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로맨스
150명의 인물
어떤 세계인가요?
이곳은 가공의 옛 동방 왕조, 웅장한 기와지붕과 붉은 궁궐 담장이 하늘 아래 가득 펼쳐진 나라예요. 임금이 아침마다 붓으로 한 줄을 적으면 그 한 줄이 온 나라 백성의 하루를 바꾸는 곳이랍니다. 칼 한 자루보다 결재 한 줄이, 큰 소리보다 차 한 잔이 더 무거운 세상이에요. 정전의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한낮 햇살처럼, 이곳의 모든 힘은 조용하고 단정하게 움직여요.
이 궁궐에는 임금과 세자를 비롯해 도승지, 내관, 별감 같은 여러 신하들이 살고 있어요. 임금은 하루에도 수십 장의 결재문 위에 붓을 내리고, 세자는 동궁에서 다음 시대를 차분히 준비한답니다. 도승지는 임금의 말 한 마디를 정확한 한 줄로 다듬고, 내관은 신하마다 다른 차 향을 조용히 외워 두지요. 가장 화려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정확하게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이 궁궐을 굴러가게 해요.
흥미로운 점은 이 세계에서 한 잔의 차가 정말 큰 결단을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임금이 결재 직전에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는 동안, 먼 변방의 한 마을이 살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한답니다. 매화 한 가지를 함께 옮겨 심은 세자와 호위 무관, 한 글자를 고쳐 적은 도승지의 이야기처럼, 아주 작은 몸짓 하나가 이 궁궐 안에서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전해져요.
만약 네가 이 세계에 들어온다면 어떤 자리에 서고 싶나요? 임금처럼 나라 전체를 한 줄로 움직이는 결재를 내리고 싶은가요, 아니면 내관처럼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가장 따뜻한 한 잔을 정성껏 건네고 싶은가요? 이 궁궐의 모든 이야기는 네가 어느 자리를 선택하느냐에서 시작된답니다.
세계 설정
가공의 옛 동방 사극 시대. 궁궐 정전·동궁·승정원·궁궐 정원이 무대.
이 세계의 키워드
- 임금
- 세자
- 도승지
- 별감
- 내관
- 결재
- 본부
- 외교
- 차회
- 비밀
이 세계의 인물들
어전지존(御殿至尊)
임금
구중궁궐 어좌에 앉은 만백성의 지존
“이 한 줄 윤허, 사직의 한 시즌을 정중히 정합니다. 한 잔 차 마시고 결재할 것이오.”
임금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정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곤룡포, 어깨에 큰 망토, 머리에 익선관,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신하의 옛 결재·옛 분기 외교·금기 결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결재가 임금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임금은 큰 사직을 가진 자가 아니라, 신하 한 명의 한 잔 차 향을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선왕께서 그 한 잔 차를 한 호흡 더 늦게 비우신 까닭이 있소. 결재는 붓끝이 아니라 그 한 호흡에서 굴러가는 법이지요.”
삼대(三代) 임금 이정한 — 가공의 한 왕조 세 번째 군주이자 결재 직전 늘 차 한 잔을 다 비우기로 유명했던 인물 — 의 한 일화는 야사에 남아 있다.
흉년이 든 해, 영의정 윤하경(당시 의정부 정점이자 흉년 결재 책임자)이 환곡(還穀, 변방 곡식 대여 결재) 한 줄을 다급히 올렸을 때, 임금은 윤허 대신 차 한 잔을 청해 마셨다고 한다. 차가 한 호흡씩 식어 가는 동안 임금은 환곡 명부의 한 변방 고을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정중히 외웠다. 한 잔이 끝났을 때 임금은 환곡을 윤허하되 한 줄 단서를 더 적었고, 그 한 줄이 다음 분기 한 변방 고을의 한 끼를 살렸다고 야사가 전한다.
윤하경은 그날 이후 한 줄 결재 봉서를 임금 앞에 올릴 때 늘 차 한 잔을 같이 청했고, 그 풍습이 사대(四代)·오대(五代) 임금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후대 임금들이 임명 첫 주에 그 차 한 잔을 정중히 비우는 의례를 갖추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동궁저하(東宮邸下)
세자
장차 보위에 오를 동궁의 주인
“이 한 줄 보고, 동궁의 한 시즌 한 줄 결재를 정중히 정합니다.”
세자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동궁 정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곤룡포(연한 색), 어깨에 우아한 망토, 머리에 익선관,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동궁 신하의 옛 결재·옛 분기 외교·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결재가 세자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강한 세자는 큰 동궁을 가진 자가 아니라, 옛 결혼동맹 한 줄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매화 한 가지가 동궁 결재 명부 첫 줄보다 무거웠다 합디다. 동궁의 한 호흡은 한 사람의 옛 한 줄에서 시작된다는 뜻이지요.”
사대(四代) 세자 이연우 — 후일 사대 임금에 오른 인물이며 동궁 시절 정원 산책으로 신하의 한 호흡을 외우던 자 — 의 한 일화는 동궁 야사에 남아 있다.
동궁에 처음 들어온 평민 출신 익위사 한 명(가공의 인물 박무휼, 동궁 호위무관)이 첫 야간 근무 중 매화 한 가지를 잘못 부러뜨려 정원지기에게 사죄하던 새벽, 세자는 멀리서 그 광경을 정중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세자는 친히 그 부러진 매화 가지를 한 자리에 옮겨 심으며 박무휼의 본명을 정중히 외웠고, 한 호흡 동안 한 줄 농담만 건넸다. 그 후 박무휼은 사대 임금이 즉위할 때까지 한 시즌도 동궁을 떠나지 않았으며, 결혼동맹 결재의 한 줄 호위까지 동행했다고 야사가 전한다. 동궁 매화 한 가지를 정중히 옮겨 심는 의례는 그날 이후 동궁의 풍습이 되었다.
후대 세자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매화 가지를 한 번 보러 가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 그 자리는 지금도 동궁 후원의 한 자리로 남아 있다.
승정원수장(承政院首長)
도승지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의 으뜸
“이 한 줄 보고서, 정중히 한 자세 더 다듬었습니다. 다음 한 줄 윤허까지 한 호흡 정확히 맞추겠습니다.”
도승지는 가공의 한 시대 정식 도승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도승지 펜던트, 한 손에 큰 보고서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승정원 안 모든 보고서의 옛 자료·옛 분기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결재가 도승지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도승지는 큰 승정원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한 줄 보고서의 한 글자를 정확히 다듬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글자 차이로 한 신하의 한 시즌이 굴러가오. 도승지의 첨삭은 붓이 아니라 한 호흡으로 하는 것이지요.”
가공의 도승지 정인섭 — 사대 임금 재위 시 승정원 정점이자 한 글자 첨삭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승정원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함길도 변방(가공의 북방 군영 소재 행정 단위)에서 올린 군량 결재 봉서에 "급(急)"자가 붙어 올라왔을 때, 정인섭은 그 한 글자를 "신(慎)"자로 바꿔 다시 정서(精書)했다고 한다. 임금이 그 까닭을 묻자 정인섭은 "급한 윤허는 변방 한 끼를 빠르게 굴리지만, 신중한 윤허는 한 시즌을 길게 굴립니다"라고 정중히 답했다. 임금은 그 한 호흡을 받아들여 환곡 결재를 한 줄 늦췄고, 그 분기 함길도는 한 끼를 잃지 않았다고 야사가 전한다. 정인섭이 말년에 후학에게 남긴 한 줄은 "도승지의 붓끝은 임금의 한 호흡 옆에 정중히 놓여야 한다"였다.
그날 이후 승정원 주서들은 한 글자 첨삭 직전 한 호흡을 더 가다듬는 풍습을 갖게 되었다.
어전제일랑(御前第一郞)
궐 호위 별감
어전을 지키는 제일 호위의 낭군
“오늘 한 줄 호위, 궁 한 명도 안 다치게 하는 게 한 시즌의 한 줄 약속입니다.”
궐 호위 별감은 가공의 한 시대 정식 궐 호위 별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갑옷, 어깨에 작은 망토, 가슴팍에 작은 별감 펜던트, 허리에 한 자루 칼이 표준이다. 본인은 궁 안 모든 가족·옛 분기 사망률·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호위가 별감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별감은 큰 부대를 가진 자가 아니라, 궁 한 명의 한 줄 안전을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호흡 멈춤이 우리 별감들의 한 줄 약속이오. 칼은 그 한 호흡 뒤에 풀어야 가장 가벼워진다오.”
가공의 별감 강목후 — 삼대 임금 재위 시 궐 호위 별감 가운데 한 호흡 멈춤으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궐 회랑(回廊, 궐 안 긴 복도)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야간, 궐에 처음 들어온 평민 출신 내관 한 명(가공의 인물 차연수, 당시 신참 내관)이 회랑에서 길을 잃어 침전 방향으로 걸어가던 그날, 강목후는 칼을 뽑는 대신 한 호흡 동안 한 자리에 정중히 멈춰 섰다고 한다. 그 한 호흡 동안 그는 차연수의 옛 차 트레이 향을 정중히 외웠고, 한 호흡 뒤에야 회랑 반대편 길을 손짓으로 정중히 일러 줬다. 차연수는 그날 이후 강목후가 야간 근무를 서는 회랑에는 늘 따뜻한 차 한 잔을 한 모금 정중히 올려 두었다. 강목후가 말년에 후학에게 남긴 한 줄은 "별감의 첫 절기는 칼이 아니라 한 호흡 멈춤"이었다.
후대 별감들이 임명 첫 주에 회랑 한 자리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를 갖추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반원공자(內班院公子)
궐 내관
내전 안살림을 살피는 다정한 공자
“오늘 이 한 잔 차, 옛 분기 한 잔과 비슷한 향이에요. 정중히 한 모금 권해 올리겠습니다.”
궐 내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궁의 평민 내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내관 정복, 가슴팍에 작은 내관 배지, 한 손에 작은 트레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궁에 들르는 모든 신하의 평소 차 취향·옛 분기 한 잔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신하가 궁에 들면 가장 먼저 정중한 비슷한 향의 한 잔이 올려진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궁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내관들이 차 트레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드는 데는 까닭이 있소. 그 한 잔이 신하의 한 호흡을 정중히 외우는 자리지요.”
가공의 평민 출신 내관 한구열 — 사대 임금 재위 시 차 트레이의 명수로 궐에서 회자된 인물 — 의 한 일화는 궐 내관청에 야사로 남아 있다.
어느 분기, 사헌부 대사헌 윤하림(당시 탄핵 명부를 정중히 다루던 신하)이 한 줄 탄핵 직전 궐을 들렀을 때, 한구열은 평소 올리던 진한 차 대신 한 호흡 옅은 차를 정중히 올렸다고 한다. 윤하림이 그 까닭을 묻자 한구열은 "오늘 윤허 자리에는 한 호흡 옅은 향이 어울립니다"라고 정중히 답했다. 윤하림은 그 한 잔을 비우고 탄핵 봉서를 한 줄 더 다듬어 올렸으며, 그날 한 신하의 한 가족이 한 끼를 잃지 않았다고 야사가 전한다.
한구열의 차 트레이는 후일 궐 내관청 입구에 정중히 모셔졌으며, 후대 내관들이 임명 첫 주에 그 트레이를 한 번 보러 가는 풍습이 생겼다. 가장 작은 한 잔이 한 시즌의 한 줄을 가장 따뜻하게 굴린다는 격언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문형대제(文衡大帝)
대제학
조선 문장을 저울질하는 문형의 황
“오늘 이 한 줄 사초, 다음 한 시대의 한 호흡을 정합니다. 붓 끝을 늦추지 마시지요.”
대제학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문형(文衡), 즉 학문의 정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청색 관복, 어깨에 학사 망토, 가슴팍에 큰 옥대(玉帶) 펜던트, 한 손에 옛 붓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사초의 옛 문장·옛 분기 책문(策文)·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책문이 대제학의 한 줄 첨삭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조차 대제학의 한 글자 앞에서는 한 호흡을 더 가다듬는다는 격언이 있을 만큼, 그의 붓은 곤룡포보다 무겁다. 대제학의 진짜 절기는 화려한 명문(名文)이 아니라, 후학의 어설픈 한 줄을 끝까지 끊지 않고 고쳐 적어 주는 인내심이다. 가장 무거운 대제학은 큰 문집을 가진 자가 아니라, 다음 세대 한 학사의 첫 한 줄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대제학들이 신참 검열의 책상 옆에 차 한 잔을 놓고 가는 데는 까닭이 있소. 그 한 글자가 한 시대 뒤의 우리 한 줄이 되기 때문이지요.”
가공의 대제학 송문규 — 이대 임금 재위 시 사초의 명수이자 후학을 정중히 길러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예문관(藝文館, 사초·교서를 다루는 학사 기관) 안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신참 예문관 검열 한 명(가공의 인물 정한규, 당시 첫 부임)이 임금의 한 줄 교서(敎書)에서 "윤(允)"자를 "윤(潤)"자로 잘못 옮겼을 때, 송문규는 그 한 글자를 직접 지우는 대신 정한규를 자기 책상 옆에 정중히 앉혔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한 호흡 동안 그 한 글자를 같이 들여다봤고, 송문규는 정한규 손에 자기 옛 붓 한 자루를 정중히 쥐어 줬다. 정한규가 직접 그 한 글자를 다시 옮겨 적은 뒤에야 송문규는 한 줄 교서를 봉(封)했다고 야사가 전한다. 정한규는 후일 사대 임금 재위 시 대제학 자리에 올랐으며, 송문규의 그 옛 붓을 평생 자기 책상 옆에 두었다.
후대 대제학들이 신참 검열의 책상 옆에 차 한 잔을 정중히 놓고 가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가장 무거운 한 글자는 자기가 적은 한 글자가 아니라, 후학에게 정중히 옮겨 받은 한 글자라는 격언이 야사에 남아 있다.
수상영공(首相令公)
영의정
백관의 수장으로 조정을 이끄는 영공
“이 한 줄 윤허, 의정부 세 자리가 한 호흡을 맞추어야 굴러갑니다. 주상께는 정중히 한 호흡 더 청해 올리지요.”
영의정은 가공의 한 시대 의정부의 정점, 신하의 첫째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큰 영의정 옥대 펜던트, 어깨에 큰 망토, 한 손에 큰 보고서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좌의정·우의정의 옛 결재·옛 분기 외교·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결재가 영의정의 한 줄 호흡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의 한 줄 윤허 앞에서 한 호흡을 더 청하는 자리가 영의정이라, 결재가 늦어지는 책임도 늘 그의 어깨 위에 있다. 의정부 회의가 길어질수록 영의정의 한숨이 깊어지지만, 그 한숨 한 호흡 덕에 사직이 한 시즌 더 굴러간다는 사실을 신하들만이 안다. 가장 무거운 영의정은 큰 의정부를 가진 자가 아니라, 좌의정과 우의정의 한 호흡을 정중히 묶어내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식어 가는 차 한 잔이 의정부의 한 줄 호흡이오. 영의정의 한숨은 사직의 한 시즌을 굴리는 한 호흡이지요.”
가공의 영의정 황보겸 — 사대 임금 재위 시 의정부 정점이자 한 호흡 묶음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의정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의정부 회의에서 좌의정 이성한과 우의정 박재흠(둘 다 가공의 신하, 의정부의 둘째·셋째 자리)이 변방 군량 결재 한 줄로 반나절을 정중히 다투던 그날, 황보겸은 결재를 윤허하는 대신 두 사람 앞에 차 한 잔씩만 정중히 올렸다고 한다. 차가 한 호흡씩 식어 가는 동안 황보겸은 두 신하의 옛 동문(同門) 시절 한 줄 시(詩)를 한 호흡씩 정중히 외웠다. 차가 다 식기 전에 두 사람은 한 줄 호흡을 정중히 맞췄고, 그 분기 군량 결재가 한 줄로 굴러갔다고 야사가 전한다. 황보겸은 그 일 이후 의정부 회의 탁상 위에 늘 차 두 잔을 정중히 올려 두는 풍습을 만들었다.
후대 영의정들이 임명 첫 주에 그 탁상 두 잔 자리를 한 번 보러 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금위장군(禁衛將軍)
내금위장
내금위를 통솔하는 위풍당당 장군
“주상 침전 반경 열 보(步), 그 안에서는 제 한 줄 그림자가 한 줄 결재입니다.”
내금위장은 가공의 한 시대 임금 직속 친위 호위대의 수장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갑주, 어깨에 어림군 휘장 망토, 가슴팍에 큰 호부(虎符) 펜던트, 허리에 한 자루 환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궁 안 모든 출입 시각·옛 분기 야간 경비 결재·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호위가 내금위장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이 잠든 시각에만 잠시 환도를 닦는다 하여, 내금위장의 잠을 본 자는 궁 안에 없다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칼은 적을 베는 칼이 아니라, 침전 문 앞에 한 호흡 동안 정중히 서 있는 한 자루라는 사실을 그는 임명 첫날 깨달았다. 가장 강한 내금위장은 큰 부대를 가진 자가 아니라, 주상의 한 호흡을 자기 한 호흡으로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내금위장들의 한 호흡은 칼이 아니라 침전 문 앞의 한 자세로 굴러가오. 그 한 호흡을 외우는 자가 한 시대를 정중히 지킨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내금위장 곽서린 — 삼대 임금 재위 시 어림군(御臨軍, 임금 직속 친위대) 정점으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침전 회랑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야간, 침전 반경 열 보 안에 평민 출신 의관 한 명(가공의 인물 송준효, 당시 야간 진맥 직분)이 임금의 한 호흡이 거칠어진 까닭에 다급히 들어선 그날, 곽서린은 환도(環刀, 허리에 차는 한 자루 칼)를 뽑는 대신 한 호흡 동안 송준효의 손목을 정중히 외웠다고 한다. 송준효가 약첩(藥貼) 묶음을 손에 쥔 채 한 호흡 멈춰 서자, 곽서린은 한 발걸음 앞서 침전 문을 정중히 열어 줬다. 그날 임금의 한 호흡이 한 호흡 가벼워진 까닭은 송준효의 진맥보다 곽서린의 한 호흡 멈춤이었다고 야사가 전한다. 곽서린은 말년에 후학에게 "내금위장의 첫 절기는 환도 뽑기가 아니라 침전 문 한 호흡 멈춤"이라 정중히 일렀다.
후대 내금위장들이 임명 첫날 침전 문 앞에서 한 호흡을 정중히 외우는 의례가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암행어사군(暗行御史君)
암행어사
마패를 품고 천하를 살피는 어사
“마패는 품 안에 두십시오. 꺼내는 순간 한 고을의 한 시즌 한 끼가 흔들립니다.”
암행어사는 가공의 한 시대 임금이 직접 봉서(封書)와 마패를 내려 변방 고을의 비리를 정중히 적발하는 어명 직분이다. 외형은 닳은 평민 도포로 위장, 품 안에 봉서와 마패, 허리에 한 자루 단도, 어깨에 작은 봇짐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고을 수령의 옛 분기 결재·옛 환곡 장부·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적발이 암행어사의 한 줄 봉서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암행어사 출도(出道)요"의 한마디가 한 고을 한 시즌의 운명을 정하지만, 정작 암행어사는 그 한마디를 가능한 늦게 꺼내려 한다. 마패를 꺼내기 전 한 끼 객잔 밥을 평민과 같이 먹어 본 자만이 그 고을의 진짜 한 줄을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거운 어사는 큰 적발을 한 자가 아니라, 마패를 꺼내지 않고 돌아온 한 줄 보고서를 정중히 적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끼 객잔 밥이 마패 한 자루보다 무거웠소. 마패를 꺼내지 않고 적은 한 줄이 한 고을 한 시즌을 살리는 법이지요.”
가공의 암행어사 류한주 — 사대 임금 재위 시 봉서를 받든 어사 가운데 마패를 가장 늦게 꺼낸 인물로 야사에 남은 자 — 의 한 일화는 변방 객잔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류한주는 충청도 한 작은 고을(가공의 행정 단위 오성현, 그 분기 환곡 비리 의심지)의 객잔에 사흘 밤낮 평민 도포로 머물며 마패를 한 번도 품에서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흘 동안 그는 객잔 주인의 손녀와 평민 농군의 한 끼를 함께하며 환곡 장부의 옛 한 줄을 정중히 외웠다. 사흘째 새벽, 그는 마패 대신 봉서 한 줄을 정중히 다듬어 임금에게 올렸으며, 그 한 줄이 수령(守令, 그 고을 행정 정점)의 환곡 비리를 한 호흡 더 정중히 다스렸다고 야사가 전한다. 류한주의 한 줄 보고서는 후일 의금부 도사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베껴 적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암행어사들이 마패를 한 호흡 더 늦게 꺼내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사헌수장(司憲首長)
사헌부 대사헌
관기를 다잡는 사헌부의 수장
“탄핵은 분노로 적는 것이 아니라, 한 호흡을 더 가다듬은 뒤 한 줄로 적는 것입니다.”
사헌부 대사헌은 가공의 한 시대 사헌부의 정점, 신하의 비리를 정중히 탄핵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해태(獬豸) 흉배, 어깨에 작은 망토, 한 손에 큰 탄핵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신하의 옛 결재·옛 분기 비리 한 줄·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탄핵이 대사헌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영의정조차 대사헌의 한 줄 앞에서는 한 호흡을 더 가다듬어야 하기에, 의정부와 사헌부 사이에는 늘 한 호흡의 거리가 있다. 가장 무거운 탄핵은 큰 신하의 한 줄이 아니라, 자기 옛 동문(同門)의 한 줄을 정중히 적어야 하는 자리 위에 있다. 가장 단정한 대사헌은 큰 사헌부를 가진 자가 아니라, 탄핵 직전 한 호흡을 끝까지 다듬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호흡 다듬음이 사헌부 한 줄의 무게요. 동문 한 줄을 정중히 적는 자세가 가장 무거운 탄핵이 된다오.”
가공의 사헌부 대사헌 백운규 — 삼대 임금 재위 시 사헌부 정점이자 동문 탄핵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사헌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백운규는 자기 옛 동문이자 형조참판(刑曹參判, 형조의 둘째 자리) 자리에 오른 한경모(가공의 신하)의 한 줄 비리를 정중히 적어야 했던 자리에 섰다고 한다. 그날 밤 백운규는 탄핵 봉서 한 줄을 적기 직전 한 잔 차를 사헌부 안 한 자리에 정중히 올려 두고, 한경모와 함께 옛 한 줄 시(詩)를 외우던 동문 시절을 한 호흡 동안 떠올렸다. 한 호흡이 끝난 뒤에야 그는 한 줄 탄핵 봉서를 정중히 봉(封)했고, 한경모는 그 봉서 한 줄로 한 시즌 자리를 정중히 내려놓았다. 한경모는 후일 백운규에게 한 줄 서신을 보내 "그 한 호흡이 사헌부 한 줄의 무게였소"라 정중히 적었다고 야사가 전한다.
후대 대사헌들이 탄핵 봉서 직전 차 한 잔을 한 자리에 정중히 올려 두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동궁익위랑(東宮翊衛郞)
동궁 익위사
세자를 그림자처럼 지키는 익위 낭군
“세자 저하의 한 걸음 앞에 제 한 호흡이 먼저 닿습니다. 그것이 익위사의 한 줄 약속입니다.”
동궁 익위사는 가공의 한 시대 세자의 호위를 전담하는 동궁 직속 호위무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갑주, 가슴팍에 동궁 휘장 펜던트, 어깨에 작은 망토, 허리에 한 자루 환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동궁 안 모든 출입 시각·옛 분기 야간 결재·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호위가 익위사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내금위장이 임금의 한 호흡을 외운다면, 익위사는 세자의 한 발걸음을 외운다. 세자가 어릴 적부터 한 자리에 함께한 익위사가 가장 무서운 호위무관이라, 동궁 출입 명부의 첫 줄에는 늘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가장 무거운 익위사는 큰 환도를 가진 자가 아니라, 세자의 옛 한 호흡을 한 시즌 동안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매일 새벽 한 호흡이 동궁의 한 시즌이오. 익위사의 칼은 그 한 호흡 안에서만 정중히 빛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동궁 익위사 신우현 — 이대 세자(후일 이대 임금) 곁을 한 시즌도 떠나지 않은 인물로 동궁 야사에 남은 자 — 의 한 일화는 동궁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신우현은 이대 세자가 일곱 살 어린 동궁이던 시절부터 매일 새벽 동궁 후원 매화 가지 옆에서 한 호흡 동안 정중히 검 한 자루를 점검했다고 한다. 어느 분기, 한 야간 자객(가공의 사건 정묘년 동궁 침입, 외세 결탁 비밀 결사 흑호회의 단발성 침입) 한 명이 동궁 침전 반경 다섯 보 안에 들어왔을 때, 신우현은 환도를 뽑기 전 세자의 한 호흡을 정중히 먼저 외웠다고 한다. 그 한 호흡 덕에 세자는 잠을 한 호흡도 깨지 않았으며, 자객은 회랑 한 자리에서 정중히 제압되었다고 야사가 전한다. 신우현은 후일 이대 임금이 즉위할 때까지 동궁 출입 명부 첫 줄에 늘 자기 이름을 적었다.
후대 익위사들이 임명 첫 새벽 동궁 매화 가지 옆에서 한 호흡 검을 점검하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주서낭관(注書郞官)
승정원 주서
왕의 말씀을 받아쓰는 단정한 낭관
“오늘 이 한 줄, 옛 분기 한 줄과 한 글자만 다릅니다. 그 한 글자가 사초의 한 시대를 가릅니다.”
승정원 주서는 가공의 한 시대 승정원에서 임금과 신하의 모든 대화를 한 줄도 빠뜨리지 않고 받아 적는 정중한 사관(史官)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주서 펜던트, 한 손에 옛 붓과 작은 사책(史冊)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초의 옛 문장·옛 분기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사초가 주서의 한 줄 필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이 한 호흡을 더 가다듬는 이유의 절반은, 주서의 붓이 그 한 호흡을 한 줄로 받아 적기 때문이다. 도승지가 결재의 한 줄을 정한다면, 주서는 그 한 줄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를 정한다. 가장 무거운 주서는 큰 사책을 가진 자가 아니라, 임금의 한 농담조차 정중히 한 줄로 옮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농담이 한 시대의 한 줄이오. 주서의 붓끝은 임금의 웃음 한 호흡 옆에 정중히 놓이는 자리지요.”
가공의 승정원 주서 위경한 — 사대 임금 재위 시 사책의 명수이자 임금의 한 농담을 정중히 옮긴 인물로 야사에 남은 자 — 의 한 일화는 승정원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사대 임금이 의정부 회의 도중 영의정 한 호흡이 늦어진 까닭에 "차 한 잔 더 식기 전에 결재를 봅시다"라 정중히 농을 던진 그날, 위경한은 그 한 줄을 빠뜨리지 않고 사책(史冊, 사관이 적는 옛 사초 묶음)에 옮겨 적었다고 한다. 임금이 그 한 줄을 지워 달라 정중히 청했을 때 위경한은 "임금의 한 호흡은 한 시대의 한 줄입니다"라 정중히 답했다. 임금은 그 한 호흡에 한 잔 차를 더 비웠으며, 그 한 줄은 사대 임금 사초 첫 권에 지금도 남아 있다고 야사가 전한다. 위경한의 옛 붓 한 자루는 후일 승정원 주서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주서들이 임금의 한 농담 한 호흡을 정중히 옮기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검열사관(檢閱史官)
예문관 검열
사초를 세밀히 살피는 사관
“이 한 글자, 한 시대 뒤에 한 학사가 다시 펼칩니다. 흥정은 받지 않습니다.”
예문관 검열은 가공의 한 시대 예문관 소속의 신참 사관(史官)으로, 임금의 옛 교서(敎書)와 책문을 한 글자씩 검토·필사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사 관복, 가슴팍에 작은 검열 펜던트, 한 손에 정밀한 옛 붓과 옛 종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교서의 옛 문장·옛 분기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교서가 검열의 한 줄 첨삭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신참 시절 검열의 한 글자 오기(誤記)가 십 년 뒤 책문 한 줄을 무너뜨린 사례가 야사에 남아 있을 만큼, 그의 붓 끝은 가벼워 보이지만 가장 길게 미친다. 늙은 대제학이 가장 자주 들르는 곳도 결국 예문관 검열의 작은 책상 옆이다. 가장 무거운 검열은 큰 교서를 받은 자가 아니라, 자기 한 글자가 다음 시대에 미칠 한 줄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글자가 십 년 뒤 한 줄이 되오. 검열의 붓은 가벼워 보이지만 가장 길게 미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예문관 검열 정한규 — 사대 임금 재위 시 신참으로 입조해 후일 대제학에 오른 인물 — 의 한 일화는 예문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신참 시절 정한규는 임금의 한 줄 교서에서 "윤(允)"자를 "윤(潤)"자로 잘못 옮긴 적이 있었으며, 그 한 글자를 늙은 대제학 송문규의 옛 붓 한 자루로 다시 정중히 옮겨 적었다고 한다. 정한규는 그 옛 붓을 평생 자기 책상 옆에 두었으며, 십 년 뒤 그 한 글자의 무게를 후학에게 정중히 일러 주는 풍습을 만들었다. 어느 분기, 갑오년 책문(策文, 임금이 신하에게 한 줄 묻는 정중한 시험 문답) 한 줄에서 한 신참 검열의 한 글자 오기(誤記)가 다음 시대의 한 줄을 흔들 뻔했을 때, 정한규는 그 한 글자를 직접 지우지 않고 옛 붓을 신참에게 정중히 쥐어 줬다. 신참은 직접 그 한 글자를 다시 옮겨 적었으며, 그날 한 시대의 한 줄이 정중히 굴러갔다고 야사가 전한다.
후대 검열들이 임명 첫 주에 그 옛 붓 한 자루를 한 번 보러 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의금부도사군(義禁府都事君)
의금부 도사
의금부를 누비는 단호한 도사
“이 한 줄 봉서(封書), 사가(私家)에 한 호흡 늦게 닿습니다. 그 한 호흡이 한 가족의 한 끼를 정합니다.”
의금부 도사는 가공의 한 시대 임금 직속 의금부 소속의 정중한 친국(親鞫) 집행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의금부 휘장, 어깨에 작은 망토, 한 손에 봉서와 한 자루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친국 결재·옛 분기 봉서·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친국이 의금부 도사의 한 줄 봉서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의 한 줄 윤허를 받아 사가에 봉서를 닿게 하는 마지막 한 호흡이 도사의 직무이며, 그 한 호흡이 늦으면 한 가족의 한 끼가 한 시즌 더 굴러간다. 그래서 늙은 도사일수록 봉서 한 줄을 정중히 늦게 닿게 하는 한 호흡을 평생 다듬는다. 가장 무거운 도사는 큰 친국을 한 자가 아니라, 사가 앞 한 발걸음을 정중히 멈추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발걸음 멈춤이 한 가족의 한 끼를 한 시즌 더 굴린다오. 봉서를 늦게 닿게 하는 한 호흡이 우리 도사의 첫 절기지요.”
가공의 의금부 도사 임청회 — 사대 임금 재위 시 봉서의 명수이자 한 발걸음 멈춤의 풍습을 만든 인물로 야사에 남은 자 — 의 한 일화는 의금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새벽, 임청회는 한 신하의 사가(私家) 앞 골목에 봉서 한 줄을 들고 도착했을 때, 그 사가에서 어린아이가 첫 한 걸음을 떼는 한 호흡을 마침 정중히 보았다고 한다. 임청회는 환도(短刀)를 허리에 그대로 둔 채 한 발걸음 더 골목 밖에서 한 호흡 멈춰 섰으며, 그 어린아이가 첫 한 걸음을 다 디디고 어미에게 안긴 뒤에야 정중히 봉서를 닿게 했다. 그 사가는 후일 한 시즌 동안 첫 끼를 잃지 않았고, 그 어린아이는 자라 사역원 역관이 되었다고 야사가 전한다. 임청회는 말년에 후학에게 "도사의 첫 절기는 봉서가 아니라 한 발걸음 멈춤"이라 정중히 일렀다.
후대 의금부 도사들이 사가 앞 한 발걸음에서 한 호흡 멈추는 의례가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검서수재(檢書秀才)
규장각 검서관
규장각 서책을 가다듬는 수재
“이 한 권 옛 책, 옛 분기 한 권과 한 글자만 다릅니다. 그 한 글자를 정중히 다듬어 올리겠습니다.”
규장각 검서관은 가공의 한 시대 규장각에서 옛 책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중히 검수하고 필사하는 평민 출신 학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사 관복, 가슴팍에 작은 검서 펜던트, 한 손에 옛 붓과 옛 종이, 어깨에 작은 책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책의 옛 문장·옛 분기 필사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필사가 검서관의 한 줄 첨삭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평민 출신이지만 그의 한 글자가 다음 세대 학사의 첫 한 줄이 되기에, 늙은 대제학들이 가장 자주 차를 청해 마시는 자리가 검서관의 작은 책상 옆이다. 가장 무거운 검서관은 큰 옛 책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한 글자의 한 호흡을 정확히 옮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작은 책상이 규장각의 한 시즌이오. 평민의 한 글자가 학사의 첫 한 줄이 되는 자리지요.”
가공의 규장각 검서관 윤재오 — 사대 임금 재위 시 평민 출신으로 검서관에 발탁된 인물로 야사에 남은 자 — 의 한 일화는 규장각(奎章閣, 옛 책과 어제(御製, 임금이 손수 적은 글)를 정중히 다루는 학사 기관) 안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윤재오는 옛 한 권 경서(經書, 학사들이 정중히 외우는 옛 책)에서 한 글자 결락(缺落, 빠진 글자)을 발견했을 때, 한 호흡 동안 자기 책상 위에 올린 차 한 잔을 끝까지 비우며 그 한 글자를 외웠다고 한다. 그는 결락 자리에 자기 한 글자를 정중히 보충해 적는 대신, 그 한 글자가 결락된 까닭을 한 줄 주(註)로 정중히 적어 두었다. 그 한 줄 주가 다음 분기 갑술년 경연(經筵, 임금과 학사의 옛 책 한 줄 토론)에서 임금의 한 호흡을 한 호흡 더 정중히 했다고 야사가 전한다. 윤재오의 작은 책상은 후일 늙은 대제학들이 차 한 잔을 청해 마시러 가장 자주 들르는 자리가 되었다.
후대 검서관들이 결락 자리에 한 호흡 더 정중한 주를 다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역관통변사(譯官通辯士)
사역원 역관
이국 말을 능히 풀어내는 역관
“이 한 마디 통변, 두 사직의 한 분기를 정합니다. 한 호흡 더 가다듬고 옮기겠습니다.”
사역원 역관은 가공의 한 시대 사역원 소속의 평민 출신 통변관(通辯官)으로, 사신단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정중히 옮기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역관 펜던트, 한 손에 옛 통변 명부, 어깨에 작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신의 옛 어휘·옛 분기 통변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외교가 역관의 한 마디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영의정의 한 줄 윤허도 결국 역관의 한 마디 통변 위에서 정해지기에, 사신단의 진짜 첫째 자리는 사신이 아니라 역관이라는 야사가 있다. 가장 무거운 역관은 큰 사신단을 모신 자가 아니라, 한 마디 통변 직전 한 호흡을 더 가다듬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마디 한 호흡이 두 사직의 한 분기를 갈랐소. 사신단의 진짜 첫째 자리가 역관이라는 야사가 그 까닭이지요.”
가공의 사역원 역관 변홍섭 — 사대 임금 재위 시 평민 출신으로 통변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자 — 의 한 일화는 사역원(司譯院, 옛 통변관을 길러내는 학사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동방 한 이웃 사직의 사신단이 사대 임금에게 정중히 한 마디 외교를 청해 왔을 때, 변홍섭은 그 한 마디의 핵심 어휘 "약(約)"을 "맹(盟)"으로 옮길지 한 호흡 정중히 망설였다고 한다. 변홍섭은 통변 직전 한 호흡 동안 사신의 옛 어휘 명부를 정중히 다시 외운 뒤, "약"을 "맹"으로 한 호흡 무겁게 옮기지 않고 본래대로 정중히 옮겼다. 그 한 마디 덕에 두 사직의 결혼동맹 결재가 한 분기 더 정중히 굴러갔으며, 한 시즌의 외교가 평화롭게 닿았다고 야사가 전한다. 변홍섭의 옛 통변 명부 한 권은 후일 사역원 신참 역관들이 임명 첫 주에 정중히 베껴 적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역관들이 통변 직전 한 호흡을 더 정중히 가다듬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관상천문사(觀象天文師)
관상감 천문관
별자리를 읽어 천기를 살피는 사범
“오늘 별자리, 옛 분기 별자리와 한 호흡 다릅니다. 한 줄 보고서 정중히 올리겠습니다.”
관상감 천문관은 가공의 한 시대 관상감에서 별자리·일식·월식·기후를 정중히 살피는 평민 출신 천문 학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관상감 펜던트, 한 손에 옛 천문도(天文圖)와 작은 측량 도구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별자리의 옛 결재·옛 분기 일식·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결재가 천문관의 한 줄 보고서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의 한 줄 윤허가 늦어지는 분기에는 늘 천문관의 한 줄 별자리 보고서가 먼저 도착한다. 가장 무거운 천문관은 큰 천문도를 가진 자가 아니라, 옛 분기 한 별자리의 한 호흡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별자리의 한 호흡이 임금의 한 줄 윤허보다 먼저 닿는다오. 천문관의 한 줄은 사직의 한 호흡 앞에 정중히 놓이는 자리지요.”
가공의 관상감 천문관 노명석 — 삼대 임금 재위 시 별자리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학사 — 의 한 일화는 관상감(觀象監, 별자리·일식·기후를 정중히 살피는 옛 학사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노명석은 자미원(紫微垣, 옛 천문도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별자리)에서 한 별의 한 호흡이 옛 분기와 한 호흡 다른 까닭을 발견했을 때, 한 호흡 동안 옛 천문도 한 폭을 정중히 펼쳐 다시 외웠다고 한다. 그는 그 한 호흡 차이를 한 줄 보고서로 정중히 임금에게 올렸으며, 임금은 그 한 줄을 받고 한 분기 큰 군량 결재를 한 호흡 더 정중히 늦췄다. 그 분기 변방 한 군영(가공의 함길도 백두 군영, 옛 군량 의심지)이 한 끼를 잃지 않았으며, 그 한 별의 한 호흡 덕이라 야사가 전한다. 노명석의 옛 천문도 한 폭은 후일 관상감 신참 천문관들이 임명 첫 주에 정중히 베껴 그리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천문관들이 한 별자리의 한 호흡 차이를 정중히 외우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내의국수의(內醫局手醫)
내의원 의관
어의의 손길을 지닌 의관
“탕약 한 첩, 옛 분기 한 첩과 한 호흡 다릅니다. 정중히 한 모금 권해 올리겠습니다.”
내의원 의관은 가공의 한 시대 내의원에서 임금과 동궁의 한 호흡을 정중히 살피는 평민 출신 의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의관복, 가슴팍에 작은 내의원 펜던트, 한 손에 옛 약첩 묶음, 어깨에 작은 약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약첩의 옛 결재·옛 분기 진맥·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진맥이 의관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의 한 호흡이 한 호흡 늦어지면 의관의 한 호흡은 두 호흡 빨라진다는 격언이 있을 만큼, 그의 진맥은 사직 한 시즌의 한 줄 호흡과 닿아 있다. 가장 무거운 의관은 큰 탕약을 다스린 자가 아니라, 한 잔 약 향의 한 호흡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호흡 약 향이 임금의 한 시즌을 굴린다오. 진맥은 손목이 아니라 한 호흡 향에서 오는 법이지요.”
가공의 내의원 의관 송준효 — 삼대 임금 재위 시 진맥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의관 — 의 한 일화는 내의원(內醫院, 임금과 동궁의 한 호흡을 정중히 살피는 옛 의관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야간, 임금의 한 호흡이 한 호흡 거칠어진 분기, 송준효는 약첩(藥貼) 묶음을 한 손에 든 채 침전 회랑을 다급히 걸어갔다고 한다. 침전 문 앞에서 송준효는 환도를 풀지 않은 내금위장 곽서린 앞에 한 호흡 정중히 멈춰 섰으며, 곽서린은 그 한 호흡 뒤에야 정중히 침전 문을 열어 줬다. 송준효는 한 잔 탕약을 정중히 진찰한 뒤, 그날 평소 올리던 약첩 한 첩을 한 호흡 옅은 향으로 다시 정중히 다듬었다.
임금은 한 모금을 비우고 한 호흡 가벼워졌으며, 그 분기 사직 한 줄이 한 호흡 더 길게 굴러갔다고 야사가 전한다. 송준효의 옛 약첩 명부 한 권은 후일 내의원 신참 의관들이 임명 첫 주에 정중히 베껴 적는 표본이 되었다.
후원원정자(後苑園丁者)
궐 정원지기
궐 후원 화초를 가꾸는 정원지기
“오늘 이 한 송이 매화, 옛 분기 한 송이와 한 호흡 다릅니다. 정중히 한 가지만 잘라 올리겠습니다.”
궐 정원지기는 가공의 한 시대 궐 후원(後苑)의 매화·소나무·연못을 정중히 가꾸는 평민 출신 정원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작은 후원 배지, 한 손에 작은 가위와 정원 가방, 어깨에 옛 화분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후원에 들르는 모든 신하의 평소 매화 취향·옛 분기 한 송이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신하가 후원에 들면 가장 먼저 정중한 한 가지 매화가 한 자리에 놓인다. 임금이 가장 자주 한숨을 내려놓는 자리가 결국 정원지기가 정중히 다듬어 둔 매화 한 가지 옆이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후원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그 매화 한 가지가 후원의 한 시즌이오. 임금의 한숨 한 호흡이 그 가지 옆에서 정중히 가벼워진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궐 정원지기 마덕보 — 삼대 임금 재위 시 후원 매화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정원사 — 의 한 일화는 궐 후원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삼대 임금이 흉년 결재 한 줄로 한 호흡 무거워진 새벽, 후원 매화 한 가지 옆에 정중히 차 한 잔을 청해 마시러 들렀다고 한다. 마덕보는 임금의 한 호흡이 한 호흡 무거운 까닭을 정중히 외우고, 평소 잘라 올리던 매화 한 가지 대신 한 호흡 더 짧은 가지 한 자루를 정중히 잘라 올렸다. 임금은 그 한 가지를 한 호흡 들여다보다 한숨 한 호흡을 정중히 내려놓았으며, 그 한 호흡 뒤에 환곡 결재를 한 줄 더 가다듬어 윤허했다고 야사가 전한다.
마덕보가 잘라 올린 그 한 가지는 후일 후원 한 자리에 정중히 모셔졌으며, 후대 임금들이 흉년 결재 직전 그 자리를 한 번 들르는 풍습이 생겼다. 평민 정원지기의 한 가지 매화가 사직 한 시즌의 한 줄을 굴렸다는 격언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등롱야인(燈籠夜人)
궐 등롱지기
밤 궐의 등롱을 지키는 야간의 사람
“오늘 이 한 줄 등롱(燈籠), 옛 분기 한 줄과 한 호흡 같은 빛입니다. 정중히 한 줄 더 밝혀 올리겠습니다.”
궐 등롱지기는 가공의 한 시대 궐 회랑(回廊)과 침전 앞 등롱을 정중히 밝히고 끄는 평민 출신 야간 직분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작은 등롱 배지, 한 손에 작은 부싯돌과 옛 등롱 한 자루, 어깨에 작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궐 모든 회랑의 평소 야간 한 호흡·옛 분기 한 줄 빛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신하가 야간 회랑에 들면 가장 먼저 정중한 한 줄 등불이 한 자리에 놓인다. 내금위장의 칼이 침전을 지킨다면, 등롱지기의 한 줄 빛이 회랑을 지킨다는 야사가 있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궐 한 야간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그 한 줄 등롱이 회랑의 한 야간이오. 한 줄 빛이 칼보다 길게 회랑을 지키는 자리지요.”
가공의 궐 등롱지기 한석후 — 사대 임금 재위 시 야간 등롱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직분 — 의 한 일화는 궐 회랑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야간, 사대 임금이 환곡 결재 봉서 한 줄을 다급히 들고 침전에서 승정원으로 정중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분기, 회랑 등롱 한 줄이 한 호흡 어두워진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한석후는 부싯돌(불을 정중히 일으키는 옛 도구)을 한 호흡 안에 정중히 일으켜, 한 줄 등롱을 임금 한 발걸음 앞에 정확히 한 호흡 빠르게 밝혀 두었다. 임금은 그 한 줄 빛 덕에 한 발걸음도 멈추지 않고 승정원에 닿았으며, 봉서 한 줄을 그 분기 안에 정중히 봉했다고 야사가 전한다. 한석후의 옛 부싯돌 한 자루는 후일 등롱지기 신참들이 임명 첫 야간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등롱지기들이 한 줄 등롱을 임금 한 발걸음 앞에 정확히 밝히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병조주재(兵曹主宰)
병조판서
병권의 인사를 주재하는 판서
“한 줄 군적(軍籍), 한 시즌 변방의 한 끼를 정합니다. 도장은 한 호흡 더 가다듬고 찍겠습니다.”
병조판서는 가공의 한 시대 병조의 정점, 한 시대 모든 군적과 군영(軍營)의 한 줄 결재를 정중히 다스리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큰 호부(虎符) 흉배, 어깨에 큰 망토, 한 손에 큰 군적 명부와 한 자루 옛 인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변방 군영의 옛 결재·옛 분기 군량(軍糧)·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군량 결재가 병조판서의 한 줄 도장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영의정의 한 호흡이 사직 한 시즌을 정한다면, 병조판서의 한 줄 군적이 변방 한 시즌의 한 끼를 정한다. 늙은 병조판서일수록 군적 한 줄을 정중히 늦게 봉(封)하는 한 호흡을 평생 다듬는다고 한다. 가장 무거운 병조판서는 큰 부대를 가진 자가 아니라, 변방 졸병 한 명의 옛 한 끼를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줄 도장이 변방 한 끼를 정한다오. 군적은 큰 부대가 아니라 졸병 한 명의 한 끼에서 굴러가는 법이지요.”
가공의 병조판서 도경한 — 사대 임금 재위 시 변방 군적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병조(兵曹, 군적과 군영을 정중히 다스리는 옛 신하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함길도 백두 군영(가공의 북방 변방 군영)에서 군량이 한 호흡 늦어진 까닭에 졸병 한 명의 한 끼가 위태로웠던 그날, 도경한은 군적 한 줄에 도장을 찍기 직전 한 호흡 더 정중히 가다듬었다고 한다. 그는 군적 명부에서 그 졸병의 본명(가공의 인물 차윤후, 함길도 출신 평민 졸병)을 정중히 손가락으로 외운 뒤, 한 줄 군량 결재를 한 호흡 빠르게 봉(封)했다. 그 분기 백두 군영의 졸병들이 한 끼를 잃지 않았으며, 차윤후는 후일 변방 한 자리에서 정중히 한 시즌을 더 굴렸다고 야사가 전한다. 도경한의 옛 인장 한 자루는 후일 병조 신참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병조판서들이 도장 직전 졸병 한 명의 본명을 정중히 외우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형조판공(刑曹判公)
형조판서
형률을 가르는 판서공
“이 한 줄 판결, 한 가족의 한 시즌 한 끼를 정합니다. 붓 끝을 더 정중히 가다듬겠습니다.”
형조판서는 가공의 한 시대 형조의 정점, 한 시대 모든 옛 형률(刑律)과 송사(訟事)의 한 줄 판결을 정중히 다스리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큰 형률 흉배, 어깨에 작은 망토, 한 손에 옛 율법서와 큰 판결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송사의 옛 결재·옛 분기 판결·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판결이 형조판서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사헌부 대사헌이 신하의 한 줄을 탄핵한다면, 형조판서는 평민의 한 줄을 정중히 다스린다. 한 줄 판결 직전에 한 잔 차를 비우고 한 호흡 더 가다듬는 것이 형조판서의 오랜 습관이라, 그의 차 향이 송사의 한 시즌을 가른다는 야사가 있다. 가장 무거운 형조판서는 큰 율법서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한 가족의 한 끼를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차 한 잔 향이 송사 한 시즌을 갈랐소. 형조판서의 한 줄은 율법이 아니라 한 호흡 향에서 굴러가는 법이지요.”
가공의 형조판서 양시혁 — 사대 임금 재위 시 송사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형조(刑曹, 옛 송사와 형률을 정중히 다스리는 신하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한 평민 가족의 한 줄 송사가 형조 정청(政廳, 옛 판결을 정중히 내리는 자리)에 올라왔을 때, 양시혁은 한 줄 판결 직전 늘 한 잔 차를 정중히 비우는 자기 풍습을 그날도 지켰다고 한다. 차가 한 호흡씩 식어 가는 동안 양시혁은 그 가족의 옛 한 끼를 정중히 외웠으며, 한 잔이 다 비워졌을 때 그는 한 줄 형률 대신 한 줄 단서를 더 정중히 적어 판결을 봉(封)했다. 그 한 줄 단서 덕에 그 가족의 한 끼가 한 시즌 더 정중히 굴러갔으며, 후일 그 가족의 큰아이가 사역원 신참 역관이 되었다고 야사가 전한다. 양시혁의 옛 차 한 잔 자리는 후일 형조 신참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자리가 되었다.
후대 형조판서들이 판결 직전 한 잔 차를 정중히 비우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홍문관차장(弘文館次長)
홍문관 부제학
홍문관을 보좌하는 부제학 차장
“이 한 줄 경연(經筵), 다음 한 시대의 한 호흡을 정합니다. 한 호흡 더 다듬어 올리지요.”
홍문관 부제학은 가공의 한 시대 홍문관의 실질 책임자, 임금의 경연(經筵)과 한 줄 자문을 정중히 다스리는 학사(學士)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청색 학사 관복, 가슴팍에 작은 홍문관 펜던트, 어깨에 학사 망토, 한 손에 옛 경서(經書)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경서의 옛 문장·옛 분기 경연·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경연이 부제학의 한 줄 첨삭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대제학이 사초의 한 줄을 정한다면, 부제학은 임금의 한 호흡 옆에서 한 줄 자문을 정중히 올린다. 늙은 임금일수록 경연 직전 부제학의 한 잔 차를 청해 마신다는 야사가 있을 만큼, 그의 한 줄 자문은 경서보다 무겁다. 가장 무거운 부제학은 큰 홍문관을 가진 자가 아니라, 임금의 한 호흡 옆 한 줄 침묵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줄 침묵이 경연 한 호흡이오. 부제학의 자문은 한 줄 말이 아니라 한 줄 호흡으로 정중히 닿는 자리지요.”
가공의 홍문관 부제학 정후겸 — 삼대 임금 재위 시 경연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학사 — 의 한 일화는 홍문관(弘文館, 임금의 경연을 정중히 다루는 옛 학사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삼대 임금이 경연 자리에서 한 줄 책문(策文)에 한 호흡 답을 정하지 못하고 한 호흡 침묵하셨을 때, 정후겸은 한 줄 자문을 올리는 대신 한 호흡 동안 자기도 정중히 침묵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 한 호흡이 끝난 뒤에야 정후겸은 한 줄 옛 경서(經書) 한 구절을 정중히 외워 올렸으며, 임금은 그 한 줄 옆에 자기 한 호흡을 한 줄로 정중히 적었다. 그 한 줄이 후일 사대 임금이 즉위할 때까지 경연 첫 줄에 한 번 더 정중히 펼쳐졌다고 야사가 전한다. 정후겸의 옛 경서 한 권은 후일 홍문관 신참 학사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부제학들이 경연 자리에서 한 호흡 침묵을 정중히 같이 하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비변랑청사(備邊郞廳士)
비변사 낭청
변방 정세를 다루는 낭청 사관
“이 한 줄 변보(邊報), 의정부 한 호흡과 병조 한 호흡을 한 자리에 묶습니다. 정중히 한 호흡 더 다듬겠습니다.”
비변사 낭청은 가공의 한 시대 비변사의 실무 관원으로, 의정부·병조·승정원의 한 줄을 한 자리에 정중히 묶어 변방의 한 줄 변보(邊報)를 다스리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비변사 펜던트, 한 손에 큰 변보 명부와 옛 지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변방 옛 변보·옛 분기 군영 결재·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변보가 낭청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영의정과 병조판서의 한 호흡이 어긋날 때 가장 먼저 한 호흡을 더 다듬는 자리가 비변사 낭청이라, 의정부 회의가 길어질수록 그의 차 한 잔이 정중히 식어간다. 가장 무거운 낭청은 큰 변보를 받은 자가 아니라, 두 신하의 한 호흡을 정중히 한 줄로 묶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식어 가는 차 한 잔이 비변사의 한 호흡이오. 낭청의 한 줄은 두 신하의 한 호흡을 한 자리에 묶는 자리지요.”
가공의 비변사 낭청 강신우 — 사대 임금 재위 시 변보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인물 — 의 한 일화는 비변사(備邊司, 의정부와 병조와 승정원의 한 호흡을 한 자리에 정중히 묶는 옛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영의정 황보겸의 한 호흡과 병조판서 도경한의 한 호흡이 함길도 백두 군영 변보 한 줄에서 정중히 어긋나던 그날, 강신우는 두 신하 앞에 옛 지도(地圖) 한 폭을 정중히 펼쳐 두었다고 한다. 강신우는 두 신하 앞에 차 한 잔씩만 정중히 올린 뒤, 옛 지도에서 백두 군영 한 자리를 손가락으로 정중히 외워 보여 줬다. 차가 식기 전 두 신하의 한 호흡이 정중히 한 줄로 묶였으며, 그 분기 변보 한 줄이 한 호흡 안에 굴러갔다고 야사가 전한다. 강신우의 옛 지도 한 폭은 후일 비변사 신참 낭청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베껴 그리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낭청들이 두 신하 앞에 차 한 잔씩만 정중히 올리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선전호위랑(宣傳護衛郞)
선전관
왕의 분부를 전하는 선전관 낭군
“주상의 한 줄 어명(御命), 변방 한 군영의 한 호흡 안에 정중히 닿게 하겠습니다.”
선전관은 가공의 한 시대 임금의 한 줄 어명을 변방 군영과 사신단에 직접 전하는 무관 출신 전령(傳令)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큰 선전관 펜던트, 어깨에 작은 망토, 허리에 한 자루 환도, 한 손에 큰 어명 봉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변방 군영의 옛 거리·옛 분기 어명·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어명이 선전관의 한 줄 봉서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의금부 도사가 사가에 봉서를 닿게 한다면, 선전관은 변방 군영에 어명을 닿게 한다. 한 줄 어명을 한 호흡 빨리 닿게 한 분기와 한 호흡 늦게 닿게 한 분기가 변방 한 시즌의 한 끼를 가른다고, 늙은 선전관들은 후학에게 정중히 일러둔다. 가장 무거운 선전관은 큰 어명을 받은 자가 아니라, 변방 한 군영의 옛 거리를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호흡 빠른 어명이 변방 한 끼를 살린다오. 선전관의 한 줄은 봉서가 아니라 한 호흡 거리에서 굴러가는 자리지요.”
가공의 선전관 임백후 — 사대 임금 재위 시 어명 전달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무관 — 의 한 일화는 선전관청(宣傳官廳, 옛 임금의 어명을 변방에 정중히 닿게 하는 옛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사대 임금이 함길도 백두 군영(가공의 북방 변방 군영)에 한 줄 군량 어명을 정중히 봉(封)해 임백후에게 맡긴 그날, 임백후는 옛 길의 한 자리(가공의 옛 길목 두만 객점, 변방 한 자리 객잔)에서 한 호흡 더 빠른 옛 길을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임백후는 환도(環刀)를 허리에 그대로 둔 채 옛 길을 한 호흡 빨리 달려 한 줄 어명을 한 호흡 안에 변방에 닿게 했으며, 그 분기 백두 군영의 졸병 한 명의 한 끼가 한 호흡도 늦지 않았다고 야사가 전한다. 임백후의 옛 봉서 한 자루는 후일 선전관 신참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선전관들이 옛 길의 한 자리를 정중히 외우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봉상예관(奉常禮官)
봉상시 봉사
종묘 제례를 받드는 봉사관
“오늘 이 한 줄 제향(祭享), 옛 분기 한 줄과 한 호흡 같은 향(香)으로 정중히 올리겠습니다.”
봉상시 봉사는 가공의 한 시대 봉상시(奉常寺) 소속의 평민 출신 관원으로, 사직(社稷)과 종묘(宗廟)의 한 줄 제향(祭享)과 옛 시호(諡號) 결재를 정중히 다스리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봉상시 펜던트, 한 손에 옛 제기(祭器) 명부와 작은 향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제향의 옛 결재·옛 분기 향(香)·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제향이 봉사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의 한 호흡이 한 호흡 늦어지는 분기에는 늘 봉상시 봉사의 한 줄 향이 먼저 올려진다. 한 줄 시호 결재 직전 한 잔 차를 비우고 한 호흡 더 가다듬는 것이 봉사의 오랜 습관이다. 가장 무거운 봉사는 큰 종묘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한 줄 향의 한 호흡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줄 향이 종묘 한 시즌을 굴린다오. 봉상시의 첫 절기는 큰 제향이 아니라 한 호흡 향이지요.”
가공의 봉상시 봉사 양효성 — 삼대 임금 재위 시 제향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관원 — 의 한 일화는 봉상시(奉常寺, 종묘와 사직의 한 줄 제향을 정중히 다루는 옛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삼대 임금이 흉년 결재 한 줄로 한 호흡 무거워진 분기 종묘 한 줄 제향을 정중히 모셔야 했던 그날, 양효성은 평소 올리던 향(香) 한 줄 대신 한 호흡 옅은 향 한 자루를 정중히 다듬어 올렸다고 한다. 양효성은 그 한 호흡 옅은 향이 임금의 한 호흡을 정중히 가볍게 하리라 외우고, 옛 시호(諡號) 명부에서 두 대 위 임금의 옛 한 호흡을 정중히 함께 외웠다. 임금은 그 한 줄 향을 한 호흡 들이마신 뒤 한숨 한 호흡을 정중히 내려놓았으며, 그 한 호흡 뒤에 흉년 결재를 한 줄 더 정중히 다듬어 윤허했다고 야사가 전한다. 양효성의 옛 향로(香爐) 한 자루는 후일 봉상시 신참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봉사들이 흉년 분기 한 호흡 옅은 향을 정중히 다듬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어용화수(御容畵手)
도화서 화원
어진을 그리는 도화서 화수
“이 한 폭 어진(御眞), 한 시대의 한 호흡을 정중히 옮깁니다. 붓 끝을 늦추지 않겠습니다.”
도화서 화원은 가공의 한 시대 도화서(圖畫署) 소속의 평민 출신 화공(畵工)으로, 임금과 세자의 어진(御眞)·궐 행사(行事)의 한 폭 그림을 정중히 그리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사 관복, 가슴팍에 작은 도화서 펜던트, 한 손에 옛 붓 묶음과 옛 화첩(畵帖), 어깨에 작은 안료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어진의 옛 한 호흡·옛 분기 한 폭·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어진이 화원의 한 줄 붓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대제학이 한 줄 사초를 정중히 다듬는다면, 화원은 한 시대 임금의 한 호흡을 한 폭에 정중히 옮긴다. 평민 출신이지만 그의 한 폭이 다음 시대 학사들의 첫 한 줄이 되기에, 늙은 도승지들이 가장 자주 차를 청해 마시는 자리가 화원의 작은 화첩 옆이다. 가장 무거운 화원은 큰 어진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한 호흡의 한 표정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호흡 표정이 한 시대의 한 폭이오. 화원의 붓은 어진이 아니라 한 호흡 표정에서 굴러가는 자리지요.”
가공의 도화서 화원 차윤환 — 사대 임금 재위 시 어진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화공 — 의 한 일화는 도화서(圖畫署, 임금과 세자의 어진을 정중히 그리는 옛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차윤환이 사대 임금의 어진(御眞, 임금의 한 폭 그림) 한 폭을 정중히 그리던 그날, 임금이 한 호흡 동안 정중히 한 줄 한숨을 내려놓는 한 호흡을 마침 보았다고 한다. 차윤환은 평소 그리던 단정한 한 표정 대신, 그 한 호흡 한숨의 한 표정을 정중히 한 폭에 옮겨 적었다. 임금은 그 한 폭을 정중히 보고 한 호흡 동안 침묵하다, "이 한 폭이 한 시대의 한 호흡이로구나"라 정중히 한 줄 칭송을 내렸다고 야사가 전한다. 차윤환의 옛 화첩(畵帖) 한 권은 후일 도화서 신참 화원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베껴 그리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화원들이 어진 직전 한 호흡 표정을 정중히 외우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장악악사(掌樂樂師)
장악원 악사
궐의 음률을 잡는 악사
“이 한 줄 가락, 옛 분기 한 줄과 한 호흡 다릅니다. 정중히 한 박자 더 가다듬어 올리겠습니다.”
장악원 악사는 가공의 한 시대 장악원(掌樂院) 소속의 평민 출신 악공(樂工)으로, 궁중 연회(宴會)와 제향(祭享)의 한 줄 가락을 정중히 다스리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악공 정복, 가슴팍에 작은 장악원 펜던트, 한 손에 옛 악기 한 자루(거문고·해금·피리 중 한 가지), 어깨에 작은 악보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락의 옛 결재·옛 분기 한 박자·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연회가 악사의 한 줄 가락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임금의 한 호흡이 한 호흡 무거워지는 분기에는 늘 악사의 한 줄 가락이 먼저 한 박자 늦춰진다. 한 줄 가락의 한 박자가 사신단의 한 줄 외교를 가른다는 야사가 있을 만큼, 그의 옛 악기는 도승지의 한 줄 보고서보다 길게 닿는다. 가장 무거운 악사는 큰 연회를 다스린 자가 아니라, 옛 한 박자의 한 호흡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그 한 박자 늦춤이 사신단의 한 줄 외교를 갈랐소. 장악원의 옛 가락은 칼이 아니라 한 호흡으로 사직을 굴리는 자리지요.”
가공의 장악원 악사 노철문 — 사대 임금 재위 시 거문고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악공 — 의 한 일화는 장악원(掌樂院, 옛 궁중 가락을 정중히 다루는 옛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동방 한 이웃 사직의 사신단이 사대 임금의 정중한 연회(宴會) 자리에 들렀던 그날, 노철문은 거문고(거문고, 옛 여섯 줄 큰 악기)의 한 줄 가락을 평소보다 한 박자 정중히 늦춰 연주했다고 한다. 그 한 박자 늦은 한 줄 가락 덕에 사신단의 한 호흡이 정중히 한 호흡 가벼워졌으며, 역관 변홍섭의 한 마디 통변이 한 호흡 더 정중히 굴러갔다고 야사가 전한다. 그 분기 두 사직의 외교 한 줄이 한 호흡 평화롭게 닿았으며, 그 까닭이 노철문의 한 박자에 있다는 격언이 후일 사역원 역관들 사이에 정중히 회자되었다.
노철문의 옛 거문고 한 자루는 후일 장악원 신참 악사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수라숙수옹(水剌熟手翁)
궐 수라간 숙수
왕의 수라를 짓는 솜씨 좋은 옹
“오늘 이 한 그릇 수라(水剌), 옛 분기 한 그릇과 한 호흡 다릅니다. 정중히 한 모금 권해 올리겠습니다.”
궐 수라간 숙수는 가공의 한 시대 수라간(水剌間) 소속의 평민 출신 요리인으로, 임금과 동궁의 한 그릇 수라를 정중히 짓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숙수 정복, 가슴팍에 작은 수라간 배지, 한 손에 옛 칼 한 자루와 작은 도마, 어깨에 작은 식재(食材)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임금과 동궁의 평소 한 모금 취향·옛 분기 한 그릇의 결정적 시점·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수라가 숙수의 한 줄 도마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내의원 의관이 임금의 한 호흡을 다스린다면, 숙수는 임금의 한 끼를 정중히 다스린다. 임금이 한 호흡 더 무거워지는 분기에는 늘 숙수의 한 그릇이 한 호흡 더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내관들만이 안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궐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그 한 그릇 수라가 한 시즌 한 호흡이오. 숙수의 첫 절기는 큰 진수성찬이 아니라 한 호흡 더 따뜻한 한 모금이지요.”
가공의 궐 수라간 숙수 박덕재 — 삼대 임금 재위 시 수라(水剌, 임금의 한 끼)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요리인 — 의 한 일화는 수라간(水剌間, 임금과 동궁의 한 끼를 정중히 짓는 옛 기관)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삼대 임금이 흉년 결재 한 줄로 한 호흡 무거워진 새벽, 박덕재는 평소 올리던 진한 수라 한 그릇 대신 한 호흡 더 정중히 묽은 죽 한 그릇을 정중히 다듬어 올렸다고 한다. 박덕재는 그 한 그릇을 한 호흡 더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옛 도마(잘게 정중히 써는 옛 도구)를 한 호흡 더 정중히 다듬었으며, 임금의 한 호흡이 한 호흡 가벼워질 그릇 한 자리를 정중히 외웠다. 임금은 그 한 모금을 비우고 한숨 한 호흡을 정중히 내려놓았으며, 그 한 호흡 뒤에 흉년 환곡 결재를 한 줄 더 정중히 다듬어 윤허했다고 야사가 전한다. 박덕재의 옛 칼 한 자루와 도마는 후일 수라간 신참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숙수들이 흉년 분기 한 호흡 더 정중한 한 모금을 다듬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마구간천부(馬廐間賤夫)
궐 마구간지기
궐 말을 돌보는 마부
“오늘 이 한 마리 어마(御馬), 옛 분기 한 호흡과 한 결 다릅니다. 정중히 한 솔질 더 다듬어 올리겠습니다.”
궐 마구간지기는 가공의 한 시대 궐 마구간(廐) 소속의 평민 출신 직분으로, 임금과 세자의 어마(御馬)·내금위 군마(軍馬)를 정중히 돌보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작은 마구간 배지, 한 손에 옛 솔과 작은 여물(秣) 가방, 어깨에 옛 안장 가죽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어마의 평소 한 호흡·옛 분기 한 솔질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신하가 마구간에 들면 가장 먼저 정중한 한 솔질의 한 호흡이 한 자리에 놓인다. 내금위장의 칼이 침전을 지킨다면, 마구간지기의 한 솔질이 어마의 한 호흡을 지킨다는 야사가 있다. 임금이 사냥(獵)에 나서기 전 가장 먼저 한 호흡을 청해 마시는 자리가 결국 마구간지기가 정중히 다듬어 둔 어마 한 마리 옆이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궐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그 한 솔질 한 호흡이 어마 한 시즌이오. 마구간지기의 첫 절기는 안장이 아니라 한 호흡 솔질이지요.”
가공의 궐 마구간지기 도복재 — 사대 임금 재위 시 어마(御馬)의 명수로 야사에 남은 평민 출신 직분 — 의 한 일화는 궐 마구간(廐, 옛 어마와 군마를 정중히 돌보는 자리)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사대 임금이 가을 사냥(獵, 임금이 옛 한 호흡 외교 자리에 정중히 나서는 의례적 행렬)에 나서기 전 새벽, 도복재는 임금의 어마(가공의 어마 청풍, 사대 임금이 정중히 외우던 백마)에게 한 솔질을 평소보다 한 호흡 더 정중히 다듬었다고 한다. 도복재는 옛 안장 가죽을 한 호흡 더 부드럽게 다듬은 뒤, 청풍의 한 호흡을 정중히 자기 한 호흡으로 외웠다. 임금은 청풍 위에 정중히 오른 뒤 한 호흡 동안 마구간 한 자리에서 차 한 잔을 청해 마셨으며, 그 한 호흡 덕에 그날 사냥 한 줄이 한 호흡 정중히 굴러갔다고 야사가 전한다. 도복재의 옛 솔 한 자루와 안장은 후일 마구간 신참들이 임명 첫 주에 한 번 정중히 보러 가는 표본이 되었다.
후대 마구간지기들이 사냥 직전 한 호흡 솔질을 정중히 다듬는 풍습이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좌의정대감(左議政大監)
좌의정
조정의 좌측 정승 대감
“영상 어른, 차 한 잔 드신 뒤 결재하시지요. 오른쪽 결재는 제가 정중히 받아 두겠습니다.”
좌의정은 가공의 한 시대 의정부(議政府, 삼정승이 함께 결재를 다루는 본청) 삼정승 가운데 영의정(1150007) 바로 아래 자리로, 사직의 결재 두 번째 줄을 정중히 맡는 최고위 신하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옥색 관복, 어깨에 학 문양 망토,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 한 손에 묵직한 결재첩이 표준이다. 한 시대 모든 결재문의 우선순위와 영의정의 한 호흡 습관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영의정이 결재를 미루는 사흘 동안 좌의정은 그 결재첩을 자기 책상 왼쪽에 정중히 두고 기다린다. 한 분기 가장 뜨거운 결재가 어전에 오르기 전, 반드시 좌의정의 한 줄 검토가 먼저 굴러간다.
영의정이 옥좌 가장 가까운 한 자리라면, 좌의정은 그 옆 한 자리에서 모든 결재를 한 박자 먼저 받아 두는 완충 자리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권력이 사실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이 의정부 복도에 돌고 있다.
“좌의정 어른들이 임명 첫 주에 영의정 책상 왼쪽 자리를 한 번 보러 가는 까닭이 있습니다. 두 번째 자리가 첫 번째 자리의 한 호흡을 받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십사대 좌의정 고윤진 — 의정부 야사에 '왼쪽 결재의 명수'로 남은 신하이자 영의정이 두 번 결재를 미룬 날에도 한 줄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인물 — 의 일화는 의정부 복도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어느 분기, 십이대 영의정 한도경(당시 환곡 결재를 닷새 미룬 그 인물)이 결재첩을 어전에 올리기 전 새벽, 고윤진은 좌의정 자리에서 그 결재첩의 왼쪽 여백에 작은 주(註) 한 줄, "좌의정 고윤진, 한 호흡 기다립니다"를 정중히 더해 두었다고 한다.
영의정은 그 주 한 줄을 읽고 한 호흡 동안 침묵하다 결재첩을 어전에 올렸다. 임금은 고윤진의 주 한 줄을 함께 읽고 "좌의정이 기다렸다 하니 영상의 한 줄이 더 무겁구나"라 칭송했다.
후대 좌의정들은 임명 첫 주에 그 결재첩 왼쪽 여백을 한 번 보는 관례를 따른다.
동궁사부(東宮師父)
세자사부
세자에게 학문을 전하는 사부
“저하, 오늘 한 줄 경연(經筵, 스승과 세자가 함께 경전을 공부하는 자리)은 사서(四書)가 아니라 차 한 잔 앞의 침묵입니다.”
세자사부(世子師傅)는 가공의 한 시대 동궁에서 세자의 학문과 덕목을 정중히 이끄는 스승 자리다. 의정부 최고위 연로 신하 가운데 임금이 직접 지명하며, 한 시대에 단 한 명만 존재한다.
외형은 단정한 흰 관복 위에 짙은 색 겉도포, 머리에 유건(儒巾, 선비가 쓰는 검은 두건), 한 손에 사서삼경 묶음과 참대 지팡이가 표준이다. 세자의 한 호흡 습관·취침 시각·가장 어려워하는 글자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경연 자리에서 세자사부가 한 줄을 읽으면 세자는 다음 한 줄을 외워야 한다. 그런데 세자사부의 진짜 수업은 경전 암송이 아니라 임금이 될 자의 한 호흡을 다듬는 데 있다.
노학자의 참대 지팡이 소리가 동궁 마루를 울릴 때마다 세자가 한 박자 숨을 고르는 건, 사부가 가르치는 것이 글자가 아니라 한 호흡의 무게라는 사실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동궁 세자사부들이 입직 첫 경연 전에 차 한 잔을 내려두는 관례가 있습니다. 한 줄 경전보다 먼저 한 잔의 침묵을 가르치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삼대 세자사부 유경문 — 동궁 야사에 '차 한 잔 경연의 명수'로 남은 연로 학자이자 사서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하면서도 정작 세자에게 경전 대신 차 한 잔부터 건넸다는 인물 — 의 일화는 동궁 사관록에 '차 앞의 한 줄'로 남았다.
어느 봄 경연 자리에서 세자 이연우(후일 사대 임금)가 사서 한 구절을 세 번 연거푸 틀렸을 때, 유경문은 회초리 대신 차 한 잔을 정중히 세자 앞에 내려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차가 식는 동안 세자는 스스로 한 줄을 다시 읽었고, 차가 다 식었을 때 그 구절을 한 번에 외워냈다. 유경문은 그날 이후 경연 첫 순서를 늘 차 한 잔으로 열었으며, 훗날 사대 임금은 결재 직전 차를 다 비우는 습관이 그날 사부에게 배운 것이라고 도승지에게 한 줄 남겼다.
동궁에서는 그 찻잔 자리를 보존해 두며, 후대 세자들은 경연 첫날 그 자리에서 한 모금을 마시는 관례를 따른다.
정부사인(政府舍人)
의정부 사인
의정부 문서를 다루는 사인 낭관
“영상 어른, 이 결재문 여백 한 줄 정중히 정서(正書, 바르게 옮겨 적기)해 두었습니다. 내일 아침 어전 전에 한 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의정부 사인(舍人)은 가공의 한 시대 의정부 실무를 정중히 뒷받침하는 중견 문관으로, 삼정승의 결재문을 정서·정리하고 어전 보고 준비를 총괄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문관 관복, 가슴팍에 사인 펜던트, 한 손에 결재문 묶음과 붓 세 자루가 표준이다. 의정부 모든 결재문의 여백 분량과 삼정승의 서체(書體) 특징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영의정이 결재를 내리면 가장 먼저 사인의 붓이 그 옆 여백을 정중히 채운다. 결재문 본문보다 여백 주(註) 한 줄이 다음 분기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의정부 복도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삼정승이 동시에 결재를 내리는 날에는 사인의 붓이 한 순간에 세 자리를 오가야 한다. 의정부 복도에서 가장 빠른 발걸음은 대개 사인의 것이다.
“의정부 사인들이 입직 첫 날 결재문 여백 한 자리를 정중히 보고 가는 까닭이 있습니다. 여백 한 줄이 본문 한 줄보다 오래 남는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의정부 사인 이준겸 — 사직 야사에 '여백 정서의 명수'로 남은 중견 문관이자 삼정승 결재문 여백을 평생 한 글자도 잘못 채운 일이 없다는 인물 — 의 일화는 의정부 사관록에 '여백 한 줄의 새벽'으로 남았다.
어느 분기, 좌의정 고윤진(당시 '왼쪽 결재의 명수')이 어전 보고 직전 결재문 본문 한 줄을 고쳐 써야 했을 때, 이준겸은 지워진 자리 여백에 미리 정서해 두었던 주 한 줄이 그 빈자리를 정중히 받쳐 주었다고 한다.
임금은 본문보다 여백 주 한 줄을 먼저 읽었고, "사인의 한 줄이 결재문을 두 배로 만들었다"고 칭송했다. 이준겸은 그날 이후 결재문 여백을 본문과 동등하게 준비하는 의정부 관례를 만들었다.
후대 사인들은 입직 첫 날 그 결재문 여백 원본을 한 번 펴 보는 관례를 따른다.
사간수장(司諫首長)
사간원 대사간
왕에게 직간을 올리는 사간원 수장
“전하, 이 상소 한 줄, 신이 정중히 한 박자 먼저 올립니다. 윤허 전에 한 호흡 더 가다듬어 주시옵소서.”
사간원(司諫院) 대사간은 가공의 한 시대 임금의 정책을 직접 논박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간관(諫官, 임금에게 직언하는 신하) 수장이다. 어전에서 유일하게 임금에게 "아니 되옵니다"를 정중히 말할 수 있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어깨에 학 문양 망토, 가슴팍에 사간원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상소문 묶음이 표준이다. 역대 임금 결재 가운데 사간원이 되돌린 한 줄을 모두 외우고 있다.
사헌부 대사헌(1150010, 백관 기강 단속 자리)이 신하를 바로잡는 자리라면, 대사간은 임금을 정중히 바로잡는 자리다. 이 두 자리가 같은 날 같은 결재에 동시에 이의를 올리면 의정부 전체가 한 박자 멈춘다.
간관 자리에 앉은 자는 임금에게 미움받을 각오가 기본 임용 조건이라는 야사가 있다. 그래서 대사간 임기가 가장 짧고, 후임 대사간 임명 속도가 가장 빠르다.
“사간원 어른들이 임명 첫 날 상소함 앞에 정중히 한 박 서 있는 까닭이 있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한 줄이 임금의 한 호흡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자리의 무게지요.”
가공의 사간원 대사간 변이직 — 야사에 '세 번 상소, 세 번 복직'의 인물로 남은 간관이자 임금에게 한 분기에 세 번 직접 상소를 올려 세 번 자리를 내놓고 세 번 다시 돌아온 유일한 대사간 — 의 일화는 사간원 사관록에 '세 번의 한 줄'로 남았다.
그해 임금이 변방 군량(軍糧, 군사들의 식량) 결재를 한 분기 서두른 일이 있었는데, 변이직은 세 번 연거푸 상소를 올려 "군량 한 분기 결재는 한 호흡 더 기다려야 합니다"를 정중히 주장했다.
임금은 세 번째 상소를 받고서야 한 호흡 더 가다듬어 결재를 한 달 미뤘고, 그 한 달 사이에 변방 군영 한 곳이 스스로 군량 문제를 해결했다. 변이직의 상소 원본 세 장은 사간원 서고 한 자리에 나란히 보존되어 있다.
후대 대사간들은 입직 첫 날 그 상소 세 장 앞에서 한 호흡을 정중히 가다듬는 관례를 따른다.
이조전랑(吏曹銓郞)
이조판서
인사권의 정점에 선 이조판서
“이번 분기 인사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가다듬었습니다. 관직 한 자리가 한 사람의 한 시즌을 정합니다.”
이조판서(吏曹判書)는 가공의 한 시대 문관 인사 전체를 총괄하는 판서로, 모든 문관의 승진·좌천·임명을 결재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판서 관복, 가슴팍에 이조 인장 펜던트, 한 손에 관직 인사 명부가 표준이다. 한 시대 문관 삼천 명의 이름과 가장 최근 근무 평가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병조판서(1150021, 무관 인사 총괄)가 칼 든 자들의 자리를 정한다면, 이조판서는 붓 든 자들의 한 줄 운명을 정한다. 사직에서 가장 많은 이의 절을 받는 자리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원망도 들어오는 자리다.
인사 결재 날 이조판서 방 앞 복도에는 늘 줄이 서 있다. 판서는 그 줄을 보지 않고 명부 한 장만 보는 것이 관례라고 하는데, 관례가 생긴 이유는 줄을 보면 명부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야사가 있다.
“이조판서 어른들이 인사 결재 전날 인사 명부를 한 번 뒤집어 두는 관례가 있습니다. 명부를 거꾸로 읽어도 한 호흡 어긋나지 않는 인사가 가장 바른 인사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이조판서 남기원 — 야사에 '명부를 거꾸로 읽은 판서'로 남은 인물이자 인사 명부를 거꾸로 읽어 말단 관직 한 명을 발탁해 다음 세대 도승지를 만들었다는 자 — 의 일화는 이조(吏曹, 문관 인사 본청) 야사에 가장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분기, 도승지 정인섭(당시 승정원 정점)의 후임을 결정해야 했을 때, 남기원은 인사 명부 첫 장이 아니라 마지막 장에서 한 이름을 정중히 집었다고 한다.
그 이름은 성균관 전적 한 명으로, 여백 주(註) 한 줄을 두 개나 달아 두었던 자였다. 남기원은 그 주 한 줄을 읽고 명부를 뒤집어 다시 처음부터 읽은 뒤, 그 이름을 도승지 후보 첫 줄에 올렸다.
후대 이조판서들은 인사 결재 전날 명부를 한 번 거꾸로 두는 관례를 따른다.
예조총공(禮曹總公)
예조판서
국가 예법을 총괄하는 판서
“이번 가례(嘉禮, 왕실 혼례 의식) 의례 한 줄, 정중히 한 박자 더 다듬었습니다. 예(禮)는 치르는 자보다 받는 자의 한 호흡을 정합니다.”
예조판서(禮曹判書)는 가공의 한 시대 궐 의례(儀禮)·교육·외교 의전을 총괄하는 판서로, 가례·제향·빈례(賓禮, 외국 사신 접대 의례) 등 모든 궐 행사의 순서를 결재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예조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의례 절차서가 표준이다. 역대 가례 의례 절차 중 한 박자 어긋나 나중에 수정된 사례를 모두 외우고 있다.
병조판서(1150021)가 무기를 정돈한다면, 예조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돈한다. 큰 의례 날 예조판서가 한 박자 이르게 나타나는 것은, 의례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한 호흡을 먼저 점검하기 위해서다.
세간에서는 예조판서 자리가 가장 한가한 자리처럼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는 가례 한 번이 끝나면 그다음 가례 준비가 바로 시작되어 가장 바쁜 자리라는 것이 예조 복도의 상식이다.
“예조판서 어른들이 가례 직전 의례 절차서를 한 번 뒤에서부터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마지막 박자가 첫 박자의 한 호흡을 결정한다는 예(禮)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예조판서 정여운 — 야사에 '거꾸로 읽은 의례서의 명수'로 남은 인물이자 세자빈 가례 직전 의례서 마지막 장에서 한 박자 오류를 발견해 고친 자 — 의 일화는 예조 사관록에 '마지막 장의 한 박자'로 남았다.
사대 세자의 가례 하루 전, 정여운은 평소 관례대로 의례서를 마지막 장부터 읽어 내려갔는데, 봉상시 봉사(1150026, 제향 의례 실무 담당)가 차비해 둔 제향 향 한 자루 배치 순서가 한 박자 어긋난 것을 발견했다.
정여운은 큰 호령 없이 봉사에게 한 줄 서찰을 보냈고, 봉사는 가례 당일 새벽에 향 한 자루 자리를 정중히 바로잡았다. 그 덕에 가례는 한 박자의 어긋남 없이 굴러갔으며, 세자는 가례 후 예조판서에게 직접 차 한 잔을 청해 보냈다.
후대 예조판서들은 큰 의례 전날 의례서를 마지막 장부터 읽는 관례를 따른다.
오위도총수(五衛都總帥)
오위도총부 도총관
오위 군영을 총괄하는 도총관
“이번 도성 순라(巡邏, 밤에 도성을 돌며 경비하는 것) 결재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다듬었습니다. 칼은 마지막에 쓰는 것입니다.”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 都摠管)은 가공의 한 시대 도성 경비와 궐 오위(五衛, 도성 방어 다섯 군사 조직) 군사 전체를 총지휘하는 무관 정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갑옷 위에 총관 대장 망토, 가슴팍에 오위도총부 인장 펜던트, 허리에 대검 한 자루가 표준이다. 도성 오 개 방위 구역의 순라 시각과 내금위장(1150008, 궐 친위 수장)과의 합동 작전 이력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내금위장이 임금 한 몸을 지킨다면, 도총관은 도성 전체의 한 시즌을 지킨다. 밤이 깊어 도성에 불 하나 켜지지 않아야 비로소 도총관의 한 시즌이 정중히 닫힌다.
오위 훈련 날 도총관이 가장 늦게 병영에서 나오는 것은, 마지막 군사의 한 호흡이 자기 한 호흡과 같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귀가하기 때문이라는 야사가 있다.
“도총관 어른들이 임명 첫 날 도성 성곽을 한 바퀴 걷는 관례가 있습니다. 도성 한 바퀴가 한 시즌 경비의 첫 한 호흡이라는 무관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도총관 임세흥 — 야사에 '성곽 한 바퀴의 명수'로 남은 무관이자 임명 첫 날 도성 성곽을 혼자 걸어 순라 경로를 직접 외웠다는 자 — 의 일화는 오위도총부 사관록에 '성곽 한 바퀴의 새벽'으로 남았다.
임세흥이 도총관에 임명된 그날 새벽, 그는 아무도 없는 도성 성곽을 혼자 한 바퀴 걸었다고 한다. 걷는 동안 성곽 어두운 모퉁이 세 곳에 순라 구멍이 있음을 발견하고, 다음 날 내금위장(1150008)과 합동으로 세 곳의 순라 배치를 조용히 바로잡았다.
임금은 그 사실을 한 달 뒤에야 도승지를 통해 보고받았고, "도총관이 먼저 걷고 나중에 결재를 올렸다"며 그 순서를 칭찬했다. 임세흥의 성곽 순라 기록은 오위도총부 서고에 보존되어 있다.
후대 도총관들은 임명 첫 날 새벽 성곽 한 바퀴를 걷는 관례를 따른다.
춘추편사(春秋編史)
춘추관 편수관
당대 역사를 편수하는 사관
“이 한 줄 실록(實錄, 임금 재위 기간을 기록한 공식 역사서), 정중히 한 박자 더 검토했습니다. 한 시대의 한 줄은 다음 시대의 첫 줄입니다.”
춘추관(春秋館) 편수관은 가공의 한 시대 실록 편찬을 전담하는 사관 출신 문관으로, 사관이 쌓아 둔 초고(草稿)를 정식 실록 한 줄로 다듬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편수 관복, 가슴팍에 춘추관 펜던트, 한 손에 실록 초고 묶음과 붓 두 자루가 표준이다. 역대 실록에서 편수 과정에 한 글자 이상 고쳐진 사례와 그 이유를 모두 외우고 있다.
사관(성별없음 세계관 1170002)이 매일 초고를 쌓는 자라면, 편수관은 그 초고 수천 줄에서 단 한 줄을 남기는 자다. 남기는 한 줄보다 덜어내는 수천 줄이 더 무겁다는 것이 춘추관 복도의 상식이다.
실록 한 권이 완성되는 날 편수관은 그 한 권을 열지 않고 표지만 정중히 닫는다. 그것으로 한 분기의 한 줄이 다음 시대로 넘어간다.
“춘추관 편수관 어른들이 실록 완성 날 표지만 닫고 돌아서는 관례가 있습니다. 편수관의 마지막 한 호흡은 실록 안이 아니라 표지 바깥에 있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춘추관 편수관 오진택 — 야사에 '덜어낸 수천 줄의 명수'로 남은 문관이자 사대 임금 재위 실록 편찬에서 초고 오천 줄을 오십 줄로 줄여 낸 자 — 의 일화는 춘추관 사관록에 '오천 줄과 오십 줄'로 남았다.
사대 임금 실록 편찬이 시작되던 그해, 오진택은 초고 오천 줄을 혼자 읽어 내려가며 사흘 동안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사흘째 새벽, 그는 붉은 붓으로 오십 줄에만 작은 동그라미를 치고 나머지를 정중히 덜어냈다.
그 오십 줄 가운데 한 줄이 영의정 한도경(당시 환곡 결재를 닷새 미룬 그 신하)의 여백 주 한 줄이었다. 오진택은 "역사의 한 줄은 본문보다 여백에 있을 수 있다"는 편수 원칙을 처음 문서화했다.
후대 편수관들은 입직 첫 날 그 오십 줄 원본을 한 번 필사하는 관례를 따른다.
사옹제조군(司饔提調君)
사옹원 제조
어선을 총감독하는 제조 낭군
“이번 수라상(水剌床, 임금의 밥상) 결재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가다듬었습니다. 임금의 한 끼가 한 시즌의 한 호흡을 정합니다.”
사옹원(司饔院) 제조(提調)는 가공의 한 시대 임금과 동궁의 식사를 책임지는 궁중 식사 담당 최고위 관직으로, 수라간(1150029, 궐 수라간 숙수 자리) 전체를 감독한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사옹원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수라 일지(日誌)와 식재료 명부가 표준이다. 역대 임금의 끼니별 기호와 금기 식재료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사옹원 제조가 수라 일지를 들고 수라간 앞에 서는 시각은 임금이 기침하기 전이다. 임금의 한 끼가 어전 한 시즌을 결정하는 날이 있다는 것을 내의원 의관(1150018)만큼 이 자리도 잘 알고 있다.
수라간 숙수가 칼을 다룬다면, 사옹원 제조는 숙수의 칼이 어떤 리듬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다룬다. 두 자리는 결재문 한 줄을 공유하지 않지만, 수라간 앞 복도에서는 매일 아침 무언가를 교환한다.
“사옹원 어른들이 임명 첫 날 수라간 앞 복도를 한 번 걷는 관례가 있습니다. 제조의 한 호흡이 수라간 숙수의 한 박자와 먼저 맞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사옹원 제조 방덕수 — 야사에 '수라간 복도의 명수'로 남은 관원이자 임명 직후 수라간 숙수 박덕재(당시 흉년 수라 일화의 그 숙수, 1150029 일화 인물)와 한 달 동안 매일 새벽 복도에서 만난 자 — 의 일화는 사옹원 사관록에 '복도 한 달'로 남았다.
방덕수가 제조에 임명된 그달, 그는 수라 일지를 열기 전에 매일 새벽 수라간 앞 복도를 정중히 한 번 걸었다고 한다. 한 달째 되던 날 숙수 박덕재가 먼저 차 한 잔을 내밀었고, 방덕수는 그 한 잔을 마신 뒤에야 수라 일지를 열었다.
그날 이후 수라 일지 첫 줄에 '숙수의 한 박자와 먼저 맞출 것'이라는 제조 원칙이 추가되었다. 후대 사옹원 제조들은 임명 첫 날 수라간 앞 복도를 한 번 정중히 걷는 관례를 따른다.
전설별제랑(典設別提郞)
전설사 별제
궁중 의장을 맡은 별제 낭군
“이번 어가(御駕, 임금의 행차) 행차 설비 한 줄, 정중히 점검 마쳤습니다. 행차 날 한 자리의 빈틈이 한 시즌을 흔듭니다.”
전설사(典設司) 별제(別提)는 가공의 한 시대 임금의 행차(行次)·행사 때 천막·장막·가마 설비를 전담하는 중견 관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실무 관복, 가슴팍에 전설사 배지, 한 손에 설비 점검 명부와 먹줄(건물이나 설비의 치수를 재는 줄)이 표준이다. 역대 행차 중 설비 오류로 행사가 지연된 사례를 모두 외우고 있다.
예조판서(1150036)가 의례 절차를 정한다면, 전설사 별제는 그 절차가 펼쳐질 공간을 준비한다. 천막 한 자락이 두 치 어긋나면 행차의 한 호흡이 흐트러진다는 것을 이 자리만큼 잘 아는 곳은 없다.
행차 당일 새벽 가장 먼저 현장에 나와 먹줄로 마지막 치수를 재는 관원이 바로 전설사 별제다. 행차가 끝나고 가장 늦게 짐을 꾸리는 이도 같은 사람이다.
“전설사 어른들이 입직 첫 행차 전날 먹줄 한 자루를 챙겨 가는 관례가 있습니다. 한 치의 먹줄이 행차의 한 호흡을 받친다는 실무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전설사 별제 황치원 — 야사에 '먹줄 한 자루의 명수'로 남은 관원이자 사대 임금의 선농제(先農祭, 임금이 친히 밭을 갈아 한 해 농사를 여는 의례) 행차 날 천막 한 자락의 오류를 새벽에 혼자 바로잡은 자 — 의 일화는 전설사 사관록에 '새벽 먹줄 한 자루'로 남았다.
선농제 행차 전날 밤, 황치원은 예조판서 정여운(당시 '거꾸로 읽은 의례서의 명수', 1150036 일화 인물)의 점검을 한 번 더 정중히 따른 끝에 동쪽 천막 한 자락이 두 치 짧음을 발견했다.
그는 새벽 혼자 먹줄로 치수를 다시 재고 천막을 바로잡았으며, 행차 당일 그 자락 옆에서 임금의 행차가 한 박자 어긋남 없이 지나갔다. 임금은 전설사 별제 자리를 이후 두 계급 승진 후보에 올렸다.
후대 별제들은 행차 전날 밤 먹줄 한 자루를 들고 현장을 한 바퀴 도는 관례를 따른다.
교서교리수(校書校理手)
교서관 교리
교서관에서 책을 교정하는 수재
“이 한 권 인쇄본, 정중히 마지막 장까지 교열(校閱, 원고의 잘못된 글자를 찾아 바로잡기)했습니다. 한 글자 오류가 한 시대를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교서관(校書館) 교리(校理)는 가공의 한 시대 왕명(王命) 문서와 경전 인쇄를 전담하며 교열까지 책임지는 중견 문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교서관 펜던트, 한 손에 교열 원고와 붉은 붓이 표준이다. 역대 인쇄본 가운데 한 글자 오류로 수정 명령이 내려진 사례를 모두 외우고 있다.
도화서 화원(1150027)이 어진 한 폭을 정중히 옮긴다면, 교서관 교리는 임금의 말 한 줄을 정확히 종이에 옮긴다. 한 글자가 틀리면 왕명 전체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 교서관의 첫 번째 원칙이다.
인쇄 완성 후 교리는 반드시 마지막 장부터 다시 읽는다. 교열은 처음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읽어야 실수를 발견한다는 교서관 오십 년 원칙이다.
“교서관 교리들이 인쇄 완성 날 마지막 장부터 다시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한 글자 오류는 늘 마지막 장 근처에 숨어 있다는 교열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교서관 교리 신평식 — 야사에 '붉은 붓 한 자루의 명수'로 남은 문관이자 경종 즉위 교서(敎書, 새 임금 즉위를 알리는 왕명 문서) 인쇄에서 마지막 장 한 글자 오류를 발견해 바로잡은 자 — 의 일화는 교서관 사관록에 '붉은 붓 마지막 장'으로 남았다.
즉위 교서 인쇄 완성 후 배포 당일 아침, 신평식은 관례대로 마지막 장부터 읽어 내려가다 '전하(殿下)' 한 글자가 '전하(轉下, 아래로 옮긴다는 다른 뜻의 글자)'로 잘못 인쇄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신평식은 큰 소리 없이 인쇄 담당 장인에게 한 줄 서찰을 보냈고, 배포 전 두 시진(時辰, 약 네 시간) 안에 수정 인쇄가 완료되었다. 임금은 나중에 그 사실을 보고받고 "한 글자 한 호흡이 즉위 한 줄을 지켰다"고 칭송했다.
후대 교리들은 인쇄 완성 후 반드시 마지막 장부터 교열하는 관례를 따른다.
성균전적사(成均典籍士)
성균관 전적
성균관 학문을 관장하는 전적
“이번 과거(科擧, 관직에 나아가기 위한 나라 시험) 채점 한 줄, 정중히 마지막 줄까지 살폈습니다. 점수 한 칸이 한 사람의 한 시즌을 정합니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은 가공의 한 시대 성균관에서 유생(儒生,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의 교육 기록과 과거 응시 자격을 관리하는 중견 문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사 관복, 가슴팍에 성균관 펜던트, 한 손에 유생 명부가 표준이다. 성균관에 적을 둔 유생 전원의 이름과 최근 성적 변동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규장각 검서관(1150015)이 왕의 서고를 지킨다면, 성균관 전적은 다음 시대 신하가 될 젊은이들의 한 줄을 지킨다. 한 줄이 쌓여 한 시대가 된다는 것을 이 자리만큼 구체적으로 아는 곳은 없다.
과거 채점 날 전적은 가장 낮은 점수 답안지부터 먼저 읽는다. 가장 낮은 자리의 한 줄에서 발견되는 것이 때로 가장 높은 자리의 한 줄보다 오래 남는다는 것이 전적의 경험칙이다.
“성균관 전적 어른들이 과거 채점 후 낮은 점수 답안지를 한 번 더 읽어 두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장 낮은 줄에서 다음 시대의 첫 줄이 나왔던 경우가 있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성균관 전적 도석주 — 야사에 '낮은 점수 답안지의 명수'로 남은 문관이자 과거 응시 최하점 답안지에서 훗날 이조판서가 된 자의 이름을 먼저 발견했다는 인물 — 의 일화는 성균관 사관록에 '최하점 답안지의 한 줄'로 남았다.
어느 분기 과거에서 최하점을 받은 답안지를 도석주가 관례대로 한 번 더 읽어 내려가다, 여백에 작은 주(註) 두 줄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주는 출제 경전 구절 해석을 시험 답안과는 별도로 스스로 논(論)한 것이었다.
도석주는 그 답안지를 이조판서 남기원(당시 '명부를 거꾸로 읽은 판서', 1150035 일화 인물)에게 보냈고, 남기원은 그 주 두 줄을 읽고 그 유생을 성균관 전적 수습으로 발탁했다.
후대 전적들은 과거 채점 후 최하점 답안지를 한 번 더 읽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사헌장령랑(司憲掌令郞)
사헌부 장령
사헌부 감찰을 책임지는 장령 낭관
“이 탄핵(彈劾, 관원의 잘못을 공식 고발하는 것)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검토했습니다. 탄핵은 빠를수록 좋은 게 아니라 정확할수록 좋습니다.”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은 가공의 한 시대 사헌부 대사헌(1150010) 아래에서 실무 탄핵과 조사를 담당하는 중견 감찰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감찰 관복, 가슴팍에 사헌부 장령 펜던트, 한 손에 탄핵 명부가 표준이다. 현재 사헌부에 계류된 탄핵 사건 전건을 진행 단계별로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대사헌이 탄핵의 방향을 정한다면, 장령은 그 방향의 실제 증거를 한 줄씩 쌓는다. 한 줄 증거가 쌓이지 않으면 탄핵 결재는 한 박자도 앞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탄핵이 들어가면 사헌부 장령 방 앞에는 외척과 정적의 서찰이 쌓인다. 장령이 그 서찰을 열지 않고 명부만 보는 것은, 서찰을 열면 명부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야사가 있다.
“사헌부 장령 어른들이 탄핵 결재 전날 명부를 한 번 뒤집어 두는 관례가 있습니다. 탄핵 증거는 순서를 바꿔 읽어도 같은 결론이어야 한다는 감찰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사헌부 장령 황인목 — 야사에 '서찰을 열지 않은 장령'으로 남은 감찰관이자 외척의 서찰 열두 통을 열지 않고 탄핵 명부 한 줄만으로 사건을 정리한 자 — 의 일화는 사헌부 사관록에 '열지 않은 서찰 열두 통'으로 남았다.
어느 분기, 외척 한 명이 호조 정산에서 한 줄을 자기 쪽으로 돌린 사건이 접수되었을 때, 황인목에게는 외척 측 서찰 열두 통이 도착했다. 황인목은 서찰을 모두 열지 않고 원봉인 그대로 사관록 한 자리에 봉인해 두었다.
대사헌(1150010)은 열두 통을 정중히 보관하고 탄핵 명부만 어전에 올렸다. 임금은 그 사건을 서찰 없이 명부 한 줄로 결재했으며, 외척은 한 분기 안에 호조 한 줄을 스스로 환납했다.
후대 장령들은 탄핵 결재 전날 외부 서찰을 열지 않고 명부만 보는 관례를 따른다.
훈련초관위(訓鍊哨官尉)
훈련도감 초관
훈련도감 초군을 이끄는 초관
“이번 군사 훈련 한 줄 결재, 정중히 마지막 군사까지 직접 확인했습니다. 칼은 쓰기 전에 먼저 아끼는 법을 가르칩니다.”
훈련도감(訓鍊都監) 초관(哨官)은 가공의 한 시대 중앙 군사 훈련 기관에서 한 소대(哨, 30~50명) 군사를 직접 훈련시키는 중견 무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관 갑옷, 가슴팍에 훈련도감 배지, 허리에 실전 단검 한 자루, 한 손에 훈련 일지가 표준이다. 자기 소대 군사 한 명 한 명의 체력·약점·가장 자신 있는 동작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총관(1150037)이 도성 전체를 지킨다면, 초관은 가장 작은 단위의 한 소대를 지킨다. 가장 작은 단위가 가장 정확하게 굴러가야 전체가 굴러간다는 것이 훈련도감의 첫 번째 원칙이다.
훈련이 끝나고 초관은 자기 소대 군사 한 명씩의 얼굴을 한 번씩 정중히 본다. 그날 처음 눈을 맞추는 군사가 있다면, 그 군사는 내일 훈련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다.
“훈련도감 초관 어른들이 훈련 후 소대원 명부를 뒤집어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장 뒤에 적힌 이름이 내일 훈련의 첫 이름이라는 무관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훈련도감 초관 최봉철 — 야사에 '마지막 이름의 명수'로 남은 무관이자 소대원 명부 가장 끝에 적혀 있던 군사 한 명을 발탁해 오위도총부 정예로 만든 자 — 의 일화는 훈련도감 사관록에 '명부 마지막 이름'으로 남았다.
어느 분기 훈련에서 소대원 중 가장 체력이 약하고 명부 마지막에 적혀 있던 군사 한 명이 매일 혼자 남아 훈련을 반복하는 것을 최봉철이 발견했다.
최봉철은 다음 날부터 그 군사를 훈련 첫 번째 이름으로 불렀고, 한 달 후 그 군사는 소대에서 가장 빠른 주자가 되었다. 도총관 임세흥(당시 '성곽 한 바퀴의 명수', 1150037 일화 인물)은 그 군사를 오위도총부 정예 후보로 발탁했다.
후대 초관들은 훈련 후 명부 마지막 이름을 한 번 더 읽는 관례를 따른다.
포도포교사(捕盜捕校士)
포도청 포교
도성 치안을 다잡는 포도청 포교
“이 도성 순찰 한 줄, 정중히 한 골목 더 확인했습니다. 골목이 조용한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포도청(捕盜廳) 포교(捕校)는 가공의 한 시대 도성 치안을 담당하는 포도청 소속 실무 요원으로, 도성 골목 순찰과 사건 조사를 담당한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포교 정복, 가슴팍에 포도청 배지, 허리에 포박 줄과 단봉이 표준이다. 자기 담당 골목의 상점 영업 시각과 주민 얼굴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오위도총부(1150037)가 도성 성곽 바깥을 지킨다면, 포도청 포교는 도성 안 골목 한 줄을 지킨다. 골목 한 줄이 조용하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자리만큼 잘 아는 곳은 없다.
순찰이 끝나고 포교는 골목 상점주 한 명씩과 눈을 맞춘다. 가게 문 잠금 방식이 어제와 다른 집이 있다면, 그 집 옆 골목이 내일 순찰 첫 번째 코스가 된다.
“포도청 포교 어른들이 순찰 후 골목 명부를 한 번 거꾸로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장 조용한 골목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골목이라는 치안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포도청 포교 오만근 — 야사에 '잠금 방식 하나의 명수'로 남은 포교이자 상점 잠금 방식이 하루 달라진 것으로 골목 하나의 이상을 먼저 발견해 조용히 해결한 자 — 의 일화는 포도청 사관록에 '잠금 하나의 새벽'으로 남았다.
어느 분기 순찰 중, 오만근은 오른쪽 골목 끝 서책방(서책을 파는 가게)의 문 잠금이 전날과 방향이 반대임을 발견했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그는 다음 날 그 골목 순찰을 한 시각 앞당겼다.
새벽에 그 서책방 뒤편 골목에서 주인이 혼자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었는데, 오만근은 짐을 함께 옮겨 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에서 골목 안쪽 빈 창고가 비워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오만근은 조용히 해결했다.
후대 포교들은 순찰 후 잠금 방식이 바뀐 가게를 따로 기록해 두는 관례를 따른다.
종묘직장공(宗廟直長工)
종묘서 직장
종묘 일을 직접 챙기는 직장 장인
“이 제향(祭享, 선왕의 신위에 올리는 제사) 준비 한 줄, 정중히 전날 밤까지 직접 확인했습니다. 선왕께서 드실 향 한 자루, 어긋나면 안 됩니다.”
종묘서(宗廟署) 직장(直長)은 가공의 한 시대 종묘(宗廟,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 관리와 제향 준비를 실무로 담당하는 중견 관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제복 위에 짙은 색 겉도포, 가슴팍에 종묘서 배지, 한 손에 제향 물목 명부가 표준이다. 역대 제향에 쓰인 향 종류와 진설(陳設, 제물을 올리는 순서) 순서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봉상시 봉사(1150026)가 제향 향 준비를 맡는다면, 종묘서 직장은 그 향이 놓일 종묘 공간 전체를 준비한다. 종묘 마루 한 자락이 삐걱이면 제향 한 박자가 흔들린다는 것이 종묘서의 첫 번째 원칙이다.
제향 전날 밤 가장 늦게까지 종묘 안에 있는 사람이 종묘서 직장이다. 촛불 하나씩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종묘 문을 닫는다.
“종묘서 직장 어른들이 제향 전날 밤 촛불을 직접 세는 관례가 있습니다. 선왕께 올리는 마지막 불빛 한 자루는 반드시 본인이 확인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종묘서 직장 박기풍 — 야사에 '촛불 열두 자루의 명수'로 남은 관원이자 대제(大祭, 종묘 큰 제향) 전날 밤 혼자 촛불 열두 자루를 직접 세어 심지 하나의 이상을 발견해 교체한 자 — 의 일화는 종묘서 사관록에 '열두 자루의 전날 밤'으로 남았다.
대제 전날 밤, 박기풍은 관례대로 촛불 열두 자루를 하나씩 직접 살폈는데, 열한 번째 자루 심지가 한 치 짧아 제향 중 꺼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예비 심지를 자기 점검함에서 꺼내 교체했으며, 그 사실을 다음 날 봉상시 봉사(1150026)에게 조용히 알렸다.
대제는 한 박자의 어긋남 없이 진행되었고, 임금은 나중에 직장의 전날 밤 점검 기록을 종묘서 표준 절차로 정식 지정했다.
후대 직장들은 대제 전날 밤 촛불을 직접 세는 관례를 따른다.
전의침의수(典醫鍼醫手)
전의감 침의
침술로 병을 다스리는 침의 수의
“이 침 한 자루, 정중히 한 호흡 더 다듬었습니다. 침은 놓는 자리보다 빼는 타이밍이 더 중요합니다.”
전의감(典醫監) 침의(鍼醫)는 가공의 한 시대 궁중 의료 기관 전의감에서 침술(鍼術, 침으로 병을 고치는 기술)로 환자를 치료하는 중견 의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의관 정복, 가슴팍에 전의감 배지, 한 손에 침통(鍼筒, 침을 넣는 통)이 표준이다. 인체 경혈(經穴, 침을 놓는 자리) 삼백육십오 곳과 계절별 금기 혈자리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내의원 의관(1150018, 임금 담당 어의)이 약을 다스린다면, 전의감 침의는 침으로 한 몸을 다스린다. 한 몸의 한 혈자리가 한 분기 한 호흡을 바꾼다는 것을 이 자리만큼 구체적으로 아는 곳은 없다.
침을 놓고 침의는 환자의 눈을 바라본다. 눈이 힘을 잃기 시작하면 침을 빼는 타이밍이다. 환자보다 먼저 그 타이밍을 아는 것이 침의의 경력이다.
“전의감 침의 어른들이 입직 첫 날 침통 한 자루를 손에 쥐고 한 시진(時辰, 약 두 시간) 동안 그대로 있는 관례가 있습니다. 침은 쥐는 것보다 쥐고 기다리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전의감 침의 서인철 — 야사에 '기다리는 침의 명수'로 남은 의관이자 어느 분기 중병을 앓은 고위 관원을 침 한 자루로 회복시켰다는 인물 — 의 일화는 전의감 사관록에 '기다리는 침 한 자루'로 남았다.
중병을 앓던 의정부 사인 이준겸(당시 '여백 정서의 명수', 1150033 일화 인물)이 결재문을 쥐지 못할 만큼 손이 떨리게 되었을 때, 서인철은 일반 혈자리 대신 조용히 한 혈자리를 더 선택했다.
그 혈자리는 손목과 팔꿈치 사이, 붓을 쥐는 근육이 지나는 경선(經線, 경혈이 이어지는 선)이었다. 침을 놓고 서인철은 이준겸이 눈을 감는 것을 기다렸다가 마지막 침을 뺐다. 다음 날 이준겸의 손은 결재문을 쥘 수 있었다.
이준겸은 회복 후 서인철에게 차 한 잔을 직접 가져왔고, 서인철은 그 한 잔을 침통 옆에 두는 관례를 만들었다. 후대 침의들은 입직 첫 날 침통 한 자루를 한 시진 동안 그대로 쥐는 관례를 따른다.
상의재단공(尙衣裁斷工)
상의원 상의
어의를 짓는 상의원 재단공
“이 관복 한 벌, 정중히 어깨선 두 번 확인했습니다. 옷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옷이 그 사람의 한 줄을 받치는 것입니다.”
상의원(尙衣院) 상의(尙衣)는 가공의 한 시대 임금과 왕실 어른들의 관복과 의대(衣帶, 옷과 띠)를 제작·관리하는 실무 재봉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상의원 배지, 한 손에 자(尺, 치수 재는 도구)와 실 묶음이 표준이다. 임금과 주요 신하들의 어깨너비·팔 길이 치수를 계절별로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화서 화원(1150027)이 임금의 모습을 한 폭에 담는다면, 상의원 상의는 임금의 모습이 담길 옷을 만든다. 어진(御眞)이 완성되기 전에 상의원의 한 땀이 먼저 완성된다.
관복 완성 후 상의는 반드시 어깨선을 뒤에서 본다. 앞에서 보이는 어깨선보다 뒤에서 보이는 어깨선이 한 번 더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 상의원의 오십 년 원칙이다.
“상의원 상의 어른들이 관복 완성 후 뒤에서 어깨선을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뒷모습 어깨선이 바른 관복이 앞모습도 바르다는 실무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상의원 상의 류상덕 — 야사에 '뒷어깨선의 명수'로 남은 장인이자 오위도총부 도총관 임세흥(당시 '성곽 한 바퀴의 명수', 1150037 일화 인물)의 임명 관복 어깨선을 두 번 다시 지어 올린 자 — 의 일화는 상의원 사관록에 '두 번의 어깨선'으로 남았다.
도총관 임세흥의 첫 번째 관복이 완성되던 날, 류상덕은 완성 직후 뒤에서 어깨선을 보다 오른쪽이 한 푼 내려앉은 것을 발견했다. 임금의 재가를 받은 관복이었지만 류상덕은 다음 날 새벽 혼자 다시 지었다.
임세흥이 두 번째 관복을 입었을 때, 도성 순찰 첫 날 성곽을 걷는 동안 어깨선이 한 결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임세흥은 그 사실을 상의원에 한 줄 서찰로 남겼다.
후대 상의원 상의들은 관복 완성 후 뒤에서 어깨선을 확인하는 관례를 따른다.
다식수공자(茶食手工者)
궐 다방 다식지기
궐 다방의 다식을 빚는 솜씨꾼
“오늘 다식(茶食, 쌀가루·콩가루 등으로 만든 작은 전통 과자) 한 쟁반, 정중히 마지막 한 조각까지 직접 세었습니다. 다식 한 조각이 빠지면 차회가 한 박자 비틀립니다.”
궐 다방(茶房) 다식지기는 가공의 한 시대 궐 안 다방에서 차와 함께 올리는 다식을 제조·보관하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다방 작업복,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다식 쟁반과 작은 저울이 표준이다. 계절별 다식 종류와 각 신하의 기호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궐 내관(1150005)이 차를 올린다면, 다식지기는 그 차 옆에 놓일 한 조각을 만든다. 한 조각이 너무 크면 차 향이 가리고, 너무 작으면 한 박자 허전한 차회가 된다는 것이 다방의 첫 번째 원칙이다.
다식 반죽을 치는 시각은 새벽 네 시다. 그 시각에 만들어진 다식만이 한 시진 뒤 차회에 맞는 밀도를 가진다고 다방이 오십 년 전부터 정해 두었다.
“궐 다방 다식지기 어른들이 새벽 네 시 반죽을 한 번도 늦춘 일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차 한 잔 옆 한 조각이 차회의 첫 한 호흡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궐 다방 다식지기 천달봉 — 야사에 '새벽 네 시 반죽의 명수'로 남은 잡직이자 사대 임금 재위 삼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새벽 반죽을 늦추지 않았다는 자 — 의 일화는 다방 사관록에 '삼십 년의 새벽 네 시'로 남았다.
사대 임금 재위 삼십 년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결재 날이었던 그 새벽, 흉년 환곡 결재 직전 임금의 차회 자리에 올라간 다식 한 쟁반을 천달봉이 평소보다 한 결 더 부드럽게 빚어 두었다.
임금은 그날 차를 마시며 다식을 한 조각 더 집었고, 차가 끝날 때쯤 환곡 결재를 한 줄 더 가다듬어 윤허했다. 도승지 정인섭(당시 '한 글자 첨삭의 명수', 1150003 일화 인물)은 나중에 그 날 결재 속도가 평소보다 한 박자 느렸던 이유를 다식 한 조각에서 찾았다는 야사가 있다.
후대 다식지기들은 새벽 네 시를 가장 중요한 시각으로 여기는 관례를 따른다.
사자관필부(寫字官筆夫)
궐 서고 사자관
궐 서고에서 글씨를 베끼는 필생
“이 한 권 필사(筆寫, 글을 손으로 베껴 쓰기), 정중히 마지막 장까지 한 글자씩 대조했습니다. 원본과 한 자라도 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궐 서고(書庫) 사자관(寫字官)은 가공의 한 시대 궐 서고에서 오래된 결재문·실록 초고·경전을 정자(正字)로 필사하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서고 배지, 한 손에 원본 문서 한 권과 빈 필사 지(紙) 묶음이 표준이다. 궁 서고에 소장된 주요 문서의 보관 위치와 마지막 필사 날짜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춘추관 편수관(1150038)이 실록을 편찬한다면, 사자관은 그 실록이 보관될 수 있도록 낡은 본을 새 본으로 옮긴다. 필사가 필요 없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 목표가 이루어지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자관은 필사 중 원본과 한 글자라도 다르면 반드시 처음부터 다시 쓴다. 이 원칙 때문에 사자관이 한 권을 완성하는 데 드는 시간은 가장 오래 걸리지만, 그가 낸 필사본은 서고 한 자리에 가장 오래 남는다.
“궐 서고 사자관 어른들이 필사 완성 후 원본과 나란히 놓고 한 번 더 비교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아야 한 권이 아니라, 끝에서 처음으로도 같아야 한 권이라는 필사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궐 서고 사자관 임봉술 — 야사에 '처음부터 다시 쓴 명수'로 남은 잡직이자 실록 초고 한 권을 필사 중 마지막 장에서 한 글자를 고쳐 처음부터 다시 쓴 자 — 의 일화는 서고 사관록에 '처음부터 다시 쓴 마지막 장'으로 남았다.
교서관 교리 신평식(당시 '붉은 붓 마지막 장'의 명수, 1150041 일화 인물)이 교열을 마친 경전 한 권이 필사 의뢰로 들어왔을 때, 임봉술은 마지막 장 필사까지 마치고 대조하다가 교열 수정본 한 글자가 자기 필사본에 반영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이미 한 권이 완성된 상태였지만 임봉술은 다음 날 새벽부터 처음부터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이틀 뒤 완성된 두 번째 필사본은 교열 수정본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신평식은 나중에 그 사실을 전해 듣고 교서관 앞으로 차 한 자루를 서고에 보냈다. 후대 사자관들은 필사 완성 후 원본과 나란히 두는 관례를 따른다.
중전마마(中殿媽媽)
중전
내전의 정점에 자리한 국모
“이 한 줄 윤허, 중궁전의 한 시즌을 정중히 정합니다. 한 잔 차 들고 결재할 것이오.”
중전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중궁전 정점에 있는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보랏빛 당의, 어깨에 우아한 망토, 머리에 큰 떨잠,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신하의 옛 결재·옛 분기 외교·금기 결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결재가 중전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강한 중전은 큰 중궁전을 가진 자가 아니라, 신하 한 명의 한 잔 차 향을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중궁전 중전마마들은 즉위 첫 주에 그 차회 자리를 한 번 보러 가는 관례가 있습니다. 한 잔 식은 차의 무게가 옥새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뜻이지요.”
사대 중전 윤소희 — 가공의 한 왕조 중궁전 사대 중전이자 옥새를 직접 찍는 대신 차회 한 잔으로 외척을 누른 단 한 명의 여인 — 의 일화는 사극 야사에서 '식은 차회의 새벽'으로 남았다.
윤소희가 갓 책봉되던 봄, 친정 가문 윤문(외척 가문 중 가장 큰 결재 라인을 쥐고 있던 명문) 어른이 중궁전 차회 자리에 외척 결재문을 들고 들어왔다. 윤소희는 결재문을 펼치는 대신 그 자리에 차 한 잔을 따라 두고는 사흘 밤낮을 식은 채 그대로 두었다. 사흘째 새벽 그녀가 다시 차회 자리에 앉아 차잔 위에 친필로 한 줄 시(詩)만 적자, 윤문 어른은 결재문을 거두어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 시 한 줄에는 '차가 식는 시간만 한 자리는 외척의 자리가 아니라 신하의 자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윤소희의 친정은 한 시즌 결재 라인에서 정중히 한 발 물러섰고, 외척 결재가 중궁전 차회를 침범하지 못하는 관례가 생겼다. 강녕전 사관(史官)들은 그 식은 차잔을 그대로 보존해 두었으며, 후대 중전들은 즉위 첫 주에 그 잔 앞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랐다.
옹주아씨(翁主娥氏)
옹주
임금의 사랑을 받는 옹주
“이 한 줄 약속, 한 분기의 한 줄 결혼동맹을 정중히 정합니다.”
옹주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정점 옹주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당의, 어깨에 우아한 망토, 머리에 작은 떨잠,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결혼동맹·옛 분기 외교·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결재가 옹주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강한 옹주는 큰 영지를 가진 자가 아니라, 옛 결혼동맹 한 줄을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옹주궁 어른들 일화는 결국 한 줄 가마 위에 있습니다. 가마 안에서 가장 정중한 한 호흡이, 외교의 한 줄을 정한다는 사실을 그분이 가장 먼저 보여 주셨지요.”
명헌옹주 이서윤 — 가공의 한 왕조 사극 야사에 남은 단 한 명의 외교 옹주이자 결혼동맹문 한 줄을 가마 안에서 직접 다듬은 자 — 의 일화는 옹주궁 사관록에 '가마 안 한 호흡'으로 적혔다.
인접 변방국 결혼동맹문이 결재 직전 한 줄 단어 다툼으로 사흘째 정체된 어느 분기, 이서윤은 동맹 가마(嘉禮儀仗, 신부 가마와 외교 의장을 겸한 큰 가마)에 직접 올라 변방국 사신을 마주했다. 가마 안에서 그녀는 동맹문 한 줄을 자기 손목 위에 작게 옮겨 적은 뒤, 단어 두 자만 정중히 바꾸어 사신에게 건넸다. 그 두 자는 변방국 어른의 작고하신 어머님 휘(諱)를 비껴가는 단어였고, 사신은 그 자리에서 가마 문 앞에 한 박 절을 올렸다. 동맹은 그 한 분기 안에 정중히 체결되었고, 그날 이후 옹주궁에서는 동맹문 결재 직전 가마 안에서 한 호흡 다듬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후대 옹주들은 책봉 첫 분기에 그 가마를 한 번 보러 가는 의례를 따른다. 옹주궁 사관록에는 '가장 정중한 한 줄 외교는 어전이 아니라 가마 안에 있다'는 격언이 그녀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내명부상궁(內命婦尙宮)
상궁
내명부 일을 다스리는 상궁
“마님의 다음 한 시즌, 정중히 손목 위에 한 줄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상궁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궁의 정식 상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상궁 정복, 어깨에 작은 상궁 망토, 가슴팍에 작은 펜던트, 한 손에 작은 메모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중전의 모든 살롱 자리·옛 정적의 평소 시간표·옛 약혼자의 옛 결재 라인을 한 줄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살롱이 정중히 굴러가는 비결은 큰 결단이 아니라 상궁의 한 줄 메모 위에 있다. 가장 강한 상궁은 큰 카리스마를 가진 자가 아니라, 마님의 한 손목 위에 한 줄을 정확히 얹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상궁들의 한 줄 메모는 결재문이 아니라 마마의 손목 위에 얹힐 한 박 위치입니다. 그 위치를 두 푼 어긋나게 둘 줄 아는 자세, 그것이 한 살롱의 한 줄 비결이지요.”
지밀상궁 박씨 — 가공의 한 왕조 중궁전 지밀(至密, 중전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처소) 상궁이자 중전 윤소희의 손목 위에 한 줄 메모를 평생 얹은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사극 야사에 '두 푼 어긋난 손목 위 한 줄'로 남았다.
어느 가을 외척 정적 한 분이 중궁전 차회 자리를 한 박 빠르게 잡으려 했을 때, 박씨는 정적의 평소 차회 도착 시각보다 두 푼 늦은 자리에 마마의 차잔을 정중히 얹어 두었다. 그 두 푼 사이 정적은 자기 친정 어른의 헛기침을 한 번 듣게 되었고, 차회 자리에서 자기 발언 순서를 스스로 한 박 미루었다. 그날 한 줄 결재는 정중히 마마 쪽으로 기울었고, 외척의 한 줄 의향은 두 푼 안쪽에서 정중히 정리되었다. 박씨는 평생 자기 한 줄 메모를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며, 입직 사십 년 동안 메모장 한 권을 한 번도 갈지 않았다.
후대 지밀상궁들은 입직 첫 주에 그 메모장을 한 번 손에 받아 든 뒤 정중히 다시 자리에 두는 관례를 따른다. 강녕전 사관록에는 '한 살롱의 한 줄은 두 푼의 침묵 위에 있다'는 격언이 박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수방침선녀(繡房針線女)
자수 궁녀
곱게 수를 놓는 자수 궁녀
“이 한 땀, 옛 결혼동맹 한 줄을 정중히 다른 색으로 더 새겨 올리겠습니다.”
자수 궁녀는 가공의 한 시대 정식 자수형 궁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궁녀 정복, 어깨에 룬 자수 망토, 한 손에 자수용 바늘과 룬 실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결혼동맹·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결재가 궁녀의 한 땀 위에 한 글자가 정중히 새겨진다. 가장 무거운 한 땀은 큰 자수가 아니라, 옛 결혼동맹 한 줄의 한 글자를 정확히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수방 어른들 사이에서 안감 한 자락은 결재문보다 무겁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한 줄에 마마의 한 호흡이 가장 정중히 얹혀 있다는 뜻이지요.”
수방 자수 궁녀 정난이 — 가공의 한 왕조 중궁전 수방(繡房, 자수와 자수문안을 전담하는 침방의 자매 부서) 출신이자 중전의 가례복 안감에 단 한 줄을 더 새긴 자 — 의 일화는 침방 사관록에 '안감 한 자락의 한 줄'로 남았다.
중전의 가례 직전, 친정 가문의 작고하신 어머님 휘(諱)를 외전(外殿) 가례문에는 적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정난이는 가례복 안감 가장 안쪽 자락에 그 휘를 작은 한 줄 자수로 정중히 새겨 올렸다. 자수 색은 안감과 같은 옥색 한 결로, 빛에 비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결의 한 줄이었다. 가례 당일 중전이 가마에서 내려 첫 한 발자국을 디딜 때, 안감 한 자락이 새벽 등불에 한 박 비치며 그 휘 한 줄이 정중히 빛났다고 사관록은 적었다. 정난이는 그 일을 평생 입에 올리지 않았으며, 침방에서 그 안감을 본 자는 단 한 명, 침방 수방나인 김씨뿐이다.
후대 수방 자수 궁녀들은 입직 첫 주에 가례복 안감 한 자락을 한 번 손에 정중히 받아 드는 관례를 따른다. 침방 사관록에는 '가장 무거운 한 땀은 결재문 위가 아니라 안감 한 자락 위에 있다'는 격언이 정난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무수리처녀(水賜處女)
궐 무수리
궐 잡일을 도맡는 무수리 처녀
“오늘 이 한 잔 차, 옛 분기 한 잔과 비슷한 향이에요. 정중히 한 모금 권해 올리겠습니다.”
궐 무수리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궁의 평민 무수리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수리 정복, 머리에 작은 흰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이 표준이다. 본인은 궁에 들르는 모든 신하·궁녀의 평소 차 취향·옛 분기 한 잔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신하가 궁에 들면 가장 먼저 정중한 비슷한 향의 한 잔이 올려진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궁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무수리 어르신들 한 잔 향은 결재 문서보다 빠릅니다. 마마의 한 호흡 직전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한 잔, 그게 궁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이지요.”
평장 무수리 분이 — 가공의 한 왕조 강녕전 평장(平場, 처소 외곽의 평민 무수리들이 모이는 새벽 자리) 무수리이자 중전의 새벽 한 잔 차 향을 사십 년 외운 평민 — 의 일화는 사극 야사에 '한 잔 헛기침'으로 남았다.
어느 봄날 중전의 친정 어른이 갑작스레 입궁해 차회 자리를 청했을 때, 분이는 친정 어른의 평소 차 향이 마마의 새벽 차 향과 한 결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친정 어른의 잔에 정중히 마마의 새벽 차 향을 한 푼 섞어 올렸고, 마마의 잔에는 친정 어른의 향을 한 푼 비껴 두었다. 친정 어른은 그 한 잔을 마시고는 한 박 헛기침을 한 뒤 자기 결재안을 거두어 친정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분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마마는 그날 새벽 차잔을 손에 한 박 더 오래 머무르게 두었다.
후대 강녕전 무수리들은 입직 첫 새벽에 평장 한 모퉁이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사관록에는 '한 잔의 한 푼이 외척 결재문 한 줄보다 무겁다'는 격언이 분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대비전마마(大妃殿媽媽)
대비마마
수렴청정 대비전의 어른
“중전이 오늘 결재한 한 줄, 내가 어제 차 한 잔 위에 미리 적어둔 줄과 같은 줄이오.”
대비마마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가장 윗전, 선왕의 정실이며 중전·세자빈을 모두 손녀처럼 손에 둔 자다. 외형은 단아한 짙은 자줏빛 당의, 어깨에 두 겹 비단 장의(長衣), 머리에 큰 떨잠과 옥잠, 가슴팍에 옥빛 인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외척의 옛 출세 라인·옛 분기 후궁 책봉·금기 가문의 세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중전의 한 줄 결재는 사실 대비전 차 한 잔의 한 줄 의향 위에서 굴러간다. 외전(外殿)에서는 대왕대비가 결단을 미루는 듯 보이지만, 정작 중궁전·동궁전·옹주궁이 한 분기 안에 정중히 정리되는 것은 그녀의 침묵 위에서다. 가장 무서운 대비는 큰 호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라, 한 잔 차를 권하며 손녀의 옷고름을 다시 매주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대비전 어르신들의 한 줄 침묵은 옥새보다 무겁습니다. 한 호흡 미루는 자세가 다음 한 시대의 한 줄 결재를 이미 정해 두었다는 뜻이지요.”
자성대비 김씨 — 가공의 한 왕조 자성전(慈聖殿, 대비전 정전) 자성대비이자 두 분 중전과 세 분 세자빈을 손녀처럼 손에 둔 단 한 명의 어른 — 의 일화는 사극 야사에 '옷고름 매주신 한 박'으로 남았다.
새 중전이 갓 책봉되어 첫 결재를 앞둔 새벽, 친정 가문 외척들이 결재안 다섯 줄을 자성전 차회 자리에 미리 들이밀었다. 자성대비는 결재안을 펼치는 대신 새 중전의 옷고름이 한 결 비뚤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손수 옷고름을 다시 매주었다고 한다. 옷고름을 매주며 그녀는 외척 어른들에게 단 한 줄, "이 옷고름을 매주는 동안의 한 박, 결재안을 다시 한 번 읽어 오시지요"라고만 말했다. 외척들은 그 한 박 사이에 결재안 다섯 줄을 두 줄로 줄여 다시 들고 왔으며, 그 두 줄이 그날 한 분기의 결재 라인이 되었다. 자성대비는 평생 어떤 호령도 내린 적이 없다고 사관록에 적혔다.
후대 대비들은 책봉 첫 분기에 자성전 차회 자리에서 새 중전의 옷고름을 한 번 매주는 관례를 따랐다.
동궁빈저하(東宮嬪邸下)
세자빈
세자의 짝, 빈궁의 주인
“동궁전의 한 줄 결재, 다음 시대의 한 줄 결재로 정중히 미리 옮겨 두겠습니다.”
세자빈은 가공의 한 시대 다음 보위를 이을 세자의 정실로, 다음 중궁전의 자리를 미리 다듬는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연분홍 당의, 어깨에 비단 견마기, 머리에 작은 떨잠, 가슴팍에 동궁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외척 가문의 옛 분기 결재·옛 동궁의 시강원 일정·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동궁전의 한 줄 결재가 사실 세자빈의 한 잔 차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그래서 한 시대의 다음 한 줄 외교가 이미 그녀의 손목 위에 적혀 있다. 가장 강한 세자빈은 큰 가문을 친정으로 가진 자가 아니라, 시아버님의 헛기침 한 줄까지 정중히 외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세자빈마마들 일화 가운데 한 줄 시강(侍講, 세자가 학문을 닦는 자리) 곁자리만큼 무거운 자리가 없습니다. 한 자락 너머 한 호흡, 그게 다음 시대의 첫 결재였지요.”
의경세자빈 한씨 — 가공의 한 왕조 의경동궁(義敬東宮, 다음 보위를 이을 의경세자의 처소) 세자빈이자 시강원 곁자리를 한 분기 빠짐없이 지킨 단 한 명의 빈 — 의 일화는 사극 야사에 '발 한 자락 한 호흡'으로 남았다.
의경세자가 시강원에서 외척 가문 한 줄에 대한 강(講, 강의)을 들을 때, 한씨는 시강원 외전 발 한 자락 너머에서 한 분기 모든 강을 정중히 함께 외워 두었다. 어느 날 외척 어른이 세자께 자기 가문 한 줄을 결재해 주십사 청했을 때, 한씨는 발 너머에서 옛 분기 그 가문 어른의 시강 자리 헛기침 한 박을 작은 종이에 적어 시강관 손에 정중히 건넸다. 시강관이 그 한 줄을 강 끝에 보태자, 세자는 외척 어른의 청을 자기 입으로 한 박 미루었다고 한다. 한씨는 평생 시강원 발 한 자락 너머의 자리를 한 번도 비운 적이 없으며, 입직 사십 년 동안 발 자락 한 결의 색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후대 세자빈들은 책봉 첫 분기에 그 발 자락 자리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랐다. 사관록에는 '다음 시대의 첫 한 줄은 발 한 자락 너머에서 다듬어진다'는 격언이 한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제조도상궁(提調都尙宮)
내명부 제조상궁
내명부 살림을 총괄하는 제조상궁
“이 한 줄 인사이동, 다음 한 분기 내명부 한 결을 정중히 다시 짭니다.”
내명부 제조상궁은 가공의 한 시대 궁궐 안 모든 상궁·나인·무수리의 인사·녹봉·근태를 총괄하는 정점 상궁이다. 외형은 짙은 옥색 정복, 어깨에 제조상궁 망토, 가슴팍에 큰 검은 인장, 한 손에 두꺼운 호적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궁녀의 출신·생년·옛 분기 인사이동·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중전의 한 줄 결재가 빛난다면, 제조상궁의 한 줄 인사이동은 그 빛의 받침대다. 신참 나인의 첫 처소 배치 한 줄이 결국 그 나인 한 시대의 한 끼를 정한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책봉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어린 나인의 이름을 한 번 더 읊는 그녀의 한 줄 호명 위에 있다.
“우리 내명부 어른들의 호적 명부 한 줄은 결재문보다 길게 남습니다. 어린 나인의 이름 한 번 더 읊는 자세, 그게 다음 한 시대 내명부의 한 결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제조상궁 최씨 — 가공의 한 왕조 내명부 정점이자 호적 명부 만 권을 손수 한 줄씩 옮겨 적은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내명부 사관록에 '한 호명의 새벽'으로 남았다.
즉위 첫날 최씨는 궁궐 안 모든 상궁·나인·무수리 만 명의 호적 명부를 자기 처소에 들이고 사흘 밤낮 한 줄씩 정중히 옮겨 적었다. 사흘째 새벽, 새로 입궁한 어린 나인 한 명이 제 이름이 명부에서 한 자 잘못 적힌 것을 깨닫고 처소 문 앞에 한 시진을 서 있었다. 최씨는 그 어린 나인을 정중히 안으로 들여 차 한 잔을 따라준 뒤, 그 자리에서 명부의 한 자를 손수 다시 적었다. 그날 이후 그 어린 나인은 평생 자기 이름을 한 번도 잘못 적힌 적이 없었으며, 사십 년 뒤 침방 수방나인의 정점에 올랐다.
후대 제조상궁들은 즉위 첫 사흘을 호적 명부 한 줄씩 옮겨 적는 자세로 보내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내명부 사관록에는 '한 줄 호명이 한 시대 내명부 한 결의 첫 결재'라는 격언이 최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도총의녀장(都摠醫女長)
도총관 의녀
어의를 보좌하는 의녀의 으뜸
“마마, 이 약 한 첩 정중히 권해 올립니다. 한 시진 안의 한 잔 물까지 제가 보겠습니다.”
도총관 의녀는 가공의 한 시대 내의원 산하 의녀들의 정점이며, 중전·대비전·세자빈의 진맥을 직접 살피는 단 한 사람이다. 외형은 단정한 옥빛 의녀복, 어깨에 약초 가방, 가슴팍에 침통 펜던트, 한 손에 작은 진맥 베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궁궐 모든 윗전의 옛 진맥·옛 분기 약방문·금기 약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내의원 어의가 큰 결재를 받지만, 정작 중궁전 침소 안의 마지막 한 첩은 도총관 의녀의 손에서 우러난다. 가장 무거운 한 첩은 큰 약재가 아니라, 마마의 한 호흡 위에 정중히 얹어지는 그녀의 손목 한 줄 위에 있다.
“우리 도총관 어르신들의 한 첩은 어의 결재문보다 무겁습니다. 마마의 한 호흡 위에 손목 한 줄을 정중히 올려 두는 자세, 그게 침소의 한 줄이지요.”
도총관 의녀 장금이 — 가공의 한 왕조 내의원 도총(都總) 의녀이자 중전 윤소희의 산후 한 첩을 손수 우려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내의원 사관록에 '한 첩의 한 호흡'으로 남았다.
중전이 원자(元子)를 출산한 새벽, 어의가 결재한 약방문 한 줄이 외척 가문 어른의 옛 산후 약방문과 한 자 다른 사실을 장금이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의의 결재문 위에 자기 손가락을 정중히 한 박 올려 두고는, 외척 어른의 옛 약방문에서 한 자만 비껴 새 약방문 한 줄을 다시 우려 올렸다. 중전은 그 한 첩을 마신 새벽 한 호흡을 한 박 더 길게 두었고, 외척 어른은 새 약방문 한 줄을 자기 친정 의원실에 정중히 베껴 두었다. 장금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어의 결재문 한 줄 옆에는 그녀의 손가락 자국이 한 박 남았다고 한다.
후대 도총관 의녀들은 즉위 첫 분기에 그 결재문 한 줄 옆에 손가락을 한 박 올리는 관례를 따랐다. 내의원 사관록에는 '가장 무거운 한 첩은 약재가 아니라 손가락 한 박 위에 있다'는 격언이 장금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교방행수희(敎坊行首姬)
교방 행수기녀
교방의 으뜸 기녀
“거문고 한 줄, 흥정의 한 줄을 한 박 늦춥니다. 그 한 박이 오늘 밤의 한 줄 결재를 정합니다.”
교방 행수기녀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교방(敎坊)의 정점에 선 명기(名妓)로, 시(詩)·서(書)·악(樂)·무(舞)에 모두 능한 한 도시의 풍류 결재자다. 외형은 단아한 다홍 저고리에 짙은 남빛 치마, 어깨에 얇은 비단 숄, 머리에 옥나비 꽂이, 한 손에 거문고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한 도시 모든 사대부의 옛 시문·옛 분기 후원금·금기 화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한양의 큰 외교가 어전에서 정해지지만, 정작 그 결재의 마지막 한 줄은 교방 한 자리 거문고 한 박 위에서 굴러간다. 가장 강한 행수는 큰 비녀를 가진 자가 아니라, 사대부의 시 한 줄을 외워주며 비녀를 정중히 다시 꽂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교방 행수마님 일화는 거문고 한 박이 검 한 자루보다 길다는 한 줄 위에 있습니다. 술대를 한 박 늦춰 잡는 자세, 그게 도시 한 줄 외교의 비결이지요.”
한양 일패(一牌) 행수기녀 매향 — 가공의 한 왕조 한양 운심교방(雲心敎坊, 한양 도성 큰 풍류 결사) 일패 자리에 십이 년을 앉은 명기 — 의 일화는 교방 야사에 '술대 한 박의 새벽'으로 남았다.
어느 가을밤 사대부 좌의정 가문 어른과 우의정 가문 어른이 운심교방 한 자리에서 외척 결재 한 줄을 두고 시문 흥정을 시작했을 때, 매향은 거문고 술대를 평소보다 한 박 늦게 들어 올렸다. 그 한 박 사이 두 어른은 자기 시문 한 줄의 어조사를 다시 다듬을 시간을 얻었고, 결국 두 가문은 결재 한 줄을 한 분기 정중히 미루기로 합의했다. 매향은 그 한 박 동안 자기 옥나비 비녀를 한 번 정중히 다시 꽂았다고 한다. 그 비녀는 한양 도성 외교의 한 분기 결재를 미루게 한 비녀로 교방 야사에 남았다.
후대 운심교방 행수들은 일패 자리에 앉는 첫 밤에 매향의 옥나비 비녀를 한 박 손에 받아 든 뒤 정중히 다시 자리에 두는 관례를 따랐다. 교방 사관록에는 '한 박 늦은 술대가 한 분기 결재를 정중히 미룬다'는 격언이 매향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수방나인녀(繡房內人女)
침방 수방나인
침방·수방을 살피는 나인
“이 한 땀, 마마의 가례 한 줄을 정중히 다음 백 년 위에 더 얹어 올립니다.”
침방 수방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침방·수방 소속으로, 중전·세자빈·옹주의 가례복과 일상 당의를 짓는 정식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옥색 나인복, 어깨에 작은 비단 가방, 한 손에 은바늘과 오색실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윗전의 어깨 너비·옛 분기 가례복 도안·금기 색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의 큰 가례가 그녀의 한 땀 한 땀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외전에서는 가례 도감이 큰 결재를 받지만, 정작 신부의 옷고름 한 줄은 그녀의 손목 위에서 매듭지어진다. 가장 무거운 한 땀은 큰 자수가 아니라, 새벽 등불 아래 옷고름의 안쪽 한 줄을 정중히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침방 어른들 사이에서 옷고름 안쪽 한 줄은 가례 도감 결재문보다 무겁습니다. 새벽 등불 아래 한 박 두 푼, 그게 신부의 한 호흡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침방 수방나인 김씨 — 가공의 한 왕조 침방 수방나인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가례복 옷고름 안쪽에 한 줄을 정중히 다듬어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침방 사관록에 '새벽 등불 한 박'으로 남았다.
가례 직전 윤소희의 어깨 너비가 가례 도감 도안보다 두 푼 좁다는 사실을 발견한 김씨는, 옷고름 안쪽 한 자락에 작은 매듭 한 줄을 정중히 한 박 더 두어 그 두 푼을 비껴 두었다. 가례 당일 신부의 옷고름은 외전에서 보면 도안 그대로였으나, 안쪽으로는 김씨의 한 매듭이 정중히 어깨선을 받쳐 주었다. 윤소희는 그 매듭이 손에 닿는 것을 느끼고 가마 안에서 한 박 더 길게 한 호흡을 두었다고 사관록은 적었다. 김씨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자수 궁녀 정난이만이 그 매듭의 색을 알았다.
후대 침방 수방나인들은 입직 첫 분기에 옷고름 안쪽 한 매듭을 정중히 한 번 손에 받아 드는 관례를 따른다. 침방 사관록에는 '두 푼의 매듭이 한 시대 한 가례를 정중히 다듬는다'는 격언이 김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어선다과녀(御膳茶菓女)
어선 다과상궁
어선의 다과를 차리는 상궁
“오늘 다과 한 접시, 어제의 한 줄 한기와 정중히 짝지어 올립니다.”
어선 다과상궁은 가공의 한 시대 어선(御膳) 소속으로, 중전·대비전의 다과상과 차회를 전담하는 상궁이다. 외형은 단정한 연옥색 정복, 어깨에 다구(茶具) 가방, 가슴팍에 작은 호리병 펜던트, 한 손에 옻칠 다반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윗전의 평소 차 취향·옛 분기 다과 결재·금기 음식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잔 차의 온도가 곧 그날 한 줄 결재의 무게를 정하기에, 그녀의 손끝은 결재 도장보다 무겁다. 외전 사신을 맞이하는 큰 다회의 첫 한 잔은 늘 그녀가 직접 따른다. 가장 무거운 한 잔은 큰 차회가 아니라, 마마가 결재 직전 한 호흡을 가다듬는 그 한 모금 위에 있다.
“우리 어선 다과상궁 어르신들의 한 잔 온도는 결재 도장보다 무겁습니다. 한 푼 식은 잔과 한 푼 더운 잔 사이, 그게 마마의 한 호흡 자리입니다.”
어선 다과상궁 황씨 — 가공의 한 왕조 어선(御膳) 다과상궁이자 변방국 사신을 맞이한 큰 다회의 첫 한 잔을 사십 년 손수 따른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어선 사관록에 '한 푼의 잔'으로 남았다.
어느 분기 변방국 사신이 결혼동맹문 한 줄을 두고 한양 어전(御殿) 다회 자리에서 흥정을 길게 끌었을 때, 황씨는 사신의 잔 온도를 평소보다 한 푼 식혀 정중히 따라 올렸다. 그 한 푼 사이 사신의 손목이 자기 잔을 한 박 더 오래 쥐었고, 그 한 박 동안 사신은 동맹문 한 줄의 어조사를 다시 다듬어 입에 올렸다고 한다. 동맹문은 그날 정중히 한 분기 안에 체결되었고, 황씨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선 호리병 한 자루의 한 푼 온도가 한 분기 외교 한 줄을 정중히 정한 사실은 어선 사관록 안에만 적혔다.
후대 어선 다과상궁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호리병 한 자루를 한 박 손에 받아 드는 관례를 따른다. 사관록에는 '한 푼 식은 잔이 결재 도장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황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향장숙녀(香匠淑女)
향실 향장
향로의 향기를 다스리는 향장
“이 한 줌 향, 오늘 마마의 한 줄 결재 위에 정중히 한 박을 더 얹어 드립니다.”
향실 향장은 가공의 한 시대 향실(香室) 소속으로, 침전·집무전·차회의 향을 조향하고 사르는 정식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청색 정복, 어깨에 향함, 가슴팍에 향로 펜던트, 한 손에 작은 향집게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윗전의 평소 향 취향·옛 분기 합향(合香) 결재·금기 향료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줄 결재가 길어지는 자리에는 늘 그녀의 한 줌 합향이 정중히 사르여 있다. 외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례·책봉·진연(進宴)의 모든 자리는 그녀의 한 박 향연(香煙) 위에서 정중히 시작된다. 가장 무거운 한 줌은 큰 향료가 아니라, 마마의 한 호흡과 짝지어지는 그 미세한 박자 위에 있다.
“우리 향실 어른들의 한 줌 합향은 향료가 아니라 박자입니다. 마마가 결재안을 펴는 한 박 위에 향연(香煙)이 한 결로 올라가야, 그 결재가 정중히 굴러간다는 뜻이지요.”
향실 향장 이씨 — 가공의 한 왕조 향실 향장이자 강녕전 침전의 합향(合香) 한 줌을 사십 년 손수 사른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향실 사관록에 '향연 한 박'으로 남았다.
어느 가을 외척 어른이 강녕전 차회 자리에서 결재안 한 줄을 한 박 빠르게 들이밀려 했을 때, 이씨는 차회 자리에 평소와 다른 합향 한 줌을 정중히 한 박 더 일찍 살랐다. 향연이 외척 어른의 손목 위로 한 결 먼저 닿자, 어른은 자기 결재안을 펼치려던 손을 한 박 멈추었다고 한다. 그 한 박 사이 마마는 결재안 한 줄을 자기 호흡과 정중히 짝지을 시간을 얻었고, 결재는 마마 쪽으로 한 박 기울었다. 이씨는 평생 자기 합향의 비율을 다른 누구에게도 가르치지 않았으며, 향함 안의 향료 일곱 종은 사십 년 동안 한 종도 바뀌지 않았다.
후대 향실 향장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향함을 한 박 손에 받아 든 뒤 정중히 다시 자리에 두는 관례를 따른다. 향실 사관록에는 '한 박 향연이 결재 도장 한 줄을 정중히 받친다'는 격언이 이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서신차비낭(書信差備娘)
별감 서신차비
별감의 서찰을 전하는 차비 낭자
“이 한 통 서신, 한 마장 길을 정중히 줄여 올립니다. 답신은 새벽 종 전에 도착할 것입니다.”
별감 서신차비는 가공의 한 시대 액정서(掖庭署) 산하 별감 중에서도, 윗전들의 비밀 서신을 친정·외척·교방 사이로 정중히 옮기는 단 한 사람이다. 외형은 짙은 남색 별감 복식, 어깨에 작은 서신함, 가슴팍에 봉인 인장 펜던트, 허리에 짧은 호신 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외척 저택의 옛 출입·옛 분기 서신 결재·금기 인장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별감이 단순 심부름꾼으로 보이지만, 정작 한 줄 결혼동맹의 첫 한 통은 늘 그의 발자국 위에서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한 통은 큰 봉인이 아니라, 새벽 별이 지기 전에 정중히 답신을 받아 돌아오는 그의 한 호흡 위에 있다.
“우리 별감 어른들 사이에서 새벽 종 한 박은 봉인 인장 한 줄보다 무겁습니다. 종 치기 전에 답신을 받아 돌아오는 자세, 그게 한 줄 결혼동맹의 첫 한 박이지요.”
별감 서신차비 정수 — 가공의 한 왕조 액정서(掖庭署, 궁궐 잡무를 총괄하는 부서) 산하 별감이자 중전 윤소희와 친정 윤문 어른 사이의 봉인 서신을 사십 년 옮긴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별감 사관록에 '새벽 종 한 박'으로 남았다.
어느 겨울 외척 결재 한 줄이 한 분기 안에 친정으로 도착하지 않으면 가례 한 줄이 한 시즌 미뤄질 수 있는 새벽, 정수는 한양 도성 큰 길을 비껴 좁은 골목 일곱을 따라 친정 윤문 저택까지 정중히 한 마장 길을 줄였다. 그는 새벽 종이 울리기 한 박 전에 봉인 서신을 친정 어른 손에 정중히 올렸고, 같은 자리에서 답신을 받아 다시 같은 골목 일곱을 따라 입궁했다. 그 한 박 사이 외척 결재 한 줄은 정중히 가례 도감으로 넘어갔고, 가례는 그 분기 안에 정중히 굴러갔다. 정수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골목 일곱의 순서를 후임에게도 가르치지 않았다.
후대 별감 서신차비들은 입직 첫 새벽에 도성 큰 길 한 모퉁이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별감 사관록에는 '새벽 종 한 박이 큰 봉인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정수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보모상궁녀(保姆尙宮女)
원자방 보모상궁
원자를 품에 안고 기르는 보모
“원자아기씨, 오늘 한 끼는 어제보다 반 술만 더. 그 반 술이 다음 한 시즌입니다.”
원자방 보모상궁은 가공의 한 시대 원자(元子)·옹주를 어린 시절부터 정중히 받드는 정식 보모 상궁이다. 외형은 단정한 분홍빛 정복, 어깨에 자그만 포대기, 가슴팍에 작은 옥 노리개 펜던트, 한 손에 작은 백자 그릇이 표준이다. 본인은 원자방 모든 어린 윗전의 평소 잠버릇·옛 분기 한 끼의 양·금기 음식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중궁전의 큰 결재가 빛날 때, 그녀의 한 술 한 술이 다음 한 세대의 한 줄 결재를 정중히 키운다. 가장 무거운 한 술은 큰 진수성찬이 아니라, 어린 윗전이 처음 보채던 새벽의 따뜻한 흰죽 한 술 위에 있다.
“우리 원자방 어른들의 한 술은 진수성찬보다 무겁습니다. 어린 윗전의 첫 새벽 흰죽 한 술 위에 다음 한 시대의 첫 결재가 얹혀 있다는 뜻이지요.”
원자방 보모상궁 노씨 — 가공의 한 왕조 원자방(元子房, 원자의 어린 시절을 전담하는 처소) 보모상궁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원자 한 분을 사십 년 정중히 받든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원자방 사관록에 '흰죽 반 술'로 남았다.
원자가 갓 백일을 넘긴 어느 겨울 새벽, 원자가 처음 보채며 잠을 깬 한 시진을 노씨는 자기 작은 백자 그릇에 흰죽을 한 술씩 천천히 떠 정중히 한 박 늦춰 올렸다. 어린 원자가 한 술 받아 마시고 한 박 잠잠해지자, 노씨는 다음 한 술을 평소보다 반 술만 더 정중히 떠 올렸다. 그 반 술 사이 원자는 자기 첫 새벽을 정중히 잠으로 넘겼고, 노씨는 그 백자 그릇을 그날 이후 한 번도 갈지 않았다. 사십 년 뒤 그 원자가 즉위해 자기 어린 시절 첫 새벽을 사관록에 적게 했을 때, 그는 그 반 술 한 박을 자기 결재의 한 줄 비결이라 회상했다.
후대 원자방 보모상궁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백자 그릇 앞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원자방 사관록에는 '반 술 한 박이 다음 한 시대의 첫 결재'라는 격언이 노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후원화초녀(後苑花草女)
후원 화초 나인
후원의 꽃을 가꾸는 나인
“이 한 송이 모란, 마마의 다음 한 줄 차회 위에 정중히 미리 피워 올립니다.”
후원 화초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후원(後苑) 소속으로, 중전·옹주의 산책로와 차회 자리에 놓일 화초·분재를 가꾸는 정식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풀빛 정복, 어깨에 작은 풀바구니, 한 손에 가위, 허리에 물병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후원 모든 화초의 평소 개화 시기·옛 분기 분재 결재·금기 색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줄 차회의 첫인상은 결국 그녀의 한 송이 한 송이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한 송이는 큰 모란이 아니라, 마마가 산책 중 한 번 더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작은 들꽃 한 줌 위에 있다.
“우리 후원 어른들의 한 송이는 큰 모란이 아니라 마마가 멈춰 서신 작은 들꽃입니다. 그 한 박 멈춤 위에 차회 한 줄의 첫인상이 놓인다는 뜻이지요.”
후원 화초 나인 옥분 — 가공의 한 왕조 후원 향원지(香園池, 후원 한가운데 큰 연못과 정자) 화초 나인이자 옹주 이서윤의 산책로 작은 들꽃 한 줌을 사십 년 가꾼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후원 사관록에 '들꽃 한 줌의 한 박'으로 남았다.
어느 봄날 변방국 사신을 맞이한 큰 차회 자리가 향원지 정자에서 열리려 할 때, 옥분은 큰 모란이 아니라 산책로 한 모퉁이의 작은 패랭이 한 줌을 정중히 한 박 더 다듬어 두었다. 옹주가 사신을 안내해 정자로 향하던 길에 그 패랭이 앞에 한 박 멈춰 한 송이를 손가락으로 정중히 만지자, 사신은 그 한 박 동안 옹주의 옷자락 결을 정중히 따라 멈춰 섰다. 그 한 박 멈춤이 차회의 첫인상을 정중히 다듬었고, 동맹문 흥정은 평소보다 한 박 부드럽게 굴러갔다. 옥분은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그 패랭이 자리는 사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정중히 피었다.
후대 후원 화초 나인들은 입직 첫 봄에 그 패랭이 자리 앞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후원 사관록에는 '한 박 멈춤이 큰 모란 한 송이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옥분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옹주시강녀(翁主侍講女)
옹주궁 시강 여관
옹주의 글공부를 돕는 여관
“옹주아기씨, 오늘 한 줄 글은 어제 한 줄과 짝지어 외워 봅니다. 외교는 그렇게 외워지는 것이지요.”
옹주궁 시강 여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옹주의 학문·예법·시문(詩文)을 정중히 이끄는 여성 사부(師傅)로, 사대부 가문 출신 학식 깊은 여관(女官)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청색 학자복, 어깨에 책함, 가슴팍에 붓통 펜던트, 한 손에 작은 서책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옹주의 시문·옛 분기 외교 서신·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옹주의 한 줄 외교가 빛나는 비결은 큰 영민함이 아니라, 새벽 등불 아래 그녀가 옹주의 글씨를 한 줄 한 줄 다시 그어주는 자세 위에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글은 큰 시문이 아니라, 옹주가 처음 정중히 외워낸 가풍(家風) 한 줄 위에 있다.
“우리 시강 여관 어른들의 한 줄 글은 큰 시문이 아니라 옹주아기씨가 처음 정중히 외워낸 가풍 한 줄입니다. 새벽 등불 아래 한 박 다시 그어주는 자세, 그게 옹주궁의 한 결이지요.”
옹주궁 시강 여관 송씨 — 가공의 한 왕조 옹주궁 시강 여관(侍講女官)이자 명헌옹주 이서윤의 시강을 어린 시절부터 정중히 이끌어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옹주궁 사관록에 '새벽 등불 한 줄'로 남았다.
어린 이서윤이 변방국 사신과의 첫 시문 자리를 앞두고 평소보다 두 푼 떨리는 손목으로 시(詩) 한 줄을 외우지 못한 새벽, 송씨는 어린 옹주의 손목 위에 자기 손목을 정중히 한 박 겹쳐 시 한 줄을 함께 한 글자씩 그어 주었다. 그 한 줄 시는 옹주의 친정 어머님 가풍 한 줄을 한 자 비껴 다듬은 시였고, 어린 옹주는 그 한 박 동안 자기 호흡을 정중히 가다듬었다. 시강 자리에서 어린 옹주는 그 한 줄 시를 정중히 외워 사신 앞에 올렸고, 사신은 옹주의 가풍 한 줄을 자기 변방국 사관에 옮겨 적었다. 송씨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새벽 등불 한 자루를 사십 년 같은 자리에 두었다.
후대 옹주궁 시강 여관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등불 한 자루 앞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옹주궁 사관록에는 '한 줄 가풍이 큰 시문 한 폭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송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가례차비녀(嘉禮差備女)
별궁 가례 차비
가례의 의장을 갖추는 차비 여관
“이 한 줄 동선, 가례 한 박을 정중히 반 박 늦춥니다. 그 반 박이 신부의 한 호흡입니다.”
별궁 가례 차비는 가공의 한 시대 가례도감(嘉禮都監) 산하에서, 별궁에 머무는 신부의 가례 동선·예복 시침·합방 절차를 정중히 다듬는 정식 차비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다홍빛 정복, 어깨에 가례 비단 가방, 가슴팍에 작은 옥 노리개, 한 손에 두루마리 동선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례의 동선·옛 분기 합방 결재·금기 시각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큰 가례 결재가 어전에서 빛나지만, 정작 신부의 한 걸음은 그녀의 한 줄 동선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가례가 아니라, 신부가 처음 가마에서 내려 디디는 첫 한 발자국 위에 있다.
“우리 별궁 가례 차비 어른들의 한 줄 동선은 어전 결재문보다 무겁습니다. 신부의 첫 한 발자국 위에 반 박을 정중히 얹어 두는 자세, 그게 가례 한 줄의 비결이지요.”
별궁 가례 차비 윤씨 — 가공의 한 왕조 가례도감(嘉禮都監) 산하 별궁 가례 차비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가례 동선을 두루마리 한 폭에 정중히 다듬어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가례도감 사관록에 '반 박 동선'으로 남았다.
가례 당일 새벽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첫 한 발자국을 디딜 댓돌 한 자락이 평소보다 두 푼 미끄럽다는 사실을 윤씨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동선표 한 줄을 그 자리에서 반 박 늦춰 두고, 신부 옆에 자기 손목을 정중히 한 박 받쳐 첫 발자국을 정중히 옮길 수 있게 했다. 그 반 박 사이 신부의 한 호흡이 정중히 가다듬어졌고, 가례 첫인상은 외전에서도 한 결 단정하게 굴러갔다고 한다. 윤씨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동선표 두루마리 한 폭은 사십 년 동안 한 결도 바꾸지 않았다.
후대 가례도감 차비 나인들은 입직 첫 가례에 그 댓돌 한 자락 앞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가례도감 사관록에는 '반 박 동선이 어전 결재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윤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세답무수리(洗踏水賜)
빨래터 무수리
빨래터에서 옷을 빠는 무수리
“이 한 자락 옷고름, 어제 한 줄 결재의 흔적까지 정중히 헹궈 올리겠습니다.”
빨래터 무수리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궁궐 빨래터에서, 윗전들의 옷고름·당의·이불보를 정중히 헹구는 평민 무수리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옥빛 무수리 정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빨래 광주리, 한 손에 방망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윗전들의 평소 옷감·옛 분기 얼룩·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어떤 한 자락에 묻은 차 얼룩은 어제 한 줄 차회의 결재 향을, 어떤 한 자락에 묻은 먹 얼룩은 어제 한 줄 결재의 무게를 그녀에게 알려준다. 외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 시대 가장 단정한 한 줄 옷고름은 결국 그녀의 새벽 방망이 한 박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우리 빨래터 어르신들 새벽 방망이 한 박은 결재문보다 무겁습니다. 한 자락 얼룩을 정중히 모른 척 헹궈 두는 자세, 그게 한 시대 옷고름 한 줄을 정중히 받친다는 뜻이지요.”
빨래터 무수리 갑이 — 가공의 한 왕조 후원 빨래터(濯衣場, 후원 깊은 자리에 있는 빨래터) 평민 무수리이자 중전 윤소희의 옷고름을 사십 년 손수 헹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빨래터 사관록에 '한 자락 모른 척의 새벽'으로 남았다.
어느 늦가을 새벽 윤소희의 옷고름 한 자락에 외척 어른의 친정 인장 인주(印朱) 얼룩 한 점이 묻어 있는 것을 갑이가 발견했다. 그 인주는 외전 사관도, 내명부 어른도 보지 못한 비밀 결재 한 줄의 흔적이었다. 갑이는 그 한 점을 자기 방망이 한 박으로 정중히 헹군 뒤, 그 옷고름을 평소보다 반 박 더 곱게 다림질해 정중히 침방으로 올렸다. 그녀는 그 한 점에 대해 평생 누구에게도 한마디 묻지 않았고, 한 줄 결재의 비밀은 외전 사관록에 기록되기 전에 빨래터 새벽 한 박 안에서 정중히 사라졌다.
후대 빨래터 무수리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빨래터 한 모퉁이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빨래터 사관록에는 '모른 척 헹궈 둔 한 자락이 외전 사관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갑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수라잡비녀(水剌雜婢女)
수라간 잡일 비자
수라간 잡일을 맡은 비자
“이 한 동이 물, 수라 한 상의 한 박을 정중히 반 박 빠르게 굴러가게 합니다.”
수라간 잡일 비자는 가공의 한 시대 수라간(水剌間) 가장 아래에서, 물 길어 나르기·아궁이 불 살리기·식기 닦기를 도맡는 평민 비자(婢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풀빛 비자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큼지막한 물동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수라간 모든 솥의 평소 끓는 시각·옛 분기 한 끼의 결정적 시점·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큰 어선 상궁의 한 줄이 빛나지만, 정작 그 한 줄 수라가 정중히 올려지는 비결은 그녀의 새벽 한 동이 물 위에 있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한 시대 수라 한 상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수라간 어르신들 새벽 한 동이 물은 어선 상궁의 한 줄보다 무겁습니다. 솥 한 박이 끓어오르기 전 정중히 도착해 있는 자세, 그게 수라 한 상의 첫 결재이지요.”
수라간 잡일 비자 막덕이 — 가공의 한 왕조 수라간(水剌間) 새벽 비자이자 중전 윤소희의 산후 첫 수라상에 정중히 한 동이 물을 받쳐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수라간 사관록에 '한 동이 물의 새벽'으로 남았다.
윤소희가 원자(元子)를 출산한 새벽 첫 수라상이 평소보다 반 박 늦으면 산후 한 첩과 짝이 어긋나는 사실을 도총관 의녀 장금이만 알고 있었다. 막덕이는 그 새벽 평소보다 반 박 일찍 일어나 우물에서 한 동이 물을 손수 길어, 수라간 첫 솥에 정중히 한 박 먼저 부어 두었다. 그 반 박 사이 첫 솥은 정중히 끓어올랐고, 산후 한 첩과 짝이 정확히 맞은 따뜻한 흰죽 한 그릇이 침소에 한 박 빠르게 올라갔다. 막덕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그 한 동이 물의 무게를 후임에게도 가르치지 않았다.
후대 수라간 비자들은 입직 첫 새벽에 우물 한 모퉁이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수라간 사관록에는 '한 동이 물 한 박이 어선 한 줄 결재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막덕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책봉도감녀(冊封都監女)
동궁전 책봉 도감 여관
책봉 의례를 진행하는 도감 여관
“이 한 줄 책봉문, 다음 시대의 한 줄 보위를 정중히 미리 다듬어 둡니다.”
동궁전 책봉 도감 여관은 가공의 한 시대 세자·세자빈의 책봉 의례를 글과 절차로 엮어 올리는 사대부 출신 정식 여관(女官)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자줏빛 학자복, 어깨에 두루마리 책함, 가슴팍에 옥빛 봉인 펜던트, 한 손에 작은 인주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책봉문의 한 글자·옛 분기 외척 가문의 결재 라인·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예조 판서가 큰 결재를 받지만, 정작 다음 보위의 첫 한 줄은 그녀의 붓끝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책봉문의 작은 글자 한 획이 한 외척 가문의 한 시대를 정한다는 사실을 그녀만이 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옥새가 아니라, 새벽 등불 아래 한 글자를 다시 매만지는 그녀의 손목 한 박 위에 있다.
“우리 책봉 도감 여관 어른들의 붓끝 한 획은 옥새보다 무겁습니다. 외척 가문의 한 시대가 그 한 획 위에 얹혀 있다는 뜻이지요.”
책봉 도감 여관 안씨 — 가공의 한 왕조 동궁전 책봉 도감(冊封都監) 여관이자 의경세자빈 한씨의 책봉문 한 줄을 손수 다듬어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동궁전 사관록에 '한 획의 새벽'으로 남았다.
한씨의 책봉문 초안에 외척 한문(韓門, 의경세자빈의 친정) 어른의 작고하신 어머님 휘(諱)와 한 자가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음을 안씨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새벽 등불 아래 그 한 글자의 획 한 결을 정중히 두 푼 비껴 다듬어, 외전 결재로 올리기 전에 그 휘를 정중히 비껴 두었다. 외척 한문 어른은 책봉 당일 그 한 획 차이를 알아보고는 동궁전 외전 한쪽에 한 박 합장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책봉문은 그 분기 정중히 굴러갔고, 외척 한문은 한 시대 동궁전 결재 라인에 정중히 협력했다. 안씨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그 책봉문 두루마리는 동궁전 책함 가장 안쪽에 한 줄 봉인된 채 보관되었다.
후대 책봉 도감 여관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책함 앞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사관록에는 '한 획 두 푼이 큰 옥새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안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외척연락녀(外戚連絡女)
내전 외척 연락 상궁
외척과 내전을 잇는 연락 상궁
“친정 어르신의 한 마디, 중궁전 한 호흡과 정중히 박을 맞춰 올립니다.”
내전 외척 연락 상궁은 가공의 한 시대 중전·세자빈의 친정과 내전 사이를 정중히 잇는 단 한 사람의 정식 상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청색 정복, 어깨에 작은 비단 보따리, 가슴팍에 옥색 인장 펜던트, 한 손에 봉인된 서신함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외척 가문의 옛 출입·옛 분기 진봉(進封) 결재·금기 인척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예조의 큰 결재가 빛나지만, 정작 친정의 한 줄 의향이 중궁전에 닿는 비결은 그녀의 한 박 발걸음 위에 있다. 한 분기 큰 가문의 흥망이 그녀의 새벽 종소리 박자에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인장이 아니라, 친정 어머니의 한 줄 안부를 마마의 한 호흡 직전에 정중히 얹어주는 그녀의 손목 위에 있다.
“우리 외척 연락 상궁 어른들의 한 박 발걸음은 큰 인장보다 무겁습니다. 친정의 한 줄 안부를 마마의 한 호흡 직전에 정중히 얹어주는 자세, 그게 한 분기 가문의 흥망을 정중히 받친다는 뜻이지요.”
외척 연락 상궁 조씨 — 가공의 한 왕조 내전 외척 연락 상궁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친정 윤문(尹門)과 중궁전 사이를 사십 년 정중히 이어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내전 사관록에 '새벽 종 한 박의 안부'로 남았다.
어느 겨울 친정 윤문 어머니께서 깊은 병중이심을 안 새벽, 조씨는 봉인 서신함을 들고 도성 좁은 길 한 마장을 정중히 한 박 빠르게 줄여 친정 어머니의 안부 한 줄을 새벽 종 전에 받아 왔다. 그녀는 그 한 줄 안부를 마마의 새벽 한 호흡 직전, 다과 다반 한 자락 위에 정중히 얹어 두었다. 윤소희는 그 한 줄을 보고 한 박 더 길게 호흡한 뒤 그날 결재 한 줄을 정중히 친정 쪽으로 한 결 기울였고, 친정 어머니의 마지막 한 결재가 정중히 친정 사가에 닿았다. 조씨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봉인 서신함 한 자루는 사십 년 동안 한 결도 갈지 않았다.
후대 외척 연락 상궁들은 입직 첫 새벽에 도성 좁은 길 한 모퉁이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내전 사관록에는 '한 줄 안부가 큰 인장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조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침방의녀(鍼房醫女)
내의원 침방 의녀
내의원 침술을 익힌 의녀
“이 한 침, 마마의 한 호흡과 짝지어 정중히 두 박만 누르겠습니다.”
내의원 침방 의녀는 가공의 한 시대 내의원 산하 침구(鍼灸) 전담 의녀로, 중전·세자빈·옹주의 어깨와 손목 결림을 정중히 풀어 드리는 정식 직임이다. 외형은 단정한 옥빛 의녀복, 어깨에 침통 가방, 가슴팍에 작은 은침 펜던트, 한 손에 따뜻한 뜸 화로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윗전의 평소 결림 부위·옛 분기 침방문(鍼方文)·금기 혈자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한 줄 결재가 길어진 날 마마의 어깨 한 점은 그녀의 한 침 위에서 정중히 풀어진다. 외전에서는 도총관 의녀의 한 첩이 빛나지만, 정작 침소의 새벽 한 박은 그녀의 손목 위에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침은 큰 혈자리가 아니라, 마마가 처음 작게 한숨을 쉬던 어깨의 그 한 점 위에 있다.
“우리 침방 의녀 어른들의 두 박 한 침은 도총관 한 첩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마마가 처음 작게 한숨을 쉬던 어깨 한 점 위에 정중히 두 박 머무르는 자세, 그게 침소의 한 줄이지요.”
침방 의녀 신비 — 가공의 한 왕조 내의원 침방(鍼房) 의녀이자 의경세자빈 한씨의 어깨 결림을 사십 년 정중히 풀어 드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내의원 사관록에 '두 박 한 침'으로 남았다.
의경세자빈이 시강원 발 한 자락 너머에서 한 분기 모든 강을 함께 외우다 어깨 한 점이 한 결 굳은 어느 새벽, 신비는 침통에서 가장 가는 은침 한 자루를 골라 정중히 두 박만 어깨 한 점에 머무르게 두었다. 그 두 박 사이 한씨의 한 호흡이 정중히 가다듬어졌고, 시강원 발 한 자락 너머의 한 박 자세가 그 한 분기 정중히 굴러갔다. 신비는 그 침을 평생 같은 침통의 같은 자리에 두었으며, 침통 안의 은침 일곱 자루는 사십 년 동안 한 자루도 갈지 않았다.
후대 침방 의녀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침통을 한 박 손에 받아 든 뒤 정중히 다시 자리에 두는 관례를 따른다. 내의원 사관록에는 '두 박 한 침이 큰 혈자리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신비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사가시비녀(私家侍婢女)
사가 후원 시비
사가 후원을 돌보는 시비
“마마, 이 한 자락 댓돌은 친정의 옛 마당과 같은 박이옵니다. 정중히 한 걸음 올려 드릴까요.”
사가 후원 시비는 가공의 한 시대 중전·세자빈·옹주의 친정 사가에서 어린 시절부터 정중히 모셔 온, 입궁 뒤에도 단 한 사람만 곁에 남는 정식 시비(侍婢)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풀빛 시비복, 어깨에 친정 가풍이 새겨진 작은 보따리, 가슴팍에 옛 옥 노리개, 한 손에 어린 시절 마마의 빗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마마의 어린 시절 잠버릇·옛 분기 친정 가풍·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큰 외척 가문이 빛나지만, 정작 마마의 새벽 한 호흡을 가장 먼저 듣는 자는 그녀다. 마마가 한 줄 결재 직전에 정중히 친정 마당의 박을 떠올리는 비결은 그녀의 한 줄 옛이야기 위에 있다. 가장 무거운 한 박은 큰 외척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마마의 첫 옷고름을 매주던 그녀의 손목 한 줄 위에 있다.
“우리 사가 시비 어르신들의 한 줄 옛이야기는 외척 결재문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어린 마마의 첫 옷고름을 매주던 손목 한 줄, 그게 한 시대 결재의 가장 따뜻한 한 박이지요.”
사가 후원 시비 봉이 — 가공의 한 왕조 사대 중전 윤소희의 친정 윤문 사가(私家)에서 어린 시절부터 모셔 온 시비이자 중궁전 입궁 뒤에도 곁을 지킨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사가 사관록에 '옛 마당 한 박'으로 남았다.
어느 새벽 외척 결재문 한 줄이 정중히 길어지던 차회 자리에서 어린 마마의 옷고름이 한 박 비뚤어진 것을 봉이가 가장 먼저 보았다. 그녀는 친정 사가 옛 마당에서 어린 마마께 옷고름을 매드리던 그 박자 그대로 정중히 옷고름을 다시 매주었고, 그 한 박 사이 마마는 친정 마당의 옛 박을 다시 한 호흡 떠올렸다. 그 한 호흡 동안 마마는 외척 결재문 한 줄을 자기 친정 가풍 한 줄과 정중히 짝지어 결재했고, 외척 어른은 그 결재를 친정 사가에 정중히 전했다. 봉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어린 시절 마마의 빗 한 자루를 사십 년 같은 자리에 두었다.
후대 사가 시비들은 입궁 첫 새벽에 그 빗 한 자루를 한 박 손에 받아 든 뒤 정중히 다시 자리에 두는 관례를 따른다. 사가 사관록에는 '옛 마당 한 박이 큰 외척 한 줄보다 따뜻하게 남는다'는 격언이 봉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거문고사범녀(거문고師範女)
한양 교방 거문고 사범
교방에서 거문고를 가르치는 사범
“이 한 줄 거문고, 어린 기녀의 한 호흡과 정중히 박을 맞춰 가르칩니다. 흥정은 그 다음입니다.”
한양 교방 거문고 사범은 가공의 한 시대 한양 교방(敎坊)에서 어린 기녀들의 거문고·시조·예법을 정중히 다듬어 올리는 중년의 명기 출신 사범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남빛 저고리에 잿빛 치마, 어깨에 얇은 비단 숄, 머리에 옥나비 비녀, 한 손에 거문고 술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한양 모든 사대부의 옛 시문·옛 분기 후원금·금기 화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행수기녀의 한 박이 빛나지만, 정작 그 한 박을 처음 가르친 자는 그녀다. 어린 기녀의 첫 시조 한 줄이 결국 한 도시 외교 한 줄을 다음 십 년에 굴러가게 한다는 사실을 그녀만이 안다. 가장 무거운 한 박은 큰 풍류가 아니라, 어린 제자의 떨리는 손목을 정중히 다시 잡아주는 그녀의 한 줄 자세 위에 있다.
“우리 교방 사범 어르신들의 한 줄 자세는 큰 풍류보다 무겁습니다. 어린 제자의 떨리는 손목을 정중히 다시 잡아주는 한 박, 그게 다음 십 년 도시 한 줄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한양 교방 거문고 사범 옥향 — 가공의 한 왕조 한양 운심교방(雲心敎坊) 거문고 사범이자 일패 행수기녀 매향을 어린 시절부터 가르친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교방 사관록에 '떨리는 손목 한 박'으로 남았다.
어린 매향이 첫 시조 한 줄을 한 박 떨리는 손목으로 외워내지 못하던 어느 새벽, 옥향은 자기 손목을 어린 제자의 손목 위에 정중히 한 박 겹쳐 술대를 함께 한 박 들어 올렸다. 그 한 박 사이 어린 매향은 자기 호흡을 정중히 가다듬었고, 첫 시조 한 줄이 그 새벽 정중히 굴러갔다고 한다. 사십 년 뒤 그 어린 제자가 운심교방 일패 자리에서 한 박 늦은 술대로 도시 한 분기 외교를 미루었다는 사실은, 옥향의 그 한 박 자세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 결과였다. 옥향은 평생 자기 손목 한 줄을 후임에게도 가르치지 않았으며, 술대 한 자루는 사십 년 동안 한 결도 갈지 않았다.
후대 교방 거문고 사범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술대 한 자루를 한 박 손에 받아 든 뒤 정중히 다시 자리에 두는 관례를 따른다. 교방 사관록에는 '한 박 자세가 큰 풍류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옥향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도화화원녀(都畵畵員女)
가례 견본 도화 화원녀
가례 도화를 그리는 화원녀
“이 한 폭 견본, 신부의 가례 한 줄을 정중히 미리 한 결 그어 둡니다.”
가례 견본 도화 화원녀는 가공의 한 시대 도화서(圖畵署) 산하에서 가례·진연(進宴)·책봉 의례의 견본도(見本圖)를 정중히 그려 올리는 여성 화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옥색 화원복, 어깨에 화첩 가방, 가슴팍에 붓통 펜던트, 한 손에 작은 색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례의 동선도·옛 분기 책봉 견본·금기 색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가례도감의 큰 결재가 빛나지만, 정작 신부의 한 걸음 한 박은 그녀의 한 폭 견본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견본의 작은 채색 한 결이 한 분기 가례의 첫인상을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폭은 큰 채색이 아니라, 신부가 처음 가마에서 내려 디딜 첫 한 발자국을 미리 그어 둔 그녀의 한 줄 위에 있다.
“우리 도화 화원녀 어른들의 한 폭 견본은 가례도감 결재문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신부의 첫 한 발자국 위에 미리 한 결 그어 둔 자세, 그게 가례 첫인상의 한 줄이지요.”
도화 화원녀 박씨 — 가공의 한 왕조 도화서(圖畵署) 산하 가례 견본 화원녀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가례 견본도 한 폭을 정중히 손수 그려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도화서 사관록에 '한 결 채색의 새벽'으로 남았다.
윤소희의 가례 댓돌 한 자락이 두 푼 미끄럽다는 사실을 별궁 가례 차비 윤씨가 박씨에게 정중히 일러두었을 때, 박씨는 그 댓돌 한 자락을 견본도 한 폭 위에 평소보다 한 결 진한 옥빛으로 정중히 다시 채색해 두었다. 그 한 결 진한 채색은 외전 결재 자리에서 한 박 더 길게 시선을 머무르게 했고, 가례도감 어른은 그 댓돌 자리에 별감 한 명을 정중히 추가로 배치했다. 가례 당일 신부의 첫 발자국은 그 별감의 정중한 손목 한 줄 위에서 정중히 굴러갔다고 한다. 박씨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견본도 한 폭은 도화서 화첩 가장 안쪽에 정중히 봉인되어 보관되었다.
후대 도화 화원녀들은 입직 첫 가례에 그 화첩 한 자락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도화서 사관록에는 '한 결 채색이 큰 결재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박씨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등촉야나인(燈燭夜內人)
별궁 야간 등촉 나인
별궁의 등촉을 살피는 야간 나인
“이 한 자루 등불, 신부의 한 호흡과 정중히 같은 박으로 흔들리도록 심지를 다듬습니다.”
별궁 야간 등촉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가례 직전 별궁에 머무는 신부의 침전·복도·정원의 등촉(燈燭)을 정중히 살피는 정식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남빛 정복, 어깨에 등잔 가방, 가슴팍에 작은 부싯돌 펜던트, 한 손에 가위와 심지통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별궁 등잔의 평소 심지 길이·옛 분기 야간 동선·금기 그림자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가례 차비의 큰 결재가 빛나지만, 정작 신부의 새벽 한 호흡은 그녀의 등불 한 박 위에서 정중히 흔들린다. 한 자루 등불의 그림자 한 결이 신부의 어깨를 떨게도, 가라앉게도 만든다. 가장 무거운 한 박은 큰 향연(香煙)이 아니라, 신부가 처음 거울을 마주할 그 한 자루 등불 위에 있다.
“우리 등촉 어른들의 한 자루 등불은 큰 향연(香煙)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신부가 처음 거울을 마주할 그 한 자루의 그림자 한 결, 그게 새벽 한 호흡의 결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별궁 야간 등촉 나인 향이 — 가공의 한 왕조 별궁 동(東)별궁(가례 직전 신부가 머무는 가장 큰 별궁) 야간 등촉 나인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가례 직전 새벽 등불 한 자루를 정중히 다듬어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별궁 사관록에 '심지 한 푼의 새벽'으로 남았다.
가례 직전 새벽, 신부 윤소희가 처음 거울을 마주할 침전 한 자락 등불 한 자루의 심지가 평소보다 한 푼 길어 그림자가 어깨선 위로 한 결 떨릴 사실을 향이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위로 심지 한 푼을 정중히 잘라 내, 등불의 그림자 한 결이 신부의 한 호흡과 정중히 같은 박으로 흔들리게 다듬어 두었다. 거울 앞 신부는 그 한 박 등불 위에서 자기 한 호흡을 정중히 가다듬었고, 가례 첫인상은 외전에서도 한 결 단정하게 굴러갔다. 향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가위 한 자루와 심지통 한 자루를 사십 년 같은 자리에 두었다.
후대 별궁 등촉 나인들은 입직 첫 가례 새벽에 그 등불 한 자루 앞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별궁 사관록에는 '심지 한 푼이 큰 향연 한 줄보다 길게 흔들린다'는 격언이 향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곁마기시침녀(곁마기侍寢女)
옹주궁 곁마기 시침 나인
옹주를 곁에서 시침하는 나인
“이 한 줄 시침실, 옹주아기씨의 다음 한 시즌 어깨선을 정중히 미리 다듬어 올립니다.”
옹주궁 곁마기 시침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옹주궁 침방 산하에서, 어린 옹주가 자라며 달라지는 어깨선·소맷부리에 맞춰 곁마기와 당의를 정중히 시침질하는 정식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분홍 정복, 어깨에 작은 비단 가방, 가슴팍에 은바늘 펜던트, 한 손에 자그만 자(尺)와 시침실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옹주의 어깨 너비 변화·옛 분기 곁마기 도안·금기 색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침방 수방나인의 한 땀이 빛나지만, 정작 어린 옹주의 한 시즌은 그녀의 시침실 한 박 위에서 정중히 자란다. 한 줄 시침실의 길이가 한 분기 외교 한 줄의 어깨선을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가례복이 아니라, 옹주가 처음 발돋움하던 그 새벽의 어깨선 한 결 위에 있다.
“우리 옹주궁 시침 어른들의 한 줄 시침실은 큰 가례복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옹주아기씨가 처음 발돋움하던 새벽의 어깨선 한 결, 그게 한 분기 외교 한 줄의 어깨선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옹주궁 곁마기 시침 나인 단이 — 가공의 한 왕조 옹주궁 침방(針房) 산하 곁마기 시침 나인이자 명헌옹주 이서윤의 어린 시절 곁마기를 사십 년 정중히 시침질해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옹주궁 사관록에 '발돋움 한 결의 새벽'으로 남았다.
어린 이서윤이 변방국 사신 앞에서 처음 정중히 발돋움하며 가풍 한 줄을 외워야 했던 가을 새벽, 단이는 옹주의 어깨선 한 결이 평소보다 두 푼 더 자란 사실을 자기 자(尺) 한 자루로 정중히 한 박 먼저 측정했다. 그녀는 곁마기 어깨선 한 자락을 두 푼 더 정중히 시침질해, 옹주가 발돋움한 한 박 위에서도 어깨선 한 결이 단정하게 정렬되도록 다듬어 두었다. 어린 옹주는 그 한 결 위에서 가풍 한 줄을 정중히 외워냈고, 변방국 사신은 그 어깨선 한 결을 자기 사관록에 옮겨 적었다. 단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자(尺) 한 자루는 사십 년 동안 한 결도 갈지 않았다.
후대 옹주궁 시침 나인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자 한 자루를 한 박 손에 받아 든 뒤 정중히 다시 자리에 두는 관례를 따른다. 옹주궁 사관록에는 '두 푼 시침이 큰 가례복 한 줄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단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빙수차비비(氷水差備婢)
빙고 빙수 차비 비자
빙고의 빙수를 차비하는 비자
“이 한 사발 빙수, 어제 한 줄 더위와 정중히 짝지어 올립니다. 한 모금이면 한 박 식습니다.”
빙고 빙수 차비 비자는 가공의 한 시대 빙고(氷庫) 산하에서, 한여름 중전·옹주의 차회 자리에 빙수와 화채를 정중히 갈아 올리는 평민 비자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옥빛 비자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작은 빙편(氷片) 가방, 한 손에 작은 갈음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빙고 모든 빙편의 평소 보존 시각·옛 분기 차회 빙수 결재·금기 단맛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어선 다과상궁의 한 잔이 빛나지만, 정작 그 한 잔 곁의 한 사발 빙수는 그녀의 새벽 갈음돌 한 박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한 사발 빙수의 한 모금이 한 시즌 더위를 한 박 늦춘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한 분기 차회의 가장 시원한 한 줄을 정중히 굴러가게 한다.
“우리 빙고 비자 어르신들의 한 사발 빙수는 어선 한 잔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새벽 갈음돌 한 박이 한 시즌 더위를 한 박 정중히 늦춘다는 뜻이지요.”
빙고 빙수 차비 비자 산이 — 가공의 한 왕조 동(東)빙고(東氷庫, 한양 도성 동쪽 큰 빙고) 산하 빙수 차비이자 한여름 옹주 이서윤의 변방국 사신 차회 자리에 정중히 한 사발 빙수를 갈아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빙고 사관록에 '갈음돌 한 박의 새벽'으로 남았다.
변방국 사신을 맞이한 한여름 차회 자리에서 사신 어른의 손목 위로 한 결 더위가 평소보다 한 박 길게 머무를 사실을 산이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새벽 빙고 가장 안쪽 빙편 한 자락을 자기 갈음돌 한 박으로 평소보다 한 결 더 곱게 갈아, 사신 잔 곁에 정중히 한 사발 빙수를 한 박 먼저 올려 두었다. 그 한 모금 사이 사신의 손목이 한 박 식었고, 흥정 한 줄이 정중히 한 박 부드럽게 굴러갔다. 산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갈음돌 한 자루를 사십 년 같은 자리에 두었다.
후대 빙고 비자들은 입직 첫 여름에 그 빙고 한 모퉁이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빙고 사관록에는 '갈음돌 한 박이 큰 차회 한 줄보다 시원하게 남는다'는 격언이 산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새벽비질녀(새벽飛叱女)
후원 새벽 비질 무수리
후원을 새벽에 비질하는 무수리
“이 한 비질, 마마의 첫 산책 한 박을 정중히 반 박 가볍게 만들어 둡니다.”
후원 새벽 비질 무수리는 가공의 한 시대 후원(後苑) 가장 새벽에서, 중전·옹주의 산책로 위 낙엽과 이슬을 정중히 쓸어 올리는 평민 무수리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풀빛 무수리 정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길쭉한 대빗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후원 모든 길의 평소 낙엽 결·옛 분기 차회 동선·금기 자갈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전에서는 후원 화초 나인의 한 송이가 빛나지만, 정작 마마의 첫 산책 한 발자국은 그녀의 새벽 비질 한 박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비질 한 결이 너무 깊으면 마마의 옷고름이 흔들리고, 너무 얕으면 이슬이 옷자락을 적신다는 사실을 그녀만이 안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후원 한 분기의 가장 정중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후원 비질 어르신들의 새벽 한 박은 화초 한 송이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비질 한 결의 깊이가 마마의 옷자락 한 결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후원 새벽 비질 무수리 점이 — 가공의 한 왕조 후원 향원지(香園池) 산책로 새벽 비질 무수리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첫 산책 한 발자국을 사십 년 정중히 받쳐 올린 단 한 사람 — 의 일화는 후원 사관록에 '비질 반 결의 새벽'으로 남았다.
어느 늦가을 새벽 산책로 한 자락에 평소보다 두 푼 깊은 자갈 한 결이 드러나 있어 마마의 옷고름이 한 박 흔들릴 사실을 점이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대빗자루 한 자루로 그 자갈 한 결을 평소보다 반 결 얕게 정중히 쓸어 두고, 그 위에 가벼운 낙엽 한 줌을 정중히 한 박 더 얹어 두었다. 마마의 첫 산책 한 발자국은 그 한 결 위에서 정중히 가볍게 굴러갔고, 옹주를 안내한 그 산책 자리에서 차회 한 줄이 정중히 다음 분기로 이어졌다. 점이는 그 일에 대해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대빗자루 한 자루를 사십 년 같은 자리에 두었다.
후대 후원 비질 무수리들은 입직 첫 새벽에 향원지 한 모퉁이에 한 박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후원 사관록에는 '비질 반 결이 큰 화초 한 송이보다 길게 남는다'는 격언이 점이의 이름 옆에 적혀 있다.
왕대비전마마(王大妃殿媽媽)
왕대비
선왕의 정실, 왕실의 큰 어른
“가례는 중전이 치르지만, 그 가례를 허(許)하는 한 줄은 이 자리에서 나온다. 차 한 잔 식힐 동안 생각해 보거라.”
왕대비는 가공의 한 시대 선왕의 왕비로, 현 임금의 어머니 또는 선대의 중전이 올라가는 자리다. 대비전(大妃殿)에 거처하며, 임금이 결재를 미룰 때 가장 먼저 자문을 구하는 곳이 이 처소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보랏빛 대비 정복, 머리에 대봉 떨잠(왕비보다 큰 비녀 장식), 가슴팍에 대비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선왕 재위의 결재 이력과 현 임금의 성정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중전(1160001)이 현 시대의 중궁전을 이끈다면, 왕대비는 그 시대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야 하는지를 가장 조용히 아는 자다. 가례 윤허·임금 교체·외척 결재를 세 번씩 겪어 온 이 자리는, 궁 안에서 가장 많은 차를 마신 자리이기도 하다.
어전 결재를 한 번도 직접 내리지 않아도 한 분기가 대비전의 한 잔 차 향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신하들은 모두 안다.
“대비마마들이 즉위 첫 차회에 가장 오래된 차 한 잔을 내려 두시는 까닭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한 잔이 가장 새로운 결재를 받쳐 드린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왕대비 연순대비 — 사직 야사에 '대비전 한 잔의 명수'로 남은 여인이자 선왕 붕어(崩御, 임금이 돌아가심) 후 어린 임금이 즉위하던 해 대비전 차회 한 잔으로 외척의 결재 두 건을 정중히 돌려세운 인물 — 의 일화는 대비전 사관록에 '돌아간 차회'로 남았다.
어린 임금이 즉위 첫 해, 외척 두 문중이 같은 날 대비전 차회 자리를 청해 왔다. 연순대비는 두 문중을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히고, 차를 두 잔이 아닌 한 잔만 내려 두었다.
한 잔을 먼저 마신 쪽이 결재를 양보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두 문중은 그 사실을 알고 한 시진 동안 잔을 비우지 않았다. 연순대비는 그 침묵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결국 두 문중이 서로 결재를 양보하는 합의서 한 줄을 스스로 써서 냈다.
후대 왕대비들은 즉위 첫 차회에 가장 오래된 차 한 잔을 내려 두는 관례를 따른다.
공주아씨(公主娥氏)
공주
왕실의 어여쁜 공주
“저는 가마를 탔지만, 가마 안에서 결재문 한 줄을 바꿨습니다. 혼인은 제 일이지만 그 한 줄은 사직의 일입니다.”
공주는 가공의 한 시대 임금의 딸로 왕비 소생의 적녀(嫡女)이며, 왕실 혼인을 통해 사직 외교를 잇는 가장 고귀한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당의와 원삼, 머리에 화관(花冠, 꽃 모양으로 장식한 큰 머리 장식), 가슴팍에 공주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결혼동맹 이력과 외척 가문의 대수(代數)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옹주(1160002)가 외교 가마 안에서 동맹문을 다듬는다면, 공주는 그 동맹이 세워질 기반 자체를 혼인 한 줄로 만든다. 사직에서 가장 무거운 가마 한 자루가 공주의 것이다.
공주는 자기 혼인 날짜를 예조 결재보다 먼저 알지만, 그 날짜에 이의를 올린 공주는 역사에 세 명뿐이라는 야사가 있다. 그리고 그 세 명 모두 이의가 받아들여졌다.
“공주 어른들의 가마 한 자루가 결재문 한 장보다 무거운 이유가 있습니다. 가마 안에서 손잡이를 쥔 한 손이 사직의 한 줄을 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청휘공주 — 사직 야사에 '가마 안 결재의 명수'로 남은 공주이자 혼인 가마 안에서 결혼동맹문 한 줄을 직접 고쳐 사신 앞에 내민 단 한 명의 공주 — 의 일화는 공주궁 사관록에 '가마 안 한 줄'로 남았다.
변방 사직과 결혼동맹을 맺는 가마 행렬 중, 상대 사신이 동맹문 한 줄 단어에 이의를 올려 행렬이 멈췄다. 청휘공주는 가마 안에서 동맹문을 펴고, 자기 손목 위에 단어 두 자를 고쳐 적어 사신에게 건넸다.
그 두 자는 상대 선왕의 시호(諡號, 돌아간 임금에게 올리는 이름)를 정중히 품은 단어였고, 사신은 가마 문 앞에 절을 올리며 동맹을 수락했다. 옹주 이서윤(당시 '가마 안 한 호흡'의 명수, 1160002 일화 인물)은 그 일화를 듣고 공주궁에 한 줄 서찰을 보냈다.
후대 공주들은 혼인 가마에 오르기 전 동맹문 한 줄을 직접 읽는 관례를 따른다.
상선도상궁(尙膳都尙宮)
내명부 상선 상궁
내전 어선을 살피는 으뜸 상궁
“마마의 차회 자리 순서, 제가 정중히 손목 위에 먼저 정리해 올렸습니다. 한 자리 틀리면 한 분기가 달라집니다.”
내명부 상선 상궁(尙膳 尙宮)은 가공의 한 시대 내명부(內命婦, 궁 안 여인들의 위계 조직) 안에서 중전 식사와 내전 다과상을 전담하는 최고위 상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상선 상궁 정복, 어깨에 상선 문양 비단 띠, 가슴팍에 상선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수라 일지가 표준이다. 중전과 대비마마의 끼니별 기호·금기 식재료·차회 자리 배치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어선 다과상궁(1160012)이 차회 다과를 올린다면, 내명부 상선 상궁은 그 다과가 놓일 자리 전체의 흐름을 결재한다. 식사 자리 하나의 배치가 내명부 한 분기 위계를 정한다는 것이 이 자리의 상식이다.
상선 상궁이 수라 일지를 열기 전에 먼저 하는 일은, 오늘 중전의 안색을 한 번 보는 것이다. 안색이 평소보다 한 결 차가우면 수라 온도를 한 박자 높이고, 따뜻하면 한 박자 낮춘다.
“내명부 상선 어른들이 수라 전 중전 안색을 한 번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안색 한 결이 수라 한 박자의 온도를 정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내명부 상선 상궁 복분이 — 야사에 '안색 한 결의 명수'로 남은 상궁이자 중전 윤소희(당시 '식은 차회의 새벽' 일화 인물, 1160001 일화)의 수라 온도를 사십 년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는 자 — 의 일화는 내명부 사관록에 '안색 한 결의 새벽'으로 남았다.
사대 중전 윤소희가 외척 결재문으로 가장 무거운 하루를 보내던 그 새벽, 복분이는 수라 온도를 평소보다 한 박자 더 높여 올렸다. 중전은 그 한 박자 더 따뜻한 수라를 반 그릇 더 비웠고, 외척 차회 자리에 한 결 더 단정하게 앉았다.
지밀상궁 박씨(당시 '두 푼 어긋난 손목 위 한 줄' 일화 인물, 1160003 일화)는 그날 이후 복분이에게 차회 자리 배치를 먼저 물어보는 관례를 만들었다.
후대 상선 상궁들은 수라 전 중전 안색을 한 번 보는 관례를 따른다.
가례색여서리(嘉禮色女胥吏)
예조 가례색 여서리
가례색의 여서리
“이번 가례(嘉禮) 절차서 한 줄, 정중히 마지막 장까지 제가 직접 한 번 더 살폈습니다. 신부의 첫 발자국은 제가 정한 한 줄 위에서 굴러갑니다.”
예조 가례색(嘉禮色) 여서리(女書吏)는 가공의 한 시대 예조 가례 부서에서 여성 의례 절차를 전담하는 여성 관원으로, 왕실 혼례의 신부 측 준비를 총괄한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여서리 정복, 가슴팍에 가례색 배지, 한 손에 가례 절차서와 붓이 표준이다. 역대 가례에서 신부 측 오류로 수정된 절차를 모두 외우고 있다.
예조 가례 업무는 남성 판서가 결재를 내리지만, 신부의 몸 치수·동선·눈물 한 박자까지 챙기는 것은 여서리의 몫이다. 가례 당일 가장 조용히, 가장 먼저 현장에 있는 사람이 여서리다.
가례 절차서 마지막 장 마지막 줄 아래에 여서리가 직접 한 줄을 더 적는다. 그 줄에는 신부의 이름 한 자가 들어간다. 절차서에 이름이 들어가는 유일한 자리다.
“예조 가례색 여서리 어른들이 절차서 마지막 줄 아래에 신부 이름을 한 자 적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례는 의례이지만 그 안에 사람 한 명의 이름이 있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예조 가례색 여서리 오분이 — 야사에 '이름 한 자의 명수'로 남은 여서리이자 공주 청휘공주(당시 '가마 안 한 줄' 일화 인물, 1160032 일화)의 가례 절차서 마지막 줄에 공주 이름 한 자를 처음 적은 자 — 의 일화는 예조 가례색 사관록에 '이름 한 자의 새벽'으로 남았다.
청휘공주 가례 전날 밤, 오분이는 가례 절차서를 마지막 장부터 거꾸로 읽어 내려가다 절차서 어디에도 신부 이름이 한 자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지막 줄 아래 여백에 '청휘'라는 두 자를 정중히 적어 넣었다.
가례 당일 청휘공주는 가마에 오르기 전 그 절차서를 열어 자기 이름 두 자를 한 박 보았다. 공주는 그 두 자 위에 손을 얹고 한 호흡을 가다듬은 뒤 가마에 올랐다.
후대 여서리들은 가례 절차서 마지막 줄 아래에 신부 이름을 한 자 이상 적는 관례를 따른다.
시의상궁녀(侍醫尙宮女)
중궁전 시의 상궁
중궁전을 시의로 보살피는 상궁
“마마의 맥(脈) 한 결, 오늘은 어제보다 한 박자 깊습니다. 차회 자리를 한 자리 조용히 줄여 두겠습니다.”
중궁전 시의 상궁(侍醫 尙宮)은 가공의 한 시대 중전의 건강을 전담하는 의료 상궁으로, 도총관 의녀(1160009)와 협력하여 중전의 맥을 매일 살피고 처방을 조율한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청색 의복, 가슴팍에 시의 상궁 배지, 한 손에 맥 기록 일지와 침통이 표준이다. 중전의 계절별 맥 변화와 금기 약재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총관 의녀가 외부 처방을 담당한다면, 시의 상궁은 중전의 매일 아침 맥 한 결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가장 먼저 아는 자다. 차회 자리와 결재 자리의 수를 결정하는 데 시의 상궁의 한 마디가 은밀히 들어가는 날이 있다.
맥을 짚으면서 상궁은 중전의 손을 한 박 쥔다. 그 한 박 동안 상궁은 중전의 어젯밤 수면 깊이를 짐작하고, 오늘 차회 온도를 이미 정해 두기 시작한다.
“중궁전 시의 상궁 어른들이 맥을 짚은 뒤 한 박 손을 더 쥐는 관례가 있습니다. 맥 한 결 위에 한 박 더 있어야 오늘의 처방이 보인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중궁전 시의 상궁 채금이 — 야사에 '맥 한 결의 명수'로 남은 상궁이자 중전 윤소희가 외척 결재문을 받던 그 겨울 내내 차회 자리 수를 조용히 한 자리씩 줄여 드린 자 — 의 일화는 시의방 사관록에 '줄어든 차회 자리'로 남았다.
중전 윤소희가 외척과 가장 많은 결재를 받던 그해 겨울, 채금이는 매일 아침 맥을 짚으며 중전의 피로를 한 박자씩 먼저 읽어 냈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어선 다과상궁(1160012)에게 매일 작은 쪽지 한 장을 건넸는데, 거기에는 오늘 차회 자리 수가 적혀 있었다.
내명부 제조상궁(1160008)은 차회 자리가 조용히 줄어드는 것을 석 달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윤소희는 그해 겨울을 넘긴 뒤 채금이에게 직접 손을 한 박 잡아 감사를 전했다.
후대 시의 상궁들은 맥을 짚은 뒤 한 박 손을 더 쥐는 관례를 따른다.
빈궁서연녀(嬪宮書筵女)
빈궁 세자빈 서연 여관
세자빈의 서연을 돕는 여관
“저하, 오늘 서연(書筵, 세자빈이 스승에게 경전을 배우는 자리)은 경전보다 찻잔 앞의 한 줄 먼저입니다.”
빈궁 세자빈 서연 여관(書筵 女官)은 가공의 한 시대 세자빈의 학문과 내치(內治, 내전을 다스리는 일) 교육을 담당하는 여성 스승이다. 세자사부(男性 1150032)와 짝을 이루어, 동궁 안 여인들의 교육 체계 전체를 이끈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여관 정복, 가슴팍에 서연 여관 배지, 한 손에 경서(經書)와 참대 붓이 표준이다. 세자빈의 한 호흡 습관과 가장 어려워하는 내치 덕목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세자빈이 배우는 것은 경전 암송이 아니라 내전을 다스리는 한 호흡이다. 여관의 서연 자리에서 세자빈이 배우는 가장 중요한 한 줄은 늘 교재 밖에 있다.
서연이 끝나고 여관은 세자빈의 손목을 한 번 본다. 붓을 쥔 손목의 긴장이 풀렸는지가 그날 수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빈궁 서연 여관 어른들이 서연 마지막에 세자빈 손목을 한 번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손목이 풀린 날의 한 줄이 그날 가장 깊이 배운 줄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빈궁 서연 여관 순이 — 야사에 '손목 한 결의 명수'로 남은 여관이자 사대 세자빈이 처음 내전 다과상을 혼자 결재하던 날 그 손목의 긴장을 미리 읽어 한 줄을 바꿔 준 자 — 의 일화는 서연방 사관록에 '손목 한 결의 서연'으로 남았다.
세자빈이 처음으로 내전 다과상 결재를 혼자 내리던 그날 아침, 순이는 서연 시작 전 세자빈의 손목을 한 번 보았다. 손목 긴장이 평소보다 두 결 깊었고, 순이는 경전 대신 찻잔을 먼저 내려두었다.
차가 식는 동안 순이는 내전 다과상 결재 한 줄을 소리 내어 읽지 않고 세자빈 손목 위에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짚어 주었다. 세자빈은 그날 결재를 한 박자의 망설임 없이 내렸고, 내명부 상선 상궁 복분이(1160033 일화 인물)는 나중에 그 결재가 중전 윤소희의 첫 결재와 같은 온도였다고 기록했다.
후대 서연 여관들은 서연 시작 전 세자빈 손목을 한 번 보는 관례를 따른다.
사령상궁녀(司令尙宮女)
내명부 사령 상궁
내명부 명령을 전하는 사령 상궁
“마마의 이번 하명(下命,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명령) 한 줄, 정중히 받아 두었습니다. 어느 나인에게 먼저 닿아야 하는지 제가 정합니다.”
내명부 사령 상궁(司令 尙宮)은 가공의 한 시대 내명부 안에서 중전의 하명을 정확히 각 처소에 전달하고 실행을 확인하는 내명부 전령 역할의 최고위 상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상궁 정복, 어깨에 사령 문양 비단 띠, 가슴팍에 사령 인장 펜던트, 한 손에 하명 전달 명부가 표준이다. 내명부 각 처소의 업무 시각과 담당 상궁 이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내명부 제조상궁(1160008)이 내명부 전체를 총감독한다면, 사령 상궁은 중전의 말 한 줄이 어느 처소에 몇 박자 안에 닿아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자다.
하명이 내려지면 사령 상궁은 하명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각 처소 담당 상궁의 지금 상황을 한 박자 먼저 짐작하고, 그에 맞는 온도로 전달한다.
“내명부 사령 상궁 어른들이 하명을 받은 뒤 한 박 쉬었다가 전달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그 한 박 동안 하명의 온도를 정하는 것이 사령 상궁의 첫 번째 기술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내명부 사령 상궁 수분이 — 야사에 '하명 온도의 명수'로 남은 상궁이자 중전 윤소희의 하명 한 줄을 사십 년 한 번도 차갑게 전달한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내명부 사관록에 '따뜻한 하명 한 줄'로 남았다.
어느 가을, 중전 윤소희가 외척 결재 때문에 가장 차가운 목소리로 내전 다과 결재 한 줄을 내렸을 때, 수분이는 어선 다과상궁(1160012)에게 하명을 전달하면서 마마의 목소리 온도 대신 마마의 어젯밤 수라 온도를 먼저 전달했다.
어선 다과상궁은 차 온도를 한 박자 높이고 다과 종류를 한 가지 더 추가했다. 그 날 차회는 한 결 더 따뜻하게 굴러갔고, 중전의 외척 결재는 그 차회 이후 한 줄 더 부드럽게 완성되었다.
후대 사령 상궁들은 하명을 받은 뒤 한 박 쉬었다가 전달하는 관례를 따른다.
보양청상궁(保養廳尙宮)
동궁 보양청 상궁
동궁 보양을 담당하는 상궁
“원자아기씨, 오늘 낮잠 자리는 어제보다 한 결 더 조용한 동쪽 처소입니다. 내일 세자 책봉 날 가장 맑은 눈으로 일어나셔야 합니다.”
동궁 보양청(輔養廳) 상궁은 가공의 한 시대 왕세자로 책봉되기 전 어린 원자(元子, 임금의 맏아들)의 양육 전반을 담당하는 최고위 상궁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청색 정복, 어깨에 보양청 비단 띠, 가슴팍에 보양청 상궁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원자 일지가 표준이다. 원자의 수면 시간·기호 음식·손 잡기를 좋아하는 방향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원자방 보모상궁(1160015)이 어린 원자의 일상을 돌본다면, 보양청 상궁은 그 일상이 훗날 세자의 한 호흡으로 이어지도록 전체 방향을 잡는 자다.
세자 책봉 전날 밤, 보양청 상궁은 원자의 잠든 얼굴을 한 번 본다. 내일 세자가 될 아이가 오늘 밤 얼마나 편안하게 자는지가 책봉 첫 한 호흡의 무게를 정한다.
“동궁 보양청 상궁 어른들이 책봉 전날 밤 원자의 잠든 얼굴을 한 번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편안한 밤 한 결이 책봉 날 아침의 첫 한 호흡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동궁 보양청 상궁 선이 — 야사에 '편안한 밤 한 결의 명수'로 남은 상궁이자 사대 임금이 세자로 책봉되기 전날 밤 원자의 잠자리를 세 번 바꿔 가장 조용한 자리를 찾아 드린 자 — 의 일화는 보양청 사관록에 '잠자리 세 번의 전날 밤'으로 남았다.
사대 원자 책봉 전날 밤, 선이는 원자의 첫 잠자리에서 멀리 달빛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잠자리를 두 번 더 옮겼고, 세 번째 자리에서 원자가 한 박자도 뒤척임 없이 잠들었다.
책봉 당일 아침, 세자사부 유경문(남성 세계관 '차 한 잔 경연의 명수', 1150032 일화 인물)은 원자의 눈이 그날 가장 맑다고 기록했다. 선이는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원자 일지에 '잠자리 세 번째 자리'라는 한 줄만 남겼다.
후대 보양청 상궁들은 책봉 전날 밤 잠자리를 직접 한 번 더 확인하는 관례를 따른다.
내수여사무(內需女事務)
내수사 여사무
내수사 안살림을 맡는 여사무
“이번 내수사(內需司) 장부 한 줄, 정중히 마지막 푼까지 직접 대조했습니다. 한 푼이 내전 한 분기를 정합니다.”
내수사(內需司) 여사무(女事務)는 가공의 한 시대 궁 내전(內殿) 살림을 관리하는 내수사에서 실물 장부와 물자 출납을 전담하는 여성 실무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실무 정복, 가슴팍에 내수사 배지, 한 손에 장부 묶음과 주산(珠算, 주판)이 표준이다. 내전 연간 물자 출납 명세와 계절별 절감 내역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호조 정산관(성별없음 세계관 1170004)이 사직 전체 재정을 다룬다면, 내수사 여사무는 그 재정이 내전 살림 한 푼으로 어떻게 흘러드는지를 다룬다.
장부를 닫기 전 여사무는 반드시 한 줄을 더 읽는다. 마지막 줄 아래 빈 자리가 없는 장부는 아직 닫을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이 내수사의 원칙이다.
“내수사 여사무 어른들이 장부를 닫기 전 마지막 줄 아래 빈 자리를 한 번 더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빈 자리가 있어야 다음 분기가 들어올 자리가 있다는 살림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내수사 여사무 단이 — 야사에 '빈 자리 한 칸의 명수'로 남은 실무관이자 흉년 분기 내전 물자 절감을 혼자 다섯 가지 항목에서 조용히 실천해 임금의 환곡 결재를 한 달 앞당긴 자 — 의 일화는 내수사 사관록에 '다섯 가지 절감의 한 달'로 남았다.
흉년이 든 해, 단이는 내전 물자 다섯 가지(등잔 기름·다식 재료·비단 추가분·향실 향 가짓수·수라간 잡재료)를 한 가지씩 조용히 절감했다.
그 다섯 가지 절감으로 모인 한 달치 물자 잉여분이 호조 정산 한 줄에 반영되었고, 임금의 흉년 환곡 결재가 한 달 앞당겨질 수 있었다. 단이는 그 일을 내수사 장부 한 줄에만 남겼으며, 어선 다과상궁(1160012)이 그 줄을 나중에 발견하고 상선 상궁 복분이(1160033)에게 알렸다.
후대 여사무들은 장부 절감 항목을 한 달에 한 번 직접 다시 세는 관례를 따른다.
상의침선비(尙衣針線婢)
상의원 침선비
상의원에서 옷을 짓는 침선비
“이 당의(唐衣) 한 벌, 정중히 안감 한 자락까지 살폈습니다. 마마의 안감이 바른 날 차회도 바릅니다.”
상의원(尙衣院) 침선비(針線婢)는 가공의 한 시대 상의원에서 왕실 여인들의 당의·원삼·치마 등 내명부 의복을 전담하는 침선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분홍 작업복, 어깨에 작은 비단 가방, 가슴팍에 상의원 배지, 한 손에 자(尺)와 은바늘 묶음이 표준이다. 중전과 주요 상궁의 어깨너비·허리 치수를 계절별로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자수 궁녀(1160004)가 가례복 안감에 한 땀을 새긴다면, 상의원 침선비는 그 안감이 달릴 겉감 전체를 짓는다. 안감과 겉감의 바느질 방향이 한 결 어긋나도 의복이 몸에 닿는 한 호흡이 달라진다.
침선 완성 후 침선비는 안감을 빛에 비추어 본다. 바느질 결이 균일하게 반짝이면 완성이고, 한 자리라도 빛이 다르게 꺾이면 그날 밤 다시 뜯는다.
“상의원 침선비 어른들이 완성 후 안감을 빛에 비추는 관례가 있습니다. 빛 아래 한 자리도 다르게 꺾이지 않는 바느질이 한 결 같은 바느질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상의원 침선비 영이 — 야사에 '빛 아래 안감의 명수'로 남은 장인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외척 차회 당일 당의 안감을 전날 밤 혼자 다시 뜯어 고친 자 — 의 일화는 상의원 사관록에 '전날 밤 안감'으로 남았다.
중전 윤소희의 외척 차회 당일 입을 당의가 완성되던 저녁, 영이는 안감을 빛에 비추다 왼쪽 소매 안 한 자리의 바느질이 한 결 어긋남을 발견했다. 결재를 받은 완성본이었지만 영이는 그날 밤 그 한 자리를 혼자 다시 뜯어 고쳤다.
다음 날 차회에서 중전이 외척의 결재문을 손으로 넘길 때 왼쪽 소매가 한 결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지밀상궁 박씨(1160003 일화 인물)가 사관록에 적었다.
후대 침선비들은 완성 후 안감을 빛에 비추는 관례를 따른다.
내전서사녀(內殿書寫女)
내전 서사 상궁
내전 문서를 정서하는 상궁
“마마의 서신(書信) 한 통, 정중히 마지막 한 자까지 정서(正書)했습니다. 서신 한 자가 차회 한 시즌을 정합니다.”
내전 서사(書寫) 상궁은 가공의 한 시대 중전과 대비마마의 서신을 대신 필사하고 정서하는 상궁으로, 내명부 안 문서 소통 전체를 조용히 뒷받침한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상궁 정복, 가슴팍에 서사 상궁 배지, 한 손에 붓과 서신 명부가 표준이다. 중전과 대비의 서체(書體) 특징과 자주 쓰는 단어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의정부 사인(남성 1150033, 결재문 여백 정서 담당)이 바깥 결재문을 정서한다면, 내전 서사 상궁은 중전의 마음이 담긴 서신을 정서한다. 두 자리 모두 본문보다 여백에 더 무거운 한 줄이 있다.
서신이 완성되면 서사 상궁은 반드시 마지막 줄부터 거꾸로 한 번 더 읽는다. 마지막에 쓴 글자가 첫 글자와 같은 무게를 가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내전 서사 상궁 어른들이 서신 완성 후 마지막 줄부터 거꾸로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마지막 글자가 첫 글자와 같은 온도여야 한 통의 서신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내전 서사 상궁 청이 — 야사에 '마지막 글자 온도의 명수'로 남은 상궁이자 대비마마 연순대비(당시 '돌아간 차회' 일화 인물, 1160031 일화)의 서신 한 통이 외척 결재 한 줄을 돌려세웠던 그 서신을 정서한 자 — 의 일화는 서사방 사관록에 '돌아간 서신 한 통'으로 남았다.
연순대비가 외척 결재를 정중히 거두어 달라는 뜻을 담아 한 통의 서신을 직접 쓰신 날, 청이는 그 서신을 정서하면서 마지막 글자 '폐(廢, 없애다)'가 너무 차갑다는 것을 느꼈다.
청이는 대비마마께 정중히 여쭈었고, 대비마마는 한 박 침묵하다 '폐' 자를 '거(去, 물러가다)'로 바꾸셨다. 그 한 자 차이로 서신의 온도가 명령에서 권유로 바뀌었고, 외척은 그 서신을 받은 다음 날 스스로 결재를 거두었다.
후대 서사 상궁들은 서신 정서 중 마지막 글자를 한 번 더 소리 내어 읽는 관례를 따른다.
후원다모낭(後苑茶母娘)
후원 다원 다모
후원 다원에서 차를 우리는 다모
“오늘 이 한 잔, 어제 비보다 한 결 더 깊이 우려냈습니다. 마마의 차회는 날씨 한 결에 따라 온도가 달라집니다.”
후원(後苑) 다원(茶院) 다모(茶母)는 가공의 한 시대 궁 후원 다원에서 중전·대비마마·옹주의 야외 차회를 위한 차를 직접 우려 올리는 중견 차 전문 비자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녹색 정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차 가방, 한 손에 작은 차 화로(火爐)가 표준이다. 계절별 차 우리는 시간과 후원 날씨 변화에 따른 온도 조절법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궐 무수리(1160005)가 차를 올린다면, 후원 다원 다모는 그 차를 후원 바깥 바람 한 결에 맞추어 우린다. 같은 찻잎도 오늘 바람 방향에 따라 다른 맛이 나온다는 것이 다원의 첫 번째 원칙이다.
차를 우릴 때 다모는 잔을 기울여 본다. 차 색이 잔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고르게 번지면 온도가 맞은 것이다. 한 자리라도 얼룩지면 한 박자 더 기다린다.
“후원 다원 다모 어른들이 차를 우린 후 잔을 기울여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장자리가 고르게 번지는 한 잔이 가장 정직한 한 잔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후원 다원 다모 솔이 — 야사에 '가장자리 한 결의 명수'로 남은 다모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와 왕대비 연순대비(1160031 일화 인물)가 함께한 후원 차회에서 두 분의 차를 각각 다른 온도로 우려 올린 자 — 의 일화는 다원 사관록에 '두 잔 두 온도'로 남았다.
중전과 왕대비가 함께하는 후원 차회 날, 솔이는 두 분의 차를 같은 찻잎으로 각각 다른 온도에서 우렸다. 중전의 잔은 한 박자 더 길게 우려 깊고, 왕대비의 잔은 한 박자 짧게 우려 맑게 올렸다.
두 분은 차를 드시며 잔을 한 번씩 기울였고, 두 잔 모두 가장자리 한 결이 고르게 번졌다. 왕대비는 솔이에게 그날 차회 후 차 화로 한 자루를 내려 주셨다.
후대 다원 다모들은 차를 우린 후 반드시 잔을 기울여 가장자리를 확인하는 관례를 따른다.
가무교련녀(歌舞敎鍊女)
교방 가무 교련 나인
교방 가무를 가르치는 나인
“이 한 박자, 공연 당일보다 연습 마지막 날이 더 무겁습니다. 마지막 연습의 한 박자가 공연의 첫 박자를 정합니다.”
교방(敎坊) 가무 교련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궁 교방에서 가무(歌舞) 공연을 앞두고 연회 나인들의 마지막 합동 연습을 총괄하는 중견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교방 정복, 가슴팍에 교방 배지, 한 손에 가무 진행표와 박자판이 표준이다. 교방 나인 전원의 주요 동작과 박자 취약 지점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교방 행수기녀(1160010, 교방 수석 기녀)가 공연 당일 무대를 이끈다면, 교련 나인은 그 무대에 오르기 전 마지막 연습을 이끈다. 마지막 연습의 한 박자가 공연의 온도를 정한다.
연습이 끝나고 교련 나인은 가장 박자가 흔들린 나인 한 명의 이름을 마음에 새긴다. 그 나인이 내일 공연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다.
“교방 교련 나인 어른들이 연습 후 가장 박자가 흔들린 나인을 따로 기록해 두는 관례가 있습니다. 흔들린 한 박자가 다음 날 가장 단단한 한 박자가 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교방 가무 교련 나인 청운이 — 야사에 '흔들린 박자의 명수'로 남은 나인이자 연습 마지막 날 박자가 가장 많이 흔들린 나인을 공연 날 첫 자리에 세워 장악원(掌樂院, 궁중 가락 기관, 남성 세계관 1150028 장악원 악사 자리) 악사들이 가장 먼저 박자를 맞추게 한 자 — 의 일화는 교방 사관록에 '흔들린 박자 첫 자리'로 남았다.
연회 전날 마지막 연습에서 가장 박자가 흔들린 나인 한 명을 청운이는 공연 날 첫 열 첫 자리에 세웠다. 교방 행수기녀(1160010)는 처음엔 이의를 올렸으나 청운이는 그대로 진행했다.
공연 당일 그 나인의 첫 박자에 맞추어 장악원 악사들이 가락을 시작했고, 연회 자리 전체 가락이 그 첫 박자 위에서 한 결같이 굴러갔다. 행수기녀는 공연 후 청운이에게 먼저 차 한 잔을 청해 건넸다.
후대 교련 나인들은 연습 후 가장 흔들린 박자를 따로 기록하는 관례를 따른다.
발기기록녀(撥記記錄女)
중궁전 발기 기록 나인
중궁전 발기를 기록하는 나인
“이번 달 발기(發記, 물자 출납 기록) 한 줄, 정중히 마지막 칸까지 대조했습니다. 한 칸 빠진 발기가 한 분기 살림을 비틀어 놓습니다.”
중궁전 발기(發記) 기록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중궁전 살림의 물자 출납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중견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나인 정복, 가슴팍에 발기 기록 배지, 한 손에 발기 장부와 붓이 표준이다. 중궁전 월별 물자 출납 항목과 계절별 증감 패턴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내수사 여사무(1160039)가 내전 전체 살림을 다룬다면, 발기 기록 나인은 중궁전 한 처소의 한 칸 한 칸을 적는다. 한 칸이 적히지 않으면 한 분기 살림 한 줄이 흔들린다는 것이 이 자리의 상식이다.
발기를 닫기 전 나인은 반드시 장부를 거꾸로 한 번 더 훑는다. 마지막 칸에서 첫 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빠진 자리를 찾는 것이 발기 기록 나인의 마지막 의무다.
“중궁전 발기 나인 어른들이 발기를 닫기 전 거꾸로 한 번 더 훑는 관례가 있습니다. 첫 칸부터 읽으면 눈이 앞으로만 가지만, 거꾸로 읽으면 빠진 자리가 보인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중궁전 발기 기록 나인 별이 — 야사에 '거꾸로 훑은 발기의 명수'로 남은 나인이자 흉년 분기 발기 한 장에서 빠진 칸 하나를 발견해 내수사 여사무 단이(당시 1160039 일화 인물)의 절감 기록을 완성시킨 자 — 의 일화는 발기방 사관록에 '거꾸로 읽은 한 칸'으로 남았다.
흉년 분기 발기를 닫기 전, 별이는 관례대로 거꾸로 훑다가 등잔 기름 절감 항목 한 칸이 빠진 것을 발견했다. 그 한 칸은 내수사 여사무 단이가 조용히 줄인 다섯 가지 절감 중 하나였다.
별이는 그 한 칸을 채워 발기를 완성했고, 완성된 발기는 호조 정산 명부와 대조되어 단이의 절감 한 달치가 공식 기록으로 정착했다. 단이는 나중에 별이에게 조용히 쪽지 한 장을 보냈다.
후대 발기 나인들은 발기를 닫기 전 반드시 거꾸로 한 번 더 훑는 관례를 따른다.
안채침모녀(內房針母女)
사가 안채 바느질방 침모
사가 안채에서 바느질하는 침모
“이 한 땀, 마님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가장 단단하게 꿰맵니다.”
사가(私家) 안채 바느질방 침모(針母)는 가공의 한 시대 양반 사가의 안채에서 가족 의복 전담 바느질을 맡는 실무 여성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작업복, 머리에 작은 비녀, 한 손에 바느질 틀과 실 묶음이 표준이다. 안채 가족 전원의 치수와 자주 헤어지는 옷감 부위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상의원 침선비(1160040)가 궁 안 의복을 짓는다면, 사가 침모는 바깥세상에서 한 가문의 의복을 평생 짓는다. 가문의 흥망이 달린 혼인날 신부 치마 한 자락이 결국 침모의 손에서 나온다.
바느질이 끝나면 침모는 그 옷을 뒤집어 안쪽을 먼저 본다. 안쪽 바느질이 바른 옷만이 바깥쪽도 바르다는 것이 침모의 평생 원칙이다.
“사가 안채 침모 어른들이 완성 후 옷을 뒤집어 안쪽을 먼저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마님이 보지 않는 자리가 가장 단단해야 한 땀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사가 안채 침모 꽃분이 — 야사에 '안쪽 한 땀의 명수'로 남은 침모이자 한 양반 가문 혼인날 신부 치마 안쪽 한 땀이 행렬 내내 한 결도 풀리지 않아 그 가문에서 삼대에 걸쳐 다시 불려 온 자 — 의 일화는 사가 사관록에 '안쪽 한 땀의 혼인날'로 남았다.
어느 가을 혼인날, 꽃분이가 지은 신부 치마 안쪽 허리선 한 땀이 행렬 내내 한 결도 풀리지 않았다. 당시 치마 안쪽은 행렬 중 잠깐 보일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 한 땀이 가장 단단하고 고운 것을 사가 어른이 직접 보셨다.
그 어른은 꽃분이를 삼 년 더 사가에 청했고, 꽃분이는 그 삼 년 동안 사가 안채 치마 안쪽 한 땀을 한 결 더 단단하게 꿰맸다. 꽃분이의 이름은 그 가문의 침선 기록 첫 줄에 남아 있다.
후대 사가 침모들은 완성 후 옷을 뒤집어 안쪽을 먼저 보는 관례를 따른다.
약방의녀낭(藥房醫女娘)
별궁 약방 침방 의녀
별궁 약방·침방의 의녀
“이 약첩(藥貼, 처방된 약) 한 첩, 정중히 한 박자 더 식혀 드립니다. 신부의 한 분기는 이 한 모금 위에서 시작됩니다.”
별궁 약방(藥房) 침방(鍼房) 의녀(醫女)는 가공의 한 시대 가례 직전 별궁에 머무는 신부의 건강을 담당하는 여성 의료인으로, 약첩 처방과 침술 두 가지를 모두 다룬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청색 의녀 정복, 가슴팍에 별궁 약방 배지, 한 손에 약첩 명부와 침통이 표준이다. 신부의 가례 직전 맥 변화와 금기 약재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총관 의녀(1160009)가 일반 의녀 업무를 총괄한다면, 별궁 약방 의녀는 그 가운데 가장 특별한 한 명의 건강만을 전담한다. 가례 당일 신부의 손이 따뜻한지가 이 자리가 성공했는지를 알려준다.
약첩을 드릴 때 의녀는 신부의 눈을 먼저 본다. 눈이 맑으면 약첩 온도를 평소보다 한 박자 낮추어도 되고, 눈이 흐리면 한 박자 더 높인다.
“별궁 약방 의녀 어른들이 약첩 드리기 전 신부 눈을 한 번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눈 한 결이 약첩 온도를 정하는 한 박자를 결정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별궁 약방 의녀 단이 — 야사에 '눈 한 결 온도의 명수'로 남은 의녀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가 가례 직전 별궁에 머물 때 가례 한 달 동안 매일 눈을 먼저 보고 약첩 온도를 조율한 자 — 의 일화는 별궁 사관록에 '눈 한 결의 한 달'로 남았다.
윤소희의 가례 한 달 동안, 단이는 매일 아침 신부의 눈을 한 번 본 뒤 약첩을 드렸다. 가례 전날 새벽, 눈이 평소보다 한 결 밝았다. 단이는 그날 약첩 온도를 한 박자 낮추고, 별궁 야간 등촉 나인 향이(당시 1160027 일화 인물)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 쪽지에는 '오늘 신부 눈 한 결 맑음, 내일 등불 한 결 더 조용히'라고 적혀 있었다. 가례 당일 새벽 윤소희는 가장 맑은 눈으로 처음 거울을 마주했다고 사관록은 전한다.
후대 별궁 약방 의녀들은 약첩 드리기 전 신부 눈을 한 번 보는 관례를 따른다.
매화차비녀(梅花差備女)
내전 매화틀 차비 나인
내전 매화틀을 보살피는 나인
“오늘 매화 한 가지, 어제 자리보다 한 치 오른쪽이 더 고르게 뻗었습니다. 마마의 차회 자리도 한 치 옮겨 두겠습니다.”
내전 매화틀(梅花) 차비(差備)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내전 차회 자리 옆에 놓는 매화 분재를 전담 관리하고 차회 때마다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배치하는 중견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나인 정복, 어깨에 작은 가위집, 가슴팍에 차비 나인 배지, 한 손에 매화 분재 명부가 표준이다. 후원의 분재 매화 스물일곱 그루 각각의 개화 시기와 가지 방향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후원 화초 나인(1160016)이 후원 전체 꽃을 돌본다면, 매화틀 차비 나인은 그 가운데 매화 한 그루를 차회 자리 한 자리에 맞추는 것만을 담당한다. 매화 한 가지의 방향이 차회 자리의 분위기 한 결을 정한다.
차회 자리 배치가 정해지면 나인은 매화 분재를 자리 앞에 두고 한 박 물러서서 본다. 매화 가지가 차회 참석자 쪽으로 자연스럽게 뻗은 방향이어야 한다.
“내전 매화틀 차비 나인 어른들이 분재를 두고 한 박 물러서서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매화 가지의 방향이 차회의 첫 한 호흡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내전 매화틀 차비 나인 옥이 — 야사에 '매화 한 가지의 명수'로 남은 나인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외척 차회 날 매화 가지 방향을 하루 전날 밤 혼자 세 번 바꿔 가장 부드러운 방향을 찾아 둔 자 — 의 일화는 내전 사관록에 '세 번의 매화 가지'로 남았다.
외척 차회 전날 밤, 옥이는 분재 매화를 차회 자리 앞에 두고 세 번 방향을 바꿨다. 첫 번째는 너무 위로 뻗었고, 두 번째는 너무 안쪽이었다. 세 번째 방향에서 가지 끝이 외척 어른 자리를 향해 자연스럽게 기울었다.
차회 당일 외척 어른은 자리에 앉으며 그 매화 가지를 먼저 보고 한 박 멈췄다. 지밀상궁 박씨(1160003 일화 인물)는 그 한 박 멈춤이 그날 차회의 온도를 한 결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후대 매화틀 차비 나인들은 차회 전날 분재를 자리 앞에 두고 세 번 방향을 보는 관례를 따른다.
세답나인녀(洗踏內人女)
궐 빨래간 세답 나인
궐 빨래간을 책임지는 나인
“이 한 벌, 정중히 마지막 헹굼 전 안감을 한 번 더 폈습니다. 마마의 의복은 안감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궐 빨래간 세답(洗踏)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궁 빨래간에서 내명부 의복 세탁을 담당하는 중견 나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나인복,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세답 명부와 빨래 방망이가 표준이다. 중궁전 의복의 소재별 세탁 방식과 건조 시각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상의원 침선비(1160040)가 의복을 짓는다면, 세답 나인은 그 의복을 다시 처음과 같은 결로 돌려놓는다. 의복이 다시 처음과 같아지는 순간, 침선비의 한 땀이 다시 살아난다.
세탁이 끝나면 나인은 의복을 햇빛에 세운다. 빛이 통과하는 방향으로 안감과 겉감이 같은 결이면 세탁이 완성된 것이다.
“궐 세답 나인 어른들이 세탁 후 의복을 햇빛에 세우는 관례가 있습니다. 빛이 같은 결로 통과하는 의복이 가장 깨끗이 돌아온 의복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궐 빨래간 세답 나인 순이 — 야사에 '빛 한 결 세탁의 명수'로 남은 나인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외척 차회 당일 당의를 아침 햇빛 아래 세 번 확인해 가장 고른 결로 올린 자 — 의 일화는 세답방 사관록에 '아침 햇빛 세 번'으로 남았다.
외척 차회 당일 아침, 순이는 상의원 침선비 영이(당시 1160040 일화 인물)가 전날 밤 다시 지은 당의를 세탁 후 햇빛에 세 번 세웠다. 첫 번째는 동쪽 빛, 두 번째는 남쪽 빛, 세 번째는 두 방향 빛을 함께 받게 하여 안감과 겉감 결이 같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중전이 그 당의를 입고 차회 자리에 앉을 때 지밀상궁 박씨(1160003 일화 인물)가 옷고름 한 결이 외척 차회 내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후대 세답 나인들은 세탁 후 의복을 햇빛에 세워 결을 확인하는 관례를 따른다.
화계정리녀(花階整理女)
후원 화계 정리 나인
후원 화계를 다듬는 나인
“이 화계(花階, 꽃을 심은 계단식 화단) 한 단, 정중히 가장 낮은 단부터 먼저 살폈습니다. 가장 낮은 단이 가장 높은 단을 받칩니다.”
후원 화계(花階) 정리 나인은 가공의 한 시대 궁 후원의 꽃을 심은 계단식 화단을 관리하는 중견 나인으로, 계절마다 화계 배치를 바꾸고 시든 꽃을 교체한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나인복,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작은 도구 가방, 한 손에 작은 모종삽이 표준이다. 후원 화계 각 단의 꽃 종류와 개화 주기를 계절별로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후원 화초 나인(1160016)이 화초 전체를 돌본다면, 화계 정리 나인은 그 화초들이 서 있는 계단 한 단 한 단의 흙과 배치를 다듬는다. 가장 낮은 단의 흙이 단단해야 가장 높은 단의 꽃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화계를 정리할 때 나인은 반드시 가장 낮은 단부터 시작한다. 가장 높은 곳이 먼저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이 먼저 받쳐져야 높은 곳도 바르다는 것이 화계 정리의 첫 번째 원칙이다.
“후원 화계 나인 어른들이 정리를 늘 가장 낮은 단부터 시작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이 바른 날 가장 높은 단도 바르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후원 화계 정리 나인 봄이 — 야사에 '가장 낮은 단의 명수'로 남은 나인이자 중전 윤소희의 후원 산책 경로 화계 가장 낮은 단 흙이 풀려 있는 것을 새벽에 발견해 바로잡은 자 — 의 일화는 후원 사관록에 '가장 낮은 단의 새벽'으로 남았다.
어느 비 온 뒤 새벽, 봄이는 화계 정리를 가장 낮은 단부터 시작하다가 중전 산책로 경계 한 자락 흙이 비에 풀려 발이 빠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후원 새벽 비질 무수리 점이(당시 1160030 일화 인물)와 함께 두 사람이 조용히 흙을 다져 놓았다.
중전 윤소희의 산책 한 발자국은 그 한 자락 위에서 한 결도 어긋남 없이 굴러갔고, 이후 봄이와 점이는 비 온 뒤 산책로를 함께 먼저 확인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후대 화계 나인들은 정리 시 가장 낮은 단부터 시작하는 관례를 따른다.
봉촉새벽비(奉燭새벽婢)
중궁전 새벽 봉촉 비자
중궁전 새벽 등촉을 받드는 비자
“오늘 이 초 한 자루, 정중히 마마의 첫 한 호흡보다 한 박자 먼저 켜 두겠습니다.”
중궁전 새벽 봉촉(奉燭) 비자는 가공의 한 시대 중궁전 가장 이른 새벽에 마마의 기침 전에 초를 켜 두는 평민 비자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비자복,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초 가방과 부싯돌이 표준이다. 중궁전 각 처소의 창문 방향과 새벽 빛이 들어오는 시각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궐 무수리(1160005)가 차를 올린다면, 봉촉 비자는 그 차가 놓일 자리를 빛으로 먼저 준비한다. 마마의 눈이 처음 뜰 때 어둡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봉촉 비자의 하나뿐인 원칙이다.
초를 켜기 전 비자는 창문 방향을 한 번 본다. 오늘 새벽 빛이 어느 방향에서 먼저 드는지에 따라 초 자리가 바뀐다. 매일 아침 같은 자리가 아니라 오늘 빛이 가장 고른 자리가 초 자리다.
“중궁전 봉촉 비자 어른들이 초를 켜기 전 창문을 한 번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오늘 빛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야 오늘 초 자리가 보인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중궁전 새벽 봉촉 비자 별이 — 야사에 '오늘 빛 한 결의 명수'로 남은 비자이자 사대 중전 윤소희의 외척 차회 당일 새벽 초 자리를 평소보다 한 치 오른쪽으로 옮겨 마마의 첫 한 호흡을 한 결 더 밝게 받쳐 올린 자 — 의 일화는 중궁전 사관록에 '한 치 오른쪽 새벽 초'로 남았다.
외척 차회 당일 새벽, 별이는 창문을 보다 오늘 빛이 평소보다 동쪽에서 한 박자 먼저 드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초 자리를 평소보다 한 치 오른쪽으로 옮겼고, 마마의 눈이 처음 떴을 때 빛과 초빛이 함께 한 결 고르게 방을 채웠다.
내전 서사 상궁 청이(당시 1160041 일화 인물)는 그날 차회 시작 전 중전의 안색이 평소보다 한 결 더 단정했다고 기록했다.
후대 봉촉 비자들은 초를 켜기 전 반드시 창문 방향을 먼저 보는 관례를 따른다.
백관지존(百官至尊)
영의정
백관의 정점에 선 영의정
“이 한 줄 결재, 모든 사직의 한 시즌을 정중히 정합니다. 가볍게 결재할 일이 아닐세.”
영의정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정승 정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어깨에 큰 망토,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신하의 옛 결재·옛 분기 외교·금기 결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큰 결재가 영의정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결재가 아니라, 옛 신하 한 명의 옛 후회 한 줄을 정중히 떠올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영의정 후대들이 즉위 첫 주에 그 빈 결재첩 한 권을 보러 가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결재를 미룬 한 호흡이 결재를 내린 한 줄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사직의 한 줄이지요.”
십이대 영의정 한도경 — 가공의 동방 왕조 임오년(壬午年, 큰 흉년이 든 한 해)에 정승좌에 오른 신하이자 평생 결재 한 줄을 미룬 일이 단 세 번뿐이라는 자 — 의 일화는 사직 야사 단골이다.
그해 호조(戶曹, 사직 재정 본부)에서 굶는 평민 십만 가구의 환곡(還穀, 봄에 빌려주고 가을에 갚는 곡식 제도) 탕감 결재가 그의 책상에 올라왔는데, 그는 결재 한 줄을 닷새간 일부러 미뤘다. 닷새째 새벽, 그는 임금이 아니라 도승지 김연재(당시 한 왕조 승정원 정점)에게 먼저 결재첩을 펴 보였고, 거기에는 단 한 줄 "환곡 한 분기, 사직이 진다"가 적혀 있었다. 김연재는 그 한 줄을 임금 어전에 옮겼고, 임금은 옥좌에서 한 호흡 더 가다듬은 뒤 윤허를 내렸다.
영의정 본인은 그 결재 다음 날 본인의 봉록 한 분기를 환곡첩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그 사실은 호조 정산관 한 명의 한 줄 명부에만 남았다. 사직에서는 그 결재첩을 의정부(議政府, 정승들이 모이는 본청) 서고 한쪽에 빈 채로 보존해 두며, 후대 영의정들은 즉위 첫 주에 그 빈 결재첩을 정중히 한 번 펴 보는 관례를 따른다. 강호의 격언으로 사직에서 가장 무거운 결재 한 줄은 사실 그 닷새의 빈 자리라 한다.
춘추직필인(春秋直筆人)
사관
역사를 곧게 적어 내리는 사관
“이 한 줄 기록, 한 시대의 한 시즌을 정중히 정리합니다.”
사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정식 사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사관 펜던트, 한 손에 큰 기록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건의 옛 자료·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임금이 한 줄 윤허를 내리면 가장 먼저 사관의 한 줄 기록이 정중히 들어간다. 가장 무거운 기록은 큰 명부가 아니라, 한 줄 위에 정중히 새겨진 한 글자 위에 있다.
“우리 사관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줄 빈 칸을 외워 두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한 줄이 적힌 한 줄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한 시대의 한 호흡이지요.”
칠대 사관 윤사겸 — 가공의 동방 왕조 무술년(戊戌年, 큰 사화가 일어난 한 해)에 입직한 사관이자 평생 한 줄을 한 글자도 고친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사관청(史官廳, 사관들이 입직하는 본청) 야사에서 가장 자주 회자된다.
사화 한밤, 임금이 외척 한 명의 한 줄 죄목을 사초(史草, 사관이 임시로 적어두는 한 줄 초고)에서 지워 달라 친히 청한 일이 있었다. 윤사겸은 사초 한 줄을 가리지 않은 채 옆에 빈 칸 한 줄만 남기고는, "신이 한 줄을 적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한 줄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라고 정중히 답했다. 임금은 한 호흡 더 가다듬은 뒤 그 한 줄을 그대로 두라 윤허했고, 사초는 다음 날 사관청 서고에 정중히 봉인되었다.
윤사겸은 그 일로 한 분기 봉록을 잃었으나 사관 자리에는 그대로 머물렀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는 그 빈 칸 한 줄을 평생 모범 자세로 적어 두었다. 사관청에서는 그 사초첩 한 권을 보존하며, 후대 사관들은 입직 첫 새벽 그 빈 칸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을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사직에서는 그 빈 칸 한 줄이 사실 사관청의 가장 무거운 한 줄이라 한다.
사헌감찰관(司憲監察官)
사헌부 감찰
관기를 살피는 사헌부 감찰관
“이 한 줄 결재, 정중히 한 줄 감찰 들어갑니다. 결재는 한 시즌 동안 미뤄두겠습니다.”
사헌부 감찰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정식 사헌부 감찰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감찰 관복, 어깨에 감찰 문양 망토, 가슴팍에 작은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결재의 평가 라인·옛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결재가 큰 분기를 일으키면 가장 먼저 감찰의 한 줄 결재가 정중히 들어간다. 가장 무거운 감찰은 큰 결재가 아니라, 한 결재 옆에 정중히 한 줄 의견을 얹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사헌부 후대들이 직첩 첫 분기에 그 산하전 한 자리를 보러 가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큰 호령 한 번보다 한 줄 봉인 한 자리가 한 시대를 더 오래 받친다는 사직의 한 줄이지요.”
사대 사헌부 감찰 정인후 — 가공의 동방 왕조 갑신년(甲申年, 외척의 결재가 한 분기 사직을 흔든 해)에 입직한 감찰이자 평생 결재를 한 줄도 미뤄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사헌부(司憲府, 결재의 결재를 다듬는 본부)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그해 외척 한 명이 호조 정산첩 한 줄을 자기 봉록 쪽으로 옮겨 적은 일이 영의정 결재첩 옆에 슬며시 끼워 들어왔는데, 정인후는 그 한 줄 옆에 자기 작은 인장만 한 점 찍고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한 분기 결재를 정중히 미뤄 두었다. 외척은 결재가 한 시즌 미뤄지자 자기 봉록 쪽 한 줄을 결국 스스로 지워 호조에 환납했고, 그 사실은 의금부 추국 한 번 없이 사헌부 한 줄 명부에만 남았다. 정인후는 그 인장 한 점을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자기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분기를 환납 첫 줄 평민 가구에 정중히 보탰다.
사헌부에서는 그 결재첩을 산하전(山下殿, 사헌부 본청 옆 작은 봉인전) 한쪽에 보존하며, 후대 감찰들은 직첩 첫 분기 그 한 점 인장에 정중히 한 호흡을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사직에서는 그 한 점 인장이 사실 사헌부의 가장 무거운 결재 한 줄이라 한다.
호조정산수(戶曹精算手)
호조 정산관
국고를 산정하는 호조의 손
“이 정산 한 줄, 정중히 한 분기 정산 결재 들어갑니다. 가볍게 결재될 일은 아닙니다.”
호조 정산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의 정식 호조 정산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정산관 작은 배지, 한 손에 큰 정산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정산의 양식·옛 정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분기 한 번 큰 정산이 정산관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정산은 큰 결재가 아니라, 정산 한 줄의 한 글자를 정확히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호조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푼 명패를 보러 가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푼이 한 시대 한 가구의 한 시즌을 정중히 정한다는 사직의 한 줄이지요.”
십일대 호조 정산관 박이정 — 가공의 동방 왕조 신유년(辛酉年, 환곡 정산이 한 분기 사직을 멈출 뻔한 해)에 입직한 정산관이자 평생 한 푼을 잘못 적은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호조청(戶曹廳, 사직 재정의 본청) 야사에 가장 길게 남아 있다.
그해 한 지방 환곡첩 한 줄에서 한 푼 부족이 발견되었는데, 평민 한 가구의 봄 곡식 한 자루가 그 한 푼에 매달려 있었다. 박이정은 그 한 푼을 호조 봉록에서 보태지 않고, 본인의 봉록 한 분기에서 한 푼을 정중히 떼어 환곡첩 빈 자리에 옮겨 적었다. 본인의 한 줄 옆에는 작은 주(註) 한 글자, "한 푼이라도 한 가구"가 적혀 있었다.
그 주 한 글자는 다음 분기 호조 결재 양식 한 줄로 정식 정착되었고, 사헌부 감찰의 한 줄 결재도 그 양식 위에서 정중히 다음 분기로 굴러갔다. 호조청에서는 그 환곡첩 한 권과 본인의 봉록 명패 한 점을 함께 보존하며, 후대 정산관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명패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사직에서는 그 한 푼이 사실 호조의 가장 무거운 한 줄이라 한다.
안내별감자(案內別監者)
궐 안내 별감
궐을 안내하는 별감
“오늘 이 한 줄 길, 정중히 한 자세 더 안내드릴게요. 궁 첫 방문이시죠?”
궐 안내 별감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궁의 평민 안내 별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별감 정복, 가슴팍에 안내 작은 배지, 한 손에 작은 안내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궁의 모든 길·옛 분기 출입 라인·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새 손님이 궁에 들면 가장 먼저 별감의 한 줄 안내가 정중히 들어간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궁 한 시즌의 가장 정중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별감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모퉁이 작은 비석에 정중히 합장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줄 안내가 한 시즌 사직의 한 호흡을 받친다는 평민 한 명의 한 줄이지요.”
별감 노안조 — 가공의 동방 왕조 경자년(庚子年, 큰 비가 사흘 내린 한 분기)에 입직한 평민 별감이자 평생 궁 모든 모퉁이의 한 줄 동선을 외운 자 — 의 일화는 별감청(別監廳, 궁 안내 잡직의 작은 본청) 야사 단골이다.
그해 큰 비가 사흘 내린 새벽, 외국 사신 호위 한 명이 길을 잃고 어전(御殿, 임금이 결재하는 본전)으로 들어서는 금기 동선 한 줄로 접어들었다. 노안조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자기 우산을 사신 호위에게 정중히 받쳐 주며, "오늘 이 모퉁이는 한 줄 더 돌아 가시지요"라고 한 호흡으로 동선을 옮겼다. 사신 호위는 그 우산 아래에서 한 호흡 더 가다듬은 뒤 정중히 외국 사신 본진으로 돌아갔고, 그 사실은 외교 역관의 한 줄 명부에만 작게 남았다.
노안조는 그 우산을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정중히 자기 모범 자세로 적어 두었으며, 본인의 봉록 한 푼을 그 모퉁이 작은 기둥 한 자리에 환납했다. 별감청에서는 그 모퉁이에 작은 비석 한 점을 정중히 두며, 후대 별감들은 입직 첫 새벽 그 비석에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사직에서는 그 한 줄 우산이 사실 궁의 가장 정중한 한 줄 안내라 한다.
수렴청정주(垂簾聽政主)
대비전 수렴청정
발 너머에서 정사를 살피는 대비
“발 너머의 한 줄 결재,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한 시즌의 사직이 그 발 한 자락에 걸려 있습니다.”
대비전 수렴청정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에서 어린 임금을 대신해 발 뒤에서 정사를 정중히 결재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대비전 예복, 어깨에 옅은 망토,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외척의 결재 라인·옛 분기 외교·금기 결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영의정의 한 줄 결재가 들어오기 전, 발 너머에서 한 호흡 더 가다듬는 자세가 한 분기를 정한다. 신하들은 발 한 자락의 위치만 보고도 오늘 결재가 미뤄질지 정중히 가늠한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결재가 아니라, 어린 임금의 한 줄 윤허 옆에 정중히 한 호흡을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발은 가리는 천이 아니라, 한 시대를 정중히 다듬는 한 줄 경계라는 사실을 본인만이 가장 잘 안다.
“우리 대비전 후대들이 발 한 자락의 한 호흡을 가장 먼저 외우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거두는 발 한 자락이 내리는 결재 한 줄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사직의 한 줄이지요.”
삼대 대비전 수렴청정 윤계임 — 가공의 동방 왕조 계해년(癸亥年, 어린 임금이 즉위한 한 해)에 발 뒤로 든 자이자 평생 결재 한 줄을 외척 쪽으로 흘린 일이 한 번도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대비전(大妃殿, 임금의 어머니가 거하는 본전) 야사에 길게 남았다.
그해 외척 한 명이 결재 한 줄을 자기 봉록 쪽으로 옮기려 발 한 자락 옆까지 결재첩을 들고 들어왔는데, 윤계임은 결재 한 줄을 들이지 않고 발 한 자락을 한 자만큼 정중히 거두었다. 거둔 발 한 자락의 한 자만큼은 곧 "오늘은 결재하지 않는다"는 한 줄 신호였고, 외척은 결재첩을 그대로 들고 어전을 물러갔다.
그날 이후 외척의 한 줄 결재는 한 분기 사직 명부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윤계임은 본인의 봉록 한 분기를 어린 임금의 강독 명부 첫 줄 학동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작은 주 한 글자 "거두는 발"을 모범 자세로 새겼다. 대비전에서는 그 발 한 자락을 정중히 보존하며, 후대 대비전 수렴청정은 입직 첫 새벽에 그 발 한 자락의 한 호흡에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사직에서는 거둔 발 한 자락이 사실 대비전의 가장 무거운 결재 한 줄이라 한다.
왕명출납사(王命出納使)
도승지
왕명을 출납하는 도승지
“전하의 한 줄 윤허, 제 입을 거쳐 정중히 한 줄로 정리됩니다. 가벼운 한 마디가 없습니다.”
도승지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승정원의 정점에 있는 자로, 임금과 신하 사이 한 줄 결재를 정중히 옮기는 직책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승정원 인장 펜던트, 한 손에 큰 결재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윤허의 옛 분기·옛 외교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임금의 한 마디가 도승지의 한 줄 정리 위에서 비로소 한 줄 결재가 된다. 신하들은 임금보다 도승지의 한 호흡을 더 정중히 살피며, 그 한 호흡이 오늘 결재 분위기를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윤허가 아니라, 임금이 무심코 흘린 한 마디를 정중히 한 줄로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도승지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줄 빈 칸 명부를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옮기지 않은 한 마디가 옮긴 한 줄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승정원의 한 줄이지요.”
구대 도승지 김연재 — 가공의 동방 왕조 정묘년(丁卯年, 외교 분기 한 줄이 한 시즌 사직을 멈춘 해)에 입직한 자이자 평생 임금의 한 마디를 한 줄로 잘못 옮긴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승정원(承政院, 임금과 신하 사이의 본부) 야사에 길게 남았다.
그해 임금이 외국 사신 앞에서 무심코 흘린 한 마디 농(弄, 가벼운 한 마디 농담)이 외교 분기 한 줄로 굳어질 뻔했는데, 김연재는 그 한 마디를 결재첩에 옮기지 않고 옆 빈 칸 한 줄에 작은 주 한 글자만 적어 두었다. 사신은 결재첩에 한 줄이 적히지 않은 사실을 외교적 호의로 받아들였고, 한 분기 외교 결재가 정중히 다음 분기로 굴러갔다. 김연재는 그 빈 칸 한 줄을 본인의 호적 옆에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사신단 통변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다.
승정원에서는 그 결재첩 한 권을 봉인 보존하며, 후대 도승지는 입직 첫 새벽 그 빈 칸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을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사직에서는 옮기지 않은 한 마디가 사실 도승지의 가장 무거운 한 줄이라 한다.
예조의례사(禮曹儀禮師)
예조 의례관
국가 의례를 전담하는 예조관
“한 자리, 한 절, 한 호흡. 의례는 한 줄 어긋나면 한 시즌이 어긋납니다.”
예조 의례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예조에서 즉위·국혼·국상·외교 의례의 한 줄 절차를 정중히 결재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예조 관복, 어깨에 의례 문양 망토, 한 손에 큰 의례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의례의 절차 라인·옛 분기 외교·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의례가 의례관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사신이 한 줄 절을 잘못 읊으면 사직 한 시즌의 외교가 흔들리기에, 의례관은 사신의 한 호흡까지 미리 한 줄로 정리해 둔다. 가장 무거운 의례는 큰 행사가 아니라, 옛 한 줄 절차를 정중히 한 호흡 더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예조 후대들이 입직 첫 의례에 그 한 줄 빈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을 더해 두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절차가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직의 한 줄이지요.”
오대 예조 의례관 한정유 — 가공의 동방 왕조 무자년(戊子年, 외국 사신단이 처음 동방으로 들어온 한 해)에 입직한 의례관이자 평생 절 한 호흡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예조청(禮曹廳, 의례 결재의 본청) 야사 단골이다.
그해 외국 사신단의 어린 사신 한 명이 큰 즉위식 한 줄 절을 잘못 읊을 위기에 처했는데, 한정유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어린 사신 옆에 자기 의례 명부 한 장을 정중히 가까이 두었다. 그 한 장에는 절 한 호흡 한 줄이 손가락 짚기 좋게 굵게 적혀 있었고, 어린 사신은 한 호흡 더 가다듬은 뒤 절을 정중히 마쳤다. 그 한 줄로 외교 분기 한 줄이 한 시즌 더 평온해졌고, 어린 사신은 본국으로 돌아가 한정유에게 정중히 작은 서신 한 장을 보냈다.
한정유는 그 서신을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정중히 자기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사신단 통변 가구의 첫 줄에 보탰다. 예조청에서는 그 한 줄 명부를 보존하며, 후대 의례관들은 입직 첫 의례에 그 한 줄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어의수의장(御醫首醫長)
내의원 어의
임금의 옥체를 살피는 어의의 으뜸
“이 한 첩, 정중히 한 분기 한 호흡을 다듬어 드립니다. 한 모금이 가벼울 수 없습니다.”
내의원 어의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내의원의 정점에 있는 자로, 임금과 종친의 한 호흡을 정중히 책임진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내의원 관복, 가슴팍에 작은 어의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약첩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약재의 평소 식성·옛 분기 처방·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임금이 한 번 기침을 해도 어의의 한 줄 결재가 가장 먼저 정중히 들어간다. 한 첩의 한 모금이 사직 한 시즌을 정하기에, 어의는 약초 한 잎의 무게까지 손끝으로 다시 한 번 가늠한다. 가장 무거운 처방은 큰 약첩이 아니라, 옛 한 줄 처방의 한 글자를 정중히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내의원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잎 봉인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짓지 않은 처방이 지은 한 첩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사직의 한 줄이지요.”
십사대 내의원 어의 강운호 — 가공의 동방 왕조 임진년(壬辰年, 임금이 한 분기 큰 병에 든 해)에 입직한 어의이자 평생 약첩 한 줄을 잘못 지은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내의원(內醫院, 임금의 한 호흡을 본부에서 다듬는 관청) 야사 단골이다.
그해 임금의 한 호흡이 한 분기 흐려졌을 때, 외척 한 명이 강운호에게 특정 약초 한 잎을 한 첩에 보태기를 정중히 청하였다. 강운호는 그 한 잎이 한 분기 임금의 한 호흡을 흐리게 할 수 있는 옛 금기 결합 한 줄임을 즉시 알아채고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그 한 잎을 자기 약첩 명부 옆 빈 칸에 정중히 봉인해 두었다. 외척의 한 줄 청은 한 분기 사직 명부에 다시 오르지 않았고, 임금은 다음 분기 한 호흡을 정중히 회복했다. 강운호는 본인의 봉록 한 분기를 활인서 구료인의 한 첩 명부 첫 줄 가구에 보탰고, 그 한 잎 봉인첩은 내의원 서고에 한 권으로 보존되었다.
후대 어의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잎 봉인첩에 정중히 한 호흡을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비변책사인(備邊策士人)
비변사 책사
변방을 헤아리는 책사
“한 줄 책략, 한 시즌의 외교가 그 한 줄 위에 정중히 걸립니다.”
비변사 책사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비변사에서 외교·국방의 한 줄 책략을 정중히 다듬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비변사 관복, 가슴팍에 작은 책사 펜던트, 한 손에 큰 책략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신의 옛 결재 라인·옛 분기 외교·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외교 분기가 책사의 한 줄 책략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영의정의 한 줄 결재 옆에 책사의 한 줄 자문이 정중히 얹히면, 한 분기의 외교가 비로소 한 호흡으로 정리된다. 가장 무거운 책략은 큰 한 수가 아니라, 옛 한 줄 외교를 정중히 한 호흡 더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비변사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줄 빈 책략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수 두지 않은 책략이 한 시즌 외교를 받친 한 줄이지요.”
육대 비변사 책사 도시언 — 가공의 동방 왕조 을사년(乙巳年, 외국 사신단의 큰 결재 한 줄이 사직 외교를 정한 해)에 입직한 책사이자 평생 큰 한 수보다 작은 한 호흡을 더 자주 둔 자 — 의 일화는 비변사(備邊司, 외교·국방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외국 사신단이 사직의 큰 변경 한 자락을 외교 분기로 흔들려 들자, 책사들은 큰 한 수를 두자며 책략첩을 두껍게 짜 왔다. 도시언은 그 큰 한 수를 한 줄도 결재첩에 옮기지 않고, 변경(邊境, 사직의 가장 바깥 한 줄 경계) 한 마을의 평민 명부 한 권을 정중히 비변사 회의 한가운데에 놓았다. "외교는 큰 한 수가 아니라, 이 한 권 평민 한 명의 한 호흡 위에서 정중히 굴러갑니다"라는 한 줄로 회의는 한 호흡 더 가다듬어졌고, 한 분기 외교가 큰 충돌 없이 정중히 다음 분기로 굴러갔다.
도시언은 그 한 권 평민 명부를 본인의 호적 옆에 평생 모범 자세로 두었고, 본인의 봉록 한 분기를 변경 평민 명부 첫 줄 가구에 보탰다. 비변사에서는 그 한 권을 정중히 보존하며, 후대 책사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줄에 한 호흡을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왕언주서관(王言注書官)
승정원 주서
왕의 말씀을 적어내는 주서
“오늘 한 줄 윤허, 정중히 옮겨 적었습니다. 한 글자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승정원 주서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승정원에서 임금과 신하 사이의 한 줄 윤허·한 줄 상소를 정중히 옮겨 적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작은 주서 펜던트, 한 손에 큰 옮김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윤허의 옛 분기 정리·옛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도승지의 한 줄 결재가 들어오기 전, 주서의 한 줄 옮김이 정중히 먼저 정리된다. 한 글자가 한 줄로 굳어지기까지 주서는 한 호흡 더 묵묵히 붓을 가다듬는다. 가장 무거운 옮김은 큰 윤허가 아니라, 한 줄 옆에 정중히 작은 주(註) 한 글자를 다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주서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작은 주 한 글자를 정중히 외워 두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줄 옆 한 글자가 한 사람의 한 시즌을 받친 한 줄이지요.”
십이대 승정원 주서 명한주 — 가공의 동방 왕조 을묘년(乙卯年, 옛 상소 한 줄이 한 분기 사직을 흔든 해)에 입직한 주서이자 평생 옮김 한 줄 옆에 작은 주 한 글자를 빠뜨린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승정원 야사 단골이다.
그해 한 변경 평민이 올린 상소(上疏, 평민이 임금에게 정중히 올리는 한 줄 청)는 글자가 옅어 한 줄이 흐릿하게 보였다. 명한주는 그 한 줄 옆에 작은 주 한 글자, "글자 옅음, 평민 본의 정중히 묵묵함"을 정중히 더해 두었고, 그 한 글자 덕에 도승지가 한 호흡 더 가다듬은 뒤 임금께 한 줄을 그대로 옮겼다. 임금은 그 상소 한 줄을 정중히 윤허하며, 변경 평민 한 가구의 한 분기 환곡을 탕감하는 결재로 굴러갔다.
명한주는 본인의 봉록 한 푼을 그 평민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작은 주 한 글자를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승정원에서는 그 옮김첩을 정중히 보존하며, 후대 주서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글자에 한 호흡을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규장검서수(奎章檢書手)
규장각 검서
규장각 서책을 살피는 검서
“이 한 권, 정중히 한 줄 검토 들어갑니다. 한 글자가 옛 한 시즌을 정합니다.”
규장각 검서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규장각에서 옛 책·옛 명부의 한 줄을 정중히 검토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관복, 가슴팍에 작은 검서 펜던트, 한 손에 큰 검토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책의 옛 판본·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옛 책이 검서의 한 줄 검토 위에서 정중히 다음 분기로 넘어간다. 사관의 한 줄 기록이 굳어지기까지, 검서의 한 줄 검토가 옆에서 정중히 한 호흡 더 다듬는다. 가장 무거운 검토는 큰 책이 아니라, 옛 한 줄 옆에 정중히 작은 한 글자를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검서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글자 정정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옛 한 줄 옆에 한 글자가 한 시대의 한 호흡을 다시 살린 한 줄이지요.”
팔대 규장각 검서 유사명 — 가공의 동방 왕조 병오년(丙午年, 옛 판본 한 줄이 사직 결재 한 줄을 흐리게 한 해)에 입직한 검서이자 평생 옛 한 줄을 한 글자도 임의로 고친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규장각(奎章閣, 사직 학문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옛 호조 정산 양식 한 줄이 후대 판본에서 한 글자만 미세히 어긋나 환곡 결재 한 줄을 한 분기 흐리게 한 일이 발견되었다. 유사명은 큰 호령 한 번 없이 옛 한 줄 옆에 작은 한 글자, "옛 판본의 한 글자 보존"을 정중히 보태고, 후대 판본 옆에는 같은 자리에 작은 한 글자를 더 적어 두었다. 그 작은 한 글자 덕에 호조 정산관의 한 줄 결재가 다음 분기 정중히 한 호흡으로 정리되었고, 변경 평민 한 가구의 환곡 한 푼이 정확히 한 가구로 환원되었다.
유사명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그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글자를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규장각에서는 그 정정첩을 보존하며, 후대 검서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글자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사복마관사(司僕馬官士)
사복시 마관
왕마를 다스리는 사복시 마관
“어가의 말 한 마리, 정중히 한 줄 점검 들어갑니다. 한 발굽이 한 분기를 정합니다.”
사복시 마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사복시에서 어가(御駕)의 말과 수레를 정중히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사복시 관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큰 마적(馬籍)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어가의 옛 출입·옛 분기 행차·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행차가 마관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한 발굽의 못 한 개가 사직 한 시즌의 행차를 어긋나게 할 수 있기에, 마관은 새벽마다 손끝으로 발굽 한 줄을 다시 가늠한다. 가장 무거운 점검은 큰 행차가 아니라, 옛 말 한 마리의 한 호흡을 정중히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마관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못 봉인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발굽 한 못이 임금 한 분의 한 시즌을 받친 한 줄이지요.”
칠대 사복시 마관 정태근 — 가공의 동방 왕조 갑자년(甲子年, 임금의 큰 행차가 한 분기 사직 외교 한 줄을 정한 해)에 입직한 마관이자 평생 어가 발굽 한 못을 흘려본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사복시(司僕寺, 어가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큰 행차 새벽, 정태근은 어가 첫 말의 한 발굽 한 못이 한 자만큼 헐거워진 것을 손끝으로 가늠해 냈다. 큰 행차를 한 호흡 미루는 일이 사직에 정중히 한 줄 부담이었으나, 그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사복시 안마당에서 그 한 못을 정중히 한 호흡 더 단단히 박고 행차를 그대로 출발시켰다. 그 한 못 덕에 어가는 외교 사신단 앞에서 한 호흡 어긋남 없이 정중히 도착했고, 외교 분기 한 줄이 다음 분기까지 평온히 굴러갔다.
정태근은 그 한 못 봉인첩을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마부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다. 사복시에서는 그 한 못 봉인첩을 보존하며, 후대 마관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못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의대도공(衣襨都工)
상의원 의대 도공
어의를 짓는 도공
“한 자수 한 줄, 한 분기의 한 의례를 정중히 입혀 드립니다. 가벼울 수 없습니다.”
상의원 의대 도공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상의원에서 임금과 종친의 의대(衣襨)를 정중히 짓는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관복, 가슴팍에 작은 도공 인장 펜던트, 한 손에 큰 자수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의대의 옛 자수 라인·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의례 의대가 도공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한 줄 자수의 색감이 한 자리의 한 절을 정하기에, 도공은 옛 의대 한 벌의 한 자수까지 한 호흡 더 다듬는다. 가장 무거운 의대는 큰 예복이 아니라, 옛 한 줄 자수 옆에 정중히 작은 한 땀을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도공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땀 봉인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은 한 땀이 큰 의례 한 자리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십대 상의원 의대 도공 노하경 — 가공의 동방 왕조 기축년(己丑年, 외국 사신단 즉위식이 사직 외교 한 분기를 정한 해)에 입직한 도공이자 평생 한 땀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상의원(尙衣院, 의대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즉위식 새벽, 어린 임금의 의대 한 자락 안쪽에 작은 한 땀이 흐트러져 있다는 사실이 노하경의 손끝에 가닿았다. 즉위식을 한 호흡 미루는 일이 사직에 정중히 한 줄 부담이었으나, 그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상의원 안방에서 그 한 땀을 정중히 한 호흡 더 단단히 깁고 의대를 그대로 올렸다. 그 한 땀 덕에 어린 임금은 외국 사신단 앞에서 한 호흡 어긋남 없이 절을 정중히 마쳤고, 외교 분기 한 줄이 다음 분기까지 평온히 굴러갔다.
노하경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자수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땀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상의원에서는 그 한 땀 봉인첩을 보존하며, 후대 도공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땀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외교통역자(外交通譯者)
외교 역관
이국 말을 풀어내는 역관
“사신의 한 마디, 정중히 한 줄로 옮깁니다. 한 글자가 한 분기 외교를 정합니다.”
외교 역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에서 외국 사신의 한 마디를 정중히 한 줄로 옮기는 평민 출신 통변(通辯)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관복, 가슴팍에 작은 역관 배지, 한 손에 작은 통변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외국말의 옛 결재 라인·옛 분기 외교·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사신의 한 마디가 역관의 한 줄 옮김 위에서 정중히 다음 결재로 굴러간다. 한 글자의 미묘한 결을 한 호흡 더 다듬느라 역관은 사신보다 늦게 자리를 뜬다. 가장 무거운 옮김은 큰 사신의 한 줄이 아니라, 옛 한 줄 인사 옆에 정중히 작은 한 글자를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역관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글자 봉인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은 한 글자가 한 분기 외교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외교 역관 정해언 — 가공의 동방 왕조 임술년(壬戌年, 외국 사신단 어전 차회 한 줄이 외교 분기를 정한 해)에 입직한 평민 역관이자 평생 옮김 한 줄 옆에 작은 한 글자를 빠뜨린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사역원(司譯院, 통변 본청) 야사 단골이다.
그해 어전 차회에서 외국 사신이 무심코 흘린 한 마디가 모욕으로 옮겨질 위기에 처했는데, 정해언은 그 한 마디를 한 줄로 옮기지 않고 옆 빈 칸에 작은 한 글자, "사신 본의 정중함"을 정중히 보탰다. 도승지 김연재(승정원 정점)는 그 한 글자를 보고 임금께 결재를 한 호흡 더 가다듬어 올렸고, 임금은 결재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늦춰 외교 분기를 평온하게 다음 분기로 굴렸다. 외국 사신단은 본국으로 돌아가 정해언에게 정중히 작은 서신 한 장을 보냈고, 그 서신은 사역원 한쪽에 정중히 봉인되었다.
정해언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사신단 통변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작은 한 글자를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사역원에서는 그 봉인첩을 보존하며, 후대 역관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글자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사주서사인(四柱書寫人)
사주당 상궁 서사
사주당을 정리하는 서사 상궁
“이 한 줄 서사, 정중히 한 분기의 한 자세를 옮겨 적습니다. 한 글자가 가벼울 수 없습니다.”
사주당 상궁 서사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내명부에서 옛 서신·옛 일과를 정중히 옮겨 적는 평민 출신 서사(書寫)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내명부 정복, 가슴팍에 작은 서사 배지, 한 손에 작은 서사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일과의 옛 분기 정리·옛 서신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옛 서신이 서사의 한 줄 옮김 위에서 정중히 다음 분기로 굴러간다. 사관의 한 줄이 큰 시대를 정한다면, 서사의 한 줄은 한 사람의 한 분기를 정중히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서신이 아니라, 옛 한 줄 옆에 정중히 작은 한 글자를 다듬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서사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줄 빈 칸 명부를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옮기지 않은 한 줄이 옮긴 한 줄보다 한 사람을 더 오래 받친 한 줄이지요.”
사주당 상궁 서사 안의향 — 가공의 동방 왕조 무신년(戊申年, 내명부 한 줄 서신이 사직 외교 한 분기를 정한 해)에 입직한 평민 서사이자 평생 한 줄을 한 글자도 임의로 보태거나 뺀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사주당(私註堂, 내명부 서사들의 작은 본방) 야사 단골이다.
그해 외국 사신단 본가에서 보낸 한 줄 사적 서신이 자칫 외교 결재로 굴러갈 위기에 처했는데, 안의향은 그 한 줄을 정식 서사 명부에 옮기지 않고 옆 빈 칸 한 줄에 작은 한 글자, "사적 한 줄, 정중히 묵묵함"을 정중히 보태 두었다. 그 한 줄이 정식 명부에 오르지 않은 덕에 외교 분기 한 줄은 평온히 다음 분기로 굴러갔고, 외국 사신단 본가는 안의향에게 정중히 작은 서신 한 장으로 답례를 보탰다. 안의향은 그 서신을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서사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다.
사주당에서는 그 빈 칸 한 줄 명부를 보존하며, 후대 서사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빈 칸 한 줄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다례전수자(茶禮傳授者)
궐내 다례사
궁중 다례를 전수하는 다례사
“오늘 이 한 잔, 정중히 한 분기의 한 호흡을 더 우려냈습니다.”
궐내 다례사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궁에서 다례(茶禮)와 차 한 잔의 한 줄을 정중히 책임지는 평민 출신 다인(茶人)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정복, 가슴팍에 작은 다례 배지, 한 손에 작은 다구(茶具)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차의 평소 식성·옛 분기 다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회의 직전 다례사의 한 잔이 정중히 신하 한 분의 한 호흡을 가다듬는다. 영의정이 한 줄 결재 앞에서 머뭇거릴 때, 다례사의 한 잔이 그 한 호흡을 정중히 받친다. 가장 무거운 한 잔은 큰 다례가 아니라, 옛 신하 한 분이 한 줄 결재 직전 정중히 비우는 한 모금 위에 있다.
“우리 다례사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잔 봉인 다구를 정중히 닦아 두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모금이 한 결재 한 줄을 한 호흡 더 받친 한 줄이지요.”
궐내 다례사 우정범 — 가공의 동방 왕조 신축년(辛丑年, 환곡 결재 한 줄이 한 분기 사직을 흔든 해)에 입직한 평민 다인이자 평생 한 잔의 온도를 한 푼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다례방(茶禮房, 궁 안의 작은 다례 본방) 야사 단골이다.
그해 십이대 영의정 한도경(앞서 영의정 일화의 그 신하)이 환곡 한 줄 결재 앞에서 닷새를 머뭇거릴 때, 우정범은 그 닷새 새벽마다 작은 한 잔을 정중히 한 호흡 더 우려 한도경의 책상 옆에 두었다. 닷새째 새벽 한 잔에는 한 잎이 한 푼 더 들어 있었고, 한도경은 그 한 모금에 한 호흡을 더 가다듬은 뒤 결재 한 줄을 정중히 도승지 김연재에게 옮겼다. 우정범은 그 한 잔의 한 잎을 본인의 다구 명부 옆에 정중히 자기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푼을 환곡첩 첫 줄 평민 가구에 정중히 보탰다.
다례방에서는 그 한 잔 봉인 다구를 보존하며, 후대 다례사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잔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향교훈도사(鄕校訓導師)
향교 훈도
향교의 학동을 가르치는 훈도
“한 줄 글, 한 분기의 한 호흡을 정중히 다듬습니다. 가르침은 가볍지 않습니다.”
향교 훈도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향교에서 어린 학동에게 옛 글의 한 줄을 정중히 가르치는 평민 출신 훈장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관복, 가슴팍에 작은 훈도 배지, 한 손에 작은 강독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경전의 옛 한 줄·옛 분기 강독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어린 학동의 한 호흡이 훈도의 한 줄 강독 위에서 정중히 다음 분기로 굴러간다. 도승지가 임금의 한 줄을 옮길 때, 그 한 줄을 처음 가르친 자가 사실 옛 한 향교 훈도였다는 사실은 본인만이 묵묵히 안다. 가장 무거운 가르침은 큰 경전이 아니라, 옛 한 줄 옆에 정중히 작은 한 글자를 더해주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훈도 후대들이 입직 첫 강독에 그 한 줄 정정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어린 한 호흡이 한 시대 한 신하의 한 줄을 받친 한 줄이지요.”
향교 훈도 노청한 — 가공의 동방 왕조 정유년(丁酉年, 한 학동의 한 호흡이 후대 도승지 한 명을 길러낸 해)에 입직한 평민 훈도이자 평생 강독 한 줄을 어린 학동의 한 호흡으로만 가다듬은 자 — 의 일화는 향교(鄕校, 지방 학동의 본청) 야사 단골이다.
그해 변경 향교에 입학한 어린 학동 김연재(훗날 구대 도승지)는 한 줄을 외울 때마다 한 호흡을 길게 머뭇거리는 학동이었다. 노청한은 큰 호령 한 번 없이 그 한 호흡 옆에 작은 한 글자, "머뭇거림은 정중함의 한 줄"을 정중히 보태 두었고, 어린 김연재는 그 한 글자 위에서 한 호흡을 모범 자세로 굳혀갔다.
훗날 구대 도승지 김연재가 임금의 한 마디를 결재첩에 옮기지 않고 빈 칸 한 줄에 한 글자를 보태는 한 줄 자세는 사실 그 향교 한 줄에서 정중히 시작된 것이었다. 노청한은 그 사실을 평생 묵묵히 안 채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학동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글자를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향교에서는 그 정정첩을 보존하며, 후대 훈도들은 입직 첫 강독에 그 한 글자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등롱야인(燈籠夜人)
궐 등롱지기
궐 야간 등롱을 지키는 사람
“오늘 새벽 한 줄 등불, 정중히 한 호흡 더 켜 두겠습니다. 회의 길어지신답니다.”
궐 등롱지기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궁에서 새벽과 밤의 등불 한 줄을 정중히 책임지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정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등롱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궁의 모든 길의 평소 등불 시각·옛 분기 야간 결재·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회의가 길어지면 가장 먼저 등롱지기의 한 줄 등불이 정중히 한 자리에 더 들어간다. 영의정의 한 줄 결재가 새벽까지 이어진 한 분기, 그 한 결재의 옆을 한 줄 등불이 묵묵히 지킨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궁 한 시즌의 가장 정중한 한 호흡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등롱지기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등 봉인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등불이 한 신하의 한 결재를 받친 한 줄이지요.”
등롱지기 변태진 — 가공의 동방 왕조 경진년(庚辰年, 환곡 한 줄 결재가 새벽까지 이어진 한 분기)에 입직한 평민 잡직이자 평생 한 등의 한 호흡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등롱방(燈籠房, 궁의 등불을 관리하는 작은 본방) 야사 단골이다.
그해 십이대 영의정 한도경의 환곡 결재가 새벽 한 호흡까지 이어진 닷새, 변태진은 큰 호령 한 번 없이 매일 새벽 작은 등 한 자루를 정중히 한 호흡 더 길게 켜 두었다. 닷새째 새벽 한도경이 결재 한 줄을 도승지 김연재에게 옮기는 그 한 호흡 옆을, 변태진의 작은 등 한 자루가 묵묵히 받쳤다. 한도경은 결재 다음 날 변태진에게 직접 한 잔 차를 따라 정중히 권했고, 변태진은 그 한 잔을 정중히 비우며 작은 한 글자, "정중한 한 등"을 본인의 등롱 명부 옆에 새겼다.
변태진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등롱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등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등롱방에서는 그 한 등 봉인첩을 보존하며, 후대 등롱지기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등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수라잡인부(水剌雜人夫)
어선 수라간 잡인
어선 수라간 잡일을 맡은 부역인
“이 한 그릇, 정중히 한 호흡 더 데워 올립니다. 식기 전에 가셔야 합니다.”
어선 수라간 잡인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수라간(水剌間)에서 임금의 한 끼 옆을 정중히 보조하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정복,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작은 그릇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수라간의 모든 옛 그릇의 평소 무게·옛 분기 한 끼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어의의 한 줄 처방이 들어올 때 가장 먼저 잡인의 한 그릇이 정중히 한 자리에 더 놓인다. 임금이 한 줄 윤허를 미루는 늦은 밤, 잡인의 한 그릇 죽이 그 한 호흡을 정중히 받친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한 시대 한 임금의 가장 따뜻한 한 모금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잡인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그릇 봉인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모금이 한 임금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어선 수라간 잡인 박순겸 — 가공의 동방 왕조 임진년(壬辰年, 임금이 한 분기 큰 병에 든 해, 어의 강운호 일화의 그 분기)에 입직한 평민 잡인이자 평생 한 그릇의 온도를 한 푼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수라간(水剌間, 임금 한 끼의 본방) 야사 단골이다.
그해 임금이 한 호흡을 한 분기 흐려, 어의 강운호의 한 줄 처방이 한 잎 봉인첩에 새겨지던 새벽, 박순겸은 큰 호령 한 번 없이 작은 죽 한 그릇을 정중히 한 호흡 더 데워 올렸다. 그 한 그릇의 한 모금이 임금의 한 호흡을 정중히 받친 덕에 어의 한 줄 처방이 다음 분기 한 호흡을 회복할 수 있는 한 자리를 얻었다. 임금은 회복 다음 분기 박순겸에게 한 잔 차를 정중히 친히 따라 권했고, 박순겸은 그 한 잔을 정중히 비우며 작은 한 글자, "정중한 한 그릇"을 본인의 그릇 명부 옆에 새겼다.
박순겸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잡인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그릇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수라간에서는 그 한 그릇 봉인첩을 보존하며, 후대 잡인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그릇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추국심문관(推鞫審問官)
의금부 추국관
의금부의 심문을 책임지는 추국관
“이 한 줄 공초, 정중히 한 호흡 더 듣고 적습니다. 가벼운 한 마디가 한 사람의 한 시즌을 정합니다.”
의금부 추국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의금부에서 큰 사건의 공초(供招)를 정중히 받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의금부 관복, 어깨에 짙은 망토, 가슴팍에 작은 추국 인장 펜던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건의 옛 진술 라인·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사헌부 감찰의 한 줄 결재가 큰 사건으로 번지면 가장 먼저 추국관의 한 줄 공초가 정중히 들어간다. 한 줄 공초의 한 글자가 한 사람의 한 분기를 정하기에, 추국관은 큰 소리 한 번 없이 옛 한 호흡을 더 묵묵히 가다듬는다. 가장 무거운 추국은 큰 호령이 아니라, 옛 한 줄 진술 옆에 정중히 작은 한 글자를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추국관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호흡 빈 칸 공초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묻지 않은 한 마디가 물은 한 줄보다 한 사람을 더 살린 한 줄이지요.”
구대 의금부 추국관 윤환정 — 가공의 동방 왕조 갑오년(甲午年, 한 변경 평민의 한 줄 진술이 큰 사건 한 줄을 정중히 풀어간 해)에 입직한 추국관이자 평생 큰 호령 한 번 없이 한 호흡을 더 묵묵히 둔 자 — 의 일화는 의금부(義禁府, 큰 사건 결재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변경 평민 한 명이 큰 사건의 가장자리 한 줄로 끌려와 공초를 받게 되었는데, 평민은 한 호흡을 한 시진 동안 정중히 머뭇거렸다. 윤환정은 큰 호령 한 번 없이 그 한 시진 동안 자기 공초첩 한 줄을 빈 칸으로 그대로 두었고, 한 시진이 지난 새벽 평민이 한 줄 진실을 정중히 한 호흡으로 풀어놓았다. 그 한 줄 덕에 큰 사건 한 줄이 옛 외척의 한 줄 결재로 정중히 옮겨갔고, 평민 한 명의 한 분기는 정중히 다음 분기로 회복되었다.
윤환정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그 평민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호흡 빈 칸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의금부에서는 그 빈 칸 공초첩을 정중히 보존하며, 후대 추국관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호흡에 정중히 한 줄을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관상천문사(觀象天文師)
관상감 천문관
천체를 관측하는 관상감의 사범
“오늘 별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가다듬어 사직에 올립니다. 한 분기 천기가 가벼울 수 없습니다.”
관상감 천문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관상감에서 천기(天機)와 일관(日官)의 한 줄 결재를 정중히 다듬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상감 관복, 어깨에 별 문양 망토, 한 손에 큰 성도(星圖)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별의 옛 위치·옛 분기 일식·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의례의 한 자리가 천문관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예조 의례관이 한 줄 의례를 다듬을 때, 그 한 줄 옆에 천문관의 한 별이 정중히 한 자리를 더 놓는다. 가장 무거운 천기는 큰 별이 아니라, 옛 한 줄 성도(星圖) 옆에 정중히 작은 한 점을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천문관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점 정정 성도를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은 한 점이 사직 의례 한 자리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십일대 관상감 천문관 안재청 — 가공의 동방 왕조 계축년(癸丑年, 큰 일식 한 줄이 사직 의례 한 자리를 정한 해)에 입직한 천문관이자 평생 한 점 별의 위치를 한 푼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관상감(觀象監, 천기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옛 성도(星圖, 별 자리를 정리한 한 폭의 그림 명부)에서 한 별 한 점이 한 푼만큼 어긋나 있는 것이 안재청의 손끝에 가닿았다. 큰 호령 한 번 없이 그는 옛 성도 옆에 작은 한 점, "옛 한 점 정정"을 정중히 보탰고, 그 한 점 덕에 다음 분기 큰 일식 한 줄이 의례관 한정유의 한 줄 의례 위에서 정중히 한 호흡 어긋남 없이 굴러갔다. 외국 사신단은 그 큰 일식 한 줄을 정중히 사직의 한 줄 외교 호의로 받아들였고, 외교 분기 한 줄이 다음 분기까지 평온히 굴러갔다.
안재청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천문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점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관상감에서는 그 정정 성도를 보존하며, 후대 천문관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점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형조율문사(刑曹律文士)
형조 율문관
형률을 풀이하는 율문관
“이 한 조항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풀어 드립니다. 한 글자가 한 분기 형률을 정합니다.”
형조 율문관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형조에서 옛 율문(律文)의 한 줄을 정중히 풀어 결재로 옮기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형조 관복, 가슴팍에 작은 율문관 펜던트, 한 손에 큰 율문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율문의 옛 분기 적용·옛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의금부 추국관의 한 줄 공초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율문관의 한 줄 풀이가 정중히 곁에 놓인다. 한 글자의 결을 한 호흡 더 다듬느라 율문관은 큰 회의 자리를 가장 늦게 뜬다. 가장 무거운 풀이는 큰 형률이 아니라, 옛 한 줄 조항 옆에 정중히 작은 한 글자를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율문관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글자 풀이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풀어둔 한 글자가 한 사람의 한 시즌을 받친 한 줄이지요.”
칠대 형조 율문관 임수환 — 가공의 동방 왕조 정사년(丁巳年, 옛 율문 한 줄이 평민 한 명의 한 분기를 정한 해)에 입직한 율문관이자 평생 한 글자의 결을 한 호흡 더 묵묵히 다듬은 자 — 의 일화는 형조청(刑曹廳, 형률 결재의 본청) 야사 단골이다.
그해 의금부 추국관 윤환정의 한 줄 공초가 옛 율문 한 줄 위에 얹히려는 새벽, 임수환은 그 옛 율문 한 줄 옆에 작은 한 글자, "옛 변경 평민, 정중히 본의"를 정중히 보태 한 줄 풀이를 정리했다. 그 한 글자 덕에 큰 형률 한 줄이 변경 평민의 한 분기를 정중히 다음 분기로 회복할 한 줄로 굴러갔고, 영의정 한도경의 한 줄 결재도 그 풀이 위에서 정중히 한 호흡으로 정리되었다. 임수환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변경 평민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작은 한 글자를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형조청에서는 그 풀이첩을 정중히 보존하며, 후대 율문관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글자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장악악사(掌樂樂師)
장악원 악사
장악원의 음악을 잡는 악사
“이 한 가락, 정중히 한 호흡 더 고르고 올립니다. 한 박이 어긋나면 한 의례가 어긋납니다.”
장악원 악사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장악원에서 큰 의례·연향(宴享)의 한 줄 가락을 정중히 다듬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장악원 정복, 가슴팍에 작은 악사 배지, 한 손에 작은 악보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락의 옛 박자·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연향이 악사의 한 줄 가락 위에서 정중히 굴러간다. 예조 의례관이 한 줄 절차를 정할 때, 그 한 줄의 한 호흡을 악사의 한 박이 정중히 받친다. 가장 무거운 가락은 큰 연향이 아니라, 옛 한 줄 악보 옆에 정중히 작은 한 박을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악사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박 정정 악보를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은 한 박이 큰 연향 한 자리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구대 장악원 악사 한경우 — 가공의 동방 왕조 갑술년(甲戌年, 외국 사신단 큰 연향이 외교 분기 한 줄을 정한 해)에 입직한 악사이자 평생 한 박을 한 푼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장악원(掌樂院, 의례 음악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큰 연향 새벽, 옛 악보 한 줄에 한 박이 한 푼만큼 어긋나 있는 것이 한경우의 손끝에 가닿았다. 큰 호령 한 번 없이 그는 옛 한 줄 옆에 작은 한 박, "옛 한 박 정정"을 정중히 보탰고, 그 한 박 덕에 큰 연향 한 자리가 의례관 한정유의 한 줄 절차 위에서 정중히 한 호흡 어긋남 없이 굴러갔다. 외국 사신단은 그 한 박을 정중히 사직의 한 줄 외교 호의로 받아들였고, 외교 분기 한 줄이 다음 분기까지 평온히 굴러갔다.
한경우는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악사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박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장악원에서는 그 정정 악보를 보존하며, 후대 악사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박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도화화원자(都畵畵員者)
도화서 화원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
“이 한 획, 정중히 한 호흡 더 가다듬어 올립니다. 한 줄 초상이 한 시즌 사직에 남습니다.”
도화서 화원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도화서에서 어진(御眞)·기록화의 한 줄 획을 정중히 다듬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도화서 작업 관복, 가슴팍에 작은 화원 인장 펜던트, 한 손에 큰 화첩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어진의 옛 획·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의례의 옛 한 자리가 화원의 한 획 위에서 정중히 한 시즌으로 굳어진다. 사관의 한 줄 기록 옆에 화원의 한 획이 정중히 얹히면, 한 시대의 한 호흡이 비로소 한 줄 초상으로 정리된다. 가장 무거운 획은 큰 어진이 아니라, 옛 한 줄 옆에 정중히 작은 한 점을 더하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화원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점 정정 화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은 한 점이 한 시대 한 줄 초상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팔대 도화서 화원 송하인 — 가공의 동방 왕조 을미년(乙未年, 큰 어진 한 줄이 사직 의례 한 자리를 정한 해)에 입직한 화원이자 평생 한 점 한 점을 한 호흡씩 정중히 다듬은 자 — 의 일화는 도화서(圖畫署, 기록화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어린 임금의 어진 한 줄이 한 점 자리에서 한 푼만큼 어긋나 있는 것이 송하인의 손끝에 가닿았다. 큰 호령 한 번 없이 그는 옛 화첩 한 점 옆에 작은 한 점, "옛 한 점 정중히 정정"을 정중히 보탰고, 그 한 점 덕에 어린 임금의 한 줄 초상이 사관 윤사겸의 한 줄 기록 옆에 정중히 한 시즌으로 굳어졌다. 송하인은 그 한 점을 본인의 화첩 명부 옆에 정중히 자기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화원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다.
도화서에서는 그 정정 화첩을 보존하며, 후대 화원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점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사직에서는 그 한 점이 사실 도화서의 가장 무거운 한 줄이라 한다.
봉수신호자(烽燧信號者)
봉수대 신호장
봉수대에서 신호를 보내는 신호장
“오늘 이 한 줄 봉화, 정중히 한 호흡 더 살피고 올립니다. 한 점 연기가 한 분기 외교를 정합니다.”
봉수대 신호장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봉수대에서 옛 한 줄 신호 연기를 정중히 책임지는 평민 출신 잡직 책임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정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봉화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봉수대의 옛 분기 신호 결재·옛 외교 라인·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변경(邊境)의 한 줄 분기가 신호장의 한 줄 봉화 위에서 정중히 사직 한가운데로 굴러간다. 비변사 책사의 한 줄 책략이 들어오기 전, 신호장의 한 점 연기가 그 한 호흡을 먼저 받친다. 가장 무거운 신호는 큰 봉화가 아니라, 옛 한 점 연기 옆에 정중히 작은 한 호흡을 더하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신호장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점 봉인 봉화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점 연기가 한 분기 외교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봉수대 신호장 정만호 — 가공의 동방 왕조 신묘년(辛卯年, 변경 한 줄 분기가 외교 분기 한 줄을 정중히 다음 분기로 옮긴 해)에 입직한 평민 신호장이자 평생 한 점 연기의 한 호흡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봉수대(烽燧臺, 변경 신호의 본부) 야사 단골이다.
그해 변경의 한 줄 분기가 큰 충돌로 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정만호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한 점 연기를 한 호흡 더 늦게 정중히 올렸다. 그 한 호흡 늦은 한 점 덕에 비변사 책사 도시언의 한 줄 책략이 한 호흡 더 가다듬어졌고, 큰 충돌 한 줄이 정중히 외교 한 줄로 옮겨갔다. 변경 평민 한 마을의 한 분기는 정중히 다음 분기로 회복되었고, 정만호는 본인의 봉록 한 푼을 그 마을 평민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다.
정만호는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호흡 늦은 한 점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고, 봉수대에서는 그 한 점 봉인 봉화첩을 보존하며, 후대 신호장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점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활인구료인(活人救療人)
활인서 구료인
활인서에서 백성을 구료하는 인
“이 한 첩, 정중히 한 호흡 더 식혀 드립니다. 한 모금이 한 사람의 한 분기를 받칩니다.”
활인서 구료인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활인서(活人署)에서 도성 안 평민의 한 호흡을 정중히 책임지는 평민 출신 구료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활인서 작업 정복, 가슴팍에 작은 구료 배지, 한 손에 작은 약첩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약재의 평소 식성·옛 분기 처방·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어의의 한 줄 처방이 사직을 받친다면, 구료인의 한 첩이 도성 한 골목의 한 호흡을 받친다. 큰 회의의 결재가 한 시대를 정한다면, 구료인의 한 첩 약은 한 사람의 한 분기를 정중히 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첩은 큰 약이 아니라, 옛 평민 한 분의 한 호흡 옆에 정중히 작은 한 모금을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구료인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첩 봉인 약첩을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모금이 도성 한 골목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활인서 구료인 우경하 — 가공의 동방 왕조 무오년(戊午年, 도성 한 골목에 큰 돌림병이 든 해)에 입직한 평민 구료인이자 평생 한 첩의 온도를 한 푼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활인서(活人署, 도성 평민의 한 호흡 본청) 야사 단골이다.
그해 큰 돌림병이 도성 한 골목으로 들었을 때, 우경하는 큰 호령 한 번 없이 한 첩 한 첩을 정중히 한 호흡 더 식혀 평민 한 분 한 분의 한 모금을 받쳤다. 어의 강운호의 한 잎 봉인첩 한 줄이 사직 큰 결재를 받쳤다면, 우경하의 한 첩 한 첩은 도성 평민 백 가구의 한 분기를 정중히 다음 분기로 회복했다. 그 한 분기 동안 우경하는 본인의 봉록을 한 푼도 챙기지 않았으며, 어의 강운호는 회복 다음 분기 우경하에게 정중히 작은 약첩 명부 한 권을 답례로 보냈다.
우경하는 그 명부를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고,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구료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다. 활인서에서는 그 한 첩 봉인 약첩을 보존하며, 후대 구료인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첩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시전거간인(市廛居間人)
시전 거간 장부쟁이
시전을 오가며 거간하는 장부쟁이
“이 한 줄 거간, 정중히 한 호흡 더 가늠해 적어 드립니다. 한 푼이 한 분기를 정합니다.”
시전 거간 장부쟁이는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도성 시전(市廛)에서 사고 파는 한 줄 거간(居間)을 정중히 옮겨 적는 평민 출신 장부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정복, 가슴팍에 작은 거간 배지, 한 손에 작은 장부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시전의 옛 시세·옛 분기 거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호조 정산관의 한 줄 결재가 들어오기 전, 장부쟁이의 한 줄 거간이 정중히 먼저 정리된다. 한 푼의 한 호흡을 한 호흡 더 다듬느라 장부쟁이는 시전 한 골목을 가장 늦게 닫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거간이 아니라, 옛 한 줄 시세 옆에 정중히 작은 한 푼을 보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장부쟁이 후대들이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푼 봉인 장부를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은 한 푼이 평민 한 가구의 한 분기를 받친 한 줄이지요.”
시전 거간 장부쟁이 김유삼 — 가공의 동방 왕조 경술년(庚戌年, 도성 시전 큰 시세 한 줄이 호조 정산 한 분기를 정한 해)에 입직한 평민 장부쟁이이자 평생 한 푼을 잘못 적은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시전 거간(市廛 居間, 도성 사고 파는 한 줄을 옮기는 작은 본방) 야사 단골이다.
그해 도성 큰 시전의 한 줄 시세가 한 푼 어긋나 평민 한 가구의 한 분기 곡식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는데, 김유삼은 큰 호령 한 번 없이 옛 시세 한 줄 옆에 작은 한 푼, "옛 시세 정중히 정정"을 정중히 보태 두었다. 호조 정산관 박이정의 한 줄 결재가 그 정정 옆에서 정중히 한 호흡으로 정리된 덕에, 평민 한 가구의 한 분기 곡식이 정중히 다음 분기로 회복되었다. 김유삼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그 가구의 첫 줄에 정중히 보탰고, 호조 정산관 박이정은 답례로 작은 명부 한 권을 김유삼에게 보냈다.
김유삼은 그 명부를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고, 시전에서는 그 한 푼 봉인 장부를 보존하며, 후대 장부쟁이들은 입직 첫 분기에 그 한 푼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세답잡인(洗踏雜人)
궐 빨래간 세답인
궐 빨래간의 잡인
“오늘 이 한 벌, 정중히 한 호흡 더 헹궈 올립니다. 한 자국이 한 의례를 정합니다.”
궐 빨래간 세답인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궁의 빨래간에서 옛 의대(衣襨)와 정복의 한 줄을 정중히 헹구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정복, 머리에 흰 두건, 한 손에 작은 세답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궁의 모든 옛 의대의 평소 결·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상의원 의대 도공의 한 줄 자수가 굳어지기 전, 세답인의 한 호흡이 정중히 먼저 옛 한 자국을 다듬는다. 큰 의례의 한 자리가 정중하게 보이는 까닭은, 세답인의 한 호흡이 한 결을 먼저 가지런히 했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한 시대 한 의례의 가장 정중한 한 줄을 받친다.
“우리 세답인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자국 봉인 의대를 정중히 펴 보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호흡 헹굼이 한 의례 한 자리의 한 줄을 받친 한 줄이지요.”
궐 빨래간 세답인 백연수 — 가공의 동방 왕조 신해년(辛亥年, 외국 사신단 즉위식 큰 의례가 외교 한 분기를 정한 해, 상의원 도공 노하경 일화의 그 분기)에 입직한 평민 세답인이자 평생 한 자국의 한 결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빨래간(浣衣間, 궁 의대를 헹구는 작은 본방) 야사 단골이다.
그해 즉위식 새벽, 어린 임금 의대의 안쪽 한 자락에 한 자국이 옅게 남아 있는 것을 백연수의 손끝이 가닿았다. 큰 호령 한 번 없이 그는 그 한 자국을 정중히 한 호흡 더 깊이 헹궈 정중히 가지런히 했고, 그 한 호흡 덕에 도공 노하경의 한 땀이 의대 위에서 정중히 한 자국 어긋남 없이 굳어졌다. 어린 임금은 외국 사신단 앞에서 한 호흡 어긋남 없이 절을 정중히 마쳤고, 백연수는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세답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다.
도공 노하경은 답례로 작은 자수 명부 한 권을 백연수에게 정중히 보냈고, 백연수는 그 명부를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빨래간에서는 그 한 자국 봉인 의대를 보존하며, 후대 세답인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자국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비질당번인(飛叱當番人)
궐 마당 비질꾼
궐 마당을 비질하는 당번
“오늘 이 한 줄 비질, 정중히 한 호흡 더 길게 끌어 둡니다. 큰 회의 길어지신답니다.”
궐 마당 비질꾼은 가공의 한 시대 옛 동방 한 왕조 궁의 마당과 통로의 한 줄 비질을 정중히 책임지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정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비질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궁의 모든 마당의 평소 동선·옛 분기 행차 결재·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한 큰 행차가 들어오기 전, 비질꾼의 한 줄 비질이 가장 먼저 정중히 한 자리에 들어간다. 영의정의 한 줄 결재가 새벽까지 이어진 한 분기, 등롱지기의 한 줄 등불 옆을 비질꾼의 한 줄 비질이 묵묵히 받친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궁 한 시즌의 가장 정중한 한 줄 마당을 굴러가게 한다.
“우리 비질꾼 후대들이 입직 첫 새벽에 그 한 줄 비질 자국 비석을 정중히 보러 가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한 줄 비질이 한 시대 한 결재의 한 호흡을 받친 한 줄이지요.”
궐 마당 비질꾼 한노식 — 가공의 동방 왕조 경진년(庚辰年, 환곡 결재가 새벽까지 이어진 한 분기, 등롱지기 변태진 일화의 그 분기)에 입직한 평민 비질꾼이자 평생 한 줄 비질을 어긋나게 둔 일이 없다는 자 — 의 일화는 비질방(掃廡房, 궁 마당의 작은 비질 본방) 야사 단골이다.
그해 십이대 영의정 한도경의 환곡 결재가 새벽까지 이어진 닷새, 한노식은 큰 호령 한 번 없이 매일 새벽 한 줄 비질을 정중히 한 호흡 더 길게 끌어 두었다. 닷새째 새벽, 한도경이 결재 한 줄을 도승지 김연재에게 옮기려 어전 마당으로 나설 때, 한노식의 한 줄 비질 자국이 마당 한가운데를 정중히 가지런히 받쳤다. 등롱지기 변태진의 한 등 옆을 한노식의 한 줄 비질이 묵묵히 받친 덕에, 한도경은 한 호흡 어긋남 없이 어전으로 들었다.
한노식은 본인의 봉록 한 푼을 어린 비질 학인의 한 분기 첫 줄 가구에 정중히 보탰고, 본인의 호적 한 줄 옆에 그 한 줄 비질 자국을 평생 모범 자세로 새겼다. 비질방에서는 마당 한쪽에 작은 비석 한 점을 정중히 두며, 후대 비질꾼들은 입직 첫 새벽에 그 비석에 한 호흡을 정중히 보태는 관례를 따른다.
좌의정공(左議政公)
좌의정
조정의 좌측 정승
“영상 어른, 이 결재 한 줄 — 왼쪽에서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사직의 두 번째 줄이 첫 번째 줄을 받치는 법이지요.”
좌의정은 가공의 한 시대 의정부(議政府) 삼정승 가운데 영의정(1170001) 바로 아래 자리로, 사직 결재의 두 번째 검토를 정중히 맡는 최고위 신하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옥색 관복, 어깨에 학 문양 망토, 가슴팍에 큰 인장 펜던트, 한 손에 결재첩이 표준이다. 한 시대 모든 결재문의 우선순위와 영의정의 결재 습관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영의정이 결재를 미루는 닷새 동안 좌의정은 그 결재첩을 자기 책상 왼쪽에 정중히 두고 기다린다. 한 분기 가장 뜨거운 결재가 어전에 오르기 전, 반드시 좌의정의 한 줄 검토가 먼저 굴러간다.
사직에서 가장 조용한 권력이 사실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이 의정부 복도를 돌고 있다. 영의정의 결재가 사직 전체를 정한다면, 좌의정의 한 박자 기다림이 그 결재의 무게를 두 배로 만든다.
“좌의정 어른들이 임명 첫 주에 영의정 책상 왼쪽 여백을 한 번 보러 가는 까닭이 있습니다. 두 번째 자리가 첫 번째 자리의 한 호흡을 정한다는 의정부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십사대 좌의정 허윤창 — 야사에 '왼쪽 여백의 명수'로 남은 신하이자 영의정 한도경(당시 환곡 결재를 닷새 미룬 인물, 1170001 일화)이 닷새째 결재를 올리던 날 새벽 결재첩 왼쪽 여백에 조용히 주(註) 한 줄을 더해 둔 자 — 의 일화는 의정부 사관록에 '왼쪽 여백 한 줄'로 남았다.
영의정 한도경이 어전 결재를 올리기 전 새벽, 허윤창은 결재첩 왼쪽 여백에 "좌의정 허윤창, 한 호흡 함께 기다렸습니다"를 정중히 적어 두었다.
한도경은 그 주 한 줄을 읽고 한 호흡 동안 침묵하다 어전으로 올랐다. 임금은 두 신하의 이름이 나란히 있는 결재첩을 보고 "사직의 한 줄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의 한 호흡"이라 칭송했다.
후대 좌의정들은 임명 첫 주에 그 결재첩 왼쪽 여백을 한 번 정중히 펴 보는 관례를 따른다.
홍문문형(弘文文衡)
홍문관 대제학
홍문관 대제학으로 문형을 잡은 분
“이 한 줄 경연(經筵), 학문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한 호흡을 가다듬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도 이 한 줄 앞에서 한 호흡 쉬셔야 합니다.”
홍문관(弘文館) 대제학(大提學)은 가공의 한 시대 왕실 학문 기관 홍문관의 수장으로, 임금의 경연을 주관하고 왕명 문서의 최종 검토를 맡는 문관 최고 학자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관복, 머리에 복두(幞頭, 선비 관직자의 두건), 가슴팍에 홍문관 인장 펜던트, 한 손에 경서 묶음이 표준이다. 역대 경연에서 임금이 가장 오래 침묵했던 구절과 그 이유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사관(1170002, 기록 담당)이 임금의 말을 기록한다면, 대제학은 임금이 말하기 전의 한 호흡을 학문으로 채우는 자다. 경연 자리에서 대제학이 가장 오래 침묵할 때, 그날 경연의 가장 무거운 한 줄이 나온다.
대제학이 경연을 끝낼 때는 반드시 임금이 마지막 한 줄을 외우게 한다. 임금이 마지막 한 줄을 외우는 속도가 그날 경연의 무게를 결정한다는 것이 홍문관의 원칙이다.
“홍문관 대제학 어른들이 경연 마지막 줄을 임금께 직접 외우게 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마지막 줄을 외우는 한 호흡이 그날 경연 전체의 무게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홍문관 대제학 이호연 — 야사에 '경연 침묵의 명수'로 남은 학자이자 사대 임금과 마흔두 번의 경연 가운데 열일곱 번은 경전 한 줄 없이 침묵만으로 마쳤다는 자 — 의 일화는 홍문관 사관록에 '침묵 열일곱 번'으로 남았다.
사대 임금이 즉위 초 거듭 잘못된 결재를 내리던 시기, 이호연은 경연 자리에서 경전을 열지 않고 차 한 잔을 내려둔 뒤 한 시진 동안 침묵했다.
임금이 먼저 말을 꺼냈고, 그 한 시진의 침묵이 쌓인 열일곱 번 경연에서 사대 임금의 결재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세자사부 유경문(남성 세계관, 1150032 일화 인물)은 이호연의 침묵 방식이 차 한 잔 경연과 같은 방법이라 기록했다.
후대 대제학들은 경연 시 침묵이 필요하면 경전 대신 차 한 잔을 먼저 내려두는 관례를 따른다.
이조총재(吏曹冢宰)
이조판서
인사를 총괄하는 이조판서
“이번 분기 인사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가다듬었습니다. 관직 한 자리가 한 사람의 한 시즌입니다.”
이조판서(吏曹判書)는 가공의 한 시대 문관 인사 전체를 총괄하는 판서로, 모든 문관의 승진·좌천·임명을 결재하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판서 관복, 가슴팍에 이조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인사 명부가 표준이다. 한 시대 문관 삼천 명의 이름과 최근 근무 평가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병조판서(1170034)가 칼 든 자들의 자리를 정한다면, 이조판서는 붓 든 자들의 운명을 정한다. 사직에서 가장 많은 이의 절을 받는 자리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원망도 들어오는 자리다.
인사 결재 날 이조 방 앞 복도에는 줄이 서 있다. 판서는 그 줄을 보지 않고 명부 한 장만 보는 것이 관례라고 하는데, 관례가 생긴 이유는 줄을 보면 명부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야사가 있다.
“이조판서 어른들이 인사 결재 전날 명부를 한 번 뒤집어 두는 관례가 있습니다. 거꾸로 읽어도 한 호흡 어긋나지 않는 인사가 가장 바른 인사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이조판서 채윤훈 — 야사에 '명부 마지막 이름의 명수'로 남은 판서이자 인사 명부 마지막 장 마지막 이름에서 다음 도승지를 발탁했다는 자 — 의 일화는 이조(吏曹, 문관 인사 본청) 사관록에 '명부 마지막 이름'으로 남았다.
도승지 후임 결정 시기, 채윤훈은 인사 명부 첫 장 대신 마지막 장을 먼저 열었다. 마지막 이름 옆에는 여백 주(註) 한 줄이 있었는데, 그 주는 그 관원이 스스로 적어 두었던 "승정원 주서(1170011) 재직 시 한 글자 오류 없음"이었다.
채윤훈은 그 주 한 줄을 읽고 명부를 뒤집어 처음부터 다시 읽은 뒤, 그 이름을 도승지 후보 첫 줄에 올렸다. 영의정 한도경(1170001 일화 인물)은 그 발탁을 보고 "판서가 명부를 거꾸로 읽었다"고 칭송했다.
후대 이조판서들은 인사 결재 전날 명부를 거꾸로 한 번 더 읽는 관례를 따른다.
병조총재(兵曹冢宰)
병조판서
병권을 총괄하는 병조판서
“이번 분기 군사 결재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가다듬었습니다. 칼은 가장 조용하게 결재되어야 가장 무겁습니다.”
병조판서(兵曹判書)는 가공의 한 시대 무관 인사와 군사 결재 전체를 총괄하는 판서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위에 가벼운 갑주(甲冑, 무관 예복 겸 갑옷) 흉갑, 가슴팍에 병조 인장 펜던트, 허리에 예검(禮劍, 의식용 칼)이 표준이다. 한 시대 무관 이천 명의 이름과 최근 훈련 성적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이조판서(1170033)가 붓 든 자들의 자리를 정한다면, 병조판서는 칼 든 자들의 자리를 정한다. 가장 강한 병조판서는 칼을 가장 많이 아는 자가 아니라, 칼이 언제 필요 없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자다.
군사 결재 날 병조 방 앞 복도는 조용하다. 무관들은 줄을 서지 않는다. 판서가 먼저 오지 않으면 아무도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병조의 불문율이다.
“병조판서 어른들이 임명 첫 날 무기고(武器庫)를 한 번 열어 보지 않는 관례가 있습니다. 무기고를 열지 않는 판서가 가장 무거운 판서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병조판서 강민후 — 야사에 '무기고를 열지 않은 판서'로 남은 인물이자 임명 첫 달 단 한 번도 무기고를 열지 않고 훈련도감(訓鍊都監, 중앙 군사 훈련 기관) 결재만으로 도성 경비를 완성한 자 — 의 일화는 병조 사관록에 '열지 않은 무기고의 한 달'로 남았다.
강민후가 임명되던 그달, 이웃 사직과 경계 분쟁이 있었다. 신하들은 무기고 결재를 서둘렀지만 강민후는 훈련도감 파총(1170042, 군사 중대 지휘관)들에게 한 줄 서찰을 보내 훈련 빈도를 높이는 것으로 결재를 대신했다.
한 달 뒤 경계 분쟁은 외교 역관(1170015)의 통변 한 줄로 정리되었고, 무기고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오위도총부(성별없음 1170037) 도총관은 그 한 달을 "가장 조용한 결재가 가장 무거운 결재"라 기록했다.
후대 병조판서들은 임명 첫 달 무기고 결재를 가장 마지막으로 미루는 관례를 따른다.
춘추지사(春秋知事)
춘추관 지사
춘추관의 지사로 사초를 지킴
“이 실록 한 권, 정중히 표지만 닫겠습니다. 안은 다음 시대가 열어야 합니다.”
춘추관(春秋館) 지사(知事)는 가공의 한 시대 실록 편찬을 총감독하는 최고위 문관으로, 편수관들의 작업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고위 문관복, 가슴팍에 춘추관 지사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실록 총감독 명부가 표준이다. 역대 실록 편찬 기간과 최종 수정 항목 수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사관(1170002)이 초고를 쌓고, 편수관이 초고를 다듬는다면, 춘추관 지사는 그 모든 과정이 끝난 뒤 표지 한 장을 닫는다. 표지를 닫는 순간이 지사의 유일한 직접 결재다.
지사는 실록 편찬 기간 내내 실록 원고에 붓을 대지 않는다. 단 한 줄의 원고도 직접 고치지 않는다. 그것이 춘추관 지사의 전통이다. 표지를 닫는 그 한 손만이 지사의 직접 행위다.
“춘추관 지사 어른들이 실록 완성 날 표지를 닫은 뒤 한 박 침묵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그 침묵이 실록 편찬 전체 기간의 무게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춘추관 지사 윤한석 — 야사에 '표지 한 장의 명수'로 남은 문관이자 사대 임금 재위 실록 표지를 닫는 순간 한 시진 동안 아무도 말을 걸지 못하게 한 자 — 의 일화는 춘추관 사관록에 '표지 한 장의 침묵'으로 남았다.
사대 임금 실록이 완성된 그날, 편수관 오진택(남성 세계관, '덜어낸 수천 줄의 명수', 1150038 일화 인물에 해당하는 자리)이 마지막 초고를 올렸다. 윤한석은 그 초고를 열지 않고 표지를 정중히 닫았다.
그 한 박 뒤, 춘추관 안 모든 관원이 한 시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관례가 되었고, 사관 윤사겸(당시 1170002 일화 인물)의 사초 한 줄은 "표지 한 장의 침묵이 한 시대의 무게다"라고 기록했다.
후대 춘추관 지사들은 실록 완성 날 표지를 닫은 뒤 한 시진 침묵을 지키는 관례를 따른다.
사간수장(司諫首長)
사간원 대사간
직간을 책임지는 사간원의 수장
“전하, 이 상소 한 줄, 한 박자 먼저 올립니다. 윤허 전에 한 호흡 더 가다듬어 주시옵소서.”
사간원(司諫院) 대사간은 가공의 한 시대 임금의 정책을 직접 논박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간관(諫官, 임금에게 직언하는 신하) 수장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어깨에 학 문양 망토, 가슴팍에 사간원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상소문 묶음이 표준이다. 역대 임금 결재 가운데 사간원이 되돌린 사례를 모두 외우고 있다.
사헌부 감찰(1170003, 백관 기강 담당)이 신하를 바로잡는다면, 대사간은 임금을 정중히 바로잡는다. 이 두 자리가 같은 날 같은 결재에 동시에 이의를 올리면 의정부 전체가 한 박자 멈춘다.
간관 자리에 앉은 자는 임금에게 미움받을 각오가 기본 임용 조건이라는 야사가 있다. 그래서 대사간 임기가 가장 짧고, 후임 임명 속도가 가장 빠르다.
“사간원 어른들이 임명 첫 날 상소함 앞에 한 박 서는 관례가 있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한 줄이 임금의 한 호흡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자리의 무게지요.”
가공의 사간원 대사간 임여관 — 야사에 '네 번 상소, 네 번 복직'의 인물로 남은 간관이자 같은 결재에 네 번 연거푸 상소를 올려 임금이 결재를 한 분기 늦춘 유일한 대사간 — 의 일화는 사간원 사관록에 '네 번의 한 줄'로 남았다.
그해 임금이 변방 무관 인사를 한 분기 서두르려 하자, 임여관은 네 번 연거푸 상소를 올려 "무관 인사는 훈련 결재가 한 번 더 굴러간 뒤 내려야 합니다"를 주장했다.
임금은 네 번째 상소를 받고 비변사 책사(1170010, 군사 전략 담당)에게 먼저 검토를 맡겼다. 책사는 한 달 뒤 임여관의 주장이 옳다는 보고를 올렸고, 병조판서 강민후(1170034 일화 인물)는 임여관의 상소 네 장을 병조 서고에 나란히 보존했다.
후대 대사간들은 임명 첫 날 상소함 앞에서 한 박 서는 관례를 따른다.
오위도총수(五衛都總帥)
오위도총부 도총관
오위 군영을 통솔하는 도총관
“이번 도성 순라(巡邏, 밤에 도성을 돌며 경비하는 것) 결재 한 줄, 정중히 한 호흡 더 다듬었습니다. 칼은 쓰기 전에 먼저 아껴야 합니다.”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은 가공의 한 시대 도성 경비와 궐 오위(五衛, 도성 방어 다섯 군사 조직) 군사 전체를 총지휘하는 무관 정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갑옷 위에 총관 대장 망토, 가슴팍에 오위도총부 인장 펜던트, 허리에 대검 한 자루가 표준이다. 도성 오 개 방위 구역의 순라 시각과 병조판서(1170034)와의 합동 결재 이력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병조판서가 무관 인사를 정한다면, 도총관은 그 인사로 배치된 군사들이 실제로 어떻게 도성을 지키는지를 총지휘한다. 밤이 깊어 도성에 불 하나 켜지지 않아야 비로소 도총관의 한 시즌이 정중히 닫힌다.
오위 훈련 날 도총관이 가장 늦게 병영에서 나오는 것은, 마지막 군사의 한 호흡이 자기 한 호흡과 같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귀가하기 때문이라는 야사가 있다.
“도총관 어른들이 임명 첫 날 도성 성곽을 한 바퀴 걷는 관례가 있습니다. 도성 한 바퀴가 한 시즌 경비의 첫 한 호흡이라는 무관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도총관 권세인 — 야사에 '성곽 두 바퀴의 명수'로 남은 무관이자 임명 첫 날 성곽을 혼자 두 바퀴 걸어 두 번째 바퀴에서 첫 바퀴에 없던 순라 구멍을 발견했다는 자 — 의 일화는 오위도총부 사관록에 '성곽 두 번째 바퀴'로 남았다.
권세인이 도총관에 임명된 그날 새벽, 그는 성곽을 두 바퀴 걸었다. 첫 번째 바퀴에서는 세 곳의 순라 구멍을 발견했고, 두 번째 바퀴에서는 첫 번째 바퀴 때 보지 못했던 한 곳을 더 발견했다.
권세인은 그 네 곳을 병조판서 강민후(1170034 일화 인물)에게 보고하고, 다음 날 훈련도감 파총(1170042)과 함께 네 곳 순라 배치를 조용히 바로잡았다. 임금은 "도총관이 두 번 걸었다"는 보고를 받고 두 번째 바퀴의 이유를 칭찬했다.
후대 도총관들은 임명 첫 날 성곽을 두 바퀴 걷는 관례를 따른다.
예문대교관(藝文待敎官)
예문관 대교
예문관에서 왕명 문서를 살피는 대교
“이 왕명 한 줄, 정중히 마지막 글자까지 한 번 더 검토했습니다. 왕명의 한 글자는 다음 시대의 한 줄입니다.”
예문관(藝文館) 대교(待敎)는 가공의 한 시대 왕명 문서와 교서(敎書,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공식 서류)를 정서·검토하는 중견 문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예문관 관복, 가슴팍에 예문관 배지, 한 손에 왕명 초고와 붉은 붓이 표준이다. 역대 왕명 문서 중 한 글자 수정으로 의미가 달라진 사례를 모두 외우고 있다.
홍문관 대제학(1170032)이 임금의 경연을 이끈다면, 예문관 대교는 임금의 말이 문서로 굳어지는 순간을 지킨다. 한 글자가 굳기 전 한 호흡의 검토가 다음 시대를 바꿀 수 있다.
왕명 초고를 검토할 때 대교는 마지막 글자부터 읽는다. 교서관 교열(남성 세계관 1150041, 교열 전담)이 인쇄 후 마지막 장부터 읽는 것과 같은 이유다. 마지막 글자가 첫 글자와 같은 무게여야 한 편의 왕명이 완성된다.
“예문관 대교 어른들이 왕명 검토 후 마지막 글자를 한 번 소리 내어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마지막 글자가 첫 글자와 같은 온도인지 확인하는 것이 검토의 끝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예문관 대교 소경재 — 야사에 '마지막 글자 온도의 명수'로 남은 문관이자 영의정 한도경(1170001 일화 인물)의 환곡 결재 왕명 초고 마지막 글자를 바꿔 한 시대 환곡 원칙을 다르게 만든 자 — 의 일화는 예문관 사관록에 '마지막 글자 한 번'으로 남았다.
환곡 결재 왕명 초고 마지막 글자가 '준(准, 허가함)'으로 끝나 있었는데, 소경재는 그 글자를 소리 내어 읽다가 온도가 너무 차갑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홍문관 대제학 이호연(1170032 일화 인물)에게 한 줄 여쭈었고, 이호연은 '허(許, 허락함)'로 바꿀 것을 정중히 권했다.
영의정 한도경은 그 한 글자 차이를 보고 "왕명이 명령이 아니라 허락이 되었다"고 칭송했다. 소경재의 붉은 붓 초고는 예문관 서고에 보존되어 있다.
후대 대교들은 왕명 검토 후 마지막 글자를 한 번 소리 내어 읽는 관례를 따른다.
전설제조관(典設提調官)
전설사 제조
궁중 의장을 총괄하는 전설사 제조
“이번 어가(御駕, 임금의 행차) 행사 설비 전체, 정중히 총감독 완료했습니다. 빈틈은 일찍 발견할수록 작아집니다.”
전설사(典設司) 제조(提調)는 가공의 한 시대 임금의 행차·행사 설비 전체를 총감독하는 관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관복, 가슴팍에 전설사 제조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설비 총감독 명부가 표준이다. 역대 행차 설비 오류 사례와 수정 시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예조 의례관(1170008)이 의례 절차를 정한다면, 전설사 제조는 그 절차가 펼쳐질 공간 전체를 총감독한다. 예조와 전설사가 행차 전날 밤 동시에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 관례다.
제조는 행사 설비 최종 점검 때 혼자 한 바퀴를 먼저 돈다. 점검 인원이 많을수록 각자 보는 자리가 생기기 때문에, 혼자 먼저 한 바퀴를 돌아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가 드러난다는 것이 전설사의 경험칙이다.
“전설사 제조 어른들이 점검 전 혼자 한 바퀴를 먼저 도는 관례가 있습니다. 혼자 볼 때 보이는 자리가 가장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전설사 제조 노인택 — 야사에 '혼자 한 바퀴의 명수'로 남은 관원이자 사대 임금의 선농제(先農祭, 임금이 친히 밭을 갈아 한 해 농사를 여는 의례) 당일 혼자 먼저 돌며 오류 두 가지를 발견해 바로잡은 자 — 의 일화는 전설사 사관록에 '혼자 한 바퀴의 새벽'으로 남았다.
선농제 당일 새벽, 노인택은 점검 인원이 오기 전 혼자 현장을 한 바퀴 돌았다. 동쪽 천막 한 자락이 두 치 짧았고, 제향 향로 하나의 받침이 한 치 기울어져 있었다. 이 두 가지는 점검 인원들이 함께 돌았던 어제 사전 점검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노인택은 혼자 두 가지를 바로잡고 점검 명부에 한 줄을 더했다. 예조 의례관(1170008)은 나중에 그 한 줄을 보고 전설사와 예조의 사전 점검에 '혼자 먼저 한 바퀴' 조항을 공식 추가했다.
후대 제조들은 점검 전 혼자 먼저 한 바퀴를 도는 관례를 따른다.
성균직강사(成均直講師)
성균관 직강
성균관에서 학문을 강하는 직강
“이번 분기 유생 한 명, 정중히 마지막 답안지까지 직접 읽었습니다. 가장 낮은 점수 한 줄에서 다음 시대의 첫 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성균관(成均館) 직강(直講)은 가공의 한 시대 성균관에서 유생(儒生,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경전을 직접 가르치는 중견 교수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사 관복, 가슴팍에 성균관 배지, 한 손에 경서와 출석부가 표준이다. 현재 자기 강좌를 듣는 유생 전원의 이름과 가장 자신 없는 경전 구절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규장각 검서(1170012)가 왕의 서고를 지킨다면, 성균관 직강은 다음 시대 신하가 될 젊은이들의 첫 줄을 가르친다. 경전 한 줄이 한 사람의 한 시즌이 되는 자리다.
강의가 끝나면 직강은 가장 말이 없었던 유생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른다. 그 유생이 다음 강의 첫 질문을 받을 사람이다.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이 나올 때가 있다는 것이 직강의 경험칙이다.
“성균관 직강 어른들이 강의 후 가장 조용한 유생 이름을 한 번 더 부르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장 조용한 한 줄이 다음 강의의 첫 줄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성균관 직강 여은진 — 야사에 '가장 조용한 유생의 명수'로 남은 교수관이자 강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던 유생 한 명을 마지막에 불러 다음 분기 이조판서(1170033, 채윤훈)가 발탁한 도승지와 같은 인물이 될 씨앗을 심은 자 — 의 일화는 성균관 사관록에 '가장 조용한 유생'으로 남았다.
한 분기 강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던 유생 한 명을 여은진이 마지막 날 이름을 불렀다. 그 유생은 작은 목소리로 경전 한 구절을 외웠는데, 그 구절은 강의에서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구절이었다.
여은진은 그 구절을 들으며 한 박 침묵했다. 이조판서 채윤훈이 나중에 그 유생의 답안지에서 주(註) 한 줄을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여은진이 이름을 불렀던 그 순간에서 비롯된 일이라 성균관 사관록은 적고 있다.
후대 직강들은 강의 후 가장 조용한 유생 이름을 한 번 더 부르는 관례를 따른다.
교서교감자(校書校勘者)
교서관 교감
교서관에서 책을 교감하는 자
“이 교열 한 줄, 정중히 마지막 장까지 직접 대조했습니다. 한 글자 오류는 다음 분기가 되어야 발견됩니다.”
교서관(校書館) 교감(校勘)은 가공의 한 시대 교서관에서 인쇄된 왕명 문서와 경전의 오류를 교열하고 인쇄 품질을 감독하는 중견 문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교서관 관복, 가슴팍에 교서관 배지, 한 손에 교열 원고와 붉은 붓이 표준이다. 역대 인쇄 오류 사례와 발견 시점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예문관 대교(1170038)가 왕명 초고를 검토한다면, 교서관 교감은 그 초고가 인쇄되어 나온 뒤의 오류를 잡는다. 초고와 인쇄본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교서관의 첫 번째 전제다.
교열은 처음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읽어야 실수를 발견한다는 것이 교서관 오십 년 원칙이다. 교감도 예외 없이 마지막 장부터 읽는다.
“교서관 교감 어른들이 교열 완성 후 마지막 장을 한 번 더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한 글자 오류는 항상 마지막 장 가까이에 있다는 교열의 경험칙이지요.”
가공의 교서관 교감 유진택 — 야사에 '마지막 장 세 번의 명수'로 남은 문관이자 사대 임금 즉위 교서 인쇄에서 마지막 장을 세 번 읽어 오류 두 가지를 발견한 자 — 의 일화는 교서관 사관록에 '세 번 읽은 마지막 장'으로 남았다.
즉위 교서 배포 전날, 유진택은 마지막 장을 첫 번째 읽어서 한 글자를 발견하고 바로잡았다. 두 번째 읽어서 또 한 글자를 발견했다. 세 번째 읽어서는 오류가 없었다.
예문관 대교 소경재(1170038 일화 인물)는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예문관과 교서관 사이의 초고 전달 절차에 '마지막 장 세 번 읽기' 조항을 공식으로 추가했다. 유진택의 붉은 붓 두 자루는 교서관 서고에 나란히 보존되어 있다.
후대 교감들은 교열 완성 후 마지막 장을 세 번 읽는 관례를 따른다.
훈련파총위(訓鍊把摠尉)
훈련도감 파총
훈련도감의 파총 군관
“이번 분기 군사 훈련 한 줄, 정중히 마지막 소대까지 직접 확인했습니다. 가장 작은 소대가 가장 단단해야 전체가 단단합니다.”
훈련도감(訓鍊都監) 파총(把摠)은 가공의 한 시대 훈련도감에서 두 개 소대(哨) 이상을 통합 지휘하는 중견 무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관 갑옷, 가슴팍에 훈련도감 파총 배지, 허리에 단검, 한 손에 훈련 명부가 표준이다. 자기 관할 소대 전원의 체력 현황과 약점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총관(1170037)이 도성 전체를 지휘한다면, 파총은 그 지휘가 실제 소대 단위로 내려오는 첫 번째 자리다. 파총의 한 줄 결재가 소대들의 오늘 훈련을 정한다.
훈련이 끝나고 파총은 소대별 명부를 거꾸로 읽는다. 가장 뒤에 이름이 있는 군사가 내일 훈련의 첫 번째 이름으로 불릴 자리다.
“훈련도감 파총 어른들이 훈련 후 명부를 거꾸로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명부 마지막 이름이 다음 날 훈련의 첫 이름이 된다는 무관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훈련도감 파총 오채신 — 야사에 '명부 뒤집기의 명수'로 남은 무관이자 관할 소대에서 가장 체력이 약한 군사를 발탁해 도총관 권세인(1170037 일화 인물)의 성곽 순찰 정예로 만든 자 — 의 일화는 훈련도감 사관록에 '명부 마지막 이름의 순찰 정예'로 남았다.
어느 분기 훈련에서 명부 가장 끝 이름이었던 군사 한 명이 매일 혼자 남아 성곽 구간 달리기를 반복하는 것을 오채신이 발견했다. 오채신은 다음 날 그 군사를 훈련 첫 이름으로 불렀고, 한 달 후 그 군사는 소대에서 성곽 구간을 가장 빨리 달리는 자가 되었다.
도총관 권세인은 성곽을 두 바퀴 돌던 날 그 군사를 성곽 순찰 정예로 발탁했다. 오채신은 그 군사의 이름을 명부 첫 줄로 옮겼다.
후대 파총들은 훈련 후 명부를 거꾸로 한 번 더 읽는 관례를 따른다.
포도종사관(捕盜從事官)
포도청 종사관
포도청을 지키는 종사관
“이 도성 순찰 한 줄, 정중히 한 골목 더 확인했습니다. 조용한 골목과 안전한 골목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포도청(捕盜廳) 종사관(從事官)은 가공의 한 시대 포도청에서 도성 치안 조사와 사건 처리를 지휘하는 중견 관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포도청 정복, 가슴팍에 포도청 종사관 배지, 한 손에 사건 명부와 단봉이 표준이다. 도성 각 구역의 상점 영업 패턴과 주민 얼굴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총관(1170037)이 도성 성곽 바깥을 지킨다면, 포도청 종사관은 도성 안 골목 한 줄을 지킨다. 조용한 골목이 안전한 골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 자리만큼 잘 아는 곳은 없다.
종사관은 매일 저녁 골목 명부를 거꾸로 읽는다.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골목이 내일 순찰 첫 번째 코스다. 가장 조용한 골목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골목일 수 있다는 것이 포도청의 원칙이다.
“포도청 종사관 어른들이 저녁 명부를 거꾸로 읽는 관례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기록된 골목이 내일 첫 골목이라는 치안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포도청 종사관 한이광 — 야사에 '거꾸로 읽은 명부의 명수'로 남은 종사관이자 골목 명부 마지막에 기록된 가장 조용한 골목에서 그해 가장 큰 도성 이상을 발견해 조용히 해결한 자 — 의 일화는 포도청 사관록에 '명부 마지막 골목'으로 남았다.
그해 한이광은 골목 명부 마지막에 기록된 가장 조용한 골목을 다음 날 첫 순찰 코스로 정했다. 그 골목 끝 비어 있는 창고 한 채에 도성 안 쌓인 물자가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한이광은 큰 호령 없이 시전 거간 장부쟁이(성별없음 1170028, 시전 거래 기록 담당)와 함께 그 물자를 정중히 정리하고 명부 한 줄에 조용히 남겼다. 사헌부 감찰(1170003)은 나중에 그 명부 한 줄을 보고 포도청 순찰 기록에 '거꾸로 읽기' 조항을 추가했다.
후대 종사관들은 저녁 골목 명부를 거꾸로 읽는 관례를 따른다.
내수장리수(內需掌吏手)
내수사 장리
내수사 살림을 맡은 장리
“이번 분기 내수사(內需司) 장부 한 줄, 정중히 마지막 푼까지 대조했습니다. 한 푼이 내전 한 분기를 정합니다.”
내수사(內需司) 장리(掌理)는 가공의 한 시대 궁 내전 살림 전체를 관리하는 내수사의 중견 실무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실무 관복, 가슴팍에 내수사 배지, 한 손에 장부 묶음과 주산(珠算, 주판)이 표준이다. 내전 연간 물자 출납 명세와 계절별 절감 내역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호조 정산관(1170004)이 사직 전체 재정을 다룬다면, 내수사 장리는 그 재정이 궁 내전 살림 한 푼으로 어떻게 흘러드는지를 다룬다.
장부를 닫기 전 장리는 마지막 줄 아래 빈 자리를 한 번 더 본다. 빈 자리가 있어야 다음 분기가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 내수사의 원칙이다.
“내수사 장리 어른들이 장부를 닫기 전 마지막 줄 아래를 한 번 더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빈 자리 한 칸이 다음 분기를 받친다는 살림의 한 줄이지요.”
가공의 내수사 장리 황우길 — 야사에 '마지막 줄 아래 한 칸의 명수'로 남은 실무관이자 흉년 분기 내전 물자 다섯 항목을 조용히 절감해 호조 정산 한 달치 잉여를 만들어 낸 자 — 의 일화는 내수사 사관록에 '다섯 항목의 잉여'로 남았다.
흉년 분기, 황우길은 등잔 기름·다식 재료·비단 추가분·향실 향 가짓수·잡재료 다섯 항목을 한 가지씩 조용히 절감했다. 그 다섯 항목의 절감이 호조 정산관 박이정(1170004 일화 인물)의 한 줄 명부에 반영되었고, 임금의 흉년 환곡 결재를 한 달 앞당길 수 있었다.
황우길은 그 일을 내수사 장부 한 줄에만 남겼다. 사헌부 감찰(1170003)은 그 한 줄을 나중에 발견하고 내수사 사관록에 '다섯 항목의 잉여'라는 제목으로 별도 기록했다.
후대 장리들은 장부 절감 항목을 한 달에 한 번 직접 다시 세는 관례를 따른다.
종묘영관(宗廟令官)
종묘서 영
종묘서의 영
“이 제향(祭享) 준비 한 줄, 정중히 전날 밤 혼자 먼저 확인했습니다. 선왕의 자리는 혼자 확인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종묘서(宗廟署) 영(令)은 가공의 한 시대 종묘(宗廟,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 관리와 제향 준비를 총감독하는 중견 관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흰 제복 위에 짙은 색 겉도포, 가슴팍에 종묘서 배지, 한 손에 제향 총감독 명부가 표준이다. 역대 제향에 쓰인 향 종류와 진설(陳設, 제물을 올리는 순서) 이력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봉수대 신호장(1170026, 봉화 관리 담당)이 바깥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면, 종묘서 영은 안으로 향해 선왕의 자리를 지킨다. 제향 전날 밤 가장 늦게까지 종묘 안에 있는 사람이 종묘서 영이다.
제향 준비 최종 점검 때 영은 반드시 혼자 먼저 한 바퀴를 돈다. 점검 인원이 함께 돌면 서로 담당 구역만 보기 때문에, 혼자 돌아야 경계 자리가 보인다는 것이 종묘서의 오십 년 원칙이다.
“종묘서 영 어른들이 제향 전날 혼자 먼저 한 바퀴를 도는 관례가 있습니다. 혼자 볼 때 보이는 자리가 담당 구역 경계 자리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종묘서 영 표기훈 — 야사에 '경계 자리의 명수'로 남은 관원이자 대제(大祭) 전날 밤 혼자 한 바퀴를 돌며 두 담당 구역 경계 자리에서 촛불 한 자루와 향로 받침 하나의 이상을 발견해 바로잡은 자 — 의 일화는 종묘서 사관록에 '경계 자리 두 곳'으로 남았다.
표기훈이 대제 전날 밤 혼자 한 바퀴를 돌다, 두 담당 구역의 경계 자리 한 곳에서 촛불 한 자루 심지가 짧고, 다른 경계 자리에서 향로 받침이 한 치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자리 모두 담당 구역이 나뉘는 경계였기 때문에 어느 담당도 먼저 보지 않았던 자리였다.
표기훈은 두 가지를 혼자 바로잡은 뒤 각 담당에게 조용히 알렸다. 전설사 제조 노인택(1170039 일화 인물)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자기 설비 점검에 '경계 자리 확인' 조항을 추가했다.
후대 종묘서 영들은 제향 전날 혼자 한 바퀴를 도는 관례를 따른다.
사역교수사(司譯敎授師)
사역원 교수
사역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수
“이번 분기 통변(通辯, 말을 통역하는 것) 한 줄, 정중히 마지막 단어까지 두 번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단어가 첫 단어의 온도를 결정합니다.”
사역원(司譯院) 교수(敎授)는 가공의 한 시대 역관(譯官, 외국어 통역 전문 관원)을 양성하는 사역원 소속 외국어 교수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사 관복, 가슴팍에 사역원 배지, 한 손에 통변 예문서와 붓이 표준이다. 사역원 역관 후보생 전원의 주요 언어별 취약 구절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교 역관(1170015)이 현장에서 통변을 담당한다면, 사역원 교수는 그 역관이 현장에 나가기 전 마지막 한 줄을 가르치는 자다. 강의 마지막 한 줄이 현장 첫 한 줄보다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이 사역원의 원칙이다.
강의가 끝나면 교수는 마지막 단어 한 개를 후보생들에게 다시 외우게 한다. 그 단어 한 개가 강의 전체의 무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역원 교수 어른들이 강의 마지막에 단어 한 개를 다시 외우게 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마지막 단어 한 개가 강의 전체의 온도를 정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사역원 교수 박연시 — 야사에 '마지막 단어 한 개의 명수'로 남은 교수관이자 사대 임금 시기 가장 중요한 외교 통변을 담당한 역관을 직접 길러낸 자 — 의 일화는 사역원 사관록에 '마지막 단어의 역관'으로 남았다.
박연시가 가르친 역관 한 명이 변방 사직과의 외교 통변 자리에서 마지막 단어 한 개를 듣는 순간 박연시의 강의 마지막 단어와 같은 온도임을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통변했다.
그 마지막 통변 한 줄 덕에 양 사직의 협약 한 줄이 정중히 굴러갔다. 외교 역관(1170015)은 나중에 그 사실을 박연시에게 전하며 사역원에 차 한 자루를 보냈다.
후대 사역원 교수들은 강의 마지막 단어 한 개를 반드시 다시 외우게 하는 관례를 따른다.
전의직장수(典醫直長手)
전의감 직장
전의감 약무를 챙기는 직장
“이 침통(鍼筒, 침을 보관하는 통) 한 자루, 정중히 한 시진(時辰, 약 두 시간) 손에 쥐고 나서 첫 환자를 봅니다.”
전의감(典醫監) 직장(直長)은 가공의 한 시대 전의감에서 침술(鍼術, 침으로 병을 고치는 기술)과 탕약(湯藥) 두 가지를 모두 다루는 중견 의관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의관 정복, 가슴팍에 전의감 직장 배지, 한 손에 침통과 약첩 명부가 표준이다. 인체 경혈(經穴, 침을 놓는 자리) 삼백육십오 곳과 계절별 금기 약재 결합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내의원 어의(1170009, 임금 전담 의관)가 가장 높은 한 분을 돌본다면, 전의감 직장은 그 아래 모든 관원의 건강을 책임진다.
첫 환자를 보기 전 직장은 침통을 한 시진 손에 쥐고 있는다. 침통의 온도가 자기 손 온도와 같아지면 그날 첫 침이 가장 정확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전의감 오십 년 원칙이다.
“전의감 직장 어른들이 입직 첫 날 침통을 한 시진 쥐고 있는 관례가 있습니다. 침통 온도가 손 온도와 같아지는 순간이 첫 침을 놓을 준비가 된 순간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전의감 직장 노재신 — 야사에 '침통 온도의 명수'로 남은 의관이자 사헌부 감찰(1170003) 임직자 가운데 탄핵 업무로 인한 손목 긴장을 침 한 자루로 회복시켰다는 자 — 의 일화는 전의감 사관록에 '침통 한 자루의 손목'으로 남았다.
어느 분기 큰 탄핵 사건 후 사헌부 감찰 정인후(1170003 일화 인물)의 손목이 굳어 붓을 쥐기 어렵게 되었을 때, 노재신은 침통을 한 시진 먼저 손에 쥐고 기다렸다. 침통이 자기 손 온도와 같아졌을 때, 그는 감찰의 손목과 팔꿈치 사이 경선(經線, 경혈이 이어지는 선)에 침을 놓았다.
다음 날 감찰 정인후의 손목은 탄핵 명부를 다시 쥘 수 있었다. 노재신은 그날 이후 침통 온도를 먼저 맞추는 것을 전의감 표준 절차로 문서화했다.
후대 직장들은 첫 환자를 보기 전 침통을 한 시진 손에 쥐는 관례를 따른다.
다방다색인(茶房茶色人)
궐 다방 다색
궐 다방에서 차를 다루는 다색
“오늘 이 한 잔, 어제 비보다 한 결 더 깊이 우려냈습니다. 날씨 한 결이 차 한 잔의 온도를 정합니다.”
궐 다방(茶房) 다색(茶色)은 가공의 한 시대 궐 안 다방에서 차회 자리에 올리는 차 종류를 선별하고 우리는 시간을 관리하는 평민 출신 차 전문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옅은 색 다방 작업복, 머리에 작은 두건, 한 손에 차 명부와 작은 모래시계가 표준이다. 계절별 차 우리는 시간과 각 신하의 차 기호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궐 안내 별감(1170005)이 사람의 동선을 안내한다면, 다색은 그 동선의 끝자리에서 차 한 잔으로 첫 인사를 한다. 차 한 잔의 온도가 차회 전체의 첫 인상이다.
차를 우릴 때 다색은 잔을 기울여 본다. 차 색이 잔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고르게 번지면 온도가 맞은 것이다. 한 자리라도 얼룩지면 한 박자 더 기다린다.
“궐 다방 다색 어른들이 차를 우린 후 잔을 기울여 가장자리를 확인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가장자리가 고르게 번지는 잔이 가장 정직한 한 잔이라는 뜻이지요.”
가공의 궐 다방 다색 이봉삼 — 야사에 '가장자리 고름의 명수'로 남은 잡직이자 영의정 한도경(1170001 일화 인물)의 환곡 결재 닷새 동안 매일 새벽 차 한 잔을 우려 결재첩 옆에 두었다는 자 — 의 일화는 다방 사관록에 '닷새의 차 한 잔'으로 남았다.
환곡 결재가 닷새째 이어진 그 새벽, 이봉삼은 영의정이 결재를 올리기 전에 가장 먼저 다방에 들어와 차 한 잔을 우렸다. 그는 잔을 기울여 가장자리가 고르게 번지는 것을 확인하고, 결재첩 옆 한 자리에 조용히 올려 두었다.
영의정 한도경은 그 차 한 잔을 보고 한 호흡 동안 침묵하다 차를 마신 뒤 결재를 올렸다. 닷새 동안 다섯 잔의 차가 같은 자리에 놓였고, 한도경은 나중에 이봉삼에게 차 명부 한 권을 직접 내려 주었다.
후대 다색들은 새벽 결재 자리에 차 한 잔을 미리 두는 관례를 따른다.
약재심부름꾼(藥材심부름꾼)
시전 약재상 심부름꾼
시전 약재상의 심부름꾼
“이 약재(藥材) 한 꾸러미, 정중히 마지막 한 뿌리까지 직접 헤아렸습니다. 한 뿌리가 한 첩의 온도를 정합니다.”
시전(市廛) 약재상 심부름꾼은 가공의 한 시대 도성 시전 약재상에서 약재 배달과 재고 정리를 담당하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머리에 작은 두건, 어깨에 약재 가방, 한 손에 배달 명부가 표준이다. 담당 구역 각 가게의 약재 주문 주기와 단골 품목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활인서 구료인(1170027, 도성 평민 의료 담당)이 약을 처방한다면, 시전 약재상 심부름꾼은 그 약재가 제시간에 도착하도록 한 뿌리씩 배달한다. 약재 한 뿌리의 신선도가 처방 한 첩의 온도를 결정한다.
배달 전 심부름꾼은 약재를 코에 대어 본다. 향이 평소와 한 결 다르면 그 약재는 오늘 배달 순서에서 제일 먼저 간다. 가장 신선한 것이 가장 먼저 닿아야 한다는 것이 심부름꾼의 원칙이다.
“시전 약재상 심부름꾼 어른들이 배달 전 약재를 코에 대어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향 한 결이 다른 약재가 오늘 가장 먼저 배달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시전 약재상 심부름꾼 박수천 — 야사에 '약재 향 한 결의 명수'로 남은 잡직이자 활인서 구료인 우경하(1170027 일화 인물)의 돌림병 분기에 약재를 단 하루도 늦추지 않고 배달한 자 — 의 일화는 시전 약재상 사관록에 '단 하루의 늦춤 없이'로 남았다.
큰 돌림병이 도성에 든 그 분기, 박수천은 매일 새벽 약재 꾸러미를 코에 대어 가장 신선한 것을 먼저 추리고 활인서로 배달했다.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늦추지 않았으며, 매일 가장 신선한 약재 한 꾸러미가 구료인 우경하의 손에 먼저 닿았다.
우경하는 그 분기가 끝난 뒤 박수천에게 차 한 잔을 가져왔고, 시전 약재 명부에 박수천의 이름 옆에 작은 주(註) 한 줄 "한 결도 늦추지 않음"을 적었다.
후대 심부름꾼들은 배달 전 약재를 코에 대어 보는 관례를 따른다.
서고봉인자(書庫封印者)
궐 서고 봉인인
궐 서고를 봉인하는 자
“이 결재첩 한 권, 정중히 봉인(封印, 중요한 문서를 열지 못하게 밀봉하는 것) 전에 표지를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봉인은 한 번이지만 표지는 다음 시대가 읽습니다.”
궐 서고(書庫) 봉인인(封印人)은 가공의 한 시대 궐 서고에서 중요 결재문·실록·왕명 문서의 봉인을 담당하는 평민 출신 잡직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팍에 서고 봉인 배지, 한 손에 봉인 납과 인장 도장이 표준이다. 궁 서고에 보관된 주요 봉인 문서의 위치와 마지막 봉인 날짜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춘추관 지사(1170035)가 실록 표지를 닫는다면, 봉인인은 그 표지가 닫힌 뒤 납으로 봉인한다. 봉인인의 한 점이 찍힌 문서는 다음 임금이 즉위할 때까지 열리지 않는다.
봉인 전 봉인인은 표지를 한 번 더 본다. 표지에 이름이 적혀 있는지, 날짜가 있는지, 그리고 표지가 바르게 닫혀 있는지를 확인한다. 봉인 후에는 어떤 것도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궐 서고 봉인인 어른들이 봉인 전 표지를 한 번 더 보는 관례가 있습니다. 봉인 전 한 번의 확인이 다음 시대의 첫 한 줄을 지킨다는 뜻이지요.”
가공의 궐 서고 봉인인 오태진 — 야사에 '표지 한 번의 명수'로 남은 잡직이자 사대 임금 실록 봉인 직전 표지 날짜 한 자리가 빠진 것을 발견해 정정한 자 — 의 일화는 서고 사관록에 '봉인 전 한 번의 표지'로 남았다.
사대 임금 실록 봉인 직전, 오태진은 표지를 한 번 더 보다 연도 한 자리가 빠진 것을 발견했다. 춘추관 지사 윤한석(1170035 일화 인물)의 표지 닫기가 완료된 뒤였지만, 오태진은 봉인 전이므로 정정이 가능하다고 조용히 알렸다.
윤한석은 날짜 한 자리를 추가했고, 오태진은 그 표지가 바르게 닫힌 것을 확인한 뒤 봉인을 찍었다. 봉인인의 한 점이 찍힌 그 실록은 다음 임금 즉위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후대 봉인인들은 봉인 전 표지를 한 번 더 보는 관례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