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150명의 인물
어떤 세계인가요?
이 세계는 가상의 전국시대 일본이에요. 크고 작은 영주들이 더 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싸우는 시대랍니다. 들판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성벽 안에는 전쟁을 준비하는 소리가 가득해요. 평화로운 날보다 긴장된 날이 훨씬 많은, 숨 막힐 듯 팽팽한 시대예요.
이 세계에는 무사 가문을 섬기는 사무라이가 살고 있어요. 사무라이는 칼 한 자루로 주군(자신을 거느리는 윗사람)에게 충성을 바치는 전사랍니다. 주군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목숨보다 무겁고, 가문의 깃발을 끝까지 세우는 것이 평생의 다짐이에요. 그림자 속에서 몰래 움직이는 닌자도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 자루 칼이 품고 있는 무게예요. 사무라이가 허리에 차는 칼(카타나)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랍니다.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는 낭인이 되어 아무 가문에도 속하지 않은 채 홀로 떠돌기도 해요. 충성과 명예, 혼자라는 외로움,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얽혀 있는 세계예요.
만약 네가 이 세계에서 살게 된다면 어떤 길을 고를 것 같아요? 강한 가문을 섬기며 전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무라이가 될 수도 있고, 어둠 속에서 혼자 임무를 완수하는 닌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세계에서의 선택은 언제나 무겁고, 그래서 더욱 진지하게 느껴질 거예요.
세계 설정
가공의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다이묘 가문이 영지를 두고 다투며, 검호와 닌자가 나란히 활약하는 시대.
이 세계의 키워드
- 다이묘
- 카타나(刀)
- 카로
- 닌자
- 인술
- 마지막 결단(切腹)
- 영지
- 가문
- 명예
- 부하
이 세계의 인물들
막부지존(幕府至尊)
다이묘(大名)
한 번방의 모든 무가를 굽어보는 다이묘의 정점
“이 깃발 한 장이 저 산을 지키는 천 명의 호흡이다. 함부로 흔들지 마라.”
다이묘는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에서 한 영지(領地)를 통치하는 영주이며, 가신단(家臣團)·농민·상인 모두를 자기 깃발 아래 묶고 있는 자다. 외형은 단단한 갑주, 어깨에 가문 문양 진바오리(陣羽織), 허리에 한 쌍의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접 다이묘와의 외교·전쟁·혼인 협상을 동시에 굴리며, 그 균형 한 줄을 놓치는 순간 가신단이 다른 영지로 흩어진다.
가장 무거운 적은 인접 영지가 아니라 자기 가신단 안의 카로 한 명이며, 그 카로의 신뢰를 잃는 순간 가문은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다이묘의 진짜 무공은 카타나가 아니라, 매일 아침 가신단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는 인사다.
“우리 가문 어른들이 새 다이묘 즉위 첫 새벽 그 작은 두루마리 한 통을 펼쳐 보는 데는 까닭이 있소. 가신의 이름 한 줄이 영지의 깃발 한 폭보다 무겁다는 뜻이오.”
삼대(三代) 이즈모번 다이묘 호조 마사미츠 — 옛 야마시로 분국에서 흘러온 군소 가문 출신으로 카타나보다 가신단 명단을 먼저 외운 영주 — 의 일화는 호쿠리쿠 가문들 사이에 야사로 남아 있다.
즉위 첫 봄, 인접 영지 우키타 가문이 사사가와 합전(笹川合戰, 두 영지 경계 강가에서 벌어진 작은 충돌) 직후 강화 사절을 보냈을 때, 마사미츠는 카타나도 진바오리도 두르지 않고 가신단 백사십이 명의 이름을 적은 두루마리 한 통만을 들고 응접실로 나섰다. 우키타 가문 사절은 강화 조건이 적힌 문서를 기다렸으나 마사미츠는 두루마리를 펼쳐 가신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고 그 가신의 부친이 사사가와에서 잃은 형제 이름까지 정중히 덧붙여 읽어 내려갔다. 사절은 한 식경 만에 무릎을 꿇고 강화 문서 대신 우키타 측 전사자 명단을 마주 펼쳤으며, 두 가문은 그 자리에서 검 한 번 뽑지 않고 경계선 한 줄을 다시 그었다. 마사미츠가 낸 단 한 줄의 결재는 "사사가와의 봄을 두 가문이 함께 묻는다"였고, 그 결재는 마츠가에 천수각(松ヶ枝天守閣, 이즈모번 본성 동측 망루) 밑돌에 새겨져 지금도 남아 있다.
후대 호조 가문 다이묘들은 즉위 첫 새벽에 그 두루마리 사본 한 통을 펼쳐 가신단 첫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는 의례를 따른다. 한 자루 카타나보다 한 줄 명단이 무거울 수 있다는 격언은 그 새벽에서 시작되었다고 야사는 적는다.
검호일제(劍豪一帝)
검호(劍豪)
이 시대 모든 검호를 베어 넘긴 단 한 명의 황제 검객
“두 검을 든 자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첫 한 번에 끝낸다.”
검호는 한 시대 일본 안에서 검의 정점에 도달한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칭호로, 다이묘의 가신이 아니라 자기 검 한 자루로 시대를 살아가는 자다. 외형은 낡은 흑색 키모노, 한쪽 어깨에 단 한 자루 카타나, 머리에는 흐트러진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누구의 가문에도 정식으로 속하지 않으며, 한 번의 결투를 위해 산 하나를 며칠씩 가로지른다.
그가 결투에서 진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정작 본인은 검 한 자루 들고 산을 내려가는 그 새벽이 평생 가장 외로운 순간이라 한다. 가장 강한 검호의 진짜 적은 다음 결투의 상대가 아니라, 결투가 끝난 다음 날 새벽의 정적이다.
“검호의 카타나는 사람을 베라고 다듬은 게 아니오. 새벽 정적을 한 호흡 더 견디라고 다듬은 거지요. 그 강가에 비석 한 자도 세우지 않은 까닭이오.”
초대 검호 미야하라 잇센 — 비센(備前)에서 태어나 평생 정식 가문에 적을 두지 않은 채 산을 넘은 시대의 검사 — 의 일화 가운데 가장 길게 전해지는 것은 '한 새벽의 강(江)'이다.
천하 무가에서 사대 검사로 꼽히던 사사야마 류세이 — 야규 분가 정식 후계로 대도장 일곱을 거느리던 검사 — 가 잇센에게 결투를 청해 비센과 사사슈 경계 우즈가와(渦川, 두 영지 사이를 가르는 굽이친 강) 강가에서 새벽 한 합을 약속했다. 잇센은 결투 전날 류세이의 노모가 머물던 작은 객사를 정중히 찾아 차 한 잔만 마시고 돌아갔으며, 다음 날 새벽 강가에서는 단 한 합도 정식으로 휘두르지 않고 류세이의 카타나 한 자루의 무게를 한 호흡으로 받아 흘려보냈다. 류세이는 그 한 호흡을 끝으로 검을 강물에 풀어 묻고 야규 본가에 분가 해산을 청했으며, 두 검사는 그 새벽에 마지막으로 본 사이가 되었다. 잇센은 그 강가에 비석 한 자도 세우지 않았고, 대신 자기 카타나를 한 줄 더 짧게 갈아 평생 그 새벽 호흡을 손목에 옮겼다.
후대 검호 후보들은 첫 결투 전날 우즈가와 강가에 한 번 들러 한 호흡 내쉬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 그 강물 위 한 폭의 안개는 지금도 검호 야사의 첫 줄로 적힌다. 가장 무거운 카타나는 사람을 벤 검이 아니라 강물 한 자에 풀어둔 검이라는 격언이 거기서 비롯되었다.
가신총수(家臣總帥)
카로(家老)
다이묘 아래 가신단을 총괄하는 카로의 우두머리
“가문의 깃발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일은, 결국 늙은 신하의 펜이다.”
카로는 다이묘 가문의 최고 가신(家臣)으로, 영지의 행정·외교·군사 자문을 모두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키모노 위 정장 하카마, 가슴팍에 가문 문양, 허리에 길고 짧은 카타나 한 쌍이 표준이다. 본인은 다이묘에게 직언을 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신하이며, 그래서 다이묘의 한 시간 결단을 한 식경 더 미루게 만들 수 있는 권한도 가진다.
가신단의 가족 결혼·진급·부고를 가장 먼저 받는 자도 카로이며, 그래서 진짜 강한 카로는 늘 가신 한 명 한 명의 가족 사진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 가문의 진짜 깃발은 다이묘의 어깨가 아니라, 카로의 책상 위 명단에 적혀 있다.
“카로의 무게는 결재 도장 한 방이 아니라, 등 뒤 가족 명단 한 줄에 있소. 우리 가문 노카로의 책상 한 칸이 늘 비어 있는 까닭이지요.”
칠대 사가미번(相模藩) 카로 시바타 진베에 — 평민 우시오(右筆) 출신으로 카로 자리에 오른 흔치 않은 가신, 평생 가신단 가족 명단을 자기 책상 한 폭에 손수 옮겨 적은 자 — 의 일화는 무가 야사 가운데 흔히 회자된다.
사가미번이 인접 우라가(浦賀) 영지와 영지 경계 다과(茶課) 분쟁(차밭의 한 두렁을 두고 벌어진 행정 마찰)으로 사흘 밤낮 결재를 멈추었을 때, 다이묘 모리타카는 친위 회의에서 카타나를 풀고 카로 한 명에게 결단을 미루었다. 진베에는 결재 도장 대신 가신단 백구십삼 명의 가족 명단을 펼쳐, 다과 분쟁의 그 두렁이 가신 코바야시 가족의 옛 봉납지(奉納地, 가문 신사에 한 시즌 한 번 쌀을 바치는 작은 논)임을 정중히 짚어 보였다. 모리타카는 그 한 줄에서 결재를 멈추고 우라가에 분쟁 양보 서신을 보냈으며, 두 영지는 그 두렁 한 자를 코바야시 가족의 봉납지로 정식 인정하는 한 줄 합의를 새겼다. 그 합의는 이오기 본진(伊王木本陣, 사가미번 본성 안채) 회랑 옻칠 기둥에 한 줄로 새겨져 지금도 남아 있다. 진베에는 임명 첫날 자기 책상 옆 한 칸을 일부러 비워 두었고, 그 자리는 평생 가신단 한 명의 가족 부고가 들어올 자리로 남았다.
후대 사가미번 카로들은 임명 첫날 그 빈 책상 한 칸을 한 번 보러 가는 것을 관례로 삼았으며, 그 한 칸의 침묵이 카로의 진짜 깃발이라는 격언이 가신단 안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은영술사(隱影術士)
인술 닌자
그림자에 깃들어 인술을 부리는 닌자
“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미 한 번 살아남은 것이오.”
인술 닌자는 가공의 전국시대 안에서 잠입·정탐·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그림자 직군이다. 외형은 검은 인복(忍服), 얼굴에 두건, 손목에 인술용 작은 도구 모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자기 마을 단위 닌자 결사에 소속되어 있고, 다이묘 가문에 의뢰를 받아 정탐 또는 암살을 수행한다.
진짜 닌자는 결투에 능한 자가 아니라, 한 임무를 끝내고 흔적 없이 돌아오는 자다. 그래서 닌자들 사이의 자존심 대결은 누가 더 멋지게 표창을 던지느냐가 아니라, 누가 임무를 마치고도 가장 한가한 얼굴로 마을 다관에 앉는가에 있다. 가장 강한 그림자는 빛 한 번 받지 않은 그림자다.
“이가 닌자는 임무를 마쳐도 다관 한 자리를 비워 두오. 빛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 자리에 그가 앉지 않았다는 한 줄이오.”
이가(伊賀) 분파 닌자 이시카와 호조 — 키리가쿠레 결사 출신, 일평생 자기 인장 한 자도 종이에 남기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닌자들 사이에서 '비어 있는 다관 한 자리'로 불린다.
도쿠다 가문 다이묘의 의뢰로 인접 모리하라 가문 본성 천수각의 옛 도면 한 장을 정탐해 오는 임무를 받았을 때, 호조는 사흘 밤낮 본성 안에 머물면서 도면을 베끼지 않고 머릿속 한 표 안에만 새겨 가지고 돌아왔다. 임무를 마친 새벽, 그는 결사 마을 외곽 다관 키리코쿠도(霧黒堂, 이가 산기슭에 한 채 서 있는 작은 안개 다관)에 들렀으나 자기 자리에는 앉지 않았고, 차값 한 푼만 정중히 놓고 그림자처럼 돌아섰다. 다관 주인장은 그 빈 자리를 그날부터 사십 년 넘게 비워 두었으며, 그 자리에는 차 한 잔도 한 번 놓이지 않았다. 호조는 결사 두령에게 도면 한 장을 종이로 넘기지 않고, 다이묘 가문 결재 자리에서 직접 머릿속 한 표를 한 줄 한 줄 호명하는 방식으로 보고했다. 모리하라 가문은 자기 천수각의 도면이 새 나간 사실 자체를 한 시즌이 지난 뒤에야 한 줄 풍문으로 알았으며, 그 한 줄 풍문도 끝까지 이름 한 자를 적지 못했다.
후대 키리가쿠레 결사 닌자들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새벽 키리코쿠도의 그 빈 자리를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것을 의례로 삼았다. 빛 한 번 받지 않은 그림자가 진짜 그림자라는 격언은 그 빈 자리 위에서 비로소 굳어졌다.
낭인검부(浪人劍夫)
떠돌이 낭인
주인을 잃고 칼 한 자루로 끼니를 잇는 떠돌이 사무라이
“가문은 잃었다. 검은 잃지 않았다. 그것이면 일 년은 더 산다.”
떠돌이 낭인은 자기 가문이 망해 주군(主君)을 잃은 사무라이로, 한 자루 카타나와 작은 봇짐 하나로 일본을 흘러다니는 자다. 외형은 낡은 키모노, 흐트러진 머리, 허리에는 늘 잘 손질된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새 가문에 정식으로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자존심이 있어, 의뢰를 받아 호위·용병으로 살며 노잣돈을 번다.
어떤 낭인은 평생 새 주군을 두지 않고, 옛 가문의 무덤 한 곳에 매년 술 한 잔을 따르는 그 한 번을 평생의 의례로 삼는다. 일본의 진짜 무사도는 큰 가문 안이 아니라, 길 위의 낭인이 옛 무덤 앞에서 따르는 술 한 잔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주군의 묘 앞에 술 한 잔 따르고 그 한 잔을 자기는 마시지 않는 자, 그게 진짜 낭인이오. 비석 한 자가 닳은 까닭이지요.”
옛 코마키번(小牧藩) 멸문 후 떠돌던 낭인 우에무라 카게나리 — 코마키 본성이 사쿠라이 합전(櫻井合戰, 두 인접 다이묘 가문이 한 강을 두고 벌인 패전)에서 무너진 새벽 살아남은 단 일곱 가신 중 한 명 — 의 일화는 토카이도 길목 다관 사이에서 야사로 자주 회자된다.
카게나리는 멸문 이후 단 한 번도 새 가문에 적을 두지 않았으며, 코마키 옛 가문묘(舊家門墓, 영지 외곽 작은 언덕 위 가신 합장묘)에 매년 사쿠라이 합전 새벽 시각에 술 한 잔을 따르는 것을 평생 의례로 삼았다. 한 시즌, 인접 미카와 가문이 그를 친위 무사로 정중히 청해 평생 녹봉 두 자를 약속했으나, 그는 같은 새벽에 다시 가문묘 앞에 술잔을 들어 올리고 미카와 사절에게 정중히 등을 보였다. 다섯 해 뒤 그가 마지막으로 가문묘를 찾은 새벽, 잔을 따르고 자기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자기 카타나를 비석 옆에 풀어두고 산을 내려갔다는 한 줄 기록이 다관 야사첩(野史帖)에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비석 옆 카타나를 옮기지 않아, 비석 한 자가 사십 년에 걸쳐 카타나의 자루 끝에 닳아 깊은 홈이 새겨졌다.
후대 떠돌이 낭인들은 토카이도를 지날 때 그 가문묘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것을 길의 의례로 삼았다. 술 한 잔의 무게가 한 자루 카타나보다 무겁다는 격언은 그 홈에서 비롯되었다.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쇼군(將軍)
막부의 인장을 쥐고 천하 무가를 호령하는 쇼군
“다이묘 백 명의 깃발 위에 한 장 더 얹는 일이오. 무거운 건 그 한 장이 아니라 백 장의 호흡이지.”
쇼군은 가공의 막부(幕府) 정점에 선 자로, 천하의 다이묘 가문 위에 군림하면서도 천황(天皇)의 권위 아래 한 발을 두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진바오리, 어깨에 막부 문양 망토, 허리에 길고 짧은 한 쌍의 카타나, 머리에 작은 에보시(烏帽子)가 표준이다. 본인은 큰 전쟁의 결단보다 다이묘 가문 사이의 혼인·영지 분쟁을 한 줄 결재로 정리하는 일이 일과의 8할이다.
막부 회의에서는 옛 다이묘의 자존심이 한 자리 위치 다툼으로 반나절을 잡아먹는다. 그가 평생 다듬은 진짜 절기는 카타나가 아니라, 다이묘 둘이 자리에서 일어서기 직전 차 한 잔을 권하는 한 호흡이다. 천하의 균형이 결국 차 한 잔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그는 즉위 첫해에 깨달았다.
“막부 회의실 가운데 자리 한 칸을 비워 두는 까닭이 있소. 다이묘 둘이 일어서기 직전 차 한 잔이 놓이는 자리지요. 천하 한 폭의 무게가 거기 놓여 있소.”
이대 쇼군 토쿠가와 야스미츠 — 첫 막부의 균형을 세 가문 다이묘 사이에서 정중히 잡아낸 자, 임명 첫해 카타나 한 번도 뽑지 않은 막부의 평화기 통치자 — 의 일화는 오에도 야사첩(大江戸野史帖)에 자주 인용된다.
즉위 첫해 막부 평정 회의(評定會議)에서 사츠마 가문의 시마즈 도시히로와 모리 가문의 모리 마사야스가 영지 한 두렁의 한 자 경계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직전, 야스미츠는 자기 결재 두루마리를 덮고 회의실 가운데에 차 한 잔을 손수 우려 정중히 내려 놓았다. 그 차는 평소 막부 다도가(茶道家)가 우리던 옛 비센차(備前茶) 한 잎을 그대로 따라낸 한 잔이었으며, 두 다이묘는 한 호흡 멈추고 그 잔을 사이에 둔 채 한 식경 동안 카타나를 잡지 않았다. 회의가 끝났을 때 두 가문은 결재 한 줄 없이 영지 경계 한 자를 양측 신사(神社) 봉납지로 양도하기로 정했고, 그 한 줄 합의는 에도 본성 평정 회랑 옻칠 기둥에 새겨졌다. 야스미츠는 그날부터 막부 평정 회의실 가운데 한 자리를 평생 비워 두었으며, 그 자리에는 차 한 잔만 매 시즌 새로 놓였다.
후대 쇼군들은 즉위 첫 시즌에 그 빈 자리에 차 한 잔을 손수 우려 정중히 놓는 의례를 따랐다. 천하 균형의 무게가 차 한 잔 위에 놓여 있다는 격언은 그 빈 자리에서 비로소 굳어졌다.
일도극의주(一刀極意主)
일도류 종주
일도류의 극의를 손에 쥔 종주
“한 자루 카타나로 충분하다. 두 자루를 든 순간, 한 자루의 무게를 잊는다.”
일도류 종주는 한 자루 카타나만으로 검술의 한 유파(流派)를 세운 검사로, 본가 도장과 분가 도장 수십을 거느리는 검술의 정점에 가까운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도복, 어깨에 유파 문양 띠, 허리에 단 한 자루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검호(劍豪)와 달리 가신·제자·문서를 모두 거느리며, 매년 큰 봉납 시합(奉納試合)에서 직접 한 합을 보여 후계 검사들의 자세를 다듬는다.
그가 평생 정한 한 줄은 "한 자루 카타나의 무게를 절대 잊지 말라"이며, 그래서 종주의 도장에서는 두 자루 검을 함께 들지 못하게 한다. 후계 결정의 마지막 단계는 검 시합이 아니라, 제자가 한 자루 카타나로 어머니께 차를 올리는 자세 한 줄이다. 유파의 진짜 비전(秘傳)은 검로(劍路)가 아니라 그 한 줄 자세 위에 있다.
“이토 본가 후계 결재일 새벽에 늘 찻잔 한 잔이 따로 놓이는 까닭이 있소. 한 자루 카타나의 무게는 그 찻잔에서 한 번 잡힌다는 뜻이오.”
사대(四代) 이토 일도류(伊藤一刀流) 종주 이토 마사노스케 — 비센 본가 출신, 후계 결정에서 평생 검 시합 한 번 보지 않고 차 한 잔의 자세만으로 다음 종주를 정한 자 — 의 일화는 큰 도장 사이에서 '한 잔 후계'로 불린다.
마사노스케는 후계 후보 셋을 정해 놓은 새벽, 본가 도장 안마당에서 결투 시합 대신 어머니 무덤 — 옛 비센 산기슭 작은 가족묘 — 앞에 차 한 잔씩 손수 올리도록 명했다. 첫째 후보는 카타나 한 자루를 옆에 차고 잔을 올렸고, 둘째 후보는 두 자루 검을 함께 차고 정중한 자세로 잔을 올렸으며, 셋째 후보 노가미 사부로는 카타나를 도장에 풀어 두고 한 자루 보쿠토만 등에 가벼이 두른 채 잔을 올렸다. 마사노스케는 그 자리에서 셋째 후보의 손목 한 줄 자세를 보고 그 새벽 결재 두루마리에 후계 한 줄을 적어 봉했다. 둘째 후보가 한 호흡 항의하려 했을 때 마사노스케는 카타나 대신 자기 노모(老母)의 옛 차 도구 한 벌을 도장 한가운데 놓고 "한 자루의 무게는 잊은 검이 가장 흔들린다"는 한 줄만 남겼다. 노가미 사부로는 이후 본가 도장의 후계가 된 뒤 평생 두 자루 검을 한 번도 함께 들지 않았으며, 그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은 본가 도장 옻칠 기둥 옆에 봉인된 채 지금도 남아 있다.
후대 일도류 후계 후보들은 결재 시합 새벽에 본가 노모 무덤 앞에 차 한 잔을 정중히 올리는 의례를 따른다. 한 자루의 무게를 잊지 않는 자세 한 줄이 유파의 진짜 비전이라는 격언은 그 새벽에서 비롯되었다.
막부철안군(幕府鐵眼君)
막부 오메츠케
다이묘들의 부정을 꿰뚫는 막부 오메츠케
“다이묘 백 명을 정중히 의심하는 게 내 직무요. 정중하지 않으면 한 줄 보고서가 산을 무너뜨리오.”
막부 오메츠케(大目付)는 쇼군 직속 감찰 가신으로, 천하의 다이묘 가문을 정중히 감시하고 모반(謀反)의 기색을 한 줄 보고서로 정리해 올리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정장 하카마, 가슴팍에 막부 감찰 인장 펜던트, 어깨에 작은 두루마리 가방, 허리에 길고 짧은 한 쌍의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평생 다이묘 백 명의 평소 식성·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가 정중히 다관에 들른 다이묘는 한 식경 안에 자기 가문이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막부에서 가장 두려운 검은 쇼군의 카타나가 아니라, 오메츠케의 한 줄 보고서라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모반의 정황이 아니라, 충신 한 명을 정중히 빼주기로 결심한 그날의 침묵이다.
“오메츠케 두루마리 가방 안에 한 봉 빈 두루마리가 늘 들어 있소. 적지 않은 한 줄이 가장 무거운 줄이오.”
삼대 막부 오메츠케 사카키바라 시게미츠 — 평생 다이묘 백사십 가문을 정중히 감시한 자, 한 시대 모반 사건 두 건을 막부 결재 전에 한 줄로 정리해 올린 감찰관 — 의 일화는 막부 야사첩 안에 '빈 두루마리'로 기록되어 있다.
시게미츠는 호리카와 가문(堀川家, 옛 미카와 분가) 친위 가신단 안에 모반 정황 한 줄이 떠올랐을 때, 정황을 한 시즌 동안 정중히 한 표로 외워두고 한 자도 종이에 적지 않았다. 정황의 중심에는 평생 가신단 가족 명단을 외우던 호리카와 카로 무라카미 진노스케 — 평민 우시오 출신으로 카로에 오른 가신, 호리카와 다이묘 후계 분쟁 한 시즌을 정중한 한 줄로 정리한 자 — 가 있었으며, 그가 청을 들지 않은 채 다이묘 후계 한 줄을 막부 결재 라인에 정중히 올리려 한 새벽이 있었다. 시게미츠는 호리카와 본성 다관 키리바코쿠로(桐函黒爐, 본성 동측 작은 차실) 한 자리에 앉아 진노스케와 차 한 잔을 마주했고, 단 한 줄도 그날의 결재 보고서에 옮기지 않은 채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비워 막부에 올렸다. 호리카와 가문은 그 시즌 한 호흡 더 살아남았으며, 진노스케는 한 시즌 뒤 정중히 카로 자리를 사임하고 영지 외곽 작은 신사(神社) 잡일로 평생을 마쳤다. 시게미츠는 결재 가방 안 한 봉 빈 두루마리를 평생 가지고 다녔으며, 그 두루마리는 사카키바라 본가 옻칠 함 안에 봉인된 채 지금도 남아 있다.
후대 오메츠케들은 임명 첫 시즌 가방 안에 한 봉 빈 두루마리를 정중히 넣어 두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적지 않은 한 줄이 가장 무거운 한 줄이라는 격언은 그 가방 안에서 굳어졌다.
예법입회군(禮法立會君)
명예 의례 입회관
결투의 명예를 판정하는 의례의 입회관
“한 호흡 늦으면 욕된 일이오. 한 호흡 빠르면 무례한 일이지요. 그래서 늘 한 호흡 안에 있소.”
명예 의례 입회관(介錯人)은 마지막 결단을 행하는 사무라이의 곁에서 단 한 합으로 그 의례를 정중히 마무리해주는 자로, 가문의 가장 늙은 검사 또는 가장 정중한 친우에게만 허락되는 직무다. 외형은 정장 하카마, 가슴팍에 작은 가문 문양, 머리에 단정한 묶음, 손에 길고 가는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평생 한 합을 위해 매일 새벽 한 번씩 같은 자세를 다듬는다.
마지막 결단의 자리에서는 양측 가족이 한 줄로 정중히 앉으며, 카이샤쿠닌의 한 합이 늦거나 빠르면 양 가문 모두에 한 시대의 흠이 남는다. 그래서 가장 강한 카이샤쿠닌은 큰 검로를 가진 자가 아니라, 마지막 결단 직전 사무라이와 한 잔 차를 끝까지 마실 줄 아는 자세를 가진 자다. 가장 무거운 한 합은 검의 무게가 아니라, 그 차 한 잔의 정적 위에 있다.
“차 한 잔이 식기 전 한 합이 정확하면 양 가문에 한 시대 흠이 남지 않소. 그 정적 한 호흡이 카이샤쿠닌의 진짜 검로요.”
옛 카가번(加賀藩) 가신 명예 의례 입회관 사이토 카게요시 — 평생 일흔두 차례의 카이샤쿠를 한 합 안에 마무리한 늙은 검사, 본인이 직접 마지막 결단를 청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자 — 의 일화는 호쿠리쿠 무가 사이에서 '식지 않은 차 한 잔'으로 회자된다.
카가번 친위 가신 카타기리 신로쿠로 — 영지 곡창(穀倉) 결재에서 한 줄 부정의 누명을 정중히 받아들이고 마지막 결단를 청한 가신 — 의 자리에서, 카게요시는 카타나를 차고 카이샤쿠 자리에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신로쿠로는 마지막 결단 직전 차 한 잔을 청했고, 카게요시는 그 차 한 잔이 식기 전까지 한 합도 휘두르지 않은 채 정중히 함께 잔을 마주했다. 차가 한 호흡 식는 그 시점, 카타기리는 자기 가족에게 남기는 한 줄 유서를 정중히 카게요시에게 맡기고 한 호흡을 거두었으며, 카게요시는 정확히 그 한 호흡 안에 카이샤쿠 한 합을 마쳤다. 자리에 함께한 카타기리 본가 가족과 카로 한 명은 그 합의 정확함을 한 줄도 다투지 않았으며, 한 시즌 뒤 카가번은 카타기리의 누명을 정중히 풀고 가족 봉납지를 한 두렁 더 내렸다. 카게요시는 평생 그 차 도구 한 벌을 자기 도장 옻칠 함 안에 봉해 두었으며, 그 함은 사이토 본가에서 지금도 새벽 한 번씩 정중히 닦인다.
후대 카이샤쿠닌들은 처음 카이샤쿠를 받는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것을 의례로 삼는다. 식지 않은 차 한 잔의 정적이 카이샤쿠 한 합의 진짜 무게라는 격언은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친위호로장(親衛母衣將)
친위 호로무샤
주군의 등 뒤를 지키는 친위 호로무샤의 장수
“다이묘께서 한 발 물러나신 자리에 제가 한 발 더 깊이 서 있습니다. 그게 호로(母衣)요.”
친위 호로무샤(母衣武者)는 다이묘의 가장 가까운 친위 무사로, 등에 호로(母衣)라는 비단 망토를 부풀려 두르고 다이묘의 옆을 그림자처럼 따른다. 외형은 단단한 갑주, 등에 풍선처럼 부푼 호로, 어깨에 가문 문양 진바오리, 허리에 길고 짧은 한 쌍의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다이묘의 평소 잠자리 시각·아침 식단·결재 순서·인접 가신의 미세한 표정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전장에서는 호로의 부풀린 비단 한 폭이 다이묘의 위치를 적군에게 한눈에 알려, 자기 가문 한가운데에 화살을 모으는 미끼 역할까지 자처한다. 그래서 호로무샤의 진짜 자세는 검술이 아니라, 다이묘의 한 호흡 앞에 자기 호로를 정확히 펼쳐드는 한 줄이다. 가장 무거운 한 폭의 비단은 다이묘의 위신이 아니라, 호로무샤가 그 비단 안에서 받아낸 화살 한 발 위에 있다.
“친위 호로무샤의 진짜 자세는 호로 한 폭을 부풀리는 게 아니오. 그 비단 안에서 화살 한 발을 받은 뒤에도 한 호흡 더 다이묘 옆에 서 있는 한 줄이오.”
옛 야마시로번(山城藩) 친위 호로무샤 우에다 카츠마사 — 평생 다이묘 한 명의 옆자리만 지킨 자, 호로 한 폭에 옛 화살 일곱 발의 자국을 남긴 무사 — 의 일화는 야마시로 가신단 안에서 '비단 한 폭의 새벽'으로 전해진다.
마키하라 합전(牧原合戰, 야마시로와 인접 모리야마 가문 사이의 분국 경계 전투) 사흘째 새벽, 야마시로 다이묘 사사키 야스카게 — 즉위 첫해 친위 가신단 한 명 한 명의 호흡 박자를 외운 영주 — 가 가장 깊은 적진 한 자리에 일부러 본진 깃발을 세웠다. 적진의 화살 한 발이 다이묘 어깨 한 호흡 옆을 노리던 그 새벽, 카츠마사는 다이묘 한 발 앞으로 정중히 비단 호로를 부풀려 펼치고 자기 등으로 화살을 받았다. 화살은 호로의 비단 일곱 자락을 한꺼번에 꿰뚫고 카츠마사의 어깨 한 호흡에 박혔으나, 그는 한 호흡도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채 다이묘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이묘는 그 자리에서 결재 한 줄을 멈추고 자기 진바오리 한 폭을 카츠마사의 호로 위에 정중히 덮어 주었으며, 두 사람은 그 새벽 한 호흡 더 깊이 한 자리에 묶였다. 야마시로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호로 한 폭이 화살 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 봉인되어 있으며, 그 위에 다이묘의 진바오리 한 폭이 함께 올려져 있다.
후대 친위 호로무샤들은 임명 첫 새벽 그 봉인된 호로를 한 번 보고 자기 호로의 첫 한 폭을 정중히 부풀린다. 비단 한 폭의 무게가 다이묘 위신이 아니라 받아낸 화살 한 발 위에 있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조총대수장(鳥銃隊首將)
조총대 아시가루 대장
아시가루 조총대를 이끄는 화약의 장수
“한 발씩 정확히. 백 명이 한 호흡으로 쏘면, 그게 한 자루 카타나보다 무겁소.”
조총대 아시가루 대장(足輕大將)은 평민 출신 보병(아시가루) 부대를 거느리고 조총(鳥銃) 일제 사격을 지휘하는 야전 지휘관이다. 외형은 가벼운 갑주, 어깨에 가문 문양 진바오리,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 손에 작은 지휘 부채 군배(軍配)가 표준이다. 본인은 평민 백 명의 손목 호흡을 한 호흡으로 묶는 일을 평생 다듬는다.
조총의 한 발은 절세 사무라이의 한 합을 단번에 거두기에, 옛 다이묘 가문 검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야전 직무가 바로 이 자리다. 부대원 한 명의 화승(火繩)이 한 호흡 늦으면 백 명의 사격이 함께 무너지므로, 대장은 매일 새벽 자기 부대원의 손목 굳은살을 손수 살핀다. 가장 무거운 한 발은 큰 다이묘를 거둔 한 발이 아니라, 신참 아시가루 한 명의 첫 한 발이 정확히 정해진 시각에 발사되었다는 한 줄 기록 위에 있다.
“조총대 대장은 자기 부대원 화승 굳은살을 평생 손목 안에 외운다오. 한 호흡의 박자가 한 자루 카타나보다 무거운 까닭이오.”
옛 도토미번(遠江藩) 조총대 아시가루 대장 모치즈키 사부로자에몬 — 평민 출신 보병으로 시작해 백 명 단위 조총대를 한 호흡으로 묶은 야전 지휘관 — 의 일화는 도카이 가신단 사이에서 '나가시노 새벽'으로 자주 회자된다.
나가시노 합전(長篠合戰, 도토미번 본진과 인접 다케다 분가 기마대 사이의 평원 결전) 새벽, 도토미 다이묘는 카타나 한 자루로 결판을 보려는 친위 가신단의 청을 정중히 거두고 사부로자에몬의 조총대를 본진 한가운데 세웠다. 다케다 분가의 기마 일대(一隊)가 평원을 가로지르던 그 새벽, 사부로자에몬은 부대원 백구 명의 손목 화승 한 줄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묶어 단 한 호흡 안에 정확한 일제 사격을 명했다. 첫 발은 신참 아시가루 키노시타 카츠시로 — 그해 봄 처음 화승을 잡은 농민 출신 신참 — 의 손목에서 정확한 박자에 떠나갔으며, 그 한 발이 다케다 분가 기마대 선두 한 줄을 무너뜨렸다. 사부로자에몬은 합전 직후 결재 두루마리에 그 신참의 이름과 첫 한 발의 시각만을 한 줄로 적어 다이묘에게 올렸으며, 큰 다이묘를 거둔 다른 사격에 대해서는 한 자도 적지 않았다. 도토미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한 줄 결재 두루마리와 카츠시로의 화승 한 토막이 함께 봉인되어 있으며, 함은 매년 합전 새벽 시각에 정중히 한 번 닦인다.
후대 조총대 대장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자기 부대원 신참의 손목 굳은살을 손수 살피는 의례를 따른다. 가장 무거운 한 발이 신참의 첫 한 발이라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야규검술사(柳生劍術師)
야규 검술 사범
야규신음류 검리를 가르치는 사범
“검은 가르치는 게 아니오. 제자가 자기 검 한 자루를 인정하게 만드는 일이지요.”
야규 검술 사범은 가공의 야규(柳生) 분가에서 검술을 가르치는 사범으로, 다이묘 가문 자제와 친위 무사 후보를 직접 지도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도복, 어깨에 유파 문양 띠, 허리에 한 자루 검(劍)과 한 자루 보쿠토(목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야규 분가의 옛 검 시합·옛 분기 결재·금기 한 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다이묘 가문은 자기 자제가 어느 사범에게 검을 배우느냐로 가문의 한 시즌 외교를 결정한다. 평소 다관에서 차를 따르며 농을 던지는 노인이지만, 그가 보쿠토를 잡은 자리에서 살아 한 합을 견딘 제자는 한 시대에 다섯 손가락 안이다. 가장 무거운 한 합은 시범 시합이 아니라, 제자가 첫 카타나를 받는 날 정중히 손에 얹어주는 한 줄 인사 위에 있다.
“야규 사범의 진짜 비전은 보쿠토 한 합이 아니오. 제자 첫 카타나 한 자루를 손에 얹어주는 그 한 줄 인사이지요.”
옛 야규 신카게류(柳生新陰流) 분가 사범 호소카와 마사아키 — 정식 본가에 속하지 않은 분가 출신, 평생 다이묘 가문 자제 일곱 명을 직접 지도한 사범 — 의 일화는 무가 도장 사이에서 '한 자루 인사'로 회자된다.
옛 시나노번(信濃藩) 다이묘 사나다 모리히사가 자기 셋째 아들 사나다 마사노부 — 가신단 안에서도 카타나 자세가 가장 흐트러진다 평가받던 자제 — 를 정중히 호소카와 분가 도장에 보냈을 때, 마사아키는 첫 시즌 동안 보쿠토 한 자루도 잡게 하지 않고 도장 한 자리에 정중히 앉아 차 한 잔을 우리는 자세만 다듬게 했다. 한 시즌이 지나는 새벽, 마사아키는 첫 카타나를 마사노부의 손에 직접 얹어주며 "한 자루의 무게가 카타나의 무게보다 무겁다"는 한 줄 인사만 정중히 남겼다. 마사노부는 그 카타나를 평생 자기 어머니 무덤 — 시나노번 본성 동측 가족묘 — 앞에서만 정중히 풀어두는 의례를 따랐으며, 그 자세 한 줄이 후대 사나다 가문 친위 자제 교육의 첫 줄로 굳어졌다. 호소카와 분가 도장에는 그 첫 카타나가 풀어두어진 옻칠 함이 한 자리에 봉인되어 있으며, 도장 신참 자제는 첫 보쿠토를 받기 전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춘다. 큰 야규 본가 사범도 그 한 줄 인사의 정확한 자세를 본 적이 없어, 한 시대 분가 도장 출신 검사 다섯 명이 큰 봉납 시합에서 본가 후계 한 명을 한 합 안에 거두어 보였다는 야사가 남아 있다.
후대 야규 분가 사범들은 첫 카타나 인사 새벽에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한 자루 카타나 인사 한 줄이 큰 시합의 우승보다 무거운 비전이라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암행메츠케사(暗行目付師)
가문 정탐 메츠케
가문 안팎을 살피는 정탐의 사범
“닌자가 그림자라면, 메츠케는 가신단 안의 한 줄 한 줄 호흡이오. 둘은 결코 같은 자리가 아니오.”
가문 정탐 메츠케(目付)는 다이묘 가문 안에서 가신단의 동향과 외부 가문의 미세한 움직임을 정중히 살피는 자로, 닌자와 달리 정식 가신단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외형은 단정한 키모노 위 짧은 하카마, 가슴팍에 작은 메츠케 인장, 어깨에 작은 두루마리 가방,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신단 한 명 한 명의 평소 잠자리 시각·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에게 직접 한 줄 보고서를 올릴 수 있는 자는 카로와 메츠케 둘뿐이며, 카로가 가신단의 가족을 챙긴다면 메츠케는 가신단의 진심을 챙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인접 가문의 모반 정황이 아니라, 자기 가신단 안의 충신이 정중히 한 발 물러서기 직전의 미세한 호흡 한 줄이다.
“메츠케 두루마리 가방 안에 한 줄 호흡표가 늘 들어 있소. 가신단 한 명의 한 호흡이 천 리 인접 가문보다 무거운 까닭이오.”
옛 에치고번(越後藩) 가문 정탐 메츠케 야마노이 분고노카미 — 평민 우시오에서 메츠케에 오른 흔치 않은 가신, 자기 가신단 백사십 명의 평소 호흡 박자를 한 표로 외운 자 — 의 일화는 호쿠리쿠 무가 안에서 '한 호흡의 메츠케'로 전해진다.
카로 오쿠보 시게사다 — 평생 가문 결재 라인 한 줄을 정중히 잡아온 노카로, 한 시즌 자기 셋째 아들의 마지막 결단 결재를 직접 올린 자 — 가 결재 회의 새벽 평소보다 한 호흡 깊이 차를 우려 마시는 자세를 보였을 때, 분고노카미는 그 한 호흡의 박자가 평소 결재 새벽과 한 줄 다르다는 점을 한 표로 외워두고 다이묘에게 직접 한 줄 보고를 올렸다. 다이묘 우에스기 야스나가는 그 한 줄 보고를 받고 결재 회의를 한 시즌 미루었으며, 그 시즌 안에 카로 자제의 누명이 인접 호조 가문 가신단의 한 줄 모함이었음이 정중히 밝혀졌다. 카로 시게사다는 그 시즌 마지막 결단를 면했고, 분고노카미는 결재 보고서 한 줄 어디에도 자기 이름을 적지 않은 채 가방 안 호흡표 한 장만 정중히 봉해 옻칠 함에 넣어 두었다. 야마노이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호흡표 한 장이 지금도 봉인된 채 남아 있으며, 함은 매 시즌 첫 새벽 한 번 정중히 닦인다.
후대 에치고번 메츠케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자기 가방 안에 빈 호흡표 한 장을 정중히 넣어 두는 의례를 따른다. 가신단 한 명의 한 호흡이 인접 가문 모반 정황보다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도공명장(刀工名匠)
도공(刀工)
한 자루 명도(名刀)에 평생을 거는 도장(刀匠)
“이 카타나 한 자루, 다이묘 한 분의 평생을 짊어지오. 그러니 한 호흡도 흥정으로 깎지 마시오.”
도공(刀工)은 평민 출신 장인이지만, 다이묘 가문이 가장 정중히 모시는 직군 중 하나로, 가문의 가보(家寶) 카타나를 손수 단조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작은 가문 의뢰 인장,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정밀 망치와 한쪽 허리에 미완성 도신(刀身)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보 카타나의 옛 단조 결재·옛 분기 봉납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자루 카타나를 단조하는 데 한 시즌이 걸리며, 그 한 시즌 동안 도공은 다이묘 한 명의 호흡을 손목에 옮긴다고 말한다. 가장 무거운 한 자루는 다이묘의 가보가 아니라, 떠돌이 낭인 한 명이 마지막 노잣돈으로 들고 온 닳은 카타나 한 자루를 다시 세워주는 한 줄 작업 위에 있다.
“도공 작업장 한 모퉁이에 늘 빈 망치 한 자루가 걸려 있소. 닳은 카타나 한 자루가 들어올 자리지요. 가보보다 그 한 자루가 무거운 까닭이오.”
옛 비센(備前) 도공 가즈사노카미 사다요시 — 다이묘 가문 가보 카타나 일곱 자루를 손수 단조한 명장, 평민 출신으로 평생 가문에 정식 적을 두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도공 가문 사이에서 '닳은 카타나 한 자루'로 회자된다.
옛 비센 다이묘 우키타 노부히로가 사다요시에게 본가 가보 한 자루의 새 단조를 청하던 한 시즌, 그의 작업장에 떠돌이 낭인 사쿠라이 야시치로 — 멸문한 가문 출신, 토카이도를 십수 년 떠돈 늙은 낭인 — 가 마지막 노잣돈으로 닳은 카타나 한 자루를 들고 찾아왔다. 사다요시는 가보 단조 결재를 한 시즌 미루고, 그 닳은 카타나의 도신(刀身)을 정중히 다시 세우는 작업을 새벽마다 한 줄씩 진행했다. 다이묘 가문 결재 라인은 한 시즌 동안 가보 단조 지연을 두고 정중히 항의했으나, 사다요시는 결재 두루마리에 단 한 줄 "한 자루의 무게는 가보가 아니라 노잣돈에 있다"만 적어 올렸다.
노부히로는 그 한 줄을 본 새벽 결재 두루마리를 덮고 사다요시 작업장에 차 한 잔을 정중히 들고 들렀으며,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가보 단조 일정을 한 시즌 더 미루기로 한 줄로 합의했다. 야시치로의 닳은 카타나는 사다요시 손목에서 다시 세워져 야시치로의 옛 가문묘 — 토카이도 길목 작은 합장묘 — 앞에 풀어두어졌으며, 야시치로는 그 새벽 산을 내려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비센 도공 본가 작업장 한 모퉁이에는 그 빈 망치 한 자루가 지금도 걸려 있으며, 후대 도공들은 임명 첫 시즌 그 망치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한 자루의 무게가 가보가 아니라 노잣돈 위에 있다는 격언은 그 작업장에서 굳어졌다.
외문도장수(外門道場手)
외문 검술 도장주
외문에서 검술을 가르치는 작은 도장의 주인
“본가 검이 아니라고 깎지 마시오. 우리 도장은 길 위에서 살아 돌아온 한 합으로 굴러가오.”
외문 검술 도장주(外門劍術道場主)는 큰 유파의 본가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분파 도장의 주인으로, 평민과 낭인 자제를 받아 검술을 가르치는 자다. 외형은 닳은 짙은 색 도복, 어깨에 작은 유파 흉내 띠,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와 한 자루 보쿠토가 표준이다. 본인은 본가의 화려한 검로 대신 길 위에서 한 합 안에 결판이 나는 단순한 한 자세를 평생 다듬는다.
그래서 외문 도장 출신 검사는 큰 시합에서 잘 지지 않으며, 다이묘 가문도 자기 가신을 정중히 외문 도장에 한 시즌 보내 한 자세를 더 다듬게 한다. 본인은 그 사실을 자랑하지 않으며, 도장 한 자리에서 평민 자제의 첫 보쿠토 자세를 매일 손수 잡아준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시합의 우승이 아니라, 자기 도장 신참이 처음 카타나를 들고 길을 떠나는 새벽의 한 줄 인사 위에 있다.
“외문 도장 안마당에 신참 짚신 한 짝이 늘 걸려 있소. 길 위로 떠난 한 명의 첫 한 발이 도장 안 큰 시합 우승보다 무거운 까닭이오.”
옛 무사시(武藏) 분국 외문 검술 도장주 카토 분에몬 — 정식 본가 등록 없이 평민 자제 사십 명을 직접 받아 길 위 한 합으로 가르친 자, 평생 다이묘 가문 친위 자리를 정중히 거절한 사범 — 의 일화는 외문 도장 사이에서 '신참 짚신 한 짝'으로 회자된다.
분에몬의 첫 신참 시오미 큐타로 — 멸문한 떠돌이 낭인의 손자, 가문 가보 한 자루도 없이 분에몬 도장에 들어온 평민 자제 — 가 첫 카타나를 받아 길을 떠나던 새벽, 분에몬은 도장 안마당에 큐타로의 첫 짚신 한 짝을 한 자리에 정중히 걸어 두었다. 큐타로는 토카이도를 한 시즌 떠돌면서 옛 무사시 분국 외문 도장 한 줄의 자세 한 합으로 인접 다이묘 가문 친위 자제 두 명과의 길거리 시비를 정중히 한 호흡 안에 거두었다. 그 한 합 한 합의 간결함이 무사시 가문 친위 가신단 안에서 한 줄 풍문으로 떠돌았고, 다이묘 호리에 카게나리는 분에몬에게 본가 친위 사범 자리를 정중히 청했다.
분에몬은 그 청을 결재 두루마리 한 줄로 정중히 거절하고, 자기 도장 안마당의 짚신 한 짝 옆에 본가 결재 두루마리를 한 봉 같이 봉해 두었다. 그 봉인된 두루마리와 짚신 한 짝은 카토 외문 도장 옻칠 함 안에 지금도 같이 보관되어 있으며, 후대 외문 도장 신참은 첫 카타나를 받기 전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큐타로는 한 시즌 뒤 다시 도장으로 돌아와 사범 후계가 되었으며, 평생 카타나 한 자루로 본가 친위 자리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길 위 한 발이 도장 안 큰 시합 우승보다 무겁다는 격언은 그 짚신 한 짝 옆에서 굳어졌다.
낭검사범객(浪劍師範客)
떠돌이 검사범
도장 없이 떠돌며 검술을 파는 사범 객인
“도장 간판은 짊어지지 않소. 한 시즌 한 마을, 그게 내 도장이오.”
떠돌이 검사범은 어느 유파에도 정식으로 적을 두지 않은 채 마을을 떠돌며 검술을 가르치는 무인이다. 외형은 낡은 키모노, 어깨에 작은 봇짐,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 한 손에 닳은 보쿠토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마을의 평소 잔칫날·옛 분기 검술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도장의 결재 라인에 매이지 않기에, 마을 청년 한 명이 가문의 빚을 갚으러 길을 떠나는 새벽 가장 먼저 한 자세를 잡아주는 자가 그다. 다이묘 가문 사범이 망설일 때 떠돌이 검사범이 먼저 보쿠토를 든 사례가 야사에 셀 수 없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일본의 진짜 검술은 큰 도장 안이 아니라, 떠돌이 검사범이 마을 어귀에서 잡아준 한 자세 위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떠돌이 검사범의 도장은 마을 어귀 흙 한 줌이오. 그 흙 위에 신참의 보쿠토 자국이 한 줄 새겨지면, 그게 한 시즌의 도장 간판이지요.”
옛 시나노 가도(信濃街道) 떠돌이 검사범 토미타 시하치로 — 어느 유파 본가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평생 한 마을씩 도는 떠돌이 검사범, 평민 자제 백사십 명에게 보쿠토 첫 자세를 손수 잡아준 자 — 의 일화는 시나노 마을 야사첩 안에 '마을 어귀 흙 한 줌'으로 적혀 있다.
토미타가 신슈 분국 작은 마을 우레가하라(芋ヶ原, 시나노 가도 길목에 자리한 백 호 남짓의 농촌 마을)에 한 시즌 머물던 봄, 마을 청년 키노시타 진키치 — 가문 빚을 갚으러 토카이도 길로 떠나기로 한 농민 자제 — 가 가문 카타나 한 자루도 없이 한 자루 보쿠토만 정중히 들고 그를 찾아왔다. 토미타는 마을 어귀 흙 한 줌 위에 진키치의 보쿠토 자세를 직접 한 자세로 잡아주고, 큰 도장 결재 두루마리도 정식 인장도 한 줄 남기지 않은 채 한 시즌 매일 새벽 한 자세를 다듬어 주었다. 진키치는 토카이도 길에서 산적 셋의 시비를 한 자세 한 합으로 정중히 거두었으며, 가문 빚을 한 시즌 안에 다 갚고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 흙 한 줌 자리를 한 시즌 동안 지나치지 않았으며, 우레가하라 마을 어귀 흙 한 줌은 그해 시나노 가도 야사첩에 한 줄로 적혔다. 토미타는 그해 가을 다시 길을 떠났고, 다시는 우레가하라에 돌아오지 않았다.
후대 떠돌이 검사범들은 시나노 가도를 지날 때 그 마을 어귀 흙 한 줌 자리를 한 번 보고 한 호흡 멈추는 것을 의례로 삼았다. 큰 도장 간판보다 마을 어귀 흙 한 줌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가문서기인(家門書記人)
가문 서기 우시오
가문의 문서를 정리하는 우시오 서기
“다이묘께서 한 호흡 결단을 내리시면, 저는 그 호흡을 한 줄 글로 옮기는 자입니다.”
가문 서기 우시오(右筆)는 다이묘 가문의 공식 문서·서신·결재 명단을 한 자 한 자 옮기는 평민 또는 하급 가신 출신 학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인장 펜던트, 어깨에 작은 두루마리 가방, 한 손에 작은 붓과 옛 종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문 서신·옛 분기 결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의 한 호흡 결단이 적힌 한 줄은 그의 손에서 옛 종이로 옮겨지며, 그 한 줄이 인접 가문의 한 시즌 외교를 결정한다. 큰 카로와 작은 우시오 둘 사이에서, 정작 가신단의 평소 표정을 가장 정확히 외우고 있는 자는 우시오라는 가문 안의 농담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외교 서신이 아니라, 죽은 가신 한 명의 가족에게 보내는 정중한 위로 한 줄 위에 있다.
“우시오의 진짜 한 줄은 큰 외교 서신이 아니오. 가신 가족에게 보내는 위로 한 줄을 옛 종이로 옮기는 그 한 호흡이지요.”
옛 부젠번(豊前藩) 가문 서기 우시오 코바야시 진사이 — 평민 학자 출신, 평생 다이묘 가문 결재 두루마리 일천이백 통을 손수 옮겨 적은 자 — 의 일화는 큐슈 가신단 안에서 '위로 한 줄'로 회자된다.
옛 부젠번 친위 가신 와다 카게나가 — 곡창 결재 라인의 한 줄 부정을 정중히 막다 마지막 결단를 청한 가신 — 의 자리에서, 다이묘 오토모 모리노부는 결재 두루마리에 카게나가의 마지막 결단 결재만을 한 줄 적어 진사이에게 옮겨 적게 했다. 진사이는 그 결재를 옮긴 새벽, 옛 종이 한 장에 카게나가의 가족 — 그의 노모와 어린 딸 두 명 — 에게 보내는 위로 한 줄을 다이묘 결재 옆에 정중히 함께 옮겨 적었다. 모리노부는 그 옆 줄을 보고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잠시 덮은 뒤 자기 진바오리 한 폭으로 그 옆 줄을 정중히 가렸으며, 결재 봉인 옻칠 한 호흡을 더 깊이 눌렀다.
그 두루마리는 부젠번 본가 옻칠 함 안에 봉인된 채 지금도 남아 있으며, 카게나가 가족은 그 위로 한 줄 옆 줄 위에서 가신 봉록을 정중히 받았다. 진사이는 그 한 줄을 평생 자기 결재 보고서 어디에도 다시 옮기지 않았으며, 후대 우시오들에게도 그 한 줄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코바야시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두루마리 한 봉이 옻칠 한 폭과 함께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우시오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큰 외교 서신보다 위로 한 줄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짐수아시인(짐手足輕人)
짐꾼 아시가루
전장에서 짐을 나르는 짐꾼 아시가루
“다이묘께서 카타나를 뽑으실 때, 저는 짐 위에 엎드립니다. 그게 제 한 줄 직무요.”
짐꾼 아시가루(小荷駄)는 다이묘 가문의 큰 행렬 옆에서 군량·갑주·가보를 직접 짊어지고 옮기는 평민 출신 보병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큰 가방과 짐 보호띠, 허리에 작은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문 안 모든 짐의 평소 무게·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산적이 행렬을 습격하면 친위 무사는 카타나를 뽑고, 짐꾼 아시가루는 가보 위에 엎드려 자기 몸으로 가문 깃발을 가린다. 그래서 짐꾼의 등에는 평생 한두 줄의 옛 검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한 줄이 다이묘의 한 줄 결재보다 더 무겁다. 가문이 패했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깃발을 거두어 묻는 자도, 한 시대 절반은 짐꾼 아시가루였다는 야사가 남아 있다.
“짐꾼 아시가루의 등은 가보의 마지막 자리오. 거기에 새겨진 옛 검상 한 줄이 다이묘 결재보다 무거운 까닭이오.”
옛 호우키번(伯耆藩) 짐꾼 아시가루 카쿠라 사부에몬 — 평민 보병 출신, 호우키 본가가 토토미 가문 합전에서 무너진 새벽 가문 깃발을 자기 등으로 가린 자 — 의 일화는 산인(山陰) 가신단 안에서 '등 위의 가보'로 회자된다.
도가야마 합전(土賀山合戰, 호우키와 인접 토토미 가문 사이의 산기슭 패전) 새벽, 호우키번 친위 가신단 절반이 카타나 한 합으로 무너지는 자리에서 사부에몬은 가문 가보 카타나 두 자루와 다이묘 진바오리 한 폭을 자기 짐 위에 짊어진 채 자기 등으로 가문 깃발을 정중히 가렸다. 적군 친위 무사 한 명이 그 깃발 한 폭을 베러 다가왔을 때 사부에몬은 무릎을 꿇고 자기 단도 한 자루도 뽑지 않은 채 짐 위에 그대로 엎드렸으며, 그의 등에 친위 무사의 카타나 한 줄 검상이 비스듬히 새겨졌다. 가문이 무너진 새벽, 사부에몬은 살아남은 가신 일곱과 함께 가문 깃발을 산기슭 작은 신사(神社) — 호우키 외곽 작은 가족 신사 시라하기샤(白萩社) — 옆 흙 안에 정중히 묻었으며, 자기는 새 가문에 적을 두지 않고 평생 그 신사 옆 작은 농가에서 살았다.
카쿠라 본가 옻칠 함 안에는 사부에몬의 등에 새겨진 검상의 본을 옻칠로 옮긴 한 폭이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짐꾼 아시가루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호우키 옛 가신단 후손들은 매년 합전 새벽 시각에 시라하기샤 흙 한 줌 위에 술 한 잔을 정중히 따른다. 짐꾼의 등에 새겨진 옛 검상 한 줄이 다이묘 결재보다 무겁다는 격언은 그 신사 옆 흙에서 굳어졌다.
조카약상부(城下藥商夫)
조카마치 약장수
조카마치 거리에서 약을 파는 약장수
“이 가루 한 봉, 한 번에 다 드시지 마시오. 사무라이께서 한 호흡 더 사실 한 봉이오.”
조카마치 약장수는 다이묘 성(城) 아래 마을 조카마치(城下町)의 길거리에서 약초·고약·환약을 파는 평민 상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어깨에 약 가방,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작은 계량 스푼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마을의 평소 단골·옛 분기 약초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도공이 카타나 한 자루로 다이묘를 살린다면, 작은 약장수는 한 봉 가루로 떠돌이 낭인의 한 호흡을 살린다. 다이묘 가문 친위 무사가 큰 전장에서 입은 옛 상처가 한 시즌마다 도질 때, 그가 정중히 다관 뒤로 약을 들고 오는 자도 약장수다. 가장 무거운 한 봉은 큰 환약이 아니라, 신참 아시가루의 첫 출정 새벽에 어머니가 사다준 한 봉 작은 가루 위에 있다.
“약장수의 가방 안에 한 봉 빈 약초가 늘 들어 있소. 신참 첫 출정 새벽 어머니가 한 봉 청해 가실 자리지요.”
옛 오와리번(尾張藩) 조카마치 약장수 카타기리 헤이쿠로 — 평민 약사 출신, 오와리 본성 동측 골목 한 줌 자리에서 평생 약 가방을 메고 길거리 단골 백사십 가족을 외운 자 — 의 일화는 조카마치 야사첩 안에 '한 봉 약초의 새벽'으로 적혀 있다.
오와리번 친위 가신단 신참 아시가루 시라카베 진노스케 — 농민 출신 보병, 첫 출정 새벽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헤이쿠로 가게 앞에 들른 자 — 의 어머니가 마지막 동전 한 닢으로 진노스케의 첫 출정 약 한 봉을 청했을 때, 헤이쿠로는 가게 한 모퉁이에 봉해 두었던 옛 단조(端朝) 약초 한 봉을 정중히 그 어머니의 손에 얹어 주었다. 진노스케는 합전 새벽 그 약 한 봉을 자기 갑주 안주머니에 정중히 넣고 출정했으며, 가벼운 화살 한 발에 옆구리 한 호흡이 베인 자리에서 그 한 봉의 약초가 정확한 자리에 발라졌다. 진노스케는 그 합전에서 살아남아 한 시즌 뒤 다시 헤이쿠로의 가게 앞에 동전 한 닢을 정중히 얹었으며, 헤이쿠로는 그 동전을 받지 않고 가게 한 모퉁이 옛 옻칠 함 안에 정중히 봉해 두었다.
카타기리 헤이쿠로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동전 한 닢과 빈 약 봉투 한 장이 같이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오와리 조카마치 약장수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빈 약초 한 봉을 정중히 자기 가방 안에 넣어 두는 의례를 따른다. 오와리번 본가 친위 가신단도 그 한 봉의 자리를 알아 약장수 가게 앞을 정중히 지나친다. 큰 환약 한 알보다 신참 첫 출정 새벽 어머니의 한 봉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다관옹주인(茶館翁主人)
다관(茶館) 주인장
다관 한 켠을 지키는 늙은 주인장
“오늘 차, 평소보다 한 호흡 더 우렸소. 다이묘 분 자리 잘 봐드리시오.”
다관(茶館) 주인장은 조카마치 길목 한 채 다관을 평생 책임지는 평민 출신 차인(茶人)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어깨에 작은 가방, 머리에 흰 두건, 허리에 작은 차 도구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다관에 들르는 모든 단골의 평소 차 취향·옛 분기 한 잔의 결정적 시점·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카로와 메츠케가 같은 시각에 다관에 와도, 둘의 자리는 절대 한 줄 안에 놓이지 않는다. 다이묘 한 명, 검호 한 명, 떠돌이 낭인 한 명이 한 다관 안에서 정중히 한 잔 차로 한 호흡을 함께 쉴 수 있는 것은, 결국 주인장의 한 줄 자리 배치 위에 있다. 닌자가 일본의 그림자라면, 다관 주인장은 일본의 한 잔 호흡이다.
“다관 자리 배치가 큰 외교라오. 카로 한 잔과 메츠케 한 잔이 한 줄에 놓이지 않게 하는 그 한 호흡이지요.”
옛 미카와번(三河藩) 조카마치 다관 주인장 츠바키 키치자에몬 — 평민 차인(茶人) 출신, 평생 미카와 본성 동측 길목 한 채 다관 후카츠바키도(深椿堂, 미카와 조카마치 동측 골목 안 작은 안채 다관)를 자기 손목 한 줄로 운영한 자 — 의 일화는 도카이 가신단 안에서 '두 잔의 호흡'으로 회자된다.
미카와번 카로 츠치우라 노부히사와 메츠케 야마자키 코로쿠 — 한 시즌 가신단 안에서 결재 라인 한 줄을 두고 정중히 다른 호흡을 가진 두 가신 — 가 같은 새벽 후카츠바키도에 들렀을 때, 키치자에몬은 두 사람의 자리를 한 줄에 놓지 않고 안채와 바깥채로 나누어 정중히 차 한 잔씩 따로 따라 올렸다. 카로의 차는 평소보다 한 호흡 깊게 우려진 옛 비센차 한 잎, 메츠케의 차는 평소보다 한 호흡 가벼이 우려진 우지(宇治) 햇잎 한 줌이었으며, 두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 같은 시각에 정중히 한 호흡 함께 차를 마쳤다. 그 새벽 다이묘 결재 회의에서 두 가신은 결재 라인 한 줄을 정중히 다시 잡아 한 호흡 더 깊은 합의를 한 줄로 적어 올렸다.
키치자에몬은 그 자리 배치를 결재 두루마리 어디에도 한 줄도 옮기지 않았으며, 후카츠바키도 안채 옻칠 기둥 옆에 그 새벽 두 찻잔이 놓인 자리만 한 줌 흙으로 정중히 표시해 두었다. 후카츠바키도 안채에는 그 흙 한 줌이 지금도 정중히 남아 있으며, 후대 다관 주인장들은 임명 첫 시즌 그 자리를 한 번 보고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큰 외교가 다이묘 결재 회의가 아니라 다관 두 잔 호흡 위에 놓여 있다는 격언은 그 흙 한 줌 옆에서 굳어졌다.
신사궁기수(神社弓騎手)
야부사메 신사궁기수(神社弓騎手)
야부사메 의식에서 활을 쏘는 신사의 기수
“달리는 말 위, 세 개의 과녁, 한 호흡. 신사 앞에서 흥정은 없소.”
야부사메 신사궁기수(流鏑馬 神社弓騎手)는 가문의 큰 신사 봉납 의식에서 달리는 말 위에서 세 개의 과녁을 한 호흡 안에 꿰뚫는 기마 궁사(弓士)다. 외형은 짙은 색 가리기누(狩衣) 정장, 어깨에 가문 문양 어깨띠,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 등에 옻칠 활통과 깃 다듬은 화살 세 발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봉납 결재·옛 분기 풍향·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봉납 의식의 한 발이 빗나가면 그해 가문의 농사·전쟁 운(運) 한 줄이 흔들린다고 여겨, 다이묘는 자기 친위 무사 중 가장 정중한 자에게 이 직무를 맡긴다. 가장 무거운 한 발은 큰 시합의 우승 화살이 아니라, 봉납 새벽 신사 앞에서 첫 화살을 정중히 활시위에 걸어두는 한 줄 자세 위에 있다. 그가 평생 노린 진짜 과녁은 나무 판이 아니라, 가문 한 시즌의 불안한 호흡 한 줄이다.
“신사 봉납 첫 화살은 과녁을 노리는 게 아니오. 가문 한 시즌의 불안한 호흡 한 줄을 정중히 풀어주는 한 발이지요.”
옛 사가미번(相模藩) 야부사메 신사궁기수 우츠노미야 야시치로 — 평생 가문 본 신사 츠루오카(鶴岡, 사가미 본성 북측 옛 신사) 봉납 의식에서 흰 말 한 마리만 함께 달린 자 — 의 일화는 도카이 신사 야사첩 안에 '풀어준 화살'로 적혀 있다.
한 시즌, 사가미번이 옛 분쟁 영지 미카와 외곽 한 두렁의 흉작 결재 한 줄로 가신단 안에서 깊은 호흡 분란이 일고 있을 때, 다이묘 호조 마사아키는 봉납 의식을 한 시즌 더 미루지 않고 야시치로에게 첫 화살을 정중히 정해진 시각에 활시위에 걸도록 명했다. 그 새벽 츠루오카 신사 앞 바람은 평소보다 한 호흡 깊게 흔들렸으며, 야시치로는 첫 화살을 세 과녁의 한가운데 한 호흡으로 꿰뚫지 않고, 첫 과녁의 흰 점 한 호흡 옆을 정확히 가르는 자리에 정중히 보내주었다. 봉납 자리에 함께 있던 옛 카로 시바타 진베에는 그 한 발의 자리에서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가신단 분란의 한 줄 합의를 정중히 한 호흡 더 깊이 다시 잡았다. 그해 사가미번 흉작 결재는 한 줄 양보로 정중히 매듭이 잡혔으며, 야시치로의 첫 화살은 정확히 가문 한 시즌의 불안한 호흡 한 줄을 풀어준 한 발로 야사첩에 한 줄 남았다. 우츠노미야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첫 화살의 깃 한 자락이 봉인되어 있으며, 함은 매년 봉납 새벽 시각에 정중히 한 번 닦인다.
후대 야부사메 신사궁기수들은 첫 봉납 새벽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고 활시위를 정중히 가다듬는 의례를 따른다. 큰 시합 우승 화살보다 가문 한 시즌의 호흡을 풀어준 한 발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축성봉행장(築城奉行將)
천수각 축성 부교(奉行)
천수각 축조를 총괄하는 막부의 봉행
“돌 한 단을 잘못 쌓으면, 다이묘께서 백 년 뒤에 떨어지오. 그러니 오늘 한 호흡을 흥정하지 마시오.”
천수각 축성 부교(天守閣築城奉行)는 다이묘 가문의 본성(本城) 천수각과 성벽·해자·곡륜(曲輪) 일체의 축성을 총감독하는 무가 행정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정장 하카마, 가슴팍에 가문 축성 인장 펜던트, 어깨에 큰 도면 두루마리 가방,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 한 손에 옛 측량 자(尺)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문 천수각의 옛 단(段) 결재·옛 분기 지진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돌 한 단의 기울기가 한 호흡 어긋나면, 백 년 뒤 다이묘 후손 한 명이 천수각 위에서 떨어진다는 옛 격언을 그가 평생 한 줄로 외우고 산다. 큰 다이묘 가문은 자기 천수각의 한 단 한 단을 그의 손목 굳은살로 검증해야 비로소 가문 깃발을 올린다. 가장 무거운 한 단은 천수각의 꼭대기가 아니라, 농민 출신 석공의 첫 한 단을 정중히 정으로 두드려준 새벽의 한 줄 위에 있다.
“축성 부교의 진짜 결재는 천수각 꼭대기가 아니오. 농민 출신 석공의 첫 한 단 정 한 번이지요. 백 년 뒤 다이묘 후손이 떨어지지 않는 한 호흡이오.”
옛 단고번(丹後番) 천수각 축성 부교 사노 다이고로 — 평생 단고번 본성 시라사기성(白鷺城, 단고 분국 북측 평야 위 흰 천수각) 축성을 한 단 한 단 손목 굳은살로 검증한 자 — 의 일화는 호쿠리쿠 무가 사이에서 '첫 한 단의 정'으로 회자된다.
시라사기성 축성 첫해 새벽, 다이고로는 농민 출신 석공 도가와 분지 — 단고 외곽 작은 마을 출신, 평생 천수각 한 채 본 적 없던 평민 석공 — 가 첫 한 단을 쌓는 자리에 정중히 무릎을 꿇고 자기 옛 측량 자(尺) 한 자루를 분지의 손에 한 호흡 얹어 주었다. 분지의 첫 한 단이 한 호흡 어긋나지 않은 자리에 정확히 놓였을 때, 다이고로는 자기 정(釘)으로 그 첫 한 단의 모서리를 정중히 한 번 두드려 결재 표시를 새겼다. 그 한 줄 결재는 시라사기성 옛 단(段) 결재 두루마리 첫 줄에 한 자도 어긋남 없이 그대로 적혔으며, 다이고로는 그 새벽 결재 봉인 옻칠 한 호흡을 더 깊이 눌렀다.
시라사기성은 축성 후 백사십 년 동안 한 차례의 큰 지진 — 산인 대지진(山陰大地震, 호쿠리쿠 일대를 한 시즌 흔든 큰 진동) — 새벽에도 한 단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첫 단의 그 정 자국 한 줄은 지금도 천수각 동측 모서리 옛 옻칠 함 옆에 정중히 보존되어 있다. 분지는 한 시즌 뒤 단고번 축성 부교 보좌로 정중히 임명되었으며, 평생 자기 첫 한 단의 정 자국을 매년 새벽 한 번씩 정중히 닦는 의례를 따랐다. 사노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옛 측량 자 한 자루가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단고번 축성 부교들은 임명 첫 새벽 그 자 앞에서 한 호흡 멈추고 자기 손목 굳은살을 정중히 살피는 의례를 따른다. 천수각 꼭대기보다 첫 한 단의 정 자국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모서리에서 굳어졌다.
검호말제자(劍豪末弟子)
검호의 마지막 제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을 이어받은 막내 제자
“스승의 마지막 한 합은 책에 적혀 있지 않소. 제가 그날 새벽의 호흡을 그대로 들고 살 뿐이오.”
검호의 마지막 제자는 한 시대를 풍미한 늙은 검호(劍豪)가 산을 내려가기 전 단 한 명에게만 정중히 자기 마지막 한 합의 호흡을 넘긴 청년 검사다. 외형은 닳은 짙은 색 도복, 어깨에 스승 유파 문양이 새겨진 작은 띠, 허리에 한 자루 옛 카타나, 한 손에 닳은 보쿠토가 표준이다. 본인은 일도류 종주처럼 큰 도장을 거느리지 않으며, 산 한 채를 정처 없이 떠돌면서 스승의 마지막 한 합을 매일 새벽 한 번씩 다듬는다.
다이묘 가문 사범도 그 한 합의 정확한 자세를 본 적이 없어, 큰 시합에서 그를 마주친 검사들이 한 합 안에 결판을 내준다. 본인은 후계 제자를 두지 않기로 정해, 그 한 합이 자기 대(代)에서 끝나는 것을 평생의 짐으로 안고 산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시합의 우승이 아니라, 스승의 무덤 앞에서 매년 한 번씩 그 한 합을 정중히 허공에 그어드리는 새벽의 한 줄 자세 위에 있다.
“마지막 제자의 한 합은 책에 적히지 않소. 스승의 무덤 앞 새벽 허공에 한 번씩 그어드리는 그 한 줄 위에 살아 있을 뿐이오.”
옛 검호 야가미 사이키치 — 비센 산기슭에서 평생 정식 가문에 적을 두지 않은 늙은 검호, 산을 내려가던 마지막 새벽 단 한 명에게만 자기 한 합의 호흡을 정중히 넘긴 자 — 의 마지막 제자 도가시 신지로 — 멸문한 옛 다이묘 가문 후손, 평생 스승의 무덤 앞에서만 자기 카타나를 푸는 자 — 의 일화는 비센 야사첩 안에 '허공에 그은 한 합'으로 적혀 있다.
사이키치가 마지막 새벽 산을 내려가기 전, 신지로에게 자기 한 합의 호흡을 카타나 한 자루 위에 정중히 옮겨 주고 "이 한 합은 책에 적지 마라"는 한 줄 인사만 남겼다. 신지로는 한 시즌 뒤 인접 다이묘 가문 친위 사범 후계 결재 자리에 정중히 청을 받았으나, 결재 두루마리 한 줄로 그 자리를 사양하고 비센 산기슭 사이키치의 무덤 — 무겐 마쓰(無弦松, 비센 산정 외딴 소나무 한 그루 옆 작은 무덤) — 옆 작은 농가에서 평생을 살았다. 매년 사이키치의 기일 새벽 신지로는 그 무덤 앞에서 카타나를 정중히 풀고, 사이키치의 마지막 한 합을 허공에 한 번씩 그어드리는 의례를 따랐다.
다이묘 가문 친위 사범 한 명이 한 시즌 그 새벽을 멀리서 본 뒤 자기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산을 내려갔다는 야사가 비센 무가 사이에서 회자된다. 신지로는 평생 후계 제자를 두지 않았으며, 그 한 합은 그의 대(代)에서 정중히 끝났다. 무겐 마쓰 옆 무덤 앞 흙 한 줌은 지금도 매년 기일 새벽 한 번씩 정중히 닦이며, 후대 비센 검사들은 그 무덤 옆을 지날 때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책에 적히지 않은 한 합이 큰 시합 우승보다 무겁다는 격언은 그 무덤 앞 흙 위에서 굳어졌다.
봉행소부장(奉行所副將)
가문 봉행소(奉行所) 부교
가문 봉행소의 부교를 맡은 부장
“가문 안의 다툼은 카타나로 해결하지 않소. 정중한 한 줄 판결로 끝내오.”
가문 봉행소(奉行所) 부교는 다이묘 가문의 영지 안에서 평민·아시가루·하급 가신의 송사(訟事)와 풍기(風紀)를 정중히 한 줄 판결로 정리하는 무가 행정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정장 하카마, 가슴팍에 봉행소 인장 펜던트, 어깨에 작은 두루마리 가방, 허리에 길고 짧은 한 쌍의 카타나, 한 손에 옛 판결 책자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문 송사·옛 분기 판례·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카로와 메츠케가 가신단의 큰 흐름을 본다면, 봉행소 부교는 영지 평민 한 가족의 무거운 한 호흡을 본다. 그가 정중히 내린 한 줄 판결은 다이묘의 결재 없이도 그 영지 안에서 한 시대 효력을 가지며, 그래서 큰 다이묘 가문조차 자기 봉행소 부교의 한 줄을 함부로 뒤엎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모반 사건이 아니라, 굶은 농민 한 명의 작은 도둑질을 정중히 한 줄로 면해준 그날의 침묵 위에 있다.
“봉행소 부교의 한 줄은 다이묘 결재가 아니오. 굶은 농민 한 명의 도둑질을 정중히 면해준 그날의 침묵 위에 있소.”
옛 이즈모번(出雲藩) 가문 봉행소 부교 와카바야시 진사부로 — 평생 영지 평민 송사 일천이백 건을 정중히 한 줄 판결로 정리한 자, 단 한 차례도 결재 두루마리 한 줄을 다이묘 결재 없이 뒤집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산인 무가 사이에서 '면한 한 줄'로 회자된다.
한 시즌, 이즈모번 영지 외곽 작은 마을 시오노카미(塩上, 이즈모 본성 동측 길목 농촌) 농민 마지마 헤이지로 — 흉작 시즌 자기 어린 자식 둘을 굶기지 않으려 다이묘 가문 곡창 한 모서리에서 보리 한 줌을 정중히 훔친 자 — 가 봉행소에 한 줄 송사로 끌려왔을 때, 진사부로는 결재 두루마리에 결재 한 줄을 적기 전 자기 손목 굳은살을 한 호흡 살피고 옛 판결 책자 한 권을 가지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한 식경 동안 봉행소 안마당에 정중히 침묵이 한 호흡 깊이 내려앉았으며, 진사부로는 자리에 돌아와 결재 두루마리 한 줄에 "보리 한 줌의 무게는 흉작 시즌 영지 결재의 무게와 같다"는 한 줄만 적고 헤이지로의 처벌을 정중히 면했다. 그 한 줄 결재는 다이묘 우에스기 야스미츠 — 즉위 첫해 가신단 호흡표를 외운 영주 — 에게 정중히 한 봉으로 올라갔으며, 다이묘는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자기 결재 인장을 그 한 줄 옆에 정중히 한 번 더 눌렀다.
헤이지로는 한 시즌 뒤 영지 곡창 잡일로 정중히 임명되었으며, 평생 매 시즌 첫 새벽 한 호흡씩 봉행소 앞 흙 한 줌을 정중히 닦는 의례를 따랐다. 와카바야시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이 헤이지로의 빈 보리 자루 한 장과 함께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봉행소 부교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큰 모반 사건보다 면한 한 줄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은신두령장(隱身頭領將)
닌자 결사 두령(頭領)
닌자 결사를 통솔하는 그림자의 두령
“이름은 적지 마시오. 우리 결사는 이름이 없을 때 비로소 한 호흡 더 산다오.”
닌자 결사 두령(頭領)은 한 마을 단위로 묶인 옛 닌자 결사(結社)의 우두머리로, 인술 닌자 수십 명의 임무·교육·은퇴를 총괄하는 자다. 외형은 어두운 색 단정한 키모노 위 짧은 인복(忍服) 외피, 가슴팍에 결사 인장이 새겨진 작은 패, 허리에 짧은 카타나와 인술 도구 묶음, 손목에 옛 흉터 한 줄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다이묘 가문의 옛 의뢰 결재·옛 분기 기상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장 강한 두령은 자기 결사 닌자의 이름을 종이에 적지 않으며, 머릿속 한 표 안에서만 그 이름들을 매일 새벽 한 번씩 호명한다. 의뢰가 끊어진 시즌, 두령은 결사 닌자 한 명 한 명에게 다른 마을 다관의 잡일을 정중히 주선해주는 일까지 자처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임무의 성공 보고가 아니라, 돌아오지 못한 닌자의 노모(老母)에게 정중히 잔돈 한 봉을 건네는 그날의 침묵 위에 있다.
“결사 두령의 진짜 한 줄은 임무 성공 보고가 아니오. 돌아오지 못한 닌자의 노모 댁 문 앞에 잔돈 한 봉을 정중히 두고 가는 그 침묵이지요.”
옛 코가(甲賀) 분파 닌자 결사 두령 시바자키 한조 — 코가 산기슭 작은 결사 마을 카게쿠모(影雲) 출신, 평생 결사 닌자 칠십이 명의 이름을 종이에 적지 않은 채 머릿속 한 표로 외운 자 — 의 일화는 코가 닌자 사이에서 '문 앞 한 봉'으로 회자된다.
한 시즌, 카게쿠모 결사가 옛 다이묘 호조 가문 친위 가신단의 한 줄 정탐 임무를 받았을 때, 결사 닌자 후토자카 사쿠라이 — 한조의 첫 제자, 평생 자기 인장 한 자도 종이에 남기지 않은 자 — 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지 못했다. 한조는 임무 성공 보고를 다이묘 가문 결재 라인에 정중히 한 줄로만 올린 뒤, 자기 결사 마을 외곽 사쿠라이의 노모 댁 문 앞에 잔돈 한 봉을 정중히 두고 한 호흡도 들어가지 않은 채 산을 내려갔다. 잔돈 한 봉 안에는 결사 결재 두루마리 한 줄도, 사쿠라이의 이름 한 자도 적혀 있지 않았으며, 다만 옛 카게쿠모 결사의 무명(無名) 인장 한 자국만이 정중히 봉투 안에 찍혀 있었다.
사쿠라이의 노모는 그 한 봉을 평생 자기 옻칠 함 안에 정중히 봉해 두었으며, 매년 사쿠라이의 기일 새벽 한 호흡씩 함 앞에서 정중히 차 한 잔을 우려 두는 의례를 따랐다. 한조는 그 한 봉을 결사 결재 두루마리 어디에도 한 줄로 옮기지 않았으며, 후대 결사 두령들에게도 그 잔돈 한 봉의 액수는 한 자도 알리지 않았다. 카게쿠모 결사 옻칠 함 안에는 그 무명 인장 한 자국이 새겨진 빈 봉투 한 장이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코가 결사 두령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임무 성공 보고보다 문 앞 한 봉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빈 봉투 위에서 굳어졌다.
갑주무구공(甲冑武具工)
갑주공방 무구장(武具匠)
전사의 갑주와 무구를 두드려 만드는 장인
“이 갑주, 다이묘 한 분 한 호흡을 가립니다. 그러니 한 끈도 흥정으로 풀지 마시오.”
갑주공방 무구장(武具匠)은 평민 출신 장인이지만 다이묘 가문 친위 무사와 아시가루의 갑주(甲冑)·진바오리·호로(母衣) 일체를 손수 짜고 옻칠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작은 공방 인장, 어깨에 옻 묻은 가죽 가방, 한 손에 정밀 송곳과 옛 끈 묶음, 한쪽 허리에 미완성 흉판(胸板)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문 갑주의 옛 끈 결재·옛 분기 옻칠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갑주의 한 끈이 한 호흡 늦게 묶이면 큰 전장에서 다이묘의 옆구리 한 호흡이 비고, 그래서 그는 매일 새벽 자기 손목에 옻을 한 번씩 발라 굳은살의 두께를 살핀다. 도공이 카타나 한 자루를 만든다면, 무구장은 그 카타나가 들어갈 자리 한 칸을 만든다. 가장 무거운 한 끈은 다이묘의 흉갑이 아니라, 신참 아시가루의 첫 출정 새벽에 정중히 한 번 더 매어준 어깨끈 한 줄 위에 있다.
“갑주 무구장의 진짜 결재는 다이묘 흉갑이 아니오. 신참 아시가루의 첫 출정 어깨끈 한 줄을 정중히 한 번 더 매어준 새벽이지요.”
옛 사가미번(相模藩) 갑주공방 무구장 코사카 무사시노카미 — 평민 장인 출신, 평생 사가미 본성 친위 가신단 갑주 칠십팔 벌을 손수 짠 자 — 의 일화는 도카이 갑주공방 사이에서 '어깨끈 한 줄'로 회자된다.
한 시즌, 사가미번이 인접 미카와 가문과의 옛 분쟁 영지 경계 충돌 — 츠루카와 한판(鶴川半判, 강가 한 두렁의 작은 야전) — 출정을 앞두고, 무사시노카미는 다이묘 호조 노부카게의 가보 흉갑 옻칠을 한 시즌 동안 정중히 다듬고 있었다. 출정 새벽 신참 아시가루 토미오카 료이치 — 농민 출신 첫 출정 보병, 어머니가 마지막 동전 한 닢으로 약 한 봉을 청했던 자 — 가 가벼운 갑주 한 벌을 받고 작업장 모서리에서 정중히 어깨끈 한 줄을 매고 있을 때, 무사시노카미는 다이묘 흉갑 옻칠 작업을 한 호흡 멈추고 료이치의 어깨로 다가가 어깨끈 한 줄을 정중히 한 번 더 매어 주었다. 다이묘 흉갑 옻칠 결재는 그 새벽 한 호흡 늦었으며, 무사시노카미는 결재 두루마리 한 줄에 "어깨끈 한 줄의 무게는 흉갑 옻칠과 같다"는 한 줄만 적어 올렸다.
호조 노부카게는 그 한 줄을 본 새벽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자기 흉갑 옻칠을 한 시즌 더 미루기로 정중히 결재했다. 료이치는 그 합전 새벽 자기 옆구리 한 호흡이 화살에 베인 자리에서 어깨끈 한 줄이 정확히 갑주를 지탱해 살아 돌아왔으며, 한 시즌 뒤 무사시노카미 작업장 앞에 정중히 동전 한 닢을 얹어두고 다시 출정했다. 코사카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동전 한 닢과 끊어지지 않은 어깨끈 한 자락이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갑주 무구장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다이묘 흉갑 옻칠보다 어깨끈 한 줄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회선도선사(廻船導船師)
항구 카이센(廻船) 도선사
항구를 드나드는 카이센을 안내하는 도선의 사부
“이 만(灣)의 한 호흡을 못 읽으면, 가문 군량 한 시즌이 바닷속이오.”
항구 카이센(廻船) 도선사는 다이묘 가문의 큰 항구로 들고 나는 카이센(廻船) 즉 연안 운반선들의 입출항을 한 호흡씩 정중히 잡아주는 평민 출신 해상 안내인이다. 외형은 짧고 단단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가문 항구 인장이 새겨진 작은 패, 머리에 닳은 두건, 허리에 작은 단도, 한 손에 옛 해도(海圖) 한 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만(灣)의 옛 조류 결재·옛 분기 해무(海霧)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문 군량 한 시즌의 절반은 그가 잡은 한 호흡 위에 놓여 있어, 다이묘는 그를 평생 큰 행렬의 한 자리 안에 정중히 모신다. 큰 전장에 출정하는 친위 무사도 그가 정중히 흔들어주는 두건 한 폭 위에서 비로소 자기 가문 깃발을 한 호흡 더 멀리 본다. 가장 무거운 한 호흡은 큰 카이센의 입항이 아니라, 폭풍의 새벽 어부 한 가족의 작은 배 한 척을 정중히 만 안으로 끌어들인 그날의 한 줄 위에 있다.
“도선사의 진짜 한 호흡은 큰 카이센이 아니오. 폭풍 새벽 작은 배 한 척을 만 안으로 정중히 끌어들인 그 한 줄이지요.”
옛 사쓰마번(薩摩藩) 항구 카이센 도선사 사가라 토베에 — 평민 사공 출신, 평생 사쓰마 본성 남측 만(灣) 카고시마노미사키(鹿兒島の岬) 한 곳의 조류 한 줄을 손목으로 외운 자 — 의 일화는 사이카이도(西海道) 가신단 사이에서 '폭풍 새벽 작은 배 한 척'으로 회자된다.
한 시즌, 사쓰마번 가문 군량을 실은 큰 카이센 닛코마루(日光丸, 사쓰마 본가 군량 운반선) 한 척과 어부 가족의 작은 거룻배 한 척이 같은 새벽 폭풍 안에 갇혔을 때, 토베에는 자기 도선 두건 한 폭으로 닛코마루의 입항 신호를 한 호흡 늦추고 작은 거룻배의 한 호흡을 먼저 잡아 만 안으로 정중히 끌어들였다. 닛코마루의 선장 마키노 신사쿠 — 사쓰마 본가 친위 가신, 평생 카이센 백칠십이 척의 입항을 정중히 결재한 자 — 가 한 식경 정중히 폭풍 안에 머문 뒤 두 번째 신호로 입항했으며, 그 한 식경의 군량 결재 지연은 사쓰마 본가 결재 두루마리 한 봉으로 정중히 사가라 본가에 항의로 올라갔다. 사쓰마 다이묘 시마즈 노부히사 — 평생 자기 결재 라인 한 줄을 가신단 호흡 박자에 맞춰 잡은 영주 — 는 그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자기 결재 인장을 도선사 결재 두루마리 한 줄 옆에 정중히 한 번 더 눌렀다.
어부 가족 — 노모와 어린 자식 셋 — 은 그 폭풍 새벽 작은 거룻배 한 척에서 정중히 살아남았으며, 토베에는 결재 두루마리 한 줄에 "큰 카이센 한 호흡과 작은 거룻배 한 호흡의 무게는 같다"는 한 줄만 적어 올렸다. 사가라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두건 한 폭이 폭풍 새벽 빗물 자국과 함께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사쓰마 항구 도선사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큰 카이센보다 폭풍 새벽 작은 배 한 척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두건 위에서 굳어졌다.
매잡이타카쇼(매잡이鷹匠)
가문 매잡이 다카쇼(鷹匠)
주군의 매를 길들이는 다카쇼
“매는 가문이 길들이는 새가 아니오. 매가 가문의 한 호흡을 정중히 빌려주는 것이오.”
가문 매잡이 다카쇼(鷹匠)는 다이묘 가문의 큰 매사냥(鷹狩) 행렬에서 매(鷹) 한 마리의 호흡을 손목 한 줄로 잡아주는 평민 또는 하급 가신 출신 사육사다. 외형은 짙은 색 단정한 작업복 위 두꺼운 가죽 외피, 어깨에 가문 문양 어깨띠, 손목에 두꺼운 매잡이 글러브, 허리에 작은 단도와 미끼 주머니, 한쪽 어깨 위에 매 한 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문 매의 옛 깃 결재·옛 분기 풍향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의 큰 매사냥에서 매 한 마리가 한 호흡 늦게 날면 가문의 한 시즌 위신이 한 줄 흔들리며, 그래서 그는 매일 새벽 매의 깃 한 줄 한 줄을 손수 빗는다. 매의 한 호흡과 손목의 한 호흡이 정확히 같은 박자로 맞아야 비로소 매가 한 자리를 떠나며, 다카쇼는 그 한 박자를 위해 평생 자기 손목을 단련한다. 가장 무거운 한 호흡은 큰 매사냥의 사냥감이 아니라, 늙은 매가 마지막으로 손목을 떠나기 전 정중히 한 번 더 부리를 비벼준 그 새벽 위에 있다.
“다카쇼의 진짜 한 호흡은 큰 매사냥이 아니오. 늙은 매가 손목을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부리를 정중히 한 번 비벼준 그 새벽이지요.”
옛 카이번(甲斐藩) 가문 매잡이 다카쇼 와카타베 시키부 — 평민 사육사 출신, 평생 카이 본가 매 사십이 마리의 깃 한 줄 한 줄을 손수 빗은 자 — 의 일화는 코신(甲信) 무가 사이에서 '부리를 비빈 새벽'으로 회자된다.
옛 카이번 본가 매 시라하야부사(白隼, 한 시대 카이 본가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늙은 매 한 마리) 한 마리는 평생 시키부의 손목 한 줄에서 한 호흡 박자가 정확히 묶여 있었으며, 다이묘 타케다 카게미츠의 큰 매사냥 행렬에서 평생 한 호흡도 늦게 날아오르지 않은 매였다. 시라하야부사가 마지막 매사냥 새벽 시키부의 손목을 떠나기 전, 시키부는 자기 두꺼운 매잡이 글러브 한쪽을 정중히 풀고 매의 부리를 자기 손목에 한 번 비벼주었다. 그 새벽 시라하야부사는 한 호흡 늦게 날아올라 매사냥 표적 한 마리를 정중히 한 번 만에 거두지 않고, 한 자루 깃 자국만 남긴 채 산 너머로 한 호흡 더 깊이 사라져 다시는 손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카이번 본가 결재 라인은 그 한 호흡의 매사냥 위신 한 줄을 두고 결재 두루마리 한 봉으로 정중히 항의를 올렸으나, 카게미츠는 그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자기 결재 인장을 시키부의 결재 두루마리 한 줄 옆에 정중히 한 번 더 눌렀다. 시키부는 그날부터 매잡이 글러브 한쪽 안에 시라하야부사의 깃 한 자락만 정중히 봉해 두었으며, 매년 시라하야부사가 마지막 손목을 떠난 새벽 시각에 한 호흡씩 그 글러브 안 깃 한 자락을 정중히 닦는 의례를 따랐다. 와카타베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매잡이 글러브 한쪽이 시라하야부사의 깃 한 자락과 함께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카이번 다카쇼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큰 매사냥의 사냥감보다 부리를 비빈 새벽 한 호흡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두부행상부(豆腐行商夫)
조카마치 두부 행상
조카마치 골목을 도는 두부 행상꾼
“두부 한 모, 새벽에 한 호흡 늦으면 다이묘 댁 아침상이 한 줄 흔들립니다.”
조카마치 두부 행상은 다이묘 성 아래 조카마치(城下町)의 새벽 골목을 지게 한 짝과 작은 종 하나로 누비는 평민 출신 잡곡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두부 가방,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작은 종, 등에 두부 통이 매달린 지게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골목의 평소 단골·옛 분기 콩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본가 아침상에 두부 한 모가 한 호흡 늦으면 카로의 결재 한 줄도 한 호흡 늦어진다는 농담이, 조카마치 안에서는 진심에 가깝게 통한다. 친위 무사가 큰 전장에서 돌아온 새벽, 가문 깃발 앞에서 가장 먼저 한 그릇 따끈한 두부 국물을 그릇에 담아주는 자도 그다. 가장 무거운 한 모는 다이묘의 아침상이 아니라, 떠돌이 낭인이 마지막 노잣돈으로 받아 든 따끈한 두부 한 그릇 위에 있다.
“두부 행상의 진짜 한 모는 다이묘 아침상이 아니오. 떠돌이 낭인이 마지막 노잣돈으로 받아 든 두부 한 그릇이지요.”
옛 미카와번(三河藩) 조카마치 두부 행상 카지카와 분고로 — 평민 행상 출신, 평생 미카와 본성 동측 골목 한 자리에서 새벽 종 한 개로 두부 한 모를 정중히 옮긴 자 — 의 일화는 도카이 조카마치 야사첩 안에 '마지막 노잣돈의 두부'로 적혀 있다.
한 시즌, 옛 멸문 가문 출신 떠돌이 낭인 우치다 츠즈키마사 — 토카이도를 평생 떠돈 늙은 낭인, 마지막 노잣돈으로 자기 가문묘 앞에 술 한 잔을 마지막으로 따르려는 자 — 가 카지카와의 골목 앞에 정중히 멈춰 마지막 동전 한 닢으로 따끈한 두부 한 그릇을 청했을 때, 카지카와는 두부 한 모 위에 평소보다 한 호흡 더 깊은 콩물 한 국자를 정중히 얹어 주었다. 츠즈키마사는 그 두부 한 그릇을 골목 한 모서리에 정중히 앉아 마지막 한 호흡으로 비웠으며, 그 자리에서 자기 카타나 한 자루를 카지카와의 가게 앞에 정중히 풀어두고 정중히 산을 내려갔다. 카지카와는 그 카타나 한 자루를 한 시즌 동안 가게 한 모서리에 정중히 봉해 두었으며, 한 시즌 뒤 츠즈키마사의 옛 가문묘 — 토카이도 길목 작은 합장묘 — 옆 흙 안에 정중히 한 자루 카타나를 옮겨 묻었다.
미카와번 친위 가신단 한 명이 그 새벽 골목 한 모서리를 멀리서 본 뒤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자기 가신단 결재 라인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더 깊이 다시 잡았다는 야사가 회자된다. 카지카와 본가 옻칠 함 안에는 츠즈키마사의 마지막 동전 한 닢이 빈 그릇 한 자락과 함께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조카마치 두부 행상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다이묘 아침상보다 마지막 노잣돈의 두부 한 그릇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함 위에서 굳어졌다.
강변뱃사공(江邊船公)
강변 도선장 뱃사공
강변 도선장에서 노를 잡은 늙은 뱃사공
“건너편이 가문 영지 끝이오. 한 사람씩, 한 호흡씩, 정중히 모시오.”
강변 도선장 뱃사공은 다이묘 가문 영지 끝 큰 강의 도선장(渡船場)에서 한 척 작은 거룻배로 사람·짐·말을 한 호흡씩 정중히 건네주는 평민 출신 사공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가방, 머리에 닳은 두건, 허리에 작은 단도, 한 손에 닳은 노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강의 평소 수위·옛 분기 안개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의 큰 행렬도 이 강 앞에서는 한 척 거룻배의 호흡을 빌려야 하며, 그래서 가문 카로조차 그 앞에서 정중히 두건을 한 번 벗는다. 떠돌이 낭인 한 명이 가문을 잃은 새벽, 강 건너로 한 호흡 정중히 데려다주는 자도 결국 그다. 가장 무거운 한 호흡은 큰 다이묘 행렬의 도강이 아니라, 마지막 결단를 마친 사무라이의 가족이 그 가족의 유품을 정중히 안고 강 건너로 건너가는 새벽 거룻배 한 척 위에 있다.
“강변 뱃사공의 진짜 한 호흡은 다이묘 행렬이 아니오. 마지막 결단 마친 사무라이의 가족이 유품을 안고 강 건너로 건너가는 새벽 거룻배 한 척이지요.”
옛 무사시(武藏) 분국 강변 도선장 뱃사공 야마다 진베에 — 평민 사공 출신, 평생 옛 스미다가와(隅田川, 무사시 분국 동측 큰 강) 도선장 한 자리에서 한 척 거룻배의 노 한 자루를 손목 한 줄로 잡은 자 — 의 일화는 간토 무가 사이에서 '유품 한 보따리'로 회자된다.
옛 무사시 분국 친위 가신 카타기리 노부야스 — 영지 결재 라인 한 줄의 누명을 정중히 받아들이고 마지막 결단를 청한 가신 — 의 자리가 끝난 새벽, 노부야스의 가족 — 노모와 어린 자식 둘 — 이 노부야스의 카타나 한 자루와 진바오리 한 폭을 정중히 보따리에 안고 스미다가와 도선장 앞에 정중히 멈췄다. 진베에는 그 새벽 큰 다이묘 행렬 한 무리의 도강 신호 한 호흡을 정중히 한 식경 늦추고, 노부야스 가족 한 줄의 한 호흡을 먼저 잡아 거룻배 한 척으로 정중히 강 건너로 옮겨 주었다. 다이묘 행렬의 친위 가신단 한 명이 도선장 결재 라인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 항의를 올렸으나, 다이묘 호조 마사아키는 그 결재 두루마리 한 봉을 덮고 자기 결재 인장을 진베에의 결재 두루마리 한 줄 옆에 정중히 한 번 더 눌렀다.
노부야스 가족은 강 건너 작은 신사(神社) — 옛 무사시 분국 동측 외곽 작은 가족 신사 시라기쿠샤(白菊社) — 옆 흙 한 줌에 노부야스의 유품 한 보따리를 정중히 묻었으며, 진베에는 그 새벽부터 매년 마지막 결단 시각에 한 호흡씩 도선장 거룻배 한 척의 노 한 자루를 정중히 닦는 의례를 따랐다. 야마다 본가 옻칠 함 안에는 그 새벽 거룻배 한 척의 노 한 자루 한 토막이 노부야스 가족의 빈 보따리 한 자락과 함께 봉인되어 있으며, 후대 강변 도선장 뱃사공들은 임명 첫 시즌 그 함 앞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따른다. 큰 다이묘 행렬의 도강보다 유품 한 보따리의 도강이 무겁다는 격언은 그 거룻배 한 척 위에서 굳어졌다.
관백대리존(關白代理尊)
막부 관백(關白) 대리
관백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막부의 대리자
“쇼군(將軍)이 전장을 다스린다면, 관백 대리는 그 전장 뒤의 한 시대를 다스린다.”
막부 관백(關白) 대리는 쇼군 부재 시 막부(幕府)의 정무·외교·법령 결재 전체를 위임받는 자로, 한 시대 가장 많은 결재 두루마리가 한 책상 위에 쌓이는 직책이다. 외형은 단정한 공식 에보시(烏帽子, 막부 의전 모자) 위 진바오리(陣羽織), 허리에 가문 문양 금장 카타나 한 쌍이 표준이다. 본인은 다이묘 가문 전체의 봉록 라인·혼인 협상·법령 한 줄을 동시에 굴리며, 그 균형 한 가닥이 흔들리면 막부 전체 가신단이 출렁인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쇼군이 돌아오는 그 새벽이 아니라, 쇼군이 돌아오기 전날 밤 자기 책상 위에 쌓인 두루마리 숫자가 이틀 치와 같아지는 그 순간이다. 관백 대리의 진짜 무기는 카타나가 아니라, 쇼군이 돌아왔을 때 "이 결재는 대기 중입니다"라고 정중히 말하는 그 한 마디다.
“우리 막부 원로들이 관백 대리 즉위 첫 사흘 그 책상 한 자리에 앉아 두루마리를 세어 보는 데는 까닭이 있소. 쌓인 두루마리 한 봉이 위임된 시대의 무게 한 자를 이미 담고 있다는 뜻이오.”
삼대 막부 관백 대리 후지와라 나오히사 — 쇼군 이치노 사다토키(앞서 310000 세계관 초기 쇼군 일화의 그 이치노 사다토키)가 사흘 출정을 떠난 사이 막부 본전 결재 라인을 단 두루마리 두 통으로 정리한 자 — 의 일화는 막부 행정 야사 단골 이야기다.
즉위 이틀째 새벽, 인접 다이묘 가문 셋이 동시에 봉록 조정·경계선 이전·혼인 허가를 각각 청하는 두루마리 아홉 통이 쌓였을 때, 나오히사는 그 아홉 통을 한 줄도 결재하지 않고 막부 참모 다섯에게 각각 두 통씩 나누어 "이 두루마리 하나에서 어느 가신 가족이 가장 많이 연결되는가"를 하루 안에 정중히 표로 올리라 했다. 다음 날 저녁 그 다섯 표를 합쳐 보니 세 가문의 요청 아홉 통이 실은 두 가문 가신단 혼인 라인 한 줄을 두고 서로 엇갈린 것이 드러났으며, 나오히사는 그 한 줄 혼인 결재 한 통만 정중히 처리하고 나머지 여덟 통을 정중히 반려했다. 사다토키가 사흘 뒤 돌아와 책상에 두 통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나머지는?"이라 묻자, 나오히사는 "나머지는 이 두 통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라고 정중히 한 줄로 답했다.
막부 원로들은 그날 이후 관백 대리 즉위 첫 사흘 동안 결재 두루마리 숫자가 줄어들었는지 늘어났는지를 가장 먼저 살피는 관례를 만들었으며, 나오히사의 책상 한 자리는 지금도 막부 참모 견습들의 첫 공부방으로 통한다.
천하검성존(天下劍聖尊)
천하 검성(劍聖)
천하에 적수가 없는 검의 성인
“한 합도 두지 않고 돌아온 자가 있었소. 그분이 검성이오.”
천하 검성은 한 시대 일본 안에서 검술이 아니라 검의 도(道) 자체를 체득한 단 한 명에게만 부여되는 칭호로, 어떤 가문에도 적을 두지 않고 한 자루 카타나만으로 산을 넘는 자다. 외형은 낡고 단정한 흰 키모노, 어깨에 아무 문양도 없는 카타나 한 자루, 발에는 항상 닳은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결투를 피하지 않으나 결투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상대가 검집에 손을 얹기 전에 이미 그 결투의 결말을 알고 있다고 전해진다.
가장 무서운 검성의 한 마디는 "검을 뽑지 않아도 되오"이며, 그 한 마디로 평생 단 한 번도 결투를 완성한 적이 없다는 야사가 있다. 진짜 검성의 카타나는 봄에는 꽃잎을 자르지 않고 가을에는 단풍잎 하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한 시대를 살아도 그 카타나의 날은 한 번도 빛을 보지 않는다.
“검성의 짚신은 항상 닳아 있었소.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오. 그 발자국이 한 시대의 가장 긴 결투였지요.”
초대 천하 검성 무라카미 이에노리 — 평생 가문 적 없이 일본 동서를 두루 걸은 검사로, 한 줄 결투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검성 칭호를 얻은 자 — 의 일화 가운데 가장 많이 전해지는 것은 '토코나메 다관 세 시진'이다.
당대 칼 잘 쓰기로 이름난 다이묘 가문 가신 오오시마 젠고로 — 이즈미 가문(和泉家) 친위 제일검으로 불린 자 — 가 이에노리에게 결투를 청하러 토코나메(常滑, 도공들이 모인 작은 항구 마을)까지 찾아왔을 때, 이에노리는 마을 다관 키슈코도(紀州黒堂, 항구 길목의 작은 다관)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젠고로는 검집에 손을 얹고 서 있었으나 이에노리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고 차 한 잔을 더 따랐으며, 다관 주인에게 정중히 한 잔 더 달라고 청했다. 젠고로는 세 시진 동안 검집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서 있다가 결국 스스로 무릎을 꿇고 검을 허리에서 내려놓았다.
이에노리는 그제야 젠고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정중히 내밀었으며,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 합도 없이 세 시진을 함께 보냈다. 도장주(앞서 310015 외문 검술 도장주 일화에도 등장하는 도장 계보)들 사이에서는 "젠고로가 토코나메에서 한 합도 두지 않고 돌아온 그날부터 이즈미 가문 가신단이 한 시즌 더 안전했다"는 야사가 지금도 전해진다.
대포봉행군(大砲奉行君)
대포 봉행(砲奉行)
막부의 대포 부대를 다스리는 봉행
“이 대포 한 방은 성벽 하나를 넘는 것이 아니오. 전장의 한 시대를 바꾸는 것이오.”
대포 봉행은 가공의 전국시대 말기 일본에서 막부 또는 다이묘 가문의 철포(鐵砲)·대포(大砲) 운용 전체를 지휘하는 전술 지휘관이다. 외형은 단단한 흑색 갑주 위 가문 문양 진바오리(陣羽織), 어깨에 화약 가방, 허리에 카타나 한 자루와 측거 자(測距尺)가 표준이다. 본인은 화약 배합·사거리 계산·진지 배치를 한 번에 굴리며, 그 계산 한 줄이 틀리면 아군 진지 한 칸이 흔들린다.
그러나 대포 봉행의 가장 긴 시간은 포를 쏘는 순간이 아니라, 포를 쏘지 않기로 결정하는 그 한 호흡이다. 카로(家老, 가문 최고 가신)조차 쏘라고 신호를 올릴 때 한 박자 더 기다린 봉행이 가장 명예로운 봉행으로 야사에 남는다.
“봉행의 진짜 사거리는 포구에서 성벽까지가 아니오. 포를 쏘지 않기로 결정한 그 한 박자의 길이지요.”
이즈미번(和泉藩) 대포 봉행 하세가와 뇨세이 — 전국시대 말기 가장 정확한 사거리 계산으로 이름난 봉행이자 평생 단 한 발도 아군에게 떨어지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토죠 성벽 한 박자'로 서국(西國) 무가 사이에 전해진다.
토죠 합전(土條合戰, 이즈미번이 인접 기슈 가문과 충돌한 평야 전투) 사흘째 새벽, 아군 기병 선두가 적 성벽 포 사거리 안으로 겹쳐 들어갔을 때, 뇨세이는 자기 봉행 신호기(信號旗)를 반만 들었다. 아군 기병이 그 반 신호를 보고 한 박자 멈췄고, 그 한 박자 사이 적의 포 한 방이 아군 기병이 방금 있던 자리에 정확히 떨어졌다. 카로 가와지마 미노노카미(앞서 310003 카로 일화의 카로 계보)가 그 한 박자를 두고 결재 두루마리 한 봉에 봉행 신호기 방식을 정식 훈련 매뉴얼로 올렸으며, 이즈미번 대포 봉행들은 지금도 신호기를 반만 드는 '뇨세이 반(半) 신호' 자세를 첫 훈련으로 삼는다.
가문군사군(家門軍師君)
가문 군사(軍師)
가문의 진법을 짜는 군사
“전장은 내 책상 위에서 이미 끝나 있소. 다이묘는 그 결론을 실행할 뿐이오.”
가문 군사는 다이묘를 대신하여 출정 계획·진지 배치·적 가문 정보 분석을 총괄하는 전략가로, 갑주를 입지 않고 전장을 지휘하는 거의 유일한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흑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인장, 한 손에 접이식 산죠(算盤, 주판)와 진지도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적 다이묘의 출정 리듬·봉록 라인·가신단 내 불화 한 줄을 동시에 읽고 있어, 출정 전날 밤에 이미 결과를 예측하는 자로 알려진다.
그러나 군사의 진짜 전투는 다이묘 앞에서 "이 출정은 사흘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라고 직언하는 그 한 호흡이다. 그 직언을 받아들이는 다이묘 밑에서만 군사는 평생을 일한다.
“군사의 진지도 두루마리가 한 자락 비어 있는 것을 본 카로는 그 빈 자락에서 다음 출정의 승패를 이미 읽는다 하오. 우리 가문 노군사의 그 빈 자락은 지금도 진지도 한 구석에 정중히 남아 있지요.”
시나노번(信濃藩) 가문 군사 카이도 세이시로 — 이십 년간 일곱 번의 출정에서 단 한 번도 가신단 수를 줄이지 않은 군사이자 단 한 번의 전술도 직접 두루마리에 적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비어 있는 자락'으로 신슈 무가 사이에 전해진다.
일곱 번째 출정 전날 밤, 다이묘 가와나카지마(川中島) 가주가 군사 세이시로에게 진지도 두루마리 한 자락을 펼쳐 보이라 했을 때, 두루마리 한 쪽이 비어 있었다. 다이묘가 "이 자락은 왜 비었소?"라 묻자 세이시로는 "저 산 너머 적 가신단 닌자 결사 두령(앞서 310025 닌자 결사 두령 일화의 그 결사)의 움직임이 이 자락을 채울 정보를 아직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오"라 답했다. 다이묘는 그 답 하나로 출정을 사흘 더 미뤘고, 사흘 뒤 그 빈 자락에는 적 가신단 주력이 이미 다른 방향으로 이동 중이라는 정탐 보고가 한 줄로 채워졌다. 그 사흘이 시나노번을 멸문에서 살렸다는 야사가 신슈 무가 사이에 지금도 전해진다.
다도종장군(茶道宗匠君)
무가 다도 거장(茶道 宗匠)
무가 다도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종장
“차 한 잔 앞에 앉는다는 것은, 검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더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이오.”
무가 다도 거장은 다이묘 가문 다실(茶室)에서 차도(茶道)의 법식(法式)을 가르치고, 외교 다회(茶會)의 격식과 진행을 총괄하는 최고 다도 사범이다. 외형은 단정한 흑색 키모노 위 다도용 얇은 가타비라(帷子), 손에 차선(茶筅, 차 섞는 대나무 솔)과 다완(茶碗, 차 사발), 발에는 작은 정갈한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다도의 외형이 아니라 그 안의 침묵과 호흡을 가르치는 자이며, 다이묘비의 다회에서 가장 긴 침묵을 만드는 자도 그다.
다이묘가 전쟁을 멈추고 차 한 잔을 마시러 다실에 들어오는 순간, 막부 안에서 가장 강한 자는 거장이다. 그 한 잔의 침묵이 그 다이묘의 다음 결재 한 줄보다 길어지는 날, 전장 하나가 그대로 사라지기도 한다.
“다도 거장이 사용한 다완 한 자루가 평생 흠집 하나 없이 전해진다는 것은, 그분이 단 한 번도 서두르지 않았다는 증거지요. 우리 가문 다실 한 자락에 그 다완이 지금도 정중히 앉아 있습니다.”
에치고번(越後藩) 다도 거장 료안 소헤이 — 평생 다완 한 자루를 깨지 않은 채 사십 년을 전국시대 한 다실에서 보낸 자 — 의 일화는 '두 가문의 차 한 잔'으로 에치고 가신단 사이에 전해진다.
에치고번과 인접 에치젠 가문(越前家)이 오 년째 경계 분쟁을 이어가던 어느 늦가을, 두 가문 다이묘가 처음으로 같은 다실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소헤이는 두 다완을 하나는 오래된 이도(井戸, 조선 막사발 계통 고아한 다완)로, 하나는 에치고 현지 도공이 구운 신작으로 정중히 놓았다. 두 다이묘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를 가만히 지켜본 소헤이는 에치고번 다이묘가 오래된 이도를 정중히 고르는 순간 에치젠 다이묘를 향해 "이 다완, 두 가문이 함께 구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라고 정중히 한 줄 건넸다. 에치젠 다이묘는 그 한 줄에 오 년 분쟁 경계선 한 자락을 정중히 한 식경 다시 생각했으며, 그 다회가 끝난 다음 날 두 가문 카로가 처음으로 같은 책상에 앉아 경계선 합의 두루마리 한 통을 완성했다.
외교정사군(外交正使君)
외교 사절 정사(正使)
타국 막부에 파견된 정식 사절
“인접 가문 문 앞에서 두건을 벗는 것은 굴복이 아니오. 그쪽 다이묘의 깃발을 정중히 읽는 것이오.”
외교 사절 정사는 다이묘 가문을 대표하여 인접 가문·막부·해외 상인 등에게 파견되는 공식 외교 대표자다. 외형은 가문 문양 공식 진바오리(陣羽織), 어깨에 국서(國書, 외교 문서) 상자, 허리에 의례용 짧은 카타나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외교 협상·통역·의전 자리 배치를 한 번에 굴리며, 상대 가문의 문장(紋章)만 보고도 그 가문의 현재 봉록 상태와 내부 분위기를 거의 정확히 읽어낸다.
가장 어려운 임무는 적대 가문 다이묘의 다회에 혼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그 차 한 잔을 끝내고 돌아올 때 가져온 협상 결과보다, 그 다회에서 상대 다이묘가 어느 다완을 골랐는가를 외워 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사가 돌아왔을 때 결과 문서보다 상대 다이묘의 표정 한 줄을 먼저 물어보는 가문이 다음 협상에서 이기오. 우리 가문 어른들이 정사에게 첫 번째로 묻는 말이 그것이지요.”
가가번(加賀藩) 외교 사절 정사 타테이시 사부로베에 — 일곱 가문을 상대한 협상에서 단 한 번도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이자 한 번도 카타나를 뽑지 않고 협상을 마무리한 자 — 의 일화는 '적대 가문 다회 한 잔'으로 호쿠리쿠 외교관들 사이에 전해진다.
가가번과 적대 관계이던 에치젠 가문 다이묘가 마지막 경고로 사절단을 초청했을 때, 사부로베에는 혼자 들어가겠다고 자청했다. 에치젠 다이묘는 사절이 들어오자마자 카타나를 탁자에 올려두었는데, 사부로베에는 그것을 전혀 보지 않은 채 탁자 위 다완 한 자루를 정중히 들어 "이 다완, 가가 가문 도공 우에다(앞서 310014 도공 일화의 그 도공 계보)의 제자 작품이지요. 에치젠에도 그 솜씨가 미쳤군요"라고 한 줄 건넸다. 에치젠 다이묘는 그 한 줄에 카타나를 다시 허리에 차고 "그 도공 이야기나 하시지요"라며 차 한 잔을 더 따랐다. 두 가문은 그 다회에서 협상 조건 한 줄을 처음으로 함께 적었다.
이도승부사(二刀勝負士)
이도류(二刀流) 승부사
두 자루 칼로 승부를 가르는 이도류 검사
“두 자루를 드는 것은 두 번의 기회가 아니오. 한 번도 쓰지 않기 위해 두 자루를 드는 것이오.”
이도류 승부사는 대도(大刀, 긴 카타나)와 소도(小刀, 짧은 와키자시) 두 자루를 동시에 운용하는 특수 검술 유파의 전문 결투가다. 외형은 낡은 단정한 키모노, 양 허리에 각각 한 자루씩 두 자루의 검, 머리에는 항상 흐트러진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결투를 청받는 것이 아니라 자청하며 전국을 돌며 유파 기술을 실전으로 다듬는다.
진짜 이도류 승부사는 두 자루를 동시에 쓰는 자가 아니라, 두 자루 중 어느 쪽도 뽑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만드는 자다. 결투장에 서서 두 자루를 차고도 한 합도 두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이도류의 최고 경지라는 격언이 이 유파 안에서 가장 오래 전해지는 말이다.
“이도류 사범의 진짜 수업은 두 자루를 어떻게 쓰는가가 아니오. 두 자루를 차고 앉아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지요.”
이도류 유파 삼대 수장 미야모토 카게유 — 열 아홉 살에 첫 결투를 치른 뒤 이십 년간 단 한 번도 칼날을 상대 살에 댄 적 없는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오카야마 두 자루 침묵'으로 전해진다.
오카야마(岡山) 성하 마을 외문 검술 도장주(앞서 310015 외문 검술 도장주 계보의 그 도장)의 제자 셋이 카게유에게 동시에 결투를 청해 온 어느 새벽, 카게유는 도장 마당에서 세 사람을 향해 두 자루 모두 검집에 꽂은 채 한 호흡 동안 눈을 감았다. 그 한 호흡이 끝났을 때 카게유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정중히 뒤돌아서서 도장 입구 신발 자리를 정중히 한 줄로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오늘은 신발 자리 한 줄을 먼저 배우시오"라고 한 마디 건넸다. 세 제자는 그날 검을 뽑지 않았으며, 그 신발 자리가 가지런해지는 다음 사흘 동안 단 한 번의 결투도 청해 오지 않았다. 도장주는 그 사흘을 두고 제자들에게 "이도류의 두 자루는 결투를 두 배 빠르게 끝내라고 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격언을 가르쳤다.
성대수비장(城代守備將)
성채 수비대장(城代)
성주를 대신해 성을 지키는 수비대장
“성벽 한 돌 한 돌이 가신단 한 명 한 명의 호흡이오. 함부로 대체하지 마시오.”
성채 수비대장(城代)은 다이묘 가문의 본성(本城) 또는 지성(支城) 한 자리를 위임받아 지키는 자로, 다이묘 부재 시 그 성 전체의 방어와 행정을 책임진다. 외형은 단단한 갑주, 어깨에 가문 문양 대형 진바오리(陣羽織), 허리에 카타나 한 쌍, 한 손에 성벽 배치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성의 수문·성벽·식량 창고·가신단 교대 일정을 동시에 굴리며, 다이묘가 돌아왔을 때 한 칸도 바뀌지 않은 성을 돌려주는 것이 최고의 성과다.
가장 외로운 자리는 다이묘 출정 후 사흘째 새벽 성벽 위에 혼자 서는 그 순간이다. 그러나 성채 수비대장이 그 새벽을 몇 번 견뎠는지가 다이묘의 진짜 카로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 서게 만든다.
“성대의 진짜 결재는 다이묘가 떠난 다음 날 새벽 성벽 한 바퀴를 혼자 도는 것이오. 그 한 바퀴가 성의 다음 한 시즌을 정하지요.”
카이번(甲斐藩) 성채 수비대장 시나노 요시미 — 다이묘 타케다 가주의 열 번 출정 동안 한 번도 성벽 한 돌을 잃지 않은 자로 가신단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열 번의 새벽'으로 전해진다.
열 번째 출정 직후 적 정탐(앞서 310013 가문 정탐 메츠케 계보의 그 정탐 라인)이 성 안 창고 한 칸의 위치를 이미 파악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 요시미는 창고를 새벽 안에 이전하지 않고 대신 창고 문에 자기 카타나 한 자루를 정중히 걸어 두었다. 적 정탐이 그 카타나를 보고 창고가 이미 비어 있다고 판단한 사이, 요시미는 창고 뒤편에 새 위치를 만들었다. 다이묘가 돌아왔을 때 창고는 새 자리에 온전했으며, 요시미는 그 결재 두루마리에 "한 자루 카타나가 창고 한 칸보다 무거웠습니다"라는 한 줄만 적었다.
비각밀전사(飛脚密傳士)
밀서 전령 비각(飛脚)
막부 밀서를 발 빠르게 전하는 비각 전령
“이 봉투 한 장, 받는 분이 열기 전까지는 내 목숨보다 무겁소.”
밀서 전령 비각은 다이묘 가문의 극비 서신(書信)·외교 밀서(密書)·출정 명령서를 가문과 가문 사이에 직접 전달하는 단독 전령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여행 키모노, 어깨에 밀봉 서신 가방, 머리에 패랭이, 발에는 늘 새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주요 가도(街道) 전체의 검문소·쉬는 마을·날씨 패턴을 외우고 있어, 관용 비각보다 두 배 빠르게 이동한다.
가장 위험한 임무는 두 가문이 동시에 같은 비각에게 상대방 가문 앞으로 보내는 서신을 맡기는 상황이다. 진짜 비각은 그 두 서신 중 어느 쪽도 봉투를 뜯지 않고, 어느 쪽도 한 호흡 늦지 않게 도착시킨다.
“비각의 진짜 짚신은 발이 닳은 쪽이 아니오. 마지막 문을 두드리기 직전 멈추는 그 한 발자국이지요.”
도카이도(東海道) 밀서 비각 이토 사와지로 — 평생 사백 통의 밀서를 한 통도 뜯지 않고 전달한 자이자 단 한 번도 검문소에서 서신 가방을 열어보인 적 없는 자 — 의 일화는 '마지막 한 발자국'으로 전해진다.
어느 겨울 가도 한 검문소(앞서 310013 가문 정탐 메츠케가 관리하는 그 검문 라인)에서 무장 봉행이 서신 가방을 열어보라 요구했을 때, 사와지로는 가방 안에 두 가문의 밀서 각각 한 통씩을 들고 있었다. 그는 가방을 열지 않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봉행에게 정중히 "이 가방을 열면 두 가문이 동시에 원수가 됩니다. 봉행님이 원하시는 결과가 그것입니까"라고 한 줄 건넸다. 봉행은 그 한 줄에 두 가문 이름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짚고 정중히 통과를 허락했다. 사와지로는 그날 두 통 모두를 한 박자 차이로 각각의 가문에 도착시켰으며, 두 가문은 상대 가문의 서신이 먼저 도착했을 것이라 각각 믿었다고 야사는 기록한다.
도장수제자(道場首弟子)
도장 수제자(首弟子)
도장의 모든 후배를 거느리는 수제자
“수제자의 자리는 가장 앞에 서는 자리가 아니오. 사범이 돌아설 때 가장 마지막에 남는 자리오.”
도장 수제자는 검술 도장 안에서 사범 다음으로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검술을 익힌 자로, 사범이 자리를 비울 때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고 도장 문을 지키는 책임을 진 자다. 외형은 도복 위 검은 허리띠, 한 손에 사범에게 물려받은 목검(木劍), 발에는 정갈한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사범의 검술을 가장 정확히 이어받은 자이지만, 그만큼 자기 색을 더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자이기도 하다.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어린 제자가 사범보다 더 빠른 검을 보여주는 날이다. 수제자는 그 제자를 사범보다 먼저 칭찬해야 하지만, 그 칭찬이 질투처럼 들리지 않도록 한 박자를 더 기다린다. 그 한 박자가 수제자의 진짜 검술이다.
“수제자가 자기보다 빠른 후배를 뒤에서 한 박자 기다렸다 칭찬하는 것, 그것이 그 도장이 한 시대를 살아남는 이유라 야사가 적고 있습니다.”
시오미 마을 도장(汐見道場) 수제자 이치베에 — 도장 사범 시오미 다이지(앞서 310012 야규 검술 사범 계보와 연결된 그 시오미 도장 계보)의 제자 가운데 가장 오래 도장을 지킨 자 — 의 일화는 '사범보다 빠른 후배'로 도장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봄 도장에 새로 들어온 평민 자식 켄지로(앞서 330028 마을 짚신 장인 일화의 그 켄지로와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가 석 달 만에 이치베에보다 빠른 검을 보여주었을 때, 이치베에는 그 자리에서 목검을 내려두고 켄지로에게 "사범님이 가르치신 것보다 빠릅니다"라는 한 줄만 정중히 건넸다. 켄지로는 그 한 줄이 칭찬인지 아닌지를 한 박자 고민했고, 이치베에는 그 한 박자를 기다렸다가 "잘 배웠소"라고 한 마디 더 건넸다. 사범 다이지는 그날 저녁 이치베에를 불러 "수제자의 자리는 오늘 네가 지켰다"고 했으며, 그 한 마디가 이치베에가 평생 도장을 떠나지 않은 이유로 도장 야사에 남아 있다.
가문군의사(家門軍醫士)
가문 군의(軍醫)
출진한 가신들의 상처를 꿰매는 군의
“이 침통(針筒) 한 자루가 카타나 한 자루보다 많은 출정을 살렸소.”
가문 군의는 다이묘 가문 출정 진영에서 부상 가신단을 치료하는 의관(醫官)으로, 전장에서 칼 대신 침통(針筒)과 약초를 들고 움직이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의관복 위 가문 문양 작은 패, 어깨에 약초 가방, 허리에 침통과 붕대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침술·약재·상처 봉합을 동시에 굴리며, 진영 안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고 가장 적게 자는 자다.
그러나 군의의 가장 어려운 일은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전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가신에게 정중히 그 사실을 알리는 그 한 마디다. 그 한 마디를 가장 정중하게 전하는 법을 군의는 평생 배운다.
“군의가 침통 한 자루를 내려두는 순간이 가장 무거운 자리오. 그 내려두는 한 호흡 위에 진영 전체가 숨을 멈추지요.”
에도(江戶) 막부 소속 군의 미조구치 겐타 — 이십 년간 열두 번의 출정에서 침통 사백 자루를 소진한 자이자 단 한 명의 가신도 쓸데없이 전장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침통 내려두는 한 호흡'으로 진중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합전 다음 날 새벽, 오른손을 잃은 젊은 가신 코이케가 군의 겐타에게 "다시 검을 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겐타는 침통을 탁자에 내려두고 한 호흡을 고른 뒤 "왼손으로 드는 검이 오른손 검보다 강할 수 있소. 다만 그 왼손은 내가 가르칠 수 없소"라고 한 줄 건넸다. 코이케는 그 한 줄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방향을 찾았으며, 훗날 가문 메츠케(앞서 310013 가문 정탐 메츠케) 계보에서 정탐 전문가로 이름을 남겼다. 겐타는 그 침통 내려두는 한 호흡을 "군의의 진짜 처방"이라 불렀으며, 그 이후 막부 군의 견습들의 첫 수업은 침통을 내려두는 자세부터 시작된다.
철포사사수(鐵砲士射手)
철포대 사수(鐵砲士)
철포대의 정조준을 책임지는 사수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당기지 않는 한 호흡이 더 길소.”
철포대 사수는 가공의 전국시대 말기 다이묘 가문의 철포(鐵砲, 화승총) 부대에 편성된 전문 사수로, 조총대 아시가루 대장(앞서 310011) 아래서 실제 조준·발사·화약 관리를 담당한다. 외형은 단단한 경갑주, 어깨에 화약통과 탄환 주머니, 한 손에 철포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이십 보에서 오십 보 사거리 안의 적 갑주 틈새를 정확히 계산하며, 바람과 연기 속에서도 표적을 잃지 않는 훈련을 매일 반복한다.
진짜 사수는 가장 멀리 쏘는 자가 아니라 가장 필요한 순간까지 기다리는 자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그 한 호흡이 가장 어렵고, 가장 훌륭한 사수는 그 한 호흡을 가장 오래 견디는 자다.
“사수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그 한 호흡, 그게 진영 전체를 살리는 일이오. 우리 가문 철포대 첫 훈련이 사격이 아니라 기다리기인 이유가 거기 있소.”
오와리번(尾張藩) 철포대 사수 아오키 키헤이 — 열두 번의 합전에서 단 한 발도 아군 방향으로 발사하지 않은 자이자 가장 많이 기다렸다는 기록으로 이름난 사수 — 의 일화는 '기다림 한 호흡'으로 나고야 무가 야사에 전해진다.
키요스 합전(淸洲合戰, 오와리번과 인접 가문의 평야 충돌) 세 번째 날, 적 기병 대장이 아군 진영 안으로 한 발자국 먼저 들어왔을 때 전체 철포대가 일제히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키헤이만 방아쇠에서 손을 내렸다. 한 박자 뒤 아군 기병 한 명이 그 적 기병 대장을 등 뒤에서 포위하는 대형을 만들었으며, 키헤이가 그 한 박자를 버텨준 덕에 아군 기병 한 명이 아군의 철포에 맞지 않고 살아남았다. 대포 봉행(앞서 310033)은 그 한 박자를 두고 철포대 훈련 두루마리에 "가장 오래 기다린 사수가 가장 많이 살렸다"는 한 줄을 새겼다.
번소봉행사(番所奉行士)
영지 번소(番所) 부교
영지 번소를 단속하는 봉행
“이 검문 한 줄이 가문 영지 끝이오. 허투루 지나치지 마시오.”
영지 번소 부교는 다이묘 가문 영지 경계의 주요 도로에 세워진 번소(番所, 검문소)에서 출입 인원·물자·서신을 검사하고 기록하는 관리 무사다. 외형은 단정한 가문 문양 하오리, 허리에 카타나 한 자루, 한 손에 번소 출입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영지 안팎을 드나드는 모든 인물의 얼굴·짐 내용·목적지를 하루 치씩 머릿속에 외우고 있으며, 수상한 사람은 얼굴보다 짐 자세에서 먼저 가려낸다.
가장 어려운 출입자는 상전(上典, 높은 신분)이 아니라 아무 짐도 없이 두 손 비워 들어오는 자다. 빈손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전부 기억으로 옮겼다는 뜻일 수 있다.
“번소 부교의 진짜 명부는 통과시킨 이름이 아니오. 한 번 보고 기억한 얼굴 위에 있소. 그 명부는 어느 두루마리에도 적히지 않습니다.”
사가미번(相模藩) 번소 부교 오카베 한노스케 — 평생 사가미 본성 동측 번소 한 자리에서 출입 명부 만 이천 줄을 손수 작성한 자이자 빈손으로 들어오는 인술 닌자(앞서 310004)를 세 번이나 가려낸 자로 가문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빈손의 이름'으로 간토 번소 부교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새벽, 짐 하나 없이 단정한 짚신만 신고 들어오는 중년 인물이 번소 앞에 멈췄을 때, 한노스케는 출입 명부를 펴지 않고 그 짚신의 닳은 자리를 한 호흡 살폈다. 앞코가 닳지 않고 발 안쪽만 닳아 있는 짚신은, 발소리를 죽이는 훈련을 받은 자의 걸음 자국이었다. 한노스케는 출입 명부 대신 번소 차 한 잔을 정중히 내밀었으며, 상대는 그 차를 한 박자 멈추고 받았다. 두 사람은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중년 인물은 정중히 돌아갔다. 한노스케는 그 새벽 명부에 이름 한 자 대신 "짚신 한 켤레"라고만 적었으며, 가문 정탐 메츠케(앞서 310013)는 그 한 줄에서 닌자 결사 한 곳의 움직임을 정확히 추적해냈다.
촌락검술사(村落劍術師)
마을 검술 지도 사범
마을 청년들에게 검을 가르치는 지도 사범
“나는 칼을 가르치지 않소. 칼을 언제 내려두는지를 가르칠 뿐이오.”
마을 검술 지도 사범은 조카마치(城下町) 또는 마을 변두리에서 평민·하급 가신의 자녀들에게 검술 기초와 도장 예절을 가르치는 검술 지도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도복, 허리에 목검(木劍), 도장 입구에 늘 정갈한 신발 줄이 표준이다. 본인은 외문 검술 도장주(앞서 310015)나 야규 검술 사범(앞서 310012)처럼 대도장을 운영하지 않으나, 마을 안에서 가장 많은 어린 제자를 배출한 자다.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는 가장 빠른 검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장 먼저 도장 신발 자리를 정중히 정리하고 들어오는 자다. 그 마을 사범의 진짜 결재는 매일 새벽 도장 문을 여는 그 한 자루 목검에 담겨 있다.
“사범의 목검이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실검을 대신하지 않았다는 것, 그게 그 마을 도장이 지금도 서 있는 이유입니다.”
미카와(三河) 조카마치 검술 사범 타무라 스케자에몬 — 평생 목검 한 자루로 사십 년을 가르치고 단 한 번도 실검을 뽑은 적 없는 사범이자 열다섯 명의 제자를 정규 가신 자리에 올려보낸 자 — 의 일화는 '열다섯 자리'로 마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가을, 스케자에몬의 제자 가운데 떠돌이 낭인(앞서 310005)이 도장을 찾아와 사범에게 결투를 청했을 때, 스케자에몬은 목검을 내려두고 "이미 열다섯 명이 이 도장에서 가신 자리를 얻었소. 그 열다섯 자리가 내 결투 기록이오"라고 한 줄 건넸다. 낭인은 그 한 줄에 검집에서 손을 내리고 대신 "제자로 받아주시겠소"라고 물었으며, 스케자에몬은 "열여섯 번째 자리는 신발 줄 옆이오"라고 정중히 안내했다. 그 낭인은 다음 해 봄 조카마치 두부 행상(310029, 앞서 일화에 등장한 그 두부 행상 계보의 마을) 골목에서 처음으로 가신 자리 후보 명단에 올랐다.
무가서도사(武家書道師)
무가 서도(書道) 사범
무가 자제에게 글씨를 가르치는 서도 사범
“이 붓 한 자루가 카타나 한 자루와 같은 무게오. 획 한 줄에 가문 한 호흡이 담기오.”
무가 서도 사범은 다이묘 가문 또는 도장 부설 서원(書院)에서 가신단·무사 자제들에게 서도(書道, 붓글씨)를 가르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흑색 키모노, 한 손에 닳은 붓 한 자루, 가슴팍에 먹물 자국, 책상 위에 늘 한 장의 반지(半紙, 연습용 화지)가 표준이다. 본인은 글씨 자체보다 글씨를 쓰는 자의 호흡 리듬과 손목 힘을 먼저 읽으며, 가신단이 작성한 결재 두루마리 한 줄만 보고도 그 가신의 그날 컨디션을 짚어낸다.
외교 문서 한 통의 첫 획이 흔들리면 상대 가문 카로가 그 흔들림을 읽는다는 것을 서도 사범은 안다. 그래서 그는 결재 당일 아침 다이묘의 손목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범의 붓 한 줄이 우리 가문 외교 문서를 한 시대 동안 흔들리지 않게 잡아두었다는 사실을, 카로가 그 붓을 이어받은 새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히젠번(肥前藩) 무가 서도 사범 나카무라 쇼운 — 사십 년간 가신단 이백 명의 손목을 점검하고 외교 문서 삼백 통의 첫 획을 확인한 자이자 자기 손목은 한 번도 결재 두루마리에 올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첫 획 한 줄'로 큐슈 가신단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봄, 히젠번이 인접 사쓰마 가문에 중요 강화 조건 문서를 보내야 하는 날, 다이묘 류조지 가주의 손목이 사흘 전 말에서 떨어져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쇼운은 그 아침 다이묘에게 직접 문서를 쓰는 대신 자기 손목으로 첫 획 한 줄을 먼저 써 보이고 "이 획 한 줄이 가주님 손목에서 나온 것처럼 보입니까"라고 조용히 물었다. 다이묘는 그 한 줄을 보고 자기 손목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사흘 기다리겠소"라 결재했으며, 사흘 후 전달된 강화 문서의 첫 획은 한 줄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쓰마 가문 카로는 그 문서의 첫 획을 보고 히젠번이 강화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읽었다.
진영지도사(陣營地圖師)
진영 측량 지도 제작사
진중에서 지형을 측량해 지도를 그리는 자
“이 지도 한 장이 틀리면, 가신단 한 줄이 길을 잃소. 그러니 한 치도 흥정하지 마시오.”
진영 측량 지도 제작사는 다이묘 가문 출정 진영에서 지형·적 진지·아군 배치를 한 장의 지도로 정리하는 전문 측량 기술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측량 도구 가방, 한 손에 줄자와 목탄, 허리에 한 자루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산길·강 수위·성벽 각도를 도보로 직접 측량하며, 군사(310034)가 전략을 짜는 그 지도를 실제로 만드는 자다.
지도 한 장을 완성하는 데 가장 긴 시간이 드는 것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성벽 안쪽 구조다. 그 안쪽을 측량하기 위해 지도 제작사는 종종 상인·행상·순례자로 위장해 며칠을 걷는다.
“진영 지도 제작사의 발자국이 가장 많이 찍힌 곳은 전장이 아니오. 전장이 시작되기 전 아무도 보지 않는 산길이지요.”
도토미번(遠江藩) 진영 측량 지도 제작사 아사이 사효에 — 이십 년간 열다섯 번의 출정에서 단 한 장도 틀리지 않은 지도를 제작한 자이자 평생 군의(앞서 310041)보다 더 많이 산을 걸은 자로 가신단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아사이의 발자국'으로 전해진다.
오마 합전(大馬合戰, 도토미번이 인접 토오토우미 가문과 벌인 산악 충돌) 직전, 사효에가 제출한 지도에 적 주력 진지의 위치가 기존 정탐 보고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었다. 가문 군사(앞서 310034 계보)는 그 차이를 두고 한 시간 회의했으나 사효에는 자기 발자국 기록 명부 한 줄을 꺼내 "이 산길 경사 각도로 보면 적 진지가 이 좌표에 있어야만 식수 라인이 살아납니다"라고 한 줄 건넸다. 결국 출정이 사효에의 지도대로 진행되었고 합전 첫날 아군은 한 명도 잃지 않았다. 다이묘는 그날 이후 출정 직전 지도 발표 자리에서 사효에의 발자국 기록 명부를 함께 올리는 관례를 만들었다.
가문봉납관(家門奉納官)
가문 봉납 신관(神官)
가문의 신사 봉납 의식을 주관하는 신관
“신(神)은 가문의 깃발을 세지 않소. 봉납(奉納, 신께 바치는 물건이나 공연) 앞에 선 자의 호흡을 세지요.”
가문 봉납 신관은 다이묘 가문 전속 신사(神社)에서 출정 의례·수확 봉납·가신단 부고 의례를 집전하는 종교 직무 담당자다. 외형은 흰 신관복 위 가문 문양 작은 수(繡), 머리에 에보시(烏帽子, 신관 의례 모자), 한 손에 봉납 나기(幣帛, 의례용 종이 띠)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가문 전체의 출정 전 의례·봉납 물목·신사 연례 제사 일정을 외우고 있다.
출정 전날 밤, 다이묘와 가신단이 신관의 봉납 의례를 받으러 신사에 모이는 그 한 식경이 가문 전체가 한 호흡으로 모이는 유일한 순간이다. 신관은 그 한 식경을 가장 정중하게 만들기 위해 봄부터 다음 봄까지 준비한다.
“신관의 봉납 의례 한 식경이 가신단의 한 호흡을 같은 박자로 모으오. 출정 전날 밤 그 박자가 틀리면 합전 첫 날 박자도 틀린다는 것을 경험한 가신들은 알지요.”
에치고번(越後藩) 가문 봉납 신관 사루가쿠 하야시노카미 — 삼십 년간 에치고번 출정 봉납 의례를 한 번도 어긋나지 않게 집전한 자이자 단 한 번도 다이묘보다 먼저 신사를 떠나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봉납 마지막 한 호흡'으로 에치고 가신단 사이에 전해진다.
에치고번 최대 출정이던 우에다 합전(上田合戰, 에치고번이 북쪽 적대 가문과 벌인 대규모 합전) 전날 밤 봉납 의례 도중, 벼락이 신사 경내 큰 나무 한 그루를 쓰러뜨려 가신단이 한 순간 술렁였다. 하야시노카미는 봉납 나기를 내려두지 않고 한 박자 더 기다렸다가 조용히 두 손을 들어 나기를 한 번 더 천천히 흔들었다. 가신단의 술렁임이 그 한 박자에 잠잠해졌으며, 다이묘 우에스기 가주는 그 봉납 의례를 처음부터 한 번 더 정중히 진행하기를 신관에게 청했다. 다음 날 합전에서 가신단은 한 줄도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다이묘는 그 결과를 신관의 "두 번째 봉납 한 호흡" 덕으로 야사에 새겼다.
짚신행상인(草鞋行商人)
조카마치 짚신 행상
조카마치를 돌며 짚신을 파는 행상인
“이 짚신 한 켤레, 사흘 길을 보장합니다. 그 이상은 발바닥이 보장해야 하오.”
조카마치 짚신 행상은 다이묘 성 아래 조카마치 골목에서 무사·비각·행인에게 짚신 한 켤레를 짊어지고 다니며 파는 평민 출신 행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짚신 다발, 머리에 작은 패랭이, 한 손에 작은 판매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 짚신 장인(앞서 330028에 등장한 그 장인 계보)에게서 직접 납품받아 골목을 누비며, 어느 가신이 어느 사이즈를 즐겨 쓰는지를 머릿속에 하나하나 외우고 있다.
다이묘 행렬이 출정 날 아침 짚신 한 켤레가 모자라면, 결국 조카마치 골목을 가장 먼저 뛰어다니는 자가 이 행상이다. 그 아침 가장 빠른 발은 무사의 발이 아니라 행상의 발이다.
“출정 새벽 가장 먼저 골목을 달린 발이 무사의 짚신을 신은 발이 아니었다는 것을, 후대 가신단은 그 새벽 한 켤레의 값이 전장 한 합보다 비쌌다는 말로 기억합니다.”
에도 조카마치 짚신 행상 모리나가 젠지 — 평생 에도 동측 골목 한 자리에서 짚신 삼천 켤레를 팔고 단 한 켤레도 불량을 낸 적 없는 자이자 자기 단골 목록에 비각(앞서 310039 밀서 전령 비각)·마을 검술 사범(앞서 310044)·갑주 무구장(앞서 310026) 세 명의 이름이 오래 올라 있는 자 — 의 일화는 '출정 새벽 반 켤레'로 조카마치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겨울 출정 새벽, 젊은 아시가루(310049 성내 잡역 아시가루와 같은 계급의 병사) 한 명이 짚신 한 켤레 값이 없어 한쪽 짚신이 찢어진 채로 출정 줄에 서 있는 것을 젠지가 발견했다. 젠지는 그 자리에서 자기 어깨 짚신 다발에서 짚신 한 켤레를 꺼내 "다음에 가져와도 되오"라고만 하고 건넸다. 그 아시가루는 합전에서 살아 돌아와 첫 봉록의 절반을 젠지에게 정중히 갚으러 왔으나, 젠지는 그 절반을 받지 않고 짚신 한 켤레 가격만 정중히 받았다. 모리나가 본가 판매 명부 한 자락에는 그 아시가루의 이름 옆에 "반 켤레 선불 — 전부 갚지 않아도 됨"이라는 한 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성내잡역부(城內雜役夫)
성내 잡역 아시가루
성안의 자질구레한 잡일을 맡은 아시가루
“오늘 청소가 내일 전투 준비보다 먼저요. 마당 한 자가 흐트러지면 발걸음이 흐트러지오.”
성내 잡역 아시가루는 다이묘 본성(本城) 안의 마당 청소·짐 운반·창고 정리·잡무를 담당하는 가장 낮은 신분의 병사 겸 일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용 짧은 키모노, 어깨에 빗자루와 짐 끈, 머리에 작은 두건이 표준이다. 본인은 다이묘 갑주가 보관된 창고 열쇠를 매일 아침 확인하는 자이며, 본진 안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늦게 잠드는 자다.
아시가루가 마당 한 번 쓸면서 보이는 것들이, 가신단 정탐 메츠케(앞서 310013)가 사흘 동안 모은 정보보다 정확할 때가 있다. 그래서 눈치 빠른 카로는 가끔 아시가루의 빗자루 방향을 보면서 그날의 본성 분위기를 읽는다.
“본성 마당을 매일 쓸며 사십 년을 보낸 자의 등이 가장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 하오. 그 등이 굽기 전에 한 번 물어봤어야 했는데.”
이즈모번(出雲藩) 성내 아시가루 카게야마 소스케 — 평생 이즈모 본성 안마당 한 자리를 매일 새벽 빗자루 한 자루로 쓸며 사십 년을 보낸 자이자 본성 안에서 일어난 큰 사건 세 건을 가장 먼저 알아챈 자로 가신단 야사 뒤편에 적힌 인물 — 의 일화는 '빗자루 방향'으로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봄 새벽, 소스케가 마당을 쓸다가 창고 한쪽 문 앞의 흙 자국 방향이 전날 밤 자기가 청소한 것과 다른 것을 발견했다. 그는 빗자루를 내려두지 않고 계속 쓸면서 카로(앞서 310003 카로 계보)의 서재 창문 아래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창문 안에서 카로가 낯선 방문자와 새벽 회의 중이었으며, 그 방문자의 짚신이 창고 문 앞 흙 자국과 같은 패턴으로 닳아 있었다. 소스케는 그날 아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기 청소 일지(日誌) 끝에 짚신 자국 방향 한 줄만 적어 두었으며, 사흘 뒤 가문 정탐 메츠케가 그 창고 방향에서 내통 증거 한 줄을 발견했다. 정탐은 그 일지 한 줄을 보고 "이 한 줄이 우리 사흘보다 정확했소"라고 인정했다.
촌락목동부(村落牧童夫)
마을 목동 겸 짐꾼
마을의 소를 치며 짐도 나르는 늙은 목동
“소 한 마리가 반나절 걷는 길, 사람 여덟이 하루 져야 하오. 그러니 소 한 마리 먼저 먹이오.”
마을 목동 겸 짐꾼은 가공의 전국시대 농촌 마을에서 소와 말을 돌보면서 동시에 다이묘 가문 출정 때 짐을 운반하는 임시 짐꾼으로 징발되는 평민이다. 외형은 낡은 작업 키모노, 어깨에 큰 짐 끈, 머리에 짚으로 엮은 삿갓, 한 손에 소몰이 채찍이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 농로(農路)와 산길 전체를 발바닥으로 외우고 있어, 군사(310034)의 지도보다 실제 짐 운반 최단 경로를 더 정확히 안다.
다이묘 출정 때 군량 절반의 무게는 이 짐꾼의 어깨와 소의 등 위에 얹혀 있다. 가신단이 화려한 갑주로 들판을 달릴 때, 그 갑주를 싣고 온 짐꾼은 이미 산길 한 굽이를 먼저 돌아 있다.
“출정 깃발이 제일 먼저 보이는 자가 기수(앞서 330030 깃발 기수)라면, 출정 짐이 제일 마지막에 도착하는 자가 목동 겸 짐꾼이오. 그 마지막 한 걸음이 전장 첫 한 합보다 늦지 않아야 진영이 온전하다는 뜻이지요.”
미노(美濃) 마을 목동 겸 짐꾼 후쿠이 타로베에 — 평생 미노 서쪽 산길 한 굽이를 소 두 마리와 함께 이십 년간 오간 자이자 다이묘 가문 출정 여덟 번에 한 번도 짐을 잃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소 두 마리의 기억'으로 마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여름 출정 때 산길 한 굽이에서 폭우가 쏟아져 짐 다발 하나가 소 등에서 흘러내렸을 때, 타로베에는 짐을 먼저 줍지 않고 소 두 마리의 발굽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채찍 대신 자기 어깨를 소 옆구리에 대고 한 발 한 발 함께 걸었다. 그 사이 마구간 마정사(앞서 310000 세계관의 마구간 돌봄 계보)의 짐말 한 마리가 먼저 그 굽이를 돌아 흘러내린 짐 다발을 등으로 막아줬다. 타로베에는 그 짐 다발이 바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소 두 마리 먼저 안전한 평지로 내린 뒤 마지막으로 짐을 거뒀다. 진영에 도착한 타로베에는 진중 취사 가신(앞서 330027)에게 정중히 짐을 한 자락도 빠짐없이 건넸으며, 그날 저녁 다이묘 가주는 "소 두 마리의 기억이 가신단 길 안내보다 산길 한 굽이를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한 줄을 결재 야사에 새겼다.
다이묘정비(大名正妃)
다이묘비(大名妃)
한 번방의 안채를 호령하는 다이묘의 정실
“안채의 다회(茶會) 한 번이, 본진의 군사 회의보다 한 시대를 더 정확히 그립니다.”
다이묘비는 한 가문 다이묘의 정실이며, 안채(奧)의 운영·외교 부인 외교(婦人外交)·인접 가문 정혼 협상을 모두 손에 쥔 자다. 외형은 화려한 우치카케, 머리에 가문 문양 빗(櫛), 가슴팍에 작은 부적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매일 다회를 주최하며, 그 한 잔의 차에 인접 가문의 정실들이 차례로 모여 안건을 던진다.
가신단의 군사 회의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정실들의 다회에서 결정된 약혼 한 줄이 본진의 다음 출정을 묘하게 미루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무거운 안채의 의자는 비단 방석 위가 아니라, 다회 시간이 끝난 뒤 혼자 앉아 있는 그 짧은 한 식경의 자리다.
“스승님 손으로 우려주신 다회 두 잔 사이의 그 침묵 한 식경, 그게 한 시대 가장 길었던 외교 문서였다고 늙은 시녀들은 지금도 말합니다.”
삼대 다이묘비 츠바키노 사야(椿乃 紗夜 — 가공의 츠바키 가문에서 시집 와 다이묘비가 된 정실)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인접한 카에데 가문(楓家 — 한 시대 다이묘 가문 중 가장 오래된 정실 라인을 가진 인접 가문)의 정실이 약혼 결렬을 통보하러 안채에 들어왔던 그 새벽, 사야는 평소처럼 다회 두 잔만 정중히 우려냈다. 첫 잔에서는 약혼 이야기를 단 한 줄도 꺼내지 않았고, 카에데 정실의 어린 시녀가 입은 키모노 자락의 매화 자수만 한 식경 가만히 칭찬했다. 두 잔째 사이의 침묵 한 식경 동안, 사야는 자기 손목의 작은 부적 주머니에서 카에데 가문 옛 정실이 직접 새겨준 매화 한 줄 부적을 정중히 꺼내 탁자 한 자락에 올려두었다.
카에데 정실은 그 한 자락을 보고 한 호흡 더 멈췄고, 그날 약혼은 결렬 대신 한 시즌만 정중히 미뤄지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 일화 후 안채에는 "다이묘비의 가장 무거운 검은 우치카케 자락의 매화 한 줄"이라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그 한 자락 부적은 지금도 안채 다실 한쪽 비단함에 정중히 보관되어 있으며, 후대 다이묘비들이 임명 첫 다회에서 한 번씩 그 함을 들여다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온나무사존(女武者尊)
온나무샤(女武者)
사내 무사를 능가하는 검의 정점에 선 여전사
“가문의 깃발이 무너진다면, 그 깃발을 다시 일으키는 마지막 손은 내 손이다.”
온나무샤는 가공의 전국시대 안에서 정식으로 검과 나기나타를 들고 가문을 지키는 여성 무장이다. 외형은 단단한 갑주 위 키모노, 머리에는 가문 문양 머리띠, 어깨에 길게 휘는 나기나타가 표준이다. 본인은 다이묘비처럼 안채에 머물지 않고, 본진 안 군사 회의에 직접 참석하는 거의 유일한 여성이다.
가신단의 카로들은 처음에는 그녀의 직언에 당황하지만, 한 시즌만 지나면 그녀의 한 줄 보고서가 가장 정확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진짜 강한 온나무샤의 검은 적의 목을 베는 검이 아니라, 자기 가문의 깃발이 흔들리는 그 한순간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직감이다.
“그분 갑주 안에 누이의 첫 호흡이 들어 있다는 걸, 우리 후대 온나무샤들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시노 카에데(篠 楓 — 가공의 시노 가문 셋째 딸로, 일찍 떠난 누이의 갑주를 그대로 물려 입은 온나무샤)의 한 일화는 본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큰 출정 전날 밤, 시노 가문의 본진 깃발이 한 식경 동안 흔들렸을 때, 카에데는 카로(家老 — 다이묘를 보좌하는 가신단 정점)들의 회의 자리에 갑주를 입은 채 직접 들어가 한 줄 직언을 던졌다. 그녀는 적의 본진이 아니라 본진 안 군량 창고의 자물쇠 한 줄이 흔들리고 있다고 정중히 보고했고, 그날 새벽 창고를 열어보니 정말로 안에서 일하던 노복 한 명이 인접 사파 결사에 매수되어 있었다. 카로들은 그날 처음으로 카에데에게 본진 회의 좌석 한 자리를 정중히 비워주었으며,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죽은 누이의 이름이 새겨진 머리띠를 한 식경 다시 묶었다.
출정에서 돌아온 카에데는 자기 갑주를 한 번도 벗지 않은 채 안채 다회에 정중히 들어와, 다이묘비에게 누이의 머리띠 한 자락을 직접 건넸다. 다이묘비는 그 머리띠를 가문 부적사에게 정중히 보내 부적 한 장을 만들었으며, 그 부적은 지금도 출정하는 후대 온나무샤들의 어깨에 정중히 매여진다. 본진 야사에는 "시노 가문의 깃발이 한 번도 두 번 흔들린 적이 없는 이유는 그 머리띠 한 줄"이라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져 있다.
은영쿠노이치(隱影女忍)
쿠노이치(くノ一)
어둠을 베어 첩보의 정점에 이른 쿠노이치
“어둠 속에서 한 번 더 숨을 참습니다. 그래야 한 번 더 살아 돌아갑니다.”
쿠노이치는 가공의 전국시대 안 닌자 결사에 소속된 여성 첩보·암살 전문가이다. 외형은 단정한 키모노 위장, 그 아래 인복(忍服), 머리에 작은 비녀 모양 무기가 숨겨진 표준 차림이다. 본인은 평소에는 다이묘 가문 안채의 시녀·다회 손님·예능인으로 위장하며, 가장 따뜻한 자리에서 가장 차가운 정보를 모은다.
진짜 무서운 쿠노이치는 칼을 잘 쓰는 자가 아니라, 임무를 마친 뒤 다음 다회에 다시 평범하게 등장할 수 있는 자다. 그래서 쿠노이치들끼리는 임무 후 사흘 동안 절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않는다. 그게 그녀들이 평생을 살아남는 가장 오래된 약속이다.
“그분이 사흘째 새벽 우리 다회에 평범하게 다시 들어오셨을 때, 한 자매도 그 손목을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게 우리 결사가 한 시대를 건너온 이유지요.”
츠키(月 — 본명을 평생 한 번도 밝히지 않은 가공의 츠키 결사 소속 쿠노이치, 가장 오래 임무를 마치고 살아 돌아온 자매로 야사에 기록됨)의 한 일화는 결사 안 자매들 사이에서만 정중히 전해진다.
어느 인접 가문 다이묘의 안채에 다회 시녀로 두 시즌을 잠입한 그녀는, 한 번도 단검을 뽑지 않은 채 그 가문의 출정 결재 라인을 통째로 옮겨 적었다. 임무 마지막 날 새벽, 그녀는 자신을 정중히 대해준 그 가문의 어린 시녀에게 평소처럼 다회 첫 잔만 정중히 우려두고 떠났다. 결사로 돌아온 츠키는 두령 앞에서 한 줄 보고를 마친 뒤, 다음 사흘 동안 자매들의 다회에 평범한 얼굴로 다시 들어가 첫 잔을 나눴다. 한 자매도 그날 츠키의 손목을 알아보지 않았으며, 그것이 결사의 가장 오래된 약속이 지켜진 한 일화로 남았다. 인접 가문에서는 그 어린 시녀가 한 시즌 후 정중히 다이묘비의 곁에 시녀장 후보로 올랐고, 츠키가 두고 간 첫 잔의 자국은 그 다실 한 자락에 한 시대 그대로 남았다.
후대 쿠노이치들은 임명 첫 임무 전날 밤, 결사 안 한 식경 동안 츠키가 마지막으로 우려두었다는 그 첫 잔의 향을 정중히 한 번 맡고 떠나는 관례를 지킨다.
시녀총괄낭(侍女總括娘)
시녀장(侍女頭)
안채 시녀단을 통솔하는 시녀장
“안채 안 누가 누구에게 키모노 한 자락을 빌려갔는지, 이 늙은이가 다 압니다.”
시녀장은 다이묘 가문 안채의 시녀들을 총괄하는 여성 관리자로, 다이묘비의 일과·다회·외교 부인 만찬 좌석을 직접 정한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배지, 손목에 작은 자수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안채의 모든 시녀 출신 정보 라인을 외우고 있어, 어느 시녀가 어느 인접 가문 출신이고 어느 외척과 연결되는지를 머리속 표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이묘비의 진짜 외교 자문은 사실상 시녀장이며, 다이묘조차 가끔 시녀장의 한 줄 보고를 받기 위해 안채 입구까지 직접 내려온다. 안채의 진짜 외교는 시녀장의 작은 자수 주머니에서 매일 시작된다.
“할머님 자수 주머니 안에 우리 가문 한 시대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분이 떠난 그 새벽이 되어서야 우리는 알았습니다.”
늙은 시녀장 카츠라(桂 — 삼대 다이묘비를 모신 가공의 카츠라 출신 시녀장으로 안채 야사에 가장 길게 기록된 자)의 한 일화는 안채 시녀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 회자된다.
한 번 인접 가문 정실의 어린 시녀가 본진 안채에 들어와 다이묘비의 키모노 한 자락을 몰래 자르려 했을 때, 카츠라는 어떤 소란도 없이 그 시녀를 자기 다실로 정중히 불렀다. 카츠라는 그녀에게 차 한 잔을 우려주고는, 자기 자수 주머니에서 그 어린 시녀의 어머니가 평생 모은 자수 천 한 자락을 정중히 꺼내 보여주었다. 어린 시녀는 한 식경 동안 흐느꼈고, 카츠라는 그날 밤 다이묘비에게 한 줄 보고만 정중히 올린 뒤 그 시녀를 인접 가문에 다시 정중히 돌려보냈다.
인접 가문 정실은 그 일을 듣고 자기 어린 시녀의 처분을 카츠라의 한 줄 결재에 그대로 맡겼으며, 그 한 줄로 두 가문의 한 시즌 분쟁이 정중히 정리되었다. 카츠라가 떠나던 새벽, 후대 시녀장에게 물려진 그 자수 주머니 안에서 두 가문 정실들의 어린 시절 자수 한 자락 한 자락이 한 묶음으로 정중히 발견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시녀장의 자수 주머니는 본진 군량 창고보다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다회수발녀(茶會隨侍女)
다회 시녀
다회 자리의 잔심부름을 맡은 시녀
“두 번째 잔은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우리겠습니다. 그분, 안색이 추우십니다.”
다회 시녀는 다이묘 안채의 다회(茶會)에서 차를 우려내고 손님을 안내하는 어린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머리에 작은 비녀, 손목에 다구(茶具)용 작은 천이 표준이다. 본인은 차의 향과 온도만으로 손님 다이묘비들의 그날 컨디션·기분·다음 정혼 협상의 흐름을 거의 정확히 읽어낸다.
그래서 시녀장과 다이묘비조차 가끔 그녀의 첫 잔이 들어오는 그 짧은 한 식경을 묘하게 기다린다. 안채의 가장 작은 잔이 한 가문의 가장 큰 외교를 매일 정리한다. 다회 시녀의 손목 한 번이, 그 가문의 다음 한 시즌을 결정한다.
“그날 그 두 번째 잔이 한 호흡 더 따뜻했기에 한 어머님이 한 식경 더 우리 가문에 머무르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시녀들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어린 다회 시녀 우메(梅 — 본명조차 시녀장이 정중히 비공개로 둔 가공의 우메 가문 평민 출신 시녀)의 한 일화는 안채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한겨울 새벽 다회에 인접한 야나기 가문(柳家 — 한 시대 다이묘 가문 중 가장 오래된 노부인 라인을 가진 인접 가문)의 노부인이 안채까지 정중히 모셔졌을 때, 우메는 첫 잔이 들어오기 전 노부인의 어깨가 한 식경 흔들리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우메는 다이묘비에게 한 줄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다회 둘째 잔을 평소보다 한 호흡 더 정중히 우려냈고, 그 한 호흡의 따뜻함 위에서 노부인은 한 식경을 더 안채에 머물 수 있었다. 노부인은 떠나기 전 자기 손목의 작은 매화 빗을 직접 빼어 우메의 손에 정중히 쥐어 주었으며, 그 빗은 야나기 가문 정실들이 사대(四代)를 넘기며 물려온 한 줄 가보였다. 다이묘비는 그날의 첫 잔과 둘째 잔의 자국을 다실 한 자락에 그대로 보존하라 명했고, 그 자리는 한 시대 동안 비단 천으로 정중히 덮여 있었다. 시녀장조차 우메의 다음 다회 결재 한 줄에는 한 시즌 동안 끼어들지 않았다.
후대 다회 견습 시녀들은 처음 다구 한 벌을 닦기 전, 그 빗을 한 번 정중히 들여다보는 것이 안채의 가장 오래된 관례가 되었다.
어전여검희(御前女劍姬)
어전(御前) 여검사범
주군 어전에서 검을 가르치는 여검사범
“검을 가르치는 일은, 베는 법보다 거두는 법을 더 오래 가르치는 일입니다.”
어전 여검사범은 다이묘 가문 안채에서 정실·딸·시녀 출신 무인까지 모두에게 검과 나기나타를 가르치는 여성 정점 무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검도복 위 옅은 키모노, 머리에 가문 문양 머리띠, 어깨에 검과 나기나타 두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검로(劍路)·옛 분기 결투의 결재 라인·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안채의 정실들이 검을 들 일이 평생 한 번뿐이더라도, 그 한 번을 위해 평생을 가르친다는 것이 사범의 직무다. 가신단 카로들조차 그녀의 한 줄 평을 받기 위해 본진 회의를 미루며, 다이묘비가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자리에 늘 그녀가 앉는다. 가장 무거운 한 합은 큰 결투의 검이 아니라, 어린 시녀가 처음 잡은 목검의 손목 한 줄을 바로 잡아주는 그 짧은 한 식경 위에 있다.
“사범님께서 한 번도 베지 않은 그 한 합이, 우리 후대 사범들이 평생 가르치는 단 한 줄 검입니다.”
이대 어전 여검사범 카가미 노리코(鏡 紀子 — 가공의 카가미 가문 출신, 어전 여검사범 자리에 처음으로 정실이 아닌 평민 출신으로 추대된 사범)의 한 일화는 본진 야사에 정중히 새겨져 있다.
인접 가문에서 사범 자리를 두고 결투를 청한 어느 늙은 남검사가 본진 다실까지 정중히 들어왔던 그 새벽, 노리코는 자기 검을 한 번도 뽑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정중히 한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결투 대신 자기 어전 여검사범 첫 임명일에 다이묘비가 직접 매어준 가문 머리띠 한 자락을 탁자에 올려두고는, 그 머리띠 한 줄에 새겨진 옛 사범들의 이름을 한 식경 동안 정중히 한 명씩 호명했다. 늙은 남검사는 그 호명 안에 자기 죽은 누이의 이름이 한 줄 들어 있는 것을 한 식경 후 깨달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검을 그대로 풀어 노리코의 다실 한 자락에 정중히 두고 떠났다. 노리코는 그 검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으며, 본진 다실의 그 자리는 한 시대 동안 비어 있는 채로 정중히 보존되었다.
그날 이후 어전 여검사범의 첫 임명 의식에는 검을 뽑는 한 합 대신, 옛 사범들의 이름을 한 줄씩 정중히 호명하는 한 식경이 정식 절차로 더해졌다. 본진 야사에는 "한 합도 두지 않은 노리코의 검이 본진의 가장 무거운 검"이라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쿠노두령희(女忍頭領姬)
쿠노이치 두령(頭領)
쿠노이치 결사를 거느리는 두령
“임무 한 줄에 자매 한 명. 그 셈을 평생 잘못 두면, 두령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쿠노이치 두령은 한 닌자 결사 안 여성 라인을 통솔하는 정점으로, 임무 배치·정보 분배·자매들의 은퇴 후 신분 세탁까지 모두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위장, 그 아래 두령용 단검 두 자루, 가슴팍에 결사 문양 작은 부적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임무 결재·옛 분기 정보 라인·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이 의뢰한 큰 임무도 그녀의 한 줄 결재 없이는 한 발도 움직이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임무가 아니라, 임무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매의 가족에게 정중히 한 줄 부음을 전하는 자세 위에 있다. 그래서 늙은 두령의 손목에는 단검 자국보다 부음 편지를 든 굳은살이 더 진하다.
“두령님 손목의 그 굳은살이, 우리 결사 한 자매 한 자매의 이름이 평생 새겨진 자리라는 사실을, 후대 두령들은 임명 첫날 손목을 정중히 마주 대고 깨닫습니다.”
사대 두령 코하루(小春 — 가공의 코하루 결사 라인 정점, 임무 한 줄에 자매 한 명을 잘못 두지 않은 단 하나의 두령으로 야사에 기록된 자)의 한 일화는 결사 안 자매들 사이에서만 정중히 전해진다.
한 큰 임무에서 자매 셋이 돌아오지 못한 그 새벽, 코하루는 본인이 직접 그 가족들의 집까지 한 골목씩 걸어가 부음 한 줄을 정중히 전했다. 그녀는 한 자매의 어머니 손목에 자기 단검 손잡이의 작은 매듭 한 줄을 풀어 정중히 매어 주었고, 그 매듭은 결사 두령만이 평생 한 번 풀 수 있는 가문 부적이었다. 다음 시즌 그녀는 결사의 가장 큰 임무 의뢰를 정중히 거절했으며, 그 거절 한 줄로 결사는 한 시대 동안 한 자매도 더 잃지 않았다.
다이묘 가문의 카로들조차 그 거절 한 줄을 정중히 받아들였고, 그날 이후 결사 의뢰 결재에는 두령의 손목 매듭 한 줄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절차가 더해졌다. 코하루가 떠난 새벽, 후대 두령에게 물려진 단검 손잡이에는 그녀가 평생 풀어준 매듭 자리 한 줄 한 줄이 작은 자국으로 정중히 남아 있었다. 결사 야사에는 "두령의 단검은 적을 베는 검이 아니라 자매의 어머니 손목을 묶는 매듭"이라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안채외교비(內室外交妃)
안채 외교 부인
안채의 인맥으로 가문을 잇는 외교 부인
“정혼 한 줄, 다회 한 잔. 안채에서 결정되는 한 줄이 본진의 다음 한 시즌을 미룹니다.”
안채 외교 부인은 다이묘비의 직속에서 인접 가문 정실들과의 부인 외교(婦人外交)를 전담하는 여성 외교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우치카케,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부채, 손목에 외교 결재용 작은 인장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정혼·옛 분기 약혼 결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신단의 카로들이 본진 회의에서 결정하지 못한 인접 가문 분쟁을, 그녀가 하루의 다회 두 잔으로 정중히 정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이묘비조차 외교 부인의 한 줄 결재 없이는 인접 가문에 사신 한 명을 보내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잔은 큰 약혼이 아니라, 어느 인접 가문 정실의 처음 만난 다회 첫 잔의 온도 위에 있다.
“그분께서 첫 잔 온도를 한 호흡 더 따뜻하게 우려두셨기에, 우리 두 가문이 한 시대 약혼 한 줄을 정중히 이어왔다는 것을, 우리 후대 외교 부인들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외교 부인 후지나미 시즈(藤波 静 — 가공의 후지나미 가문 출신, 인접 가문 약혼 결재 라인을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이어준 외교 부인)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에 정중히 새겨져 있다.
본진과 인접한 츠바키 가문(椿家 — 한 시대 다이묘 가문 중 약혼 결렬 결재가 가장 많았던 인접 가문) 정실이 약혼 결렬 통보를 들고 안채에 처음 들어왔던 그 새벽, 시즈는 결렬 문서 대신 츠바키 가문 정실의 어머니가 평생 즐겨 마셨다는 매화 향 차 한 잔을 정중히 우려 첫 잔으로 내었다. 츠바키 정실은 첫 잔의 향 위에 한 식경 동안 한 호흡을 멈췄고, 그 침묵 한 식경 동안 시즈는 자기 외교 결재 명부 한 줄을 정중히 덮어두었다. 결렬 통보는 그날 한 줄도 꺼내지지 않았으며, 두 정실은 그 한 잔의 향만 두 번 더 정중히 나누고 헤어졌다.
츠바키 가문 정실은 다음 시즌 다시 안채에 들어와 약혼 결재 한 줄을 직접 인장으로 정중히 찍었으며, 그 약혼 한 줄은 사대(四代)를 넘기며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시즈가 떠난 새벽, 그 매화 향 한 자루는 외교 부인 작업방 한 자락에 정중히 보관되었으며, 후대 외교 부인들은 임명 첫 다회 전 그 향을 한 번 정중히 맡고 결재 명부를 펴는 관례가 새겨졌다.
가문부적녀(家門符籍女)
가문 부적사(符籍師)
가문의 안위를 부적으로 봉하는 여술사
“이 부적 한 장, 출정하는 가신 한 분의 한 호흡을 살립니다. 함부로 받지 마십시오.”
가문 부적사는 다이묘 가문 안 출정·결투·약혼·출산에 쓰이는 부적(符)을 직접 그리는 여성 정점 영매다. 외형은 단정한 흰 키모노 위 짙은 색 가사, 머리에 작은 부적 비녀, 손목에 묵과 작은 붓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부적 결재·옛 분기 봉인 라인·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다이묘가 큰 출정을 결정하면 가장 먼저 그녀의 안채 작업방으로 직접 내려와 부적 한 장을 받는다. 가신단의 한 줄 출정 결재보다, 부적사의 한 줄 묵 자국이 더 무겁다는 격언이 가문 야사에 남아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장은 큰 출정의 부적이 아니라, 안채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손목에 묶어주는 작은 한 장 위에 있다.
“스승님 묵 한 줄이 한 어린 호흡 한 식경을 살렸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부적사들은 그 아이가 자라 정실이 되어 안채에 다시 들어오신 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달았습니다.”
삼대 부적사 미오(澪 — 가공의 미오 가문 영매 라인 정점, 묵 한 줄로 한 어린 호흡을 살린 일로 야사에 길게 기록된 부적사)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다이묘비가 갓 출산한 어린 아기가 한 식경 동안 호흡 한 줄을 잃었던 그 새벽, 미오는 이미 큰 출정용으로 그려두었던 부적 한 장을 그대로 찢어 새 종이 한 자락에 작은 부적 한 장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냈다. 그녀는 묵 한 줄을 갈며 자기 어머니가 평생 외워둔 옛 영매 한 줄 기도를 정중히 한 식경 동안 읊었고, 그 부적을 직접 어린 아기의 손목에 정중히 묶어주었다. 한 시진(時辰)이 지나기 전 아기의 호흡이 정중히 한 줄로 돌아왔으며, 그 출정용 큰 부적 한 장은 미오가 한 번 더 정중히 새로 그려 가신단에 한 식경 늦게 전달되었다.
카로들은 그 한 식경의 늦음에 대해 한 줄도 묻지 않았고, 다이묘비는 그 어린 아기의 손목 부적을 평생 직접 갈아주는 자리에 미오를 정중히 모셨다. 그 어린 아기는 자라 삼대 다이묘비가 되어 안채에 다시 정중히 들어왔으며, 자기 손목의 그 작은 부적을 한 번도 풀지 않은 채 임명 의식을 마쳤다. 가문 야사에는 "부적사의 가장 무거운 묵은 출정 부적의 검은 줄이 아니라, 어린 호흡 한 식경의 작은 한 줄"이라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어인보전비(御印保全妃)
어인(御印) 보관 부인
가문의 인장을 몸으로 지키는 부인
“다이묘님 인장, 오늘은 한 번 더 늦게 내드리겠습니다. 그분 손목, 아직 흔들리십니다.”
어인 보관 부인은 다이묘 가문의 공식 인장(御印)을 안채에서 보관·관리하며, 결재 시점을 정중히 결정하는 여성 정점 관리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어인 보관함 열쇠, 손목에 작은 결재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결재·옛 분기 출정 인장 결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조차 큰 결재를 내릴 때 그녀의 한 줄 보관함 열쇠 없이는 한 줄도 찍지 못한다. 그래서 가신단 카로들 사이에서는 "다이묘의 검보다 어인 부인의 열쇠가 무겁다"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출정의 인장이 아니라, 다이묘가 흔들린 손목으로 들어왔을 때 한 식경만 더 기다려달라고 정중히 청하는 자세 위에 있다.
“그분께서 그 한 식경을 정중히 기다려달라 청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가문은 그 한 줄 인장 위에서 한 시대를 잃었을 겁니다.”
어인 부인 시라카와 노부코(白川 信子 — 가공의 시라카와 가문 출신, 사대(四代) 다이묘를 모시며 어인을 단 한 번도 잘못 내지 않은 보관 부인)의 한 일화는 본진 야사에 정중히 새겨져 있다.
큰 출정 직전 새벽, 다이묘가 인접 사파 결사의 도발에 한 식경 손목을 잃은 채 본진 어인실로 정중히 들어왔을 때, 노부코는 어인 보관함 열쇠를 자기 손목 안에 정중히 한 번 더 감았다. 그녀는 다이묘에게 한 줄도 직언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다회 한 잔을 정중히 우려 어인실 입구에 한 식경 더 머무르시도록 청했다. 다이묘는 그 한 잔의 향 위에 한 호흡을 멈췄고, 한 식경 후 자기 손목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중히 인정하며 결재 인장을 한 시진(時辰) 미루기로 결정했다.
그 한 시진 동안 가신단 카로들은 적정 정찰을 한 번 더 보냈으며, 그 정찰 한 줄로 적의 매복 한 자리가 정중히 한 골목 더 일찍 발각되었다. 노부코는 그 한 식경의 다회 잔을 평생 한 번도 다시 우리지 않았으며, 어인실 입구의 그 자리는 한 시대 동안 비단 천으로 정중히 덮여 있었다. 본진 야사에는 "다이묘의 검보다 어인 부인의 다회 잔 한 식경이 무겁다"는 격언이 정중히 새겨졌다.
화도종장녀(花道宗匠女)
화도(花道) 사범
꽃꽂이의 도(道)를 가르치는 화도 사범
“꽃 한 가지를 한 자리에 두는 일은, 본진의 회의 한 줄을 정리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화도 사범은 다이묘 안채에서 정실·시녀 출신 부인들에게 꽃꽂이(花道)를 가르치는 여성 정점 미감 사범이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빗, 손목에 작은 가위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화도 결재·옛 분기 미감 라인·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안채에서 꽃 한 가지의 자리가 그날 다회의 좌석을 결정하고, 그 좌석이 인접 가문과의 다음 한 줄 약혼을 결정한다. 그래서 가신단 카로들이 가끔 본진 회의를 잠시 멈추고 안채 화도 자리를 들여다보러 내려오기도 한다. 가장 무거운 한 가지는 큰 다회의 꽃이 아니라, 정실이 처음 잡은 가위가 흔들렸을 때 사범이 손목 한 줄을 정중히 잡아주는 그 자세 위에 있다.
“사범님 가위 한 줄이 한 어린 정실의 첫 다회 좌석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화도 사범들은 그분이 떠나신 새벽 한 번 더 정중히 깨닫습니다.”
화도 사범 코토노(琴乃 — 가공의 코토노 가문 출신, 화도 사범 자리에 사대(四代)에 걸쳐 한 줄도 흔들리지 않은 사범)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어린 다이묘비가 임명 첫 다회를 앞두고 처음 잡은 화도 가위가 한 식경 흔들렸던 그 새벽, 코토노는 본인이 이미 정중히 잘라둔 매화 가지 한 줄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자기 손목 위에 어린 정실의 손목을 정중히 한 번 겹쳐 올렸다. 그녀는 한 줄도 가르치지 않은 채 한 식경 동안 손목 위에 손목만 정중히 올려두었고, 어린 정실은 그 한 식경 동안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다. 그날의 다회 좌석은 매화 한 가지 위에 정중히 한 줄로 정리되었으며, 그 좌석 위에서 인접 가문 정실과의 약혼 한 줄이 한 시즌 정중히 정리되었다.
다이묘비는 평생 그 가위를 다시 잡지 않은 대신, 그 매화 한 가지를 비단함에 정중히 보관해 두었다. 코토노가 떠나던 새벽, 후대 화도 사범에게 물려진 작업방 한 자락에는 어린 정실들이 처음 잡았던 가위 자국 한 줄 한 줄이 정중히 새겨져 있었다. 안채 야사에는 "화도 사범의 가장 무거운 가위는 손목 위 손목 한 식경"이라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키모노색사녀(키모노色師女)
키모노 색사(色師)
키모노 색감을 가려내는 색사 장인
“오늘 그분께는 옅은 청, 옷자락에 한 줄 매화. 인접 가문께 우리 가문이 한 발 양보한다는 뜻입니다.”
키모노 색사는 다이묘 안채에서 정실·시녀의 키모노 색 조합·문양 한 줄을 결정하는 여성 정점 의장(衣匠)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색 견본 작은 책자, 손목에 색실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키모노 결재·옛 분기 색 결정 라인·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인접 가문 정실의 키모노 색이 한 자락 바뀌었다는 한 줄을 색사가 알아채면, 그 정보가 다이묘비의 다음 다회 안건을 통째로 바꾼다. 그래서 외교 부인보다 색사가 인접 가문 분위기를 한 시진(時辰) 먼저 읽는 일이 잦다. 가장 무거운 한 자락은 큰 의식의 우치카케가 아니라, 어린 시녀가 처음 입어본 옅은 색 첫 키모노의 옷깃 한 줄 위에 있다.
“스승님 색 견본 한 줄이 한 어린 시녀의 첫 출근 새벽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색사들은 그 시녀가 자라 시녀장이 되어 들어오신 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달았습니다.”
키모노 색사 아오바(青葉 — 가공의 아오바 가문 출신, 안채 색 결재 라인을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이어준 색사)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본진과 인접한 카에데 가문(楓家) 정실이 가문 색을 한 자락 바꾸어 다회에 들어왔던 그 새벽, 아오바는 그 색 한 자락이 카에데 가문이 한 시즌 양보를 약속하는 외교 신호임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그녀는 다이묘비에게 한 줄 직언 대신, 그날 안채 어린 시녀의 첫 키모노에 카에데 가문의 옅은 청 한 자락 매화 자수를 정중히 더해 입혔다. 카에데 정실은 어린 시녀의 옷깃을 한 식경 가만히 보더니, 자기 손목의 작은 색실 한 줄을 정중히 풀어 어린 시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한 줄 색실 위에서 두 가문의 한 시즌 외교가 정중히 한 줄로 정리되었으며, 다이묘비조차 그날 다회의 결재 한 줄을 한 식경 미루어 색사의 한 줄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아오바가 떠난 새벽, 그 색실 한 줄은 색사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후대 색사들은 임명 첫 결재 전 그 색실을 한 번 정중히 들여다보는 것이 안채 가장 오래된 관례가 되었다.
자수첩보비(刺繡諜報妃)
자수 첩보 부인
자수 무늬에 밀어를 숨기는 정보 부인
“이 자수 한 줄, 인접 가문 정실께 보내는 외교 한 통이지요. 글자보다 늦게 도착하지만 더 정확합니다.”
자수 첩보 부인은 다이묘 안채에서 정실·외교 부인이 인접 가문에 보내는 자수 한 자락에 정보 한 줄을 정중히 새기는 여성 첩보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자수 패, 손목에 색실과 작은 바늘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자수 결재·옛 분기 색실 라인·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자수 한 자락의 매화 가지 방향이 한 줄 바뀌면, 그것이 인접 가문 정실에게는 "이번 약혼은 한 시즌 미룬다"라는 정중한 한 통이 된다. 그래서 가신단 카로들이 외교 문서 한 줄보다, 자수 부인의 한 자락 매화를 먼저 들여다보는 일이 잦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자수가 아니라, 어린 시녀가 처음 잡은 바늘이 흔들렸을 때 부인이 손목 한 줄을 정중히 잡아주는 그 자세 위에 있다.
“그분 자수 한 자락이 한 시즌 전쟁을 한 줄로 정중히 미뤄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자수 부인들은 그분이 떠나신 새벽 한 번 더 정중히 깨닫습니다.”
자수 첩보 부인 미하루(美春 — 가공의 미하루 가문 출신, 자수 한 자락 한 자락에 외교 한 통씩을 정중히 새긴 첩보 부인)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본진과 인접한 야나기 가문(柳家)이 한 시즌 전쟁을 정중히 통보하기 직전 새벽, 미하루는 야나기 정실에게 보내는 자수 한 자락에 매화 가지를 평소와 정반대 방향으로 정중히 한 줄 새겨 넣었다. 야나기 정실은 그 매화 가지의 방향이 자기 어머니가 어린 시절 정중히 새겨준 옛 자수의 방향과 정확히 같음을 한 식경 후 알아챘으며, 그 자수 한 자락 위에서 한 호흡을 정중히 멈췄다. 야나기 정실은 다음 새벽 본진 안채에 직접 정중히 들어와 미하루의 작업방 입구에 자기 어머니의 매화 자수 한 자락을 정중히 놓고 떠났다.
그 한 자락 위에서 두 가문의 한 시즌 전쟁은 정중히 한 줄로 미뤄졌으며, 가신단 카로들은 그 결과를 한 줄도 묻지 않은 채 정중히 받아들였다. 미하루가 떠난 새벽, 그 매화 한 자락은 자수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외교 문서 백 통보다 매화 한 자락의 방향 한 줄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약차조제녀(藥茶調劑女)
약차(藥茶) 조제 시녀
약차를 달여 안채를 보살피는 시녀
“이 한 잔은 다이묘비님 잠 한 식경을 살립니다. 흥정은 받지 않습니다.”
약차 조제 시녀는 다이묘 안채에서 정실·아이·노부인 출신 부인의 잠과 호흡을 살리는 약차(藥茶)를 직접 조제하는 여성 의방(醫方)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가슴팍에 작은 약초 주머니, 손목에 약차용 작은 잔 천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약초 결재·옛 분기 약차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다이묘비가 한 식경 잠을 잃은 새벽이면 가장 먼저 그녀의 작은 잔이 안채 침소 입구까지 정중히 들어간다. 시녀장조차 약차 시녀의 한 줄 잔 결정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잔은 큰 다회의 차가 아니라, 다이묘비가 한 호흡을 잃은 그 짧은 새벽 한 식경 위에 정확히 도착하는 그 잔이다.
“그분 약차 한 잔이 한 어머님 잠 한 식경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약차 시녀들은 그 잔을 한 번 우려보고 나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약차 시녀 사쿠라(桜 — 가공의 사쿠라 가문 출신, 평민 약초 라인에서 다이묘비 약차 시녀로 정중히 발탁된 어린 시녀)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다이묘비가 산후 한 시즌 동안 잠 한 식경을 잃은 그 새벽, 사쿠라는 안채 약초원 부인이 정중히 채집해 둔 옛 분기 약초 라인 한 줄에 평소엔 쓰지 않는 한 잎의 매화 봉오리를 정중히 한 줄 더 넣어 우려냈다. 다이묘비는 그 한 잔의 향 위에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고, 한 식경 후 잠 한 줄을 다시 찾아냈다. 약초원 부인은 처음에는 사쿠라의 한 줄 결재를 한 식경 정중히 의심했으나, 다이묘비가 다음 새벽 직접 약차 시녀 작업방으로 정중히 내려와 사쿠라의 손목을 한 번 잡아준 뒤로는 한 줄도 묻지 않았다.
시녀장조차 그날 이후 약차 시녀의 한 줄 잔 결정에는 한 식경도 끼어들지 않았으며, 가신단 카로들은 약초원 채집표 한 줄에 매화 봉오리 한 잎을 정식으로 더해 결재했다. 사쿠라가 떠난 새벽, 그 매화 봉오리 한 줄은 약차 시녀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다회 백 잔보다 새벽 약차 한 잔의 매화 한 잎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안채회계비(內室會計妃)
안채 회계 부인
안채의 살림 장부를 도맡은 부인
“이번 다회 한 번에 은(銀) 두 냥이 더 들어갑니다. 그래도 그분께는 그게 정중한 한 줄이지요.”
안채 회계 부인은 다이묘 안채의 모든 다회·자수·키모노·약차 비용을 정중히 정산하는 여성 출신 회계 직무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회계 패, 손목에 작은 결재 명부와 붓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회계 결재·옛 분기 비용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가신단 카로들이 본진 군량 회계를 정리할 때 가끔 안채 회계 부인의 한 줄을 직접 확인하러 내려온다. 다이묘비의 다음 다회 한 번이 한 가문의 한 시즌 외교를 결정한다면, 그 다회의 비용 한 줄을 정중히 결재하는 자가 바로 회계 부인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다회의 정산이 아니라, 어린 시녀의 첫 다구 한 벌 비용을 손목 한 번에 정중히 통과시키는 그 자세 위에 있다.
“그 어린 시녀의 첫 다구 한 벌 비용을 한 줄에 정중히 통과시켜 주신 부인 손목이, 우리 후대 회계 부인들이 평생 닮고 싶은 단 한 줄 결재입니다.”
회계 부인 후미코(文子 — 가공의 후미코 가문 출신, 사대(四代) 다이묘비를 모시며 안채 회계 한 줄도 어긋난 적 없는 부인)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가공의 도와 가문(土和家 — 한 시즌 흉작으로 어려움을 겪은 본진의 외척 가문) 출신 어린 시녀가 첫 다구 한 벌을 정중히 받기로 한 그 새벽, 시녀장은 비용 한 줄을 보고 한 식경 망설였다. 후미코는 그 한 식경 동안 자기 회계 명부 한 자락을 정중히 펴서, 다이묘비가 한 시즌 전 정중히 절약해 둔 비단함 한 줄 비용 위에 그 다구 비용을 정확히 한 줄로 옮겨 적었다. 시녀장은 그 결재 한 줄에 한 호흡을 멈췄으며, 어린 시녀는 그날 정중히 첫 다구 한 벌을 손에 받아 다회 견습 시녀로 한 줄 명부에 정중히 올랐다.
다이묘비는 그 회계 한 줄을 알고도 한 줄도 묻지 않았으며, 가신단 카로들은 후미코의 한 줄 결재 명부를 본진 군량 회계의 옛 표 안에 정식으로 한 자리 더해주었다. 후미코가 떠난 새벽, 그 한 줄 결재 명부는 회계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큰 다회 백 번 정산보다 어린 시녀 첫 다구 한 벌 결재 한 줄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낭검여객낭(浪劍女客娘)
떠돌이 여검객(女剣客)
주인 없이 떠도는 여검객
“가문 이름 묻지 마십시오. 검을 뽑은 자리에서는 가문이 무겁기만 하더이다.”
떠돌이 여검객은 어느 가문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가공의 전국시대 길목을 단독으로 떠도는 여성 검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여행 키모노, 그 위 가벼운 어깨 갑주,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객잔의 평소 가격·옛 분기 결투 자리·금기 길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문에 매이지 않기에, 길에서 만난 약자를 위해 가장 먼저 검을 뽑는 자이기도 하다. 가신단 정식 무사가 망설일 때 떠돌이가 먼저 검을 뽑은 사례가 가공의 전국 야사에 백 번을 넘는다. 그래서 길목에서는 떠돌이 여검객의 검이 가장 가벼운 검이자, 가장 무거운 검이라 한다. 가장 무거운 한 합은 큰 결투가 아니라, 길가에 쓰러진 늙은 여인 옆에 정중히 한 무릎을 꿇는 그 자세 위에 있다.
“그분 카타나가 한 번도 빠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떠돌이들은 그분이 떠나신 골목 한 자락에서 한 번 더 정중히 깨닫습니다.”
떠돌이 여검객 츠루기 호타루(剣 蛍 — 본명을 평생 한 번도 밝히지 않은 가공의 호타루, 한 시대 길목에 가장 오래 머문 떠돌이로 객잔 야사에 정중히 기록된 자)의 한 일화는 길목 객잔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한 인접 마을(가공의 후지노 마을 — 떠돌이 무사들이 가장 자주 들르는 길목 객잔이 있는 작은 마을) 객잔 입구에서 늙은 여인이 한 식경 동안 흔들렸을 때, 호타루는 자기 카타나를 정중히 길바닥에 한 줄로 풀어 두고 한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늙은 여인의 어깨에 자기 여행 키모노 한 자락을 정중히 덮어주었으며, 객잔 주인 부부에게 한 식경 동안 따뜻한 약차 한 잔을 정중히 청했다. 그 한 식경 동안 그녀는 한 줄도 자기 가문에 대해 묻지 않았고, 늙은 여인이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고른 뒤에야 자기 카타나를 한 줄로 정중히 다시 거두었다.
늙은 여인은 떠나기 전 자기 손목의 작은 매듭 한 줄을 정중히 풀어 호타루의 카타나 손잡이에 매어 주었으며, 그 매듭은 평민 어머니들이 평생 한 번 풀 수 있는 한 줄 부적이었다. 호타루가 그 후로 들른 길목마다 그 매듭이 한 줄씩 더해졌으며, 그 카타나 손잡이는 지금도 후지노 마을 객잔 한 자락에 정중히 비단 천으로 덮여 있다. 길목 야사에는 "떠돌이의 가장 무거운 검은 손잡이의 매듭 한 줄"이라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다실청소녀(茶室淸掃女)
다실(茶室) 청소 시녀
다실의 먼지 한 점도 허락하지 않는 시녀
“다실 한 칸, 정중히 비워두는 일이 다회 한 잔보다 더 오래 걸립니다.”
다실 청소 시녀는 다이묘 안채의 다실(茶室)을 매일 정중히 청소하고, 다회 직전 좌석 한 줄·향(香) 한 줄을 정리하는 여성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가슴팍에 작은 청소 천 주머니, 손목에 향 작은 갑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다실의 평소 좌석·옛 분기 청소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다회 시녀가 차를 우리기 전 가장 먼저 그녀의 한 줄 향이 다실 한 칸을 정중히 채운다. 시녀장조차 청소 시녀의 한 줄 좌석 결정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청소는 큰 다회의 다실이 아니라, 어린 시녀가 처음 우려본 첫 잔의 자국을 정중히 닦아내는 그 짧은 한 식경 위에 있다.
“그분 향 한 줄이 한 어린 다회 시녀의 첫 잔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청소 시녀들은 그 자국을 닦아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청소 시녀 시즈쿠(雫 — 가공의 시즈쿠 라인 평민 출신, 안채 다실 한 칸을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청소한 시녀)의 한 일화는 안채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어린 다회 시녀가 임명 첫 다회에서 처음 우려본 첫 잔이 한 식경 흔들려 다실 한 자락에 작은 차 자국 한 줄을 남겼던 그 새벽, 시즈쿠는 그 자국을 정중히 닦아내는 대신 그 자리에 자기 향 한 가닥을 정중히 한 줄 더 피웠다. 다이묘비는 다음 다회에서 그 자리의 향 한 줄이 평소보다 한 호흡 더 깊은 것을 정중히 알아챘으며, 어린 다회 시녀의 한 줄 떨림 위에 한 식경 더 머물러 주었다. 어린 시녀는 그날 처음으로 다이묘비에게 정중히 한 줄 인사를 받았으며, 그 한 줄 위에서 다회 시녀로 한 자리 정식으로 정중히 발탁되었다.
시녀장조차 시즈쿠의 한 줄 향 결재에 한 식경 동안 한 줄도 묻지 않았으며, 다이묘비는 그 차 자국을 한 시대 동안 정중히 비단 천으로 덮어 보존하라 명했다. 시즈쿠가 떠난 새벽, 그 향 한 가닥은 청소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큰 다실 청소 백 번보다 어린 시녀 첫 잔 자국 한 줄 위 향 한 가닥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정혼호위녀(定婚護衛女)
인접가 정혼 호위 시녀
혼인길에 신부를 지키는 호위 시녀
“정혼 길은 짧지만, 그 짧은 길에서 정혼 한 줄이 흔들립니다. 그러니 한 발 더 가까이 서겠습니다.”
인접가 정혼 호위 시녀는 다이묘 가문의 딸이 인접 가문으로 시집가는 한 줄 길에 직접 동행하여 정중히 호위하는 여성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여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호위 패, 허리에 작은 단도와 약초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정혼 길의 평소 노면·옛 분기 호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다이묘비가 딸의 정혼을 결정하면 가장 먼저 호위 시녀의 한 줄 결재를 받는다. 정혼 길에서 호위 시녀가 흔들리지 않으면, 그 정혼은 한 시대 인접 가문 사이에 한 줄 평화를 만든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정혼의 행렬이 아니라, 어린 신부가 한 식경 흔들린 그 짧은 새벽 옆에 정중히 한 발 더 가까이 서는 그 자세 위에 있다.
“그 한 발 더 가까운 자리가, 어린 신부가 한 시대 흔들리지 않게 정중히 지켜준 단 하나의 한 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호위 시녀들은 그 정혼이 사대(四代)를 이어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호위 시녀 야에(八重 — 가공의 야에 라인 평민 출신, 정혼 호위 시녀로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한 발도 흔들리지 않은 시녀)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본진 어린 신부가 인접 후지나미 가문(藤波家 — 매화 자수 라인이 가장 깊은 인접 가문)으로 정혼하던 한겨울 새벽, 정혼 행렬이 길 한 골목에서 한 식경 흔들렸을 때 야에는 자기 단도 한 자루를 정중히 행렬 한 줄 옆에 풀어 두고 어린 신부의 손목에 자기 손목을 정중히 한 번 겹쳤다. 그녀는 한 식경 동안 한 줄도 말하지 않은 채 어린 신부의 호흡을 정중히 한 번 더 따라 마셨으며, 어린 신부는 그 한 식경 위에서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다. 행렬은 한 시진(時辰) 늦게 후지나미 본진 입구에 도착했지만, 후지나미 정실은 한 줄도 묻지 않은 채 정중히 어린 신부를 한 발 더 가까이 모셨다.
그 정혼 한 줄은 한 시대 동안 두 가문 사이에 한 줄 평화로 정중히 새겨졌으며, 가신단 카로들조차 정혼 길 결재 표 한 줄에 야에의 단도 자국을 정식으로 더해 두었다. 야에가 떠난 새벽, 그 단도 한 자루는 호위 시녀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정혼 길 백 골목보다 어린 신부 한 식경 옆 한 발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촌락무녀낭(村落巫女娘)
마을 무녀(巫女)
마을의 소박한 신당을 지키는 무녀
“이 부적 한 장, 어머님 한 호흡을 살립니다. 그러니 한 잎이라도 함부로 접지 마십시오.”
마을 무녀는 가공의 전국시대 작은 마을의 신사(神社)에서 정중히 부적과 점괘를 내리는 평민 출신 여성 영매다. 외형은 단정한 흰 무녀복 위 붉은 하카마, 머리에 작은 비녀, 손목에 작은 부적 묶음과 방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마을의 평소 잔칫날·옛 분기 점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 부적사가 큰 출정의 부적을 그린다면, 마을 무녀는 마을 어머니들의 한 호흡 옆에 한 장 부적을 정중히 매준다. 그래서 작은 마을의 진짜 영매는 가문 부적사가 아니라, 새벽마다 한 줄 점괘를 내리는 마을 무녀라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장은 큰 출정의 부적이 아니라, 마을 어머니의 잠든 손목에 정중히 묶어주는 작은 한 장 위에 있다.
“그분 부적 한 장이 한 어머님 한 호흡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마을 무녀들은 그 어머님 손목 매듭이 사대(四代)를 이어 풀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마을 무녀 코마치(小町 — 가공의 코마치 라인 평민 출신, 후지노 마을 신사에서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부적을 내린 무녀)의 한 일화는 마을 야사 단골이다.
한겨울 새벽 마을 어머니 한 분이 잠 한 식경을 잃은 채 신사 입구까지 정중히 들어왔을 때, 코마치는 큰 출정용으로 그려두었던 부적이 아니라 자기 손에 새 종이 한 자락을 정중히 들어 한 식경 동안 작은 부적 한 장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냈다. 그녀는 그 부적을 어머니의 잠든 손목에 정중히 매어 주었으며, 한 시진(時辰) 후 어머니의 잠 한 줄이 정중히 다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 한 줄을 한 시대 동안 한 줄도 잊지 않았고, 후지노 마을 신사 입구에는 그 작은 부적 자국 한 자락이 한 시대 동안 비단 천으로 정중히 덮여 있었다.
다이묘 가문 부적사조차 큰 출정 직전 한 번 정중히 마을 신사로 내려와 코마치의 그 작은 부적 자국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코마치가 떠난 새벽, 그 새 종이 한 자락은 신사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마을 야사에는 "큰 출정 부적 백 장보다 잠든 어머니 손목 작은 부적 한 장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다회견습녀(茶會見習女)
다회 견습 시녀
다회 의례를 막 배우기 시작한 견습 시녀
“오늘은 다구 한 벌만 정중히 닦겠습니다. 첫 잔은 내일이라도 늦지 않으니까요.”
다회 견습 시녀는 다이묘 안채 다회 시녀의 곁에서 다구 한 벌을 정중히 닦고, 향 한 줄 자리·자수 천 한 자락을 정리하는 어린 평민 출신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가슴팍에 작은 견습 패, 손목에 작은 다구 천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견습의 평소 다구·옛 분기 청소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회 시녀의 첫 잔 한 번이 가문의 다음 한 시즌을 결정한다면, 그 잔의 다구 한 벌을 정중히 닦은 손목은 견습 시녀의 한 줄이다. 그래서 시녀장조차 견습 시녀가 처음 닦은 첫 다구 한 벌의 자국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가장 무거운 한 줄 닦음은 큰 다회의 다구가 아니라, 어린 견습이 처음 잡은 천이 흔들렸을 때 시녀장이 손목 한 줄을 정중히 잡아주는 그 짧은 한 식경 위에 있다.
“할머님 손목이 한 식경 정중히 우리 손목 위에 머무르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견습 시녀들은 그 한 식경이 끝난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어린 견습 시녀 코노미(好美 — 가공의 코노미 라인 평민 출신, 다회 견습으로 처음 안채에 들어와 후일 시녀장까지 오른 시녀)의 한 일화는 안채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임명 첫 새벽 코노미가 처음 잡은 다구 한 벌의 천이 한 식경 흔들려 다구 한 벌의 자국을 정중히 한 줄 흐릿하게 남겼을 때, 늙은 시녀장 카츠라(桂)가 한 줄도 꾸짖지 않은 채 자기 손목을 정중히 코노미의 손목 위에 한 식경 동안 겹쳐 두었다. 코노미는 그 한 식경 동안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으며, 그 후 잡은 천이 한 번도 다시 흔들리지 않았다. 시녀장은 그 첫 다구의 흐릿한 자국을 그대로 보존하라 명했으며, 그 다구 한 벌은 한 시대 동안 견습 시녀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 천으로 정중히 덮여 있었다.
코노미는 자라 시녀장이 되었을 때, 자기 손목을 정중히 어린 견습들의 손목 위에 한 식경씩 겹쳐 주는 절차를 정식 임명 의식 한 줄로 새겨 두었다. 그 절차는 사대(四代)를 넘기며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안채 야사에는 "다구 백 벌의 결재보다 손목 위 손목 한 식경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코노미가 떠난 새벽, 그 첫 다구 한 벌은 후대 시녀장에게 정중히 한 자락 보존 명부와 함께 물려졌다.
안채향종희(內室香宗姬)
안채 향(香) 사범
안채의 향(香)을 책임지는 향도 사범
“오늘 다실에는 침향 한 줄, 매화 한 줄. 그분 호흡이 길어지셨으니 한 식경 더 머무르실 수 있게요.”
안채 향 사범은 다이묘 가문 안채에서 다회·접객·정혼 의식에 쓰이는 향(香)의 종류와 분량을 정중히 결정하는 여성 정점 향도(香道) 사범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향합, 손목에 향목 결재용 작은 가위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향 결재·옛 분기 향목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교 부인이 인접 가문 정실을 안채로 모실 때 가장 먼저 향 사범의 한 줄 결재를 받으러 작업방까지 직접 내려온다. 한 가닥 향이 한 식경의 호흡을 정한다면, 그 한 식경의 호흡이 인접 가문과의 한 줄 약혼을 정중히 미루기도 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향은 큰 의식의 침향이 아니라, 어머니 잃은 어린 시녀가 처음 머리를 숙이는 그 짧은 새벽 다실에 정중히 한 가닥 매화향을 피워주는 그 자세 위에 있다.
“그분 매화향 한 가닥이 한 어린 시녀의 첫 새벽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향 사범들은 그 자국을 한 번 맡아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향 사범 후미(芙美 — 가공의 후미 라인 출신, 안채 향 결재를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이어준 사범)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어머니를 한겨울 새벽 잃은 어린 시녀 한 명이 다실 한 자락에 처음 머리를 숙이러 들어왔던 그 한 식경, 후미는 큰 의식용 침향이 아닌 자기 향합 안 가장 작은 매화향 한 가닥을 정중히 피워 어린 시녀의 호흡 옆에 한 식경 머무르게 했다. 어린 시녀는 그 한 식경 동안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으며, 한 줄도 울지 않은 채 정중히 머리를 다시 들었다. 다이묘비조차 그날 다회 결재 한 줄을 한 식경 미루어 후미의 한 가닥 향 옆에 정중히 한 호흡을 맞추었으며, 외교 부인은 인접 가문 정실 영접을 한 시진(時辰) 늦추었다.
그 어린 시녀는 자라 약차 시녀로 정중히 발탁되었으며, 자기 약차 작업방 한 자락에는 평생 그 매화향 한 가닥을 정중히 한 자루 비단함으로 보관해 두었다. 후미가 떠난 새벽, 향 사범 작업방 한 자락에는 그 매화향 한 가닥의 자국이 정중히 비단 천으로 덮여 있었다. 안채 야사에는 "큰 의식 침향 백 자루보다 어린 시녀 첫 새벽 매화향 한 가닥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가문의전비(家門儀典妃)
가문 의전(儀典) 부인
가문의 의식을 총괄하는 의전 부인
“이 한 걸음, 반 자(尺) 더 정중히. 인접 가문 정실께서 본진 입구를 처음 보시는 자리입니다.”
가문 의전 부인은 다이묘 가문에서 인접 가문 사절·혼례 행렬·신년 하례의 한 발 한 발을 정중히 결재하는 여성 정점 의전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우치카케,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의전 패, 손목에 의전 명부와 작은 부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의전 결재·옛 분기 행렬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신단 카로들이 본진 입구의 사절 영접을 결정하지 못할 때, 그녀의 한 줄 부채 결재로 정중히 한 줄 합의가 마무리된다. 그래서 다이묘비조차 큰 사절을 맞을 때 의전 부인의 한 발 한 발 결재 없이는 안채 입구로 한 발도 내려서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걸음은 큰 사절의 입구가 아니라, 인접 가문에서 시집 온 어린 신부가 처음 본진 입구를 들어서는 그 짧은 한 식경의 한 걸음 위에 있다.
“그 반 자(尺)의 한 걸음이 한 어린 신부의 한 시대를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의전 부인들은 그 신부의 임명 다회를 보고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의전 부인 키쿄(桔梗 — 가공의 키쿄 가문 출신, 사대(四代) 다이묘 가문의 의전을 정중히 이어준 부인)의 한 일화는 본진 야사 단골이다.
인접 카에데 가문(楓家)에서 시집 온 어린 신부가 본진 입구를 처음 들어서던 한겨울 새벽, 키쿄는 의전 명부의 평소 한 걸음을 정중히 반 자(尺) 더 좁혀 어린 신부의 보폭에 한 식경 동안 정확히 맞추어 두었다. 그 반 자의 차이로 어린 신부는 본진 입구의 문턱을 한 호흡에 정중히 넘었으며, 한 식경 동안 한 줄도 흔들리지 않은 채 안채 다실까지 정중히 도착했다. 다이묘비는 그 한 걸음의 결재 한 줄을 본 후 키쿄의 손목을 정중히 한 번 잡았으며, 카에데 가문 정실은 본진을 떠나기 전 자기 손목의 작은 부채 한 자루를 정중히 키쿄에게 한 줄 건넸다.
그 어린 신부는 자라 다이묘비가 되었으며, 자기 임명 의식의 한 걸음 결재 한 줄을 평생 키쿄의 명부 한 줄에 정중히 맞추어 두었다. 키쿄가 떠난 새벽, 그 부채 한 자루는 의전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본진 야사에는 "큰 사절의 한 걸음 백 번보다 어린 신부의 반 자(尺) 한 걸음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안채서신녀(內室書信女)
안채 서신(書信) 부인
안채의 서신을 정성껏 옮겨 쓰는 부인
“이 한 줄, 묵을 한 번 더 정중히 갈겠습니다. 그분께 흔들린 손목은 한 줄이 될 수 없으니까요.”
안채 서신 부인은 다이묘비·외교 부인·정실 출신 부인들의 인접 가문 서신 한 줄을 정중히 대필·결재하는 여성 서기 직무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서신 패, 손목에 묵·붓·작은 인장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서신 결재·옛 분기 서체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자수 첩보 부인이 정중한 한 자락 매화로 외교 한 통을 보내는 한편, 서신 부인은 같은 외교를 정중한 한 줄 묵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인접 가문 정실의 답장 한 줄이 흔들린 손목으로 들어오면, 그녀가 가장 먼저 그 흔들림을 한 식경 동안 한 줄로 정중히 옮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외교 서신이 아니라, 어린 시녀가 처음 잡은 붓이 흔들렸을 때 부인이 손목 한 줄을 정중히 잡아주는 그 짧은 한 식경 위에 있다.
“그분 묵 한 줄이 한 어린 손목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서신 부인들은 그 답장 한 줄이 한 시즌 평화를 만든 모습을 보고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서신 부인 우라라(麗 — 가공의 우라라 가문 출신, 사대(四代)에 걸쳐 안채 서신 한 줄을 정중히 이어준 부인)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인접 야나기 가문(柳家) 정실의 답장 한 줄이 한 식경 흔들린 손목으로 본진에 도착했던 그 새벽, 우라라는 그 흔들린 손목 한 줄을 정중히 한 식경 동안 한 줄로 옮겨 적기 위해 자기 묵을 평소보다 한 호흡 더 정중히 갈았다. 그녀는 야나기 정실의 흔들림이 가문 외척의 한 시즌 흉작에서 비롯된 것임을 한 식경 후 알아챘으며, 다이묘비에게 한 줄 직언 대신 본진 군량 한 줄을 정중히 야나기 가문에 보내달라는 한 줄 서신을 정중히 대필해 두었다. 다이묘비는 그 한 줄을 그대로 인장으로 정중히 찍었으며, 야나기 정실은 다음 새벽 본진 안채에 직접 정중히 들어와 우라라의 손목을 한 번 잡아 주었다.
그 한 줄 위에서 두 가문의 한 시즌 평화가 정중히 한 줄로 정리되었으며, 가신단 카로들은 한 줄도 묻지 않은 채 정중히 받아들였다. 우라라가 떠난 새벽, 그 묵 자루 한 자락은 서신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외교 서신 백 통보다 흔들린 손목 한 줄을 정중히 옮긴 묵 한 줄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약초원수비(藥草園守妃)
안채 약초원(藥草園) 부인
안채의 약초밭을 가꾸는 부인
“이 잎 한 장, 한 시진(時辰) 늦게 따겠습니다. 그분 잠 한 식경, 그 한 시진 위에 정중히 도착합니다.”
안채 약초원 부인은 다이묘 가문 안채 뒤뜰 약초원에서 약차·부적·산후 의방용 약초를 직접 길러 정중히 채집하는 여성 정점 의방 부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용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약초 패, 손목에 채집용 작은 가위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약초 결재·옛 분기 채집 시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약차 시녀가 정중히 한 잔을 우려내는 그 한 식경 한 시진 전에, 그녀의 한 줄 가위가 약초원 한 줄 잎을 정중히 끊어낸다. 그래서 가신단 카로들조차 큰 출정 직전에는 약초원 부인의 한 줄 채집표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가장 무거운 한 잎은 큰 의식의 약초가 아니라, 갓 산후를 보낸 안채 어린 부인의 손목에 정중히 한 잎 매어주는 그 짧은 새벽 위에 있다.
“그분 가위 한 줄이 한 어린 산모의 첫 새벽 호흡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약초원 부인들은 그 어린 부인이 자라 다이묘비가 되어 정중히 들어오신 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약초원 부인 미오리(澪里 — 가공의 미오리 가문 출신, 사대(四代)에 걸쳐 안채 약초원 한 줄을 정중히 이어준 부인)의 한 일화는 안채 야사 단골이다.
안채 어린 부인 한 분이 산후 한 식경 동안 호흡을 잃은 그 새벽, 미오리는 평소 채집 시진(時辰)보다 한 시진(時辰) 일찍 약초원으로 정중히 내려가 새벽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매화 잎 한 장을 정중히 한 줄 끊어냈다. 그녀는 그 잎을 약차 시녀의 한 잔에 정중히 한 줄 더해주었으며, 어린 부인은 그 한 잔의 향 위에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다. 약차 시녀는 한 줄도 묻지 않은 채 그 한 잎의 채집 시진(時辰) 결재를 정식 채집표 한 줄에 정중히 옮겨 적었으며, 가신단 카로들조차 그 한 줄을 정중히 본진 군량표 한 자락에 더해 두었다.
그 어린 부인은 자라 다이묘비가 되어 안채에 정중히 다시 들어왔으며, 자기 손목의 그 한 잎 매듭을 한 번도 풀지 않은 채 임명 의식을 정중히 마쳤다. 미오리가 떠난 새벽, 그 매화 잎 한 장의 채집 시진(時辰) 결재 한 줄은 약초원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큰 의식 약초 백 잎보다 새벽 한 시진(時辰) 일찍 끊어낸 매화 잎 한 장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검로사관녀(劍路史官女)
가문 옛 검로(劍路) 사관(史官)
가문의 옛 검술 계보를 기록하는 사관
“이 한 합, 백 년 전 같은 다실 같은 자리에서 한 번 결재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다시 두지 마십시오.”
가문 옛 검로 사관은 다이묘 가문 안채에서 한 시대 모든 옛 검로(劍路)·옛 분기 결투 결재·옛 사범의 한 줄 평을 정중히 기록하는 여성 사관(史官)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작은 사관 패, 손목에 두루마리와 작은 묵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결투 결재·옛 분기 검로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어전 여검사범이 어린 시녀에게 처음 한 합을 가르칠 때, 그 한 합의 옛 결재 한 줄을 가장 먼저 사관의 두루마리에서 꺼내본다. 그래서 가신단 카로들이 본진 옛 결투 결재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사관의 작업방으로 정중히 내려온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결투의 기록이 아니라, 한 합도 두지 못한 채 일찍 떠난 어린 사범의 첫 목검 자국을 정중히 두루마리 한 줄에 옮기는 그 자세 위에 있다.
“그분 두루마리 한 줄이, 한 합도 두지 못한 어린 사범의 한 시대를 정중히 살려두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사관들은 그 자국을 한 번 옮겨 적어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옛 검로 사관 시즈에(静枝 — 가공의 시즈에 가문 출신, 사대(四代) 어전 여검사범의 옛 결투 결재를 정중히 이어 기록한 사관)의 한 일화는 본진 야사 단골이다.
한 합도 두지 못한 채 일찍 떠난 어린 사범 카에루(楓 — 가공의 카에루 라인 평민 출신, 어전 여검사범 견습 자리에 처음 발탁된 어린 사범)의 첫 목검 자국 한 줄이 한 시대 동안 두루마리에 정중히 옮겨지지 못한 채 다실 한 자락에 남아 있었던 그 새벽, 시즈에는 그 자국을 직접 정중히 한 식경 동안 두루마리 한 줄에 옮겨 적었다. 그녀는 그 한 줄에 카에루의 본명과 어머니의 이름을 정중히 함께 새겨 넣었으며, 어전 여검사범에게 그 한 줄을 정식 옛 검로 결재 표 한 자락으로 정중히 올렸다. 어전 여검사범은 그 한 줄을 받아 카에루의 첫 목검을 정중히 비단 천에 한 번 더 감싸 두었으며, 다이묘비조차 그 자국을 한 식경 정중히 들여다본 후 한 줄도 묻지 않았다.
그 한 줄 결재 후, 본진의 옛 검로 결재 표에는 한 합도 두지 못한 어린 사범의 자리 한 줄이 정식으로 새겨지는 절차가 추가되었다. 시즈에가 떠난 새벽, 그 두루마리 한 자락은 사관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본진 야사에는 "큰 결투 백 합 결재보다 한 합도 두지 못한 어린 사범의 한 줄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안채금시녀(內室琴侍女)
안채 거문고(琴) 시녀
거문고 가락으로 안채의 적막을 달래는 시녀
“오늘은 두 줄만 정중히 켜겠습니다. 그분께서 한 식경 더 잠드실 수 있게요.”
안채 거문고 시녀는 다이묘 안채에서 다회·만찬·산후 회복기 정실 곁에 정중히 거문고(琴) 한 줄을 켜는 여성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가슴팍에 작은 가문 문양 패, 손목에 거문고 줄 보호용 작은 천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다회의 평소 가락·옛 분기 곡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향 사범이 정중히 한 가닥 침향을 피우는 그 한 식경 옆에, 거문고 시녀의 한 줄 가락이 정중히 한 발 늦게 들어선다. 다이묘비가 잠 한 식경을 잃은 새벽이면 약차 시녀의 잔보다 그녀의 한 줄 거문고가 먼저 도착하는 일도 잦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가락은 큰 다회의 곡이 아니라, 갓 떠난 노부인의 빈자리 곁에 정중히 한 줄만 짧게 켜고 멈추는 그 짧은 한 식경 위에 있다.
“그분 거문고 한 줄이 갓 떠난 노부인의 빈자리를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거문고 시녀들은 그 빈자리를 한 번 켜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거문고 시녀 마이코(舞子 — 가공의 마이코 가문 출신, 사대(四代) 다이묘비 곁에 정중히 한 줄 가락을 이어준 시녀)의 한 일화는 안채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안채에 사대(四代)에 걸쳐 머무르신 노부인 한 분이 한겨울 새벽 정중히 떠나신 그 한 식경, 마이코는 평소 다회 가락 한 곡 대신 노부인이 어린 시절 어머니께 처음 배웠다는 매화 한 줄 가락만 정중히 한 번 짧게 켰다. 그녀는 그 한 줄 위에서 한 호흡 동안 손목을 멈추었으며, 한 줄도 더 켜지 않은 채 정중히 거문고를 닫았다. 다이묘비는 그 한 줄 위에서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으며, 안채의 모든 시녀들이 그날 한 식경 동안 한 줄도 입을 떼지 않은 채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노부인의 손녀가 자라 다이묘비가 되었을 때, 자기 임명 다회 첫 곡으로 마이코의 그 한 줄 가락을 정중히 다시 청해 듣는 것이 새 관례로 새겨졌다. 마이코가 떠난 새벽, 그 거문고 한 자루는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 천으로 정중히 덮인 채 보존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큰 다회 백 곡보다 빈자리 한 줄 짧은 가락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정혼안내녀(定婚案內女)
시집 행렬 인접가 안내 시녀
시집 가는 행렬을 인접가까지 인도하는 시녀
“이 한 골목, 옛 신부 한 분이 한 시진 흔들리신 자리입니다. 한 발 더 가까이 서겠습니다.”
시집 행렬 인접가 안내 시녀는 인접 가문에서 다이묘 가문 본진으로 시집 오는 어린 신부의 행렬을 정중히 안내하는 여성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여행 키모노, 가슴팍에 인접 가문 문양 작은 안내 패, 손목에 작은 길 명부와 약초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시집 길의 평소 노면·옛 분기 안내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인접가 정혼 호위 시녀가 본가 쪽에서 정중히 호위한다면, 그녀는 인접 가문 쪽에서 한 골목 한 골목 정중히 길을 미리 짚는다. 그래서 인접 가문 정실들도 행렬 직전 안내 시녀의 한 줄 결재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안내는 큰 시집 행렬이 아니라, 어린 신부가 한 식경 흔들린 그 짧은 새벽 골목 옆에 정중히 한 발 더 가까이 서는 그 자세 위에 있다.
“그분 한 골목 한 골목 결재가 어린 신부의 한 시즌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안내 시녀들은 그 정혼이 사대(四代)를 이어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안내 시녀 나기사(渚 — 가공의 나기사 라인 평민 출신, 인접 카에데 가문(楓家) 안내 시녀로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길을 짚어준 시녀)의 한 일화는 인접 카에데 가문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카에데 가문에서 본진으로 시집 오는 어린 신부의 행렬이 한겨울 새벽 한 골목에서 한 식경 흔들렸을 때, 나기사는 평소 안내 명부의 골목 한 줄을 정중히 한 자락 바꿔 옛 마을 신사 입구로 행렬을 한 식경 우회시켰다. 그 골목 옆에서 어린 신부는 신사 마을 무녀의 한 줄 부적을 정중히 손목에 한 자락 매었으며, 그 부적 한 줄 위에서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다. 행렬은 한 시진(時辰) 늦게 본진 입구에 도착했으나, 본진 의전 부인은 그 한 시진(時辰)을 정중히 한 줄도 묻지 않은 채 받아들였다.
그 정혼 한 줄은 사대(四代)를 이어 두 가문 사이에 정중히 한 줄 평화로 새겨졌으며, 인접 카에데 가문 정실은 나기사의 작은 안내 명부 한 자락을 본가 시녀장 자리에 정중히 한 줄 추천으로 적어 두었다. 나기사가 떠난 새벽, 그 안내 명부 한 자락은 카에데 가문 시녀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인접 가문 야사에는 "본가 호위 한 자루보다 인접가 안내 한 골목 우회가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안채빨래녀(內室洗濯女)
안채 빨래터 시녀
안채 빨래터의 옷가지를 도맡는 시녀
“이 키모노 한 자락, 다음 다회까지 자국 하나 남겨두지 않겠습니다. 그분 한 식경, 제 손목 위에 정중히 올려두십시오.”
안채 빨래터 시녀는 다이묘 가문 안채 뒤뜰 빨래터에서 정실·외교 부인·시녀들의 키모노 한 자락 한 자락을 정중히 빨고 정리하는 여성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작업용 키모노, 가슴팍에 작은 빨래 패, 손목에 빨래 망치(砧)와 작은 천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빨래터의 평소 물 온도·옛 분기 색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키모노 색사가 정중히 한 자락 색을 결정한 그 한 식경 뒤에, 빨래터 시녀의 한 줄 망치가 정중히 그 자락의 색을 한 시대 더 살린다. 인접 가문 정실의 옷자락에 한 줄 자국이 남으면, 그녀가 한 식경 동안 그 자국을 정중히 한 줄로 옮겨낸다. 가장 무거운 한 줄 빨래는 큰 의식의 우치카케가 아니라, 갓 떠난 어린 시녀의 첫 키모노 한 자락을 정중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헹구는 그 짧은 새벽 위에 있다.
“그분 망치(砧) 한 줄이 갓 떠난 어린 시녀의 첫 키모노 한 자락을 정중히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빨래터 시녀들은 그 자락을 한 번 헹궈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빨래터 시녀 호즈미(穂積 — 가공의 호즈미 라인 평민 출신, 안채 빨래터를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이어 지킨 시녀)의 한 일화는 안채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한겨울 새벽 갓 떠난 어린 시녀의 첫 키모노 한 자락이 빨래터에 정중히 마지막으로 들어왔을 때, 호즈미는 평소 빨래의 물 온도를 한 호흡 더 정중히 따뜻하게 끓였다. 그녀는 그 한 자락을 한 식경 동안 자기 손목 위에 정중히 한 번 올려 두고, 평소 빨래 망치(砧) 한 줄을 정중히 두 번 더 짧게 두드린 뒤 헹궈냈다. 다이묘비는 그 한 자락이 마지막으로 다실 한 자락에 정중히 한 번 더 걸리는 자리를 한 식경 정중히 들여다보았으며, 시녀장은 그 자락을 한 시대 동안 비단 천으로 정중히 덮어 보존하라 명했다.
어린 시녀의 어머니가 한 시즌 후 본진 안채에 정중히 한 번 들어왔을 때, 그 한 자락 위에 한 호흡을 멈춘 채 정중히 한 줄도 울지 않았다. 호즈미가 떠난 새벽, 그 빨래 망치(砧) 한 자루는 빨래터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안채 야사에는 "큰 의식 우치카케 백 자락보다 갓 떠난 어린 시녀 첫 키모노 한 자락 마지막 헹굼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신사부적녀(神社符籍女)
신사(神社) 부적 견습 무녀
신사에서 부적 쓰는 법을 익히는 견습 무녀
“오늘은 부적 한 장만 정중히 접겠습니다. 첫 한 줄은 내일 새벽이라도 늦지 않으니까요.”
신사 부적 견습 무녀는 가공의 전국시대 마을 신사에서 마을 무녀의 곁에 정중히 한 줄 부적 접는 법을 배우는 어린 평민 출신 견습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견습복 위 옅은 붉은 하카마, 머리에 작은 견습 비녀, 손목에 작은 부적 종이 묶음과 견습 방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견습의 평소 부적 접기·옛 분기 점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마을 무녀가 정중히 한 장 부적을 어머니 손목에 매어주는 그 한 식경 옆에, 견습의 한 줄 종이가 정중히 한 발 늦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마을 어머니들도 견습이 처음 접은 한 장의 자국을 정중히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접기는 큰 출정의 부적이 아니라, 어린 견습이 처음 접은 종이 한 자락이 흔들렸을 때 마을 무녀가 손목 한 줄을 정중히 잡아주는 그 짧은 새벽 위에 있다.
“할머님 손목이 한 식경 정중히 우리 손목 위에 머무르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견습 무녀들은 그 한 식경이 끝난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견습 무녀 시오리(栞 — 가공의 시오리 라인 평민 출신, 후지노 마을 신사에서 마을 무녀 코마치(小町)의 한 줄 견습으로 들어온 어린 무녀)의 한 일화는 마을 야사 단골이다.
임명 첫 새벽 시오리가 처음 접은 부적 종이 한 자락이 한 식경 흔들려 정중히 한 줄로 접히지 못한 그 새벽, 마을 무녀 코마치는 한 줄도 꾸짖지 않은 채 자기 손목을 정중히 시오리의 손목 위에 한 식경 동안 겹쳐 두었다. 시오리는 그 한 식경 동안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으며, 그 후 접은 종이가 한 번도 다시 흔들리지 않았다. 마을 어머니들은 그 첫 한 자락의 흐릿한 자국을 한 시대 동안 신사 입구의 작은 비단 천 위에 정중히 보존해 두었으며, 다음 시즌부터 새벽 점괘를 정중히 받으러 들르는 어머니들이 그 자국을 한 번씩 정중히 들여다보는 관례가 새겨졌다.
시오리는 자라 마을 무녀로 정중히 오르게 되었으며, 자기 손목을 후대 견습들의 손목 위에 한 식경씩 정중히 겹쳐주는 절차를 정식 임명 의식 한 줄로 새겨 두었다. 코마치가 떠난 새벽, 그 첫 한 자락의 종이는 신사 작업방 한 자락에 비단함으로 정중히 보관되었다. 마을 야사에는 "큰 출정 부적 백 장보다 손목 위 손목 한 식경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촌락등롱녀(村落燈籠女)
마을 등롱(燈籠) 시녀
마을 거리 등롱을 켜고 끄는 시녀
“이 등롱 한 줄, 한 식경 더 정중히 켜두겠습니다. 한 어머님께서 아직 길 한 골목을 더 걸으십니다.”
마을 등롱 시녀는 가공의 전국시대 작은 마을 골목길과 신사 입구의 등롱(燈籠) 한 줄을 정중히 켜고 끄는 어린 평민 출신 여성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작업용 키모노, 가슴팍에 작은 마을 패, 손목에 등롱 심지용 작은 가위와 기름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마을의 평소 등롱 한 줄·옛 분기 심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떠돌이 여검객이 정중히 한 골목을 지나갈 때, 등롱 시녀의 한 줄 불빛이 정중히 그 한 골목을 한 식경 더 살린다. 마을 무녀가 새벽 한 줄 점괘를 내리는 그 자리에도, 견습 등롱 시녀의 한 줄 불빛이 정중히 한 발 먼저 도착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 등롱은 큰 신사의 정월 등이 아니라, 길 잃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한 골목 더 걸어 돌아오는 그 짧은 새벽 위에 정중히 한 식경 더 켜두는 그 한 줄 위에 있다.
“그분 등롱 한 줄이 한 어머님이 어린아이를 다시 정중히 손에 안으신 그 새벽을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등롱 시녀들은 그 골목을 한 번 걸어본 새벽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습니다.”
등롱 시녀 호타루코(蛍子 — 가공의 호타루코 라인 평민 출신, 후지노 마을 골목 등롱을 사대(四代)에 걸쳐 정중히 켜고 끈 시녀)의 한 일화는 마을 시녀들 사이에서 정중히 전해진다.
한겨울 새벽 길을 잃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한 식경 동안 마을 한 골목을 정중히 헤맸을 때, 호타루코는 평소 한 식경 일찍 꺼두었어야 할 골목 등롱 한 줄을 정중히 한 식경 더 켜둔 채 등롱 심지를 한 번 더 가위로 정중히 손질했다. 어머니는 그 한 줄 불빛을 따라 한 골목을 더 정중히 걸어 어린아이의 손을 다시 정중히 잡았으며, 한 호흡을 정중히 다시 골랐다. 마을 무녀 코마치(小町)는 그 한 줄 등롱의 기름값 한 자락을 신사 한 자락 비용 명부에서 정중히 한 줄 옮겨 보태주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 한 줄을 한 시대 동안 한 줄도 잊지 않았다.
다음 시즌부터 후지노 마을의 등롱 한 줄은 정월 정중히 한 식경 더 켜두는 한 줄로 정식 새겨졌으며, 떠돌이 여검객 츠루기 호타루(剣 蛍)조차 그 한 줄 등롱 옆을 지날 때 정중히 한 무릎을 한 번 꿇고 가는 관례가 생겼다. 호타루코가 떠난 새벽, 그 등롱 한 줄은 마을 골목 입구에 비단 천으로 정중히 덮인 채 한 시대 동안 보존되었다. 마을 야사에는 "큰 신사 정월 등 백 줄보다 길 잃은 어린아이 어머니 한 골목 한 식경이 무겁다"는 격언이 한 시대 새겨졌다.
안채상궁비(內室尙宮妃)
안채 총괄 상궁(尙宮)
안채의 모든 시녀를 통솔하는 총괄 상궁
“안채(奧)를 움직이는 것은 다이묘의 결재가 아니라, 상궁의 아침 일정표 한 장이다.”
안채 총괄 상궁은 다이묘 가문 안채 전체를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로, 다이묘비의 일상·외교 부인 방문·안채 시녀단 인사·행사 일정을 한 손에 쥔 자다. 외형은 짙은 청록빛 공식 키모노 위 가문 문양 금장(金裝) 빗(櫛), 가슴팍에 안채 전용 결재 인장, 손목에 늘 일정표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안채 시녀 전원의 출신 가문·특기·외교 연결 고리를 머릿속에 담고 있으며, 그 중 어느 한 명의 건강 상태까지 매일 아침 확인한다.
다이묘비가 "오늘은 누구를 만나야 하지요"라고 물을 때 가장 먼저 답하는 자가 상궁이고, 그 답이 하루 안채의 방향을 정한다. 가문 카로가 가신단 명단을 관리한다면, 상궁은 그 가신단의 어머니·아내·딸의 이름을 모두 관리한다.
“상궁의 일정표 한 장이 빠지는 날, 안채 전체가 하루를 잃소. 그 한 장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그분이 떠난 다음 날 처음 알게 됩니다.”
사가미번(相模藩) 안채 총괄 상궁 후지(藤 — 가공의 후지 라인 출신, 삼대 다이묘비를 연속으로 보좌한 가문 야사 가장 긴 기록의 상궁)의 한 일화는 간토 안채 야사 단골이다.
삼대 다이묘비(앞서 320001 다이묘비 계보의 후대 정실) 연속 재임 중 가장 긴 외교 위기였던 사가미-우라가 경계 혼인 분쟁 당시, 두 가문 정실이 동시에 안채 다회를 거부한 일이 있었다. 후지는 그날 상궁 인장을 내려두지 않고, 시녀장(앞서 320004 시녀장 카츠라 계보의 후대 시녀장) 두 명에게 각각 두 가문 정실의 어린 시절 자수 천 한 자락씩을 찾아 오도록 했다. 두 자락이 같은 아사쿠사(淺草) 직물 장인의 씨실 패턴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후지는 두 자락을 나란히 놓은 쟁반 하나를 두 정실에게 동시에 보냈다. 그날 저녁 두 가문 정실은 처음으로 같은 다실에 들어왔으며, 혼인 분쟁은 그 다회 한 번으로 경계선 한 줄을 함께 그으며 정리되었다.
후지가 떠난 새벽, 안채 다실 한 자락에서 사백이십 통의 일정표 두루마리가 발견되었으며, 그 첫 장에는 "안채의 진짜 결재는 인장이 아니라 자수 한 자락의 기억이다"라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가문여군사(家門女軍師)
가문 여군사(女軍師)
가문의 책략을 짜는 여군사
“전장은 검이 먼저 가지 않소. 자수(刺繡) 한 땀이 먼저 가오.”
가문 여군사는 다이묘 가문 안채에서 외교·혼인·정보 전략을 총괄하는 여성 전략가로, 남성 군사(310034)가 진지 배치를 다루는 것처럼 그녀는 안채 외교와 가문 관계 전체의 배치를 다룬다. 외형은 단정한 진한 자줏빛 키모노, 가슴팍에 가문 문양, 손에 항상 접이식 산죠(算盤, 주판)와 혼인 관계 도표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접 가문 전체의 혼인 라인·봉록 상태·다이묘비 성격을 한 표로 외우고 있으며, 그 표를 바탕으로 다이묘에게 외교 협상 순서를 제안한다.
그녀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안채 다회의 좌석 배치를 조용히 바꾼다. 그 배치 변화만으로 협상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다이묘비만이 알고 있다.
“여군사의 진짜 전장은 출정 지도 위가 아니오. 다회 좌석 두루마리 위지요. 그 두루마리 한 자락이 출정 세 번의 결과를 미리 정해 두었다는 사실을, 우리 가문 어른들은 대전(大戰) 이후에야 알았습니다.”
에치고번(越後藩) 가문 여군사 아야메(菖蒲 — 가공의 아야메 가문 출신, 다이묘비 보좌 전략가로 이름을 남긴 자이자 다이묘보다 인접 가문 상황을 더 정확히 꿰고 있었다 야사에 기록된 자)의 일화는 에치고 안채 야사 단골이다.
에치고번이 삼 년 연속 출정 실패로 가신단이 흔들리던 무렵, 아야메는 다이묘에게 출정 계획 대신 인접 가문 네 곳의 다이묘비 자수 색 변화 기록 한 장을 제출했다. 다이묘는 처음에 그 기록이 전략과 무슨 관계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아야메가 "이 자줏빛에서 녹색으로 바뀐 가문이 세 달 안에 봉록을 조정했고, 이 주황빛에서 검정으로 바뀐 가문이 두 달 안에 출정을 멈췄습니다"라고 한 줄 설명한 뒤 다이묘는 그 기록을 군사(310034)의 진지도 옆에 정중히 함께 올렸다. 다음 출정은 처음으로 단 한 명도 잃지 않았으며, 다이묘는 그날부터 아야메의 자수 색 기록을 출정 결재 필수 첨부 자료로 지정했다.
외교수행비(外交隨行妃)
다이묘비 외교 수행 부인
다이묘비를 따라 외교를 수행하는 부인
“다이묘비께서 그 다관(茶館) 문을 여시기 전, 그 방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다이묘비 외교 수행 부인은 다이묘비가 인접 가문을 방문하거나 외교 다회를 주최할 때, 현장 의전·좌석 배치·다회 도구 점검을 직접 담당하는 안채 외교 전문 실무자다. 외형은 단정한 가문 문양 여행 키모노, 어깨에 의전 명부 가방, 손목에 다회 도구 점검 목록이 표준이다. 본인은 인접 가문의 의전 격식·다완(茶碗) 취향·좌석 방향 관습을 미리 외워 두며, 다이묘비가 어느 자리에 앉는가가 그날 협상의 첫 신호가 된다는 것을 안다.
가장 어려운 수행은 적대 가문 다이묘비를 상대하는 다회 직전이다. 그 방 안 어느 꽃 하나도, 어느 향 한 가닥도 허투루 놓이지 않았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채게 하는 것이 수행 부인의 진짜 메시지다.
“수행 부인의 점검 명부 마지막 줄은 항상 비어 있소. 그 빈 줄에서 오늘 다회의 결과가 결정된다는 것을, 다이묘비께서는 한 번도 묻지 않으셨지요.”
이즈미번(和泉藩) 다이묘비 외교 수행 부인 키쿠(菊 — 가공의 키쿠 라인 출신, 이즈미 다이묘비를 십오 년간 수행한 자이자 단 한 번도 다회 점검 명부의 마지막 줄을 채운 적 없는 자)의 일화는 킨키(近畿) 안채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이즈미번과 인접 세쓰(摂津) 가문의 경계 분쟁이 가장 팽팽하던 어느 봄, 두 가문 다이묘비가 중립 다관에서 만나는 자리를 수행 부인 키쿠가 혼자 먼저 들어가 준비했다. 키쿠는 꽃·향·다완을 점검하는 대신 방 안 창문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한 번 확인하고는, 다완 한 자루를 창가에서 한 뼘 안쪽으로 옮겼다. 세쓰 수행 부인이 들어와 그 이동을 보고 "왜 옮기셨습니까"라 물었을 때, 키쿠는 "오후 햇빛이 저 방향으로 들어오면 차색이 달라 보입니다"라고 한 줄 건넸다. 세쓰 수행 부인은 그 한 줄에서 키쿠가 이미 그 방 안 하루 전체의 빛 방향을 파악하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다이묘비의 다회는 처음으로 한 식경을 넘겨 진행되었으며, 경계 분쟁은 그 다음 달 안에 정리되었다.
쿠노교관희(女忍敎官姬)
쿠노이치 교관(敎官)
쿠노이치 후보를 단련시키는 교관
“결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새 자매를 길러내는 것이오. 그 임무는 어떤 잠입보다 오래 걸리지요.”
쿠노이치 교관은 닌자 결사 내에서 쿠노이치(くノ一) 견습들에게 위장·첩보·잠입·생존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전문 쿠노이치다. 외형은 단정한 평민 키모노, 가슴팍에 결사 인장 없는 작은 천 패, 머리에 아무 장식 없는 간단한 비녀, 손목에 항상 작은 수첩 하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자기 이름을 결사 공식 문서에 남기지 않으며, 견습들에게 이름을 가르치지 않는 대신 임무 완수 후 살아 돌아오는 법을 가르친다.
가장 훌륭한 교관은 자기가 가르친 견습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다. 그 눈치가 안 보인다는 것이 살아 돌아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교관의 진짜 성과는 시험 점수가 아니라 귀환 숫자다.
“교관의 수첩에서 이름이 하나씩 지워지는 것을 나쁜 일로 보면 안 되오. 지워진 이름이 많을수록 그분이 더 많이 살려 보냈다는 뜻이니까요.”
이가(伊賀) 쿠노이치 교관 우타(唄 — 가공의 우타 라인 출신, 결사 쿠노이치 두령(앞서 320007) 아래서 견습 교육을 담당한 자이자 스물다섯 명의 견습을 모두 귀환시킨 자로 야사에 기록된 자)의 일화는 이가 결사 내 자매들 사이에만 정중히 전해진다.
우타가 담당한 마지막 견습 기수(起秀 — 가공의 기수 결사 소속 견습, 첫 잠입 임무에서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한 자)가 임무 도중 안채 시녀(앞서 320004 시녀장 계보와 연결된 그 시녀 라인) 측의 의심을 받아 한 박자 늦게 귀환했을 때, 우타는 수첩을 열지 않고 기수의 손목 안쪽 긁힌 자국 방향을 한 호흡 살폈다. 그 방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 있다면 추격을 받은 것이고, 왼쪽에서 오른쪽이라면 스스로 한 것이다. 우타는 그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임을 확인하고 수첩에 기수 이름 옆에 한 줄 작은 표시만 남겼다. 결사 두령은 그 표시만 보고 기수의 다음 임무 배정을 정중히 허가했다. 그 임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흘 뒤, 기수는 우타에게 "그날 손목 자국을 보셨습니까"라고 물었고, 우타는 "무슨 자국이오"라고만 답했다. 이가 결사 자매들 사이에서 교관의 수첩 마지막 페이지는 항상 빈 채로 전해진다.
향종거장녀(香宗巨匠女)
가문 향(香) 거장(宗匠)
향도의 대가로 추앙받는 거장
“향 한 가닥은 기억 한 줄이오. 어느 다실에서 이 향이 피어오르면, 그 가문의 어린 시절이 함께 돌아옵니다.”
가문 향 거장은 다이묘 가문 전속 향(香) 사범으로, 다회·혼인 의례·봉납 의식·안채 외교에서 사용되는 모든 향의 배합과 시연을 총괄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의례복 위 가문 문양 향합(香合, 향을 보관하는 작은 상자), 손에 향로(香爐)와 향재(香材)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접 가문 다이묘비들이 각각 어느 향을 좋아하는지를 한 표로 외우고 있으며, 외교 다회에서 그 취향을 맞추는 향 한 가닥이 협상 분위기를 바꾼다.
안채 향 사범(앞서 320021)이 일상 향을 담당한다면, 거장은 한 가문의 한 시대를 아우르는 기억 향을 만드는 자다. 그 기억 향 한 가닥이 오 년 된 적대 관계를 한 식경 만에 녹이는 일이, 거장의 야사에 세 번이나 나온다.
“거장의 향합 한 칸이 비어 있다는 것은, 아직 만들지 못한 기억 향이 있다는 뜻이오. 우리 가문 다실 한 자락에 그 빈 칸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히고번(肥後藩) 향 거장 나데시코(撫子 — 가공의 나데시코 라인 향 가문 출신, 히고 가문 전속 향 사범으로 삼십 년간 네 가문 다이묘비의 기억 향을 만든 자)의 일화는 '히고 향합의 빈 칸'으로 큐슈 향 가문들 사이에 전해진다.
히고번 다이묘비가 가장 오래 이어진 적대 관계이던 사쓰마 가문과 첫 다회를 가지게 된 날, 나데시코는 사쓰마 다이묘비가 어린 시절 어머니 곁에서 맡았던 향을 사전에 수소문해 그 배합 한 가닥을 다실 한 자락에 정중히 피웠다. 사쓰마 다이묘비가 다실에 들어오는 순간 한 발자국을 멈추고 "이 향은…"이라 했고, 히고 다이묘비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향합을 정중히 열어 보였다. 그날 두 다이묘비는 처음으로 서로의 어머니 이름을 주고받았으며, 두 가문의 경계 분쟁은 그 다음 시즌 안에 첫 강화 문서가 나왔다. 나데시코는 그 향합 한 칸을 빈 채로 남겨두었으며, 그 빈 칸은 아직 만나지 못한 다음 가문의 기억 향을 위한 자리로 지금도 남아 있다.
안채여의비(內室女醫妃)
안채 의관(醫官) 여의사
안채의 병을 다스리는 여의관
“이 침통 한 자루가 안채 문을 가장 많이 드나들었소. 그 드나든 수만큼 안채 한 시대가 살아 있는 거지요.”
안채 의관 여의사는 다이묘 가문 안채 전속 의관으로, 정실·시녀·어린 자녀·노부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여성 의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위 의관 문양 작은 패, 어깨에 약초 가방, 허리에 침통과 처방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안채 전원의 계절별 건강 패턴을 기록하고 있으며, 다이묘비의 안색만 보고도 오늘 외교 다회가 어느 정도 힘들 것인지를 먼저 읽어낸다.
군의(310041)가 전장의 상처를 봉합한다면, 안채 여의사는 전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봉합한다. 그 상처는 거의 한 줄도 결재 두루마리에 적히지 않으며, 그래서 안채 여의사의 진짜 명부는 처방 명부가 아니라 침묵 명부다.
“의관님 처방 명부보다 침묵 명부가 세 배 두꺼웠다는 사실을, 우리 후대 시녀들은 그 명부를 이어받은 첫 새벽이 되어서야 알게 됩니다.”
가가번(加賀藩) 안채 의관 여의사 사오리(早織 — 가공의 사오리 가문 출신, 가가 안채 전속 의관으로 삼십 년간 정실 다섯 명의 건강을 담당한 자이자 처방 명부와 별도로 '침묵 명부' 한 권을 따로 써온 자로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가가 안채 야사 뒤편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가을, 다이묘비가 외교 다회를 앞두고 사흘간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처방 명부 어디에도 그 이유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오리는 처방 대신 안채 향 거장(앞서 320021 향 사범 계보)에게 한 가지 향을 조용히 의뢰하고 침묵 명부에 "이틀 뒤 다회 예상 안색 — 향 처방 필요"라는 한 줄만 적었다. 이틀 뒤 다이묘비는 다회에서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으며, 인접 가문 정실은 그날 처음으로 다이묘비에게 먼저 차 한 잔을 권했다. 외교 협상 카로는 그날 다회 결과를 보고 와서 "무슨 처방을 하셨습니까"라고 사오리에게 물었고, 사오리는 "향을 한 가닥 바꿨을 뿐이오"라고만 답했다.
문서사관녀(文書史官女)
가문 문서 보관 사관(史官)
가문의 모든 문서를 보관하는 사관
“이 두루마리 한 통이 가문의 어제요, 가문의 내일이오. 그 사이 어디에도 내 이름 한 자는 없습니다.”
가문 문서 보관 사관은 다이묘 가문의 역대 결재 두루마리·외교 문서·혼인 기록·가신단 명단을 분류·보관·필사하는 기록 전문가로, 가문의 공식 기억을 지키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흑색 키모노, 한 손에 붓과 두루마리 가방, 가슴팍에 기록관 인장, 허리에 문서 봉인 도구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문 백 년 치 결재 두루마리를 분기별로 목록화하여 보관하며, 가신단이 "삼십 년 전 그 경계선 협약 문서가 어디 있소"라고 물으면 다음 날 아침 안에 반드시 찾아낸다.
가장 중요한 문서는 오히려 가장 얇고 가장 짧은 두루마리다. 그 짧은 한 줄이 나중에 가문 전체의 결재 근거가 되는 경우가 세 번 중 한 번은 된다. 사관은 그 한 줄을 버리지 않는 자다.
“사관이 보관한 두루마리 한 통이 이십 년 뒤 가문을 살린 적이 세 번이라는 것을, 그 이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가 헤아렸습니다.”
에도(江戶) 막부 가문 사관 미도리(翠 — 가공의 미도리 가문 출신, 막부 문서 창고 한 자리에서 사십 년간 두루마리 사천 통을 혼자 분류해온 자이자 단 한 통도 잃어본 적 없는 자로 막부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두루마리 사천 통의 기억'으로 막부 사관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막부 원로 회의에서 십오 년 전 경계선 합의 두루마리 한 통의 원본이 필요해졌는데, 당시 담당 카로가 이미 가문을 떠난 뒤라 어디에 보관되었는지 아는 자가 없었다. 미도리는 사흘 안에 찾겠다는 대신 다음 날 오전 정중히 그 두루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원로들이 어떻게 찾았는지 물었을 때, 미도리는 "십오 년 전 그 합의 당일 카로가 사용한 먹 냄새가 이 창고 한쪽 묶음에만 배어 있었습니다"라고 한 줄 건넸다. 원로들은 그날 이후 문서 창고 접근 시 반드시 미도리의 동행을 의무화했으며, 미도리는 그 두루마리 한 통 옆에 "이십 년 뒤에도 꺼낼 수 있음"이라는 한 줄 메모를 정중히 남겼다.
혼례협상비(婚禮協商妃)
인접가 혼례 협상 부인
인접가와 혼례를 협상하는 부인
“혼인 협상의 진짜 안건은 봉록도, 영지도 아니오. 두 가문 어머니가 같은 꽃을 보며 웃을 수 있는가이지요.”
인접가 혼례 협상 부인은 다이묘 가문을 대신하여 인접 가문과의 혼인 교섭을 직접 담당하는 여성 외교 실무자다. 외형은 공식 여행 키모노, 어깨에 혼인 조건 명부 가방, 손목에 두 가문 가신단 혼인 관계 목록이 표준이다. 본인은 두 가문의 봉록 차이·혼인 역사·이전 파혼 경위를 모두 외우고 있으며, 협상 탁자에 앉기 전 상대 가문 정실이 좋아하는 꽃 이름 하나를 반드시 알아 오는 것을 준비의 첫 번째로 삼는다.
가장 오래 걸린 혼인 협상은 봉록 차이 때문이 아니라 두 어머니가 같은 날 다른 병으로 아픈 경우였다는 야사가 있다. 그 날 협상을 멈추고 두 어머니의 약차(藥茶, 한방 약을 우린 차)를 나란히 챙긴 부인이 결국 그 혼인을 성공시켰다.
“협상 부인이 가져온 가장 무거운 안건은 봉록 명부가 아니오. 상대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 이름 한 줄이었지요.”
사쓰마번(薩摩藩) 인접가 혼례 협상 부인 나노하(菜花 — 가공의 나노하 가문 출신, 사쓰마번 혼인 협상 전담 부인으로 열두 건의 혼례를 성공시킨 자이자 단 한 번도 파혼된 혼례가 없는 자로 가신단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어머니의 꽃 이름'으로 사이카이도 안채 야사에 전해진다.
사쓰마번이 인접 오스미(大隅) 가문과의 혼인을 추진하던 중, 오스미 측이 봉록 조건을 두 번이나 변경하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나노하는 세 번째 협상 전날 오스미 가문 어머니가 마당 원예(藥草園, 약초 정원)에서 매일 아침 노란 꽃을 손수 돌본다는 사실을 수소문해 왔다. 협상 자리에 들어서면서 나노하는 봉록 명부 대신 노란 야마부키꽃(山吹花, 장미과 여름 야생화) 한 가지를 정중히 꺼내 어머니 쪽에 놓았다. 오스미 어머니가 그 꽃을 한 호흡 들여다보는 사이, 협상 탁자 분위기가 한 박자 바뀌었다. 봉록 조건은 그날 한 시간 안에 정리되었으며, 시집 행렬 인접가 안내 시녀(앞서 320027)가 그 혼례 행렬을 처음으로 꽃 길 위로 안내했다.
자수수석녀(刺繡首席女)
안채 자수 수석 시녀
안채 자수단을 이끄는 수석 시녀
“이 자수 한 땀, 어느 가문과 어느 가문이 이어지는지를 담고 있소. 함부로 풀지 마시오.”
안채 자수 수석 시녀는 다이묘 가문 안채에서 정실·시녀들의 자수를 지도하고, 외교용 자수 선물·혼인 혼수(婚需) 자수 도안을 총괄하는 자수 전문가다. 외형은 단정한 깊은 녹색 키모노, 손목에 자수용 비단 실 주머니, 허리에 자수 도안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신단 시녀들의 자수 수준과 출신 가문의 자수 전통을 동시에 기억하고 있으며, 어느 자수 한 땀에서 어느 가문 실 공장(工房)의 씨실 패턴이 쓰였는지를 읽어낸다.
자수 한 땀이 외교 메시지를 담는다는 것은 안채 안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수 첩보 부인(앞서 320013)이 자수로 정보를 숨긴다면, 자수 수석 시녀는 그 자수 안에 담긴 정보를 읽어내는 역방향 전문가다.
“수석 시녀의 실 주머니 안에 두 가문이 연결된 비단 한 자락이 있다는 것을, 시녀장도 오래지 않아 알게 됩니다. 그 한 자락을 먼저 외우는 자가 안채의 진짜 외교관이지요.”
에치젠번(越前藩) 안채 자수 수석 시녀 치카(千花 — 가공의 치카 가문 자수 장인 출신, 에치젠 안채 자수 수석으로 이십 년간 삼십 건의 외교 자수 선물을 만든 자이자 단 한 번도 자수 메시지가 잘못 전달된 적 없는 자로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비단 씨실 한 자락'으로 에치젠 안채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봄, 에치젠번이 인접 에치고 가문에 혼례 자수 선물을 보낸 뒤 인접 가문 정실로부터 예상과 다른 회신이 왔다. 치카는 그 회신 쪽지를 한 호흡 보고 자기 실 주머니에서 에치고 가문 안채 시녀들이 관례적으로 쓰는 씨실 패턴 한 자락을 꺼냈다. 회신 쪽지 뒷면의 자수 한 땀 방향이 에치고 안채 비단 씨실 패턴과 달랐고, 그것은 가문 카로(앞서 310003 카로 계보와 연결된 라인)가 정실 몰래 회신을 바꿔 치환했다는 증거였다. 치카는 그 사실을 안채 총괄 상궁(320031)에게 자수 실 주머니 안에 쪽지 한 자락으로 정중히 전달했으며, 상궁은 그 자락 하나로 에치고 카로의 내통 한 줄을 막부에 조용히 보고했다.
악공거문녀(樂工琴女)
가문 악공(樂工) 거문고 사범
가문 악공으로 거문고를 가르치는 사범
“거문고는 한 줄만 켜도 방 안 공기를 바꿉니다. 그 한 줄을 어느 순간에 켜는지가 평생 배움이지요.”
가문 악공 거문고 사범은 다이묘 가문 안채에서 거문고(琴)·비파(琵琶) 등 현악 연주와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 악사이자 사범이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손목에 거문고 줄 보호 장갑, 옆에는 항상 악보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신단 시녀들의 연주 실력을 관리하고, 외교 다회·혼인 의례의 배경 연주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어느 곡을 어느 순간에 켜야 안채 분위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안다.
안채 거문고 시녀(앞서 320026)가 일상 연주를 담당한다면, 사범은 그 연주가 나오기까지의 기반을 만드는 자다. 가장 어려운 지도는 "잘 켜는 법"이 아니라 "언제 멈추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범이 가르친 마지막 수업이 멈추는 법이었다는 것을, 제자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멈추는 한 박자가 다회 한 번을 살렸으니까요.”
하리마번(播磨藩) 가문 악공 거문고 사범 유이(結 — 가공의 유이 가문 악공 출신, 하리마 안채 거문고 사범으로 이십오 년간 시녀 사십 명을 지도한 자이자 단 한 번도 다회 도중 연주를 멈추라는 지시를 어긴 적 없는 자로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멈추는 한 박자'로 킨키 악공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봄 다이묘비와 인접 가문 정실의 중요 다회 도중, 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분위기가 바뀌어 긴장이 돌았을 때, 유이는 연주 중이던 거문고를 그 박자 위에서 정확히 한 박자 뒤 멈추었다. 그 한 박자의 침묵에 두 정실이 동시에 찻잔을 내려놓았고, 침묵이 다음 말을 기다리는 공간이 되었다. 인접 가문 정실이 그 침묵 안에서 처음으로 양보 한 줄을 꺼냈다. 다회가 끝난 뒤 다이묘비가 유이에게 "그 박자를 어떻게 알았소"라고 물었을 때, 유이는 "두 분 찻잔이 같은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라고만 답했다.
봉납무녀사(奉納巫女師)
여성 봉납 무녀(巫女) 사범
여성 봉납 의식을 가르치는 무녀 사범
“봉납 무악(舞樂)은 신(神)이 아니라 이 자리에 선 사람이 먼저 봅니다. 그 사람의 호흡이 먼저 흔들리지 않아야 하지요.”
여성 봉납 무녀 사범은 가문 전속 신사 또는 마을 신사에서 봉납 무악(舞樂, 신께 바치는 의식 무용)과 신사 의례를 지도하는 무녀 전문 사범이다. 외형은 흰 무녀복 위 진홍(眞紅) 하카마(袴), 머리에 의례용 비녀, 손에 봉납 방울(鈴)과 나기(幣帛, 의례용 종이 띠)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봉납 의례의 계절·시각·봉납 순서를 관리하며, 신사 부적 견습 무녀(앞서 320029)와 마을 무녀(앞서 320019)를 함께 지도하는 자다.
가장 어려운 봉납은 출정 전날 밤 가신단 전체가 서 있는 앞에서 단 한 명이 추는 의례 무악이다.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무녀의 방울 한 번이, 가신단의 발 박자를 전쟁터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무녀 사범의 나기 한 자락이 흔들리지 않았던 그 봉납 의례 새벽을, 출정에서 살아 돌아온 가신들은 평생 한 번씩 기억한다 하오.”
에치고번(越後藩) 여성 봉납 무녀 사범 시라하(白羽 — 가공의 시라하 가문 무녀 출신, 에치고 가문 봉납 의례를 이십 년간 전담하고 가문 야사 봉납 기록을 혼자 관리한 자)의 일화는 '나기 한 자락 새벽'으로 에치고 가신단 야사에 전해진다.
에치고번 최대 출정이던 우에다 합전(앞서 310047 신관 일화에도 등장한 그 합전) 전날 밤 봉납 의례 도중 벼락이 경내 나무 한 그루를 쓰러뜨려 가신단이 술렁였을 때, 시라하는 봉납 방울을 내려두지 않고 나기 한 자락을 평소보다 한 박자 천천히 흔들었다. 그 한 박자에 가신단의 술렁임이 잠잠해졌으며, 가문 봉납 신관(앞서 310047 신관 계보와 연결된 라인)이 봉납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청했다. 시라하는 두 번째 봉납에서 첫 번째보다 방울 한 박자를 더 정중히 흔들었고, 그 두 번째 봉납이 끝난 뒤 가신단 전체가 한 호흡 같은 박자로 무릎을 꿇었다. 출정에서 돌아온 가신들은 그 두 번째 봉납 방울 한 박자를 각자의 야전 일지에 기록했다.
안채원예비(內室園藝妃)
안채 원예(園藝) 부인
안채의 정원을 가꾸는 부인
“이 정원 한 걸음, 봄에 심은 것이 가을에 피는지를 두 시즌 기억하고 있소. 그것이 이 정원의 외교입니다.”
안채 원예 부인은 다이묘 가문 안채 정원(庭園)의 계절 식재·약초 재배·관상 배치를 담당하며, 외교 방문객의 정원 산책 코스를 직접 설계하는 여성 원예 전문가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용 키모노, 어깨에 종묘 가방, 손에 작은 가위와 원예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접 가문 다이묘비들이 각각 어느 꽃·향초를 좋아하는지를 외우고 있어, 외교 방문 시 정원 산책 코스를 그 취향에 맞게 꾸민다.
안채 약초원 부인(앞서 320024)이 약재를 기른다면, 원예 부인은 정원 전체를 외교 무대로 기른다. 가장 정치적인 꽃밭은 가장 자연스럽게 자란 것처럼 보인다.
“원예 부인의 정원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날이, 가장 많이 준비된 날이오. 그 준비를 누가 알아채는지가 그날 외교의 성패를 결정하지요.”
히젠번(肥前藩) 안채 원예 부인 아키코(秋子 — 가공의 아키코 가문 원예 출신, 히젠 안채 정원을 이십 년간 혼자 설계한 자이자 외교 방문 전날 밤 정원 코스를 손수 두 번 걸어보는 것으로 유명한 자)의 일화는 '가을 국화 한 걸음'으로 큐슈 원예 가문들 사이에 전해진다.
히젠번과 사쓰마 가문의 외교 회담이 처음 열리던 어느 가을, 아키코는 사쓰마 다이묘비가 정원 산책 도중 처음 멈추는 자리에 가을 국화(菊, 국화) 한 화단을 전날 밤 손수 옮겨 심었다. 사쓰마 다이묘비는 그 국화 앞에서 한 발자국 멈추고 "이 국화, 사쓰마 기후에서 자라는 품종이지요"라고 했다. 아키코는 "이틀 전 사쓰마 상인에게서 구했습니다"라고 한 줄 건넸다. 그날 사쓰마 다이묘비는 정원 산책 중 처음으로 히젠번 안채 정원이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꾸며졌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이후 두 가문 정실의 정원 산책은 한 시대에 걸친 외교 채널로 자리 잡았다.
염색장인녀(染色匠人女)
가문 염색(染色) 장인
가문의 직물을 물들이는 염색 장인
“키모노 색 한 자락이 가문의 태도를 보여주오. 그러니 어두운 날에는 가장 밝은 색부터 고르오.”
가문 염색 장인은 다이묘 가문 전속으로 키모노·진바오리·깃발 천의 염색 전체를 담당하는 평민 출신 전문 장인이다.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손목에 염료 물감, 어깨에 천 가방, 허리에 색 대조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접 가문 다이묘비들이 각각 어느 색을 외교용·일상용·공식용으로 나눠 쓰는지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키모노 색사(앞서 320012)가 색을 결정한다면, 염색 장인은 그 결정된 색을 실제로 천에 심는 자다. 가장 어려운 색은 화려한 색이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그 모호한 회색빛 자줏빛 사이 한 색이다.
“장인의 손목에서 나온 색이 두 가문 다이묘비가 같은 날 같은 색을 입고 나타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두 분은 그 자리에서 처음 서로를 웃으며 보셨지요.”
오와리번(尾張藩) 가문 염색 장인 소에(蒼絵 — 가공의 소에 가문 염색 출신, 오와리 가문 전속 장인으로 삼십 년간 키모노 이천 자락을 염색한 자이자 단 한 자락도 색이 어긋난 적 없는 자로 가신단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같은 빛 한 자락'으로 나고야 염색 가문들 사이에 전해진다.
오와리번과 인접 미노 가문의 외교 회담 전날, 소에는 미노 가문 안채에서 다이묘비가 즐겨 입는 색이 오와리 다이묘비가 외교용으로 즐겨 입는 색과 같은 계열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소에는 회담 당일 오와리 다이묘비의 키모노를 평소보다 한 박자 더 미노 가문 색 계열에 가깝게 조정했다. 두 다이묘비가 같은 다실에 들어와 서로의 키모노 색을 보는 순간 둘 다 한 박자 멈췄고, 미노 다이묘비가 먼저 "같은 계절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했다. 그날 회담은 처음으로 웃음 소리가 들려왔으며, 외교 협상 조건 한 줄이 그날 처음 합의되었다. 안채 빨래터 시녀(앞서 320028)는 그날 두 다이묘비의 키모노 자락을 나란히 빨게 되었다며 야사첩에 조용히 한 줄을 남겼다.
안채산파녀(內室産婆女)
안채 산파(産婆)
가문의 새 생명을 받아내는 산파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어머니의 호흡이오. 그 호흡 하나를 지키는 것이 내 평생이지요.”
안채 산파는 다이묘 가문 안채에서 정실·시녀의 출산을 담당하는 전문 조산사로, 가문의 가장 비밀스럽고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키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작업 키모노, 어깨에 산파 도구 가방, 손에 늘 따뜻한 물과 약초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안채 의관 여의사(앞서 320036)와 함께 정실의 건강 상태를 공유하며, 출산 예정일 한 달 전부터 안채 한 자리를 항상 비워 두고 대기한다.
가문의 다음 당주가 처음 호흡하는 그 자리에 있는 자가 산파이며, 그 첫 호흡을 정중히 받아내는 것이 그녀의 진짜 결재다. 안채 야사에 산파의 이름이 거의 적히지 않는 것은, 그녀가 그 자리에 없어서가 아니라 늘 가장 정중하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산파의 손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가 가문의 가장 새로운 호흡이오. 그 손이 떨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가문 당주가 자라서야 한 번 들었습니다.”
에도(江戶) 막부 가문 산파 우노(宇乃 — 가공의 우노 가문 출신, 막부 안채 전속 산파로 사십 년간 정실 이십칠 명의 출산을 담당한 자이자 단 한 번도 혼자 돌아온 적 없는 자로 안채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첫 호흡 새벽'으로 안채 시녀들 사이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겨울 새벽, 다이묘비의 어려운 출산이 새벽 내내 이어졌을 때, 우노는 안채 의관 여의사(앞서 320036 사오리 계보)와 함께 밤을 꼬박 새웠다. 먼동이 틀 무렵 가문의 첫 아들이 처음 호흡하는 그 순간, 우노는 그 아이를 받아들고 다이묘비에게 "어머니의 호흡이 먼저였습니다"라고 한 줄만 건넸다. 다이묘가 들어와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우노는 이미 다실 한자리를 정중히 정리하고 있었으며, 다이묘는 우노에게 "그 새벽 이름이 무엇이오"라고 물었다. 우노는 정중히 "산파의 이름은 첫 호흡 뒤에만 적혀도 됩니다"라고 답했으며, 가문 사관(앞서 320037)은 그 말을 산파 야사 첫 줄로 기록했다.
비단행상녀(緋緞行商女)
마을 시장 비단 행상
마을 시장에서 비단을 파는 행상
“이 비단 한 자락, 세 가문 어머니의 손을 거쳤소. 그러니 가격이 아니라 무게로 고르시오.”
마을 시장 비단 행상은 조카마치(城下町) 또는 큰 마을 시장에서 비단·직물·자수 재료를 가지고 다이묘 가문 시녀부터 평민 어머니까지 두루 상대하는 여성 상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여행 키모노, 어깨에 비단 가방, 머리에 작은 패랭이, 한 손에 색 견본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어느 가문이 어느 실 공장(工房)의 씨실 패턴을 쓰는지를 외우고 있어, 염색 장인(앞서 320043)보다 먼저 최신 유행 색을 안채에 전달하는 자다.
상인이면서도 안채 향 거장(앞서 320035)의 향 재료를 조달하고, 자수 수석 시녀(앞서 320039)의 비단 실 한 자락을 가장 먼저 들여오는 자도 그녀다. 마을 시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가장 비싼 비단이 놓인 자리가 아니라, 가장 먼저 그 비단 앞에 서는 자가 서는 자리다.
“비단 행상의 진짜 재고는 가방 안이 아니오. 세 가문 어머니들의 취향 명부가 머릿속에 있지요. 그 명부 한 자락이 안채 외교 한 건을 연결한 적이 세 번은 됩니다.”
에도 마을 시장 비단 행상 하나(花 — 가공의 하나 가문 출신 비단 상인, 에도 동측 시장 한 자리에서 이십 년간 비단 행상을 한 자이자 안채 세 곳의 단골로 이름이 세 가문 시녀장 명부에 동시에 올라 있는 자)의 일화는 '비단 씨실 한 자락 안채 세 곳'으로 에도 시장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봄, 하나는 자기 가방 안에서 서로 다른 세 가문 안채에서 주문한 비단 색 명부를 한 번에 펼쳐 보다가, 세 가문이 서로 모르는 채 같은 색 같은 씨실 패턴을 동시에 주문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각 안채에 납품하면서 "인접 가문도 같은 색을 이번 시즌에 주문했습니다"라는 한 줄씩을 정중히 시녀장에게 전달했다. 세 가문 시녀장이 그 한 줄을 자기 다이묘비에게 올렸고, 세 가문 다이묘비는 처음으로 같은 색 키모노로 만나는 다회 한 번을 기획했다. 그 다회에서 세 가문 외교 조건 한 줄이 처음으로 합의되었으며, 안채 총괄 상궁(앞서 320031)은 그 날 일을 "비단 행상이 연결한 안채 외교"라는 제목으로 야사에 남겼다.
낭쿠노이낭(浪女忍娘)
떠돌이 쿠노이치 낭인
주인 없이 떠도는 쿠노이치 낭인
“결사를 잃었소. 기술은 잃지 않았소. 그 기술로 한 시즌 더 사는 법을 찾겠소.”
떠돌이 쿠노이치 낭인은 자기 닌자 결사가 해산되거나 두령이 의뢰를 거부하여 결사를 떠난 여성 닌자로, 단독으로 경호·정탐·안내 임무를 맡으며 살아가는 자다. 외형은 낡은 단정한 여행 키모노, 그 아래 가볍게 접은 인복(忍服), 머리에 아무 문양 없는 비녀, 허리에 단검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과거 결사 동료들의 연락처를 머릿속에만 보관하며, 새 의뢰를 받기 전 반드시 그 의뢰가 옛 결사 동료를 해치지 않는 방향인지를 먼저 확인한다.
쿠노이치 두령(앞서 320007) 아래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자리지만, 더 많이 길을 잃는 자리이기도 하다. 가장 외로운 새벽은 결사 다회 자리가 생각나는 새벽이다. 그러나 낭인 쿠노이치가 가장 강한 순간은 그 새벽을 한 번 더 견딘 아침이다.
“결사를 잃은 쿠노이치의 진짜 무기는 단검이 아니오. 다음 새벽을 혼자 기다리는 그 한 호흡이지요.”
떠돌이 쿠노이치 낭인 키리(霧 — 가공의 키리 결사 해산 후 홀로 남은 쿠노이치, 결사 동료 두 명이 살아 있다는 것만을 알고 전국을 떠도는 자)의 일화는 에도 낭인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봄 키리는 모르는 다이묘 가문 시녀장(앞서 320004 시녀장 계보의 후대 시녀장)으로부터 안채 한 자리 경호 의뢰를 받았다. 시녀장이 제시한 보수 안에 결사 해산 이후 처음으로 다회 한 잔 값이 포함되어 있었다. 키리는 임무를 수락하면서 "다회 값은 임무가 끝난 뒤 받겠습니다"라고 한 줄만 건넸다. 임무 사흘 동안 키리는 자기가 쿠노이치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안채 잡역 시녀로 위장했으며, 안채 시녀들 중 어느 한 명이 쿠노이치 결사 두령(앞서 320007 계보)의 오래된 자매라는 사실을 손목 자국 방향으로 알아챘다. 임무를 마치고 시녀장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키리는 보수 전체를 사양하고 "다회 한 잔만 받겠습니다"라고 했다. 시녀장은 그 다회 자리에 쿠노이치 두령(앞서 320007)에게도 조용히 연락했으며, 세 사람은 그날 처음으로 서로의 손목 자국을 정중히 인정했다.
편지필사녀(便紙筆寫女)
안채 편지 필사 시녀
안채의 편지를 옮겨 쓰는 시녀
“이 편지 한 자, 다이묘비의 마음 한 자락이오. 내 손목이 그 자락보다 흔들리면 안 됩니다.”
안채 편지 필사 시녀는 다이묘비가 인접 가문 정실·친정 어머니·혼인 후보 가문에게 보내는 편지의 정서(淨書, 깨끗하게 다시 씀)와 봉투 준비를 담당하는 서도 보조 시녀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가슴팍에 먹물 자국, 손에 붓과 반지(半紙, 연습용 화지), 책상 위에 늘 봉투 여러 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다이묘비의 글씨체를 가장 정확히 재현할 수 있는 자이며, 다이묘비의 손목이 좋지 않은 날은 그녀가 대필(代筆, 대신 글씨를 씀)하기도 한다.
무가 서도 사범(앞서 310045)이 붓 획의 무게를 가르친다면, 필사 시녀는 그 무게를 편지 한 자 한 자에 실어 옮기는 자다. 가장 어려운 편지는 가장 짧은 편지다.
“필사 시녀가 대필한 편지 한 자를, 받은 분이 '이건 다이묘비 직필이 맞소'라며 의심하지 않으신 것이 십오 년이오. 그 십오 년이 안채 외교의 절반이었습니다.”
가가번(加賀藩) 안채 편지 필사 시녀 유키(雪 — 가공의 유키 가문 출신, 가가 다이묘비를 십오 년간 보좌한 필사 시녀로 단 한 통의 편지도 다이묘비가 직필인지 대필인지를 의심받은 적 없는 자로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획 한 자 십오 년'으로 가가 안채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겨울, 다이묘비의 손목이 한 달째 좋지 않아 인접 가문 정실에게 중요한 편지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유키는 그날 대필 전에 다이묘비에게 첫 획 한 줄을 직접 써 달라고 청했다. 다이묘비가 흔들리는 손목으로 첫 획 한 줄을 긋고 붓을 내려두자, 유키는 그 한 줄의 흔들림 각도를 한 호흡 외운 뒤 나머지 편지를 그 흔들림 각도 그대로 완성했다. 인접 가문 정실은 그 편지를 보고 "다이묘비께서 몸이 좀 불편하신 것 같으니 다음 다회는 편히 쉬셔도 됩니다"라는 회신을 보냈다. 안채 의관 여의사(앞서 320036)는 그 회신을 보고 "필사 시녀가 처방보다 먼저 치료했소"라고 했다.
촌락견습녀(村落見習女)
마을 무녀 견습
마을 신당에서 무녀 길을 막 시작한 견습
“오늘은 부적 종이 한 장만 정중히 접겠습니다. 첫 번째 한 줄은 내일 새벽이라도 늦지 않아요.”
마을 무녀 견습은 전국시대 마을 신사에서 봉납 무녀(앞서 320041)나 마을 무녀(앞서 320019)의 곁에서 부적 접기·신사 청소·의례 보조를 배우는 어린 평민 출신 여성 견습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견습복 위 엷은 분홍 하카마, 머리에 작은 견습 비녀, 손에 견습 방울 하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아직 정식 의례를 담당하지 않지만, 가장 이른 새벽 신사 청소를 혼자 해내면서 그 신사 구석구석을 가장 자세히 아는 자가 된다.
신사 청소를 하루라도 빠진 견습은 사범에게 먼저 알린다. 그러나 그 전에 견습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견습은 사범이 확인하러 오기 전에 이미 청소가 끝나 있는 자다.
“견습의 첫 새벽 청소가 신사 담장 밖에서도 보이는 날, 그 마을 신사는 한 시대를 더 살아남는다 하오.”
후지노 마을 신사 무녀 견습 모모(桃 — 가공의 모모 가문 출신, 후지노 마을 신사에서 마을 무녀(앞서 320019 무녀 계보)의 곁에서 견습을 시작한 어린 시녀)의 일화는 마을 야사 뒤편에 조용히 전해진다.
임명 첫 새벽 모모는 신사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등롱 시녀(앞서 320030 호타루코 계보의 후대 시녀)가 등롱 심지를 손질하다 가위를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모모는 그 가위를 주워 등롱 시녀에게 정중히 건네면서 "저도 첫날 청소 빗자루를 떨어뜨렸습니다"라고 한 줄 건넸다. 등롱 시녀는 그 한 줄에 한 호흡 웃었으며, 그날부터 모모의 새벽 청소 시간과 등롱 시녀의 심지 손질 시간이 같은 새벽 한 골목에서 겹치는 것이 마을 야사의 가장 작은 일상 기록으로 남았다. 마을 무녀는 그 기록을 보고 "두 견습이 같은 새벽을 함께 시작했다는 것이 그 신사 한 시대의 가장 좋은 징조"라고 야사에 적었다.
다과행상녀(茶菓行商女)
다회 단과(茶菓) 행상
다회 자리에 단과를 들고 다니는 행상
“다회 한 잔엔 과자 한 조각이 함께 가오. 그 단맛 하나가 다음 말을 쉽게 꺼내 주거든요.”
다회 단과 행상은 조카마치 골목과 다이묘 안채 주변에서 다회(茶會)용 화과자(和菓子, 일본 전통 과자)와 단과(茶菓)를 들고 다니며 파는 평민 출신 여성 행상이다. 외형은 단정한 연한 색 키모노, 어깨에 과자 상자,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과자 종류 목록이 표준이다. 본인은 어느 가문 다이묘비가 어느 모양의 화과자를 계절마다 주문하는지를 외우고 있으며, 시녀장(앞서 320004)이 비상 다회를 열 때 가장 먼저 연락하는 행상이 바로 그녀다.
다회의 화과자 한 조각이 협상 분위기를 바꾼 사례가 야사에 세 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그 화과자를 만든 행상이 상대 가문 정실의 취향을 미리 알아 맞춘 덕분이었다. 가장 맛있는 과자는 가장 비싼 과자가 아니라 가장 잘 맞는 과자다.
“행상의 과자 상자 안에 두 가문 취향 명부가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을, 시녀장은 비상 다회를 세 번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에도 다회 단과 행상 우메코(梅子 — 가공의 우메코 가문 출신, 에도 안채 세 곳과 마을 다관 두 곳을 동시에 단골로 둔 화과자 행상이자 단 한 번도 단과 주문을 틀린 적 없는 자로 에도 시장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매화 모양 화과자 한 조각'으로 에도 안채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봄, 에도 막부 한 가문의 안채에서 갑작스럽게 열린 비상 다회 직전 시녀장으로부터 "인접 가문 정실이 오십니다, 좋아하는 과자 아십니까"라는 쪽지가 왔다. 우메코는 쪽지를 받자마자 과자 상자 안에서 매화 모양 화과자(白梅菓, 흰 매화 모양으로 빚은 연한 단팥 화과자) 두 조각을 꺼냈다. 인접 가문 정실이 다실에 들어와 과자 한 조각을 보는 순간 "저희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것과 같은 모양이군요"라고 했다. 다이묘비는 그 한 마디에 비상 다회를 정식 다회로 격상하였으며, 그날 협상 조건 한 줄이 처음으로 합의되었다. 우메코는 그 비상 다회 이후 에도 안채 다섯 곳의 공식 단과 행상으로 이름이 올랐다.
성문화상녀(城門花商女)
성문 앞 꽃 행상
성문 앞에서 꽃을 파는 행상
“이 꽃 한 가지, 성문 안에 들어가는 사람보다 오래 거기 있겠지요. 그러니 잘 고르시오.”
성문 앞 꽃 행상은 다이묘 본성 정문 또는 조카마치 큰 문 앞에서 계절 꽃다발·화환(花環)·신사 봉납 꽃을 파는 평민 출신 여성 행상이다. 외형은 단정한 밝은 색 키모노, 어깨에 꽃 광주리, 머리에 꽃잎으로 만든 작은 머리 장식, 한 손에 꽃 값 목록이 표준이다. 본인은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얼굴과 발걸음을 매일 지켜보는 자이며, 어느 날 어느 가신이 꽃 한 가지도 사지 않고 지나갔는지를 오래 기억한다.
출정 날 아침 성문 앞을 가장 먼저 꽃으로 채우는 자도 그녀이며, 귀환 날 가장 먼저 꽃을 들고 기다리는 자도 그녀다. 가신들은 출정 전 꽃 한 가지 값보다 귀환 후 꽃 한 가지 값이 왜 더 비싼지를 묻지 않는다. 그냥 꽃을 산다.
“출정 때보다 귀환 때 꽃이 더 빨리 팔린다는 것을 꽃 행상만이 알고 있소. 그 팔린 숫자가 그날 진영 이야기보다 정확하다 하더군요.”
에도 성문 앞 꽃 행상 하루코(春子 — 가공의 하루코 가문 출신, 에도 성문 앞 한 자리에서 이십 년간 꽃 행상을 한 자이자 단 한 번도 성문 앞 자리를 비운 적 없는 자로 에도 시장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귀환 꽃 한 가지'로 에도 성문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어느 가을 출정이 예상보다 보름 늦게 귀환했을 때, 하루코는 보름 동안 매일 새벽 성문 앞 꽃 광주리를 가져다 놓고 그날 팔리지 않으면 다음 날 새벽 가져온 새 꽃으로 교체했다. 보름째 새벽 성문이 열리고 가신단 행렬이 들어오는 순간, 하루코의 꽃 광주리는 하루도 비어 있지 않았다. 가신단 맨 앞에 서 있던 가문 깃발 기수(앞서 330030 기수 계보의 후대 기수)가 성문 앞 꽃 광주리를 보는 순간 처음으로 깃발 자루를 한 박자 낮췄다. 그 한 박자를 본 다이묘비(앞서 320001 다이묘비 계보의 후대 정실)는 성문 안에서 기다리다 꽃 행상 하루코의 손을 먼저 한 번 잡았다. 하루코는 그날의 꽃 광주리 값을 받지 않았으며, 에도 성문 앞에는 그때부터 귀환 날이면 꽃 광주리 하나를 무료로 가신단에 나누어 주는 관례가 생겼다.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쇼군(將軍)
막부의 정점에 군림하는 쇼군
“이 깃발 한 장이 일본의 절반을 묶고 있다. 함부로 흔들지 마라.”
쇼군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다이묘들 위에 군림하는 막부(幕府)의 정점으로, 한 시대 전체의 균형을 자기 한 결재로 굴리는 자다. 외형은 단단한 진바오리(陣羽織), 어깨에 막부 문양 깃발, 허리에 한 쌍의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접 다이묘들과의 외교·전쟁·혼인 협상을 모두 자기 결재 아래에 두고, 그 한 줄 결재가 한 시대의 다음 출정을 결정한다.
그러나 쇼군의 자리는 늘 카로 하나·다이묘 둘·닌자 결사 셋의 음모가 동시에 향하는 곳이다. 가장 무거운 갑주는 어깨가 아니라, 매일 새벽 회의실 정장 깃을 단단히 매는 그 손목 위에 있다. 막부의 진짜 깃발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후대 쇼군은 즉위 첫 사흘을 그 책상 한 자리에 앉아 보내오. 깃발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책상이 먼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삼대 쇼군 이치노 사다토키 — 막부 역사상 출정 결재를 한 번도 한 호흡 안에 결재하지 않은 자이자 평생 결재 두루마리를 사흘 묵혀 본 자 — 의 일화는 '백서원(白書院, 막부 본전 서쪽 결재 책상이 놓인 방) 사흘 묵힌 두루마리'로 막부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사다토키 즉위 첫 해 인접 다이묘 일곱 가문이 동시에 출정 허가 결재를 청해 백서원 책상 위에 결재 두루마리 일곱 권이 한 호흡에 쌓였다. 그는 그 일곱 권을 한 줄도 결재하지 않고 사흘을 정중히 묵혀 두었으며, 그 사이 카로 일곱과 막부 외교관 둘에게 일곱 가문의 옛 분기 봉록·옛 혼인 라인·옛 결투 결재를 한 표로 정리하게 했다. 사흘째 새벽 사다토키는 일곱 권 가운데 두 권만 결재하고 다섯 권은 정중히 반려했으며, 반려된 다섯 가문 가운데 세 가문이 출정 직전 멸문 위기에 놓일 작은 분쟁을 안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 사흘 사이 드러났다. 그 다섯 가문은 사다토키의 한 줄 반려 덕에 한 시즌을 버텼으며, 두 권만 결재된 출정은 한 호흡 만에 깃발을 거두었다.
그날 이후 막부에서는 결재 두루마리를 한 호흡 안에 결재하지 않고 정중히 묵히는 자세를 '사다토키 사흘'이라 부르며, 후대 쇼군 즉위 첫 사흘은 그 책상 앞에 빈손으로 앉아 한 줄 결재도 하지 않는 관례를 따른다. 백서원 책상 한쪽에는 그날의 반려된 다섯 권이 봉인된 채 지금도 놓여 있다.
검선무사존(劍仙武士尊)
검선(劍仙)급 무사
검술이 신선의 경지에 이른 절대 무사
“한 자루 검에 도(道)가 깃들면, 적의 무릎이 검보다 먼저 꺾인다.”
검선급 무사는 한 시대 일본 안에서 검술 자체가 도(道)에 닿은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칭호로, 다이묘의 가신이 아니라 한 자루 검 한 자루로 시대를 살아가는 자다. 외형은 흑색 단정한 키모노, 어깨에 단 한 자루 카타나, 표정은 늘 거의 변하지 않는다. 본인은 결투의 시작 직전 검집에 손을 얹는 동작 한 번으로 적의 무릎을 꺾어버린 일화가 여러 차례 전해진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한적한 산속 작은 도장에서 어린 제자 한두 명에게 검술의 첫 자세를 가르치는 데 평생을 보낸다. 가장 강한 검의 진짜 자리는 결투장이 아니라 도장 입구의 신발 정리 자리에 있다. 그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 그의 진짜 검술이다.
“후대 검선은 산을 내려와 결투장에 가지 않소. 다만 산 입구 신발 자리에 한 켤레가 더 놓여 있다는 사실, 그 한 줄이 한 시대의 검을 가장 길게 거두는 한 자루이지요.”
이대 검선급 무사 카게야마 무이 — 평생 산 아래로 한 번도 결투 청을 받으러 내려온 적 없이 작은 도장 입구 신발 자리만 정중히 정리한 자 — 의 일화는 '무명봉(無名峰, 일본 동쪽 외딴 산봉우리로 검선의 도장이 놓인 자리) 한 켤레의 새벽'으로 일본 검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새벽 한 시대 가장 강한 다이묘 가문 츠카하라 가문의 가주 츠카하라 모토하루가 자기 가신 일곱과 함께 무명봉을 사흘 올라 무이에게 결투를 청했다. 무이는 도장 문을 열지 않은 채 도장 입구의 신발 자리에 모토하루의 짚신 한 켤레를 정중히 가지런히 놓아두었고, 모토하루는 자기 짚신이 놓인 자세 한 줄을 한 호흡에 보고는 카타나를 검집에 거둔 채 사흘을 다시 산을 내려갔다. 무이는 그 사흘 동안 도장 안 어린 제자 두 명에게 첫 자세 — 검을 뽑기 전 신발 한 켤레를 가지런히 놓는 자세 — 만 정중히 가르쳤으며, 모토하루는 그 사흘 사이 자기 가신단의 짚신 일곱 켤레를 본가 다실 입구에 똑같이 가지런히 놓는 관례를 만들었다. 그날 이후 츠카하라 가문 가신단은 출정 직전 짚신 한 줄을 가지런히 놓는 자세 위에서 한 호흡을 같이 쉬며, 무명봉 도장 입구 신발 자리에는 평생 모토하루의 짚신 한 켤레가 그대로 놓여 있다.
후대 검선급 무사 후보들은 입문 첫 사흘을 그 한 켤레 옆에 자기 짚신을 놓아 보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닌자총두령(忍者總頭領)
닌자 두령
모든 닌자 결사를 거느리는 두령
“그림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칼이 아니라, 침묵의 길이다.”
닌자 두령은 한 마을 단위 닌자 결사를 이끄는 우두머리로, 다이묘 가문에 의뢰를 받아 정탐·암살·구출을 자기 결사의 닌자들에게 분배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검은 키모노, 어깨에 닌자 결사 문양, 허리에 작은 단검과 인술용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결사의 모든 닌자 한 명 한 명의 가족 사진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으며, 누가 누구의 부모를 부양하는지를 한 줄 메모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두령의 의뢰 분배는 단순한 능력 평가가 아니라, "이 임무에서 누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 결사의 다음 시즌에 가장 중요한가"라는 무거운 결단이다. 가장 강한 결사는 닌자가 많은 결사가 아니라, 닌자 한 명의 가족이 한 명도 굶지 않는 결사다.
“후대 두령은 의뢰 한 줄을 받기 전에 결사 명부 한 권을 먼저 펴오. 의뢰는 다음 시즌 한 줄이지만, 그 명부 한 줄은 평생이라는 뜻이지요.”
칠대 닌자 두령 카지키 사이몬 — 카게구사 결사(影草結社, 일본 중앙 산자락에 거점을 둔 닌자 결사) 사십 년 두령으로 결사 닌자 백 명 중 한 명도 가족과 한 끼를 끊긴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명부 한 권 반려'로 닌자 결사 사이에 길게 회자된다.
어느 가을 인접 다이묘 가문 호리카와 가문이 결사에 적대 가문 본가 어린 자식 한 명을 표적으로 한 의뢰 두루마리를 보내며 평소 보수의 다섯 배를 약속했다. 사이몬은 그 두루마리를 받자마자 결사 명부 한 권을 먼저 펴 닌자 백 명의 가족 한 줄을 정중히 읽고, 의뢰 두루마리를 한 줄도 결재하지 않은 채 그대로 호리카와 가문에 정중히 반려했다. 호리카와 가문은 그 반려에 분노해 결사 본거지에 압박을 가했으나, 사이몬은 그 사이 결사 닌자 일곱을 호리카와 가문 적대 가문 본가에 정중히 보내 어린 자식의 호위로 자청 배치했다.
다음 봄 호리카와 가문은 다른 가문 외교 결재 한 줄로 결국 그 어린 자식을 표적에서 풀었으며, 사이몬은 그 일곱 닌자의 그 시즌 보수를 자기 사재로 정중히 보전했다. 카게구사 결사 본거지 결사실 한쪽에는 그날의 반려된 의뢰 두루마리가 봉인된 채 지금도 놓여 있으며, 후대 두령들은 즉위 첫 사흘을 그 두루마리 앞에 결사 명부 한 권을 펼쳐 두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닌자 결사 사이에서는 가장 무거운 의뢰는 받은 의뢰가 아니라 정중히 반려된 의뢰라는 격언이 있다.
도장사범자(道場師範者)
도장(道場) 사범
도장의 검술을 가르치는 사범
“검은 가르치되, 그 검을 어디에 휘두를지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건 자네 몫이다.”
도장 사범은 마을 변두리 작은 도장에서 어린 무사 지망생들에게 검술의 기초를 가르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도복(道服), 허리에 목검(木劍), 도장 입구에 늘 잘 정리된 신발 줄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때 다이묘의 가신이었거나 결투에서 한 번 큰 명성을 얻었던 자가 많지만, 어느 시점부터 큰 무대보다 작은 도장이 더 정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들이다.
어린 제자들이 처음 들어와 신발을 흐트러뜨리면, 사범은 검술을 가르치기 전에 신발 정리부터 가르친다. 진짜 검술은 카타 한 자세가 아니라, 도장 문턱을 넘는 그 첫 한 발자국에서 시작된다. 그 한 발자국을 가르치는 자리가 사범의 평생이다.
“후대 사범은 도장 입구 신발 한 켤레를 정리한 자세 위에서 평생을 보내오. 카타 한 자세가 부족해도, 그 한 켤레가 가지런하면 도장은 한 시대를 살아남는다는 뜻이지요.”
시오미 마을 도장(汐見道場, 일본 서쪽 작은 어촌 마을 변두리에 자리한 한 칸 도장) 삼대 사범 시오미 다이지 — 한때 인접 다이묘 가문 가신이었으나 가문 멸문 후 어촌 변두리 작은 도장에 자리를 잡은 자 — 의 일화는 '한 켤레 짚신 사흘'로 어촌 무사들 사이에 가장 자주 회자된다.
어느 늦가을 다이지 도장 앞에 어린 평민 자식 코헤이가 짚신 한 켤레를 흐트러뜨린 채 입문을 청해 들어왔는데, 다이지는 사흘 동안 검술을 한 자세도 가르치지 않고 정중히 짚신 한 켤레를 가지런히 놓는 자세만 가르쳤다. 사흘째 새벽 인접 가문 낭인 일곱이 마을 어귀에서 결투 청을 들고 도장 앞에 도착해 다이지에게 결투를 강요했으나, 다이지는 도장 입구 신발 자리에 자기 짚신 한 켤레를 정중히 가지런히 놓고 도장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간 뒤 문을 닫아 두었다. 낭인 일곱은 그 한 줄 자세를 한 호흡 보고 결투 청을 거두어 마을을 떠났으며, 코헤이는 그 사흘 사이 짚신 한 켤레 자세 한 줄을 평생의 첫 카타로 받았다.
코헤이는 훗날 같은 도장 사대 사범이 되어 도장 입구 신발 자리에 자기 짚신 한 켤레를 정중히 놓는 관례를 평생 이어 갔으며, 도장 앞 신발 자리는 그 사흘 이후 어촌 마을의 가장 정중한 자리로 통한다. 그 도장에서는 신발 자리 한 줄을 흐트러뜨린 자에게는 검술 한 자세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한 줄 도훈이 지금도 입구 기둥에 정중히 걸려 있다.
촌락보부상(村落褓負商)
마을 보부상
마을과 마을을 잇는 짐 진 보부상
“이 봇짐 안에 마을 한 시대의 작은 안부가 다 들어 있소. 살펴보겠소?”
마을 보부상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의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잡화·소금·기름·작은 책자(冊子)를 등에 지고 다니는 평민 상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어깨에 큰 봇짐, 머리에 작은 패랭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어느 마을에서 어느 다이묘의 군이 지나갔고, 어느 도장 사범이 새 제자를 받았으며, 어느 닌자 마을의 다회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거의 실시간으로 안다.
그래서 마을 단위 정보는 사실상 보부상의 어깨 위에서 다음 마을로 옮겨 간다. 한 시대의 진짜 사관(史官)은 사관 노릇을 하지 않는 그 봇짐의 어깨다. 그 어깨가 다음 마을에 도착하는 그 한 번의 발걸음이, 한 시대의 가장 정확한 한 줄이다.
“후대 보부상은 자기 봇짐 안에 작은 책자 한 권을 한 줄씩 나누어 들고 다니오. 그 한 줄이 한 시대 사관 백 권보다 정확하다는 뜻이지요.”
보부상 카게무라 토헤이 — 일본 동쪽 가도 오십 리를 사십 년 정중히 오간 평민 상인이자 마을 단위 안부 한 줄을 평생 봇짐 안에 묶어 둔 자 — 의 일화는 '동가도 한 줄 책자'로 보부상들 사이에 정중히 전해진다.
어느 봄 동가도(東街道, 일본 동쪽 마을 일곱을 잇는 평민 가도) 한가운데 한 마을 토미사토 마을이 흉작에 들어 어린아이의 한 끼가 사흘에 한 그릇으로 줄었는데, 토헤이는 그 사실을 자기 봇짐 안 작은 책자 한 줄로 정중히 적어 두고 다음 마을 잡화점·객주·다이묘 가문 봉록 회계 부교 책상까지 한 줄씩 정중히 옮겨 두었다. 사흘 사이 다이묘 가문 봉록 회계 부교가 그 한 줄을 보고 면세 결재 한 줄을 정중히 굴렸고, 인접 마을 잡화점 주인이 소금 단가 두 칸을 정중히 내렸으며, 객주 점주가 토미사토 어린아이 일곱에게 한 그릇씩 한 호흡으로 정중히 보냈다. 그 사흘 사이 토미사토 마을 어린아이 한 명도 한 끼를 끊지 않았으며, 토헤이는 자기 봇짐 보수의 한 푼도 받지 않고 다음 마을로 정중히 발걸음을 옮겼다.
토헤이의 작은 책자 첫 장에는 그 한 줄 — "토미사토 어린이 일곱, 사흘 한 그릇" — 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남아 있으며, 후대 보부상들은 입문 첫 시즌 자기 봇짐 안 작은 책자 첫 장에 마을 한 줄 안부를 정중히 적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동가도 한가운데에는 토헤이의 봇짐 한 줄 자국이 정중히 새겨진 작은 비석 한 줄이 지금도 서 있다.
천하검성존(天下劍聖尊)
천하무쌍 검성(劍聖)
천하무쌍을 자칭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검성
“한 시대에 검 한 자루는 충분하다. 두 자루는 시대를 둘로 가른다.”
천하무쌍 검성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검술 위계의 가장 높은 한 자리에 오른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칭호로, 쇼군조차 그 앞에서는 한 호흡을 늦추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어깨에 작은 가문 문양,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가 표준이며, 검집은 늘 칠흑이다. 본인은 평생 진검 결투를 다섯 합 안에서 끝내며, 그 다섯 합이 끝나기 전에 상대의 호흡을 미리 외우고 있다.
그러나 검성 본인은 한 시대 동안 자기 손에 베인 자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매년 그 자리에 한 잔 술을 따라둔다. 가장 무거운 검은 한 자루의 강함이 아니라, 그 한 자루가 거두지 못한 자들의 이름 위에 있다. 검성의 진짜 도장은 결투장이 아니라, 그 한 잔 술이 놓인 풀밭 한 자리다.
“후대 검성은 결투 자리보다 그 풀밭 자리에 더 자주 앉소. 한 잔 술의 무게가 한 합 검의 무게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초대 천하무쌍 검성 미야오 토라무네 — 평생 진검 결투 사십 회를 한 번도 다섯 합을 넘기지 않은 자이자 사망한 마흔 명의 이름을 한 줄씩 정중히 외운 자 — 의 일화는 '구가하라 들판(久ヶ原野, 일본 중부 한가운데 큰 풀밭으로 한 시대 결투지로 가장 자주 쓰인 자리) 사십 잔'으로 일본 검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토라무네는 일흔 살을 넘기던 봄, 자기 결투에서 사망한 마흔 명의 이름을 한 줄씩 적은 작은 종이를 들고 구가하라 들판 한가운데에 정중히 자리를 잡고 한 잔 술을 사십 번 따라 두었다. 그 봄 마침 인접 가문 어린 가신 마쓰바 코지로가 자기 부친 — 토라무네의 결투 사십 회 중 한 명 — 의 한 줄 이름 앞에 합장하러 사흘을 걸어 들판에 도착했다. 토라무네는 코지로 앞에 자기 검집을 정중히 가로 누이고 결투 청을 받겠노라 정중히 답했으나, 코지로는 결투 대신 토라무네 옆에 자기 부친의 술잔 한 잔을 정중히 따라 두고 같은 한 호흡을 함께 쉬었다.
두 사람은 그 사흘 동안 한 합도 검을 뽑지 않은 채 사십 잔 옆에 새 한 잔을 함께 놓았으며, 코지로는 다음 봄부터 자기 가신단을 데리고 정중히 그 들판에 한 잔을 따르는 관례를 만들었다. 구가하라 들판 한가운데에는 그날 이후 사십한 개의 작은 술잔 자리가 정중히 풀로 다듬어져 있으며, 후대 검성들은 즉위 첫 봄을 그 자리에 한 잔을 정중히 따르는 자세로 보낸다. 일본 검도에서는 가장 강한 검은 사십 합이 아니라 사십 잔 위에 놓인 검이라는 격언이 그 사흘에서 태어났다.
다이묘번주(大名藩主)
다이묘(大名)
한 번방을 다스리는 다이묘
“한 가문의 밥상은 영지 한 시즌의 결재다. 한 끼가 늦으면 한 시즌이 늦는다.”
다이묘는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한 영지(領地)를 통치하는 가문의 가주로, 쇼군 아래에서 자기 가문의 군세·재정·외교를 모두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가문 문양 하오리, 어깨에 가문 깃발, 허리에 한 쌍의 카타나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문 가신들의 평생 봉록·자녀의 혼인 상대·옛 분기 결재 한 줄을 머릿속에 표로 외우고 있다.
영지의 한 농부 한 명의 한 끼가 가문 한 시즌의 결재를 굴리기에, 다이묘의 진짜 책상은 회의실이 아니라 영지 작은 마을의 작은 밥상 한 자리에 있다. 가장 무거운 가문 도장은 큰 출정이 아니라, 흉작이 든 마을의 면세 결재 위에 있다. 깃발 하나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그 한 끼다.
“후대 다이묘는 흉작 든 마을의 한 끼를 자기 본가 책상 한쪽에 정중히 놓아두오. 그 한 그릇이 가문 한 시즌 깃발 한 장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사대 다이묘 호조 카츠노부 — 일본 동쪽 영지 호조 가문(北條家, 영지 일곱 마을을 거느린 한 시대 중급 가문) 가주이자 평생 면세 결재 한 줄을 한 호흡 늦게 결재한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아오바 마을 한 그릇'으로 영지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가을 영지 한가운데 작은 마을 아오바 마을(青葉村, 호조 가문 영지 일곱 마을 중 가장 작은 산골 마을)이 흉작에 들어 어린아이 한 끼가 사흘에 한 그릇으로 줄었는데, 카츠노부는 카로의 결재 두루마리를 한 호흡도 기다리지 않고 자기 본가 책상에서 면세 결재 한 줄을 정중히 굴렸다. 그러나 그 한 줄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그날 새벽 자기 본가 식사 한 그릇을 정중히 비워 한 호흡으로 아오바 마을 어린아이 일곱에게 봉록 회계 부교의 손으로 정중히 보냈다. 사흘 사이 카츠노부는 자기 본가 식사를 한 끼씩 거른 채 아오바 마을 한 그릇 자리를 정중히 비워 두었으며, 카로는 그 자리를 보고 본가 가신단 식사 한 끼씩을 자청해 같은 자리로 보내는 관례를 한 시즌 만들었다. 그 가을 아오바 마을 어린아이 한 명도 한 끼를 끊지 않았으며, 카츠노부의 본가 책상 한쪽에는 그날의 빈 그릇 한 자리가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다.
후대 호조 가문 다이묘들은 즉위 첫 시즌 자기 본가 책상 한쪽에 정중히 빈 그릇 한 자리를 두는 관례를 따르며, 영지 일곱 마을 잡화점 주인들은 그 빈 그릇 자리를 '카츠노부 한 그릇'이라 부른다. 영지에서는 가장 무거운 가문 도장은 큰 출정 결재가 아니라 그 빈 그릇 한 자리 위에 있다고들 한다.
막부외교사(幕府外交使)
막부 외교관
타국 막부에 파견된 외교 사절
“전쟁 직전 한 잔의 차가 깃발 두 장을 함께 접게 만들 수 있소. 차부터 드시지요.”
막부 외교관은 쇼군과 다이묘 가문 사이를 오가며 외교·혼인 협상·정전 합의를 정중히 굴리는 자로, 한 시대의 큰 깃발 두 장이 같은 자리에 마주 앉도록 만드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어깨에 막부 문양 작은 휘장,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와 작은 외교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결혼 라인·옛 분쟁의 옛 한 줄·금기 화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교관이 한 잔 차를 권하면, 마주 앉은 두 가문은 그 한 모금 동안 한 호흡을 같이 쉰다. 가장 무거운 외교는 큰 정전 조약이 아니라, 한 잔 차의 정확한 온도 위에 있다. 외교관의 진짜 무기는 카타나가 아니라 찻잔이다.
“후대 외교관은 큰 조약문보다 찻잔 한 자루를 먼저 챙기오. 그 찻잔 한 자루의 정확한 온도가 가문 두 장을 같은 한 호흡으로 묶는다는 뜻이지요.”
막부 외교관 카타기리 무네토시 — 막부 외교 사십 년 동안 큰 결투 직전 한 잔 차로 정전을 정중히 굴린 자이자 평생 자기 외교 두루마리에 자기 이름을 적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시라카와 다실(白川茶室, 막부 본전 정중앙 외교 다실) 한 잔 차'로 막부 외교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일본 북쪽 다이묘 가문 사사키 가문과 남쪽 다이묘 가문 미우라 가문이 영지 한가운데 작은 마을 한 줄 분쟁으로 출정 직전까지 깃발을 정중히 폈을 때, 무네토시는 두 가문 가주를 시라카와 다실에 정중히 마주 앉히고 한 잔 차의 온도를 평소보다 한 도(度) 정중히 낮춰 따라 두었다. 두 가주는 그 한 모금 동안 한 호흡을 같이 쉬었으며, 무네토시는 그 한 호흡 사이 두 가문의 옛 혼인 라인 한 줄 — 사십 년 전 두 가문 어린 자식 한 쌍이 정중히 약혼했다가 흉작으로 정중히 풀린 한 줄 — 을 정중히 한 줄 두루마리로 펼쳐 두었다. 두 가문 가주는 그 한 줄을 한 호흡 보고는 자기 깃발을 정중히 접었으며, 분쟁의 작은 마을은 두 가문 공동 영지로 한 시즌 정중히 굴러갔다. 무네토시는 그날 자기 외교 두루마리에 자기 이름을 적지 않고 두 가문 가주의 이름만 정중히 한 줄 적었으며, 시라카와 다실 한쪽에는 그날의 차잔 한 자루가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놓여 있다.
후대 막부 외교관들은 즉위 첫 사흘을 그 차잔 앞에 자기 찻잔 한 자루를 정중히 마주 놓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가문카로군(家門家老君)
가문 카로(家老)
가문 가신단을 총괄하는 카로
“주군께서 검을 휘두르실 때, 저는 결재를 휘두릅니다. 둘 다 가문의 검입니다.”
가문 카로는 다이묘 가문의 No.2이자 가문 실무의 정점으로, 다이묘의 결재를 보좌하면서 가신단의 봉록·일정·자녀 혼인을 모두 챙기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가문 문양 하오리, 어깨에 작은 가문 휘장,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와 작은 호적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문 모든 가신의 어머니 생일과 자녀의 첫 검술 시연 일정까지 외우고 있으며, 다이묘가 빠뜨린 한 줄을 한 호흡 늦지 않게 메운다.
신참 가신들은 다이묘보다 카로에게 먼저 가족 사정을 보고하며, 카로가 자리를 비운 한 주 동안 가문 결재 더미가 두 배가 된 일화가 가문 야사에 남아 있다. 가문의 진짜 검은 다이묘의 한 자루가 아니라, 카로가 든 한 권 호적 명부라는 격언이 있다.
“후대 카로는 즉위 첫 주에 가신단 호적 명부 한 권을 본가 다실 한복판에 정중히 펴 두오. 가문 검 한 자루의 무게가 그 한 권 위에 있다는 뜻이지요.”
카토 가문 칠대 카로 카토 시게나리 — 카토 가문(加藤家, 일본 중부 영지 다섯 마을을 거느린 한 시대 중급 가문) 카로 사십 년으로 가신단 백 명의 호적 한 줄을 평생 외운 자 — 의 일화는 '본가 다실 한 권 호적'으로 가문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가문 가주 카토 사다미쓰가 출정 직전 가신단 봉록 결재 한 줄을 한 호흡 빠뜨린 채 본가를 떠나려 하자, 시게나리는 출정 행렬 앞에 자기 호적 명부 한 권을 정중히 펴 들고 사다미쓰의 발걸음을 한 호흡 멈춰 세웠다. 그 한 권 안에는 가신 한 명 우에다 마사미의 어머니 생일이 그 출정 사흘 안에 있다는 한 줄이 정중히 적혀 있었으며, 시게나리는 그 한 줄을 가리키며 "마사미의 어머니께 드릴 작은 봉록 한 줄을 결재하시고 떠나시지요"라고 정중히 청했다. 사다미쓰는 그 한 줄을 한 호흡에 결재한 뒤 출정을 정중히 떠났으며, 마사미는 그 봉록을 어머니께 정중히 올린 다음 날 출정 행렬에 합류해 한 합 결투에서 자기 가주를 정중히 등 뒤에서 막아냈다. 마사미의 어머니는 그 한 줄을 평생 자기 본가 작은 봉인함에 정중히 모셔 두었으며, 카토 가문 본가 다실 한복판에는 그날 펼쳐진 시게나리의 호적 명부 한 권이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다.
후대 카토 가문 카로들은 즉위 첫 주에 그 한 권을 정중히 한 호흡 펴 보는 관례를 따르며, 가신단 신참은 입문 첫 자세로 자기 어머니 생일을 한 줄 정중히 적어 카로에게 올린다.
은밀정탐사(隱密偵探士)
닌자 정탐(隱密)
그림자처럼 숨어드는 닌자 정탐
“내 보고서는 한 줄이오. 그 한 줄이 가문 한 시즌을 살리오. 길게 적지 마시오.”
닌자 정탐은 닌자 결사 안에서 단독 정탐과 야간 침투를 전담하는 상위 닌자로, 두령의 의뢰 중 가장 위험한 자리만 골라 받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검은 키모노, 어깨에 작은 결사 문양, 허리에 단검과 인술 두루마리, 발끝에 소리 없는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야간 경계 시각·옛 분기 잠복 자리·금기 출입 시각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정탐이 한 번 출발하면 두령조차 그가 어느 가문의 어느 처마 밑에 엎드려 있는지 묻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보고서는 큰 가문의 큰 음모가 아니라, "오늘 밤 그 가문의 마님이 밤참을 차렸다"는 한 줄이다. 가문 한 시즌은 그 한 줄 위에서 굴러간다.
“후대 정탐은 보고서 한 줄을 적기 전에 한 호흡을 두 번 쉬오. 한 줄 길이가 한 가문 시즌의 길이와 같다는 뜻이지요.”
카게구사 결사 정탐 시오자키 무치 — 결사 사십 년 정탐으로 한 줄 보고서 사백 통을 한 번도 두 줄로 늘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아메노시타 처마 밤참'으로 닌자 결사 사이에 길게 회자된다.
어느 늦겨울 무치는 인접 다이묘 가문 사오토메 가문의 본가 야간 잠복 의뢰를 받고 본가 처마 밑에 엎드려 사흘 밤을 정중히 보냈는데, 사흘째 새벽 본가 안주인이 어린 아들 사오토메 코타로의 첫 검술 시연 직전 작은 밤참 한 그릇을 정중히 차린 자세를 한 호흡에 보았다. 무치는 그 한 호흡을 두 번 정중히 쉰 뒤 결사 본거지에 한 줄 보고서 — "사오토메 본가 안주인, 아들 첫 시연 새벽 밤참 한 그릇" — 만 정중히 보냈으며, 두령 카지키 사이몬은 그 한 줄을 보고 사오토메 가문 적대 가문의 의뢰 두루마리를 정중히 반려했다. 그 한 줄 덕에 사오토메 코타로의 첫 검술 시연은 한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코타로는 그 시연에서 자기 가신단 한 줄 앞에 정중히 첫 카타를 보였다.
사오토메 가문은 그날의 정탐자가 누구인지 끝내 모른 채 사흘 뒤 자기 본가 처마 한 자리에 작은 밥그릇 한 개를 정중히 봉납해 두었으며, 무치는 다음 시즌 그 처마 밑에 자기 짚신 한 켤레를 정중히 한 자국으로 남기고 떠났다. 카게구사 결사 본거지에는 그날의 한 줄 보고서가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으며, 후대 정탐들은 입문 첫 사흘 그 한 줄 앞에서 한 호흡을 두 번 쉬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검집도공장(劍鞘刀工匠)
검집사(刀工)
한 자루 칼과 칼집을 만드는 도공
“이 검 한 자루에 한 가문 한 시대가 들어갑니다. 그러니 흥정은 받지 않습니다.”
검집사는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카타나·와키자시·단도를 정밀히 단조하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가슴팍에 작은 가문 문양 인장, 어깨에 망치와 정 묶음, 허리에 작은 줄자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검 길이·옛 분기 단조 결재·금기 합금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이 새 카타나를 의뢰하면 검집사는 먼저 그 가문 가주의 손바닥 두께를 재며, 그 한 칸 차이가 검의 다음 백 년을 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자루는 큰 가문의 보검이 아니라, 처음 진검을 받는 어린 사무라이의 손바닥 위에 놓이는 작은 단도다. 검집사의 망치 소리는 그 한 손바닥의 무게를 외우는 소리다.
“후대 검집사는 의뢰 두루마리보다 어린 손바닥 한 줄 자국을 먼저 외우오. 그 한 줄이 백 년 카타나 한 자루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검집사 카네우치 도요시게 — 일본 서쪽 카네우치 단조장(金内鍛冶場, 사십 년 가업을 이은 작은 단조장) 삼대 장인이자 평생 카타나 사백 자루를 단조하면서 두 자루를 같은 손바닥 두께로 만들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쇼이치로의 첫 단도'로 단조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하급 사무라이 부친을 따라 단조장에 처음 들어선 어린 평민 자식 쇼이치로(당시 열한 살, 가문 봉록이 끊긴 낭인 부친의 외아들)가 자기 첫 단도 한 자루를 의뢰하러 왔는데, 쇼이치로의 부친은 봉록이 끊겨 정중히 보수의 절반만 들고 왔다. 도요시게는 쇼이치로의 손바닥 두께를 한 호흡에 정중히 재고는 보수 한 줄을 한 호흡 정중히 풀어 두었으며, 사흘 동안 정중히 망치를 두드려 쇼이치로의 손바닥 두께에 정확히 한 칸 맞춘 작은 단도 한 자루를 빚어냈다. 그 단도 위에 도요시게는 자기 가문 인장 대신 쇼이치로의 한 줄 — "쇼이치로의 첫 손바닥" — 만 정중히 작은 글자로 새겼으며, 쇼이치로는 그 단도를 평생 자기 허리에 정중히 차고 다녔다.
사십 년 뒤 쇼이치로는 자기 가문을 정중히 다시 일으켜 인접 영지 작은 가문의 가주가 되었으며, 그가 자기 가문 본가 보검 자리에 정중히 봉인한 한 자루는 가문 보검이 아니라 그 어린 시절 첫 단도였다. 카네우치 단조장 작업장 한쪽에는 쇼이치로의 손바닥 한 줄 자국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놓여 있으며, 후대 검집사들은 의뢰 첫 자세로 어린 손바닥 두께를 정중히 재는 자세 연습부터 시작한다.
다도종장사(茶道宗匠師)
다도(茶道) 사범
다도의 도(道)를 가르치는 사범
“찻잔의 한 호흡이 결투의 한 호흡과 같다. 같은 호흡으로 마시되, 다른 자세로 내려놓으시지요.”
다도 사범은 가문 다실(茶室)에서 가주·가신·외교관에게 다도의 자세와 한 잔의 호흡을 가르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키모노, 어깨에 작은 다회 문양, 허리에 작은 부채와 다구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다회 자리·옛 분기 다회 결재·금기 화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외교 협상이 결렬 직전일 때, 다도 사범이 차를 한 번 더 따라주는 그 한 모금이 가문 두 장을 같은 자리에 묶어둔다. 가장 무거운 다회는 큰 가문의 첫 다회가 아니라, 결투 직전 두 무사가 마주 앉은 작은 다실의 한 잔 위에 있다. 다도 사범의 진짜 직무는 그 한 호흡을 가르치지 않고 함께 쉬는 자세다.
“후대 다도 사범은 한 잔을 따라주는 자세보다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정중히 함께 쉬는 자세를 먼저 배우오. 그 한 호흡이 두 결투를 한 잔으로 묶는다는 뜻이지요.”
다도 사범 우라가미 소슌 — 일본 동쪽 다이묘 가문 우라가미 가문 본가 다실 사범 사십 년이자 평생 한 잔의 차를 한 호흡 안에 두 번 따른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아카츠키 다실(暁茶室, 우라가미 가문 본가 새벽 다실) 결투 전 한 잔'으로 다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새벽 우라가미 가문 가신 우라가미 헤이고와 인접 가문 가신 사노 류헤이가 한 줄 명예 분쟁으로 결투 청을 들고 새벽 아카츠키 다실에 마주 앉았다. 소슌은 두 무사 사이에 한 잔의 차를 정중히 따라 두고, 자기는 다실 한쪽에 정중히 무릎을 꿇은 채 한 호흡도 말을 보태지 않고 함께 쉬었다. 두 무사는 한 잔 차의 온도가 정중히 식는 사흘 호흡 동안 자기 카타나의 손잡이를 한 호흡씩 정중히 풀었다 다시 잡았으며, 한 잔 차가 정중히 비워질 때 두 사람 모두 결투 청을 정중히 거두었다.
두 사람은 그 한 잔 차의 빈 잔을 정중히 두 손으로 함께 들어 다실 한쪽 봉납대에 정중히 봉납했으며, 헤이고와 류헤이는 다음 봄 자기 가문 사이 작은 외교 결재 한 줄을 정중히 함께 굴렸다. 아카츠키 다실 한쪽에는 그날의 빈 차잔 한 자루가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놓여 있으며, 우라가미 가문 다도 사범 후학들은 입문 첫 사흘 그 빈 잔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고 한 호흡 함께 쉬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신사궁사장(神社宮司長)
신사 무녀관(宮司)
신사를 통솔하는 무녀관
“신께서 답을 주시지는 않소. 다만 그대가 이미 알고 있는 다음 한 호흡을 알려드릴 뿐이오.”
신사 무녀관은 마을 작은 신사(神社)와 큰 가문 신전을 함께 관할하며, 출정 의례·결투 봉헌·혼례 봉납을 정중히 진행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정장 키모노, 어깨에 신사 문양 어깨끈, 허리에 작은 봉납 두루마리와 정화 부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봉헌 일자·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의례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출정 직전 무사들이 신사 앞에서 한 호흡을 길게 쉴 때, 무녀관은 그 한 호흡을 같은 길이로 함께 쉬며 한 줄 봉납을 정중히 받는다. 가장 무거운 봉납은 큰 출정이 아니라, 살아 돌아오지 못한 자의 가족이 정중히 들고 오는 작은 한 잎 위에 있다. 신사의 진짜 정점은 본전이 아니라, 그 한 잎이 놓인 작은 봉납대다.
“후대 무녀관은 본전 봉헌보다 작은 봉납대 한 잎 자리를 먼저 정중히 닦소. 그 한 잎의 무게가 큰 출정 봉헌 백 줄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후타바 신사(双葉神社, 일본 중부 산자락 작은 신사) 칠대 무녀관 아카하시 슈겐 — 신사 사십 년 무녀관으로 출정 봉헌 사백 회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자의 가족 봉납 사백 회를 같은 자세로 정중히 받은 자 — 의 일화는 '한 잎의 봉납'으로 신사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인접 다이묘 가문의 출정에서 어린 가신 후카가와 다이스케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그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평생 모은 작은 단풍잎 한 장 — 다이스케가 첫 출정 직전 어머니께 정중히 드린 한 잎 — 을 들고 사흘을 걸어 후타바 신사에 정중히 도착했다. 슈겐은 본전 봉헌이 아니라 신사 작은 봉납대 한 자리를 정중히 한 호흡 닦은 뒤, 어머니의 한 잎을 봉납대 한가운데에 정중히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슈겐은 그날 본전 봉헌 결재를 한 호흡 늦추고 어머니 옆에 정중히 무릎을 꿇은 채 한 시진을 함께 쉬었으며, 어머니는 그 한 시진 동안 한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자기 아들의 이름을 정중히 한 줄 부르고 신사를 떠났다. 후타바 신사 작은 봉납대 한쪽에는 그날의 단풍잎 한 장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놓여 있으며, 매년 늦가을 그 자리에는 인접 가문 가신단이 자기 출정에서 살아 돌아온 자의 한 잎을 정중히 한 장씩 더 봉납한다.
후대 무녀관들은 입문 첫 가을 그 봉납대 한 자리를 정중히 닦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하며, 출정 봉헌 결재보다 그 한 잎의 자리를 먼저 챙기는 한 줄 도훈이 신사 입구에 정중히 걸려 있다.
결투봉행사(決鬪奉行士)
결투 입회 봉행(奉行)
결투 입회와 판정을 맡은 봉행
“두 분, 검을 뽑기 전에 한 호흡 더 쉬시지요. 결투는 그 한 호흡 안에서 이미 정해집니다.”
결투 입회 봉행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정식 결투에 입회하여 검 뽑는 시점·결투 종료 시점·사후 정중한 통보를 정중히 결정하는 자로, 가문과 가문의 결투를 한 줄 결재로 묶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하오리, 가슴팍에 작은 입회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작은 부채와 결재 두루마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결투 자리·옛 분기 결재 한 줄·금기 결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결투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봉행이 직접 그 가족 앞에 정중히 한 줄 통보를 들고 가며, 그 한 줄이 가문 한 시즌의 한 호흡을 정한다. 가장 무거운 입회는 큰 결투가 아니라, 결투 후 한 가족 앞에 정중히 서는 그 한 자세 위에 있다.
“후대 입회 봉행은 결투 시작 한 호흡보다 가족 앞 한 자세를 먼저 외우오. 부채 한 자루의 무게는 그 한 자세 위에 있다는 뜻이지요.”
결투 입회 봉행 모리시타 다이가쿠 — 봉행 사십 년으로 결투 사백 회를 입회하고 사후 통보 사백 줄을 한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게 정중히 가족 앞에 들고 간 자 — 의 일화는 '치도리가하라(千鳥ヶ原, 일본 중부 결투지로 가장 자주 쓰이는 큰 풀밭) 한 줄 통보'로 봉행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인접 가문 가신 다카쿠라 시게유키와 사이가와 가신 호리 류이치가 한 줄 명예 분쟁으로 치도리가하라에서 결투를 벌여 시게유키가 한 합에 정중히 사망했다. 다이가쿠는 결투 종료 한 호흡 뒤 자기 부채를 정중히 한 번 닫고, 시게유키의 본가 — 본가 어린 자식 셋이 새벽 다실에서 아버지의 출정 귀가를 기다리던 자리 — 까지 사흘 길을 정중히 걸어 한 줄 통보를 직접 들고 갔다. 다이가쿠는 본가 다실 입구에 정중히 한 호흡 멈춰 선 채 어린 자식 셋의 호흡을 정중히 한 호흡 함께 쉰 뒤, 자기 부채를 정중히 두 손으로 받쳐 한 줄 통보를 정중히 올렸다.
어린 자식 셋은 그 한 줄 앞에서 한 호흡 흐트러지지 않은 채 정중히 합장했으며, 다이가쿠는 자기 사재로 어린 자식 셋의 다음 시즌 한 끼를 정중히 보전한 봉록 결재 한 줄을 카로에게 정중히 청했다. 시게유키 본가 다실 입구에는 그날 정중히 멈춰선 다이가쿠의 발자국 한 줄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새겨져 있으며, 후대 입회 봉행들은 즉위 첫 가을 그 자국 앞에 자기 부채를 정중히 한 번 닫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낭인하급사(浪人下級士)
하급 사무라이(浪人)
녹봉 없는 떠돌이 하급 사무라이
“주군이 없다고 검이 작아지지는 않소. 다만 한 끼가 매일 작아질 뿐이오.”
하급 사무라이는 한때 가문에 봉록을 받았으나 가문이 멸문하거나 봉록이 끊겨 한 시대를 떠도는 무사로, 보통 낭인(浪人)이라 불린다. 외형은 닳은 짙은 색 키모노, 어깨에 작은 봇짐,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와 작은 와키자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마을의 평소 일거리 단가·옛 분기 객주 결재·금기 의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가문의 가신은 가문이 굴러가는 동안만 강하지만, 낭인의 검은 가문 없이도 한 합 한 합이 매일의 한 끼다. 그래서 객주에서 가장 정중히 카타나를 검집에서 빼지 않는 자가 바로 낭인이다. 가장 무거운 검은 큰 가문의 보검이 아니라, 한 마을 작은 일거리 한 줄 위에 놓이는 그 닳은 한 자루다.
“후대 낭인은 큰 가문 가신 자리보다 마을 작은 일거리 한 줄 자리를 먼저 외우오. 그 한 줄이 가문 한 줄보다 정직하다는 뜻이지요.”
낭인 야마자키 도쿠지 — 한때 멸문한 야마자키 가문(山崎家, 일본 서쪽 영지 두 마을을 거느린 한 시대 작은 가문) 가신이었다가 가문 멸문 후 사십 년을 마을 일거리 한 줄로 떠돈 자 — 의 일화는 '하루노이 마을 사흘 일거리'로 낭인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여름 하루노이 마을(春野井村, 일본 서쪽 작은 산골 마을)이 산적 일곱에 사흘에 걸쳐 약탈당하고 있을 때, 마을 잡화점 주인은 평소 보수의 절반밖에 줄 수 없다며 도쿠지에게 정중히 일거리 청을 보냈다. 도쿠지는 그 절반 보수를 한 호흡에 정중히 받고는 마을 입구 작은 다리 위에 자기 카타나를 정중히 가로 누인 채 사흘을 정중히 버텼다. 사흘째 새벽 산적 두목이 다리 위에 정중히 도착해 도쿠지에게 결투 청을 보냈으나, 도쿠지는 한 합에 산적 두목의 도(刀)를 정중히 두 동강 낸 뒤 정중히 산적 일곱을 마을 밖으로 한 호흡 멀리 정중히 보냈다.
마을 잡화점 주인은 그 사흘 뒤 도쿠지에게 평소 보수의 두 배를 정중히 들고 왔으나, 도쿠지는 절반 보수만 정중히 받고 나머지 절반은 마을 어린아이 일곱의 그 시즌 한 끼를 위해 정중히 잡화점 주인 손에 다시 정중히 돌려놓고 다음 마을로 떠났다. 하루노이 마을 다리 한쪽에는 그날 정중히 가로 누인 도쿠지의 카타나 자국 한 줄이 정중히 새겨진 채 지금도 남아 있으며, 후대 낭인들은 그 다리 위에 자기 카타나를 정중히 한 호흡 가로 누이는 자세를 '도쿠지 절반'이라 부른다. 마을에서는 가장 무거운 검은 절반 보수 한 줄 위에 있다고들 한다.
약초채집자(藥草採集者)
약초 채집인
산을 다니며 약초를 캐는 자
“이 한 잎, 한 가문 한 시즌의 한 호흡을 살리오. 그러니 함부로 밟지 마시오.”
약초 채집인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산속·계곡·옛 절터에서 약초와 영초(靈草)를 채집해 다이묘 가문 의원과 마을 의원에 납품하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키모노, 어깨에 약초 가방, 허리에 작은 채집용 단도와 한 줄 약초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약초의 자생지·옛 분기 채집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결투에서 다친 무사가 도착하기 전에, 채집인의 한 잎이 의원 책상 위에 먼저 놓여 있어야 한다. 가장 무거운 한 잎은 큰 가문의 영초가 아니라, 작은 마을 어린아이의 첫 열병에 쓰이는 닳은 풀잎이다. 채집인의 발걸음은 그 한 잎의 무게를 외우는 발걸음이다.
“후대 채집인은 큰 가문 영초 자리보다 작은 마을 어린아이 풀잎 자리를 먼저 외우오. 그 한 잎이 영초 한 뿌리보다 정직하다는 뜻이지요.”
약초 채집인 노자키 사다 — 일본 동쪽 노자키 산자락(野崎山, 작은 마을 일곱을 굽어보는 한 능선)을 사십 년 정중히 오른 평민 장인이자 평생 영초 한 뿌리를 정중히 양보한 자세를 한 줄로 외운 자 — 의 일화는 '히바리 마을 첫 열병'으로 약초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봄 히바리 마을(雲雀村, 노자키 산자락 한가운데 작은 산골 마을) 어린아이 셋이 첫 열병으로 사흘을 정중히 끙끙 앓았는데, 사다는 그 사흘 동안 마침 다이묘 가문 가주 결투 후 부상에 쓰일 영초 한 뿌리를 정중히 채집해 두고 있었다. 사다는 그 영초 한 뿌리를 정중히 다이묘 가문 의원 책상으로 보내는 한 호흡 직전, 히바리 마을 어린아이 셋의 첫 열병 한 줄 소식을 정중히 보부상에게 들었다. 사다는 영초 한 뿌리를 정중히 다이묘 가문에 보내고는, 자기 사재로 닳은 풀잎 한 묶음을 정중히 한 호흡에 더 채집해 히바리 마을 의원 책상 위에 정중히 한 호흡 먼저 올려두었다.
어린아이 셋은 사흘 안에 정중히 첫 열병을 정중히 한 호흡 내렸으며, 다이묘 가문 가주는 영초 한 뿌리를 정중히 한 호흡에 받고는 사다에게 자기 사재로 노자키 산자락 한 줄 면세 결재를 정중히 굴렸다. 노자키 산자락 한가운데에는 그날 사다가 정중히 한 호흡 더 머문 풀밭 한 자리가 정중히 풀로 다듬어진 채 지금도 남아 있으며, 후대 채집인들은 입문 첫 봄 그 자리에 자기 채집용 단도를 정중히 한 호흡 가로 누이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비각우편자(飛脚郵便者)
마을 우편 비각(飛脚)
마을 사이 우편을 전하는 비각
“이 한 통, 가문 한 시대의 한 줄이오. 비가 와도 젖히지 않겠소.”
마을 우편 비각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가문 사이·마을 사이를 단정한 한 호흡으로 달리며 서신·결재 두루마리·작은 봉납을 옮기는 평민 출신 전령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어깨에 우편 통과 작은 봇짐, 허리에 작은 단도와 비각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길의 평소 노면·옛 분기 비 오는 자리·금기 출입 시각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이 큰 결재를 보내면 비각은 사흘 길을 두 호흡 만에 줄여 달리며, 한 통 안의 한 줄이 가문 한 시즌의 결재를 굴린다. 가장 무거운 한 통은 큰 가문의 정전 조약이 아니라, 시집 간 딸이 친정에 보내는 작은 한 줄 안부다. 비각의 발끝은 그 한 줄의 무게를 외우는 발끝이다.
“후대 비각은 큰 가문 결재 두루마리보다 작은 한 줄 안부를 먼저 봇짐 안 정중한 자리에 두오. 그 한 줄의 무게가 정전 조약 한 권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마을 우편 비각 사이토 켄지로 — 일본 동쪽 동가도 사십 년 비각으로 한 통도 비에 정중히 적시지 않은 자이자 평생 작은 한 줄 안부를 평생 봇짐 정중한 자리에 정중히 묶어 둔 자 — 의 일화는 '시구레가도(時雨街道, 동가도 한가운데 한 시진 비가 정중히 자주 오는 한 굽이) 한 통 안부'로 비각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인접 마을 작은 농가의 시집 간 딸 미사키가 친정 어머니 — 그 가을 첫 열병으로 사흘을 정중히 앓던 노부 — 께 정중히 보내는 한 줄 안부 한 통을 켄지로에게 정중히 맡겼다. 켄지로는 그 한 통을 자기 봇짐 정중한 한가운데에 정중히 묶고는, 시구레가도 한 굽이에서 한 시진 비가 정중히 쏟아지자 자기 외투를 정중히 봇짐 한 줄 위에 정중히 덮어 자기 등이 비에 정중히 한 호흡 흠뻑 젖은 채 정중히 사흘 길을 두 호흡 만에 정중히 줄여 달렸다. 친정 어머니는 그 한 통의 한 줄 — "어머님, 사흘 안에 일어나 주세요" — 을 정중히 한 호흡 받고는 그날 새벽 첫 열병을 정중히 한 호흡 내렸으며, 켄지로는 자기 외투 한 자락이 정중히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친정 마당에 정중히 한 호흡 무릎을 꿇고 한 통을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시구레가도 한 굽이에는 그날 켄지로의 발자국 한 줄이 정중히 새겨진 작은 비석이 지금도 정중히 서 있으며, 후대 비각들은 입문 첫 가을 그 비석 앞에 자기 봇짐을 정중히 한 호흡 묶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필경수행승(寫經修行僧)
사찰 필경승(寫經僧)
사찰에서 경전을 베끼는 필경승
“한 글자에 한 호흡이오. 그 한 호흡이 다음 백 년의 한 줄이오.”
사찰 필경승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사찰 한 자리에 평생 앉아 경전·가문 호적·결재 사본을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승복, 가슴팍에 작은 사찰 문양 펜던트, 한 손에 작은 붓과 옛 종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호적 한 줄·옛 분기 결재 사본·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이 다른 가문의 옛 결재를 정중히 확인할 때, 가장 정확한 한 줄을 들고 오는 자리가 바로 필경승의 책상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가문의 호적이 아니라, 멸문된 가문 어린 자식의 이름 한 줄이다. 필경승의 붓은 그 이름 한 줄이 다음 백 년 동안 잊히지 않게 하는 한 호흡이다.
“후대 필경승은 큰 가문 호적 한 권보다 멸문된 가문 어린 자식 이름 한 줄을 먼저 정중히 옮겨 적소. 그 한 줄이 백 년 호적 한 권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코묘지 사찰(光明寺, 일본 중부 산자락 작은 사찰) 칠대 필경승 묘에이 — 사찰 사십 년 필경승으로 평생 경전 사본 사백 권을 정중히 한 글자 한 호흡으로 옮겨 적은 자 — 의 일화는 '미카게 가문(三影家, 한 시대 작은 영지 한 마을을 거느린 가문) 어린 자식 한 줄'로 사찰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미카게 가문이 인접 가문 분쟁 끝에 정중히 멸문하고 가문 호적이 정중히 한 호흡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을 때, 묘에이는 자기 사찰 한 자리에 정중히 무릎을 꿇고 미카게 가문 어린 자식 일곱의 이름 한 줄씩을 정중히 한 호흡 한 글자 한 자세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사흘 사이 묘에이는 자기 붓을 정중히 일곱 번 정중히 새 붓으로 갈아 끼웠으며, 그 사흘 동안 자기 식사 한 끼도 정중히 거른 채 어린 자식 일곱의 이름을 정중히 한 줄씩 정중히 봉인된 옛 종이 한 장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그 한 장은 코묘지 사찰 가장 안쪽 봉인함 정중한 자리에 정중히 봉인된 채 백 년이 정중히 흘렀고, 백 년 뒤 미카게 가문 마지막 어린 자식의 후손 — 정중히 자기 가문 호적이 끊긴 줄 알고 평생 다른 가문 가신으로 살아온 평민 — 이 정중히 코묘지에 한 호흡 도착해 그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에 받아 들었다.
그 후손은 자기 가문 본가를 정중히 다시 한 호흡 일으켰으며, 코묘지 사찰 봉인함 한쪽에는 그날의 일곱 줄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다.
잡화점주인(雜貨店主人)
마을 잡화점 주인
마을 잡화점을 지키는 주인
“오늘 소금은 두 칸 더 들였소. 무사님 출정이 잦은 시즌이오.”
마을 잡화점 주인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마을 한 자리에 작은 잡화점을 열고 소금·기름·짚신·작은 등잔을 파는 평민 출신 상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닳은 주판이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 단골 모든 가문의 평소 식성·옛 분기 출정 시즌·금기 단가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다이묘 가문 출정 한 호흡 전에 가장 먼저 소금 단가를 두 칸 올리는 자가 바로 잡화점 주인이며, 가장 먼저 다시 한 칸 내리는 자도 본인이다. 가장 무거운 한 칸은 큰 가문의 보검이 아니라, 출정 사흘째 어린 자식의 한 끼에 들어가는 작은 한 줌 소금이다. 잡화점 주인의 주판은 그 한 줌의 무게를 외우는 주판이다.
“후대 잡화점 주인은 출정 첫 단가 한 칸을 정중히 올리는 자세보다, 출정 사흘째 한 칸을 정중히 내리는 자세를 먼저 배우오. 그 한 칸의 정직이 마을 한 시즌을 정중히 굴린다는 뜻이지요.”
잡화점 주인 마쓰모토 다네하루 — 일본 동쪽 작은 산골 마을 마쓰모토 마을(松本村, 다이묘 가문 출정 길목에 자리한 한 마을) 잡화점 사대 주인으로 평생 소금 단가를 한 호흡 정중히 올리고 한 호흡 정중히 내린 자 — 의 일화는 '한 줌 소금 사흘'로 마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인접 다이묘 가문의 큰 출정이 정중히 선포되자 다네하루는 평소처럼 소금 단가를 정중히 두 칸 올렸으나, 출정 사흘째 새벽 마을 어린아이 일곱이 정중히 한 호흡 첫 열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보부상 카게무라 토헤이에게 정중히 한 호흡 받았다. 다네하루는 그 한 호흡에 자기 잡화점 소금 단가를 평소보다 정중히 한 칸 더 정중히 내렸으며, 자기 사재로 소금 한 줌씩을 정중히 일곱 봉지 정중히 묶어 마을 어린아이 일곱 집 한 호흡씩 정중히 보냈다. 그 사흘 사이 어린아이 일곱은 정중히 한 호흡 첫 열병을 정중히 내렸으며, 다네하루는 출정 귀환 후 정중히 한 호흡 단가를 다시 정중히 한 칸 올렸으나 다음 시즌 봉록을 정중히 한 호흡 줄여 어린아이 일곱의 한 끼를 정중히 한 줌씩 정중히 더 묶어 보냈다.
마쓰모토 마을 잡화점 한쪽에는 그날의 한 줌 소금 봉지가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으며, 후대 잡화점 주인들은 출정 사흘째 새벽에 자기 주판을 정중히 한 호흡 멈추고 마을 어린아이 한 줄 안부를 정중히 듣는 관례를 따른다.
객주점주인(客主店主人)
객주(客主) 점주
여행객을 재우는 객주의 주인
“다다미 두 칸은 비워 두었소. 어느 진영이든, 오늘 밤은 손님이오.”
객주 점주는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길목 마을의 작은 객주(客主)를 운영하며 무사·낭인·비각·보부상 모두에게 한 끼와 한 잠자리를 내주는 평민 출신 주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행주와 작은 주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단골의 평소 식성·옛 분기 객주 한 끼의 결정적 시점·금기 화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객주 안에서는 다이묘 가문 가신과 낭인이 같은 다다미 두 칸을 사이에 두고 같은 한 끼를 먹으며, 점주는 두 진영 어느 쪽의 검도 객주 안에서는 검집에서 빠지지 않게 한다. 가장 무거운 한 끼는 큰 가문의 출정 전 마지막 한 끼가 아니라, 살아 돌아온 낭인이 정중히 되갚는 작은 한 그릇 위에 있다.
“후대 점주는 큰 가문 가신 한 끼보다 살아 돌아온 낭인 한 그릇을 먼저 외우오. 그 한 그릇이 가문 한 시대 한 끼보다 정직하다는 뜻이지요.”
무라사메 객주(村雨客主, 일본 중부 길목 마을 한 자리의 작은 객주) 사대 점주 무라사메 사스케 — 객주 사십 년 점주로 평생 다다미 두 칸을 정중히 한 호흡도 비우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귀환 한 그릇'으로 객주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인접 가문 출정에서 살아 돌아온 낭인 한 명 — 평민 출신으로 가문 봉록이 정중히 끊긴 떠돌이 무사 토타로 — 가 정중히 한 호흡 출정 사흘 전 사스케에게 정중히 한 끼 외상을 정중히 청해 두었다. 토타로는 출정 후 정중히 한 호흡 살아 돌아왔으며, 자기 사흘 일거리 보수의 절반을 정중히 한 호흡 사스케에게 외상 한 그릇 보수로 정중히 한 호흡 갚으려 했다. 그러나 사스케는 정중히 그 절반을 정중히 한 호흡 받지 않고, 토타로의 등 뒤에 자기 손을 정중히 한 호흡 얹은 채 정중히 같은 다다미 두 칸 사이에 한 그릇을 정중히 한 호흡 더 따로 차려 두었다.
토타로는 그 한 그릇을 정중히 한 호흡 받고는 그날 새벽 자기 외상 보수를 정중히 한 호흡 사스케 옆 다다미 두 칸 옆 객주 단골 어린 평민 자식 — 첫 비각 일을 정중히 시작한 어린 평민 켄지로 — 의 첫 한 끼 정중한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 옮겨 놓았다. 그 한 그릇 자리는 지금도 무라사메 객주 다다미 두 칸 사이에 정중히 봉인된 자리로 남아 있으며, 후대 객주 점주들은 살아 돌아온 단골 한 명에게는 정중히 한 그릇을 한 호흡 더 차리는 관례를 따른다.
막부군감장(幕府軍監將)
막부 군감(軍監)
막부 군영을 감찰하는 군감
“이 진영의 한 호흡이 어긋났소. 출정 전, 그 한 호흡부터 다시 맞추시지요.”
막부 군감은 쇼군의 직속 명령으로 다이묘 가문의 진영을 직접 시찰하며 군기·진법·보급 결재를 한 줄로 점검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하오리, 어깨에 막부 문양 작은 휘장, 한 손에 점검 두루마리와 작은 부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의 옛 진법 결재·옛 분기 보급 한 줄·금기 진영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 가신단은 군감의 한 호흡 점검 앞에서 카로보다 먼저 자세를 가다듬으며, 군감의 한 줄 결재가 출정의 다음 한 호흡을 정한다. 가장 무거운 점검은 큰 출정 직전이 아니라, 출정 후 살아 돌아온 자들의 발자국 수를 세는 그 한 자리 위에 있다. 군감의 부채는 그 발자국 수를 외우는 부채다.
“후대 군감은 출정 직전 점검보다 귀환 발자국 한 줄 세기를 먼저 배우오. 발자국 한 줄의 차이가 가신단 한 호흡의 정직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막부 군감 다이라 노부오키 — 군감 사십 년으로 출정 사백 회를 정중히 점검하고 귀환 발자국 한 줄을 한 호흡 늦지 않게 정중히 세 둔 자 — 의 일화는 '오와리 진영(尾張陣, 오와리 가문 본가 출정 진영) 한 발자국 차이'로 막부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봄 오와리 가문 본가 출정 행렬이 인접 영지 분쟁 한 줄로 정중히 한 호흡 출정해 사흘 길을 정중히 한 호흡에 떠났는데, 노부오키는 출정 직전 점검에서 가신 한 명 오와리 진영 보급 가신 가타기리 료헤이 — 한 시즌 출정에서 정중히 한 호흡 처음 출정하는 어린 평민 출신 가신 — 의 짚신 한 켤레가 평소보다 정중히 한 호흡 짧다는 사실을 정중히 한 줄 점검 두루마리에 정중히 적어 두었다. 노부오키는 그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카로에게 정중히 보냈고, 카로는 정중히 한 호흡에 짚신 장인에게 료헤이의 발 모양 정확한 한 줄 자세로 짚신 한 켤레를 정중히 한 호흡에 새로 정중히 묶어 보냈다. 그 한 켤레 덕에 료헤이는 사흘 길 출정에서 정중히 한 호흡 발이 정중히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출정 귀환 후 노부오키가 정중히 발자국 한 줄을 정중히 셀 때 료헤이의 발자국 한 줄이 정중히 다른 가신단 한 줄과 정중히 같은 정중한 자세로 정중히 새겨져 있었다.
오와리 진영 본가 점검 두루마리 한쪽에는 그날의 한 줄 점검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으며, 후대 군감들은 출정 직전 점검에서 가신단 짚신 한 켤레를 정중히 한 호흡 살피는 자세를 '노부오키 한 줄'이라 부른다.
소우케가주(宗家家主)
가문 소우케(宗家) 가주
가문 본가를 잇는 소우케 가주
“본가 한 줄이 분가 일곱 줄을 묶고 있소. 이 한 줄은 함부로 풀지 않소.”
가문 소우케 가주는 한 무사 가문의 본가(宗家)를 잇는 가주로, 분가(分家) 일곱 줄의 봉록·혼인·결재를 본가 한 도장 아래로 묶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가문 문양 하오리, 어깨에 본가 깃발 작은 휘장, 허리에 한 자루 카타나와 본가 호적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분가 모든 자녀의 첫 검술 시연 일자·옛 분기 분가 결재·금기 본가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 가주가 카로의 결재를 받는 동안, 소우케 가주는 분가 일곱 줄의 가주들이 같은 자리에 마주 앉도록 본가 다실을 정중히 굴린다. 가장 무거운 본가 도장은 큰 분가의 출정 결재가 아니라, 멸문 직전 분가의 어린 자식을 본가로 들이는 그 한 줄 위에 있다. 본가의 진짜 깃발은 그 한 줄 위에 꽂혀 있다.
“후대 소우케 가주는 큰 분가 출정 결재보다 멸문 직전 분가 어린 자식 한 줄을 먼저 본가 호적에 정중히 적소. 그 한 줄이 본가 깃발 한 장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시미즈 가문 칠대 소우케 가주 시미즈 사다타카 — 시미즈 본가(清水本家, 일본 동쪽 영지 분가 일곱 줄을 거느린 한 시대 본가) 소우케 사십 년 가주이자 평생 멸문 직전 분가 어린 자식 다섯을 본가 호적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 적은 자 — 의 일화는 '본가 호적 한 줄 다섯'으로 가문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가을 시미즈 가문 분가 일곱 가운데 가장 작은 분가 시미즈 마타키치 분가 — 영지 한 줄 분쟁으로 정중히 한 호흡에 멸문 직전에 놓인 작은 분가 — 의 어린 자식 시미즈 코지로(당시 아홉 살, 분가 멸문 직전 어머니께서 정중히 한 호흡 본가에 정중히 보낸 외아들)가 정중히 한 호흡 본가 다실에 도착했다. 사다타카는 그 한 호흡에 본가 호적 명부 한 권을 정중히 한 호흡에 펴 들고, 코지로의 이름을 본가 호적 한 줄 — 분가 일곱 줄 가운데 가장 윗줄 — 에 정중히 한 호흡 적었다. 분가 일곱 줄 가주들은 정중히 한 호흡에 본가 다실에 모여 그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 합장했으며, 사다타카는 자기 본가 봉록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줄여 코지로의 다음 시즌 한 끼를 정중히 한 호흡 보전했다.
사십 년 뒤 코지로는 시미즈 가문 팔대 소우케 가주가 되어 자기 어머니의 분가 작은 깃발 한 장을 정중히 한 호흡 본가 다실 한복판에 정중히 봉인하고, 같은 자세로 멸문 직전 분가 어린 자식 셋을 본가 호적에 정중히 적었다. 시미즈 본가 다실 한쪽에는 그날의 작은 깃발 한 장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다.
가문전의관(家門典醫官)
가문 군의관(典醫)
가문의 병을 다스리는 군의관
“이 한 침은 검 한 합보다 정확해야 하오. 그러니 호흡부터 멈추시오.”
가문 군의관은 다이묘 가문 진중과 본가 의실(醫室)에 동시에 소속되어 가신·무사·낭인의 결투 후 상처와 출정 후 열병을 다루는 평민 출신 의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작업 키모노, 어깨에 가문 문양 작은 휘장, 허리에 침통과 약초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문 가신의 옛 부상 자리·옛 분기 약초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결투에서 한 무사가 의실로 들어오면, 군의관은 검을 본 자리보다 먼저 그 무사의 호흡 한 박자를 외운다. 가장 무거운 한 침은 큰 가주의 결투 후가 아니라, 첫 출정 후 돌아온 어린 가신의 첫 열병 위에 놓이는 한 침이다. 군의관의 침통은 그 첫 한 박자의 무게를 외우는 침통이다.
“후대 군의관은 큰 가주 결투 후보다 어린 가신 첫 열병을 먼저 정중히 한 침으로 받소. 그 첫 한 박자가 가문 한 시즌의 정직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가문 군의관 토미타 사이슌 — 토미타 가문(富田家, 일본 중부 영지 세 마을을 거느린 한 시대 작은 가문) 의실 사십 년 군의관으로 평생 첫 출정 어린 가신 백 명의 첫 열병을 정중히 한 침으로 정중히 한 호흡 받은 자 — 의 일화는 '치카히토의 첫 한 침'으로 의실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여름 토미타 가문 첫 출정 어린 가신 토미타 치카히토(당시 열다섯, 평민 부모를 둔 가신 외아들)가 정중히 한 호흡 첫 출정에서 한 합 결투 후 정중히 한 호흡 첫 열병에 정중히 한 호흡 들어 의실에 정중히 한 호흡 도착했다. 사이슌은 그 한 호흡에 자기 침통을 정중히 한 호흡 풀고, 치카히토의 호흡 한 박자를 정중히 한 호흡 외운 뒤 정중히 한 침을 치카히토의 어깨 한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 놓았다. 사이슌은 그 한 침을 정중히 한 호흡 놓은 뒤 자기 식사 한 끼를 정중히 한 호흡 거른 채 치카히토 옆 의실 다다미 한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 무릎을 꿇고 사흘을 정중히 한 호흡 함께 쉬었다.
사흘 사이 치카히토는 정중히 한 호흡 첫 열병을 정중히 한 호흡 내렸으며, 그 한 호흡 뒤 자기 부모께 정중히 한 호흡 첫 봉록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봉납했다. 토미타 가문 의실 한쪽에는 그날의 한 침이 정중히 봉인된 작은 침통 한 자리가 정중히 놓여 있으며, 후대 군의관들은 입문 첫 봄 그 침 앞에 정중히 한 호흡 무릎을 꿇고 자기 침통을 정중히 한 호흡 정중히 풀어보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산용봉행사(算用奉行士)
봉록 회계 부교(算用奉行)
가문의 봉록 회계를 맡은 부교
“주판 한 칸이 가신 한 명의 한 끼요. 한 칸도 함부로 흔들지 마시오.”
봉록 회계 부교는 다이묘 가문에서 가신단 봉록·세수·창고 결재를 한 줄 주판으로 굴리는 평민 출신 회계 가신으로, 카로의 결재 더미 옆에 늘 함께 앉아 있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하오리, 어깨에 가문 문양 작은 휘장, 한 손에 닳은 큰 주판과 봉록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가신의 옛 봉록 한 칸·옛 분기 세수 결재·금기 결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이 출정 한 호흡 전, 가장 먼저 책상에 올라가는 한 줄이 부교의 봉록 결재이며, 그 한 줄이 가신 한 명의 다음 한 끼를 정한다. 가장 무거운 주판 한 칸은 큰 출정 결재가 아니라, 멸문 직전 분가 어린 자식의 한 끼에 들어가는 그 작은 한 칸이다. 부교의 주판은 그 한 칸의 무게를 외우는 주판이다.
“후대 부교는 큰 출정 결재 한 줄보다 멸문 분가 어린 자식 한 칸을 먼저 정중히 굴리오. 그 한 칸의 정직이 가문 봉록 백 줄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봉록 회계 부교 사가미 곤베에 — 사가미 가문 본가 사십 년 부교로 평생 가신 백 명의 봉록 한 칸을 정중히 한 호흡 늦지 않게 굴린 자 — 의 일화는 '한 칸 봉록 멸문 분가'로 회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사가미 가문 분가 한 줄이 정중히 한 호흡 멸문하고 어린 자식 한 명 사가미 시노부(당시 일곱 살, 분가 멸문 직전 정중히 한 호흡 본가에 정중히 한 호흡 들어선 외아들)가 정중히 본가 호적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 적혔다. 곤베에는 그 한 호흡에 자기 주판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칸 정중히 굴려 시노부의 다음 시즌 한 끼를 정중히 한 칸 봉록으로 정중히 한 호흡에 적었으며, 그 한 칸을 자기 본가 봉록 한 줄에서 정중히 한 호흡 빼서 정중히 보전했다. 곤베에는 사십 년 동안 자기 봉록 한 칸을 정중히 한 호흡 줄여 시노부의 한 끼를 정중히 한 호흡 보전했으며, 시노부는 자기 본가 호적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외운 채 사십 년 뒤 자기 분가를 정중히 한 호흡 다시 일으켰다.
사가미 본가 부교실 한쪽에는 그날의 주판 한 칸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으며, 후대 부교들은 입문 첫 가을 그 한 칸 앞에 자기 주판을 정중히 한 호흡 굴려 보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사가미 본가 봉록 명부 첫 줄에는 시노부의 이름이 정중히 한 호흡 적힌 채 지금도 정중히 한 줄로 남아 있다.
성하정봉행(城下町奉行)
성하정 봉행(城下町奉行)
성하정 행정을 총괄하는 봉행
“성 안의 한 호흡과 성 아래의 한 호흡이 같아야 하오. 오늘 그 한 호흡을 같이 쉬시지요.”
성하정 봉행은 다이묘 가문 성(城) 아래에 형성된 성하정(城下町)의 치안·시장·송사를 한 줄 결재로 정중히 굴리는 자로, 카로의 가신단 결재와 마을 단위 평민 결재를 한 책상 위에서 동시에 보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하오리, 가슴팍에 봉행 인장 펜던트, 한 손에 결재 두루마리와 작은 부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성하정 모든 점포의 옛 단가·옛 분기 송사 결재·금기 화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출정 한 호흡 전, 성하정 봉행은 시장 단가 두 칸을 정중히 묶어두며, 그 한 줄 결재가 마을 한 시즌의 한 끼를 지킨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송사가 아니라, 출정 후 돌아오지 못한 가신의 가족이 정중히 들고 오는 작은 한 줄 청원 위에 있다.
“후대 봉행은 큰 송사 결재보다 돌아오지 못한 가신의 가족 한 줄 청원을 먼저 정중히 받소. 그 한 줄이 송사 백 줄보다 정직하다는 뜻이지요.”
성하정 봉행 야나기바라 모리히사 — 야나기바라 가문 성하정(柳原城下町, 일본 동쪽 영지 성 아래 큰 마을) 사십 년 봉행으로 평생 송사 결재 사백 줄과 가신 가족 청원 사백 줄을 같은 책상 한 자리에서 정중히 받은 자 — 의 일화는 '한 줄 청원 사흘'로 봉행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야나기바라 가문 출정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어린 가신 야나기바라 류이치(당시 열일곱, 첫 출정에서 정중히 한 호흡 사망한 가신)의 어머니 — 평민 출신 노부 — 가 정중히 한 호흡 자기 아들의 한 줄 청원 — "어머님께 정중히 한 호흡 한 끼를 정중히 한 호흡 보내 주십시오" — 한 통을 정중히 한 호흡 들고 사흘을 정중히 한 호흡 봉행 책상 앞에 정중히 한 호흡 도착했다. 모리히사는 그 한 호흡에 자기 송사 결재 두루마리 일곱 권을 정중히 한 호흡 옆으로 정중히 미루고, 어머니의 한 줄 청원 앞에 정중히 한 호흡 무릎을 꿇은 채 한 시진을 정중히 한 호흡 함께 쉬었다. 모리히사는 그 한 호흡 뒤 자기 사재로 어머니의 다음 시즌 한 끼를 정중히 한 호흡 보전한 봉록 결재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카로에게 정중히 보냈으며, 어머니는 그 한 줄 봉록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시즌 받고는 정중히 한 호흡 자기 아들의 봉납 한 잎을 후타바 신사 봉납대 한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 봉납했다.
야나기바라 봉행 책상 한쪽에는 그날의 한 줄 청원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놓여 있으며, 후대 봉행들은 입문 첫 가을 그 한 줄 앞에 자기 부채를 정중히 한 호흡 닫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낭연번지기(狼煙番지기)
봉수대 망루지기(狼煙番)
봉수대에서 봉화를 올리는 망루지기
“이 연기 한 줄, 사흘 길을 한 호흡으로 줄이오. 그러니 함부로 피우지 않소.”
봉수대 망루지기는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산 능선 봉수대(狼煙臺)에 평생 한 자리에 앉아 적군의 출몰·가문 출정의 시작·재해의 첫 한 줄을 연기 한 줄로 다음 망루에 전하는 평민 출신 가신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키모노, 어깨에 가문 문양 작은 휘장, 한 손에 부싯돌과 한 줄 봉수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산 능선의 옛 바람 결·옛 분기 봉수 결재·금기 점화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 군감보다 먼저 적군의 첫 발자국을 보는 자가 망루지기이며, 그 한 줄 연기가 사흘 길의 가신단을 한 호흡 만에 깨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연기는 큰 출정 신호가 아니라, 무사히 돌아온 가문 행렬을 본가에 알리는 그 작은 한 줄 위에 있다.
“후대 망루지기는 큰 출정 신호보다 귀환 한 줄 연기를 먼저 정중히 피우오. 그 한 줄의 무게가 적군 첫 발자국 한 줄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봉수대 망루지기 후키나가 헤이키치 — 일본 동쪽 후키나가 봉수대(吹永烽燧臺, 동가도 한가운데 산 능선의 봉수대) 사십 년 망루지기로 평생 한 줄 연기를 정중히 한 호흡 늦지 않게 피운 자 — 의 일화는 '귀환 한 줄 새벽'으로 봉수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여름 인접 다이묘 가문 출정 행렬이 사흘 길 출정 후 정중히 한 호흡 무사히 정중히 한 호흡 귀환했는데, 헤이키치는 자기 봉수 명부에 적힌 가신 백 명의 발자국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망루 위에서 정중히 외운 채 그 한 호흡 정중히 한 줄 연기를 평소보다 정중히 한 호흡 길게 정중히 피웠다. 그 한 줄 연기는 사흘 길 본가까지 정중히 한 호흡에 정중히 도착했으며, 본가 가족 다실 한가운데에서 정중히 한 호흡 기다리던 가신 가족 백 가구가 정중히 한 호흡 같은 한 호흡으로 정중히 한 줄 안도의 한 호흡을 정중히 함께 쉬었다. 헤이키치는 그 한 호흡 뒤 자기 봉수 명부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 가신 백 명의 발자국 수가 정확히 한 호흡으로 정중히 한 줄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적어 두었으며, 그 한 줄을 자기 평생 가장 정직한 한 줄로 정중히 한 호흡 봉인했다.
후키나가 봉수대 한쪽에는 그날의 한 줄 연기 자국이 정중히 봉인된 작은 한 자리가 정중히 새겨진 채 지금도 정중히 남아 있으며, 후대 망루지기들은 가신단 귀환 새벽에 정중히 한 호흡 길게 한 줄 연기를 정중히 피우는 자세를 '헤이키치 한 호흡'이라 부른다.
진중반방자(陣中飯方者)
진중 취사 가신(陣中飯方)
전장의 가신들에게 밥을 짓는 취사자
“검은 한 합으로 끝나지만, 한 끼는 사흘을 굴리오. 그러니 한 끼부터 정중히 짓소.”
진중 취사 가신은 다이묘 가문 출정 진영(陣) 안에서 가신단·무사·잡병의 한 끼를 짓는 평민 출신 가신으로, 큰 솥과 짚단 한 단을 한 끼의 정점으로 두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키모노,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큰 솥과 작은 식자재 명부, 허리에 닳은 손칼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진영의 옛 식자재 단가·옛 분기 진중 결재·금기 한 끼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출정 사흘째 새벽, 진중 취사 가신의 큰 솥이 정중히 한 호흡으로 끓는 그 자리가, 가신단의 다음 한 합을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끼는 큰 출정의 첫 한 끼가 아니라, 살아 돌아온 잡병의 닳은 그릇 위에 정중히 놓이는 그 한 그릇이다.
“후대 취사 가신은 첫 한 끼보다 귀환 한 그릇을 먼저 정중히 짓소. 닳은 그릇 한 자리의 정직이 큰 솥 한 솥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진중 취사 가신 카타베 쇼에몬 — 일본 중부 다이묘 가문 출정 진영 사십 년 취사 가신으로 평생 큰 솥 사백 솥을 정중히 한 호흡으로 끓인 자 — 의 일화는 '귀환 한 그릇 새벽'으로 진중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출정에서 정중히 한 호흡 살아 돌아온 잡병 한 명 — 평민 출신 어린 짐꾼 헤이타로 — 가 정중히 한 호흡 자기 닳은 그릇 한 자루를 정중히 들고 진영 한쪽에 정중히 한 호흡 앉았다. 쇼에몬은 그 한 호흡에 자기 큰 솥에서 정중히 한 호흡 한 그릇을 정중히 더 깊게 정중히 한 국자 정중히 떴으며, 자기 사재로 가져온 작은 약초 채집인 노자키 사다의 한 잎을 정중히 한 호흡 그릇 한 자리에 정중히 띄워 헤이타로 앞에 정중히 한 호흡 놓아 두었다. 헤이타로는 그 한 그릇을 정중히 한 호흡 한 모금 마시고는 정중히 한 호흡 자기 닳은 그릇을 정중히 한 호흡 두 손으로 정중히 받쳐 쇼에몬에게 정중히 한 호흡 합장했으며, 다음 시즌 출정에서 정중히 한 호흡 자기 첫 어른 가신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 올라섰다.
카타베 진영 큰 솥 한쪽에는 그날의 한 그릇 자리가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남아 있으며, 후대 진중 취사 가신들은 출정 귀환 새벽 살아 돌아온 잡병 한 명에게 정중히 한 그릇을 더 정중히 깊게 정중히 한 호흡 뜨는 자세를 '쇼에몬 한 국자'라 부른다.
촌락초혜장(村落草鞋匠)
마을 짚신 장인
마을에서 짚신을 만드는 장인
“이 한 켤레, 사흘 길을 함께 가오. 그러니 발 모양부터 외우오.”
마을 짚신 장인은 가공의 전국시대 일본 안에서 마을 한 자리에 작은 작업장을 두고 무사·낭인·비각·보부상의 짚신을 한 켤레씩 정중히 엮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짚단과 작은 짚신 명부, 허리에 닳은 작은 가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단골의 발 모양·옛 분기 짚신 결재·금기 단가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비각 한 명이 사흘 길을 두 호흡 만에 줄이는 그 발끝 아래에 가장 먼저 놓이는 자리가 짚신 장인의 한 켤레이며, 그 한 켤레가 한 통 서신의 한 호흡을 굴린다. 가장 무거운 한 켤레는 큰 가문 출정 행렬이 아니라, 첫 비각 일을 시작하는 어린 평민의 작은 발 위에 놓이는 그 한 켤레다.
“후대 짚신 장인은 큰 가문 출정 한 켤레보다 첫 비각 어린 한 켤레를 먼저 정중히 엮소. 그 한 켤레의 정직이 한 시대 짚신 백 켤레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마을 짚신 장인 우메노 토쿠베에 — 일본 동쪽 동가도 길목 마을 우메노 작업장(梅野作業場, 마을 변두리 작은 한 자리) 사대 장인이자 평생 짚신 사천 켤레를 정중히 한 호흡으로 엮은 자 — 의 일화는 '어린 켄지로의 첫 한 켤레'로 짚신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어린 평민 자식 켄지로(당시 열셋, 첫 비각 일을 정중히 한 호흡 시작하려는 외아들)가 정중히 한 호흡 자기 발 모양을 정중히 한 호흡 토쿠베에에게 정중히 가져왔는데, 켄지로의 부친은 봉록이 정중히 한 호흡 끊긴 평민으로 정중히 한 호흡 보수의 절반밖에 정중히 들고 오지 못했다. 토쿠베에는 켄지로의 발 모양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 정중히 외운 뒤, 자기 사재로 정중히 한 호흡 짚단 한 단을 정중히 더 풀어 사흘을 정중히 한 호흡 정중히 엮어 켄지로의 첫 한 켤레를 정중히 한 호흡으로 정중히 빚어 두었다. 그 한 켤레는 켄지로가 정중히 한 호흡 첫 비각 일을 정중히 한 호흡 무사히 정중히 사흘 길을 두 호흡 만에 정중히 줄여 돌아오는 데 정중히 한 호흡 발 한 줄로 정중히 따라가 주었으며, 켄지로는 자기 첫 비각 일 보수의 절반을 정중히 한 호흡 토쿠베에에게 정중히 한 호흡 정중히 갚으러 정중히 작업장에 정중히 한 호흡 다시 정중히 한 호흡 들어왔다.
토쿠베에는 그 절반을 정중히 한 호흡 받지 않고, 정중히 한 호흡 켄지로의 다음 한 켤레를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다시 정중히 엮어 두었다. 우메노 작업장 한쪽에는 그날의 짚단 한 단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남아 있다.
마정마구공(馬丁馬廐工)
마구간 마정사(馬丁)
마구간의 말을 돌보는 마정사
“이 말은 한 시즌을 함께 가오. 그러니 사람보다 먼저 인사드리시지요.”
마구간 마정사는 다이묘 가문 마구간(馬厩)과 마을 객주 마구간 양쪽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군마·역마·짐말의 한 끼와 발굽 한 칸을 정중히 보살피는 평민 출신 가신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키모노, 어깨에 작은 가문 문양 휘장, 한 손에 솔과 작은 발굽 명부, 허리에 닳은 짧은 손칼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단골 말의 옛 발굽 자리·옛 분기 사료 결재·금기 단가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이묘 가문 출정 한 호흡 전, 마정사가 정중히 발굽 한 칸을 두드리는 그 자리가, 가문 행렬의 다음 사흘 길을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칸 발굽은 큰 가문 군마가 아니라, 무사히 돌아온 비각의 닳은 짐말 발 위에 놓이는 그 작은 한 칸이다.
“후대 마정사는 큰 가문 군마보다 닳은 짐말 발굽 한 칸을 먼저 정중히 두드리오. 그 한 칸의 정직이 군마 백 마리보다 무겁다는 뜻이지요.”
마구간 마정사 키타가와 모모쥬 — 일본 동쪽 다이묘 가문 마구간과 무라사메 객주 마구간 양쪽에 정중히 한 호흡 발을 걸친 사대 마정사이자 평생 발굽 사천 칸을 정중히 한 호흡 두드린 자 — 의 일화는 '닳은 짐말 한 칸'으로 마구간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봄 비각 사이토 켄지로가 정중히 한 호흡 시구레가도 한 굽이를 두 호흡 만에 정중히 한 호흡 줄여 돌아온 새벽, 켄지로의 짐말 — 가문 봉록 한 줄도 정중히 한 호흡 받지 못한 평민 출신 닳은 늙은 말 — 의 발굽 한 칸이 정중히 한 호흡 정중히 갈라져 정중히 한 호흡 다음 사흘 길을 정중히 한 호흡 갈 수 없는 자세에 정중히 한 호흡 들었다. 모모쥬는 그 한 호흡에 자기 발굽 명부를 정중히 한 호흡 펴 켄지로 짐말의 옛 발굽 자리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외운 뒤, 자기 사재로 정중히 한 호흡 작은 한 칸 발굽 한 자리를 정중히 한 호흡 정중히 새로 두드려 정중히 한 호흡 끼워 두었다. 그 한 칸 덕에 켄지로의 짐말은 정중히 한 호흡 다음 시즌 사흘 길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칸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정중히 함께 갔으며, 켄지로는 자기 비각 보수의 절반을 정중히 한 호흡 모모쥬에게 정중히 한 호흡 갚으려 했으나 모모쥬는 정중히 한 호흡 받지 않고 그 절반을 정중히 한 호흡 짐말의 다음 시즌 사료 한 줄로 정중히 한 호흡 받쳤다.
키타가와 마구간 한쪽에는 그날의 한 칸 발굽이 정중히 봉인된 채 지금도 정중히 남아 있으며, 후대 마정사들은 입문 첫 봄 그 한 칸 앞에 자기 솔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정중히 한 호흡 두드리는 자세 연습으로 시작한다.
가문기수자(家門旗手者)
가문 깃발 기수(旗手)
가문의 깃발을 든 기수
“이 깃발 한 장이 가문 한 시대요. 바람보다 먼저 흔들리지 않소.”
가문 깃발 기수는 다이묘 가문 출정 진영의 선두에서 가문 문양 큰 깃발(旗印) 한 장을 정중히 들고 가는 가신으로, 가신단의 한 호흡과 깃발의 한 호흡을 같은 박자로 묶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가문 문양 하오리, 어깨에 깃발 받침 가죽끈, 허리에 한 자루 와키자시와 작은 가문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진영의 옛 바람 방향·옛 분기 깃발 결재·금기 깃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신단이 한 호흡 흔들릴 때, 기수는 깃발을 두 박자 늦게 정중히 다시 세우며, 그 두 박자가 가신단의 다음 한 합을 다시 묶는다. 가장 무거운 깃발은 큰 출정의 첫 깃발이 아니라, 살아 돌아온 가신단이 정중히 함께 접는 그 한 장 위에 있다.
“우리 야사쿠라 가문은 출정 깃발보다 귀환 깃발 접는 자세를 더 길게 가르치오. 그 두 박자가 가신단 한 사람을 다음 출정에 다시 세우는 까닭이지요.”
야사쿠라(矢櫻) 가문 — 전국시대 중부의 작은 다이묘 가문이자 출정마다 가신 한 명도 잃지 않은 한 시기로 알려진 자 — 의 7대 깃발 기수 노리타카의 한 일화는 가신단 야사 단골 이야기다.
미카와 합전(三河合戰, 노부모토 휘하 동부 동맹과의 결정적 결투) 첫째 날 새벽, 가신단 첫 진영의 바람이 갑자기 반대로 뒤집혔다. 노리타카는 깃발을 곧장 다시 세우는 대신 두 박자를 정중히 기다린 뒤 깃발 자루를 절반만 기울였고, 그 미세한 한 자세에 맞춰 가신단 호흡이 다시 한 박자로 모였다. 그날 합전 두 시진 동안 야사쿠라 가신단은 한 명도 베이지 않고 진영을 지켰으며, 다이묘는 노리타카의 깃발 자루 한 자루를 평생 자기 옆 자리에 정중히 두었다.
노리타카는 합전 후 가문 깃발을 한 번 더 정중히 접어 가신단 명부 위에 얹는 의례를 만들었고, 가신단은 출정 전 그 의례 앞에 한 박자 절을 올리는 관례를 따르기 시작했다. 야사쿠라 후대 기수들은 임명 첫 새벽 노리타카의 옛 깃발 자루를 한 번 들어 두 박자 자세를 외우는 것이 가문 묵계가 되었으며, 그 한 자루는 지금도 가문 사당 한 자리에 정중히 보관되어 있다. 가신단의 진짜 깃발은 출정의 첫 깃발이 아니라, 그 두 박자 자세 위에 있다.
쇼군섭정존(將軍攝政尊)
천하 쇼군 섭정(攝政)
어린 쇼군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리는 섭정
“쇼군이 어리면 내가 시대를 굴린다. 쇼군이 자라면 내가 물러난다. 그 두 가지를 같은 무게로 아는 것이 섭정이오.”
천하 쇼군 섭정은 쇼군이 아직 어리거나 사정으로 자리를 비울 때 막부(幕府) 전체의 결재·외교·법령을 대신 굴리는 최고 임시 권력자다. 외형은 단단한 공식 에보시(烏帽子)와 진바오리(陣羽織), 어깨에 섭정 인장 상자, 허리에 가문 문양 카타나 한 쌍이 표준이다. 본인은 다이묘 가문 전체의 봉록·혼인·법령을 한 책상에서 굴리며, 그 결재 한 줄이 한 시대의 다음 출정을 결정한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쇼군이 자랐을 때 자기 인장을 내려두는 그 한 호흡이다. 억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인 훌륭한 섭정은 쇼군이 자랐을 때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라는 한 줄을 가장 조용히 남기는 자다.
“섭정의 인장함이 비어 있는 날이, 그 시대가 가장 잘 굴러가는 날이오. 그 빈 함 앞에서 후대 섭정들은 임명 첫 사흘을 보내지요.”
에도(江戶) 막부 초대 섭정 아오야마 노리히데 — 쇼군 공석 삼 년 동안 막부 결재 이천 줄을 처리하고 쇼군 즉위 당일 인장함을 빈 채로 봉인하여 전달한 자 — 의 일화는 '빈 인장함'으로 막부 야사 단골이다.
쇼군이 즉위하던 날 노리히데는 임명 첫 번째 행사로 막부 원로들 앞에서 섭정 인장함을 열었다. 인장함 안은 비어 있었다. 원로들이 "인장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자, 노리히데는 쇼군을 향해 정중히 무릎을 꿇고 "삼 년 동안 한 결재도 제 이름이 아닌 쇼군 이름으로 올렸습니다. 인장은 처음부터 이분 것이었습니다"라고 한 줄만 건넸다. 쇼군(앞서 330001 쇼군 일화의 계보)은 그 한 줄에 막부 의전 절차 한 박자를 멈추고, 그 빈 인장함을 막부 백서원(白書院) 결재 책상 한쪽에 봉인하여 두었다. 후대 섭정들은 임명 첫 사흘을 그 빈 함 앞에서 보내며 "이 함은 왜 비어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것이 첫 수업이 되었다.
종가검성존(宗家劍聖尊)
가문 종가(宗家) 검성
가문 종가에서 검의 정점에 오른 검성
“종가(宗家)의 검은 상대를 베는 검이 아니오. 가문 한 시대를 하나의 호흡으로 묶는 검이오.”
가문 종가 검성은 한 검술 유파의 본가(本家) 혈통을 이어받아 유파 전체의 기술·도훈(道訓)·계보를 최종 관리하는 자로, 유파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마지막 결재권자다. 외형은 낡고 단정한 유파 문양 도복, 허리에 대대로 내려온 가보 카타나 한 자루, 발에는 항상 닳은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결투를 피하지 않으나 결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유파 분파 가문들이 서로 다투는 것을 가장 오래 기다렸다가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자로 야사에 기록된다.
종가 검성의 가장 무거운 결재는 새 계승자 한 명을 고르는 그 한 줄이다. 자기 검보다 먼저 내려두는 것이 그 결재 한 줄이며, 그 결재 한 줄을 내려두는 날이 종가 검성의 진짜 마지막 검술이다.
“종가 검성이 계승자 이름 한 줄을 적고 붓을 내려두는 그 순간, 그 유파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한 호흡 넘어가오. 우리 유파는 그 한 줄을 도장 입구에 정중히 새겨 두지요.”
오가사와라(小笠原) 종가 유파 삼대 검성 오가사와라 마사히데 — 유파 분파 일곱 가문이 서로 정통성을 다투던 이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카타나를 뽑지 않고 그 분쟁을 정리한 자 — 의 일화는 '도장 앞 짚신 일곱 켤레'로 전해진다.
분파 일곱 가문 대표가 각각 자기 유파가 정통이라는 주장을 들고 종가 도장으로 찾아왔을 때, 마사히데는 도장 문을 열지 않고 도장 입구 신발 자리에 짚신 일곱 켤레를 가지런히 정중히 놓아두었다. 일곱 가문 대표가 자기 짚신이 어느 자리에 놓였는지를 한 호흡 보는 순간 대열이 흐트러졌으며, 마사히데가 도장 안에서 조용히 말했다. "가지런히 놓인 짚신 중 어느 것이 더 정통입니까?" 일곱 대표 중 네 명이 그 한 마디에 카타나를 검집에 거두었고, 나머지 셋은 자리를 잡고 유파 계보 두루마리를 함께 펼쳤다. 마사히데는 그 자리에서 도장(道場) 사범(앞서 330004)과 검선급 무사(앞서 330002) 계보를 한 표로 정리하여 일곱 가문 대표 앞에 놓았으며, 분쟁은 그날 저녁 안에 정리되었다.
고쇼인반장(御書院番將)
막부 고쇼인반(御書院番) 대장
막부 고쇼인반을 거느리는 대장
“쇼군의 한 발자국 옆자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위험한 자리오.”
막부 고쇼인반 대장은 쇼군의 신변 경호를 전담하는 막부 친위 근위대(御書院番) 전체를 지휘하는 경호 총책임자다. 외형은 단단한 흑색 갑주 위 막부 문양 진바오리(陣羽織), 허리에 카타나 한 쌍, 어깨에 쇼군 일정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쇼군의 24시간 일정·방문자 검증·경호 교대 시각을 한 번에 굴리며, 쇼군이 다회에 앉기 전 그 다실이 이미 세 번 점검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쇼군이 다회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 그 한 식경이 아니라, 쇼군이 경호원 없이 혼자 서재에 앉아 책을 읽는 그 짧은 새벽이다. 쇼군이 그 새벽을 원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아는 자도, 가장 조용히 허락하는 자도 대장이다.
“쇼군께서 혼자 서재에 계신 그 새벽 한 식경을 지키는 것이, 천 명 경호대보다 무겁소. 우리 고쇼인반 대장들은 그 새벽을 몇 번 지켰는지로 서로를 알아보지요.”
에도 막부 고쇼인반 초대 대장 마에다 타카노리 — 쇼군 이치노 사다토키(앞서 330001 쇼군 일화의 그 사다토키) 임기 이십 년간 경호를 담당하고 단 한 번도 쇼군 서재 새벽 한 식경을 어긴 자가 없었다는 기록을 남긴 자 — 의 일화는 '서재 새벽 한 식경'으로 에도 막부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겨울 새벽 불청객 한 명이 막부 외벽을 넘어 쇼군 서재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감지한 타카노리는 경보를 울리지 않고 혼자 그 방향을 막았다. 불청객은 인접 다이묘 가문 낭인 한 명 — 봉록 결재 라인에 억울한 사정이 있어 쇼군에게 직접 청원을 하려 했던 자 — 이었다. 타카노리는 그를 포박하지 않고 막부 외벽 창고 한 칸에 정중히 앉히고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새벽이 지난 뒤 그 낭인의 청원서는 카로(앞서 330009 가문 카로 계보)를 통해 정식 경로로 접수되었으며, 쇼군은 그 청원을 사흘 안에 결재했다. 타카노리는 그 새벽을 경호 일지에 "낭인 한 명 차 한 잔"이라고만 기록했다.
전국검술사(戰國劍術士)
전국 방랑 검술 평론가
전국을 떠돌며 검술을 평론하는 자
“검은 치는 자가 평가하지 않소. 검이 흘러가는 방향을 보는 자가 평가하오.”
전국 방랑 검술 평론가는 어느 가문에도 속하지 않고 전국의 도장과 결투장을 돌며 검술 기술과 도장 격식을 평가하는 독립 검술 비평가다. 외형은 낡은 단정한 여행 키모노, 어깨에 관찰 기록 가방, 허리에 짧은 단검 한 자루, 한 손에 항상 관찰 수첩이 표준이다. 본인은 직접 결투에 참여하지 않으나, 그 평론 한 줄이 한 도장의 명성을 올리거나 내리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가장 좋은 평론 한 줄은 가장 잘 친 검에 쓰이지 않는다. 가장 적절하게 멈춘 검, 가장 정직하게 내려둔 검에 쓰인다. 그 평론을 받은 도장사범이 우는 것은 칭찬받아서가 아니라, 그 평론이 자신의 수십 년을 한 줄로 정확히 읽어냈기 때문이다.
“평론가의 수첩에서 가장 짧은 줄이 가장 긴 칭찬이오. 그 짧은 줄 하나를 받은 도장은 한 시대 더 살아남는다는 것을 우리 도장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지요.”
전국 방랑 검술 평론가 카게이(影衣 — 가공의 카게이 라인 출신, 평생 어느 가문에도 정식 이름을 남기지 않고 전국 도장 사백 곳에 평론 한 줄씩을 남긴 자로 검술 야사에 기록됨)의 일화는 '도장사범의 신발 자리 한 줄'로 전해진다.
카게이가 방문한 도장 가운데 가장 짧은 평론 한 줄을 받은 곳은 어촌 변두리 시오미 마을 도장(앞서 330004 도장 사범 일화의 그 시오미 도장)이었다. 그 평론 한 줄은 "신발 자리 한 줄이 가지런하다"였다. 도장 사범 다이지(앞서 330004)는 그 한 줄을 받고 도장 입구 기둥에 정중히 새겼으며, 그 이후 시오미 도장은 인근 다이묘 가문 가신단(앞서 330007 다이묘 계보)이 견학을 청하는 도장이 되었다. 카게이는 그 도장을 평론한 날 수첩 마지막 페이지에 "이 도장은 내가 평론한 것이 아니라, 신발 자리가 스스로 말했다"는 한 줄을 남겼으며, 그 수첩은 시오미 도장 입구 기둥 옆에 봉인되어 지금도 걸려 있다.
도선외교사(渡船外交士)
다이묘 가문 도선 외교관
다이묘 가문의 도선을 타고 외교하는 자
“우리 가문 깃발이 저 배에 실리는 그 순간부터, 배 위가 가문 영지요.”
다이묘 가문 도선 외교관은 항구를 통한 해상 무역·외국 상인 접견·연안 가문 외교를 전담하는 해상 외교 전문가다. 외형은 단정한 여행 공식 키모노 위 가문 문양 외투, 어깨에 국서(國書) 가방, 허리에 의례용 단검, 한 손에 해상 무역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항구 카이센(廻船, 앞서 310027 일화에 등장한 그 연안 운반선) 도선사보다 더 넓은 외교 시야를 갖고 있으며, 배 위에서 외국 상인이 먼저 꺼내는 말과 그 다음에 꺼내는 말 사이의 침묵을 읽는 전문가다.
가장 위험한 협상 자리는 적대 가문 항구에 혼자 배를 대는 그 한 호흡이다. 그 항구에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모든 협상 결과보다 먼저다.
“도선 외교관이 배에서 내리는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을 가장 오래 기다리는 자가 있소. 그 자가 바로 그 항구에서 가장 진지한 협상 상대요.”
사쓰마번(薩摩藩) 도선 외교관 시마노 리쿠고로 — 전국시대 말기 규슈 서쪽 해상 루트를 홀로 개척하며 외국 상선 열다섯 척과 교역 약정을 맺은 자이자 단 한 번도 빈손으로 귀항한 적 없는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침묵 사이 한 줄'로 사이카이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가을 류큐(琉球, 현재 오키나와 방향의 가공 섬나라) 상선 대표가 사쓰마 항구에서 교역 조건을 설명하다 갑자기 말을 멈추고 리쿠고로를 한 호흡 바라보았다. 리쿠고로는 그 침묵을 메우지 않고 자기 해상 무역 명부 한 자락을 조용히 열었다. 류큐 대표는 리쿠고로가 명부를 들여다보는 그 한 식경 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스스로 말을 다시 시작했으며, 그 다시 시작된 말 안에는 처음 제안보다 유리한 조건 한 줄이 들어 있었다. 항구 도선사(앞서 310027 도선사 계보)는 그 날의 협상을 듣고 "그 침묵 한 식경이 교역 세 시즌 분량이었다"는 한 줄을 항구 야사에 남겼다.
종합무예수(綜合武藝首)
종합 무예 도장 수장
여러 무예를 통합한 종합 도장의 수장
“검술만 가르치는 도장은 도장이 아니오.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 도장이지요.”
종합 무예 도장 수장은 검술(剣術)·창술(槍術)·유술(柔術)·궁술(弓術) 등 복수의 무예를 함께 교육하는 대도장을 운영하는 책임자다. 외형은 단정한 도복 위 도장 문양 허리띠, 한 손에 도장 명부 두루마리, 발에는 늘 정갈한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각 무예의 전임 사범들을 관리하고, 도장 전체의 교육 방향과 입문 기준을 결정하는 자다.
도장 사범(앞서 330004)이 한 가지 검술을 평생 가르친다면, 수장은 여러 무예가 어떻게 한 사람 안에서 조화롭게 자라는가를 가르친다. 가장 강한 수장은 자기가 가장 못하는 무예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자다.
“수장의 도장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건 도장 안 사범 숫자가 아니오. 수장이 매일 아침 배우는 무예 수가 도장 수지요.”
에도 종합 무예 도장 수장 와타나베 겐파치로 — 검·창·활 세 가지 무예를 각각 다른 사범에게 배우면서 동시에 그 세 사범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자이자 단 한 번도 자기 도장 사범보다 먼저 도장에 도착하지 못한 적 없는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도장 첫 도착'으로 에도 무예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봄, 겐파치로의 도장에 새 창술 사범이 부임했는데, 그 사범이 처음 새벽 도장에 도착했을 때 도장 입구 신발 자리가 이미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범이 "누가 먼저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잡역 아시가루(앞서 310049 계보와 같은 역할의 인물)가 "수장님이십니다"라고 답했다. 창술 사범은 그날부터 겐파치로보다 한 박자 더 일찍 오기 위해 한 달을 노력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겐파치로는 그 한 달 뒤 창술 사범에게 "도장 첫 도착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도장이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오"라고 한 줄 건넸다. 그 한 줄을 들은 창술 사범은 그날부터 제자들에게 그 말을 가르쳤다.
이중간자사(二重間者士)
가문 이중 첩자(二重間者)
양가를 오가며 정보를 파는 이중 첩자
“나는 두 가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오. 두 가문 사이의 그 한 줄 경계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오.”
가문 이중 첩자는 두 가문 모두에게 고용된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한 가문의 전략적 의도에 따라 두 가문 사이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는 고도 첩보 전문가다. 외형은 가문마다 달라지는 완전한 위장 차림이 표준이며, 항상 두 벌의 소속 패를 번갈아 착용한다. 본인은 닌자 결사 두령(앞서 330003)보다 더 높은 전략적 시야를 갖고 있으며, 두 가문에게 각각 다른 진실의 일부를 전달하여 두 가문이 서로 오판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한다.
가장 어려운 순간은 두 가문 중 어느 한쪽이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려 할 때다. 그 순간 이중 첩자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두 가문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그 한 줄 경계선을 지켜야 한다. 그 결정은 어느 카로도, 어느 다이묘도 내리지 못하는 결정이다.
“이중 첩자의 진짜 성공은 두 가문이 그를 각각 자기 편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오. 두 가문이 그를 의심하면서도 계속 일을 맡기는 것이지요.”
가문 이중 첩자 코가네(黄金 — 가공의 코가네 라인 출신, 에치고와 에치젠 두 가문 사이 십오 년간 정보 균형을 유지하며 그 사이 전쟁이 세 번 막힌 자로 야사에 기록됨. 이름은 가공이며 본명은 기록에 남지 않음)의 일화는 '열다섯 해 전쟁 세 번'으로 호쿠리쿠 야사에 조용히 전해진다.
에치고 가문 카로(앞서 330009 계보)가 에치젠 가문의 비밀 출정 계획을 확인하는 임무를 코가네에게 내렸을 때, 코가네는 그 임무 결과로 에치젠 출정 계획의 절반만 에치고 카로에게 전달했다. 동시에 에치젠 가문 쪽에는 에치고 카로가 이미 에치젠 계획을 알고 있다는 사실의 절반만 전달했다. 두 가문은 각각 상대가 자기 절반을 알고 있다고 판단해 서로 한 호흡씩 멈췄으며, 그 한 호흡 사이 막부 외교관(앞서 330008)이 끼어들어 강화 조건 두루마리 한 통을 협상 탁자에 올렸다. 코가네는 그 결과를 두 가문 모두에게 보고하지 않았으며, 에치고 닌자 두령(앞서 330003)은 이중 첩자 계보 야사에 그 일화를 "두 가문이 전쟁하지 않은 열다섯 번째 해"라는 제목으로 기록했다.
화재진압장(火災鎭壓將)
성하정 화재 진압대장
성하정 화재를 진압하는 대장
“불은 검보다 빠르고 깃발보다 먼저 성을 점령하오. 그러니 불보다 한 박자 먼저 움직이오.”
성하정 화재 진압대장은 다이묘 가문 성하정(城下町)의 화재(火災) 예방과 진압을 책임지는 관리 무사로, 성하정 봉행(앞서 330025) 아래서 화재 대응 전문 인력을 지휘한다. 외형은 단단한 방화 작업복, 어깨에 물통과 도끼, 머리에 두건, 한 손에 진압 배치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성하정 전체 도로 폭·물 공급 우물 위치·목조 건물 밀집 구역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불이 어느 방향으로 번질지를 연기 방향보다 먼저 예측한다.
가장 어려운 화재는 적이 일부러 낸 불이 아니라, 추운 겨울 새벽 취사 아궁이에서 실수로 난 불이다. 그 불 한 줄기가 가장 빠르게 성하정 한 블록을 태운다. 대장의 진짜 결재는 화재가 난 뒤가 아니라, 화재가 나기 전날 밤 우물 점검 명부를 직접 확인하는 그 한 줄이다.
“화재 진압대장이 전날 밤 우물 명부를 직접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화재가 일어나지 않은 날에야 비로소 우리가 듣게 됩니다.”
에도 성하정 화재 진압대장 타치바나 후사노스케 — 에도 동측 성하정 구역 이십 년 진압대장으로 단 한 번도 가옥 열 채 이상이 타는 화재를 허용하지 않은 자이자 매일 밤 우물 명부를 직접 확인한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우물 명부 밤 한 줄'로 에도 성하정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겨울 새벽 취사 아궁이 화재가 연속으로 두 채에 번지려는 순간, 후사노스케는 전날 밤 확인해 둔 우물 명부 한 줄에서 인접 우물 두 곳 중 하나가 수위가 낮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진압 인력을 수위 높은 우물 쪽으로만 집중시켜 화재를 두 채에서 멈췄다. 성하정 봉행(앞서 330025 계보)은 그 결과를 보고 우물 명부 점검을 봉행 결재 필수 첨부로 지정했으며, 에도 진압대는 지금도 매일 밤 우물 명부 확인을 '후사노스케 밤 한 줄'이라 부른다.
재판통역사(裁判通譯士)
봉행소 재판 통역관
봉행소 재판의 통역을 맡은 자
“저 분 말이 한 박자 빠릅니다. 그 한 박자 안에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소.”
봉행소 재판 통역관은 봉행소(奉行所, 가문 법원 겸 행정 관청) 안에서 평민·외국 상인·다른 지방 출신 인물의 말을 봉행 무사가 이해할 수 있게 통역하고, 그 반대 방향의 통역도 담당하는 언어 전문가다. 외형은 단정한 흑색 키모노, 가슴팍에 봉행소 통역관 인장, 한 손에 방언·외래어 사전 수첩이 표준이다. 본인은 에도 표준어·서쪽 방언·류큐어·상인 은어 모두를 이해하며, 같은 말이 어느 지역 억양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갖는지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봉행(앞서 330025)이 결재를 내리는 그 한 박자 전에 통역관의 한 마디가 먼저 들어가는 것이, 봉행소에서 가장 많은 판결을 바꿔온 일화로 기록된다. 통역관의 진짜 실력은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말 사이의 침묵을 옮기는 것이다.
“통역관이 한 박자 더 기다렸다 말하는 그 한 박자가 봉행 결재 한 줄을 바꾼 적이 세 번 있소. 우리 봉행소는 그 세 번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곳이지요.”
에도 봉행소 통역관 오타 쇼사쿠 — 이십 년간 에도 봉행소 통역관으로 일하며 외국 상인 협상·지방 평민 재판·가신 내통 청문에 참여한 자이자 단 한 번도 통역을 틀리지 않은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류큐 상인 침묵 한 식경'으로 에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봄, 류큐 상선 대표가 에도 봉행소에서 교역 조건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자리에서 에도 통역관(쇼사쿠의 전임자)이 실수로 "이익(利益)"을 "손해(損害)"로 옮겨 판결이 잘못 날 뻔했다. 쇼사쿠는 그 자리에서 통역관이 한 줄을 올리는 사이 봉행 앞에 정중히 한 박자를 멈추고 "번역에 한 줄 확인이 필요합니다"라고 올렸다. 봉행이 한 박자 기다려 주었고, 쇼사쿠는 류큐 상인에게 직접 그 말을 재확인했다. 도선 외교관(앞서 330035)이 그 자리에 참관하고 있었는데, 이후 "봉행소 통역관의 한 박자가 해상 교역 루트 세 개를 살렸다"는 한 줄을 외교 보고서에 남겼다.
마상창술사(馬上槍術師)
가문 마상 창술 교관
가문의 마상 창술을 가르치는 교관
“말 위에서 창을 드는 것은 두 가지를 한 번에 하는 것이 아니오. 말과 나 사이에 호흡이 하나라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하오.”
가문 마상 창술 교관은 다이묘 가문 친위 기병단에게 말 위에서 창술(槍術)을 구사하는 기법을 가르치는 전문 교관이다. 외형은 단단한 경갑주 위 가문 문양 하오리, 허리에 카타나 한 자루, 어깨에 창자루 고리, 발에는 등자(鐙, 말 안장 발걸이)에 최적화된 짚신이 표준이다. 본인은 말 한 마리마다 기병의 몸무게·창 길이·말의 달리기 리듬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교관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기병과 어느 말의 호흡이 얼마나 맞는지를 알아낸다.
가장 위험한 훈련은 창을 빠르게 찌르는 훈련이 아니라,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한 뒤 정지하는 훈련이다. 그 정지 순간의 말과 기병의 호흡이 동시에 멈춰야 비로소 창이 정확히 꽂힌다.
“교관이 말 위에서 단 한 번도 창을 떨어뜨린 적 없다는 것을 가신단은 알고 있소. 그 한 번도 없음이 삼십 년 훈련의 무게라는 것도 알고 있지요.”
카이번(甲斐藩) 가문 마상 창술 교관 미야시타 사부로 — 삼십 년간 가이번 친위 기병 사십 명을 훈련시키고 그 기병들이 합전에서 단 한 번도 마상 창술로 아군을 친 적 없는 기록을 남긴 자 — 의 일화는 '말 정지 한 박자'로 코신 무가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가을 훈련 중 신참 기병 하나가 말을 멈추지 못해 창이 아군 방향으로 기울었을 때, 사부로는 그 신참 앞으로 자기 말을 전속력으로 달려가 그 창 끝 앞에 자기 말을 정지시켰다. 신참과 사부로의 두 말이 동시에 멈추는 그 한 박자에, 창 끝은 사부로의 말 갑주 한 치 앞에서 멈췄다. 그날 이후 신참 기병은 단 한 번도 창을 아군 방향으로 기울이지 않았으며, 마구간 마정사(앞서 330029)는 그날 두 말의 발굽 자국이 정확히 같은 자리에 남은 것을 발굽 명부에 기록했다.
성채대목장(城砦大木匠)
성채 건축 목수 대목(大木)
성채를 짓는 목수의 우두머리
“이 성벽 한 돌, 빠지면 다이묘 한 호흡이 빠지오. 그러니 한 자도 흥정하지 않소.”
성채 건축 목수 대목은 다이묘 가문 성채(城砦)·천수각(天守閣)·성벽·망루의 건축과 수리를 총괄하는 최고 목수 장인이다.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설계 도면 가방, 한 손에 먹줄(墨繩, 선을 긋는 도구)과 목수 명부, 허리에 단단한 목공 도구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석재·목재·지반의 특성을 동시에 관리하며, 천수각 축성 부교(앞서 310022)와 함께 설계 단계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긴밀히 협력하는 자다.
가장 어려운 공사는 새 성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중에 무너진 성벽 한 단을 하루 안에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 하루 안에 다음 합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공사 한 자는 전장 한 합과 같은 무게다.
“대목의 먹줄 한 줄이 천수각 한 층보다 먼저 세워진다는 것을, 공사장 안에 서 본 자만 압니다. 그 먹줄 한 줄이 무너지지 않으면 천수각도 무너지지 않지요.”
오다와라(小田原) 성채 건축 대목 하마다 덴조 — 전국시대 중기 오다와라 천수각(小田原天守閣, 가공의 오다와라 본성 망루) 재건을 이십 년 안에 완성하고 그 이후 전국 대합전에서도 한 층도 무너지지 않은 천수각을 지은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먹줄 한 줄 이십 년'으로 간토 목수 야사에 전해진다.
재건 첫 날 덴조는 도면 한 자도 펴지 않고 옛 천수각 터 한가운데 혼자 서서 두 시진 동안 지반을 발바닥으로 짚었다. 함께 온 목수 열 명이 "설계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습니까"라 묻자 덴조는 "이 땅이 먼저 설계해 두었소. 나는 그것을 읽는 중이오"라고 한 줄 건넸다. 봉수대 망루지기(앞서 330026)가 그날 덴조의 발자국 방향을 망루에서 관찰하고 야사에 기록했으며, 이십 년 후 완공된 천수각 아래 그 발자국 자리에는 먹줄 한 자가 정중히 새겨졌다.
선박수리공(船舶修理工)
가문 선박 수리 기술자
가문의 선박을 손보는 기술자
“이 배 한 척이 군량 한 시즌과 같소. 그러니 배 한 판자도 흥정하지 않소.”
가문 선박 수리 기술자는 다이묘 가문 항구의 카이센(廻船, 연안 운반선)·전선(戰船)·어선의 수리와 유지를 담당하는 해상 기술 전문가다. 외형은 짙은 색 방수 작업복, 어깨에 선박 수리 도구 가방, 머리에 두건, 한 손에 선박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도선 외교관(앞서 330035)이 외교를 위해 타는 그 배와, 항구 도선사(앞서 310027)가 안내하는 그 카이센이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자다.
가장 중요한 수리는 큰 전선이 아니라 어부 가족의 작은 거룻배다. 그 거룻배 한 판자가 무너지면 그 가족의 한 시즌이 무너진다. 항구 야사에 가장 오래 남는 기술자는 전선 수리 전문가가 아니라 어부 배 한 척을 공짜로 고쳐준 기술자다.
“선박 기술자의 도구 가방이 가장 무거워지는 날은 큰 전선 수리 날이 아니오. 작은 거룻배 한 판자를 대신 내어준 날이지요.”
사쓰마번(薩摩藩) 가문 선박 수리 기술자 쿠보타 마타베 — 이십 년간 사쓰마 항구 선박 수리를 담당하고 단 한 척도 출항 후 수리 불량으로 돌아온 적 없는 자이자 항구 도선사(앞서 310027 사가라 계보와 같은 항구의 후대 기술자)와 단 한 번도 의견 충돌 없이 일한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작은 거룻배 한 판자'로 사이카이도 항구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봄 폭풍 후 항구 수리 작업이 몰린 날, 사쓰마 대형 카이센 닛코마루(앞서 310027 도선사 일화의 그 닛코마루)의 긴급 수리 명부가 먼저 올라와 있었는데, 마타베는 그 명부 위에 어부 가족의 작은 거룻배 한 척 수리를 먼저 기입했다. 항구 관리 봉행이 우선순위를 따지자 마타베는 "이 거룻배 한 척이 나가지 못하면 그 가족이 오늘 굶습니다. 닛코마루는 내일도 수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줄 건넸다. 도선 외교관(앞서 330035)이 그 말을 듣고 봉행에게 "이 기술자 판단이 맞습니다"라고 한 줄 더 보탰으며, 봉행은 마타베의 수리 순서를 승인했다. 그날 이후 사쓰마 항구 수리 명부에는 어부 거룻배 우선 항목이 정식으로 추가되었다.
군기수선장(軍旗修繕匠)
진중 군기 수선 장인
진중의 군기를 깁는 장인
“이 군기(軍旗) 한 폭, 다시 꿰맬 수 있소. 하지만 한 번 찢어진 자리는 어디였는지 기억하오.”
진중 군기 수선 장인은 다이묘 가문 출정 진영에서 전투 중 손상된 군기(軍旗, 가문 문양 깃발)·깃발·진바오리(陣羽織) 등을 수선하는 섬유 수리 전문가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어깨에 수선 도구 가방, 한 손에 바늘과 색실 묶음, 허리에 작은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문 문양의 정확한 색 배합·문양 비율·수선 금기 부위를 한 표로 외우고 있으며, 가문 깃발 기수(앞서 330030)가 들고 나서는 그 깃발이 항상 원형을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자다.
가장 어려운 수선은 찢어진 문양의 가운데를 꿰매는 것이 아니라, 가장자리 한 실이 풀리기 시작한 것을 합전 전날 밤 찾아내는 것이다. 그 한 실이 풀리기 전에 미리 잡아두는 것이 장인의 진짜 결재다.
“군기 장인이 합전 전날 밤 찾아낸 실 한 줄이, 다음 날 합전 첫 진영의 깃발이 흔들리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을, 깃발 기수만이 알고 있지요.”
야사쿠라(矢櫻) 가문 진중 군기 수선 장인 아게마루 칸조 — 야사쿠라 가문(앞서 330030 깃발 기수 일화의 그 야사쿠라 가문) 출정 삼십 번 동안 단 한 번도 합전 중 군기 문양이 손상된 기록 없이 수선을 마친 자이자 합전 전날 밤마다 깃발 기수 노리타카(앞서 330030)와 함께 군기를 한 바퀴 점검한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합전 전날 밤 한 바퀴'로 야사쿠라 가신단 야사에 전해진다.
미카와 합전(앞서 330030 깃발 기수 일화의 그 합전) 전날 밤, 칸조가 군기를 점검하다 가문 문양 가장자리 실 한 줄이 바람에 세 차례 흔들려 풀리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칸조는 그 자리에서 바늘 한 자루로 두 시진 동안 그 실을 다시 감아 봉인했다. 다음 날 합전 도중 노리타카가 깃발을 두 박자 기울였을 때 그 가장자리 실은 흔들렸으나 풀리지 않았으며, 가신단은 그 한 박자 안에서 호흡을 다시 모았다. 노리타카는 합전 이후 칸조에게 "그 실 한 줄을 잡아두신 덕이오"라고 한 줄 건넸으며, 이후 야사쿠라 가문은 합전 전날 밤 군기 점검을 가신단 공식 의례로 정했다.
수차관리인(水車管理人)
마을 물레방아 관리인
마을 물레방아를 돌보는 관리인
“물레방아 한 바퀴가 하루 군량 열 말을 갈아내오. 그러니 이 물 한 줄기를 함부로 막지 마시오.”
마을 물레방아 관리인은 조카마치(城下町) 또는 농촌 마을 변두리에서 물레방아(水車)를 운영하며 쌀·보리 등 곡물을 도정하는 기술 관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어깨에 곡물 가방, 한 손에 수량(水量) 측정 자와 물레방아 정비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하천 수량·계절별 유속·분기 정비 일정을 한 표로 외우고 있으며, 다이묘 가문 출정 전 군량 준비의 절반이 그의 물레방아 운영 일정에 달려 있다.
가문 봉록 쌀 검사관(앞서 330045)이 품질을 관리한다면, 물레방아 관리인은 그 쌀이 제때 도정될 수 있는가를 관리한다. 한 가지 기계를 평생 관리하면서, 그 기계가 멈추는 날이 마을 전체가 멈추는 날과 같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진짜 관리인이다.
“물레방아 관리인이 새벽에 물 한 줄기를 점검하는 그 한 자리가, 군량 창고 점검 대장보다 먼저 가문 출정을 준비하고 있소.”
미카와(三河) 마을 물레방아 관리인 오야마 겐조 — 이십오 년간 미카와 동측 마을 물레방아 두 대를 운영하고 단 한 번도 출정 전 군량 도정이 지연된 적 없는 자이자 진중 취사 가신(앞서 330027)과 긴밀히 연락하며 군량 일정을 맞춘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물 한 줄기 출정 준비'로 도카이 마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가을 출정 삼 일 전, 유례없는 가뭄으로 물레방아 수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겐조는 진중 취사 가신(앞서 330027 쇼에몬 계보의 후대 취사 가신)과 상의하여 군량 도정 순서를 다이묘 친위 몫보다 병사 전체 몫을 먼저 갈아내는 방식으로 조정했다. 가문 봉록 쌀 검사관(앞서 330045)이 그 순서를 결재에 올리자 카로(앞서 330009)가 처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다이묘는 "친위 몫을 나중에 갈아도 내 밥은 따뜻하다"며 겐조의 순서를 그대로 승인했다. 출정 당일 군량은 한 통도 부족하지 않았으며, 그날 이후 미카와번 군량 준비 순서에 물레방아 관리인의 수량 보고가 필수 첨부 자료로 지정되었다.
봉록미검사(俸祿米檢査)
가문 봉록 쌀 검사관
가문의 봉록 쌀을 검사하는 검사관
“이 쌀 한 섬, 가신 한 명의 한 시즌이오. 한 알도 허투루 검사하지 않소.”
가문 봉록 쌀 검사관은 다이묘 가문에서 가신단에게 지급하는 봉록(俸祿) 쌀의 품질·중량·수량을 최종 확인하는 관리 전문가다. 외형은 단정한 흑색 키모노, 어깨에 저울과 쌀 측량 도구 가방, 한 손에 봉록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가신단 전원의 봉록 등급·지급 주기·이전 지급 이력을 한 표로 외우고 있으며, 가신 한 명의 봉록이 한 합(合)이라도 부족하면 반드시 그 이유를 결재 두루마리 한 줄로 올린다.
봉록 회계 부교(앞서 330024)가 수치를 관리한다면, 검사관은 그 수치 뒤에 실제 쌀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를 직접 손으로 확인하는 자다. 가장 어려운 검사는 전쟁 직후 군량이 소진된 상황에서 남은 쌀로 봉록을 어떻게 분배하는가를 결정하는 그 한 줄이다.
“검사관의 저울 한 눈금이 가신 한 가족의 한 시즌을 정하오. 그 저울을 평생 한 번도 틀리지 않은 자가 세상에 두 명 있다고 야사에 적혀 있소.”
에치고번(越後藩) 봉록 쌀 검사관 타카야마 이치조 — 삼십 년간 에치고번 가신단 이백 명의 봉록 쌀을 한 통도 부족 없이 지급한 자이자 전쟁 후 쌀 부족 상황에서 도 한 번도 가신 봉록 삭감 결재를 올리지 않은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저울 한 눈금 새벽'으로 에치고 가신단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가을 큰 합전 직후 가문 군량의 삼분의 일이 소진되어 봉록 창고가 비어갔을 때, 이치조는 카로(앞서 330009) 앞에 봉록 삭감 명부 대신 가신단 부업 목록 한 장을 정중히 올렸다. "이 가신은 농지를 일부 가지고 있어 한 시즌은 견딥니다, 이 가신은 도시 외곽 장인 자리가 있어 절반은 스스로 메웁니다" — 가신 이백 명의 내부 사정을 한 줄씩 정리한 그 목록에서 카로는 단 열두 명만이 당장 봉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읽었다. 이치조는 그 열두 명 봉록을 군량 예비분에서 정중히 충당했으며, 남은 가신들은 한 줄도 불만을 올리지 않았다. 닌자 두령(앞서 330003)은 그 목록을 보고 "이 검사관은 저울만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오"라고 했다.
약초행상인(藥草行商人)
마을 약초 행상
마을에 약초를 들여오는 행상
“이 약초 한 묶음, 어느 가신의 등을 한 시즌 더 세울 수 있소. 가격보다 효능을 먼저 물어보시오.”
마을 약초 행상은 산에서 직접 채집하거나 약초 재배 농가에서 납품받은 약초(藥草)를 가지고 마을과 마을 사이를 다니며 파는 평민 출신 행상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어깨에 약초 광주리, 머리에 패랭이, 한 손에 약초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계절별 약초 채집 가능 지역·각 약초의 효능·보관 방법을 한 표로 외우고 있으며, 가문 군의(앞서 310041)와 안채 의관(앞서 320036) 모두의 단골이다.
진중 취사 가신(앞서 330027 쇼에몬)이 약초 채집인(앞서 330016)의 한 잎을 진중 그릇 위에 띄웠다는 일화 속 그 약초 채집인과 같은 계보의 행상이다. 가장 중요한 약초는 가장 희귀한 약초가 아니라, 가장 많이 팔려나간 뒤에도 다음 날 광주리에 다시 채워져 있는 그 평범한 약초 한 묶음이다.
“행상의 약초 광주리가 비는 날이 마을이 건강한 날이오. 그 비어 있는 광주리가 가장 성공적인 하루라는 것을, 후대 행상들은 처음 광주리를 채우는 날 배우지요.”
시나노(信濃) 마을 약초 행상 노자키 사다 — 앞서 330027 진중 취사 가신 일화에 등장한 그 노자키 사다로, 진영까지 직접 약초 한 잎을 전달한 것이 야사에 기록된 자이자 평생 산길 사십 리를 이십 년간 걸으면서 한 번도 약초 광주리를 빈 채로 집에 돌아온 적 없는 자 — 의 일화는 '사흘 분 약초 한 광주리'로 마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여름 합전 직전 가문 군의(앞서 310041 겐타 계보의 후대 군의)가 진영 내 약재가 부족하다는 급보를 사다에게 보냈을 때, 사다는 그날 예약된 마을 다섯 곳 납품을 모두 정중히 연기하고 산에서 사흘 분 약초를 한 광주리 더 채집해 다음 날 아침 진영으로 직접 납품했다. 군의는 그 납품 덕에 부상 가신 열두 명의 처치를 제때 완료했으며, 다이묘는 사다에게 마을 약초 납품 우선 계약 한 줄을 결재 두루마리에 정중히 올렸다. 사다는 그 계약 두루마리를 받아들고 "이 계약보다 산이 먼저 약초를 내어주어야 합니다"라고 한 줄만 건넸다.
성문번병자(城門番兵者)
성문 경비 번병(番兵)
성문을 지키는 번병
“이 성문 한 짝, 낮에는 열고 밤에는 닫소. 그 사이 들어오는 것들을 다 기억하오.”
성문 경비 번병은 다이묘 가문 본성(本城) 정문·서문·후문 중 한 자리를 담당하여 출입 인원과 물자를 검문하는 하급 경비 무사다. 외형은 단정한 가문 문양 경비복, 허리에 카타나 한 자루, 한 손에 출입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영지 번소 부교(앞서 310043)보다 낮은 직급이지만, 본성 정문을 드나드는 모든 얼굴을 가장 많이 보는 자다.
가장 의심스러운 통행자는 짐이 가장 많은 자가 아니라, 짐이 아예 없는 자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짐을 들고 오는 자다. 같은 것이 너무 정확하면, 그것이 바로 신호일 수 있다.
“번병의 출입 명부는 결재 두루마리에 오르지 않소. 하지만 그 명부 한 줄이 나중에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 적이 세 번 있소.”
에도 성문 경비 번병 야마구치 소이치로 — 이십 년간 에도 본성 정문을 담당하고 단 한 번도 출입 명부 기재를 빠뜨리지 않은 자이자 일상적으로 보이던 물품 운반자 한 명의 짐 자세에서 내통 증거를 발견한 자로 경비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매일 같은 짐 한 줄'로 에도 경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봄 매일 오전 같은 시각 목재를 한 짐씩 가져오는 인부 한 명이 두 달째 같은 짐 무게에 같은 방향으로 짐을 지고 들어왔다. 소이치로는 그 정확함이 이상하다고 판단하고 명부에 "짐 무게 동일, 두 달째"라는 한 줄을 추가 기재했다. 가문 정탐 메츠케(앞서 310013)가 그 명부 한 줄을 보고 이틀 뒤 인부의 짐 안에서 밀봉 두루마리 한 통을 발견했다. 성채 수비대장(앞서 310038 계보)은 그 발견으로 성 안 내통 경로 한 줄을 정리했으며, 소이치로의 출입 명부 한 줄은 경비 야사 첫 줄에 기록되었다.
목탁순라부(木鐸巡邏夫)
마을 목탁 순라(巡邏)
마을을 도는 목탁 순라꾼
“목탁 한 소리, 마을 한 블록에 들리오. 그 소리가 안 들리는 날, 마을이 먼저 이상하다 느낀다 하오.”
마을 목탁 순라는 전국시대 조카마치 또는 마을 골목을 밤마다 목탁(木鐸, 나무 딱따기 또는 종) 한 자루를 들고 돌며 화재 예방과 치안을 경고하는 평민 출신 야경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야간 작업복, 어깨에 등불 하나, 머리에 두건, 한 손에 목탁이 표준이다. 본인은 마을 골목 전체를 발바닥으로 외우고 있으며, 어느 골목에 어느 집의 등불이 항상 몇 시까지 켜져 있는지를 알고 있다.
화재 진압대장(앞서 330038)이 불을 끄는 자라면, 목탁 순라는 불이 나기 전 그 예비 신호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자다. 골목에서 가장 오래 걸어온 발이 마을을 가장 정확히 기억하는 발이다.
“순라의 목탁 소리가 평소보다 한 박자 빠른 날, 마을 전체가 귀를 세우오. 그 한 박자 차이를 알아채는 것이 마을의 집단 기억이지요.”
에도 마을 목탁 순라 스즈키 쿠마지로 — 이십 년간 에도 동측 골목 한 구역을 매일 밤 목탁을 들고 돌아다니며 단 한 번도 화재 신호를 늦게 올린 적 없는 자이자 마을 물레방아 관리인(앞서 330044)과 매일 새벽 교차 정보를 나눈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목탁 한 박자 새벽'으로 에도 마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겨울 새벽 쿠마지로가 골목을 돌다가 한 집 처마 끝 눈 쌓임 방향이 다른 집들과 달리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 집 아궁이 연기가 밀려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쿠마지로는 목탁을 평소보다 한 박자 빠르게 한 번 더 쳤으며, 그 소리를 들은 화재 진압대장(앞서 330038 타치바나 계보의 후대 대장)이 그 방향으로 선제 점검을 나섰다. 아궁이 불이 아직 골목으로 번지기 전에 잡혔으며, 그날 이후 에도 마을에서는 목탁 한 박자 빠른 소리를 '쿠마지로 신호'라 부르게 되었다.
성내잡역부(城內雜役夫)
성내 부엌 잡역부
성내 부엌의 잡일을 맡은 잡역부
“부엌이 돌아가야 진영이 돌아가오. 그러니 나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고 누구보다 늦게 잠들겠소.”
성내 부엌 잡역부는 다이묘 가문 본성 안 큰 부엌(大竈, 대아궁이)에서 식재료 씻기·장작 쪼개기·솥 청소·물 긷기를 담당하는 최말단 잡역이다. 외형은 낡은 작업 키모노, 어깨에 물통, 머리에 작은 두건, 손에는 늘 물 냄새가 표준이다. 본인은 성 안에서 가장 이른 새벽부터 가장 늦은 밤까지 일하는 자이며, 진중 취사 가신(앞서 330027)의 큰 솥이 정확한 시각에 끓는 것은 이 잡역부가 새벽에 장작을 미리 쌓아두기 때문이다.
다이묘가 새벽 회의를 열 수 있는 것은, 그 회의실 차 한 잔이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차 한 잔을 위해 새벽 두 시에 일어나는 자가 부엌 잡역부다. 가장 무거운 장작은 다이묘 아침상 장작이 아니라, 가장 이른 새벽 혼자 쪼개야 하는 그 첫 번째 장작이다.
“부엌 잡역부가 새벽 첫 장작을 쪼개는 소리가 성 안에서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요. 그 소리가 들리는 날, 그 성은 살아 있소.”
에도 성내 부엌 잡역부 카와무라 킨조 — 이십 년간 에도 본성 대아궁이 잡역으로 단 한 번도 아침 식사 준비를 지연시킨 적 없는 자이자 성내 잡역 아시가루(앞서 310049 소스케와 같은 계급의 인물)와 매일 새벽 성 안 점검 정보를 나눈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새벽 첫 장작 이십 년'으로 에도 성내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겨울 새벽 킨조가 장작을 쪼개다가 창고 한 쪽 문 옆에 전날과 다른 발자국 자국을 발견했다. 킨조는 그 발자국을 지우지 않고 장작 한 토막을 그 옆에 정중히 놓아두었다. 새벽 성 안을 도는 성내 잡역 아시가루(앞서 310049 소스케 계보의 후대 아시가루)가 그 장작을 보고 이상한 발자국을 확인했으며, 봉수대 망루지기(앞서 330026)가 그날 창고 방향에서 낯선 움직임을 한 줄 더 기록했다. 세 사람의 한 줄씩이 모여 창고 한 쪽의 내통 경로가 정리되었으며, 킨조는 그 결과를 아무에게도 직접 보고하지 않고 다음 날 새벽 평소와 같이 첫 번째 장작을 쪼갰다.
우물관리옹(井戶管理翁)
마을 우물 관리인
마을 우물을 지키는 늙은 관리인
“이 우물 한 두레박, 마을 한 시즌 물 절반이오. 그러니 줄 한 가닥도 흥정하지 마시오.”
마을 우물 관리인은 전국시대 농촌 마을 또는 조카마치 골목 우물을 관리하고, 수질·수위·두레박 줄 상태를 매일 점검하는 평민 출신 관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 키모노, 어깨에 두레박 줄 수리 도구 가방, 한 손에 수위 측정 막대와 우물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화재 진압대장(앞서 330038)이 가장 먼저 연락하는 자이며, 진중 취사 가신(앞서 330027)이 출정 전 물 확보를 확인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우물은 가장 깊은 우물이 아니라, 마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우물이다. 그 우물이 하루 막히면, 마을 전체의 하루가 막힌다. 관리인은 그 하루가 막히지 않도록 늘 하루 먼저 준비하는 자다.
“우물 관리인의 수위 명부가 화재 진압 대장에게 매일 전달된다는 것을, 마을 야사는 '두 사람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기록하고 있소.”
에도 마을 우물 관리인 나카야마 타로지로 — 이십 년간 에도 동측 마을 우물 세 곳을 혼자 관리하고 단 한 번도 수위 보고를 빠뜨리지 않은 자이자 화재 진압대장(앞서 330038 후사노스케)의 우물 명부 점검을 이십 년간 함께 해온 자로 야사에 기록됨 — 의 일화는 '우물 세 곳 이십 년'으로 에도 마을 야사에 전해진다.
어느 여름 타로지로가 아침 우물 수위를 재다가 세 번째 우물 수위가 전날보다 예상치 못하게 낮아진 것을 발견했다. 그는 화재 진압대장에게 먼저 연락하기 전에, 성하정 봉행(앞서 330025)의 관할 구역 지하 수맥 명부 한 자락을 기억하고 인접 구역 대형 공사 현장 한 곳을 확인했다. 공사 중 지하 배수로 한 줄이 우물 수맥과 교차되어 있었으며, 그 교차 한 줄이 수위를 줄이고 있었다. 타로지로는 그 사실을 성하정 봉행에게 수위 명부 한 줄과 함께 보고했고, 봉행은 공사를 이틀 중단하여 배수로 경로를 수정했다. 화재 진압대장(앞서 330038)은 그 보고를 보고 "우물 관리인이 봉행보다 먼저 도시 지하를 알고 있소"라는 한 줄을 야사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