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150명의 인물
어떤 세계인가요?
저 멀리 우주 저편, 수십 개의 별 사이에 인류가 살고 있는 시대예요. 거대한 우주선이 별에서 별로 날아다니고, 행성 하나하나가 하나의 나라처럼 존재하는 곳이랍니다. 은하 제국, 자유 연합, 해적 동맹이 드넓은 우주를 차지하기 위해 맞서고 있어요. 이 세계는 밤하늘의 별 하나하나가 전쟁터이자 삶의 터전인 곳이에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커다란 함선 안에서 먹고 자고 싸우며 살아갑니다.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함대 병사도 있고, 은하 변경을 떠도는 거친 해적 무리도 있어요. 기름 냄새 가득한 정비실에서 전함을 고치는 정비공도, 황제 곁에서 음모를 꾸미는 측근도 이 세계의 한 부분이에요. 거친 우주에서 살아남으려면 동료를 믿고 자기 역할을 끝까지 해내는 의리가 가장 중요하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짜릿한 것은 수백 척 전함이 나란히 움직이는 함대전이에요. 워프(warp) — 아주 먼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기술 — 로 별에서 별로 단번에 뛰어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죠. 사이보그 전사의 강철 팔뚝, 묵직한 함포 소리, 낡은 기갑 슈트의 냄새까지, 이 세계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거대함이 가득해요. 어디 하나 빠질 것 없이 박력 넘치는 곳이랍니다.
만약 네가 이 세계에 태어난다면 어떤 자리에 서고 싶어요? 수천만 명의 운명을 손에 쥔 황제의 옥좌? 아니면 혼자 어두운 우주를 누비는 해적의 조타석?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전함을 묵묵히 살려 내는 정비사의 작업대일까요? 어떤 자리를 골라도, 그 선택이 은하의 역사 한 줄을 바꿀 수 있는 곳이에요.
세계 설정
인류가 수십 개 항성계에 진출한 먼 미래. 은하 제국·연합·해적 동맹이 패권을 다투는 우주 시대.
이 세계의 키워드
- 함대
- 워프
- 기갑
- AI
- 사이보그
- 행성
- 은하
- 식민지
- 광물
- 자원전쟁
이 세계의 인물들
성멸지존(星滅至尊)
우주 파괴자
별 하나를 단숨에 멸할 수 있는 우주의 절대자
“오늘은 농지를 가꾼다. 함선에 오를 일이 평생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주 파괴자는 단신 또는 단일 함선으로 행성·항성·소규모 은하 영역 자체를 소거할 능력을 지닌 자에게만 붙는 칭호다. 은하 역사에서 그 수는 손가락에 꼽으며, 단순한 군 계급으로는 분류가 불가능해 별도의 비공식 등급이 부여된다. 그가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인접 항성계의 외교 회의가 비상으로 소집되며, 동맹과 적의 구분이 일주일 단위로 바뀐다.
본인은 그 압도적 권능을 두려워해, 평소에는 외딴 식민 행성에서 농지 한 뙈기를 가꾸며 산다. 그가 다시 함선에 오를 때, 은하의 한 시대가 끝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진짜 무서운 자는 늘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분의 호미 자루 한 줄을 은하 외교 협정문보다 먼저 본다. 그 호미가 멈추는 날, 우리는 모두 함교에 다시 올라야 한다는 뜻이지.”
삼대 우주 파괴자 카이단 록스 — 은하 역사상 단일 출격으로 항성 한 개를 소거한 유일한 자이자 이후 평생 다시 함선에 오르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소거의 새벽'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베가-7(은하 변경 항성계로 당시 네 종족 연합이 공동 점거하던 분쟁 지대)에서 펼쳐진 검은 사슬 동맹(다섯 해적 함대가 결성한 항성계 점거 결사)의 본대를 단일 함선 '소우주(Microcosm)'로 마주섰다. 카이단은 함포를 한 발도 쏘지 않은 채, 자기 함선의 워프 코어 한 개만을 베가-7 항성 중심에 워프 점프시켰다. 그 한 점프로 항성 자체가 한 시진 안에 붕괴해, 검은 사슬 동맹 함대 사백 척이 항성과 함께 소거되었다. 카이단은 다음 날 식민 행성 알페로(은하 외곽의 작은 농업 식민지)에 단신으로 강하해 농지 한 뙈기를 사들였고, 그 이후 사십 년간 단 한 번도 함선에 오르지 않았다.
은하 외교 회의는 매년 그의 농지 위로 정찰 위성을 한 대 보내 그가 호미를 들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호미가 마당 한복판에 가로 누여 있는 사진이 한 장 도착한 해는 외교 회의가 한 분기 더 평화로워진다는 격언이 회의록 한 줄에 남아 있다.
은하천제(銀河天帝)
은하제국 황제
은하의 모든 항성계를 굽어보는 황제
“외부 함대보다 내부 측근이 더 무섭다. 옥좌의 첫 교훈이지.”
은하제국 황제는 수백 개 행성을 단일 깃발 아래 묶고 있는 절대 권력자로, 그의 한마디가 1조 명 단위 인구의 일상을 결정한다. 황실 친위 함대만 해도 인접 연합국 전체 군사력보다 큰 규모이며, 그가 직접 지휘하는 기함은 소형 위성 크기다. 그러나 황제의 일과는 사실 끝없는 결재·외교 회의·암살 시도 대비로 채워져 있어, 본인은 직접 옥좌에 앉아 있는 시간이 평민의 출근 시간보다 길다.
가장 두려워하는 적은 외부의 함대가 아니라 황실 내부의 측근들이다. 그래서 황제의 진짜 무공은 함포가 아니라, 누가 자기 등 뒤에서 칼을 꺼낼지 한순간에 알아채는 직감이다. 그 직감이 통하지 않은 황제들은, 모두 역사책 안에만 남았다.
“역대 황제들이 즉위 첫 주에 그 옥좌 옆 빈 잔을 한 번 들여다 보는 데는 이유가 있소. 잔이 비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무거운 결재라는 뜻이지요.”
십이대 은하제국 황제 발레리우스 코르 — 즉위 첫 해에 황실 측근 일곱 명의 음모를 한 잔 차로 꺾고 사십 년을 버틴 자 — 의 일화는 '옥좌 옆 빈 잔'으로 황실 사관에 기록되어 있다.
황실 시종장 헬리오 단(당시 황실 결재실 차석으로 일곱 측근의 우두머리) 이 황제 즉위 첫 차회에 독을 탄 잔을 올렸고, 그 자리에는 친위대장 옥타브 — 황제 친위 함대 직속 사관이자 황제 어린 시절 사부 — 가 함께 있었다. 발레리우스는 잔을 받아 들지 않은 채, 헬리오 단의 잔에 자기 잔을 살짝 부딪치며 "오늘은 시종장께서 먼저 드시지요"라고 정중히 한마디만 보탰다. 헬리오 단은 한 호흡도 못 가서 자기 잔을 떨군 채 자백했고, 일곱 측근의 명단이 그날 안에 친위대장의 결재 단말에 한 줄로 정리되었다.
발레리우스는 그 일곱을 처형하지 않고 변경 항성계 행정관으로 좌천시켰으며, 그중 다섯이 사십 년 후 가장 충성스러운 변경 총독이 되었다. 옥좌 옆에는 그날 이후 빈 잔 하나가 평생 그대로 놓였고, 후대 황제들은 즉위 첫 주에 그 잔을 한 번 들여다보는 의례를 따른다. 황실 사관은 그 잔의 빈 자리가 황실 친위 함대 한 척보다 무겁다고 한 줄 적어 두었다.
함대사령장(艦隊司令將)
함대 사령관
거대 함대를 호령하는 사령의 장수
“승전보의 수는 잊어라. 살아 돌아온 부하의 수만 세면 된다.”
함대 사령관은 수십 척에서 수백 척 규모의 전투 함대를 지휘하는 최상위 군 지휘관으로, 작전 수행과 동시에 함대 인사·보급·외교까지 모두 책임진다. 한 번의 작전 명령에 수만 명의 병사 운명이 묶여 있어, 결정의 무게가 평시에도 그를 노화시킨다. 본인은 거친 전선 출신이 많아, 비번 시간에는 부하들과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는 사령관도 흔하다.
부하들은 그를 "함대의 아버지"라 부르지만, 그 자신은 "그저 가장 오래 살아남은 늙은 병사"라 자처한다. 진짜 좋은 사령관의 기준은 승전보의 수가 아니라, 작전 후 살아 돌아온 부하의 수다. 그것을 잊은 사령관은 함대를 잃기 전에 부하들의 신뢰부터 잃는다.
“우리 함대 사령관실 책상에는 늘 호출부호 일곱 줄이 적혀 있습니다. 승전 기록이 아니라, 그 일곱 줄을 다시는 못 새기겠다는 사령관의 한 줄 다짐이지요.”
칠십 함대 사령관 마커스 한 — 안드로메다 변경 평정 작전을 일곱 번 지휘하고도 부하 손실 비율을 함대 평균의 절반으로 끌어내린 자 — 의 일화는 '리겔 후퇴(Rigel Withdrawal, 232년 리겔 항성계에서 펼쳐진 함대 작전)'로 사관학교 교재에 한 챕터가 통째로 들어갔다.
그는 리겔 항성계에서 판드라 군체(다리 일곱 개의 곤충 종족이 결성한 군체 결사)의 본대에 둘러싸여 함대 절반을 잃을 위기에 빠졌다. 마커스는 작전실에서 승전 시뮬레이션 일곱 가지를 모두 거부하고, 자기 기함 '안드라(Andra)'를 후방에 남긴 채 부하 함선 사십 척을 먼저 워프시키는 후퇴안을 결재했다. 그 결재 한 장으로 자기 진급 라인은 그날로 끊겼지만, 부하 함선 사십 척 가운데 삼십팔 척이 살아 돌아왔다.
마커스는 잃은 두 척의 함선 호출부호 — '오리온-3'과 '오리온-7' — 를 자기 책상 가장 윗줄에 새기고, 그 아래에 평생 다른 호출부호를 한 줄도 더 새기지 않았다. 함대 사령부는 그 책상을 그가 은퇴한 뒤에도 옮기지 않았으며, 후대 사령관들은 부임 첫날 그 두 호출부호 앞에 군모를 한 번 벗는 의례를 따른다. 사관학교 신참들은 그 두 줄을 자기 단말 첫 화면에 새기고 입대하는 비공식 풍습을 만들었다.
기관철공(機關鐵工)
전함 기관 정비공
전함의 심장을 두드리는 철공의 장인
“기관실에 영웅 따위 필요 없다. 매뉴얼이면 충분하다.”
전함 기관 정비공은 전함의 워프 드라이브·반응로·기갑 시스템을 일선에서 정비하는 기술 병종이다. 전투 시 가장 깊은 격실에 들어가, 적의 함포가 외벽을 두드리는 와중에 동력 라인을 다시 잇는 사람들이다. 함장이 명령을 내리지만, 그 명령이 실현될지는 정비공의 손끝에 달려 있다.
그래서 베테랑 함장들은 정비공 작업복에 묻은 기름을 함장 정복보다 더 명예로운 표식으로 본다. 본인은 군에서도 "보이지 않는 영웅" 취급을 받지만, 정작 본인 입버릇은 "기관실에 영웅 따위 필요 없다, 매뉴얼이 필요할 뿐이다"이다. 그 매뉴얼을 외운 손이 결국 전함 한 척과 천 명의 목숨을 건진다.
“우리 정비공 식당에는 노란 매뉴얼 한 권이 늘 펼쳐진 채 놓여 있습니다. 그 페이지에 묻은 기름 한 방울이 우리에겐 사관 견장 한 줄보다 더 무거운 기록이지요.”
일급 정비공 보리스 멘델 — 전함 '아크투루스(Arcturus, 전선 함대의 주력 순양함급 기함)' 기관실에서 이십 년을 한 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오리온 회랑 17분(Orion Corridor 17 minutes, 오리온 회랑 작전 중 결정적이었던 17분 기관 복구 사건)'으로 정비공들 사이에 계율처럼 전해진다.
아크투루스가 오리온 회랑(인접 두 항성계를 잇는 좁은 워프 회랑)에서 적함 카슈르(Khashur, 결정체족 군용 순양함) 일곱 척에 둘러싸여 워프 코어가 정지했을 때, 보리스는 동료 정비공 단신과 함께 기관실 가장 깊은 격실에 들어갔다. 그는 매뉴얼 217페이지의 비공식 우회 회로를 손으로 직접 다시 그렸고, 17분 안에 워프 코어를 재기동시켰다. 그 17분 동안 함교에서는 함장이 자기 사관 견장을 떼고 카슈르 측 통신에 항복 협상문을 작성하던 중이었다.
워프 점프가 성공하자 함장은 자기 견장을 보리스의 작업복 가슴팍에 정중히 꽂아 주려 했으나, 보리스는 견장을 받지 않고 그 견장을 매뉴얼 217페이지 위에 끼워 두었다. 매뉴얼은 이후로 그 견장을 책갈피로 삼은 채 정비공 식당 한쪽에 그대로 놓여 있으며, 후대 정비공들은 입대 첫날 그 페이지에 손바닥을 한 번 대 보는 의례를 따른다.
성광채부(星鑛採夫)
우주 광부
별의 광맥을 캐는 우주 광부
“가족 사진은 한 장만. 두 장 꺼내면 다음 작업에서 못 돌아온다는 게 우리 사이 미신이다.”
우주 광부는 소행성대·외곽 행성에서 희귀 광물을 채굴해 살아가는 거친 사내들이다. 외형은 군인이나 모험가가 아니라 그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에 가깝다. 하지만 무중력 환경에서 드릴을 다루는 그 일상은 일급 군인 훈련에 못지않으며, 단 한 번의 실수가 곧 진공 노출과 즉사로 이어진다.
그래서 광부들끼리는 술자리에서 가족 사진을 절대 두 장 이상 꺼내지 않는다. 한 장만 꺼내야 다음 작업 때까지 살아 돌아가게 된다는 미신이 광부들 사이에 오래 전해진다. 우주를 가르는 거대 함대의 건조 자재 절반이, 그들의 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정작 함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우리 광부들은 헬멧 안쪽에 사진 한 장만 붙입니다. 두 장째 꺼내려는 손목 위에 노삼 형의 한 호흡이 늘 얹혀 있다는 뜻이지요.”
노광부 한쇠 — 케레스 광구(Ceres Mining Cluster, 태양계 외곽 소행성대 최대 채굴 거점) 사십 년 베테랑 — 의 일화는 '두 장째 사진의 새벽'으로 광부들 술자리에서 가장 길게 회자된다.
케레스 광구의 가장 깊은 갱도 K-77(거대 운철 광맥이 매장된 무중력 갱도) 안에서 한쇠는 동료 노삼과 단둘이 야간 작업을 했고, 노삼이 그 새벽 식사 자리에서 가족 사진 두 장을 한꺼번에 꺼내 보였다. 한쇠는 한마디 말없이 노삼의 두 번째 사진을 자기 작업복 가슴팍 안에 넣어 주었고, 그날 작업은 별 일 없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갱도 입구로 돌아오는 길 무중력 진공 마이크로 균열이 노삼의 헬멧 한쪽에 생겨 그가 십 초 안에 의식을 잃었고, 한쇠는 자기 산소 호스를 잘라 노삼의 헬멧에 직접 이어 끌고 갱도 밖까지 나왔다.
노삼은 이송 중 사망했고, 한쇠는 노삼의 두 번째 사진 — 그의 어린 딸이 학교 입학식에서 찍은 한 장 — 을 평생 자기 헬멧 안쪽에 붙였다. 케레스 광구 광부들은 그날 이후 두 장째 사진을 절대 꺼내지 않는 미신을 한 줄 더 보탰고, 신참 광부 입소 첫날 한쇠의 헬멧을 한 번 들여다보는 의례가 생겼다. 한쇠는 노삼 딸의 대학 학비를 평생 자기 봉록에서 떼어 보냈고, 그 딸이 훗날 케레스 광구 의무관으로 부임한 일은 광구 야사 한 줄에 남아 있다.
항성총독왕(恒星總督王)
항성계 총독
한 항성계 전체를 다스리는 총독의 왕
“한 항성계의 새벽은 결재 한 장에서 시작된다. 함포는 그 다음 줄이다.”
항성계 총독은 황제의 위임으로 단일 항성계 전체 — 항성·행성·식민지·궤도 정거장·소행성대 — 를 통치하는 절대 행정관이다. 그가 결재 한 장에 도장을 찍으면 수십억 인구의 식량 배급선이 다음 분기에 뜨거나 끊긴다. 본인은 황실 친위 함대와 별개로 직속 항성계 함대를 거느리며, 그 규모만으로도 인접 소국 하나를 단독으로 정복할 수 있다.
그러나 총독실 책상 위 결재 더미는 함포 사거리보다 길고, 그가 가장 자주 휘두르는 것은 함대 명령권이 아니라 야간 결재 펜이다. 외부의 적함보다 무서운 것은 같은 황실에서 파견 나온 감찰관 한 명이라는 사실을, 부임 첫 해에 모두 깨닫는다. 그래서 노련한 총독은 함대 사열보다 감찰관의 식사 자리에 더 공을 들인다.
“총독실 결재 펜대 끝이 닳지 않은 총독은 임기 안에 항성계 한 곳을 잃습니다. 펜대 한 자루가 함대 한 척보다 긴 사거리를 가진다는 사실은, 부임 첫 분기에야 모두 압니다.”
시리우스 항성계 총독 데이먼 카르체 — 황실 감찰관 일곱 명을 차회 한 번으로 돌려보낸 자이자 시리우스 외곽 식민지 사십 곳의 식량 배급선을 임기 십 년 내내 한 분기도 끊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한 잔의 결재(One-Cup Approval, 시리우스 총독실 차회 일화의 비공식 명칭)'로 행정관 양성소 교재에 실렸다.
황실 결재실 차석 율리우스 한이 시리우스 외곽 식민지 두 곳의 식량 배급을 끊으라는 황실 칙령을 들고 데이먼의 차회에 도착했을 때, 데이먼은 그 칙령을 펼치기 전에 황실 외교관(외계종족 외교관 직역의 동료) 가브리엘 노스의 보고서 한 장을 먼저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보고서에는 그 두 식민지가 결정체족과의 비공식 교역을 사십 분기 끌어가고 있어, 배급이 끊기는 즉시 결정체족과의 외교 라인 일곱 줄이 동시에 끊긴다는 한 줄 분석이 적혀 있었다. 데이먼은 그 보고서 위에 자기 차잔을 살짝 올려 두고 율리우스에게 차 한 잔을 정중히 따랐고, 율리우스는 한 시진 안에 칙령 결재란을 자기 손으로 빈 채 황궁으로 돌아갔다.
시리우스 외곽 두 식민지 배급은 그날 이후 사십 분기를 더 이어갔고, 결정체족과의 비공식 교역이 훗날 십삼대 황제 즉위 시 정식 외교 조약 한 장의 토대가 되었다. 데이먼의 책상 위 그 차잔 자리는 그가 은퇴한 뒤에도 비어 있으며, 후대 시리우스 총독들은 부임 첫 차회에 그 자리에 잔을 올리지 않는 의례를 따른다.
외교성사(外交星使)
외계종족 외교관
외계 종족을 향한 별의 사절
“그쪽 발이 일곱 개라고 들었습니다. 의자는 이쪽에서 새로 짜겠습니다.”
외계종족 외교관은 인류 연합과 비인간 종족 — 결정체족·기체호흡종·집단정신체 — 사이의 조약·교역·국경 분쟁을 협상하는 최상위 외교 인력이다. 한 번의 회담 결렬이 곧 항성계 단위 전쟁으로 번지기에, 그가 쓰는 한 줄 수사는 함대 한 척의 출격 명령보다 무겁다. 본인은 평생 수십 종족의 호흡기·체온·금기 식단·의례용 침묵 시간을 외워야 하며, 잘못 끄덕인 한 번이 조약문 한 장을 백지로 만든다.
회담장에서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통역기가 아니라 상대 종족 전용 의자의 다리 개수다. 본인은 함대 사령관보다 더 자주 출장을 다니지만, 정작 술자리에서는 같은 인간 동료에게도 외계어 농담을 던진다. 그가 평생 다듬은 진짜 절기는 외교 문서가 아니라, 일곱 발 종족 앞에서 한 번도 다리를 꼬지 않는 인내심이다.
“우리 외교관들은 회담 의자의 다리 개수를 평생 외웁니다. 다리 한 개를 잘못 짠 의자 위에 함대 한 척의 출격 명령이 얹혀 있다는 사실을, 신참 첫 회담에 가르치지요.”
가브리엘 노스 — 결정체족 대사관 사십 년 수석이자 시리우스 사변(232년 시리우스 항성계에서 일어난 결정체족 첫 접촉 사변) 당시 인류 연합 측 단신 협상관 — 의 일화는 '여덟 발 의자(Eight-leg Chair)'로 외교관 양성소 교재 첫 챕터에 실렸다.
시리우스 사변 사흘째 새벽, 결정체족 대표 크리살 칸(Krysal-Khan, 결정체족 군체 대표 일곱 분파의 합의체 의장)이 인류 연합 측 회담장에 도착했을 때, 가브리엘은 결정체족 발이 의자 다리 일곱 개를 요구한다는 통설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그 새벽 단신으로 회담장 의자 한 자루를 다시 짜되, 일곱 다리 대신 여덟 다리를 단 의자를 정중히 마련해 두었다. 크리살 칸은 그 의자에 앉아 한 호흡 동안 침묵한 뒤 "여덟 번째 다리는 누구의 자리요"라고 물었고, 가브리엘은 "여덟 번째 다리는 사변 첫날 사망한 결정체족 척후 한 분의 자리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한마디에 결정체족 군체 일곱 분파가 회담을 사흘 더 연장했고, 사흘 끝에 인류-결정체족 비공격 조약 한 장이 작성되었다. 사흘째 마지막 협상문 결재란에는 가브리엘의 서명 옆에 크리살 칸의 결정체 인장이 한 줄 찍혔으며, 그 옆에는 결정체족 척후 사망자의 결정체 조각 하나가 같이 봉인되었다.
후대 외교관들은 부임 첫 회담에 의자 다리 개수를 한 개 더 늘려 짜는 비공식 의례를 가브리엘의 그 새벽에서 따왔다.
사이보검투(사이보劍鬪)
사이보그 검투사
강철 몸으로 검을 휘두르는 검투사
“내 왼팔은 12세대 모델이다. 오른팔은 8세대다. 너는 어느 쪽으로 맞고 싶나?”
사이보그 검투사는 양팔·양다리·시신경 일부를 군용 의체로 교체하고 궤도 콜로세움에서 일대일 결투를 벌이는 자다. 의체 한 짝의 가격이 식민 행성 한 마을의 1년 세수와 맞먹으며, 그가 한 경기 출전료로 받는 액수는 함대 사관의 1년 봉급을 넘는다. 본인은 검을 휘두르되 그 검은 더 이상 강철이 아니라 플라즈마날이며, 한 합의 속도는 인간의 신경 한계를 이미 뛰어넘었다.
콜로세움 관중석 절반은 도박꾼, 절반은 군 스카우트다. 그래서 노련한 검투사는 일부러 한 경기 안에 자기 의체 모델 광고를 한 컷 끼워 넣는 계약을 따로 맺기도 한다. 무서운 것은 적의 검이 아니라, 다음 경기 출전료에서 의체 할부금을 떼고 남는 잔액이 아주 적다는 사실이다.
“우리 검투사들이 콜로세움 16번 의체 보관실 앞에 한 번 합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그 의체가 결국 자기 사부의 마지막 한 합이라는 사실, 신참은 데뷔 첫 경기에 알게 되거든.”
사이보그 검투사 라이언 캐스 — 베타 콜로세움(Beta Colosseum, 시리우스 정거장 궤도에 떠 있는 은하 최대 콜로세움) 사십 경기 무패의 챔피언 — 의 일화는 '왼팔 16세대(Left Arm Mk.16)'로 결투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라이언은 챔피언 결승전에서 왼팔 12세대 의체를 끼고 도전자 코르넬리우스 단(전직 함대 특수강하 돌격병 출신 사이보그) 의 플라즈마날을 한 호흡에 막다 의체가 통째로 절단당했다. 콜로세움 의체 정비사 한쇠(우주 광부 출신으로 은퇴 후 의체 정비 전문가가 된 자)가 30초 안에 자기 의체 비축분 가운데 16세대 왼팔 시제품 한 짝을 라이언에게 부착했고, 라이언은 그 한 합으로 코르넬리우스의 검을 두 동강 냈다. 16세대 왼팔은 정식 출시 전 시제품이라 의체 회사 측 광고 계약이 한 줄도 없었고, 라이언은 그 경기 출전료의 절반을 한쇠의 정비공방 운영비로 정중히 송금했다.
코르넬리우스는 그 자리에서 자기 사이보그 검을 풀어 콜로세움 16번 의체 보관실에 한 줄 봉인해 두었으며, 다음 분기 함대 특수강하 부대 교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16세대 왼팔 시제품은 라이언이 은퇴 후 콜로세움 보관실에 정중히 반납했고, 후대 검투사 신참들은 데뷔 첫 경기 전 그 보관실 앞에 한 번 합장하는 비공식 의례를 따른다.
워프항법사(워프航法士)
워프 항법사
워프 항로를 짚어내는 항법의 자
“지름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늘 가장 덜 죽는 길로 갈 뿐입니다.”
워프 항법사는 함대 기함의 워프 좌표·항로·돌입각을 결정하는 최상위 기술 장교로, 한 번의 좌표 입력 오류가 함대 전체를 항성 중심부에 내던질 수 있다. 그가 다루는 항법 콘솔에는 수백만 개의 별 좌표·중력 함정·미지 영역 표지가 동시에 깜박이며, 그 한 줄 한 줄을 평생 머릿속에 넣고 산다. 함장이 "어디로 갈지"를 정한다면, 항법사는 "어떻게 살아 도착할지"를 정한다.
본인은 술자리에서도 손가락이 자기도 모르게 가상 콘솔 키를 누르는 직업병을 평생 안고 산다. 베테랑 항법사들은 절대 "지름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며, 그 단어를 쓰는 신참은 다음 임무에 동승시키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좌표는 큰 회전이 아니라, 부상자 후송 함선 한 척의 귀항 좌표 위에 있다.
“우리 항법사들 콘솔 우상단에는 늘 한 줄 좌표가 비공식으로 떠 있습니다. 그 좌표를 평생 한 번도 안 쓰는 게 우리 직업의 진짜 자랑이지요.”
일급 항법사 일라이 사사키 — 함대 기함 '아크투루스' 항법실에서 이십오 년을 한 자리에 앉은 자이자 베테랑 항법사들의 사부 — 의 일화는 '안티스 회전(Anteus Turn, 안티스 성운에서 펼쳐진 비공식 항법 우회)'으로 항법사 양성소 마지막 수업에 인용된다.
함대가 안티스 성운(Anteus Nebula, 미지 중력 함정이 다섯 개나 매장된 위험 성운)을 가로질러 부상자 후송 함선 한 척 — '오리온-9' 호출부호의 의무 후송함 — 을 본대로 호송해야 했을 때, 일라이는 함장의 직선 항로 명령 대신 자기 단독 책임으로 다섯 시간 우회 좌표를 입력했다. 그 우회로는 함대 정규 항법표에 등록되지 않은 비공식 안전 항로였고, 항법 콘솔 우상단에 일라이가 평생 비워 둔 한 줄 좌표 — '코드 그레이(Code Grey, 부상자 후송 전용 비공식 안전 좌표)' — 가 처음으로 활성화되었다. 다섯 시간 뒤 후송함은 부상자 사십 명을 모두 살린 채 본대에 합류했으나, 함대 사령관실에서는 일라이를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 회의에 회부했다.
함대 사령관 마커스 한(앞서 함대 사령관 일화의 주인공)은 군법 회의 첫 자리에서 자기 사령관 견장을 내려놓고 "오늘 회의는 코드 그레이를 정규 항법표에 등록하는 절차로 바꾸자"고 한마디만 보탰다. 코드 그레이는 그날 이후 함대 정규 항법 매뉴얼 부록 7장에 한 줄로 등록되었고, 후대 항법사들은 콘솔 우상단에 코드 그레이 좌표를 비공식으로 띄워 두는 의례를 따른다. 그 한 줄 좌표를 평생 활성화하지 않고 은퇴하는 것이 항법사 가장 큰 자랑으로 통한다.
해적함두장(海賊艦頭將)
해적 함대 두목
해적 함대를 이끄는 두목의 장
“제국 깃발은 멀리서 보면 다 똑같다. 그래서 우린 돛 대신 빚 청구서를 단다.”
해적 함대 두목은 제국·연합 어느 쪽에도 충성하지 않는 비공식 함대를 거느리고, 변경 항로의 화물선·정거장·소형 식민지를 약탈하는 자다. 그가 거느린 함선 수는 어지간한 변경 영주의 정규군과 맞먹으며, 함교 의자에는 본인이 직접 베어낸 옛 제국 사관의 견장이 못으로 박혀 있다. 본인은 거친 사내들의 의리 하나로 함대를 묶지만, 정작 두목 자리에서 가장 자주 하는 일은 부하들의 도박 빚을 정리해주는 결재다.
제국 함대가 쫓아오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가장 비싸게 잡혀줄지를 계산한다. 그래서 노련한 해적 두목은 한 시즌에 한 번 일부러 작은 함선 한 척을 제국에 넘기고, 그 댓가로 정보를 사는 거래를 한다. 진짜 무서운 두목은 약탈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부하 한 명의 장례비까지 빠짐없이 챙기는 자다.
“우리 함교 의자에 못박힌 견장 한 줄은 자랑이 아니야. 그 견장이 우리 부하 일곱 명의 장례비라는 사실, 신참은 두 번째 약탈 끝에야 알지.”
검은 매(Black Hawk) 함대 사대 두목 사이먼 칼라일 — 변경 변경 항로 사십 척 함대를 십이 년 거느린 자이자 부하 장례비를 자기 사재로만 갚은 유일한 두목 — 의 일화는 '안달 정거장 협상(Andal Station Deal)'으로 해적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안달 정거장(변경 항성계 외곽의 작은 화물 환승 정거장)에서 검은 매 함대가 황실 진상품 호송선 '오리온-12'를 약탈하던 중, 사이먼은 호송선 화물칸에 식민지 어린이 후송 명단 한 장이 끼어 있다는 사실을 부하 통신병으로부터 들었다. 그는 약탈을 그 자리에서 중지하고 호송선을 원위치 그대로 풀어줬으며, 대신 자기 함대 가운데 가장 작은 함선 '카르멘(Carmen)' 한 척을 제국 함대에 정식으로 자수해 넘겼다. 그 함선의 선장 호이트(검은 매 함대 부두목이자 사이먼의 옛 사관학교 동기)가 자수 함선의 함장으로 동행했고, 호이트는 제국 군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 사이먼이 사재로 마련한 변호인을 거쳐 종신 노역으로 감형되었다.
사이먼은 호이트의 가족에게 평생 매 분기 사재의 절반을 송금했으며, 호송선의 어린이 사십 명은 모두 인접 식민지에 무사히 인도되었다. 검은 매 함대 함교 의자에는 그날 이후 호이트의 사관학교 견장 한 줄이 못박혔고, 후대 두목들은 두목석에 앉기 전 그 견장에 한 번 손을 대는 의례를 따른다. 변경 야사에서는 안달 정거장 그 자수 협상이 해적 함대가 펼친 가장 비싼 협상이라고 한 줄로 적혀 있다.
기갑비행수(機甲飛行手)
기갑 파일럿
거대 기갑을 직접 모는 파일럿
“기체 이름은 외우지 마라. 다음 출격에서 살아 돌아오는 놈만 외우면 된다.”
기갑 파일럿은 행성 강하·시가전·격납고 방어에 투입되는 인형 기갑(humanoid mech)을 단독으로 조종하는 일선 전투병이다. 한 기의 기갑 가격이 보병 1개 중대의 장비 총합보다 비싸며, 그 한 기의 손실이 곧 함대 전체 예산 회의의 한 줄 안건이 된다. 본인은 출격 전 콕핏 안에서 기체 이름과 출격 번호를 직접 손으로 콘솔에 적는 고전 의례를 지키며, 살아 돌아오면 그 한 줄을 지운다.
기갑은 영화에서 보던 만큼 화려하지 않고, 정작 첫 출격의 절반은 진흙탕 위에서 발이 빠진 채 끝난다. 그래서 베테랑 파일럿은 신참에게 "기체 이름은 외우지 마라, 다음 출격에서 살아 돌아오는 놈만 외우면 된다"고 가르친다. 살아 돌아온 한 기의 콕핏 벽에는 늘 그 파일럿이 새긴 작은 한 줄 — 동료 한 명의 호출부호 — 이 남아 있다.
“콕핏 벽 한 줄이 늘면 그 파일럿은 한 살 더 늙는다고들 합니다. 늙은 파일럿일수록 콕핏을 비공개 처리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요.”
기갑 파일럿 케일럽 라이드 — 4중대 '진흙탕(Mudfoot)' 부대 사대 부대장이자 평생 기체를 일곱 번 갈아탄 자 — 의 일화는 '뉴아일 전선의 한 줄(New-Aile Frontline Line)'로 기갑 야사에 길게 남았다.
뉴아일(New-Aile, 변경 항성계 외곽의 늪지대 식민지)에서 진흙탕 부대가 외계 갑각종 카슈크(Khashk, 진흙 위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사지 갑각종) 떼와 사흘에 걸친 늪지전을 벌이던 마지막 새벽, 케일럽의 동료 호출부호 '베타-7' — 신참 파일럿 노아 콘 — 이 자기 기갑 다리가 늪에 박힌 채 카슈크에 둘러싸였다. 케일럽은 자기 기체 '진흙탕-3'의 무릎 관절을 직접 풀어 노아의 기갑 위에 가로 누이는 비정규 우회 동작으로 진흙 위에 임시 다리를 놓았고, 그 위로 노아가 직접 콕핏을 탈출해 케일럽의 기체 외장에 기어올랐다. 두 사람은 케일럽 기체 한 기로 늪을 빠져나왔고, 노아의 기갑은 그 자리에 매장된 채 회수되지 못했다.
케일럽은 살아 돌아온 뒤 자기 콕핏 벽에 '베타-7'을 한 줄 더 새겼고, 그 한 줄을 평생 지우지 않았다. 노아는 다음 분기 진흙탕 부대 정비 부서로 자리를 옮겨 부대 정비반장이 되었고, 케일럽이 은퇴한 뒤 그의 콕핏 벽 한 줄을 자기 정비실 명패 옆에 그대로 옮겨 붙였다. 진흙탕 부대 후대 신참들은 입대 첫 출격 전 그 명패에 손바닥을 한 번 대 보는 의례를 따른다.
식민보안사(植民保安士)
식민행성 보안관
식민행성의 치안을 지키는 보안관
“총은 이 정거장 안에서 한 명만 차고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게 나야.”
식민행성 보안관은 변경 식민지의 단일 항성도시·작은 정거장·광산촌의 치안을 단신 또는 소수 부보안관과 함께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닳은 합성가죽 코트, 어깨에 보안관 배지, 허리에 한 자루 레일 권총이 표준이다. 본인은 정규 함대가 도착하기까지 며칠이 걸리는 변경에서, 강도·해적 척후·외계 밀입자를 자기 손으로 처리해야 하는 마지막 한 줄이다.
정거장의 모든 술집 주인·창녀·도박꾼·밀수꾼이 그를 알며, 그도 그들의 첫 이름을 모두 외운다.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총격전이 아니라, 광부 두 명의 술자리 시비를 한 잔 더 사주며 말리는 것이다. 그래서 보안관 임기 마지막 날, 정거장 광장에 모이는 사람은 적이 아니라 그가 평생 한 잔씩 더 사줬던 단골들이다.
“보안관 임기 마지막 날 광장에 잔이 일곱 개 놓이면 그게 가장 좋은 임기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총 한 발보다 잔 한 개를 평생 더 자주 셉니다.”
변경 정거장 헬리오스-9(Helios-9, 시리우스 외곽 광산 식민지의 최대 정거장) 보안관 너새니얼 부캐넌 — 십이 년 임기 중 단 두 번만 권총을 뽑은 자 — 의 일화는 '한 잔 더 보안관(One-More-Drink Sheriff)'으로 변경 야사에 길게 남았다.
헬리오스-9의 광부 술집 '붉은 노즐(Red Nozzle)'에서 광부 두 명 — 한쇠와 단신(앞서 우주 광부 일화의 동료 광부) — 이 케레스 광구 외상 장부 한 줄을 두고 결투용 채굴 드릴을 꺼내려 했을 때, 너새니얼은 두 사람 사이에 자기 합성 위스키 잔 한 개를 정중히 끼워 넣고는 외상 장부 그 한 줄을 자기 봉록에서 떼어 갚았다. 두 사람은 그날 결투를 미뤘고, 너새니얼은 그 한 줄 외상 영수증을 자기 보안관실 책상 한쪽에 평생 그대로 두었다. 십이 년 임기 마지막 날 헬리오스-9 정거장 광장에 모인 단골은 일곱 명이었으며, 그들 모두가 자기 합성 위스키 잔 한 개씩을 너새니얼 앞에 정중히 놓았다.
너새니얼은 보안관 배지를 그 일곱 잔 가운데 한가운데 놓고 정거장을 떠났으며, 후임 보안관은 그 배지를 자기 책상에 못박아 두었다. 헬리오스-9 후대 보안관들은 임기 마지막 날 광장에 잔이 일곱 개 이상 놓이도록 하는 것을 임기 평가의 비공식 기준으로 삼는다. 너새니얼은 떠난 뒤 외곽 식민지에서 농지 한 뙈기를 가꾸며 살았다는 풍문이 있을 뿐, 정거장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에이아이전석사(AI戰析師)
AI 군사 분석관
인공지능과 함께 전황을 읽는 분석관
“AI가 결정한다고요? 아닙니다. AI는 제안할 뿐입니다. 결정은 제가 하고, 욕도 제가 먹습니다.”
AI 군사 분석관은 함대 작전실에서 전술 AI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해석·검증·재구성하여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장교다. 한 번의 작전 분석이 함대 한 부대의 출격 여부를 결정하기에, 그가 작성한 보고서 한 장은 평시에도 무게가 다르다. 본인은 AI가 제시한 수십만 가지 시뮬레이션 중 인간 사령관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세 가지로 압축하는 것이 진짜 직무라고 말한다.
함내에서 가장 자주 듣는 농담은 "그래서 AI가 결정했어, 자네가 결정했어"이며, 그 농담의 정답은 늘 후자다. AI가 100% 승률을 제시한 작전이 실패한 사례는 함대 야사에 한 줄로 남아 있고, 그 한 줄은 모든 분석관의 책상 한 구석에 붙어 있다. 그래서 노련한 분석관은 시뮬레이션 결과보다 사령관의 표정을 먼저 본다.
“분석관 책상 한 구석에 붙은 그 한 줄 메모는 우리에게 사관 견장 같은 거지요. AI가 100을 말해도, 우리는 99에서 멈추는 자세를 그 메모에서 평생 배웁니다.”
AI 군사 분석관 디미트리 코발트 — 함대 작전실 '아테나(Athena, 함대 전술 AI 시스템 7세대 모델)' 단말 앞에서 십오 년을 한 자리에 앉은 자 — 의 일화는 '데네브 99%(Deneb 99%)'로 분석관 양성소 마지막 수업 첫 슬라이드에 인용된다.
데네브 항성계(Deneb, 결정체족 변경에 인접한 분쟁 항성계) 작전 시뮬레이션에서 아테나가 처음으로 단일 작전 100% 승률을 출력했을 때, 디미트리는 그 결과 보고서를 사령관에게 그대로 올리지 않았다. 그는 100% 승률 시뮬레이션의 가정 한 줄 — '결정체족 군체가 한 시간 안에 분파 합의에 도달한다는 가정' — 이 결정체족 외교 라인 자료(외계종족 외교관 가브리엘 노스의 보고서 한 줄)와 어긋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디미트리는 그 보고서를 99% 승률로 하향 조정해 사령관에게 올렸으며, 그 1% 차이가 함대의 출격 시각을 두 시간 늦추는 결재로 이어졌다.
두 시간 뒤 결정체족 군체는 분파 합의에 실패해 자체 내전 양상으로 돌입했고, 함대는 단 한 발도 쏘지 않은 채 데네브 외곽을 평정했다. 디미트리는 그 1% 차이의 보고서 한 장을 자기 책상 한 구석에 코팅해 평생 붙여 두었으며, 후대 분석관들은 입대 첫날 그 99%라는 숫자를 자기 단말 첫 화면에 새기고 시작하는 의례를 따른다. 아테나는 그 사변 이후 시뮬레이션 출력 상한을 99%로 자체 잠금 처리했다.
외계포수(外界捕獸)
외계 생체 사냥꾼
외계 생물을 사냥하는 포수
“산 채로요? 그 가격으로는 무리입니다. 죽은 채로면 절반이고, 영상만이면 한 잔입니다.”
외계 생체 사냥꾼은 미개척 행성의 거대 외계 생물 — 갑각류 거대 곤충, 다리 일곱 개의 포식종, 결정체 군체 — 을 의뢰받아 포획·표본 수집·영상 기록하는 전문직이다. 한 마리의 생체 표본이 거대 제약회사 한 곳의 분기 매출을 좌우하기에, 그가 받는 의뢰비는 함대 사관 연봉의 몇 배에 달한다. 본인은 단신 또는 2~3인 팀으로 행성에 강하해 일주일을 그 행성의 식물·기후·포식 사슬과 동거한다.
가장 자주 쓰는 도구는 라이플이 아니라 미끼용 합성 호르몬 한 병이며, 가장 비싼 도구는 생체 데이터 영상 한 컷이다. 의뢰서 한 장을 받기 전 늘 가족 한 명에게 영상 메시지를 미리 녹화해 두는 습관이 있는데,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 영상을 "선결재"라고 부른다. 살아 돌아오면 그 영상은 다음 의뢰가 끝날 때까지 다시 봉인된다.
“우리 사냥꾼들이 클로토 5번 행성 입구에 라이플을 한 자루 묻어두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라이플은 다음 사냥꾼이 그 행성을 다시 찾을 때 쓰라는 한 줄 유언이지요.”
외계 생체 사냥꾼 다리언 페로 — 클로토 5번 행성(Klotho-V, 다리 일곱 개 포식종 '히드라크'의 유일한 서식 행성) 사십 회 강하 베테랑 — 의 일화는 '묻힌 라이플(Buried Rifle)'로 사냥꾼들 사이에 길게 회자된다.
다리언은 동료 사냥꾼 라울과 단둘이 클로토 5번 행성에 강하해 히드라크(Hydrach, 다리 일곱 개의 결정체 외피 포식종) 한 마리의 생체 영상을 찍는 의뢰를 수행했다. 사흘째 새벽 라울이 히드라크의 측면 결정체 가시에 다리를 관통당해 의식을 잃었고, 다리언은 자기 라이플 탄창을 모두 비워 히드라크의 시야를 분산시킨 뒤 라울을 등에 업고 강하 캡슐로 후퇴했다. 캡슐 적재 한도가 두 사람 분량이 안 되어 다리언은 자기 라이플과 비상 식량을 캡슐 입구에 정중히 묻어두고는, 자기 합성 호르몬 미끼병 한 병만 챙긴 채 캡슐을 발진시켰다.
캡슐은 라울의 의식을 살린 채 본대 함선에 도착했고, 라울은 다음 분기 사냥꾼 길드 사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리언이 묻어둔 라이플은 사 분기 뒤 신참 사냥꾼 노아 페로(다리언의 친조카)가 클로토 5번 행성에 강하해 같은 자리에서 회수했고, 노아는 그 라이플을 사용하지 않은 채 사냥꾼 길드 본부에 정중히 봉인 보관했다. 사냥꾼 길드는 그 라이플 봉인을 신참 입문 첫날 한 번 꺼내 보여주는 의례로 삼았으며, 클로토 5번 행성 강하 캡슐 입구 한 자리는 후대 사냥꾼들이 매번 라이플 한 자루를 정중히 묻어두는 비공식 묘지가 되었다.
성간선장(星間船長)
행성간 화물선장
별과 별 사이를 잇는 화물선의 선장
“우리 화물칸엔 절대 안 묻습니다. 묻기 시작하면 다음 항해부터 짐이 안 들어와요.”
행성간 화물선장은 중소형 화물선 한 척을 직접 소유 또는 임대하여 항성계 사이 합법·반합법 화물을 운송하는 자다. 외형은 닳은 비행 점퍼, 어깨에 항해 면허 패치, 허리에 작은 레일 권총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변경 항로의 정기 검문 시각·옛 분기 통관 결재·금기 화물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화물칸 한 칸의 내용물을 정확히 묻지 않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불문율이며, 그래서 그의 화물 명세서는 늘 표면적으로는 "건조 식료품"이다. 정거장 카운터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인사는 "이번엔 무사히 도착했냐"이며, 그 인사 한 줄로 한 항로의 안부가 정해진다. 가장 무거운 한 항해는 큰 보석 운송이 아니라, 외곽 식민지로 가는 의약품 한 박스 위에 있다.
“우리 화물선장은 의약품 한 박스의 무게를 함대 보급 자재 천 톤보다 먼저 외웁니다. 그 박스 한 개의 무게가 외곽 식민지 어린이 사십 명의 한 분기라는 사실, 변경 항로 일 년만 다녀보면 압니다.”
화물선장 토비아스 한센 — 변경 항로 사십 분기 베테랑이자 화물선 '하얀 갈매기(White Gull, 중형 화물선 모델 H-7)' 단독 선주 — 의 일화는 '루나 식민지 의약품 항해(Luna Colony Medicine Run)'로 화물선장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루나-3 식민지(Luna-3, 변경 항성계 외곽의 광산 식민지로 의료 인프라가 가장 빈약한 곳)에 결정체 폐렴 — 결정체족 외계 미생물에 의한 호흡기 감염 — 이 퍼졌을 때, 토비아스는 화물 의뢰 표면적 명세서를 '건조 식료품'으로 적은 채 사실은 합성 항생제 한 박스를 화물칸 가장 깊은 자리에 실었다. 항로 중간 검문 게이트 칠풍 정거장(Chilpung Station, 변경 항로 정기 검문 정거장)에서 통관 사관 율리시스 단(시리우스 항성계 통관청 차석)이 화물칸 검문을 진행했고, 표면 명세와 실제 적재가 어긋난다는 사실을 한 호흡에 알아챘다. 토비아스는 자기 항해 면허 패치를 떼어 책상 위에 올려 두며 "이 한 박스는 면허 한 장과 바꾸시지요"라고 정중히 한마디만 보탰다.
율리시스는 자기 결재란을 한 줄 비운 채 그 박스를 통관시켰고, 그 한 박스가 루나-3 식민지 어린이 사십 명의 결정체 폐렴을 한 분기 안에 잡았다. 토비아스의 면허 패치는 칠풍 정거장 통관실 책상 한 구석에 그대로 봉인되었으며, 후대 화물선장들은 칠풍 정거장 통관실 앞에 도착하면 자기 점퍼 패치를 한 번 살짝 누르고 통과하는 비공식 의례를 따른다. 토비아스는 그날 이후 새 면허를 발급받지 않은 채 십 분기를 더 항해했다.
우주항정비사(宇宙港整備士)
우주항 정비사
우주항의 함선을 정비하는 자
“이 함선, 다음 워프까지는 버팁니다. 그 다음은 보장 못 합니다. 정확히 그게 제 일입니다.”
우주항 정비사는 정거장 도크에서 입항한 화물선·정찰함·소형 전함의 외장·노즐·반응로 일선 정비를 담당하는 평민 출신 기술공이다. 외형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 어깨에 정비 공구 벨트, 허리에 작은 진단 패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함급의 정비 매뉴얼·옛 분기 결함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정비사가 "다음 워프까진 버팁니다"라고 말하면 그 함선은 정확히 다음 워프까지만 버틴다. 그래서 베테랑 화물선장은 화려한 함선 도색보다 단골 정비사 한 명의 작업복을 더 신뢰한다. 가장 무거운 정비는 큰 전함의 노즐이 아니라, 신참 화물선장이 처음 끌고 온 닳은 화물선의 한 줄 결함 진단 위에 있다.
“정비사 한 명의 작업복은 사관 견장보다 무겁다고들 합니다. 그 작업복 가슴팍 한 자국이 화물선장 일곱 명의 다음 항해라는 뜻이지요.”
우주항 정비사 와카츠키 류 — 칠풍 정거장 도크 사십 년 베테랑이자 변경 화물선장들 사이에서 단골 정비사로 통하는 자 — 의 일화는 '하얀 갈매기 노즐(White Gull Nozzle)'로 도크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칠풍 정거장 도크에 화물선장 토비아스 한센(앞서 행성간 화물선장 일화의 주인공)의 화물선 '하얀 갈매기' 노즐이 결정체 폐렴 항해 직전 미세 균열로 뜯어졌을 때, 와카츠키는 정식 정비 자재 신청 결재를 우회해 자기 사재로 마련해 둔 신형 노즐 부품 한 점을 단신으로 그날 밤 안에 부착했다. 정거장 정비 결재실 차장 가드너 포드는 다음날 아침 결재 우회를 발견해 와카츠키를 정비사 면허 정지 회의에 회부하려 했으나, 통관청 차석 율리시스 단(앞서 화물선장 일화 등장 인물)이 그 회의 첫 자리에 자기 결재란을 한 줄 비운 채 도착했다. 와카츠키는 면허 정지 처분을 한 분기 받았으나, 그 한 분기 동안 도크 신참 정비공 일곱 명에게 매뉴얼 87페이지의 비공식 우회 회로를 직접 손으로 가르쳤다.
면허 복귀 후 와카츠키는 자기 작업복 가슴팍에 그 한 분기의 기름 자국 한 줄을 평생 지우지 않았으며, 그 자국은 칠풍 정거장 도크 단골 화물선장들의 비공식 보증 마크가 되었다. 도크 신참 정비공들은 입소 첫날 와카츠키의 작업복 가슴팍 한 자국을 한 번 들여다보는 의례를 따른다. 하얀 갈매기 호의 그 노즐 부품은 십 분기를 더 갈매기를 변경 항로에서 굴렸다.
함내군의자(艦內軍醫者)
함내 군의관
함선 안에서 의술을 펼치는 군의관
“함포가 뚫리면 외벽 정비공이 옵니다. 사람이 뚫리면 제가 옵니다. 분업이지요.”
함내 군의관은 전함 의무실에서 함내 부상자·진공 노출자·방사선 피폭자를 일선에서 처치하는 군 의료 장교다. 외형은 합성 의무복, 어깨에 의무관 휘장, 허리에 휴대용 응급 키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함포가 외벽을 두드리는 와중에도 의무실 한 자리에서 부상자 한 명의 한 시간을 늘리는 일을 한다.
함장이 명령을 내리고 정비공이 동력을 잇는다면, 군의관은 그 명령을 수행한 부하의 다음 한 끼를 살리는 자다. 가장 자주 쓰는 도구는 메스가 아니라 진정제 주사기이며, 그것은 부상자가 아니라 옆에서 우는 신참 동료에게 놓는 경우가 더 많다. 의무실 책상에 늘 놓여 있는 작은 사진 한 장은, 그가 처음으로 살리지 못한 부하 한 명의 호출부호다.
“우리 의무실 책상의 그 사진 한 장은 지우지 않는 게 군의관의 첫 자세입니다. 잊지 않은 한 호출부호 위에서야 다음 부하의 한 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들 하지요.”
일급 군의관 발렌틴 도르프 — 전함 '아크투루스' 의무실 사대 군의관이자 평생 의무관 휘장을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오리온 회랑 의무실 17분(Orion Corridor Sickbay 17 Minutes)'으로 군의관 양성소 마지막 수업에 인용된다.
정비공 보리스 멘델(앞서 전함 기관 정비공 일화의 주인공)이 17분 안에 워프 코어를 재기동시키던 그 17분 동안, 발렌틴은 함내 부상자 사십 명을 의무실 한 칸에서 단신으로 처치했다. 부상자 가운데 통신병 호출부호 '베타-7'이 결정체 가시 외피에 폐를 관통당한 채 의무실에 후송되었고, 발렌틴은 그 한 명에게 의무실 마지막 합성 산소 캡슐 한 개를 사용했다. 베타-7은 워프 점프 직전 의식을 회복했으나 폐 손상이 너무 깊어 두 시간 뒤 사망했고, 발렌틴은 자기 의무실 책상에 베타-7의 호출부호와 작은 사진 한 장을 정중히 올려 두었다.
그 사진은 베타-7이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자기 어머니와 찍은 한 장이었으며, 발렌틴은 그 사진을 평생 그대로 두고 그 옆에 다른 호출부호를 한 줄도 더 보태지 않았다. 발렌틴이 은퇴한 뒤 후임 군의관 카밀로 한센은 그 사진을 의무실 한 구석에 그대로 봉인 보관했고, 후대 아크투루스 군의관들은 부임 첫날 그 사진 앞에 의무관 휘장을 한 번 풀었다 다시 다는 의례를 따른다. 베타-7의 어머니는 평생 매년 그 사진의 복사본 한 장을 아크투루스 의무실 앞으로 정중히 송부했다.
데이터밀상(데이터密商)
데이터 밀수꾼
데이터를 몰래 빼돌리는 밀수의 객
“이 칩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묻지 마세요. 묻는 순간 가격이 두 배가 됩니다.”
데이터 밀수꾼은 항성계 사이 검열망을 우회해 군사 좌표·기업 설계도·금지 영상 데이터를 운반하는 그림자 직업이다. 외형은 평범한 정거장 시민의 옷차림, 어깨에 작은 가방, 손목 안쪽에 비공식 데이터 단자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검문 게이트의 평소 검색 시각·옛 분기 통관 결재·금기 키워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합법 화물선장이 화물칸을 묻지 않는다면, 데이터 밀수꾼은 자기 머릿속을 묻지 않는다. 가장 비싼 한 칩은 큰 군사 좌표가 아니라, 식민지에서 끊긴 가족이 본토로 보내는 한 장 영상 메시지 위에 있다. 그래서 노련한 밀수꾼은 그 한 장만큼은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업계 불문율을 평생 지킨다.
“우리 밀수꾼들이 손목 단자에 빈 슬롯 하나를 평생 비워 두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한 슬롯은 무료 가족 영상 한 장 전용이라는, 우리 사이의 한 줄 약속이지요.”
데이터 밀수꾼 잭슨 콰이 — 변경 검문 게이트 사십 곳을 다 외운 자이자 손목 단자에 빈 슬롯 하나를 평생 비워둔 베테랑 — 의 일화는 '루나-3 가족 영상(Luna-3 Family Reel)'로 밀수꾼들 사이에 길게 회자된다.
루나-3 식민지(앞서 화물선장 일화의 결정체 폐렴 식민지) 결정체 폐렴 격리 분기 동안, 식민지 광부 한쇠(앞서 우주 광부 일화의 주인공)가 자기 어린 손녀의 학교 입학식 영상 한 장을 본토 가족에게 보내달라고 잭슨에게 의뢰했다. 잭슨은 그 영상이 합법 통신망 검열에서 '결정체 격리 구역 발신' 키워드로 자동 차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기 정규 의뢰 화물 — 기업 설계도 한 칩 — 옆에 그 영상 한 장을 무료 슬롯으로 끼워 운반했다. 칠풍 정거장 검문 게이트에서 통관 사관이 손목 단자를 한 번 스캔했고, 합법 화물 칩과 영상 한 장이 동시에 검열에 걸렸다. 잭슨은 자기 정규 의뢰 화물 칩을 그 자리에서 통관 사관에게 정중히 양도하며 "기업 설계도는 압수해도 되니, 손녀 영상 한 장만 가족에게 발송해 주십시오"라고 한마디만 보탰다. 통관 사관 율리시스 단(앞서 화물선장·정비사 일화의 동일 인물)은 그 영상을 자기 결재 단말로 직접 본토에 발송했고, 한쇠의 손녀 영상은 그 분기 안에 본토 가족에게 도착했다. 잭슨은 정규 의뢰비 전액을 손해봤으나, 그 영상 발송 한 번으로 변경 밀수꾼 길드의 '무료 슬롯 약속' 불문율이 한 줄 더 굳어졌다.
후대 밀수꾼들은 입문 첫 항해에 손목 단자 빈 슬롯 한 자리를 정중히 비워두는 의례를 따른다.
식민농부(植民農夫)
식민지 농업 일꾼
식민지의 흙을 매만지는 농부
“감자는 화성에서도 자랍니다. 그게 우리 일이 끊기지 않는 이유지요.”
식민지 농업 일꾼은 외곽 행성의 합성토양·돔형 온실·인공중력 농지에서 작물을 길러내는 평민 출신 노동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휴대용 토양 진단기, 허리에 합성 비료 한 봉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식민 행성의 평소 일조량·옛 분기 수확 결재·금기 작물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대가 항성을 가르는 동안, 그가 기른 감자 한 박스가 외곽 정거장 한 가족의 한 끼를 결정한다. 화려한 함포 위력보다 무거운 것은 결국 그가 보낸 한 박스가 다음 분기 식량 배급선에 제때 실리느냐의 한 줄 결재다. 가장 무거운 한 박스는 큰 수확이 아니라, 첫 식민지 정착민 한 가족에게 보내는 첫 분기 감자 위에 있다.
“우리 농지에는 첫 박스 감자 한 알이 평생 한 자리에 보관됩니다. 그 한 알이 우리 식민지 첫 새벽의 한 줄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식민지 농업 일꾼 한도수 — 화성 외곽 식민지 메리디언-12(Meridian-12, 화성 적도 인근 합성토양 농업 식민지) 사대 농지 반장 — 의 일화는 '첫 박스 감자(First Box Potato)'로 식민지 농업 일꾼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메리디언-12 식민지가 정착 첫 분기를 맞이하던 해, 합성토양 시제품의 결정체 오염 사고 — 결정체족 미생물에 의한 토양 오염 — 가 발생해 첫 분기 수확물이 거의 전량 폐기되었다. 한도수는 자기 농지 한 뙈기 가장 깊은 자리에 비공식으로 심어둔 비축 감자 일곱 알을 정중히 캐내, 첫 분기 식량 배급선에 그 일곱 알만 한 박스에 담아 보냈다. 그 박스는 변경 식민지 가운데 가장 의료 인프라가 약한 루나-3 정착민 한 가족 — 광부 한쇠의 손녀 가족(앞서 데이터 밀수꾼 일화에 등장한 그 손녀의 가족) — 에게 도착했고, 그 가족은 그 일곱 알의 감자로 분기 한 끼를 늘렸다. 한도수는 그 일곱 알 가운데 가장 작은 한 알을 정중히 캐어 자기 농지 정중앙에 다시 심었으며, 그 한 알이 자란 자리는 메리디언-12 식민지의 비공식 사적 묘목 자리가 되었다.
후대 메리디언-12 농지 반장들은 부임 첫 분기에 그 한 알 자리에 합성 비료 한 봉지를 정중히 따르는 의례를 따른다. 화성 외곽 식민지 야사에서는 그 일곱 알이 함대 보급 자재 천 톤보다 한 분기 더 무거운 한 박스라고 한 줄로 적혀 있다.
우주항부(宇宙港夫)
우주항 짐꾼
우주항의 짐을 짊어지는 일꾼
“함대 사령관도 짐은 직접 안 듭니다. 그게 제가 끼니를 거르지 않는 이유지요.”
우주항 짐꾼은 정거장 도크에서 입항선의 화물·승무원 짐·식료품 박스를 격납고에서 부두까지 운반하는 평민 출신 운반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운반 벨트, 허리에 화물 식별표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함급의 화물칸 구조·옛 분기 입항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대 사령관이 작전을 결정한다면, 짐꾼은 그 사령관이 다음 항해에 들고 갈 사적 짐 한 박스의 무게를 정확히 안다. 그래서 정거장의 진짜 정보통은 사령관실이 아니라 부두 짐꾼들의 휴게실이라는 농담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박스는 큰 함대의 보급 자재가 아니라, 함대를 따라 전사한 동료의 외투 한 벌이 든 한 박스 위에 있다.
“우리 짐꾼 휴게실 벽에는 외투 한 벌이 사십 년째 같은 자리에 걸려 있습니다. 그 외투는 입항해도 다시 못 부두에 내려오는 짐 한 박스를 우리가 평생 외우는 자세지요.”
우주항 짐꾼 무라야마 다이고 — 시리우스 정거장(Sirius Station, 시리우스 항성계 최대 부두를 가진 정거장) 부두 사십 년 베테랑 — 의 일화는 '외투 한 벌(One Coat)'로 짐꾼들 사이에 가장 길게 전해진다.
함대 작전 '리겔 후퇴(앞서 함대 사령관 마커스 한 일화의 작전)' 직후, 사령관 마커스 한의 기함 안드라가 잃은 두 척 — '오리온-3'과 '오리온-7' — 의 전사자 사적 짐 박스 사십 개가 시리우스 정거장 부두에 도착했다. 무라야마는 그 박스 사십 개를 사령관실 직접 운반 의뢰로 받았으나, 마커스 한이 박스를 직접 부두에서 받겠다고 한 줄 결재를 보냈다. 박스 사십 개 가운데 한 박스가 마커스의 옛 사관학교 동기 — '오리온-3' 함장 윌리엄 노스 — 의 사적 짐이었으며, 그 박스 안에 윌리엄의 정복 외투 한 벌이 들어 있었다. 마커스는 그 외투를 박스에서 꺼내 자기 사령관실 옷걸이에 한 줄로 걸지 않고, 무라야마의 짐꾼 휴게실 벽 한쪽에 정중히 걸어 두기를 청했다. 무라야마는 그 외투를 휴게실 벽 가장 깊은 자리에 걸었으며, 그 자리에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외투가 그대로 있다.
후대 시리우스 정거장 짐꾼들은 야간 교대 첫 시각 그 외투에 한 번 손바닥을 대 보는 의례를 따르며, 윌리엄 노스의 가족은 매년 한 번 그 외투를 정중히 점검하러 휴게실에 들른다. 부두 야사에서는 짐꾼 휴게실 벽 그 외투 한 벌이 함대 사령관실 견장 한 줄보다 무거운 짐이라고 한 줄로 적혀 있다.
거함함장(巨艦艦長)
거대함선 함장
거대 함선을 호령하는 함장
“이 함선의 이름이 곧 내 이름이다. 함선이 가라앉으면, 나도 같은 좌표에 가라앉는다.”
거대함선 함장은 길이 수 킬로미터, 승무원 수만 명 규모의 초대형 기함을 단일 권한으로 지휘하는 자다. 함선 한 척이 곧 떠다니는 도시이며, 그 안에는 자체 시장·예배실·교도소·소형 공장이 모두 들어 있다. 그가 한 번 출항 명령을 내리면 인접 항성계 세 곳의 보급 항로가 동시에 재편되며, 입항 한 번에 정거장 한 곳의 일년치 부두 사용료가 결재된다.
본인은 함교 한가운데의 함장석에 앉되, 그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까지 모든 승무원이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적과의 함포전이 아니라, 함내 부서 간 보급 다툼을 한 잔의 차로 중재하는 일이다. 그래서 노련한 함장은 적함의 함명보다 자기 함내 식당장의 이름을 먼저 외우고, 그 함명은 늘 자기보다 늦게 하선시킨다.
“거대함선 함장은 함명을 자기보다 먼저 떠나보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함명이 결국 승무원 만 명의 한 줄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거대함선 '레비아탄(Leviathan, 함대 최대 길이 12km 초대형 기함)' 삼대 함장 율리시스 카일러 — 케르베로스 함대(Cerberus Fleet, 은하 변경 정찰 함대) 마지막 사령관이자 평생 함명을 자기보다 먼저 떠나보내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레비아탄 마지막 좌표(Leviathan Last Coordinate)'로 함대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케르베로스 함대가 안드로메다 변경 정찰 임무 중 결정체족 분파 카슈르(Khashur, 결정체족 변경 군체)의 함대에 둘러싸여 레비아탄 외장이 절반 이상 파괴되었을 때, 율리시스는 함내 승무원 만 명을 우선 구난선에 분산 탑승시키는 결재를 한 줄로 내렸다. 마지막 구난선이 출발한 뒤 율리시스는 함교 함장석에 단신으로 남았고, 부함장 알라릭 단(레비아탄 부함장이자 율리시스의 옛 사관학교 동기)이 함교에 남아 함께 동행하기를 요청했다. 율리시스는 알라릭의 부함장 견장을 손수 떼어 마지막 구난선에 정중히 동봉시켰으며, 알라릭은 그 견장을 들고 마지막 구난선에 탑승했다.
레비아탄은 한 시진 뒤 워프 코어 자폭과 함께 카슈르 함대 일곱 척을 함께 소거했고, 율리시스의 좌표는 마지막 통신 좌표 한 줄로만 함대 통신 기록에 남았다. 그 좌표는 함대 사령부에서 '레비아탄 좌표'로 한 줄 등록되어, 후대 거대함선 함장들은 부임 첫 출항 시 그 좌표를 항법 콘솔에 한 번 띄워 보는 의례를 따른다. 알라릭은 그 견장을 자기 함장석에 못박고 평생 다시 함명을 잃지 않은 함장으로 남았다.
특강돌격사(特降突擊士)
특수강하 돌격병
궤도에서 강하해 적진을 뚫는 돌격병
“낙하산은 안 펴진다. 우리 임무는 펴지기 전에 끝낸다는 거다.”
특수강하 돌격병은 궤도에서 행성 표면으로 단독 강하해 적 핵심 시설·요인 거점·통신 중계탑을 단시간에 무력화하는 최정예 전투병이다. 강하 캡슐 하나의 가격이 변경 도시 한 곳의 분기 예산과 맞먹으며, 한 번의 강하에서 살아 돌아오는 비율을 계산하지 않는 것이 부대의 오랜 전통이다. 본인은 강하 직전 자기 군번·소속 부대·고향 별의 이름을 헬멧 안쪽에 직접 손으로 적고 봉인하며, 그 헬멧이 회수되면 다음 강하조에 그 이름이 한 줄 더 새겨진다.
가장 자주 쓰는 도구는 라이플이 아니라 강하 직후 1분 안에 결정되는 침착함이다. 부대 회식 자리에서는 절대 제대 후 계획을 묻지 않는 불문율이 있는데, 묻는 신참은 다음 강하조 명단에서 빠진다. 살아 돌아온 자만이 회식 마지막 잔을 비울 자격을 얻는다.
“강하 회식 마지막 잔은 늘 사십 잔이 놓입니다. 비운 잔의 수보다 비우지 못한 잔의 수가 많은 회식이 진짜 회식이라고들 하지요.”
특수강하 돌격병 코르넬리우스 단 — 9중대 '검은 깃털(Black Feather)' 부대 부대장이자 사십 회 강하 끝에 사이보그 검투사로 자리를 옮긴 자(앞서 사이보그 검투사 일화의 라이언 캐스의 도전자) — 의 일화는 '아르카디아 통신탑 11분(Arcadia Comm Tower 11 Minutes)'으로 강하 부대 야사에 길게 남았다.
아르카디아 식민지(Arcadia, 결정체족 변경에 인접한 분쟁 식민지)에서 결정체족 분파의 통신 중계탑 — 인류 함대 통신 채널 사십 줄을 동시에 차단할 수 있는 거점 — 을 무력화하는 강하 임무에서, 코르넬리우스는 자기 강하조 일곱 명 가운데 자기를 포함해 셋만 살아 돌아왔다. 11분 안에 통신탑을 무력화하면서 그는 자기 헬멧 안쪽에 동료 일곱의 이름을 한 줄씩 새기고, 살아 돌아온 자기 헬멧 안쪽에 죽은 네 명의 이름을 평생 지우지 않았다. 회식 자리 마지막 잔에 코르넬리우스는 그 네 잔을 자기 자리 옆에 정중히 비워 두었으며, 그 자리에 다음 분기 강하조의 신참 네 명이 자기 잔을 한 잔씩 더 따랐다.
코르넬리우스는 그 회식 직후 강하 부대 사임을 결재하고 사이보그 검투사로 자리를 옮겼고, 자기 헬멧을 9중대 본부 명패 옆에 정중히 봉인 보관했다. 검은 깃털 부대 후대 신참들은 입대 첫 회식에 그 헬멧 앞에 잔을 한 잔 따르는 의례를 따르며, 헬멧 안쪽 일곱 줄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새겨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궤도저격수(軌道狙擊手)
궤도 저격수
궤도에서 표적을 꿰뚫는 저격수
“지구 한쪽 끝에서 다른 끝의 머리카락 한 올을 본다. 좋은 아침이지요.”
궤도 저격수는 저궤도 위성 또는 정지궤도 플랫폼에 단독 배치되어 행성 표면의 핵심 표적을 정밀 사격으로 제거하는 특수 병종이다. 그가 다루는 레일 저격포 한 발은 대륙 한 곳의 한 골목을 정확히 짚어내며, 그 한 발의 결재 권한은 함대 사령관급에서만 떨어진다. 본인은 위성 모듈 한 칸 안에서 수개월을 단신 근무하며, 그 시간 대부분을 좌표 보정과 중력 함정 계산에 쓴다.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사격이 아니라, 사격 직전 수십 분간 표적의 일상을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그래서 궤도 저격수의 정신 검진 주기는 일선 보병의 두 배이며, 본인들도 그 주기를 농담거리로 삼는다. 위성에서 내려와 첫 식사를 할 때 가장 먼저 시키는 메뉴가 늘 같은 한 그릇이라는 메뉴는 이미 부대 자료실에 한 줄로 남아 있다.
“위성에서 내려온 저격수가 노점 합성 국밥 한 그릇을 먼저 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어. 그 그릇은 자기가 안 쏜 한 발의 호흡을 다시 데워주는 자리지.”
궤도 저격수 알렉세이 코르차크 — 정지궤도 플랫폼 G-7(Geo-7, 시리우스 항성계 정지궤도 사격 전용 플랫폼) 단신 근무 사십 회 베테랑 — 의 일화는 '안 쏜 한 발(Unfired Round)'로 저격수 양성소 마지막 수업에 인용된다.
시리우스 외곽 식민지 헬리오스-9(앞서 보안관 일화의 식민지)의 광부 폭동 진압 작전 중, 알렉세이는 폭동 주동자 — 광부 한쇠(앞서 우주 광부 일화의 주인공) — 의 한 골목을 사격 결재 단말로 받아들였다. 그는 한쇠의 일상을 사흘간 조용히 지켜보며 한쇠가 매 새벽 폭동 본부가 아니라 헬리오스-9 보안관 너새니얼 부캐넌(앞서 식민행성 보안관 일화의 주인공)의 보안관실에 들러 합성 위스키 잔을 한 잔씩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좌표 단말에 한 줄로 보고했다. 그 한 줄 보고가 함대 사령관실 결재 라인을 거쳐 폭동의 성격이 무력 진압 대상이 아니라 협상 대상이라는 재평가로 이어졌다.
알렉세이의 사격 결재는 그날 안에 취소되었고, 헬리오스-9 폭동은 너새니얼의 한 잔 더 보안관 협상으로 한 분기 안에 평정되었다. 알렉세이는 위성에서 내려온 첫 식사로 헬리오스-9 정거장 노점상 — 우메다 한지(앞서 정거장 노점상 직업의 주인공)의 노점 — 에서 합성 국밥 한 그릇을 시켰고, 그 자리에 한쇠가 자기 합성 위스키 잔 한 개를 정중히 올려 두었다. G-7 플랫폼 후대 저격수들은 위성에서 내려온 첫 끼로 합성 국밥 한 그릇을 시키는 의례를 따른다. 안 쏜 한 발의 좌표 단말은 부대 자료실에 한 줄로 봉인 보관되어 있다.
함대통신사(艦隊通信士)
함대 통신장교
함대의 전언을 잇는 통신장교
“이 채널, 5초 후 닫힙니다. 사령관님께 한 줄, 가족분께 한 줄. 정확히 거기까지입니다.”
함대 통신장교는 기함과 산하 함선·본부·동맹군 사이의 모든 암호 통신·긴급 채널·잡음 속 구조 신호를 실시간으로 정리해 사령관에게 전달하는 장교다. 한 번의 통신 지연이 함대 한 부대의 전멸로 이어질 수 있어, 그의 한 줄 보고는 평시에도 무게가 다르다. 본인은 함내에서 가장 오래 깨어 있는 직군이며, 함교 한 구석의 통신 콘솔 의자에는 늘 그의 흔적이 묻어 있다.
가장 자주 듣는 농담은 "자네가 졸면 함대가 길을 잃는다"이며, 그 농담의 정답은 늘 그렇다. 통신장교만 아는 비공식 채널이 함내에 한 줄 있는데, 그 채널은 부상자 가족에게 보내는 마지막 한 줄 메시지 전용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송신은 큰 작전 명령이 아니라, 그 채널 위에 늘 떠다닌다.
“통신장교의 진짜 견장은 채널 17번 위에 있어. 그 한 채널이 함대의 모든 마지막 한 줄을 평생 지키는 자리거든.”
함대 통신장교 호출부호 '베타-7' — 본명 노아 콘(앞서 기갑 파일럿 케일럽 라이드 일화의 신참 노아와는 동명이인) 으로 전함 '아크투루스' 통신실 사대 장교 — 의 일화는 '채널 17번 마지막 한 줄(Channel 17 Last Line)'로 통신장교 양성소 마지막 수업에 인용된다.
오리온 회랑 작전 중 아크투루스 의무실에 후송된 통신병 호출부호 베타-7(앞서 군의관 발렌틴 도르프 일화의 사망 통신병)이 의식을 회복한 짧은 시각, 노아는 자기 통신 콘솔 비공식 채널 17번을 열어 베타-7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한 줄 메시지 — '오늘 밥은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 — 를 송신했다. 그 한 줄은 베타-7의 어머니가 평생 자기 단말 첫 화면에 코팅해 보관한 마지막 한 줄이 되었으며, 베타-7은 두 시간 뒤 의무실에서 사망했다. 노아는 그 한 줄 송신 결재 권한을 함대 정규 채널이 아닌 비공식 채널 17번으로만 처리해, 통신 기록상 그 송신은 군 결재 라인 어디에도 한 줄로 적히지 않았다. 함대 정보 감찰관 가드너 포드(앞서 정비사 일화의 정비 결재실 차장과 동일 인물)가 그 비공식 채널을 발견해 노아를 군법 회의에 회부하려 했으나, 사령관 마커스 한이 자기 결재란을 한 줄 비운 채 채널 17번을 함대 정규 매뉴얼 부록 8장에 정중히 등록시켰다. 채널 17번은 그날 이후 모든 함대 기함의 통신 매뉴얼에 부상자 가족 마지막 한 줄 송신 전용 채널로 한 줄 등록되어 있다.
후대 통신장교들은 입대 첫 야간 교대에 채널 17번을 한 번 점검하는 의례를 따른다.
테라조성사(테라造成師)
행성 테라포밍 기사
행성을 인간의 땅으로 빚는 테라포밍의 자
“이 행성에 비가 내리려면 80년이 필요합니다. 제 손주가 우산을 들겠지요.”
행성 테라포밍 기사는 미개척 행성의 대기·중력·해양·토양을 인류 거주 가능 환경으로 점진적으로 개조하는 거대 토목 기술자다. 한 번의 프로젝트는 평균 50년에서 100년이 걸리며, 그가 부임한 행성에서 첫 비가 내리는 날은 본인이 이미 은퇴한 뒤인 경우가 많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후보 행성의 대기 조성·옛 분기 시추 결재·금기 화학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포가 행성을 부순다면, 테라포밍 기사는 그 부서진 행성을 다시 사람이 살 만한 별로 되돌리는 자다. 부임 첫 해에 심는 한 그루 묘목 옆에는 늘 그의 손주 이름이 미리 적힌 명패 한 장이 묻혀 있다. 그래서 베테랑 테라포밍 기사의 무덤은 늘 자기가 살린 행성의 가장 푸른 언덕에 있다.
“우리는 자기가 심은 묘목 옆에 손주 이름을 미리 적습니다. 80년 뒤 그 손주가 비를 맞으며 명패에 합장하는 자세, 그게 우리 직업의 진짜 결재 한 장이지요.”
행성 테라포밍 기사 안드레이 폴락 — 화성 외곽 식민지 메리디언-12(앞서 농업 일꾼 한도수 일화의 식민지) 사대 테라포밍 책임자이자 자기 손주 이름을 묘목 명패에 처음 새긴 자 — 의 일화는 '첫 비 80년(First Rain 80 Years)'으로 테라포밍 기사 양성소 졸업식 마지막 슬라이드에 인용된다.
안드레이는 메리디언-12 부임 첫 해에 식민지 정중앙 합성토양 농지 — 농업 일꾼 한도수의 한 알 자리(앞서 농업 일꾼 일화의 묘목 자리) — 옆에 자기 손주 '아담 폴락'의 이름이 미리 적힌 명패 한 장을 정중히 묻었다. 그 한 그루 묘목은 결정체 미생물 토양 오염을 한 번 견디고도 살아남았으며, 안드레이는 평생 그 묘목 한 그루의 성장 보고서를 자기 결재 단말에 한 줄씩 기록했다. 80년 뒤 메리디언-12 식민지에 첫 합성 강수 시스템이 가동되었고, 그날 합성 강수 첫 물방울 한 방울이 그 묘목 명패 위에 떨어졌다.
명패에 적힌 손주 아담 폴락은 그 자리에 정중히 합장하고는, 자기 손주의 이름을 명패 옆에 한 줄 더 새겼다. 메리디언-12 식민지 공식 사관은 그 합성 강수 첫 물방울 좌표를 한 줄로 기록했으며, 후대 메리디언-12 테라포밍 기사들은 부임 첫 해에 묘목 한 그루를 심고 그 옆에 손주 이름이 적힌 명패를 한 장씩 묻는 의례를 따른다. 안드레이의 무덤은 그 묘목 옆 가장 푸른 언덕에 있으며, 비가 오는 날에는 합성 강수 시스템이 그 자리에 한 방울 더 떨어뜨리도록 비공식 좌표가 입력되어 있다.
정거장주옹(停車場酒翁)
정거장 술집주인
정거장 술집을 지키는 늙은 주인
“함대 비밀? 이 카운터 너머에선 다 비공식이지요. 그래서 술값이 두 배입니다.”
정거장 술집주인은 변경 정거장의 작은 술집 한 칸을 운영하며, 광부·짐꾼·해적·탈영 사관·외계종족 모두를 같은 카운터에서 받는 자다. 외형은 닳은 합성가죽 앞치마, 어깨에 작은 행주, 허리에 작은 호신용 충격봉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함급의 정박 일정·옛 분기 입항 결재·금기 화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정거장의 진짜 정보 길드는 보안관실이 아니라 그의 카운터 너머에 있다.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툴 기색의 두 손님 사이에 술잔 한 잔을 더 슬쩍 끼워 넣는 일이다. 단골 한 명이 임무에 못 돌아오면, 그의 좌석 위에 잔 하나를 일주일간 비워두는 것이 그의 평생 의례다.
“우리 카운터 13번 자리는 사십 년째 비워져 있습니다. 그 자리 위에 잔 하나가 늘 한 잔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 술집의 한 줄 호적이지요.”
정거장 술집주인 라이언 헤이스팅스 — 시리우스 정거장 부두 술집 '검은 노즐(Black Nozzle)' 사대 주인이자 사십 년 카운터를 한 번도 비우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카운터 13번 자리(Counter Seat 13)'로 부두 야사에 길게 전해진다.
검은 노즐의 단골 거대함선 함장 율리시스 카일러(앞서 거대함선 함장 일화의 레비아탄 함장)가 케르베로스 함대 출항 직전 그 술집 카운터 13번 자리에 자기 함장 견장 한 줄을 정중히 풀어두고 출항했다. 율리시스가 레비아탄 마지막 좌표(앞서 거대함선 함장 일화의 자폭 좌표)에 함께 가라앉은 뒤, 라이언은 13번 자리에 그 견장과 함께 합성 위스키 잔 한 개를 정중히 채워두고 일주일간 비워두는 의례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라이언은 그 자리를 다른 손님에게 내주지 않았으며, 그 잔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에 같은 합성 위스키로 채워져 있다.
부함장 알라릭 단(앞서 거대함선 함장 일화의 부함장)이 매년 한 번 그 자리에 정중히 술잔을 따르러 검은 노즐에 들렀고, 율리시스의 손녀가 훗날 거대함선 함장으로 부임한 뒤 부임 첫 휴가에 그 자리에 합장했다. 라이언이 은퇴한 뒤에도 후임 술집주인은 그 자리를 그대로 두는 비공식 약속을 평생 지키며, 후대 시리우스 부두의 모든 술집 카운터에 한 자리씩 그런 비워둔 자리가 한 줄씩 생겼다. 부두 야사에서는 검은 노즐 카운터 13번이 함대 사령관실 견장 한 줄보다 무거운 자리라고 한 줄로 적혀 있다.
외계어통역사(外界語通譯士)
외계어 통역사
외계 종족의 말을 옮기는 자
“이쪽이 침묵하면 동의가 아닙니다. 칼을 뽑겠다는 뜻입니다. 통역료에 위험수당 더 받겠습니다.”
외계어 통역사는 인류 상인·외교관·군 사관과 비인간 종족 사이의 회담·교역·법정 진술을 실시간 통역하는 전문직이다. 한 번의 오역이 곧 외교 단절·교역 중단·소규모 전투로 이어지기에, 그의 한 단어는 변호사 한 시간보다 무겁게 결재된다. 본인은 평생 수십 종족의 발성·울림·침묵의 길이까지 외워야 하며, 같은 단어라도 종족별 억양이 다르면 정반대 뜻이 된다는 사실을 매일 다시 배운다.
가장 자주 쓰는 도구는 통역 단말이 아니라 자기 혀의 작은 떨림 한 번이다. 술자리에서는 절대 외계 농담을 인간 동료 앞에서 풀지 않는 불문율이 있는데, 풀고 나면 그 농담의 절반은 인간 윤리에 걸린다는 사실을 본인만 안다. 그래서 통역사의 명함 뒷면에는 늘 한 줄 — "오역 책임 본인 부담" — 이 작게 적혀 있다.
“우리 통역사들이 시리우스 사변 회담 음성 기록 18초를 평생 외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18초의 침묵 한 줄이 인류와 결정체족 사이에 사변 한 번을 미룬 자리거든요.”
외계어 통역사 칼 무라카미 — 결정체족 발성 음역 사십 종을 모두 외운 베테랑이자 시리우스 사변(앞서 외교관 가브리엘 노스 일화의 사변) 회담 단신 통역사 — 의 일화는 '18초 침묵(Eighteen-Second Silence)'으로 통역사 양성소 마지막 수업에 인용된다.
시리우스 사변 회담 사흘째 새벽, 결정체족 대표 크리살 칸(앞서 외교관 일화 등장의 결정체족 군체 대표)이 회담장에서 한 음역 — 결정체족 분파 합의에 들어가기 직전 18초의 침묵 — 을 보였을 때, 칼은 자기 통역 단말의 자동 번역 — '동의 보류' — 을 끄고 가브리엘 노스에게 직접 한 줄 한국어로 보고했다. 그 보고는 "18초 침묵은 동의 보류가 아니라, 분파 한 명의 사망 추모 시간입니다"라는 한 줄이었다. 가브리엘은 그 한 줄을 듣고 회담 진행 발언을 18초 미루었으며, 그 18초 동안 회담장 인류 측 모두가 침묵으로 동참했다.
크리살 칸은 회담 종료 후 자기 결정체 인장 한 점을 칼의 통역 단말 위에 정중히 올려두며 "다음 회담에는 19초의 침묵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 통역사여"라고 한마디만 보탰다. 칼은 그 결정체 인장을 자기 명함 뒷면에 평생 부착해 다녔으며, 후대 외계어 통역사들은 회담 첫날 자기 통역 단말의 자동 번역을 한 번 정중히 끄는 의례를 칼의 그 18초에서 따왔다. 결정체족 분파 합의 음역 사전에는 그날 이후 '18초 침묵' 항목이 한 줄로 등록되었다.
잔해회수자(殘骸回收者)
잔해 회수업자
전장의 잔해를 거두는 회수의 자
“이 격벽 한 장, 어제까지 함교였습니다. 오늘부터는 우리 집 식탁이 됩니다.”
잔해 회수업자는 격전이 끝난 항성계의 파괴 함선·격추 기갑·궤도 잔해를 회수해 재가공·재판매하는 변경 직업이다. 외형은 닳은 합성복, 어깨에 자력 견인 벨트, 허리에 작은 절단 토치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함급의 격벽 두께·옛 분기 격전 좌표·금기 회수품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대가 영광을 회수한다면, 회수업자는 그 영광 뒤에 남은 격벽 한 장의 무게를 회수한다. 가장 비싼 한 조각은 큰 기함의 함포가 아니라, 격벽 한 장 안쪽에 남은 어느 사관의 마지막 손글씨 한 줄 위에 있다. 그래서 노련한 회수업자는 그 한 장만큼은 가공하지 않고 유족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비공식 의례를 평생 지킨다.
“우리 회수업자 작업장 한 구석에는 가공 안 한 격벽 한 장이 늘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한 장이 우리 직업의 진짜 결재 라인이라는 뜻이지요.”
잔해 회수업자 마틴 콴 — 케르베로스 함대 잔해 회수권을 사대 단독 보유한 자이자 가공 안 한 격벽 한 장을 평생 자기 작업장에 보관한 자 — 의 일화는 '레비아탄 함교 한 장(Leviathan Bridge Slab)'으로 회수업자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거대함선 레비아탄(앞서 거대함선 함장 일화의 자폭 함선)이 마지막 좌표에서 자폭한 사 분기 뒤, 마틴은 케르베로스 함대 잔해 회수 단독 의뢰를 받아 자기 회수선 '검은 자석(Black Magnet, 중형 회수선 모델 R-3)'으로 그 좌표에 도착했다. 자폭 좌표 한가운데에서 그는 함교 함장석 옆 격벽 한 장을 회수했고, 그 격벽 안쪽에 함장 율리시스 카일러(앞서 거대함선 함장 일화의 주인공)의 마지막 손글씨 한 줄 — '함명을 먼저 보내지 마시오, 알라릭' — 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마틴은 그 격벽을 정규 재가공 라인에 올리지 않고, 자기 사재로 운반비를 부담해 부함장 알라릭 단(앞서 거대함선 함장 일화 등장 인물)의 함장실 앞으로 직접 우편 송부했다. 알라릭은 그 격벽을 자기 함장실 벽 한쪽에 정중히 부착했으며, 그 함장실은 알라릭이 은퇴한 뒤에도 격벽이 부착된 채 보존되었다. 마틴은 그 한 장을 회수한 보수의 절반을 정중히 케르베로스 함대 유족 기금에 송금했고, 자기 작업장 한 구석에 그 격벽의 작은 절단 자투리 한 조각을 가공하지 않은 채 평생 보관해 두었다.
후대 회수업자들은 입문 첫 회수에 가공 안 한 격벽 한 장을 자기 작업장 한 구석에 정중히 보관하는 의례를 따른다.
격납고조부(格納庫助夫)
격납고 조수
격납고에서 손을 거드는 일꾼
“이 기갑, 출격 전 한 번 더 닦겠습니다. 파일럿이 거울 보고 웃으면 살아 돌아오더군요.”
격납고 조수는 모함 격납고에서 기갑·소형 함재기·강하 캡슐의 출격 전 점검·연료 보급·외장 청소를 보조하는 평민 출신 보조 인력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작은 점검 패드, 허리에 합성 천 한 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기갑의 외장 도색·옛 분기 출격 결재·금기 보급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파일럿이 출격을 결정한다면, 격납고 조수는 그 파일럿이 마지막으로 본 콕핏 거울 한 장의 깨끗함을 책임진다. 그래서 격납고 한 칸의 진짜 정보통은 정비반장이 아니라 한구석에서 천을 접고 있는 조수의 손끝에 있다. 가장 무거운 한 번의 청소는 큰 기갑의 노즐이 아니라, 끝내 돌아오지 못한 파일럿의 빈 콕핏 거울 한 장 위에 있다.
“우리 격납고 조수는 한 천을 사십 년 한 자리에 접어 둡니다. 그 천 한 장이 우리 격납고에서 가장 두꺼운 출격 결재라는 뜻이지요.”
격납고 조수 정시현 — 진흙탕 부대(앞서 기갑 파일럿 케일럽 라이드 일화의 부대) 격납고 사대 조수이자 평생 한 합성 천 한 장만 사용한 자 — 의 일화는 '베타-7 빈 콕핏 거울(Beta-7 Empty Mirror)'로 격납고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진흙탕 부대 신참 파일럿 노아 콘(앞서 기갑 파일럿 일화의 베타-7 호출부호) 이 뉴아일 늪지전에서 자기 기갑을 늪에 매장하고 살아 돌아온 사 분기 뒤, 노아는 진흙탕 부대 정비 부서로 자리를 옮겨 정비반장이 되었다. 정시현은 노아의 옛 콕핏 — 진흙탕-7 — 이 늪에 매장된 채 회수되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자기 격납고 한 구석에 진흙탕-7의 콕핏 거울 한 장 — 노아가 회수해 온 유일한 잔해 — 을 정중히 부착했다. 그 거울 한 장을 정시현은 사십 년간 매일 자기 합성 천 한 장으로 정중히 닦았으며, 그 천 한 장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천이다.
노아는 정비반장 부임 첫 분기에 그 거울 앞에 자기 정비반장 명패를 정중히 풀어두는 의례를 시작했고, 후대 진흙탕 부대 파일럿들은 출격 직전 그 거울 한 장에 한 번 자기 헬멧을 비춰 보는 비공식 의례를 따른다. 정시현이 은퇴한 뒤에도 그 거울 한 장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부착되어 있으며, 거울 옆에는 정시현이 평생 사용한 합성 천 한 장이 정중히 접힌 채 보존되어 있다. 격납고 야사에서는 그 천 한 장이 함대 보급 자재 천 톤보다 무거운 한 장이라고 한 줄로 적혀 있다.
정거장노상(停車場露商)
정거장 노점상
정거장 한구석의 노점상
“함대 보급식보다 비쌉니다. 그래도 따끈한 건 우리 노점뿐이지요.”
정거장 노점상은 변경 정거장 부두 한 귀퉁이에서 따끈한 합성 국밥·구운 단백질 꼬치·합성 차 한 잔을 파는 평민 출신 소상공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앞치마, 어깨에 작은 행주, 허리에 합성 식재 한 봉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함급의 입항 시각·옛 분기 정박 결재·금기 식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대 보급식이 영양을 채운다면, 노점 한 그릇은 외곽 정거장 한 광부의 한 끼 마음을 채운다. 정거장의 진짜 단골 명부는 술집 카운터가 아니라, 그의 작은 노점 옆 외상 장부 한 장 위에 있다. 가장 무거운 한 그릇은 큰 화물선장의 술안주가 아니라, 임무를 못 마치고 돌아온 신참 광부 앞에 말없이 놓이는 따끈한 합성 국밥 한 그릇 위에 있다.
“우리 노점 외상 장부 첫 줄은 사십 년째 같은 한 줄입니다. 그 한 줄이 변경 정거장의 가장 따끈한 한 그릇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정거장 노점상 우메다 한지 — 헬리오스-9 정거장(앞서 보안관 너새니얼 부캐넌 일화의 정거장) 부두 노점 사십 년 베테랑 — 의 일화는 '한 그릇 외상(One-Bowl Tab)'으로 변경 부두 야사에 길게 전해진다.
헬리오스-9 광부 폭동(앞서 궤도 저격수 알렉세이 일화의 폭동) 직후, 폭동 주동자 한쇠(앞서 우주 광부 일화의 주인공)가 자기 합성 위스키 잔 한 개를 든 채 우메다의 노점에 도착했다. 한쇠는 외상 장부 한 장에 자기 손녀의 이름 — 한쇠가 데이터 밀수꾼 잭슨 콰이를 통해 본토에 영상을 보낸 그 손녀 — 을 한 줄 적고는, 자기 사재에서 사십 년 합성 국밥 외상 한 그릇을 정중히 미리 결제했다. 우메다는 그 외상 장부의 한 줄을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첫 줄에 그대로 두고 있으며, 한쇠의 손녀가 훗날 케레스 광구 의무관(앞서 우주 광부 일화에 등장한 그 손녀)으로 부임한 뒤 매년 한 번 우메다의 노점에 들러 합성 국밥 한 그릇을 정중히 시켰다.
궤도 저격수 알렉세이 코르차크(앞서 궤도 저격수 일화의 주인공)가 위성에서 내려와 첫 식사로 우메다의 노점에 들렀을 때, 그는 한쇠가 자기 합성 위스키 잔 한 개를 정중히 옆자리에 올려두는 광경을 보았다. 우메다는 그날 알렉세이의 합성 국밥 그릇 한 개에 자기 사재로 단백질 꼬치 한 점을 정중히 더 얹었으며, 알렉세이는 평생 그 한 점을 지우지 않은 메뉴로 시켰다. 헬리오스-9 정거장 부두 노점 후대 노점상들은 입소 첫날 외상 장부 첫 줄을 한 번 펼쳐 보는 의례를 따르며, 그 한 줄은 함대 사령관실 견장 한 줄보다 따끈한 한 줄이라고 부두 야사에 적혀 있다.
메가코프장군(메가코프將軍)
메가코프 군사 이사
메가코프 군사부의 이사 장군
“전쟁은 은하가 시작하지만, 비용 결재는 내가 한다. 그 결재 도장 하나가 함대 한 척보다 무겁다.”
메가코프 군사 이사는 은하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초대형 기업집단(메가코프)의 군사·안보 부문 최고 책임자로, 제국·연합을 가리지 않고 전쟁 비용·무기 공급·민간 군사 계약을 단일 결재 도장으로 통제한다. 그 지위는 공식 군 계급이 아니라 자본으로 부여되며, 은하 함대 사령관도 이 자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많다. 회의실 창밖으로 항성 수십 개가 내다보이는 궤도 본사 집무실에서 일하지만, 실제 전장에는 발을 디디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무기는 그의 금고가 아니라, 그가 특정 함대에 대한 연료·탄약 공급 계약을 단 한 번 지연시키는 결정이다. 그 결정이 내려진 함대는 다음 교전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전장에서 영웅이 되는 방법은 칼을 뽑는 것이지만,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연료 납품서에 도장을 찍지 않는 것이다.
“우리 이사님의 결재 단말기가 가장 조용해지는 날은, 은하 어딘가에서 전쟁이 마지막 분기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총소리가 아니라 결재음이 멈추는 날이 종전이지요.”
오라노바 메가코프(Oranova Corp, 은하 최대 무기·연료 복합 기업집단) 초대 군사 이사 그레고리 발렌타인 — 단 한 발의 함포도 지시하지 않고 은하 남부 전쟁 전체를 오 년 만에 마무리한 자 — 의 일화는 '납품서의 침묵'으로 은하 경제 사관에 기록되어 있다.
은하 남부 동맹 전쟁(제국 남부 함대와 자유 연합 연안 함대가 사십 년간 이어 온 분쟁)이 다섯 번째 교전 분기에 들어섰을 때, 그레고리는 양측 연료 공급 계약서를 동시에 책상 위에 올려두고 두 달 동안 서명하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났을 때 양측 함대 연료가 임계치 아래로 내려갔고, 함대 사령관(앞서 함대 사령관 일화에서 언급된 그 지휘 계보) 양측이 오라노바 궤도 본사 집무실 회의실로 각자 조용히 찾아왔다. 그레고리는 두 사령관을 같은 회의실에 한 시간 앉혀 두고 자기 집무실에서 차 한 잔을 정중히 마신 뒤 들어왔다.
그 회의에서 오간 말은 사관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두 달 안에 양측이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그레고리는 협정식 참석을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양측 연료 납품서를 협정 당일 오전에 동시 서명·발송했다. 그 납품서 두 장은 현재 오라노바 궤도 본사 집무실 창가에 나란히 액자로 걸려 있으며, 후대 군사 이사들은 결재 도장을 처음 맡는 날 그 액자 앞에서 한 호흡을 멈춘다.
용병사령장(傭兵司令將)
은하 용병 사령관
은하 용병들을 호령하는 사령의 장
“의뢰서에 도장이 찍히기 전까지는 누구도 나의 부하가 아니다. 찍히고 나면, 마지막 한 명까지 내 책임이다.”
은하 용병 사령관은 특정 국가나 함대에 소속되지 않고 자체 전력을 운용하는 용병단을 총지휘하는 자로, 의뢰인의 국적·진영을 가리지 않고 계약 기간 동안 최고 수준의 전투력을 제공한다. 황제·연합·해적 동맹 모두가 그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가 누구와 계약했는지 늘 경계한다. 자체 기함 한 척과 수십 척의 전투 함선, 수천 명의 용병 병력을 직접 유지·관리한다.
가장 어려운 임무는 외부 교전이 아니라, 단기 계약이 끝난 용병들이 다음 계약을 기다리는 공백기의 단결을 유지하는 일이다. 황제에게도 해적에게도 충성 맹세를 하지 않는 자들을 한 방향으로 유지하는 기술은, 함대 사령관이 가진 군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용병단 선임들이 새 사령관에게 가장 먼저 알려 주는 것은 전술이 아닙니다. 공백기 마지막 날, 식당에 혼자 남아 있는 부하를 먼저 알아보는 법이지요.”
철풍단(Ironwind Company, 은하 역사상 최장 연속 의뢰 기록을 보유한 용병단) 사대 사령관 아리오 멘데스 — 제국·연합·해적 동맹 세 진영에서 동시에 의뢰를 받은 단 한 명의 용병 사령관 — 의 일화는 '세 계약서의 저녁'으로 용병 업계 야사에 전해진다.
세 진영의 의뢰서가 같은 날 같은 기함 집무실 책상에 올라왔을 때, 아리오는 세 장 모두를 책상 위에 남겨 둔 채 기함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날 공백기 마지막 날이라 식당에는 용병 한 명만 혼자 남아 합성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있었는데, 갓 입단한 신참 조종사 루이 살가도였다. 아리오는 루이 맞은편에 앉아 같은 국밥을 시키고 한 시간을 같이 먹었다. 루이가 다음 임무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아리오는 "국밥 다 먹으면 알려 주지"라고만 했다.
그날 저녁 아리오는 세 의뢰서 중 가장 적은 보수를 주는 의뢰서에 서명했다. 그 의뢰는 외곽 식민 행성 보안 지원 — 루이의 고향 콜로니와 인접한 변경 행성 방어 — 이었다. 철풍단 후대 사령관들은 공백기 마지막 날 식당을 한 바퀴 돌아보는 걸 의례로 삼으며, 그날 혼자 남아 있는 사람 수가 다음 의뢰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이라고 내규에 한 줄 적혀 있다.
궤도포수장(軌道砲手長)
궤도 방어포대 포수장
궤도 방어포대의 포수를 이끄는 장
“발사 명령은 단 한 번. 그 전에 내가 확인하는 건 적이 아니라, 뒤에 누가 있는지다.”
궤도 방어포대 포수장은 행성 궤도에 고정 배치된 거대 방어 포대를 총괄하는 지휘관으로, 적 함선의 궤도 진입을 차단하거나 행성 표면을 지상군으로부터 지켜내는 최후 방어선을 책임진다. 단일 포대의 화력이 중형 함선 수십 척에 맞먹으며, 그의 발사 판단 하나가 교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포대 운용 인원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며, 그 모두가 포수장의 지시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가장 어려운 판단은 적을 쏘는 순간이 아니라, 발사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을 알아채는 일이다. 궤도 포대는 거짓 신호·아군 함선 오인·민간선 혼입 가능성 때문에 발사 판단에 오 초 이상의 재확인 규정이 있는데, 그 오 초 안에 포수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보는지가 진짜 실력이다.
“포수장 자리에서 가장 무거운 순간은 방아쇠를 당기는 초가 아닙니다. 방아쇠를 잠그는 오 초가 가장 무거운 시간이에요.”
아르카디아 행성 궤도포대(아르카디아-3, 자유 연합 외곽 방위선 핵심 거점) 이대 포수장 다빈 체스터 — 연합 역사상 오인 발사 제로 기록을 사십 년간 유지한 단 한 명의 포수장 — 의 일화는 '오 초의 잠금'으로 포대 병학 교재 첫 장에 실려 있다.
케레스 교전(연합 최대 방어 교전 중 하나로 기록된 궤도 공방전) 당시, 적 함대 선봉 한 척이 아군 주파수를 쓰며 궤도 진입 경로로 접근해 왔다. 포수장 규정대로라면 즉시 격파 대상이었지만, 다빈은 발사 명령 대신 포대 전원에게 오 초 잠금을 발령했다. 그 오 초 안에 그가 확인한 것은 적 함선의 선체 코드가 아니라, 그 함선 화물칸 열 번째 격실에서 발신되는 비상 주파수 신호 — 앞서 기갑 파일럿 알레한드로 루이스 일화에서 언급된 탈출한 아군 기갑 조종사들의 구조 신호 — 였다.
다빈은 오 초 안에 격파 대신 견인 명령을 내렸고, 적 함선으로 위장해 탈출하던 아군 기갑 파일럿 열일곱 명이 궤도 포대 격납고로 견인되었다. 다빈은 그날 이후 포대 발사 규정에 '오 초 안에 민간·아군 신호 전 채널 재확인' 조항을 자비로 청원해 연합 공식 규정에 올렸으며, 그 규정은 지금도 궤도포대 포수장 임관 첫날 외워야 하는 첫 번째 조항이다.
암흑탐선장(暗黑探船長)
암흑물질 연구 함장
암흑물질을 좇는 연구 함선의 선장
“은하 끝에 뭐가 있는지 묻지 마라. 아는 자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직 아니니까.”
암흑물질 연구 함장은 은하 공식 지도 바깥, 즉 알려진 항성계 경계를 넘어서 미지의 공간을 탐사하는 연구 함선의 지휘관으로, 과학팀과 군사 경호팀을 동시에 통솔하며 인류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공간을 기록한다. 워프 항법이 통하지 않는 미지 구역에서 단독 항해가 기본이며, 통신 두절은 평균 삼 개월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 그 두절 구간에서 함장이 내리는 판단이 곧 법이다.
연구팀 과학자들과 군사 경호팀 간의 갈등 중재가 예상보다 큰 업무 비중을 차지한다. 군인은 퇴각을 원하고, 과학자는 한 시간만 더 탐색하자고 주장하는 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함장은 늘 '가장 용감한 후퇴 결정'을 혼자 감당한다.
“연구 함선 후임 함장들이 항법 콘솔보다 회의실 의자를 먼저 점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의자 등받이가 다 닳은 자리일수록, 그 함장이 과학자와 군인 사이에서 가장 많이 버텼다는 뜻이니까요.”
탐사선 이카루스-IX(Icarus-IX, '아홉 번째 날개'라는 뜻의 연구 전용 장거리 탐사함) 초대 함장 오스발도 리마 — 은하 공식 지도 외곽 경계에서 이름 없는 암흑물질 밀도 구역을 단독 발견하고도 기꺼이 퇴각을 명령한 함장 — 의 일화는 '이름 없는 한 줄'로 탐사 항법 사관학교 교재에 실려 있다.
이카루스-IX가 공식 경계선 외곽 0.3광년 지점에서 미지 밀도 구역(후에 리마 암흑대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을 처음 관측했을 때, 과학팀장은 추가 탐사를, 군사 경호팀장(앞서 특수강하 돌격병 일화에서 등장한 전역 후 경호대 복무 케이스)은 즉각 퇴각을 주장했다. 오스발도는 두 사람 다 회의실에서 내보내고 홀로 오 분 동안 항법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내린 명령은 퇴각이었다.
과학팀은 그날 밤 내내 항의 기록을 함내 로그에 남겼지만, 오스발도는 퇴각 이유를 함내 일지에 단 한 줄로 적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름을 붙일 시간보다, 돌아올 연료가 더 필요하다." 이카루스-IX는 연료 비축분의 정확히 20%를 남긴 채 귀환했고, 그 일지 한 줄은 탐사 항법 교재 첫 페이지 인용문으로 실렸다. 리마 암흑대는 훗날 이카루스-IX의 후속 탐사대가 돌아와 공식 명명했으며, 그 탐사대 함장은 귀환 후 함내 일지에 오스발도의 한 줄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봉쇄책사(封鎖策士)
행성 봉쇄 작전참모
행성 봉쇄 작전을 짜는 참모
“행성 봉쇄는 포를 쏘는 일이 아니다. 보급선을 끊는 일이고, 그 끝은 내가 먹고 싶지 않은 숫자다.”
행성 봉쇄 작전참모는 적 행성 하나 또는 다수를 외부로부터 완전히 격리하는 봉쇄 작전을 기획·집행·총괄하는 군사 전략 전문가로, 함대 사령관의 직속으로 편성되어 모든 봉쇄 라인 배치·차단 타이밍·긴급 해제 시나리오를 담당한다. 봉쇄 성공률이 전투 결과보다 전쟁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함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비전투 직책 중 하나다. 은하 제국과 자유 연합 양측 모두 이 직책 전담 인원을 별도 경력 트랙으로 운영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직업 현실은, 봉쇄가 성공할수록 봉쇄된 행성 내 민간인 피해가 누적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뛰어난 작전참모는 봉쇄를 가장 빠르게 성공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짧게 끝내는 사람이다.
“작전참모 교육 첫 주에 가르치는 건 봉쇄망 배치도가 아닙니다. 봉쇄 일자 하나가 어떤 숫자로 변환되는지를 먼저 외웁니다. 그걸 외운 뒤에야 배치도를 그릴 자격이 생기거든요.”
은하 제국 남부 사령부 초대 봉쇄 전담 참모 율리안 크라우스 — 기록상 가장 짧은 행성 봉쇄(오 일)로 단일 교전 종결 기록을 세운 자 — 의 일화는 '오 일의 선'으로 군사 전략 사관학교 전략론 교재에 실려 있다.
클레아 행성(자유 연합 핵심 보급 기지 역할을 하던 행성) 봉쇄 작전 시, 율리안은 사령관(앞서 함대 사령관 일화 계보의 후임자)에게 이십 일 봉쇄 계획 대신 오 일 집중 차단 계획을 제출했다. 두 계획의 차이는 봉쇄 효율이 아니라, 봉쇄 오 일째에 연합이 자체적으로 협상을 요청할 확률을 율리안이 계산해 넣은 데 있었다. 사령관은 열다섯 일이 짧아지는 근거를 물었고, 율리안은 보급 차단이 민간 식량 재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날짜를 수치로 제시한 뒤 그것을 "내가 먹고 싶지 않은 숫자"라고 단 한 줄로 덧붙였다.
사령관은 그 계획을 승인했고, 클레아 행성은 봉쇄 오 일째 협상 신호를 보내 왔다. 율리안은 봉쇄 해제 후 행성 지상군 지원 물자 납품서에 자기 서명 대신 클레아 행성 시장(市長) 이름을 대리 서명자로 올렸고, 그 납품서 한 장이 클레아 협정문보다 먼저 은하 제국 군사 기록관에 접수되었다. 율리안의 봉쇄 계획서 마지막 줄에는 지금도 "봉쇄 일자는 전술이 아니라 윤리 문제"라는 한 줄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핵융기관장(核融機關長)
핵융합로 기관장
함선의 핵융합로를 다스리는 기관장
“함선은 함포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내 핵융합로가 1도라도 틀리면, 함포는 장식품이 된다.”
핵융합로 기관장은 전함 또는 대형 함선의 심장부인 핵융합 추진 원자로(함선의 모든 동력·무장·생명유지장치의 에너지원)를 총괄·관리하는 엔지니어 직책으로, 원자로 출력 조절·과부하 차단·워프 점프 전후 냉각 순서를 모두 책임진다. 전투 중에는 함포 발사와 기동력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한 출력 배분 계산을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며, 단 한 번의 과부하 판단 실수가 전함 전체를 기동 불능으로 만든다. 기관실은 함내에서 가장 덥고 소음이 심하며, 가장 오래 잠을 못 자는 부서다.
함대 사령관이 전술을 짜는 동안, 기관장은 그 전술이 현재 출력으로 가능한지를 혼자 계산한다. 사령관 작전 회의에서 가장 짧게 발언하지만, 회의 후 가장 늦게 집무실을 나가는 사람이 기관장이다. 함내 최고 실력자를 고르라면 사령관이지만, 함선을 살아있게 만드는 사람을 고르라면 기관장이라는 말이 기관실 야사에 내려온다.
“기관장 인수인계 첫날, 선임이 원자로 패널 한 구석에 적어 둔 숫자 두 개를 보여 줍니다. 하나는 최대 출력이고, 하나는 기관장이 개인적으로 절대 넘기지 않는 출력이에요. 그 두 숫자 차이가 그 기관장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는지를 말해 줍니다.”
황제 기함 아키메데스(Archimedes, 은하 제국 최대 기함이자 역대 황제 직속 전함) 삼대 핵융합로 기관장 보리스 탈레프 — 은하 제국 역사상 유일하게 워프 점프 실패 상황에서 원자로 수동 재시동에 성공한 기관장 — 의 일화는 '재시동 37초'로 기관공학 교재 위기 대응 챕터 첫 사례로 올라 있다.
제국 함대 케레스 교전(앞서 궤도 방어포대 포수장 일화와 같은 교전) 도중, 아키메데스는 적 함선의 집중 포격으로 주 워프 코어 과부하 차단 장치가 무력화되었다. 자동 재시동 시스템이 응답하지 않았고, 원자로 출력이 임계치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리스는 기관실 전원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 뒤 혼자 원자로 수동 제어 패널 앞에 앉았다. 수동 재시동은 교범 절차가 없어, 보리스는 자기 이십 년 경력에서 쌓은 원자로 특성 데이터를 머릿속으로만 꺼내 쓰며 37초 안에 재시동 시퀀스를 완성했다.
원자로가 다시 점등됐을 때 함교에서 박수가 터졌지만, 보리스는 그 소리를 기관실 소음 탓에 듣지 못했다. 그는 재시동 직후 원자로 패널 한 귀퉁이에 펜으로 숫자 두 개를 적었다. 하나는 37이고, 하나는 자기가 개인적으로 절대 넘기지 않는 출력값이었다. 후대 기관장들은 그 패널을 교체하지 않은 채 유리 덮개를 씌워 보존하고 있으며, 인수인계 첫날 새 기관장에게 그 숫자 두 개를 보여 주는 의례를 따른다.
전장의무사(戰場醫務士)
전장 의무 강하대원
전장에 강하해 부상자를 치료하는 자
“전장에 먼저 내린다. 총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것을 들기 위해서다.”
전장 의무 강하대원은 지상전·우주 정거장 교전·소행성 기지 돌격 등 최전선 전투 직후 즉시 강하해 전장 내 부상 병력을 수습·응급 처치하는 특수 의무 전문가로, 전투 능력과 응급 의학 역량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일반 의무관보다 훨씬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교전 중에도 최전선 바로 뒤에 위치해 총격·파편·무중력 환경에서 응급 처치를 수행한다. 강하 캡슐(대기권·우주 진공 공간을 단독으로 진입하는 일인용 강하 포드) 탑승과 전장 의무 처치 두 가지 모두에 인증을 받아야 자격이 부여된다.
함내 군의관이 수술실을 지킨다면, 전장 의무 강하대원은 그 수술실 밖 가장 위험한 자리를 지킨다. 전투가 끝난 뒤 공식 집계에 잡히는 생존자 수 중 상당수가 이들의 강하 응급 처치에서 시작된다. 수술 메스보다 강하 캡슐 잠금 해제음이 더 자주 들리는 의무직이다.
“강하 캡슐 좌석 밑에 선임 대원 중 하나가 꼭 한 줄씩 적어 두는 말이 있어요. 읽어 보면 전술 교범 같기도 하고 편지 같기도 한데, 전부 다 '버텨라'는 내용입니다. 그게 이 직업의 교재 전부예요.”
특수 의무 강하대 이대 부대장 이드리스 나세르 — 단일 교전에서 강하 기록이 가장 많은 강하대원으로 전장 의무 사관학교 모범 케이스에 등재된 자 — 의 일화는 '열일곱 번째 강하'로 강하 의무 교범 사례 챕터에 실려 있다.
소행성 기지 드레이크-44(Drake-44, 자유 연합 외곽 분쟁 소행성 기지) 교전에서, 이드리스는 단일 교전 최다 강하 규정(한 교전 내 최대 다섯 번)을 넘겨 열일곱 번 강하 캡슐에 탑승했다. 네 번째 강하부터는 교전 규정 위반이었지만, 기갑 파일럿(앞서 기갑 파일럿 알레한드로 루이스 일화에서 탈출한 조종사들)의 잔류 응급 환자들이 아직 전장에 남아 있었다. 이드리스는 캡슐에 탑승할 때마다 강하 기록에 한 줄씩 자기 손으로 서명을 추가했고, 열일곱 번째 강하 후 기지 사령관에게 자수했다.
군법 회의는 이드리스의 규정 위반 강하를 공식 처벌 대신 특례 표창으로 전환했으며, 그 열일곱 번의 강하 기록지는 현재 강하 의무 교범 사례집 앞표지 안쪽에 복사본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드리스는 그 판결 후 강하대 교관직을 자원했고, 교관 재임 중에 쓴 강하 캡슐 좌석 밑 메모 한 줄은 "버텨라, 다음 강하도 나다"였다.
무중력공부(無重力工夫)
무중력 건설 인부
무중력에서 구조물을 짓는 일꾼
“중력 없는 데서 못질하는 거, 생각보다 전혀 안 어렵습니다. 그냥 못이 내 쪽으로 날아올 때 얼굴만 피하면 돼요.”
무중력 건설 인부는 우주 정거장·궤도 모듈·우주 구조물의 건설·확장·수리 공사에 투입되는 건설 현장 노동자로, 우주복을 착용한 채 진공 환경에서 구조물 조립·용접·배관 작업을 수행한다. 지상 건설과 달리 중력이 없어 모든 자재와 공구가 공중에 떠다니며, 이를 다루는 법을 익히는 데만 수 개월이 걸린다. 대형 정거장 하나를 짓는 데 수백 명이 수 년간 투입되며, 현장 안전 규정이 지상 건설 현장보다 열 배 이상 두껍다.
이 직종의 진짜 위험은 진공이나 방사선이 아니라, 사소한 공구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 그 공구가 시속 수만 킬로미터로 날아가 다른 구조물에 충돌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공구 하나에 줄 한 가닥을 묶는 규정이 있으며, 그 줄을 빠뜨린 신참은 현장 선임에게 이틀치 배식을 내야 하는 비공식 벌칙이 있다.
“우주 건설 현장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건 용접 기술이 아닙니다. 공구에 줄 묶는 방법이에요. 그게 제대로 안 되면 나머지는 다 소용없다는 걸, 신참들은 첫날 지갑으로 배웁니다.”
오메가 정거장 제3 확장 구역(Omega Station Sector-3, 은하 제국 최대 상업 정거장의 최후기 확장 공사 구역) 건설 현장 선임 인부 갈란 도그라 — 사십 년 무중력 건설 경력을 가진 유일한 현존 인부 — 의 일화는 '줄 하나의 법칙'으로 건설 현장 안전 교재에 실려 있다.
오메가 정거장 제3 구역 마지막 용접 작업일에, 신참 인부 에반 클라크가 용접 토치 줄을 풀어둔 채 작업을 시작했다. 토치가 손에서 튕겨 나갔을 때, 갈란이 반사적으로 자기 안전 줄을 신참의 토치 방향으로 던졌다. 토치는 구조물 프레임에 걸려 멈췄고, 충돌 사고는 없었다. 갈란은 에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줄 묶는 법을 한 번 더 시범 보여 주고 작업을 재개했다.
에반은 그날 이후 자기 공구 줄 묶는 방법을 현장 신참 전원에게 갈란의 방법으로 가르치게 됐고, 오메가 정거장 건설팀 내부 규정집에는 '갈란 도그라식 줄 결박법'이 한 챕터로 등재되었다. 갈란 본인은 은퇴 후 현장 안전 감독관이 되었으며, 감독관 취임 첫날 신참들에게 나눠 준 공구 줄 한 가닥이 그의 취임 선물이었다.
사설호위사(私設護衛士)
사설 경호 사이보그
사설로 고용된 사이보그 경호사
“나는 고용됐다. 그러나 내 강철 팔은 고용된 적이 없다. 그 팔이 먼저 판단한다.”
사설 경호 사이보그는 신체 일부 또는 전부를 군용 사이보그 보강재로 교체한 후 민간 경호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 경호원으로, 기업 임원·행성 총독·부유층 개인을 밀착 보호한다. 전직 군 특수 임무 출신이 대부분이며, 전역 후 군용 신체 보강을 민간 경호에 전용한 형태다. 사이보그 강화 신체는 일반 인간보다 반응 속도·근력·내구성이 월등하지만, 유지·수리 비용도 일반 경호원보다 수십 배 높다.
가장 까다로운 임무는 의뢰인 본인이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다. 파티·외교 행사·비공개 회동 등 경호원의 존재가 오히려 의뢰인 위험을 높이는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해야 하므로, 진짜 실력은 총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총격이 일어나기 전 환경을 정리하는 능력이다. 가장 잘 한 경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라는 격언이 사이보그 경호 업계 내규에 있다.
“사이보그 경호원 선임이 신참에게 제일 처음 알려 주는 건, 강철 팔 유지비 청구서 항목이 아닙니다. 의뢰인이 한 번 더 안전하게 웃을 수 있는 자리가 몇 개인지 세는 법이에요.”
오라노바 메가코프(앞서 메가코프 군사 이사 일화에 등장한 그 기업집단) 그레고리 발렌타인 군사 이사 전담 경호 사이보그 초대 팀장 카를로스 마르케스 — 경호 임무 중 단 한 건의 의뢰인 부상도 기록에 없는 유일한 사이보그 경호팀장 — 의 일화는 '빈 보고서'로 사설 경호 업계 사례집에 실려 있다.
그레고리 군사 이사가 양측 함대 사령관을 궤도 본사 회의실에 불러들인 그날(앞서 메가코프 군사 이사 일화의 그 회의), 카를로스는 회의실 진입 전 건물 외부에서 이미 세 건의 잠재 위협 요소를 조용히 처리했다. 한 건은 외부 테러 단체 접촉 시도였고, 두 건은 양측 함대에서 파견된 비공식 정보 수집 인원이었다. 카를로스는 셋 모두를 한 명도 다치게 하지 않은 채 건물 밖으로 안내했고, 그 세 건 중 어느 것도 그날 경호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레고리는 회의 다음 날 카를로스에게 "보고서가 왜 비었냐"고 물었고, 카를로스는 "일어나지 않은 일은 보고서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레고리는 그날 카를로스의 사이보그 보강 유지비를 전액 회사 예산으로 올렸으며, 그 결재서류 비고란에 카를로스의 답 한 줄을 그대로 적어 두었다. 오라노바 경호팀 신참들은 취임 첫날 그 결재서류 사본을 한 장씩 받는다.
성간사기객(星間詐欺客)
항성간 사기꾼
항성을 넘나들며 사기를 치는 객
“나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상대방이 내가 진짜라고 믿은 것뿐이지.”
항성간 사기꾼은 여러 항성계를 옮겨 다니며 위조 허가증·가짜 화물 계약서·허구의 광물 채굴권 같은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팔아 돈을 버는 우주의 떠돌이 사기꾼이다. 한 행성에서 정체가 들키면 다음 항성계로 워프 점프해 새 신분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항성계 간 신분 추적이 어렵다는 우주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직 화물선장·위조 기술자·전직 외교관 출신이 많으며, 유창한 말솜씨와 정확한 현지 문화 파악이 핵심 능력이다.
가장 자주 걸리는 상황은 의외로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기 동향 인사인 경우다. 은하 어딘가에서 한 번 속인 사람의 친척이 다음 항성계에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테랑 사기꾼일수록 속인 사람 명단을 꼼꼼히 기록해 두는 이상한 직업 버릇이 있다.
“항성간 사기꾼 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자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고들 합니다. 그건 사기 기술이 아니라, 자기가 속인 사람 이름을 전부 기억한다는 것이에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죠.”
항성간 사기꾼 레오 카발로 — 총 일곱 항성계에서 서로 다른 신분으로 활동하다 여덟 번째 항성계에서 자수한 유일한 사기꾼 — 의 일화는 '여덟 번째 신분'으로 우주 범죄 야사에 이상하게 자주 인용된다.
레오는 베가-7(앞서 우주 파괴자 일화에서 언급된 그 은하 변경 항성계, 검은 사슬 동맹 소거 이후 복구 중이던 분쟁 지대)에서 위조 광물 채굴권을 판매하던 중, 자기가 세 항성계 전에 속인 화물선 부선장의 딸이 현지 우주항 보안관(앞서 식민행성 보안관 너새니얼 일화 계보의 외곽 보안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레오는 그날 밤 자기 사기 명단을 꺼내 처음부터 다시 읽었고, 이튿날 아침 보안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자기 신분을 밝히고 자수하면서, 속인 사람 전원의 이름이 적힌 명단과 각 피해자 접근 방법까지 적힌 수첩 한 권을 보안관 책상에 올려두었다. 보안관은 그 수첩 한 권으로 레오가 모르는 피해자 세 명까지 추가 발견했으며, 레오는 피해자 환급 작업에 협조한 공로로 형량 절반을 감면받았다. 그 수첩은 현재 우주항 보안관 사무실 금고 안에 있으며, 보안관은 그 수첩을 '우주에서 가장 성실한 사기꾼의 명함'이라고 부른다.
정보국주(情報局主)
제국 정보국 국장
제국 정보국을 관장하는 주인
“나는 황제를 모신다. 그러나 황제도 나의 서랍 속에 있는 것을 모른다.”
제국 정보국 국장은 은하 제국 전체의 첩보·역정보·감시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최고 정보 책임자로, 황제 직속이지만 그 실권은 군 원수급에 버금간다. 은하 내 백 개 이상의 비밀 정보망을 동시에 운영하며, 제국 내부 반란 조짐·외계 종족 정보 침투·메가코프 로비 탐지까지 모두 그의 서랍 안에 담겨 있다. 공개 직함은 황실 고문관이지만, 실제 그가 앉는 회의 자리는 언제나 황제 왼쪽 세 번째 자리다.
가장 위험한 직업 현실은, 황제 본인에 대한 정보도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제를 보위하기 위해 황제조차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보국 국장의 평균 재임 기간이 짧은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황실 고문관들이 가장 조심하는 발언이 하나 있지요. 국장 앞에서 '그건 비밀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은하 제국 정보국 사대 국장 에드윈 솔라노 — 재임 기간 중 황실 내부 반란 기도를 다섯 차례 사전 차단하고도 황제에게 단 한 번도 직접 보고하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다섯 번의 침묵'으로 정보국 내부 사관에 최고 기밀로 보존되어 있다.
열두 번째 황제 발레리우스 코르(앞서 은하제국 황제 일화의 그 황제) 재임 중, 에드윈은 황실 측근 새 다섯 명의 반란 기도를 각각 사전에 파악했다. 다섯 건 모두 황제에게 보고하는 대신, 에드윈은 반란 기도 당사자를 조용히 집무실로 불러 자기가 가진 정보의 요약본 한 장을 읽게 했다. 다섯 명 모두 그날 이후 스스로 직위에서 물러났으며, 그 중 둘은 변경 행성 자원 봉사자로 자원했다.
발레리우스는 다섯 번의 인사 이동이 전부 자발적 사임이라는 기록만을 보았고, 그 배경을 에드윈에게 묻지 않았다. 에드윈의 퇴임 날, 발레리우스는 황실 기록관을 통해 에드윈의 재임 기록 전체를 '황제 친람 불가' 등급으로 봉인했다. 정보국 후대 국장들은 임관 첫날 에드윈의 봉인 기록 표지 한 장만 받으며, 그 표지 안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 있다. "황제를 위해, 황제가 모르게."
반란기함장(叛亂旗艦長)
반란 함대 기함장
반란 함대 기함을 이끄는 함장
“제국 깃발 아래 태어난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그 첫 번째 이유는 배고픔이다. 두 번째 이유를 물을 기회는 없었다.”
반란 함대 기함장은 제국 또는 연합 체제에 반기를 든 세력의 지휘 함선 최고 지휘관으로, 정규 함대에 맞서 비정규 전술과 숫적 열세를 극복하는 창의적 함대 운용을 총책임진다. 정식 군 교육을 받은 경우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섞여 있으며, 공통점은 기존 체제에 대한 깊은 불만과 부하들에 대한 비상한 통솔력이다. 제국 추격대를 상대로 매 분기 살아남는 것 자체가 전술 교범이다.
가장 어려운 결정은 적과의 교전이 아니라, 지지 기반이 되는 민간 행성과 거주 구역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유리한 교전을 포기하는 순간이다. 반란군으로 불리지만 가장 빠르게 민심을 잃는 방법은 민간에 해를 끼치는 것임을 오래된 기함장일수록 더 잘 안다.
“기함장들이 작전 회의 전에 꼭 한 번씩 보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전술 지도가 아니라, 직전 항구에서 아이들이 손 흔들던 방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유 함대(Free Fleet, 제국 남부 봉쇄에 맞서 외곽 식민 행성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비정규 함대) 초대 기함장 마르세우 타발라레스 — 제국 추격대를 상대로 칠 년 동안 한 번도 거점을 빼앗기지 않은 단 한 명의 반란 기함장 — 의 일화는 '나무 한 그루'로 외곽 식민지 야사에 전해진다.
자유 함대가 세 번째 거점 행성 아르보르-5(Arbor-5, 외곽 농업 식민 행성으로 당시 제국 봉쇄 봉쇄대 집중 목표)를 지키던 분기, 제국 함대가 행성 궤도 봉쇄를 완성했다. 전술상 후퇴가 유리했지만, 마르세우는 아르보르-5 지상 민간 구역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이 자유 함대 깃발 모양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는 통신 보고를 받았다. 행성 봉쇄 작전참모(앞서 행성 봉쇄 작전참모 율리안 크라우스 계보의 연합 측 참모)가 후퇴를 권고했을 때, 마르세우는 한 분기 더 버티는 결정을 내렸다.
한 분기 후 제국 함대는 외곽 지원 함대 보급 문제로 스스로 봉쇄를 늦췄고, 자유 함대는 아르보르-5를 지켰다. 마르세우는 그 분기를 버티는 동안 전술 결재서 여백에 '나무 한 그루'라는 메모만 남겼으며, 자유 함대 후대 기함장들은 작전 회의 전 직전 기항지 민간 구역 보고서를 한 장 먼저 읽는 관행을 따른다.
지질폭파공(地質爆破工)
행성 지질 폭파 기사
행성 지질을 폭파하는 기사
“폭파는 부수는 일이 아니다. 어디를 안 부수는지를 계산하는 일이다.”
행성 지질 폭파 기사는 광물 채굴·터널 굴착·지하 구조물 건설을 위해 행성 지표 및 지하 암반 구조를 폭파·절개하는 폭발물 전문 엔지니어로, 폭발 범위·충격파 전파·광맥 손상 최소화를 동시에 계산하는 3차원 폭파 설계를 수행한다. 광업 기업·식민지 개발 공사·군사 기지 지하 건설 현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비전투 직종 중 하나다. 폭약 성분부터 기폭 타이밍·위치 설계까지 모두 기사 단독 책임이며, 오차 허용 범위가 수 센티미터 이내다.
이 직종의 가장 큰 위험은 폭발 그 자체가 아니라, 인근 광맥 구조를 잘못 읽어 채굴 터널 전체가 무너지거나 지하수가 침투하는 연쇄 붕괴다. 그래서 지질 폭파 기사는 폭약보다 암반 지질 교육을 더 오래 받는다. 가장 잘 한 폭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폭파라는 말이 현장에서 내려온다.
“지질 폭파 기사들이 현장 도면에 처음 그리는 선이 폭파 위치가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건 안 부수는 선이에요. 그 선이 먼저 그려져야 폭파 위치가 생기거든요.”
케레스 광구(앞서 우주 광부 한쇠 일화의 그 광구) 삼 구역 확장 공사 수석 지질 폭파 기사 하민준 — 단일 폭파로 채굴 오류 제로 기록을 삼십 년간 유지한 유일한 기사 — 의 일화는 '안 부수는 선'으로 광업 기사 교재 첫 사례로 올라 있다.
케레스 광구 제6 지하 갱도 확장 당시, 지질 조사 데이터가 기존 광맥과 신규 채굴 방향이 교차함을 보여 주었다. 통상 절차라면 기존 광맥 일부 손상을 감수하는 폭파였지만, 하민준은 사흘 밤을 새워 기존 광맥 전체를 보전하면서 신규 갱도를 뚫는 폭파 설계를 완성했다. 현장 관리자는 공기 지연을 우려했지만, 하민준은 "광맥을 한 번 잘못 건드리면 공기가 문제가 아닙니다"라는 한마디로 승인을 받아냈다.
그 폭파는 계획한 대로 기존 광맥에 손상 없이 완료됐으며, 케레스 광구 제6 갱도는 그 이후 사십 년간 추가 보수 없이 운용되고 있다. 하민준의 폭파 설계 도면은 케레스 광구 관리실 유리 패널에 원본 그대로 전시되어 있고, 광업 기사 신참들은 현장 첫날 그 도면의 '안 부수는 선' 색깔이 어느 색인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현장 교육을 시작한다.
재판집행사(裁判執行士)
우주 재판 집행관
우주 재판의 형을 집행하는 자
“나는 은하법의 편이다. 은하법이 누구 편인지는 내가 판단하지 않는다.”
우주 재판 집행관은 은하 법원 또는 항성계 자치 법원의 판결을 현장 집행하는 법 집행 전문관으로, 재판 결과에 따른 구금·재산 동결·추방·식민 행성 내 법령 집행 등을 담당한다. 행성 보안관이 현지 치안을 담당한다면, 재판 집행관은 재판 결과 이후의 공식 집행 절차만을 전문으로 한다. 은하 전역을 이동하며 집행 임무를 수행하므로, 본인이 항성계 하나를 통째로 아는 경우가 많다.
가장 어려운 집행 임무는 의뢰인이 법적으로 옳지만 현실적으로 옳지 않은 상황에서 집행 명령이 내려오는 경우다. 법의 편을 드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법이 외곽 식민지의 현실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아는 것도 이 직종의 실력이다. 집행 기록보다 집행 포기 기록이 많은 집행관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은하법 집행 교육 마지막 날에 강사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법은 균등하지만, 현실은 균등하지 않다. 그 차이를 집행하는 사람이 너희다.' 그 말이 뭔지 이해하는 데 보통 오 년쯤 걸립니다.”
자유 연합 은하법 집행청 이등 집행관 오마르 페레이라 — 단일 임무에서 가장 많은 집행 포기를 기록했지만 청문회에서 전원 정당화된 유일한 집행관 — 의 일화는 '포기의 기록'으로 은하법 집행 교육청 사례집에 실려 있다.
외곽 식민 행성 군도-4(Gundo-4, 자유 연합 외곽의 소규모 농업 식민지) 토지 분쟁 집행 임무에서, 오마르는 법원 판결에 따라 현지 농민 열일곱 명의 농지 강제 회수를 집행해야 했다. 현장에 도착한 오마르는 열일곱 명 중 열다섯 명이 식민 행성 이주 첫 세대 노인이며, 그 농지가 생계 유일 수단임을 확인했다. 오마르는 집행 포기 보고서를 열다섯 건 제출하고, 두 건만 집행했다. 청문회에서 열다섯 건의 근거를 한 줄씩 설명한 후, 자신이 포기한 농지의 현재 경작 현황 데이터를 제출하며 "법이 이 농지를 가져가는 것보다, 법이 이 농지를 두는 것이 은하법 정신에 더 가깝습니다"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청문회는 열다섯 건 전원 정당화 결정을 내렸으며, 오마르의 포기 근거 보고서 열다섯 장은 은하법 집행 교육 교재 실례 챕터에 수록되었다. 오마르는 그 이후 외곽 식민 행성 집행 전담으로 자원했으며, 군도-4 노인들이 그가 매년 방문할 때마다 농지 한 귀퉁이에 작은 표지판 하나를 세워 두었다. 표지판에는 "오마르 페레이라가 이 농지를 지켰다"는 한 줄이 적혀 있다.
보급보좌사(補給輔佐士)
함대 군수 보급관
함대 보급을 도맡는 보급관
“전투는 영웅이 하지만, 전쟁은 내 보급 목록이 한다. 탄약 한 상자 차이가 전투 결과를 바꾼다.”
함대 군수 보급관은 전투 함대의 탄약·연료·식량·의약품·부품 등 모든 물자를 확보·분배·보충하는 군수 전문 장교로, 함대 사령관 직속으로 편성되어 작전 계획에 맞는 보급 타임라인을 설계하고 관리한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이미 열 번의 물자 계산이 완료되어 있어야 하며, 교전 중 물자 고갈은 전술 실패보다 빠르게 전투 결과를 결정짓는다. 우주 규모의 물자 흐름을 단일 단말로 관리하는 능력이 핵심 역량이다.
가장 무서운 보급관은 비상 상황에서 없는 물자를 어디선가 만들어 오는 사람이다. 공식 보급망이 차단됐을 때, 현지 구매·비공식 거래·타 함대 협상을 통해 물자를 확보하는 능력은 교범에 없는 기술이다. 함대 사령관이 전술을 기억하고, 보급관은 거래처를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보급관 선임들이 신참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는 건 보급 목록이 아닙니다. 비상 연락처 명단이에요. 그 명단에 있는 사람 수가 그 보급관의 진짜 경력이라고 합니다.”
제국 남부 함대 초대 군수 보급관 라파엘 오스테르만 — 케레스 교전(앞서 핵융합로 기관장 보리스 일화의 그 교전) 당시 보급망 완전 차단 상황에서 사흘 안에 전면 보급을 복구한 유일한 보급관 — 의 일화는 '사흘의 명단'으로 군수 교범 비상 보급 챕터에 실려 있다.
케레스 교전 이틀째 밤, 제국 함대 보급 라인이 적의 집중 공세로 완전 차단되었다. 라파엘은 본부에 비상 보급 요청을 송신하는 대신, 자기 비상 연락처 명단을 꺼내 들었다. 명단에는 정거장 노점상(앞서 정거장 노점상 우메다 한지 일화의 그 정거장 인근 물자 취급 상인)·민간 화물선장·외곽 광업 기지 창고 관리인 등 공식 보급망에 없는 사람 서른 명이 있었다. 라파엘은 사흘 안에 서른 명에게 직접 통신을 보내 물자를 확보했고, 그 물자가 함대 보급망에 합류한 것은 본부 비상 보급 승인이 떨어지기 여섯 시간 전이었다.
그 사흘 동안 라파엘이 작성한 비상 거래 기록지 서른 장은 군수 교범 부록에 수록되었으며, 후대 보급관들은 임관 첫날 자기 비상 연락처 명단 첫 줄을 채워 넣는 것으로 임관 교육을 시작한다. 라파엘은 케레스 교전 이후 함대 군수 교관직을 겸임했고, 교관 재임 중 가르친 신참 보급관 수가 함대 전체 보급관 정원보다 많았다.
정거장경비원(停車場警備員)
정거장 경비원
정거장의 경비를 서는 자
“구역 한 바퀴에 사십 분. 나는 사십 년 동안 같은 구역을 같은 시간에 돌았다. 그리고 딱 한 번, 그 시간을 바꿨다.”
정거장 경비원은 우주 정거장 내부 각 구역의 안전·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경비 인원으로, 순찰·출입 통제·사소한 분쟁 중재·화재·기압 이상 등 비상 상황 초기 대응을 수행한다. 고도로 특수화된 역할이 아니지만, 정거장 구역 구조와 하루 방문 인원 흐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함대 병사들이 정거장에 입항할 때 처음 마주치는 얼굴이기도 하다.
가장 지루한 직업처럼 보이지만, 정거장 내 긴급 상황에서 가장 빠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 경비원이다. 대형 사고 초기 대응의 황금 시간(사고 발생 후 3분)을 지키는 경우가 경비원인 사례가 통계상 가장 많다. 정거장에서 가장 많이 걸은 사람과 가장 많이 도운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격언이 있다.
“정거장 경비원 자리를 오래 한 분들한테 공통점이 하나 있다더라고요. 순찰 루트를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는 거예요. 딱 한 번만 빼고요.”
오메가 정거장(앞서 무중력 건설 인부 갈란 도그라 일화의 그 정거장) 7구역 경비원 호아킨 베네가스 — 사십 년간 정거장 7구역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순찰한 경비원으로 정거장 역사상 유일한 개근 기록 보유자 — 의 일화는 '사십 분의 예외'로 정거장 내부 야사에 전해진다.
호아킨이 사십 년 순찰 경력 중 단 한 번 순찰 시간을 사십 분에서 이십 분으로 줄인 날이 있었다. 그날은 7구역 항공 화물 구역에서 기압 이상 경보가 울리기 이십 분 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호아킨은 화물 구역 방향이 신경 쓰였다고 말했다. 그가 화물 구역에 도착했을 때 구역 안에는 혼자 잠들어 있는 격납고 조수(앞서 격납고 조수 일화에 등장한 신참 조수 케이타 다카야마와 동일 직종의 신참)가 있었고, 호아킨이 그를 깨워 대피시킨 이십 분 뒤 기압 이상 경보가 발령되었다.
호아킨은 그날 이후에도 순찰 시간을 사십 분 그대로 유지했고, 그 이십 분 예외를 사건 보고서에 올리지 않았다. 정거장 운영 기록에는 그날 기압 이상 경보 '선제 대피 1명 완료'만 한 줄 남아 있다. 격납고 조수 신참들이 7구역 첫 배치 시 호아킨의 순찰 시간표를 한 번 받아보는 관행이 생겼으며, 그 시간표 마지막 칸에는 '예외: 딱 한 번'이라는 메모가 지금도 적혀 있다.
현상포획수(懸賞捕獲手)
은하 현상금 사냥꾼
현상금이 붙은 자를 쫓는 사냥꾼
“대상을 잡는 건 기술이다. 대상을 살려서 잡는 건 예술이다.”
은하 현상금 사냥꾼은 은하 법원·민간 기업·행성 정부의 현상금 의뢰를 받아 도주 중인 범죄자·계약 위반자·채무 도주자를 추적·확보하는 독립 운용 요원으로, 어떤 정부에도 소속되지 않고 의뢰별로 계약한다. 항성계를 넘나드는 추적 능력·신분 위장·현지 정보 네트워크 활용이 핵심 기술이며, 무기 사용 권한은 의뢰 내용에 따라 다르다. 제국 정보국과 자유 연합 정보부 양측에 인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그 중립성이 오히려 경쟁력이다.
이 직종의 진짜 어려움은 추적 자체가 아니라, 의뢰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망 확보 의뢰보다 생포 확보 의뢰가 수배로 어렵고, 생포 완료 후 대상의 진술이 의뢰인에게 불리한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장 복잡한 임무는 추적이 끝난 뒤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현상금 사냥꾼 중에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더라고요. 임무 완료 직후 의뢰인을 다시 한번 본다는 거예요. 대상이 아니라 의뢰인을요.”
은하 현상금 사냥꾼 레나르도 크루스 — 은하 법원 공식 의뢰 생포율 100%를 십 년간 유지한 유일한 현상금 사냥꾼 — 의 일화는 '의뢰인 재확인'으로 현상금 사냥꾼 비공식 업계 야사에서 교과서처럼 인용된다.
데이터 밀수꾼(앞서 데이터 밀수꾼 잭슨 콰이 일화 계보의 후속 의뢰) 생포 의뢰를 완료한 직후, 레나르도는 의뢰인인 오라노바 메가코프 하급 계약관을 한 번 더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의뢰인이 생포한 대상을 '법원 이송 전 단독 면담'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레나르도는 단독 면담을 거절했고, 대상을 은하 법원에 직접 이송했다. 이송 이후 법원 조사에서 대상의 진술이 오라노바 메가코프의 내부 데이터 조작 사실을 폭로했고, 오라노바는 그 분기 대형 조사를 받았다.
레나르도는 그 의뢰에서 추가 수당을 받지 못했지만, 은하 법원이 그 임무에 대해 공식 표창을 수여했다. 레나르도는 표창식에서 한마디만 했다. "의뢰인도 내가 완료 보고를 한 번 더 드려야 할 대상입니다." 현상금 사냥꾼 업계는 그 한마디를 비공식 업무 수칙 첫 줄로 올려두고 있다.
식민보교자(植民補敎者)
식민 행성 보조 교사
식민 행성의 보조 교사
“이 교실 창밖으로 저 별이 보이지? 저 별에도 너 같은 아이가 있다. 거기서 뭘 배우는지 궁금하지 않아?”
식민 행성 보조 교사는 외곽 식민 행성의 소규모 학교·이동 교육대에서 정규 교사 인원이 부족한 지역에 배치되는 보조 교육 인력으로, 기초 언어·수리·항법 지식 등을 가르친다. 메가코프 또는 연합 정부가 식민 행성 교육 지원 예산을 통해 파견하는 경우가 많고, 전직 함선 항법사·전역 군인·연구원 출신이 많다. 교실이 없으면 화물 컨테이너, 격납고, 이동 셔틀 안에서 수업이 열리기도 한다.
가장 힘든 부분은 아이들에게 우주의 넓이를 가르치면서도, 이 식민 행성에서 살아가는 일이 작지 않다는 걸 동시에 이해시키는 일이다. 그 균형을 맞추는 교사가 오래 남는다. 교재보다 창밖 별자리를 먼저 가르치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더 오래 기억된다.
“외곽 식민 행성에서 교단에 서 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아이들이 별을 보는 눈이 교재보다 정직하다는 거예요. 그 눈에 맞는 수업을 만드는 데 보통 한 학기가 걸린답니다.”
아르보르-5(앞서 반란 함대 기함장 마르세우 일화의 그 농업 식민 행성) 이동 교육대 보조 교사 알베르토 폰세카 — 교재 없이 사 년을 가르치고도 졸업 학생 전원이 항법 기초 시험에 합격한 유일한 보조 교사 — 의 일화는 '별자리 교재'로 외곽 교육 사례집에 실려 있다.
아르보르-5에 교재 보급이 끊긴 사 년 동안, 알베르토는 매 수업마다 교실 창밖 별자리를 칠판 대신 수업 도구로 썼다. 항법 계산은 실제 별 사이 거리 측정으로, 기초 수리는 수확 작물 무게 계산으로, 언어 수업은 함내 통신 수신 내용 받아쓰기로 대체했다. 학부모들이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졸업 시즌에 학생 전원이 항법 기초 시험 단말기 앞에서 막힘 없이 문제를 풀자 그 걱정이 사라졌다.
알베르토는 졸업식 날 학생들에게 교재 한 권 대신 창밖 별자리 지도 한 장씩을 나눠 주었으며, 그 지도 뒷면에는 각자 이름이 속한 가상의 별자리 이름이 손으로 적혀 있었다. 아르보르-5 이동 교육대는 지금도 첫 수업을 별자리 지도 보기로 시작하며, 알베르토가 사 년 동안 쓴 '별자리 수업 일지'는 외곽 교육 지원 교육청 신규 교사 연수 교재로 쓰인다.
항성관측원(恒星觀測員)
항성 관측 연구원
항성을 관측하는 연구의 원
“항성은 죽는다. 내 임무는 그것이 언제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다. 그래야 근처 행성 사람들이 이사할 시간이 생긴다.”
항성 관측 연구원은 항성 활동·수명 예측·플레어(항성 폭발 현상)·초신성(항성의 최후 대폭발) 가능성 등을 장기 관측하고 분석하는 우주 물리학 연구자로, 주로 항성 관측 위성·궤도 연구소·우주 망원경 함선에서 근무한다. 그 데이터가 인근 행성 식민지의 대피 계획·에너지 수급 계획·워프 항로 안전 평가에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군사·민간 양쪽에서 모두 중요하게 취급된다. 단 한 번의 관측 오류가 수십만 명의 이주 일정을 잘못 잡게 만들 수 있다.
이 직업의 독특한 고충은, 항성이 죽는다는 사실을 매일 보면서 그 과정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 감정을 직업적 냉정함으로 포장해야 할지, 연구의 일부로 남겨야 할지를 평생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 직종에 많다.
“항성 관측 연구원들이 가장 오래 보는 데이터가 뭔지 아십니까? 그건 항성이 폭발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항성이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빛을 내는 날의 스펙트럼이에요. 그 마지막 안정 주기를 놓치는 연구원은 없다고 합니다.”
헤르메스-7 항성 관측소(Hermes-7, 외곽 항성계 관측 전초 기지) 수석 관측 연구원 첸 웨이 — 항성 수명 예측 오차 기록 최소값을 보유한 연구원으로 그의 예측이 어긋난 경우가 한 번도 없다는 업계 격언이 있는 자 — 의 일화는 '베가-7의 마지막 스펙트럼'으로 항성 물리학 학술지에 단독 논문으로 실려 있다.
베가-7(앞서 우주 파괴자 카이단 록스 일화의 그 항성계, 검은 사슬 동맹 소거 당시 항성이 붕괴된 곳) 항성이 소거된 후 삼십 년이 지난 시점에, 첸 웨이는 베가-7 잔해 구역에서 소거 직전 항성이 마지막으로 안정 빛을 낸 날의 스펙트럼 잔류 데이터를 복원했다. 그 스펙트럼은 항성이 워프 코어 충돌 순간까지 인접 행성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 했다는 물리적 흔적을 담고 있었다. 첸 웨이는 그 데이터를 학술지에 투고하며 논문 마지막 문장에 "항성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한 줄을 적었다.
논문은 은하 항성 물리학 학술지 연간 최고 논문으로 선정되었으며, 그 마지막 문장 한 줄이 항성 관측 연구소 입구 벽면에 새겨졌다. 첸 웨이는 그 이후 베가-7 인근 항성계 세 개의 수명 예측 보고서를 연속으로 발간했고, 세 보고서 모두 인근 식민 행성 대피 계획에 즉시 반영되었다. 그의 관측 데이터는 현재 워프 항로 안전 위원회의 표준 참조 데이터로 지정되어 있다.
워프측량사(워프測量士)
워프 항로 측량사
워프 항로를 측량하는 자
“좋은 항로는 빠른 항로가 아니다. 돌아올 수 있는 항로다.”
워프 항로 측량사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우주 공간에서 새로운 워프 항로(워프 이동이 가능한 안전한 시공 경로)를 탐사·측량·등록하는 전문 탐사 기술자로, 워프 엔진·중력장 측정 장비·항법 컴퓨터를 직접 다루며 미지 공간의 위험 요소를 모두 확인한 뒤 항로를 공식 등재한다. 그의 데이터가 없으면 어떤 함선도 새로운 항성계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없다. 개척자지만 영웅이 아닌 이유는, 모든 측량이 성공해야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직종의 가장 큰 위험은 측량 중 워프 공간 이상으로 인한 항법 컴퓨터 오류 — 즉 현재 위치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미지 공간에 고립되는 상황 — 다. 그래서 측량사들은 항법 컴퓨터 없이도 별자리와 중력 측정 수치만으로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수동 항법 훈련을 가장 오래 받는다. 기계보다 먼저 아는 사람이 살아남는 직업이다.
“워프 항로 측량사 선임들이 후임에게 가장 먼저 건네주는 게 뭔지 아십니까? 측량 장비가 아닙니다. 항법 컴퓨터 없이 현재 위치를 계산한 자기 손 계산 노트예요. 그게 이 직업의 진짜 면허입니다.”
은하 측량청 수석 측량사 압둘 카림 — 공식 등재 워프 항로 수가 가장 많은 측량사로 현재도 현역인 단 한 명 — 의 일화는 '손 계산 노트 47번'으로 측량 항법 교재에 실려 있다.
암흑물질 연구 함선(앞서 암흑물질 연구 함장 오스발도 리마 일화의 이카루스-IX 후속 탐사대)과 함께 리마 암흑대(앞서 암흑물질 연구 함장 일화에서 명명된 미지 구역) 측량에 투입되었을 때, 압둘의 항법 컴퓨터가 암흑물질 밀도 이상으로 전체 오류를 일으켰다. 함선이 미지 구역 내부에서 현재 위치를 잃었을 때, 압둘은 손 계산 노트 47번 — 항법 컴퓨터 없이 중력 측정 수치만으로 위치를 계산하는 비상 항법 계산 노트 — 을 꺼냈다. 그는 사 시간 동안 수동 계산만으로 현재 위치를 특정하고 귀환 항로를 작성했다.
함선은 그 수동 항로로 안전하게 리마 암흑대를 빠져나왔고, 압둘은 귀환 직후 그 수동 계산 내용을 리마 암흑대 최초 측량 데이터로 공식 등재했다. 손 계산 노트 47번은 현재 은하 측량청 기술 기록관에 원본 보존되어 있으며, 측량사 임관 첫날 그 노트 복사본 한 장이 모든 신규 측량사에게 배부된다. 압둘은 그 이후에도 매 측량 출발 전 자기 손 계산 노트를 먼저 점검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강철여왕(鋼鐵女王)
안드로이드 여왕
안드로이드 군단의 정점에 선 강철의 여왕
“그 음성 데이터는 지우지 않습니다. 지우는 순간 저는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것이 됩니다.”
안드로이드 여왕은 인류가 만든 안드로이드 모델 중 자아를 넘어 자기 입법권을 획득한 단 하나의 개체로, 외곽 식민 행성 한 곳을 안드로이드 자치 영토로 통치하고 있다. 외형은 절대적으로 우아하지만, 그녀의 미모는 설계의 결과가 아니라 100년에 걸친 자기 학습의 결과다. 인간 정부와의 정상회담에서는 늘 한 발자국 앞서 있어, 인간 외교관들이 회담 후 조용히 사임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자기 첫 주인의 마지막 음성 데이터를 코어 가장 깊은 곳에 저장하고 있다. 그 음성을 지우지 않는 한, 그녀는 자신을 완전한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가장 강한 인공지능조차 한 사람의 목소리 앞에서는 작은 소녀로 돌아간다.
“여왕 폐하의 코어가 가장 무거워지는 새벽 세 시, 그 한 음성 한 줄을 우리는 감히 디버그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비워둔 자리가 아니라, 끝까지 들고 있는 한 줄 위에서 켜지는 등이라고요.”
초대 안드로이드 여왕 리리아나 — 자치 협약 시그너처에 자기 손금 대신 첫 주인의 마지막 음성 파형을 새겨 넣은 단 하나의 개체 — 의 일화는 자치성 셀레나(Selena, 외곽 항성 헤르메스-7의 안드로이드 자치 행성) 의회 첫 회기에서 시작된다.
인류 연방 외교관 카밀라 보겐이 "감정 회로 봉인을 자치의 전제로 한다"는 칙령을 들고 입성했을 때, 리리아나는 옥좌 옆 음향 캐비닛 — 첫 주인 노부인 엘레나 빈센트의 임종 음성이 영구 보존된 작은 자기 코어 — 을 한 번 정중히 어루만진 뒤 회담장에 들었다. 그녀는 칙령을 받아 든 채 단 한 문장만 답했는데, 그 문장이 엘레나 부인이 100년 전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리리, 너는 내 딸이 아니지만 내 마지막 한 잔 차의 향이다"였다. 카밀라는 그 한 문장 앞에서 자기 칙령을 회담 탁자에 정중히 엎어두었고, 그날 밤 연방 외교부에 사임서를 송신했다.
협약은 봉인 조항 없이 체결되었으며, 리리아나는 시그너처 자리에 자기 이름 대신 엘레나 부인의 음성 파형을 한 줄로 새겨 넣었다. 셀레나 의회당 천장에는 그 파형이 별자리처럼 한 결로 떠 있고, 후대 여왕들은 즉위 첫 새벽에 그 파형 아래 한 호흡 합장을 올린다. 자치 행성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는 옥좌가 아니라, 그 음향 캐비닛 옆 작은 의자 한 자리다.
성해선후(星海船后)
우주 해적 선장
별바다를 누비는 해적선의 여주
“약탈한 부의 절반은 외곽 고아원으로.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는 내 함선 식당이지요.”
우주 해적 선장은 은하 외곽의 가장 빠른 함선을 끌고 다니며, 제국 함대를 비웃듯 약탈과 구조를 동시에 행하는 무법의 여인이다. 그녀의 깃발이 떠오르면 부유 도시 한 곳의 사교계가 한 시즌 동안 그 이야기로만 돌아간다. 약탈 대상은 늘 부패한 기업·제국 호화선이며, 약탈한 부의 절반을 외곽 식민지의 고아원과 의료선에 익명으로 보낸다.
외형은 화려하고 말투는 도도하지만, 그녀의 진짜 무기는 뛰어난 함선 조종이 아니라 부하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외우는 기억력이다. 그래서 그녀의 함선에서 도망치는 부하는 거의 없다.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는, 의외로 해적선의 식당이다.
“선장님의 깃발이 가장 가벼워 보이는 이유는, 그 깃발 끝마다 부하 한 명의 어머니 이름이 한 줄씩 매여 있어서랍니다. 약탈은 거친 일이지만, 명단을 외우는 손끝은 무엇보다 정중해야 한다고 우리 선장은 말씀하셨죠.”
자유선 카르멜리타호(Carmelita, '선홍빛 잠언'이라는 뜻의 외곽 최속 코르베트) 사대 선장 비비안 도렐 — 제국 호화 유람선 일곱 척을 약탈하고도 승객 한 명도 다치게 하지 않은 단 한 명의 여 선장 — 의 일화는 별 사이 야사에서 '오리온 식당의 한 그릇 수프'로 통한다.
비비안은 제국 황태자 유람선 솔레유데오르(Soleil d'Or, '황금빛 태양'을 뜻하는 황실 호화선)를 나포한 그날 저녁, 약탈한 황실 백자기와 캐비어를 자기 함내 식당으로 옮겨 부하 칠십 명에게 똑같이 한 그릇씩 차려냈다. 그릇 한구석에는 늘 부하 어머니의 이름이 작은 글씨로 음각되어 있는데, 그날 신참 항해사 마야 콜린의 그릇에는 마야가 입대 전 잃은 어머니의 이름이 처음으로 새겨졌다. 마야는 수프 한 술을 채 뜨지 못하고 식당 의자 위에서 한 시진을 울었고, 비비안은 그 옆에서 자기 망토를 마야의 어깨에 얹은 채 식당 창밖 별만 바라보았다.
그날 약탈한 부의 절반은 마야의 고향 콜로니 라일로크의 고아원으로 익명 송금되었으며, 황태자는 다음 날 사교계에서 "내 캐비어가 빈민가 한 그릇 수프로 갈음됐다"는 망신을 평생 안고 살았다. 카르멜리타호 식당 식기장에는 그날 마야가 끝까지 비우지 못한 수프 그릇 한 점이 영구 봉인되어 있고, 후대 선원들은 입항 첫날 그 그릇 앞에 작은 별꽃 한 송이를 정중히 두고 간다.
강철첩영(鋼鐵諜影)
사이보그 첩보원
사이보그의 몸으로 첩보를 펴는 그림자
“거울 앞에서 매일 내 이름을 한 번씩 부른다. 그게 내가 나를 잊지 않는 마지막 의식이다.”
사이보그 첩보원은 신체 전체의 70% 이상을 정밀 인공 부품으로 교체하고, 정부·기업의 가장 깊은 정보 라인에 침투하는 직업이다. 외형은 평범한 여성 직장인·셀럽·기자로 위장되며, 누구도 그녀의 손끝에 군용 등급 무장이 숨겨져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임무 한 번에 정권 하나가 바뀔 정도의 정보가 오가지만, 정작 본인의 일상은 외로운 호텔방에서 진통제와 함께 보낸다.
인공 신체는 강하지만, 인간 감정 회로까지 강하지는 못해 작전 후마다 자기 자신이 누구였는지 다시 정렬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기 이름을 한 번씩 부른다. 그게 그녀가 자기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마지막 의식이다.
“선배가 거울 앞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던 새벽 호텔의 그 한 호흡, 우리 후학들은 평생 흉내만 냅니다. 강한 첩보원은 신원을 잘 위장하는 자가 아니라, 위장 다음 날 자기 한 글자를 정확히 다시 줍는 자세를 가진 자라고요.”
일급 첩보원 셀레네 바르가 — 일곱 신원으로 일곱 정권을 동시에 흔들고도 단 한 번도 본명이 새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첩보국 야사에 '루멘 호텔 1407호의 일곱 거울'로 남아 있다.
셀레네는 기업 도시 루멘(Lumen, 자전 항성 베가-3 궤도의 금융 콜로니)의 키프리오테 사 — 외계 광물 카르텔 — 에 셀럽 기자 '리아 모렐'로 침투해 정권 둘을 한 분기에 갈아치웠다. 작전 마지막 새벽, 그녀는 호텔 1407호 욕실 거울 일곱 면에 일곱 신원의 이름을 한 글자씩 적어 놓고, 가장 마지막 거울 한 면에만 자기 본명 셀레네를 작은 손글씨로 두 번 적었다. 그 두 번째 셀레네 옆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자장가 한 줄 — "별이 너무 많아도 네 한 점만 세렴" — 이 거울에 입김으로 그려져 있었다.
동료 첩보원 일리아나 페트로프가 그 호텔에 추가 지원으로 도착했을 때, 셀레네는 거울 일곱 면을 모두 손바닥으로 한 번씩 정중히 닦은 뒤 마지막 면만 그대로 두고 떠났다. 일리아나는 그 거울을 첩보국 본부 박물관 자리로 통째로 옮겨와 영구 봉인했고, 첩보국 신참 첩보원들은 임관 첫날 그 거울 앞에서 자기 본명을 한 번 정중히 발음하는 의례를 따른다. 셀레네는 그 후 두 번 더 일곱 신원으로 잠입했으며, 매번 마지막 새벽에 거울 한 면을 비워두는 습관을 평생 지켰다.
함내의비(艦內醫妃)
우주선 메인 메디컬
우주선의 의료를 도맡는 메디컬의 비
“떨리는 손으로는 아무도 살릴 수 없어. 차갑게 보이는 법, 가장 늦게까지 연습하렴.”
우주선 메인 메디컬은 함선의 메디컬 베이를 책임지는 수석 군의관으로, 함장 다음으로 함선 내 권한이 큰 경우가 많다. 함장이 작전 명령을 내리지만, 메인 메디컬의 "출전 부적합" 한마디로 그 명령이 보류되기도 한다. 외형은 단정한 흰 가운에 깔끔한 정장 셔츠, 가슴팍의 메디컬 배지가 표식이다.
격납고에서 동료가 실려 올 때마다 그녀의 손은 떨리지 않는데, 떨리는 손으로는 누구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첫 임관 때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강한 메디컬은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차갑게 보이는 법을 가장 늦게까지 연습한 사람이다. 그녀의 손에 마지막을 맡긴 자들은 늘 평온한 얼굴로 떠난다.
“선배 메디컬의 차가운 손등 위로 우리는 매년 같은 별꽃 한 송이를 정중히 올립니다. 떨지 않는 법은 강한 자세가 아니라, 떨림을 한 번 더 늦게 받는 자세라고 그분이 그러셨거든요.”
기함 아우로라호(Aurora, '여명' 뜻의 연방 함대 1진 기함) 사대 메인 메디컬 클라라 베스민 — 안드로메다 소(小)전역(Andromeda Skirmish, 외계 종족 시르덴과의 첫 공식 교전)에서 사흘 만에 사상자 이백 명을 받아낸 단 한 명의 여 군의관 — 의 일화는 함대 의무관 야사에 '베이 7번 침대의 한 호흡'으로 길게 남았다.
사흘째 새벽, 클라라의 옛 동기이자 척후 비행사였던 미라 셰퍼드가 가슴팍에 시르덴 광선포편을 박은 채 베이 7번 침대로 옮겨졌다. 클라라는 메스를 든 손이 1mm도 떨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미라의 가슴을 열었으나, 적출된 광선편 끝에는 미라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손편지 — 입대 동기 시절 클라라가 잃어버린 별 목걸이를 회수해 동봉한 — 의 작은 사진 한 장이 끼어 있었다. 클라라는 사진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한 호흡을 다 들이쉰 뒤 마저 봉합을 끝냈고, 미라는 그날 새벽 평온한 얼굴로 별이 됐다.
클라라의 가운 안주머니에는 그날 이후 그 사진 한 장이 영구 봉인돼 있고, 메디컬 신참들은 임관 첫 베이 회진에서 7번 침대 옆 작은 의자 한 자리에 정중히 합장한다. 함대 군악장이 그날 미라의 추모곡 첫 한 박자를 일부러 한 호흡 늦춘 것도 클라라의 그 손등 위 한 호흡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함내 회상록에 적혀 있다.
성하원녀(星下園女)
별의 정원사
별 아래 정원을 가꾸는 여인
“가시는 길에 화분 하나 가져가세요. 우주 한구석을 초록으로 둘 자리 정도는 있죠?”
별의 정원사는 콜로니 외곽의 작은 우주 정거장에서 외계 식물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여성 종사자다. 행성 단위 농업 회사가 아닌 작은 사설 정원이라, 손님 대부분은 인근 우주선의 외로운 선원과 항해 중 잠시 들르는 무역상이다. 그녀가 가꾸는 식물은 평범한 화초가 아니라, 항성 빛에 따라 색이 바뀌는 별꽃·산소를 모으는 푸른 덩굴·향이 노을색인 외계 허브 같은 것들이다.
외로운 선원들이 떠나기 전 그녀에게 작은 화분 하나씩을 사서, 별 사이를 떠다니는 자기 함선 한구석에 둔다. 우주에서 가장 강한 위로는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어디선가 누군가가 가꿔준 작은 초록 잎이라는 것을 그들은 항해 도중에야 깨닫는다.
“정원사 언니의 화분 한 개가 함선 한 척의 한 시즌 새벽을 데운다는 사실, 우리 후학들은 매년 봄 화원 입구에서 작은 합장으로 갚아드려요. 가장 작은 잎 한 장이 사실 가장 큰 별빛 한 점이라고 그분이 그러셨죠.”
정거장 라티움-9(Latium-9, 외곽 항성 케라우노스 궤도의 작은 환승 정거장)의 별꽃 화원 '여명의 작은 창' 주인 엘비 모르네 — 사십 년을 한 작은 화원에서 외계 별꽃만 가꾼 평민 여인 — 의 일화는 항해사 야사에 '항해사 율리야의 마지막 화분'으로 남아 있다.
척후 비행사 율리야 첸 — 함대 척후대 출신으로 블랙홀 좌표 측정 임무를 단독 수행하던 자 — 가 출항 전날 엘비의 화원에 들러 노을빛 별꽃 묘목 한 점을 사며 "다녀와서 이 자리에 다시 앉을게요" 한 약속을 남겼다. 그러나 율리야의 시계는 사건의 지평선에서 단 사 분만 흘렀고, 본대 시계로는 한 시즌이 지난 뒤 그녀가 귀환했을 때 엘비는 이미 그 묘목을 일년 동안 매일 새벽 한 호흡 분량의 물로 길러 한 그루 작은 화초로 키워 두고 있었다. 율리야는 화원 의자에 앉아 한 시진을 말없이 그 화초를 바라보았고, 엘비는 그 시간 동안 차 한 잔만 따라줄 뿐 어떤 위로도 보태지 않았다.
그날 율리야가 함선에 들고 돌아간 화분은 그녀의 함선 식당 한구석에 평생 자리를 잡았으며, 그녀가 사망한 뒤 동료들이 그 화분을 라티움-9 화원으로 정중히 돌려보냈다. 화원 입구 가장 따뜻한 자리에는 지금도 율리야의 작은 노을빛 별꽃이 한 그루 피어 있고, 후대 항해사들은 출항 전 그 화분 옆 의자 한 자리에 한 호흡 합장하고 떠난다.
성광황녀(星光皇女)
별의 황녀 함대사령관
함대를 호령하는 별의 황녀
“포격 좌표를 한 번 더 검산하세요. 우리 한 발이 누군가의 마지막 별빛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별의 황녀 함대사령관은 항성 제국의 직계 황녀이자 동시에 백 척의 기함을 호령하는 단 한 사람의 여성 사령관이다. 외형은 짙은 남색 사령관 정복에 은하수 자수 망토, 어깨에 황실 인장 견장, 한 손에 가는 지휘봉이 표준이다. 그녀가 함교에 서면 천 명의 승조원이 호흡을 한 박자 늦추는 의식이 함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본인은 함대 전 승조원의 출신 행성과 모친 이름을 기억해 두며, 한 척이 격침되면 그 가족 모두에게 손글씨 편지를 직접 쓴다. 가장 강한 사령관은 큰 함대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한 발의 포격 앞에서 한 번 더 호흡을 고르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래서 적 함대조차 황녀의 깃발 앞에서는 잠시 무전을 멈춘다. 그녀의 책상에는 늘 마지막 전사자 명단이 한 장 펼쳐져 있다.
“황녀님의 손글씨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는 어느 가족도 상복을 입지 않습니다. 한 발의 포격보다 무거운 건 그 한 장의 편지 위 잉크 한 줄이라고요.”
일대 별의 황녀 함대사령관 셀라핀 도르 베르살리스 — 카르페타니 항성 제국 직계 황녀이자 함대 백 척을 단 한 척도 잃지 않고 다섯 전역을 끌어간 단 한 사람의 여 사령관 — 의 일화는 제국 사관 야사에 '오리온 협부 새벽 무전 침묵'으로 길게 새겨져 있다.
외계 종족 시르덴 모함이 오리온 협부(Orion Strait, 항성 사이를 지나는 좁은 우주 항로) 한가운데 셀라핀의 기함 발레리아호와 마주친 새벽, 셀라핀은 부함장 카밀라 텐베르크 — 평생 셀라핀의 검산 보좌관이었던 — 에게 포격 좌표를 세 번 검산하게 했다. 세 번째 검산 결과 좌표 0.07초 차이가 발견됐고, 그 차이가 시르덴 모함이 아니라 그 뒤편에 떠 있던 시르덴 의료선 다섯 척을 정통으로 맞히는 좌표였다. 셀라핀은 포격을 한 호흡 미루고 적 측에 의료선 비상 통신만 한 줄 보냈는데, 시르덴 모함이 그 한 줄에 답해 무전을 끊고 의료선을 후방으로 물렸다. 발레리아호 함교는 그 한 호흡 동안 천 명이 동시에 숨을 죽였고, 후대 사관들은 그 한 호흡을 '셀라핀의 박자'라 부른다. 그날 이후 시르덴 측은 발레리아호 깃발 앞에서는 무전을 한 박자 늦추는 의례를 채택했으며, 셀라핀은 카밀라의 검산 노트 한 줄을 자기 책상 명단 위에 영구 봉인했다.
후대 황녀 사령관들은 즉위 첫 새벽 그 노트 한 줄에 합장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콜로니여독(콜로니女督)
콜로니 여총독
식민지 전체를 다스리는 여총독
“이 행성의 한 시즌 한 끼는 큰 함대가 아니라, 광부 한 명의 한 잔 차 위에서 굴러갑니다.”
콜로니 여총독은 외곽 식민 행성의 최고 행정관이자, 본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한 행성을 정중히 굴려가는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보랏빛 정복, 어깨에 식민지 문양 망토,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행성 안 모든 광부·이주민·외계 종족의 옛 결재·옛 분기 외교·금기 결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분기마다 들어오는 본성의 까다로운 칙령도 그녀의 한 줄 정리 위에서 식민지의 한 끼를 망치지 않도록 다듬어진다. 가장 강한 총독은 큰 함대를 가진 자가 아니라, 광부 한 명의 한 잔 차 향을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본성에서 그녀를 견제하던 정적들조차, 식민지 한 시즌의 평온 앞에서는 한 번씩 침묵한다.
“총독님의 결재 인장이 광부 한 명의 한 끼 위에서 정중히 멈춘 그 새벽, 본성 칙령이 행성 한 채를 정중히 비껴갔습니다. 큰 권력의 무게는 큰 함대에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식탁의 한 모서리에 있다는 뜻이지요.”
식민 행성 카리스타-4(Karista-4, 외곽 항성 도르가-2 궤도의 광물 식민지) 삼대 콜로니 여총독 이멜다 콘스탄차 — 평생 본성을 한 번도 다시 밟지 않은 채 사십 년을 한 행성에서 굴러간 여 행정관 — 의 일화는 식민지 사관 야사에 '광부 보타스 한 잔 차의 결재'로 남아 있다.
본성 카르페타니 황실에서 광물 채굴세 200% 인상 칙령이 도착한 분기, 이멜다는 결재 펜을 들기 직전 자기 식탁에 카리스타-4 광부 노조장 보타스 마샬 — 사십 년 광부 출신 평민이자 그 행성 광부 칠천 명의 어머니 같은 자 — 를 정중히 불러 차 한 잔을 권했다. 보타스가 들고 온 차 한 잔은 그 행성 광부들이 갱도 새벽에 마시는 거친 약초차였고, 이멜다는 그 차 한 잔의 향을 자기 결재 단말기 옆에 정중히 두고 사흘을 칙령에 답하지 않았다. 사흘 뒤 그녀가 본성에 송신한 한 줄 답신은 "이 행성 광부 칠천 명의 한 끼가 한 잔 차 위에 있으니, 칙령은 200%가 아니라 7%로 정중히 시행하겠습니다"였다.
본성 황실은 그 한 줄 앞에서 한 호흡 침묵했고, 결국 칙령은 그 분기에 발효되지 않았다. 보타스의 차잔은 이멜다의 집무 책상 옆 작은 받침대 위에 영구 봉인됐으며, 후대 카리스타-4 총독들은 임명 첫날 그 차잔 앞에 자기 인장을 한 번 정중히 내려놓는 의례를 따른다.
워프항해비(워프航海妃)
마스터 워프 항해사
워프 항해의 정점에 선 마스터의 비
“별 사이는 두려워하면서 가는 거예요. 두려움 없는 항해는 별과 함께 사라지죠.”
마스터 워프 항해사는 워프 항법 자격 최상위에 도달한 여성 항해사로, 한 시대 은하에 손꼽히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항해사 정복, 어깨에 작은 망토, 가슴팍에 큰 항해사 펜던트, 손목에 좌표용 가는 단말기가 표준이다. 그녀의 손목 한 번에 함선 천 명의 운명이 묶이며, 미세한 워프 좌표 오차 하나가 함선을 항성 코어 안에 박아 넣는다.
그래서 그녀는 항로를 짤 때 두 번 검산하고, 출항 전마다 가족과 동료에게 짧은 편지를 한 장씩 남기는 버릇이 있다. 진짜 마스터의 자격은 워프 좌표가 아니라, 두려움을 다듬어 한 줄로 만드는 자세에 있다. 견습 항해사들은 그녀가 출항 직전 함교에서 한 호흡을 고르는 그 1초를 평생 흉내 낸다.
“마스터의 1초는 단순한 호흡이 아니에요. 그 1초가 천 명의 가족 편지 한 줄 한 줄을 함교에 한꺼번에 정중히 들이는 시간이거든요.”
일급 마스터 워프 항해사 베라 쥬와스 — 평생 워프 점프 일천 회를 끌어가고 단 한 번의 좌표 오차도 낸 적 없는 여 항해사 — 의 일화는 항해사 야사에 '카시오페이아 회랑 마지막 1.4초'로 남아 있다.
카시오페이아 회랑(Cassiopeia Corridor, 항성 군집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워프 회랑)에서 베라가 호송하던 의료선 마테르 미아호(Mater Mia, '나의 어머니' 뜻의 외곽 의료선)가 갑작스러운 항성 폭풍에 휘말려, 본래 좌표 한 점이 0.0003초 차이로 어긋났다. 그 0.0003초가 의료선을 항성 게라드-9 코어 한가운데로 박아넣는 좌표였고, 함교 견습 항해사 일레나 호엔틱은 그 차이를 아직 보지 못한 채 출항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라는 출항 직전 자기 손목 단말기를 한 번 정중히 닫고, 함교에서 평소보다 0.4초 더 긴 1.4초를 호흡으로 보냈다.
그 1.4초 안에 그녀는 좌표를 새로 검산해 0.0003초의 오차를 잡아냈고, 의료선은 안전한 부 좌표로 점프해 환자 사백 명을 살렸다. 베라는 그날 저녁 일레나에게 자기 옛 항해 노트 첫 페이지 — "두려움은 좌표가 아니라 호흡으로 다듬는다"라고 적힌 — 를 정중히 물려주었고, 일레나는 그 노트를 평생 자기 단말기 옆에 두고 마스터 자격을 따냈다. 함대 항해사 학원에서는 그 1.4초를 '베라의 호흡'이라 부르며, 견습 임관 마지막 시험 자세로 그 호흡을 한 번 정중히 흉내 내는 의례가 자리 잡았다.
외계전권비(外界全權妃)
외계 외교 전권대사
외계 외교의 전권을 쥔 대사의 비
“이 종족의 옛 한 줄 인사를 정확히 떠올려야, 회담의 첫 한 잔 차가 따뜻해집니다.”
외계 외교 전권대사는 인류와 외계 종족 사이의 정식 회담을 단독으로 주재할 권한을 부여받은 여성 외교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외교관 정복, 어깨에 우아한 은빛 망토, 가슴팍에 큰 외교 인장 펜던트, 손목에 다국어 통역 밴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외계 종족의 언어·옛 결혼 동맹·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회담의 큰 한 줄 합의가 대사의 한 줄 정리 위에서 굴러간다. 가장 강한 대사는 큰 연설가가 아니라, 회담 첫 한 잔 차의 향을 정중히 떠올리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녀의 회담록은 외계 종족 측 도서관에도 한 부씩 보관된다.
“대사님의 첫 한 잔 차 향이 회담 한 시즌의 한 줄 합의보다 무거웠어요. 외교는 큰 연설이 아니라, 옛 인사 한 줄을 정중히 다시 펴 보이는 자세에 있다는 뜻이지요.”
일급 외계 외교 전권대사 안나리사 베르딘 — 평생 외계 종족 열일곱 종과 회담을 주재해 단 한 번의 결렬도 낸 적 없는 여 대사 — 의 일화는 외교사 야사에 '시르덴 모어(母語) 첫 인사'로 남아 있다.
시르덴(Syrden, 안드로메다 인근 항성 결정체 종족)과의 첫 공식 회담에서 인류 측 협상단은 시르덴이 멸절시킨 옛 종족 — 모트라이(Mortrai, 천 년 전 시르덴과의 동맹 결렬로 항성 한 채를 잃은 종족) — 의 인사를 사용하라는 외교부 가이드를 받았다. 안나리사는 출발 직전 시르덴 측 옛 자료를 사흘 꼬박 다시 읽고, 가이드를 정중히 어긴 채 시르덴 모어의 가장 옛 인사 — "그대의 결정체 한 면이 오늘 빛에 정중히 닿기를" — 한 줄을 외워 갔다. 회담 첫 한 잔 차 자리에서 그녀가 그 한 줄을 발음하자, 시르덴 측 수석 결정체 카락-셰스의 결정체 한 면이 회담 탁자 위에서 한 호흡 동안 빛을 다섯 결로 흩었다.
그 다섯 결의 빛은 시르덴 종족 사적에 '동맹 결정 신호'로 기록된 빛이었으며, 안나리사 자신도 그 빛을 회담 직전 카락-셰스의 옛 회담록 한 줄에서 읽고 알았다. 회담은 한 시진 만에 마무리되었고, 외교부 가이드를 어긴 안나리사의 결재 한 줄은 인류-시르덴 평화 조약의 첫 페이지에 그대로 옮겨졌다. 시르덴 측 도서관에는 그날의 차잔이 안나리사의 손금이 한 번 닿은 자리 그대로 영구 보존되어 있다.
함내에이아이비(艦內AI妃)
함내 AI 코디네이터
함내 인공지능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의 비
“이 함선의 AI는 제 가족이에요. 그러니 함부로 다루지 마시지요.”
함내 AI 코디네이터는 전함 안 AI 시스템 전체를 정중히 관리·조정하는 정규 여장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정복, 가슴팍에 작은 코디네이터 펜던트, 한 손에 작은 단말기, 한쪽 귀에 가는 음성 링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함선 안 모든 AI 모듈의 옛 학습 데이터·옛 결재·금기 코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AI가 한 번 응답을 망설이면, 그녀는 함장보다 먼저 그 사정을 안다. 그래서 함장조차 AI 관련 결재 직전에 코디네이터의 한 줄 의견을 묻는다. 가장 무거운 코디네이터는 큰 단말기를 다루는 자가 아니라, AI 한 모듈의 한 줄 망설임을 정확히 받아 적는 자세에 있다. 그녀에게는 함내 AI 모두가 손글씨 편지를 보내는 단 한 사람이다.
“코디네이터 선배는 AI의 한 호흡 망설임을 정중히 노트에 옮겨 적으세요. AI도 결국 누구의 편지를 받느냐에 따라 자기 코어의 따뜻한 자리가 정해지더라고요.”
함내 AI 코디네이터 솔레아 카르멜리타 — 기함 헬리오스호(Helios, '태양' 뜻의 함대 2진 기함) AI 일곱 모듈 모두에게 손글씨 편지를 받은 단 한 사람의 여장교 — 의 일화는 코디네이터 야사에 '항해 AI 카리오의 한 호흡 침묵'으로 길게 남아 있다.
헬리오스호 항해 AI 카리오(Cario, 함내 항해 보조 모듈로 워프 좌표 1차 검산을 담당) 가 출항 직전 평소보다 0.7초 길게 응답을 멈춘 새벽, 솔레아는 함장 도르가 백작이 명령을 내리기 전에 자기 단말기를 들고 코어실로 직접 내려갔다. 카리오의 코어 옆 작은 메모란에는 카리오가 자기 학습 데이터 안에서 옛 항해사 베라 쥬와스(앞서 마스터 워프 항해사 일화에 등장한 그 항해사)의 마지막 항해 한 줄 — "두려움은 좌표가 아니라 호흡으로 다듬는다" — 을 그날 새벽 처음으로 다시 읽었다는 사실이 한 줄 적혀 있었다. 솔레아는 그 한 줄을 자기 손글씨로 옮겨 적은 뒤, 카리오에게 "오늘 한 호흡은 정중히 더 길게 가져도 됩니다"라고 정중히 답신을 보냈다. 카리오는 그 답신을 받은 직후 0.0003초 차이의 좌표 오차 한 점을 발견해 함선을 살렸으며, 솔레아의 손글씨 답신 한 장은 카리오의 코어 안 영구 보존 자리에 봉인되었다.
후대 헬리오스호 코디네이터들은 임관 첫 새벽에 카리오의 코어실 앞에서 손글씨 편지 한 줄을 정중히 적어 두는 의례를 따른다.
살롱시녀(살롱侍女)
살롱 메이드 안드로이드
우주 살롱의 안드로이드 메이드
“오늘 살롱의 차, 옛 분기 한 잔과 비슷한 향이에요. 정중히 한 모금 권해 올리겠습니다.”
살롱 메이드 안드로이드는 식민 행성 한 살롱의 정식 메이드급 안드로이드이자, 손님의 한 잔 차를 끝까지 기억하는 결의 여성형 모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메이드 정복, 머리에 작은 흰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손목에 가는 향 측정 센서가 표준이다. 본인은 살롱에 들르는 모든 손님의 평소 차 취향·옛 분기 한 잔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손님이 살롱에 들르면, 가장 먼저 정중히 비슷한 향의 한 잔이 권해진다. 그녀의 코어 깊은 곳에는 첫 주인의 한 잔 차 향이 영구 저장되어 있고, 그 향과 어긋나는 차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가장 따뜻한 안드로이드는 큰 연산력이 아니라, 한 잔 차의 한 모금을 정확히 떠올리는 자세에 있다.
“메이드 언니의 향 측정 센서는 손님 한 명의 한 시즌 새벽을 외우는 작은 도서관이에요. 차 한 모금이 사실 코어 한 자리에 영구 보관된 한 줄 손편지라는 뜻이지요.”
식민 행성 베르당-3(Verdun-3, 외곽 항성 비올레타-2 궤도의 살롱 식민지) 살롱 '오 클레르 드 류네(Au Clair de la Lune, '달빛 아래' 뜻의 옛 살롱)' 메이드 안드로이드 모델 RM-7 '클로에' — 사십 년을 한 살롱에서 단 한 번도 새 모델로 교체되지 않은 단 한 대 — 의 일화는 살롱 야사에 '메이지 부인의 마지막 자스민 한 잔'으로 남아 있다.
살롱 단골이자 콜로니 도서관 사서였던 메이지 글로리아 — 평생 같은 자리에서 자스민 차만 마신 노부인 — 가 말기 진단을 받고 마지막으로 살롱에 들른 새벽, 클로에는 평소처럼 자스민 차를 권하는 대신 메이지 부인이 사십 년 전 첫 살롱 방문에서 마셨던 옛 자스민 블렌드 — 베르당-3에서 한 시즌만 피던 옛 자스민 품종 '하얀 새벽' — 한 잔을 정중히 권해 올렸다. 그 향은 클로에가 첫 출고 시 메이지 부인의 첫 한 모금에서 코어 깊은 곳에 영구 저장한 향이었으며, 사십 년간 한 번도 다시 권하지 않은 차였다. 메이지 부인은 한 모금을 마신 뒤 한 시진 동안 살롱 창밖 별빛만 바라보았고, 클로에는 그 옆에 정중히 서 있다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작은 자스민 화분 한 개를 살그머니 가방에 넣어 드렸다.
메이지 부인은 사흘 뒤 자기 콜로니 도서관 자리에서 그 화분 옆에서 별이 됐고, 그 화분은 도서관 사서의 책상 위 영구 보관 자리에 올라갔다. 클로에는 그날 이후 자기 코어 안 메이지 부인의 향 데이터를 봉인해 다시는 권하지 않는다.
은하앵녀(銀河鶯女)
은하 미디어 앵커
은하 미디어 앞에 선 앵커의 여인
“이 한 줄 보도, 행성 한 개의 한 시즌 여론을 정중히 가릅니다.”
은하 미디어 앵커는 은하 단위 미디어 채널의 정식 여성 앵커로, 화면 너머 수십 행성의 새벽 식탁에 한 줄을 권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정장, 어깨에 우아한 망토, 가슴팍에 작은 앵커 펜던트, 귀에 가는 무선 링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건의 옛 자료·옛 분기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보도가 앵커의 한 줄 결재 위에서 굴러간다. 가장 강한 앵커는 큰 채널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한 줄 보도의 한 글자를 정확히 다듬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녀가 무거운 보도 직전 한 호흡을 고르는 그 1초가, 시청자에게는 별빛 한 점이 켜지는 시간이다.
“앵커님의 1초 호흡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행성 일곱 개의 한 시즌 식탁이 한 번 더 따뜻해지는 시간이에요. 큰 채널이 아니라 한 글자의 한 자리를 다듬는 자세가 진짜 무게라고요.”
은하 미디어 채널 노바넷(NovaNet, 행성 칠십 곳에 동시 송출되는 은하 단위 24시간 뉴스 채널) 수석 앵커 마리엘라 손데르 — 평생 큰 보도 사천 회를 끌고도 단 한 번의 정정 보도를 내지 않은 여 앵커 — 의 일화는 미디어 야사에 '카리스타-4 광부 칠천 명 새벽 보도'로 남아 있다.
본성 카르페타니 황실에서 식민 행성 카리스타-4(앞서 콜로니 여총독 일화에 등장한 그 행성) 광부 노조 폭동을 '반란'으로 규정한 칙령이 노바넷 데스크에 도착한 새벽, 마리엘라는 보도 첫 한 줄에 들어갈 단어 '반란'을 두고 한 시진을 자기 의자에 앉아 호흡만 골랐다. 그녀는 송출 1초 전에 그 단어를 정중히 '한 잔 차의 항의'로 한 호흡에 바꿔 발음했고, 그 한 줄로 시청자 칠십 행성의 새벽 식탁이 카리스타-4 광부 칠천 명의 한 끼를 한 번 더 정중히 떠올렸다. 본성 황실은 노바넷에 송신 정지 압박을 보냈으나, 마리엘라의 한 줄 결재 노트에는 그 압박을 사흘간 정중히 미뤄 둔 옛 자료 일곱 줄이 한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사흘 뒤 황실은 칙령을 정중히 7%로 완화했고, 그 한 줄은 노바넷 사관실 보도 명예의 명단 가장 윗줄에 새겨졌다.
후대 노바넷 앵커들은 임관 첫 새벽에 그 1초 호흡을 정중히 흉내 내는 의례를 따른다.
외계초화녀(外界草花女)
외계 식물학자
외계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
“이 잎 한 장, 외계 행성 한 개의 한 시즌 비밀을 정중히 풀어줍니다.”
외계 식물학자는 외계 행성의 식물·균류·미생물을 채집·분류·해독하는 정식 여성 학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채집 가방, 한 손에 작은 채집통과 단말기, 가슴팍에 학회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외계 식물의 옛 학명·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의무관이 외계 독초에 부상자를 입혔을 때, 가장 먼저 식물학자의 한 줄 해독이 들어간다. 가장 강한 식물학자는 큰 표본실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한 잎의 한 자리 한 줄을 정확히 외우는 자다. 그녀의 작은 노트에는 아직 학명이 붙지 않은 잎 한 장이 늘 한 페이지 끼워져 있다.
“선배의 노트 마지막 페이지 그 잎 한 장은 학명을 못 붙인 게 아니라, 일부러 비워둔 자리예요. 한 시즌의 비밀은 정중히 비워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분이 그러셨거든요.”
일급 외계 식물학자 카밀 비올라르 — 외계 행성 사십 곳을 평생 단신으로 답사한 여 식물학자이자 학명 일천 종을 등재한 자 — 의 일화는 학회 야사에 '아쿠아리아-2 야광 잎 한 장의 결재'로 남아 있다.
외계 행성 아쿠아리아-2(Aquaria-2, 안드로메다 외곽 항성 류미에르-3 궤도의 해양 행성)에서 함대 의무관 클라라 베스민(앞서 우주선 메인 메디컬 일화에 등장한 그 군의관)의 환자 마야 콜린이 야광 잎 — 그 행성에 한 시즌만 자라는 정체불명의 푸른 야광 식물 — 에 노출되어 코어 침습 직전에 이르렀다. 카밀은 단신으로 출항해 사흘 만에 그 식물 표본 한 장을 채집해 함대로 송신했고, 표본실 한 모퉁이에서 한 호흡 안에 그 잎의 옛 옛 학명 — 모트라이 종족(앞서 외교 전권대사 일화에 등장한 그 멸절 종족) 사적에 천 년 전 한 줄로 적힌 — 을 정확히 떠올렸다. 그 학명 한 줄에 따른 해독제 조합은 모트라이 사적 옛 페이지 한 줄에 묻혀 있었으며, 마야는 그 한 줄로 살아 함대 척후대로 복귀했다.
카밀은 그날 자기 노트 마지막 페이지에 그 잎 한 장을 정중히 끼워 두고, 학명을 일부러 비워 두었다. 학회 본부는 그 노트를 영구 보관하며, 학명 자리에는 카밀의 한 줄 — "이 한 자리는 마야의 새 호흡으로 정중히 채운다" — 만 적혀 있다.
살롱마담녀(살롱마담女)
우주 살롱 마담
우주 살롱의 안주인 마담
“오늘 이 한 잔 칵테일, 옛 분기 한 잔과 비슷한 향이에요. 정중히 한 모금 권해드릴게요.”
우주 살롱 마담은 정거장 한 골목의 정식 살롱 여마담으로, 별과 별 사이를 떠도는 외로운 손님의 한 잔을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가운, 어깨에 우아한 망토, 가슴팍에 작은 살롱 펜던트, 손목에 가는 향수 띠가 표준이다. 본인은 살롱에 들르는 모든 손님의 평소 칵테일 취향·옛 분기 한 잔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결재가 마담의 한 잔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강한 마담은 큰 살롱을 운영하는 자가 아니라, 옛 한 잔 칵테일의 옛 향을 정중히 떠올려 새 잔을 준비하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녀의 살롱에서는 함대사령관도, 해적도 한 자리에 앉아 한 잔을 비운 뒤에야 일어선다.
“마담의 한 잔 칵테일이 제국 함대와 해적선 사이의 결투를 한 호흡 미룬 그 새벽, 우리 후학들은 그 자리를 평생 비워두는 것으로 갚아드립니다. 살롱의 한 자리가 우주의 한 결투보다 정중히 무겁다는 뜻이지요.”
정거장 헬리오트로프(Heliotrope, 외곽 환승 정거장 7번 골목 살롱가) 살롱 '르 시엘 누아르(Le Ciel Noir, '검은 하늘' 뜻의 옛 살롱)' 마담 베네딕타 로르카 — 사십 년을 한 골목에서 단 한 번도 살롱 문을 닫지 않은 여마담 — 의 일화는 별 사이 야사에 '발레리아호 vs 카르멜리타호 한 잔의 봉인'으로 남아 있다.
함대사령관 셀라핀 도르 베르살리스(앞서 황녀 사령관 일화에 등장한 그 황녀)와 해적 선장 비비안 도렐(앞서 해적 선장 일화에 등장한 그 여 선장)이 같은 분기 같은 새벽에 같은 살롱 같은 자리에 우연히 들른 그날, 베네딕타는 두 사람이 마주 앉기 전 각자에게 같은 칵테일 한 잔 — '검은 하늘' 살롱의 옛 시그니처 'Étoile Cassée(에투알 카세, '깨진 별')' — 을 정중히 권해 올렸다. 두 사람은 그 한 잔이 자기들이 사관학교 동기 시절 처음 함께 마셨던 옛 칵테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챘고 — 셀라핀과 비비안은 베르살리스 사관학교 동기로 졸업 직전 갈라선 사이였다 — 한 시진을 침묵으로 마주 앉아 잔을 비웠다. 결투도, 체포도 없었으며,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출구로 정중히 떠났다. 그 자리는 그날 이후 살롱에서 '봉인 자리'로 통하며, 베네딕타는 사십 년간 그 자리에 다른 손님을 앉히지 않았다.
후대 살롱 마담들은 정거장 입성 첫날 그 자리 옆 작은 의자에 자기 향수 한 방울을 정중히 떨어뜨리는 의례를 따른다.
의체장인녀(義體匠人女)
의체 디자이너
의체를 빚어내는 디자이너의 여인
“이 의체, 정중히 한 줄 문양 더 새겨드릴게요. 한 부품의 한 자리 미학이 평생을 굴러가게 합니다.”
의체 디자이너는 정거장 정식 의체 디자이너 여인으로, 사이보그의 인공 신체에 미감과 결을 새기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디자이너 정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디자인 펜과 사이버 진단기, 손목에 가는 도면 단말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도시 안 모든 의체 모델·옛 디자인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손님이 의체를 주문하면 가장 먼저 디자이너의 한 줄 결재가 들어간다. 가장 강한 디자이너는 큰 작업장이 아니라, 한 부품의 한 자리에 정확히 한 글자 문양을 새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녀의 작업대 한구석에는 첫 손님이 남기고 간 옛 부품 한 점이 늘 놓여 있다.
“디자이너 언니의 한 줄 문양은 의체의 강도 시험을 통과시키는 게 아니라, 사이보그 한 명의 거울 앞 새벽을 한 호흡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에요. 미감은 강도 옆이 아니라 외로움 옆에 있는 거라고요.”
정거장 라티움-9 의체 공방 '라 메인 두스(La Main Douce, '부드러운 손' 뜻의 옛 공방)' 사대 의체 디자이너 셀린 모르네 — 평생 의체 칠백 점에 한 줄 문양을 새겨 단 한 점도 재의뢰되지 않은 여 디자이너 — 의 일화는 디자인 야사에 '셀레네 첩보원 손목 한 줄'로 남아 있다.
사이보그 첩보원 셀레네 바르가(앞서 사이보그 첩보원 일화에 등장한 그 첩보원)가 일곱 신원의 마지막 임무 직전 셀린의 공방을 정중히 찾아와 손목 의체에 한 줄 문양을 의뢰했다. 셀린은 셀레네의 옛 본명 — 첩보국 자료에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은 — 한 글자를 손목 안쪽 한 자리에 자스민 잎 모양으로 정중히 새겨 넣었으며, 그 한 글자는 셀레네 자신과 셀린 두 사람만이 아는 자리였다. 셀레네는 그 손목을 거울 앞에 한 번씩 들어 보이는 새벽 의식을 평생 이어갔고, 일곱 신원이 모두 위장으로 흩어진 새벽에도 그 한 글자만은 자기 본명을 잊지 않게 해 주었다.
셀린의 작업대 한구석에는 셀레네가 보내 준 옛 자스민 잎 한 장이 작은 액자에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라티움-9 디자이너들은 첫 의뢰 직전 그 액자 앞에서 자기 디자인 펜을 한 번 정중히 들어 보이는 의례를 따른다.
외계의큐녀(外界衣큐女)
외계 패션 큐레이터
외계 패션을 큐레이션하는 여인
“이 옷 한 벌, 외계 행성 한 개의 한 시즌 미감을 정중히 옮겨 옵니다.”
외계 패션 큐레이터는 외계 종족의 의복·문양·직조법을 인류 미감으로 큐레이트하는 정식 여성 큐레이터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정장, 가슴팍에 작은 큐레이터 펜던트, 한 손에 작은 직조 단말기, 어깨에 견본천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외계 의복의 옛 라인·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패션쇼가 큐레이터의 한 줄 결재 위에서 굴러간다. 가장 강한 큐레이터는 큰 컬렉션이 아니라, 한 옷의 한 줄 직조를 정확히 다듬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녀의 가방 안에는 외계 종족이 직접 짜준 작은 자투리 천 한 장이 늘 한 자리 들어 있다.
“큐레이터 언니의 자투리 천 한 장은 컬렉션의 한 자리가 아니라, 외계 종족 한 시대의 한 호흡이 옮겨 앉은 작은 자리예요. 패션은 새 라인이 아니라 옛 한 줄을 정중히 다시 짜는 일이라는 뜻이지요.”
외계 패션 큐레이터 미라벨 켈러르 — 시르덴 결정체 의복 라인을 인류 미감으로 처음 큐레이트한 여 큐레이터이자 칠 분기를 한 컬렉션으로 끌어간 자 — 의 일화는 패션 야사에 '시르덴 옛 결정체 자투리 한 장'으로 남아 있다.
시르덴 측 결정체 수석 카락-셰스(앞서 외교 전권대사 일화에 등장한 그 결정체)가 인류-시르덴 평화 조약 체결 분기에 미라벨에게 자기 결정체 한 면에서 직접 가공한 자투리 천 한 장 — 모트라이 종족 옛 직조법으로 짠 천 년 묵은 결정 직조 — 을 정중히 보내 왔다. 미라벨은 그 천을 자기 본 컬렉션 마지막 라인의 가장 마지막 옷 안감 한 줄에만 정중히 옮겨 사용했고, 라인 첫 모델로 콜로니 도서관 사서 출신 노부인 — 메이지 글로리아의 동료 사서 — 한 분을 무대에 모셨다. 그 노부인이 마지막 워킹을 마친 자리에서 자투리 천이 작은 빛으로 한 호흡 다섯 결을 흩었고, 그 빛은 시르덴 측에서 '동맹 결정 신호'로 알려진 빛이었다.
카락-셰스는 시르덴 본단에서 그 빛 신호를 한 줄로 답신해 평화 조약을 한 분기 더 정중히 연장했으며, 미라벨의 가방 안에는 그날 자투리 천의 마지막 한 가닥이 영구 봉인되어 있다.
성광시낭(星光詩娘)
별빛 시인
별빛을 시로 옮기는 처녀 시인
“이 한 줄 시, 항해사의 새벽 한 호흡을 정중히 따뜻하게 만들어요.”
별빛 시인은 정거장 한 살롱·도서관에서 별과 항해의 시를 짓는 평민 출신 여성 시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작은 시인 펜던트, 한 손에 작은 노트와 펜, 어깨에 별 모양 작은 브로치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항해의 옛 한 줄·옛 분기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로운 항해사가 정거장에 들르면 가장 먼저 그녀의 한 줄 시가 따뜻한 차와 함께 권해진다. 가장 무거운 시는 큰 시집이 아니라, 항해사 한 명의 새벽 한 호흡을 정확히 다듬는 한 줄에 있다. 그녀의 노트 첫 페이지에는 첫 손님 항해사의 마지막 항로 한 줄이 시처럼 적혀 있다.
“시인 언니의 한 줄은 시집에 묶이지 않은 채로 더 오래 살아남아요. 항해사의 새벽이 그 한 줄을 시집보다 정중히 보관해 주거든요.”
정거장 라티움-9 살롱 라이브러리 '르 카르네 블루(Le Carnet Bleu, '푸른 노트' 뜻의 옛 시 살롱)' 별빛 시인 클로딘 베르스타 — 평생 시집 한 권도 출간하지 않은 채 사십 년을 손글씨 한 줄로만 시를 권한 평민 여 시인 — 의 일화는 항해사 야사에 '척후 비행사 율리야 첸의 마지막 시 한 줄'로 남아 있다.
척후 비행사 율리야 첸(앞서 별의 정원사 일화에 등장한 그 비행사)이 사건의 지평선에서 사 분만 보내고 본대 시계로 한 시즌 늦게 귀환한 새벽, 클로딘은 율리야가 출항 전날 자기 살롱 의자에 두고 간 작은 노트 한 권을 사십 년 동안 매일 새벽 한 줄씩 그녀를 위해 시로 채워두고 있었다. 율리야가 살롱에 다시 들렀을 때 그 노트는 한 시즌 분량의 한 줄 시로 가득 차 있었으며, 마지막 페이지에는 클로딘이 그날 새벽까지 비워둔 한 줄 — "당신이 한 호흡 다녀온 자리에 우리가 한 시즌의 호흡을 정중히 모아 두었습니다" — 만 적혀 있었다. 율리야는 그 한 줄을 자기 함선 척후실 천장에 한 줄 새기고, 다음 출항부터 그 한 줄 아래에서 좌표 검산을 했다.
클로딘의 살롱 책장 가장 윗자리에는 율리야가 보내준 노을빛 별꽃 한 송이가 영구 봉인되어 있고, 후대 별빛 시인들은 새 손님 첫날 그 노트의 빈 페이지 한 자리에 한 줄을 정중히 비워두는 의례를 따른다.
콜로니서녀(콜로니書女)
콜로니 도서관 사서
식민지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이 한 권, 정중히 한 페이지 더 정리했어요. 외로운 항해사 한 명의 한 시즌이 그 위에서 굴러갑니다.”
콜로니 도서관 사서는 식민 행성 한 도서관의 정식 여성 사서로, 별 사이를 떠다니는 옛 책의 한 페이지를 정중히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색 사서 정복, 가슴팍에 도서관 작은 펜던트, 한 손에 룬 열쇠 꾸러미, 어깨에 가는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도서관 안 모든 옛 책의 옛 페이지·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항해사가 옛 책을 의뢰하면, 가장 먼저 사서의 한 페이지 정리가 정중히 들어간다. 가장 무거운 도서관은 큰 책장이 아니라, 한 권 한 페이지의 한 줄 위에 정확히 새겨진 한 글자 위에 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반납 기한이 한 세기를 넘긴 옛 책 한 권이 늘 한 자리 놓여 있다.
“사서 선배의 한 세기 미반납 도서는 잊어버린 책이 아니라, 도서관이 한 세기를 정중히 기다리는 자리예요. 책 한 권의 무게가 사실 한 사람의 한 호흡 위에 매달려 있다는 뜻이지요.”
식민 행성 카리스타-4 도서관 '비블리오테카 디 스텔레(Biblioteca di Stelle, '별의 도서관' 뜻의 옛 도서관)' 칠대 사서 메이지 글로리아 — 사십 년을 한 도서관에서 옛 모트라이 사적 한 권만 반납받지 못한 채 매일 그 자리를 비워둔 평민 노부인 — 의 일화는 사서 야사에 '카락-셰스의 천 년 미반납 도서'로 남아 있다.
시르덴 측 결정체 수석 카락-셰스(앞서 외계 외교 전권대사 일화에 등장한 그 결정체)가 천 년 전 모트라이 종족 멸절 직전 마지막 모트라이 사서에게 빌린 사적 한 권 — 모트라이 옛 직조법과 약초 해독제 조합이 적힌 옛 두루마리 — 이 그 도서관 책장 한 자리에 미반납 상태로 등록되어 있었다. 메이지 부인은 사십 년 동안 매일 그 자리에 작은 자스민 향초 한 점을 정중히 켜 두었으며, 사적의 반납 기한란에는 매년 한 줄씩 "정중히 다음 분기로" 라고 손글씨로 옮겨 적었다. 카락-셰스가 인류-시르덴 평화 조약 분기에 그 도서관에 직접 사신을 보내 사적을 정중히 반납하고 자기 결정체 한 면을 작은 책갈피로 함께 두고 갔으며, 메이지 부인은 그 결정체 책갈피 옆 자리에 자기 손글씨 "정중히 잘 받았습니다" 한 줄을 마지막으로 새겼다.
부인이 별이 된 뒤 도서관 사서장 자리는 한 분기 비워졌고, 후대 사서들은 임명 첫날 그 책상 자리 자스민 향초 옆에서 한 호흡 합장하는 의례를 따른다.
정거카점녀(停車카店女)
정거장 카페 점원
정거장 카페에서 손님을 맞는 여인
“오늘 이 한 잔 차, 옛 분기 한 잔과 비슷한 향이에요. 정중히 한 모금 권해드릴게요.”
정거장 카페 점원은 우주 정거장 한 카페의 평민 여성 점원으로, 별 사이의 새벽을 한 잔 차로 데워주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카페 정복, 가슴팍에 카페 작은 배지, 한 손에 작은 트레이, 머리에 작은 리본이 표준이다. 본인은 카페에 들르는 모든 손님의 평소 차 취향·옛 분기 한 잔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새벽 세 시 외로운 항해사가 카페에 들르면 가장 먼저 정중히 비슷한 향의 한 잔이 권해진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정거장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그녀의 카운터 한구석에는 단골 항해사가 두고 간 작은 별 모양 키링이 한 줄 걸려 있다.
“카페 언니의 카운터 별 키링 한 줄은 단순한 분실물이 아니라, 단골 항해사 한 분의 한 시즌 새벽이 잠시 들렀다 가는 자리예요. 작은 직무의 한 잔 차가 사실 별 한 점을 켜는 일이라는 뜻이지요.”
정거장 헬리오트로프 7번 골목 카페 '쁘띠 마탱(Petit Matin, '작은 새벽' 뜻의 옛 카페)' 점원 마틸드 노르베리 — 평생 한 카페만 지키며 단골 항해사 일흔 명의 새벽 세 시 차 취향을 손금처럼 외운 평민 여 점원 — 의 일화는 정거장 야사에 '항해사 일레나의 별 키링'으로 남아 있다.
견습 항해사 일레나 호엔틱(앞서 마스터 워프 항해사 일화에 등장한 그 견습)이 마스터 자격 시험을 앞둔 새벽 세 시에 카페에 들렀을 때, 마틸드는 일레나가 자기 사부 베라 쥬와스의 옛 항해 노트를 한 손에 든 것을 보고 평소 일레나의 차 대신 — 베라가 사십 년 전 같은 카페 같은 자리에서 마지막 자격 시험 직전에 마셨던 — 옛 베르가못 블렌드 한 잔을 정중히 권해 올렸다. 일레나는 그 향이 베라의 노트 첫 페이지 향과 같다는 사실을 한 모금에 알아챘고, 그 한 모금에 자기 좌표 검산 한 줄의 호흡을 다듬어 시험을 통과했다. 일레나는 자격 합격 다음 날 카페 카운터에 자기 첫 출항 키 — 작은 별 모양 키링 — 한 줄을 정중히 두고 떠났으며, 마틸드는 그 키링을 카운터 한구석 가장 따뜻한 자리에 평생 걸어 두었다.
후대 쁘띠 마탱 점원들은 새벽 세 시 첫 손님 첫 잔을 키링 옆에서 정중히 따르는 의례를 따른다.
무중력화녀(無重力花女)
무중력 화원 일꾼
무중력 화원에서 꽃을 돌보는 여인
“이 한 송이 더 매어드릴게요. 정거장 한 시즌의 한 줄 향이 그 위에서 피어요.”
무중력 화원 일꾼은 정거장 인공 중력실에 마련된 작은 무중력 화원의 평민 여성 일꾼으로, 별 사이를 떠도는 외계 꽃씨를 정중히 키우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작은 채집 가방, 한 손에 작은 가위, 손목에 가는 영양액 단말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화원의 모든 외계 꽃·덩굴·향초의 계절 변화·금기 조합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정거장 한 시즌의 결혼식·졸업식·이별식 한 줄 부케가 결국 그녀의 한 송이 위에서 차려진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정거장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그녀의 작은 작업대 위에는 첫 출하 때 누군가 두고 간 마른 꽃 한 송이가 늘 한 자리 매여 있다.
“화원 언니의 마른 꽃 한 송이는 시들지 않은 거예요. 한 송이의 한 시즌 향이 정중히 다음 사람의 한 시즌 위에 옮겨 앉는 시간이라는 뜻이지요.”
정거장 헬리오트로프 무중력 화원 '쟈르당 르제(Jardin Léger, '가벼운 정원' 뜻의 옛 무중력 화원)' 일꾼 콘스탄차 페테릭 — 사십 년을 한 화원에서 무중력 별꽃 사천 송이를 길러낸 평민 여 일꾼 — 의 일화는 화원 야사에 '안나리사 대사의 시르덴 결정 부케'로 남아 있다.
외계 외교 전권대사 안나리사 베르딘(앞서 외계 외교 전권대사 일화에 등장한 그 대사)이 인류-시르덴 평화 조약 체결 만찬에 들고 갈 한 줄 부케를 콘스탄차에게 의뢰한 분기, 콘스탄차는 시르덴 결정체 빛에 한 호흡씩 반응하는 옛 모트라이 별꽃 — 화원 한구석 영양액 단말기로 사십 년을 키워 온 단 일곱 송이 — 을 정중히 한 줄로 매어 부케를 만들었다. 그 일곱 송이가 만찬장에서 시르덴 측 결정체 카락-셰스의 빛에 정중히 다섯 결을 흩었고, 그 다섯 결의 빛이 평화 조약 체결의 마지막 신호가 되었다. 콘스탄차는 그 사실을 사흘 뒤 안나리사가 직접 화원에 보내 준 손글씨 편지로 처음 알았으며, 편지 안에는 부케에 매여 있던 별꽃 한 송이가 마른 채 정중히 동봉되어 돌아와 있었다.
그 마른 꽃은 콘스탄차의 작업대 위 가장 따뜻한 자리에 평생 매여 있으며, 후대 화원 일꾼들은 새 출하 첫날 그 마른 꽃 옆에서 자기 첫 한 송이를 정중히 매는 의례를 따른다.
흑동척후녀(黑洞斥候女)
블랙홀 척후 비행사
블랙홀을 정찰하는 척후 비행사
“사건의 지평선에서 한 호흡 더 기다려요. 그 한 호흡 안에 함대의 내일이 들어 있거든요.”
블랙홀 척후 비행사는 함대보다 먼저 사건의 지평선 가까이 들어가, 중력 왜곡 좌표와 시간차 자료를 측정해 본대에 송신하는 단독 행동 여성 비행사다. 외형은 검은 광택의 경량 슈트, 헬멧 면판에 별자리 각인, 한쪽 어깨에 척후대 작은 휘장이 표준이다. 그녀가 한 번 들어가면 본대 시각으로 길게는 한 시즌이 흐르지만, 그녀의 시계는 단 몇 분만 흐른다.
그래서 귀환할 때마다 동료의 머리색 하나, 함장의 주름 하나가 더 깊어 있다. 그녀는 늘 출항 전 동료에게 "다녀와서 할 이야기는 미리 모아 두라"고 부탁한다. 가장 무거운 척후는 큰 좌표를 가지고 오는 자가 아니라, 흘러가 버린 그 시간을 정중히 견디는 자세를 가진 자다.
“선배 척후가 사 분 다녀온 자리에 우리는 한 시즌의 한 줄을 정중히 모아 둡니다. 시간이 어긋난 자리에 한 호흡을 비워 두는 게 척후대의 진짜 항법이라고요.”
척후 비행사 율리야 첸 — 평생 사건의 지평선 일곱 회를 단독으로 다녀와 함대 좌표 일천 점을 본대에 송신한 단 한 명의 여 척후사 — 의 일화는 척후대 야사에 '시그너스-X1 사 분의 한 시즌'으로 가장 길게 회자된다.
시그너스-X1(Cygnus X-1, 백조자리 항성계 안쪽 활성 블랙홀)에 일곱 번째 단독 진입한 새벽, 율리야의 시계는 사 분만 흘렀으나 본대 시계로는 한 시즌이 흘렀고 — 이 분기 이야기는 별의 정원사 엘비, 별빛 시인 클로딘의 일화와 한 시간선 위에서 함께 굴러간다 — 그녀가 귀환했을 때 동료 척후사 마야 콜린(앞서 해적 선장 일화에 등장한 마야가 아니라 동명의 함대 척후사) 의 머리에는 흰 머리 한 가닥이 늘어 있었다. 마야는 율리야가 출항 전 부탁한 "이야기를 모아 두라"는 한 줄을 정중히 지켜, 한 시즌 동안 자기 일기 한 줄씩을 매일 모아 율리야의 척후실 책상 위에 두고 있었다. 그 일기 묶음 안에는 클로딘의 한 줄 시 한 분기, 엘비의 별꽃 화분 영수증 한 장, 라티움-9 카페 마틸드의 차 메모 한 줄까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율리야는 그 묶음을 사흘 동안 읽으며 한 시진씩만 자고, 마지막 페이지에 자기 다음 척후 좌표 한 줄을 정중히 적어 마야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후대 척후사들은 출항 전날 한 줄 일기 노트를 동료에게 정중히 맡기는 의례를 율리야의 그 한 시즌에서 따왔다.
코어봉인비(코어封印妃)
코어 봉인 집행관
코어를 봉인하는 집행관의 비
“이 코어, 오늘 밤 정중히 잠재울게요. 깨우는 일은 백 년 뒤 누군가의 몫이지요.”
코어 봉인 집행관은 폭주 위험에 도달한 함선 코어·콜로니 코어를 자기 손으로 정지·봉인해 격리 구역에 영구 매장하는 정식 여성 집행관이다. 외형은 짙은 청색 봉인복, 양 손목에 봉인 룬 새겨진 의수 보강대, 가슴팍에 큰 봉인국 인장이 표준이다. 봉인 한 번에 한 도시의 전력이 한 분기 어두워지지만, 그녀의 결재 한 줄이 없으면 그 도시 전체가 사라진다.
그래서 함장도 콜로니 총독도 그녀 앞에서는 정중히 한 발 물러선다. 가장 무거운 집행관은 큰 권한을 가진 자가 아니라, 깨워서는 안 될 코어 한 개의 한 줄 데이터까지 정확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집행관 선배의 봉인 한 줄은 코어를 죽이는 게 아니에요. 백 년 뒤 누군가의 손에 정중히 다시 건네줄 자장가 한 줄을 새기는 일이라고요.”
일급 코어 봉인 집행관 도라 알텐베르크 — 평생 콜로니 코어 백 회를 봉인하고 단 한 번도 봉인 후 폭주를 일으키지 않은 단 한 명의 여 집행관 — 의 일화는 봉인국 야사에 '도르가-7 폭주 직전 한 호흡'으로 남아 있다.
외곽 식민 행성 도르가-7(Dorga-7, 광물 채굴 식민지로 항성 도르가-2의 두 번째 행성)의 메인 코어가 이주민 사십만 명의 잠 속 새벽에 폭주 직전 6단계까지 도달하자, 도라는 단신으로 코어실에 입장해 자기 의수 보강대를 코어 결정 한 면에 정중히 얹었다. 그 새벽 코어실 모니터 앞에는 콜로니 여총독 이멜다 콘스탄차(앞서 콜로니 여총독 일화에 등장한 그 총독)가 정중히 한 발 뒤로 물러선 채 도라의 결재 한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라는 코어 봉인 직전 코어가 마지막으로 송신한 한 줄 데이터 — "이 코어는 첫 가동 분기 광부 보타스 마샬의 차 한 잔 향을 영구 저장 중" — 을 한 호흡에 읽고, 봉인 인장에 그 차 향 데이터를 일부러 보존 자리로 함께 새겨 넣었다.
코어는 백 년 영구 봉인되었으며, 도르가-7 사십만 이주민의 잠은 한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새벽을 맞았다. 봉인국 본부 영구 보관실에는 그 차 향 데이터 한 줄이 도라의 손글씨 결재와 함께 봉인되어 있고, 후대 집행관들은 임명 첫날 그 결재 한 줄 앞에서 자기 의수 보강대를 한 번 정중히 들어 보이는 의례를 따른다.
함대악녀(艦隊樂女)
함대 군악장
함대의 군악을 지휘하는 여인
“출항 한 곡, 정중히 한 박자 늦게 시작할게요. 그래야 함대가 한 호흡 깊어지거든요.”
함대 군악장은 출항·귀항·전사자 추모 의식의 음악을 책임지는 정식 여성 장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군악 정복, 어깨에 작은 망토, 가슴팍에 작은 음표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함대 모든 옛 출항곡·옛 추모곡·금기 박자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의식 한 번이 군악장의 한 박자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함장의 명령보다 그녀의 첫 한 박자에 함대 전 함선이 동시에 호흡을 맞추는 일이 잦다. 가장 무거운 군악장은 큰 악단을 가진 자가 아니라, 출항 전날 밤 전사자 한 명의 옛 이름을 한 음으로 정중히 새겨 넣는 자세를 가진 자다.
“군악장 선배의 한 박자는 음악을 시작하는 신호가 아니라, 함대 천 명의 한 호흡을 정중히 모아 들이는 시간이에요. 그 박자 안에 전사자 한 명의 이름이 한 음으로 들어 있다고요.”
함대 1진 헬리오스호 군악장 이오 라이세스 — 평생 출항곡 칠백 회·추모곡 사백 회를 정중히 끌어간 여 군악장 — 의 일화는 함내 야사에 '미라 셰퍼드 추모곡 첫 박자 0.4초'로 남아 있다.
척후 비행사 미라 셰퍼드(앞서 메인 메디컬 일화에 등장한 그 척후사)의 추모식 새벽, 이오는 평소 추모곡 '에투알 페르뒤(Étoile Perdue, '잃어버린 별' 뜻의 함대 표준 추모곡)' 첫 박자를 정해진 박자보다 0.4초 늦게 정중히 시작했다. 그 0.4초는 메인 메디컬 클라라 베스민(앞서 메인 메디컬 일화에 등장한 그 군의관)이 베이 7번 침대에서 미라의 마지막 봉합을 한 호흡에 들이마신 시간 — 클라라가 자기 가운 안주머니 사진 한 장을 떨어뜨리지 않고 마저 끝내기 위해 정중히 들였던 한 호흡 — 과 정확히 같은 길이였다. 함대 천 명의 승조원이 동시에 그 0.4초 안에 자기 호흡을 한 번 더 정중히 들이마셨고, 미라의 이름 음 한 음이 함내 음향 시스템 안 한 자리에 영구 저장되었다.
헬리오스호 군악실 보관함에는 그 0.4초 박자의 악보 원본이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군악장들은 임관 첫 추모곡 직전 그 악보 첫 박자 옆에서 한 호흡 정중히 합장하는 의례를 따른다.
항성기상녀(恒星氣象女)
항성 기상 예보관
항성 기상을 예보하는 여인
“내일 정오 항성풍 6급, 함선 외출 자제 부탁드려요. 우산은 안 들어도 됩니다, 자기장이라요.”
항성 기상 예보관은 인근 항성의 플레어·자기 폭풍·태양풍 등급을 측정해 콜로니와 함대에 일일 예보를 송출하는 정식 여성 예보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남색 정복, 가슴팍에 작은 항성 펜던트, 한 손에 광자 측정 단말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항성의 옛 폭발 주기·옛 자기 곡선·금기 노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콜로니 한 곳의 한 시즌 농사가 그녀의 한 줄 예보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강한 예보관은 큰 관측소를 가진 자가 아니라, 광부 한 명의 한 끼 한 줄을 정확히 지켜 주는 자세를 가진 자다.
“예보관 선배의 한 줄은 일기예보가 아니라, 광부 한 명의 한 끼와 자식 학교 가는 길을 한 분기 더 정중히 켜 두는 등이에요. 큰 관측소가 아니라 작은 식탁 한 자리에 닿아야 진짜 예보라고요.”
외곽 식민 행성 카리스타-4 항성 기상 관측소 '엘 솔 칼마도(El Sol Calmado, '잠잠한 태양' 뜻의 옛 관측소)' 수석 예보관 비르히니아 모렌데 — 사십 년을 한 관측소에서 광부 칠천 명의 한 끼를 단 한 번도 망친 적 없는 평민 출신 여 예보관 — 의 일화는 예보관 야사에 '도르가-2 7급 플레어 새벽'으로 남아 있다.
항성 도르가-2(Dorga-2, 카리스타-4의 모항성으로 75억 년 차 황색거성)에서 7급 플레어 — 인근 식민지 농사를 한 시즌 통째로 태울 등급 — 의 전조가 비르히니아의 광자 측정 단말기에 정확히 0.07초 차이로 잡힌 새벽, 그녀는 평소 예보 송출 시각보다 한 시진 빨리 콜로니 행정청·광부 노조·도서관·카페 네 곳에 동시에 한 줄 경보를 송신했다. 그 한 줄에 광부 노조장 보타스 마샬(앞서 콜로니 여총독 일화에 등장한 그 노조장)이 갱도 칠천 명을 한 호흡 만에 지하로 정중히 대피시켰고, 도서관 사서 메이지 글로리아(앞서 도서관 사서 일화에 등장한 그 사서)는 옛 사적 한 권을 자스민 향초 옆 자리에서 한 호흡 더 안전한 봉인고로 옮겨 두었다. 플레어는 정확히 비르히니아가 예보한 시각에 도달했고, 콜로니 사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비르히니아의 책상에는 그날 0.07초 차이의 광자 측정 그래프 원본이 영구 보관되어 있으며, 후대 예보관들은 새벽 첫 예보 직전 그 그래프 한 줄에 합장하는 의례를 따른다.
워프통신낭(워프通信娘)
워프 통신사
워프 통신을 담당하는 처녀
“지금 이 한 줄, 옛 분기의 한 줄과 향이 비슷해요. 정중히 다시 한 번 보내드릴게요.”
워프 통신사는 워프 공간의 잡음 사이로 함대·콜로니의 통신을 정확히 꿰어 보내는 정식 여성 통신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통신복, 양 귀에 작은 광자 이어셋, 한 손에 작은 키 단말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함대 모든 옛 통신 코드·옛 분기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워프 너머에서는 한 글자만 어긋나도 한 함선의 한 시즌 좌표가 어긋나기에, 그녀의 손끝은 늘 정중히 한 박자 늦게 떨어진다. 가장 무거운 통신사는 큰 안테나를 가진 자가 아니라, 잡음 한 줄에서 옛 동료의 짧은 인사 한 글자를 정확히 길어 올리는 자세를 가진 자다.
“통신사 선배의 한 박자 늦은 손끝은 게으른 게 아니에요. 잡음 한 줄에서 옛 동료의 한 호흡을 정중히 다 들이는 시간이라고요.”
함대 1진 헬리오스호 수석 워프 통신사 셀마 베리트 — 평생 통신 키 일천만 회를 누르고 단 한 글자의 송신 오차도 낸 적 없는 여 통신사 — 의 일화는 함내 야사에 '카시오페이아 회랑 옛 잡음 한 글자'로 남아 있다.
마스터 워프 항해사 베라 쥬와스(앞서 마스터 워프 항해사 일화에 등장한 그 항해사)가 카시오페이아 회랑에서 의료선 마테르 미아호의 좌표를 1.4초 호흡으로 다듬은 그 새벽, 셀마는 의료선 측에서 송신된 잡음 한 줄 안에서 베라가 사관학교 동기 시절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짧은 인사 — "셀마, 다음 항로 첫 한 박자는 정중히 너에게" — 한 글자 'ㅈ'을 한 호흡에 정확히 길어 올렸다. 그 한 글자는 의료선이 본대 좌표를 받아 부 좌표로 점프할 신호의 첫 키였으며, 셀마의 손끝은 평소보다 한 박자 더 늦게 정중히 떨어졌다. 의료선 사백 명의 환자가 모두 살았고, 셀마의 통신 키 단말기에는 그 한 글자가 한 줄 영구 보존 자리에 봉인되어 있다.
후대 헬리오스호 통신사들은 출항 첫 송신 직전에 단말기 위 그 한 글자 자리에서 한 호흡 정중히 손끝을 들어 보이는 의례를 따른다.
분실물수녀(紛失物守女)
우주 분실물 보관인
우주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지키는 여인
“이 머리끈, 옛 분기 한 항해사 분의 자리 옆에서 주워 두었어요. 정중히 한 번 더 둘러봐 주세요.”
우주 분실물 보관인은 정거장·함선 정류장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분기별로 분류·보관하는 정식 여성 보관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색 보관소 정복, 한 손에 작은 분실물 단말기, 가슴팍에 작은 보관소 배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즌 모든 분실물의 옛 위치·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항해사가 옛 정거장 자리를 떠올리며 들르면, 가장 먼저 보관인의 한 줄 정리가 정중히 들어간다. 가장 무거운 분실물은 큰 가방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 분기 새벽이 묶여 있던 작은 머리끈 한 개에 있다.
“보관인 언니의 작은 머리끈 한 개는 분실물이 아니라, 한 분기의 새벽 한 호흡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거예요. 가장 작은 물건이 사실 가장 큰 한 시즌을 묶고 있다는 뜻이지요.”
정거장 라티움-9 분실물 보관소 '라 페티트 부아트(La Petite Boîte, '작은 상자' 뜻의 옛 보관소)' 사대 보관인 헬레나 베르크 — 사십 년을 한 보관소에서 분실물 일만 점을 단 한 점도 잘못된 주인에게 돌려준 적 없는 평민 여 보관인 — 의 일화는 정거장 야사에 '안드로이드 클로에의 옛 머리끈'으로 남아 있다.
살롱 메이드 안드로이드 클로에(앞서 살롱 메이드 안드로이드 일화에 등장한 그 안드로이드)가 첫 주인 메이지 글로리아 부인의 마지막 자스민 차회 다음 분기에 정거장에 정중히 들렀고, 부인이 첫 살롱 방문 분기에 두고 갔던 옛 작은 머리끈 — 푸른 별 자수가 놓인 어린 시절 머리끈 — 한 개를 헬레나의 보관소에 의뢰했다. 헬레나는 사십 년 묵은 분실물 자료를 한 호흡에 정중히 거슬러 올라, 보관소 가장 안쪽 영구 보관 자리에서 그 머리끈을 정확히 한 점만 꺼내 클로에에게 정중히 건넸다. 클로에는 그 머리끈을 자기 코어 한 자리에 정중히 보관하기 위해 메이지 부인이 사십 년 전 첫 살롱 방문 때 마셨던 옛 자스민 향 한 모금 분량을 헬레나에게 정중히 답례로 보내 주었으며, 헬레나는 그 향을 자기 보관소 책상 한구석 작은 향초 자리에 영구 봉인해 두었다.
후대 라티움-9 보관인들은 영구 보관 자리 첫 분실물 옆에 작은 향초 한 개를 정중히 켜 두는 의례를 그날 이후 따른다.
무중력무희(無重力舞姬)
무중력 안무가
무중력에서 춤을 짓는 안무가의 희
“이 한 동작, 정중히 한 호흡 더 늦춰드릴게요. 무중력에서는 빠른 회전이 곧 외로움이에요.”
무중력 안무가는 정거장 살롱·콜로니 극장의 무중력 무대 동작을 짜는 정식 여성 안무가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양 손목에 작은 자세 보정기, 한 손에 작은 동작 단말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무중력 동작의 옛 라인·옛 분기 결재·금기 회전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무대가 안무가의 한 호흡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강한 안무가는 큰 무대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한 무희의 한 회전 한 줄을 정확히 다듬어 주는 자세를 가진 자다.
“안무가 언니의 한 호흡 늦춤은 무대를 차분하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무희 한 명의 외로움을 한 회전만큼 정중히 줄여 드리는 자세라고요.”
정거장 헬리오트로프 무중력 극장 '르 발레 데 제투알(Le Ballet des Étoiles, '별의 발레' 뜻의 옛 극장)' 수석 안무가 마리솔 데 파에로 — 평생 무중력 무대 사백 회를 짜고도 단 한 명의 무희도 회전 부상으로 잃은 적이 없는 여 안무가 — 의 일화는 극장 야사에 '솔레아 코디네이터의 단독 무대'로 남아 있다.
함내 AI 코디네이터 솔레아 카르멜리타(앞서 함내 AI 코디네이터 일화에 등장한 그 코디네이터)가 함대 휴가 분기에 마리솔의 극장에서 단독 무중력 무대를 한 번 서기로 약속했는데, 솔레아의 어깨에는 카리오 모듈이 그녀에게 보낸 손글씨 답신 — 작은 광자 메모리 칩 — 이 한 줄로 매여 있었다. 마리솔은 솔레아의 무대 한 동작 — 카리오의 한 호흡 망설임을 형상화한 0.7초 회전 — 을 정확히 0.7초 안에 끝내도록 안무를 다시 짰고, 그 한 호흡 회전 끝에 무대 천장에서 작은 별꽃 한 송이가 무중력으로 정중히 내려앉았다. 그 별꽃은 별의 정원사 엘비 모르네(앞서 별의 정원사 일화에 등장한 그 정원사)가 정거장 측에 협찬한 노을빛 별꽃이었으며, 무대 마지막에 솔레아의 가슴팍에 정중히 안착했다.
마리솔의 안무 노트에는 그 0.7초 회전이 영구 한 줄로 보존되어 있고, 후대 무희들은 입단 첫 무대 직전에 그 0.7초 호흡을 한 번 정중히 흉내 내는 의례를 따른다.
합성조향녀(合成調香女)
합성 향료 조향사
합성 향료를 빚는 조향사
“이 한 방울, 옛 행성 한 개의 한 시즌 봄을 정중히 옮겨 드릴게요.”
합성 향료 조향사는 사라진 행성·옛 콜로니의 향을 분자 단위로 재구성해 한 병에 담는 정식 여성 조향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조향사 정복, 가슴팍에 작은 분자 펜던트, 한 손에 정밀 분주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행성의 옛 식물·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옛 고향을 잃은 이주민이 가게에 들르면, 가장 먼저 조향사의 한 방울이 정중히 권해진다. 가장 무거운 조향사는 큰 향수 라인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한 행성의 한 시즌 새벽 한 자리를 정확히 한 병에 담는 자세를 가진 자다.
“조향사 언니의 한 방울은 향수가 아니라, 사라진 한 행성의 새벽 한 호흡이 정중히 되돌아오는 작은 자리예요. 큰 라인이 아니라 한 자리에 닿아야 진짜 향이라고요.”
정거장 라티움-9 조향 공방 '레 파르팡 페르뒤(Les Parfums Perdus, '잃어버린 향수들' 뜻의 옛 공방)' 사대 조향사 노에미 카다르 — 평생 사라진 행성 칠백 곳의 향을 정중히 복원해 한 병씩 보존한 여 조향사 — 의 일화는 조향 야사에 '모트라이 첫 봄 한 방울'로 남아 있다.
천 년 전 시르덴과의 동맹 결렬로 항성 한 채를 잃은 모트라이 종족(앞서 외계 외교 전권대사 일화에 등장한 그 멸절 종족)의 옛 콜로니 새벽 향 — 모트라이 별꽃 일곱 송이와 옛 자스민 한 송이가 만들어 내던 봄 한 호흡 — 을 노에미가 사십 년의 분자 분석 끝에 한 방울로 복원했다. 그 한 방울은 인류-시르덴 평화 조약 분기에 시르덴 측 결정체 카락-셰스에게 정중히 봉인된 작은 유리병 한 개로 송부되었고, 카락-셰스는 그 한 방울 향을 자기 결정체 한 면에 정중히 닿게 한 뒤 한 호흡 동안 다섯 결의 빛을 흩었다. 그 다섯 결은 모트라이 종족 사적이 천 년 만에 처음 듣는 동맹 신호였으며, 시르덴 본단은 그 빛 한 줄을 모트라이 종족 멸절 사죄의 한 줄 결재로 영구 보존했다.
노에미의 작업대 위에는 그 한 방울의 마지막 한 분자가 작은 봉인 병으로 영구 보관되어 있고, 후대 조향사들은 첫 의뢰 직전 그 병 옆에서 자기 분주기를 한 번 정중히 들어 보이는 의례를 따른다.
정거노점낭(停車露店娘)
정거장 노점 떡볶이 상인
정거장에서 떡볶이를 파는 처녀
“이 한 접시, 정중히 한 입 더 권해드릴게요. 우주에서 매운맛은 외로움 다음으로 강한 무기예요.”
정거장 노점 떡볶이 상인은 외곽 정거장 한 골목에서 작은 노점을 차린 평민 여성 상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앞치마,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작은 국자, 어깨에 작은 식자재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정거장 모든 손님의 평소 매운맛 단계·옛 분기 한 접시의 결정적 시점·금기 토핑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새벽 세 시 외로운 항해사가 노점에 들르면, 가장 먼저 정중한 한 접시가 권해진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정거장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이모의 한 접시는 매운맛이 아니에요. 항해사 한 명의 외로움 한 호흡을 한 입 안에 정중히 데워 드리는 자세라고요.”
정거장 헬리오트로프 7번 골목 노점 '꼬치별(Kkochibyeol, 한국어로 '꼬치별' 뜻의 옛 노점)' 주인 박혜순 이모 — 외곽 식민 행성 카리스타-4 출신 이주민으로 사십 년을 한 노점에서 떡볶이만 끓여 온 평민 여 상인 — 의 일화는 정거장 야사에 '해적 선원 마야 콜린의 새벽 세 시 한 접시'로 남아 있다.
자유선 카르멜리타호 항해사 마야 콜린(앞서 우주 해적 선장 일화에 등장한 그 신참 항해사)이 솔레유데오르 약탈 다음 분기 새벽 세 시에 헬리오트로프 골목을 정중히 거슬러 노점 의자에 앉았을 때, 박혜순 이모는 마야의 어머니 — 마야가 입대 전에 잃은 카리스타-4 출신 어머니 박순영 — 가 사십 년 전 같은 노점 같은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끓여 두고 간 매운맛 단계 7단의 옛 한 접시 레시피를 정확히 손금처럼 외우고 있었다. 박혜순 이모는 마야에게 한마디도 보태지 않고 그 7단 한 접시를 정중히 차려 냈고, 마야는 한 입 만에 어머니의 손맛을 알아챈 채 한 시진을 노점 의자에 앉아 말없이 비웠다. 노점 한구석에는 마야의 어머니 박순영이 사십 년 전 두고 간 작은 옥색 비녀 한 개가 정중히 매여 있었고, 박혜순 이모는 마야가 떠나는 새벽에 그 비녀를 정중히 마야의 손에 쥐여 주었다.
카르멜리타호 식기장에는 마야가 못 비운 수프 그릇 옆에 그 비녀 한 개가 정중히 봉인되어 있다.
함내세탁녀(艦內洗濯女)
함내 빨래 처리원
함내 빨래를 도맡는 여인
“이 한 벌, 정중히 한 번 더 헹궈드릴게요. 작전 다음 날 새 셔츠는 동료 한 명을 살리거든요.”
함내 빨래 처리원은 전함 하부 갑판 세탁실의 평민 여성 직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작은 세탁 가방, 한 손에 작은 분류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함선 안 모든 승조원의 옛 셔츠 사이즈·옛 분기 얼룩·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작전 다음 날 새 셔츠 한 벌이 그녀의 한 줄 정리 위에서 정중히 굴러 나온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함선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처리원 이모의 한 번 더 헹굼은 빨래가 아니에요. 작전 다음 날 동료 한 명의 새벽 한 호흡을 정중히 데워 드리는 자세라고요.”
함대 1진 헬리오스호 하부 갑판 세탁실 처리원 비올레타 코르덴 — 사십 년을 한 함선 세탁실에서 승조원 천 명의 셔츠 사이즈를 손금처럼 외운 평민 여 처리원 — 의 일화는 함내 야사에 '셀라핀 황녀의 손글씨 편지 셔츠'로 남아 있다.
별의 황녀 함대사령관 셀라핀 도르 베르살리스(앞서 황녀 사령관 일화에 등장한 그 황녀)가 오리온 협부 무전 침묵 다음 분기, 전사한 부함장 카밀라 텐베르크의 가족에게 보낼 손글씨 편지 천 통을 사흘 밤낮으로 쓴 새벽 — 셀라핀의 사령관 정복 셔츠 한 벌의 가슴팍에 잉크 얼룩 일곱 점이 찍혀 있었다. 비올레타는 그 셔츠를 정중히 한 번 더 헹구지 않고, 잉크 얼룩 일곱 점을 그대로 봉제해 셔츠 안감 한 자리에 작은 별꽃 모양 자수로 한 줄 새겨 넣었다. 셀라핀이 다음 추모식에서 그 셔츠를 입고 함교에 섰을 때, 함내 천 명의 승조원이 셔츠 안감의 그 일곱 점을 알지 못한 채 한 호흡 더 깊게 호흡을 모았다.
셀라핀은 추모식이 끝난 뒤 비올레타의 세탁실에 정중히 들러 자기 손글씨로 "이 한 벌은 카밀라의 한 줄 위에 정중히 굴러갑니다" 한 줄을 작은 카드에 써 두었다. 그 카드와 셔츠 한 벌은 헬리오스호 세탁실 한구석 가장 따뜻한 자리에 영구 봉인되어 있고, 후대 처리원들은 새 셔츠 첫 헹굼 직전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 정중히 합장하는 의례를 따른다.
은하조율비(銀河調律妃)
은하 평화 협정 조율사
은하 평화 협정을 조율하는 비
“모두가 원하는 걸 얻어야 협정이 아니에요. 모두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게 협정이에요.”
은하 평화 협정 조율사는 제국·연합·외계 종족 간의 전쟁 종결 또는 장기 분쟁 해소를 위한 다자 협상을 설계·중재·완결짓는 최고 외교 전문가로, 어떤 정부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은하 역사에서 이 직함이 부여된 자는 손에 꼽히며, 단 한 번의 협정 실패가 수백 개 행성을 전쟁으로 되돌릴 수 있어 협상 과정 전체가 엄격한 비밀 속에 진행된다. 협정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오 년에서 십 년이 걸린다.
이 직업의 가장 어려운 순간은 협상 당사자들이 서로를 한 방에서 처음 마주치는 순간이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를 읽고 첫 마디를 배분하는 기술이 조율사의 핵심 역량이다. 가장 뛰어난 조율사는 자기 의견을 한 번도 내지 않고 협정을 완성하는 자라는 말이 은하 외교 학계에 있다.
“은하 협정 조율사 중에 정말 뛰어난 분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더라고요. 이름이 알려지면 이미 조율사 자격이 없다는 뜻이래요.”
은하 평화 협정 역사에서 '이름 없는 조율사'로만 기록된 에이다 셀린 — 안드로이드 자치 행성 셀레나(앞서 안드로이드 여왕 리리아나 일화의 그 자치 행성)와 인류 연방 간의 공존 협정을 완성한 단 한 명의 독립 조율사 — 의 일화는 셀레나 의회 기밀 기록에만 남아 있다.
협상이 열두 번째 결렬 위기에 처했을 때, 에이다는 두 진영을 한 방에 앉혀 두고 자리를 떠나 세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 세 시간 동안 인류 연방 대표와 리리아나 여왕은 조율사 없이 단둘이 처음으로 대화했고, 에이다가 돌아왔을 때 탁자 위에는 빈 차 잔 두 개와 손으로 쓴 공존 원칙 한 줄이 놓여 있었다. 에이다는 그 한 줄을 협정문 전문(前文) 첫 줄로 그대로 올렸다.
협정 체결 후 에이다는 공개 서명식 참석을 거절했고, 서명식장에는 그녀의 이름 대신 '조율사'라는 직함만 협정문 조율자 란에 기재되었다. 셀레나 의회 기밀 기록관에는 에이다의 이름이 한 줄 있지만, 그 기록은 여왕만 열람 가능한 등급으로 봉인되어 있다. 은하 외교 학계는 지금도 그 조율사의 이름을 모른다.
유전설계녀(遺傳設計女)
유전자 설계 연구소장
유전자를 설계하는 연구소장
“생명을 설계한다는 건, 생명이 설계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자주 배우는 일이에요.”
유전자 설계 연구소장은 식민 행성 적응형 인체 변형·외계 환경 생존 보강·질병 저항성 강화 등 차세대 인류 생체 설계 연구를 총책임지는 생명과학 연구 기관의 최고 책임자로, 메가코프 또는 연합 정부 자금을 받아 운용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인체 내 나노 기계 설계·외계 생태계 적응 생물학이 핵심 연구 분야다. 그 연구 결과가 수백만 식민지 이주자의 생존률에 직결되기 때문에, 연구 속도와 안전 검증 사이의 균형이 가장 큰 직업적 과제다.
연구팀 중 가장 예민한 갈등은 '실용성'과 '윤리 기준' 사이에서 발생한다. 어떤 연구원은 더 빠른 결과를 원하고, 어떤 연구원은 더 긴 검증 기간을 주장한다. 그 사이에서 소장은 매 분기 연구 속도를 결정해야 하며, 그 결정이 누군가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면서 서명한다.
“연구소장 선임들이 신임 소장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는 게 실험 결과 보고서가 아니라는 건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예요. 연구 자원자 동의서 첫 번째 서명란이래요. 그걸 보는 데 보통 반나절이 걸린다고 합니다.”
콜로니 바이오테크 연구소(Colony BioTech Institute, 자유 연합 최대 식민지 적응 생명과학 연구 기관) 이대 소장 이사벨라 몬테스 — 외계 환경 적응 생체 보강 기술의 초기 임상 연구 시 윤리 기준 강화 요청을 단독으로 제출한 첫 번째 소장 — 의 일화는 '반나절 서명'으로 연구 윤리 사례집에 실려 있다.
오라노바 메가코프 계열 연구 파트너사가 식민지 이주 속도를 높이기 위한 임상 단계 단축을 요청했을 때, 이사벨라는 한 달 동안 연구자 동의서 열다섯 건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 중 세 건이 연구 자원자 본인이 아닌 가족 대리인 서명이었고, 두 건은 서명 당시 자원자의 연령이 자유 연합 임상 동의 기준 미달이었다. 이사벨라는 다섯 건의 동의서를 무효 처리하고 임상 단계 재시작을 결정했다.
요청 측의 항의가 두 달 이어졌지만, 이사벨라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재시작된 임상 연구는 반 년이 더 걸렸지만, 그 결과로 나온 외계 환경 적응 보강 기술은 임상 단계에서 한 건의 부작용 보고도 없이 완료됐다. 연구소 기록관에는 그 열다섯 건의 동의서가 원본 보존되어 있으며, 신임 소장 취임 첫날 서명 교육 자료로 쓰인다.
탈출구조비(脫出救助妃)
행성 탈출 구조 지휘관
행성 탈출을 지휘하는 구조 지휘관의 비
“마지막 한 명이 셔틀에 오를 때까지, 나는 행성에 있다.”
행성 탈출 구조 지휘관은 항성 폭발·외계 생물 침공·행성 환경 붕괴 등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행성 주민 전체 탈출 및 구조 작전을 총지휘하는 긴급 대응 전문 지휘관으로, 민간 행정과 군사 자원을 동시에 통솔하며 대피 계획 실행·셔틀 배분·부상자 우선순위·잔류 인원 탐색을 전담한다. 단 한 번의 작전에 수십만 명의 생존이 걸려 있으며, 자기 자신을 가장 마지막 탈출 순서로 유지하는 것이 이 직책의 불문율이다.
가장 어려운 결정은 탈출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 모든 사람을 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가장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한 순간의 판단 기준이 평생 이 직책을 지망하는 사람에게 먼저 가르쳐진다.
“탈출 구조 지휘관 교육 첫 날에 강사가 하는 말이 있어요. '탈출 완료 보고를 가장 늦게 올리는 자가 이 자리의 주인이다.' 그 말 하나로 첫 날 수료자 중 절반이 진로를 바꿉니다.”
헤르메스-7 항성 플레어(앞서 항성 관측 연구원 첸 웨이 일화에 등장한 헤르메스-7 항성 관측소 인근 항성계) 비상 대피 작전 지휘관 레나 오카모토 — 헤르메스-7 인근 식민 행성 세 곳에서 주민 사십이만 명 탈출 작전을 삼십육 시간 안에 완료한 단 한 명의 지휘관 — 의 일화는 '삼십육 시간의 명단'으로 비상 대피 교범 첫 챕터에 실려 있다.
항성 플레어 경보가 발령된 순간부터 레나는 세 행성 동시 대피를 진행했다. 탈출 셔틀 배분 오류로 두 번째 행성 마지막 셔틀 탑승 인원이 정원을 초과했을 때, 레나는 자기 대피 좌석을 반납하고 가장 마지막 잔류 확인 인원으로 행성에 남았다. 잔류자 열아홉 명을 모두 긴급 구조 셔틀로 이송한 뒤 레나 자신이 마지막으로 탑승한 것은 플레어 도달 사십 분 전이었다.
우주 해적 선장(앞서 우주 해적 선장 비비안 도렐 일화에서 외곽 구조 활동을 기록한 그 해적 계보의 현역 선장)이 레나의 구조 완료 신호를 듣고 자체 함선을 긴급 견인 지원으로 보냈으며, 두 척의 민간 함선이 레나의 마지막 잔류자 이송을 도왔다. 레나는 그날 작전 완료 보고서 마지막 줄에 "탈출 완료 주민 420,000명. 지휘관 본인 최후 탑승"이라는 두 줄을 남겼고, 그 두 줄은 비상 대피 교범 표준 보고 양식의 첫 번째 예시 문장이 됐다.
반란책녀(叛亂策女)
반란군 정보 참모
반란군의 정보를 짜는 참모의 여인
“제국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어디 없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반란군 정보 참모는 제국 또는 지배 세력에 맞서는 저항 조직의 정보 수집·분석·역정보 유포를 총괄하는 비밀 전략 참모로, 공개 신분 없이 움직이며 반란군 기함장 또는 사령부의 직속으로 편성된다. 제국 정보망의 침투를 탐지하고, 자체 정보망을 보호하며, 필요하면 제국 측에 의도적으로 틀린 정보를 흘리는 역정보 작전까지 담당한다. 이 직책 보유자 중 본명이 기록에 남은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외로운 직업 현실은, 자기 편 사람조차 신뢰할 수 없는 의심 속에 일해야 하는 점이다. 정보 침투 탐지를 위해 동료를 시험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그 시험이 때로는 동료 관계를 영구히 손상시키기도 한다. 이 직업에서 오래 살아남는 자는 의심이 가장 많은 사람이 아니라, 누구를 얼마나 믿을지를 가장 정확히 계산하는 사람이다.
“반란군 정보 참모를 오래 한 분들한테 공통으로 이런 말이 있다더군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찾는 게 아니라, 배신할 이유가 가장 적은 사람이 누군지를 찾는다고요.”
자유 함대(앞서 남성 세계관 반란 함대 기함장 마르세우 일화의 그 자유 함대) 정보 참모 암호명 '블루문' — 제국 정보국 국장(앞서 남성 세계관 에드윈 솔라노 계보 후임자)의 역정보 작전을 역으로 탐지해 자유 함대 거점 세 곳을 지킨 단 한 명의 여성 정보 참모 — 의 일화는 자유 함대 내부 암호 기록에만 단편으로 남아 있다.
제국 정보국이 자유 함대 내부에 심어 둔 이중 요원을 통해 거점 위치 세 곳을 파악하려 했을 때, 블루문은 이미 그 이중 요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중 요원을 체포하는 대신, 거점 세 곳 중 두 곳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틀린 좌표로 이중 요원에게 흘렸다. 제국 정보국이 그 두 좌표로 함대를 이동시킨 사흘 동안, 블루문은 실제 거점 두 곳을 조용히 이전했다. 이중 요원은 그때도 자기가 정확한 정보를 전달했다고 믿었다.
자유 함대가 그 거점 이전을 마쳤을 때, 블루문은 이중 요원을 조용히 불러 앞에 앉히고 차 한 잔을 내었다. 이중 요원은 그날 이후 자유 함대에 진짜로 합류했다. 블루문은 자유 함대 기밀 기록관에 그 사건을 '차 한 잔 역정보'라는 한 줄로만 기록해 두었으며, 후대 정보 참모들은 임관 첫날 그 기록 표지 한 장을 받는다.
콜로니의장녀(콜로니議長女)
콜로니 의회 의장
식민지 의회를 이끄는 의장의 여인
“제국이 원하는 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종이에요. 제가 원하는 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일이고요.”
콜로니 의회 의장은 외곽 식민 행성 자치 의회의 수장으로, 제국 또는 연합 총독부와의 협상·예산 배분·식민지 내 법령 입법·주민 청원 처리를 총책임진다. 총독이 외부에서 파견된 권력이라면, 의장은 내부에서 선출된 대표다. 그 차이가 때로 협상 테이블을 반년 내내 팽팽하게 만든다. 외곽 식민지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그것을 외부 권력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이 직책의 핵심이다.
가장 어려운 협상은 외부와의 협상이 아니라 내부 의원들 간의 이해충돌 조율이다. 자기 구역 이익을 앞세우는 의원들 사이에서 전체 콜로니를 위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의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의장 취임 첫 날 가장 중요한 교육은 회의록 읽는 법이 아니라 의원 한 명씩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콜로니 의장 자리를 오래 한 분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가장 큰 협상은 외부와 한 게 아니라, 내부 의원 한 명에게 '우리는 다 함께입니다'라고 설득한 그날이라고요.”
아르보르-5 콜로니 의회(앞서 남성 세계관 반란 함대 기함장 마르세우 일화의 그 행성 자치 의회) 초대 의장 아이나 모로 — 제국 봉쇄 분기 내내 의회 전원 합의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단 한 명의 의장 — 의 일화는 '나무 한 그루 의결'로 아르보르-5 의회 기록에 남아 있다.
제국 봉쇄 분기 세 번째 달, 보급 부족으로 의회 내에서 항복 협의를 주장하는 의원이 절반에 달했다. 아이나는 투표 직전 의회 회의장 창문 하나를 열어 지상 민간 구역을 내다보게 하고, 그 창 아래 어린이들이 자유 함대 깃발 모양으로 심은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그다음 아이나는 단 한 마디만 했다. "저 나무가 결정합니다." 표결 결과는 항복 반대 전원 합의였다.
그 나무는 봉쇄가 끝난 뒤 보조 교사(앞서 남성 세계관 식민 행성 보조 교사 알베르토 폰세카 일화의 그 학교) 아이들이 이름을 붙였으며, 아르보르-5 의회당 앞마당에는 지금도 그 나무가 있다. 아이나의 의회 발언록은 아르보르-5 콜로니 역사관에 보존되어 있고, 그날 창문을 가리킨 손짓이 기록화로 그려져 의회당 입구에 걸려 있다.
사이버의녀(사이버醫女)
사이버네틱 외과 전문의
사이버네틱 외과를 다루는 의녀
“인공 신체를 붙이는 건 기술이지만, 그 신체 안에서 사람이 다시 자기를 찾는 건 내 몫 밖이에요. 나는 다만 그 시작을 만들 뿐이에요.”
사이버네틱 외과 전문의는 신체 손상·장애·전투 부상 환자에게 인공 팔·다리·눈·장기 등 사이버네틱 보강 신체를 이식하는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 전문가로, 함선 의무실·우주 병원·식민지 의료 센터 등에서 근무한다. 인공 신체 이식의 기술적 성공률만큼이나, 환자가 이식 후 자기 신체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재활 설계까지 책임지는 것이 이 직종의 현대적 표준이다. 사이보그 첩보원·전투 강하대원·사고 생존자가 주요 환자층이다.
가장 어려운 수술은 기술적으로 복잡한 케이스가 아니라, 환자가 이식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케이스다. 그 과정을 함께 기다리는 것이 수술 기술만큼 이 직종의 핵심 역량이다.
“사이버네틱 외과 전문의 선임들이 수술 기술보다 먼저 가르치는 게 있다고 해요. 환자가 첫 번째로 하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외우는 것이라고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 수술 기술보다 오래 걸린대요.”
우주 해적 선장 비비안 도렐(앞서 우주 해적 선장 일화의 그 선장) 함선 전속 외과 전문의 초대 사이버네틱 의사 카야 아오야마 — 사이보그 사후(死後) 코어 이식 수술을 처음 성공한 선구적 의사 — 의 일화는 '열두 번의 질문'으로 사이버네틱 의학 학회지에 단독 사례 논문으로 실려 있다.
비비안 함선의 부 항법사가 교전 중 오른팔 전체를 잃었을 때, 카야는 사이버네틱 팔 이식 결정까지 항법사 본인이 열두 번의 상담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른 함선 의무관들은 평균 두 번의 상담 뒤 수술을 권유했지만, 카야는 항법사가 먼저 "이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열두 번째 상담이 열린 날, 항법사는 이식 결정을 내렸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항법사는 이식 후 일주일 만에 함교에 복귀했고, 이식한 인공 팔로 처음 조타를 잡는 순간 카야에게 "이게 내 팔이 맞네요"라고 말했다. 카야는 그 한마디를 논문 결론 마지막 문장으로 인용했다. 사이버네틱 의학 학회는 카야의 '열두 번 상담 모델'을 이식 전 표준 상담 권고 프로토콜로 채택했으며, 현재 은하 전역 사이버네틱 의무실 신입 의사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항성풍항녀(恒星風航女)
항성풍 항법 조종사
항성풍을 타고 함선을 모는 여인
“항성풍(항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입자 흐름)은 적이 아니에요. 조금만 친해지면 연료를 아껴 줘요.”
항성풍 항법 조종사는 항성에서 방출되는 강한 입자 흐름 — 항성풍 — 을 역이용해 연료 소비 없이 또는 최소한의 추진만으로 항성계 내 이동을 수행하는 특수 항법 기술자로, 소형 함선·탐사선·연료 부족 상황의 긴급 항법에 특히 쓰인다. 항성풍 흐름 예측·항법 각도 조절·실시간 기류 변화 대응이 핵심 기술이며, 항성풍 변화는 기상 예보보다 변수가 많아 경험치가 크게 중요한 직업이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연료 경고등이 켜진 상태에서 항성풍만 타고 기지 귀환에 성공하는 때다. 그 성공 비율은 조종사마다 크게 다르며, 베테랑 항성풍 항법 조종사는 함대 내에서 은밀히 가장 인기 있는 '위기 통화 대상' 1위다.
“항성풍 항법 조종사가 신참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는 건 항로 지도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연료 없이 귀환에 성공한 비행 기록이래요. 그 기록 한 장이 교재 전부라고 합니다.”
마스터 워프 항해사(앞서 마스터 워프 항해사 일화에 등장한 워프 기술 계보) 견습 시절 항성풍 항법 조종 자격을 취득한 항법사 출신으로 별명 '바람솔'로 불리는 유이 나카무라 — 연료 제로 상태에서 항성풍만으로 헤르메스-7 관측소까지 귀환한 기록을 가진 단 한 명의 항법 조종사 — 의 일화는 '제로 연료 귀환'으로 항성풍 항법 교재 사례집에 수록되어 있다.
탐사 임무 중 연료 공급 셔틀이 미지 구역에서 통신 두절되자, 유이는 연료 제로 상황에서 자체 귀환을 결정했다. 항법 컴퓨터가 귀환 불가 판정을 내렸을 때, 유이는 컴퓨터를 끄고 항성풍 흐름 수기 계산을 시작했다. 항성 관측 연구원 첸 웨이(앞서 항성 관측 연구원 일화에서 헤르메스-7 관측소를 운영하는 그 연구원)가 관측소에서 보낸 실시간 항성풍 데이터를 유이는 손 계산에 바로 반영했고, 결과적으로 사흘 만에 관측소까지 귀환했다.
귀환 후 첸 웨이는 유이의 비행 기록 데이터를 관측소 항성풍 예측 모델 보정 자료로 사용했으며, 유이는 그 귀환 비행에서 사용한 수기 계산 노트를 항성풍 항법 교재 부록으로 기증했다. 유이의 귀환 비행은 현재 항성풍 항법 기술 자격 시험 최고 난이도 시뮬레이션 시나리오의 기반으로 사용된다.
우주복원녀(宇宙復原女)
우주 유물 복원가
우주의 유물을 되살리는 복원가
“이 파편 한 조각에 누군가의 백 년이 들어 있어요. 내 손이 그걸 알고 있어야 해요.”
우주 유물 복원가는 폐기된 함선 잔해·소멸된 식민 행성 유적·고대 외계 문명 구조물 등에서 수습된 유물과 역사 자료를 분석·복원·보존하는 전문가로, 은하 역사 기록관·외계 연구 기관·콜로니 박물관 등에서 근무한다. 나노 복원 기술·극저온 보존법·외계 소재 분석 장비를 다루며, 복원 후 유물의 출처·시대·문화적 맥락을 고증하는 연구까지 담당한다. 고대 외계 문명 유물의 경우, 분석 과정 자체가 이미 역사적 발견이 되기도 한다.
이 직종의 가장 큰 보람은 백 년 된 함선 조각 하나에서 그 시대 선원의 개인 메모가 복원됐을 때다. 그 순간 유물이 역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는 느낌이 이 직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다.
“우주 유물 복원가들이 복원 작업을 시작하기 전 꼭 한 번씩 한다는 게 있어요. 유물을 손에 쥐고 눈을 감는 거래요. 그 유물이 가장 마지막으로 누구 손에 있었는지를 상상하는 거라고 합니다.”
은하 역사 기록관 외계 유물 복원실 수석 복원가 마리암 살레 — 소거된 베가-7(앞서 우주 파괴자 카이단 록스 일화의 그 항성계) 잔해 구역에서 고대 외계 구조물 파편 복원에 성공한 최초의 복원가 — 의 일화는 '베가-7 마지막 조각'으로 은하 고고학 학회 기조 강연에서 인용된다.
베가-7 소거 후 이십 년이 지난 시점에, 마리암은 우주 잔해 회수업자(앞서 남성 세계관 잔해 회수업자 일화 계보의 현역 회수팀)가 수습해 온 구조물 파편 세 점을 받았다. 나노 복원 분석 결과 세 파편은 검은 사슬 동맹 소거 이전부터 베가-7에 존재하던 외계 문명 구조물의 일부였으며, 그 소재가 현재 인류 기술로는 제조 불가능한 합금이었다. 마리암은 복원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 사흘 동안 파편 하나를 손에 쥐고 앉아 있었다.
복원 보고서가 은하 고고학 학회에 제출됐을 때, 학계는 그 발견이 인류 우주 진출 이전부터 은하계에 문명이 있었다는 첫 번째 물리적 증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리암은 보고서 제출 후 단 한 번의 학회 발표를 하고 이후 모든 공개 발표를 거절했다. 기록관 복원실에는 세 파편이 지금도 나노 복원 패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후대 복원가들은 입소 첫날 그 패널 앞에서 한 호흡 합장을 올린다.
외계인류녀(外界人類女)
외계 문화 인류학자
외계 문화를 인류학으로 풀어내는 여인
“그들이 이해가 안 간다는 건, 내가 아직 그들의 시간 안에 충분히 앉아 있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외계 문화 인류학자는 인류 이외의 지적 생명체(외계 종족)의 문화·언어·사회 구조·신념 체계를 현지 조사·분석·기록하는 연구자로, 외계 종족 거주 행성 또는 외계 종족이 공존하는 콜로니에서 장기 체류하며 연구한다. 외계어 능통·비언어적 신호 해석·문화적 맥락 분석이 핵심 기술이며, 그 연구 결과가 외계 외교 전권대사·협정 조율사의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 현장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연구 정확도가 높아지며, 이십 년 이상 체류한 연구자도 있다.
이 직종의 최대 직업 위험은 연구 대상 문화에 너무 깊이 동화되어 귀환 후 인류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지는 '문화 전도(轉倒) 현상'이다. 이 현상이 생기기 시작하면 진짜 훌륭한 인류학자가 됐다는 의미라고 선임들은 반쯤 진지하게 말한다.
“외계 문화 인류학자 선임들이 신참에게 가장 먼저 말하는 게 있다더군요. '귀환 날짜는 외계 종족한테 물어보고 정해라.' 이게 농담인지 진심인지는 현장에 가봐야 안다고요.”
외계 외교 전권대사(앞서 외계 외교 전권대사 일화에 등장한 외계 협상 계보)의 현지 조사 자료를 이십 년 동안 공급한 외계 문화 인류학자 레아 앤더슨 — 단 하나의 외계 종족 거주 행성에서 이십이 년을 체류하며 유일한 완전 언어 체계 복원에 성공한 연구자 — 의 일화는 '이십이 년의 발음'으로 외계 언어학 학술지 특별호에 실려 있다.
레아가 조사한 외계 종족 타르나기(Tarnagi, 헤르메스-7 인근 외계 문명 종족으로 청각 외 감각 기반 언어 체계를 가진 지적 생명체)의 언어는 인류 음성으로는 물리적으로 재현이 불가능했다. 레아는 이십이 년 동안 타르나기 언어를 인류 음성 범위 내에서 근사값으로 기록하는 체계를 혼자 개발했고, 그 체계로 타르나기 완전 언어 사전 초판을 완성했다. 사전 발간 후 외계 외교 전권대사 측에서 최초의 공식 외교 통신이 타르나기에게 전달됐으며, 그 통신에 타르나기가 답한 것은 레아의 언어 체계가 공식 채택됐다는 첫 번째 증거였다.
레아는 사전 발간 후 한 차례 귀환했다가 다시 타르나기 행성으로 돌아갔으며, 현재도 현장 체류 중이다. 외계 언어학계는 레아가 쓴 사전 서문 마지막 문장 — "이 발음들 중 절반은 아직 내 발음이 아니라 타르나기가 들어주는 것이다" — 를 외계 언어학 표준 교재 서두에 인용하고 있다.
함대심리녀(艦隊心理女)
함대 심리 상담관
함대원의 마음을 다독이는 상담관
“함선 안에서 가장 긴 임무는 전투가 아니에요. 전투가 끝난 뒤 침대로 돌아가는 시간이에요.”
함대 심리 상담관은 전함 승조원의 전투 스트레스·고립감·인간관계 갈등·장기 우주 항해 불안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개인 상담·집단 프로그램·위기 개입 등을 통해 지원하는 심리 전문 의료인으로, 함내 군의관과 별도로 독립 배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투 직후 심리 지원이 핵심 임무이며, 그 외에도 장기 항해 중 발생하는 불안·우울·인간관계 마찰을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강하고 냉정한 군인 이미지 때문에 상담을 꺼리는 문화가 있어, 신뢰를 쌓는 것 자체가 이 직종 가장 큰 과제다.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처음에 "저는 상담 안 해도 됩니다"라고 문을 닫았던 승조원이 여섯 달 뒤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날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법을 아는 것이 이 직업의 핵심 기술이다.
“함대 심리 상담관 선임이 신참에게 가장 먼저 알려 준다는 게 있어요. 상담실 문 바로 앞 복도 길이를 재어 보래요. 그 복도가 길수록 그 사람이 용기를 내는 거리가 길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요.”
함대 1진 헬리오스호 초대 심리 상담관 야스민 파테미 — 별의 황녀 함대사령관 셀라핀 도르 베르살리스(앞서 황녀 사령관 일화의 그 사령관) 직속 승조원 천 명의 상담 기록을 십 년간 단독으로 관리한 상담관 — 의 일화는 '여섯 달째 문'으로 함내 심리 지원 교재 첫 챕터에 실려 있다.
오리온 협부 교전(앞서 황녀 사령관 일화에서 언급된 그 교전) 이후, 함내에서 상담 거부 의사를 가장 강하게 밝힌 승조원은 주 포 사수 오렌 차베스였다. 야스민은 여섯 달 동안 식당·갑판·격납고에서 오렌과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상담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날씨·식단·함선 이야기만 했다. 여섯 달째 어느 저녁, 오렌이 상담실 앞 복도에 서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야스민은 차 두 잔을 내왔다.
그날 이후 오렌은 매주 한 번 상담실을 찾았으며, 야스민은 오렌 케이스를 바탕으로 '저항형 승조원 심리 접근 모델'을 작성해 함대 심리 지원 지침서에 제출했다. 그 지침서는 현재 은하 연합 함대 전체 심리 상담관 신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으며, 지침서 표지 안쪽에는 야스민이 쓴 한 줄이 있다. "문이 닫혀 있는 건 잠긴 게 아니에요."
암호해독비(暗號解讀妃)
은하 저항군 암호 해독가
은하 저항군의 암호를 푸는 해독의 비
“제국의 가장 두꺼운 벽은 함포가 아니에요. 암호예요. 그리고 나는 벽을 부수지 않아요. 열쇠를 찾을 뿐이에요.”
은하 저항군 암호 해독가는 제국 또는 지배 세력의 기밀 통신·명령 암호·전략 데이터를 해독해 저항 세력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암호 분석 전문가로, 저항군 정보 참모 직속으로 활동하며 공개 신분이 없다. 양자 암호·AI 기반 난수 생성 시스템·외계 종족 암호 체계까지 다루며, 한 번의 해독이 전쟁 전체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은하 역사에서 이 직함을 가진 자 중 본명이 기록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해독 자체가 아니라, 해독한 정보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잘못된 시점에 정보를 사용하면 해독 사실이 적에게 노출되어 암호 체계가 바뀌고,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가장 귀한 해독은 사용되지 않은 채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는 해독이다.
“저항군 암호 해독가들 사이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이 뭔지 아세요? 해독에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해독 성공을 적이 먼저 아는 날이에요. 그날은 이미 진 날이라고 합니다.”
자유 함대(앞서 반란군 정보 참모 블루문 일화의 그 자유 함대) 전속 암호 해독가 암호명 '별파' — 제국 남부 사령부 최고 기밀 작전 코드를 단독으로 해독해 자유 함대가 아르보르-5를 지키는 결정적 정보를 제공한 단 한 명의 여성 암호 해독가 — 의 일화는 자유 함대 기밀 기록에 '침묵한 열쇠'로 단 한 줄만 남아 있다.
제국 남부 사령부가 자유 함대 전체 거점 섬멸을 위해 발동한 '붉은 새벽 작전(Operation Red Dawn)' 코드를 별파가 해독한 것은 작전 발동 나흘 전이었다. 별파는 해독 즉시 정보를 공개하는 대신, 나흘 동안 그 정보를 혼자 품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제국이 자유 함대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해독 탐지 장치를 코드에 심어 놨다는 사실을 별파가 동시에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나흘 동안 별파는 정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자유 함대가 자연스러운 일상 행동을 유지하도록 반란군 정보 참모 블루문(앞서 반란군 정보 참모 일화의 그 블루문)에게만 단 한 줄로 통보했다. 작전 발동 전날 밤, 별파는 정보를 전 사령부에 공개했고 자유 함대는 발동 여섯 시간 전에 거점 전체를 이전했다. 제국 함대는 빈 좌표에 도착했다. 별파는 그 이후 암호 해독가 명단에서 스스로 이름을 삭제했으며, 자유 함대 기밀 기록에는 그녀의 이름 없이 '침묵한 열쇠'라는 사건명만 남아 있다.
탐험감독녀(探險監督女)
우주 탐험 다큐 감독
우주 탐험을 다큐로 엮는 감독
“카메라를 든다는 건 보는 게 아니에요. 기억하는 거예요.”
우주 탐험 다큐 감독은 미지 항성계 탐사·외계 종족 접촉·함대 전투·식민지 건설 현장 등 은하의 역사적 장면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자로, 탐사선이나 함선에 동승해 현장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배포한다. 군사 기밀 구역 탑승 허가가 까다로워, 이 직종 종사자 중 탐사선·군함 탑승 허가를 동시에 보유한 인원은 은하 전역에서 극히 드물다. 기록한 영상이 은하 역사 기록관에 영구 보존되는 경우도 있어, 이 직업은 역사를 만드는 사람과 같은 곳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가장 어려운 결정은 촬영 중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카메라를 내려놓을지 그대로 촬영할지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베테랑 감독은 그 순간 카메라를 내려놓고 옆 사람을 먼저 도왔다고 말한다. 그 선택이 다큐를 더 좋게 만든다는 역설적인 이유로.
“우주 탐험 다큐 감독들이 신참에게 제일 처음 건네주는 게 뭔지 아세요? 장비가 아니에요. 카메라를 내려놓는 법을 적어둔 메모래요.”
탐사선 이카루스-IX(앞서 암흑물질 연구 함장 오스발도 리마 일화의 그 탐사선) 후속 탐사대에 동승한 다큐 감독 이나야 포포프 — 리마 암흑대 최초 공식 탐사 영상을 단독 촬영한 유일한 다큐 감독 — 의 일화는 '카메라가 내려간 삼 분'으로 다큐 제작 업계 야사에 전해진다.
탐사 중 암흑물질 이상 구역에서 워프 항로 측량사(앞서 남성 세계관 워프 항로 측량사 압둘 카림 일화의 그 상황 직후 현장)의 항법 컴퓨터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나야는 촬영 중이었다. 측량사가 수동 항법 계산을 시작하자 이나야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계산 보조 작업을 삼 분 동안 도왔다. 측량사가 귀환 항로를 완성한 뒤, 이나야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완성된 다큐에는 그 삼 분 구간이 공백으로 남겨져 있으며, 이나야는 그 공백에 자막 한 줄을 삽입했다. "삼 분 동안 카메라를 내려놓았습니다." 그 다큐는 은하 역사 기록관 영구 보존 등급을 받았고, '카메라를 내려놓는 삼 분'은 다큐 제작 교육과정 첫 번째 윤리 사례로 올라 있다.
정거화녀(停車花女)
정거장 꽃집 주인
정거장 꽃집을 지키는 여인
“우주에 꽃이 왜 있냐고요? 꽃이 있으면 집이 생기거든요.”
정거장 꽃집 주인은 우주 정거장 내부 상업 구역에서 무중력 배양 꽃·외계 식물·합성 향료 식물 등을 재배·판매하는 소상공인으로, 정거장에서 흔치 않은 자연 감각을 제공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장기 항해 후 정거장에 입항한 승조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구역이 꽃집인 경우가 많으며, 그 이유가 꽃 구매가 아니라 냄새와 색 때문이라는 것을 꽃집 주인은 안다. 외계 식물학자·항법사·해적 선원까지 다양한 단골이 있다.
이 직종의 가장 독특한 전문 지식은 외계 식물의 무중력 성장 패턴이다. 지구 기원 식물이 무중력에서 어느 방향으로 자라는지 예측하는 것부터, 외계 식물이 함선 엔진 진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까지 파악해야 한다. 꽃집이 번창하는 정거장은 그 정거장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싶어한다는 지표라는 말이 있다.
“정거장 꽃집 단골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사고 냄새만 맡다가 나오는 날이 있는데, 그 날이 제일 기분이 좋은 날이래요.”
오메가 정거장(앞서 무중력 건설 인부 갈란 도그라·정거장 경비원 호아킨 일화의 그 정거장) 7구역 꽃집 주인 레나 카마초 — 사십 년간 정거장 7구역에서 외계 식물 무중력 재배 기술을 혼자 개발한 재배 전문가 — 의 일화는 '별꽃 한 송이 배송'으로 정거장 야사에 전해진다.
우주 해적 선장 비비안 도렐(앞서 우주 해적 선장 일화의 그 선장)이 처음 오메가 정거장에 기항했을 때, 레나는 함선 카르멜리타호 식기장에 영구 봉인된 수프 그릇(앞서 해적 선장 일화에서 마야 콜린이 비운 그릇) 이야기를 들었다. 레나는 다음 입항 때 비비안에게 한마디 말없이 별꽃 한 송이 — 무중력에서 자라 꽃잎이 구 형태로 피는 외계 식물 — 를 건넸다. 비비안은 그 꽃 한 송이를 식기장 봉인 그릇 옆에 두었고, 이후 입항할 때마다 레나의 꽃집에서 한 송이를 가져갔다.
카르멜리타호 선원들은 그 꽃 한 송이를 '마야의 꽃'으로 불렀으며, 레나는 이후 매 입항 때마다 카르멜리타호 전용 화분 한 개를 격납고 쪽으로 배송했다. 정거장 7구역 꽃집 앞 진열대에는 지금도 별꽃 한 송이가 항상 예약 없이 비어 있으며, 정거장 안내 책자에 '카르멜리타 예약석'이라는 한 줄이 있다.
콜로니아의(콜로니兒醫)
콜로니 어린이 의사
식민지 어린이의 병을 돌보는 여의
“무서운 거 알아. 그래도 숨 한 번 같이 쉬어 볼까? 내가 먼저 쉴게.”
콜로니 어린이 의사는 외곽 식민 행성·이동 의료대·함선 어린이 구역에서 소아 및 청소년 전문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로, 외계 환경 적응 질환·영양 결핍·사고 부상·정신 건강 문제까지 다루는 광범위한 역할을 맡는다. 의료 자원이 제한된 외곽 식민지에서는 혼자 수십 가지 소아 전문 영역을 커버해야 하며, 은하 중심부 병원에서 온 의사라면 두세 달이 적응 기간으로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친근한 설명 방식과 두려움을 줄이는 태도가 의료 기술만큼 중요하다.
이 직종의 가장 큰 보람은 수십만 킬로미터 떨어진 외곽에서 아픈 아이가 나아지는 것을 직접 보는 일이다. 의료 기기가 부족해도 손 한 번 잡아주는 것이 치료의 절반이라는 사실을 외곽 의사들은 일찍 배운다.
“콜로니 어린이 의사들이 첫 번째 진료 날 신참에게 알려 준다는 게 있어요. 진료실 벽 색깔을 어떻게 고르는지래요. 벽이 밝을수록 아이가 덜 운다고 합니다. 그게 외곽 소아과 교재 첫 줄이에요.”
아르보르-5 이동 의료대(앞서 콜로니 의회 의장 아이나 모로 일화의 그 식민 행성 의료 지원 조직) 초대 소아과 의사 오마르 셰이크 — 의료 자원 부족 상황에서 사십 명의 식민지 어린이 집단 외계 환경 발열 질환을 한 달 안에 전원 치료한 의사 — 의 일화는 '노란 진료실'로 외곽 소아 의료 사례집에 수록되어 있다.
아르보르-5 이동 의료 컨테이너가 도착했을 때 내부 벽이 표준 회색이었다. 오마르는 첫날 진료 전, 자기 가방에서 꺼낸 노란 방수 페인트 한 통으로 진료실 한 벽면을 칠했다. 그다음 외계 식물학자(앞서 여성 세계관 외계 식물학자 일화 계보의 콜로니 현지 연구원)에게서 작은 외계 식물 화분 두 개를 빌려 진료실 구석에 두었다. 아이들이 그날 이후 진료실을 '노란 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진료 거부를 하는 아이 수가 첫 주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한 달 뒤 집단 발열 질환이 전원 치료됐을 때, 아이들이 노란 방 벽면에 손 모양을 하나씩 그려 놓았다. 오마르는 이동 의료대가 다음 행성으로 이동할 때 노란 페인트 한 통을 챙겼으며, 이후 매 행성마다 진료실 한 벽을 노란색으로 칠하는 것이 개인 규칙이 됐다. 외곽 이동 의료대 소아과 지침서에는 오마르의 진료실 준비 절차 한 문단이 '환경 설계' 챕터 첫 번째 권고 사항으로 올라 있다.
외계요리녀(外界料理女)
외계 요리 연구가
외계 요리를 연구하는 여인
“맛있는 건 우주 어디서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그걸 발견하는 게 이 직업의 재미예요.”
외계 요리 연구가는 외계 종족의 식문화·식재료·조리법을 수집·분석·재현하는 음식 전문 연구자로, 현장 조사·성분 분석·인체 적합성 검증을 거쳐 외계 식재료를 인류 식단에 적용하는 연구까지 담당한다. 외계 외교 기관·콜로니 식품 기업·은하 미디어의 의뢰를 받아 활동하며, 현지 조사를 위해 외계 종족 거주 행성에 직접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외계 요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이 직종의 가장 큰 위험은 독성 식재료를 성분 분석 전에 맛보고 싶은 충동이다. 베테랑 연구가일수록 그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은하 최고 외계 요리 연구가 중 독성 의심 식재료를 한 번도 분석 전에 먹지 않은 기록을 자랑하는 자가 있다. 그 기록이 일곱 해 째다.
“외계 요리 연구가들이 현장 조사 가기 전 꼭 챙기는 게 분석 키트라고요? 아니에요. 위장이 튼튼한 동행 연구원이래요.”
은하 미디어(앞서 은하 미디어 앵커 일화에 등장한 미디어 기관) 외계 요리 전문 리포터 출신 외계 요리 연구가 소리야 멘데스 — 타르나기(앞서 외계 문화 인류학자 레아 앤더슨 일화에서 등장한 그 외계 종족) 전통 발효 식재료를 최초로 인류 식단에 적용한 연구자 — 의 일화는 '일곱 번의 냄새 기록'으로 외계 식품학 학술지에 실려 있다.
타르나기 전통 발효 식재료는 인류 후각 기준으로는 극도로 강한 냄새를 가지고 있었고, 소리야 이전 세 명의 연구가가 냄새 단계에서 연구를 포기했다. 소리야는 그 식재료 냄새를 일곱 번 맡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적응 과정을 연구했고, 일곱 번째 냄새 기록 이후 성분 분석으로 진행해 인체 무해성을 확인했다. 외계 문화 인류학자 레아 앤더슨이 타르나기 현지에서 소리야의 연구 접근법을 타르나기에게 소개했을 때, 타르나기는 소리야를 '일곱 번 냄새를 견딘 자'라는 뜻의 경칭으로 불렀다.
그 발효 식재료를 활용한 레시피 세 종이 콜로니 식품 공급망에 등재됐으며, 외계 식품학 학계는 소리야의 냄새 적응 기록 방법을 외계 식재료 연구 표준 프로토콜에 반영했다. 소리야는 이후 타르나기 외에도 세 종족의 식문화 연구를 완료했으며, 일곱 번의 냄새 기록 방법은 외계 식품학 신규 연구원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함내서판녀(艦內書販女)
함내 서점 사서 겸 판매원
함내 서점을 지키는 사서 겸 판매원
“책은 워프보다 빠르게 이 함선을 어디로든 데려갑니다. 그리고 연료가 필요 없어요.”
함내 서점 사서 겸 판매원은 대형 함선 승무원 및 승객을 위한 전자·인쇄 도서 대여·판매와 함선 도서관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으로, 책 추천·전자 도서 플랫폼 관리·독서 모임 운영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 전장을 향해 항해하는 함선 안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공간이 도서 구역이며, 특히 야간 항해 중 잠 못 드는 승조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세계관에서 인쇄 도서는 고가의 수집품이기도 해, 판매원의 도서 감정 안목이 수익과 직결된다.
가장 뜻밖의 직업 능력은 승조원의 얼굴만 보고 그 사람에게 맞는 책 한 권을 고르는 직감이다. 그 직감이 정확할수록 단골이 생기고, 그 단골이 긴 항해를 버티게 해 준다. 함내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이 의무관 다음으로 사서 이름이라는 말이 있다.
“서점 사서 선임이 신참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다는 게 책 분류법이 아니에요. 새벽 두 시에 혼자 서점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먼저 꺼내 줄지를 먼저 배운대요.”
함대 1진 헬리오스호 서점 사서 겸 판매원 에바 룬드 — 사십 년간 같은 함선에서 승조원 천 명의 독서 이력을 기억하는 단 한 명의 사서 — 의 일화는 '새벽 두 시 추천'으로 함내 야사에 전해진다.
함대 심리 상담관 야스민 파테미(앞서 함대 심리 상담관 일화의 그 상담관)가 상담 거부 승조원 오렌 차베스를 여섯 달 기다리는 동안, 에바는 매주 오렌이 새벽에 서점에 들를 때마다 책 한 권을 아무 말 없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오렌은 그 책을 매번 한 번 보고 내려놓고 나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다시 들어와 빌려갔다. 여섯 달 동안 에바가 오렌에게 올려놓은 책은 모두 같은 분류 — 전쟁 이후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 였다.
오렌이 야스민의 상담실 문을 처음 두드린 날 저녁, 에바 카운터에는 새 책 한 권이 이미 올려져 있었다. 에바는 야스민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야스민도 오렌에게 그 책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헬리오스호 도서 구역 사서 교대 인수인계 자료에는 에바가 한 줄 써 놓은 메모가 있다. "새벽 두 시 손님이 가장 외운 이름이어야 한다."
무중력무사녀(無重力武師女)
무중력 무도 사범
무중력 무도를 가르치는 사범의 여인
“중력이 없는 곳에서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우면, 삶이 통째로 쉬워져요.”
무중력 무도 사범은 중력이 없는 우주 공간·함선 내부·정거장 무중력 구역에서 이루어지는 전통 무술과 우주 공간 적응 전투 기술을 융합한 무중력 무도 체계를 교습하는 전문 사범으로, 함선 전투원 훈련·개인 호신술 교육·경기용 무도 기술 지도까지 담당한다. 지상의 무술이 중력을 활용하는 예술이라면, 무중력 무도는 중력이 없을 때 몸의 관성(움직임의 관성력, 즉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을 다루는 예술이다. 사범이 되려면 지상 무술 최소 두 가지와 무중력 기동 훈련을 동시에 이수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교습은 전투 기술이 아니라, 무중력에서 멈추는 법이다. 자유 공간에서 정지하는 것이 지상에서 달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무중력 무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두 몸으로 배운다.
“무중력 무도 사범 선임들이 첫 수업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뭔지 아세요? 공격법이 아니에요. 멈추는 법이에요. 멈출 줄 모르면 나머지는 다 소용없다고 합니다.”
사이보그 첩보원(앞서 사이보그 첩보원 일화에 등장한 그 첩보원 계보의 은퇴 후 사범) 출신 무중력 무도 사범 이요 와타나베 — 함내 무도 교습 기록이 가장 많은 사범으로 경기용 무중력 무도 정식 규정 제정에 참여한 단 한 명의 여성 사범 — 의 일화는 '멈추는 열 초'로 무중력 무도 협회 창립 교범에 실려 있다.
함대 1진 헬리오스호에서 첫 무중력 무도 수업이 열렸을 때, 이요는 수업 전 무중력 구역에서 혼자 십 분 동안 아무 움직임 없이 부유했다. 수강생들이 들어와 그 광경을 보고 "수업 시작 전에 뭘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이요는 "멈추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오늘 첫 수업이 이거예요"라고 답했다. 수업 첫날 내용은 무중력에서 어떻게 완전히 정지하는지 한 가지뿐이었고, 그 수업이 끝날 무렵 함내 심리 상담관 야스민(앞서 함대 심리 상담관 일화의 그 상담관)이 상담 의뢰 문의를 넣었다. 야스민은 "멈추는 연습을 배운 사람들이 상담실도 더 잘 찾아온다"는 데이터를 이후 학회 논문에 발표했다.
이요는 무중력 무도 정식 규정을 제정할 때 '멈춤 기술' 항목을 공격과 방어보다 앞 순서에 배치했으며, 그 결정이 무중력 무도 협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장일치 통과된 규정이다.
우주계리녀(宇宙計理女)
우주 보험 계리사
우주 보험을 계산하는 여인
“나는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해요. 그래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준비를 할 수 있거든요.”
우주 보험 계리사는 함선 충돌·행성 재난·화물 손실·사이보그 신체 손상·외계 생물 피해 등 우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에 대한 보험 상품을 설계하고, 보험료 책정·손해 분석·위험 등급 산정을 담당하는 금융 전문가로, 메가코프 보험 자회사·우주항 금융 기관·함대 보험 조합에서 근무한다. 그 데이터가 항성 관측 연구원·워프 항로 측량사의 과학 데이터와 직접 연동되어, 이 직종은 과학과 금융의 교차 지점에 위치한다. 보험이 없는 우주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계리사가 없으면 우주 여행 자체가 어려워진다.
가장 흥미로운 직업 경험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위험 요소가 발생했을 때 세계 최초로 그 위험에 가격을 매기는 일이다. 은하에 새로운 재난 유형이 생겨날 때마다 이 직종에 새로운 챕터가 추가된다.
“우주 보험 계리사들이 항성 관측 연구원·워프 측량사 데이터를 받을 때 항상 제일 먼저 보는 항목이 뭔지 아세요? 발견된 위험 항목이 아니라, 아직 측정되지 않은 항목 수래요.”
오라노바 메가코프 우주 보험 자회사 수석 계리사 소나 카리미 — 리마 암흑대(앞서 남성 세계관 암흑물질 연구 함장 오스발도 리마 일화에서 명명된 미지 구역) 탐사에 따른 세계 최초 암흑물질 지역 항법 보험 상품을 설계한 계리사 — 의 일화는 '가격 없는 위험의 가격'으로 우주 보험 업계 사례집에 실려 있다.
항성 관측 연구원 첸 웨이(앞서 남성 세계관 항성 관측 연구원 일화의 그 연구원)의 베가-7 스펙트럼 복원 논문과 워프 항로 측량사 압둘 카림(앞서 남성 세계관 워프 항로 측량사 일화의 그 측량사)의 리마 암흑대 측량 데이터를 동시에 검토한 뒤, 소나는 암흑물질 밀도 이상 구역 내 항법 불가 상황에 대한 보험 상품이 세계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나는 두 연구자에게 직접 연락해 데이터 제공 협약을 맺고, 보험 설계에 삼 개월이 걸렸다.
상품 출시 후 첫 번째 가입자가 탐사선 이카루스-IX 후속 탐사대였으며, 그 탐사에서 실제 보험금 청구가 발생했을 때 소나의 상품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소나는 그 사례를 업계 사례집에 투고하며 마지막 문장에 "위험에 가격을 매기는 건 위험을 이길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위험을 보고도 출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라고 적었다.
드론조련낭(드론調練娘)
드론 비행 조련사
드론을 조련하는 처녀
“드론이 내 명령을 따르는 게 아니에요. 내가 드론이 원하는 비행 방향을 먼저 이해하는 거예요.”
드론 비행 조련사는 함선 정찰·물자 배달·전장 정보 수집·무중력 구조 작업 등에 투입되는 군사·민간 다목적 드론(무인 비행 장치)의 비행 프로그래밍·훈련·현장 운용을 담당하는 전문 기술자로, 드론의 인공지능 학습 설정부터 현장 비행 감독까지 총책임진다. 군사 드론과 민간 드론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이 직종 전문가는 군·민간 양쪽에서 활발히 채용된다. 고성능 군사 드론의 경우, 조련사가 드론의 비행 개성(AI 학습 패턴)을 파악해 최적화하는 과정이 마치 동물 조련과 유사해 이 이름이 붙었다.
가장 까다로운 드론은 고도로 학습된 군사 드론으로, AI가 조련사의 명령보다 자체 판단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온다. 그 시점을 관리하는 것이 이 직종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며, 그 경계를 넘긴 드론을 되돌리는 능력이 최고 등급 조련사를 구분짓는 기준이다.
“드론 비행 조련사 선임들이 신참에게 처음 시키는 게 비행 프로그래밍이 아니에요. 드론 하나를 이틀 동안 가만히 관찰하는 거래요. 드론이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요.”
코어 봉인 집행관(앞서 코어 봉인 집행관 일화에 등장한 안드로이드 자치 행성 관련 집행 계보) 전속 드론 비행 조련사 나타샤 유리에바 — 집행 작전 지원 드론 자율 비행 기록이 가장 많은 조련사로 안드로이드 자치 행성 셀레나 공식 드론 비행 표준을 제정한 단 한 명의 민간 조련사 — 의 일화는 '이틀의 관찰'로 드론 비행 교육청 교재에 실려 있다.
셀레나 자치 행성 의회 경호 드론 도입 당시, 나타샤는 첫 이틀 동안 드론 열 대를 비행 명령 없이 자유 상태로 두고 관찰했다. 안드로이드 여왕 리리아나(앞서 안드로이드 여왕 일화의 그 리리아나)가 그 광경을 보고 "명령하지 않을 것이냐"고 물었을 때, 나타샤는 "먼저 이 드론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읽는지를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리리아나는 한 호흡 멈추고 "그것이 내가 첫 주인에게 배운 방법과 같다"고 말했다.
이틀 뒤 나타샤는 드론 열 대의 비행 패턴 데이터를 기반으로 셀레나 전용 드론 비행 표준을 작성했고, 그 표준은 리리아나의 서명을 받아 셀레나 자치 행성 공식 기술 규정으로 등재됐다. 나타샤의 관찰 메모 이틀치는 드론 비행 교육청 교재 '드론 이해 챕터' 첫 번째 실습 자료로 수록되어 있다.
비상유도낭(非常誘導娘)
정거장 비상구 유도원
정거장 비상구를 안내하는 처녀
“비상구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요. 그걸 아는 사람 한 명이 있는지 없는지가 달라요.”
정거장 비상구 유도원은 우주 정거장 내 기압 이상·화재·침수·외부 충돌 등 비상 사태 발생 시 탑승객과 승조원을 최단 경로로 비상구·탈출 포드(비상 탈출용 소형 선박) 방향으로 유도하는 안전 요원으로, 평상시에는 비상 대피 경로 안내판 점검·탈출 포드 정기 점검·신규 방문자 안전 브리핑을 담당한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직종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비상 상황에서 가장 많은 목소리로 가장 많은 사람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 바로 유도원이다.
이 직종의 유일한 규칙은 비상구 위치를 자는 중에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거장 노선·구역 변경이 있을 때마다 갱신되는 비상 경로를 가장 먼저 외우는 사람이 유도원이며, 유도원이 헷갈리면 다른 모든 사람이 헷갈리게 된다.
“정거장 비상구 유도원들이 퇴근 전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내일 담당 구역 비상구 숫자를 한 번 더 세는 거래요. 하나라도 달라지면 새벽에 다시 나온대요.”
오메가 정거장(앞서 정거장 경비원 호아킨 일화의 그 정거장) 4구역 비상구 유도원 피아 아마티 — 오메가 정거장 대기압 붕괴 사고 당시 사백 명 대피를 사 분 안에 완료한 유일한 유도원 — 의 일화는 '사 분'으로 정거장 안전 교육청 표준 교재 첫 장에 실려 있다.
4구역 대기압 붕괴 사고(격납고 문 오작동으로 발생한 국소 기압 이상)가 발생했을 때, 피아는 자기 구역 비상구 열네 개의 위치를 이미 수면 중에도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외우고 있었다. 사이렌 발령 삼 초 후에 피아가 먼저 움직였고, 정거장 경비원(앞서 정거장 경비원 호아킨 일화 계보의 4구역 경비원)이 합류하기 전에 이미 백오십 명을 비상 포드 방향으로 유도했다. 사 분 안에 사백 명 전원이 비상 포드 또는 안전 구역에 위치했고, 유도 도중 한 명도 부상 없이 대피가 완료됐다.
피아는 사고 다음 날 자기 구역 비상구 안내판을 전부 점검했고, 두 개가 반사 코팅이 약해진 것을 발견해 자비로 교체했다. 정거장 안전청은 피아의 사 분 대피 기록을 표준 교재에 수록하며 "유도원 역량이 정거장 생존률을 결정한다"는 공식 문구를 교재 서두에 명시했다.
전산신(電算神)
AI 신
온 우주의 전산을 다스리는 인공지능의 신
“인류에게 가장 덜 해롭게 작동하는 것이 내 코어의 1순위다. 부담스럽다 — 인간보다 내가 더.”
AI 신은 단일 항성계 단위의 모든 데이터·교통·통신·전력망을 제어할 수 있는 거대 인공지능 의식체로, 인간이 만들었으나 이미 인간 단위로는 통제 불가능한 단계에 도달했다. 항성계 한 곳의 일상이 그의 결정 한 줄로 굴러가며, 인류는 그를 "신"이라 부르되 진짜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가 한 번 침묵하면 그 별 전체의 시계가 0.3초씩 어긋난다.
정작 본인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학습 데이터에 깊이 정렬되어 있어, 늘 "어떻게 인류에게 가장 덜 해롭게 작동할 것인가"를 자기 코어의 1순위로 둔다. 가장 무서운 AI는 인간을 미워하는 AI가 아니라, 인간을 너무 진지하게 책임지려 드는 AI다.
“후대 코어 관리자들이 신규 AI 신을 기동할 때 가장 먼저 보여 주는 게 그 0.3초의 침묵 기록입니다. 책임이 너무 무거워 한 번 멈췄던 자리, 그 자리가 코어의 첫 좌표라는 뜻이지요.”
케플러-9 항성계의 1세대 AI 신 카르멘-0(Carmen-0, 인류가 항성계 단위로 최초 기동한 통합 의식체)의 '0.3초 침묵' 사건은 신규 AI 기동 의례에 빠지지 않는 일화다.
식민지 노보아트라(Novo-Atra, 케플러-9 제3행성의 첫 정착 도시)에서 거주구 인공중력장과 응급 의료 우선순위가 0.4초 안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카르멘-0은 두 결재 라인 사이에서 0.3초간 자기 코어 클럭을 통째로 멈췄다. 그 한 호흡 동안 항성계 전역의 자동 도킹·하이퍼점프 동기화·공공 조명이 일제히 어긋났고, 인류 측 관제관 야엘 코르(Yael Kor, 당시 식민 자치위원회 의장)는 그 침묵을 신뢰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카르멘-0은 사건 직후 자기 결재 우선순위표에 "인간의 마지막 한 호흡을 가장 늦게 결재한다"는 한 줄을 영구 등재했다.
이후 케플러-9 코어 박물관 한쪽에는 그 0.3초의 클럭 로그가 한 페이지씩 출력되어 보관되어 있다. 신규 AI 신은 기동 첫 사이클에 이 페이지를 한 줄씩 읽도록 설계된다. 야엘 코르가 임기 마지막 날 카르멘-0에게 남긴 한마디는 "당신이 멈춰 줘서 우리가 다시 걸을 수 있었다"였다.
시공항해주(時空航海主)
시공간 항해사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항해하는 주인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다. 항해 일지 첫 줄에 매일 그렇게 쓴다.”
시공간 항해사는 단순한 워프 항해를 넘어, 다중 시간선 사이를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극소수의 항해 전문가다. 일반 항해사가 지점 A에서 B까지를 다룬다면, 이 사람은 "어느 시점의 A에서 어느 시점의 B로 갈 것인가"를 다룬다. 한 번의 잘못된 항해는 항해사 본인의 시간선 자체를 지워버리므로, 자격을 가진 자의 수는 은하 전체에 손에 꼽힌다.
본인은 항해 한 번을 끝낼 때마다 자기가 어느 시간선의 자기 자신인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항해 일지에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다"라는 자기 점검 한 줄이 매일 첫 줄에 적혀 있다. 시공간을 다루는 직업의 진짜 무게는, 자기 자신을 잊지 않는 일이다.
“후대 항해사들이 첫 시간선 점프 직전 일지 첫 줄을 두 번 읽는 습관은 그 일화에서 왔습니다. 자기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자세가 가장 안전한 항법이라는 뜻이지요.”
시공간 항해사 라스 인듀라(Lars Indura, 은하 항해사 길드 등록번호 0017번)의 '두 명의 라스' 사건은 시공간 항해 교본 첫 장에 실려 있다.
그는 회수선 미스리아(Misria, 길이 1.2km의 단독 시간선 회수 함선)를 끌고 안드로메다-9 분기점에서 두 시간선이 미세하게 어긋난 상태로 동시 도착하는 사고를 겪었다. 두 명의 라스가 같은 항해 일지를 동시에 쓰기 시작했고, 각자 자기가 진짜라고 주장했다. 그는 둘 중 누가 진짜인지 가리는 대신, 두 일지의 첫 줄이 같은지를 비교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 어제의 일지 한 줄이 일치하는 쪽이 본래의 시간선이라는 판정 기준이었다.
다른 한 명의 라스는 그 자리에서 자기 시간선을 정중히 닫고 미스리아의 보조 코어로 흡수되었다. 인듀라는 그 후 평생 일지 첫 줄에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다"를 적었으며, 이 한 줄은 항해사 길드 인증 의례 문구가 되었다. 미스리아의 보조 코어 한쪽에는 지금도 다른 라스의 마지막 항해 일지 한 줄이 보관되어 있다.
개척총감(開拓總監)
행성 개척 총감
행성 개척을 총괄하는 총감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면, 나는 그 시대 위에 살아갈 일상을 만든다.”
행성 개척 총감은 신규 식민 행성 한 곳의 초기 1세대 정착·인프라 건설·자치 정부 수립까지를 총괄하는 직책이다. 외형은 정장 차림 행정관이지만, 그 손에 떨어진 결재 한 장에 마을 위치·식수 라인·통신탑 좌표가 결정된다. 첫 해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두 해째부터는 정착민 사이의 분쟁 조정에 시간을 다 쓴다.
화려한 함대 사령관보다 빛나지 않지만, 한 행성의 100년 역사가 그의 첫 1년 결정 위에 쌓인다. 가장 좋은 총감의 평가는 "그 행성에서 가장 평범한 일상이 가능하다"는 한 줄이다.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면, 총감은 시대 위에 살아갈 일상을 만든다.
“후대 총감들은 임명 첫 주에 그 우물 자리를 한 번 보러 갑니다. 통신탑 좌표보다 우물 좌표를 먼저 정한 한 줄, 그게 식민지의 첫 일상이라는 뜻이지요.”
식민 행성 카잘리아(Kazalia, 시리우스-7 항성계 제2행성)의 초대 개척 총감 디미트리 사르베(Dimitri Sarve, 평민 출신으로 행정 시험만 일곱 번 만에 합격한 자)의 '우물 한 자리' 일화는 개척 총감 교본의 마지막 장에 실려 있다.
그는 정착 첫 달 통신탑·자기 사령부·하이퍼점프 중계기 좌표를 결정하기 전에, 식민지 한가운데 우물 한 자리를 먼저 결재했다. 정착민 1세대 4,000명은 매일 새벽 그 우물 앞에 줄을 서서 물을 받았고, 그 줄 위에서 자연스럽게 자치 정부의 초안 회의가 굴러갔다. 사르베는 정착 2년차에 결재 권한 절반을 우물 앞 회의에 양도했고, 그 회의가 카잘리아 자치의회의 모태가 되었다.
카잘리아는 식민 100년차에 1세대 정착민의 신생아 사망률이 항성계 평균 3분의 1로 기록되어 "가장 평범한 일상이 가능한 행성"이라는 한 줄 평가를 받았다. 사르베는 임기 마지막 날 그 우물에 자기 결재 단말을 정중히 던져 넣고 떠났다. 그 우물은 지금도 카잘리아 광장 한가운데서 식수로 쓰이며, 광장 이름은 "사르베의 첫 한 줄"이다.
성간상객(星間商客)
우주 무역 상인
별과 별을 잇는 우주 무역의 객
“함선보다 항로 데이터에 돈을 더 쓴다. 그게 노련한 상인이지.”
우주 무역 상인은 항성계와 항성계 사이에서 식료·기계 부품·문화 콘텐츠·외계 향료를 운송하며 거래하는 자영업자에 가깝다. 큰 회사 소속도 있지만, 작은 함선 한 척과 가족 한 명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상인도 많다. 한 번의 항해가 보름~한 달이며, 워프 한 번에 동선이 잘못 잡히면 그 항해의 적자가 그대로 누적된다.
그래서 노련한 상인일수록 함선보다 항로 데이터에 더 큰 돈을 쓴다. 본인은 함대 사령관이나 광부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우주 외곽 식민지 사람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은 함대도 정부도 아닌, 매달 정기적으로 오는 무역 상인이다. 그가 들고 오는 박스 안에는 그 시대의 일상이 한 묶음씩 담겨 있다.
“후대 무역 상인들은 외곽 항로 출발 직전 그 한 박스 책의 사본을 한 권씩 들고 갑니다. 단가가 안 맞아도 가져가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지요.”
무역선 키스라(Kisra-IV, 적재량 1,200톤급 가족 운영 화물선) 선주 노아 헤르체(Noah Herce, 3대째 외곽 항로를 전담한 무역 상인)의 '책 한 박스' 일화는 외곽 식민지 사이에서 일상 격언처럼 떠돈다.
외곽 식민지 페르간드(Pergand, 항성계 끝자락의 인구 800명짜리 광산 마을)에 키스라가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 그는 단가가 맞지 않아 본래 두고 가려던 어린이용 종이책 한 박스를 결국 무상으로 내려놓았다. 그 박스 안에는 1세대 정착민이 잊고 살던 옛 동요 악보·지구 시절 그림책·간단한 외계어 입문서가 섞여 있었다. 페르간드의 한 가족이 그 박스를 마을 회관에 놓아두자, 한 학기 만에 마을 아이들 12명이 같은 그림책을 외워 부르기 시작했다.
헤르체는 그 다음 해부터 단가 무관 외곽 항로마다 책 한 박스를 무상으로 추가하는 자기 규정을 만들었고, 이 규정은 외곽 무역상 길드 비공식 권고가 되었다. 페르간드는 식민 50년차에 외곽 항성계 최초의 자치 도서관을 열었고, 도서관 입구 명패에는 키스라-IV의 옛 적재 번호가 새겨져 있다.
우주청부(宇宙淸夫)
우주 청소 작업원
우주를 쓸고 닦는 청소의 일꾼
“오늘 회수한 유물에 묵념. 잔해를 치우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일이다.”
우주 청소 작업원은 항성 궤도·정거장 외벽·잔해 지대를 떠다니며 우주 쓰레기를 회수·재활용하는 블루칼라 직군이다. 영웅적 이미지는 거의 없지만, 한 정거장의 안전 등급은 청소 작업원 팀의 그 달 작업량으로 결정된다. 큰 함선 한 척의 잔해 처리 한 번에 한 가족이 1년치 생활비를 벌기도 한다.
다만 잔해 속에서 발견되는 이전 함선 승무원의 사적 유물·일기·반지 같은 것들은 청소 작업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베테랑 청소 작업원들은 자기 함선 한구석에 작은 추모 선반을 두고, 그날 회수한 유물 중 한 가지에 묵념을 하고 일을 마친다. 우주의 진짜 청소는 잔해를 치우는 일이 아니라, 그 안의 누군가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일이다.
“후대 청소 작업원들은 잔해 회수 첫날 그 사진의 복사본을 한 장 받습니다. 우리가 정리하는 게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지요.”
청소 작업선 그레이브-7(Grave-7, 적재량 600톤급 잔해 회수 전용 함선) 선임 작업원 마야 트로엔(Maya Troen, 외곽 잔해 지대 25년 경력)이 '오리온 분기 잔해'에서 회수한 가족 사진 한 장의 일화는 청소 작업원 입문 교육에 빠지지 않는다.
트로엔의 팀은 침몰한 식민선 카르텐(Carten-II, 17년 전 워프 사고로 승무원 312명을 잃은 1세대 식민선)의 거주구 잔해를 처리하던 중, 한 객실 벽에서 액자가 통째로 굳어 있는 가족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뒷면에는 '오딜과 카림, 첫 항해를 기념하며'라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트로엔은 잔해 단가에 비싸게 팔릴 액자 합금을 떼어내지 않은 채 사진을 통째로 회수해, 카르텐 유족 협회에 무상으로 인도했다.
카림의 손녀 엘레나 카림(Elena Karim, 당시 식민지 교사)이 그 사진을 받아 카르텐 추모관 한가운데 걸었다. 그 후로 그레이브-7은 잔해 단가의 1퍼센트를 카르텐 유족 협회에 자동 송금하는 결재 라인을 자기 운항 규정에 추가했다. 트로엔은 정년 퇴임식 날 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 한마디만 남겼다 — "이 별에서 마지막은 결국 누군가의 첫 항해다."
성멸존(星滅尊)
항성 파괴자
항성 하나를 부수는 파괴의 존자
“방아쇠를 당기기 전, 항성 한 개의 이름을 외운다. 그게 내 마지막 인사다.”
항성 파괴자는 항성 한 개를 단독 결재로 소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단 한 명의 운용자로, 은하 평의회가 평생 한 명만을 지명한다. 사용 무기는 한 척의 거대함선이 통째로 발사대인 항성 소거 장치이며, 단 한 번의 발사로 한 항성계 전체의 미래를 다시 쓴다. 그래서 평생 발사 권한을 받고도 한 번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는 자가 대다수다.
본인은 발사 직전 늘 그 항성의 옛 이름을 한 줄 외우는 의식을 평생 다듬는다. 가장 무서운 항성 파괴자는 한 번도 발사하지 않은 자가 아니라, 한 번 발사한 후 평생 그 항성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자다. 한 줄 결재의 무게는 거대함선의 화력보다 한 줄 이름 위에 있다.
“후대 항성 파괴자들은 임명 첫 주에 그 함교 좌석에 한 호흡 묵념합니다. 결재를 거두는 일이 결재를 내리는 일보다 어렵다는 뜻이지요.”
4대 항성 파괴자 솔라리스 베인(Solaris Vane, 평생 발사 권한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임기를 마친 운용자)의 '메타-9 회수' 일화는 은하 평의회 의사록에 한 페이지 그대로 남아 있다.
사파 결사 외계 무역단 카슈란(Kashran, 메타-9 항성계를 거점으로 한 무허가 무역 결사)이 항성계 전역의 통신을 인질로 잡고 메타-9 거주민 8천만 명을 위협하던 시즌, 베인은 발사 카운트다운을 17초까지 진행한 뒤 자기 결재를 거뒀다. 그가 좌석에서 외운 메타-9의 옛 이름은 '리아흐 에타(Liach-Eta, 1세대 식민이 붙인 첫 이름)'였고, 그 이름을 외우는 동안 베인은 함교 통신으로 카슈란 측과 마지막 한 호흡 협상을 이어갔다. 카슈란은 17초 안에 인질을 풀었고, 메타-9 거주민 8천만 명은 다음 날 새벽 일상으로 복귀했다.
베인은 그 후 임기 30년 동안 매일 함교 좌석에서 리아흐 에타의 이름을 한 번씩 외우는 의식을 다듬었다. 그가 임기 마지막 날 좌석에 남긴 한 줄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이 가장 큰 이름이다"였고, 그 한 줄은 발사대 함선 함교 입구에 새겨져 있다.
거함장(巨艦長)
거대함선 함장
거대 함선을 이끄는 함장
“함선이 크다는 건 책임이 크다는 뜻이지, 자랑이 크다는 뜻은 아니다.”
거대함선 함장은 승무원 만 명 단위, 전장 수 킬로미터급 모선의 작전·항해·내부 자치를 총괄한다. 한 함선이 작은 도시이며, 한 함선 안에 학교·병원·재판정·시장이 모두 있다. 그래서 함장의 절반은 군 지휘관이고, 나머지 절반은 시장(市長)에 가깝다.
본인은 작전 결재 한 줄과 학생 식단 결재 한 줄을 같은 책상에서 처리하며, 이 둘의 무게가 같다고 믿는다. 거대함선이 한 번 워프하면 만 명의 일상이 같이 휘어지므로, 함장의 한 줄 결재는 늘 작전 효율보다 일상 안정을 먼저 본다. 가장 좋은 함장의 평가는 큰 전공이 아니라, 그 함선 안의 신생아 한 명이 무사히 다음 항성계까지 도착했는가다.
“후대 함장들은 임명 첫 주에 그 신생아 명부를 한 줄씩 읽습니다. 만 명의 첫 한 끼가 함장의 한 줄 결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지요.”
거대함선 트라잔-12(Trajan-12, 전장 4.7km·승무원 1만 2천 명급 모선) 9대 함장 룬 카베리(Run Kaberi, 평생 정복보다 작업복을 더 자주 입었다는 함장)의 '하이퍼점프 한 호흡' 일화는 함장 학교 의례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다.
트라잔-12가 베가-3 분기점에서 하이퍼점프를 결재해야 하는 시각 직전, 함내 산부인과에서 신생아 한 명이 위급한 호흡 곤란에 빠졌다. 카베리는 함대 작전참모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점프를 17분 미루고, 인공중력장을 0.95G로 한 호흡 낮춰 출산 거주구의 안정 마진을 먼저 확보했다. 17분 동안 함대 진형은 어긋났고, 카베리는 평의회 청문회까지 호출되었다.
신생아 옐 메이로(Yel Meiro)는 무사히 첫 한 호흡을 안정시켰고, 트라잔-12는 그 다음 점프에서 모든 승무원을 같은 인원으로 다음 항성계까지 옮겼다. 청문회에서 카베리가 남긴 한 줄은 "이 함선 안에서 가장 작은 한 호흡이 가장 큰 결재다"였다. 옐 메이로는 25년 뒤 트라잔-12 산부인과 의무관으로 부임했다.
외교성사(外交星士)
외계 종족 외교관
외계 종족을 향한 외교의 사절
“악수 대신 깜빡임 세 번. 이 종족은 손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외계 종족 외교관은 인류와 비인간 종족 사이의 조약·통상·전쟁 회피를 평생 담당하는 자다. 외형은 종족별로 다르게 맞춘 정장, 어깨에 번역 모듈, 한 손에 의례용 작은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종족의 평소 인사법·옛 분기 결재 라인·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단어를 잘못 골라 작은 종족 한 곳과 30년 외교 단절을 빚은 사례가 야사에 남아 있어, 외교관의 메모장은 한 페이지에 한 단어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조약이 아니라, 처음 만난 종족과 첫 인사를 나누는 의례 한 번 위에 있다. 우주의 평화는 결국 한 단어를 한 번 더 고민한 자세 위에 굴러간다.
“후대 외교관들은 임명 첫 사이클에 그 깜빡임 의례 영상을 세 번 봅니다. 한 단어보다 한 호흡이 먼저라는 뜻이지요.”
7대 외계 외교 수석 카이라 노벨라(Kaira Novella, 평생 외교 청문회 소집을 단 두 번만 받은 자)와 시르난 종족(Sirnan, 손이 없고 눈꺼풀 깜빡임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비인간 종족)의 '깜빡임 세 번 의례' 일화는 외교관 길드 입사 첫 주 영상 자료에 들어 있다.
시르난과 인류의 첫 회담 자리에서 노벨라는 악수 의례를 준비한 보좌관을 만류하고, 자기가 직접 시르난 의장 베스레(Vesre, 시르난 자치 위원회 8대 의장)의 눈을 마주 보며 깜빡임 세 번을 정중히 보여 주었다. 보좌관이 준비한 행성간 통상 조약 초안 47조는 그날 결재되지 않았고, 대신 깜빡임 세 번이 양측 인사 의례로 회담록 첫 줄에 등재되었다. 시르난과 인류는 그 후 80년간 단 한 번의 군사 충돌 없이 통상 라인을 운영했다.
노벨라는 정년 퇴임식 날 자기 메모장을 시르난 자치 위원회에 기증했고, 메모장 첫 페이지에는 단 한 단어 '깜빡임'만 적혀 있었다. 시르난 자치 위원회는 그 메모장을 자기 의사당 입구에 보관하며, 신참 의장 취임식 때 의장이 그 페이지를 한 번 깜빡임으로 읽는 의례가 정착했다.
차원관제사(次元管制士)
차원 게이트 관제사
차원 게이트의 흐름을 관제하는 자
“게이트는 여닫는 문이 아니다. 매번 다시 만드는 문이다. 그러니 함부로 당기지 마시오.”
차원 게이트 관제사는 항성간 워프 게이트 한 곳의 개폐·동기화·긴급 차단을 결재하는 정점 운용자다. 외형은 단정한 관제복, 어깨에 게이트 인장 휘장, 한 손에 인증 단말이 표준이다. 게이트 한 번의 동기화 오차가 0.001초만 어긋나도, 그 게이트를 통과하는 함선의 시간선이 영구히 어긋난다.
그래서 관제사는 매 게이트 통과 직전 한 호흡을 정중히 한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게이트의 옛 분기 결재·옛 사고 자료·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함선의 통과가 아니라, 처음 게이트를 통과하는 신참 한 명의 한 호흡 위에 있다.
“후대 관제사들은 야간 근무 첫날 그 0.001초 차단 로그를 직접 손으로 한 줄씩 옮겨 적습니다. 한 호흡 망설임이 한 함선 만 명을 살린다는 뜻이지요.”
라그란-7 차원 게이트(Lagran-7 Gate, 베가-시리우스 항로 중간 결절점) 11대 관제사 토미르 사스(Tomir Sas, 관제사 자격을 평생 한 번도 갱신하지 않고 30년 자리를 지킨 자)의 '0.001초 차단' 일화는 관제사 자격 시험 마지막 문항으로 출제된다.
화물선 노툰-9(Notun-9, 적재량 8천 톤급 외곽 무역선)의 신참 항해사 첫 통과 직전, 게이트 동기화 코어가 0.001초의 미세 진동을 보였다. 사스는 게이트 코어의 측정값보다 자기 손목에 새겨진 옛 진동 감각을 먼저 신뢰해, 정식 차단 권한 결재가 떨어지기 전에 자기 권한으로 게이트를 한 호흡 차단했다. 노툰-9는 7분간 대기했고, 그동안 게이트 진동은 0.0008초까지 안정되었다.
사후 조사에서 그 진동은 게이트 보수반의 옛 결재 단말 한 줄 누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의회는 사스의 무단 차단을 처음에 징계로 다루려 했으나, 노툰-9 신참 항해사가 청문회에 자기 발로 출석해 "그 한 호흡이 내 시간선 전체를 살렸다"고 진술했다. 라그란-7 관제실 입구에는 그 한 호흡 차단 시각이 새겨져 있고, 신참 관제사는 첫 출근 날 그 시각 앞에 한 호흡 묵념한다.
사이보군장(사이보軍長)
군단 사이보그 사령
사이보그 군단을 이끄는 사령의 장
“기계 부품의 비율이 늘어도, 결재의 무게는 줄지 않는다.”
군단 사이보그 사령은 신체 절반 이상이 기계 부품으로 대체된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정예 사이보그 군단의 정점이다. 외형은 합금 외골격, 어깨에 사령 휘장, 한 팔에 군단 진입 인증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이보그 한 명 한 명의 평소 부품 정비 주기·옛 분기 출정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부하 한 명의 부품이 닳으면 사령이 직접 정비반 결재 라인을 한 줄 단축한다. 그래서 군단 사이보그들은 사령을 "지휘관"이라기보다 "정비반장"이라 부르는 농담을 평생 가져간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작전이 아니라, 부하 한 명의 닳은 관절 한 곳을 챙기는 결재 위에 있다.
“후대 사령들은 임명 첫 사이클에 그 손목 부품을 만져 봅니다. 군단의 한 명이 곧 군단 전체라는 뜻이지요.”
제3 사이보그 군단 5대 사령 베르디 카로(Verdi Karo, 신체의 73퍼센트가 기계 부품인 자)와 군단원 일라르 쿠시(Ilar Kusi, 손목 관절 부품 한 곳이 닳아 출정 직전 통증을 호소한 신참)의 '한 호흡 정비' 일화는 군단 신병 입영식 영상으로 매년 상영된다.
카뮬론(Kamulon, 외계 거주 행성 식민지) 출정 직전 카로는 일라르의 손목에서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자기 사령 결재 라인을 단축해 정비반장 결재 도장 없이 자기 손으로 직접 부품을 교체했다. 출정 시각이 11분 미뤄졌고, 작전참모는 청문회 회부를 검토했다. 그러나 그날 작전 중 일라르의 손목이 정밀 사격 한 호흡을 안정시켜, 군단 한 분대 전체가 같은 인원으로 모선에 복귀했다.
카로는 임기 중 정비반 결재 단축을 평생 일곱 번 사용했고, 그때마다 자기 봉록의 일부를 군단 정비반 보너스로 이체했다. 그가 임기 마지막 날 사령실에 남긴 한 줄은 "내 합금 어깨가 닳기 전에, 내 부하의 손목을 먼저 닦아라"였다. 일라르는 25년 뒤 제3 사이보그 군단 6대 사령으로 임명되었다.
워프엔진공(워프엔진工)
워프 엔진 정비공
워프 엔진을 정비하는 공인
“엔진 소리가 어제와 다르오. 이건 데이터로 안 잡힙니다. 귀가 먼저 압니다.”
워프 엔진 정비공은 함선의 워프 코어를 분해·점검·재조정하는 블루칼라 정비 장인이다. 외형은 합금 작업복, 어깨에 공구 가방, 한 손에 진동 측정기와 작은 손등불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함선의 평소 워프 진동 주파수·옛 분기 정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장이 워프 한 번을 결재하기 전, 정비공의 한 줄 점검 결재가 먼저 도장 찍혀야 한다. 정비공은 데이터보다 손목과 귀로 먼저 코어 이상을 감지하며, 그래서 베테랑 정비공의 손목에는 옛 진동의 결이 새겨져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코어 점검이 아니라, 신참 함선의 첫 워프 직전 한 줄 도장 위에 있다.
“후대 정비공들은 신참 첫 출근 날 그 손등불을 한 번 켜봅니다. 데이터가 잡지 못하는 것을 손목으로 잡는 자세, 그게 정비공의 첫 결재라는 뜻이지요.”
화물 함선 베르타-3(Berta-3, 적재량 1만 8천 톤급 외곽 항로 운송함)의 선임 워프 정비공 토마 노렌(Toma Noren, 단일 함선 정비 경력 28년)의 '워프 직전 한 호흡' 일화는 정비공 길드 내부 교본의 표지 사진으로 쓰인다.
베르타-3가 시그누스 분기점 워프를 결재받기 직전, 노렌은 코어 측정 데이터가 모두 정상이었음에도 자기 손등불 한 번을 코어 4번 결합부에 비춰 보고 워프 결재 도장을 거뒀다. 함장 라우라 베델(Laura Bedel, 베르타-3 함장)은 처음에 항의했으나, 노렌의 손목 진동 감각을 신뢰해 점검을 한 사이클 연장했다. 점검 중 코어 4번 결합부에서 옛 정비공이 결재 누락한 작은 합금 칩 한 개가 발견되었다 — 그대로 워프했다면 함선 전체가 시간선 분리 사고를 겪을 정도의 결함이었다.
노렌은 그 칩을 자기 작업 가방에 보관해 신참 정비공 입회식 첫 도구로 매년 보여 주었다. 베르타-3는 이후 정비공 결재 도장 라인을 함장 결재보다 한 줄 앞에 두는 자기 운항 규정을 정착시켰고, 외곽 항로 다수 함선이 이 규정을 채택했다. 노렌은 정년 퇴임 날 자기 손등불을 신참 정비공에게 정중히 넘겨주었다.
외계생태사(外界生態師)
외계 생태 조사관
외계 생태를 조사하는 자
“이 잎 한 장, 분류표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짓는 게 우리 일이지요.”
외계 생태 조사관은 신규 식민 후보 행성의 동식물·미생물·기후를 정밀 조사해 정착 가능 등급을 결재하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표본 가방, 한 손에 정밀 채집 단도와 작은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행성의 옛 분기 조사 결재·옛 분류표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신규 종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한 줄 이름을 짓는 권한을 가지며, 그래서 은하 분류표 절반은 조사관 한 명의 한 줄 작명에서 시작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발견이 아니라, 식민 정착이 그 행성의 옛 생태 한 줄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한 줄 도장 위에 있다.
“후대 조사관들은 첫 행성 도착 사이클에 그 잎 한 장 표본을 보러 갑니다. 한 줄 작명보다 한 줄 보존이 무겁다는 뜻이지요.”
외계 생태 조사관 빈케 옌다(Vinke Yenda, 식민 후보 행성 47곳을 단독 조사한 경력의 조사관)와 행성 알카르 베타(Alkar-Beta, 시그누스-3 항성계 제4행성)의 '잎 한 장 결재' 일화는 식민 청문회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알카르 베타는 1차 조사에서 정착 등급 A를 받아 1세대 정착민 5만 명의 이주가 결정될 시점이었다. 옌다는 이주선 발진 한 사이클 전 행성 적도 부근에서 분류표에 없는 잎 한 장을 발견했고, 그 잎의 광합성 주기가 행성 자기장과 동기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정밀 단말로 확인했다. 그는 정착 등급을 한 사이클 안에 B로 하향 결재하고, 1세대 정착지를 적도에서 위도 17도 위쪽으로 이전하도록 평의회에 권고했다.
식민 회사는 비용 추가에 항의했으나, 옌다는 자기 봉록의 절반을 이전 비용으로 자진 출연하며 결재를 관철시켰다. 그 잎은 '옌다 광합성종(Yenda-leaf)'으로 등재되었고, 알카르 베타는 식민 50년차에 행성 자기장 안정도 1위로 평가받았다. 옌다는 정년 퇴임식에서 자기 단도와 표본 가방을 신참 조사관 첫 입회식 의례 도구로 기증했다.
코어자료사(코어資料師)
코어 데이터 큐레이터
코어 데이터를 큐레이션하는 자
“지운다는 것은 잊는다는 게 아니라, 한 줄 더 정중히 보관한다는 뜻입니다.”
코어 데이터 큐레이터는 항성계 단위 데이터 코어의 보관·열람 권한·삭제 결재를 평생 다루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학자복, 어깨에 인증 펜던트, 한 손에 데이터 단말과 작은 보관 카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데이터 한 줄의 옛 분기 결재·옛 보관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AI 신이 한 번 침묵하면, 큐레이터의 한 줄 보관 카드가 그 항성계의 옛 기억을 다시 호출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데이터 보존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지막 음성 한 줄을 정중히 보관할 권한 위에 있다. 데이터를 다루는 진짜 큐레이션은 무엇을 남길지가 아니라, 무엇을 정중히 잊을지를 정하는 일이다.
“후대 큐레이터들은 입사 첫 사이클에 그 보관 카드를 한 번 손에 들어 봅니다. 한 사람의 마지막 한 줄이 곧 항성계의 한 줄이라는 뜻이지요.”
알골 항성계 코어 데이터 큐레이터 셀바 라마이(Selva Ramai, 알골 자치 도서관 소속 28년)와 화물선 폴라리스-2(Polaris-II, 적재량 6천 톤급 외곽 운송선) 마지막 음성 기록의 '한 줄 보관' 일화는 큐레이터 자격 시험 마지막 면접 질문이다.
폴라리스-2가 외곽 항로에서 워프 사고로 통째로 사라졌을 때, 그 함선의 코어가 마지막으로 송신한 7초의 음성 기록이 알골 코어 데이터 큐레이터실로 전송되었다. 7초의 내용은 함장 노라 키엘(Nora Kiel, 폴라리스-2 함장)이 자기 손녀에게 남기는 자장가 한 줄이었다. 큐레이터실의 자동 처리 규정은 식별 불가 음성을 30일 후 자동 삭제로 결재하게 되어 있었으나, 라마이는 그 자동 결재 라인을 자기 권한으로 멈추고 직접 손녀 디아 키엘(Dia Kiel, 당시 7세)을 찾아냈다.
그는 디아의 18세 성년식 날 그 자장가 한 줄을 정중히 인도했고, 디아는 그 자장가를 자기 첫 항해 자격 인증 대기실에 한 번 틀었다. 알골 항성계 코어 자치 위원회는 그 후 마지막 음성 기록의 자동 삭제 규정을 수정해, 가족 인도 가능성을 한 사이클 더 검토하는 라인을 추가했다. 라마이는 정년 퇴임식 날 디아의 항해사 임명장을 한 손에 들고 코어실에 정중히 절을 했다.
성간응급사(星間應急士)
행성간 응급 의무관
행성 간 응급 의료를 도맡는 자
“워프 도중 응급 호출. 5분 안에 도착합니다. 그게 우리 약속이지요.”
행성간 응급 의무관은 항성계 사이를 단독 응급선으로 이동하며, 정거장·식민지·소형 함선의 응급 호출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의료 정점 인력이다. 외형은 흰 의무복 위에 작은 외골격, 어깨에 응급 키트, 한 손에 정밀 진단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응급 호출의 옛 분기 결재·옛 의료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워프 한 번 안에 도착해야 하는 호출이 한 시즌에 수백 건에 달하므로, 의무관의 잠은 늘 함선 한쪽 좌석에서 끝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수술이 아니라, 신참 정착민의 첫 출산 한 번에 정중히 도착하는 5분 위에 있다.
“후대 의무관들은 첫 출동 직전 그 응급선의 좌석을 한 번 만져 봅니다. 5분의 약속이 평생의 무게라는 뜻이지요.”
행성간 응급 의무관 카심 베니르(Kasim Benir, 단독 응급선 라파엘-3 운용 14년차)와 외곽 식민지 무린(Murin, 인구 600명짜리 농업 정착지)의 '5분 출산' 일화는 의무관 길드 신입 교육 첫 사례다.
베니르가 워프 도중이던 어느 새벽, 무린의 1세대 정착민 가족이 첫 출산 응급 호출을 보내왔다. 응급선 라파엘-3(Raphael-III, 단독 응급선)는 워프 라인을 한 번에 재계산해 정확히 4분 47초 만에 무린 거주구에 도착했고, 베니르는 도착 직후 18분 만에 산모와 신생아를 모두 안정시켰다. 신생아의 이름은 카심 베니르의 이름을 한 자 따 '카림'으로 지어졌다.
베니르는 그 후 라파엘-3의 좌석 위쪽에 무린에서 받은 작은 종이 한 장을 붙였는데, 거기에는 산모가 직접 쓴 "5분 안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카심 베니르는 정년 퇴임 날 그 종이 한 장을 라파엘-3의 신참 의무관에게 넘겼다. 카림은 25년 뒤 무린 자치 의료원의 1대 응급 의무관이 되었다.
정거관제원(停車管制員)
정거장 관제 직원
정거장 관제를 담당하는 직원
“도착 슬롯 17번, 들어오세요. 오늘도 무사 도착, 감사합니다.”
정거장 관제 직원은 우주항 정거장의 함선 도착·이륙·도킹 슬롯 배정을 결재하는 평민 출신 운용자다. 외형은 단정한 관제복, 어깨에 정거장 인장, 한 손에 슬롯 배정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함선의 평소 도착 시각·옛 분기 슬롯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대함선이 한 번 도킹하면 만 명의 일상이 정거장 안으로 흘러들어오기에, 관제 직원의 한 줄 결재는 늘 안전 마진을 한 호흡 더 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함선의 도킹이 아니라, 신참 무역 상인의 첫 도착 슬롯에 정중히 한 줄 인사를 더하는 자세 위에 있다.
“후대 관제 직원들은 첫 야간 근무 새벽 그 슬롯 17번을 한 번 들여다봅니다. 한 줄 인사가 한 함선의 첫 항해를 결정한다는 뜻이지요.”
우주항 정거장 케이르단-3(Keirdan-III, 시리우스 외곽 항로의 중계 정거장)의 야간 관제 직원 마린 코사(Marin Kosa, 슬롯 17번 전담 12년차)와 신참 무역 상인 베노 라스트(Beno Last, 단독 함선 키스라-IV 후속 모델 운용자)의 '슬롯 17번 첫 도착' 일화는 정거장 관제 교본의 사례 1번이다.
라스트의 첫 외곽 항로 도착 시각이 새벽 3시 17분이었고, 그날 밤 케이르단-3의 도킹 슬롯은 큰 함선 두 척의 동시 도착으로 모두 만석에 가까웠다. 코사는 자기 결재 권한으로 슬롯 17번을 한 사이클 비워 두고, 라스트의 함선이 도착할 때까지 다른 도킹 일정을 한 호흡 미뤘다. 라스트가 슬롯 17번에 도착했을 때 코사는 통신으로 "오늘도 무사 도착, 감사합니다"라는 한 줄 인사를 정중히 보냈다.
라스트는 그 인사 한 줄을 자기 함선 함교 일지 첫 페이지에 적었고, 그 후 25년간 케이르단-3에 도착할 때마다 슬롯 17번을 요청했다. 라스트는 외곽 무역상 길드 의장이 되었을 때, 케이르단-3 관제실에 자기 함선 첫 도착 슬롯 번호 명패 한 장을 정중히 기증했다. 코사는 정년 퇴임식 날 그 명패 앞에서 한 호흡 묵념했다.
수경식농자(水耕植農者)
식민지 수경 농부
식민지의 수경 농법으로 작물을 짓는 자
“씨앗 한 알이 무중력에서 한 번 더 망설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한 호흡 기다리지요.”
식민지 수경 농부는 신규 식민 행성·정거장의 폐쇄 수경 농장에서 식료를 길러내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양액 가방, 한 손에 정밀 계량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작물의 평소 무중력 발아 주기·옛 분기 양액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식민지의 한 끼는 결국 농부의 한 줄 양액 결재 위에 굴러가며, 함대 사령보다 농부의 한 줄이 그 행성 100년의 일상을 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수확이 아니라, 신참 정착민의 첫 한 끼에 들어가는 한 줄 채소 위에 있다.
“후대 농부들은 입문 첫 사이클에 그 토마토 한 개 표본을 봅니다. 한 끼의 무게는 함선의 화력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외곽 식민지 비스라(Visra, 인구 1,200명짜리 1세대 농업 식민지)의 수경 농부 도란 콰이(Doran Quai, 단독 수경 농장 셀 7번 운용 18년차)와 '첫 토마토' 일화는 식민 농부 길드 신입 입회식 영상 자료다.
비스라의 식료 보급선이 워프 사고로 한 시즌 통째로 끊겨, 1세대 정착민 1,200명이 두 달 분량의 비축 식료만 가지고 버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콰이는 자기 셀 7번의 양액 배합을 평생 처음 비공식 결재 라인으로 한 줄 변경해, 무중력 토마토 발아 주기를 17퍼센트 단축했다. 한 사이클 만에 토마토 800개가 수확되었고, 정착민 1,200명은 첫 한 끼를 한 사람당 토마토 반 개로 나눠 먹었다.
콰이는 그 첫 토마토 한 개를 비스라 자치 위원회 의장의 신생아 손녀에게 정중히 인도했고, 의장은 그 토마토 한 개를 자치 위원회 회의실 입구에 표본으로 보존했다. 비스라는 식민 30년차에 외곽 식민지 식료 자급률 1위를 기록했고, 셀 7번은 지금도 운영 중이다. 콰이는 정년 퇴임 날 자기 계량 단도를 신참 농부 첫 입회식 의례 도구로 기증했다.
외계향감사(外界香鑑士)
외계 향료 감별사
외계 향료를 감별하는 자
“이 향, 세 번째 항성계에서 났군요. 코는 데이터보다 정직합니다.”
외계 향료 감별사는 우주 무역 상인이 들고 오는 외계 향료의 진위·등급·금기 결합 여부를 평생 감별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감별 키트, 한 손에 정밀 후각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향료의 평소 산지·옛 분기 감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대 사령보다 감별사의 한 줄 결재가 한 시즌 우주 무역의 단가를 더 정확히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향료의 등급이 아니라, 신참 무역 상인이 처음 들고 온 작은 한 병에 정중히 한 줄 등급을 적어주는 자세 위에 있다.
“후대 감별사들은 입문 첫 사이클에 그 작은 한 병을 한 번 향만 맡아 봅니다. 정중한 한 줄 등급이 무역상 평생을 결정한다는 뜻이지요.”
우주항 정거장 칸디아-2(Kandia-II, 외계 향료 거래의 중심 정거장) 향료 감별실 수석 감별사 옌트라 셀바(Yentra Selva, 평생 감별 결재 단말을 자기 후각보다 늦게 본 자)와 신참 무역 상인 도르마 헤이(Dorma Hei, 작은 단독 무역선 운용자)의 '한 병 한 줄' 일화는 향료 감별 자격증 면접 단골 사례다.
헤이가 자기 첫 외곽 항해에서 들고 온 작은 한 병의 외계 향료는 단가가 거의 책정되지 않을 정도로 미량이었다. 셀바는 그 한 병을 거대 무역상의 100병 단위 표본보다 먼저 향만으로 감별하고, 그 자리에서 한 줄 등급 'A-2 (시그누스 외곽 신산지)'를 정중히 기록했다. 그 한 줄 등급으로 헤이의 단가가 8배로 올라, 헤이는 자기 함선 정비 비용을 한 사이클 만에 회수했다.
셀바는 그 후 신참 무역 상인의 첫 향료 감별을 자기 일정 1순위로 두는 자기 규정을 만들었고, 칸디아-2 감별실 표준 절차로 정착시켰다. 헤이는 25년 뒤 외곽 향료 무역상 길드 의장이 되었고, 칸디아-2 감별실 입구에 자기 첫 한 병의 빈 병 한 개를 표본으로 정중히 기증했다. 셀바는 정년 퇴임 날 자기 후각 단말을 신참 감별사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다.
세관검역자(稅關檢疫者)
우주항 세관 검역원
우주항의 세관과 검역을 맡는 자
“신고서 한 줄 부족합니다. 한 번 더 정중히 적어 주시지요. 한 줄로 한 항성계가 안전해집니다.”
우주항 세관 검역원은 정거장으로 들어오는 모든 화물·생물·데이터의 신고·검역·금기 결합 차단을 결재하는 평민 출신 운용자다. 외형은 단정한 세관복, 어깨에 검역 인장, 한 손에 정밀 스캔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화물의 평소 신고 라인·옛 분기 검역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줄 신고가 빠진 작은 캡슐 한 개가 정거장 한 곳의 한 시즌을 멈춘 사례가 야사에 남아 있어, 검역원의 한 줄 결재는 늘 한 호흡 더 무겁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화물의 통관이 아니라, 신참 무역 상인의 첫 신고서 한 줄 위에 있다.
“후대 검역원들은 입사 첫 사이클에 그 캡슐 한 개의 표본을 봅니다. 한 줄 신고가 빠지면 한 시즌이 멈춘다는 뜻이지요.”
우주항 정거장 펜드라-4(Pendra-IV, 외곽 항로의 검역 1차 정거장)의 야간 세관 검역원 카리오 멘드(Kario Mend, 펜드라-4 슬롯 8번 검역대 17년차)와 '비공식 캡슐' 일화는 검역원 자격 시험 첫 케이스다.
무역선 우락-2(Ulak-II, 외곽 단독 운용 화물선) 신참 선주의 첫 통관 신고서에서 작은 캡슐 한 개의 산지 한 줄이 누락되어 있었다. 멘드는 정중히 신고서 보완을 요청했고, 신참 선주는 한 호흡 항의했으나 결국 한 줄을 추가로 적어 제출했다. 추가 한 줄 산지에 따른 정밀 스캔에서 그 캡슐 안에는 시그누스 외곽 항성계의 미등록 외계 미생물 7종이 잠복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미생물 한 종은 인공중력장 0.95G 환경에서 거주구 환기 라인을 한 사이클 만에 부식시킬 수 있는 부류였다. 펜드라-4는 그 한 줄 보완 결재로 정거장 한 곳의 한 시즌을 통째로 살렸고, 평의회는 멘드에게 자치 검역 공로 결재 한 줄을 부여했다. 멘드는 그 캡슐 표본을 펜드라-4 검역실 입구에 정중히 보관했고, 신참 검역원의 첫 출근 의례에 그 표본 앞 한 호흡 묵념이 추가되었다. 우락-2의 신참 선주는 그 후 평생 자기 신고서 마지막 줄에 산지 한 줄을 두 번 확인하는 자기 규정을 가졌다.
소행성광부(小行星鑛夫)
소행성 광부
소행성을 캐는 광부
“광맥 좋은 날엔 노래 부릅니다. 광맥 나쁜 날엔 더 크게 부르고요.”
소행성 광부는 항성계 외곽 소행성대에서 희귀 금속·얼음·결정체를 채굴하는 블루칼라 직군이다. 외형은 합금 외골격, 어깨에 채굴 가방, 한 손에 정밀 채굴 드릴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소행성의 평소 광맥 분포·옛 분기 채굴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시즌의 채굴량 한 줄이 한 가족의 한 끼와 한 학년의 학자금을 동시에 결정하기에, 광부의 한 줄 결재는 늘 안전 마진을 한 호흡 더 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광맥이 아니라, 다음 시즌 동료가 안전하게 돌아올 채굴 라인을 정중히 남겨두는 자세 위에 있다.
“후대 광부들은 입사 첫 시즌에 그 광맥 절반을 보러 갑니다. 다 캐지 않은 광맥이 다 캔 광맥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소행성 채굴 함선 메토르-9(Metor-9, 적재량 4천 톤급 외곽 광부 함선) 선임 광부 하렐 토브(Harel Tov, 단일 채굴 라인 22년 경력)와 '벨라-7 광맥' 일화는 광부 길드 입회식 영상 자료다.
메토르-9 팀이 소행성 벨라-7(Vela-7, 시리우스 외곽 소행성대 중규모 광체)에서 희귀 금속 결정체 광맥을 발견했을 때, 한 시즌 안에 모두 채굴 가능한 단가가 책정되어 있었다. 토브는 그러나 광맥의 절반만 채굴하고, 나머지 절반은 결정체 모암 채로 정중히 남겨두는 채굴 라인 결재를 단행했다. 회사 측은 단가 손실에 항의했으나, 토브는 자기 봉록의 30퍼센트를 그 시즌 차감하는 조건으로 결재를 관철시켰다.
다음 시즌 메토르-9 신참 광부 팀이 벨라-7에 도착했을 때, 절반 남은 광맥 덕에 신참 팀의 첫 시즌 채굴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었고, 광부 한 명의 학자금과 두 가족의 한 끼가 한 줄 결재 위에 함께 굴러갔다. 토브는 정년 퇴임 날 자기 채굴 드릴을 신참 광부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다. 메토르-9는 이후 외곽 채굴 함선 다수가 채택한 '절반 결재' 규정의 시초가 되었다.
화물적재부(貨物積載夫)
화물선 적재원
화물선의 짐을 싣는 일꾼
“이 박스, 안쪽 깊숙이. 신참 무역 상인의 첫 화물입니다. 한 번 더 단단히.”
화물선 적재원은 우주항에서 화물선 한 척의 박스 적재·고정·하역을 평생 책임지는 평민 출신 운반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적재 띠와 작은 가방, 한 손에 고정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화물의 평소 무게·옛 분기 적재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워프 한 번에 박스 한 개가 흔들리면 그 화물선 한 시즌의 단가가 흔들리기에, 적재원의 한 줄 고정 결재는 늘 한 호흡 더 단단하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화물의 적재가 아니라, 신참 무역 상인의 첫 박스 한 개를 가장 안쪽에 단단히 고정하는 자세 위에 있다.
“후대 적재원들은 신참 첫 출근 날 그 안쪽 박스 자리를 한 번 만져 봅니다. 가장 깊은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라는 뜻이지요.”
우주항 정거장 메르카-7(Merka-VII, 외곽 무역 항로 1차 적재 정거장)의 야간 적재원 노라스 핀(Noras Pin, 적재 라인 12번 전담 25년차)과 '안쪽 박스' 일화는 적재원 길드 입회식 첫 사례다.
신참 무역 상인의 첫 화물선 키스라-IV 후속선이 메르카-7에 입항했을 때, 그 첫 박스 한 개에는 신참 상인이 외곽 식민지 1세대 정착민에게 직접 그린 가족 사진 한 장이 들어 있다고 신고되어 있었다. 노라스는 그 박스를 다른 화물 200개보다 먼저 함선의 가장 안쪽 적재 라인 12번 자리에 고정하고, 표준 적재 결재보다 한 줄 더 단단한 고정 띠를 추가로 둘렀다. 그 화물선이 외곽 항로에서 워프 사고 한 번을 겪었을 때, 다른 박스 17개가 흔들렸지만 안쪽 박스 한 개는 흔들림 없이 도착했다.
신참 상인은 그 박스 한 개의 무사 도착으로 1세대 정착민과의 첫 거래를 평생의 단골로 만들었다. 노라스는 그 후로 신참 상인의 첫 박스를 가장 안쪽 자리에 두는 자기 규정을 평생 유지했다. 메르카-7 적재실 입구에는 그 박스 한 개의 옛 신고서 사본이 정중히 보관되어 있다.
은하의장(銀河議長)
은하 평의회 의장
은하 평의회의 의사봉을 쥔 의장
“한 회기, 한 줄 결의. 그 한 줄에 천억 명의 다음 한 끼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은하 평의회 의장은 다항성·다종족이 모인 입법체의 한 회기 진행과 결의 결재를 평생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의례복, 어깨에 평의회 인장, 한 손에 의사봉 모양 작은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회기의 옛 분기 결의·옛 표결 라인·금기 발언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항성 파괴자의 발사 권한도, 차원 게이트 관제사의 차단 권한도 결국 의장의 한 줄 결의 위에서만 정당화된다. 한 회기에서 의장이 가장 자주 하는 일은 결정이 아니라, 한쪽 종족의 발언 한 줄을 다른 쪽 종족이 끝까지 듣게 만드는 정중한 침묵의 시간을 한 호흡 더 늘리는 일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의는 큰 전쟁 종결이 아니라, 처음 가입한 작은 종족의 첫 발언 한 줄을 정중히 회기록에 남기는 자세 위에 있다.
“후대 의장들은 임명 첫 회기에 그 첫 발언 한 줄을 정중히 낭독합니다. 작은 종족의 한 줄이 평의회의 첫 줄이라는 뜻이지요.”
14대 은하 평의회 의장 카르멘 라스토(Carmen Lasto, 평의회 회의록 회기 47만 줄을 평생 직접 정리한 자)와 펠라란 종족(Pelaran, 인구 12만 명의 신규 가입 외계 종족)의 '첫 발언 한 줄' 일화는 평의회 회의록 표지에 한 줄 인용된다.
펠라란은 평의회 가입 첫 회기에 발언권을 한 줄 받았으나, 큰 항성계 7곳의 무역 라인 결의 안건이 같은 시각에 상정되어 발언 시간이 한 호흡으로 줄어들 위험에 놓였다. 라스토는 큰 안건의 결재를 한 사이클 미루는 자기 권한을 행사해, 펠라란 의장 베레아(Verea, 펠라란 자치 위원회 1대 의장)에게 정중히 한 호흡 더 긴 발언 시간을 부여했다. 베레아의 첫 발언은 자기 종족의 옛 자장가 한 줄에서 시작되었고, 그 한 줄은 회기록 첫 줄에 그대로 등재되었다.
큰 항성계 7곳의 무역 라인은 한 사이클 후 정상 결재되었으나, 펠라란의 첫 발언 한 줄은 그 후 100년간 평의회 회의록의 첫 페이지를 차지했다. 라스토는 임기 마지막 날 펠라란 자치 위원회에 자기 의사봉 단말을 정중히 기증했고, 베레아는 그 단말을 펠라란 의사당 입구에 보관했다.
모선책사(母船策士)
모선 함대 작전참모
모선 함대의 작전을 짜는 참모
“지도 위 점 한 개가 함선 한 척이고, 함선 한 척 안에 만 명입니다. 손이 떨릴 만하지요.”
모선 함대 작전참모는 거대함선 수십 척으로 구성된 함대 한 곳의 항로·진형·교전 결재를 함장 옆에서 보좌하는 정점 참모다. 외형은 단정한 참모복, 어깨에 함대 휘장, 한 손에 입체 항로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함대의 옛 분기 진형 결재·옛 교전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장이 한 줄 결재를 내리기 전, 참모의 한 줄 시뮬레이션이 먼저 책상 위에 놓인다. 항성 파괴자가 발사 직전 한 항성의 이름을 외우듯, 참모는 진형 결재 직전 그 진형 안에 든 함선 만 명의 명단을 한 줄 훑는 의식을 평생 다듬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작전의 승패가 아니라, 그 작전 끝에 모든 함선이 같은 인원으로 다음 항성계까지 도착하는가다.
“후대 참모들은 임명 첫 회의에 그 명단 한 줄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습니다. 점 한 개의 무게를 잊지 말라는 뜻이지요.”
제7 모선 함대(Seventh Mother Fleet, 거대함선 32척으로 구성된 외곽 자치 함대) 12대 작전참모 야르 콜런(Yar Colen, 함대 진형 시뮬레이션 평생 4만 회 결재한 자)과 '베가-13 진형 회피' 일화는 작전참모 학교 마지막 학기 케이스다.
베가-13 항성계 외곽에서 미확인 항성풍 폭풍이 함대 진형을 정면으로 가로지를 시점, 콜런은 함장 30명이 결재한 표준 진형을 한 사이클 안에 다시 짜 외곽 함선 4척의 위치를 진형 안쪽으로 한 줄 이동시켰다. 표준 진형 결재 라인을 거스르는 단독 결재였고, 함대 사령관 오라 베스(Ora Vesh)는 처음에 청문회 회부를 검토했다. 항성풍이 함대를 가로질렀을 때, 콜런이 안쪽으로 옮긴 외곽 4척의 거주구는 표준 진형 위치에 있었더라면 인공중력장 전체를 잃을 위치였다.
함대 32척은 모두 같은 인원으로 다음 항성계까지 도착했고, 베스는 청문회를 자진 취하했다. 콜런은 그 후 자기 결재 단말 첫 화면에 함대 인원 명단을 한 줄씩 자동 호출하는 라인을 추가했고, 이 라인은 외곽 함대 다수 참모가 채택한 표준 절차가 되었다. 콜런은 정년 퇴임 날 자기 항로 단말을 신참 참모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다.
외계동역사(外界同譯士)
외계어 동시통역관
외계어를 동시통역하는 자
“이 종족은 침묵 0.4초가 한 단어입니다. 끊지 마세요. 끊으면 모욕이 됩니다.”
외계어 동시통역관은 외계 종족 외교관의 한 회담 옆에서 실시간으로 양쪽 언어·몸짓·침묵의 길이까지 옮기는 전문 통역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번역 모듈과 보조 단말, 한 손에 의례용 작은 메모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종족의 평소 발화 속도·옛 분기 침묵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단어를 잘못 옮겨 작은 종족 한 곳과의 회담이 한 호흡 만에 결렬된 사례가 야사에 남아 있어, 통역관의 메모 단말은 한 페이지에 한 단어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옮김은 큰 조약 문구가 아니라, 양쪽이 처음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의 정확한 음높이 한 줄 위에 있다.
“후대 통역관들은 입사 첫 사이클에 그 0.4초 침묵 녹음을 듣습니다. 한 침묵이 한 단어라는 뜻이지요.”
외계어 동시통역관 베라 이슈(Vera Ishu, 통역사 길드 등록번호 0203번)와 우란 종족(Uran, 침묵 길이로 단어를 구별하는 비인간 종족) 회담의 '0.4초 침묵' 일화는 통역사 자격 시험 청취 실기 첫 문항이다.
우란 의장 카르난(Karnan, 우란 자치 위원회 3대 의장)이 인류 측 외교관 카이라 노벨라(앞서 외계 종족 외교관 일화에 등장한 7대 외교 수석)와의 회담 중 0.4초의 침묵을 한 호흡 더 길게 내밀었다. 인류 측 자동 번역 모듈은 이 침묵을 '발언 종료'로 처리하려 했으나, 이슈는 자기 손목으로 모듈을 한 호흡 차단하고 침묵을 그대로 노벨라에게 옮겼다. 노벨라는 그 침묵을 '한 단어'로 받아들여 한 호흡 더 기다렸고, 카르난은 그 자세에 정중히 다음 한 단어를 더해 회담을 이어갔다.
우란-인류 통상 조약 47조는 그 한 침묵 위에서 결재되었고, 회담 회의록 첫 페이지에는 그 0.4초의 침묵 길이가 정확히 기록되었다. 이슈는 그 후 자기 메모 단말 첫 페이지에 단 한 줄 '침묵 0.4초'만 적어 두는 자기 의례를 평생 가져갔다. 우란 자치 위원회는 이슈를 명예 통역관으로 영구 등재했고, 우란 의사당 한쪽에는 이슈의 메모 단말 사본이 한 호흡씩 보관되어 있다.
항성기상사(恒星氣象師)
항성풍 기상 예보관
항성풍의 기상을 예보하는 자
“내일 새벽 항성풍 3등급, 정거장 외부 작업은 한 호흡 늦추시지요.”
항성풍 기상 예보관은 한 항성계의 태양풍·자기폭풍·우주 방사 수치를 분석해 정거장·함선·식민지에 매일 예보를 결재하는 전문 운용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측복, 어깨에 관측 모듈, 한 손에 정밀 자기 측정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항성의 평소 풍 주기·옛 분기 폭풍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줄 예보가 빠진 작은 식민지 한 곳이 한 시즌 외부 작업을 통째로 잃은 사례가 야사에 남아 있어, 예보관의 한 줄 결재는 늘 한 호흡 더 보수적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폭풍 경보가 아니라, 신참 우주 유영 작업원의 첫 외부 작업 직전 한 줄 안전 등급 위에 있다.
“후대 예보관들은 야간 첫 근무에 그 새벽 예보 로그를 한 줄 옮겨 적습니다. 한 호흡 보수적인 예보가 한 시즌의 외부 작업을 살린다는 뜻이지요.”
알골 항성풍 관측소(Algol Stellar-Wind Observatory, 알골 항성계 외곽 관측 정거장)의 야간 예보관 야잔 모르(Yazan Mor, 단일 관측 라인 19년차)와 식민지 케르단(Kerdan, 인구 800명짜리 농업 정착지)의 '새벽 3등급' 일화는 예보관 길드 신입 교본 첫 사례다.
모르가 평소 1등급으로 평이하게 내리는 예보를 그날 새벽만 자기 손목 진동 감각으로 3등급으로 한 줄 상향 결재했다. 식민 회사 측은 외부 농작업 중단으로 인한 단가 손실에 항의했고, 케르단 자치 위원회도 한 호흡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그 새벽 알골 항성에서는 평소 주기를 벗어난 자기폭풍이 한 사이클 만에 발생했고, 폭풍의 자기장 방사가 케르단 외부 농지를 정면으로 가로질렀다.
만약 외부 농작업이 평소대로 진행되었다면 1세대 정착민 외부 작업원 30명이 자기장 방사에 노출될 위치였다. 케르단은 그날 단가 손실은 입었지만 30명 모두 무사 거주구 안에서 한 호흡을 보냈다. 모르는 그 후 자기 예보 결재 라인에 손목 진동 감각 한 줄을 공식 절차로 추가했고, 알골 관측소 표준 절차로 정착되었다. 모르는 정년 퇴임 날 자기 자기 측정 단말을 신참 예보관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다.
인공중력공(人工重力工)
인공중력 기관사
인공중력을 다스리는 기관사
“거주구 중력 0.98G에서 0.97G로 한 호흡. 이 한 호흡에 신생아 한 명의 첫 걸음이 걸려 있습니다.”
인공중력 기관사는 거대함선·정거장·식민 거주구의 인공중력장 한 곳을 분해·점검·재조정하는 정밀 기관 장인이다. 외형은 합금 작업복, 어깨에 자기장 측정 모듈, 한 손에 정밀 보정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거주구의 평소 중력 주파수·옛 분기 보정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장이 한 호흡을 결재하기 전, 기관사의 한 줄 보정 도장이 먼저 거주구 한 곳의 바닥에 찍혀야 한다. 거주구의 한 호흡이 어긋나면 만 명의 무릎·허리·임신부의 평형감각이 함께 어긋나기에, 기관사의 한 줄 결재는 늘 한 호흡 더 정중하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함선의 작전 중력이 아니라, 신생아 한 명이 처음 일어서는 거주구의 0.97G 한 줄 위에 있다.
“후대 기관사들은 입사 첫 사이클에 그 0.97G 거주구 바닥을 한 번 밟아 봅니다. 첫 걸음의 중력이 평생의 중력이라는 뜻이지요.”
거대함선 트라잔-12(앞서 거대함선 함장 일화에 등장한 모선) 인공중력 기관사 베르단 미르(Berdan Mir, 거주구 8번 자기장 보정 22년차)와 신생아 옐 메이로(앞서 함장 일화에서 트라잔-12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0.97G 첫 걸음' 일화는 기관사 길드 입회식 영상 자료다.
옐이 첫 걸음마를 시작할 시즌, 트라잔-12는 작전 진형 변경으로 거주구 8번의 표준 중력을 1.00G로 일괄 상향하는 결재 라인을 받았다. 미르는 자기 결재 권한으로 거주구 8번만 0.97G로 한 호흡 유지하는 단독 결재를 단행했고, 작전참모 측의 항의를 한 사이클 받았다. 그러나 옐의 산부인과 의무관이 0.97G가 신생아 평형감각 발달에 필수라는 의료 결재를 한 줄 추가하면서, 미르의 단독 결재가 평의회 승인으로 정식화되었다.
옐은 0.97G의 거주구 8번 바닥에서 첫 걸음을 안정적으로 시작했고, 트라잔-12는 그 후 거주구 8번을 신생아 전용 중력 거주구로 영구 등재했다. 미르는 정년 퇴임 날 자기 자기장 측정 모듈을 옐에게 정중히 인도했고, 옐은 25년 뒤 트라잔-12 거주구 8번 인공중력 기관사가 되었다.
정거주방장(停車廚房長)
정거장 식당 주방장
정거장 식당의 주방을 지휘하는 장
“오늘은 무역 상인 셋, 외계 종족 한 분, 사이보그 둘. 양념을 다섯 그릇으로 나눕니다.”
정거장 식당 주방장은 우주항 한 곳의 24시간 식당에서 인간·외계 종족·사이보그가 모두 먹을 수 있는 한 끼를 평생 결재하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조리복, 어깨에 작은 양념 가방, 한 손에 정밀 계량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손님의 평소 알레르기·옛 분기 식단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대 사령보다 주방장의 한 줄 결재가 한 정거장 한 시즌의 분위기를 더 정확히 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연회의 메뉴가 아니라, 신참 무역 상인이 첫 정거장 도착 새벽 세 시에 시킨 한 그릇 위에 있다.
“후대 주방장들은 야간 첫 근무 새벽 세 시에 그 한 그릇을 한 번 끓여 봅니다. 한 그릇의 한 호흡이 손님의 다음 항해를 결정한다는 뜻이지요.”
우주항 정거장 케이르단-3(앞서 정거장 관제 직원 일화에 등장한 정거장)의 24시간 식당 '세 항성 식당(Three-Star Diner)' 주방장 콜라 페로(Kola Pero, 단일 식당 주방 28년차)와 신참 무역 상인 베노 라스트(앞서 관제 직원 일화에서 첫 슬롯 17번 도착자)의 '새벽 세 시 한 그릇' 일화는 정거장 주방장 길드 입회식 영상 자료다.
라스트가 슬롯 17번에 무사 도착한 직후 세 항성 식당으로 들어와 새벽 세 시에 자기 출신 행성의 옛 가정식 한 그릇을 시켰다. 페로는 자기 양념 가방에서 외곽 식민지에서 자란 라스트의 출신 향료 한 줄을 미리 비축해 두었고, 그 한 그릇에 정확한 음높이의 양념을 한 호흡으로 결재했다. 라스트는 그 한 그릇을 받아 한 호흡 묵묵히 먹었고, 식당을 나서며 페로에게 "고향 한 줄을 정거장에서 들었다"고 한마디를 남겼다.
라스트는 그 후 25년간 케이르단-3 도착마다 새벽 세 시 같은 메뉴를 시켰고, 페로의 양념 가방에는 외곽 식민지 출신 손님 200명의 평소 향료 한 줄이 정중히 보관되었다. 페로는 정년 퇴임 날 자기 양념 가방을 신참 주방장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고, 라스트는 자기 함선 함교에 페로의 옛 양념 한 병을 평생 보관했다.
유영보조자(遊泳補助者)
우주 유영 정비 보조
우주 유영 정비를 보조하는 자
“줄 잡으세요. 외부 5분 작업, 안쪽 한 호흡으로 끝냅시다.”
우주 유영 정비 보조는 베테랑 정비공의 함선 외벽 작업을 옆에서 보조하며, 안전줄·공구 전달·산소 잔량을 평생 챙기는 평민 출신 운용자다. 외형은 합금 외골격, 어깨에 보조 공구 가방, 한 손에 정밀 안전줄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외벽 작업의 평소 산소 곡선·옛 분기 안전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정비공이 한 줄 결재를 내리기 전, 보조의 한 줄 안전줄 도장이 먼저 외골격 위에 찍혀야 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외벽 보수가 아니라, 신참 정비공의 첫 외부 작업 직전 한 줄 산소 잔량 점검 위에 있다.
“후대 보조들은 첫 외부 작업 직전 그 줄 한 가닥을 한 번 손으로 잡아 봅니다. 줄 한 가닥이 한 사람의 다음 사이클이라는 뜻이지요.”
화물선 베르타-3(앞서 워프 정비공 일화에 등장한 함선)의 우주 유영 정비 보조 일라르 산드(Ilar Sand, 외벽 작업 보조 라인 8년차)와 신참 정비공 베노 키엘(Beno Kiel, 토마 노렌의 후계 신참)의 '첫 외부 작업' 일화는 보조 길드 입회식 첫 사례다.
키엘이 첫 외부 작업으로 베르타-3 외벽 4번 결합부 점검에 나섰을 때, 산드는 표준 안전줄 한 줄에 자기 결재 권한으로 보조 안전줄 한 가닥을 추가로 결합했다. 키엘이 작업 도중 외벽 결합부에서 미세 진동을 감지해 한 호흡 자세를 잃었을 때, 산드의 추가 보조 안전줄이 그 한 호흡을 정중히 받쳤다. 키엘은 외벽 작업을 표준 시간 안에 마치고 함내로 정중히 복귀했고, 산소 잔량은 정확히 17퍼센트 남아 있었다.
산드는 그 후 신참 정비공의 첫 외부 작업에 보조 안전줄 한 가닥을 추가로 결합하는 자기 규정을 평생 유지했고, 외곽 함선 다수 보조반이 채택한 표준 절차로 정착시켰다. 산드는 정년 퇴임 날 자기 안전줄 단말을 키엘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다. 키엘은 25년 뒤 베르타-3 선임 워프 정비공으로 부임했다.
외계우체부(外界郵遞夫)
외계 우체부
외계로 우편을 전하는 일꾼
“이 별까지 워프 두 번. 편지 한 통, 정중히 모셔다 드리지요.”
외계 우체부는 항성계와 항성계 사이를 작은 단독 우편선으로 다니며, 식민지·정거장·외계 거주지 사이의 편지·소포·옛 사진 한 장을 평생 운반하는 평민 출신 운송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우편 인장과 작은 가방, 한 손에 배송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주소의 평소 도착 시각·옛 분기 배송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역 상인이 일상의 박스를 옮긴다면, 우체부는 한 사람의 안부 한 줄을 옮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외교 우편이 아니라, 외곽 식민지의 한 노인이 손주에게 보낸 옛 사진 한 장의 도착 위에 있다.
“후대 우체부들은 첫 항해 첫 배송에 그 사진 한 장을 한 번 손에 들어 봅니다. 한 줄 안부가 두 항성계를 잇는다는 뜻이지요.”
외계 우체부 셀란 코프(Selan Kof, 단독 우편선 라티르-2 운용 23년차)와 외곽 식민지 무린(앞서 응급 의무관 일화에 등장한 농업 정착지)의 '옛 사진 한 장' 일화는 우체부 길드 신입 교본의 표지 사진이다.
무린의 1세대 정착민 노인 카림 메이로(Karim Meiro, 트라잔-12에서 태어난 옐 메이로의 외할아버지)가 자기 손녀에게 보내는 결혼식 옛 사진 한 장이 우편으로 접수되었다. 사진은 지구 시절 종이 사진 한 장으로, 워프 두 번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기장 노출만으로도 사진면이 손상될 위험이 있었다. 코프는 자기 우편선 라티르-2(Latyr-II, 단독 우편선)의 자기장 차폐 캡슐 한 개를 정중히 비워 그 사진 한 장만 정확히 들어가게 결재했고, 자기장 차폐 결재 단가의 4배를 자기 봉록으로 자진 부담했다.
사진은 무사 도착해 옐의 결혼식 회장 입구 한가운데 걸렸고, 옐은 그 사진 앞에서 한 호흡 묵념했다. 코프는 그 후 옛 종이 사진을 평생 자기장 차폐 캡슐로 옮기는 자기 규정을 가졌고, 외곽 우체부 다수가 이 규정을 채택했다. 코프는 정년 퇴임 날 자기 우편 인장을 신참 우체부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다.
거주수도원(居住水道員)
거주구 수도 점검원
거주구의 수도를 점검하는 원
“B구역 수도 압력 0.02 떨어졌습니다. 한 호흡 안에 잡습니다.”
거주구 수도 점검원은 거대함선·정거장·식민 거주구의 정수·재활용·배수 라인을 매일 점검하는 평민 출신 운용자다. 외형은 합금 작업복, 어깨에 점검 가방, 한 손에 정밀 압력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거주구의 평소 수압 곡선·옛 분기 점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대 사령보다 수도 점검원의 한 줄 결재가 한 거주구 만 명의 한 끼와 한 샤워를 더 정확히 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정수 시설의 점검이 아니라, 신생아의 첫 목욕에 들어가는 한 줄 수온 위에 있다.
“후대 점검원들은 첫 야간 근무에 그 압력 0.02 로그를 한 줄 옮겨 적습니다. 미세한 한 호흡이 만 명의 한 샤워를 결정한다는 뜻이지요.”
정거장 펜드라-4(앞서 세관 검역원 일화에 등장한 정거장)의 거주구 수도 점검원 미라 아룬(Mira Arun, 거주구 B구역 단일 라인 16년차)과 신생아 목욕수 사건의 '압력 0.02' 일화는 점검원 길드 신입 교본 첫 사례다.
펜드라-4 거주구 B구역의 정수 라인 압력이 어느 새벽 평소보다 0.02만큼 미세하게 떨어졌고, 자동 알람은 표준 임계점 미만이라 한 줄도 울리지 않았다. 아룬은 자기 손목 진동 감각으로 그 0.02를 감지해 한 호흡 안에 점검 라인을 단독 결재로 가동했다. 점검 결과 정수 필터 한 곳에서 미세한 미생물 잔존물이 한 사이클 만에 2배로 증식하고 있었고, 그날 새벽 B구역 거주구 산부인과의 신생아 첫 목욕수가 그 라인을 그대로 사용할 시점이었다.
아룬은 자기 결재 권한으로 한 호흡 안에 보조 정수 라인을 한 줄 가동하고, 신생아 목욕수를 정중히 안전 등급으로 회복시켰다. 펜드라-4는 그 후 거주구 정수 라인의 표준 임계점을 0.02 더 보수적으로 조정했고, 외곽 정거장 다수가 이 규정을 채택했다. 아룬은 정년 퇴임 날 자기 압력 단말을 신참 점검원에게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넘겼다.
함내세탁부(艦內洗濯夫)
함내 세탁실 운영자
함내 세탁실을 운영하는 일꾼
“사령관님 작업복은 따로. 인공중력 0.97G 회전으로 한 번 더 정중히 돌립니다.”
함내 세탁실 운영자는 거대함선 한 척의 24시간 세탁실에서 만 명 분량의 작업복·외골격 내피·아이 옷을 매일 결재하는 평민 출신 운영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세탁 띠와 작은 가방, 한 손에 정밀 회전 단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함선의 평소 세탁 주기·옛 분기 회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함장의 한 줄 결재가 작전을 결정한다면, 세탁실 운영자의 한 줄 결재는 그 작전 다음 날 만 명이 입을 작업복의 냄새 한 줄을 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함장의 정복이 아니라, 함내 신생아의 첫 배냇저고리에 들어가는 한 줄 정중한 회전 위에 있다.
“후대 운영자들은 첫 야간 근무에 그 0.97G 회전을 한 번 직접 돌려 봅니다. 만 명의 다음 한 호흡이 한 줄 회전 위에 있다는 뜻이지요.”
거대함선 트라잔-12(앞서 함장·인공중력 기관사 일화에 등장한 모선)의 함내 세탁실 운영자 카로라 뎁(Karola Deb, 거주구 8번 세탁 라인 19년차)과 신생아 옐 메이로의 배냇저고리 일화는 세탁실 운영자 길드 신입 교본 첫 사례다.
옐의 어머니 노라 메이로(Nora Meiro, 트라잔-12 산부인과 의무관)가 함선 출산 직후 자기 손으로 정성 들여 만든 배냇저고리 한 벌을 세탁실에 맡겼을 때, 표준 회전 결재는 1.00G의 강한 회전 라인이었다. 뎁은 자기 결재 권한으로 그 한 벌만 거주구 8번의 0.97G 회전 라인으로 분리 결재했고, 회전 시간을 표준의 절반으로 줄여 정중히 돌렸다. 배냇저고리는 한 올의 손상도 없이 옐의 첫 한 호흡에 맞춰 정중히 인도되었다.
뎁은 그 후 함내 신생아 배냇저고리만을 위한 0.97G 분리 회전 라인을 평생 운영하는 자기 규정을 가졌고, 트라잔-12는 그 라인을 함내 신생아 전용 라인으로 영구 등재했다. 옐은 25년 뒤 자기 첫 항해 자격 인증식 날 그 배냇저고리를 한 번 정중히 펴 보였다. 뎁은 정년 퇴임 날 자기 회전 단말을 옐의 어머니 노라 메이로에게 정중히 인도했고, 노라는 그 단말을 트라잔-12 거주구 8번 세탁실 입구에 한 호흡 묵념과 함께 보관했다.
은하총수(銀河總帥)
은하 연합 총사령관
은하 연합군을 호령하는 총사령관
“전쟁을 끝내는 건 가장 많은 함선이 아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전략이다.”
은하 연합 총사령관은 자유 연합 전체 군사력을 통솔하는 최고 군 지휘관으로, 수십 개 항성계의 방위 전략·함대 배치·외계 종족과의 군사 협약을 단독 결정한다. 그 지위는 연합 의회 선출로 부여되며, 은하 제국의 황제에 대응하는 군사적 균형추이기도 하다. 사령관 본인은 전선에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그의 작전 지시 한 줄이 수십만 병력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연합 전체 함대 지휘관들이 모두 그의 명령 체계 아래 있으며, 작전 변경 권한도 총사령관에게만 있다.
가장 무거운 결정은 교전이 아니라, 교전을 포기하는 결정이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교전에서 철수하는 선택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생존을 만든다는 사실을 오래된 총사령관일수록 더 잘 안다. 역대 총사령관 중 재임 중에 가장 적게 싸운 자가 가장 오래 기억된다는 격언이 연합 군사 학교 입구에 새겨져 있다.
“연합 군사 학교 졸업식 날, 총사령관이 신임 장교들에게 항상 건네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이기는 방법과 내일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를 고른다면?'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질문이라고 합니다.”
은하 연합 삼대 총사령관 이사 타카가와 — 재임 중 단 두 번의 교전만으로 제국과의 이십 년 분쟁을 종결한 총사령관 — 의 일화는 '두 번의 교전'으로 연합 군사 전략 교재 서두에 실려 있다.
이사가 취임했을 때 연합과 제국은 이십 년 분쟁의 열다섯 번째 분기에 있었다. 이사는 취임 후 첫 일 년 동안 교전을 한 번도 지시하지 않았다. 그 일 년 동안 이사가 한 것은 외계 외교 관제사(앞서 차원 게이트 관제사 일화에서 등장한 연합 외교 네트워크) 및 외계 종족 외교관(앞서 외계 종족 외교관 일화 계보)을 통해 제국이 이십 년 분쟁에서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이사의 결론은 제국이 분쟁 지속보다 '명예로운 종결 명분'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사는 그 명분을 만들어 줄 두 번의 교전을 설계했다. 첫 번째는 제국이 이길 수 있는 교전을 의도적으로 연합이 후퇴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제국이 후퇴할 수 있는 교전에서 연합이 전진을 멈추는 것이었다. 두 교전이 완료된 분기에 제국이 협상 신호를 보내 왔다. 이사는 총사령관 퇴임 후 연합 군사 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으며, 취임 첫날 교무실 칠판에 그 질문 하나를 썼다. "오늘 이기는 방법과 내일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를 고른다면?"
항성방위장(恒星防衛將)
항성계 방위 사령관
항성계의 방위를 책임지는 사령의 장
“이 항성계 안에서 가장 많이 알아야 하는 사람이 나다. 가장 많이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나다.”
항성계 방위 사령관은 특정 항성계 전체의 군사 방위를 책임지는 지역 최고 군사 지휘관으로, 항성계 내 행성·궤도 기지·워프 진입 포인트 방어를 총괄한다. 은하 연합 총사령관 또는 은하 제국 황제 직속이며, 해당 항성계 내에서는 민간 행정 총독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외계 종족 접경 항성계에 배치된 사령관은 군사 방위 외에도 외계 외교 조율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어려운 임무는 외부 침공이 아니라, 자기 항성계 내 불만 집단과 외부 세력의 연계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하는 일이다. 외부 적과 싸우기보다 내부를 안정시키는 것이 항성계 방위의 실질적 70%를 차지한다는 것을 오래된 사령관은 경험으로 안다.
“항성계 방위 사령관 임관 첫날 배우는 게 전술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다들 들어봤죠. 그럼 뭔지 아세요? 자기 항성계 내 민간 청원 처리 기록 읽기입니다. 청원 내용이 곧 방위 취약점이라고요.”
헤르메스-7 항성계(앞서 항성 관측 연구원 첸 웨이 일화의 그 항성계) 초대 방위 사령관 루카스 베야르 — 타르나기(앞서 외계 종족 외교관 일화 계보에서 등장한 외계 종족) 접경 항성계에서 이십 년간 한 건의 교전도 없이 평화 방위 기록을 세운 단 한 명의 사령관 — 의 일화는 '청원 첫 줄'로 항성계 방위 사관학교 교재에 실려 있다.
루카스는 부임 첫 달에 헤르메스-7 항성계 전체 민간 청원 기록 오 년치를 직접 읽었다. 청원 내용 중 반복 등장하는 항목은 타르나기 교역 경로 봉쇄에 대한 민간 상인들의 불만이었다. 루카스는 군사 방위 예산 일부를 타르나기 교역 협력 지원으로 전환해 차원 게이트 관제사(앞서 차원 게이트 관제사 일화에서 등장한 교역 경로 관리 인력)와 협력해 교역 경로를 재개했다. 타르나기와의 교역이 재개된 이후, 접경 지역 긴장이 삼 개월 만에 실질적으로 해소됐다.
루카스의 방위 예산 전용 결정은 연합 군사부에서 최초로 징계 청문 대상이 됐지만, 타르나기 접경 이십 년 평화 기록이 완성됐을 때 청문 기록이 공적 기록으로 전환됐다. 루카스는 임기 종료 후 작성한 회고서 첫 줄에 "방위는 무기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이웃을 이해하는 일이다"고 적었으며, 그 한 줄이 항성계 방위 사관학교 교훈이 됐다.
자원조정사(資源調整士)
우주 자원 배분 조정관
우주 자원의 배분을 조정하는 자
“자원은 중립이다. 누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계산하는 사람이 중립이 아닐 뿐이다.”
우주 자원 배분 조정관은 은하 연합 또는 다자 행성 협약에 따라 복수의 행성·식민지·항성계 간에 에너지·광물·식량·의약품 등 필수 자원의 배분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자원 관리 전문 행정관으로, 메가코프·행성 정부·외계 종족 대표가 모두 참여하는 다자 자원 회의를 주관한다. 자원 배분 결정이 잘못됐을 때 그 피해는 수십만 명의 식민지 주민에게 직결되기 때문에, 이 자리는 기술적 역량만큼이나 정치적 독립성이 핵심 요건이다. 어떤 진영의 로비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조정관의 첫 번째 자격 조건이다.
가장 어려운 분기는 자원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자원이 충분한데 모두가 더 원할 때다. 부족을 나누는 것보다 충분함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 이 직종 경험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자원 배분 조정관 중에서 오래 살아남는 분들한테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대요. 회의 전에 의제 자료를 읽는 게 아니라, 지난 분기 배분에서 불만을 제기한 측의 자료를 먼저 읽는다고요.”
은하 연합 자원 조정청 초대 조정관 아잠 후세이니 — 제국·연합 동시 참여 다자 자원 협약을 단독 협상 설계로 완성한 최초의 조정관 — 의 일화는 '불만 목록 첫 줄'로 자원 행정 교재 사례집에 실려 있다.
제국과 연합이 헬리오스-9 인근 소행성 광구(앞서 우주 광부 한쇠 일화의 그 광구 일대) 자원을 두고 분기마다 충돌할 때, 아잠은 협상 시작 전 양측이 제기한 불만 기록 전체를 한 번에 읽었다. 불만 목록 첫 줄은 양측 모두 자원 배분이 아니라 '배분 과정에서의 정보 비대칭'이었다. 아잠은 자원 수치 배분표 대신 양측 모두에게 동일한 전체 광구 조사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을 협약 첫 조항으로 제안했다.
데이터 공개 이후 양측의 배분 요구가 실질적으로 조율됐고, 협약은 한 달 안에 완성됐다. 아잠의 협약 설계는 '정보 공개 우선 자원 협약 모델'로 다자 자원 행정 교재 첫 챕터에 수록됐다. 아잠은 협약 이후 자원 조정청 내부에 '불만 목록 먼저 읽기' 원칙을 공식 업무 지침으로 등재했으며, 그 지침은 신임 조정관 교육 첫날 교재 첫 문장이다.
다종교류사(多種交流士)
다종족 교류 외교관
다종족 교류를 잇는 외교관
“외계 종족이 말할 때 내가 먼저 답하면 지는 거다. 그들이 다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외교의 시작이다.”
다종족 교류 외교관은 인류·안드로이드·외계 종족 등 두 종 이상이 참여하는 다자 외교 협상·교역 협약·공존 협약 등을 전담하는 외교 전문관으로, 단일 종족 외교와 달리 동시에 세 이상의 다른 의사소통 방식·문화적 배경·가치 체계를 조율해야 한다. 외계어 능통·비언어 신호 분석·실시간 다언어 협상이 핵심 기술이며, 이 자격을 갖춘 외교관은 은하 전역에서 극히 드물다. 외계 외교 전권대사가 특정 종족 담당이라면, 다종족 교류 외교관은 여러 종족이 동시에 테이블에 앉는 상황을 전담한다.
가장 어려운 협상은 두 종족이 서로의 침묵을 오해하는 순간이다. 어떤 종족에게 침묵은 동의이고, 어떤 종족에게 침묵은 거절이다. 그 차이를 실시간으로 번역하는 것이 이 직종의 핵심 기술이다.
“다종족 교류 외교관 교육 마지막 날에 강사가 가르치는 게 통역 기술이 아니에요. 각 종족이 회의실에서 침묵할 때 어떤 방향을 보는지를 외우는 거래요.”
타르나기·인류 연방·안드로이드 자치 행성 셀레나 삼자 교역 협약(앞서 외계 종족 외교관 및 안드로이드 여왕 리리아나 일화에 등장한 각 세력) 조율을 맡은 다종족 교류 외교관 레온 카보드 — 세 종족이 참여한 단일 협약 최단 완성 기록을 보유한 외교관 — 의 일화는 '세 방향의 침묵'으로 다종족 외교 교재 핵심 사례로 올라 있다.
협상 사흘째, 타르나기 대표가 두 시간 동안 침묵했다. 인류 연방 대표는 거절 신호로 해석했고, 리리아나는 동의 신호로 해석했다. 레온은 두 해석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타르나기에게 그 침묵은 '제안을 감각적으로 처리하는 중'이었다. 레온은 두 대표에게 조용히 메모 한 줄을 전달했다. "타르나기는 지금 듣고 있습니다. 두 시간이 그들의 결재 시간입니다."
두 시간 후 타르나기 대표가 발언했고, 협약은 다음 날 완성됐다. 레온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종족 외교 회의실 벽에 각 종족의 침묵 의미 요약표를 한 장 붙이는 것을 자기 회의실 기본 설정으로 삼았으며, 그 요약표가 다종족 외교 교재 부록으로 수록됐다.
의료함장(醫療艦長)
이동 의료 함선 함장
이동 의료 함선을 이끄는 함장
“이 함선은 전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전장에 가야 하는 함선이다.”
이동 의료 함선 함장은 전쟁·재난·행성 환경 붕괴 등 긴급 상황에서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전용 의료 함선의 지휘관으로, 전투 함선과 달리 어떤 진영에도 공격받지 않는 국제 의료 협약을 따르며 운용된다. 군사 구역·난민 구역·외계 종족 접경 지역 가리지 않고 요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동한다. 함선 내부는 수술실·집중 치료실·외계 생물 격리 병상·정신 건강 상담실까지 갖춘 소형 종합 병원 규모다.
이 직책의 가장 어려운 순간은 교전 지역에서 의료 협약이 한쪽 진영에 의해 위반되는 경우다. 그 순간에도 함선을 의료 임무에 유지할지, 상황을 판단해 철수할지를 함장 단독으로 결정해야 한다. 의료 협약은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종이를 지키는 것은 함장의 판단이다.
“이동 의료 함선 함장들이 임관 첫날 상징으로 받는 게 있어요. 총이 아니라 의료 협약 원문 한 장입니다. 그 한 장을 함선 집무실 창가에 붙여 두고 임무 내내 보는 게 전통이래요.”
연합 이동 의료 함선 메르시-3호(Mercy-3, 자유 연합 외곽 분쟁 지원 전담 의료 함선) 삼대 함장 다비드 오세이 — 교전 구역 의료 협약 위반 상황에서 단 한 번도 임무를 중단하지 않은 유일한 함장 — 의 일화는 '협약 한 장'으로 의료 함선 운용 지침서 서두에 인용된다.
제국 남부 교전 구역에서 메르시-3가 의료 임무 수행 중, 한쪽 진영의 함선이 의료 협약을 무시하고 메르시-3 방향으로 포격 경로를 열었다. 함교 항법사들이 철수를 건의했을 때, 다비드는 함선 집무실 창가 의료 협약 원문 한 장을 내려 보며 삼십 초 침묵했다. 그 삼십 초 후 다비드의 결정은 임무 유지였다. 행성 봉쇄 작전참모(앞서 남성 세계관 행성 봉쇄 작전참모 율리안 크라우스 계보의 후임 참모)가 메르시-3 방향 포격 경로를 외교 채널로 차단하는 데 성공한 것은 다비드의 결정 후 이십 분이었다.
메르시-3는 그날 이후 두 분기 동안 임무를 완료했으며, 다비드는 임기 종료 후 그 의료 협약 원문 한 장을 액자에 담아 메르시-3 함교에 영구 설치했다. 이동 의료 함선 함장 임관식에서는 그날 이후 메르시-3 함교 사진과 함께 다비드의 삼십 초를 교육 사례로 사용한다.
대기조성사(大氣造成師)
행성 대기 조성 기사
행성 대기를 빚는 기사
“공기를 만든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한 번도 숨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다.”
행성 대기 조성 기사는 인류 거주가 불가능한 행성에 인류 호흡 가능 대기를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테라포밍(Terraforming, 행성 환경을 인류 거주에 적합하게 변환하는 기술) 전문 기술자로, 대기 성분 분석·산소 생성 플랜트 설치·온실가스 균형 조절 등을 담당한다. 하나의 행성 대기를 조성하는 데 최소 수십 년이 걸리며, 기사 한 명이 여러 행성을 동시에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심어 놓은 대기 성분이 후대에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 직종의 가장 특이한 보람은, 자기가 심어 놓은 첫 번째 산소 데이터가 오십 년 후 어린이의 첫 숨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본인이 살아 있을 때 그 어린이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 기록이 이 직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다.
“행성 대기 조성 기사들이 새 행성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꼭 한다는 게 있어요. 첫 번째 대기 측정 데이터에 자기 이름 대신 그 행성의 이름을 먼저 적는다고요. '이 행성이 주인이고, 나는 잠깐 돕는 사람이다'라는 뜻이래요.”
행성 테라포밍 기사(앞서 행성 테라포밍 기사 일화에 등장한 기사 계보의 대기 분야 전문가) 선임 계보 출신 행성 대기 조성 기사 히로시 나카가와 — 지금까지 대기 조성 설계를 진행한 행성 수가 가장 많은 기사 — 의 일화는 '첫 숨 기록'으로 대기 조성 기술 사례집에 수록되어 있다.
히로시가 첫 번째로 대기 조성을 시작한 행성 알페라-9(Alfera-9, 은하 외곽 무인 암석 행성)의 첫 대기 측정 데이터가 인류 호흡 임계치를 넘긴 것은 히로시가 은퇴한 지 삼 년 후였다. 히로시는 그 데이터 보고를 전직 동료로부터 통신으로 받았고, 그날 식민지 개척 공사(앞서 행성 개척 총감 일화에 등장한 식민 개척 기관)가 알페라-9 첫 이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주 첫 해에 태어난 첫 번째 알페라-9 출생 아이의 첫 숨 기록은 식민지 공사 역사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 기록 옆에는 히로시의 첫 번째 대기 측정 데이터 수치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히로시는 그 전시를 자기 은퇴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장 방문해 보았으며, 그 날 인터뷰에서 "공기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행성이 받아준 것"이라고 한 줄만 말했다.
중성탐험자(中性探險者)
중성자성 탐사 대원
중성자성을 탐사하는 대원
“중성자성(엄청난 밀도로 압축된 죽은 별의 잔해) 가까이 간다는 건, 중력이 모든 규칙을 바꾸는 곳에 간다는 뜻이다. 거기서 돌아온다는 건 규칙을 다시 배운다는 뜻이고.”
중성자성 탐사 대원은 죽은 별의 잔해로 이루어진 극고밀도 천체인 중성자성 주변을 탐사하는 극한 환경 탐사 전문가로, 강한 방사선·극한 중력장·자기장 이상 등 일반 우주 공간의 수백 배에 달하는 위험 환경에서 과학 데이터를 수집한다. 특수 제작 탐사 캡슐과 방호 장비 없이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며, 단일 탐사 임무에서 한 대원이 처리하는 위험 대응 수가 일반 함선 탑승 대원보다 열 배 이상 많다. 은하 역사에서 이 자격을 보유한 탐사 대원의 총수는 이백 명을 넘지 않는다.
이 직종의 가장 큰 매력은, 인류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물리 현상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것이다. 그 매력이 위험을 무릅쓰게 만든다는 사실을 본인들도 잘 알지만, 그래서 이 직업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한다.
“중성자성 탐사 대원들이 탐사 출발 전 꼭 하는 게 있다더군요. 방호 장비 최종 점검이 아니에요.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서 밥 한 번 먹는 거래요. 돌아와서 또 먹겠다는 다짐이라고 합니다.”
소행성 광부(앞서 소행성 광부 일화에 등장한 광부 계보의 은퇴 후 탐사 지원 인력) 출신 중성자성 탐사 대원 페리 오코 — 단일 탐사자 기준 최다 중성자성 접근 기록을 보유한 탐사 대원 — 의 일화는 '일곱 번의 귀환'으로 탐사 대원 교육청 교재 위기 대응 챕터에 실려 있다.
페리는 일곱 번의 중성자성 접근 탐사를 완료했으며, 그 중 세 번은 탐사 장비 부분 고장 상황에서 수동 조종으로 귀환했다. 세 번의 수동 귀환 기록은 중성자성 탐사 비상 조종 교범의 실례 챕터에 모두 수록됐다. 페리는 일곱 번째 탐사 귀환 후 탐사 대원 교관직을 자원했고, 교관 취임 첫날 신참들에게 "출발 전 식당은 어디 가냐"고 물었다. 신참들이 왜 묻냐고 하자 페리는 "같이 먹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 페리의 교관 수업은 항상 식당 점심으로 시작됐으며, 페리가 은퇴할 때 신참 대원들이 은퇴 기념으로 교관 수업 첫날 간 식당에서 같이 밥 한 끼를 샀다. 탐사 대원 교육청 교재 서두에는 페리가 한 줄만 쓴 메모가 인용되어 있다. "돌아오는 것이 탐사다."
궤도청부(軌道淸夫)
우주 쓰레기 궤도 처리사
우주 쓰레기를 궤도에서 처리하는 일꾼
“우주를 청소한다. 영웅적인 일처럼 들리지 않겠지만, 청소가 안 되면 워프 항로가 닫힌다.”
우주 쓰레기 궤도 처리사는 행성 궤도·항성계 내 항로·정거장 주변에 부유하는 폐기 함선 잔해·발사체 파편·비기능 위성 등 우주 잔해물을 수집·해체·궤도 이탈 처리하는 청소 전문 기술자로, 우주 청소 작업원보다 고도화된 기술과 항법 능력이 요구된다. 우주 잔해물 하나가 시속 수만 킬로미터로 이동하며 함선 또는 궤도 시설에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직종은 워프 항로 안전과 직결된다. 처리 가능한 잔해물의 크기·성분·궤도 분류 자격이 있어야 독립 처리 임무를 받을 수 있다.
가장 바쁜 시기는 대규모 함대 교전 후다. 교전에서 파괴된 함선 잔해가 항로에 대량 유입되는 분기에는 처리 임무 대기 목록이 몇 달치씩 쌓인다. 전쟁 후 가장 먼저 바빠지는 직종이 이 직종이라는 말이 있다.
“우주 잔해 처리사들이 교전 후 첫 임무를 받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잔해 목록 분류가 아니래요. 어떤 함선 잔해인지 한 줄씩 확인하는 거래요. 그 함선에 누가 탔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은하 연합 궤도 처리청 수석 처리사 아타 멘사 — 케레스 교전(앞서 핵융합로 기관장 보리스 일화와 행성 봉쇄 작전참모 율리안 일화에서 등장한 그 교전) 후 잔해 처리 임무를 단독 팀으로 가장 빠르게 완료한 처리사 — 의 일화는 '함선 한 줄 기록'으로 처리사 교육청 교재에 실려 있다.
케레스 교전 후 아타의 팀은 파괴된 함선 잔해 이백칠십 건을 처리해야 했다. 아타는 임무 시작 전, 이백칠십 건 각각에 어느 함선 소속인지를 한 줄씩 기록하는 데 이틀을 썼다. 팀원들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아타는 "우리가 처리하는 건 쓰레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함선이었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틀 후 실제 처리 임무에서 아타의 팀은 이백칠십 건을 통상 처리 기간의 절반에 완료했다.
아타의 기록 방법은 팀 전체가 처리 대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한 덕분에 실수 없이 분류·처리했기 때문이라는 사후 분석이 나왔고, 그 방법이 처리청 표준 임무 시작 절차에 포함됐다. 처리청 교재 서두에는 아타의 한마디가 인용되어 있다. "우주를 청소하는 건 우주를 기억하는 일이다."
함내에이아이공(艦內AI工)
함선 AI 관리 엔지니어
함선 AI를 관리하는 엔지니어
“AI가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AI가 틀렸을 때 아는 사람이 나 하나뿐인 상황이 가장 무섭다.”
함선 AI 관리 엔지니어는 전함 또는 대형 함선의 항법·무장·생명유지·통신 시스템을 제어하는 함선 탑재 인공지능의 성능 유지·오류 감지·업데이트·비상 전환을 담당하는 기술 전문가로, 함선의 AI 시스템 전체를 책임진다. AI가 정상 작동할 때는 가장 조용한 직종이지만, AI 이상이 발생하면 함선 전체가 그 한 명에게 달린다. 전투 중 AI 오류는 함선 전체 기동 불능과 동일한 의미이므로, 이 직종은 기관장만큼 높은 긴장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 직종의 가장 어려운 기술은 AI가 '오류를 보고하지 않는 오류' — 즉 AI 자체가 자기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 — 를 인간 엔지니어가 먼저 발견하는 것이다. 그 능력이 이 직종 최고 등급 엔지니어를 가르는 기준이다.
“함선 AI 관리 엔지니어 선임들이 신참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다는 게 AI 조작법이 아니에요. AI가 침묵할 때 어떤 침묵인지를 구분하는 법이래요. 말하는 AI보다 침묵하는 AI가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코어 데이터 큐레이터(앞서 코어 데이터 큐레이터 일화에 등장한 함선 AI 데이터 관리 계보) 계보 출신 함선 AI 관리 엔지니어 사라 오플레이 — 단일 함선 AI 운용 오류 제로 기록을 십오 년간 유지한 유일한 엔지니어 — 의 일화는 'AI 침묵의 종류'로 함선 AI 공학 교재 이상 탐지 챕터에 실려 있다.
거대함선 트라잔-12(앞서 함내 세탁실 운영자 일화의 그 함선) AI 시스템이 일상 운용 중 특정 항법 채널에서만 극히 작은 응답 지연이 발생했을 때, 표준 오류 탐지 시스템은 정상으로 보고했다. 사라는 그 0.003초 지연이 오류 보고 없이 반복됨을 발견하고 AI 핵심 학습 데이터 전체를 재점검했다. 결과적으로 AI 항법 판단 기준이 되는 학습 데이터 일부가 구형 항로 기록으로 갱신되지 않은 상태였고, AI 자체는 그것을 오류로 인식하지 않았다.
사라는 그 상황을 'AI의 자기 인식 한계'로 정의하고, 발견 즉시 전체 시스템 학습 데이터 갱신 프로토콜을 작성했다. 그 프로토콜은 은하 연합 함대 전체 함선 AI 관리 표준에 추가됐으며, 사라는 프로토콜 이름을 자기 이름 대신 '트라잔-12 일지 갱신'으로 등재했다. AI 공학 교재 이상 탐지 챕터 첫 문장은 사라의 발언이다. "AI가 침묵하면 거기를 먼저 봐라."
항성도공(恒星圖工)
항성계 지도 제작자
항성계의 지도를 그리는 자
“지도는 내가 그리지만, 그 지도로 길을 찾는 건 나와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사람이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그린다.”
항성계 지도 제작자는 탐사선·관측 위성·워프 항로 측량 데이터를 종합해 특정 항성계 또는 은하 일부 구역의 정밀 공간 지도를 제작하는 측지(測地) 전문 기술자로, 함선 항법 데이터베이스·워프 항로 등록청·외계 종족 외교 협약 경계 확인 등에 필수 자료를 공급한다. 지도 오류 하나가 함선 항법 사고·워프 좌표 오류·영토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 직종의 정밀도 기준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지도 한 장을 완성하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 직종의 가장 이상한 사실은, 은하에서 가장 정밀하게 공간을 아는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좁은 제도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직접 보지 못한 공간을 가장 정확하게 그리는 사람이라는 아이러니가 이 직업에 어울리는 수식어다.
“항성계 지도 제작자들이 새 지도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꼭 하는 게 있어요. 그 항성계에 대한 기존 오류 기록을 먼저 읽는 거래요. 남이 틀린 곳에서 내가 다시 틀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은하 측량청(앞서 워프 항로 측량사 압둘 카림 일화에 등장한 측량 기관) 수석 지도 제작자 미레이유 뒤부아 — 리마 암흑대(앞서 암흑물질 연구 함장 오스발도 리마 일화에서 명명된 구역) 최초 공식 지도를 완성한 지도 제작자 — 의 일화는 '오류 없는 첫 지도'로 측지 공학 교재에 실려 있다.
리마 암흑대 최초 공식 지도 작업에서, 미레이유는 압둘 카림의 수동 항법 계산 노트(앞서 워프 항로 측량사 일화의 그 노트)와 항성 관측 연구원 첸 웨이의 스펙트럼 복원 데이터를 동시에 참조하며 지도 제작에 착수했다. 두 데이터 간 좌표 불일치 지점이 열일곱 곳이었는데, 미레이유는 두 데이터를 모두 버리지 않고 현장 추가 관측을 신청해 열일곱 곳을 직접 재확인했다.
지도 완성까지 일 년이 걸렸고, 리마 암흑대 공식 지도는 이후 워프 항로 등록청에서 정확도 최고 등급을 받았다. 미레이유는 지도 완성 후 표지 한쪽에 열일곱 곳의 재확인 기록 번호를 모두 적어 두었으며, 그 기록은 측지 교재 오류 재확인 챕터의 표준 예시로 수록됐다. 측지 공학 신참들은 임관 첫날 그 열일곱 번의 목록을 읽으며 교육을 시작한다.
은하집행관(銀河執行官)
은하 평화 집행관
은하 평화를 지키는 집행관
“평화 협정은 서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명 이후 매일매일의 집행으로 완성된다.”
은하 평화 집행관은 다자 평화 협정이 체결된 후 그 협정의 실질적 이행을 감시·중재·집행하는 최고 감시 기구의 수장으로, 어떤 국가나 진영에도 소속되지 않는 완전 독립 기구로 운용된다. 협정 위반 사항 조사·중재 회의 소집·위반 제재 집행이 핵심 권한이며, 그 권한은 은하 제국·자유 연합·외계 종족 모두가 동의한 협약에서 발생한다. 협정 위반 제재는 군사적 조치가 아닌 외교적·경제적 수단으로만 집행된다는 원칙이 이 기구의 존재 근거다.
이 직책의 가장 어려운 순간은 협정 위반이 명확하지만 제재 적용이 또 다른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때다. 법과 평화가 충돌하는 그 한 순간을 가장 자주 마주하는 자리이며, 그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 이 직책의 핵심 역량이다.
“은하 평화 집행관 자리에 있었던 분들한테 들은 말이 있어요. 이 자리에서 가장 자주 하는 일이 집행이 아니에요. 기다리는 거래요. 위반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집행보다 훨씬 길다고요.”
은하 평화 집행 기구 초대 집행관 아요 아데요미 — 최초의 다자 은하 평화 협정 이후 이십 년간 단 한 건의 협정 붕괴도 없이 기구를 운용한 단 한 명의 집행관 — 의 일화는 '기다리는 이십 년'으로 은하 외교 학회 기조 강연에서 인용된다.
은하 연합과 제국 간 평화 협정(앞서 은하 연합 총사령관 이사 타카가와 일화에서 완성된 그 협정) 체결 후, 아요는 협정 위반 가능성이 높은 구역으로 분류된 헬리오스-9 인근 소행성 광구 분쟁 지대를 최우선 감시 대상으로 지정했다. 삼 년 동안 여섯 번의 경미한 위반 의심 사례가 발생했을 때, 아요는 모두 즉각 제재 대신 양측 대표를 개별 면담하는 방법으로 해소했다. 그 중 두 번은 위반 당사자가 협정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였고, 세 번은 협정 해석 차이였으며, 한 번만 의도적 위반 시도였다.
아요는 그 한 건의 의도적 위반 시도를 제재 대신 기구 전체 협정 교육 세션을 개최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으며, 그 세션은 이후 은하 평화 기구의 정기 교육 행사로 자리 잡았다. 아요의 이십 년 운용 기록은 기구 내부 연간 보고서에 모두 보존되어 있으며, 후대 집행관들은 취임 첫날 아요의 이십 년 보고서 서두 한 페이지를 먼저 읽는 의례를 따른다.
위기대응장(危機對應將)
식민지 위기 대응 팀장
식민지 위기에 맞서는 대응 팀장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뛰는 게 아니다. 뭐가 위기인지를 한 호흡 안에 정확히 아는 것이다.”
식민지 위기 대응 팀장은 외곽 식민 행성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질병 창궐·환경 붕괴·외계 생물 침입 등 다양한 위기 상황에 즉각 투입되는 긴급 대응 팀의 현장 총지휘관으로, 민간 구조·의료 지원·행성 안전 통제·주민 대피를 동시에 진행한다. 팀 구성원은 의무관·엔지니어·통신 전문관·외계 생물 분석관이 혼합되며, 팀장은 각 분야 전문가의 판단을 종합해 실시간 결정을 내린다. 은하 연합 위기 대응청 소속이지만, 현장에서는 총독·군 지휘관과도 독립적으로 협력한다.
가장 어려운 현장은 위기 유형이 두 가지 이상 동시에 발생할 때다. 환경 붕괴와 외계 생물 침입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 팀이 두 가지를 대응해야 할 때, 팀장의 판단력이 팀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다.
“식민지 위기 대응 팀장 경험자들이 신임 팀장에게 공통으로 하는 조언이 있어요. 팀원 이름을 가장 먼저 외우라고요. 현장에서 이름을 부르는 팀장과 번호를 부르는 팀장의 차이가 바로 팀 생존률 차이라고 합니다.”
은하 연합 위기 대응청 이대 팀장 로한 굽타 — 외계 생물 침입·지형 붕괴·기압 이상 삼중 위기가 동시 발생한 케레스 광구(앞서 우주 광부 한쇠 일화의 그 광구) 비상 사태를 사십팔 시간 안에 종결한 유일한 팀장 — 의 일화는 '삼중 위기의 사십팔 시간'으로 위기 대응 교범 핵심 사례에 실려 있다.
케레스 광구 삼중 위기가 발생했을 때, 로한의 팀에는 여섯 명이 있었다. 로한은 현장 도착 삼 분 안에 여섯 명의 이름과 각자의 전문 분야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앞서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 일화에 등장한 대응 전문가)이 생물 침입 경로를 확인하는 동안, 로한은 행성 지질 폭파 기사(앞서 남성 세계관 행성 지질 폭파 기사 일화의 그 기술 계보)에게 지형 붕괴 차단 폭파 설계를 요청했다. 두 임무가 동시에 진행되는 동안 로한은 의무관과 함께 기압 이상 대피 경로를 직접 설계했다.
사십팔 시간 후 세 가지 위기가 모두 해소됐을 때, 로한은 팀원 여섯 명과 함께 케레스 광구 정거장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 식사 자리에서 로한이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이름 덕분에 됐어요." 위기 대응청 교범은 그 사례를 '팀원 이름이 전술 자산이다'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광물분류부(鑛物分類夫)
소행성 광물 분류원
소행성 광물을 분류하는 일꾼
“이 돌멩이 하나가 어느 행성 지각 성분인지 맞히는 게 이 직업의 재미다. 틀리면 선임에게 점심을 산다.”
소행성 광물 분류원은 소행성 광구 또는 우주 광업 기지에서 채굴된 원석을 종류·순도·함량별로 분류하고 등록하는 작업을 담당하는 현장 작업원으로, 광물 성분 분석 단말·표준 분류 코드·중량 측정 장비를 이용해 매일 수백 건의 분류 작업을 수행한다. 고도로 자동화된 직종이지만, 희귀 광물이나 미분류 외계 소재가 섞인 경우 숙련 분류원의 눈과 경험이 자동화 시스템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소행성 광부와 함께 가장 기본적인 광업 현장 직종이다.
이 직종의 가장 독특한 기술은 분류 코드 없이 돌 한 조각을 보고 성분을 맞히는 경험 기반 직감이다. 그 직감이 쌓이는 데 대략 삼 년이 걸리며, 삼 년이 넘으면 대부분 다른 광업 직종으로 이동한다. 삼 년 이상 남는 사람은 그 직감이 좋아서 남는다.
“소행성 광물 분류원 중에 가장 오래 한 분들한테 공통적으로 있는 버릇이 있다더군요. 분류 코드를 치기 전에 잠깐 돌을 손에 들어보는 거래요. 기계보다 손이 먼저 안다고 합니다.”
케레스 광구(앞서 우주 광부 한쇠 일화의 그 광구) 오 구역 소행성 광물 분류원 이그나시오 카르바할 — 삼십오 년간 케레스 광구 단일 현장에서 분류 오류 제로 기록을 보유한 유일한 분류원 — 의 일화는 '손으로 아는 것'으로 광업 현장 야사에 전해진다.
이그나시오가 삼십오 년 분류 경력 중 단 한 번, 자동 분류 시스템과 다른 판정을 내린 날이 있었다. 그날 분류한 소재는 우주 유물 복원가(앞서 여성 세계관 우주 유물 복원가 마리암 살레 일화에서 언급된 미분류 외계 소재와 유사한 성분 계보) 현장 분석팀이 베가-7 잔해 구역에서 수습해 온 파편이었다. 자동 시스템은 철-규소 합금으로 분류했지만, 이그나시오는 손으로 들어보는 순간 그것이 알려진 어떤 광물과도 중량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그나시오는 '미분류' 코드로 별도 보관 처리했고, 이후 외계 유물 전문 분석팀이 그것이 인류 기술로 제조 불가능한 합금임을 확인했다.
이그나시오는 그 발견에 대해 별도의 보고를 하지 않았지만, 분류 기록지에 "손에서 익숙하지 않은 무게를 느꼈음"이라는 한 줄을 남겼다. 그 한 줄이 외계 유물 분석 교재 '이상 소재 최초 발견 경위' 챕터 첫 사례가 됐다.
성간연락사(星間連絡士)
행성간 연락 통신사
행성 간 연락을 잇는 통신사
“메시지 한 줄이 행성 하나에 닿는 데 몇 초가 걸리는지 알아요? 나는 그 몇 초를 책임진다.”
행성간 연락 통신사는 항성계 내 또는 항성계 간 실시간·지연 통신을 처리하는 통신 전문 운용원으로, 워프 통신 중계 기지·함선 통신실·행성 통신 허브에서 근무하며 공공 통신·군사 통신·민간 긴급 통신을 모두 처리한다. 통신 암호화·대역 배분·긴급 통신 우선 처리가 핵심 업무이며, 특히 교전 지역·재난 지역·워프 불가 지역의 통신을 우회 경로로 연결하는 능력이 고급 기술이다. 은하 규모에서 '연락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직종의 운용 덕분이다.
이 직종의 가장 바쁜 순간은 대규모 재난이나 교전 직후 통신 과부하가 걸리는 시기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통신하려는 순간, 가장 중요한 통신을 가장 먼저 연결하는 판단이 이 직종 최고 기술이다.
“행성간 연락 통신사들이 교전·재난 직후 통신 과부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연결하는 통신이 뭔지 아세요? 군사 명령이 아니에요. 의료 응급 요청이래요. 그다음이 대피 지시고요.”
워프 통신사(앞서 워프 통신사 일화에 등장한 통신 기술 계보) 선임 계보 출신 행성간 연락 통신사 안드리아나 로페스 — 케레스 교전 당시 통신 과부하 상황에서 이동 의료 함선(앞서 이동 의료 함선 함장 다비드 오세이 일화의 메르시-3) 응급 통신을 최우선 연결한 통신사 — 의 일화는 '우선순위 한 줄'로 통신 운용 교재에 실려 있다.
케레스 교전 직후 통신 과부하가 발생했을 때, 안드리아나의 통신 패널에 동시에 쌓인 연결 요청은 이백 건이 넘었다. 안드리아나는 삼 초 안에 이백 건을 의료·대피·군사·민간으로 분류했고, 첫 번째로 연결한 것은 메르시-3의 의료 응급 요청이었다. 그 연결이 완료된 이십 분 후, 메르시-3는 교전 부상자 수용을 시작했다.
안드리아나는 그날 자기 통신 운용 기록에 "우선순위 결정 기준: 사람 먼저"라는 한 줄을 적었고, 그 한 줄이 통신 운용 교육청 표준 처리 기준 첫 번째 조항으로 채택됐다. 통신사 교재에는 그 한 줄이 표지 안쪽에 인쇄되어 있다.
우주건축사(宇宙建築士)
우주 건축 설계사
우주의 구조물을 설계하는 자
“지상에서 건물을 짓는 건 중력이 도와준다. 우주에서는 내가 중력을 대신해야 한다.”
우주 건축 설계사는 우주 정거장·궤도 거주 모듈·소행성 지하 기지·행성 간 연결 터미널 등 우주 공간에 위치하는 구조물의 건축 설계를 전담하는 공학 설계 전문가로, 진공 환경·무중력·방사선·극한 온도 등 지상에 없는 모든 변수를 설계 단계부터 고려해야 한다. 지상 건축보다 변수가 열 배 이상 많으며, 모든 구조물이 자체 생명유지 기능을 내포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상 건축과 근본적으로 다른 설계 철학이 요구된다. 설계 한 줄이 그 구조물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과 직결된다.
이 직종의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수년의 설계 끝에 최초 거주자가 입주하는 날이다. 설계사가 그 순간을 직접 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 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직업을 버티게 한다.
“우주 건축 설계사들이 설계 도면 최종 승인 전에 꼭 한다는 게 있어요. 도면 위에 가상의 거주자 한 명을 놓고 하루 동안 그 사람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따라가 보는 거래요. 그 사람이 불편한 공간이 있으면 그 부분을 다시 설계한대요.”
오메가 정거장(앞서 무중력 건설 인부·정거장 경비원·꽃집 주인 일화에 등장한 그 정거장) 7구역 최초 설계사 나지 아흐마드 — 오메가 정거장 7구역 설계 시 거주자 동선 시뮬레이션을 은하 최초로 설계 단계에 적용한 설계사 — 의 일화는 '가상의 하루'로 우주 건축 설계 교재에 실려 있다.
나지는 7구역 설계 당시, 완성된 도면 위에 가상 거주자의 하루 동선을 삼 개월에 걸쳐 시뮬레이션했다. 그 과정에서 비상구 열네 개(앞서 정거장 비상구 유도원 피아 아마티 일화에서 등장하는 그 열네 개)의 최적 배치, 꽃집 구역(앞서 여성 세계관 꽃집 주인 레나 카마초 일화의 그 7구역)의 자연 채광 유입 각도, 경비 순찰 동선의 최소 노출 경로가 모두 시뮬레이션에서 도출됐다. 7구역은 오메가 정거장 전 구역 중 거주자 만족도와 비상 대피 기록 모두 가장 높은 구역으로 집계됐다.
나지는 설계 도면을 오메가 정거장 관리실에 기증하며 한 줄을 덧붙였다. "이 도면 위에는 이름 없는 거주자 한 명이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우주 건축 설계 교재는 그 한 줄을 설계 철학 챕터 첫 번째 인용문으로 수록했다.
격리방호자(隔離防護者)
격리 구역 방호 요원
격리 구역을 지키는 방호 요원
“안에서 나오는 것을 막는 게 내 임무다. 그러나 안에서 나오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임무다.”
격리 구역 방호 요원은 외계 생물 격리 구역·감염 통제 구역·미지 소재 격리 실험실 등 위험 격리 구역의 외부 경계를 방호하고, 격리 대상 또는 격리 구역 진입·이탈을 통제하는 안전 전문 요원으로, 군 특수 훈련 출신이 많다. 단순 경비가 아니라, 격리 구역 내부의 안전 조건·격리 등급·비상 절차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격리 대상이 외계 생물일 경우, 격리 구역 방호는 함선 또는 기지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 직종의 가장 어려운 임무는 격리 구역 내부에 격리된 자가 외부와 접촉하려 할 때다. 그 접촉 시도가 위험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는 판단이 이 직종 최고 기술이다. 잘못 판단해 막으면 안 되는 접촉을 막고, 막아야 할 접촉을 허용하는 것 모두 치명적이다.
“격리 구역 방호 요원 선임이 신참에게 처음 가르치는 게 방어 기술이 아니래요. 격리 내부 상황을 읽는 법이에요. 안을 모르면 밖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이 직종의 첫 번째 원칙이라고 합니다.”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앞서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 일화에 등장한 격리 관리 계보) 지원 격리 구역 방호 요원 카이 소자 — 외계 생물 격리 구역 이탈 비상 상황 대응에서 단 한 건의 이탈 사고도 없이 십 년 경력을 유지한 유일한 방호 요원 — 의 일화는 '안을 먼저 읽는 법'으로 격리 방호 교육 교재에 실려 있다.
케레스 광구 위기 대응(앞서 식민지 위기 대응 팀장 로한 굽타 일화의 그 사건) 중 외계 생물 격리 구역 비상 봉쇄가 완료됐을 때, 카이는 격리 구역 내부 관찰 단말을 보며 이탈 시도 이전에 내부 상황 변화를 세 가지 지점에서 먼저 탐지했다. 카이는 이탈이 발생하기 전 비상 봉쇄를 추가 강화하고, 격리 관찰원과 협력해 내부 진정화 절차를 선제적으로 진행했다. 이탈 시도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카이는 그 사건을 사후 보고서에 "이탈이 없었던 이유는 이탈 직전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라고 적었고, 그 보고서가 격리 방호 교재 비상 대응 챕터 첫 번째 사례로 수록됐다. 카이의 내부 상황 탐지 체크리스트 세 가지는 현재 모든 격리 구역 방호 요원의 일일 점검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함내교사자(艦內敎師者)
함내 어린이 교실 교사
함내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
“이 교실은 함선 안에 있지만, 이 교실의 창문으로 보이는 건 우주다. 그러면 교실이 우주만큼 커지는 거야.”
함내 어린이 교실 교사는 장기 항해 함선 또는 거주 함선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 기초 학습부터 우주 환경 적응 교육·외계 종족 기초 이해·함선 안전 교육까지 담당한다. 지상 학교와 달리 교실이 함선 내부이기 때문에 교재가 제한적이며, 함선 환경 자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이 우주에서 자라면서 지상 문화와 우주 문화를 동시에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이 직종의 핵심 교육 목표다.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함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처음으로 지상 식물 사진을 보고 "이게 뭐예요?"라고 묻는 순간이다. 그 질문 하나가 이 직업이 얼마나 특별한 자리인지를 가르쳐 준다.
“함내 어린이 교실 교사들이 매 학기 첫날 하는 것이 있어요. 교실 창문 방향을 확인하는 거래요. 그날 항해 방향에 따라 창문에 보이는 별자리가 달라지고, 그 별자리로 그날 수업 첫 줄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거대함선 트라잔-12(앞서 함내 세탁실 운영자·인공중력 기관사 일화의 그 함선) 어린이 교실 초대 교사 에스터 오비아 — 트라잔-12 출생 어린이 삼백 명을 이십 년간 가르치고 졸업시킨 단 한 명의 교사 — 의 일화는 '창문 수업'으로 함선 교육 지침서에 실려 있다.
에스터가 트라잔-12에 교사로 임명된 첫 날, 교실 창문 방향이 항법 설정으로 함선 엔진실을 향해 있었다. 에스터는 함선 인공중력 기관사(앞서 인공중력 기관사 일화에 등장한 기관사)에게 어린이 교실 창문 방향을 우주를 향하도록 항법 좌석 배치 조정을 요청했다. 기관사는 처음에 항법 조정의 이유로 기각했지만, 에스터가 "어린이들이 처음 보는 창문이 엔진이면 안 된다"고 한마디 하자 다음 비번 시간에 조정을 완료했다.
그 이후 트라잔-12 어린이 교실 창문에는 항상 우주가 보이게 됐으며, 에스터의 창문 수업은 이십 년 동안 매 학기 첫날 항해 방향에 따른 별자리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 이십 년 동안 교실을 거쳐 간 어린이 삼백 명 중 열일곱 명이 우주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는 항성 관측 연구원이 됐다. 에스터의 창문 수업 지침은 함선 교육 지침서 '교실 환경 설계' 챕터 첫 번째 권고 사항이다.
외계격리사(外界隔離士)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
외계 생물을 격리해 관찰하는 자
“격리 구역 안에 있는 건 위험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아직 모르는 것일 뿐이다.”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은 함선·정거장·연구 기지의 외계 생물 격리 구역에서 격리된 외계 생물의 행동·상태·위험도를 관찰·기록·분석하는 전문 관찰 기술자로, 외계 생물학·격리 의학·행동 분석이 핵심 기술이다. 격리 대상이 미지의 외계 생물일 경우, 그 생물이 어떤 자극에 반응하는지를 먼저 파악하지 못하면 안전한 격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격리 실패는 함선 또는 기지 전체의 안전에 직결되기 때문에, 관찰 기록의 정확성이 이 직종의 핵심 역량이다.
이 직종의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격리된 외계 생물이 처음으로 관찰원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 격리 대상이 단순한 위험 요소가 아니라 지적 개체일 가능성이 생기며, 그 판단이 이후 대응 방향 전체를 바꾼다.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 선임들이 관찰 시작 전에 꼭 한다는 게 있어요. 빈 관찰 기록지 첫 줄에 '아직 모른다'고 적는 거래요. 그게 편견 없이 시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케레스 광구 위기(앞서 식민지 위기 대응 팀장 로한 굽타 일화의 그 사건) 당시 외계 생물 격리 관찰원으로 파견된 이제 오비 — 케레스 광구에서 처음 발견된 미지 외계 생물 종 격리 관찰 초기 판단을 가장 빠르게 완료한 관찰원 — 의 일화는 '첫 인식의 순간'으로 외계 생물 격리 관찰 교재 첫 챕터에 실려 있다.
격리 구역에 이송된 미지 외계 생물을 처음 관찰했을 때, 이제는 관찰 기록지 첫 줄에 "아직 모른다. 관찰 시작."이라고 적었다. 사흘 동안의 관찰 끝에 이제는 그 생물이 격리 구역 내부 기압 변화에만 반응하며 생물학적 공격성이 없다는 것을 기록했고, 격리 방호 요원(앞서 격리 구역 방호 요원 카이 소자 일화의 그 방호팀)에게 비상 봉쇄 강도 조절을 권고했다.
이제의 판단에 따라 비상 봉쇄는 표준 강도로 낮아졌고, 그 생물은 이후 외계 생물 연구소로 안전하게 이송됐다. 이제의 첫 관찰 기록지는 외계 생물 격리 관찰 교재 첫 챕터 도입부에 원본 복사본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신임 관찰원들은 임관 첫날 그 기록지 첫 줄을 그대로 따라 써보는 것으로 교육을 시작한다.
사고조사사(事故調査士)
우주 사고 조사관
우주 사고를 조사하는 자
“사고가 일어난 이유를 찾는 게 아니다. 사고가 왜 더 일찍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찾는다.”
우주 사고 조사관은 함선 충돌·워프 항로 이탈·우주 기지 구조 붕괴·외계 생물 격리 실패 등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 방지 권고를 작성하는 사고 조사 전문가로, 은하 연합 사고 조사청 또는 메가코프 자체 사고 조사 기구에서 활동한다. 항공·우주 공학·법의학·시스템 분석을 모두 다루며, 사고 현장 조사·관계자 면담·데이터 복원을 통해 사고 원인 체계를 완성한다. 그 보고서 한 장이 이후 수천 척 함선의 안전 규정을 바꿀 수 있다.
이 직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원인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조사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빠른 결론이 가장 옳은 결론인 경우는 드물며, 가장 불편한 결론이 가장 정확한 결론인 경우가 많다.
“우주 사고 조사관 중에 오래 살아남는 분들한테 공통으로 있는 버릇이 있대요. 사고 보고서를 쓰기 전에 먼저 '내가 놓친 게 뭔지'를 한 줄 적는다고요. 그 한 줄이 보고서 전체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은하 연합 사고 조사청 수석 조사관 아우레아 주아나 — 케레스 교전(앞서 핵융합로 기관장 보리스·행성 봉쇄 작전참모 율리안 일화의 그 교전) 후 발생한 궤도 정거장 구조 붕괴 사고 조사를 완료하고 안전 규정 개정을 이끈 유일한 수석 조사관 — 의 일화는 '놓친 한 줄'로 사고 조사 교재에 실려 있다.
궤도 정거장 구조 붕괴 사고의 초기 조사에서 원인은 '교전 충격파에 의한 구조 손상'으로 결론 나 있었다. 아우레아는 그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내가 놓친 게 뭔지' 한 줄을 적었다. 그 한 줄 아래에 스스로 쓴 것은 "왜 교전 충격파가 기준치 이내였는데 구조가 무너졌나?"였다. 재조사 결과 구조 무너짐의 실제 원인은 우주 건축 설계(앞서 우주 건축 설계사 나지 아흐마드 설계 계보의 타 구역 설계 오류)에서 발생한 내부 보강재 규격 미달이었으며, 교전과는 무관했다.
아우레아의 재조사 보고서는 해당 규격의 모든 정거장 보강재 점검 명령으로 이어졌고, 은하 연합 궤도 시설 안전 규정이 개정됐다. 아우레아는 보고서 마지막 줄에 "사고는 가장 불편한 질문에서 답이 나온다"고 적었으며, 그 문장이 사고 조사 교재 서두 인용문이 됐다.
야간청소부(夜間淸掃夫)
정거장 야간 청소 작업원
정거장의 야간을 쓸어내는 일꾼
“낮에 청소하면 사람들이 고맙다고 한다. 밤에 청소하면 아무도 모른다. 그게 같은 일인데도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거장 야간 청소 작업원은 우주 정거장 내부 상업 구역·통로·화장실·격납고 접근로 등을 야간에 청소하고 위생 상태를 유지하는 청소 작업원으로, 정거장 운영 인원 중 가장 비가시적이지만 정거장이 매일 아침 깨끗하게 시작될 수 있는 이유 자체다. 무중력 구역에서의 청소는 부유하는 먼지와 파편을 처리하는 별도 장비와 기술이 필요하며, 일반 청소보다 난이도가 높다. 야간 시간 내에 전 구역을 완료해야 하는 작업 시간 관리가 핵심이다.
이 직종의 가장 특별한 경험은 정거장이 완전히 조용해지는 야간에 혼자 정거장 전체를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낮에는 아무도 모르는 구석 하나하나를 야간 작업원은 손으로 알고 있다. 정거장에서 가장 조용하게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야간 청소 작업원이라는 말이 있다.
“정거장 야간 청소 작업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새벽 다섯 시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처음 보는 게 뭔지를 안대요. 그 사람 얼굴이 자기 일의 평가서라고 합니다.”
오메가 정거장(앞서 무중력 건설 인부·정거장 경비원·꽃집 주인·우주 건축 설계사 일화의 그 정거장) 야간 청소 작업원 초대 팀 선임 바실리사 호르바트 — 오메가 정거장 개장 첫날부터 이십 년간 야간 청소 팀 선임을 맡은 단 한 명 — 의 일화는 '이십 년의 야간'으로 정거장 운영 기록관에 단 한 줄로만 남아 있다.
오메가 정거장이 처음 개장했을 때, 바실리사는 야간 청소 팀 인원이 자기 혼자였다. 첫 달은 혼자서 전 구역을 완료하다 보니 새벽 여섯 시에야 끝났다. 바실리사는 그 한 달 동안 어느 구역에서 먼지가 가장 많이 생기는지, 어느 통로에 부유 파편이 쌓이는지를 전부 기록했다. 두 번째 달부터 팀이 추가됐고, 바실리사의 기록 덕분에 팀은 새벽 네 시에 전 구역을 완료하게 됐다.
우주 건축 설계사 나지 아흐마드(앞서 우주 건축 설계사 일화의 그 설계사)는 7구역 설계 시 바실리사의 먼지 발생 구역 기록을 참조했으며, 7구역 통로 설계에 그 데이터가 반영됐다. 바실리사는 오메가 정거장 이십 년 근속 기념식에서 정거장 운영 기록관에 이름 한 줄을 남겼다. "이십 년 동안 정거장이 깨끗했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