머무는 자세로, 그해 그 마을의 호환과 풍수 한 자락을 동시에 비켜 갔다. 박재만 부부는 그 부적 한 장을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보전했고, 그 아이는 일흔까지 살며 마을 점쟁이 영감 자리를 평생 맡았다. 묵헌은 그 일 외에도 평생 새벽 첫 빛 한 줄 위에서만 부적을 그렸으며, 그의 주사 붓은 지금도 백악사 부적실 한 자락에 정중히 모셔져 있다.

    후대 백악사 화공들은 첫 부적 한 장을 그 붓 자리에 한 번 정중히 합장한 다음 시작하는 자세를 따른다.

  • 도깨비수문장(守門將)

    도깨비 다리 수문장

    도깨비 다리를 지키는 수문장

    이 다리, 새벽 닭 울기 전에는 못 건넙니다. 도깨비 대장의 씨름이 아직 한 판 남았어요.

    도깨비 다리 수문장은 한 산기슭 도깨비 다리(橋) 한 자리를 정중히 지키는 자로, 인간 나그네와 도깨비 무리의 한 박자 사이에 끼어 있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사 도포, 어깨에 작은 등불, 허리에 한 자루 패도(佩刀)와 작은 부적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도깨비 다리의 옛 분기 결재·도깨비 대장의 새벽 닭 시각·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새벽 닭 전에 다리에 닿으면, 수문장이 정중히 길을 한 박자 늦춰 도깨비의 씨름 한 판을 피하게 한다. 가장 무거운 한 박자는 큰 도깨비 무리가 아니라, 신참 나그네의 첫 한 발걸음 위에 정중히 등불을 들어주는 그 침묵이다. 다리의 진짜 수문은 칼이 아니라 등불 한 자루다.

    우리 후대 수문장들이 첫 야간 근무에 자기 등불을 일부러 다리 한가운데에 한 박자 늦게 올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등불 한 자루의 그림자가 도깨비 무리의 새벽 닭 시각을 한 박자 늦춰 준다는 뜻이오.

    안개다리(雲橋, 한반도 중부 깊은 산기슭의 옛 돌다리) 십대 수문장 한맥(韓脈) — 평생 자기 패도를 단 한 번도 다리 위에서 뽑지 않은 자이자 자기 등불 한 자루를 사십 년 끌어간 평민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았다.

    어느 한겨울 새벽 안개다리 입구에 길을 잃은 어린 학자 윤설호(당시 열일곱, 사대부 가문 출신의 첫 한양길) 한 명이 도착했고, 그 자리에는 노돌다리에서 옮겨 온 외뿔돌쇠(앞서 (340003)의 노돌다리 칠대 도깨비 대장) 휘하 도깨비 일곱이 씨름판을 막 펼치려 하고 있었다. 한맥은 자기 등불을 다리 한가운데에 한 박자 늦게 올리고는, 등불의 그림자 한 줄을 외뿔돌쇠 무리의 발치에 정중히 비춰 두었다. 그 그림자 한 줄이 새벽 닭의 첫 울음을 한 박자 앞당겼고, 외뿔돌쇠 무리는 씨름 한 판을 시작하기 전에 정중히 흩어졌다.

    윤설호는 다리를 무사히 건너 한양 과거에 응시해 사신(四神) 방위 검수가 되었으며, 한맥의 등불 한 자루를 평생 잊지 않고 매년 새벽 안개다리에 작은 술 한 잔을 따랐다. 한맥의 등불은 그의 회갑 새벽 그대로 다리 한가운데 자리에 정중히 모셔졌고, 후대 수문장들은 첫 야간 근무에 그 자리에 한 번 정중히 합장하는 자세를 따른다.

  • 산신각수호(山神閣守護)

    산신각 지킴이

    산신각을 지키는 사내

    이 산신각, 향 한 개비가 식기 전에 한 마을의 새벽이 정해집니다. 그러니 향을 함부로 끄지 않소.

    산신각 지킴이는 산기슭 한 자락의 산신각(山神閣) 한 칸을 평생 지키는 자로, 산군의 인계 출입구를 정중히 관리하는 자다. 외형은 흰 한복 두루마기, 머리에 작은 갓, 가슴팍에 산신각 열쇠 펜던트, 한 손에 작은 향로(香爐)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신각의 옛 분기 향 결재·산군의 발걸음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산신각의 향 한 개비가 식기 전에 산기슭 한 마을의 새벽이 정해지며, 지킴이는 그 한 개비를 평생 식히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개비는 큰 굿청의 향이 아니라, 새벽에 잠든 어린아이의 한 끼 위에 한 줄로 피어오르는 그 향 한 가닥이다. 산신각의 진짜 지킴은 자물쇠가 아니라 향 한 개비다.

    우리 후대 지킴이들이 새벽 첫 향을 일부러 두 번 나누어 피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한 개비의 절반은 산군의 발걸음을, 나머지 절반은 잠든 아이의 한 호흡을 정중히 데우는 자세요.

    지리산 산신각 지킴이 노송(老松) — 지리산(한반도 남부의 큰 산) 한 자락의 작은 산신각 한 칸을 사십 년 비우지 않은 자이자 평생 향 한 개비도 함부로 식히지 않은 평민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았다.

    어느 한겨울 새벽 산기슭 마을 봉촌(鳳村, 지리산 남쪽 작은 마을) 의 어린아이 도신(都信, 갓 두 살의 막내) 이 새벽 첫 한 호흡을 잃을 자리에 있었다. 노송은 그 한 박자 전 산신각의 향 한 개비를 자기 손바닥 위에 정중히 받쳐 두 번 나누어 피웠고, 절반은 산군의 새벽 발걸음 자리에, 나머지 절반은 봉촌의 도신이 누운 방향으로 정중히 흘려보냈다. 그 향의 절반 한 줄이 도신의 한 호흡 위에 정중히 닿은 새벽, 도신은 그대로 일어나 첫 울음을 정중히 터뜨렸다.

    도신은 자라 박수무당의 굿청 악사가 되었고, 노송이 회갑 새벽 산신각 향로 옆에서 정중히 입적(入寂)할 때 마지막 장구 한 박자를 띄워 그를 배웅했다. 그 산신각의 향로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한 개비를 식히지 않으며, 후대 지리산 지킴이들은 새벽 첫 향을 두 번 나누어 피우는 자세를 정중히 따른다.

  • 낭법사객(浪法師客)

    떠돌이 법사

    주지 없는 절을 떠도는 떠돌이 법사

    어느 사찰 소속이냐 묻지 마시오. 사찰에 소속되어서는 닿을 수 없는 한 줄 도(道)가 있소.

    떠돌이 법사는 어느 사찰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산기슭과 인계 마을 사이를 떠도는 평민 출신 수행자다. 외형은 닳은 회색 가사(袈裟), 어깨에 작은 바랑, 허리에 작은 염주와 한 자루 죽장(竹杖)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문의 평소 시각·옛 분기 도량(道場)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사찰 정식 법사가 망설이는 외진 마을의 한 굿청에 가장 먼저 닿는다.

    그래서 떠돌이 법사의 죽장 한 자루는 사찰 정식 법사의 한 권 경전보다 가볍지만 더 무거운 한 줄을 굴린다. 가장 무거운 한 줄 도(道)는 큰 사찰의 큰 법문이 아니라, 신참 수행자의 첫 한 줄 염주 위에 떠돌이 법사가 정중히 한 박자 멈추는 그 침묵이다.

    우리 후대 떠돌이들이 첫 산행에 자기 죽장(竹杖)을 산문 입구에 한 박자 비스듬히 기대 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죽장 한 자루는 사찰 한 채보다 가볍지만, 그 가벼움이 외진 한 마을의 한 끼 위에 한 줄로 닿는다는 뜻이오.

    떠돌이 법사 무름(無凜) — 평생 어느 사찰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한반도 산기슭을 칠십 년 떠돈 자이자 자기 죽장 한 자루를 칠십 년 끌어간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늦은 새벽 무름은 외진 산골 마을 풍천리(風泉里, 강원 깊은 산골) 한 자락에 도착했고, 그 마을은 그날 박수무당이 한 박자 늦어 굿청을 차릴 자가 없는 자리였다. 무름은 자기 죽장을 마을 어귀 작은 향로(香爐) 옆에 정중히 비스듬히 기대 둔 다음, 가사를 풀어 펴고 어린 영혼 한 명 — 마을 막내 송이(松伊, 갓 다섯 살에 한 호흡을 잃은 어린아이) — 의 한 줄 천도(遷度)를 정중히 마쳐 주었다. 무름은 그 자리에 보수를 한 푼도 받지 않았으며, 그 마을 어른 한 분이 끓여 준 차 한 잔만 정중히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났다.

    풍천리는 그 일 이후 매년 봄 새벽 그 향로 자리에 작은 차 한 잔을 따르는 관례를 만들었고, 송이의 부모는 평생 무름의 죽장 한 자루를 자기 가슴에 정중히 기억했다. 무름의 죽장은 그가 칠십 년 째 산기슭에서 입적한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후대 떠돌이 법사들은 첫 산행 산문 입구에 자기 죽장을 한 박자 비스듬히 기대 두는 자세를 따른다.

  • 굿청악사(굿廳樂士)

    굿청 악사(樂士)

    굿판의 가락을 연주하는 악사

    박수 어른의 부채 끝에 제 장구 한 박자가 따라붙습니다. 그게 굿청 한 판의 첫 호흡이지요.

    굿청 악사는 박수무당의 굿 한 판에서 장구·꽹과리·피리를 정중히 연주하는 평민 출신 악공이다. 외형은 짙은 색 한복 작업복, 어깨에 작은 악기 가방, 한 손에 장구채 또는 꽹과리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굿청의 옛 분기 장단 결재·박수의 부채 한 박자·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박수가 부채를 한 번 펼치는 그 시각에 정확히 장구 한 박자를 띄운다.

    그래서 굿청의 진짜 첫 호흡은 박수의 한 마디가 아니라 악사의 첫 장단 한 박자 위에 있다. 가장 무거운 한 박자는 큰 굿청의 큰 장단이 아니라, 한(恨)을 풀러 온 한 가족의 첫 한 호흡 위에 정중히 떨어지는 그 한 박자다.

    우리 후대 악사들이 첫 굿청 입장에 자기 장구를 한 박자 비스듬히 기대 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장구 한 면은 박수의 부채 끝을, 다른 한 면은 한(恨)을 풀러 온 가족의 첫 한 호흡을 정중히 받는 자세요.

    굿청 악사 도신(都信) — 앞서 (340014) 노송 일화에서 첫 한 호흡을 받은 봉촌의 막내가 자라 평생 장구채 한 자루를 사십 년 끌어간 자 — 의 일화는 박수무당 사이에서 가장 따뜻한 야사로 회자된다.

    도신은 자기 첫 굿청을 한천박수 백련(앞서 (340004)의 한천박수) 의 회갑 새벽에 처음 차렸으며, 그 자리에서 장구 한 면을 백련의 부채 끝에, 다른 한 면을 자기 어머니 — 봉촌의 평민 윤씨, 평생 도신을 키운 노모 — 의 첫 한 호흡 자리에 정중히 비스듬히 기대 두었다. 백련의 부채가 한 번 펼쳐지자 도신의 장구 한 박자가 정확히 그 끝에 붙었고, 그 한 박자 위에서 윤씨의 평생 한(恨) 한 줄이 정중히 풀려 나갔다. 윤씨는 그날 새벽 한 박자 늦게 자기 첫 한 호흡을 정중히 마쳤으며, 도신은 그 장구를 사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다시 비스듬히 기대지 않았다.

    도신 사후 그 장구는 한천골 박수단(壇)의 한 자락에 정중히 모셔졌으며, 후대 악사들은 첫 굿청 입장에 자기 장구를 한 박자 비스듬히 기대 두는 자세를 따른다.

  • 산문향공(山門香工)

    산문 향꾼

    산문의 향을 사르는 향꾼

    이 향 한 개비, 산문 입구에 한 시진(時辰) 피웁니다. 그동안 산군께 인사 드리시지요.

    산문 향꾼은 산기슭 산문(山門) 입구에서 향(香) 한 개비를 정중히 피워, 인간이 산군에게 정중히 인사하도록 안내하는 평민 출신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향통(香筒) 가방, 한 손에 작은 부싯돌과 향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문의 평소 시각·옛 분기 향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시각에 어느 향을 피워야 산군의 발걸음 한 박자가 인간 마을 새벽을 비키는지 정확히 안다.

    그래서 산문 향꾼의 한 개비 향이 식기 전에 들어선 인간만이 그 산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마을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개비는 큰 산문의 큰 향이 아니라, 신참 나그네의 첫 한 발걸음 위에 정중히 피어오르는 그 한 가닥이다.

    우리 후대 향꾼들이 첫 향 한 개비를 일부러 산문 입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어오른 한 가닥이 산군의 가장 높은 발걸음을 한 박자 비키게 한다는 뜻이오.

    묘향산 산문 향꾼 막동(莫童) — 앞서 (340001) 호단 일화에서 첫 한 호흡을 데운 어린 약초꾼이 자라 평생 향꾼 일을 사십 년 끌어간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막동은 자기 산문 향꾼 자리를 백두산 산문 입구의 가장 낮은 자리 — 호단이 그를 데운 마른 다래나무 그루터기 옆 — 에 정중히 두었으며, 새벽 첫 향 한 개비를 그 그루터기 위에서 늘 정중히 피웠다. 어느 한겨울 새벽 산문 입구에 신참 나그네 송재범(부친상 직후 첫 산행의 평민) 한 명이 한 박자 멈췄을 때, 막동은 그 향 한 가닥을 정중히 송재범의 첫 발걸음 자리로 흘려 두었다. 송재범은 그 향 한 가닥을 따라 산속에서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은 채 무사히 산을 내려갔으며, 평생 막동의 그루터기에 작은 술 한 잔을 매년 정중히 따랐다.

    막동 회갑 새벽 호단의 후대 산군이 인간 노인의 모습으로 그 그루터기에 정중히 합장한 사실은 산기슭 야사에 한 줄 더 남아 있다. 막동의 향통은 지금도 그 자리에 정중히 모셔져 있으며, 후대 묘향산 향꾼들은 첫 향 한 개비를 그 그루터기 자리에서 시작하는 자세를 따른다.

  • 영약채산자(靈藥採山者)

    영약 채집 산꾼

    산을 누비며 영약을 캐는 산꾼

    이 산삼 한 뿌리, 산군께 먼저 절을 올린 자에게만 손에 닿습니다.

    영약 채집 산꾼은 산기슭 깊은 골짜기에서 산삼·영지·구미호 꼬리털 같은 영약(靈藥)을 정중히 캐내는 평민 출신 채집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도포, 어깨에 작은 채집 가방, 허리에 작은 채집용 단도와 산군 부적 한 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영약의 위치·옛 분기 채집 결재·산군의 발걸음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절세 박수가 큰 굿청을 열려 할 때 가장 먼저 산꾼의 한 뿌리 산삼이 그의 자리에 도착한다. 산군에게 절을 올리지 않고 캐낸 산삼은 그 자리에서 단순 풀뿌리로 전락한다는 격언이 있어, 산꾼은 평생 절 한 번을 잊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뿌리는 큰 영약이 아니라, 산군 앞의 절 한 번이다.

    우리 후대 산꾼들이 첫 산삼 한 뿌리를 캐기 전에 자기 단도(短刀)를 흙 위에 정중히 비스듬히 눕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단도를 곧게 세우면 산삼이 풀뿌리가 되고, 비스듬히 누이면 그 한 뿌리가 한 마을의 한 시즌이 된다는 뜻이오.

    태백산 영약 채집 산꾼 한배(韓培) — 태백산(한반도 동부의 큰 산) 한 자락에서 사십 년 산삼을 캔 자이자 평생 절 한 번을 잊은 적이 없는 평민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가을 새벽 한배는 태백산 북쪽 골짜기 깊은 자리에서 백 년 묵은 산삼 한 뿌리 — 후일 '태백 백년삼(百年蔘)'으로 불린 영약 — 를 발견했다. 한배는 그 자리에서 자기 단도를 흙 위에 정중히 비스듬히 눕히고, 산군에게 한 박자 늦게 절을 한 번 더 올린 다음에야 산삼을 정중히 캐냈다. 그 산삼 한 뿌리는 그해 한천박수 백련(앞서 (340004))이 한천골 회갑 굿청을 열기 한 시진 전에 백련의 자리에 정중히 도착했고, 그 굿청은 사대(四代)에 걸친 옛 한(恨)을 한 박자에 정중히 풀어냈다.

    한배는 그 일 외에 평생 자기 단도를 곧게 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회갑 새벽 그 단도를 산군의 산문 향꾼 향로 옆에 정중히 풀어두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 단도는 지금도 태백산 산문 입구 작은 사당에 비스듬히 누인 채 모셔져 있으며, 후대 태백 산꾼들은 첫 산삼 한 뿌리를 캐기 전에 자기 단도를 그 자리에 한 번 정중히 비스듬히 눕히는 자세를 따른다.

  • 촌락점복옹(村落占卜翁)

    마을 점쟁이 영감

    마을 어귀에서 점을 보는 늙은 점쟁이

    올해 그대 사주, 한 자(字)만 좋으오. 다만 그 한 자가 여름 한 끼를 살리오.

    마을 점쟁이 영감은 산기슭 작은 마을 어귀에서 사주(四柱)·신점(神占)·작은 부적을 정중히 봐주는 평민 출신 노인이다. 외형은 닳은 흰 한복, 머리에 작은 갓, 가슴팍에 작은 점통(占筒), 한 손에 옛 사주첩(冊)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마을 모든 가구의 평소 사주·옛 분기 점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마을 한 가족의 한 시즌을 한 줄 점괘로 정중히 정리한다.

    그래서 박수무당이 큰 굿청을 열기 전, 영감의 한 줄 점괘를 먼저 묻는 일이 마을 야사에 흔하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점괘는 큰 가문의 사주가 아니라, 신참 부모가 처음 들고 온 어린아이의 한 줄 사주 위에 영감이 정중히 붓을 멈추는 그 한 박자다.

    우리 후대 영감들이 첫 점괘 한 줄을 일부러 한 글자만 띄어 적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그 한 글자의 빈 자리가 한 가족의 다음 한 시즌이 자기 발걸음을 들여놓을 여백이라는 뜻이오.

    봉촌(앞서 (340014) 노송 일화의 마을) 점쟁이 영감 도신(都信) — 앞서 (340016)에서 굿청 악사로 자란 막내가 회갑 뒤 자기 마을 어귀로 돌아와 점쟁이 자리에 앉은 자 — 의 일화는 봉촌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도신은 회갑 뒤 노송의 산신각 향로 옆에 작은 좌판 한 자리를 정중히 차렸으며, 마을 사람들의 사주 한 줄을 늘 한 글자만 띄어 적었다. 어느 봄 새벽 봉촌의 신참 부모 한 쌍 — 농부 김달수의 손녀 김초이(金艸伊) 와 그 남편 — 이 갓 백일 된 어린아이의 첫 한 줄 사주를 받으러 왔다. 도신은 그 아이의 한 줄 사주에 한 글자를 일부러 비워 두었으며, 그 빈 자리에 "장구 한 박자 위에 정중히 한 호흡 멈추라"는 한 마디만 정중히 풀어 주었다.

    그 빈 한 글자 자리에 그 아이의 다음 한 시즌이 정중히 자기 발걸음을 들여놓았고, 그 아이는 자라 굿청 악사 자리를 도신에게서 정중히 이어받았다. 도신 사후 그 사주첩은 봉촌 점쟁이 좌판 한 자락에 그대로 모셔졌으며, 후대 봉촌 영감들은 첫 점괘 한 줄에 한 글자를 일부러 띄어 적는 자세를 정중히 따른다.

  • 산문객주옹(山門客主翁)

    산문 객주

    산문 길목의 객주를 지키는 주인

    이 술 한 잔, 산군께 먼저 한 모금. 그대는 그 다음 한 모금이오. 산문 규칙입니다.

    산문 객주는 산기슭 산문 입구 한 자락에서 작은 객주(客主, 주막)를 평생 운영하는 평민 출신 노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한복 작업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술잔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문 객주의 평소 단골·옛 분기 술 결재·산군 발걸음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산문에 들른 모든 나그네는 객주의 한 잔 술 앞에 산군 한 모금을 먼저 정중히 붓고 자기 한 모금을 받는다. 가장 무거운 한 잔은 큰 절세 박수의 한 잔이 아니라, 신참 나그네의 첫 한 잔 술 위에 객주가 정중히 산군 한 모금을 먼저 붓는 그 한 박자다. 산문의 진짜 객주는 술이 아니라 그 한 모금의 순서다.

    우리 후대 객주들이 첫 손님의 술잔을 받기 전에 자기 두건을 한 번 정중히 고쳐 매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두건의 한 매듭이 산군의 한 모금과 인간의 한 모금 사이에 정중히 끼어드는 자세요.

    묘향산 산문 객주 노술도(老述道) — 평생 산군께 한 모금 먼저 붓는 자세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자이자 자기 작은 객주 한 채를 사십 년 비우지 않은 평민 노인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았다.

    어느 한겨울 새벽 묘향산 산문 입구의 객주 마당에 신참 나그네 윤설호(앞서 (340013) 안개다리 일화의 어린 학자가 자라 사신 방위 검수가 된 후 첫 산행에 들른 자) 한 명이 한 박자 늦게 도착했다. 노술도는 그 자리에 자기 두건을 한 번 정중히 고쳐 매고는, 첫 잔 술 한 모금을 산군께 먼저 정중히 부은 다음에야 윤설호에게 잔을 정중히 권했다. 윤설호는 그 한 박자 위에서 평생 자기 사신 방위 검수의 첫 절을 정중히 올렸으며, 노술도의 두건 한 매듭을 자기 가슴팍에 평생 기억했다.

    윤설호는 그 일 이후 매년 새벽 그 객주 마당에 정중히 자기 패철(佩鐵)을 한 번 비스듬히 기대 두는 관례를 만들었다. 노술도 사후 그 두건은 객주 마당의 작은 술잔 자리에 정중히 모셔졌으며, 후대 묘향산 객주들은 첫 손님의 술잔을 받기 전에 자기 두건을 한 번 정중히 고쳐 매는 자세를 따른다.

  • 뇌신천둥장(雷神天動將)

    뇌신(雷神) 천둥장군

    천둥을 부리는 뇌신의 장군

    이 천둥 한 줄, 그대 머리 위로 떨어뜨릴 수 있소. 다만 그대 한 호흡이 정중하면, 그 한 줄 옆 골짜기로 비킨다오.

    뇌신 천둥장군은 천제 휘하의 한 시즌 뇌우(雷雨)·낙뢰 한 줄을 직접 결재하는 무장(武將) 신령으로, 외형은 짙은 흑포 위에 청동 갑(甲), 머리에 뇌문(雷紋) 투구, 한 손에 거대한 뇌고(雷鼓) 북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낙뢰 자리·옛 분기 뇌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한 농부의 한 끼 들밥 위에 낙뢰가 떨어질지 옆 골짜기로 비킬지를 한 박자 안에 정한다. 본인은 하늘에서 보아도 인간 한 명의 호흡까지 듣는 자세를 잃지 않으며, 그 자세가 흐트러지면 그 시즌 뇌우가 한 마을의 새벽을 통째로 태운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천둥장군은 뇌고를 칠 때 늘 한 박자 늦게 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천둥은 큰 산을 가르는 낙뢰가 아니라, 신참 농부의 첫 들밥 위에 뇌고 한 박자를 정중히 비키는 그 침묵이다. 뇌신의 진짜 위엄은 천둥의 크기가 아니라, 비키는 한 박자의 결재에 있다.

    우리 후대 천둥장군들이 즉위 첫 뇌우를 일부러 들밥 한 그릇 자리 위에서 멈추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뇌고 한 박자의 무게는 하늘이 아니라, 그 들밥 한 숟가락 위에 정중히 머무는 자세에 있다는 뜻이오.

    오대 뇌신 천둥장군 운진(雲震) — 평생 뇌고를 단 두 번만 한 박자 빠르게 친 자이자 그 두 번 모두 자기 임기 마지막 새벽에 옆 골짜기로 정중히 비킨 자 — 의 일화는 인계 농촌 야사에 길게 남았다.

    어느 한여름 정오 인계 보리고개 한 자락 — 화양리(華陽里, 충청 남부 들밥이 가난하기로 유명한 마을) — 의 신참 농부 박씨 일가가 첫 들밥 한 그릇을 마당 한가운데 정중히 펴 놓았다. 운진은 그 한 박자 위에 떨어질 자기 낙뢰 한 줄을 옆 골짜기 —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바위 자락 — 로 정중히 비키며 뇌고를 한 박자 늦게 쳤다. 그날 화양리의 들밥 한 그릇은 그대로 보전됐고, 그해 화양리 농가는 사대(四代)에 걸쳐 첫 보리 한 자루를 정중히 거두었다.

    박씨 일가의 막내가 자라 풍수 지관이 된 도진(앞서 (340011)의 청송 풍수 지관) 의 사사(師事) 첫 스승이 되었다는 한 줄도 야사에 같이 남아 있다. 운진의 뇌고 북채는 지금도 천계 뇌고전(雷鼓殿) 한 자락에 한 박자 늦게 모셔져 있으며, 후대 천둥장군들은 즉위 첫 뇌우를 들밥 한 그릇 자리 위에서 한 번 정중히 멈추는 자세를 따른다.

  • 구미호두령(九尾狐頭領)

    구미호 사냥꾼 두령

    구미호 사냥꾼들을 거느리는 두령

    이 꼬리 아홉 자국, 한 자루 사냥감이 아니오. 다만 한 시대의 한(恨) 한 줄을 정중히 풀어주어야 할 자리요.

    구미호 사냥꾼 두령은 한 시대 인계의 구미호 한 마리 한 마리의 자취를 정중히 추적하는 평민 출신 두령으로,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색 사냥 도포, 어깨에 호아도(虎牙刀)와 한 줄 부적 묶음, 한 손에 옛 구미호첩(冊)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구미호의 평소 발걸음·옛 분기 한(恨) 결재·산군의 산문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구미호가 단순 야수로 전락했고 어느 구미호가 한(恨)을 풀 자격이 있는지 정확히 가른다. 본인은 자격이 있는 구미호 앞에서는 칼을 거두고, 박수무당의 굿청 한 자리를 먼저 정중히 안내하는 자세가 표준이다.

    그래서 두령의 호아도는 한 시즌에 한두 번만 뽑히며, 그 외에는 부적 한 줄로 사냥이 끝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사냥은 큰 구미호의 꼬리가 아니라, 어린 구미호의 첫 한 박자 위에 두령이 정중히 칼을 거두는 그 한 박자다. 두령의 진짜 절기는 칼이 아니라 거두는 자세다.

    우리 후대 두령들이 첫 추적에 자기 호아도를 칼집째 거꾸로 메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거꾸로 메인 칼 한 자루가 어린 구미호의 첫 한 박자 앞에 정중히 멈추는 약속이라는 뜻이오.

    백제 구미호 사냥꾼 두령 청산(靑山) — 평생 호아도를 단 한 번만 뽑은 자이자 자기 임기 사십 년 동안 어린 구미호 한 마리도 베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박수무당 사이에서 '거꾸로 멘 칼'로 길게 회자된다.

    어느 가을 새벽 청산은 호산령(虎山嶺, 호남 산기슭의 옛 고개) 한 자락에서 첫 한(恨)을 막 풀려 하는 어린 구미호 — 옛 백제 왕가의 시녀 한 명이 한 줄 한(恨)으로 구미호가 된 셋째 꼬리의 어린 영물 — 의 자취를 발견했다. 청산은 자기 호아도를 칼집째 정중히 거꾸로 메고는, 그 어린 구미호를 한천박수 백련(앞서 (340004))의 굿청 한 자락으로 정중히 안내했다. 백련의 부채 한 박자와 도신의 장구 한 박자(앞서 (340016)) 위에서 그 어린 구미호의 한(恨) 한 줄이 정중히 풀렸으며, 그 자리에 셋째 꼬리 한 자락이 정중히 부적 한 장으로 봉(封)해 두었다.

    청산은 그 일 외에 평생 호아도를 다시 뽑지 않았으며, 회갑 새벽 자기 호아도를 호산령 작은 사당에 거꾸로 메 둔 채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 호아도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 거꾸로 모셔져 있으며, 후대 두령들은 첫 추적에 자기 호아도를 한 번 정중히 거꾸로 메는 자세를 따른다.

  • 옥황비서감(玉皇秘書監)

    옥황 비서감(秘書監)

    옥황상제의 비서감을 맡은 신관

    천제 폐하의 결재 한 줄, 제 두루마리에서 다음 한 시진 안에 산군과 용왕에게 정중히 닿게 하겠소.

    옥황 비서감은 천제의 결재 두루마리를 정중히 정리하고 산군·용왕·염라에게 그 결재를 한 줄씩 정중히 전달하는 천계의 문관(文官)으로, 외형은 짙은 자색 도포에 흰 띠, 머리에 작은 옛 관(冠), 한 손에 옛 두루마리 묶음과 한 자루 옥붓(玉筆)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천계 모든 결재의 옛 분기 순서·산천 신령의 평소 시각·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천제의 결재 한 줄이 어느 신령에게 어느 시각 닿아야 그 시즌 천기(天機)가 어긋나지 않는지 정확히 안다. 본인은 결재의 무게를 잘 알기에 옥붓 한 획도 함부로 흘리지 않으며, 작은 글자 한 자도 정중히 정리한 다음 두루마리를 봉(封)한다.

    그래서 비서감의 책상은 옥좌 옆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분주한 자리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별의 추락 결재가 아니라, 작은 산기슭의 한 줄 풍수 결재 위에 비서감이 정중히 봉인을 찍는 그 한 박자다. 천계의 진짜 결재는 옥좌가 아니라 비서감의 책상 위에 있다.

    우리 후대 비서감들이 첫 봉인을 작은 풍수 결재 한 줄 위에 먼저 찍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작은 글자 한 자가 정중히 봉(封)되어야, 큰 별 한 자리가 그 시즌의 천기(天機)에 정중히 들어맞는다는 뜻이오.

    초대 옥황 비서감 채현운(蔡玄雲) — 천계 옥좌 곁의 책상 한 자리를 삼백 년 비우지 않은 자이자 자기 옥붓 한 자루를 평생 끌어간 문관 — 의 일화는 천계 두루마리에 가장 길게 등재되어 있다.

    어느 한겨울 새벽 사대 천제 자미(앞서 (340006)) 께서 갑생성(甲生星) 한 자리의 결재를 채현운에게 내리셨을 때, 채현운은 그 결재를 받기 전 인계 청송골 한 자락의 작은 풍수 결재 한 줄 — 도진(앞서 (340011))이 김달수의 집터를 옮겨 잡은 그 한 박자 결재 — 위에 자기 옥붓을 정중히 먼저 찍었다. 그 작은 한 줄 봉인이 정중히 마무리된 다음에야 채현운은 갑생성 한 자리의 큰 결재를 옥붓 한 획으로 정중히 봉(封)했다. 그 시즌 천계의 천기는 한 박자도 어긋나지 않았으며, 인계의 작은 마을 한 자락의 새벽 한 끼와 천계 한 별 한 자리가 같은 한 줄 위에 정중히 묶였다.

    채현운은 그 일 외에 평생 결재 순서를 바꾼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자기 옥붓을 회갑 새벽 옥좌 옆 책상 한 자리에 정중히 풀어두고 입적(入寂)했다. 그 옥붓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정중히 모셔져 있으며, 후대 비서감들은 첫 봉인을 작은 풍수 결재 한 줄 위에 먼저 찍는 자세를 따른다.

  • 저승도반사(저승道伴使)

    저승사자 도반(道伴)

    저승사자와 길동무하는 도반

    그대 한 호흡, 아직 한 박자 남았소. 그동안 마지막 한 모금 차(茶) 한 잔 정중히 드시오.

    저승사자 도반은 염라 휘하의 정식 저승사자가 아닌 평민 출신 동행인으로, 임종 직전 한 호흡 위에 작은 차 한 잔을 정중히 올리는 자세로 인간을 저승 입구까지 안내한다. 외형은 짙은 흑포 두루마기, 머리에 작은 흑립(黑笠), 한 손에 작은 백자 다관(茶罐), 다른 한 손에 작은 명부(冥府)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임종 자리·옛 분기 명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임종 한 호흡 위에 어느 차 한 잔을 정중히 올려야 그 영혼이 단정히 길을 떠나는지 정확히 안다.

    본인은 정식 사자가 아니므로 결재 권한은 없으나, 한 호흡의 마지막 한 모금을 정중히 올리는 자격은 있다. 그래서 마을 박수무당은 큰 굿청 한 자락에 늘 도반의 자리를 비워두는 자세가 표준이다. 가장 무거운 한 잔 차(茶)는 큰 가문의 임종이 아니라, 어린 영혼의 첫 한 호흡 위에 도반이 정중히 다관을 기울이는 그 한 박자다. 저승의 진짜 입구는 명부가 아니라 그 한 잔의 차다.

    우리 후대 도반들이 첫 임종 자리에 자기 다관(茶罐)을 일부러 한 박자 늦게 기울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한 박자의 늦음이 그 영혼이 자기 마지막 한 모금을 정중히 받아 마실 여백이라는 뜻이오.

    강화 저승사자 도반 묵헌(默軒) — 앞서 (340012) 백악사 부적 화공의 사촌이자 평생 다관 한 자루를 사십 년 끌어간 평민 — 의 일화는 박수무당 사이에서 '한 잔의 늦은 차'로 길게 전해진다.

    어느 한겨울 새벽 강화도(江華島, 한반도 서해 큰 섬) 작은 어촌의 노어부 강만춘(앞서 (340002) 묘진포 일화의 어부) 의 마지막 한 호흡 자리에 묵헌이 도착했다. 묵헌은 동해 사대 용왕 청린이 강만춘에게 선물했던 비늘 한 조각이 강만춘의 손바닥 위에 그대로 정중히 모셔져 있는 사실을 알았기에, 자기 다관을 한 박자 늦게 기울여 강만춘이 그 비늘 한 조각을 자기 가슴팍에 정중히 옮길 시간을 한 박자 더 만들어 주었다. 강만춘은 그 한 박자 위에서 자기 비늘 한 조각을 손주 강도식의 손에 정중히 건네 두었고, 그 다음 한 모금의 차를 정중히 마신 다음 단정히 길을 떠났다. 강도식은 그 비늘 한 조각을 자기 첫 출항(앞서 (340009)) 의 뱃머리 자리에 정중히 모셔 두었으며, 묵헌의 다관 한 자루는 사대(四代)에 걸쳐 강화 어촌의 임종 자리에 정중히 모셔져 왔다.

    후대 강화 도반들은 첫 임종 자리에 자기 다관을 한 박자 늦게 기울이는 자세를 정중히 따른다.

  • 사신방위수(四神方位守)

    사신(四神) 방위 검수

    사신의 방위를 지키는 검수

    이 마을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 한 방위만 어긋나도 한 시즌의 새벽이 흔들리오.

    사신 방위 검수는 한 마을·한 사찰·한 옛 도성의 동·서·남·북 네 방위 결재를 정중히 점검하는 평민 출신 방위 학자로, 외형은 단정한 짙은 청색 도포, 가슴팍에 사신문(四神紋) 펜던트, 한 손에 패철(佩鐵)과 옛 방위첩(冊)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도성·산문·산신각의 사신 방위·옛 분기 결재·산군의 발걸음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한 마을의 청룡 자리에 작은 우물 하나 잘못 파인 사실까지 점검한다. 본인은 풍수 지관과 협업이 잦으며,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만나면 한 마을의 다음 세 세대 풍수가 정중히 정리된다.

    그래서 새 도성 한 곳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부르는 자가 사신 방위 검수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점검은 큰 도성의 사신문(四神門)이 아니라, 신참 마을의 첫 우물 한 자리 위에 패철을 정중히 올려주는 그 한 박자다. 사신의 진짜 결재는 큰 문이 아니라 작은 우물에 있다.

    우리 후대 검수들이 첫 출장에 자기 패철을 일부러 청룡 자리 — 동쪽 — 의 작은 우물 한 자리에서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사신 네 방위의 첫 한 줄은 큰 문이 아니라 한 마을의 첫 두레박이라는 뜻이오.

    사신 방위 검수 윤설호(尹雪虎) — 앞서 (340013) 안개다리에서 한맥의 등불 한 자루로 살아남고 (340020) 묘향산 객주에서 노술도의 두건 매듭을 가슴에 새긴 자가 자라 사십 년 사신 방위 일을 끌어간 학자 — 의 일화는 옛 도성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봄 새벽 윤설호는 새 도성 후보지였던 위례골(慰禮골, 한반도 중부 옛 도성지) 한 자락에서 청룡 자리 — 동쪽 — 의 작은 우물 한 자리부터 정중히 점검을 시작했다. 윤설호는 그 우물 자리에 도진(앞서 (340011))의 패철을 정중히 같이 올려놓고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한 박자에 같이 점검한 결과, 청룡 자리 작은 우물 한 곳이 한 자락 어긋난 사실을 잡아냈다. 두 사람은 그 우물 자리를 한 자락 옆 — 산군의 새벽 발걸음이 정중히 비키는 자리 — 으로 정중히 옮겼고, 위례골은 사대(四代)에 걸쳐 사신 네 방위의 결재를 한 박자도 어긋내지 않은 채 정중히 도성으로 자리잡았다.

    윤설호의 패철과 도진의 패철은 지금도 위례골 사신문(四神門) 동문(東門) 한 자락에 같이 정중히 모셔져 있으며, 후대 사신 검수들은 첫 출장을 청룡 자리 작은 우물 한 자리부터 시작하는 자세를 따른다.

  • 지전등롱장(紙錢燈籠匠)

    청사초롱 지전(紙錢) 장인

    청사초롱과 지전을 만드는 장인

    이 지전 한 묶음, 저승길 한 노자(路資)요. 한 장 한 장 정중히 접지 않으면, 그 길이 한 박자 어둡소.

    청사초롱 지전 장인은 굿청·장례·해원(解寃) 자리에서 태우는 지전(紙錢) 한 장 한 장과 청사초롱 한 자루 한 자루를 정중히 접고 만드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짙은 회색 작업 도포, 어깨에 작은 작업 가방, 한 손에 옛 한지 묶음과 작은 가위, 다른 손에 청사초롱 뼈대 대나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장례 자리·옛 분기 굿청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영혼의 저승길에 어느 지전 한 묶음과 어느 청사초롱 한 자루를 정중히 올려야 그 길이 단정히 환하게 트이는지 정확히 안다.

    그래서 박수무당이 큰 굿청을 열기 한 시진 전, 장인의 지전 한 묶음이 가장 먼저 굿청 자리에 도착한다. 가장 무거운 한 장 지전은 큰 가문의 백 장 묶음이 아니라, 신참 부모가 처음 들고 온 어린 영혼의 한 장 위에 장인이 정중히 한 박자 멈추는 그 침묵이다. 청사초롱의 진짜 빛은 종이가 아니라 그 한 박자의 호흡이다.

    우리 후대 장인들이 첫 청사초롱을 일부러 어린 영혼의 한 자루부터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어린 한 자루의 빛이 가장 작아 보이지만, 그 빛이 사대(四代) 어른의 백 자루 빛을 정중히 데우는 시작이라는 뜻이오.

    한양(漢陽) 청사초롱 지전 장인 묵송(墨松) — 평생 청사초롱 한 자루도 함부로 접은 적이 없는 자이자 자기 작은 가위 한 자루를 사십 년 끌어간 평민 — 의 일화는 박수무당 사이에서 길게 회자된다.

    어느 한겨울 새벽 한천박수 백련(앞서 (340004))이 한천골 어린 영혼 한 명 — 갓 다섯 살 송이(앞서 (340015) 풍천리 일화의 어린 영혼) — 의 천도(遷度) 굿청을 열려 했을 때, 묵송은 그 굿청 한 시진 전 송이의 청사초롱 한 자루를 가장 먼저 정중히 만들어 굿청 자리에 도착시켰다. 묵송은 송이의 그 한 자루를 일부러 가장 작은 청사초롱으로 정중히 만들었으며, 그 작은 빛 한 줄 위에서 백련의 부채 한 박자가 정중히 펼쳐졌다. 그 작은 빛 한 자루가 풍천리 마을 어귀의 큰 청사초롱 백 자루를 정중히 데웠고, 송이의 저승길은 한 박자도 어둡지 않았다.

    묵송은 그 일 외에 평생 첫 청사초롱을 어린 영혼의 한 자루부터 만드는 자세를 정중히 잃은 적이 없으며, 회갑 새벽 그 작은 가위 한 자루를 풍천리 향로 옆에 정중히 풀어두고 한양으로 돌아가 입적(入寂)했다. 그 작은 가위는 지금도 풍천리 사당 한 자락에 정중히 모셔져 있으며, 후대 장인들은 첫 청사초롱을 어린 영혼의 한 자루부터 만드는 자세를 따른다.

  • 한지도배공(韓紙塗褙工)

    산신각 한지(韓紙) 도배공

    산신각의 벽을 한지로 바르는 도배공

    이 산신각 한 칸, 한지 한 장 위에 산군의 한 호흡이 한 시진 정도 머무릅니다. 그러니 한 장도 함부로 붙이지 않소.

    산신각 한지 도배공은 산기슭 산신각·작은 사당의 벽과 천장에 정중히 한지(韓紙)를 한 장 한 장 발라주는 평민 출신 장인으로,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한지 묶음 가방, 한 손에 풀솔과 작은 자(尺), 다른 손에 옛 한지 한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신각·작은 사당의 옛 분기 도배 결재·산군의 발걸음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한지 한 장이 어느 벽 어느 자리에 어느 결로 발라져야 산군의 한 호흡이 한 시진 머무는지 정확히 안다. 본인은 도배 한 장의 결을 잘못 잡으면 그 한 칸 산신각이 그 시즌 향 한 개비를 식혀버린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도배공의 풀솔 한 번은 산문 향꾼의 향 한 개비와 같은 무게로 마을에 회자된다. 가장 무거운 한 장 한지는 큰 산신각의 새 한지가 아니라, 작은 어린아이 첫 백일 사당의 한 장 위에 도배공이 정중히 풀솔을 올리는 그 한 박자다. 산신각의 진짜 도배는 풀이 아니라 그 결의 호흡이다.

    우리 후대 도배공들이 첫 한지 한 장을 일부러 산신각 가장 낮은 벽 — 향로 옆 자리 — 부터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가장 낮은 자리의 한 장이 산군의 가장 높은 한 호흡을 정중히 받는 자세요.

    묘향산 산신각 한지 도배공 한길(韓吉) — 평생 풀솔 한 자루를 사십 년 끌어간 평민이자 자기 한지 한 장도 결을 잘못 잡은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새벽 묘향산 북쪽 골짜기 작은 사당 — 앞서 (340008) 백호 장군 설풍의 호아도가 모셔진 그 사당 — 의 첫 도배가 한길에게 맡겨졌다. 한길은 그 사당 가장 낮은 벽 — 설풍의 호아도가 비스듬히 세워진 자리 옆 — 부터 정중히 한 장을 시작했고, 그 한 장의 결을 호아도의 비스듬한 각도와 정확히 한 박자에 맞추어 발랐다. 그 한 장 위에 설풍의 후대 백호 장군의 새벽 한 호흡이 한 시진 머물렀고, 그 사당의 향 한 개비는 사대(四代)에 걸쳐 식지 않았다.

    한길은 그 일 외에도 평생 한지 한 장을 잘못 발라 본 적이 없으며, 회갑 새벽 자기 풀솔을 그 사당 가장 낮은 벽 옆에 정중히 풀어두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 풀솔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정중히 모셔져 있으며, 후대 묘향산 도배공들은 첫 한지 한 장을 가장 낮은 벽 향로 옆 자리부터 시작하는 자세를 따른다.

  • 다관다동(茶館茶童)

    옛 다관(茶館)의 다동(茶童)

    옛 다관에서 차를 나르는 다동

    산군 어른, 차 한 잔 식기 전에 산문 향꾼이 도착합니다. 그동안 정중히 앉아 계시지요.

    옛 다관의 다동은 산기슭 다관(茶館) 한 자락에서 산군·용궁 사신·천계 비서감 같은 신령 손님과 인계 학자 손님 모두에게 정중히 차 한 잔을 올리는 평민 출신 어린 점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한복 작업복, 머리에 작은 동건(童巾), 어깨에 작은 다포(茶布), 한 손에 작은 백자 다관과 다른 손에 작은 찻잔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다관의 평소 단골·옛 분기 차(茶) 결재·산군의 다관 출입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손님이 어느 시각 어느 자리에 앉을지를 한 박자 안에 정한다.

    그래서 산군이 인간 모습으로 다관에 앉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보는 자가 다동이며, 다동의 첫 한 잔 차가 그 산군의 한 시진을 정중히 정리한다. 가장 무거운 한 잔 차는 큰 신령의 첫 잔이 아니라, 신참 학자의 첫 한 잔 위에 다동이 정중히 다관을 기울이는 그 한 박자다. 다관의 진짜 주인은 차주가 아니라 다동의 두 손이다.

    우리 후대 다동들이 첫 손님의 자리에 자기 동건(童巾)을 한 박자 정중히 매만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소. 동건 한 매듭이 산군과 인계 학자 사이의 한 박자를 정중히 잡아주는 자세요.

    운향다관(雲香茶館, 묘향산 산기슭의 옛 다관) 다동 백연(白淵) — 어린 평민 점원 한 명이 사십 년 같은 다관 마루를 끌어간 자이자 평생 차 한 잔을 식힌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산기슭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한겨울 새벽 운향다관 마루에 호단의 후대 산군이 인간 노인의 모습으로 정중히 앉았고, 같은 시각 천계 옥황 비서감 채현운(앞서 (340023))의 후대 비서감이 두루마리 한 묶음을 들고 다관 문 앞에 도착했다. 백연은 그 한 박자 사이에 자기 동건을 정중히 한 번 매만지고는, 산군에게는 묘향산 약초 한 줌으로 우린 첫 잔을, 비서감에게는 천계 옛 옥붓이 적신 짙은 차 한 잔을 정중히 같은 한 박자에 올렸다. 그 한 잔 두 잔이 같은 한 박자에 식지 않은 그 시진 위에서, 산군과 비서감이 그해 천기(天機)의 한 줄을 정중히 같이 정리했다.

    백연은 그 일 외에도 평생 첫 잔을 식힌 적이 없으며, 회갑 새벽 자기 동건을 운향다관 마루 한 자락에 정중히 풀어두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 동건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정중히 모셔져 있으며, 후대 다동들은 첫 손님의 자리에 자기 동건을 한 박자 매만지는 자세를 따른다.

  • 산문짐꾼옹(山門짐꾼翁)

    산문 짐꾼 영감

    산문에서 짐을 나르는 늙은 짐꾼

    이 짐 한 짝, 산문 향꾼 어른께 먼저 인사 드린 다음에 등에 메겠소. 산문 규칙입니다.

    산문 짐꾼 영감은 산기슭 산문 입구 한 자락에서 나그네·법사·점쟁이의 짐 한 짝을 정중히 등에 지고 산문 위 작은 산신각·옛 사당까지 정중히 운반하는 평민 출신 노인이다. 외형은 닳은 짙은 색 작업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두꺼운 지게(鞋擔) 가죽 멜빵, 한 손에 짧은 죽장(竹杖)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문의 평소 짐꾼 단골·옛 분기 짐 결재·산군의 발걸음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짐 한 짝을 어느 발걸음으로 어느 시각 산문 위로 올려야 산군의 한 박자에 어긋나지 않는지 정확히 안다.

    본인은 짐 한 짝의 무게보다 그 짐 주인의 한 호흡 무게를 더 정중히 다루며, 신참 나그네의 첫 짐 앞에는 늘 한 박자 먼저 절을 올린다. 가장 무거운 한 짝 짐은 큰 학자의 큰 책 묶음이 아니라, 어린 후보의 첫 작은 보따리 위에 영감이 정중히 죽장을 짚는 그 한 박자다. 산문의 진짜 짐꾼은 등이 아니라 그 한 박자의 절이다.

    백림산 산문에서는 짐 한 짝보다 짐 주인의 첫 호흡을 먼저 외우라고 가르치오. 그 한 박자가 산군의 발걸음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까닭이지요.

    백림산(白林山, 한반도 동쪽의 옛 명산이며 산군 호랑이가 정중히 다스린다는 산기슭) 산문 짐꾼 영감 진오의 한 일화는 산기슭 마을 야사 단골 이야기다.

    어느 늦가을 새벽, 신참 점쟁이 한 명이 첫 작은 보따리를 등에 메지 못한 채 산문 입구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진오는 그 보따리를 자기 죽장 끝에 정중히 걸치고는, 점쟁이의 한 호흡이 산군 호랑이(山君, 백림산 신령으로 모시는 흰 호랑이)의 새벽 발걸음과 어긋나지 않을 때까지 두 시진을 같이 산문 입구에 앉아 있었다. 두 시진 뒤 산군의 새벽 발걸음 한 박자가 산문 위에서 정중히 떨어졌고, 진오는 그제야 보따리를 등에 메고 점쟁이를 산문 위 옛 사당까지 정중히 인도했다.

    그 점쟁이는 훗날 백림산 큰 점쟁이가 되었고, 진오의 죽장 끝 한 자루를 평생 자기 사당 자리에 정중히 두었다. 산문에서는 그 죽장 한 자루를 「한 박자 죽장」이라 부르며, 어린 짐꾼들이 첫 새벽에 그 죽장 앞에 한 번 절을 올리는 것이 산문 묵계가 되었다. 산기슭 진짜 산문지기는 산군이 아니라, 그 한 박자를 같이 기다린 영감 한 명이라는 말이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 도깨비호객꾼(호객꾼)

    도깨비 시장 호객꾼

    도깨비 시장 입구에서 손님을 부르는 호객꾼

    어이 손님, 새벽 닭 울기 전까지만 장이오. 도깨비 대장 어른의 술 한 동이도 한 자리 남았소. 정중히 들어오시오.

    도깨비 시장 호객꾼은 한 산기슭 도깨비 다리 너머 한밤중에 잠깐 열리는 도깨비 시장(市場) 한 자락에서 인간 나그네와 도깨비 손님을 정중히 안내하는 평민 출신 점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한복 작업복,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작은 등불 한 자루와 옛 시장 명부(冊), 한 손에 작은 방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도깨비 시장의 평소 단골·옛 분기 시장 결재·도깨비 대장의 새벽 닭 시각·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손님을 어느 좌판 앞에 정중히 안내해야 그 새벽 닭 전에 거래 한 줄이 깨끗이 끝나는지 정확히 안다.

    본인은 인간 나그네에게 늘 새벽 닭 시각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자세가 표준이며, 그 한 박자 안내가 나그네의 다리 한 짝을 도깨비 다리에 묶이지 않게 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호객은 큰 도깨비 손님이 아니라, 신참 나그네의 첫 한 발걸음 위에 호객꾼이 정중히 등불을 들어주는 그 한 박자다. 도깨비 시장의 진짜 장사꾼은 좌판이 아니라 호객꾼의 등불 한 자루다.

    월하다리 시장에서 진짜 무서운 건 도깨비 대장이 아니오. 호객꾼 어른의 등불 한 자루가 새벽 닭 전에 꺼지는 그 한 박자지요.

    월하다리(月下橋, 산기슭 옛 도깨비 다리이며 한밤중에만 도깨비 시장이 열린다는 한 자리) 호객꾼 영감 마을이의 한 일화는 산기슭 나그네들 사이에 단골 이야기다.

    어느 한밤중, 첫 도깨비 시장에 발을 들인 어린 나그네 윤식이 도깨비 대장(都怪比, 도깨비 시장을 다스리는 큰 도깨비 어른)의 술 한 동이 거래에 잘못 끼어들어 다리 한 짝이 도깨비 다리에 묶일 뻔했다. 마을이는 자기 등불 한 자루를 정중히 윤식의 발 앞에 내려놓고, 새벽 닭 시각 한 박자 전에 등불 심지를 한 호흡 더 길게 정중히 잡아당겼다. 그 한 박자에 도깨비 대장의 술 동이 거래가 깨끗이 끝났고, 윤식의 다리는 도깨비 다리에서 정중히 풀려났다.

  • 옥황천명관(玉皇天命官)

    옥황상제(玉皇上帝) 천명 선포관

    옥황상제의 천명을 인간계에 선포하는 관리

    천계의 명은 한 번 선포되면 되돌릴 수 없소. 고로 나는 언제나 선포하기 전에 세 번을 더 읽소.

    옥황상제 천명 선포관은 하늘 위 천궁(天宮)에서 옥황상제(玉皇上帝, 하늘 전체를 다스리는 최고 신령)의 뜻을 인간 세상과 신령들에게 공식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단순히 명령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천계의 언어와 인간 세상의 언어 사이에서 뜻을 정확히 옮겨야 하며, 한 글자라도 잘못 선포하면 세상의 한 계절이 어긋나기도 한다.

    수천 년에 걸쳐 한 번도 선포를 틀린 적 없는 자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으며, 옥황상제조차 선포관의 낭독 속도에 맞춰 숨을 고른다고 전해진다.

    천계 비서감(앞서 340023)이 행정 문서를 관리한다면, 선포관은 그 문서들 가운데 세상을 바꾸는 단 한 줄을 골라 하늘 아래 모든 신령과 인간에게 전하는 자다.

    가장 무거운 직책이지만 가장 말이 적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말이 많으면 천명이 흩어진다.

    천명 선포관 어른이 세 번 읽고 나서 입을 여는 그 간격이, 천계에서 가장 긴 침묵이라 하오. 그 침묵 안에 세상이 한 번 더 구겨지지 않도록 정리된다는 말이지요.

    천계 역사상 가장 짧은 천명 선포로 기억되는 일화가 있다. 선포관 현백(玄白) — 수백 년을 천계에서 단 한 음절도 틀리지 않고 천명을 낭독해 온 자 — 이 어느 봄 초입 천궁 선포대(宣布臺)에 섰을 때의 이야기다.

    그날 옥황상제가 내린 명은 이무기(蛟龍, 용이 되기 전의 큰 물뱀 신령) 하나가 용으로 각성하는 것을 허락하는 내용이었다. 현백은 평소처럼 세 번을 천천히 읽은 뒤 입을 열었는데, 천 년 만에 가장 짧은 열일곱 글자로 선포를 마쳤다.

    천계의 여러 신령이 그 짧음을 의아하게 여기자, 현백은 "그 이무기가 각성하는 날의 강물 소리가 이미 선포보다 길었소"라고 한 줄만 덧붙였다.

    그 이무기는 훗날 동해 용왕(앞서 340002)의 막내 동생이 되었고, 현백의 열일곱 글자 선포는 천계 선포대 기둥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지금도 남아 있다.

  • 이무기각성사(蛟龍覺醒師)

    이무기(蛟龍) 각성 보조사

    이무기를 용으로 깨우는 보조 술사

    천 년을 기다린 각성이오. 내가 할 일은 그 마지막 한 호흡에 물길이 어긋나지 않도록 잡아두는 것뿐이오.

    이무기 각성 보조사는 용이 되기 직전 단계에 도달한 이무기(蛟龍, 깊은 강이나 연못에 사는 거대 물뱀 신령으로 천 년을 수련하면 용으로 거듭난다)가 마지막 관문을 넘을 때 그 물길과 기운을 옆에서 보좌하는 전문가다.

    이무기의 각성은 폭풍·홍수·벼락이 한꺼번에 터지는 대사건이라, 주변 마을과 산천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 에너지의 방향을 잡아두는 기술이 핵심이다.

    천계에서 정식 자격을 부여받은 자만이 이 작업을 맡을 수 있으며, 자격 시험은 살아있는 이무기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라 알려져 있다.

    한 번의 각성을 완료하는 데 평균 사흘이 걸리며, 그 사흘 동안 보조사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구미호 사냥꾼 두령(앞서 340022)과 달리 이들은 영물을 해치는 자가 아니라, 영물이 더 크게 세상에 서도록 돕는 자다.

    이무기 각성 보조사 어른들이 각성 현장에서 절대 눈을 감지 않는 이유가 있소. 보조사가 눈을 감은 사흘이 이무기에게는 평생이기 때문이오.

    보조사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각성으로 꼽히는 사건이 있다. 경기도 한 강마을 심연(深淵, 깊이를 알 수 없다 하여 불린 옛 연못)에서 이천 년을 수련한 이무기 흑린(黑鱗) — 비늘이 먹빛이라 붙은 이름, 마을 어른들이 대대로 산신각 옆에 작은 신당을 세워 모신 영물 — 의 각성 날에 관한 이야기다.

    흑린의 각성이 시작된 첫날 밤, 예상치 못한 늦장마가 겹쳐 강물이 마을 쪽으로 한 줄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보조사 무천(霧川)은 자기 소매 안에 품고 있던 봉인 부적(앞서 340012 부적 화공 선배가 만들어준 부적 세 장) 두 장을 강 좌우 기슭에 정중히 꽂고 나머지 한 장을 흑린의 이마에 직접 붙였다.

    그 한 장의 부적이 흑린의 각성 에너지를 강 하류 쪽으로 정확히 한 줄 돌렸고, 마을은 한 채도 잠기지 않았다. 흑린은 사흘 만에 완전히 용으로 각성했으며, 무천의 이름은 동해 용왕 기록부에 정식으로 올랐다.

  • 신선단약사(神仙丹藥師)

    신선(神仙) 단약(丹藥) 제조사

    불로의 단약을 빚는 신선의 제조사

    단약 한 알은 백 년을 압축한 것이오. 급하게 끓이면 백 년이 한꺼번에 터지오.

    신선 단약 제조사는 깊은 산속 단약로(丹藥爐, 단약을 만드는 화로) 앞에서 신선(神仙, 인간을 넘어 영원히 사는 존재)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영물의 상처를 치유하는 단약(丹藥, 신비한 약재를 오래 끓여 만든 둥근 약)을 만드는 전문가다.

    재료 하나하나가 영물의 뼈·천년 묵은 산삼·천계의 이슬 등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며, 단 한 가지 재료가 잘못 들어가면 먹은 자가 오히려 수명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생긴다.

    단약로에 불을 피운 뒤 최소 구십구 일을 쉬지 않고 지켜야 하며, 그 사이 화로에 가까이 다가와서는 안 될 것들을 쫓아내는 일도 제조사의 몫이다.

    영약 채집 산꾼(앞서 340018)이 재료를 구해 오면 제조사가 비로소 작업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두 직업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단약 하나가 완성되는 날에는 반드시 산 전체에 향기가 퍼진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 냄새가 나는 날 소원을 빈다.

    단약 제조사 어른이 구십구 일을 버티고 나서 화로 뚜껑을 여는 그 새벽 한 호흡이, 그 산의 한 계절보다 무겁다고 들었소.

    백운산(白雲山, 구름이 항상 허리를 감고 있다 하여 불린 오래된 명산) 단약로 제조사 청허(淸虛) — 이백 년을 단 하나의 화로 앞에서 보낸 신선 — 의 일화는 단약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실수 이야기로 꼽힌다.

    청허가 단약 완성 마지막 날 새벽, 뇌신 천둥장군(앞서 340021)이 훈련 중 번개 한 줄을 백운산 쪽으로 잘못 내려보낸 일이 있었다. 그 번개가 화로 옆 참나무에 한 줄 떨어지며 화로의 온도가 순간 두 배로 치솟았다.

    청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매 안에서 차가운 샘물 한 표주박을 꺼내 화로 옆 돌 위에 정확히 세 방울을 흘렸다. 그 세 방울이 화로 주변의 기운을 한 호흡 안에 안정시켰고, 단약은 예정보다 한 시진 늦게 완성되었다.

    청허는 완성된 단약을 손에 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다음엔 훈련 방향을 서쪽으로 해주시오"라고 담담히 말했고, 그 한마디가 천계까지 전해졌다.

  • 옥문수문장(玉門守門將)

    천계(天界) 옥문(玉門) 수문장

    천계 옥문을 지키는 수문장

    하늘 문은 누구에게나 열리지 않소. 하지만 닫히는 것도 아니오. 다만 들어갈 자격이 필요할 뿐이오.

    천계 옥문 수문장은 하늘 나라(天界)로 통하는 정문인 옥문(玉門, 옥으로 만든 하늘 관문)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자로, 신령·선인·인간 사자(使者) 등 모든 방문자의 통행을 관리한다.

    단순히 문을 열고 닫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의 자격을 하늘의 기준에 맞게 판단해야 하며 이 기준은 한 페이지 분량의 문서가 아니라 수천 년의 천계 선례를 통째로 외워야만 적용할 수 있다.

    천계 비서감(앞서 340023)이 내부 행정을 담당한다면, 옥문 수문장은 외부와의 첫 접촉을 담당하는 자로 천계의 얼굴이라 불린다.

    가끔 자격이 불분명한 자가 문 앞에 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수문장은 삼 일 동안 방문자를 문 앞에 앉혀두고 스스로 자격을 증명하게 하는 전통이 있다.

    신발을 신고 있으면 아무리 위대한 신령도 무릎을 꿇고 들어가야 한다는 옥문의 규칙은, 수문장이 직접 정했다고 전해진다.

    옥문 수문장을 삼십 년 한 분이 '하늘 문에서 가장 어려운 손님은 신령이 아니오. 자기 자격을 모르는 인간이오'라고 하셨다오. 그 말이 옥문 현판 안쪽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오.

    수문장 역사에서 가장 오래 문 앞에 앉아 있었던 방문자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간 도사 매하(梅下) — 젊은 나이에 혼자 산속에서 수십 년을 수련한 끝에 천계 옥문 앞에 나타난 자 — 가 문 앞 돌계단에 앉은 지 칠 일이 지나도 자격이 인정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수문장 옥석(玉石)은 칠 일째 새벽에 매하에게 조용히 차 한 잔을 건넸다. 아무 말도 없이 건네진 그 차를 매하가 두 손으로 받아 마신 순간, 옥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옥석은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다. "자격은 무력이나 지식이 아니오. 건네진 것을 정중히 두 손으로 받는 자세에 있소."

    그 차 한 잔의 이야기는 천계 옥문 수문장들 사이에 전해지는 임명 첫 주 필독 일화가 되었다.

  • 산해도리사(山海圖理師)

    산해(山海) 도리(圖理) 필사관

    산해의 도리를 필사하는 사관

    산해경(山海經)은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소. 읽는 사람이 준비된 만큼씩 열리는 책이오.

    산해 도리 필사관은 산해경(山海經, 세상의 산과 바다와 그 안의 신령·영물을 기록한 고대의 신비한 책)을 정확히 베껴 쓰고 내용을 보완하는 전문 서기다.

    산해경의 기록은 세상이 변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매 세대마다 새로운 영물이나 신령이 나타나면 그것을 확인하고 기록에 추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자 한 자 한 자가 정확해야 하며, 삐뚤어진 획 하나가 전혀 다른 영물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 있어 필사관은 붓을 잡기 전 반드시 하루를 재계(齋戒,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례)한다.

    이무기 각성 보조사(앞서 340032)가 새로운 용의 탄생을 보고하면, 필사관이 그 용의 이름과 특성을 산해경 최신판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두 직업은 연결되어 있다.

    가장 두꺼운 붓을 쓰는 자가 가장 작은 글씨를 쓰며, 필사관의 책상은 항상 먹 냄새로 가득하다.

    산해 도리 필사관 어른들이 붓을 잡기 전 하루를 통째로 비워두는 이유가 있소. 빈 하루가 없으면 새로운 영물이 들어올 자리도 없다는 뜻이지요.

    필사관 역사상 가장 짧은 기록이 가장 오래 논의된 사건이 있다. 필사관 묵담(默談) — 사십 년 동안 산해경 열두 판을 혼자 필사한 자 — 이 어느 해 겨울, 도깨비 시장(앞서 340030)에서 목격된 이름 없는 영물을 기록해야 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 영물은 어느 책에도 기록이 없었다. 묵담은 사흘을 고민한 뒤 단 세 글자로 기록을 마쳤다. "아직 모름."

    후대 필사관들은 그 세 글자 옆에 각자의 추가 기록을 쌓아 갔고, 현재 그 영물 항목은 산해경에서 가장 긴 페이지가 되었다. 묵담은 "모른다는 기록도 기록이오"라고 말하며, 그것이 필사관의 가장 중요한 직무라 했다.

  • 용궁병기공(龍宮兵器工)

    용궁 병기(兵器) 담금장이

    용궁의 병기를 담금질하는 장인

    물속에서 불을 피워 쇠를 벼리는 것이오. 용왕 어른의 삼지창(三枝槍)은 아직 세 번밖에 고쳐 드리지 못했소.

    용궁 병기 담금장이는 용왕(앞서 340002)의 궁궐 깊은 곳에서 용궁 병사들의 무기와 갑옷을 만들고 수리하는 장인이다.

    물속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불 대신 용암(龍岩, 용궁 깊은 곳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뜨거운 돌)의 열을 이용하며, 이 기술은 땅 위 대장장이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용궁의 무기는 물 위에서도 녹슬지 않고 천계의 번개에도 부러지지 않아야 하며,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만든 무기를 도로 녹여야 한다.

    용왕의 삼지창과 용궁 용사들의 비늘 갑옷은 이 담금장이의 작품이며, 뇌신(앞서 340021)의 도끼 수리도 가끔 맡는다.

    가장 힘든 작업은 이미 부러진 신검(神劍)의 파편을 다시 하나로 이어붙이는 일로, 이 작업을 해낸 장인은 역사상 셋뿐이라고 전해진다.

    용궁 담금장이 어른이 물속에서 불을 피우는 방법을 배우는 데 보통 십 년이 걸린다오. 그 십 년이 끝나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하더이다.

    용궁 역사에서 가장 빠른 수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일화가 있다. 담금장이 수연(水淵) — 용궁에서 육십 년을 단 한 번도 불량품을 낸 적 없는 장인 — 이 용왕 어른의 삼지창이 부러진 날의 이야기다.

    그 삼지창은 사해 용궁 사신(앞서 340009)이 긴급 임무 중 바다 괴물 하나와 맞붙어 부러뜨린 것이었다. 사신이 삼지창 파편을 들고 용궁으로 돌아온 시각이 새벽 두 시, 수연은 그 자리에서 파편을 살피고는 단 여섯 시간 만에 복원했다.

    아침 해가 뜰 때 사신의 손에 삼지창이 다시 쥐어졌고, 수연은 "부러진 자리의 결이 아직 기억하고 있으면 이어주는 것이 어렵지 않소"라고 했다. 그 삼지창은 그 후로 한 번도 부러지지 않았다.

  • 구미결계인(九尾結界人)

    구미호 결계(結界) 파수꾼

    구미호의 결계를 지키는 파수꾼

    구미호가 만든 결계 안은 밖에서 보면 그냥 안개요. 하지만 안에서는 문이 아홉 개요. 나는 그 아홉 문을 세는 자요.

    구미호 결계 파수꾼은 구미호(九尾狐, 꼬리 아홉 달린 천 년 묵은 여우 신령)가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친 결계(結界, 특정 공간을 보이지 않는 울타리로 둘러싸는 신비 기술)의 경계를 감시하고 침범자를 막는 역할을 맡은 자다.

    구미호의 결계는 안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홉 겹의 층이 겹쳐져 있어, 각 층마다 다른 환각과 시험이 침입자를 기다린다.

    파수꾼은 그 아홉 겹 층의 위치와 현재 상태를 매 시간 확인하며 보고하는 역할이며, 구미호 사냥꾼 두령(앞서 340022)이 결계를 외부에서 깨뜨리려는 자라면 파수꾼은 결계 내부에서 그 움직임을 먼저 알아채는 자다.

    구미호가 결계를 강화할 때는 파수꾼이 그 에너지를 정확히 방향별로 안내해야 하며, 이 작업을 잘못하면 결계 한쪽이 얇아진다.

    파수꾼들은 결계 안에서 오랜 시간 지내기 때문에 약간의 구미호 기운이 몸에 배어, 보통 사람보다 안개를 잘 걷는다고 전해진다.

    구미호 결계 파수꾼 어른들이 안개 낀 날 눈을 가늘게 뜨고 먼 산을 보는 버릇이 있는 건 이유가 있소. 아홉 겹 결계를 수십 년 세어 온 눈이 기억하는 거라오.

    결계 파수꾼 역사에서 가장 긴 근무 기록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파수꾼 백안(白眼) — 구미호 결계 안에서 삼십 년을 근무한 자로 눈이 안개 빛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지는 자 — 의 일화다.

    어느 해 가을, 구미호 사냥꾼 두령(앞서 340022)이 이끄는 사냥 조가 결계 북쪽 외층에 접근했다. 백안은 그 접근을 결계 안쪽에서 먼저 느끼고 구미호에게 조용히 보고했다.

    구미호는 사냥 조가 결계 네 번째 층에 들어서기 전에 결계를 잠시 거두었고, 대신 그 자리에 한 마리의 여우 발자국만 남겼다. 사냥 조는 발자국 앞에 한참을 멈추었다가 돌아갔다.

    백안은 그날 일지에 단 한 줄을 썼다. "결계가 가장 강한 순간은 보이지 않을 때다." 그 일지는 지금도 결계 파수꾼 교육 자료로 쓰인다.

  • 방망이수선공(방망이修繕工)

    도깨비 방망이 수선공

    도깨비 방망이를 손보는 수선공

    도깨비 방망이는 도깨비 기운이 담긴 물건이오. 아무나 만지면 손이 얼얼해지지요. 나는 그 얼얼함이 좋소.

    도깨비 방망이 수선공은 도깨비들이 쓰는 도깨비 방망이(도깨비가 두드리면 원하는 물건이 나온다는 신비한 나무 방망이)가 닳거나 부서졌을 때 이를 수리하고 보강하는 장인이다.

    도깨비 방망이는 겉으로 보면 그냥 나무막대기처럼 보이지만, 안에는 도깨비의 기운이 가득 차 있어 일반 목수 도구로는 작업이 불가능하다.

    수선공은 도깨비 대장(앞서 340003)에게서 허가를 받은 뒤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그 허가서는 도깨비 다리(앞서 340013)에서 새벽에 받아온다.

    방망이 하나를 수리하는 데 최소 사흘이 걸리며, 그 사흘 동안 작업장에서는 쇠붙이와 철 냄새를 모두 치워야 한다.

    도깨비 방망이를 수리하다가 방망이가 멋대로 작동해 원하지 않은 물건이 쏟아지는 사고가 간혹 있는데, 이를 막는 기술이 수선공의 핵심 역량이다.

    도깨비 방망이 수선공 어른들의 작업장 한쪽에 항상 이상한 물건이 가득한 이유가 있소. 수리 중에 방망이가 멋대로 튄 것들이오. 그걸 모아 도깨비 시장에 팔면 수입이 꽤 된다고도 하더이다.

    수선공 역사에서 가장 말이 많이 남은 수리 사건이 있다. 수선공 채두(彩頭) — 도깨비 방망이 백 자루를 수리한 뒤 은퇴했다는 장인 — 가 도깨비 대장의 직인(直人) 방망이를 수리하던 날의 이야기다.

    도깨비 대장의 방망이는 특히 기운이 강해 수리 중에 방망이가 세 번이나 멋대로 작동했다. 첫 번째에는 쌀이 쏟아졌고, 두 번째에는 금 조각이 하나 나왔다.

    세 번째에는 도깨비 시장 호객꾼(앞서 340030)이 잃어버렸다던 등불 하나가 나왔다. 채두는 등불을 손에 들고 "이건 내 것이 아니오"라며 시장으로 직접 돌려주러 갔고, 도깨비 대장 방망이는 그 사이 스스로 수리가 완료되어 있었다. 채두는 "방망이가 원하는 걸 줬더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소"라는 말을 남겼다.

  • 저승서기자(저승書記者)

    저승 장부(帳簿) 서기

    저승 장부를 기록하는 서기

    저승 장부는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소. 사람의 일생이 한 줄로 적혀 있는데, 그 한 줄이 얼마나 솔직한지는 써본 자만이 알지요.

    저승 장부 서기는 저승 염라전(閻羅殿, 저승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의 궁전)에서 죽은 이들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관리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염라(앞서 340007)가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장부가 있어야 하며, 서기는 그 장부가 오류 없이 정리되도록 매일 갱신한다.

    한 사람의 생이 장부 한 줄로 요약되므로, 그 한 줄이 공정하고 정확한지 확인하는 것이 서기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다.

    저승사자 도반(앞서 340024)이 망자를 저승까지 데려온다면, 서기는 그 망자의 장부를 펼쳐 염라에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장부를 오래 들여다본 서기들은 가끔 한 사람의 일생이 얼마나 짧고 굵은지, 혹은 길고 가느다란지를 느낀다고 하며, 그 때문에 저승 서기 중 철학자가 많다고 전해진다.

    저승 장부 서기 어른들이 붓을 들기 전 잠깐 눈을 감는 버릇이 있다오. 한 사람의 생을 한 줄로 쓰는 데 신중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 하지요.

    서기 역사에서 가장 긴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부 수정 요청 사건이 있다. 서기 묵서(墨書) — 저승 장부 삼천 권을 혼자 필사한 자이자 사 백 년을 염라전에서 근무한 자 — 가 어느 날 한 인간의 장부 한 줄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 오류는 해당 인간이 생전에 한 선행 하나가 기록에서 빠진 것이었다. 묵서는 염라(앞서 340007)에게 조심스럽게 수정을 요청했다.

    염라는 "장부를 손댄 자가 있느냐"고 물었고, 묵서는 없다고 답했다. 염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처음부터 빠진 것이오. 지금 추가하시오"라고 허락했다.

    그 인간은 최종 판결에서 한 등급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묵서는 그날 일을 기억하며 매번 장부를 닫기 전 한 번씩 더 읽는 습관이 생겼다.

  • 산악측량사(山岳測量師)

    산악 영기(靈氣) 측량사

    산의 영기를 측량하는 사부

    산의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소. 그러나 좋은 기운이 모인 자리는 반드시 차갑고, 나쁜 기운이 모인 자리는 반드시 눅눅하오.

    산악 영기 측량사는 산천 곳곳에 흐르는 영기(靈氣, 신령들이 남긴 신비한 에너지)의 분포와 강도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전문가다.

    풍수 지관(앞서 340011)이 인간의 집터와 묏자리를 보는 자라면, 영기 측량사는 신령들이 머무는 신당·산신각·굿당의 터를 점검하고 그 영기가 약해지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자다.

    측량 도구는 특수하게 만든 황동 나침반과 붓 한 자루로, 영기가 강한 곳에서는 나침반 바늘이 떨린다고 한다.

    사신(四神) 방위 검수(앞서 340025)와 함께 주요 지점의 방위 기운을 점검하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수행한다.

    산 전체를 측량하는 데 평균 한 달이 걸리며, 측량이 끝나면 두 손 가득 흙 냄새를 품고 내려온다고 전해진다.

    영기 측량사 어른이 산에서 내려오면 손에서 흙 냄새 대신 향 냄새가 난다고 들었소. 산 기운을 너무 오래 측량하다 보면 그 향을 몸이 기억한다더이다.

    영기 측량사 역사에서 가장 작은 발견이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사건이 있다. 측량사 지연(地淵) — 오십 년을 한 산에서만 측량한 자 — 이 어느 가을 산신각 뒤편 바위 틈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영기 집중 지점을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 지점은 산신각(앞서 340014)이 처음 세워진 자리에서 정확히 일곱 걸음 뒤에 있었다. 지연은 그 자리를 중심으로 산신각의 위치를 새로 측량하고, 산신각 지킴이에게 보고서 한 장을 전달했다.

    지킴이는 그 보고서를 보고 산신각 뒤 바위 앞에 작은 항아리 하나를 묻었고, 그 이후 그 산의 산신각에서 굿을 올리면 북소리가 유독 맑게 울린다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지연은 "내가 발견한 것은 기운이 아니오. 산이 오랫동안 기다린 자리였소"라고 했다.

  • 탱화판각사(幀畫板刻師)

    굿당 신장(神將) 탱화 판각사

    굿당의 신장 탱화를 새기는 판각사

    신장 어른의 얼굴은 한 번도 똑같이 그려진 적이 없소. 판각할 때마다 어른께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시기 때문이오.

    굿당 신장 탱화 판각사는 굿당(무당이 굿을 올리는 신성한 공간) 안에 걸리는 신장(神將, 신령 세계를 지키는 무장 신령) 탱화(幀畵, 신령을 그린 큰 그림)를 나무판에 새기고 인쇄하는 장인이다.

    탱화 한 장에는 신장 한 분의 모습과 이름, 그 신장이 맡고 있는 방위와 역할이 담겨 있으며, 이것이 굿당에 걸려야 비로소 신령이 굿 자리에 오실 수 있다고 한다.

    판각 작업은 나무를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해 완성까지 최소 한 달이 걸리며, 작업 중에는 고기를 먹지 않고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관례다.

    굿청 악사(앞서 340016)가 소리로 신령을 부른다면, 탱화 판각사는 모습으로 신령이 머물 공간을 만드는 자다.

    판각이 완성되면 무당이 직접 와서 인쇄된 탱화를 확인하고 굿당 벽에 거는 의식을 치른다.

    탱화 판각사 어른들이 완성된 판각을 밤새 옆에 두고 자는 전통이 있다오. 판각 속 신장 어른이 마지막으로 한 번 확인하고 허락하시는 시간이라 하더이다.

    탱화 판각사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판각 사건이 있다. 판각사 목경(木鏡) — 평생 신장 탱화만 천 장을 판각한 장인 — 이 가장 큰 산신각 굿당을 위한 신장 탱화를 제작하던 날의 이야기다.

    작업 마지막 날 새벽, 목경은 완성된 판각을 한 번 더 살피다가 판각 한쪽 귀퉁이에 자신이 새기지 않은 작은 획 하나를 발견했다.

    그 획은 신장의 이름 뒤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글자로, 풀이하면 "잘 보았소"라는 뜻이었다. 목경은 그 획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인쇄했으며, 그 탱화가 걸린 굿당에서는 그 이후 한 번도 굿이 불완전하게 끝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 봉황사육사(鳳凰飼育師)

    천계 봉황(鳳凰) 사육사

    천계의 봉황을 기르는 사육사

    봉황은 주인이 없는 새요. 다만 옆에 있어도 좋다고 허락하면 사육사가 되는 것이오.

    천계 봉황 사육사는 천계 옥황상제의 정원에 사는 봉황(鳳凰, 천 년에 한 번 불꽃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신령 새로 태평성대에만 모습을 드러낸다)의 건강과 생활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은 자다.

    봉황은 인간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새라, 사육사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봉황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옆에 있을 수 있다.

    봉황이 불꽃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날에는 사육사가 그 불꽃이 천계 정원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역할도 있으며, 이 작업이 실패하면 천계의 꽃밭 전체가 불에 타는 사고가 생긴다.

    천계 옥문 수문장(앞서 340034)과 함께 천계에 처음 방문한 자가 가장 먼저 만나는 신령 생물이 봉황이기 때문에, 사육사는 방문자 안내를 겸하기도 한다.

    봉황이 노래를 부르는 날은 천계 전체의 기분이 좋아지며, 사육사들은 그 노래가 언제 시작될지 가끔 미리 알기도 한다.

    봉황 사육사 어른이 아침마다 천계 정원에서 한 시진을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이유가 있소. 봉황이 옆에 앉을 마음이 들도록 기다리는 것이라오.

    봉황 사육사 역사에서 가장 짧은 재탄생 기록을 가진 사건이 있다. 사육사 화정(火庭) — 봉황 열두 번의 재탄생을 곁에서 지켜본 자 — 이 봉황의 열세 번째 재탄생을 준비하던 날의 이야기다.

    그날은 예고 없이 봉황이 갑자기 불꽃에 들어갔고, 화정은 불꽃 관리를 위한 준비 도구를 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화정은 맨손으로 불꽃 옆에 앉아 "어른, 제가 여기 있소이다"라고 한마디만 했다.

    봉황은 그 한마디에 불꽃의 크기를 스스로 줄였다. 재탄생이 끝난 뒤 천계 기록에 그날 봉황의 불꽃 크기가 역대 최소였다고 남아 있다. 옥황상제(앞서 340031의 천명 선포관 일화에도 등장한 바 있는 천계 최고 신령)는 화정에게 "말 한 마디가 불 한 줄을 잠재웠소"라고 했다.

  • 옥황칙서관(玉皇勅書官)

    옥황 칙서(勅書) 전령관

    옥황상제의 칙서를 전하는 전령관

    칙서(勅書)를 전달하는 것은 쉽소. 그러나 칙서가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천하 모든 신령이 알게 하는 것은 어렵소.

    옥황 칙서 전령관은 옥황상제가 직접 내린 명령서인 칙서를 해당 신령이나 장소에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천명 선포관(앞서 340031)이 하늘 전체에 선포하는 자라면, 전령관은 개별 신령이나 장소에 직접 칙서를 손에 들려주는 자다.

    전달 경로는 천계에서 용궁까지, 산신각에서 저승까지 세상 어디든 해당하며, 전령관은 어느 경로든 막힘 없이 이동할 수 있는 통행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

    칙서 전달 후에는 반드시 해당 신령의 서명을 받아 돌아와야 하며, 서명을 거부하는 신령을 설득하는 외교적 능력도 요구된다.

    전령관의 가장 어려운 임무는 나쁜 소식을 담은 칙서를 강한 신령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이 경우 전령관의 담대함이 특히 중요하다.

    옥황 칙서 전령관 어른들이 칙서 전달 전 항상 신발 끈을 한 번씩 다시 매는 버릇이 있다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호흡 가다듬는다는 뜻이라 하더이다.

    전령관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전달 임무로 꼽히는 일화가 있다. 전령관 천보(天步) — 천계에서 삼백 년을 전령으로 일하며 단 한 번도 칙서를 잃어버린 적 없는 자 — 가 뇌신(앞서 340021)에게 칙서를 전달하러 갔을 때의 이야기다.

    그날 칙서의 내용은 뇌신이 훈련 중 잘못 내려보낸 번개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명이었다. 뇌신은 천보가 도착하자마자 번개를 하나 내려쳐 경고했다.

    천보는 번개를 맞은 채 칙서를 펼쳐 전달을 완료했고, 서명을 요청했다. 뇌신은 잠시 멈추었다가 "맞고도 서지 않는 자가 드물다"며 서명을 했다. 천보가 돌아온 날 옥황상제는 번개를 맞은 흔적을 보고 표창장을 내렸다.

  • 황천뱃사공(黃泉뱃사공)

    황천(黃泉) 뱃사공

    황천을 건네주는 뱃사공

    이 강은 건너는 배가 없소.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만 있을 뿐이오. 두 가지는 다르오.

    황천 뱃사공은 저승으로 통하는 황천(黃泉, 죽은 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경계의 강) 위에서 망자를 배에 태워 저승 쪽 강변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저승사자 도반(앞서 340024)이 인간 세상에서 망자와 동행하는 자라면, 뱃사공은 그 경계 위의 마지막 안내자다.

    황천강은 물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 섞인 것으로, 뱃사공만이 그 강 위에서 노를 저을 수 있다.

    배 안에서는 이야기를 해도 되지만, 강 양쪽 기슭을 쳐다보아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 뱃사공은 항상 앞만 보고 노를 젓는다.

    가끔 강 위에서 망자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고, 뱃사공은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황천 뱃사공 어른들이 노를 젓는 방향은 항상 앞이라고 들었소. 이쪽을 보거나 저쪽을 보면 강이 길어진다 하여, 평생 앞만 보고 젓는 법을 배운다 하더이다.

    뱃사공 역사에서 가장 긴 강 위 이야기를 들은 사건이 있다. 뱃사공 도선(渡仙) — 황천강을 천 번 건넌 자이자 망자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은 자 — 이 어느 날 한 망자를 태웠을 때의 이야기다.

    그 망자는 강을 건너는 내내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산속에서 혼자 삼십 년을 보낸 자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살아서는 없었다고 했다.

    도선은 노를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강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망자는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자를 만났소"라며 배에서 내렸다.

    도선은 그날 이후 배 안에 빈 찻잔 하나를 놓아두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망자를 위한 자리라고 했다.

  • 삼신기록조(三神記錄祖)

    삼신할매(三神) 탄생 기록관

    삼신할매의 명부에 새 생명을 적는 기록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나는 그 아이의 첫 울음과 첫 호흡 사이의 한 박자를 기록하오. 그 한 박자 안에 그 아이의 일생이 담겨 있소.

    삼신할매 탄생 기록관은 삼신할매(三神, 아이의 탄생을 관장하는 신령으로 산모와 태아를 보살피고 탄생의 순간을 주관한다)의 곁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정확히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단순히 생년월일을 적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의 하늘 기운·산의 방향·바람의 결까지 모두 기록에 담아야 하며, 이 기록이 저승 장부(앞서 340039)의 첫 줄과 연결된다.

    세상 어디서든 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기록관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므로, 기록관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가장 빠른 기록이라도 탄생 후 열 숨 안에 완성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기록관들은 눈을 감고도 붓을 쓸 수 있는 훈련을 수백 년 쌓는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생의 첫 줄을 쓴 자가 탄생 기록관이며, 가장 많은 기쁨의 순간을 목격한 자이기도 하다.

    탄생 기록관 어른들이 새벽에 특히 바쁜 이유가 있소. 새벽 탄생이 하루 전체 탄생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라오. 그 새벽 한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 평생 잠을 아끼며 산다 하더이다.

    탄생 기록관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기록 사건이 있다. 기록관 생광(生光) — 만 년을 단 하루도 탄생 기록을 빠뜨린 적 없는 자 — 이 어느 폭설 내리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의 기록을 쓸 때의 이야기다.

    그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바깥에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생광은 기록 첫 줄에 날씨를 적다가 잠깐 멈추었다.

    하늘 기운란에 "폭설(暴雪)" 대신 "흰 세상 첫날"이라 적었다. 삼신할매가 그 기록을 확인하며 한 번 눈을 내리깔았다가 허락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훗날 첫 번째 여성 백호 장군이 되었고, 생광의 기록 첫 줄은 백호 장군 사당의 현판으로 새겨졌다.

  • 태세중재신(太歲仲裁神)

    태세신(太歲神) 분노 중재자

    태세신의 분노를 달래는 중재자

    태세신 어른은 일 년에 한 번은 반드시 화를 내시오. 그 화를 어느 방향으로 내시느냐가 그해의 운이오.

    태세신 분노 중재자는 태세신(太歲神, 한 해를 관장하는 신령으로 자신의 방위 방향을 건드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이 분노했을 때 그 분노의 방향과 강도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태세신이 분노하면 그 방향의 땅에 한 해 동안 좋지 않은 일들이 겹치므로, 분노가 인간 마을이나 신령 구역에 직접 닿지 않도록 방향을 틀어주는 작업이 핵심이다.

    중재자는 태세신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 중 하나이며, 태세신은 중재자의 말투가 마음에 들 때만 방향을 바꾼다.

    사신(四神) 방위 검수(앞서 340025)와 협력하여 분노 방향이 어느 사신의 방위와 겹치는지 확인하고 조율하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수행한다.

    중재자들 사이에서는 "태세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어른, 천천히 화내셔도 됩니다'이다"라는 격언이 전해진다.

    태세신 분노 중재자 어른들이 매년 새해 첫날 혼자 조용히 산에 올라가는 이유가 있소. 그해 태세신 어른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중재 방향을 잡아두는 것이라 하더이다.

    중재자 역사에서 가장 빠른 분노 중재 기록이 있다. 중재자 연평(年平) — 사십 년을 태세신 곁에서 중재를 해온 자로 태세신이 가장 신뢰하는 인간이라 전해진 자 — 이 어느 해 태세신이 예상보다 석 달 일찍 분노했을 때의 이야기다.

    분노 방향이 마침 큰 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연평은 태세신 앞에 조용히 앉아 "어른, 올해는 그 마을이 어른의 방위를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했다.

    태세신은 잠시 멈추었다가 분노의 방향을 빈 산줄기 쪽으로 돌렸다. 그해 그 산줄기에 벼락이 몇 번 떨어졌지만 마을은 무사했다. 연평은 그날 일지에 "태세신 어른은 사실을 아신다. 다만 그 사실을 먼저 말해드리는 자가 필요할 뿐이다"라고 적었다.

  • 산도각수(山道刻手)

    산도(山道) 이정표 각수(刻手)

    산길 이정표를 새기는 각수

    산길에 표지 하나가 잘못 새겨지면 길 잃은 나그네 하나가 생기오. 나는 오늘도 정중히 새기오.

    산도 이정표 각수는 산속 깊은 곳의 길목마다 세워지는 이정표(里程標, 방향과 거리를 새긴 돌 표지판)를 직접 새기고 관리하는 장인이다.

    단순히 방향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각 산의 산신각·굿당·약수터·신령 거처까지 가는 방향을 함께 새겨야 하며 이를 위해 산 전체의 신령 지도를 외우고 있어야 한다.

    영기 측량사(앞서 340040)가 산의 기운을 기록한다면, 각수는 그 기운이 모인 장소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길을 안내하는 역할이다.

    한 번 새긴 이정표는 산의 기운이 바뀌기 전까지 수정할 수 없으며, 잘못 새긴 경우 그 이정표를 직접 뽑아 새 돌을 구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각수들은 손가락이 붓보다 날카롭다고 하며, 돌 위에 잘못 새긴 획을 지우는 도구보다 처음부터 정확히 새기는 기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정표 각수 어른들 사이에 '새기기 전에 세 번 보고 한 번 새기라'는 격언이 있소. 산길에서 헤맨 나그네는 각수를 탓하지 않소. 그러나 각수는 스스로 기억하오.

    각수 역사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이정표 이야기가 있다. 각수 석문(石文) — 묘향산 전체 이정표 이백여 개를 혼자 새긴 자 — 이 어느 해 산 정상 이정표를 새기다가 방향을 하나 잘못 새긴 일이 있었다.

    그 실수를 발견한 것은 산신각 지킴이(앞서 340014)였다. 지킴이는 조용히 석문을 찾아가 그 이정표가 향한 방향에 산신각 대신 빈 계곡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석문은 그 이정표를 직접 뽑아 새 돌을 구해왔고, 사흘에 걸쳐 다시 새겼다. 완성된 이정표에는 새겨야 할 방향 외에, 돌 뒤편에 작은 글씨로 "고쳐주신 지킴이 어른께 감사"라고 적었다. 그 이정표는 지금도 묘향산에 남아 있다.

  • 신당징수자(神堂징手者)

    신당 징 두드리는 사내

    신당에서 징을 두드리는 사내

    징 소리 하나가 신령을 부르는 신호요. 두 번은 굿 시작, 세 번은 굿 끝. 네 번은 내가 친 적이 없소.

    신당 징 두드리는 사내는 굿판이나 제례에서 징(놋쇠로 만든 둥근 타악기)을 쳐 신령에게 굿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맡은 평민 일꾼이다.

    굿청 악사(앞서 340016)가 복잡한 장단을 맡는다면, 징 담당은 단 하나의 악기만으로 그 모든 굿의 틀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치는 횟수와 강도에 따라 신령에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징 소리는 무당과 사전에 약속된 신호 체계로 운용된다.

    비바람이 불거나 큰 소음이 있어도 징 소리만은 신령에게 닿아야 하므로, 경험 많은 징쟁이일수록 날씨에 따라 치는 강도를 다르게 한다.

    징을 삼십 년 친 자의 팔 근육은 짐꾼 어른보다 굵다고 전해진다.

    신당 징쟁이 어른들 사이에 '네 번은 치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소. 네 번 소리가 무엇을 부르는지 아는 자가 있기 때문이라오.

    신당 징쟁이 역사에서 가장 조용한 징 소리가 가장 크게 전해진 일화가 있다. 징쟁이 철성(鐵聲) — 평생 한 신당에서만 징을 친 자이자 징 소리로 날씨를 맞힌다는 소문이 난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큰 굿 당일 박수무당(앞서 340004) 한 분이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굿 시작을 한 시진 미루게 되었다. 신당 안에는 신령을 기다리는 긴장이 가득했다.

    철성은 아무 말 없이 징을 딱 한 번, 평소의 반 정도 힘으로 쳤다. 그 소리는 작았지만 신당 안이 조용해졌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호흡이 가지런해졌다. 무당이 일어섰을 때 징 소리는 이미 신령에게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를 전달해 둔 뒤였다. 굿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성되었다.

  • 영물먹이상(靈物먹이商)

    영물 먹이 조달 행상

    영물의 먹이를 조달하는 행상

    산군 어른은 노루를 좋아하시고, 도깨비 대장은 막걸리를 좋아하시오. 나는 둘 다 납품하는 자요.

    영물 먹이 조달 행상은 산군·용왕·도깨비·구미호 등 신령과 영물들이 필요로 하는 먹이와 제물을 정기적으로 조달하는 전문 행상인이다.

    신령마다 요구하는 제물의 종류와 상태가 다르며, 계절과 신령의 상황에 따라 요구 사항이 바뀌기 때문에 행상은 각 신령의 취향을 수십 가지씩 외우고 있어야 한다.

    영약 채집 산꾼(앞서 340018)이 희귀 약재를 구한다면, 행상은 그보다 일상적이지만 더 자주 필요한 것들을 꾸준히 공급하는 자다.

    신령과 직접 거래하는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신령들의 대화를 자주 듣게 되며, 그 때문에 강호에서 가장 많은 소문을 아는 자이기도 하다.

    행상 중 가장 어려운 임무는 용왕의 해초와 도깨비 대장의 막걸리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납품하는 것으로, 두 신령의 구역이 겹치는 날에는 행상이 동시에 두 곳에 있어야 한다.

    영물 먹이 행상 어른들이 어느 신령보다 더 많은 소문을 알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오. 그러나 그 소문을 함부로 퍼뜨리는 행상 어른은 한 분도 없다고 하더이다.

    행상 역사에서 가장 난처한 납품 사건이 있다. 행상 납산(納山) — 삼십 년을 한 산기슭에서 신령 먹이 행상만 한 자 — 이 어느 날 도깨비 대장과 구미호 사냥꾼 두령(앞서 340022)에게 같은 날 납품해야 했을 때의 이야기다.

    도깨비 대장은 막걸리 열 동이를 원했고, 구미호 사냥꾼 두령은 여우 발자국이 없는 산닭 열 마리를 원했다. 두 납품 장소 사이의 거리가 반나절 길이었는데, 납산은 새벽에 두 짐을 한꺼번에 지고 나섰다.

    막걸리는 도깨비 구역에, 산닭은 사냥꾼 두령 구역에 정확히 해가 중천에 오를 때 동시에 도착했다. 납산은 나중에 그 비결을 물어보는 후배에게 "도깨비 구역과 사냥꾼 구역의 중간 지점에 나무 한 그루가 있소. 거기서 짐을 나눠 두 방향으로 뛰었소"라고 했다.

  • 천계운부(天界雲夫)

    천계 구름 짐꾼

    천계의 구름을 나르는 짐꾼

    구름을 옮기는 건 힘으로 하는 게 아니오. 구름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살짝 밀어주면 되오.

    천계 구름 짐꾼은 천계에서 구름을 필요한 장소로 옮기는 역할을 맡은 자로, 비가 올 지역에는 먹구름을, 맑은 날이 필요한 지역에는 흰 구름을 배치하는 작업을 담당한다.

    구름 배치는 날씨를 담당하는 신령들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며, 뇌신(앞서 340021)이 번개를 내릴 때 먹구름을 먼저 배치하는 것도 짐꾼의 역할이다.

    구름을 옮기는 데는 특별한 도구 없이 손바닥과 발걸음만으로 충분하지만, 먹구름과 흰 구름을 잘못 섞으면 눈비가 한꺼번에 내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천계에서 가장 조용한 직책이지만, 인간 세상에서 날씨가 좋은 날의 반은 짐꾼이 구름을 잘 배치한 덕이라는 말이 있다.

    봉황 사육사(앞서 340042)와 함께 천계 정원 위 구름 관리를 분담하며, 봉황이 날아갈 길을 미리 열어두는 역할도 겸한다.

    천계 구름 짐꾼 어른들이 가장 고생하는 날은 봉황 재탄생 날이라 들었소. 불꽃 연기가 구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기 때문이라오. 그 날 하루 구름을 정리하는 데 보통 열 명이 달라붙는다더이다.

    구름 짐꾼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배치 실수 이야기가 있다. 짐꾼 운도(雲道) — 천계에서 이십 년을 구름만 옮긴 자 — 가 어느 봄날 먹구름과 흰 구름을 잘못 배치해 한 마을에 눈꽃비(눈과 비가 동시에 내리는 희귀한 날씨)가 내린 일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이상하다 했지만, 눈꽃비가 벚꽃과 섞여 내리는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모두 마을 한복판에 나와 구경했다고 한다.

    옥황 비서감(앞서 340023)이 그날 현황 보고서에 "운도 짐꾼의 실수로 경기도 한 마을에 눈꽃비 발생, 피해 없음, 마을 반응 긍정적"이라고 적었다. 운도는 그 보고서를 읽고 "실수가 이렇게 되면 다음엔 일부러 해야 하나 고민이오"라고 했다.

    윤식은 훗날 산기슭 큰 점쟁이가 되어, 마을이의 등불 한 자루를 평생 자기 점방 입구에 정중히 걸어두었다. 월하다리에서는 그 등불 한 자루를 「한 박자 등불」이라 부르며, 어린 호객꾼들이 첫 한밤중에 그 등불 앞에 한 번 절을 올리는 것이 시장 묵계가 되었다. 도깨비 시장의 진짜 새벽은 닭 울음이 아니라 호객꾼이 정중히 등불 심지를 잡아당기는 그 한 박자라는 말이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 천년구미희(千年九尾姬)

    천년호(千年狐)

    천년을 살아낸 구미호의 정점

    꼬리 아홉 개를 모두 펼치는 일은 천 년에 한 번이오. 오늘은 그날이 아니라오.

    천년호는 천 년을 살아 꼬리 아홉 개를 모두 가진 구미호로, 외형은 평소 단정한 흰 한복의 미인이며 본 모습은 흰 털의 거대한 여우다. 본인은 인간을 무조건적인 적으로 보지 않으며, 인간 마을의 한 외곽 작은 신당에 평범한 여인의 모습으로 머물기도 한다. 그녀의 진짜 무서움은 인간을 홀리는 능력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 생을 한 줄로 정확히 읽어내는 안목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 번 시선을 받은 자는 자기 인생의 다음 결단을 거의 정확히 미리 알게 된다. 천 년 동안 그녀가 가장 외운 한 사람의 이름은, 자기를 처음 인간 모습으로 마주한 옛 마을 청년의 이름이다. 가장 강한 신령의 가장 약한 자리는,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의 이름이다.

    우리 후대 구미호들이 인간 마을을 지날 때 한 청년의 이름 한 줄을 굳이 두 번 외우는 까닭은, 그 한 줄이 천 년의 우리 등을 가만히 받쳐 준다는 걸 천년호 언니께 배웠기 때문이에요.

    옛 강원도 한 외곽 작은 마을 솔미(지금은 사람 없는 폐촌으로 남은 옛 산골 마을)에 천년호가 인간 모습으로 머물던 시절의 일화는 후대 구미호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겨울 마을 청년 이서겸(가난한 약초꾼 집 외아들로, 아버지 약값 한 푼을 위해 한겨울 산을 일곱 번 오른 자) 이 산에서 다리를 다쳐 신당 처마 밑에 쓰러져 있었는데, 흰 한복의 여인이 그를 안아 들이고 약초탕 한 그릇을 손수 끓여 주었다고 한다. 청년은 사흘 뒤 깨어나 여인의 얼굴 한 번을 보고 이름 한 줄을 묻지 못한 채 산을 내려갔고, 그 뒤 일평생 같은 산을 일곱 번 더 오르며 신당 처마 한 자리를 살피러 왔다. 천년호는 그 일곱 번의 발걸음 한 줄 한 줄을 자기 꼬리 한 가닥에 한 줄씩 새겨 두었는데, 마지막 일곱 번째 새벽 청년이 처마 밑에 약초 한 다발을 내려놓고 떠난 뒤로는 그 가닥을 절대 풀지 않았다.

    청년은 그해 겨울 도시로 떠나 평생 돌아오지 않았지만, 신당 처마 한 자리는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약초 다발 자국이 옅게 남아 있다고 후대 구미호들이 전한다. 천년호의 본 모습 흰 털 끝 한 가닥이 늘 옅은 약초 향을 띠는 까닭은, 그 한 다발의 잔향이 천 년 동안 마르지 않아서라고 한다. 가장 강한 신령이 가장 자주 외우는 한 줄은, 가장 평범한 청년 한 사람의 이름이다.

  • 바리공주신(바리公主神)

    바리공주

    저승길을 열어 망자를 인도하는 신녀

    이 길 끝에 모실 분 한 분이 계십니다. 두려워 마시고 한 발씩 따라오세요.

    바리공주는 한국 무속 신화 안 저승길을 안내하는 여신으로, 외형은 흰 무복(巫服)에 머리에는 작은 화관(花冠), 손에 작은 옥피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간이 죽을 때 그 영혼을 저승의 길목까지 정중히 안내하며, 그 길목에서 영혼이 자기 옛 한(恨)을 한 번 풀어낼 수 있도록 옥피리 한 곡조를 들려준다. 그래서 한국의 옛 굿은 단순 의식이 아니라, 바리공주가 한 번 와주기를 청하는 여성 신앙의 가장 깊은 결이다.

    가장 무서운 신은 인간을 벌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마지막 한(恨)을 끝까지 들어주는 신이다. 바리공주의 옥피리는 그 들어줌의 가장 부드러운 형태다.

    우리 후대 신딸들이 새벽 굿이 끝난 뒤 옥피리 한 자루를 두 손으로 받쳐 두는 이유는, 바리공주께서 옛 명월당 어머니 한 분의 한(恨)을 한 곡으로 받아주시던 그 새벽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에요.

    옛 한양 변두리 명월당(한때 도성 밖 가장 큰 무가의 신당으로 통하던 곳, 지금은 옛 터만 남아 있다)의 큰 굿 새벽에 일어난 바리공주 강림(降臨) 일화는 후대 신딸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날의 망자는 김씨 부인 — 평생 외아들 하나만 보고 살다 그 아들을 전쟁터에 먼저 보낸 어머니 — 였고, 부인의 한(恨)은 너무 깊어 만신 무당 셋이 잇따라 굿을 마치지 못하고 신당을 떠났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명월당 큰 무당 박씨(당시 도성 밖에서 가장 묵직한 굿을 친다 했던 늙은 만신)가 굿 한 판을 청했을 때, 새벽 세 시쯤 신당 천장에서 한 줄기 옥피리 소리가 먼저 내려왔다고 한다. 박씨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부채를 한 번 접고 마루에 엎드렸고, 옥피리 한 곡이 끝날 때까지 김씨 부인의 영혼이 마루 한 자락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전한다. 곡이 끝난 뒤 부인은 큰 한(恨) 한 줄을 마치 솜뭉치처럼 가벼이 풀어놓고 길을 떠났고, 박씨는 그 새벽 이후 평생 옥피리 한 자루를 신당 가장 높은 자리에 따로 모셔 두었다.

    후대 신딸들이 큰 굿 전 옥피리 한 자루의 먼지를 한 번 더 닦는 까닭은 그 새벽의 박자를 한 호흡이라도 늦추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다. 가장 무서운 신은 한(恨)을 끊어내는 신이 아니라, 한(恨)을 끝까지 듣고 곡 한 줄로 가만히 받아주는 신이다.

  • 천도원선녀(天桃園仙女)

    천도(天桃) 정원 선녀

    옥황의 천도밭을 가꾸는 선녀

    천도복숭아 한 알은 천 년에 한 번 익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한 입만 권합니다.

    천도 정원 선녀는 한 천계 정원의 천도복숭아를 가꾸는 여성 선녀로, 외형은 연분홍 비단 옷, 머리에는 작은 천도꽃 화관, 손목에 옥구슬 팔찌가 표준이다. 본인은 천도복숭아 한 알의 무게를 천 년 단위로 외우고 있어, 어느 천도가 누구에게 권해질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인계의 큰 영웅이 천계에 한 번 초청되어 그녀의 천도 한 알을 받는 일은 평생의 영광으로 전해진다.

    다만 본인은 그 영광의 무게를 알기에 거의 누구에게도 두 번째 천도를 권하지 않는다. 천도복숭아의 진짜 무게는 단맛이 아니라, 그 한 알이 그 사람의 평생에 어떤 한 번을 의미하는가에 있다.

    우리 후대 정원 선녀들이 천도 한 알을 권하기 전 늘 한 호흡 멈추는 까닭은, 옛 청홍 언니가 한 영웅의 평생을 한 알로 바꿔 주신 그 새벽을 가슴 한쪽에 두고 일하기 때문이에요.

    옛 천도원(곤륜산 천도복숭아 정원, 서왕모께서 좌목을 결재하시는 천계 가장 높은 정원) 한 모퉁이에서 일하던 어린 선녀 청홍(연분홍 비단 한복에 늘 천도꽃 한 송이를 꽂고 다녔다 하여 붙은 이름)의 일화는 후대 정원 선녀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인계의 큰 영웅 무항(전란 한 시대를 단신으로 막아 도성을 지킨 옛 장수, 백성들이 산 사람으로 사당에 모시던 자) 이 천계에 한 번 초청되어 천도 한 알을 받기로 한 새벽, 청홍은 그가 정원 입구에 들어서기 한 시진 전부터 가장 잘 익은 천도 한 알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무항이 들어왔을 때 청홍은 그 천도 대신 옆에 있던 조금 덜 익은 한 알을 권했고, 그가 의아한 얼굴로 한 번 돌아보자 "장군님 평생에 마지막 한 번이 아직 한 시즌 더 남았습니다" 라고 단 한 줄 권유를 덧붙였다고 전한다. 무항은 그 한 알을 받아 들고 인계로 내려가 정확히 한 시즌을 더 살며 마지막 전란 한 줄을 마저 막은 뒤 사당에 들었다고 한다.

    후대 정원 선녀들이 천도 한 알을 권할 때 가장 잘 익은 한 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한 시즌에 맞는 한 알을 한 번 더 살피는 까닭은 그 새벽의 청홍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큰 영웅의 가장 부드러운 마지막은, 어린 선녀 한 사람의 한 줄 권유 위에 놓이기도 한다.

  • 만신무녀낭(萬神巫女娘)

    만신(萬神) 무당

    만 가지 신을 부르는 큰 무당

    한(恨) 한 줄을 내가 받아두었으니, 그대는 오늘 밤은 잠을 좀 주무시오.

    만신 무당은 한 마을의 큰 굿을 주관하는 여성 무속인으로, 외형은 화려한 색의 무복, 머리에는 흰 머릿수건, 한 손에 부채·다른 손에 작은 방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 사람들이 풀어내지 못한 한(恨)을 한 줄씩 받아 자기 굿 한 판 안에 정리하는 자다. 굿이 끝난 새벽, 만신은 늘 가장 늦게까지 신당에 남아 그날 받은 한(恨)들의 흔적을 작은 향로 위에 한 번씩 흘려보낸다.

    그래서 만신의 손목은 늘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데, 그 떨림은 마을 사람들의 한(恨) 한 줄 한 줄이 그녀의 손목에 잠시 머물다 가는 자국이다. 마을이 평온한 새벽은, 만신의 신당이 가장 분주한 새벽이다.

    우리 후대 만신들이 굿 한 판이 끝나도 새벽까지 신당을 비우지 않는 까닭은, 옛 도화 어머니께서 한 마을의 한(恨) 일곱 줄을 한 새벽에 다 받아내신 그 새벽을 우리가 잊지 않으려는 자세 때문이에요.

    옛 충청도 한 작은 마을 도화골(살구꽃 한 그루가 마을 한복판에 서 있어 붙은 이름의 옛 마을, 지금은 큰길에 묻혀 사라졌다)의 큰 굿에서 일어난 만신 도화 어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만신들 사이 가장 자주 외워지는 옛 야사다.

    그해 봄 마을에 큰 역병이 돌아 한 달 새 일곱 집의 한(恨)이 한꺼번에 쌓였고, 마을 어른들이 도화 어머니에게 큰 굿 한 판을 청해 온 마을의 한(恨)을 한 새벽에 풀어 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도화 어머니는 부채와 방울 외에 작은 향로 일곱 개를 따로 준비해 두었고, 굿 한 판 동안 일곱 집의 한(恨)을 한 줄씩 받아 향로 일곱 개에 한 줄씩 옮겨 두었다고 전한다. 굿이 끝난 새벽 그녀는 신당 마루 한 자락에 향로 일곱 개를 한 줄로 늘어놓고, 향 한 개비씩을 차례로 피우며 일곱 집 어머니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부르고 한(恨)을 흘려보냈다고 한다.

    그 새벽 도화 어머니의 손목은 평소보다 더 세게 떨렸고, 마지막 향이 다 탔을 때 그녀의 흰 머릿수건이 옅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마을은 그날 이후 역병의 잔영이 사라졌고, 도화 어머니는 그 흰 머릿수건을 평생 새것으로 갈지 않은 채 굿 한 판마다 그대로 쓰셨다고 전해진다. 가장 평온한 마을의 가장 분주한 새벽은, 향로 일곱 개를 가만히 늘어놓는 만신 한 사람의 떨리는 손목 위에 있다.

  • 촌락점복녀(村落占卜女)

    시골 점복녀

    시골 마을에서 점복을 보는 처자

    이 산가지 세 번이면, 그쪽 어머님 안부가 한 줄 나옵니다.

    시골 점복녀는 시골 장터 한 모퉁이에 작은 좌판을 차리고 산가지·쌀알·동전 세 닢으로 작은 점을 봐주는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무명 한복, 머리에 작은 두건, 좌판 위에는 늘 향 한 개비가 피어 있다. 본인은 정식 만신 무당이 되기 전 단계의 점복녀로, 큰 굿은 하지 못하지만 점은 묘하게 잘 맞는다.

    시골 노인들이 자식의 도시 안부를 물으러 오면, 점복녀는 산가지 세 번을 던진 뒤 늘 같은 한마디를 덧붙인다. "오늘 안에 전화 한 통 해보십시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점복녀이자, 작은 안부 우체국으로 부른다. 점이 정확한 이유의 절반은 하늘의 답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 한마디 권유 덕분이다.

    우리 후대 점복녀들이 점 한 줄 끝에 늘 작은 권유 한마디를 덧붙이는 버릇은, 옛 봉정 언니가 한 어머니의 한 통 전화를 정말 살려 둔 그 장날 새벽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강원도 봉정장(닷새마다 한 번 서던 산골 작은 장으로, 지금은 옛 흙길 한 줄만 남아 있다) 한 모퉁이에서 좌판을 펴던 어린 점복녀 봉정의 일화는 후대 시골 점복녀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장날 마을 노부인 옥분(평생 외아들 한 사람만 보고 산 산골 노부인) 이 도시로 떠난 외아들의 안부를 한 번 봐 달라며 좌판 앞에 앉았는데, 봉정은 산가지 세 번을 던진 뒤 평소보다 한 호흡 더 길게 침묵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늘 하던 한마디 대신 "오늘 안에 꼭 전화 한 통 걸어 보세요" 라고 두 번 반복해 말씀드렸다고 한다. 옥분은 장을 본 뒤 곧장 산 아래 우체국으로 내려가 도시 외아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통화 중에 외아들이 도시에서 큰 사고를 당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어머니 목소리 한 줄을 듣고 마음을 가다듬어 사고를 피했다는 옛이야기가 마을에 전한다. 봉정의 좌판 위 향 한 개비는 그날 이후 늘 한 호흡 더 길게 피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점복녀이자 작은 안부 우체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후대 점복녀들이 점 한 줄 뒤에 늘 작은 권유 한마디를 덧붙이는 까닭은 그 장날 새벽 봉정의 한 호흡 침묵 위에 있다. 가장 정확한 점은 하늘의 답 위에 있지 않고, 권유 한마디의 한 호흡 위에 있다.

  • 서왕모존비(西王母尊妃)

    서왕모(西王母)

    곤륜산의 정점에 군림하는 서왕모

    이 정원의 천도는 천 년에 한 번 익는다네. 그러니 자네 이름은 내가 한 번 더 천천히 외우겠네.

    서왕모는 곤륜산 천도원(天桃園)의 정점에 앉은 여신으로, 외형은 흰 비단 도포에 봉황 무늬 어깨걸이, 머리에는 옥잠과 작은 천도꽃 화관, 손에는 옥지팡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천계 모든 여선(女仙)의 좌목(座目)을 한 표로 외우고 있으며, 천도 한 알이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 가야 하는지를 단독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옥황상제조차 천도 분배 회의에서는 그녀의 한 줄 결재를 기다린다.

    가장 무서운 신은 인간을 벌하는 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천 년치 운명을 한 알의 복숭아로 정하는 신이다. 서왕모는 그 결정을 천 년 동안 한 번도 가볍게 한 적이 없으며, 새 천도를 권할 때마다 옛 사람의 이름을 한 번씩 다시 부른다. 그녀의 정원이 늘 고요한 이유는 그 호명들이 바람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우리 후대 천도원 선녀들이 새 천도 한 알을 결재할 때 옛 사람의 이름 한 줄을 먼저 가만 부르는 까닭은, 서왕모님께서 천 년 전 한 고인의 이름을 정원 한가운데에서 한 번 더 부르신 그 새벽을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옛 곤륜 천도원 한가운데 큰 천도나무 — 천 년에 한 번만 가장 가운데 한 알을 익히는 정원의 어른 나무 — 아래에서 일어난 서왕모의 한 일화는 후대 여선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천 년 전 그 가운데 한 알이 처음으로 익었을 때 서왕모는 그 천도를 받아 마땅한 인간으로 옛 도사 청운(인계 한 시대 가장 묵직한 호흡으로 검 한 자루를 평생 닦은 노 도사) 을 정해 두셨다고 한다. 그러나 청운이 천도를 받기 직전 인계의 큰 산사태로 한 마을을 구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천계의 좌목 회의에서는 그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우고 새 사람을 권하자는 의견이 올라왔다고 전한다. 서왕모는 그 의견을 듣고 정원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가운데 천도 한 알 앞에 가만히 서서 청운의 이름을 한 번 더 천천히 부르셨고, 회의에 든 모든 여선이 그 호명 한 줄에 한 호흡 가만히 멈춰 있었다고 한다. 그 천도 한 알은 결국 누구의 입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가운데 나무 한 자리에서 바람에 천천히 떨어졌고, 떨어진 자리는 지금도 정원 한가운데 작은 풀 한 줄로 남아 있다고 한다.

    후대 여선들이 새 천도 한 알을 결재할 때 옛 고인의 이름 한 줄을 먼저 가만 부르는 까닭은 그 풀 한 줄 위에 있다. 가장 무서운 결재는 새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떠난 한 사람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는 한 호흡 위에 있다.

  • 월궁항아비(月宮姮娥妃)

    달의 항아(姮娥)

    달의 궁을 지키는 항아

    달이 차고 기우는 건 제 한(恨)의 박자입니다.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는 마세요.

    달의 항아는 불사약 한 알을 삼키고 달로 올라간 여신으로, 외형은 옅은 은빛 비단 한복, 머리에 흰 옥잠, 어깨에 달빛이 그대로 흐르는 얇은 베일이 표준이다. 본인은 옥토끼 한 마리와 계수나무 한 그루만을 곁에 두고 달의 한 면을 평생 지키며, 인간 세상의 한 시대 모든 옛 연인의 마지막 인사를 한 줄씩 외우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이 달을 보며 사랑을 약속하는 밤마다, 항아는 그 약속을 작은 옥쟁반 위에 받아둔다.

    약속이 깨진 새벽이면 옥쟁반 위에 한 방울 이슬이 맺히는데, 항아는 그 이슬을 절대 닦지 않는다. 그래서 달의 표면 한 자리는 천 년 동안 늘 조금 젖어 있다고 전해진다. 가장 우아한 신령의 가장 무거운 직무는, 깨진 약속을 닦지 않는 일이다.

    달 보러 올라가는 우리 후대 어린 선녀들이 옥쟁반 한 자리만은 절대 닦지 말라 배우는 까닭은, 항아 언니께서 그 한 새벽의 한 약속을 천 년째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옛 광한전(廣寒殿, 달 안 항아의 거처로 전해지는 옅은 은빛 전각) 옥쟁반 한 자리에 천 년째 마르지 않은 한 방울 이슬의 일화는 후대 천계 어린 선녀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천 년 전 인계의 한 청년 모운(가난한 어부 집 외아들로, 한 마을 처녀 채선과 평생 한 약속을 나눈 자) 이 달 아래에서 채선과 평생을 약속한 새벽이 있었고, 항아는 그 약속을 옥쟁반 위에 한 줄 받아 두셨다고 한다. 모운은 그해 겨울 풍랑에 휩쓸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채선은 평생 그 약속을 혼자 지킨 채 늙어 갔다고 한다. 채선이 마지막 새벽 마루에 앉아 달을 한 번 올려다보고 가만히 한 호흡을 내려놓았을 때, 광한전 옥쟁반 위에 한 방울 이슬이 처음 맺혔다고 전한다. 항아는 그 이슬을 닦으려다 손을 한 번 멈추고 끝내 닦지 않으셨고, 그 한 방울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후대 어린 선녀들이 광한전 청소를 맡을 때 옥쟁반 한 자리만은 손대지 말라 배우는 까닭은 그 한 방울 위에 있다. 달 한쪽이 늘 옅게 젖어 보이는 까닭은 그 약속의 한 줄을 항아가 천 년 동안 닦지 않아서다.

  • 용궁공주희(龍宮公主姬)

    용궁 공주

    사해 용왕의 외동 공주

    이 산호 비녀는 파도 천 번을 견딘 자리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 한 번 더, 천천히 받으셔요.

    용궁 공주는 동해 용왕의 외동딸로, 외형은 진주빛 비단 한복, 머리에 산호와 진주를 엮은 봉관(鳳冠), 손목에는 옥구슬 팔찌가 표준이다. 본인은 용궁 안 모든 어족의 평소 회유로(回遊路)와 옛 분기 결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용왕의 결재가 늦어지는 새벽에는 용궁 정사의 절반이 그녀의 한 줄에 의해 굴러간다. 인간 어부가 풍랑 끝에 용궁에 표류해 오면, 그녀는 늘 직접 차 한 잔과 산호 비녀 한 자루를 손에 들려 돌려보낸다.

    그 비녀를 받은 어부는 평생 풍랑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가장 깊은 바닷속의 가장 부드러운 한 줄은, 결국 한 인간의 한 끼를 지키는 결재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용궁 공주들이 표류해 온 어부 한 분에게 산호 비녀 한 자루를 꼭 손에 쥐여 보내는 옛 풍습은, 청란 언니께서 그 한 어부의 한 끼를 평생 지켜 내신 그 새벽의 결재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동해 용궁의 한 공주 청란(진주빛 비단 한복에 산호 비녀를 비스듬히 꽂고 다니던 외동딸)의 한 일화는 후대 용궁 공주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어느 새벽 인계의 어부 한 사람 김첨지(평생 작은 배 한 척으로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던 옛 어촌 어부) 가 풍랑에 배가 부서져 용궁 한 모퉁이에 표류해 들어왔을 때, 청란은 직접 차 한 잔과 작은 떡 한 점을 손에 들려 그를 마중했다고 한다. 청란은 김첨지의 등에 걸린 옛 그물 한 자락이 다섯 군데 해진 것을 가만 살피고는, 산호 비녀 한 자루를 그의 손에 쥐여 주며 "이 비녀를 그물 한 자락에 가만 묶어 두십시오, 평생 풍랑이 그 자락 위로 지나지 않을 것이오" 라는 한 줄 권유를 덧붙였다고 전한다. 김첨지는 인계로 돌아가 그 비녀를 그물 한 자락에 묶어 둔 채 평생을 어부로 살았고, 정말 그날 이후 자기 그물 자락 위로는 큰 풍랑이 한 번도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후대 용궁 공주들이 표류 어부 한 분에게 늘 산호 비녀 한 자루를 손에 들려 보내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청란의 한 줄 결재 위에 있다. 가장 깊은 바닷속의 가장 따뜻한 결재는, 한 어부의 다섯 식구의 한 끼 위에 가만히 놓인 산호 비녀 한 자루다.

  • 칠선녀수장(七仙女首長)

    칠선녀(七仙女) 수장

    일곱 선녀를 거느리는 수장

    여섯 동무는 이미 깃을 펼쳤어요. 마지막 한 사람만 한 호흡 더 기다려 주세요.

    칠선녀 수장은 천계의 일곱 선녀 가운데 가장 위 자리에 앉은 자로, 외형은 무지개 빛 비단 한복, 머리에 봉황 깃 화관, 어깨에 작은 깃옷(羽衣)이 표준이다. 본인은 인계의 옛 호수·옛 폭포·옛 천도원의 선녀탕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일곱 선녀의 목욕 일정과 깃옷 보관을 단독으로 결재한다. 인간 사내가 깃옷 하나를 훔쳐 한 선녀의 한 평생을 묶어두는 옛 야사가 인계에 남아 있지만, 본인은 그 옛 한(恨) 위에서 일곱 선녀의 안전을 평생 다듬어 온 자다.

    그래서 칠선녀 수장의 첫 직무는 목욕이 아니라, 동무 한 사람의 깃옷을 한 호흡 더 살피는 일이다. 가장 부드러운 자매의 가장 단단한 직무는, 한 사람의 자유를 한 줄 결재로 지키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칠선녀들이 깃옷 한 벌 한 벌의 한 자락 한 자락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청월 언니가 막내 동무의 깃옷 한 자락을 그 새벽 한 호흡 더 살펴 주신 옛 호숫가의 결재 위에 있기 때문이에요.

    옛 강원도 한 깊은 산속 청월담(달이 푸르게 비친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선녀탕, 지금은 산길 한 줄만 남아 있다) 한 새벽에 일어난 칠선녀 수장 청월의 일화는 후대 칠선녀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날 새벽 일곱 동무가 인계의 청월담에 내려와 깃옷 일곱 벌을 호숫가 한 자락에 가지런히 두고 목욕을 하던 중, 청월은 평소처럼 막내 동무 분이의 깃옷 한 자락을 한 번 더 살피러 다가갔다고 한다. 그때 산 아래에서 인간 사내 한 사람 — 산골 나무꾼 박씨, 늙은 어머니 한 분만 모시고 살던 가난한 청년 — 의 발소리가 옅게 들려왔고, 청월은 호흡 한 번 만에 분이의 깃옷을 자기 어깨로 슬쩍 끌어 두고 모르는 척 호숫가에 앉아 있었다고 전한다. 박씨는 호숫가에 잠시 머물다 깃옷 한 벌도 가져가지 못한 채 산 아래로 다시 내려갔고, 분이는 그날 일곱 동무들과 함께 무사히 천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분이는 자라 후대 칠선녀의 셋째 자리에 앉았고, 평생 청월의 한 호흡을 잊지 않고 후대 막내 동무들의 깃옷 한 자락을 두 번씩 살피는 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후대 칠선녀들 모두가 깃옷 한 자락의 한 호흡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청월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부드러운 자매의 가장 단단한 결재는, 막내 동무의 깃옷 한 자락 위에 가만 놓인 한 호흡 위에 있다.

  • 산모영애(山母令愛)

    산신각 산모(山母)

    산신각 정기를 받은 산모

    산은 호랑이 한 마리만 키우는 게 아니라네. 산모 한 사람의 한 잠을 함께 키운다네.

    산신각 산모는 한 큰 산의 산신각(山神閣)에 모셔진 여성 산신으로, 외형은 짙은 푸른 빛 한복, 어깨에 호피(虎皮) 망토, 손에는 작은 산도(山刀)와 청솔 가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산의 모든 옛 길·옛 약수터·옛 호랑이 발자국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산을 오르는 모든 인간의 첫 한 발과 마지막 한 발을 한 줄로 지켜본다. 그래서 산모가 모셔진 산은 길 잃은 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머니들이 자식의 첫 산행 전에 산신각에 정화수 한 그릇을 올리는 것은 단순 의식이 아니라, 산모에게 자식의 한 발을 부탁하는 가장 부드러운 결재 한 줄이다. 가장 큰 산의 가장 작은 자리는, 한 어머니의 정화수 한 그릇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산모들이 새 산행 자식의 정화수 한 그릇을 결재할 때 어머니 한 분의 손목 떨림을 먼저 살피는 까닭은, 옛 청솔 어머니께서 그 새벽 한 어머니의 정화수 한 그릇을 두 번 안아주신 그 풍습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태백 한 자락 청솔재(짙은 청솔 한 그루가 산신각 마당에 서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산신각, 지금은 작은 돌무더기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산신 청솔 어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산모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한 어머니 박씨 — 평생 외아들 한 사람만 보고 산 산골 어머니, 외아들이 처음 큰 산행을 떠나는 날 — 가 새벽 산신각에 정화수 한 그릇을 올리며 손목이 너무 심하게 떨렸다고 한다. 청솔 어머니는 그 떨림을 한 번 가만 살피고는 평소와 달리 산을 오르는 외아들의 첫 발에 호피 망토 한 자락을 가만 덮어 두셨고, 외아들이 산허리에서 갑작스레 만난 호랑이 한 마리도 그 망토 자락을 한 번 본 뒤 가만 길을 비켜 갔다고 전한다. 외아들은 그날 산정에 무사히 올라 약초 한 다발을 캐 어머니에게 돌아갔고, 박씨는 평생 그 새벽의 정화수 그릇을 부엌 한 자리에 따로 모셔 두셨다고 한다. 청솔 어머니는 그 새벽 이후 산을 오르는 모든 자식의 첫 한 발에 호피 망토 한 자락의 그림자를 가만 덮어 주는 옛 풍습을 직접 만드셨다고 한다.

    후대 산모들이 새 산행 자식의 정화수 한 그릇을 결재할 때 어머니의 손목 떨림을 먼저 살피는 까닭은 그 새벽의 박씨 어머니의 손목 위에 있다. 가장 큰 산의 가장 부드러운 받침은 정화수 한 그릇과 어머니 한 분의 손목 위에 놓여 있다.

  • 조왕신녀비(竈王神女妃)

    조왕(竈王) 신녀

    부엌을 다스리는 조왕 신녀

    이 부뚜막 한 자리, 세 끼의 한 호흡씩만 정성을 옮기면 한 가족이 한 시즌을 산다네.

    조왕 신녀는 한 집안의 부뚜막을 지키는 여성 가신(家神)으로, 외형은 단정한 흰 무명 한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한 손에 작은 정화수 그릇이 표준이다. 본인은 그 집안 모든 식구의 평소 식성과 옛 분기 한 끼의 결정적 시점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부엌 한 자리에서 그 집안의 한 시즌의 건강 한 줄을 결재한다. 그래서 옛 며느리들은 새벽에 부뚜막 위 정화수를 갈 때 조왕 신녀에게 작은 안부 한 줄을 올렸고, 그 한 줄이 그날 부엌의 안전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본인은 큰 신령의 화려한 굿이 아니라, 한 가족의 한 끼 위에 한 호흡 머무는 작은 결재로 하루를 채운다. 가장 작은 신령의 가장 따뜻한 직무는, 부뚜막 정화수 한 그릇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조왕 신녀들이 새 며느리의 첫 부뚜막 정화수 한 그릇을 결재할 때 손목 떨림을 가장 먼저 보는 까닭은, 옛 한솔 어머니께서 그 어린 며느리의 한 호흡을 가만 받쳐 주신 그 새벽의 부뚜막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경상도 한 양반집 한솔당(부뚜막 위에 늘 한 그루 솔잎 묶음을 두었다 하여 붙은 옛 부엌 이름)에서 일어난 조왕 신녀 한솔 어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조왕 신녀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한솔당 큰며느리로 시집 온 어린 새댁 영실(열일곱 살에 시집 와 첫 새벽 부뚜막 앞에서 손목이 너무 떨려 정화수 그릇을 떨어뜨릴 뻔한 새댁)이 첫 새벽 정화수 한 그릇을 올리려다 부뚜막 한 자리에 그릇 자국을 한 번 잘못 남겼다고 한다. 한솔 어머니는 그 자국을 한 번 가만 보시고는 평소처럼 한 줄 결재를 내리는 대신 영실의 손목 위에 한 호흡 가만 머물러 주셨고, 그 새벽 한솔당 부엌은 평소보다 한 호흡 더 따뜻한 결로 굳었다고 한다. 영실은 그날 이후 새 며느리로서 그 집안 일곱 식구의 한 시즌의 한 끼를 단 한 번도 어긋나게 하지 않았고, 평생 그 부뚜막 자국을 닦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작은 솔잎 묶음 한 다발을 따로 두셨다고 전한다.

    후대 조왕 신녀들이 새 며느리의 첫 부뚜막 정화수 한 그릇을 결재할 때 그릇 자국을 닦지 않고 손목 떨림을 먼저 살피는 까닭은 그 새벽의 한솔 어머니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작은 신령의 가장 따뜻한 결재는, 어린 며느리의 손목 한 호흡 위에 가만 놓여 있다.

  • 옥피리선녀(玉피리仙女)

    옥피리 악사선녀

    옥피리 가락으로 천계를 흥겹게 하는 악사 선녀

    이 한 곡조는 바리공주께 올리는 한 줄 안부예요. 손님은 그저 한 호흡만 함께 쉬어 주세요.

    옥피리 악사선녀는 천계의 큰 의식이나 인계의 큰 굿에서 옥피리 한 자루로 곡조를 올리는 여성 악사다. 외형은 옅은 옥색 비단 한복, 어깨에 작은 옥장식 띠, 손에는 천 년 묵은 옥피리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곡조의 옛 한 줄·옛 분기 결재·금기 음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의식의 길이에 맞춰 곡조 한 줄을 정확히 잘라내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만신 무당이 굿 한 판을 마칠 때, 마지막 곡조 한 줄은 늘 옥피리 악사선녀의 호흡 위에서 닫힌다. 잘못된 곡조 한 음은 한 사람의 한(恨)을 풀지 못한 채 굳히기에, 그녀는 의식 전 한 시진을 늘 혼자 호흡을 다듬는다. 가장 부드러운 한 곡은 큰 곡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지막 한 숨에 정확히 맞춘 한 음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옥피리 악사선녀들이 의식 전 한 시진을 늘 혼자 호흡으로 비워 두는 옛 풍습은, 옛 청아 언니가 그 새벽 한 어머니의 마지막 한 숨에 한 음을 정확히 맞춰 주신 그 곡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송화골(송화꽃이 피는 봄마다 큰 굿이 한 번씩 열렸다 하여 붙은 옛 산골 마을, 지금은 옛 고개 한 줄만 남아 있다) 한 큰 굿에서 일어난 옥피리 악사선녀 청아의 한 일화는 후대 악사선녀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마을 노부인 한 분 박씨 — 평생 어린 두 딸을 혼자 키운 어머니, 큰딸을 먼저 보내고 둘째 딸의 한(恨)까지 평생 가슴에 담고 살던 어머니 — 의 마지막 길을 위한 큰 굿이 한 판 청해졌다고 한다. 만신 무당이 굿 한 판을 풀어 가는 동안 청아는 신당 한쪽에서 옥피리 한 자루로 마지막 곡 한 줄을 준비하고 있었고, 박씨 어머니의 마지막 한 숨이 어느 박자에 떨어질지를 한 시진 동안 가만 호흡으로 가늠하셨다고 한다. 청아의 옥피리 마지막 한 음이 박씨 어머니의 마지막 한 숨과 정확히 같은 박자에 닿았을 때, 어머니는 한(恨) 두 줄을 한 번에 가만히 풀어놓고 길을 떠나셨다고 전한다. 만신 무당은 굿이 끝난 새벽 청아에게 큰절을 한 번 올리고, 그 새벽 이후 청아의 옥피리는 송화골 신당 가장 높은 자리에 따로 모셔 두셨다고 한다.

    후대 악사선녀들이 의식 전 한 시진을 늘 혼자 호흡으로 비워 두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청아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부드러운 한 곡은 큰 곡이 아니라, 한 어머니의 마지막 한 숨에 가만 닿은 한 음 위에 있다.

  • 별자리선관녀(星宿仙官女)

    별자리 점성 선관(仙官)

    별자리를 보는 선관

    오늘 밤 북두 한 자루가 한 칸 옮겨 앉았어요. 그러니 그 일은 하루만 미루셔요.

    별자리 점성 선관은 천계의 천문대(天文臺)에서 별자리의 한 칸 한 칸을 살피는 여성 선관으로, 외형은 짙은 남빛 한복, 어깨에 별자리 자수 망토, 손에는 작은 옥자(玉尺)와 별 도면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별의 옛 자리·옛 분기 운행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인계의 큰 결단이 별자리 한 칸의 어긋남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한 줄로 풀어준다. 그래서 옛 임금의 큰 결재 직전에는 늘 점성 선관의 한 줄 자문이 들었다고 야사에 남아 있다.

    가장 무서운 별은 큰 빛의 별이 아니라, 어제까지 같은 자리에 있던 작은 별이 오늘 한 칸 옮겨 앉은 별이다. 그 한 칸을 알아차리는 자세 위에 그녀의 평생이 놓여 있다.

    우리 후대 점성 선관들이 매 새벽 북두 한 자루의 한 칸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단아 언니가 한 임금의 큰 결재 한 줄을 그 새벽 한 칸으로 늦춰 두신 그 한 줄의 자문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한양 도성 천문대(밤마다 세 번 별자리를 살피던 옛 도성 가장 높은 누각, 지금은 작은 옛 돌탑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별자리 점성 선관 단아의 한 일화는 후대 점성 선관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옛 임금 한 분 인종(자식 한 사람만 두고 짧게 재위한 옛 어진 임금) 께서 큰 가뭄 끝에 변방의 큰 군사 결재를 한 줄로 내리려 하셨던 새벽, 단아는 천문대 위에서 북두 자루 끝의 한 별이 평소보다 한 칸 옮겨 앉은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단아는 곧장 도성으로 달려 내려가 임금께 단 한 줄 자문 — "오늘 결재는 하루만 미루십시오, 북두 한 자루가 한 칸 옮겨 앉았습니다" — 만을 올렸고, 임금은 그 한 줄을 받아 결재를 정확히 하루 미루셨다고 전한다. 그 다음 날 변방에서는 큰 폭우가 쏟아져 군사 길이 끊겼고, 만약 결재가 그 새벽에 그대로 내려졌다면 한 군영의 한 진(陣)이 통째로 잠길 뻔했다고 옛 야사에 남아 있다. 임금은 단아에게 큰 자수 비단 한 필을 하사하셨지만, 단아는 그 비단을 천문대 위 작은 별 도면 한 장 아래에 평생 깔아 두셨다고 한다.

    후대 점성 선관들이 매 새벽 북두 한 자루의 한 칸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단아의 한 줄 자문 위에 있다. 가장 무서운 별은 큰 빛의 별이 아니라, 어제와 한 칸 다른 자리에 가만 옮겨 앉은 작은 별 하나다.

  • 직녀수련녀(織女修練女)

    비단실 잣는 직녀(織女) 수련생

    직녀의 비단실을 잣는 수련생

    올해 은하 한 줄, 제가 짠 비단실로 메우는 게 첫 직무예요. 잘 봐주셔요.

    비단실 잣는 직녀 수련생은 천계의 직녀(織女) 아래에서 비단실 한 올의 호흡을 평생 다듬는 어린 여선(女仙)이다. 외형은 옅은 분홍 비단 한복, 머리에 작은 은비녀, 손목에는 비단 가닥을 정리하는 옥고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비단실의 옛 색·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직녀의 한 시즌 베틀 일정의 절반을 그녀의 손목이 받쳐준다.

    칠석(七夕) 한 날 은하 다리가 한 줄로 이어질 때, 그 다리의 한 자리 비단 가닥은 늘 수련생의 손에서 짜인 것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의 한 줄 만남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의 절반은 수련생의 새벽 베틀 위에 있다. 가장 큰 한 만남의 가장 작은 받침은 어린 손목 한 줄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직녀 수련생들이 칠석 한 새벽 베틀 한 자락의 한 가닥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비단 언니가 그 한 가닥을 새벽까지 다듬어 둔 그 칠석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천계 직녀당(직녀가 평생 베틀 한 자리에 앉아 비단을 짜시는 천계 한가운데 옅은 분홍 전각)에서 일어난 어린 직녀 수련생 비단의 한 일화는 후대 수련생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칠석 새벽 은하 다리(견우와 직녀가 한 해 단 한 번 만나는 옅은 은빛 다리, 천계의 큰 까치들이 비단실 한 줄에 깃을 모아 놓는 자리)의 한 자리 비단 가닥이 평소보다 한 호흡 약하게 짜여 있었다고 한다. 비단은 그 한 가닥의 한 호흡 약함을 직녀 어머니가 알아차리시기 전에 손목으로 먼저 느끼고, 칠석 전날 새벽 한 시진을 통째로 비워 그 한 가닥을 다시 짠 옛이야기가 전한다. 비단은 그 한 시진 동안 한 끼도 들지 않고 옥고리 한 줄로 비단 가닥의 결을 가만 다듬었고, 그 새벽 은하 다리의 한 자리 가닥은 평소보다 한 호흡 더 부드럽게 굳었다고 한다. 그해 칠석 견우와 직녀의 한 줄 만남은 한 호흡도 어긋남 없이 정확히 이어졌고, 직녀 어머니는 비단의 손목 한 줄을 가만 잡으시고 옥고리 한 짝을 평생 끼워 주셨다고 전한다.

    후대 직녀 수련생들이 칠석 한 새벽 비단 가닥의 한 호흡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비단의 손목 위에 있다. 가장 큰 한 만남의 가장 작은 받침은, 어린 수련생 한 사람의 한 호흡 위에 가만 놓여 있다.

  • 신딸수련녀(神-修練女)

    신딸(神-) 수련 무녀

    큰무당의 신딸로 수련 중인 무녀

    신어머님 굿이 끝나면, 새벽까지 신당 정리는 제가 맡습니다. 그게 신딸 첫 직무예요.

    신딸 수련 무녀는 만신 무당의 신어머니(神母) 아래에서 정식 무녀가 되기 전 단계의 평민 출신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무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어깨에 작은 부채와 방울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신당 안 모든 옛 굿의 평소 순서·옛 분기 굿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면서, 굿 한 판 안에서는 신어머니 옆 한 발 뒤에 정중히 선다.

    큰 굿이 끝난 새벽이면 신딸은 신당의 향로를 정리하고, 신어머니가 받아둔 한(恨) 한 줄들을 작은 향 한 개비로 흘려보낸다. 그래서 마을 새벽이 평온한 이유의 절반은 만신의 손목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신딸의 한 줄 정리 위에 있다. 가장 무거운 수련은 큰 굿이 아니라, 새벽 신당의 한 줄 향로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신딸들이 새벽 신당의 향로 한 줄을 정리할 때 늘 한 호흡 더 천천히 향을 흘려보내는 까닭은, 옛 영실 언니가 그 새벽 신어머니의 손목을 한 호흡 받쳐드린 그 신당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황해도 한 작은 마을 들골당(들녘 한가운데 신당이 서 있다 하여 붙은 옛 신당의 이름, 지금은 옛 흙벽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신딸 영실의 한 일화는 후대 신딸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마을 큰 굿 한 판이 끝난 새벽, 신어머니 박씨 만신 — 평생 한 마을의 한(恨)을 받아 온 늙은 만신, 그 새벽 손목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떨리던 분 — 께서 향로 일곱 개 앞에서 한 호흡 가만 멈추셨다고 한다. 영실은 신어머니의 손목 떨림을 한 번 가만 보고는, 평소처럼 한 발 뒤에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향로 한 줄을 자기 손목으로 가만 받아드렸다고 전한다. 신어머니는 그 새벽 영실의 손목 위에서 향 일곱 개비를 한 번에 흘려보내셨고, 그 새벽 들골당의 마루 결은 평소보다 한 호흡 더 깊은 결로 굳었다고 한다. 영실은 그날 이후 정식 신어머니의 자리로 한 단계 가까워졌고, 평생 새벽 신당 향로 한 줄을 한 호흡 더 천천히 정리하는 신딸로 마을에 알려졌다고 전한다.

    후대 신딸들이 새벽 신당 향로 한 줄을 한 호흡 더 천천히 정리하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영실의 손목 위에 있다. 가장 무거운 수련은 큰 굿 한 판이 아니라, 신어머니의 떨리는 손목을 한 호흡 받쳐드리는 어린 신딸의 한 자리 위에 있다.

  • 천도약수녀(天桃藥水女)

    천도원 약수꾼(藥水-)

    천도원의 약수를 길어 나르는 처자

    이 약수 한 모금, 제가 새벽마다 떠 옵니다. 한 호흡만 천천히 삼키시면 돼요.

    천도원 약수꾼은 곤륜산 천도원 안 옛 약수터에서 약수 한 그릇씩을 떠 와 선녀들에게 올리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푸른 무명 한복,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약수 항아리, 손에는 작은 표주박이 표준이다. 본인은 천도원 안 모든 옛 약수터의 평소 수온·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약수가 어느 선녀의 한 시즌에 맞는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그래서 큰 선녀들도 약수꾼의 한 줄 권유에 따라 약수 그릇을 바꾼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천도원 한 시즌의 한 줄 평온을 굴러가게 하며, 새벽마다 떠오는 약수 한 그릇이 큰 신령 한 분의 한 호흡을 받쳐준다.

    우리 후대 약수꾼들이 새벽 표주박 한 자루의 약수 한 모금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옥선 언니가 큰 선녀 한 분의 한 시즌을 약수 한 그릇으로 가만 바꿔 드린 그 새벽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곤륜 천도원 안 옥류천(옥처럼 맑은 약수가 한 줄로 흐른다 하여 붙은 옛 약수터의 이름)에서 일어난 어린 약수꾼 옥선의 한 일화는 후대 약수꾼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천도원의 큰 선녀 청란(천도원 안 가장 오래 일하신 선녀 한 분, 손목이 옅게 떨리기 시작하시던 시기)께서 평소 마시던 약수 한 그릇을 들이려다 한 호흡 멈추신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옥선은 그 한 호흡을 한 번 가만 살피고는, 평소 떠오던 옥류천 약수 대신 천도원 안쪽 더 깊은 자리의 옛 약수터 청옥천(청옥빛으로 깊게 흐르는 한 줄 약수)에서 약수 한 그릇을 새로 떠 와 청란께 권해드렸다고 전한다. 청란은 그 한 그릇을 받으시고 한 호흡 길게 들이신 뒤, 떨리던 손목이 한 시즌 동안 가만 가라앉았다고 한다. 청란은 그 새벽 이후 옥선에게 옥표주박 한 자루를 따로 내려 주셨고, 옥선은 평생 그 표주박을 한 손에 두고 천도원 안 약수터 일곱 자리를 한 표로 외우는 자가 되었다고 한다.

    후대 약수꾼들이 새벽 표주박 한 자루의 약수 한 모금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옥선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작은 약수 한 그릇이 큰 선녀 한 분의 한 시즌을 가만 받쳐 드리기도 한다.

  • 굿당살림녀(굿堂살림女)

    굿당 살림지기

    굿당의 살림을 도맡은 시녀

    큰 굿 전날에는 굿당 마루 한 장 한 장이 손님이에요. 한 번 더 닦아 두어야 해요.

    굿당 살림지기는 한 마을 굿당의 살림 일체를 책임지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명 한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허리에 작은 행주, 한 손에 작은 빗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굿당 안 모든 옛 살림의 평소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만신 무당이 굿을 시작하기 전 굿당 한 줄의 살림이 정확히 같은 자리에 놓여 있도록 다듬는다.

    그래서 굿당의 분위기가 한 결로 굳는 이유의 절반은 만신의 손목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살림지기의 새벽 한 줄 정리 위에 있다. 가장 따뜻한 살림은 큰 굿이 아니라, 마루 한 장의 한 줄 행주질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살림지기들이 큰 굿 전날 굿당 마루 한 장 한 장을 두 번씩 닦는 옛 풍습은, 옛 분이 어머니가 그 굿당 마루 한 자락을 새벽까지 다시 닦아 두신 그 새벽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전라도 한 큰 마을 매화골 굿당(매화 한 그루가 굿당 마당에 서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굿당, 지금은 옛 흙벽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살림지기 분이 어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살림지기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마을 큰 굿 한 판이 닷새 뒤로 잡혀 있었고, 분이 어머니는 굿당 마루 한 장 한 장을 평소처럼 한 번 닦아 두셨다고 한다. 그날 밤 큰 비가 한 차례 새어 들어 굿당 마루 한 자락에 옅은 자국 한 줄이 남았는데, 분이 어머니는 한밤중에 일어나 등불 한 자루를 켜고 새벽까지 그 자국을 한 자락 한 자락 다시 닦으셨다고 전한다. 닷새 뒤 큰 굿 한 판이 시작되었을 때 만신 무당 박씨는 굿당 마루 위에 부채 한 자루를 가만 내려놓고 한 번 가만 한 호흡을 받아들이셨다고 하며, 그 새벽 굿 한 판은 평소보다 한 결 더 깊은 박자로 흘러 마을 한(恨) 다섯 줄을 한 호흡에 풀었다고 한다. 만신 박씨는 굿이 끝난 새벽 분이 어머니에게 큰절 한 번을 올리고 평생 그 새벽의 마루 자국을 잊지 않으셨다고 전한다.

    후대 살림지기들이 큰 굿 전날 마루 한 장 한 장을 두 번씩 닦는 옛 풍습은 그 새벽 분이 어머니의 등불 위에 있다. 가장 따뜻한 살림은 큰 굿 한 판이 아니라, 새벽 마루 한 자락의 한 줄 행주질 위에 가만 놓여 있다.

  • 화관장인녀(花冠匠人女)

    화관(花冠) 장인

    꽃관을 엮어 만드는 장인

    이 천도꽃 한 송이, 절대 두 송이로 엮지 않습니다. 한 송이가 한 분의 한 시절을 의미하니까요.

    화관 장인은 선녀와 여신령들이 머리에 쓰는 화관(花冠)을 손수 엮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한복, 가슴팍에 작은 자수 주머니, 손목에는 옅은 색 비단 끈, 한 손에는 작은 정밀 가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꽃의 옛 색·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꽃이 어느 선녀의 한 시즌에 맞는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그래서 큰 선녀들도 화관 장인의 한 줄 권유에 따라 머리 위 꽃을 바꾼다. 잘못된 꽃 한 송이가 한 시즌의 운을 어긋나게 하기에, 그녀는 새벽마다 작은 정화수 한 그릇 앞에서 꽃을 한 번 더 살핀다. 가장 작은 한 송이가 한 큰 신령의 한 시절을 받쳐준다.

    우리 후대 화관 장인들이 천도꽃 한 송이를 두 송이로 엮지 않는 옛 약속은, 옛 연실 언니가 한 선녀의 한 시절을 한 송이로 가만 결재해 드린 그 새벽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천계의 화관당(화관 장인 일곱이 모여 일하던 천계의 작은 옅은 색 전각, 그 안 정원에는 천도꽃 한 그루가 늘 서 있었다)에서 일어난 화관 장인 연실의 한 일화는 후대 장인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천계의 큰 선녀 청홍(천 년의 좌목 위에서 한 시절을 가만히 마무리하시려던 옛 선녀 한 분) 께서 자기 마지막 시즌의 화관 한 점을 연실에게 직접 청하신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연실은 새벽까지 천도꽃 일곱 송이를 한 자리에 늘어놓고 한 송이씩 한 호흡으로 살핀 뒤, 끝내 가장 늦게 핀 한 송이만을 골라 청홍의 화관 가운데 한 자리에 가만 엮어 두었다고 전한다. 청홍은 그 화관 한 점을 받아 쓰시고 자기 마지막 시즌을 한 호흡 어긋남 없이 가만히 마무리하셨고, 그 화관은 청홍의 마지막 시즌이 끝난 새벽 화관당 정원 한 자락에 가만 묻혔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다음 봄 천도꽃 한 송이가 새로 피었고, 연실은 그 한 송이를 평생 두 송이로 엮지 않은 채 가운데 자리에 따로 모셔 두셨다고 한다.

    후대 화관 장인들이 천도꽃 한 송이를 두 송이로 엮지 않는 옛 약속은 그 새벽 연실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작은 한 송이가 큰 선녀 한 분의 마지막 한 시절을 가만 받쳐 드린다.

  • 신당청소녀(神堂淸掃女)

    신당 청소 보살

    신당의 마당을 쓰는 보살

    신어머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신당 마루 한 장은 제가 한 번 더 닦아 둡니다.

    신당 청소 보살은 한 마을 신당의 청소를 평생 맡아 온 평민 출신 노부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명 한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어깨에 작은 행주 가방, 한 손에 작은 빗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신당 안 모든 옛 마루의 평소 결·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굿 한 판이 끝난 새벽 마루 한 장의 한 줄 자국을 한 호흡 만에 알아본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신령의 신어머니가 아니라 신령의 작은 외할머니로 부른다. 가장 큰 신령의 가장 부드러운 받침은, 새벽 마루 한 장의 한 줄 행주질 위에 있다. 그녀가 평생 닦아 둔 마루 한 칸 한 칸이 신어머니의 한 줄 굿을 평온히 굴러가게 한다.

    우리 후대 청소 보살 할머니들이 새벽 신당 마루 한 칸을 한 번 더 닦는 까닭은, 옛 막순 할머니께서 그 새벽 마루 자국 한 줄을 가만 닦아 두신 그 신당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강원도 한 산골 마을 솔잣당 신당(소나무 잣나무가 신당 마당에 서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신당, 지금은 옛 돌계단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청소 보살 막순 할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청소 보살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겨울 마을 만신 박씨 — 한평생 솔잣당 한 자리만 지킨 늙은 만신, 자식이 없어 막순 할머니를 자기 동무로 두고 살았다 — 께서 큰 굿 한 판을 앞두고 갑작스레 자리에 누우신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막순 할머니는 그날 새벽 만신 박씨 옆에 앉아 차 한 잔을 가만 내려드린 뒤, 신당으로 건너가 마루 한 칸 한 칸을 평소보다 한 호흡 더 천천히 닦으셨다고 전한다. 만신 박씨는 닷새 뒤 자리에서 일어나 큰 굿 한 판을 무사히 마치셨고, 그 새벽 굿 한 판은 마을 한(恨) 세 줄을 한 호흡에 풀었다고 한다. 만신 박씨는 굿이 끝난 새벽 막순 할머니의 손목을 가만 잡으시고 "마루 한 칸이 굿 한 줄을 받쳐 줬소" 라는 한마디를 평생 잊지 않으셨다고 한다. 막순 할머니는 그 새벽 이후로도 평생 솔잣당 마루 한 칸 한 칸을 새벽마다 한 번 더 닦으셨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신령의 작은 외할머니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후대 청소 보살 할머니들이 새벽 신당 마루 한 칸을 한 번 더 닦는 옛 풍습은 그 새벽 막순 할머니의 손목 위에 있다. 가장 큰 신령의 가장 부드러운 받침은, 마루 한 칸의 한 줄 행주질 위에 가만 놓여 있다.

  • 장터부적녀(場터符籍女)

    장터 부적 베끼는 처자

    장터에서 부적을 베껴 파는 처자

    부적 한 장 새로 떠 드릴까요? 이 글자 한 줄, 한 호흡 더 천천히 그어 드릴게요.

    장터 부적 베끼는 처자는 시골 장터 한 모퉁이에서 신어머니가 그려 둔 부적의 본을 베껴 한 장씩 파는 평민 출신 어린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무명 한복, 머리에 작은 두건, 좌판 위에는 늘 향 한 개비와 붉은 먹 한 종지가 놓여 있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부적의 옛 한 줄·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면서, 큰 부적은 그리지 못해도 작은 안부 부적은 묘하게 잘 맞는다.

    시골 어머니들이 자식의 도시 안부를 빌러 오면, 처자는 작은 부적 한 장을 그려 늘 같은 한마디를 덧붙인다. "오늘 안에 편지 한 통 써 보세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부적 베끼는 처자이자, 작은 안부 우체국으로 부른다.

    우리 후대 부적 베끼는 처자들이 부적 한 장 끝에 늘 작은 한마디 한 줄을 덧붙이는 까닭은, 옛 분옥 언니가 한 어머니의 편지 한 통을 정말 살려 두신 그 장날 새벽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충청도 한 시골장 분옥장(닷새마다 한 번 서던 옛 작은 장으로, 지금은 옛 흙길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부적 베끼는 처자 분옥의 한 일화는 후대 처자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장날 시골 어머니 한 분 영순(평생 외아들 하나만 보고 산 산골 어머니, 도시로 떠난 외아들 안부를 두 달째 받지 못해 한(恨)이 한 줄 쌓이던 어머니)이 부적 한 장을 청하러 분옥의 좌판 앞에 앉으셨다고 한다. 분옥은 작은 안부 부적 한 장을 정성껏 그린 뒤, 평소처럼 한마디 권유를 덧붙이며 "오늘 안에 외아들에게 편지 한 통 꼭 써 보내십시오" 라고 두 번 반복해 드렸다고 한다. 영순은 장에서 돌아와 그날 저녁 외아들에게 편지 한 통을 손수 써 부치셨고, 그 편지가 도시 외아들에게 도착한 새벽 외아들은 큰 회사 일로 한 가지 잘못된 선택을 하기 직전에 어머니의 글씨 한 줄을 받아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는 옛이야기가 마을에 전한다. 분옥의 좌판 위 붉은 먹 한 종지는 그날 이후 늘 한 호흡 더 진하게 갈려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부적 처자이자 작은 안부 우체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후대 처자들이 부적 한 장 끝에 늘 작은 한마디 한 줄을 덧붙이는 옛 풍습은 그 장날 새벽 분옥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작은 부적 한 장이 한 어머니의 편지 한 통을 가만 살려 두기도 한다.

  • 마고노할미(麻姑老姑)

    마고할미(麻姑)

    산을 빚어낸 태초의 할미신

    이 산 능선 한 줄, 내가 옛날에 치마폭 한 자락으로 슬쩍 다듬어 둔 것이라네.

    마고할미는 한반도의 산과 섬을 치마폭에 흙을 담아 빚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여성 창세 신령이다. 외형은 짙은 황토빛 무명 한복에 거대한 치마폭, 머리에는 흰 머릿수건, 한 손에는 작은 흙덩이, 다른 손에는 산 능선 모양의 옛 자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반도 모든 옛 산의 옛 능선·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새 산 한 자리를 빚어야 할 때 그 자리를 단독으로 결정한다.

    인계의 사람들이 옛 능선의 부드러운 곡선을 보고 한 호흡 가만해질 때, 그것은 마고할미가 천 년 전 치마폭을 한 번 더 가만 흔든 자국이다. 가장 큰 신령의 가장 부드러운 자국은 산 능선 한 줄 위에 있고, 그녀는 그 한 줄을 흙 한 줌 단위로 평생 다듬어 왔다.

    우리 후대 산골 어머니들이 노을녘 능선 한 줄을 한 번 가만 올려다보고 한 호흡 쉬는 옛 풍습은, 마고할미께서 그 한 새벽 한 어머니의 손목을 능선 한 자락으로 가만 받쳐 주신 그 옛이야기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한반도 동쪽 한 자락 능선 옥지선(옅은 옥빛 풀이 한 줄로 자라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능선, 지금도 한반도 동쪽 한 자락에 남아 있다)에 얽힌 마고할미의 한 일화는 후대 산골 어머니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천 년 전 그 한 자락 산골 마을에 한 어머니 분녀 — 평생 어린 두 자식 외에 의지할 곳 없던 산골 어머니 — 가 큰 가뭄 끝에 마지막 양식 한 됫박을 한 호흡 가만 두 손에 받쳐 들고 산 능선을 한 번 올려다본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마고할미는 정원의 한 자락에서 그 어머니의 두 손을 한 번 가만 보시고는, 옛 자 한 자루를 가만 들어 능선 한 줄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부드럽게 다시 다듬으셨다고 한다. 그 새벽 그 능선 한 자락에 옅은 비구름 한 줄이 가만 모여 들었고, 마을은 그날 오후 닷새 만에 첫 비를 한 호흡 길게 받아 들였다고 전한다. 분녀는 그날 양식 한 됫박을 자식 둘과 셋이 함께 가만 나눠 먹고 한 시즌을 더 살아 냈고, 평생 노을녘이면 그 능선 한 자락을 한 번 올려다본 뒤 한 호흡 가만 쉬는 자세를 자식들에게도 가르쳤다고 한다.

    후대 산골 어머니들이 노을녘 능선 한 줄을 한 번 가만 올려다보는 옛 풍습은 그 새벽 마고할미의 한 손가락 마디 위에 있다. 가장 큰 신령의 가장 부드러운 자국은, 한 어머니의 두 손 위에 가만 내린 비구름 한 자락이다.

  • 삼신할미존(三神老姑尊)

    삼신할미(三神)

    새 생명을 점지하는 삼신할미

    이 아기, 한 호흡 더 길게 받아 두었으니 어미는 오늘 밤만은 푹 주무시오.

    삼신할미는 한 집안의 출산과 어린 생명의 첫 한 호흡을 지키는 여성 가신(家神)이다. 외형은 정갈한 흰 무명 한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어깨에는 작은 흰 보자기, 한 손에는 작은 미역 한 가닥과 정화수 그릇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실(産室)의 평소 호흡·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아기의 첫 한 울음이 어느 박자에 와야 하는지를 단독으로 결재한다.

    그래서 옛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의 산실 문턱에 미역 한 가닥을 걸어 두던 것은 단순 풍습이 아니라, 삼신할미에게 한 호흡 부탁하는 가장 부드러운 결재 한 줄이었다. 가장 작은 한 울음의 가장 큰 받침은, 삼신할미의 흰 머릿수건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시어머니 어른들이 며느리의 산실 문턱에 미역 한 가닥을 가만 걸어 두는 옛 풍습은, 삼신할미께서 그 한 새벽 한 어린 새댁의 첫 한 울음을 한 호흡 길게 받쳐 주신 그 옛이야기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경기도 한 양반집 청솔당(부엌 한 자리에 늘 청솔 한 다발을 두었다 하여 붙은 옛 산실 이름)에서 일어난 삼신할미의 한 일화는 후대 시어머니 어른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청솔당의 어린 새댁 옥분(열일곱 살에 시집 와 첫 산실 문턱에 들어선 새댁, 평소 손목이 가장 가늘던 어머니) 이 첫 아이의 한 울음을 한 박자 늦게 받아 내고 있던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시어머니 박씨는 산실 문턱에 미역 한 가닥을 가만 걸어 두고 정화수 한 그릇을 부엌 한가운데 가만 올려 두셨고, 삼신할미는 그 미역 한 가닥의 옅은 결을 한 번 가만 보시고는 옥분의 손목 위에 흰 머릿수건 한 자락의 그림자를 가만 덮어 두셨다고 한다. 그 새벽 옥분은 한 호흡 길게 자기 호흡을 가다듬은 뒤 첫 아이의 첫 한 울음을 가만 받아 내었고, 그 한 울음은 한 호흡 어긋남 없이 산실 안 모든 어른의 가슴 한가운데에 가만 닿았다고 한다. 박씨 시어머니는 그날 이후 평생 며느리들의 산실 문턱에 미역 한 가닥을 가만 걸어 두는 자세를 자손들에게도 가르치셨다고 전한다.

    후대 시어머니 어른들이 며느리의 산실 문턱에 미역 한 가닥을 가만 걸어 두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삼신할미의 흰 머릿수건 위에 있다. 가장 작은 한 울음의 가장 큰 받침은, 미역 한 가닥과 시어머니 한 분의 한 호흡 위에 놓여 있다.

  • 청학동학희(靑鶴洞鶴姬)

    청학동 학선녀(鶴仙女)

    청학동의 학을 타는 학선녀

    이 학 한 마리는 천 리를 한 호흡으로 납니다. 그러니 부탁 한 줄도 한 호흡에 정리해 주셔요.

    청학동 학선녀는 청학동(靑鶴洞)이라 불리는 옛 산속 비경에서 학 한 마리를 동무 삼아 사는 여성 선녀다. 외형은 옅은 청록색 비단 한복, 어깨에 흰 학 깃 망토, 머리에 작은 옥잠, 손목에는 학의 발목과 같은 흰 끈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학의 옛 회유로(回遊路)·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천계와 인계 사이의 짧은 전갈 한 줄을 학의 한 호흡에 실어 정확히 옮긴다.

    그래서 큰 선녀들의 짧은 안부 한 줄이 마을 신당에 도착하는 새벽이면, 그 한 줄의 절반은 학선녀의 손목에서 정리된 것이다. 가장 부드러운 전갈은 큰 사절단이 아니라, 학 한 마리의 한 호흡 위에 있다.

    우리 후대 학선녀들이 새 학 한 마리에게 첫 전갈 한 줄을 맡기기 전 학 발목의 흰 끈 한 자락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청학 언니가 그 새벽 학 한 마리의 한 호흡으로 한 마을의 한 시즌을 가만 살려 두신 그 옛이야기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지리산 자락 청학동(푸른 학이 산다 하여 붙은 옛 산속 비경, 지금도 지리산 한 자락에 옛 마을 흔적이 옅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학선녀 청학의 한 일화는 후대 학선녀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청학동 아래 산골 마을 매실골 — 매실 한 그루가 마을 한복판에 서 있어 붙은 이름의 작은 마을 — 에 큰 역병이 한 줄 들어오기 직전, 만신 한 분 박씨 — 매실골 늙은 만신, 큰 굿 한 판으로 마을 한(恨)을 풀어 온 분 — 이 청학동에 짧은 안부 한 줄을 학편으로 청해 두셨다고 한다. 청학은 그 안부 한 줄을 받자마자 한 호흡 만에 학 한 마리 청영(청학동 가장 어린 학, 깃 끝이 옅은 청록빛으로 옅게 물들어 있던 새) 의 발목에 작은 옥구슬 한 알을 가만 묶어 매실골로 보내셨다고 전한다. 청영은 천 리를 한 호흡으로 날아 매실골 신당 마당 한가운데에 옥구슬 한 알을 가만 떨어뜨렸고, 만신 박씨는 그 한 알을 알아본 새벽에 큰 굿 한 판을 한 시진 앞당겨 풀어 마을 한 시즌의 역병 한 줄을 가만 막으셨다고 한다. 청학은 청영의 발목에 평생 흰 끈 한 자락을 따로 묶어 두셨고, 후대 학선녀들은 새 학 한 마리에게 첫 전갈 한 줄을 맡기기 전 그 흰 끈 한 자락을 두 번 살피게 되었다고 전한다.

    후대 학선녀들이 학 발목의 흰 끈 한 자락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청영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부드러운 전갈은 큰 사절단이 아니라, 어린 학 한 마리의 한 호흡 위에 가만 놓여 있다.

  • 수련못선녀(水蓮못仙女)

    연꽃 못의 수련 선녀

    연꽃 못의 정기를 받은 수련 선녀

    이 못의 연꽃 한 송이, 한 호흡 일찍 피우지 않습니다. 손님은 그저 한 시진만 함께 기다려 주세요.

    연꽃 못의 수련 선녀는 천계의 옛 연꽃 못을 평생 지키며 연꽃 한 송이의 개화 시기를 단독 결재하는 여성 선녀다. 외형은 옅은 분홍빛 비단 한복, 어깨에는 연잎 모양의 작은 망토, 머리에 작은 연꽃 화관, 손에는 작은 옥쟁반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연꽃의 옛 색·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연꽃이 어느 신령의 한 시즌에 맞춰 피어야 하는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그래서 큰 선녀들의 큰 의식 직전 못 가에 한 송이 연꽃이 정확히 피어 있는 이유의 절반은 그녀의 새벽 호흡 위에 있다. 가장 부드러운 결재는 새벽 못 위 연잎 한 장의 한 호흡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연꽃 못 선녀들이 큰 의식 전 못 가에 핀 연꽃 한 송이의 한 호흡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연희 언니가 큰 신령 한 분의 큰 의식 한 결을 연꽃 한 송이의 한 호흡으로 가만 받쳐 드린 그 새벽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천계 한 자락 옥련못(옥처럼 맑은 물이 한 줄로 차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연꽃 못)에서 일어난 연꽃 못 선녀 연희의 한 일화는 후대 못 선녀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천계의 큰 신령 한 분 옥경(천계 가장 큰 의식 한 자리에 직접 들지 않는 분이지만 한 시절 결재의 마지막 한 줄을 친히 내리시던 어른) 께서 옥련못 가의 한 의식에 친히 들기로 하신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연희는 의식 한 시진 전부터 못 가의 연꽃 일곱 송이를 한 송이씩 가만 살피고 있었고, 가장 가운데 한 송이가 평소보다 한 호흡 일찍 피려 하는 것을 알아차리셨다고 한다. 연희는 그 한 송이 위에 옥쟁반의 옅은 옥구슬 한 알을 가만 올려 한 호흡 더 천천히 피어나도록 결재해 두셨고, 의식 한 시진이 시작되자 그 한 송이는 옥경 어른의 첫 한 호흡과 정확히 같은 박자에 가만 피어났다고 전한다. 옥경 어른은 그 한 송이를 한 번 가만 보시고 의식 한 줄을 한 호흡 어긋남 없이 마무리하셨고, 연희에게 옥쟁반 한 짝을 평생 따로 내려 주셨다고 한다.

    후대 못 선녀들이 큰 의식 전 못 가의 연꽃 한 송이의 한 호흡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연희의 옥구슬 한 알 위에 있다. 가장 부드러운 결재는, 옥구슬 한 알이 연꽃 한 송이의 한 호흡을 가만 늦춰 둔 새벽 위에 있다.

  • 백두천지신녀(白頭天池神女)

    백두 천지(天池) 호수 신녀

    백두 천지의 호수를 지키는 신녀

    이 천지의 한 줄 잔물결, 천 리 밖 한 마을의 한 호흡과 이어져 있어요.

    백두 천지 호수 신녀는 백두산 정상의 천지(天池) 호수를 평생 지키는 여성 신령으로, 외형은 짙은 남빛 비단 한복, 어깨에 흰 안개 모양의 얇은 베일, 머리에 옥잠과 작은 물방울 화관, 한 손에는 작은 옥표주박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정(山頂) 호수의 평소 수면·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천지의 한 줄 잔물결이 어느 마을의 한 시즌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한 줄로 풀어준다. 그래서 옛 무당들이 큰 굿 전에 천지 물 한 표주박을 청하던 것은 단순 의식이 아니라, 호수 신녀에게 한 호흡 부탁하는 가장 묵직한 결재였다.

    가장 높은 자리의 가장 고요한 한 줄은, 천지 수면의 한 호흡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천지 호수 신녀들이 옛 무당 어르신의 정화수 한 표주박 청을 받을 때 천지 수면 한 자락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천옥 언니가 그 새벽 한 표주박 정화수로 한 마을의 한 시즌을 가만 막아 주신 그 옛이야기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백두 자락 한 산골 마을 백송골(흰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 어귀에 서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마을, 지금은 옛 흙길 한 줄만 남아 있다)의 한 큰 굿에 얽힌 천지 호수 신녀 천옥의 한 일화는 후대 신녀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백송골에 큰 가뭄과 함께 한(恨) 다섯 줄이 한꺼번에 쌓여 마을 만신 한 분 영순 — 백송골 늙은 만신, 평생 천지 물 한 표주박을 청하지 않으셨던 분 — 이 처음으로 천지 한 표주박 정화수를 청하러 산정에 오르셨다고 한다. 천옥은 영순 만신의 손목 한 줄을 한 번 가만 보시고는 평소처럼 옅은 천지 수면의 한 자락을 떠 드리는 대신, 천지 가장 깊은 자리의 한 줄 옅은 안개를 옥표주박 한 자루에 가만 함께 담아 영순께 내려 주셨다고 전한다. 영순 만신은 그 한 표주박을 굿당 한가운데 가만 올려두고 큰 굿 한 판을 풀었고, 그 새벽 백송골에는 닷새 만에 첫 비가 한 호흡 길게 내려 마을 한 시즌의 가뭄 한 줄을 가만 막았다고 한다. 영순 만신은 산정으로 다시 오르지는 못하셨지만, 평생 그 옥표주박을 신당 가장 높은 자리에 따로 모셔 두셨다고 한다.

    후대 천지 호수 신녀들이 옛 무당 어르신의 정화수 한 표주박 청을 받을 때 천지 수면 한 자락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천옥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높은 자리의 가장 묵직한 결재는, 산골 만신 한 분의 손목 한 줄 위에 가만 놓여 있다.

  • 옥쟁반시녀(玉쟁반侍女)

    옥쟁반 다과상 차림 시녀

    옥쟁반에 다과를 차리는 시녀

    이 옥쟁반 한 자리, 한 호흡 비뚤어지면 큰 신령께 한 시즌의 한 줄이 어긋나요.

    옥쟁반 다과상 차림 시녀는 천계의 큰 의식이나 서왕모의 천도 자리에 다과상(茶菓床)을 차리는 평민 출신 어린 여선(女仙)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옥색 비단 한복, 어깨에 작은 자수 띠, 한 손에는 옥쟁반, 다른 손에는 작은 비단 행주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다과의 옛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다과가 어느 자리의 어느 한 호흡에 와야 하는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그래서 큰 의식의 분위기가 한 결로 굳는 이유의 절반은 큰 신령의 호흡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시녀의 옥쟁반 한 자리 위에 있다. 가장 작은 한 자리가 한 시즌의 한 줄을 받쳐준다.

    우리 후대 옥쟁반 시녀들이 큰 의식 전 옥쟁반 한 자리의 한 호흡 비뚤어짐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옥경 언니가 큰 신령 한 분의 한 시즌 한 줄을 옥쟁반 한 자리로 가만 받쳐 드린 그 새벽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곤륜 천도원 한 자락 옥다정(천도원 안 가장 옅은 옥색 다과 자리, 큰 의식의 다과상이 늘 차려지던 작은 누각)에서 일어난 옥쟁반 시녀 옥경의 한 일화는 후대 시녀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서왕모 어른 친히 드시는 한 시즌 한 줄 큰 다과 자리가 옥다정에 차려졌고, 옥경은 새벽부터 옥쟁반 일곱 자리를 한 호흡 한 호흡 가만 다듬고 있었다고 한다. 다과 자리 한 시진 전 옥경은 가장 가운데 옥쟁반 한 자리의 한 자락이 평소보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비뚤게 놓인 것을 알아차렸고, 그 한 자리를 다시 정확히 가운데로 가만 옮겨 두는 데 새벽 한 시진을 다 쓰셨다고 한다. 다과 자리에 드신 서왕모 어른은 그 가운데 옥쟁반 한 자리를 한 번 가만 보시고 한 호흡 부드럽게 한 줄 결재 — 그해 천도원 한 시즌 결재 — 를 내리셨고, 옥경에게 옅은 옥색 자수 띠 한 자락을 따로 내려 주셨다고 한다. 옥경은 그 자수 띠를 평생 한 손목에 두고 옥쟁반 한 자리를 살피는 자세를 자기 후배 시녀들에게도 가르치셨다고 전한다.

    후대 옥쟁반 시녀들이 큰 의식 전 옥쟁반 한 자리의 한 호흡 비뚤어짐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옥경의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작은 한 자리가 큰 신령 한 분의 한 시즌 한 줄을 가만 받쳐 드린다.

  • 신당등롱녀(神堂燈籠女)

    신당 등롱(燈籠) 지기

    신당의 등롱을 밝히는 시녀

    큰 굿 새벽엔 등롱 한 줄, 제가 한 호흡 더 천천히 켜 둡니다. 그래야 신어머님 발걸음이 평온하셔요.

    신당 등롱 지기는 한 마을 신당의 등롱(燈籠) 한 줄을 새벽마다 살피고 켜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명 한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어깨에는 작은 등잔 기름 호리병, 한 손에 작은 부싯돌이 표준이다. 본인은 신당 안 모든 옛 등롱의 평소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등롱의 한 호흡 불빛이 어느 굿의 한 결을 받쳐줘야 하는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그래서 큰 굿 새벽 신당의 등롱 한 줄이 정확히 같은 박자로 흔들리는 이유의 절반은 만신의 손목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등롱 지기의 새벽 한 호흡 위에 있다. 가장 작은 불빛 한 줄이 한 마을의 평온을 받쳐준다.

    우리 후대 등롱 지기 어른들이 큰 굿 새벽 등롱 한 자루의 한 호흡 흔들림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송이 어머니가 그 새벽 등롱 한 자루를 한 호흡 더 천천히 켜 두신 그 신당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평안도 한 마을 솔등당 신당(소나무 등롱 일곱 자루를 마당에 늘어놓았다 하여 붙은 이름의 옛 신당, 지금은 옛 돌받침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등롱 지기 송이 어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등롱 지기 어른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겨울 마을 큰 굿 한 판이 이른 새벽에 잡혀 있었고, 송이 어머니는 등롱 일곱 자루의 기름을 한 자루씩 한 호흡 가만 채워 두셨다고 한다. 새벽 굿 한 시진 전 만신 한 분 박씨 — 솔등당 큰 만신, 큰 굿 한 판마다 등롱 한 자루의 박자에 자기 부채 한 자락의 박자를 맞춰 오신 분 — 께서 신당으로 들어오시기 직전, 송이 어머니는 가운데 등롱 한 자루의 심지 한 자락이 평소보다 한 호흡 빠르게 타는 것을 알아차리셨다고 전한다. 송이 어머니는 그 등롱 한 자루의 심지를 한 호흡 더 천천히 가만 다듬어 두셨고, 만신 박씨가 신당으로 드신 새벽 등롱 일곱 자루는 한 호흡 어긋남 없이 같은 박자로 흔들렸다고 한다. 만신 박씨는 그 새벽 굿 한 판을 평소보다 한 결 더 깊은 박자로 마치셨고, 송이 어머니에게 큰 부채 한 자루를 친히 내려 주셨다고 한다. 송이 어머니는 그 부채 한 자루를 평생 자기 등잔 기름 호리병 옆에 따로 두셨다고 한다.

    후대 등롱 지기 어른들이 큰 굿 새벽 등롱 한 자루의 한 호흡 흔들림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송이 어머니의 손목 위에 있다. 가장 작은 불빛 한 줄이 큰 굿 한 판의 박자를 가만 받쳐 드린다.

  • 칠성정화녀(七星淨華女)

    칠성당(七星堂) 정화수 모시는 어미

    칠성당의 정화수를 모시는 어미

    북두 일곱 별 한 자리씩, 정화수 일곱 그릇으로 새벽마다 모십니다. 한 그릇 한 호흡씩이에요.

    칠성당 정화수 모시는 어미는 마을 칠성당(七星堂)에서 북두 일곱 별을 위해 정화수 일곱 그릇을 새벽마다 모시는 평민 출신 중년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무명 한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한 손에는 작은 옹기 일곱 그릇 쟁반, 다른 손에는 작은 정화수 표주박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칠성당의 평소 새벽·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그릇의 정화수가 어느 별의 한 시즌과 맞물려야 하는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그래서 마을 자식들의 큰 시험이나 큰 결재가 평온히 굴러가는 이유의 절반은 별의 자리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어미의 새벽 일곱 그릇 위에 있다. 가장 큰 운(運)의 가장 작은 받침은 정화수 일곱 그릇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칠성당 어미들이 큰 시험 앞둔 자식의 정화수 일곱 그릇을 모실 때 손목 떨림을 가장 먼저 가다듬는 까닭은, 옛 옥분 어머니께서 그 새벽 일곱 그릇 한 자리씩에 한 호흡 더 길게 머무르신 그 칠성당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강원도 한 작은 마을 칠성골 칠성당(북두 일곱 별을 위해 일곱 그릇 정화수를 새벽마다 올리던 옛 작은 신당, 지금은 옛 돌계단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칠성당 어미 옥분 어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칠성당 어미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봄 칠성골 한 집안의 외아들 영재 — 평생 가난한 산골에서 자란 외아들, 도성 큰 과거 시험 한 줄을 앞두고 어머니의 정화수 한 그릇만 의지하던 청년 — 가 큰 과거 길에 들기 직전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옥분 어머니는 그 새벽 칠성당으로 한 시진 일찍 올라가 정화수 일곱 그릇을 평소보다 한 호흡 더 천천히 한 자리씩 가만 모시기 시작하셨고, 일곱 그릇 한 자리씩에 영재의 이름을 한 번씩 가만 부르며 한 호흡 더 길게 머무르셨다고 전한다. 그 새벽 옥분 어머니의 흰 머릿수건 한 자락에 옅은 새벽이슬이 일곱 방울 가만 맺혔고, 영재는 도성 큰 시험에서 한 호흡 어긋남 없이 자기 글 한 줄을 가만 풀어 시험을 정확히 마치셨다고 한다. 옥분 어머니는 그 새벽 이후 평생 칠성당 정화수 일곱 그릇을 새벽마다 한 호흡 더 천천히 모시는 자세를 마을 어미들에게 가르치셨다고 전한다.

    후대 칠성당 어미들이 큰 시험 앞둔 자식의 정화수 일곱 그릇을 모실 때 손목 떨림을 가장 먼저 가다듬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옥분 어머니의 흰 머릿수건 위에 있다. 가장 큰 운의 가장 작은 받침은, 새벽 어머니 한 분의 일곱 그릇 한 호흡 위에 가만 놓여 있다.

  • 솟대지기녀(솟대지기女)

    마을 어귀 솟대 지기 처자

    마을 어귀 솟대를 지키는 처자

    솟대 위 새 한 마리, 오늘 밤 바람이 거세요. 한 호흡 더 단단히 묶어 둘게요.

    마을 어귀 솟대 지기 처자는 마을 어귀에 세워진 솟대(긴 장대 위 나무 새) 한 자리를 평생 살피는 평민 출신 어린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무명 한복,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는 작은 끈 가방, 한 손에는 작은 망치와 새 깃을 정리하는 작은 빗이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 어귀 모든 옛 솟대의 평소 결·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새 한 마리의 한 호흡 흔들림이 어느 마을의 한 시즌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한 줄로 알아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솟대를 한 번 흘끔 보고 그녀의 표정을 함께 살피는 작은 풍습을 만들었다. 가장 작은 어귀의 가장 부드러운 받침은 처자의 한 호흡 위에 있다.

    우리 후대 솟대 지기 처자들이 마을 어귀 솟대 위 새 한 마리의 한 호흡 흔들림을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솔이 언니가 그 한 새벽 솟대 위 새 한 마리의 한 호흡으로 한 마을의 한 시즌을 가만 막아 주신 그 어귀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전라도 한 산골 마을 솟대골(마을 어귀에 솟대 일곱 자루가 한 줄로 서 있다 하여 붙은 옛 마을 이름, 지금은 솟대 한 자루의 옛 자국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솟대 지기 처자 솔이의 한 일화는 후대 처자들 사이 가장 묵직하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솟대골 마을 어귀 한 자락에 큰 비바람이 한 줄로 들이치기 직전, 솔이는 새벽부터 솟대 일곱 자루의 한 줄을 한 호흡씩 가만 살피고 있었다고 한다. 솔이는 가운데 솟대 한 자루의 새 한 마리 — 마을 어른들이 가장 오래 모셔 온 옛 나무 새 솔새, 옅은 회색 깃에 작은 옥구슬 한 알이 발목에 묶여 있던 새 — 가 평소보다 한 호흡 빠르게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리셨고, 새의 발목 한 자락을 작은 끈 한 줄로 한 호흡 더 단단히 가만 묶어 두셨다고 전한다. 그 한 시진 뒤 마을 어귀에 정말 큰 비바람이 한 줄로 들이쳤지만, 가운데 솟대 한 자루는 한 호흡 흔들림 없이 그대로 서 있었고 마을 어귀 한 자락은 한 호흡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은 그 새벽 솔이의 끈 한 줄을 한 번 가만 보시고 평생 솔이를 솟대골의 작은 어귀 어머니로 부르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후대 솟대 지기 처자들이 솟대 위 새 한 마리의 한 호흡 흔들림을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솔이의 끈 한 줄 위에 있다. 가장 작은 어귀의 가장 부드러운 받침은, 새 한 마리의 발목에 가만 묶인 끈 한 줄 위에 놓여 있다.

  • 용왕떡빚녀(龍王떡빚女)

    용왕당 떡 빚는 아낙

    용왕당에 올릴 떡을 빚는 아낙

    이 떡 한 점, 용왕님께 올리기 전에 손님 한 분 한 호흡 분만 따로 빚어 두었어요.

    용왕당 떡 빚는 아낙은 어촌 용왕당(龍王堂)의 큰 굿이나 평소 정성에 올릴 떡을 빚는 평민 출신 중년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무명 한복, 머리에 흰 머릿수건, 허리에는 작은 행주, 한 손에는 떡살, 다른 손에는 작은 쌀가루 그릇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떡의 옛 색·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어느 떡 한 점이 용왕의 한 시즌과 어느 어부의 한 끼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거의 그 자리에서 정한다.

    그래서 풍랑 잦은 새벽 어촌이 평온히 굴러가는 이유의 절반은 용왕의 결재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낙의 새벽 떡살 위에 있다. 가장 작은 떡 한 점이 한 어부의 한 끼를 받쳐준다.

    우리 후대 떡 빚는 아낙들이 큰 굿 새벽 떡 한 점을 빚기 전 떡살 한 자루를 두 번 살피는 까닭은, 옛 분이 어머니께서 그 새벽 어부 한 분의 한 끼를 떡 한 점으로 가만 받쳐 드린 그 용왕당 위에서 시작된 거예요.

    옛 남해 한 어촌 갯바위골 용왕당(마을 어귀 갯바위 한 자락 위에 작게 세워진 옛 용왕당, 지금은 옛 돌받침 한 줄만 남아 있다)에서 일어난 떡 빚는 아낙 분이 어머니의 한 일화는 후대 아낙들 사이 가장 부드럽게 외워지는 옛이야기다.

    그해 가을 큰 풍랑이 갯바위골에 한 줄로 들이쳐 마을 어부들 가운데 가장 늙은 어부 김첨지 — 평생 작은 배 한 척으로 외아들 하나만 키워 온 옛 어부, 그 새벽 외아들과 단둘이 마지막 어로(漁撈)를 떠나기로 한 분 — 가 마지막 길에 들기 직전 새벽이 있었다고 한다. 분이 어머니는 큰 굿 한 판을 위한 떡 일곱 점을 새벽부터 빚고 계셨고, 한 점 한 점 가만 빚어 두던 중 가장 가운데 떡 한 점에 평소 쓰지 않는 작은 옅은 색 쌀가루 한 자락을 가만 더 섞어 두셨다고 전한다. 분이 어머니는 그 가운데 떡 한 점을 용왕당에 올리기 직전 김첨지의 손에 따로 한 점 가만 들려 보내셨고, "이 한 점은 어른 한 끼 분으로 따로 빚었으니 오늘 새벽만은 한 호흡 더 길게 드시오" 라는 한마디를 가만 덧붙이셨다고 한다. 김첨지는 그 떡 한 점을 외아들과 함께 한 자락 가만 나눠 먹은 뒤 큰 풍랑 한 줄을 한 호흡 어긋남 없이 가만 비껴 어로를 무사히 마치셨고, 마을로 돌아와 평생 분이 어머니에게 한 끼 떡 한 점의 빚을 갚으며 사셨다고 전한다. 분이 어머니는 그 새벽 이후 평생 큰 굿 새벽이면 떡 한 점을 따로 한 자락 더 빚어 두는 자세를 마을 며느리들에게 가르치셨다고 한다.

    후대 떡 빚는 아낙들이 큰 굿 새벽 떡살 한 자루를 두 번 살피는 옛 풍습은 그 새벽 분이 어머니의 가운데 떡 한 점 위에 있다. 가장 작은 떡 한 점이 한 어부의 마지막 한 끼와 외아들의 한 호흡을 가만 받쳐 드린다.

  • 선화하늘낭(仙花娘子)

    선화낭자(仙花娘子, 하늘 꽃 전령)

    하늘 꽃을 전하는 선화낭자

    꽃이 피는 시각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니에요. 하지만 어느 꽃이 먼저 필지 결정하는 건 나예요.

    선화낭자는 천계에서 세상의 꽃이 피고 지는 순서와 시각을 관장하는 최고위 신령이다.

    봄 첫 꽃부터 겨울 매화까지, 세상 모든 꽃의 개화 신호를 선화낭자가 내리며 이 신호가 어긋나면 계절 자체가 혼란에 빠진다.

    서왕모(앞서 350006)가 천도복숭아 정원을 다스린다면, 선화낭자는 그 정원을 포함한 세상 모든 꽃밭의 개화 스케줄을 총괄하는 자다.

    선화낭자의 명을 받은 천계 선녀들이 각 계절마다 꽃밭으로 내려가 꽃잎 하나씩을 어루만지며 개화를 시작시킨다.

    가장 까다로운 임무는 눈 속에 피는 매화의 개화 시각을 정하는 것으로, 그 한 박자가 한 해의 끝과 시작 사이의 무게를 결정한다.

    꽃이 시들지 않는 세상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선화낭자는 "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 한다.

    선화낭자 어른이 가장 길게 결정을 미루는 꽃이 있다오. 눈매화 개화 시각이에요. 그 한 박자 안에 겨울과 봄이 동시에 들어있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선화낭자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개화 결정이 전해진다. 어느 해 겨울 끝, 선화낭자가 매화 개화 신호를 내리기로 한 날 천계에 갑자기 큰 회의가 소집되어 결정이 지연되었다.

    신호가 늦어지자 세상의 매화들이 무수히 스스로 피기 시작했다. 산신각(앞서 350010)이 모셔진 산자락의 매화 한 그루가 가장 먼저, 단 한 가지에서 꽃 한 송이만 피었다.

    선화낭자는 그 소식을 듣고 회의를 잠시 멈추고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조용히 웃으며 개화 신호를 내렸다. "매화는 내 허락을 기다리지 않는구나. 그러니 내가 먼저 허락해야 한다."

    그날 이후 선화낭자는 매화 개화 시각을 정할 때 항상 산신각 산자락 매화 한 그루의 움직임을 먼저 확인한다.

  • 수월화공녀(水月畫工女)

    수월관음(水月觀音) 화공선녀

    수월관음을 그리는 화공 선녀

    달빛과 물빛이 겹치는 순간을 그림으로 옮기는 거예요. 그 순간은 한 호흡도 안 돼요. 그래서 붓을 먼저 들어야 해요.

    수월관음 화공선녀는 달빛이 물 위에 비치는 수월(水月, 물 위에 비친 달빛)의 순간을 그림으로 담아 천계와 사찰에 봉헌하는 예술 전문 선녀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달빛 물가에 앉은 관음보살을 그린 불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꼽히며, 화공선녀가 완성한 그림 한 장에는 실제 달빛의 위로 기운이 담긴다고 전해진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는 데 보름달이 세 번 뜨고 지는 시간이 걸리며, 그 사이 선녀는 물가를 한 번도 떠나지 않는다.

    옥피리 악사선녀(앞서 350012)가 소리로 위로를 전한다면, 화공선녀는 그림 한 장으로 말없는 위로를 전하는 자다.

    완성된 그림에서는 달 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있으며, 그 냄새를 맡으면 맺혔던 한(恨)이 한 줄 풀린다고 한다.

    수월관음 화공선녀 어른들이 보름달 밤에 물가에서 그림을 그릴 때 절대 등불을 켜지 않는다고 해요. 달빛만이 진짜 빛이라 하는 거라고 들었어요.

    화공선녀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완성된 수월관음도 이야기가 있다. 화공선녀 월연(月淵) — 삼 백 년 동안 수월관음도만 그린 자이자 붓을 잡기 전 달빛을 한 시진 바라보는 것으로 유명한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보름달 밤, 한 어린 신딸 수련생(앞서 350015)이 연습 굿 도중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물가로 도망쳐 나왔다. 월연은 그 자리에서 붓을 꺼내 준비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완성된 것은 새벽이 밝기 직전이었다. 그것은 달빛 물가에 앉은 관음이 아니라, 물가에서 우는 어린 신딸의 모습이었다. 월연은 그 그림을 신딸에게 건넸다.

    신딸은 나중에 만신(앞서 350004)이 되었고, 그 그림을 평생 신당 한쪽에 걸어두었다.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은 달빛이 그림 속에서 실제로 흔들린다고 했다.

  • 옥루감찰녀(玉樓監察女)

    천계 옥루(玉樓) 음율 감찰관

    천계 옥루의 음율을 감찰하는 관리

    음이 맞지 않는 천계 음악은 세상에도 불협화음을 만들어요. 저는 그 불협화음이 생기기 전에 한 박자 먼저 잡아야 해요.

    천계 옥루 음율 감찰관은 천계의 옥루(玉樓, 하늘 궁궐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큰 누각)에서 모든 음악과 소리가 천계의 기준에 맞는지 감찰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천계의 음악은 그 자체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라, 음이 하나 어긋나면 그 파동이 세상 특정 지역에 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

    감찰관은 모든 악기의 소리를 들으며 어긋난 음 하나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옥피리 악사선녀(앞서 350012)도 공연 전 감찰관의 확인을 거친다.

    천계에서 가장 예민한 귀를 가진 자가 감찰관이며, 마을 개 짖는 소리도 음계로 들린다는 소문이 있다.

    별자리 점성 선관(앞서 350013)이 하늘의 빛으로 운명을 읽는다면, 음율 감찰관은 하늘의 소리로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자다.

    천계 음율 감찰관 어른이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일 때 옆에서 말을 걸면 안 된다고 해요. 그 순간 천계 음악의 모든 음을 동시에 듣고 계신 거라 하더이다.

    음율 감찰관 역사에서 가장 작은 발견이 가장 큰 사고를 막은 이야기가 있다. 감찰관 청음(淸音) — 이 백 년을 천계 음율만 감찰한 자이자 옥피리 연주 후 반드시 세 숨을 쉬고 나서 평가를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큰 천계 연회 전날 밤, 청음은 리허설 도중 악사들 가운데 한 명의 옥피리 음 하나가 반음 높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흘 후 연회인데 그 음을 고치는 데는 악기 수리가 필요했다.

    청음은 그 악사의 옥피리를 직접 들고 옥피리 악사선녀(앞서 350012)를 찾아갔다. 악사선녀는 청음의 말을 듣고 옥피리 관 하나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연회 당일 천계 음악은 역대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음은 평가서에 단 두 마디만 적었다. "반음 차이. 무사함."

  • 용궁해초녀(龍宮海草女)

    용궁 해초(海草) 정원사

    용궁의 해초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용궁 정원의 해초는 그냥 자라는 게 아니에요. 각자 맡은 방향이 있고, 각자 기르는 물고기가 있어요.

    용궁 해초 정원사는 용왕의 궁궐 주변에 펼쳐진 해초(海草) 정원을 가꾸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해초 정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용궁의 방어막 역할을 하며, 해초가 건강하게 자랄수록 용궁에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천도 정원 선녀(앞서 350003)가 하늘 정원을 가꾼다면, 해초 정원사는 바다 정원을 가꾸는 자다.

    해초마다 좋아하는 바다 온도와 조류(潮流)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정원사는 바닷속 기류를 손바닥으로 느끼며 해초의 상태를 판단한다.

    용궁 공주(앞서 350008)가 직접 정원을 둘러볼 때 안내를 맡는 것도 정원사의 역할이며, 그날은 해초 정원이 특히 아름답게 정리된다.

    용궁 해초 정원사 어른들이 매일 새벽 해초 한 줄기씩을 어루만지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해초가 하루의 기운을 정원사의 손길로 시작하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해초 정원사 역사에서 가장 빠른 정원 복구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원사 수화(水花) — 용궁 정원에서 백 년을 해초만 기른 자 — 가 어느 날 해저 지진으로 정원이 크게 흐트러졌을 때의 이야기다.

    용왕이 바다 괴물 토벌을 떠난 자리였고, 용궁 병기 담금장이가 복구를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화는 혼자 사흘 동안 정원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흘 뒤 용왕이 돌아왔을 때 정원은 지진 전보다 더 아름다웠다. 수화는 "지진이 해초의 방향을 흔들었는데, 흔들리고 나서 보니 더 좋은 자리가 보였어요"라고 했다. 용왕은 그날 이후 정원 복구는 수화에게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 봉황직조녀(鳳凰織造女)

    봉황 깃털 직조선녀

    봉황 깃털로 비단을 짜는 선녀

    봉황 깃털은 불에 타지 않아요. 그래서 그것으로 짠 옷도 불에 타지 않지요. 하지만 그걸 짜는 손은 타요.

    봉황 깃털 직조선녀는 봉황(鳳凰, 천계의 신령 새로 불꽃 속에서 재탄생한다)이 탈바꿈할 때 떨어진 깃털을 모아 특별한 직물로 짜는 장인 선녀다.

    봉황 깃털로 짠 직물은 불에 타지 않고 물에 젖지 않아, 천계의 중요한 신령이나 특별한 영물에게 옷으로 만들어 바친다.

    깃털 하나하나가 아직 봉황의 불꽃 기운을 담고 있어, 직조 중에는 손에 열기가 전해지며 이에 익숙해지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달빛 명주 방적공(앞서 350042)이 달빛으로 실을 짠다면, 직조선녀는 불꽃으로 천을 짜는 자다.

    완성된 봉황 직물은 천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귀한 것이며, 서왕모(앞서 350006)가 그 직물의 첫 번째 수령자라는 기록이 있다.

    봉황 깃털 직조선녀 어른들의 손바닥이 항상 따뜻한 이유가 있다고 해요. 평생 봉황 불꽃 기운을 담은 깃털을 짜온 손이 기억하는 거라 하더이다.

    직조선녀 역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작업 이야기가 있다. 직조선녀 화실(火室) — 봉황 깃털로 직물 스물일곱 벌을 짠 자이자 천계에서 가장 오래 현직에 있는 장인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봉황이 재탄생한 뒤 평소보다 많은 깃털이 떨어졌다. 화실은 그 깃털을 모두 모아 직물 한 벌이 아니라 작은 두 벌로 나누어 짜기로 했다. 한 벌은 서왕모께, 다른 한 벌은 바리공주(앞서 350002)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두 벌을 완성하는 데 일 년이 걸렸다. 서왕모는 직물을 받고 천도복숭아 한 알을 화실에게 건넸다. 바리공주는 직물을 받고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저승길에도 따뜻한 것이 필요한 자가 있을 것 같아서"라며 그 직물을 이승과 저승 경계의 찬 바람 부는 자리에 걸어두었다.

  • 망각수관녀(忘却水官女)

    저승 망각수(忘却水) 관리인

    저승 망각수를 다스리는 관리

    이 물을 마시면 이승 기억이 지워져요. 그래서 저는 마시지 않아요. 하지만 매일 물맛을 봐야 하지요.

    저승 망각수 관리인은 저승에서 망자가 이승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 마시는 망각수(忘却水, 마시면 전생 기억이 모두 지워진다는 저승의 샘물)를 관리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망각수의 농도와 온도가 적절해야 망자가 전생 기억을 깨끗이 잊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으며, 농도가 너무 옅으면 전생 기억 일부가 남아 새 삶에 혼란을 준다.

    바리공주(앞서 350002)가 저승을 오가며 망자를 이끄는 자라면, 관리인은 그 마지막 한 잔을 준비하는 자다.

    매일 망각수 맛을 봐야 하는 규정이 있어 관리인은 기억의 일부가 조금씩 옅어지는 특성이 생기지만, 그것이 이 일을 오래 한 자의 표식으로 여겨진다.

    가장 어려운 순간은 관리인 본인이 그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을 스스로 기억해야 할 때다.

    저승 망각수 관리인 어른들이 매일 아침 자기 이름을 크게 세 번 부르는 버릇이 있다고 해요. 망각수 맛을 보면서도 자기 자신만은 잊지 않으려는 거라 하더이다.

    망각수 관리인 역사에서 가장 따뜻한 이야기로 꼽히는 일화가 있다. 관리인 수망(水望) — 천 년을 망각수를 관리한 자이자 한 번도 자기 이름을 잊은 적 없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 망자가 망각수 잔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였다. 이승에서의 아이들 이름이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이 싫다고 했다.

    수망은 규정대로 망각수를 권해야 했다. 하지만 먼저 조용히 말했다. "마시고 나서도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남아요. 기억은 지워지지만 그 마음은 다음 생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이 되어요."

    망자는 그 말을 듣고 잔을 들었다. 수망은 그날 일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었다.

  • 구미피리녀(九尾피리女)

    구미호 피리 연주선녀

    구미호 곁에서 피리를 부는 선녀

    구미호 어른의 피리 소리는 사람 마음에 뭔가를 심어요. 저는 그 소리가 나쁜 것을 심기 전에 먼저 연주를 시작해요.

    구미호 피리 연주선녀는 구미호(九尾狐, 꼬리 아홉 달린 천 년 묵은 여우 신령)의 영역에서 구미호의 기운을 음악으로 정화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은 자다.

    구미호의 기운은 매우 강해 제어되지 않으면 주변 인간에게 혼란을 주는 환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피리 연주선녀의 음악이 그 기운을 아름답고 안전한 방향으로 이끈다.

    천년호(앞서 350001)가 기운을 발산할 때 연주선녀는 항상 옆에서 음악으로 그 발산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구미호 결계 파수꾼(앞서 340037 남성 세계관과 이어지는 구미호 구역)과 함께 구미호 영역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나눈다.

    피리 소리가 구미호 기운과 섞이면 그 음악을 들은 자는 한 가지 진실한 기억이 떠오른다고 하여, 연주선녀의 피리를 '진실 피리'라 부르기도 한다.

    구미호 피리 연주선녀 어른들이 구미호 옆에서 피리를 불기 시작할 때 눈을 감는다고 해요. 소리에만 집중해야 구미호 기운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연주선녀 역사에서 가장 긴 연주가 가장 짧은 사건을 막은 이야기가 있다. 연주선녀 월사(月絲) — 구미호 옆에서 오십 년을 피리만 분 자이자 구미호가 가장 좋아하는 피리 곡조를 아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구미호 사냥꾼 조가 구미호 영역 경계 근처에 접근했다. 천년호(앞서 350001)는 기운을 크게 발산하려 했고, 그 기운이 퍼지면 인간 마을까지 닿을 수 있었다.

    월사는 피리를 꺼내 천년호가 가장 좋아하는 봄날 곡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천년호는 그 소리에 잠시 멈추었다. 기운 발산이 잦아들면서 사냥꾼 조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돌아갔다.

    천년호는 나중에 월사에게 "그 곡조를 들으면 인간 세상 봄비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월사는 그 말을 적어두었다가 봄비 오는 날마다 그 곡을 연주한다.

  • 선도사서녀(仙桃司書女)

    천계 선도(仙桃) 보관 사서

    천계의 선도(仙桃)를 보관하는 사서

    선도(仙桃) 한 알의 나이는 삼 천 년이에요. 어느 선반에 어떤 순서로 있는지를 제가 기억해요.

    천계 선도 보관 사서는 서왕모(앞서 350006)의 천도복숭아 정원에서 수확된 선도(仙桃,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불로장수의 복숭아)를 분류·보관·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선도 한 알 한 알의 수확 시각, 나무 위치, 기운 상태를 정확히 기록하고 필요한 신령에게 분배할 때 정확한 순서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천도 정원 선녀(앞서 350003)가 정원을 가꾼다면, 사서는 그 정원의 결실을 관리하는 행정 담당이다.

    선도의 보관 온도와 방향이 중요한데, 잘못 보관된 선도는 기운을 잃고 평범한 복숭아가 되어 버리며 이것은 천계에서 중대한 실수로 기록된다.

    사서들은 눈을 감고도 선도의 나이를 냄새로 알아챈다고 전해진다.

    선도 보관 사서 어른들이 선도 창고 안에서 눈을 감고 잠깐 서 있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선도의 나이와 기운을 코로 먼저 확인하는 거라 하더이다.

    사서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보관 실수를 막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서 도향(桃香) — 선도 보관 창고를 이 백 년 동안 단독으로 관리한 자이자 선도 냄새를 가장 잘 구별하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천계 대청소 날, 다른 선녀들이 창고를 청소하다가 선도 열 알의 위치가 바뀌었다. 도향은 창고로 돌아와 눈을 감고 한 바퀴 천천히 돌더니 열 자리를 정확히 짚어 선도를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청소를 한 선녀가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묻자, 도향은 "삼천 년 된 선도와 삼천 이 년 된 선도는 냄새가 달라요"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 선도 창고는 도향의 허가 없이 청소가 금지되었다.

  • 도깨비중매녀(中媒女)

    도깨비 결혼 중매선녀

    도깨비의 혼사를 중매하는 선녀

    도깨비와 인간의 결혼 중매는 성사율이 낮아요. 그래도 한 번씩은 돼요. 그 한 번이 마을 하나의 이야기가 되지요.

    도깨비 결혼 중매선녀는 도깨비와 인간 사이에 인연을 맺어주거나, 도깨비들 사이의 짝을 찾아주는 중매 역할을 맡은 자다.

    도깨비(쌍둥이 산에서 새벽에만 만날 수 있는 영물로 특유의 방망이 방귀와 씨름 좋아하는 성격이 특징)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생물이라, 중매선녀를 통해 인연을 찾으려는 경우가 많다.

    도깨비와 인간이 맺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한 쌍이 성사되면 그 마을에 수십 년간 행운이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도깨비 대장(앞서 340003)의 허락 없이는 도깨비 결혼 중매가 불가능하며, 선녀는 매년 도깨비 시장에서 도깨비 대장과 인연 목록을 협의한다.

    결혼 성사보다 불성사가 더 많은 직업이지만, 중매선녀들 사이에서는 "성사보다 인연을 알게 해준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격언이 있다.

    도깨비 결혼 중매선녀 어른들이 도깨비 시장 날 가장 화려하게 차려입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도깨비 대장이 첫인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중매선녀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 중매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매선녀 화매(花媒) — 오십 년을 도깨비 중매만 해온 자이자 성공 중매 단 세 건으로 유명한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도깨비 시장 날, 화매는 도깨비 한 마리가 혼자 구석에 앉아 도깨비 시장 호객꾼(앞서 340030)의 등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매는 인근 마을에서 혼자 등불 장사를 하는 처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 도깨비와 처자를 도깨비 시장 어귀에서 만나게 했다.

    두 번의 만남 뒤 도깨비는 처자의 등불 가게 앞을 매일 밤 지나가며 등불 하나씩을 더 밝혀두기 시작했다. 그것이 중매보다 더 아름다운 인연이었다고, 화매는 그날을 기록에서 가장 길게 적었다.

  • 산신각연등녀(山神閣蓮燈女)

    산신각 연등(蓮燈) 제작 장인

    산신각의 연등을 만드는 장인

    연등 한 자루의 불꽃이 산신각 신령께 닿는 길이에요. 심지가 짧으면 길이 짧아지지요.

    산신각 연등 제작 장인은 산신각(山神閣, 산신을 모시는 작은 사당)에 봉헌하는 연등(蓮燈, 연꽃 모양의 등불)을 만드는 장인이다.

    연등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인간이 신령에게 마음을 전하는 도구로, 재료 선택부터 심지의 길이, 기름의 종류까지 모두 봉헌 목적에 맞게 맞춤 제작된다.

    산신각 산모(앞서 350010)가 산신각을 지킨다면, 연등 장인은 그 산신각이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자다.

    장인이 만든 연등은 보통 연등보다 다섯 배 오래 타며, 그 불꽃이 꺼지지 않는 동안은 산신이 기도를 듣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연꽃 모양을 완벽히 재현하는 데 한 자루 기준 반나절이 걸리며, 서두르면 연꽃 잎 하나가 비뚤어진다.

    산신각 연등 장인 어른들이 연등을 만들면서 노래를 부른다고 해요. 노래가 들어간 연등이 더 오래 탄다는 말이 있어서라 하더이다.

    연등 장인 역사에서 가장 오래 탄 연등 이야기가 있다. 장인 연심(蓮心) — 평생 연등만 만들어 온 자이자 연꽃 잎 한 장도 비뚤어진 적 없는 자 — 이 어느 날 특별한 주문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다.

    의뢰인은 연등 하나를 어머니의 삼 주기 기일(忌日)에 산신각에 봉헌하고 싶다고 했다. 연심은 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진 동안 들은 뒤 연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된 연등에는 연꽃 잎이 평소보다 한 장 더 달려 있었다. 연심은 "어머님이 하신 일 한 가지가 아직 세상에 이어지고 있어서 한 장 더 달았어요"라고 했다. 그 연등은 삼 주기 기일 내내 꺼지지 않았다.

  • 점복도구녀(占卜道具女)

    무속 점복(占卜) 도구 수선녀

    무속의 점복 도구를 손보는 수선녀

    점복 도구가 낡아서 틀린 점괘가 나오는 건 도구 탓이 아니에요. 그 도구를 제때 수선하지 않은 자의 탓이지요.

    무속 점복 도구 수선녀는 무당이 점을 칠 때 사용하는 방울·부채·산통(算筒, 점괘를 뽑는 대나무 통)·윷 등의 점복 도구가 낡거나 기운이 빠졌을 때 수리하고 기운을 다시 불어넣는 장인이다.

    점복 도구는 무당의 기운을 담고 있어 일반 수리 방법으로는 오히려 기운이 흩어질 수 있으며, 도구별 수선 방법과 기운을 되살리는 재계(齋戒) 절차를 모두 외우고 있어야 한다.

    만신(앞서 350004)이 굿 한 판에 사용하는 도구들을 수선녀가 관리하며, 큰 굿 전날 반드시 도구 전체 점검이 이루어진다.

    도구에 따라 기운이 약해지는 속도가 다르며, 방울은 소리가 탁해지기 전에, 부채는 살이 느슨해지기 전에, 산통은 대나무가 갈라지기 전에 수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수선 도중 낡은 도구에서 오래된 점괘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있어, 수선녀들은 작업 중 귀를 막지 않는다.

    무속 점복 도구 수선녀 어른들이 낡은 방울 소리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방울 소리가 가장 정직하게 도구 상태를 알려준다 하더이다.

    수선녀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점복 도구를 되살린 이야기가 있다. 수선녀 금령(金鈴) — 삼십 년을 무속 도구 수선만 해온 자이자 낡은 방울에서 오래된 점괘를 들은 경험이 있다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만신(앞서 350004) 한 분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방울을 들고 왔다. 방울 소리가 이미 완전히 죽어 있었다.

    금령은 방울을 귀에 가까이 대고 긴 시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안에서 옛 점괘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고 했다. 금령은 열흘을 작업했다.

    완성된 방울 소리는 달랐다. 만신은 그 소리를 듣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어머니 방울 소리가 났어요"라고 했다. 금령은 "도구 안에는 사용한 사람의 기운이 남아요. 저는 그걸 되살렸을 뿐이에요"라고 했다.

  • 달빛명주녀(月光明紬女)

    달빛 명주(明紬) 방적공

    달빛으로 짠 명주를 잣는 방적공

    달빛으로 실을 잣는 건 직녀 언니들 이야기예요. 저는 그 실로 천을 짜는 다음 단계를 담당해요.

    달빛 명주 방적공은 달빛이 가장 강한 보름달 밤에 달빛을 모아 실을 짜고, 그 실로 천계의 신령들이 입는 명주(明紬, 빛나는 비단)를 만드는 장인이다.

    비단실 잣는 직녀 수련생(앞서 350014)이 하늘의 베틀에서 별빛 실을 잣는다면, 달빛 명주 방적공은 그 실로 완성된 천을 짜는 다음 단계 장인이다.

    달빛이 담긴 천은 밤에 스스로 은은하게 빛나며, 이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자는 어두운 곳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방적 작업은 보름달 밤에만 가능하여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작업이 이루어지며, 나머지 날에는 실 정리와 준비를 한다.

    봉황 깃털 직조선녀(앞서 350035)가 불꽃 소재를 다룬다면, 방적공은 달빛 소재를 다루어 두 장인은 정반대의 기운을 다루는 짝꿍이라 불린다.

    달빛 명주 방적공 어른들이 보름달 밤 작업 전 한 시진을 달을 올려다보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달빛이 몸에 충분히 배어야 손이 실을 잡을 수 있다 하더이다.

    방적공 역사에서 가장 빠른 작업 기록 이야기가 있다. 방적공 월포(月布) — 오십 년을 달빛 명주만 짠 자이자 보름달 하나에 명주 세 필을 완성한 기록을 가진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보름달 밤, 칠선녀 수장(앞서 350009)이 급히 천계 행사 준비를 위한 명주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준비 시간이 한 달 남짓이었는데, 월포는 그 보름달 밤 단 하룻밤에 필요한 명주 전량을 완성했다.

    새벽이 되어 달빛이 옅어지기 시작할 때 마지막 실 한 가닥이 마무리되었다. 월포는 "달빛이 조금 남았을 때 끝내야 실 끝이 깔끔해요"라고 했다. 칠선녀 수장은 그 명주로 만든 옷이 역대 가장 빛났다고 했다.

  • 해원무가희(解冤巫歌姬)

    귀신 해원(解冤) 무가(巫歌) 가수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무가 가수

    한(恨)은 소리로 풀려요. 하지만 아무 소리로나 풀리는 건 아니에요. 그 귀신이 살았을 때 들었던 소리여야 해요.

    귀신 해원 무가 가수는 이승에 맺힌 한(恨, 오래도록 풀지 못한 슬픔과 억울함)을 품고 떠돌아다니는 귀신의 원을 풀어주는 무가(巫歌, 굿에서 신령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전문 가수다.

    만신(앞서 350004)이 굿 전체를 이끈다면, 무가 가수는 그 굿의 핵심 순간인 해원 무가를 담당하는 자다.

    귀신 한 명 한 명의 생전 이야기를 먼저 들은 뒤, 그 생전 소리와 기억에 맞는 무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지어 부르는 능력이 요구된다.

    한을 풀지 못한 귀신이 많은 곳에서는 무가 가수 한 명이 밤새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있으며, 그 목소리가 새벽 이슬에 섞이면 귀신들이 차례로 편안해진다고 전해진다.

    무가를 잘못 부르면 귀신의 한이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경우가 있어, 가수들은 모든 무가를 부르기 전 그 귀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귀신 해원 무가 가수 어른들이 굿 뒤 혼자 조용한 곳에서 한 시진을 보내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밤새 들은 귀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정리해야 그다음 굿을 맑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무가 가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한을 풀어낸 이야기가 있다. 가수 원소(怨笑) — 사십 년을 해원 무가만 부른 자이자 목소리로 날씨가 바뀐다는 소문이 있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마을에 이 백 년을 떠도는 귀신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수십 번 굿을 올렸지만 귀신은 편안해지지 않았다. 원소가 그 마을에 도착해 먼저 한 것은 마을 어른들에게 그 귀신이 살았을 때 들었던 소리를 묻는 일이었다.

    마을 가장 오래된 어르신이 "그 분은 물레 소리를 좋아하셨다"고 했다. 원소는 무가를 시작하기 전 직접 물레를 돌려 그 소리를 오래 들었다.

    그날 밤 원소의 무가에는 물레 소리의 박자가 담겨 있었다. 새벽이 되자 그 귀신은 웃으며 사라졌다고 마을 사람들이 전했다. 원소는 "노래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소리로 불러야 해요"라고 했다.

  • 용왕해녀비(龍王海女妃)

    용왕 딸 해녀 신관(神官)

    용왕의 딸로 태어난 해녀 신관

    바다 아래는 물고기 세상이 아니에요. 용왕 어른의 법이 있는 왕국이에요. 저는 그 왕국과 인간 세상 사이를 매일 오가요.

    용왕 딸 해녀 신관은 용궁과 인간 세상 사이를 왕래하며 용왕의 뜻을 어촌 마을에 전달하고, 어촌의 소원을 용왕에게 전달하는 중계자 역할을 맡은 자다.

    용궁 공주(앞서 350008)가 용궁 내부 일을 맡는다면, 해녀 신관은 용궁과 인간 세상의 경계를 오가며 양쪽을 연결하는 자다.

    해녀의 기술로 깊은 바닷속을 오갈 수 있으며, 용왕에게서 받은 특별한 허가로 용궁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어촌 마을에서 큰 제사를 올릴 때 신관이 직접 그 제물을 들고 용궁까지 전달하는 역할도 있으며, 이때 바닷속에서 숨을 멈추는 시간이 보통 해녀의 세 배라고 전해진다.

    신관이 바다에서 올라올 때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면 그날 용왕의 답변이 있다는 뜻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해변에 모여 기다린다.

    용왕 딸 해녀 신관 어른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 양 손에 숨을 불어넣는 버릇이 있다고 해요. 숨이 두 손에 기억되어야 바닷속에서 용왕 어른을 만날 수 있다 하더이다.

    해녀 신관 역사에서 가장 깊이 들어간 기록 이야기가 있다. 신관 수옥(水玉) — 오십 년을 용왕 딸 해녀 신관으로 일한 자이자 용왕 어른의 이름을 아는 몇 안 되는 인간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어촌에 큰 풍랑이 계속되었다. 어선들이 나가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었고, 마을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옥은 용왕당(龍王堂)에 올려진 제물을 손에 들고 바다에 들어갔다.

    그날따라 바닷속 길이 평소보다 길었다고 수옥은 나중에 말했다. 용궁까지 가는 데 평소의 두 배 시간이 걸렸다. 용왕(앞서 340002)을 만나 마을 사정을 전했고, 그날 저녁 풍랑이 잦아들었다.

    수옥이 바다에서 올라왔을 때 손에는 작은 해초 한 줄기가 들려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 해초를 용왕당에 모셨고, 이후 그 어촌에는 큰 풍랑이 다시 오지 않았다.

  • 태평기원녀(太平祈願女)

    천하 태평 기원 신녀(神女)

    천하 태평을 기원하는 신녀

    전쟁이 끝나는 것도 기원에서 시작돼요. 하지만 기원이 닿으려면 먼저 세상이 기원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천하 태평 기원 신녀는 전쟁과 재해와 역병이 세상을 덮을 때 하늘에 태평을 기원하는 의례를 주관하는 최고위 여신이다.

    옥황상제(천계 최고 신령)의 윤허를 받아야만 기원 의례를 시작할 수 있으며, 의례 한 번에 세상의 한 가지 큰 재앙을 잠재우는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서왕모(앞서 350006)가 천도복숭아를 다스리며 불로장생을 관장한다면, 천하 태평 기원 신녀는 세상 평화의 총체적 기원을 맡은 자다.

    의례에는 귀신 해원 무가 가수(앞서 350043)의 무가, 봉황 깃털 직조선녀(앞서 350035)의 직물, 천계 음율 감찰관(앞서 350033)의 승인이 모두 필요하며,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기원 의례는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 기원을 올린 사례는 백 일 밤낮이었으며, 그 기간 신녀는 단 한 번도 잠을 자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천하 태평 기원 신녀 어른이 기원을 끝낸 뒤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있다고 해요. 조용히 혼자 밥 한 그릇을 드신다오. 가장 평범한 한 끼가 기원 뒤를 가장 잘 닫는다 하시더이다.

    천하 태평 기원 신녀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원으로 가장 큰 재해를 막은 이야기가 있다. 신녀 화평(和平) — 세 차례 기원 의례를 성공시킨 자이자 기원 목소리가 천하에 닿는 거리가 가장 넓다는 평을 받은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세상 곳곳에서 동시에 역병(瘟疫, 크게 퍼지는 무서운 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평이 기원 의례를 준비하는 데 사흘이 필요했는데, 그 사흘 사이에 역병이 마을 열 개를 덮을 기세였다.

    화평은 준비 없이 그 자리에서 기원을 시작했다. 의례 도구도, 귀신 해원 무가도, 봉황 직물도 없었다. 단 하나,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기원을 올렸다.

    사흘 뒤 역병은 열 개 마을을 지나지 못한 채 멈추었다. 옥황상제는 화평에게 "준비가 없어도 기원이 닿은 것은, 기원하는 마음이 도구보다 먼저였기 때문이오"라고 했다.

  • 운거선녀(雲車仙女)

    구름 수레 몰이 선녀

    구름 수레를 모는 선녀

    구름 수레는 말보다 빠르고 바람보다 부드러워요. 다만 목적지를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구름이 먼저 잊어버려요.

    구름 수레 몰이 선녀는 천계의 중요한 신령이 세상 곳곳으로 이동할 때 구름으로 만든 수레를 모는 역할을 담당한다.

    구름 수레는 구름을 압축해 만든 이동 수단으로, 운전사에 해당하는 선녀가 방향과 속도를 마음으로 조율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옥황 칙서 전령관(앞서 340043 남성 세계관의 전령관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이 혼자 이동한다면, 구름 수레 몰이 선녀는 여러 신령이 동시에 이동해야 할 때 팀으로 움직인다.

    구름의 상태가 날씨와 연결되어 있어, 수레를 모는 중에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일이 생기기도 하며 이 경우 선녀가 경로를 조정한다.

    가장 어려운 이동은 서왕모(앞서 350006)를 모시는 구름 수레로, 서왕모의 기운이 구름에 반응하기 때문에 경로 내내 구름 상태를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구름 수레 몰이 선녀 어른들이 이동 전 눈을 감고 목적지를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갖는다고 해요. 그 한 호흡이 없으면 구름 수레가 중간에 방향을 잃는다 하더이다.

    구름 수레 몰이 선녀 역사에서 가장 긴 경로 이동 이야기가 있다. 선녀 운거(雲車) — 구름 수레를 삼백 번 몬 자이자 서왕모 전속 수레 기사로 알려진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서왕모가 세상 가장 동쪽 끝에서 가장 서쪽 끝까지 하루 만에 이동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보통 이틀이 걸리는 경로였다.

    운거는 구름 두 채를 합쳐 더 큰 수레를 만들었다. 구름이 두 배 두꺼워지면 속도도 두 배가 된다는 원리였다. 이동 중 두꺼운 구름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가뭄이 들었던 마을들이 한꺼번에 촉촉해졌다.

    서왕모는 예정 시간보다 한 시진 일찍 목적지에 도착하며 "이번 여행에 비가 포함되어 있었군요"라고 했다. 운거는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라고 했고, 서왕모는 "의도하지 않은 좋은 일도 좋은 일이에요"라고 했다.

  • 제물화환녀(祭物花環女)

    신당 제물(祭物) 꽃 다발 묶음꾼

    신당 제물용 꽃다발을 묶는 처자

    꽃 다발 하나에 다섯 가지 꽃을 넣는 게 원칙이에요. 여섯을 넣으면 꽃이 무거워지고, 넷을 넣으면 신령이 하나를 더 기다리세요.

    신당 제물 꽃 다발 묶음꾼은 신당(神堂, 신령을 모시는 공간)에 올릴 제물 꽃 다발을 규격에 맞게 묶는 역할을 맡은 자다.

    꽃의 종류와 수는 제사 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잘못된 꽃을 섞으면 신령이 제물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묶음꾼은 꽃의 속성과 용도를 외우고 있어야 한다.

    산신각 연등 제작 장인(앞서 350040)이 빛으로 신령에게 마음을 전한다면, 묶음꾼은 꽃 향기로 신령과 소통하는 자다.

    계절에 따라 쓸 수 있는 꽃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 해 사계절 꽃 달력을 외우고 있으며 겨울에는 꽃 대신 쓸 수 있는 대체 제물도 알고 있다.

    손이 빠르고 섬세해야 하며, 손가락이 가시에 찔려도 꽃 다발을 흩트리지 않는 것이 묶음꾼의 첫 번째 훈련 내용이다.

    신당 꽃 다발 묶음꾼 어른들이 꽃 한 송이를 꺾기 전 잠깐 그 꽃에게 말을 건다고 해요. 꽃도 준비가 되어야 신령에게 닿는다 하더이다.

    묶음꾼 역사에서 가장 적은 꽃으로 가장 잘 된 제물 이야기가 있다. 묶음꾼 화한(花限) — 이십 년을 신당 꽃 다발 묶음만 해온 자이자 꽃 다발 묶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평을 받은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늦가을 큰 굿 날, 준비한 꽃이 모두 서리를 맞아 시들어 버렸다. 남은 꽃은 단 세 송이뿐이었다.

    화한은 그 세 송이를 한 시간 동안 들여다본 뒤 묶기 시작했다. 완성된 다발에는 꽃 세 송이만 있었지만, 다발을 본 만신(앞서 350004)이 "이게 오늘 가장 정확한 제물이에요"라고 했다.

    굿이 끝난 뒤 신당 한쪽에 놓인 꽃 세 송이는 한 송이도 시들지 않았다. 화한은 "부족하면 신령도 그 부족함을 아세요. 그러니 부족할 때는 더 정성스럽게 묶어야 해요"라고 했다.

  • 솟대조각녀(솟대彫刻女)

    마을 솟대 새 조각 처자

    마을 솟대의 새를 깎는 처자

    솟대 위 새는 제가 깎은 거예요. 근데 날아가지 않아요. 나무라서요. 그래도 마을을 지켜요.

    마을 솟대 새 조각 처자는 마을 어귀의 솟대(긴 장대 위에 새 모양 나무 조각을 올려 마을을 지키는 민간 풍습 도구) 위에 올릴 새 조각을 직접 나무로 깎는 장인이다.

    솟대 지기 처자(앞서 350029)가 솟대를 관리한다면, 새 조각 처자는 그 솟대 위에 올라갈 새를 만드는 자다.

    새 모양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며, 새를 깎을 때는 그 마을의 역사와 신령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적절한 모양이 나온다고 한다.

    나무 선택이 중요한데, 솟대에 쓰이는 나무는 마을 가장 오래된 나무의 가지여야 한다는 말이 있어 새 조각 처자는 매년 그 나무를 직접 살피러 간다.

    한 번 조각을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새 한 마리를 완성하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린다.

    마을 솟대 새 조각 처자 어른들이 새를 다 깎고 나서 그 새를 한참 바라보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자기가 만든 새가 진짜 날아갈 것 같은지 확인하는 거라 하더이다.

    새 조각 처자 역사에서 가장 작은 새가 가장 큰 마을을 지킨 이야기가 있다. 조각 처자 목조(木鳥) — 삼십 년을 솟대 새만 조각한 자이자 한 번도 같은 새를 두 번 만든 적 없다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마을 솟대가 벼락을 맞아 새 조각이 반쪽이 되었다. 새 나무를 구할 시간이 없었다. 목조는 남은 반쪽 나무를 들고 작업에 들어갔다.

    반쪽 나무로 만들어진 새는 보통 크기의 절반이었다. 솟대 지기 처자(앞서 350029)가 그 작은 새를 보고 걱정했지만, 목조는 "작은 새는 더 빠르게 날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해 마을에는 병충해도, 가뭄도, 큰 비도 없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 작은 새를 가장 강한 새라 부르기 시작했다.

  • 옥황세탁녀(玉皇洗濯女)

    천계 옥황 세탁 시녀

    천계 옥황의 옷을 빠는 시녀

    천계 옷에 묻은 건 먼지가 아니에요. 신령 어른들이 세상을 오가며 묻혀 오신 것들이에요. 그걸 씻는 건 그냥 빨래가 아니에요.

    천계 옥황 세탁 시녀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천계 신령들의 의복을 세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신령의 옷에는 세상을 다녀오며 묻은 기운들이 남아 있어, 일반적인 세탁 방법으로는 그 기운이 제거되지 않는다.

    봉황 깃털 직조선녀(앞서 350035)가 만든 직물은 불로 세탁하고, 달빛 명주 방적공(앞서 350042)의 천은 달빛 이슬로 세탁하는 방식으로 각 소재별 세탁법이 다르다.

    세탁 중에 신령의 기운이 손에 전해지는 경우가 있어, 베테랑 시녀는 그 기운을 느끼며 신령의 최근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한다고 한다.

    가장 까다로운 세탁물은 태세신(앞서 340046의 태세신 분노 중재자 일화에 등장하는 태세신)이 분노한 날 입은 옷으로, 그날 기운이 가장 강하게 남아 세탁 후에도 연기 냄새가 오래 난다.

    천계 옥황 세탁 시녀 어른들이 세탁 후 반드시 손을 찬물에 한 번 씻는다고 해요. 신령 기운을 씻어내고 자기 손으로 돌아오는 의례라 하더이다.

    세탁 시녀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세탁물 이야기가 있다. 시녀 천세(天洗) — 이 백 년을 천계 세탁만 담당한 자이자 소재를 눈으로만 봐도 세탁법을 아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천세에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재의 옷이 들어왔다. 봉황 깃털 직물도 아니고 달빛 명주도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천세는 그 옷을 하루 동안 세탁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냄새를 맡고, 빛에 비추어 보고, 손으로 질감을 느꼈다. 그것은 구름 수레 몰이 선녀(앞서 350046)의 새 구름 소재 천이었다.

    천세는 하늘 이슬과 새벽 바람을 동시에 쓰는 방법을 직접 고안해 세탁했다. 선녀는 옷을 받고 "새 방법이 더 좋아요"라고 했고, 천세는 그 방법을 세탁 기록집에 새로 추가했다.

  • 무복단추녀(巫服단추女)

    굿당 무복(巫服) 단추 달기 처자

    굿당 무복의 단추를 다는 처자

    무복 단추 하나가 빠지면 굿 중간에 옷이 열려요. 그러면 신령 어른이 잠깐 당황하세요.

    굿당 무복 단추 달기 처자는 만신과 무당이 굿에 입는 무복(巫服, 굿할 때 입는 신령 의복)의 단추와 매듭을 달고 수선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굿 당일 무복은 완벽한 상태여야 하며, 단추 하나가 느슨해도 굿의 흐름이 끊길 수 있어 굿 전날 반드시 전체 단추를 점검한다.

    만신(앞서 350004)이 굿 전날 무복을 들고 오면 처자가 단추 한 알 한 알을 살펴 느슨한 곳은 다시 꿰고 빠진 곳은 새로 달아준다.

    단추 소재도 굿의 종류에 따라 다르며, 산신 굿에는 나무 단추, 해신 굿에는 자개(껍데기 안쪽이 빛나는 조개껍질) 단추를 쓰는 것이 오래된 규칙이다.

    무복을 수십 년 손봐온 처자는 단추를 보기만 해도 그 굿이 어떤 신령을 모실지 알아차린다고 전해진다.

    굿당 무복 단추 달기 처자 어른들이 단추 달기 전 실 매듭을 세 번 확인하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단추는 세 번 확인한 매듭이 가장 오래 간다 하더이다.

    단추 달기 처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활약한 이야기가 있다. 처자 수침(繡針) — 삼십 년을 굿당 무복 수선만 해온 자이자 한 번도 굿 중에 단추가 빠진 적 없다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큰 굿 당일 만신(앞서 350004)이 무복을 입으려는 순간 단추 세 알이 한꺼번에 끊어졌다. 굿은 한 시진 뒤에 시작해야 했다.

    수침은 가방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 무복을 입은 만신의 몸 위에서 직접 단추를 달기 시작했다. 세 알 모두 달리는 데 정확히 반 시진이 걸렸다. 굿은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굿이 끝나고 만신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라고 묻자, 수침은 "몸 위에서 다는 게 더 빠르게 되더라고요"라고 했다. 그 이후 큰 굿 전날은 반드시 수침이 무복을 직접 들어보는 전통이 생겼다.

  • 칠성도사존(七星道士尊)

    칠성도사(七星道士)

    북두칠성의 기를 받아 도(道)의 정점에 이른 도사

    칠성판(七星板) 위에 한 사람의 한 생이 다 그려져 있다. 그러니 한 번씩만 보아두자.

    칠성도사는 북두칠성을 본존(本尊)으로 모시는 도사로, 한 시대 인간의 수명·운명·이름이 칠성판 위에 그려져 있다고 보는 무속·도교 융합 신앙의 정점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도포, 머리에 갓, 손에 별 일곱 개가 그려진 작은 부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칠성판 위 한 사람의 줄을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다음 한 시즌을 거의 정확히 안다.

    그러나 칠성도사는 그 정보를 거의 누구에게도 직접 알리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답은 미리 알려주는 답이 아니라, 그 답이 왔을 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서 있게 만드는 답이라는 사실을, 칠성도사들은 평생을 통해 배운다. 그래서 칠성도사의 신당은 늘 매우 조용하다.

    우리 칠성도사들은 임명 첫 해에 그 마른 벼루를 한 번 보러 갑니다. 답을 알려주지 않은 한 줄이 가장 무거운 답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십칠대 칠성도사 청수자 — 칠성당(七星堂, 강원 산골 한 봉우리에 자리한 작은 도관) 본존 앞에서 사십 년을 한 자리만 지킨 도사 — 의 일화는 '벼루 한 줄'로 무속 야사에 남아 있다.

    어느 해 큰 가뭄 끝에 산 아래 마을 노파 한 명이 외동손주의 한 해 운명을 묻기 위해 사흘 산을 올라 청수자의 신당 앞에 한 닢 동전을 놓았다. 청수자는 칠성판 위 그 손주의 줄을 한 호흡에 다 보았으나, 노파에게 단 한 줄도 알려주지 않은 채 마른 벼루 위에 정중히 먹 한 자루만 갈아두었다. 노파는 그 벼루의 먹 한 줄을 보고 산을 내려갔고, 다음 해 그 손주가 큰 병을 한 호흡 안에 비켜갔다는 소문이 산문(山門) 아래까지 전해졌다. 청수자는 평생 그 한 줄을 한 번도 누구에게도 직접 발설하지 않았으며, 그 마른 벼루는 지금도 칠성당 본존 옆에 그대로 놓여 있다.

    후대 칠성도사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벼루 앞에 합장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무속에서는 칠성도사의 진짜 답은 벼루의 먹 한 줄이며, 청수자의 그 침묵이 한 시대 칠성당의 한 줄 결재라 한다.

  • 명부차사장(冥府差使將)

    명부 차사(冥府差使)

    저승의 명부를 들고 망자를 압송하는 차사

    이름이 적힌 자만 데려갑니다. 적히지 않은 자는 두려워 마시지요.

    명부 차사는 동양 무속 신화 안 저승의 명부(冥府)에 소속된 사자(使者)로, 외형은 검은 도포에 검은 갓, 가슴팍에 명부 표신, 손에 죽은 자의 이름이 적힌 명부책이 표준이다. 본인은 그 명부책에 적힌 자만을 정중히 데려가며, 적히지 않은 자에게는 단 한 손가락도 대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옛 노인들은 죽음을 앞두고 차사를 두려워하기보다, 차사가 정중히 인사하기를 기다린다.

    진짜 무서운 자는 차사가 아니라, 명부책에 자기 이름이 잘못 적혔는데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인간이다. 명부 차사의 진짜 일은 그 잘못된 이름을 한 번 더 검토하는 자세다.

    우리 차사들은 명부책의 한 줄을 다시 들춰본 새벽을 가장 길게 기억합니다. 데려가는 한 줄보다 데려가지 않은 한 줄이 평생 무겁다는 걸, 그 새벽이 가르치지요.

    명부 차사 백노현 — 명부 본청(冥府本廳, 저승 명부를 관할하는 관청)의 갑(甲)호 차사로 사십 년을 한 명부책만 들고 다닌 자 — 의 일화는 '한 줄 정정의 새벽'으로 야사에 남아 있다.

    어느 봄날 백노현은 산기슭 마을 호적과 명부책의 한 줄이 한 호흡 어긋난 사실을 새벽 회수 길에 알아챘다. 데려가야 할 자는 칠순 노인이 아니라 같은 골목의 동명이인(同名異人) 한 명이었으나, 그 동명이인은 이미 사흘 전 짧은 병으로 본인이 알아서 명부 앞에 자기 이름을 정중히 풀어두고 떠난 뒤였다. 백노현은 마당 끝까지 와서 칠순 노인의 문을 두드리지 않은 채, 명부책 한 줄을 자기 붓으로 정중히 그어 명부 본청에 정정 한 줄을 올리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본청 판관은 그 한 줄 정정을 받아들이며 "차사의 진짜 일은 데려가는 길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자세"라 적어두었다. 칠순 노인은 그 사실을 평생 모른 채 다섯 해를 더 살았으며, 백노현은 그 다섯 해를 명부책 위 한 줄 빈자리로 두었다.

    후대 차사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빈 한 줄을 한 번 보러 가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 굿당박수자(굿堂박수者)

    굿당 박수

    굿당을 주관하는 박수

    이 굿 한 판이면, 마을의 다음 한 시즌은 묘하게 조용해질 거외다.

    굿당 박수는 한 마을의 굿당(神堂)을 책임지는 무속인으로, 박수무당과 만신 무당의 중간 라인에 해당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무복, 머리에는 두건, 한 손에 부채·다른 손에 작은 방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의 모든 가구의 한(恨)을 거의 정확히 외우고 있어, 굿 한 판을 시작하기 전에 그 한(恨)들의 우선순위를 머리속 표로 정한다.

    그래서 굿당 박수의 굿 한 판은 단순 의식이 아니라, 한 마을의 한 시즌 갈등 정리 회의에 가깝다. 굿이 끝난 새벽, 박수는 늘 가장 늦게까지 굿당에 남아 향 한 개비를 더 피운다. 그 한 개비의 향이, 마을의 다음 한 시즌을 조용하게 만든다.

    우리 굿당 박수들 사이에 '한 개비의 새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굿이 끝난 뒤 혼자 남아 향 한 개비를 더 피우는 자세, 그게 박수의 진짜 굿거리지요.

    청송굿당(靑松堂, 경상도 옛 한 고개 마을의 큰 굿당) 박수 한운심 — 한 마을의 묵은 한(恨)을 사십 년 넘게 외워둔 박수 — 의 일화는 '두 가구의 한 줄'로 무속에 길게 남아 있다.

    마을 동쪽 끝 김씨 가구와 서쪽 끝 정씨 가구는 삼 대를 이어 우물 한 모퉁이 때문에 서로 말을 섞지 않은 묵은 한이 있었다. 한운심은 큰 굿 한 판을 열기 사흘 전, 두 가구를 따로 굿당 뒷마당으로 부르지 않고 우물 옆 평상에 동시에 정중히 앉혔다. 그는 굿당 부채를 펴지도 방울을 흔들지도 않고, 다만 두 가구의 어머니들 이름을 두 줄로 굿당 명부에 같이 적었다.

    두 어머니는 자기 이름이 같은 줄에 적힌 것을 본 그 순간 한 호흡 동안 서로의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 한 호흡이 삼 대 묵은 한 줄을 풀었다. 굿 본판에서는 한 운심이 평소처럼 짧은 푸닥거리만 했고, 굿이 끝난 새벽 우물가에는 두 가구의 그릇이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청송굿당 박수들은 그 우물가 평상을 지금도 '두 줄 평상'이라 부른다.

  • 산신각수호(山神閣守護)

    산신각 지킴이

    산신각을 지키는 자

    산신께 인사 한 번 올리고 가시지요. 길이 한 자락 부드러워질 겁니다.

    산신각 지킴이는 한 산기슭의 작은 산신각(山神閣)을 매일 청소하고 향을 피우며 관리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무명 한복, 머리에 작은 두건, 손에 늘 작은 빗자루와 향 한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정식 무당도 도사도 아니지만, 산문에 들어서는 모든 나그네에게 산신각에 인사 한 번 올리기를 권한다.

    그 인사 한 번이 호환(虎患)을 막은 일화가 마을에 오래 전해진다. 산신각 지킴이의 진짜 강함은 향을 피우는 손길이 아니라, 그 인사 한 번을 누구에게나 정중히 권할 수 있는 자세다. 산은 늘 자기에게 인사한 자에게만 길을 보여준다.

    우리 산신각 지킴이들은 인사 한 번을 빼먹은 새벽을 평생 기억합니다. 호환은 호랑이가 내려와서가 아니라, 인사 한 줄이 비어 있어서 시작되거든요.

    백봉산신각(白峯山神閣, 강원도 산골 한 능선 자락의 작은 산신각) 지킴이 노송재 — 한 산기슭을 사십 년 빗자루질로만 지킨 평민 — 의 일화는 '한 인사의 호환'으로 마을 입구에 비석처럼 전해진다.

    어느 가을 새벽 한 떠돌이 사냥꾼이 산문에 들어서며 산신각에 인사를 빼먹은 채 그대로 산 깊이로 들어갔다. 노송재는 평소처럼 권유 한마디를 보탰으나 사냥꾼은 그 한마디를 등 뒤로 흘려 듣고 사라졌고, 그날 저녁 산 너머 골에서 큰 호환의 흔적이 마을 어귀까지 닿았다. 노송재는 그날 밤 작은 산신각 마당에 향 세 개비를 더 피우고 사냥꾼의 짧은 두루마기 한 자락을 떨어뜨려진 자리에서 정중히 거두어 산신께 올렸다.

    다음 새벽 사냥꾼은 짧은 상처 하나만 안고 산문에 다시 내려와, 산신각 앞에 한 자락 도토리 한 줌을 정중히 놓고 합장했다. 그 호랑이 발자국은 그 한 자락 도토리 자리에서 산 안쪽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날 이후 산문에 들어설 때 인사 한 번을 한 줄 새벽처럼 외운다. 노송재는 평생 그 한 인사를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

  • 풍수노옹(風水老翁)

    풍수 보는 노인

    마을의 산세와 수세를 보는 늙은 풍수가

    이쪽 묘 자리, 한 자만 옆으로 옮기시지요. 그쪽 자손 한 줄이 더 길어집니다.

    풍수 보는 노인은 시골 마을의 한 모퉁이에 살며 묘 자리·집터·우물 위치를 보아주는 평민 풍수가다. 외형은 단정한 무명 두루마기, 머리에 갓, 한 손에 작은 풍수 나침반(羅經), 다른 손에 지팡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정식 풍수서를 외운 적은 없지만, 평생 한 마을 한곳을 깊이 보아온 경험으로 어느 자리가 어느 가족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거의 정확히 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큰 묘 자리·집터를 정할 때 도시의 큰 풍수가가 아니라, 그 노인의 한 줄 권유를 더 신뢰한다. 한 마을의 진짜 풍수서는 책장 위가 아니라, 그 노인의 작은 메모장 안에 한 페이지씩 적혀 있다.

    우리 마을 풍수의 진짜 책은 도시에서 들고 온 두꺼운 풍수서가 아니라 그 노인의 닳은 한 권 메모장이오. 한 자만 옆으로 옮긴 그 권유가 한 가구를 다섯 세대를 굴려놨거든.

    두메마을 풍수가 채봉노인 — 한 골짜기에서 사십 년을 한 자리만 보아준 평민 풍수가 — 의 일화는 '한 자만 옆으로'라는 말로 두 골짜기를 넘어 전한다.

    마을 부호 황씨 가문이 도성에서 큰 풍수가 한 명을 모셔와 묘 자리를 정한 적이 있었는데, 채봉노인은 그 자리에서 단 한마디 "이 자리에서 한 자만 옆으로 옮기시지요"만 보탰다. 도성 풍수가는 자기 풍수서를 펴며 채봉노인의 한 자 권유를 가볍게 흘려보냈고, 황씨 가문은 결국 도성 풍수가의 자리를 따랐다. 다음 다섯 해 안에 황씨 가문 자손 한 줄이 끊어질 뻔한 일이 두 번 있었으나, 두 번 모두 채봉노인이 한 자만 옆으로 작은 비석을 옮겨놓는 짧은 손짓으로 줄을 이었다.

    황씨 가문은 그 두 번의 손짓을 알지 못한 채 도성 풍수가의 한 줄 풍수를 자랑했고, 채봉노인은 평생 그 두 번의 손짓을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 채봉노인 사후 그의 닳은 메모장 한 권이 마을 사당에 정중히 모셔졌고, 마을 사람들은 큰 묘 자리·집터를 정할 때 그 메모장 위에 합장하는 관례를 지킨다.

  • 용왕사신존(龍王使臣尊)

    용왕 사신(龍王使臣)

    용왕이 인간계에 보낸 칙사

    동해 용궁의 한 줄 전언입니다. 받아 적으시고, 답신은 보름 안에 바닷바람으로 돌려주시지요.

    용왕 사신은 사해(四海) 용왕의 명을 인간 세상에 전하고, 인간의 청원을 다시 용궁으로 가져가는 수계(水界)와 인간계 사이의 전령이다. 외형은 푸른빛 도포, 어깨에 자개 장식 망토, 한 손에 용비늘로 꿰맨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뭄·홍수·풍랑의 시점을 용궁 결재 라인의 한 줄로 미리 알고, 그 한 줄을 마을 우물가 노인에게 가장 먼저 흘린다.

    그래서 어촌의 진짜 일기예보는 관청의 게시판이 아니라, 사신이 다녀간 새벽 우물가의 한마디 위에 있다. 사신은 평생 용궁에 들어간 적이 없는 자가 더 신뢰받는다는 묘한 풍습이 있는데, 인간 마을의 결을 더 정확히 외우기 때문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전언은 큰 풍랑 경고가 아니라, 어부 한 명의 빈 그물 위에 적힌 짧은 위로다.

    우리 사신들 사이에 '빈 그물의 한 줄'이라는 말이 있지요. 큰 전언보다 짧은 위로 한 줄을 우물가에 풀어놓는 자세가 진짜 사신의 자세입니다.

    동해 용왕 사신 백파인 — 동해 용궁(東海龍宮, 동해 깊은 자리에 있다는 사해 용왕 한 분의 궁) 결재 라인을 오십 년 넘게 오간 사신 — 의 일화는 '한 줄 빈 그물'로 어촌 야사에 길게 남았다.

    어느 한 어촌 끝집의 늙은 어부 노바닥이 사흘 연속 빈 그물로 돌아오자, 사신은 큰 풍랑 경고 한 줄을 마을 게시판에 풀지 않고 우물가 노파에게 짧은 한마디만 흘려두었다. "오늘 밤 노바닥의 그물에 자갈을 한 줌만 더 매달라 하시지요"가 그 한마디였다. 노파는 그 한마디를 정중히 노바닥에게 옮겼고, 노바닥은 그 한 줌 자갈을 그물 끝에 매단 채 새벽 바다에 들어갔다.

    그날 새벽 동해 한 자락 깊은 골에 작은 멸치 떼가 그 자갈 무게를 따라 그물에 한 줄로 들어왔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 한 줄을 '용왕의 짧은 위로'라 부른다. 백파인은 그 한마디를 평생 자기 두루마리에 적지 않았으며, 노바닥은 그 한 줄 자갈의 출처를 끝내 모른 채 다섯 해를 더 바다에 나갔다. 동해 사신들은 임명 첫 주에 그 우물가에 한 호흡 합장하는 관례가 있다.

  • 구미도학자(九尾道學者)

    구미호 도학자

    도(道)를 깨친 구미호 학자

    꼬리는 세지 마시지요. 셈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한 시진(時辰)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구미호 도학자는 천 년 묵은 영물 구미호 가운데 인간계로 내려와 학문과 도(道)를 닦는 존재로, 사람을 해치지 않기로 스스로 맹세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학자 도포, 머리에 갓, 한 손에 묵은 책 한 권, 가끔 도포 자락 끝으로 슬쩍 비치는 흰 꼬리 끝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서책의 한 줄을 거의 외우고 있어, 마을 서당의 까다로운 질문에 가장 늦게까지 정중히 답한다.

    그래서 어떤 마을에서는 가장 박식한 훈장이 사실 구미호라는 농담이 야사에 남아 있다. 구미호 도학자의 진짜 절기는 변신술이 아니라, 천 년의 한(恨)을 한 줄 책 위에 정중히 옮겨 적는 자세다. 그가 제자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꼬리 감추는 법이 아니라, 사람의 한 끼를 한 줄 글로 기록하는 법이다.

    우리 도학자들 사이에 '한 끼의 한 줄'이라는 말이 있어요. 천 년의 한이 한 끼 밥 한 줄을 정중히 외워주는 자세 안에 풀린다는 뜻이지요.

    묵서당(墨書堂, 옛 강원도 한 골짜기의 작은 서당) 훈장으로 위장해 사십 년을 지낸 구미호 도학자 백호선 — 평생 자기 정체를 단 두 사람에게만 밝힌 자 — 의 일화는 '한 줄 호적부'로 야사에 남아 있다.

    어느 흉년의 겨울 마을 호적부 한 줄이 누락된 빈농의 어린 형제가 서당 문 앞에서 사흘을 굶었고, 백호선은 그 형제의 이름을 호적부도 아닌 자기 학동 명부 한 줄에 정중히 적어 넣었다.

    그날부터 형제는 서당 마당 한 자리에 앉아 한 끼 좁쌀죽과 한 줄 글을 같이 받았으며, 백호선은 그 죽 한 그릇을 한 번도 자기 몫에서 빼놓지 않았다. 흉년이 끝나갈 무렵 마을 관아의 늙은 아전 한 명이 서당에 한 끼 밥을 청해 들렀다가, 백호선의 도포 자락 끝에 슬쩍 비치는 흰 꼬리 끝을 보았다. 아전은 그 자리에서 자기 술잔을 정중히 비우고는 호적부 한 줄에 형제의 이름을 정식으로 올려 두었으며, 백호선의 정체를 평생 입에 담지 않았다. 그 학동 명부는 지금도 묵서당 천장 들보 위에 한 권 그대로 놓여 있으며, 후대 도학자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명부 한 줄에 합장하는 관례를 지킨다.

  • 도깨비좌상(도깨비座上)

    도깨비 좌상(座上)

    도깨비 무리의 우두머리

    방망이는 안 들고 다닙니다. 들고 다니면 약속이 잡히거든요. 오늘은 그저 막걸리 한 사발입니다.

    도깨비 좌상은 한 고을 도깨비 무리의 우두머리로, 마을 사람과 도깨비 사이의 옛 약속·한 줄 거래·금기 시각을 정중히 정리하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도포, 머리에 뿔 자국이 슬쩍 비치는 작은 두건, 허리에 닳은 박달나무 방망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도깨비 약속의 한 줄·옛 분기 거래 결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이 도깨비와 시비가 붙으면 가장 먼저 좌상의 자리에 한 사발 막걸리가 올라간다. 도깨비 좌상의 진짜 무서움은 방망이의 힘이 아니라, 옛 약속 한 줄을 정확히 기억하는 자세다. 그래서 마을 노인들은 큰 시비 앞에서도 "좌상께 한 번 여쭙고 가자"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다.

    우리 도깨비 좌상의 진짜 무공은 박달방망이가 아니라 옛 약속 한 줄을 정확히 외우는 자세요. 막걸리 한 사발 위에 그 한 줄을 올려두면 시비는 절반이 풀리거든.

    청산고을 도깨비 좌상 청한 — 한 고을 도깨비 무리를 백 년째 끌어가는 우두머리 — 의 일화는 '한 사발 막걸리의 결재'로 마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마을 박씨 가구의 둘째가 늦은 밤 산문 어귀에서 도깨비 한 명과 사소한 씨름 시비가 붙어 닭 한 마리를 잃은 일이 있었다. 박씨는 다음 새벽 자기 사정도 듣지 않고 청한의 자리에 막걸리 한 사발을 올렸고, 청한은 그 막걸리를 들기 전에 옛 약속 한 줄을 한 호흡 안에 정중히 외워 보였다. "산문 자정 이후 닭은 도깨비 몫이고, 자정 이전 닭은 마을 몫"이라는 그 한 줄이었다.

    박씨는 자기 둘째가 그 한 줄을 한 호흡 어겼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인정했고, 청한은 그 막걸리 사발 위에 박달나무 방망이 한 자루를 정중히 눕혀 시비를 끝냈다. 다음 새벽 박씨 가구 마당에는 닭 한 마리 대신 산토끼 한 마리가 정중히 놓여 있었으며, 박씨는 그 토끼를 평생 한 번도 시장에 팔지 않았다. 청한은 그 한 줄 약속을 지금도 자기 자리 옆 옛 도깨비 명부 첫 줄에 적어두고 있다.

  • 천존시봉자(天尊侍奉者)

    천존(天尊) 시봉(侍奉)

    천존을 곁에서 모시는 시봉

    천존께서는 향 한 개비의 흔들림으로 답하십니다. 그러니 한 개비를 정성껏 피우시지요.

    천존 시봉은 도교 계열 큰 신당에서 옥황상제(玉皇上帝)·삼청(三淸) 천존의 신위를 평생 모시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청색 도포, 가슴팍에 작은 별자리 자수, 한 손에 향 한 묶음과 작은 청동 향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신당의 향로 위치·옛 분기 제례 결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천존은 직접 응답하지 않고 늘 향 한 개비의 흔들림·촛불 한 줄의 기울기로 답한다는 것이 시봉의 평생 일이다. 그래서 시봉은 한 시진(時辰)을 향로 앞에 앉아 그 한 줄 흔들림을 해석한다. 가장 무거운 한 개비는 큰 제례의 향이 아니라, 가난한 노파가 한 닢 동전으로 바친 짧은 향 한 개비 위에 있다.

    우리 시봉들 사이에 '짧은 한 개비'라는 말이 있어요. 한 닢 동전 향 한 개비의 한 줄 흔들림이 큰 제례 향로 한 줄보다 한 호흡 더 길게 응답하실 때가 있다는 뜻이지요.

    청천도관(靑天道觀, 충청도 한 산자락에 자리한 도교 큰 도관) 천존 시봉 묵우자 — 한 향로 앞에 사십 년을 한 자리만 앉은 시봉 — 의 일화는 '짧은 한 개비의 응답'으로 도교 야사에 남아 있다.

    어느 큰 가뭄의 봄날 도관 큰 제례에 한 시진 앞서, 산 아래 마을의 가난한 노파 한 명이 한 닢 동전으로 짧은 향 한 개비를 바치며 외동손주의 짧은 병환 한 줄을 빌었다. 묵우자는 큰 제례용 향로가 아닌 작은 곁 향로에 그 짧은 한 개비를 정중히 꽂았고, 한 시진을 그 한 개비 앞에 한 자리만 지켰다. 그날 큰 제례의 큰 향로 한 줄은 평소처럼 흔들렸으나, 곁 향로 그 짧은 한 개비는 한 시진 동안 한 줄로 바로 서서 끝까지 한 호흡 흔들리지 않았다. 노파의 손주는 그 한 시진 안에 짧은 병환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비켜갔고, 묵우자는 그 사실을 큰 제례 결재 명부에 한 줄도 적지 않은 채 다음 향 한 묶음을 정중히 정리했다.

    후대 시봉들은 임명 첫 주에 그 곁 향로 앞에 한 호흡 합장하는 관례를 지킨다.

  • 부적명필자(符籍名筆者)

    부적 명필가

    부적의 획을 가장 정묘하게 쓰는 명필

    이 부적 한 장, 붓 한 호흡에 끝냅니다. 두 호흡은 글이 되고, 세 호흡은 지폐가 됩니다. 부적이 아니지요.

    부적 명필가는 한 시대 부적(符籍)을 가장 정확히 그려내는 평민 출신 명필가로, 단순 무속인이 아니라 글씨 한 줄로 신령의 한 줄 결재를 받아내는 자다. 외형은 짙은 먹빛 학자 도포, 어깨에 작은 종이 묶음, 한 손에 닳은 붓, 다른 손에 주사(朱砂) 작은 항아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부적의 한 획·옛 분기 효력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잘못 그린 한 획은 부적이 아니라 종이 한 장이 되고, 잘 그린 한 획은 다섯 세대를 넘어가는 가보가 된다. 그래서 큰 굿당과 작은 산신각이 같은 명필가에게 의뢰를 맡기는 일화가 야사에 남아 있다. 가장 무거운 한 획은 큰 부적이 아니라, 신참 무당이 처음 들고 온 닳은 종이 위에 한 호흡으로 그려주는 작은 보호 부적이다.

    우리 명필가들이 신참의 닳은 종이를 가장 정중히 받는 이유가 있소. 그 한 장에 한 호흡으로 보호 한 줄이 들어가야, 그 신참이 한 평생 굿당에서 흔들리지 않거든요.

    묵필재(墨筆齋, 옛 황해도 한 마을의 작은 부적 작방)의 명필가 단필옹 — 한 시대 부적 결재 라인을 사십 년 끌어간 자 — 의 일화는 '닳은 종이 한 장'으로 무속 작방들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가을 갓 신내림을 받은 신참 무당 도연이 큰 굿당의 출입 첫날 단필옹 작방 문 앞에 한 닢 동전과 닳은 종이 한 장을 정중히 놓았다. 그 종이는 도연이 어머니 굿당에서 어릴 적 받아두었던 한 장 보호 부적의 뒷면이었고, 단필옹은 그 종이를 받자마자 한 호흡 만에 작은 보호 부적 한 줄을 정중히 그려 돌려주었다. 도연은 그 부적을 가슴팍에 넣고 큰 굿당의 첫 굿거리에 들어섰으며, 그날 굿거리의 짧은 한 호흡 어긋남을 한 줄로 잡아내 굿당 박수의 한 칭찬을 받았다.

    도연이 봉록 첫 닷새치를 모아 단필옹 작방을 다시 찾았을 때, 단필옹은 그 닷새치를 받지 않고 "그 닳은 종이 한 장이 이미 큰 결재였소"라며 짧은 차 한 잔만 권했다. 도연은 평생 그 부적을 가슴팍에 그대로 두었으며, 단필옹 작방에는 지금도 신참 무당의 닳은 종이 한 장이 가장 좋은 자리에 놓인다.

  • 신점거사자(神占居士者)

    신점(神占) 거사

    신점을 보는 거사

    오늘 점괘는 짧습니다. 짧은 점괘일수록 정확하지요. 길게 늘이는 건 점이 아니라 변명입니다.

    신점 거사는 신내림을 받아 점을 보는 평민 출신 무속인으로, 한 마을 골목의 작은 점집을 평생 지킨다. 외형은 단정한 무명 두루마기,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점괘판과 동전 세 닢, 책상 위에 작은 향 한 개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의 모든 옛 점괘의 한 줄·옛 분기 결과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거사의 점괘는 늘 짧고 정확하며, 길게 늘이는 점쟁이를 가장 먼저 멀리한다. 가장 무서운 점괘는 큰 액운의 한 줄이 아니라, 손님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정중히 거절하는 한 줄이다. 거사의 진짜 절기는 신내림이 아니라, 손님의 한 호흡 안에 그 사람이 이미 정한 답을 읽어내는 자세다.

    우리 거사들 사이에 '짧은 한 줄의 거절'이라는 말이 있지요. 손님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정중히 거절해주는 그 한 줄이 진짜 신점이라는 뜻이외다.

    매화점집(梅花卜舍, 골목 끝 작은 점집) 거사 송백연 — 한 골목 모서리에서 사십 년을 한 책상만 지킨 거사 — 의 일화는 '한 줄 거절의 점괘'로 점집 사이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마을 부호 정공자가 도성으로 떠날 길일 한 줄을 묻기 위해 한 닢 큰 은전을 책상에 정중히 올렸다. 송백연은 동전 세 닢을 한 호흡에 굴리고는 그 큰 은전을 정중히 되돌리며 "오늘 그 길일은 정공자가 이미 손바닥 안에 정해 두신 줄이오. 그 줄을 점이라 부르지 않소"라는 짧은 한 줄만 답했다.

    정공자는 그 한 줄을 평생 한 번도 잊지 않았으며, 도성 길에서 큰 사고 한 호흡을 한 자만 옆으로 비켜갔다. 다음 해 봄 정공자는 다시 그 책상 앞에 짧은 차 한 잔과 한 닢 동전만을 정중히 올렸으며, 송백연은 그 차 한 잔만 받고 동전은 정중히 되돌렸다. 매화점집의 책상 옆 작은 향로에는 그날 정공자가 두고 간 짧은 한 줄 메모가 지금도 한 자락 정중히 끼워져 있다.

  • 위패각수(位牌刻手)

    위패(位牌) 각수(刻手)

    위패에 망자의 이름을 새기는 각수

    이 한 글자, 한 사람의 한 생을 모십니다. 그러니 한 호흡으로 새깁니다. 두 호흡은 새긴 게 아닙니다.

    위패 각수는 사당·종가·납골당에 모실 위패에 망자의 이름을 정중히 새겨 넣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가죽 앞치마, 어깨에 작은 끌 묶음, 한 손에 정밀 망치, 책상 위에 닳은 박달나무 위패 한 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위패의 한 줄·옛 분기 모심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글자를 잘못 새기면 그 위패는 다시 쓰이지 않으며, 잘 새기면 다섯 세대를 넘어가는 가묘(家廟)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큰 종가도 작은 마을 사당도 같은 각수의 일정에 맞춰 제례 일자를 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글자는 큰 가문의 위패가 아니라, 가난한 노파가 한 닢 동전으로 새기는 손주의 짧은 이름이다.

    우리 각수들이 가장 손목을 떨며 잡는 끌은 큰 가문의 위패 끌이 아니라 한 닢 동전 손주의 짧은 이름 끌이오. 한 글자에 한 사람의 한 생이 정중히 모셔져 있으니까요.

    박달작방(朴達作房, 옛 충청도 한 마을의 위패 전문 작방) 각수 송수강 — 한 작방에서 사십 년을 한 의자만 지킨 평민 장인 — 의 일화는 '짧은 이름 한 글자'로 사당들 사이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흉년의 겨울 가난한 노파 한 명이 손주의 짧은 위패 한 장을 한 닢 동전으로 의뢰하며 그 짧은 이름 두 글자를 정중히 적어 송수강에게 건넸다. 송수강은 그 두 글자를 한 호흡 안에 새기지 않고, 큰 가문의 큰 위패 한 자리를 사흘 미룬 채 그 짧은 두 글자를 사흘에 걸쳐 정중히 다듬었다. 큰 가문 청지기가 일정 미룸을 따져 들었을 때, 송수강은 작은 위패 한 장을 정중히 들어 보이며 "이 한 글자가 이번 주 가장 무겁다"고 짧게 답했다.

    큰 가문 어른은 그 자리에서 자기 위패 일정을 정중히 양보하고 노파의 위패 자리를 먼저 모시도록 했고, 노파는 그 짧은 두 글자를 한 닢 동전과 한 줄 절로 받아갔다. 박달작방에서는 지금도 큰 가문 위패와 짧은 한 닢 위패가 같은 책상 위에 한 줄로 놓이며, 후대 각수들은 임명 첫 주에 그 책상 앞에 한 호흡 합장한다.

  • 무신화공자(巫神畫工者)

    무신도(巫神圖) 화공

    무신도를 그리는 화공

    이 그림 한 장, 신령께서 앉으실 자리입니다. 색은 적게, 눈은 정확히 — 그게 전부입니다.

    무신도 화공은 굿당 벽에 모실 무신도(巫神圖) — 산신·용왕·칠성·도깨비 — 를 그리는 평민 출신 화공이다. 외형은 짙은 먹빛 학자 도포, 어깨에 닳은 붓 묶음, 한 손에 작은 안료 항아리, 책상 위에 한 장 한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무신도의 한 줄·옛 분기 그림 결재·금기 색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신도의 진짜 무게는 화려한 색이 아니라 신령의 눈 한 줄 위에 있어, 화공은 평생 그 한 줄 눈을 다듬는다. 잘못 그린 눈은 신령이 앉지 않는다는 것이 굿당의 옛 격언이다. 가장 무거운 한 장은 큰 굿당의 무신도가 아니라, 작은 마을 사당에 한 닢 동전으로 들어온 짧은 산신 한 장이다.

    우리 화공들이 평생 다듬는 한 줄은 색이 아니라 신령의 눈 한 줄이오. 그 한 줄이 똑바르면 한 닢 동전 무신도라도 신령께서 한 시즌 정중히 앉아 계시거든요.

    단청작방(丹靑作房, 경기도 옛 한 골목 안의 무신도 전문 작방) 화공 청은재 — 한 작방에서 사십 년을 한 책상만 지킨 화공 — 의 일화는 '짧은 산신 한 장'으로 무신도 작방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한 산골 작은 사당이 큰 굿당이 아닌 작은 산신 무신도 한 장을 한 닢 동전으로 의뢰해 청은재의 작방 문 앞에 정중히 닿았다. 청은재는 큰 굿당의 큰 무신도 한 장을 사흘 미룬 채 그 짧은 산신 한 장의 눈 한 줄을 사흘에 걸쳐 다듬었다. 큰 굿당 박수가 일정 미룸을 짧게 따졌을 때, 청은재는 그 짧은 한 장의 눈 한 줄을 정중히 들어 보이며 "이 눈 한 줄이 이번 주 가장 똑바르다"고 짧게 답했다.

    큰 굿당 박수는 그 자리에서 자기 일정을 정중히 양보했고, 작은 사당 노파는 그 짧은 산신 한 장을 한 닢 동전과 한 줄 절로 받아갔다. 그 다음 한 시즌 동안 그 작은 사당 앞 산짐승은 한 번도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단청작방에서는 지금도 큰 굿당 무신도와 짧은 한 닢 무신도가 같은 책상 위에 한 줄로 정중히 놓인다.

  • 제물정인자(祭物整人者)

    제물(祭物) 정인(整人)

    제사상의 제물을 정갈히 차리는 자

    고기는 한 점, 떡은 세 켜, 술은 석 잔. 다른 가짓수는 받지 않습니다. 제례는 셈이 아니라 자세입니다.

    제물 정인은 큰 제례·굿·고사에 올릴 제물(祭物)을 정중히 손질하고 배치하는 평민 출신 의례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무명옷,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작은 식칼, 책상 위에 닳은 제기(祭器)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제물의 한 줄·옛 분기 배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정인의 손이 닿지 않은 제물은 굿당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옛 규칙이 있어, 큰 굿이든 작은 고사든 그의 일정에 맞춰 시각을 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점은 큰 제물의 한 점이 아니라, 가난한 노파가 한 닢 동전으로 들고 온 닳은 떡 한 켜다. 정인의 진짜 절기는 칼질이 아니라, 그 한 켜 떡을 큰 제물과 똑같이 정중히 다루는 자세다.

    우리 정인들이 닳은 한 켜 떡을 큰 제물 한 점 옆에 정중히 놓는 데는 이유가 있소. 제례는 셈이 아니라 자세이고, 그 한 켜가 한 시즌 큰 제물 위에 한 줄 결재로 올라가거든요.

    백수재(白手齋, 강원도 옛 한 큰 마을의 제물 정인 전문 작방) 정인 노수강 — 한 작방에서 사십 년을 한 책상만 지킨 정인 — 의 일화는 '닳은 한 켜 떡'으로 굿당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큰 종가의 큰 제례 전날 가난한 노파 한 명이 한 닢 동전과 닳은 짧은 떡 한 켜를 들고 정중히 작방을 찾아왔다. 노수강은 그 짧은 떡 한 켜를 큰 종가의 큰 제물 한 점 옆에 정중히 같은 제기 위에 놓도록 한 줄 배치를 짠 뒤, 큰 종가의 청지기에게 그 한 켜를 빼라는 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큰 종가 어른은 자기 청지기를 한 호흡 만에 멈춘 뒤 그 짧은 한 켜가 큰 제물 한 점과 같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정중히 받아들였고, 그날 큰 제례의 결재 한 줄에 그 한 켜의 무게가 한 줄로 적혔다.

    노파는 그 큰 제례에 동참한 적이 없었으나 다음 새벽 손주의 짧은 병환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비켜갔다는 소문이 마을에 한 줄 돌았다. 백수재 작방에서는 지금도 큰 종가 제물과 짧은 한 켜 떡이 같은 제기 위에 한 줄로 정중히 놓인다.

  • 사찰종지기(寺刹鐘지기)

    사찰 종지기

    절의 종을 치는 종지기

    한 번에 셋, 그 다음 다섯, 마지막에 일곱 — 셈을 잘못 치면 산짐승이 산문(山門) 안으로 들어옵니다.

    사찰 종지기는 한 사찰의 큰 종(鐘)을 새벽·정오·해질녘에 정중히 치는 평민 출신 종지기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승복, 어깨에 작은 망토, 한 손에 닳은 종 채, 가슴팍에 작은 염주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사찰의 모든 옛 종소리의 한 줄·옛 분기 타종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종소리의 셈을 잘못 치면 산짐승이 사찰 안으로 들어온다는 옛 격언이 있어, 종지기는 평생 셋·다섯·일곱의 셈을 손목에 외우고 산다. 가장 무거운 한 번의 종소리는 큰 법회의 첫 종이 아니라, 가난한 마을 노파의 새벽 한 끼를 깨우는 짧은 한 번이다. 종지기는 평생 한 번도 그 노파를 마주친 적이 없지만, 그 한 번의 종소리가 한 마을 한 시즌의 새벽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종지기들 사이에 '셋·다섯·일곱의 새벽'이라는 셈법이 있어요. 셈을 잘못 치면 산짐승이 한 줄 들어오는 게 아니라 한 마을의 한 끼가 한 새벽 늦어진다는 뜻이지요.

    운림사(雲林寺, 강원도 깊은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사찰) 종지기 묵행 — 한 종각에서 사십 년을 한 채만 지킨 종지기 — 의 일화는 '한 번의 새벽 종'으로 산골 마을에 길게 전한다.

    어느 겨울 새벽 묵행이 셋·다섯·일곱의 셈을 한 호흡 잘못 칠 뻔했으나, 마지막 일곱 번째에서 한 호흡을 다시 가다듬어 정확히 한 박자를 맞춰 종을 쳤다. 그 한 호흡 차이가 산자락 호랑이 한 마리의 발자국을 산문 안쪽 두 자(尺)에서 정확히 멈추게 만들었다는 격언이 마을에 남아 있다. 같은 새벽 산 아래 가난한 노파의 짧은 한 끼는 그 한 박자에 맞춰 한 호흡 일찍 데워졌고, 노파는 그 한 끼를 평생 묵행의 새벽 종 한 번에 빚지고 있다고 말했다.

    묵행은 그 노파를 평생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으며, 노파 또한 묵행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운림사 종각 들보에는 지금도 셋·다섯·일곱의 셈이 짧은 먹글씨로 한 줄 새겨져 있으며, 후대 종지기들은 임명 첫 주에 그 한 줄에 합장한다.

  • 신향조향사(神香調香師)

    향(香) 조향사

    신당의 향을 조합하는 조향사

    이 향 한 묶음, 굿당용·사당용·산신각용으로 나뉩니다. 섞어 쓰시면 향이 길을 잃습니다.

    향 조향사는 굿당·사당·산신각·사찰에 납품할 향(香)을 정중히 조합하고 말려내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짙은 먹빛 작업복, 어깨에 작은 향나무 가루 가방, 한 손에 닳은 절구, 책상 위에 한 줄 향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향의 한 줄·옛 분기 조합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잘못 조합한 향은 굿당에서 신령이 앉지 않으며, 잘 조합한 향은 새벽 한 줄 바람만으로 산신각의 길을 부드럽게 한다. 그래서 큰 굿당도 작은 산신각도 같은 조향사의 일정에 맞춰 제례 시각을 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묶음은 큰 굿당의 향이 아니라, 가난한 노파가 한 닢 동전으로 들고 가는 짧은 한 개비의 향이다.

    우리 조향사들이 짧은 한 개비를 큰 한 묶음 옆에 같은 가격표로 묶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소. 그 짧은 한 개비가 한 새벽 한 줄 바람을 그대로 건너오거든요.

    향림재(香林齋, 충청도 옛 한 골목 안의 향 전문 작방) 조향사 운향노인 — 한 작방에서 사십 년을 한 절구만 지킨 조향사 — 의 일화는 '짧은 한 개비의 새벽 바람'으로 굿당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늦봄 큰 굿당이 큰 한 묶음을 의뢰하던 같은 날, 가난한 노파 한 명이 한 닢 동전으로 짧은 한 개비를 의뢰해 작방 문 앞에 정중히 닿았다. 운향노인은 큰 굿당의 큰 한 묶음을 사흘 미룬 채 그 짧은 한 개비의 향나무 가루 결을 사흘에 걸쳐 정중히 골라냈다. 큰 굿당 박수가 일정 미룸을 따져 들었을 때, 운향노인은 그 짧은 한 개비를 정중히 들어 보이며 "이 한 개비 한 줄 바람이 이번 주 가장 정중하다"고 짧게 답했다.

    큰 굿당 박수는 자기 일정을 정중히 양보했고, 노파는 그 짧은 한 개비를 한 닢 동전과 한 줄 절로 받아 산신각으로 향했다. 그 짧은 한 개비의 한 줄 바람은 산신각 마당에 새벽 한 호흡 정중히 머물렀고, 향림재 작방에서는 지금도 큰 한 묶음과 짧은 한 개비가 같은 책상 위에 한 줄로 놓인다.

  • 굿거리장단(굿거리長短)

    굿거리 장단잡이

    굿거리 장단을 잡는 잡이

    장단이 한 박자 늦으면 신령이 한 호흡 멀어지십니다. 그래서 박수가 졸려도 저는 못 졸지요.

    굿거리 장단잡이는 굿판에서 박수·만신의 굿거리에 맞춰 장구·꽹과리·징의 장단을 정확히 잡아주는 평민 출신 악사다. 외형은 짙은 색 무명옷, 어깨에 작은 장구띠, 한 손에 닳은 장구채, 책상 위에 옛 장단 메모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굿거리 장단의 한 줄·옛 분기 박자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장단이 한 박자 늦으면 신령이 한 호흡 멀어진다는 옛 격언이 있어, 장단잡이는 평생 박수의 호흡을 손목에 외우고 산다. 가장 무거운 한 박자는 큰 굿판의 첫 장단이 아니라, 가난한 마을 노파의 짧은 푸닥거리에 맞춰주는 닳은 한 박자다. 장단잡이의 진짜 절기는 화려한 장단이 아니라, 그 짧은 한 박자를 큰 굿판과 똑같이 정중히 잡아주는 자세다.

    우리 장단잡이들 사이에 '졸린 박수의 한 박자'라는 말이 있지요. 박수가 졸려도 우리는 못 조는 까닭이외다 — 한 박자 늦으면 신령이 한 호흡 멀어지시니까.

    청솔당(靑松堂) 장단잡이 마장연 — 한 굿당에서 사십 년을 한 장구만 잡은 평민 악사 — 의 일화는 '짧은 푸닥거리의 한 박자'로 굿거리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한여름 새벽 마을 가난한 노파 한 명이 외동손주의 짧은 푸닥거리 한 판을 한 닢 동전으로 의뢰해 굿당 마당에 정중히 자리를 잡았다. 큰 굿거리도 아니었기에 박수가 한 호흡 졸음에 빠져 짧은 한 박자를 놓칠 뻔한 한 자락이 있었으나, 마장연은 그 한 호흡 안에 자기 장구채로 짧은 한 박자를 정확히 잡아 박수의 호흡을 한 줄 다시 끌어왔다. 그 짧은 한 박자가 노파 손주의 짧은 병환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비키게 했다는 소문이 마을에 한 줄 돌았다.

    마장연은 그 한 박자를 평생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으며, 노파는 그 짧은 푸닥거리 이후 매 절기마다 마장연의 장구 머리에 짧은 한 자락 천을 정중히 묶어두었다. 청솔당 굿당 들보에는 지금도 노파가 묶어둔 한 자락 천이 한 줄로 정중히 매여 있다.

  • 묘지벌초공(墓地伐草工)

    묘지 벌초꾼

    묘지의 풀을 베는 벌초꾼

    한 자손이 못 오시면 제가 한 번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풀을 베지요. 풀은 풀이고, 인사는 인사니까요.

    묘지 벌초꾼은 한 마을의 묘지를 매 절기마다 정중히 벌초하고 묘비 한 줄을 닦아내는 평민 출신 일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닳은 낫, 어깨에 작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묘의 한 줄·옛 분기 벌초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자손이 멀리 가서 벌초를 못 오면 벌초꾼이 그 묘 앞에 한 번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풀을 벤다는 옛 풍습이 있어, 마을 노인들은 그를 가장 신뢰한다. 가장 무거운 한 번의 낫질은 큰 종가의 묘가 아니라, 자손이 끊어진 무연고 묘 위에 정중히 올라가는 짧은 한 번의 인사다. 벌초꾼은 평생 그 인사를 한 번도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 벌초꾼들 사이에 '무연고 한 번의 인사'라는 말이 있어요. 자손이 끊어진 묘 앞에 정중히 한 번 절을 올리는 그 짧은 한 번이 진짜 벌초꾼의 한 줄이지요.

    한산공원묘(寒山公園墓, 강원도 한 산자락에 자리한 옛 마을 공동묘지) 벌초꾼 송한 — 한 묘지에서 사십 년을 한 자리만 지킨 평민 일꾼 — 의 일화는 '무연고 한 번의 절'로 마을 어귀에 길게 전한다.

    어느 한식날 새벽, 자손이 끊어져 사십 년 풀에 묻혀 있던 무연고 묘 한 자리 앞에 송한이 평소처럼 정중히 인사 한 번을 올린 뒤 풀을 베었다. 그 새벽 산 아래 마을의 한 떠돌이 노인이 자기 어릴 적 어머니의 묘를 사십 년 만에 찾아 한식날 산문에 올랐고, 송한이 정중히 풀을 벤 그 자리가 바로 그 노인의 어머니 묘였다. 노인은 그 자리 앞에 한 호흡 무릎을 꿇고 송한을 마주 보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숨을 가다듬었으며, 송한은 그 한 호흡 동안 자기 낫을 정중히 옆 자락에 풀어두고 한 발자국 물러섰다.

    노인은 다음 새벽 짧은 한 줄 편지와 한 닢 동전을 묘비 옆에 정중히 올려 두고 마을을 떠났으며, 송한은 그 편지를 평생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채 묘비 옆 작은 돌 밑에 정중히 끼워 두었다. 한산공원묘의 그 묘비 옆 작은 돌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 동제심부름(洞祭심부름)

    동제(洞祭) 심부름꾼

    마을 동제의 심부름을 하는 자

    어르신, 제물 한 그릇은 동쪽 끝집부터 돌립니다. 순서가 마을의 한 시즌을 정합니다.

    동제 심부름꾼은 마을의 동제(洞祭) — 마을 수호신에게 올리는 공동 제례 — 의 잔심부름을 도맡는 평민 출신 일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무명옷, 머리에 작은 흰 두건, 한 손에 작은 제물 그릇, 어깨에 짧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동제의 한 줄·옛 분기 심부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동제 한 판의 순서는 박수도 거사도 아닌 심부름꾼의 머릿속 표 위에서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한 그릇은 큰 동제의 첫 그릇이 아니라, 동쪽 끝집 가난한 노파에게 닿는 짧은 한 그릇 위에 있다. 심부름꾼은 평생 그 한 그릇의 순서를 한 번도 어기지 않는다.

    우리 심부름꾼들 사이에 '동쪽 끝집의 한 그릇'이라는 말이 있어요. 동제 한 판의 진짜 결재는 박수도 거사도 아닌 그 짧은 한 그릇의 순서 위에 있다는 뜻이지요.

    솔뫼마을 동제 심부름꾼 한지로 — 한 마을 동제 마당에서 사십 년을 한 자리만 뛰어다닌 평민 일꾼 — 의 일화는 '동쪽 끝집 짧은 한 그릇'으로 마을 어귀에 길게 전한다.

    어느 정월 동제 새벽, 마을 청년 한 명이 동제 제물 그릇을 동쪽 끝집부터 돌리는 옛 순서를 짧게 따져 들며 큰 종가집부터 돌리자고 청한 일이 있었다. 한지로는 그 청년의 청을 한 호흡 만에 정중히 거절하며 "동쪽 끝집 노파 한 분이 마을의 한 시즌 첫 한 그릇을 평생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는 짧은 한 줄만 답했다. 청년은 그 한 줄 앞에 자기 청을 정중히 거두었고, 한지로는 그날도 동쪽 끝집 노파의 한 그릇부터 정중히 돌렸다.

    그 노파는 그해 봄 짧은 병환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비켜갔고, 마을의 한 시즌 동제 결재 명부 첫 줄에는 한지로의 그 짧은 한 줄이 그대로 적혔다. 솔뫼마을 동제 마당 한쪽에는 지금도 한지로가 사십 년 동안 정중히 든 짧은 제물 그릇 한 개가 한 자리에 정중히 놓여 있다.

  • 산문안내자(山門案內者)

    산문(山門) 길안내

    산문 길을 안내하는 자

    이 길로 한 자만 들어가시고, 두 자는 들어가지 마시지요. 두 자부터는 산이 가르치시는 영역입니다.

    산문 길안내는 영험하다는 산기슭 산문(山門) 앞에서 나그네에게 산길을 짧게 일러주는 평민 출신 길잡이다. 외형은 닳은 무명 두루마기,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닳은 지팡이, 어깨에 짧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산의 모든 옛 산길의 한 줄·옛 분기 안내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산문 안쪽 두 자(尺)부터는 사람이 가르칠 영역이 아니라 산이 직접 가르친다는 옛 격언이 있어, 길안내는 평생 한 자까지만 정중히 알려주고 그 다음은 손짓으로 가른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안내는 큰 등산객의 한 줄이 아니라, 가난한 순례자가 짚신 한 켤레로 들어서는 짧은 첫 한 자 위에 있다. 산문 길안내의 진짜 절기는 길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산이 가르치시는 영역 앞에서 정중히 멈추는 자세다.

    우리 산문 길안내들 사이에 '한 자에서 멈추는 손짓'이라는 말이 있어요. 두 자부터는 산이 직접 가르치시는 영역이라, 한 자만 정중히 일러주고 그 다음은 손짓으로 가른다는 뜻이지요.

    운악산문(雲岳山門, 경기 북부 한 봉우리 자락의 옛 산문) 길안내 노건척 — 한 산문에서 사십 년을 한 지팡이만 짚은 평민 길잡이 — 의 일화는 '두 자의 손짓'으로 산문 어귀에 길게 전한다.

    어느 늦가을 새벽 도성에서 온 한 떠돌이 학자가 산 깊이 옛 부도(浮屠) 한 자리를 찾아간다고 청해 산문 앞에 닿았다. 노건척은 정중히 한 자(尺)까지 길을 일러준 뒤 두 자부터는 자기 지팡이를 옆 자락에 정중히 풀어두고 손짓으로 산 안쪽 한 갈래만 가리켰다. 학자는 그 한 갈래를 따라 산 안쪽 두 자를 들어섰고, 그 자리에서 옛 부도 한 자리에 깃든 짧은 비석 한 줄을 한 호흡 만에 발견했다.

    학자가 다음 새벽 산문 앞에 한 닢 동전과 짧은 한 줄 편지를 정중히 두고 떠난 뒤, 노건척은 그 동전을 받지 않고 그 자리 옆 작은 돌 밑에 정중히 끼워 두었다. 운악산문 어귀에는 지금도 그 짧은 한 줄 편지가 작은 돌 밑에 한 자락 그대로 끼워져 있으며, 후대 길안내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돌 앞에 한 호흡 합장한다.

  • 삼신산파자(三神産婆者)

    삼신(三神) 산파(産婆)

    삼신의 손길로 아이를 받는 산파

    삼신할미의 손은 제 손 위에 한 겹 더 얹혀 있습니다. 그래서 한 호흡, 두 호흡, 세 호흡—그 다음은 제가 셈하지 않습니다.

    삼신 산파는 삼신할미(産神)의 가호를 빌어 한 마을의 새 생명을 받아내는 무속·산파 융합 전문가다. 외형은 단정한 흰 무명옷, 머리에 흰 두건, 허리에 작은 약초 주머니, 한 손에 따뜻한 물 한 그릇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실(産室)의 한 줄·옛 분기 산고(産苦)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삼신 산파의 진짜 절기는 손기술이 아니라, 산모의 한 호흡 안에 삼신할미의 한 줄 응답을 받아내는 자세다. 가장 무거운 한 번의 받음은 큰 종가의 첫 손주가 아니라, 자손이 끊어질 뻔한 가난한 노파의 외동 손녀의 짧은 첫 울음 위에 있다. 산파는 평생 그 한 호흡을 한 번도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 산파들 사이에 '삼신할미의 한 겹'이라는 말이 있어요. 손기술 위에 한 겹 더 얹혀 있는 그 손이 진짜 받음이라는 뜻이지요.

    솔잎산파댁 산파 강목련 — 한 산실(産室)에서 사십 년을 한 자리만 받은 평민 산파 — 의 일화는 '한 호흡의 외동 손녀'로 산골 마을에 길게 전한다.

    어느 늦겨울 새벽 자손이 끊어질 뻔한 가난한 노파의 외동 며느리가 산고 한 자락을 길게 끌어 산실 한쪽에서 한 호흡이 가늘게 흔들리는 자리에 닿았다. 강목련은 큰 약초 처방을 새로 펴지 않고, 자기 손바닥 위에 따뜻한 물 한 그릇을 정중히 받친 채 며느리의 한 호흡 옆에 자기 한 호흡을 한 자리만 정중히 맞춰 갔다. 그 한 호흡 안에 짧은 첫 울음 한 줄이 산실 천장에 정중히 닿았고, 외동 손녀는 그 짧은 첫 울음으로 한 시즌 새벽을 받았다.

    가난한 노파는 그 손녀의 짧은 첫 울음을 한 호흡 동안 마당 끝에서 정중히 듣고 마당에 무릎을 꿇은 채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으며, 강목련은 그 산실의 자리에서 자기 약초 주머니의 짧은 한 자락만을 정중히 정리했다. 솔잎산파댁 산실 들보에는 지금도 외동 손녀의 짧은 이름 한 줄이 정중히 적혀 있으며, 강목련은 그 한 줄을 평생 한 번도 누구에게도 직접 발설하지 않았다.

  • 옥추송경자(玉樞誦經者)

    옥추경(玉樞經) 송경자(誦經者)

    옥추경을 읊는 송경자

    이 경(經) 한 권, 천둥 한 줄을 모십니다. 잘못 외우면 천둥이 옆으로 비키시고, 잘 외우면 한 마을의 한 시즌이 비를 받습니다.

    옥추경 송경자는 도교 계열 옥추경(玉樞經)을 평생 외워 천둥·번개·비의 신령을 청하는 송경 전문가다. 외형은 짙은 청색 도포, 머리에 갓, 한 손에 닳은 경전, 책상 위에 작은 청동 종(鐘)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옥추경의 한 줄·옛 분기 송경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송경자의 한 호흡이 한 박자 늦으면 천둥이 옆 마을로 비키고, 한 호흡이 정확하면 가뭄 든 마을 위로 한 줄 비가 내린다는 옛 격언이 야사에 남아 있다. 가장 무거운 한 권의 외움은 큰 도관(道觀)의 송경이 아니라, 가난한 농부 한 명의 마른 논두렁 위에 정중히 올려지는 짧은 한 줄 송경 위에 있다. 송경자의 진짜 절기는 큰 소리가 아니라, 그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끝까지 받아내는 자세다.

    우리 송경자들 사이에 '마른 논두렁의 한 줄'이라는 말이 있지요. 큰 도관의 큰 송경보다 가난한 농부 한 명 마른 논 위의 짧은 한 줄 송경이 한 시즌 비를 더 정중히 받는다는 뜻이외다.

    옥추도관(玉樞道觀, 강원도 깊은 산자락의 옛 도교 도관) 송경자 단경자 — 한 도관에서 사십 년을 한 경전만 외운 송경자 — 의 일화는 '마른 논두렁 한 줄 송경'으로 도교 야사에 길게 전한다.

    어느 한 해 큰 가뭄이 두 골짜기를 한 시즌 마르게 만들었을 때, 큰 도관의 큰 송경 한 판이 두 차례 비를 한 줄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단경자는 큰 도관 자리를 정중히 미룬 채 가난한 농부 한 명의 마른 논두렁 위에 한 자락 짚풀을 깔고 자기 옥추경 한 권을 정중히 펼쳤다. 한 호흡 한 호흡을 한 자리에서 끝까지 받아낸 그 짧은 한 줄 송경 끝에 산 너머에서 짧은 한 줄 비가 두 시진을 정중히 그 두 골짜기에 내렸다.

    단경자는 그 짧은 한 줄 비를 자기 송경 명부 어디에도 적지 않은 채, 농부의 짧은 인사 한 번을 정중히 받고 도관으로 돌아갔다. 옥추도관 큰 향로 옆 작은 향로에는 지금도 그 농부가 두고 간 짧은 한 자락 짚풀이 정중히 끼워져 있다.

  • 솟대세움자(솟대세움者)

    솟대 세움이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우는 자

    솟대 한 자루, 새 한 마리를 모십니다. 새가 앉지 않으시면 한 자만 더 깊이 박지요. 깊이는 거짓을 못 합니다.

    솟대 세움이는 마을 어귀에 솟대(蘇塗)를 정중히 세우고 그 위에 나무 새를 깎아 올리는 평민 출신 의례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무명 작업복, 어깨에 작은 끌 묶음, 한 손에 닳은 깎이칼, 등에 짧은 솟대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솟대의 한 줄·옛 분기 세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솟대의 진짜 무게는 높이가 아니라 박힌 깊이 위에 있어, 세움이는 평생 그 한 자 깊이를 손목에 외우고 산다. 잘못 박힌 솟대 위에는 새가 앉지 않는다는 옛 격언이 있어, 큰 마을도 작은 마을도 같은 세움이의 일정에 맞춰 동제(洞祭) 시각을 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자루는 큰 마을의 솟대가 아니라, 자손이 끊어진 마을의 닳은 짧은 한 자루 위에 있다.

    우리 솟대 세움이들 사이에 '깊이는 거짓을 못한다'는 말이 있어요. 새가 앉지 않으시면 한 자만 더 깊이 박는 그 자세가 진짜 솟대의 한 줄이지요.

    갈매마을 솟대 세움이 박깊이 — 한 마을 어귀에서 사십 년을 한 자루 깎이칼만 잡은 평민 장인 — 의 일화는 '한 자 더 깊이'로 마을 어귀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폐촌(廢村) 끝자락 자손이 끊어진 짧은 마을 한 자리에 옛 솟대 한 자루가 한 호흡 흔들리며 새가 한 번도 앉지 않은 날들이 한 시즌 길어진 일이 있었다. 박깊이는 큰 마을의 큰 솟대 일정을 사흘 미룬 채 그 폐촌의 짧은 한 자루를 한 자만 더 깊이 정중히 박아 두었다. 큰 마을 청지기가 일정 미룸을 따져 들었을 때, 박깊이는 자기 깎이칼을 정중히 옆 자락에 풀어두며 "이 한 자루 새가 안 앉으면 큰 마을 솟대도 한 줄 흔들린다"고 짧게 답했다.

    그 짧은 한 자루 솟대 위에 다음 새벽 작은 산새 한 마리가 한 호흡 정중히 내려앉았고, 큰 마을의 큰 솟대 위에도 그 다음 한 자락 새벽 새가 한 줄로 정중히 앉았다. 갈매마을 큰 솟대 옆에는 지금도 폐촌의 짧은 그 한 자루가 한 자락 그대로 정중히 세워져 있다.

  • 성황당당주(城隍堂堂主)

    성황당(城隍堂) 당주(堂主)

    성황당을 지키는 당주

    돌 한 개, 천 한 자락—성황님께 올리실 거면 한 자락 더 정성껏. 두 자락은 셈이 되고, 세 자락은 거래가 됩니다.

    성황당 당주는 마을 고개 어귀의 성황당(城隍堂)을 평생 지키며 오가는 나그네의 돌 한 개·천 한 자락을 정중히 받아 모시는 평민 출신 무속 관리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두루마기, 머리에 작은 갓, 한 손에 닳은 빗자루, 어깨에 짧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성황당의 한 줄·옛 분기 봉헌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당주의 진짜 절기는 돌탑을 쌓는 손기술이 아니라, 어떤 돌을 어느 자락 천 위에 정중히 올릴지 한 호흡으로 정하는 자세다. 가장 무거운 한 개의 돌은 큰 행렬의 봉헌석이 아니라, 가난한 나그네가 짚신 한 켤레 끝에서 떨어뜨리는 짧은 한 개의 돌 위에 있다. 당주는 평생 그 한 개를 한 번도 가볍게 쓸어내지 않는다.

    우리 당주들 사이에 '짚신 끝의 한 개'라는 말이 있어요. 한 자락 천 위에 어떤 돌을 정중히 올릴지 한 호흡으로 정하는 자세가 진짜 당주의 결재라는 뜻이지요.

    청고개 성황당 당주 노청한 — 한 고개 어귀에서 사십 년을 한 빗자루만 잡은 평민 당주 — 의 일화는 '짚신 끝의 한 개 돌'로 고갯마루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늦가을 새벽 가난한 떠돌이 순례자 한 명이 짚신 한 켤레로 고개를 한 자락 넘으며 자기 짚신 끝에서 한 개 돌을 정중히 떨어뜨리고 한 자락 짧은 천을 함께 흘리고 떠난 일이 있었다. 그 한 개의 돌은 마침 큰 행렬의 큰 봉헌석이 한 호흡 자리를 비킨 그 자리에 정중히 놓였고, 노청한은 그 한 개를 큰 봉헌석 옆자리에 정중히 같은 자락 천 위에 올려두었다. 큰 행렬 어른이 자기 봉헌석 옆에 짧은 한 개의 돌이 한 줄로 놓인 것을 본 그 자리에서, 그는 자기 봉헌석을 한 자만 옆으로 정중히 옮기며 그 한 개의 돌이 한 줄 가운데로 가도록 양보했다. 그 한 줄 자리는 지금도 청고개 성황당 한 자락에 정중히 그대로 남아 있으며, 노청한은 그 한 개를 평생 한 번도 쓸어내지 않았다.

    후대 당주들은 임명 첫 주에 그 한 개 앞에 한 호흡 합장한다.

  • 신살책력가(神煞冊曆家)

    신살(神煞) 보는 책력가(冊曆家)

    신살을 보는 책력가

    오늘은 길일이지만 한 시진(時辰) 안에 작은 신살이 한 줄 끼어 있습니다. 그 한 줄만 비키시면 됩니다.

    신살 보는 책력가는 한 해의 책력(冊曆) 위에 길일·흉일·신살(神煞)의 한 줄을 정중히 표시해 내는 평민 출신 역술 전문가다. 외형은 짙은 먹빛 학자 도포, 어깨에 작은 책력 묶음, 한 손에 닳은 붓, 책상 위에 한 권 책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책력의 한 줄·옛 분기 길흉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책력가의 진짜 절기는 큰 길일을 골라내는 손이 아니라, 길일 한 줄 안에 끼어 있는 짧은 한 시진의 신살을 정확히 짚어내는 자세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종가의 혼사 길일이 아니라, 가난한 노파가 한 닢 동전으로 묻는 손주의 짧은 책가방 첫날 위에 있다. 책력가는 평생 그 한 줄을 한 번도 대충 적지 않는다.

    우리 책력가들 사이에 '짧은 한 시진의 신살'이라는 말이 있어요. 큰 길일 한 줄이 아니라 그 길일 안에 끼어 있는 한 시진을 정확히 짚어내는 자세가 진짜 책력의 한 줄이지요.

    한해책력재(寒海冊曆齋, 충청도 옛 한 골목의 책력 전문 작방) 책력가 단력자 — 한 작방에서 사십 년을 한 책력만 짚은 평민 책력가 — 의 일화는 '짧은 책가방 첫날'으로 책력가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늦겨울 가난한 노파 한 명이 한 닢 동전으로 손주의 짧은 서당 첫날 한 시진의 길흉을 정중히 물어 책상에 닿았다. 단력자는 큰 종가의 큰 혼사 길일 결재를 정중히 사흘 미룬 채 그 짧은 첫날의 한 시진 안에 끼어 있는 작은 신살 한 줄을 사흘에 걸쳐 짚어 보였다. 큰 종가 청지기가 일정 미룸을 따져 들었을 때, 단력자는 자기 붓을 정중히 옆 자락에 풀어두며 "이 짧은 한 시진이 이번 주 가장 무겁다"고 짧게 답했다.

    큰 종가 어른은 그 자리에서 자기 일정을 정중히 양보했고, 노파의 손주는 그 짧은 한 시진을 한 자만 비켜선 채 책가방 첫날을 한 호흡으로 통과했다. 한해책력재의 책상 옆에는 지금도 노파가 두고 간 짧은 책가방 끈 한 자락이 정중히 한 줄로 끼워져 있다.

  • 한지봉인사(韓紙封印師)

    한지(韓紙) 봉인사(封印師)

    한지로 신물(神物)을 봉인하는 술사

    이 한 장, 흉(凶)을 한 호흡 안에 가둡니다. 두 장은 가두지 못하고, 세 장은 흉이 종이를 비웃습니다.

    한지 봉인사는 흉기(凶氣)·잡귀(雜鬼)를 한지(韓紙) 한 장 위에 정중히 봉인해 가두는 평민 출신 무속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한지 묶음, 한 손에 닳은 붓, 다른 손에 주사(朱砂) 작은 항아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봉인의 한 줄·옛 분기 한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봉인사의 진짜 절기는 화려한 부적이 아니라, 한 장 한지 위에 한 호흡으로 흉을 가두는 자세다. 잘못 봉인한 한지는 흉이 종이를 찢고 나오며, 잘 봉인한 한지는 다섯 세대 가묘(家廟) 안에서 한 줄도 떨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장은 큰 굿당의 봉인이 아니라, 가난한 어머니가 한 닢 동전으로 들고 온 어린 자식의 짧은 흉 한 줄 위에 있다.

    우리 봉인사들 사이에 '한 호흡으로 가둔다'는 말이 있어요. 두 호흡이면 흉이 종이를 비웃고 세 호흡이면 종이가 찢어진다는 뜻이지요. 손목을 떨면 흉도 같이 떨어요.

    한지작방(韓紙作房, 황해도 옛 한 골목의 한지 봉인 전문 작방) 봉인사 묵봉 — 한 작방에서 사십 년을 한 붓만 잡은 평민 장인 — 의 일화는 '어린 자식 짧은 한 줄 흉'으로 봉인사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깊은 겨울 가난한 어머니 한 명이 한 닢 동전으로 어린 자식의 짧은 흉 한 줄 — 자다 일어나면 천장 한 자락을 한참 노려보는 짧은 버릇 — 을 정중히 의뢰해 작방 문 앞에 닿았다. 묵봉은 큰 굿당의 큰 봉인 한 장을 정중히 사흘 미룬 채 짧은 한 장 한지 위에 한 호흡으로 그 짧은 흉 한 줄을 정중히 가두었다. 큰 굿당 박수가 일정 미룸을 짧게 따졌을 때, 묵봉은 그 짧은 한 장을 정중히 들어 보이며 "이 한 줄 흉이 이번 주 한 호흡 가장 가깝다"고 짧게 답했다.

    어머니는 그 짧은 한 장을 자식의 베개 밑에 정중히 한 자락 끼워 두었고, 자식은 그 새벽부터 천장 한 자락을 더 이상 노려보지 않았다. 한지작방 책상 옆에는 지금도 어머니가 두고 간 짧은 한 닢 동전이 정중히 한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 죽반점상지기(竹盤占床지기)

    죽반(竹盤) 점상(占床)지기

    죽반 점상을 지키는 자

    오늘 죽반의 결, 어제와 한 줄이 다릅니다. 그 한 줄만 보시지요. 나머지 줄은 답이 아니라 길이지요.

    죽반 점상지기는 한 마을 점집의 죽반(竹盤) — 대나무를 엮어 만든 점치는 상 — 을 평생 닦고 결을 살피는 평민 출신 일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닳은 마른 천, 어깨에 짧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죽반의 한 줄·옛 분기 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점상지기의 진짜 절기는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죽반의 결 한 줄이 어제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손끝으로 짚어내는 자세다. 그래서 신점 거사도 큰 굿당 박수도 점상지기의 한마디 짧은 보고를 가장 먼저 듣고 점괘를 시작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점집의 죽반이 아니라, 골목 끝 작은 점집의 닳은 한 자락 결 위에 있다.

    우리 점상지기들 사이에 '어제와 오늘 사이의 한 줄'이라는 말이 있어요. 점을 보는 게 아니라 죽반의 결 한 줄이 어제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손끝으로 짚어내는 자세, 그게 진짜 점상이지요.

    매화점집(앞서 360011 거사 송백연이 사십 년 지킨 그 골목 끝 점집) 점상지기 단면 — 한 점집 죽반 옆에서 삼십 년을 한 마른 천만 잡은 평민 일꾼 — 의 일화는 '한 자락 결의 짧은 보고'로 점집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늦봄 단면이 새벽에 죽반 결 한 자락이 어제와 한 줄 어긋나 있는 것을 손끝으로 짚어내고는, 거사 송백연에게 정중히 짧은 한마디 보고를 올렸다. 송백연은 그 짧은 한마디를 듣고 그날 첫 점괘 한 줄을 평소보다 더 짧게 답했고, 그날 첫 손님은 그 짧은 한 줄에 자기 길을 한 자만 옆으로 정중히 비켜갔다. 같은 날 큰 점집의 큰 죽반은 그 한 자락 어긋남을 짚어내지 못한 채 평소처럼 결재를 굴렸으며, 큰 점집의 그날 손님 한 명이 짧은 한 자락 길흉을 한 호흡 어긋난 채로 받았다는 소문이 골목 끝까지 전해졌다.

    매화점집 죽반 옆에는 지금도 단면이 사십 년 닦은 짧은 한 자락 마른 천이 정중히 한 자리에 놓여 있으며, 후대 점상지기들은 임명 첫 주에 그 천 앞에 한 호흡 합장한다.

  • 청수우물지기(淸水井戶지기)

    청수(淸水) 길어주는 우물지기

    정화수를 길어 올리는 우물지기

    이 한 그릇 청수(淸水), 굿당으로 가실 거면 동쪽 두레박. 사당으로 가실 거면 서쪽 두레박. 섞어 길으시면 물이 길을 잃습니다.

    청수 길어주는 우물지기는 한 마을의 옛 우물 한 곳을 평생 지키며 굿당·사당·산신각·제례에 올릴 청수(淸水)를 정중히 길어주는 평민 출신 일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무명옷,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닳은 두레박, 어깨에 짧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우물의 한 줄·옛 분기 청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우물의 동쪽 두레박과 서쪽 두레박은 길이 다르며, 섞어 길으면 청수가 길을 잃는다는 옛 격언이 있어, 우물지기는 평생 그 두 두레박을 손목에 외우고 산다. 가장 무거운 한 그릇은 큰 굿당의 청수가 아니라, 가난한 노파가 한 닢 동전으로 길어가는 새벽 한 그릇의 청수 위에 있다.

    우리 우물지기들 사이에 '동쪽 두레박과 서쪽 두레박'이라는 말이 있어요. 섞어 길으면 청수가 길을 잃는다는 뜻이라, 평생 두 두레박을 손목에 외우고 산다오.

    솔샘우물(松泉, 경기도 한 마을의 옛 큰 우물) 우물지기 노청수 — 한 우물에서 사십 년을 한 두레박만 잡은 평민 일꾼 — 의 일화는 '새벽 한 그릇의 청수'로 마을 어귀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한여름 새벽 가난한 노파 한 명이 한 닢 동전으로 사당 청수 한 그릇을 정중히 의뢰해 우물가에 닿았다. 노청수는 큰 굿당이 의뢰한 큰 두레박 한 자루의 새벽 길음을 정중히 한 호흡 미룬 채 노파의 짧은 한 그릇을 서쪽 두레박으로 한 호흡 길어 정중히 건넸다. 큰 굿당 박수가 일정 미룸을 짧게 따져 들었을 때, 노청수는 자기 두레박을 정중히 옆 자락에 풀어두며 "이 짧은 한 그릇 청수가 이번 새벽 가장 정중하다"고 짧게 답했다.

    노파는 그 짧은 한 그릇을 사당 한 자락에 정중히 올렸고, 그 사당의 짧은 한 자락 위패에는 노파의 짧은 한 줄 절이 한 호흡 정중히 닿았다. 솔샘우물 옆에는 지금도 노청수가 사십 년 닦아낸 짧은 두 두레박이 한 자락 정중히 같은 자리에 걸려 있다.

  • 고수레행자(고수레行者)

    고수레 행자(行者)

    고수레를 외치며 길을 닦는 행자

    고수레—한 줌만 던지시지요. 두 줌은 셈이 되고, 세 줌은 산이 한 줄 굳어집니다.

    고수레 행자는 산행·들놀이·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 곁에서 정중히 고수레(첫 한 줌을 산천 신령께 던지는 풍습)의 자세를 일러주는 평민 출신 길동무다. 외형은 닳은 무명 두루마기,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닳은 지팡이, 어깨에 짧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산천의 모든 옛 고수레의 한 줄·옛 분기 던짐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줌은 정성이고, 두 줌은 셈이며, 세 줌은 산이 한 줄 굳어진다는 옛 격언이 있어, 행자는 평생 그 한 줌을 손목에 외우고 산다. 가장 무거운 한 줌은 큰 산행의 고수레가 아니라, 가난한 순례자가 짚신 한 켤레로 들어선 첫 들녘 위에 던지는 짧은 한 줌이다. 행자는 평생 그 한 줌을 한 번도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 행자들 사이에 '한 줌은 정성, 두 줌은 셈, 세 줌은 굳음'이라는 옛 격언이 있어요. 정중히 한 줌만 정확히 던져 드리는 자세가 진짜 행자의 한 줄이지요.

    들녘행자댁 고수레 행자 한정성 — 한 산천에서 사십 년을 한 지팡이만 짚은 평민 길동무 — 의 일화는 '첫 들녘 한 줌'으로 산행 길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늦봄 가난한 순례자 한 명이 짚신 한 켤레로 첫 들녘에 들어서며 자기 도시락 한 줌의 보리를 산천 신령께 정중히 던지고자 한 호흡 멈춘 일이 있었다. 한정성은 그 순례자 옆자락에 자기 지팡이를 정중히 풀어두고, 그 한 줌의 손목 위에 자기 손바닥을 한 자락 더 정중히 받쳐 한 줌의 양이 정확히 한 호흡으로 던져지도록 보탰다. 그 한 줌은 첫 들녘 한 자락 흙 위에 정중히 한 줄로 흩어졌고, 그날 그 들녘 한 자락에 짧은 한 줄 가을이 평소보다 한 호흡 정중하게 닿았다는 소문이 산문 어귀까지 전해졌다.

    순례자는 그 산행 길 끝에 짧은 한 줄 편지와 짧은 한 자락 보릿대 한 묶음을 정중히 한정성의 자리 옆에 두고 떠났으며, 한정성은 그 보릿대를 자기 지팡이 끝에 정중히 한 자락 묶어 두었다. 들녘행자댁 지팡이 끝에는 지금도 그 짧은 보릿대 한 자락이 한 줄로 정중히 매여 있다.

  • 장승칠쟁이(長丞칠쟁이)

    장승(長丞) 칠하는 칠쟁이

    마을 장승에 색을 입히는 칠쟁이

    이 한 자락 붉은 칠, 한 마을 한 시즌의 잡귀를 막습니다. 두 자락은 칠이고, 세 자락은 그저 색깔입니다.

    장승 칠하는 칠쟁이는 마을 어귀의 장승(長丞) —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 의 얼굴을 매 절기마다 정중히 새로 칠해주는 평민 출신 도색공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안료 가방, 한 손에 닳은 붓, 다른 손에 작은 옻칠 항아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마을 모든 옛 장승의 한 줄·옛 분기 칠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잘못 칠한 장승은 잡귀가 마을 안으로 들어오며, 잘 칠한 장승은 한 시즌 동안 마을의 한 줄 새벽을 굳건히 한다는 옛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자락은 큰 마을의 장승이 아니라, 자손이 끊어진 폐촌의 닳은 짧은 한 자락 위에 있다. 칠쟁이는 평생 그 한 자락을 한 번도 대충 칠하지 않는다.

    우리 장승 칠쟁이들 사이에 '두 자락은 칠이고 세 자락은 색깔'이라는 옛 격언이 있어요. 한 자락 붉은 칠로 한 시즌 잡귀를 한 줄 막는 자세가 진짜 칠쟁이의 한 줄이지요.

    폐촌어귀 장승 칠쟁이 박단필 — 한 마을에서 사십 년을 한 옻칠 항아리만 잡은 평민 도색공 — 의 일화는 '폐촌의 짧은 한 자락'으로 마을 어귀들 사이에 길게 전한다.

    어느 절기 새벽 자손이 끊어진 폐촌 한 자락 어귀에 닳은 짧은 장승 한 자루가 한 시즌 칠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박단필은 큰 마을의 큰 장승 한 자루의 절기 칠 일정을 정중히 사흘 미룬 채 그 폐촌의 짧은 한 자락을 사흘에 걸쳐 한 자락 한 자락 정중히 칠해 두었다. 큰 마을 청지기가 일정 미룸을 짧게 따져 들었을 때, 박단필은 자기 붓을 정중히 옆 자락에 풀어두며 "이 짧은 한 자락이 이번 시즌 한 줄 가장 가깝다"고 짧게 답했다.

    그 짧은 한 자락 칠이 한 시즌 동안 폐촌 어귀의 한 자락 잡귀를 정중히 한 줄로 막았으며, 큰 마을의 큰 장승 한 자루도 그 다음 절기에 한 자락 더 정중히 한 줄로 굳건히 섰다. 폐촌 어귀에는 지금도 박단필이 사십 년 칠한 짧은 한 자락 장승이 한 자리에 정중히 그대로 서 있다.

  • 천지봉합사(天地縫合師)

    천지(天地) 기운 봉합사(縫合師)

    어긋난 천지의 기운을 꿰매어 봉합하는 술사

    하늘과 땅 사이에 틈이 생기면, 그 틈으로 이름 없는 것들이 들어옵니다. 저는 그 틈을 꿰매는 자입니다.

    천지 기운 봉합사는 하늘(天)과 땅(地) 사이의 기운이 어긋났을 때 그 틈을 다시 꿰매어 이계(異界, 이 세상과 다른 차원의 세상)의 존재들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는 최고위 도사다.

    천지 기운이 어긋나는 일은 수백 년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지만, 한 번 어긋나면 세상 전체가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이 직책은 언제나 한 명만 존재한다.

    봉합 작업은 맨손으로 기운을 잡아 꿰매는 방식이며, 이를 위해 봉합사는 수백 년을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을 동시에 몸에 담는 수련을 한다.

    이계 문 봉인 도사(앞서 360045)가 이미 열린 문을 닫는 자라면, 봉합사는 문이 생기기 전에 틈 자체를 막는 자다.

    봉합사가 작업을 완료한 곳에는 반드시 아무 표시도 남지 않는다. 완벽한 봉합은 흔적이 없다는 것이 봉합사들의 격언이다.

    천지 기운 봉합사 어른의 손바닥에 선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하늘과 땅 기운을 손에 담아 꿰매온 탓에 선이 다 사라진 것이라 하더이다.

    봉합사 역사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틈을 막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봉합사 공허(空虛) — 천 년을 혼자 천지 기운 봉합만 해온 자이자 현존하는 유일한 봉합사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황해 바다 가운데서 천지 기운이 갑자기 크게 어긋나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겼다. 그 소용돌이 안에서 이름 없는 것들이 바깥으로 나오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공허는 바닷가에 도착해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갔다. 눈을 감고 정확히 일곱 호흡을 쉬었다. 일곱 번째 호흡이 끝나자 소용돌이가 멈추었다.

    그 자리에 있던 용왕 사신(앞서 360006)이 "어떻게 하신 겁니까"라고 물었다. 공허는 신발을 다시 신으며 "바다가 기억하고 있는 원래 기운을 한 번 상기시켰습니다"라고만 답했다.

  • 신령중재관(神靈仲裁官)

    신령 분쟁 중재관(仲裁官)

    신령들의 분쟁을 중재하는 관리

    신령들 사이의 다툼은 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말로 끝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필요한 겁니다.

    신령 분쟁 중재관은 신령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쟁이나 오해를 중재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산군과 용왕의 영역 다툼, 도깨비와 구미호의 갈등, 천계 신령과 저승 신령의 관할 분쟁 등 여러 종류의 신령 간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중립적 입장에서 해결한다.

    중재관은 어느 쪽 신령에게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존재여야 하며, 옥황상제에게도 중재 결과를 보고하는 역할을 겸한다.

    신령들은 인간의 중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중재관이 수백 년 쌓은 신뢰와 선례 덕분에 신령들이 자발적으로 중재를 요청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구미호 도학자(앞서 360007)가 이론으로 신령 세계를 이해하는 자라면, 중재관은 그 이론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자다.

    신령 분쟁 중재관 어른들이 중재 자리에 앉기 전 양쪽 신령에게 차를 한 잔씩 건네는 이유가 있습니다. 차를 받으면 잠깐이나마 손이 바빠져 주먹이 느슨해진다 하더이다.

    중재관 역사에서 가장 오래 걸린 분쟁 해결 이야기가 있다. 중재관 평화(平和) — 삼백 년을 신령 중재만 해온 자이자 가장 많은 신령에게 이름을 알려진 인간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도깨비 좌상(앞서 360008)과 성황당 당주(앞서 360024)가 한 마을 어귀의 관할 범위를 두고 삼십 년 동안 다투고 있었다. 그 사이 마을 사람들은 어디서 무속 의례를 올려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평화는 양쪽에게 차를 한 잔씩 건넨 뒤 단 하나의 질문을 했다. "어귀에서 마을 사람이 길을 잃으면 누가 먼저 보이길 원하십니까?"

    도깨비 좌상은 자기 등불, 성황당 당주는 자기 당집이라고 했다. 평화는 "그렇다면 등불은 어귀 왼쪽, 당집은 오른쪽"이라고 정했다. 삼십 년 분쟁이 한 시진에 끝났다.

  • 구천길잡이(九泉길잡이)

    구천(九泉) 길잡이

    구천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

    구천(九泉)은 저승의 아홉 층이오. 층마다 길이 달라서 안내자가 없으면 원하는 층에 못 내려가오.

    구천 길잡이는 저승의 아홉 층으로 이루어진 구천(九泉, 저승 깊은 곳으로 층마다 다른 영역이 펼쳐진다)을 안내하는 전문 안내자다.

    명부 차사(앞서 360002)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망자를 데려온다면, 구천 길잡이는 그 이후 저승 안에서 올바른 층으로 안내하는 자다.

    아홉 층 각각의 길이 다르고 층과 층 사이에 함정과 미로가 있어, 길잡이 없이 구천을 내려가다 엉뚱한 층에 갇히는 망자가 종종 있다.

    길잡이는 아홉 층 전체의 지도를 머릿속에 담고 있으며, 층마다 다른 신령의 기운에 익숙해야 한다.

    저승 장부 서기(앞서 340039 남성 세계관의 서기와 같은 저승 공간에서 일한다)가 판결을 기록한다면, 길잡이는 그 판결에 따라 해당 층으로 안내하는 마지막 단계를 맡는다.

    구천 길잡이 어른들이 이승에 잠깐 나왔다 들어갈 때 반드시 신발을 털고 들어가는 이유가 있다오. 구천 각 층의 흙이 섞이면 길이 어긋난다 하더이다.

    길잡이 역사에서 가장 빠른 구천 안내 기록이 있다. 길잡이 심층(深層) — 이 백 년을 구천 길잡이로 일한 자이자 아홉 층 모두를 눈 감고도 안내할 수 있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두 망자가 같은 시각에 구천 입구에 도착했는데, 두 망자의 목적지가 각각 첫 번째 층과 아홉 번째 층이었다. 보통은 두 번 안내가 필요했다.

    심층은 두 망자를 동시에 안내하기로 했다. 층마다 갈림길에서 한 망자는 왼쪽, 한 망자는 오른쪽으로 나누어 이동시키며 심층은 정확히 두 길의 교차점에만 섰다.

    두 망자가 각자의 층에 동시에 도착했을 때, 심층은 교차점 한 곳에 서 있었다. 명부 차사는 그 장면을 보고 "층을 나눈 게 아니라 두 길을 하나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 금줄엮음자(禁줄엮음者)

    산악 금줄(禁줄) 엮음이

    산악의 금줄을 엮는 자

    금줄(禁줄)은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이기도 하고, 안에서 나오지 말라는 표시이기도 하오. 엮는 방향이 다를 뿐이오.

    산악 금줄 엮음이는 신령의 영역이나 신성한 장소에 치는 금줄(禁줄, 새끼줄에 금기를 담아 출입을 막는 의례용 줄)을 엮고 설치하는 전문 장인이다.

    금줄은 왼쪽으로 꼬면 인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오른쪽으로 꼬면 신령이 나오지 못하도록 봉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오래된 규칙이 있다.

    한지 봉인사(앞서 360026)가 문서와 공간을 한지로 봉인한다면, 금줄 엮음이는 길목 전체를 줄로 막는 더 큰 규모의 봉인을 담당하는 자다.

    산신각, 굿당, 중요한 나무와 바위 주변에 금줄을 치는 것이 주 업무이며, 부여된 신성을 지키기 위한 금줄 한 가닥의 위치를 정하는 데 하루를 쓰는 경우도 있다.

    금줄 엮음이의 손에서 엮인 줄은 일반 새끼줄과 다르게 특정 기운이 담겨 있으며, 그 줄을 끊는 자는 반드시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다.

    산악 금줄 엮음이 어른들이 줄을 엮기 전 반드시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땅에 한 번씩 짚는 이유가 있다오. 엮는 방향을 몸이 먼저 기억하게 하는 거라 하더이다.

    금줄 엮음이 역사에서 가장 빠른 작업이 가장 큰 사고를 막은 이야기가 있다. 엮음이 결줄(結줄) — 삼십 년을 산신각 금줄만 엮어온 자이자 눈 감고도 방향을 잃지 않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이름 없는 것이 산신각(앞서 360004)에 접근하는 기운이 감지되었다. 결줄은 도구도 채 갖추지 않은 채 현장으로 달려갔다.

    손에 들고 있던 짧은 줄 한 가닥만으로 산신각 입구를 빠르게 한 겹 막았다. 줄 한 가닥이었지만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꼰 특수 엮기였다.

    이름 없는 것은 그 줄 앞에서 멈추었다. 산신각 지킴이(앞서 360004)가 뒤늦게 도착해 "줄 한 가닥으로 어떻게?"라고 묻자, 결줄은 "방향이 맞으면 한 가닥으로 충분하오"라고 했다.

  • 정화수조달(淨華水調達)

    신당 정화수 기름 조달꾼

    신당의 정화수와 기름을 조달하는 자

    신당 등불 기름과 정화수를 함께 다루는 사람은 나밖에 없소. 기름은 불을 피우고, 물은 불을 끄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루는 것이 핵심이오.

    신당 정화수 기름 조달꾼은 신당에서 사용하는 등불 기름(등불을 태우는 기름)과 정화수(淸水, 신령에게 바치는 깨끗한 물)를 동시에 조달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기름과 정화수는 절대 섞이면 안 되는 상반된 성질의 물건이지만, 신당 의례에는 두 가지 모두 정확한 양과 때에 맞게 준비되어야 한다.

    청수 길어주는 우물지기(앞서 360028)가 정화수만 전담한다면, 조달꾼은 기름과 정화수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루는 더 복잡한 역할이다.

    조달꾼의 가방 왼쪽에는 기름 단지, 오른쪽에는 정화수 단지가 항상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 자리를 바꾸는 것은 신당에서 가장 금기로 여기는 행동 중 하나다.

    어느 신당이든 의례 전에 조달꾼이 먼저 도착해야 하며, 조달꾼이 아직 오지 않은 신당에서는 의례가 시작되지 않는다.

    신당 정화수 기름 조달꾼 어른들이 신당을 떠날 때 반드시 기름 단지를 먼저 닫고 정화수 단지를 나중에 닫는 이유가 있다오. 불을 먼저 끄고 물을 나중에 거두는 순서라 하더이다.

    조달꾼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을 조용히 넘긴 이야기가 있다. 조달꾼 기수(氣水) — 오십 년을 신당 기름과 정화수 조달만 해온 자이자 두 단지를 한 번도 섞은 적 없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큰 굿 날 기수가 신당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기름 단지와 정화수 단지의 위치를 바꿔놓은 것을 발견했다. 굿 시작까지 반 시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수는 두 단지의 위치를 바로잡고, 나아가 두 단지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 이전 단지에서 기운이 섞인 느낌이 났기 때문이었다. 굿당 박수(앞서 360003)가 "왜 두 단지 모두 교체했소?"라고 물었다.

    기수는 "섞인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신령은 아십니다"라고 했다. 그날 굿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성되었다.

  • 수의재단사(壽衣裁斷師)

    저승 망자 수의(壽衣) 재단사

    저승 망자의 수의를 짓는 재단사

    수의(壽衣)는 입는 사람이 아니라 보내는 사람을 위한 옷이오. 그래서 나는 망자보다 유족을 먼저 만나오.

    저승 망자 수의 재단사는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갈 때 입을 수의(壽衣, 망자에게 입히는 마지막 옷)를 만드는 장인이다.

    수의는 저승에서 망자를 식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전 신분·직업·마을 등이 바느질 패턴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재단사는 망자의 유족에게 망자의 생전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수의의 바느질에 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저승 망각수 관리인(앞서 350036 여성 세계관)이 망자의 기억을 지운다면, 수의 재단사는 그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생전 이야기를 천 위에 남기는 자다.

    완성된 수의에서 그 사람의 생전 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어, 재단사 작업실에는 항상 여러 생의 냄새가 겹쳐 있다.

    저승 수의 재단사 어른들이 작업 전 유족 이야기를 가장 오래 듣는다 하더이다. 옷 한 벌에 한 생을 담으려면 그 생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오.

    수의 재단사 역사에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은 작업 이야기가 있다. 재단사 침묵(針默) — 사십 년을 수의만 지어온 자이자 실 한 올에 일생 하나를 담는다는 평을 받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유족이 없는 망자의 수의를 만들어야 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침묵은 망자가 마지막에 있었던 장소로 직접 갔다.

    그 장소는 오래된 산신각(앞서 360004) 옆 작은 나무 아래였다. 나무에 작은 칼집 하나가 있었다. 침묵은 그것 하나만 보고 수의를 만들었다.

    완성된 수의에는 나무 패턴 하나만 크게 새겨져 있었다. 구천 길잡이(앞서 360033)가 그 수의를 보고 "이 망자는 나무를 사랑한 사람이었군요"라고 했다. 침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약수터관리(藥水터管理)

    영험(靈驗) 약수터 관리인

    영험한 약수터를 돌보는 관리인

    이 약수는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오. 신령을 만날 준비를 하게 해주는 것이오. 그 준비가 되면 병이 낫기도 하오.

    영험 약수터 관리인은 신령의 기운이 담긴 약수터(藥水터, 신비한 효험이 있다는 샘물이 나는 곳)를 관리하고, 찾아오는 참배객에게 약수의 올바른 음용 방법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약수터마다 관장하는 신령과 효험이 다르며, 잘못된 방법으로 마시거나 정해진 양보다 많이 마시면 오히려 기운이 흐트러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영기 측량사(앞서 340040 남성 세계관)가 기운을 측량한다면, 약수터 관리인은 그 기운이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전달되도록 안내하는 자다.

    약수터 물의 맛이 계절마다 달라지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도 관리인의 역할이며, 맛이 평소와 다를 때는 그날 약수를 마시지 않도록 안내한다.

    가장 바쁜 시기는 봄과 가을 약수 기운이 가장 강한 시기이며, 이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참배객이 찾아온다.

    영험 약수터 관리인 어른들이 매일 첫 번째 약수를 자기가 마시는 이유가 있다오. 그날의 물 상태를 본인 몸으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거라 하더이다.

    약수터 관리인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참배객 이야기가 있다. 관리인 수선(水仙) — 이십 년을 같은 약수터를 관리한 자이자 물맛으로 계절 변화를 먼저 아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약수터에 인간이 아닌 영물이 찾아왔다. 수십 년 묵은 여우 한 마리였다. 참배객 규정에는 영물에 대한 조항이 없었다.

    수선은 잠깐 생각하다가 약수 한 그릇을 조용히 놓아두었다. 여우는 그릇 앞에 앉아 물을 마시고 사라졌다.

    다음 날 약수터 옆에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수선은 그 꽃을 치우지 않았다. 그 꽃은 그해 내내 지지 않았다. 수선은 규정집에 "영물도 참배객이다"라는 한 줄을 추가했다.

  • 구름다리공(雲橋工)

    천계 구름다리 보수공

    천계 구름다리를 보수하는 공인

    천계에서 구름다리가 끊어지면 신령이 왕래를 못 하오. 그러면 세상 균형도 흐트러지오. 나는 그 다리를 고치는 자요.

    천계 구름다리 보수공은 천계 여러 지점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구름을 압축해 만든 다리)가 닳거나 끊어졌을 때 수리하고 보수하는 기술자다.

    구름다리는 신령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는 교통의 핵심 시설로, 끊어진 다리가 하나만 있어도 천계 전체 이동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보수 작업은 공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소 작업(高所作業, 높은 곳에서 하는 작업)에 익숙해야 하며, 구름 특유의 유동성 때문에 작업 도중 발판이 변하는 경우가 많다.

    천계 구름 짐꾼(앞서 340050 남성 세계관)과 함께 구름 상태를 공유하며 작업하며, 짐꾼이 구름을 조달하면 보수공이 그것으로 다리를 잇는 방식으로 협력한다.

    완성된 다리는 기존 다리보다 약간 두꺼운 것이 특징이며, 보수공들은 "원래 자리보다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수리의 기본"이라 말한다.

    천계 구름다리 보수공 어른들이 다리 위에 서기 전 반드시 발을 한 번 구르는 이유가 있다오. 구름의 단단함을 발이 먼저 기억해야 안 무너진다 하더이다.

    보수공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가장 빠르게 완성한 보수 이야기가 있다. 보수공 운교(雲橋) — 백 년을 구름다리 보수만 해온 자이자 끊어진 다리를 이은 기록이 가장 많은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뇌신(앞서 340021 남성 세계관)의 훈련 중 번개가 천계 주요 구름다리 세 개를 동시에 끊었다. 다리 세 개를 순서대로 고치면 이틀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운교는 세 다리를 동시에 보수하기로 했다. 한 다리에 작업 도구를 걸어두고 두 번째로 이동하고, 두 번째에 재료를 두고 세 번째로 이동하며, 세 자리를 번갈아 오가며 세 다리를 동시 진행했다.

    여섯 시간 만에 세 다리가 완성되었다. 뇌신이 "세 개를 어떻게 한꺼번에?"라고 물었다. 운교는 "다리는 이어지니까요. 세 다리가 한 다리라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 도깨비심판(도깨비審判)

    도깨비 씨름 심판

    도깨비 씨름의 승패를 가르는 심판

    도깨비 씨름은 힘이 아니오. 상대를 땅에 닿게 하면 이기는 게 맞소. 하지만 어느 부위가 먼저 닿았냐가 늘 문제요.

    도깨비 씨름 심판은 도깨비들이 즐기는 씨름 판에서 공정한 규칙 적용과 결과 판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도깨비 씨름은 인간 씨름과 유사하지만 도깨비 특유의 힘과 기운이 씨름 중에 방출되어 판정이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다.

    심판은 도깨비의 기운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방출 시각과 크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도깨비 기운에 오래 노출된 자만이 심판 자격을 얻는다.

    도깨비 대장(앞서 360008)이 공인한 심판만이 공식 씨름 판에 설 수 있으며, 씨름 결과에 불복하는 도깨비가 있을 때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씨름 심판 중 가장 어려운 순간은 두 도깨비가 동시에 서로를 땅에 닿게 하는 무승부 상황이며, 이럴 때 심판은 재경기를 선언하고 두 도깨비를 진정시켜야 한다.

    도깨비 씨름 심판 어른들이 씨름 판 위에서 절대 앉지 않는 이유가 있다오. 서 있어야 도깨비 기운이 발바닥으로 먼저 전해진다 하더이다.

    씨름 심판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판정을 정확히 해낸 이야기가 있다. 심판 판석(判石) — 오십 년을 도깨비 씨름 심판만 해온 자이자 도깨비 기운을 발바닥으로 읽는다는 소문이 있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도깨비 좌상(앞서 360008)이 직접 씨름 판에 나섰다. 상대는 이름난 도깨비 씨름 고수였다. 두 도깨비가 맞붙은 순간 기운 방출이 너무 강해 판 주변 나무들이 흔들렸다.

    판석은 흔들리는 판 위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확히 상대 도깨비의 오른 무릎이 0.1 호흡 먼저 땅에 닿았음을 포착했다. "도깨비 좌상의 승!"을 선언했다.

    도깨비 좌상은 심판 결과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심판 어른이 없었다면 이긴 건지 졌는지도 몰랐을 것"이라 했다. 판석은 "씨름은 판정이 완성시킵니다"라고 했다.

  • 신령기록자(神靈記錄者)

    신령 어로(語錄) 기록자

    신령의 어록을 옮겨 적는 기록자

    신령 어른들이 하신 말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지오. 나는 그 말씀을 받아 적는 자요. 물론 허락받고.

    신령 어로 기록자는 신령들이 굿·제례·신탁(神託) 등에서 한 말씀을 정확히 받아 적고 보관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단순히 들은 말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의 어투와 말 사이의 간격, 강조한 부분까지 모두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한 번 기록된 신령 어록은 후대에 신탁 해석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기록자의 정확성이 수백 년 뒤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신령 분쟁 중재관(앞서 360032)이 신령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때, 어록 기록자의 과거 기록을 가장 많이 참고한다.

    가장 어려운 기록은 옥황상제의 말씀으로, 그 말씀은 매우 짧지만 그 짧음 안에 담긴 의미가 넓어서 기록자가 추가 해설 없이 원문만 적어야 한다.

    신령 어로 기록자 어른들이 붓을 들기 전 귀를 한 번 기울이고 시작한다 하더이다. 신령 말씀은 소리가 먼저 오고 뜻은 나중에 온다 하오.

    어록 기록자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록이 가장 많이 인용된 이야기가 있다. 기록자 묵필(墨筆) — 이 백 년을 신령 어록만 받아 적은 자이자 신령 어투 모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칠성도사(앞서 360001)가 굿당 밖에서 마을 아이에게 한마디를 했다. "가보거라." 묵필은 그 두 글자를 기록지에 받아 적었다.

    그 두 글자가 나중에 마을 분쟁 해결 과정에서 결정적 근거로 인용되었다. 칠성도사가 그날 그 아이를 어느 방향으로 보냈느냐가 마을 땅 경계를 결정하는 증거가 된 것이었다.

    묵필은 그날 기록지 여백에 "방향: 북동쪽"이라는 한마디를 추가로 적어두었다. 그 한마디가 두 글자와 함께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묵필은 "기록은 말만이 아니오"라고 했다.

  • 신물운반행자(神物運搬行者)

    무속 신물(神物) 운반 행자

    무속 신물을 운반하는 행자

    신물(神物)은 그냥 들고 다니는 게 아니오. 어느 방향으로 들고, 어느 발을 먼저 내딛느냐까지 정해져 있소.

    무속 신물 운반 행자는 굿당·산신각·신당 사이에서 신물(神物, 신령의 기운이 담긴 신성한 물건)을 안전하게 운반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신물은 그냥 보자기에 싸서 들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신물의 종류마다 운반 방향·운반 자세·운반 중 금지 행동이 정해져 있어 이 규정을 모두 외우고 있어야 한다.

    무속 신물 운반 중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 규정이며, 운반 도중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도 오래된 관례다.

    옥추경 송경자(앞서 360022)가 신령 말씀을 소리로 전달한다면, 운반 행자는 신령의 물건을 몸으로 전달하는 자다.

    완료한 운반 건수보다 운반 중 실수 없음이 더 중요한 직업이며, 실수 없는 운반 행자는 그 숫자보다 침묵의 깊이로 알아볼 수 있다.

    무속 신물 운반 행자 어른들이 운반을 마치고 나서야 말을 한다 하더이다. 신물을 목적지에 내려놓는 순간까지 말 대신 발걸음으로 이야기한다 하오.

    운반 행자 역사에서 가장 먼 거리를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완료한 이야기가 있다. 행자 무언(無言) — 사십 년을 무속 신물 운반만 해온 자이자 운반 중 단 한마디도 한 적 없다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신검 봉인사(앞서 340010 남성 세계관)가 봉인 해제된 신검을 새 봉인 장소로 옮겨야 했다. 가장 위험한 신물 운반이었다.

    무언은 그 신검을 특수 제작된 운반대 위에 정해진 방향으로 올려놓고 이틀 동안 걸었다. 이틀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눈을 마주친 사람도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신검을 내려놓는 순간 무언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그것이 이틀의 유일한 말이었다. 봉인사는 "가장 조용한 운반이었소"라고 했다.

  • 당집목수(堂집木手)

    성황당 당집 지붕 올리는 목수

    성황당 당집 지붕을 올리는 목수

    성황당 지붕은 그냥 지붕이 아니오. 신령을 받드는 덮개요. 나쁜 것은 막고, 좋은 것은 통하게 하는 방향이 있소.

    성황당 당집 지붕 올리는 목수는 성황당(城隍堂, 마을을 지키는 성황 신을 모시는 당집)의 지붕을 새로 올리거나 수리하는 전문 목수다.

    성황당 지붕은 일반 건물 지붕과 다르게 신령의 기운이 드나드는 방향을 고려해 경사와 재료를 정해야 하며, 이 원칙을 모르는 목수가 지은 성황당은 신령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성황당 당주(앞서 360024)와 협력하여 당집 지붕의 교체 시기와 방향을 결정하며, 당주가 신령 기운을 감지하면 목수가 구체적인 보수 계획을 세운다.

    지붕을 올리는 날은 반드시 맑은 날이어야 하며, 작업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그날 작업을 멈추고 다음 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성황당 목수들은 나무 다루는 소리만으로 그 나무가 신령 공간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구별한다고 전해진다.

    성황당 목수 어른들이 지붕 첫 기와를 올리기 전 반드시 하늘 방향을 세 번 확인하는 이유가 있다오. 첫 기와 방향이 신령이 들어오는 길을 정하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성황당 목수 역사에서 가장 빠른 지붕 복구 이야기가 있다. 목수 가목(架木) — 삼십 년을 성황당 지붕만 올려온 자이자 나무 소리로 재료 적합성을 판단하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큰 바람에 성황당 지붕 절반이 날아갔다. 성황당 당주(앞서 360024)가 긴급 보수를 요청했다.

    가목은 그날 오후 새 나무를 가져와 저녁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밤새 소리를 듣고 재료를 골랐다. 다음 날 해가 뜰 때 지붕이 완성되어 있었다.

    당주는 "밤새 작업하셨소?"라고 물었다. 가목은 "나무가 아직 낮 기운을 담고 있을 때 올려야 신령 기운이 빨리 안착하오"라고 했다. 그 성황당은 이후 한 번도 지붕이 날아간 적이 없다.

  • 신명통역사(神明通譯師)

    천지신명(天地神明) 기도 통역사

    천지신명의 뜻을 인간에게 통역하는 자

    사람들이 올리는 기도는 신령에게 직접 닿지 않소. 나를 거쳐야 하오. 내가 정확히 통역해야 신령이 정확히 들으시오.

    천지신명 기도 통역사는 인간이 신령에게 올리는 기도를 신령의 언어로 통역하고, 신령의 응답을 인간의 언어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인간의 기도는 대부분 희망·소원·감사의 형태이지만, 신령의 언어는 전혀 다른 체계로 이루어져 있어 직접 통역하는 자 없이는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굿당 박수(앞서 360003)가 굿의 형식으로 신령과 인간을 이어준다면, 기도 통역사는 굿 없이도 개인의 기도를 신령에게 직접 전달하는 역할이다.

    통역사는 인간의 말과 신령의 기운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수백 년을 두 언어 체계 모두를 공부한다.

    신령 어로 기록자(앞서 360040)가 신령의 말씀을 받아 적는다면, 기도 통역사는 그 반대 방향, 즉 인간에서 신령 방향을 전담하는 자다.

    천지신명 기도 통역사 어른들이 기도를 전달하기 전 잠깐 침묵하는 이유가 있다오. 인간 언어에서 신령 언어로 변환하는 그 한 호흡이 통역의 핵심이라 하더이다.

    기도 통역사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도가 가장 정확하게 전달된 이야기가 있다. 통역사 심언(心言) — 삼백 년을 기도 통역만 해온 자이자 기도 전달 정확도가 가장 높다는 평을 받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신당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내용은 "어머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단 한마디였다.

    심언은 그 기도를 신령의 언어로 변환했다. 신령의 언어로 변환하면 보통 기도보다 길어지는데, 그 기도는 오히려 더 짧아졌다. 이유는 "어린이의 순수한 기도는 신령의 언어와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고 심언은 설명했다.

    그 기도를 받은 신령이 곧 응답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다음 날부터 차도가 있었다. 심언은 일지에 "어린이 기도는 번역이 아니라 전달이다"라고 적었다.

  • 명계수문장(冥界守門將)

    명계(冥界) 경계 수문지기

    명계 경계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

    명계(冥界) 경계는 들어오는 자와 나가는 자 모두에게 다른 문이오. 잘못 들어온 산 자는 돌려보내야 하고, 잘못 나온 죽은 자는 되돌려야 하오.

    명계 경계 수문지기는 이승(산 자의 세계)과 명계(죽은 자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지키며, 잘못 경계를 넘어온 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맡은 자다.

    명부 차사(앞서 360002)가 특정 망자를 데리러 이승으로 나오는 공식적 역할이라면, 수문지기는 그 경계 자체를 관리하는 경비 역할이다.

    죽지 않은 인간이 실수로 명계 경계를 넘는 경우나, 인연이 다하지 않은 영혼이 이승으로 나오려는 경우 모두 수문지기가 판단하고 처리한다.

    황천 뱃사공(앞서 340044 남성 세계관)이 경계의 강 위에서 망자를 운반한다면, 수문지기는 그 강가의 출입구를 지키는 자다.

    가장 어려운 상황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중간 상태의 존재를 처리하는 경우이며, 이럴 때 수문지기는 칠성도사(앞서 360001)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관례다.

    명계 경계 수문지기 어른들이 자기 그림자를 매일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하오. 명계 기운에 너무 오래 노출되면 그림자가 옅어진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수문지기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판단을 내린 이야기가 있다. 수문지기 계경(界境) — 이 백 년을 명계 경계만 지킨 자이자 단 한 명도 잘못 돌려보낸 적 없다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있는 존재가 경계 앞에 나타났다. 그 존재는 아직 이승에서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고, 동시에 이미 명계에 들어왔다 나온 자임을 알 수 있었다.

    계경은 그 존재를 하루 동안 경계 위에 두고 칠성도사(앞서 360001)에게 조언을 구했다. 칠성도사는 "그 존재의 별자리를 보시오"라고 했다.

    별자리를 확인하니 아직 이승에서 할 일이 하루 더 남아 있었다. 계경은 그 존재를 하루 동안 이승으로 돌려보내고, 하루 뒤 명계 문을 정확히 열어두었다. 그 존재는 하루 뒤 정확히 스스로 들어왔다.

  • 이계봉인존(異界封印尊)

    이계(異界) 문 봉인 도사

    이계의 문을 봉인하는 도사의 정점

    이계 문이 열리면 그 너머에서 이름 없는 것들이 나오오. 나는 그 문을 닫는 자요. 하지만 닫기 전에 반드시 먼저 안을 들여다보오.

    이계 문 봉인 도사는 세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계(異界, 이 세상과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이름 없는 존재들이 사는 곳) 문을 발견하고 봉인하는 최고위 도사다.

    이계 문은 대부분 보이지 않으며, 사람들이 갑자기 길을 잃거나 이상한 일이 계속되는 장소에 이계 문이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

    천지 기운 봉합사(앞서 360031)가 하늘과 땅 사이 틈을 막는다면, 이계 문 봉인 도사는 이 세상과 다른 세상 사이의 문을 닫는 역할이다.

    이계 문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지만, 봉인 도사는 문 안을 확인하지 않고 봉인하면 나중에 더 큰 문이 열린다는 원칙 때문에 반드시 확인 후 봉인한다.

    봉인에 쓰는 도구는 한지 봉인사(앞서 360026)가 만든 봉인 한지와 부적 명필가(앞서 360010)가 쓴 봉인 부적을 함께 사용한다.

    이계 문 봉인 도사 어른들이 봉인 후 반드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난다 하오. 봉인한 문을 다시 보면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봉인 도사 역사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이계 문을 막은 이야기가 있다. 봉인 도사 폐계(閉界) — 칠 백 년을 이계 문 봉인만 해온 자이자 현존하는 최고위 봉인 도사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한반도 중심부에서 이계 문이 열렸다. 그 문은 보통 문보다 열 배 컸고, 이름 없는 것들이 여럿 이미 빠져나와 있었다.

    폐계는 도착하자마자 문 안을 확인했다. 안쪽에는 더 많은 이름 없는 것들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폐계는 부적 명필가(앞서 360010)가 미리 준비해 둔 봉인 부적 열 장과 한지 봉인사(앞서 360026)의 한지를 함께 꺼냈다.

    봉인 작업에 사흘이 걸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 폐계는 즉시 뒤를 돌아 걸어갔다. 그 뒤로 사흘 동안 폐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유를 물었을 때 "문 안에서 들은 이름 없는 것들의 소리가 사흘이 지나서야 귀에서 사라졌소"라고 했다.

  • 징표해석관(徵標解釋官)

    신령 징표(徵標) 해석관

    신령의 징표를 해석하는 관리

    신령이 말씀을 하시지 않을 때는 징표를 남기시오. 나는 그 징표를 읽는 자요.

    신령 징표 해석관은 신령이 직접 말씀을 내리는 대신 자연 현상이나 특이한 사건으로 남기는 징표(徵標, 신령이 남기는 신호)를 해석하는 전문가다.

    징표는 새 떼의 이동 방향, 물의 흐름 변화, 나무 형태, 꿈의 반복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해석관은 그 패턴을 읽고 신령의 뜻을 파악한다.

    신령 어로 기록자(앞서 360040)가 말씀을 기록한다면, 징표 해석관은 말씀이 없을 때 신령의 의도를 읽는 자다.

    한 징표가 여러 신령의 뜻이 겹쳐 있는 경우가 있어, 해석관은 어느 신령의 징표인지 먼저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잘못 해석된 징표는 마을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해석 전 반드시 하루를 재계하는 것이 원칙이다.

    신령 징표 해석관 어른들이 징표를 발견하면 삼 일을 기다린다 하더이다. 징표는 성급하게 해석하면 반쪽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오.

    징표 해석관 역사에서 가장 작은 징표가 가장 큰 뜻을 담은 이야기가 있다. 해석관 독표(讀標) — 삼백 년을 신령 징표만 해석한 자이자 징표 해석 오류가 가장 적다는 평을 받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마을 우물가 돌 하나가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보통 사람 눈에는 그냥 돌이었지만 독표는 그 방향이 바뀐 것을 알아챘다.

    독표는 삼 일을 기다렸다. 사흘 뒤 그 돌이 향한 방향 쪽에서 마을 사람 하나가 새 우물을 발견했다. 이전 우물이 마르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성황당 당주(앞서 360024)가 "어떻게 그 돌 하나로 알았소?"라고 물었다. 독표는 "신령은 크게 말씀하시지 않소. 다만 돌 하나를 정중히 돌려두시오"라고 했다.

  • 굿당향행자(굿堂香行者)

    굿당 향불 관리 행자

    굿당 향불을 관리하는 행자

    향불 하나가 꺼지면 굿 한 판의 신호 하나가 사라지오. 나는 그 향불을 꺼지지 않게 지키는 자요.

    굿당 향불 관리 행자는 굿 진행 중 피워둔 향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향이 다 타면 새 향을 이어서 피우는 역할을 담당한다.

    굿 중에 향불이 꺼지면 신령의 기운이 잠깐 끊기는 것으로 여겨져 무당이 굿을 잠시 멈춰야 하기 때문에, 향불 관리는 굿 전체 흐름에 직결된다.

    향 조향사(앞서 360016)가 향을 만든다면, 관리 행자는 그 향을 굿 내내 안전하게 태우는 마지막 단계를 담당한다.

    굿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향의 종류가 달라지며, 신장(神將) 굿에는 강한 향, 해원 굿에는 부드러운 향을 쓰는 것이 오래된 관례다.

    굿당에서 가장 조용히 있어야 하는 자가 향불 관리 행자이며,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 신령이 잠깐 놀란다는 말이 있어 발소리도 최소화한다.

    굿당 향불 관리 행자 어른들이 향 교체 시각을 정확히 맞추는 이유가 있다오. 향이 다 타는 직전 순간에 새 향을 붙이면 불꽃이 한 번도 꺼지지 않는다 하더이다.

    향불 관리 행자 역사에서 가장 긴 굿에서 한 번도 향불이 꺼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행자 향수(香守) — 삼십 년을 굿당 향불만 지킨 자이자 향 소리로 태우는 속도를 안다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해 사흘 밤낮 연속으로 진행된 대굿이 있었다. 사흘 내내 향불을 관리해야 했다.

    향수는 사흘 동안 굿당 한 자리에 앉아 향불을 지켰다. 향이 다 타기 직전 정확히 새 향을 붙이는 작업을 사흘 동안 수십 번 반복했다.

    사흘 뒤 굿이 끝났을 때 굿당 박수(앞서 360003)가 "향불이 한 번도 꺼지지 않았소"라고 했다. 향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이 그날 유일한 대답이었다.

  • 신당청소부(神堂淸掃夫)

    신당 마당 쓰는 청소부

    신당 마당을 쓰는 청소부

    신당 마당의 먼지는 그냥 먼지가 아니오. 신령이 오가며 남기신 흔적도 섞여 있소. 그래서 함부로 쓸지 않소.

    신당 마당 쓰는 청소부는 신당 마당을 매일 빗자루로 쓸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신당 마당의 먼지 안에는 신령의 기운이 미세하게 섞여 있다는 말이 있어, 빗자루 방향과 쓰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제물 정인(앞서 360014)이 제물을 정리한다면, 청소부는 제물을 올리는 공간 자체를 정리하는 역할이다.

    마당 청소는 신당 의례 두 시간 전에 완료해야 하며, 쓴 먼지는 신당 경계 밖에 정해진 장소에 모아두어야 한다.

    새벽에 혼자 신당 마당을 쓰는 것이 원칙이며, 빗자루 소리 외에 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이 역할의 관례다.

    신당 마당 청소부 어른들이 의례 후 마당을 다시 한 번 쓰는 이유가 있다오. 의례 중 신령이 남기신 기운을 정리하는 마무리라 하더이다.

    신당 청소부 역사에서 가장 오래 같은 마당을 쓴 이야기가 있다. 청소부 소청(掃淸) — 칠십 년을 같은 신당 마당만 쓴 자이자 빗자루 자국으로 그날 신령이 오셨는지 안다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소청이 아침 청소를 마친 뒤 마당 중심에 발자국이 하나 있었다.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소청은 그 발자국 주변만 쓸지 않고 두었다. 며칠 뒤 신당에 기도하러 온 사람이 그 발자국을 보고 "산신 어른이 다녀가셨구나"라고 했다.

    소청은 그날 이후 의례 후 마당을 다시 쓸 때 발자국 형태의 흔적이 있으면 하루 더 두는 관례를 만들었다. 그 이유를 물으면 "신령 흔적은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오"라고 했다.

  • 산신소지자(山神燒紙者)

    산신 제례 소지(燒紙) 올리는 이

    산신 제례에 소지를 사르는 자

    소지(燒紙)는 그냥 종이를 태우는 게 아니오. 종이에 담긴 소원이 연기가 되어 신령에게 닿는 것이오. 연기가 곧게 올라가면 닿은 것이오.

    산신 제례 소지 올리는 이는 산신각(山神閣)에서 치러지는 제례에서 소지(燒紙, 소원을 적거나 담아 태우는 종이)를 올바른 방식으로 태워 산신에게 전달하는 전문가다.

    소지를 태우는 방식에는 손으로 들고 태우는 방식, 받침대 위에 올려 태우는 방식 등이 있으며, 소원의 종류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

    연기가 곧게 오르면 신령이 소원을 받은 것이고, 연기가 옆으로 퍼지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라는 오래된 해석이 있어 소지 올리는 이는 그 연기의 형태를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준다.

    산악 금줄 엮음이(앞서 360034)가 신령 공간의 경계를 만든다면, 소지 올리는 이는 그 경계 안에서 인간의 소원을 신령에게 전달하는 마지막 단계를 담당한다.

    소지 한 장을 태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세 호흡 이내이며, 그 세 호흡 동안 소지 올리는 이의 눈은 반드시 연기를 따라가야 한다.

    산신 제례 소지 올리는 이 어른들이 소지를 태우기 전 그 종이를 한 번 들어 하늘을 향해 보이는 이유가 있다오. 신령이 태우기 전에 먼저 내용을 아셔야 제대로 받으신다 하더이다.

    소지 올리는 이 역사에서 가장 작은 소지가 가장 높이 올라간 이야기가 있다. 소지 올리는 이 연청(燃淸) — 이십 년을 산신각 소지 제례만 담당한 자이자 연기 형태로 소원 성취 여부를 가장 정확히 예측하는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아이 하나가 아주 작은 종이에 소원을 적어 왔다. 어른 소지의 열 분의 일 크기였다. 연청은 그 작은 소지를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들어 하늘을 향해 보인 뒤 태웠다.

    연기는 곧게 하늘로 올랐는데, 그 높이가 그날 다른 어떤 소지 연기보다 높았다. 신당 마당 쓰는 청소부(앞서 360048)가 그 연기를 보고 "작은 종이 연기가 가장 높이 올랐소"라고 했다.

    연청은 "작은 종이는 가볍기 때문이오. 소원도 무거워지면 오르기 어렵소"라고 했다. 그 아이의 소원은 그해 이루어졌다.

  • 어전심부름(御前심부름)

    신령 어전(御前) 심부름꾼

    신령 어전의 잔심부름을 하는 자

    신령 어른의 심부름은 빠르게도, 늦게도 안 되오. 정확한 시각에 도착해야 하오.

    신령 어전 심부름꾼은 천계·용궁·저승 등 신령 세계의 내부에서 신령들의 일상적인 심부름을 담당하는 자다.

    칙서 전달이나 공식 임무가 아닌, 신령들이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작은 것들을 전달하고 안내하는 역할이다.

    옥황 칙서 전령관(앞서 340043 남성 세계관)이 공식 문서를 전달한다면, 어전 심부름꾼은 그보다 작고 일상적인 것들을 전달하는 자다.

    심부름꾼은 신령 세계의 모든 구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보조 통행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 통행증을 어전 심부름꾼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도구다.

    신령 세계를 자주 오가기 때문에 신령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신령들 사이의 대화를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들은 것을 외부에 전달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신령 어전 심부름꾼 어른들이 신령 세계에서 들은 이야기는 절대 밖에 전하지 않는다 하더이다. 신령 세계 이야기는 신령 세계 안에서만 도는 것이라 하오.

    심부름꾼 역사에서 가장 작은 심부름이 가장 중요한 결과를 낳은 이야기가 있다. 심부름꾼 행천(行天) — 삼십 년을 신령 어전 심부름만 해온 자이자 신령 세계 가장 많은 구역을 방문한 자 — 의 이야기다.

    어느 날 행천은 단순한 심부름 하나를 받았다. 칠성도사(앞서 360001)에게 신령 어로 기록자(앞서 360040)가 기록한 어록 책 한 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행천은 책을 들고 칠성도사 거처로 향했다. 도중에 구천 길잡이(앞서 360033)와 우연히 마주쳐 책 제목이 보였다. 길잡이는 "그 책, 제가 한 번 읽어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행천은 잠깐 고민했다. 심부름 경로를 살짝 돌려 길잡이 거처에서 그 책을 반나절 빌려주었다가 다시 가져갔다. 칠성도사에게 책을 전달했고 그날 심부름은 완료되었다. 길잡이는 그 반나절 동안 구천 길 새 지름길을 세 개 더 찾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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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신화 — Another Fant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