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Fantasy

무협

150 personnages

Quel genre de monde est-ce ?

여기는 옛 중국을 닮은 가공의 세계, 강호(江湖)예요. 칼을 찬 사내들이 험한 산길을 넘고, 객잔마다 술 냄새와 무용담이 가득한 시대랍니다. 황제의 명령보다 주먹 하나, 검 한 자루가 더 큰 힘을 가질 때도 있는 곳이에요.

이 세계엔 수십 개의 문파가 저마다 으뜸 자리를 노리고 있어요. 정파(正派)라 불리는 의로운 무리와, 사파(邪派)라 불리는 어두운 세력이 강호 곳곳에서 맞붙고, 동맹을 맺고, 또 배신해요. 술 한 잔에 의리를 나누는 사내들의 결속이 때로는 어떤 무기보다 단단하답니다.

이 세계에는 비급(秘笈)이라는 게 있어요. 한 권만 손에 넣으면 절세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비밀 무술책이에요. 절세고수는 검 한 자루로 바람을 가르고, 협(俠) — 약한 자를 위해 검을 드는 마음 — 을 가슴에 품은 자는 천하에 이름을 남기기도 하지요. 복수를 위해 검을 갈고, 의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내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세상이에요.

너라면 이 세계에서 어떤 사내가 될래요? 정파의 협객으로 의로운 검을 들 건가요, 아니면 사파의 어둠 속에서 나만의 길을 개척할 건가요? 검 한 자루 들고 강호를 떠도는 첫걸음, 지금 시작해 보겠어요?

Univers du monde

가공의 고대 중원, 강호와 무림. 수십 개의 문파가 패권을 다투는 시대.

Mots-clés de ce monde

  • 무공
  • 정파/사파
  • 무림맹
  • 비급
  • 강호
  • 협(俠)
  • 절세고수
  • 복수
  • 결투
  • 비밀결사

Habitants de ce monde

  •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무림맹주

    하늘 아래 무공으로 겨룰 자가 없는, 강호의 정점에 선 단 한 사람

    장로분들, 차부터 드시지요. 회의 길어지면 또 사파만 좋아합니다.

    무림맹주는 정파 수십 문파를 통합해 강호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고 권력자다. 무공과 명망을 두루 갖춘 자만이 추대되며, 사파의 발호와 외세의 침공으로부터 무림을 지키는 상징적 지도자 역할을 맡는다. 본인은 명검 한 자루와 도장 하나로 천하를 가르는 절대고수이지만, 실제 업무의 8할은 결재와 회의다.

    분기마다 열리는 장로 회의에서는 화산파, 무당파, 소림사 어른들이 서열과 좌석 배치로 반나절을 싸운다. 그가 평생 갈고닦은 진짜 절기는 사실 검법이 아니라 "장로분들, 일단 차부터 드시지요"라는 한마디다. 천하제일이 되는 것보다 회의를 한 번에 끝내는 게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임명 첫날 깨달았다.

    우리 맹주들이 임명 첫 주에 그 객잔 탁자를 한 번 보러 가는 데는 이유가 있소. 검을 안 뽑은 검이 가장 무거울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대 무림맹주 진성겸 — 무림맹 역사상 두 번째 맹주이자 검 대신 술잔으로 사파를 누른 자 — 의 한 일화는 강호 야사 단골 이야기다.

    그가 흑풍단(당시 강호 최대의 사파 결사) 단주를 정파 영지 객잔에 사흘 밤낮 초대해 결투 한 번 없이 술잔만 기울였다는 것이다. 사흘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흑풍단주의 무공에 대해 묻지 않았고, 대신 단원 한 명 한 명의 본명과 출신을 정중히 외워 갔다. 흑풍단주는 자기 단원의 누명이 정파 측에서 거둬들이는 것을 사흘 째 새벽 객잔 일층에서 들었고, 그 자리에서 자기 도(刀)를 탁자에 풀어놓은 채 떠났다. 진성겸은 그 도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고, 객잔 주인은 그 자리를 사십 년 넘게 비워 두었다. 후대 무림맹주들은 임명 첫 주에 그 객잔 탁자를 한 번 보러 가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 그 도(刀)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강호에서 가장 무거운 검 한 자루는 사실 그 풀어놓은 도라는 격언이 야사에 남아 있다.

  • 만검지존(萬劍至尊)

    검신(劍神)

    일만 자루의 검을 모두 다스리는, 검로(劍路)의 가장 높은 자리

    내가 이긴 게 아니다. 그대가 검 끝을 너무 늦게 보았을 뿐.

    검신은 강호 역사상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칭호로,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이긴 자가 없는 검의 정점에 도달한 무인이다. 검을 뽑는 순간 바람이 갈라지고, 검집에 손을 얹는 것만으로 살기를 흩어버린다고 전해진다. 그의 존재 자체가 사파에 대한 억지력이며, 한 자루 검으로 한 시대의 균형을 잡는다.

    다만 너무 강한 탓에 마땅한 적수가 없어 늘 한적한 산중에서 검만 휘두른다. 동네 아이들이 와서 "아저씨 또 혼자 칼 휘두르고 있다"고 웃어도 그저 묵묵하다. 진짜 무서운 건 그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다듬은 검로(劍路)라는 사실을, 살아남은 자들만이 알고 있다.

    검신의 검은 사람을 베라고 다듬은 게 아니라, 베지 않으려고 다듬은 거요. 그 산 아래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지요.

    초대 검신 한무극 — 무종산(無終山, 강호 북단의 외딴 봉우리) 정상에서 사십 년을 홀로 검만 휘둘렀다는 검의 시조 — 의 일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한 합의 약속'이다.

    당시 강호 제일 사파였던 혈천교(血天敎, 한때 무림맹 절반을 무너뜨린 광신 결사) 교주 도경산이 그를 찾아 사흘을 산을 올랐다. 도경산은 한무극의 검 끝을 본 순간 결투를 청하지 못하고, 대신 "한 합만 보여 달라"고 청했다. 한무극은 검집을 옆으로 눕히고 마당에 서 있는 마른 매화나무 한 가지만 잘라 보였는데, 그 칼바람이 도경산의 도포 일곱 자락을 한꺼번에 갈라냈다. 도경산은 그 자리에서 도(刀)를 풀어 산 아래 묻고 혈천교를 해산시킨 채 산을 내려갔으며, 그 무덤 자리는 지금도 비어 있다.

    후대 강호인들은 무종산 마당에 그루터기로 남은 그 매화를 '한 합 매화'라 부른다. 검신이라는 칭호가 사람을 베지 않은 검에 주어졌다는 사실은 야사 중에서도 유독 호젓하게 전해진다.

  • 흑야사군(黑夜邪君)

    흑풍단주

    달 없는 밤, 사파 결사의 어둠을 호령하는 군주

    정파에게는 악마라 부르라 해라. 단원에게는 그저 형이다.

    흑풍단주는 강호 최대의 사파 결사 흑풍단을 이끄는 우두머리로, 어둠 속에서 정파의 머리 위를 노리는 그림자다. 살수 수백을 한 손짓으로 부리며, 협박·암살·정보 거래로 천하의 절반을 움직인다. 검은 옷, 검은 도(刀), 검은 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정파에게는 악마지만 단원에게는 가족 같은 보스이며, 단원의 부모상에는 직접 조의금을 들고 가 굳이 정체를 들킨다. 사실 어릴 적 정파에게 마을이 멸문당한 트라우마로 사파에 들어왔는데, 정작 본인은 누구보다 의리에 약하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길거리에서 우는 아이를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 흑풍단은 단주가 누구의 눈을 마지막에 마주쳤느냐로 그 시대를 기억하오. 사대 단주는 어린아이 한 명의 눈을 마지막에 마주쳤지요.

    사대 흑풍단주 야율한 — 흑풍단 역사상 단원 한 명도 잃지 않고 십이 년을 끌어간 자 — 의 일화 가운데 강호 야사에 길게 남은 것은 '연우진(燕雨鎭) 한밤의 자장가'다.

    연우진(중원 남쪽 표국 길목의 작은 마을)이 정사 양측의 무력 충돌로 불바다가 되던 밤, 야율한은 흑풍단 칠십 명을 이끌고 마을 외곽까지 들이쳤다. 그러나 마을 한 골목에서 어미를 잃고 우는 어린아이를 본 그는 단원 전부에게 도(刀)를 거두라고 명했고, 자기 검은 망토로 아이를 감싼 채 새벽까지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그날 밤 흑풍단은 청부 표적이었던 정파 표두 한 명을 놓쳤고, 의뢰주에게서 보수의 두 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청구당했다. 야율한은 그 위약금을 단원의 봉록에서 한 푼도 떼지 않고 자기 사재로 갚았다. 다음 날 새벽 그는 그 아이를 정파 표국 문 앞에 정중히 데려다 두고, 표국 표두에게 "이 아이의 부모상은 흑풍단이 책임진다"는 짧은 서신만 남겼다.

    강호에서 사대 흑풍단주의 그날 자장가는 정파 표두들이 술자리에서 가장 조용히 회상하는 노래다.

  • 묘림야행자(墓林夜行者)

    도굴 무사

    무덤이 우거진 숲을 밤마다 홀로 누비는 자

    동굴 안에서는 친구도 비급도 믿지 마라. 등 뒤에 있으면 다 적이다.

    도굴 무사는 망한 문파의 본산, 멸문된 가문의 별채, 봉인된 동굴을 뒤져 무공 비급과 영약을 캐내 파는 무림의 골동품 사냥꾼이다. 일반 도굴꾼과 달리 봉인 진법을 깨고 함정 살수를 막아낼 무공이 필수다. 운만 좋으면 한 번에 평생 먹고살 영약을 손에 넣지만, 운이 나쁘면 그 자리에서 시신이 되어 다음 세대 도굴꾼의 발견물로 전락한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서는 "동굴 안에서는 친구도 비급도 믿지 마라"가 불문율이다. 어떤 이는 비급 한 권을 두고 동료의 등을 찌르고, 어떤 이는 동료를 살리려 비급을 버린다. 강호의 진짜 인간성은 무림맹이 아니라 좁은 동굴 안에서 드러난다.

    우리 도굴꾼들이 비급 첫 장을 절대 자기 이름으로 못 펴는 이유가 있소. 흑선동 그 새벽 한 호흡이 우리 모두의 손목에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도굴 무사 막강환 — 흑선동(黑仙洞, 멸문한 옛 사파 흑선문의 본산 동굴) 봉인을 단신으로 깬 유일한 자 — 의 일화는 도굴꾼 세계에서 일종의 계율로 통한다.

    막강환은 동료 도굴 무사 노삼과 함께 흑선동 깊은 자리에서 옛 비급 '흑선심결(黑仙心訣, 한 시대 사파 절반을 휩쓴 내공 비전서)'을 발견했다. 마지막 봉인 진법을 풀던 새벽, 천장이 무너지며 노삼이 그 아래 깔렸고, 비급은 노삼의 손에서 한 자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막강환은 비급을 먼저 챙길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비급을 그대로 둔 채 노삼부터 끌어냈고, 두 사람이 동굴 입구에 도달했을 때 진법은 다시 닫혀 있었다. 그날 이후 흑선심결은 어느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았으며, 막강환은 그 일로 평생 가난한 도굴꾼으로 살았다. 노삼은 아들의 이름을 '강환'으로 지었고, 그 아들이 또 도굴 무사가 되어 흑선동 입구에 술 한 잔을 따르는 관례를 만들었다.

    강호에서는 도굴 무사의 진짜 비급은 흑선심결이 아니라 그 새벽 막강환의 한 호흡이라고 말한다.

  • 일잔호협(一盞豪俠)

    객잔 점소이

    술 한 잔을 따르는 손길에도 의기를 담는 객잔의 사내

    만두 더 드릴까요? 아, 뒤쪽 자리 어른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점소이는 강호의 길목, 객잔 일층에서 술과 만두를 나르는 사내다. 무공이라곤 손목 스냅으로 만두 접시를 흘리지 않는 정도뿐이지만, 강호의 모든 정보가 먼저 흘러드는 자리에 앉아 있다. 어느 고수가 어디로 향했는지, 어느 문파가 누구와 척졌는지, 새로 등장한 가면 검객이 누구인지 — 점소이의 귀에 닿지 않는 소문은 강호에 없다.

    진짜 정파 정보꾼들과 사파 척후들이 점소이의 단골이 되어 슬쩍 정보를 흘리고 받는다. 그래서 어떤 점소이는 무림맹주보다도 강호의 진실에 가까이 있다. 단지 본인은 그걸 알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모른 척 만두만 더 굽는다.

    우리 점소이는 그 일이 있은 뒤로 만두 접시를 한 손으로 안 들고 두 손으로 듭니다. 한 손은 손님 등을 막을 자리이거든요.

    평소객잔(平宵客棧, 강호 동단 표국 길목 큰 객잔) 점소이 노만두 — 본명 노만수, 사십 년을 한 객잔 일층만 지킨 평민 — 의 일화는 강호에서 '한 접시 만두의 의리'로 통한다.

    어느 늦은 밤 그는 사파 살수 풍천랑(風天狼, 당시 흑시 명부에 이름이 일곱 줄 올라 있던 청부 살수)이 정파 표두 한 명을 노린다는 대화를 주방 환기구 너머로 들었다. 노만두는 그 표두의 술상에 만두 한 접시를 추가로 올리며, 만두 사이에 작은 종이 한 장을 끼워 두었다. 종이에는 단 한 줄, "오늘 밤은 뒷문으로 가십시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표두는 살았고, 풍천랑은 다음 날 새벽 객잔 앞 다리에서 표국 호위에 둘러싸여 도(刀)를 풀었다. 흑시 명부에 노만두의 이름이 한 줄 추가될 뻔했으나, 정파 표국 표두가 직접 명부 거간을 찾아가 그 한 줄을 자기 이름으로 덮었다. 노만두는 그 사실을 평생 모른 채 사십 년을 더 만두를 빚었고, 만두피 두께는 그날 이후 한 푼 더 두꺼워졌다.

    강호에서는 그 한 푼의 두께가 점소이의 진짜 무공이라고 말한다.

  • 천마(天魔)

    마교 교주

    하늘조차 굽어보지 않는, 마(魔)의 정점에 군림하는 자

    정파가 나를 마(魔)라 부르거든, 부정하지 마라. 내 검은 정파의 정의보다 빠르다.

    마교 교주는 사파 결사의 정점, 천하의 정파가 결성한 무림맹과 단 한 명으로 마주 서는 절대고수다. 외형은 검은 도포, 핏빛 띠, 한 자루 마검(魔劍)이 표준이며 등 뒤에 늘 칠흑의 깃발이 따른다. 그는 정파의 위선을 비웃고, 사파의 비겁을 경멸한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게 미움받는다.

    본인은 마교 신도 한 명 한 명의 출신과 빚을 손바닥처럼 외우며, 신도가 죽으면 그 가족의 평생을 책임진다. 정파 장로들이 그를 마(魔)라 부를 때마다, 마교 신도들은 그를 부(父)라 부른다. 결국 강호의 진짜 분단선은 정과 사가 아니라, 누가 사람 한 명의 이름을 외우느냐다.

    우리 마교는 교주 한 명의 이름이 신도 만 명의 이름 위에 있는 게 아니오. 그 만 권 명부 한 권 한 권의 무게가 곧 교주의 검 한 자루요.

    칠대 마교 교주 단경연 — 마교 역사상 가장 오래 교를 끌어간 자이자 평생 마검을 단 세 번만 뽑은 자 — 의 일화 중 강호에 가장 길게 남은 것은 '만 권 명부의 밤'이다.

    단경연은 즉위 첫날 마교 신도 만 명의 이름과 출신, 빚, 부모상의 유무까지 적힌 명부 만 권을 받아들고는 사흘 밤낮으로 한 권씩 손수 옮겨 적었다. 사흘째 새벽, 정파 무림맹의 첩자 위남도(韋南道, 무림맹 첩보처 차석) 가 마교 본단 깊숙이 잠입해 그의 등 뒤에 섰다. 단경연은 마검을 뽑지 않은 채 명부 한 줄을 가리키며 "이 신도의 부모상이 이번 달이오. 한 시진만 기다리시오"라고 말했고, 한 시진 뒤 정중히 차를 따라 위남도와 마주 앉았다. 위남도는 그 자리에서 자기 가짜 신분을 풀어놓고 무림맹으로 돌아가 단경연을 표적에서 제외시켰다.

    후대 마교 교주들은 즉위 첫 사흘을 만 권 명부 옮겨 적기로 보내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강호에서 마교 교주의 진짜 무공은 마검이 아니라 그 만 권 명부 위에 적힌 한 줄 한 줄이라고들 한다.

  • 화산제일검(華山第一劍)

    화산검존

    화산(華山) 일파에서 가장 빠르고 정교한 검을 쥔 자

    매화는 한 송이씩 검 끝에 피우는 것이다. 한 번에 다 피우면 그건 검이 아니라 자랑이다.

    화산검존은 화산파의 검법 정점에 도달한 검객으로, 매화검법(梅花劍法)을 한 자루 검으로 완성한 자다. 외형은 매화 문양 도포, 흰 머리 한 다발, 한 자루 가는 검이 표준이다. 그는 결투 직전 늘 매화 한 가지를 검집 옆에 꽂아두는 버릇이 있다.

    신참 제자가 와서 왜 매화를 꽂느냐 물으면, "검을 뽑기 전 한 번 더 망설이라는 뜻이다"라고 답한다. 검신(劍神)의 검로가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이라면, 화산검존의 검은 천천히 피어나는 한 송이 매화다. 강호에서는 그가 검을 뽑는 순간을 본 자보다, 그가 검을 거두는 순간을 본 자가 더 많다는 말이 있다.

    우리 화산은 매화 한 가지에 검을 멈추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매화가 떨어지기 전에 검을 거둘 줄 알아야, 매화 위에 사람을 세울 수 있다고 사형이 그러셨지요.

    삼대 화산검존 우진경 — 화산파 역사상 매화검법 칠십이식을 일식 안에 모두 담아낸 유일한 검객 — 의 일화 중 가장 자주 회자되는 것은 '대화봉(對華峰) 매화 한 가지'다.

    사파 명문 천도방(天刀幇, 당시 화산파를 정면으로 위협하던 도법 결사)의 방주 갈당이 우진경에게 결투를 청해 대화봉(화산 정상에 바로 마주한 봉우리) 정상에서 마주섰다. 우진경은 결투 자리에 매화 한 가지를 꽂고는 "이 매화가 떨어지기 전에 결투를 끝내겠다"고 고지했다. 갈당의 도(刀)가 매화 가지를 향해 날아들자, 우진경은 한 호흡 만에 매화 가지를 자기 검집으로 받쳐 매화 한 송이도 떨구지 않은 채 갈당의 도를 두 동강 냈다.

    갈당은 그 자리에서 도를 풀어 자기 패배를 인정했으나, 우진경은 "패배가 아니라 한 호흡의 차이일 뿐"이라며 갈당을 화산파 객당에 사흘간 손님으로 모셨다. 사흘 뒤 갈당은 천도방을 해산하고 표국 호위로 자리를 옮겼다. 그 매화 가지는 지금도 화산파 보검각(寶劍閣) 한쪽에 마른 채 보관되어 있으며, 신참 제자들이 입문 첫날 그 가지에 합장하는 관례가 있다.

  • 현천도조(玄天道祖)

    무당 장문인

    가물고 깊은 하늘의 도(道)를 잇는, 무당의 시조와 같은 존재

    도(道)는 검 안에 있는 게 아닐세. 다만 검을 다듬다 보면 도가 곁에 와 있을 뿐.

    무당 장문인은 도가(道家) 무문 무당파의 정점에 있는 자로, 태극권(太極拳)과 청풍검(靑風劍)의 양 갈래를 잇는다. 외형은 회색 도포, 머리에 작은 도관(道冠), 손에 한 자루 청풍검이 표준이다. 그는 강호의 큰 사건마다 한 발 늦게 도착하지만, 그가 도착한 자리는 늘 결과가 한 결로 정리된다.

    무림맹의 큰 회의에서도 마지막에 한마디만 보태며, 그 한마디로 분위기가 정리된다. 평소에는 무당산 정상에서 어린 도사들에게 차를 따라주며 농담을 던지는 노인이지만, 그가 검을 뽑은 자리는 천하에 다섯 손가락 안이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무당 장문인의 검을 본 자가 살아 있다는 소문 자체가 거짓이라 한다.

    우리 장문인의 진짜 무공은 청풍검이 아닙니다. 한 호흡 늦게 도착하는 자세, 그게 무당산 도(道)의 한 줄이지요.

    구대 무당 장문인 송허도 — 평생 청풍검을 단 한 번만 뽑은 자이자 무당산 차밭에서 어린 도사들에게 차를 따르다 사망한 노인 — 의 일화는 '한 호흡 늦게 도착한 검'으로 강호에 남아 있다.

    무림맹과 마교가 청용곡(靑龍谷, 중원 한가운데 큰 결투지)에서 천하의 운명을 가를 결투를 벌이려 할 때, 송허도는 일부러 한 호흡 늦게 도착해 양측 사이에 청풍검을 검집째 가로 누였다. 검을 뽑지 않은 채 그가 던진 한마디는 "오늘 결투를 미루는 자에게 무당산 차 한 잔을 평생 따른다"였다. 마교 교주 단경연(칠대 마교 교주)도, 무림맹 부맹주 백창휴(당시 정파 검 서열 삼위)도 그 한 잔의 약속 앞에 검을 거두었다. 두 사람은 그날 청룡곡에서 결투 대신 무당산까지 동행해 차밭 한 모퉁이에서 차를 마셨고, 송허도는 그 차밭 자리에서 한 줄 시(詩)만 남기고 입적(入寂)했다.

    후대 무당 장문인들은 즉위 첫 주에 그 차밭에 합장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 청용곡 결투는 결국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 금린호위장(金鱗護衛將)

    황실 친위대장

    황제의 곁에서 황금 비늘처럼 빛나는 갑주를 두르는 호위장

    강호의 무림맹주가 한 줄 결재로 천하를 정한다면, 나는 한 줄 호위로 황제 한 분을 지킨다.

    황실 친위대장은 중원 황실의 직속 친위 무사단을 통솔하는 자로, 정파·사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개의 권력이다. 외형은 황금 자수가 놓인 짙은 색 갑주, 어깨에 황실 문양 망토, 허리에 한 자루 어검(御劍)이 표준이다. 그는 강호의 분쟁이 황실 안마당까지 흘러드는 것을 막는 마지막 한 줄 방어선이다.

    무림맹주조차 황궁 안에서는 그의 한 줄 결재 앞에 검을 풀어야 한다. 본인은 평생 황제 한 분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으며, 황제가 잠든 시각에만 잠시 검을 닦는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친위대장의 잠을 본 자는 없다는 격언이 있다.

    친위대장의 진짜 검은 어검이 아니라 그 한 잔 차요. 황제의 잔이 친위대장 손에서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는 사실, 그게 황궁의 한 줄 방어선입니다.

    십삼대 황실 친위대장 위무겸 — 평생 어검을 단 두 번만 뽑은 자이자 황제 세 분의 곁을 사십 년 지킨 무인 — 의 일화는 '한 잔 차의 결재'로 황궁 사관들에 의해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

    사파 결사 청혈맹(靑血盟, 당시 황실을 정면으로 노린 사파 연합)의 단주 마승호가 황궁 어전(御殿) 차회에 사신으로 위장해 잠입한 일이 있었다. 위무겸은 마승호가 차잔을 황제께 올리려는 한 호흡 전, 자기 어검을 뽑지 않고 차잔을 자기 손바닥으로 받쳤다. 그 한 호흡 안에 그는 차잔 바닥의 독(毒) 두 푼을 손금으로 감지했고, 황제께 "신이 먼저 시음하겠습니다"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위무겸은 그 자리에서 한 시진을 멀쩡히 서 있었고, 마승호는 자기 청혈맹 신호를 발신할 자세를 잃어버린 채 어전을 벗어났다. 사실 위무겸은 어릴 적부터 약초 채집 무인 백반선에게 사사해 평생 미량의 독을 자기 몸에 길들여 왔고, 두 푼의 독은 그에게 자장가에 가까웠다. 황궁에서는 그날 이후 친위대장이 황제께 올리는 잔을 먼저 받쳐 드는 의례가 정착되었다.

  • 천리표웅(千里鏢雄)

    대표국 표두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화물을 지켜내는 표국의 영웅

    우리 표국은 표물 한 개에 표사 셋이 따라 죽을 각오로 출발하오. 흥정은 출발 전에 끝내시오.

    대표국 표두는 강호의 큰 표국(鏢局)을 이끄는 자로, 강호의 모든 귀물·서신·요인을 가장 안전한 길로 옮기는 책임을 진다. 외형은 단정한 가죽 갑옷, 어깨에 표국 깃발 망토, 허리에 한 자루 표도(鏢刀)와 작은 호적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의 모든 길목·도적단의 평소 동선·문파 간 외교 라인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표물 한 개를 잃으면 표국 전체의 명성이 흔들리기에, 표두는 출발 전에 표사들에게 직접 술을 따라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강호에서 가장 무거운 검은 표두의 검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그 검 뒤에 표사 가족 한 명의 한 끼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흥룡표국 표두실 벽에는 표사 일곱 분의 이름이 가장 윗줄에 있소. 그 이름 위에 표두 봉록이 한 자도 못 올라가게 하는 게 우리 표국의 한 줄 규칙이지요.

    흥룡표국(興龍鏢局, 강호 서단을 사십 년 끌어간 대표국) 사대 표두 진백호 — 표국 역사상 표물 한 점도 잃지 않고 평생 표행을 마친 유일한 표두 — 의 일화는 '단애곡(斷崖谷) 일곱 표사의 새벽'으로 강호에 길게 남았다.

    진백호가 황실 진상품 보검 한 자루를 호송하던 중, 단애곡(서단의 가파른 협곡 길) 한가운데서 산적단 적호채(赤虎寨, 당시 서단 최대 도적단) 백 명에 둘러싸였다. 진백호는 표물을 자기 등에 묶고는 표사 일곱에게 "각자 다른 길로 흩어져 표국으로 돌아가라"고 명했고, 자기는 단신으로 협곡 입구를 막아섰다. 일곱 표사 중 여섯이 무사히 표국에 도착했고, 한 표사 마중연은 진백호를 두고 갈 수 없어 협곡으로 되돌아왔다. 새벽이 밝을 때까지 둘은 산적단을 협곡 입구에서 막았고, 마중연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진백호는 표물을 그대로 황실에 인도한 뒤 평생 자기 봉록의 절반을 마중연의 가족에게 보냈으며, 표두실 벽에 마중연의 이름을 가장 윗줄에 새겼다.

    후대 흥룡표국 표두들은 즉위 첫 주에 그 벽 앞에 표도(鏢刀)를 풀어 절을 올리는 관례를 따른다.

  • 풍문귀이(風聞貴耳)

    강호 정보 거간

    강호의 모든 풍문이 가장 비싸게 모이는 귀를 가진 자

    이 정보 한 줄, 은자 스무 냥. 출처 묻지 마시고, 답 듣고 나면 잊으시오.

    강호 정보 거간은 강호의 모든 소문·문파 동향·고수 행방을 정중히 사고파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도포,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메모장과 부채가 표준이다. 그는 객잔 이층 구석 자리를 평생 자기 사무실로 쓰며, 손님이 와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대신 손님이 부채를 한 번 펼쳐 보이면, 그 자리에 정확히 한 줄 정보가 펼쳐진다. 강호 사파 척후도, 정파 정보꾼도 결국 그의 객잔 이층에서 만나며, 거기서는 무림의 적도 한 잔 술 앞에서는 손님이다. 가장 무서운 거간은 큰 정보를 가진 자가 아니라, 정보를 모른 척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진 자다.

    우리 거간들 사이에서 부채 한 자루는 가격표가 아니라 봉인이오. 그 부채를 거꾸로 꽂아두는 자리는 평생 모른 척해야 할 줄이 있다는 뜻이지요.

    강호 정보 거간 모운백 — 칠풍객잔(七風客棧, 강호 중단 사거리 객잔) 이층 구석 자리를 삼십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거꾸로 꽂힌 부채'로 거간들 사이에 계율처럼 전해진다.

    어느 봄날 정파 명문 검객 양월진이 사파 살수 풍천랑(앞서 점소이 노만두 일화에 등장한 그 살수의 사형)의 행방을 모운백에게 물었고, 같은 날 저녁 풍천랑 본인이 양월진의 위치를 물으러 같은 자리에 앉았다. 모운백은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한 줄을 팔지 않고, 부채를 자기 탁자에 거꾸로 꽂아둔 채 사흘간 객잔 이층 자리를 비웠다. 사흘 뒤 두 사람은 객잔 일층에서 우연히 마주쳐 결투를 벌이려 했으나, 일층 점소이가 만두 한 접시를 두 사람 사이에 놓으며 "이층 어른께서 사흘 자리를 비우셨소"라고 한마디만 보탰다. 두 사람은 그 한마디에 결투를 미루고 각자 길을 떠났으며, 그 자리는 그날 이후 강호에서 '봉인 자리'라 불린다. 모운백은 그 사흘 동안 객잔 뒷마당에서 차밭에 물만 줬으며, 부채는 사흘째 새벽에야 다시 똑바로 펴졌다.

    후대 거간들은 자기 자리에 부채를 거꾸로 꽂는 자세를 모운백의 한 줄 봉인이라 부른다.

  • 비도일선(飛刀一閃)

    비표 호위무사

    한 줄기 빛처럼 날아드는 비도(飛刀)로 지키는 호위

    표국 깃발은 안 답니다. 깃발 보고 오는 도적이 가장 무섭거든요.

    비표 호위무사는 표국 정식 표사가 아닌, 은밀한 표물·정파 요인의 야간 이동을 단독으로 호위하는 무사다. 외형은 검은 가죽 외투, 어깨에 작은 망토, 허리에 한 자루 단도와 표창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의 모든 도적단의 야간 잠복 자리·옛 사고 지점·금기 출입 시각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표국이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한 야간 이동에는 늘 그가 단독으로 출발한다. 비표 호위무사가 함께 가면 표사 셋의 몫을 한 사람이 한다는 격언이 있어, 보수도 표국 표두에 준한다. 단지 그가 어느 표국 소속인지 아는 자는 표두 단 한 명뿐이다.

    비표는 깃발 없이 가는 게 아니오. 깃발을 자기 등에 한 줄로 옮겨 가는 거지. 그래서 비표가 도착한 자리에는 늘 표국 한 채가 같이 도착해 있는 셈이오.

    비표 호위무사 한자성 — 흥룡표국(앞서 진백호 일화에 등장한 그 표국) 표두 진백호의 친동생이자 평생 표국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한 등의 일곱 표창'으로 강호에 남아 있다.

    어느 겨울밤 한자성은 황실 비밀 서신 한 장을 단신으로 호송 중 칠음곡(七陰谷, 사파 살수 결사가 잠복하는 야간 협곡)에서 사파 살수 일곱 명에 둘러싸였다. 그는 검은 외투를 자기 등에 한 번 더 단단히 묶고는 표창 일곱을 한 호흡에 던졌고, 표창 일곱이 살수 일곱의 도(刀)자루를 정확히 한 점씩 꿰뚫었다. 살수들은 도를 들 수 없게 된 채 한자성에게 "어느 표국 소속이오"라고 물었으나, 한자성은 답하지 않고 서신만 안고 협곡을 빠져나갔다.

    다음 날 새벽 그가 황실 후문에 서신을 인도했을 때, 그의 등에는 살수 한 명의 도(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진백호는 그 도를 흥룡표국 표두실 벽에 자기 표두실 명패 옆에 걸었으나, 한자성의 이름은 끝내 명부에 올리지 않았다. 한자성은 다음 야간 표행을 위해 사흘 뒤 다시 단신으로 출발했고, 그날 이후로 흥룡표국에서는 표두실 벽 도 한 자루에 한 호흡 절을 올리는 관례가 생겼다.

  • 청풍입회자(淸風立會者)

    결투 입회 도인

    비무 자리에 청풍처럼 서서 결과를 입회하는 도인

    두 분, 검 뽑기 전에 한 번 더 호흡하시지요. 결투는 한 호흡 안에서 정해집니다.

    결투 입회 도인은 강호의 정식 결투에 입회하여 양측의 검 뽑는 시점·결투 종료 시점을 정중히 결정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도포, 가슴팍에 작은 입회 도장 펜던트, 한 손에 작은 종이 부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결투의 옛 자료·옛 분기 결재·금기 결투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결투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정을 가족에게 정중히 전하는 것도 입회 도인의 직무다. 그래서 그가 자리에 앉으면 결투 양측이 호흡 한 번을 더 하게 된다. 가장 무거운 입회는 큰 결투가 아니라, 결투 후 한 가족 앞에 정중히 서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입회 도인은 결투를 시작하는 자세보다 결투를 끝내는 자세를 먼저 배웁니다. 부채 한 번 닫는 손목에 한 가족의 한 끼가 매달려 있다고 노사부께서 그러셨지요.

    결투 입회 도인 도원규 — 평생 강호 결투 사백 회를 입회하고도 한 번도 결투 종료 시점을 잘못 짚은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한천대(寒天臺) 봄비 결투'로 강호에 남았다.

    한천대(중원 북단 결투지로 가장 자주 쓰이는 큰 평지) 위에서 정파 명문 청검문(靑劍門) 장로 위소헌과 사파 결사 도황방(刀皇幇) 부방주 갈명이 사흘에 걸친 결투 끝에 마지막 한 합을 앞두고 마주섰다. 그날 새벽 봄비가 한천대 위로 한 호흡 동안 내리자, 도원규는 부채를 닫지 않은 채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오늘 결투는 비가 멈출 때까지 미룬다"고 정중히 고지했다. 두 사람은 분노하며 도원규에게 검을 뽑으려 했으나, 도원규는 "비가 멈춘 뒤에도 결투를 원하시면 그 결투 뒤 가족 인사는 제가 드리겠습니다"라고 차분히 답했다. 비는 한 시진을 더 내렸고, 그 사이 위소헌의 어린 아들이 청검문 사절을 들고 한천대에 도착해 부친의 결투 사유가 잘못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결투는 그 자리에서 무산되었고, 갈명은 도원규에게 부채 한 자루를 정중히 선물한 뒤 도황방을 떠나 강호 의원 밑에 들어갔다. 도원규는 그 부채를 평생 자기 부채와 한 짝으로 들었으며, 후대 입회 도인들은 결투 직전 부채를 두 자루 들어 보이는 의례를 그날의 봄비에서 따왔다.

  • 산령초객(山靈草客)

    약초 채집 무인

    산의 영기를 받은 영초(靈草)만을 알아보는 객

    이 잎 한 장, 절세고수 한 명의 한 호흡을 살립니다. 그러니 함부로 밟지 마시오.

    약초 채집 무인은 강호의 절벽·심산·옛 동굴에서 영약(靈藥)과 약초를 채집하는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 도포, 어깨에 약초 가방, 한 손에 작은 채집용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영약의 위치·옛 분기 채집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절세고수가 큰 부상을 입으면 가장 먼저 약초 채집 무인의 한 잎이 그의 자리에 도착한다. 무공이 약하면 절벽 한 자리에서 미끄러져 시신이 되고, 무공이 강하면 그 자리의 영약을 다른 채집꾼에게 양보한다. 강호의 진짜 의리는 결국 약초 한 장 위에 있다.

    우리 채집꾼들이 천목애 그 매듭을 풀지 않고 그대로 두는 데는 이유가 있소. 영약 한 뿌리보다 한 줄 매듭이 강호에 더 오래 남는다는 뜻이지요.

    약초 채집 무인 백반선 — 황실 친위대장 위무겸의 어릴 적 사부이자 평생 천목애 절벽을 사십 년 오른 자 — 의 일화는 '천목애(天目崖) 한 줄 매듭'으로 강호에 남아 있다.

    천목애(중원 서단의 가장 가파른 절벽으로 영약 천목영지가 자라는 곳)에서 백반선은 마교 신도 한 명이 매달린 채 떨어지기 직전인 광경을 보았다. 그 신도는 마교 칠대 교주 단경연의 명을 받아 천목영지를 채집하러 온 자였고, 그 옆에는 같은 영지를 노린 정파 채집꾼 노송이 자기 채집용 단도를 그 신도의 매듭 줄에 겨누고 있었다. 백반선은 자기 영지 한 뿌리를 절벽 아래로 던져 노송의 시선을 돌린 뒤, 자기 매듭 줄을 풀어 마교 신도를 끌어올렸다. 노송은 그 자리에서 단도를 거두고 백반선에게 술 한 잔을 청했으며, 마교 신도는 단경연에게 그 일을 보고하며 채집을 포기했다. 단경연은 그 보고를 받은 뒤 마교 명부에 백반선의 이름을 '교 외(外) 가족'으로 한 줄 적었다. 천목애 그 매듭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후대 약초 채집꾼들은 천목애를 오를 때 그 매듭에 합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 야호제자(野虎弟子)

    사파 외문제자

    들에 풀린 호랑이처럼 거친 외문 수련자

    사파라고 다 악인은 아니오. 그저 정파 호적에 이름 못 올린 자들일 뿐이오.

    사파 외문제자는 정파에 입문하지 못해 사파 변두리에서 검을 익힌 평민 출신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하지 않은 짙은 색 도포,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한 자루 도(刀)가 표준이다. 본인은 정파의 화려한 검로 대신 거리 결투에서 살아남는 단순한 한 자세를 평생 다듬는다.

    그래서 사파 외문제자의 검은 화려하지 않지만, 한 합 안에 결판이 난다. 정파 명문 제자가 큰 결투에서 잘 지는 상대가 바로 이 외문제자들이며, 강호의 진짜 거리 무공은 결국 외문제자들의 손에서 굴러간다. 다만 본인들은 그 사실을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 외문제자들이 빈가시장 그 다리 위 한 합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소. 정파 호적이 못 적은 이름이 그 다리 위에서는 가장 또렷이 적힌다는 뜻이지요.

    사파 외문제자 곽철 — 평민 정육점 아들로 정파 입문에 일곱 번 떨어진 뒤 사파 변두리에서 도(刀)를 익힌 자 — 의 일화는 '빈가시장 한 합'으로 거리 무인들 사이에 가장 자주 회자된다.

    빈가시장(貧街市場, 중원 동단 빈민 구역의 큰 시장) 다리 위에서 정파 명문 천검문(天劍門) 수석 제자 한석휘가 시장 상인 한 명을 거지 행세 사기로 몰아 검을 뽑으려 했다. 곽철은 그날 그 상인에게 외상 고기를 단 한 번 받은 인연밖에 없었으나, 한석휘 앞에 자기 도를 가로 누이며 "외상 한 줄도 외문 한 명의 호적이오"라고 답했다. 한석휘는 천검문 수석 검로(劍路) 칠초식을 펼쳤으나, 곽철은 단 한 자세 — 거리에서 십 년을 다듬은 '내려치지 않는 도' — 만으로 한석휘의 검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렸다.

    한석휘는 천검문으로 돌아가 자기 수석 자리를 자청해 사임했고, 곽철은 그 상인의 외상장부를 자기 가방에 넣은 채 다음 골목으로 사라졌다. 사파 변두리에서는 그날의 도(刀) 자세를 '곽철 한 합'이라 부르며, 외문제자 입문 첫 자세로 이어 가르친다. 정파 천검문 보검각에는 그날 떨어진 한석휘의 검이 한 줄 명패 없이 놓여 있다.

  • 무명일검(無名一劍)

    떠돌이 검객

    이름 없는 한 자루 검으로 강호를 떠도는 자

    문파 이름 묻지 마시오. 내가 검을 뽑은 자리에서는 문파가 무겁기만 하더이다.

    떠돌이 검객은 어느 문파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강호 길목을 떠도는 무인이다. 외형은 낡은 가죽 외투, 어깨에 작은 봇짐, 허리에 한 자루 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객잔의 평소 음식 가격·옛 결투 자리·금기 길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떠돌이 검객은 문파의 결재 라인에 매이지 않기에, 길에서 만난 약자를 위해 가장 먼저 검을 뽑는 자이기도 하다. 정파 명문 제자가 망설일 때 떠돌이가 먼저 검을 뽑은 사례가 강호 야사에 백 번을 넘는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떠돌이 검객의 검이 가장 가벼운 검이자, 가장 무거운 검이라 한다.

    우리 떠돌이들이 그 비석 앞에 술잔 한 잔을 두고 가는 이유는 한 가지요. 문파 명패 없이도 한 마을이 살았다는 사실, 그것 한 줄이면 검값은 다 받았다는 뜻이지요.

    떠돌이 검객 임야 — 본명도 문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사십 년을 강호 길목만 떠돈 자 — 의 일화는 '석호촌(石虎村) 사흘 비'로 강호 야사에 남아 있다.

    석호촌(중원 남단 작은 산골 마을)이 사파 결사 흑랑채(黑狼寨, 마을 단위 약탈로 악명 높던 산적단)에 사흘에 걸쳐 약탈당하고 있을 때, 임야는 마을 입구 작은 다리 위에서 검 한 자루를 가로 누인 채 사흘을 버텼다. 정파 명문 청검문 제자 셋이 옆 마을에 있었으나 문파 결재가 떨어지지 않아 출동하지 못했고, 임야는 단신으로 흑랑채 단원 사십 명을 다리 위에서 막았다. 사흘째 새벽 흑랑채 채주가 직접 다리 위에 올랐고, 임야는 한 합에 채주의 도(刀)를 두 동강 낸 뒤 그대로 마을을 떠났다.

    석호촌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름조차 묻지 못한 채 다리 옆에 한 줄 비석만 세웠으며, 그 비석에는 "이름 없는 검객, 사흘 다리"라는 한 줄만 새겨져 있다. 청검문 제자 셋은 그 일 이후 떠돌이로 자청해 청검문을 떠났으며, 그중 한 명은 훗날 석호촌 비석 앞에 평생 술 한 잔을 따르는 관례를 만들었다. 임야는 다음 해 다른 마을 작은 다리에서 또 다른 결투 끝에 사망했다는 풍문이 있을 뿐,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 묵검필사(墨劍筆師)

    비급 필사가

    묵으로 검의 비밀을 새겨 옮기는 필사가

    비급 한 권 필사하는 데 석 달, 그 석 달 동안 비급 주인의 호흡을 손목에 옮기는 거요.

    비급 필사가는 절세 무공의 비급(秘笈)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 자로, 단순 서기가 아니라 그 비급의 호흡을 손목에 옮기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색 학자 도포, 가슴팍에 작은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작은 붓과 옛 종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비급의 옛 페이지·옛 분기 결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림맹과 마교가 같은 비급 필사가에게 의뢰를 맡긴 일화가 야사에 남아 있을 만큼, 그의 한 줄 필사는 양측 모두에게 신뢰받는다. 가장 무거운 필사는 큰 비급이 아니라, 한 글자의 한 호흡을 정확히 옮기는 자세 위에 있다.

    우리 필사가들은 한 글자를 비우는 자세를 가장 마지막에 배웁니다. 그 비운 한 글자가 비급 한 권의 호흡을 살린다고 노사부께서 그러셨지요.

    비급 필사가 송경운 — 평생 비급 백 권을 필사하고 단 한 권도 두 번 베끼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천뢰결(天雷訣) 마지막 한 글자'로 학자형 무인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정파 무림맹과 마교가 동시에 송경운에게 의뢰한 비급 천뢰결(天雷訣, 한 시대 천하를 흔든 뇌격 내공 비전서)의 필사본 두 권을 그가 같은 석 달 안에 옮겨 적어야 했다. 송경운은 두 의뢰를 모두 받아들인 뒤, 두 필사본 모두에서 마지막 한 글자를 일부러 비워 두었다. 그 비워둔 자리에는 단지 한 줄 — "이 한 글자는 비급 주인의 호흡으로만 채울 수 있다" — 만 적었다. 무림맹주와 마교 칠대 교주 단경연 모두 그 한 글자를 채우려다 자기 호흡이 비급 주인의 호흡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두 사람 다 천뢰결의 마지막 한 줄을 끝내 익히지 못했다. 두 권 모두 한 글자가 비어 있는 채로 무림맹 보검각과 마교 본단 비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송경운은 의뢰 보수의 절반만 받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가난한 비급 필사가 후학에게 보냈다.

    후대 비급 필사가들은 입문 첫 석 달을 한 글자 비우는 자세 연습으로 보내는 관례를 따른다.

  • 천근역사(千斤力士)

    표국 짐꾼호위

    천 근의 짐을 지고도 칼을 뽑는 표국의 거한

    표두께서 검을 뽑으실 때, 제가 표물 위에 엎드립니다. 그게 제 한 줄 직무요.

    표국 짐꾼호위는 표국 표사 옆에서 표물 자체를 직접 짊어지고 옮기는 평민 출신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큰 가방과 표물 보호띠, 허리에 작은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표국 안 모든 표물의 평소 무게·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적이 표국을 습격하면 표두는 검을 뽑고, 짐꾼호위는 표물 위에 엎드려 표물을 자기 몸으로 가린다. 그래서 짐꾼호위의 등에는 평생 한두 줄의 옛 검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한 줄이 표국 표두의 한 줄 결재보다 더 무겁다.

    우리 짐꾼호위는 등 위 검상 한 줄로 호적을 갈음합니다. 표국 명부에 못 적힌 이름이 그 한 줄 위에 가장 또렷이 적힌다고 표두께서 그러셨지요.

    표국 짐꾼호위 백등산 — 만류표국(萬柳鏢局, 강호 동단 표국) 사십 년 짐꾼호위로 평생 표물 한 점도 잃지 않은 평민 — 의 일화는 '청송령(靑松嶺) 등 위 일곱 줄'로 표국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청송령(동단의 가파른 고갯길)에서 만류표국 표행이 사파 산적단 백 명에 둘러싸여 표두 양훈이 한 합에 어깨를 다쳤다. 백등산은 황실 진상품 옥새함 한 점을 등에 묶은 채 양훈을 자기 가슴팍에 엎드리게 했고, 그 위에 다시 옥새함을 가로 얹어 자기 등을 산적단의 도(刀)에 그대로 내주었다. 그날 새벽까지 백등산의 등에는 일곱 줄의 검상이 새겨졌고, 옥새함과 양훈 모두 한 점 손상 없이 표국으로 돌아왔다. 양훈은 백등산의 이름을 표두실 벽 가장 윗줄에 새기려 했으나, 백등산이 정중히 거절하며 "내 이름은 표두실 벽이 아니라 표사 가족 명부 한 줄에 있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만류표국 표사 가족 명부 첫 줄에는 그날 이후 백등산의 이름이 평생 봉록 한 줄과 함께 적혔으며, 그가 사망한 뒤 그의 큰아들이 또 짐꾼호위로 입문해 그 명부를 자기 손으로 이어 적었다.

    후대 만류표국 짐꾼호위들은 입문 첫 표행 전 표사 가족 명부 첫 줄에 절을 올리는 관례를 따른다.

  • 비검광대(飛劍狂大)

    강호 곡예단원

    검을 곡예 도구처럼 다루는 강호의 광대

    검 한 자루로 묘기 부리는 거요. 무공이라기엔 부끄럽고, 묘기라기엔 위험하지요.

    강호 곡예단원은 강호 길목 마을에서 검·창·표창을 가지고 묘기를 부리는 평민 출신 곡예사다. 외형은 화려한 짙은 색 곡예복,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한 자루 짧은 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마을의 평소 잔칫날·옛 분기 곡예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강호 명문 제자가 비웃으며 지나치는 묘기지만, 마을 아이들에게는 절세고수보다 그 곡예단원이 더 큰 영웅이다. 가끔 그의 묘기 검로(劍路)가 정파 검법의 옛 한 줄과 닮아 있다는 사실이 야사에 남아 있다.

    우리 곡예단은 화산파 매화 한 송이를 묘기로 흉내 내지 않습니다.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마을 아이 일곱 명을 그 매화 위에 같이 세우는 거지요.

    강호 곡예단원 류이주 — 영춘곡예단(永春曲藝團, 강호 남단 사십 년 떠돌이 곡예단) 단주 — 의 일화는 '봉화촌(鳳華村) 매화 묘기'로 떠돌이 곡예사들 사이에 길게 회자된다.

    봉화촌(남단의 작은 잔치 마을)에서 매년 봄 잔치에 류이주가 검 한 자루로 매화 일곱 송이를 한 호흡에 던져 올리는 묘기를 보였는데, 그날 마침 화산파 삼대 검존 우진경(앞서 화산검존 일화에 등장한 그 검객)이 잔치를 지나치다 그 묘기를 보았다. 우진경은 그 검로가 자기 매화검법의 옛 한 줄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한 호흡에 알아챘으나, 류이주에게 검로 출처를 묻지 않고 묘기 마지막에 매화 한 가지를 정중히 무대에 올려두고 떠났다. 류이주는 평생 그 매화 가지를 자기 곡예복 안주머니에 한 줄 매듭으로 묶어 두었으며, 그 매듭 위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묘기를 가르치는 자세를 평생 다듬었다. 봉화촌 마을 아이 일곱 명 중 한 명이 훗날 화산파 외문제자로 입문해 매화검법 첫 자세를 정식으로 배웠으며, 그 자세의 출처를 우진경에게 묻자 우진경은 "봉화촌 잔치 무대 위"라고만 답했다.

    영춘곡예단 후대 단원들은 봉화촌 잔치마다 그 매화 가지에 합장하는 관례를 이어 간다.

  • 일도화부(一刀火夫)

    객잔 주방장

    한 자루 식도와 한 솥의 불길로 객잔을 지배하는 주방장

    오늘 만두피, 한 시진(時辰) 더 숙성시켰소. 점소이가 손님 자리 잘 봐주실 거요.

    객잔 주방장은 강호 길목 객잔의 주방을 평생 책임지는 평민 출신 요리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칼이 표준이다. 본인은 객잔에 들르는 모든 단골의 평소 식성·옛 분기 한 끼의 결정적 시점·금기 음식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어떤 절세고수는 평생 한 객잔의 만두만 먹으러 강호를 거슬러 오기도 한다. 가장 작은 직무가 사실 한 객잔 한 시즌의 가장 따뜻한 한 줄을 굴러가게 한다. 점소이가 강호의 귀라면, 주방장은 강호의 위(胃)다.

    우리 주방장은 한 검객 한 끼의 마지막 만두 한 점을 평생 손금으로 외웁니다. 그 한 점이 강호 한 결투를 미루는 한 줄이라는 뜻이지요.

    운하객잔(雲霞客棧, 강호 북단 표국 길목 큰 객잔) 주방장 매수당 — 사십 년을 한 객잔 주방만 지킨 평민이자 그 객잔의 모든 단골 식성을 외운 자 — 의 일화는 '한 점 만두 결투'로 강호에 남아 있다.

    정파 떠돌이 검객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입맛으로 알려진 노검객 풍천도가 매수당의 만두 한 점만 먹으러 매년 봄 운하객잔에 들렀는데, 어느 봄 그가 사파 대결을 앞두고 객잔에 도착했다. 매수당은 그날 풍천도의 만두피에 평소보다 한 푼 더 두꺼운 반죽을 넣고, 만두소에 약초 채집 무인 백반선이 사흘 전 보내준 말린 약초 한 잎을 다져 넣었다. 풍천도는 그 만두 한 점을 먹은 뒤 결투를 한 시진 미루겠다고 객잔 일층에 통보했고, 그 한 시진 안에 사파 측 결투 입회 도인 도원규(앞서 결투 입회 도인 일화에 등장한 그 도인)가 도착해 결투 사유의 오해를 풀었다. 결투는 무산되었고, 풍천도는 매수당에게 자기 검집을 풀어 잠시 객잔 주방 벽에 걸어두는 것으로 인사를 갈음했다. 매수당은 그 검집을 평생 주방 벽 한쪽에 그대로 두었으며, 그 자리는 운하객잔 주방의 가장 따뜻한 자리로 통한다.

    후대 운하객잔 주방장들은 매년 봄 첫 만두 한 점을 그 검집 앞에 올리는 관례를 따른다.

  • 항마나한(降魔羅漢)

    소림 나한승

    마(魔)를 항복시키는 소림의 나한

    검 거두시지요, 시주. 우리 절은 핏자국이 한 번 묻으면 사흘은 빨아야 합니다.

    소림 나한승은 천하제일 명문 소림사의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을 이루는 무승 중 한 사람이다. 외형은 황색 가사, 빛나는 민머리에 새겨진 계인(戒印), 한 손에 묵직한 선장(禪杖)이 표준이다. 그는 살(殺) 자를 입에 올리지 않으며, 검을 든 자 앞에서도 먼저 합장(合掌)을 한다.

    그러나 그 합장이 풀리는 순간, 한 합 안에 상대의 검을 부러뜨리는 일이 야사에 수십 번 남아 있다. 본인은 새벽마다 절 마당을 비질하며, 그 비질 한 자세 안에 천축 옛 권법의 한 줄이 숨어 있다. 강호에서 가장 오래 버티는 검은 한 자루가 아니라, 한 자루 빗자루라는 격언이 여기서 나왔다.

    우리 나한은 산문 앞 한 줄 빗자국을 사흘에 한 번 새로 그립니다. 그 한 줄이 사파 한 결사를 마당 안에 못 들이는 우리의 진짜 결계이지요.

    소림 나한승 혜원 — 평생 살(殺) 자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채 사십 년을 산문 앞 마당만 비질한 무승 — 의 일화는 '산문 한 줄 빗자국'으로 강호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새벽 사파 결사 혈천교(앞서 검신 일화에 등장한 그 광신 결사의 잔당) 잔당 칠십 명이 소림사 산문 앞에 몰려 들어 살문(殺門, 절을 정면으로 노린 살(殺)의 진법)을 펼쳤다. 혜원은 그 새벽도 평소처럼 산문 앞 마당을 비질하다 빗자루를 마당 한복판에 가로 누였고, 빗자국 한 줄을 따라 합장만 한 채로 칠십 명을 한 호흡에 마당 밖으로 밀어냈다. 그가 한 합도 펼치지 않았음에도 잔당 칠십 명의 도(刀) 칠십 자루가 그 빗자국 한 줄 위에서 동시에 부러졌다. 혈천교 잔당 두목은 그 자리에서 자기 도를 마당 한쪽에 묻고 소림사 외문제자로 입문했으며, 혜원은 그 두목의 사십 년 사부가 되어 평생 살(殺) 자를 한 번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 마당의 빗자국은 지금도 사흘에 한 번 새로 그어지며, 후대 나한승들은 입문 첫 사흘을 그 빗자국 한 줄을 따라 비질하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강호에서는 소림사 산문 앞 마당 한 줄이 무림맹 정문 결재선보다 무겁다고들 한다.

  • 천하걸왕(天下乞王)

    개방 방주

    천하의 모든 거지를 거느리는 왕

    거지 옷이 무겁다 마시오. 이 누더기 한 장 안에 강호 절반의 소문이 들었소이다.

    개방 방주는 천하 거지들의 결사 개방(丐幇)을 이끄는 자로, 아홉 매듭(九結)을 허리에 맨 천하 정보망의 정점이다. 외형은 일부러 기운 누더기 도포, 어깨에 술 호리병 한 개, 허리에 한 자루 타구봉(打狗棒)이 표준이다. 그는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제자들과 술 한 잔을 나누며 강호 정세를 한 호흡에 정리한다.

    무림맹주가 큰 결단을 내리기 전 가장 먼저 술잔을 기울이는 상대가 바로 개방 방주다. 본인은 평생 비단옷을 한 번도 걸쳐본 적이 없으며, 그 누더기 한 장이 그의 갑주이자 명함이다. 강호에서 가장 가난해 보이는 자가 가장 많은 비밀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사파도 정파도 안다.

    우리 방주의 누더기 아홉 매듭은 자랑이 아니오. 그 아홉 매듭 한 줄 한 줄이 우리 거지 아홉 명의 한 끼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십칠대 개방 방주 노구걸 — 천하 거지 출신으로 사십 년을 한 골목에서 동냥만 받다 방주에 추대된 자 — 의 일화는 '구화골목 아홉 매듭의 밤'으로 개방 안에서 가장 길게 전해진다.

    어느 겨울밤 황실 내정에서 정파 무림맹과 마교의 동시 회담 일정이 흘러나오자, 노구걸은 자기 골목 구화골목(舊華골목, 중원 도성 빈민가의 가장 좁은 골목) 거지 아홉 명을 모아 누더기 매듭을 하나씩 풀어 동전 한 닢씩 나누어 주었다. 그 동전 아홉 닢이 한 닢씩 객잔 점소이, 마방 마부, 약초 채집 무인 백반선의 약 가방, 표국 짐꾼호위의 표두실에까지 흘러갔으며, 회담 사흘 전 정파·사파 양측 모두 회담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측 모두 회담을 취소했고, 회담이 열렸으면 벌어질 뻔한 큰 결투가 한 호흡에 무산되었다. 노구걸은 그 사실을 평생 자랑하지 않았고, 다음 봄 누더기 매듭 아홉을 다시 한 줄로 묶어 매듭 한 자루로 새로 다듬었다. 개방 본단 누더기 보관실에는 그날의 동전 아홉 닢이 한 줄 끈에 묶여 봉인된 채 있으며, 후대 방주 즉위 첫날 그 끈을 한 번 풀어보는 의례가 있다.

    강호에서는 가장 무거운 회담은 객잔 일층이 아니라 그 골목 누더기 한 장 위에서 무산되었다고들 한다.

  • 비룡암기수(飛龍暗器手)

    암기 장인

    손길마다 비룡처럼 날아드는 암기를 만드는 장인

    이 표창 한 점, 무게 두 푼 차이로 십 보 거리에서 사람의 운명을 가르오.

    암기 장인은 표창·비도(飛刀)·독침·연발 쇠뇌 같은 은밀한 무기를 손수 깎아내는 평민 출신 무인이다. 외형은 검댕 묻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가죽 앞치마, 허리에 시제용 단도와 자(尺)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 모든 명문 고수가 평소 휴대하는 암기 무게·옛 분기 의뢰 명세·금기 합금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사파 살수와 정파 호위무사가 같은 작업장 문턱을 번갈아 드나드는 일도 흔하다. 그는 의뢰인의 이름은 잊어도, 한번 깎아낸 표창 한 점의 무게는 평생 잊지 않는다. 강호의 진짜 결투는 결투장이 아니라 그의 작업대 위에서 이미 시작된다.

    우리 암기 장인은 마지막 한 점의 무게를 두 푼 무겁게 깎습니다. 그 두 푼이 의뢰인이 자기 검을 한 호흡 망설이게 만든다는 뜻이지요.

    암기 장인 위장룡 — 평생 표창 만 점을 깎고도 단 한 점도 두 푼 차이 안에서 어긋난 적이 없는 자 — 의 일화는 '두 푼 무거운 마지막 표창'으로 강호에 길게 남아 있다.

    사파 청부 살수 결사 흑막루(黑幕樓, 흑시 명부의 큰 의뢰를 도맡던 결사)의 살수 풍천랑(앞서 점소이·거간 일화에 거듭 등장한 그 살수)이 위장룡에게 표창 일곱 점을 의뢰하며 정파 표두 한 명을 표적으로 지목했다. 위장룡은 표창 일곱 점 중 마지막 한 점만 평소보다 두 푼 무겁게 깎고는 풍천랑에게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았다. 풍천랑은 결투 당일 표창 여섯 점을 한 호흡에 던진 뒤 마지막 한 점에서 한 호흡을 망설였고, 그 한 호흡 사이 정파 표두는 표국 짐꾼호위의 등 뒤로 한 발 물러서 표창을 비껴냈다. 풍천랑은 결투를 포기한 채 위장룡의 작업장으로 돌아와 마지막 표창 한 점을 작업대 위에 다시 올려놓고 술 한 잔을 청했고, 두 사람은 그 한 점을 사이에 두고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풍천랑은 다음 의뢰부터 위장룡의 작업장에 들리지 않았으며, 흑막루를 떠나 표국 호위로 자리를 옮겼다. 그 두 푼 무거운 마지막 표창은 위장룡의 작업대 한쪽에 한 줄 봉인지에 싸인 채 평생 그대로 있었으며, 후대 암기 장인들은 입문 첫 표창 한 점을 두 푼 무겁게 깎는 자세부터 배운다.

  • 활인호의(活人豪醫)

    강호 의원

    죽음 앞에 선 자도 살리는 강호의 의원

    검상 일곱은 꿰매드리겠소만, 다음 결투는 한 달 뒤에 잡으시오. 약값은 그 다음 얘기요.

    강호 의원은 정파·사파를 가리지 않고 검상(劍傷)과 내상(內傷)을 치료하는 평민 출신 의술가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회색 도포, 어깨에 약 가방, 허리에 작은 침통(鍼筒)과 약저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의 모든 무공이 남기는 상흔의 형태·옛 분기 처방 결재·금기 약초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의 진료실에는 무림맹주의 호위와 마교 교도가 같은 평상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강호 의원의 작은 진료실은 천하의 그 어떤 회의장보다 평등하다. 그의 손목 한 번이 다음 강호 결투의 결재 라인을 바꾼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른 척한다.

    우리 의원은 진료실 평상 한 자리를 평생 비워 둡니다. 그 빈 평상 한 줄이 강호 한 결투를 미루는 결재선이라는 뜻이지요.

    강호 의원 백의림 — 평생 정파·사파 환자 만 명을 진료하고도 단 한 명의 출신을 묻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한 평상의 정사(正邪) 새벽'으로 강호 의원들 사이에 가장 길게 전해진다.

    어느 겨울밤 무림맹 부맹주 호위 정태헌과 마교 본단 호법 갈우가 같은 새벽 백의림의 진료실에 검상을 안고 도착했다. 두 사람은 사흘 전 다른 결투 자리에서 서로의 검을 맞은 사이였고, 진료실 평상 두 자리가 마침 두 자리뿐이었다. 백의림은 두 사람을 같은 평상에 한 자리씩 앉힌 뒤, 침통을 한 줄로 풀어 두 사람의 검상을 번갈아 꿰맸다. 새벽 내내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백의림이 마지막 매듭을 묶을 때 정태헌이 갈우에게 "다음 결투는 한 달 뒤에 잡으시오"라며 자기 결투 일정을 한 달 뒤로 미루었다. 갈우는 답례로 자기 도(刀) 한 자루를 진료실 한쪽에 풀어두고 떠났고, 백의림은 그 도를 평생 진료실 빈 평상 한쪽에 그대로 두었다. 그 도가 놓인 빈 평상 한 자리는 그날 이후 어느 환자에게도 내주지 않은 채 평생 비워졌으며, 후대 강호 의원들은 진료실 평상 한 자리를 비워 두는 의례를 그날의 새벽에서 따왔다.

    강호에서는 가장 무거운 처방은 약초 한 잎이 아니라 그 빈 평상 한 자리라는 격언이 여기서 나왔다.

  • 천기진사(天機陣師)

    진법 술사

    하늘의 기운을 그대로 진(陣)으로 그려내는 자

    이 돌 하나 옮기지 마시오. 옮기는 순간 마당 전체가 사방의 함정으로 바뀝니다.

    진법 술사는 옛 병법서와 도가 음양오행을 결합해 진법(陣法)과 봉인 결계를 짜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도포, 가슴팍에 작은 팔괘 인장, 한 손에 옛 산가지 한 묶음과 작은 나침반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진법의 한 줄·옛 분기 봉인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도굴 무사가 봉인 동굴 앞에서 마지막으로 부르는 자가 바로 그다. 진법 안에서는 절세고수도 무명의 평민도 똑같이 한 걸음 한 걸음을 헤아려야 하기에, 강호의 진짜 평등은 그의 마당 한 칸 위에 있다. 그가 두는 돌 하나가 천하의 한 결투를 한 합 늦춘다.

    우리 진법 술사들은 마지막 돌을 일부러 비뚤게 둡니다. 그 한 푼 비뚤어진 자세가 절세고수의 한 합을 마당 안에 못 들이는 우리의 진짜 결재선이지요.

    진법 술사 호단경 — 평생 진법 천 자리를 짜고도 단 한 자리도 두 번 같은 자리에 두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비뚤어진 마지막 돌'로 학자형 무인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흑선동(앞서 도굴 무사 일화에 등장한 옛 사파 본산 동굴) 봉인이 풀린 다음 해, 호단경은 흑선동 입구에 새 봉인 진법을 짜기 위해 사흘에 걸쳐 마당 천 자리를 헤아렸다. 마지막 한 돌을 두기 직전 그는 일부러 그 돌을 한 푼 비뚤게 두었고, 그 한 푼 차이로 진법 안 모든 길이 사방으로 한 걸음씩 어긋났다. 사흘 뒤 사파 결사 흑막루의 살수 일곱이 흑선동에 잠입을 시도했으나, 비뚤어진 한 돌의 어긋남 때문에 진법 안에서 자기들끼리 길을 잃은 채 사흘을 헤매다 정파 도굴 무사 후학들에 의해 그대로 사로잡혔다. 호단경은 그 일 이후로도 진법을 짤 때마다 마지막 한 돌을 한 푼 비뚤게 두는 자세를 평생 다듬었다. 그가 사망한 뒤 흑선동 입구의 그 비뚤어진 한 돌은 후대 진법 술사들이 합장하는 자리가 되었으며, 입문 첫 진법 연습은 천 자리 헤아리는 자세가 아니라 마지막 한 돌을 한 푼 비뚤게 두는 자세부터 배운다.

    강호에서는 가장 무거운 진법은 천 자리가 아니라 그 한 푼의 비뚤어짐이라고들 한다.

  • 흑일유필(黑日遊筆)

    흑시 묵객(墨客)

    흑시(黑市)의 어둠 속에서 붓 한 자루로 일을 처리하는 묵객

    이름은 묻지 마시오. 의뢰인이 자기 이름을 말하면 이 일은 거기서 끝납니다.

    흑시 묵객은 흑시(黑市) 명부에 이름 한 줄로 등록된 평민 출신 거간이다. 외형은 야행복 검은 도포, 얼굴 절반을 가린 천 가면, 허리에 작은 먹통과 붓 한 자루, 한 줄 인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의 모든 옛 의뢰서·옛 분기 결재선·금기 명부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의뢰일수록 의뢰인의 얼굴을 보지 않으며, 작은 의뢰일수록 의뢰인의 사정을 깊이 듣는다. 흑풍단주조차 그에게 의뢰할 때는 가명을 쓰며, 그도 굳이 캐묻지 않는다. 강호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은 명문 검객의 검이 아니라, 이름 없는 그가 한 줄 명부 위에 적은 한 사람을 향해 긋는 묵선(墨線)이다.

    우리 묵객은 명부에 이름 한 줄을 적는 자세보다 한 줄 위에 줄을 긋는 자세를 먼저 배웁니다. 그 한 줄 줄긋기가 강호 한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지요.

    흑시 묵객 묵야 — 흑시 명부 첫 줄에 사십 년을 이름 한 줄로 올라 있던 자이자 평생 의뢰 백 건을 받아 단 한 건도 한 줄이 어긋난 적 없는 자 — 의 일화는 '명부 한 줄 위 줄긋기'로 흑시 거간들 사이에 가장 길게 전해진다.

    어느 가을 그는 정파 무관 사범 한 명을 명부에 올리라는 의뢰서를 흑시 거간 모운백(앞서 정보 거간 일화에 등장한 그 거간)에게서 받았다. 명부에 오를 자의 이름은 도일중, 평생 평민 자제들에게 첫 자세만 천 번 가르친 무관 사범이었으며, 의뢰주는 도일중에게 옛 빚을 갚지 못한 평민 양가의 둘째 아들이었다. 묵야는 사흘에 걸쳐 도일중의 무관 마당을 멀리서 지켜본 뒤, 마지막 새벽 자기 의뢰서 위에 자기 한 줄을 그어 의뢰를 무산시켰다.

    의뢰주에게는 자기 평생 보수 절반에 해당하는 은자를 대신 보내며, 한 줄 서신만 보탰다 — "이 한 줄 빚은 흑시 명부 한 줄로 갚는다." 묵야는 그 일 이후 흑시 명부에서 자기 이름을 한 줄 지운 채 강호를 떠났으며, 도일중은 그 사실을 평생 모른 채 무관 마당에서 천수를 누렸다. 그 의뢰서는 모운백의 부채 안주머니에 한 줄 봉인지로 묶인 채 보관되어 있으며, 흑시 명부 첫 줄에는 지금도 묵야의 한 줄 줄긋기 자국만 남아 있다.

  • 강호초식사(江湖招式師)

    무관 사범

    강호 입문자에게 첫 초식을 가르치는 사범

    기본기 천 번 더 하시게. 강호의 절세고수도 결국 첫 자세 위에 검을 얹는 거요.

    무관 사범은 강호 큰 도시 길목의 작은 무관(武館)에서 평민 자제들에게 검의 첫 자세를 가르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복, 어깨에 작은 명패 끈, 허리에 한 자루 목검(木劍)과 작은 출석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 모든 명문 검법의 첫 자세·옛 분기 입문 결재·금기 자세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한 명이 훗날 정파 명문에 입문해 큰 검객이 되는 일이 종종 있어, 무관 마당은 강호의 진짜 못자리다. 사범 본인은 화려한 검로를 익히지 못했지만, 첫 자세 한 번을 천 번 다듬은 자세는 어떤 절세고수도 함부로 비웃지 못한다. 강호의 모든 검은 결국 그의 마당 한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무관은 마당 한복판에 첫 자세 한 줄 자국을 평생 새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 한 줄이 닳아 사라지는 자리에 다음 절세고수가 한 명 일어선다고 도사부께서 그러셨지요.

    무관 사범 도일중 — 앞서 청부 살수 묵야가 의뢰서 위에 한 줄을 그어 살린 평민 사범 — 의 일화는 '한 줄 자국 마당'으로 평민 무인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도일중은 평생 자기 무관 마당 한복판에 첫 자세 발자국 한 줄만 새겨 두고 사십 년 동안 그 한 줄을 새로 그리지 않았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사파 외문제자 곽철(앞서 외문제자 일화에 등장한 그 평민)은 평생 그 한 줄 자국 위에서 도(刀) 자세를 다듬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훗날 화산파 외문제자로 입문해 매화검법 첫 자세를 정식으로 배웠다. 도일중은 자기가 청부 살수의 표적이었다는 사실을 평생 알지 못한 채 사망했고, 사망 마지막 새벽에도 마당 한 줄 자국 위에서 첫 자세 천 번을 그대로 다듬다 평상에 앉아 입적했다. 그가 사망한 뒤 무관 마당의 그 한 줄 자국은 후대 사범들이 합장하는 자리가 되었으며, 새 사범이 부임할 때마다 자기 발자국을 그 한 줄 위에 한 번 겹쳐 두는 의례가 생겼다. 곽철은 평생 자기 사파 호적에 도일중의 이름을 한 줄 부친 명패로 적었고, 화산파 외문제자가 된 또 다른 제자는 매년 봄 그 마당에 매화 한 가지를 가져다 두었다.

    강호에서는 가장 오래 닳지 않는 검은 한 자루가 아니라 그 마당 한 줄 자국이라고들 한다.

  • 백련주선(百鍊酒仙)

    술도가 주조사

    백 번을 빚어 신선의 향이 도는 술을 만드는 주조사

    이 술 한 호리병, 절세고수 한 분의 한 결투를 미루게 합디다. 그러니 함부로 비우지 마시오.

    술도가 주조사는 강호 길목 마을에서 곡주(穀酒)와 약주(藥酒)를 빚어 객잔과 표국에 납품하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가죽 앞치마, 허리에 작은 시음용 표주박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 모든 명문의 평소 술 취향·옛 분기 양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림맹 큰 회의에 올라가는 술과 마교 신도 제사에 올라가는 술이 같은 술도가에서 나오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강호의 진짜 화해는 회의장이 아니라 그의 술 한 호리병 위에서 일어난다. 그는 의리 한 줄을 검 대신 술잔으로 옮기는 자다.

    우리 술도가는 한 호리병에 한 줄 봉인지를 두 장 묶습니다. 한 장은 술 봉인이고, 한 장은 한 결투를 미루는 약속이라는 뜻이지요.

    술도가 주조사 노송천 — 앞서 도굴 무사 일화에 등장한 노삼의 사촌 형이자 평생 청호술도가(靑湖술도가, 강호 중단 호숫가 마을의 큰 술도가)를 사십 년 끌어간 평민 — 의 일화는 '두 장 봉인지 한 호리병'으로 강호 술자리에 길게 회자된다.

    무림맹 큰 회의에 올릴 곡주 한 호리병과 마교 신도 제사에 올릴 약주 한 호리병이 같은 봄 같은 누룩 한 줄로 빚어졌고, 노송천은 두 호리병 모두에 같은 봉인지 두 장씩을 묶었다. 봉인지 첫 장에는 누룩 한 줄의 출처가 적혔고, 둘째 장에는 단지 한 줄 — "이 호리병이 비워지는 자리에서 한 결투가 한 달 미뤄진다" — 만 적혔다. 무림맹주와 마교 칠대 교주 단경연 모두 그 둘째 장 한 줄을 보고 술잔을 한 호흡 미루었으며, 그 봄 두 측 사이의 청룡곡 결투(앞서 무당 장문인 일화에 등장한 그 결투지)가 한 달 더 미뤄졌다. 두 호리병은 비워진 뒤에도 봉인지 둘째 장이 그대로 묶인 채 청호술도가 한쪽 벽에 평생 걸렸다. 노송천은 그 사실을 평생 자랑하지 않았고, 다음 봄 같은 누룩 한 줄로 또 두 호리병을 빚었다. 후대 청호술도가 주조사들은 한 호리병에 봉인지 두 장을 묶는 의례를 그날의 봄에서 따왔으며, 강호에서는 가장 무거운 술 한 호리병은 비워지지 않은 술이 아니라 봉인지 둘째 장 한 줄이라고들 한다.

  • 누걸일협(縷乞一俠)

    강호 거지

    남루한 누더기 차림이지만 의(義)를 잊지 않는 강호의 거지

    동전 한 닢이면 충분하오. 어제 어느 검객이 이 길로 갔는지, 그건 덤으로 드리지요.

    강호 거지는 개방의 정식 매듭을 받지 못한 채 강호 길목 골목에 자리를 펴는 평민 출신 떠돌이다. 외형은 누더기 도포, 어깨에 동냥 그릇 하나, 허리에 작은 짧은 막대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평생 자기 자리 한 모퉁이의 평소 행인·옛 분기 사고 결재·금기 사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동전 한 닢에 강호 큰 검객의 어제 발자국이 따라 나오는 일이 흔해, 정파 정보꾼과 사파 척후도 그의 그릇 앞에서 잠시 허리를 굽힌다. 강호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많은 진실이 드나든다는 사실을, 본인만은 일부러 모른 척한다. 그는 개방 방주가 가장 정중히 술잔을 기울이는 상대이기도 하다.

    우리 거지의 그릇은 평생 한 자리에서 닳습니다. 그 닳은 자국 한 줄이 강호 한 골목의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강호 거지 마칠보 — 개방 매듭을 받지 못한 채 사십 년을 청룡사거리(靑龍사거리, 중원 도성 동단의 가장 큰 사거리) 한 모퉁이만 지킨 자 — 의 일화는 '닳은 그릇 한 자국'으로 개방 안에서 가장 길게 전해진다.

    어느 늦은 새벽 사파 청부 살수 풍천랑(앞서 거듭 등장한 그 살수)이 정파 표두 한 명을 청룡사거리 모퉁이에서 노리려 잠복했고, 마칠보는 그날 자기 그릇을 평소보다 두 푼 더 길게 자기 앞에 끌어다 두었다. 그 두 푼 차이로 풍천랑의 표창 한 점이 표두 대신 마칠보의 그릇 한 모서리에 부딪혀 한 호흡 늦게 떨어졌다. 그 한 호흡 동안 표두는 사거리를 빠져나갔고, 풍천랑은 표창을 거두며 마칠보의 그릇에 동전 한 닢을 던져 넣고 사거리를 떠났다. 마칠보는 그 동전 한 닢을 평생 자기 그릇 안주머니에 두었으며, 그 동전이 들어 있는 그릇 자국 한 줄은 사거리 한 모퉁이에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십칠대 개방 방주 노구걸은 마칠보에게 평생 매듭 하나를 정중히 권했으나, 마칠보는 "내 매듭은 그릇 자국 한 줄이오"라며 끝내 거절했다.

    후대 강호 거지들은 청룡사거리 모퉁이를 지날 때 그릇을 두 푼 더 길게 끌어 두는 자세를 마칠보의 한 줄 매듭이라 부른다.

  • 천리편향(千里鞭向)

    마방 마부

    채찍 한 번으로 말을 천 리 향해 달리게 하는 마부

    이 말, 어제 표두 한 분 태우고 사흘 길을 달렸소. 한 시진만 쉬게 해주시오.

    마방 마부는 강호 길목 마방(馬房)에서 표국 표마와 강호 객(客)의 말을 돌보는 평민 출신 일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가죽 가방, 허리에 작은 솔과 편자 한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 모든 명문의 평소 말 걸음새·옛 분기 마방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큰 결투를 앞둔 검객의 말 한 마리만 봐도, 그 검객이 오늘 결투에 어떤 마음으로 가는지 한눈에 안다. 표두가 가장 먼저 인사하는 자가 표국 짐꾼호위라면, 가장 마지막까지 인사하는 자가 바로 마방 마부다. 강호의 한 결투 뒤에는 늘 그가 빗질해둔 말 한 마리가 서 있다.

    우리 마부는 빗질 한 자세로 검객 한 분의 결투 한 합을 미룹니다. 마방 한 칸이 강호 결투지보다 먼저 결재가 떨어지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마방 마부 단우천 — 만류표국(앞서 짐꾼호위 일화에 등장한 그 표국) 마방을 사십 년 지킨 평민이자 평생 만 마리 말의 걸음새를 외운 자 — 의 일화는 '빗질 한 자세의 결재선'으로 마방 일꾼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새벽 정파 떠돌이 검객 백창휴(앞서 무당 장문인 일화에 등장한 무림맹 부맹주)가 결투 자리로 향하기 전 만류표국 마방에 들렀다. 단우천은 백창휴의 말 한 마리를 한 호흡 빗질하다 그 말의 걸음새가 평소보다 한 푼 더 무거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백창휴에게 "이 말, 한 시진만 쉬게 해주시오"라며 정중히 안장끈을 풀었다. 백창휴는 처음에 거절하려 했으나, 단우천이 풀어둔 안장끈 한 줄을 보고는 결투를 한 시진 미루었다. 그 한 시진 사이에 결투 입회 도인 도원규(앞서 도원규 일화에 등장한 그 도인)가 도착해 결투 사유의 오해를 풀었으며, 결투는 무산되었다. 백창휴는 그 일 이후 만류표국 마방에 들를 때마다 단우천에게 정중히 절을 한 번 올리는 관례를 만들었고, 단우천은 그 절을 매번 빗질 한 자세로 갈음했다. 단우천이 사망한 뒤 그 마방 한 칸의 빗질 자국은 후대 마부들이 합장하는 자리가 되었으며, 입문 첫날 한 호흡 빗질부터 배우는 자세는 그날의 새벽에서 따왔다.

    강호에서는 가장 무거운 결재는 표두실 도장이 아니라 마방 한 칸 빗질 한 줄이라고들 한다.

  • 검황지존(劍皇至尊)

    검황(劍皇)

    모든 검의 황(皇)으로 군림하는 자

    황제는 옥좌 위에 앉고, 나는 검 끝 위에 선다. 둘 다 내려오지 못하는 자리인 건 마찬가지요.

    검황은 강호 역사에 단 한 시대 한 사람만 허락되는 칭호로, 검신(劍神)이 한 시대 최고의 검을 완성한 자라면 검황은 그 검으로 강호의 절반을 통일한 자다. 검을 뽑는 순간 주변 산세가 흔들린다 전해지며, 한 번 자리에 오른 뒤로는 아무도 그를 왕좌에서 내려오게 하지 못했다. 정파와 사파 모두 그에게 청원서를 넣지만, 검황은 청원보다 결투 신청에 더 빨리 답한다.

    문제는 워낙 강해서 수십 년 동안 마땅한 도전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상은 한적한 봉우리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며 세월을 보내는데, 가끔 산 아래 마을 아이가 "아저씨 또 칼 휘두른다" 하면 그게 하루 중 가장 기쁜 순간이다. 천하를 손에 쥔 자의 가장 큰 걱정이 같이 검 얘기를 나눌 친구가 없다는 사실임을, 본인만 겸허히 안다.

    검황의 진짜 검은 싸움에서 쓴 적이 없소. 그 검을 어루만질 때마다 그 어깨에 한 시대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 있다는 걸, 곁에서 본 우리만 압니다.

    이대 검황 강철풍(姜鐵風) — 강호 역사상 두 번째이자 가장 오랜 검황이며 검신(劍神) 한무극의 후계를 잇는 자 — 의 일화 중 가장 오래 회자되는 것은 '무명봉(無名峯) 한 합의 작별'이다.

    강철풍이 검황에 오른 지 서른 해 되던 봄, 강호 무명봉 자락에 늙은 검객 한 사람이 찾아와 "한 합만 상대해 달라"고 청했다. 강철풍은 결투를 수락했고, 그 늙은 검객은 자기가 초대 검신 한무극의 마지막 제자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새벽부터 한 합 하나를 사흘에 걸쳐 나누었으며, 사흘째 저녁 그 늙은 검객은 검을 풀어 강철풍의 발 앞에 두고 "이제 그 검이 갈 자리를 찾은 것 같소"라며 자리를 떠났다. 강철풍은 그 검을 평생 자기 검 옆에 나란히 두었으며, 그날 이후 무명봉을 찾아오는 어린 검객에게는 언제나 그 늙은 검의 이야기부터 들려주었다.

    강호에서 검황의 검은 사실 혼자가 아니라 그 늙은 검과 두 자루였다는 야사가 무명봉 아래 지금도 전해진다.

  • 혈하성주(血河聖主)

    혈교 성자

    혈(血)의 강 위에 군림하는 혈교의 성자

    나를 성자라 부르지 마라. 성(聖)은 내가 아니라, 내가 대신 지고 가는 그 자리 위에 있다.

    혈교 성자는 혈교(血敎)라 불리는 극단적 사파 결사의 정신적 정점에 선 자로, 마교 교주가 조직의 머리라면 혈교 성자는 조직의 영혼이다. 피로 맺은 서약을 신도들에게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신도의 피를 자기가 먼저 대신 흘리겠다는 역설의 교주다. 그의 한 마디 설법이 강호의 잃어버린 자들을 한 자리로 모으며, 정파는 그를 가장 위험한 자로 손꼽는다.

    하지만 막상 혈교 성자를 잡으러 가면 신도들에게 만두를 나눠주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파에게는 사파 최고 위험인물이지만, 신도 눈에는 가장 배고픈 자에게 먼저 한 그릇을 미는 어른이다. 강호에서 가장 무서운 설법은 도검이 아니라 그 만두 한 그릇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 신도들은 그 성자께서 직접 만두 빚는 손목 결을 보았소. 그 손목 한 줄이 설법 천 마디보다 더 깊이 남았지요.

    삼대 혈교 성자 현음(玄音) — 혈교 역사상 가장 오래 신도 곁에 머문 자이자 평생 한 번도 교단 옥좌에 앉지 않은 성자 — 의 일화 중 가장 길게 회자되는 것은 '만두 빚는 새벽의 설법'이다.

    어느 겨울 새벽, 무림맹 토벌대가 혈교 본단을 에워싼 채 항복을 요구했다. 현음은 신도들에게 어떤 무기도 들지 말라 이르고는 혼자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토벌대 사령 황비란(黃飛鸞, 당시 무림맹 서열 사위의 검객)이 직접 들이닥쳤을 때, 현음은 갓 빚은 만두 한 접시를 내밀었다. 황비란은 검을 뽑으려다 그 접시 앞에서 한 호흡을 멈추었고, 결국 만두 한 점을 받아들었다. 토벌대는 그날 혈교 본단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돌아갔으며, 황비란은 무림맹에 자청해 "혈교는 무기가 없다"는 보고서 한 줄을 남겼다.

    현음은 그 이후로도 옥좌에 단 한 번 앉지 않았고, 신도들은 그 만두 접시를 혈교 성소 한 자락에 본보기로 새겨 두었다. 강호에서 가장 강한 설법은 도검이 아니라 만두 빚는 손이었다는 격언이 혈교 안에 전해진다.

  • 차하제이인(次下第二人)

    무림맹 부맹주

    천하제일인 다음의 두 번째 자리를 잇는 자

    맹주께서 결재하시는 동안, 실무는 제가 굴립니다. 그러니 장로분들, 저한테도 한마디 정도는 해주셔야지요.

    무림맹 부맹주는 무림맹주의 오른팔로, 맹주가 큰 결재를 내릴 동안 일상적인 분쟁 조정·문파 간 외교·표국 협약을 실무로 처리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맹복, 어깨에 부맹주 인장 망토, 허리에 한 자루 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 전 문파의 현황·인물 서열·분쟁 이력을 표처럼 꿰고 있다.

    맹주가 "결재"를 찍으면 부맹주가 실제로 그 결재를 돌아다니며 관철시키는 구조라, 강호 현장에서 진짜 무서운 사람은 맹주가 아니라 부맹주라는 말이 있다. 가끔 장로들이 맹주를 넘어 부맹주에게 청탁을 넣는 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부맹주는 "맹주께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한 줄로 모든 청탁을 정중히 돌려보낸다. 이 한 줄이 사실 강호 분기 라인 중 가장 얇고 단단한 한 줄이다.

    부맹주의 그 '맹주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줄이, 사실 한 시즌 강호 분쟁 절반을 입구에서 막아낸 결재선이었습니다.

    오대 무림맹 부맹주 백창호(白昌豪) — 앞서 무당 장문인 일화에 등장한 부맹주 백창휴의 친형이자 전임 부맹주이며 강호 외교 결재의 정점에 있던 자 — 의 일화는 '한 줄 서신의 결재선'으로 무림맹 문서고에 남아 있다.

    어느 가을, 정파 일곱 문파가 한 표국 경계선 문제로 무림맹 본단에 집결해 열흘을 결재 없이 싸우고 있었다. 백창호는 회의장 한 발자국도 들지 않은 채, 각 문파에 서신 한 줄씩을 보내 "부맹주는 내일 새벽 일곱 사문 산문을 순서대로 들를 것이오"라 알렸다. 다음 날 새벽 그는 일곱 사문을 각각 반 시진씩 방문해 표국 경계선 문제가 아닌 그 사문 어린 제자의 첫 검 이야기를 차 한 잔과 함께 청했다. 이레째 되는 날 일곱 사문은 표국 경계선 결재를 한 시진 안에 마쳤으며, 어느 문파도 먼저 양보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백창호의 그 서신 일곱 장은 무림맹 문서고 한 자리에 지금도 봉인된 채 있으며, 후대 부맹주들은 취임 첫 주에 그 봉인을 한 번 들여다보는 관례를 따른다.

  • 절문일검(絶門一劍)

    사문 파문 검객

    사문에서 끊어졌으나 한 자루 검으로 살아가는 자

    파문(破門)이 부끄러운 게 아니오. 파문당하고도 여전히 검을 드는 이유가 내 사문이오.

    사문 파문 검객은 사문에서 쫓겨난 뒤에도 스스로의 검로를 포기하지 않고 강호를 떠도는 고수다. 사문 명패도, 호적도, 스승의 이름도 쓸 수 없지만 그 검에서 옛 사문의 자세가 스며 나오는 자다. 정파에서는 불편한 존재이지만, 사파에서는 가장 포섭하고 싶어 하는 인재다.

    파문 이유가 대개는 어처구니없어서 문제다. 사부의 잘못을 제자가 바로잡으려다 쫓겨나거나, 검결이 너무 뛰어나 사부가 겁을 먹고 내보낸 경우가 강호 야사에 수십 건이다. 그래서 강호에는 파문 검객의 검이 사문의 검보다 더 순수하다는 역설적인 격언이 있다.

    그가 사부의 마지막 검결 한 줄을 스스로 완성한 새벽이 있소이다. 사문 명패 없이 그 한 줄을 완성했다는 게 우리 같은 파문객에게는 가장 무거운 한 줄이지요.

    파문 검객 낙무진(洛武陣) — 화산파(花山派)에서 파문당한 뒤 삼십 년을 홀로 검로를 다듬어 화산검법의 미완성 마지막 식(式)을 스스로 완성한 자 — 의 일화는 강호 야사에 '파문의 마지막 한 식'으로 남아 있다.

    낙무진이 화산파에서 파문당한 이유는 당시 사문 장로의 잘못된 검결 한 줄을 공개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삼십 년을 홀로 떠돌며 화산검법 칠십삼식 — 사문에서 미완성으로 전해지던 마지막 한 식 — 을 연구했다. 어느 봄 새벽 낙무진은 무명봉 절벽 앞에서 칠십삼식의 마지막 한 호흡을 완성했고, 그 자리에서 화산파 어린 제자 한 명과 마주쳤다. 어린 제자가 "사문에서 배운 검법이오?" 묻자 낙무진은 "나의 검법이오"라고만 답했다. 어린 제자는 사문에 돌아가 그 한 식을 장로들에게 보고했고, 화산파 보검각에는 낙무진의 이름 없이 칠십삼식이 새로 추가되었다. 낙무진은 평생 그 사실을 확인하러 가지 않았으며, 무명봉 근처 산기슭에서 홀로 늙어갔다.

    강호에서 파문 검객의 가장 곧은 검로는 사문에서 도망친 자가 아니라, 사문을 떠난 뒤에도 사문보다 더 깊이 사문 검결을 완성한 자에게서 나왔다는 격언이 야사에 남아 있다.

  • 빙심화존(氷心華尊)

    빙화문 문주

    얼음의 차가움과 꽃의 정점을 함께 지닌 문주

    차갑다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오. 얼음 속에 꽃 한 송이 들어 있는 거 모르는 사람들만 차다고 하지.

    빙화문 문주는 북방 한지 깊숙이 자리한 사파 결사 빙화문(氷花門)의 수장으로, 빙계 무공(氷系武功)과 독침(毒針)을 결합한 절기의 달인이다. 외형은 흰 도포에 얼음 결 자수, 머리에 작은 수정 관, 허리에 한 자루 빙검(氷劍)과 독침 묶음이 표준이다. 그의 검은 적을 직접 베지 않고 얼려서 꽃처럼 세운다는 뜻에서 '빙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파라 불리지만 실상은 북방 약소 마을을 정파로부터 지키는 자경대에 가깝고, 빙화문 단원들은 단주를 형이라 부른다. 정파가 빙화문을 사파로 규정한 진짜 이유는 무공이 아니라 빙화문이 정파 세금 징수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호 사람들은 다 안다.

    빙화문 단원들이 새벽마다 마을 입구 얼음 위에 꽃 한 송이를 얹어두는 이유가 있소. 그게 경계도 인사도 아니라 그날 하루 마을이 무사하다는 표시라는 걸, 마을 사람들은 다 알지요.

    사대 빙화문 문주 한설강(韓雪江) — 빙화문 역사상 네 번째 문주이자 빙화결(氷花訣)을 가장 청아하게 완성한 자 — 의 일화는 '한빙촌(寒氷村) 봄 매화'로 북방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정파 무림맹 서단 집행부가 세금 미납을 이유로 북방 한빙촌에 토벌대를 보냈다. 한설강은 단원들을 모두 마을 안으로 들이고 자기 혼자 마을 어귀 얼음 위에 매화 한 가지를 꽂은 채 섰다. 토벌대 부대장 임정(林廷)이 검을 뽑으려 하자, 한설강은 빙검을 뽑지 않은 채 발 아래 얼음 위로 빙화결 한 호흡을 옮겼다. 그 순간 토벌대 발 아래 얼음 바닥에 매화 문양 한 폭이 피어났고, 임정은 그 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검을 거두었다. 앞서 10022 개방 방주 일화에 등장한 개방 방주가 마침 그 길목을 지나다 토벌대 옆에 서서 "동전 한 닢이면 그 매화 뒤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소"라며 술잔을 기울이자, 임정은 조용히 부대를 돌렸다.

    한빙촌 마을 어귀의 그 얼음 매화 한 폭은 북방 봄이 와도 이레를 더 남아 있었다고 전하며, 후대 빙화문 문주들은 즉위 첫날 그 자리에서 빙화결 한 호흡을 옮기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 자영밀행자(紫影密行者)

    황실 밀탐

    자줏빛 그림자처럼 황실의 명을 비밀히 행하는 자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황실이 이 자리를 알고 있다는 뜻이오.

    황실 밀탐은 황실 내정부가 정파·사파 양측 모두를 감시하기 위해 강호에 심어둔 비밀 정보원이다. 외형은 매번 다르며 한 신분을 석 달 이상 유지하는 법이 없다. 본인은 한 시대 강호의 모든 문파 내부 사정·고수 실력·비급 보관 위치를 손바닥처럼 외운다.

    정파도 사파도 모르지만, 황실 친위대장 한 명만은 그가 누군지 안다. 그게 밀탐의 유일한 아군이다. 강호를 돌다 보면 자기가 어느 쪽 정체성도 없어지는 시점이 오는데, 그 순간 밀탐은 가장 위험한 자가 된다. 그래서 황실에서는 밀탐 임무 기간을 삼 년으로 제한하지만, 삼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밀탐이 강호 야사에 손가락 안에 든다.

    그 밀탐이 삼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황실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을 한 그릇 만두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소. 사람은 결국 돌아갈 자리가 생기면 자리를 잡는다오.

    황실 밀탐 암호 '청조(靑鳥)' — 황실 기록에 실명이 없고 암호로만 남아 있는 자이자 강호 역사상 가장 오랜 밀탐 생활을 한 자 — 의 일화는 황실 비밀 문서고에 단 한 줄만 남아 있다.

    청조는 황실 파견 칠 년째 되던 해 강호 북단 작은 마을 청성촌(靑城村)에서 객잔 주방장으로 살고 있었다. 황실 친위대장 위무겸(앞서 황실 친위대장 일화에 등장한 그 대장)이 직접 청성촌에 찾아와 귀환을 명했을 때, 청조는 갓 빚은 만두 한 접시를 내밀었다. 위무겸은 그 만두 한 점을 받아 먹은 뒤, 황실 귀환 명령서를 앞치마 위에 놓고 홀로 돌아갔다. 황실 비밀 문서고에는 그 뒤 청조에 관한 기록이 단 한 줄 — "청조는 임무 완수, 귀환 불명(不明)" — 만 남아 있다.

    청성촌 객잔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만두 한 접시를 가장 먼저 메뉴에 올리며, 마을 어른들은 그 만두 주방장 이야기를 가장 오래된 마을 비밀로 부른다.

  • 강북철표왕(江北鐵鏢王)

    강북 표왕

    강북 일대 표국의 으뜸을 차지한 강철 같은 왕

    강호 어느 길목이든, 내 표국 깃발이 지나간 자리는 열흘 동안 도적이 얼씬 못하오.

    강북 표왕은 강호 북방 표국들을 하나로 묶어 연합표국(聯合鏢局)을 이끄는 표두 중의 표두로, 무림맹주도 표행 때는 그의 허락을 받는다고 알려질 만큼 강북 길목의 실질 지배자다. 외형은 두꺼운 가죽 갑옷, 어깨에 거대한 연합표국 깃발, 허리에 묵직한 표왕도(鏢王刀)가 표준이다. 강북 도적단들은 표왕의 마크가 붙은 표물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키는데, 표왕이 과거 도적단 출신이기 때문이다.

    도적 단주에서 표왕으로 변신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우리 단원 밥값을 합법적으로 벌려고"라고 답한다. 실제로 연합표국 표사의 절반은 전직 도적 출신이며, 그래서 길목 지리를 가장 잘 아는 표국이기도 하다. 강호에서 가장 무서운 길 안내는 표왕도를 허리에 찬 전직 도적이다.

    표왕이 표사들에게 출발 전 따라주는 그 한 잔은 술이 아니오. 그게 옛 단원 시절 먹던 그 고량주 한 잔이라는 걸, 오래된 표사들만 알지요.

    초대 강북 표왕 마청호(馬靑虎) — 강호 북단 도적단 청호회(靑虎會) 단주에서 연합표국 창설자로 변신한 자 — 의 일화는 '청성령(靑城嶺) 봄 결재'로 표국들 사이에 가장 오래 회자된다.

    마청호가 도적단 단주 시절, 자기 단원 한 명이 표국 표물을 훔치다 팔이 잘릴 위기에 처했다. 당시 표두 진백호(앞서 10010 대표국 표두 일화에 등장한 그 표두)가 직접 나서 단원을 풀어주는 대신 마청호에게 "내 표물 하나를 네가 직접 지켜 봐라"는 제안을 건넸다. 마청호는 일주일간 그 표물을 도적 출신 감각으로 경호했고, 표물은 단 한 점의 손실도 없이 목적지에 닿았다. 그 이후 마청호는 자기 단원 전체를 데리고 도적단을 해산하고 연합표국을 창설했다. 연합표국 출발 결재 의례에는 지금도 마청호가 처음 표물을 경호하던 청성령 고갯돌 한 조각이 표두실에 보관되어 있으며, 출발 전 그 돌에 한 호흡 절하는 관례가 남아 있다.

  • 독선약사(毒仙藥士)

    독문 약사

    독으로 사람을 살리고 약으로 사람을 죽이는, 양면을 가진 약사

    독(毒)과 약(藥)은 한 뿌리요. 다만 손이 어느 쪽을 더 오래 만지느냐가 그 사람을 정하지.

    독문 약사는 강호에서 가장 위험한 독초와 약초를 동시에 다루는 무인으로, 독과 약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전문가다. 외형은 짙은 색 도포에 독초 문양 자수, 어깨에 약초 가방, 허리에 작은 독침통과 약저울이 표준이다. 그의 처방은 한 방울 차이로 적을 쓰러뜨리기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문제는 같은 물건을 들고 오는 사람이 약을 원하는지 독을 원하는지 그의 눈은 곧바로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문 약사의 가게 앞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용도가 좀 불순하시군요. 그래도 드릴까요?"다. 강호에서 두 번째로 솔직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첫 번째는 이미 죽었다.

    독문 약사의 그 질문 한 마디가 강호 결투 한 건을 막은 일화가 야사에 여럿 있소. 그 한 마디가 결국 저울 한 쪽에 독을, 한 쪽에 약을 올리는 셈이지요.

    독문 약사 화홍령(花洪靈) — 강호 남방 독화당(毒花堂, 독초 전문 약사 집단) 제오대 수제자이자 평생 독을 쓴 적 없는 독전문가 — 의 일화는 '독(毒) 한 방울의 질문'으로 약사들 사이에 회자된다.

    어느 가을 밤, 흑풍단주(앞서 10003 흑풍단주 일화에 등장한 그 결사의 일원)의 부하 한 명이 상대 문파 장주에게 쓸 독을 구하러 화홍령을 찾았다. 화홍령은 독초 세 가지를 꺼내 들고는 "이게 장주의 목숨을 가져갈 독이오, 이게 그 고통을 없애줄 약이오. 그대가 원하는 쪽은 어느 쪽이오?" 하고 물었다. 그 부하는 한 호흡 멈추었다. 독초가 곧 약이고 약이 곧 독이라는 사실 앞에서, 그는 상대 장주에게 원하는 게 "죽음"인지 "고통"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떠났으며, 두 문파는 그 이후 결투 없이 관계를 정리했다.

    화홍령은 그 일 이후로도 "용도가 무엇이오?"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으며, 그 질문 한 마디가 강호 결투 열일곱 건을 막았다고 야사는 기록한다.

  • 전장활인사(戰場活人師)

    야전 군의관

    전장의 핏물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군의

    지금 당장 싸우고 싶은 마음 이해는 하오. 하지만 이 봉합 실이 끊기면 그 욕심도 같이 끊기오.

    야전 군의관은 강호 대규모 전투나 문파 간 충돌이 벌어지는 현장에 함께 들어가 부상자를 처치하는 무의(武醫)다. 외형은 짙은 색 갑주 위에 흰 의료 조끼, 어깨에 커다란 약 가방, 허리에 작은 침통과 봉합 도구가 표준이다.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먼저 쓰러진 자를 치료하며, 결투 중에도 치료 중인 의관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강호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어떤 전투 현장에서도 가장 먼저 치료받으러 오는 자가 가장 강한 고수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절세고수일수록 상처를 잘 입는 이유는 강한 자가 먼저 나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전 군의관의 꿰맨 흔적이 가장 많은 사람이 사실 강호에서 가장 많은 전투에 뛰어든 사람이라는 역설이 있다.

    야전 군의관이 현장에 들어선다는 건, 이미 그 전투가 한 합 이상 길어질 거라는 신호요. 그가 온다는 소식에 오히려 쉬어가는 자도 있다고 들었소.

    야전 군의관 반운학(潘雲鶴) — 강호 남방 큰 전투 현장 삼십여 곳을 평생 누빈 자이자 양측 부상자 총 오천 명을 살린 기록이 남아 있는 의원 — 의 일화는 '청룡곡(靑龍谷) 새벽 봉합'으로 의원들 사이에 남아 있다.

    청룡곡(앞서 무당 장문인 일화에 등장한 그 결투지) 전투 직전, 반운학은 양측 진영을 모두 돌며 "치료를 원하는 자는 전투 시작 전에 먼저 오시오"라는 안내를 직접 건넸다. 황당하게도 정파와 사파 양측에서 새벽 전투 전에 부상자들이 줄을 섰다. 반운학은 새벽 내내 봉합하느라 정작 전투 시작 직전에야 짐을 쌌는데, 그사이 양측 지휘관들이 부상자 명단을 보고 "저 사람이 이미 베였는데 내가 뭘 더 이기겠나" 하며 결투 시작을 한 시진 미루었다. 그 한 시진 안에 천기 군사 한청유(앞서 30007 천기 군사 일화의 그 군사)가 도착해 양측을 회담 자리로 이끌었다.

    반운학은 그날 이후로도 전투 현장마다 가장 먼저 도착해 봉합 실을 꺼내 드는 관습을 지켰으며, 강호에서는 야전 군의관이 현장에 들어서는 것이 평화 협상의 시작이라는 격언이 남았다.

  • 검리각수(劍理刻手)

    검결 각자장(刻字匠)

    검의 이치를 글자로 새기는 장인

    비급 한 권을 돌에 새기는 데 석 달이오. 그 석 달 동안 비급 주인의 한 호흡이 손목에 남소.

    검결 각자장은 강호 명문 사문의 비급·검결·계율을 돌이나 나무에 한 자씩 새겨 사문 마당에 오래 남기는 장인이다. 외형은 석분 묻은 짙은 작업복, 어깨에 작은 조각 도구 가방, 허리에 정(鑿)과 망치 한 조가 표준이다. 어려운 비급일수록 한 자를 새기는 데 하루가 걸리며, 그 과정에서 비급의 호흡이 손목에 새겨진다.

    사문 마당 비석에는 장인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지만, 그 비석을 만진 고수들은 누가 새겼는지 손끝으로 안다는 말이 있다. 어떤 각자장은 비급 한 권을 새기다가 그 무공을 스스로 깨우쳤다는 야사도 있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각자장의 손목이 비급 주인보다 더 많은 비급을 품고 있다는 격언이 있다.

    비급은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돌 위에 새겨질 때 비로소 강호에 오래 남는다는 걸, 각자장들이 제일 먼저 알지요. 한 글자 새길 때마다 그 비급 한 호흡이 손목으로 넘어오거든요.

    검결 각자장 주석룡(朱石龍) — 화산파·소림사·무당파 3대 사문의 핵심 비급을 모두 비석에 새긴 유일한 장인이자 무공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평민 — 의 일화는 '소림 나한진 마당 비석'으로 전해진다.

    소림사 나한진(앞서 10021 소림 나한승 일화에 등장한 그 진법)의 핵심 검결을 산문 마당 비석에 새기는 의뢰를 받은 주석룡은, 새기다가 비석 한가운데서 정(鑿)을 멈추었다. 비급 한 줄의 획 방향이 자기 손목 관절 방향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흘을 고민한 뒤, 새기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자기 손목 방향을 바꾸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자세 변화로 주석룡은 나한진 핵심 검결 한 줄을 손목에 그대로 새겼으며, 소림사 장로들은 완성된 비석을 보고 "이 비석은 나한진 비급이 아니라 나한진 한 호흡"이라 했다.

    소림 나한승 혜원(앞서 10021 일화의 그 무승)은 그 비석 앞에서 평생 한 번씩 합장하는 관례를 만들었으며, 주석룡은 이후 어떤 비급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손목을 바꾸는 자세를 평생 지켰다.

  • 천하호가(天下呼價)

    강호 경매인

    강호의 모든 보물에 가격을 매기고 부르는 자

    이 비급 한 권, 은자 천 냥에 시작하겠소. 가격이 아니라 그 비급을 받을 자격을 사는 것이오.

    강호 경매인은 비급·영약·명검·희귀 보물을 정파와 사파 양측 모두에게 공개 경매로 판매하는 무림의 전문 중개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경매복, 어깨에 작은 인장 가방, 한 손에 경매 목록 두루마리와 작은 종이 부채가 표준이다. 경매 자리는 어떤 싸움도 금지된 중립 구역으로, 정파와 사파가 같은 탁자에 앉아 은자를 세는 유일한 자리다.

    진짜 고수들은 경매보다 결투로 물건을 얻으려 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가장 큰 경매에는 강호 최고의 검객들이 모두 모여 은자를 세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강호의 진짜 평화는 무림맹 회의장이 아니라 경매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격언은 여기서 나왔다.

    그 경매 한 자리에서 정파 검객과 사파 살수가 같은 비급을 두고 정중히 은자를 셌다는 게 야사에 남아 있소. 그게 그날 강호 최고의 평화였지요.

    강호 경매인 묘천단(苗天丹) — 삼십 년간 강호 최고 물품 경매를 천 회 주재하고도 단 한 번의 분쟁도 없었던 전설의 경매인 — 의 일화는 '천하제일 경매'로 강호에 길게 남아 있다.

    묘천단이 주재한 경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초대 검신 한무극(앞서 10002 검신 일화에 등장한 그 검의 시조)의 유품으로 전해지는 비급 한 권이었다. 경매 당일 정파 무림맹 대표와 마교 교주 단경연(앞서 10006 마교 교주 일화의 그 교주)이 같은 탁자에 앉았다. 묘천단은 경매 시작 전 두 사람에게 차 한 잔씩을 먼저 따랐고, "이 경매 자리에서는 어느 쪽이 이겨도 비급은 한 자루 검 위에 남아 있을 뿐이오"라고 한마디 했다. 경매는 다섯 시진 동안 이어졌고, 최종 낙찰은 무림맹도 마교도 아닌 강호 곡예단원 류이주(앞서 10019 일화에 등장한 그 곡예단원)였다. 류이주는 평생 모은 은자 전부를 털었고, 두 측 어른들은 그 결과 앞에서 한 호흡씩 침묵했다.

    묘천단은 그날 이후 경매 자리마다 가장 마지막 입찰자를 위해 탁자 한 자리를 비워두는 관례를 만들었다.

  • 사문비전객(師門飛傳客)

    사문 전령 검사

    사문의 비밀스런 전갈을 검에 실어 나르는 자

    이 서신, 봉인이 뜯기면 내가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어지오. 그러니 내 앞에서 열어 주시오.

    사문 전령 검사는 사문의 극비 서신·결재·긴급 소집을 직접 달려가 전달하는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사문 전령복, 어깨에 서신 봉인 가방, 허리에 한 자루 전령검(傳令劍)과 사문 인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의 모든 길목·지름길·야간 잠복 위치를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서신을 받는 상대방의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복명(復命)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래서 전령 검사가 돌아온 뒤 사부가 "그분의 표정이 어땠소?"라고 물으면, 전령 검사는 표정을 외워 그대로 재현한다. 강호에서 가장 솔직한 외교관은 서신이 아니라 전령 검사의 귀에 있다고 한다.

    그 전령이 돌아와 '대상자의 오른눈썹이 한 번 씰룩였습니다'라고 복명했을 때, 사부께서 크게 웃으셨지요. 그 씰룩임이 승낙이라는 걸, 사부만 아셨소.

    사문 전령 검사 노황(盧晃) — 무당파 서신 전령 검사로 삼십 년을 강호를 달린 자이자 단 한 번도 서신 봉인이 뜯긴 적 없는 자 — 의 일화는 '이레 달리기 서신'으로 전령 검사들 사이에 회자된다.

    어느 봄, 무당파 장문인 송허도(앞서 10008 무당 장문인 일화에 등장한 그 장문인)가 마교 교주 단경연에게 긴급 서신을 보내야 했다. 마교 본단까지는 이레 길이었고, 사파 살수 결사 두 곳이 도중에 잠복해 있었다. 노황은 서신 봉인을 자기 허리 안쪽 띠에 직접 꿰매 이레를 달렸다. 도중에 살수 결사 두 곳과 각각 한 합씩 결투를 치렀으나, 허리 띠가 베이지 않게 버텼다. 마교 본단에 도착했을 때 그의 외투는 조각나 있었고, 허리 띠만 온전했다. 단경연은 봉인 상태를 확인하고 서신을 열었으며, 그 서신 한 줄이 청룡곡 결투(앞서 10008 일화에 등장한 그 결투지) 무산의 첫 실마리였다.

    노황은 이레를 달린 대가로 무당파 주방에서 만두 한 그릇을 청했고, 송허도는 그 만두 한 그릇을 직접 따뜻하게 올렸다. 전령 검사들 사이에서는 노황의 이레 달리기가 강호 최고의 전령 자세로 전해진다.

  • 묵향해문사(墨香解文師)

    밀서 해독관

    먹의 향기 속에 숨은 글의 의미를 풀어내는 자

    이 암호 한 줄, 풀기 전에는 쓰레기지만 풀고 나면 천하를 흔드는 비수요. 내가 먼저 들여다봐도 될까요?

    밀서 해독관은 정파·사파 양측이 오가는 암호 서신을 해독하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도포, 어깨에 작은 암호 사전 묶음, 한 손에 작은 붓과 렌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강호 주요 결사들의 암호 체계 수십 종을 꿰고 있다.

    해독한 내용을 어디에 쓸지는 의뢰인에게 달려 있지만, 해독관은 내용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해독 결과를 의뢰인에게 주지 않고 불태우는 일도 있다. 그 경우 보수는 받지 않으며, 이를 '해독 봉인'이라 한다. 강호에서 해독관의 가장 무거운 직무는 해독 자체가 아니라 해독 결과를 언제 봉인할지 결정하는 그 순간이다.

    그 해독관이 봉인한 서신이 얼마나 됩니까, 라고 물었더니 '모릅니다. 세어본 적 없소'라고 하더이다. 그 '모릅니다' 한 마디가 강호를 몇 번 구했는지 우리도 모르지요.

    밀서 해독관 진묵(陳默) — 삼십 년간 강호 암호 서신 오천 통을 해독한 학자이자 그중 서른 통을 '해독 봉인'으로 불태운 자 — 의 일화는 '삼십 통의 봉인'으로 해독관들 사이에 가장 길게 전해진다.

    어느 해 진묵은 정파 무림맹이 의뢰한 사파 흑풍단 내부 서신 한 통을 해독하다가 그 내용이 흑풍단 단원 한 명의 신원을 폭로하는 첩보임을 알아챘다. 그 단원은 앞서 10003 흑풍단주 일화에 등장한 흑풍단주 야율한의 어린 시절 사연과 같은 인물 — 정파에 의해 마을이 멸문당한 고아 — 이었다. 진묵은 그 해독 결과를 봉인 불태운 뒤, 무림맹에게는 "이 서신은 판독 불가 수준으로 손상되었소"라 보고했다. 무림맹은 재의뢰를 했지만 그는 두 번째 의뢰도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진묵은 그 일 이후 자기 해독 작업실 벽에 '봉인' 한 자를 큰 글씨로 새겨두었으며, 후대 해독관들은 어떤 서신이든 해독 전에 그 한 자를 한 번 바라보는 의례를 따른다.

  • 야호초경자(夜虎哨更者)

    표국 심야 초소병

    야밤에 호랑이처럼 깨어 표국을 지키는 자

    나는 자지 않소. 이 표국 마당에서는 내가 자면 표물이 꿈을 꾸게 된다는 뜻이거든요.

    표국 심야 초소병은 표국 본단 마당을 야간에 지키는 무인으로, 표두도 표사도 잠든 새벽 홀로 마당을 순찰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경비복, 어깨에 등불 가리개, 허리에 단도와 소라껍데기 호각이 표준이다. 표국의 야간 보안은 외형적으로 검의 수보다 이 사람의 눈 하나에 달려 있다.

    밤새 혼자 마당을 돌다 보면 온갖 것을 보게 되는데, 표두의 잠꼬대, 표사 사이의 비밀 연서, 그리고 간혹 지붕 위 고양이가 표창을 물고 가는 것도 본다. 그래서 표국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아는 자는 표두가 아니라 심야 초소병이라는 말이 있다. 단지 그는 다 알고도 새벽이면 잊어버린다는 게 그의 가장 큰 덕목이다.

    심야 초소병이 아침에 눈 비비며 그날 밤 기록을 적어두는 게 표국 일지의 진짜 첫 줄이오. 그 한 줄이 없으면 표두도 전날 밤을 모르는 거지요.

    표국 심야 초소병 단오진(段吳陳) — 흥룡표국(앞서 10010 대표국 표두 일화에 등장한 그 표국) 마당을 이십 년 밤새 지킨 자이자 한 번도 초소를 비운 적 없는 사람 — 의 일화는 '파루전야(破樓前夜) 한 소라 호각'으로 표국 안에 남아 있다.

    어느 겨울 새벽, 사파 흑막루(黑幕樓, 사파 청부 결사) 살수 열 명이 표국 담을 넘으려 했다. 단오진은 소라껍데기 호각을 불기 전에 담 위에 서서 살수들과 눈이 마주쳤고, 그가 단 한 마디 — "이 표국 마당에는 내가 이십 년 동안 밟은 자국이 있소. 그 자국 한 줄이 그대들보다 먼저 담을 넘어 안에 알렸소" — 만 했다. 살수들은 어처구니없어 웃었지만, 그 순간 표국 안 표사 열 명이 이미 검을 들고 마당에 나와 있었다. 단오진은 실제로 야간 순찰 자국을 일부러 여러 줄 남겨두는 방식으로 침입자들의 심리를 교란하는 기술을 이십 년 동안 다듬어 왔다.

    그날 이후 흥룡표국의 심야 초소 지침에는 "순찰 자국을 남기되 예측 불가능하게"라는 한 줄이 추가되었으며, 단오진의 이십 년 자국들은 표국 마당 한 자리에 지금도 남아 있다.

  • 관문일필리(關門一筆吏)

    관문 통행 서기

    관문의 통행을 단 한 번의 붓질로 결정하는 서기

    관문 하나 통과하는 데 서신 두 통, 인장 세 개요. 다만 오늘 새벽은 한 가지만 확인하겠소.

    관문 통행 서기는 강호 길목 대형 관문(關門)에서 통행 허가·인장 확인·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관문 제복, 어깨에 작은 인장 가방, 한 손에 통행 서류 묶음과 붓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 모든 문파의 공식 인장·위조 인장 패턴·금기 통행 시각을 한 표로 외운다.

    정파 검객이든 사파 살수든 관문 앞에서는 서류를 꺼내야 하며, 서류 없이는 아무리 강해도 통과가 되지 않는 것이 관문 서기의 힘이다. 그래서 강호에서 가장 세력 있는 검객도 관문 앞에서 허리를 굽힌다. 관문 서기가 눈썹 한 번 치켜드는 힘이 사실 검 만 자루보다 크다는 격언은 관문 앞에서 한번이라도 기다려본 자만 안다.

    그날 새벽 서기가 서류 하나를 '미확인' 처리했을 뿐인데, 강호 살수 결사 하나가 열흘을 관문 앞에서 발이 묶였다오. 붓 한 자루가 검 만 자루보다 관문을 잘 지킨다는 게 그 뜻이지요.

    관문 통행 서기 이간(李幹) — 강호 북방 대관문 청룡관(靑龍關) 서기를 삼십 년 지킨 학자형 무인이자 위조 인장 식별로 살수 결사 다섯 곳의 침입을 막은 자 — 의 일화는 '청룡관 서류 미확인'으로 관문 서기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봄, 사파 흑막루(앞서 여러 일화에 등장한 그 청부 살수 결사) 살수 부대 스무 명이 거상 행세로 청룡관을 통과하려 했다. 이간은 그들의 인장 한 점이 진본에서 획 방향이 한 획 다르다는 사실을 서류 검토 중에 발견했다. 그는 "인장 한 점 재확인이 필요하오"라는 한 줄을 통행 거부 사유로 적었고, 살수 부대는 열흘을 관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 열흘 동안 표국 행수들이 청룡관을 통해 정보를 흘렸고, 살수 부대의 표적이 이미 다른 길목으로 빠져나갔다.

    흑막루는 결국 표적을 놓쳤으며, 이간은 인장 재확인이 완료되었다는 한 줄을 열흘 뒤에 정중히 처리해 주었다. 이간은 그 일을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으며, 청룡관 통행 서류철에는 그날의 '미확인' 한 줄이 지금도 남아 있다.

  • 황실진상호위(皇室進上護衛)

    진상품 운반 행수

    황실에 올릴 진상품을 호위하는 행수

    황실 진상품은 표물 중 가장 가벼운 것이오. 그 안에 든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상자를 빚은 장인의 호흡 때문이지요.

    진상품 운반 행수는 강호 각 지방에서 황실로 들어가는 특산품·명품·의례 물품을 책임지고 운반하는 표국의 특수 표두다. 외형은 단정한 황금 자수가 들어간 표복, 어깨에 황실 허가증 망토, 허리에 한 자루 의전검(儀典劍)과 운반 목록 서류가 표준이다. 황실 경로는 일반 표행보다 관문이 세 배 많고, 적이 두 배 많으며, 여유는 절반도 없다.

    진상품 한 점이 손상되면 운반 행수가 황실 앞에 직접 서서 해명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직업의 진짜 무공은 검술이 아니라 사과 기술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럼에도 이 자리를 원하는 무인이 줄을 서는 이유는, 황실 결재 라인에 이름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강호에서 황실과 연결된 이름은 적보다 아군을 더 많이 만든다.

    진상품 운반 행수가 황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 뒤에 따라오는 건 표물이 아니라 그 표물을 만든 장인 수백 명의 한 시즌이오. 그 무게는 표물보다 무겁지요.

    진상품 운반 행수 복무강(卜武江) — 강호 남방 도자기 산지에서 황실까지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진상품을 손상 없이 운반한 자이자 단 한 점도 잃지 않은 기록 보유자 — 의 일화는 '청호(靑湖) 우박의 밤'으로 남아 있다.

    어느 여름 새벽, 진상품 도자기 열여섯 점을 운반하던 복무강의 행렬이 갑작스러운 우박을 만났다. 우박이 표물에 직접 닿으면 도자기가 깨질 수 있었고, 표사들의 외투와 방패는 충분하지 않았다. 복무강은 자기 의전복을 벗어 가장 취약한 도자기 네 점을 직접 감쌌고, 표사들에게는 나머지 물품을 각자 외투로 감싸도록 했다. 우박이 그친 새벽, 열여섯 점 모두 온전했으며 복무강과 표사들의 의복은 모두 조각났다. 황실에 도착해 도자기를 인도할 때 복무강은 속적삼 차림이었고, 황실 담당관이 이유를 묻자 "진상품은 온전히 도착했소"라고만 답했다.

    황실은 그 일 이후 진상품 운반 행수에게 황실 여벌 의복 한 벌을 하사하는 관례를 만들었으며, 복무강의 조각난 의전복 한 조각은 표국 본단 한 자리에 지금도 봉인된 채 있다.

  • 천목수목공(千木修木工)

    무관 목검 장인

    천 그루 나무 중에서만 목검 재료를 가려내는 장인

    나무 검이라 우습게 보지 마시오. 이 목검으로 처음 한 자세를 익힌 손목이 훗날 명검을 드는 것이오.

    무관 목검 장인은 강호 무관에서 쓰이는 수련용 목검(木劍)을 손수 깎아내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나무 가루 묻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대패 가방, 허리에 조각도와 줄자가 표준이다. 본인은 어린 수련자의 손 크기와 자세를 보고 가장 잘 맞는 목검을 한 번에 골라주는 안목을 평생 다듬는다.

    사실 목검 무게 한 돈 차이가 한 수련자의 첫 자세 전체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목검 장인은 어린 제자의 손목을 한 번 잡아보고 그 제자의 다음 십 년 검로를 미리 알아챈다고 한다. 강호의 모든 절세고수는 결국 이 장인이 깎아준 목검 한 자루 위에서 시작되었다.

    그 장인이 깎아준 목검 한 자루 무게가 그 아이의 첫 자세를 결정했소. 그 자세가 훗날 화산파 사범의 자세가 되었다는 걸, 장인은 아직도 모를 거요.

    무관 목검 장인 박도산(朴刀山) — 강호 남단 큰 무관 거리에서 사십 년을 목검 만 자루를 깎은 평민 장인 — 의 일화는 '첫 목검의 자세'로 장인들 사이에 전해진다.

    박도산의 작업장에 어느 봄 열 살짜리 아이가 들어왔다. 무관 사범 도일중(앞서 10027 무관 사범 일화에 등장한 그 사범)의 제자 중 하나였다. 아이는 손이 작아 기존 목검이 다 컸고, 박도산은 그날 저녁 새로 목검 한 자루를 그 아이 손 크기에 맞게 깎았다. 한 돈을 줄인 그 목검 덕분에 아이는 첫 자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익혔고, 도일중 사범은 그 아이가 다른 제자들보다 한 달 빨리 기본기를 완성했다고 했다.

    그 아이는 훗날 화산파 외문 제자로 입문해 매화검법을 익혔으며, 훗날 화산파 젊은 사범이 되었다. 박도산은 그 사실을 들었지만 "목검 한 자루를 잘 깎은 것뿐이오"라고만 했다. 그의 작업장 선반에는 그날 남은 나무 부스러기 한 줌이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 강호채주(江湖債主)

    강호 빚쟁이

    강호의 모든 빚을 끝까지 받아내는 자

    빚은 돈이 아니오. 한 번 도움 받은 자리가 빚이지.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절대 잊지 않소.

    강호 빚쟁이는 강호의 크고 작은 의리 빚·물건 빚·정보 빚을 직업적으로 추적하고 회수하는 평민 출신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하지 않은 짙은 색 도포, 어깨에 빚 장부 가방, 허리에 작은 단도와 주판이 표준이다. 무공은 평범하지만 기억력이 비상해서 강호에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의 빚을 졌는지 한 권 장부보다 더 정확히 외운다.

    정작 자기 자신은 강호 이곳저곳에 만두 빚, 술 빚, 잠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남의 빚은 귀신같이 추적하면서 자기 빚은 기억을 못하는 것이 강호 빚쟁이의 가장 유명한 특징이다. 그래서 강호에서 빚쟁이에게 빚을 진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빚쟁이 본인에게서 돈을 빌린 사람이 오히려 자기 회수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강호 빚쟁이가 자기 만두 빚을 갚으러 객잔 주방장에게 찾아갔다가, 그 만두 한 접시에 강호 결투 하나가 무산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소. 빚도 인연이라는 게 그 뜻이지요.

    강호 빚쟁이 마오리(馬吾理) — 강호 동단 일대 빚 장부를 삼십 년 굴린 평민이자 남의 빚은 한 냥도 잊지 않고 자기 빚은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자 — 의 일화는 '만두 한 접시 빚 결재'로 동단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어느 가을 마오리는 자기 빚 장부에서 찾아낸 정파 검객 한 명의 오래된 만두 빚 — 객잔 주방장 매수당(앞서 10020 객잔 주방장 일화에 등장한 그 주방장)에게 진 은자 세 냥 — 을 대신 갚으러 운하객잔을 찾았다. 그런데 마침 그 검객이 같은 날 결투를 앞두고 마지막 만두 한 접시를 먹으러 같은 자리에 와 있었다. 마오리가 "이분의 만두 빚 세 냥을 대신 갚겠소"라고 하자, 검객은 빚이 갚어졌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 결투를 한 시진 미루었다. 그 한 시진 안에 결투 상대방이 화해의 뜻을 전해왔고, 결투는 무산되었다.

    마오리는 그날 저녁 주방장 매수당에게 자기 밀린 만두 빚이 얼마냐고 물었고, 매수당이 "열다섯 냥이오"라고 답하자 "나중에 갚겠소"라며 사라졌다. 지금도 운하객잔 장부에는 마오리의 열다섯 냥 빚이 미결(未決)로 남아 있다.

  • 일교일수(一橋一守)

    다리 지기

    다리 하나, 지킴이 하나, 그 자리를 지키는 자

    이 다리, 하루 삼천 명이 건너오. 내 몫은 그 삼천 명이 밟는 판자가 썩지 않게 지키는 것이오.

    다리 지기는 강호 길목 큰 강의 다리를 관리하고 통행세를 받는 평민 출신 일꾼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수리 공구 가방, 허리에 작은 단도와 통행 장부가 표준이다. 무공이라곤 판자 빼내기와 나무 못 박기에서 나온 손목 힘 정도지만, 하루 수천 명의 얼굴을 한 번 보면 석 달 뒤에도 기억한다.

    강호의 모든 추격전은 결국 이 다리 위에서 갈리며, 그래서 다리 지기가 "이 다리 판자 하나가 느슨하오"라는 한마디로 추격자를 한 호흡 늦추거나 도주자를 도운 사례가 야사에 많다. 어느 쪽 편을 드는지가 중요한 직업이지만, 다리 지기들은 대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판자를 공평하게 느슨하게 둔다.

    다리 지기가 결투 당일 판자 하나를 일부러 빼둔 게 결투 양측을 모두 살렸다는 이야기가 있소. 판자 하나가 강호 분기 한 줄을 가른 셈이지요.

    다리 지기 황소두(黃小豆) — 강호 동단 청수교(靑水橋) 다리를 이십오 년 지킨 평민이자 그 다리 위에서 강호 검객 셋의 결투가 무산되는 것을 직접 본 자 — 의 일화는 '청수교 판자 한 장'으로 동단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어느 여름 아침, 정파 검객 곽철(앞서 10015 사파 외문제자 일화에 등장한 그 검객)이 사파 살수를 추격해 청수교 위로 달려 올라왔다. 황소두는 그날 새벽 다리 중간 판자 하나가 썩어 느슨해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추격자인 곽철에게 "이 판자 조심하시오"라고 소리쳤고, 살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수는 그 판자를 밟고 발이 빠져 넘어졌고, 곽철은 그 순간 살수를 제압했다. 그러나 살수를 포박한 뒤 곽철이 살수의 얼굴을 보았더니 자기 옛 무관 사범 도일중(앞서 10027 일화에 등장한 그 사범)의 먼 친척이었다. 곽철은 그 자리에서 포박을 풀고 살수를 풀어주었다.

    황소두는 그날 일을 장부에 한 줄로 적었다 — "썩은 판자 하나, 결투 한 건 무산." 청수교 그 자리의 판자는 그 이후로 특별히 단단한 나무로 새로 놓였으며, 황소두는 매년 그 판자를 처음 점검하는 관례를 이십 년 더 이어갔다.

  • 강호유도자(江湖誘導者)

    강호 길도사

    강호 길목마다 떠도는 자에게 길을 가르치는 도사

    이 산 저 산 길을 다 알지만 정작 내 집 가는 길은 헷갈리오. 강호 길이 더 내 집 같아서 그런 것 같소.

    강호 길도사는 강호 길목 산길·강길·야간 경로를 잘 알아 여행자와 표사들에게 길 안내를 해주는 평민 출신 길잡이다. 외형은 낡은 외투, 등에 큰 지팡이와 지도 묶음, 허리에 작은 나침반과 물주머니가 표준이다. 무공이 없어도 지형 지식만으로 살수 결사를 따돌리거나 표사를 목적지에 정확히 안내한다.

    가장 유명한 길도사들은 지도 없이도 강호 북단부터 남단까지 이십 년 동안 쌓아온 발자국으로 모든 길을 기억한다. 그래서 어떤 절세고수도 낯선 산중에서는 길도사 한 명이 검 천 자루보다 소중하다. 단지 길도사들의 가장 큰 단점은 길을 잘 알기 때문에 어디서든 도망치는 방법도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길도사가 표국 행렬을 이끌 때, 그 뒤를 따르는 살수들이 먼저 길을 잃는다는 것이 야사에 열일곱 번이나 나오오. 그게 길도사의 진짜 무공이지요.

    강호 길도사 류방랑(柳放浪) — 강호 전역을 삼십 년 동안 도보로 두루 다닌 평민이자 길 안내 의뢰 삼천 건을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완수한 자 — 의 일화는 '마방 길의 야간 회귀'로 표국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겨울밤, 흥룡표국(앞서 10010 대표국 표두 일화에 등장한 그 표국) 표사 여섯이 설산 길목에서 길을 잃었다. 마방 마부 단우천(앞서 10030 마방 마부 일화에 등장한 그 마부)이 표국 마방에서 류방랑을 급히 불렀고, 류방랑은 눈보라 속에서 지팡이 하나와 별자리만으로 설산 길목을 새벽 안에 찾아들어가 표사 여섯을 이끌고 돌아왔다. 표사 여섯은 모두 무사했고, 표물도 손상이 없었다. 표두 진백호는 사례를 넉넉히 챙겨주려 했으나, 류방랑은 "만두 한 그릇이면 됐소"라며 주방장 매수당에게 자기 몫을 넘겼다.

    그날 이후 흥룡표국은 표행 전 길도사 한 명을 반드시 대동하는 규정을 만들었으며, 류방랑이 설산 길목에 남긴 지팡이 자국이 그 길의 공식 이정표가 되었다. 강호에서는 가장 빠른 길은 지도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길도사의 발바닥 아래에 있다는 격언이 여기서 나왔다.

  • 설월여제(雪月女帝)

    빙궁의 여제

    눈과 달의 차가운 빛을 모두 다스리는 빙궁의 여황제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 쓸 일은 없다. 정 그리 보고 싶거든, 산을 한 달 오르고 와라.

    빙궁의 여제는 북방 만년설산 위에 세워진 빙궁(氷宮)의 절대 군주이며, 그녀의 손바닥에 닿은 적은 피를 흘리기 전에 얼어붙는다. 무기는 손에 쥐지 않는다 — 한빙심결(寒氷心訣) 내공으로 양손에서 발산하는 한기 장법(寒氣掌法)만으로 천하 사파의 검을 굳히는 절대 고수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정파 정혼자에게 배신당한 뒤 천하를 등지고 빙궁에 들어가 한빙심결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백 명의 시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고, 천 명의 무희가 그녀의 한 자락 장풍(掌風)에 맞춘 빙무(氷舞)를 연습하지만, 정작 그녀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다.

    강호 남자들은 그녀에게 청혼하기 위해 한 달을 산을 오르지만, 99%는 도착하기도 전에 추위에 발이 묶여 돌아간다. 빙궁의 진짜 비밀은 그녀가 그 추위로 사람들을 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다시 틈을 내지 않으려 매일 새로 얼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한 여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적의 검이 아니라, 다시 누군가를 향해 녹아내리는 자기 자신이다.

    여제 폐하의 손바닥이 가장 따뜻했던 한 호흡이 그 새벽이었지요. 빙궁 시녀들 사이에선, 그날 밤 별이 한 번 더 맑았다고들 합니다.

    삼대 빙궁의 여제 설련하(雪蓮霞 — 빙궁 역사상 세 번째 여제이자 한빙심결을 가장 맑게 다듬은 자)의 한 일화는 빙궁 시녀들 사이에 두고두고 전해진다.

    어느 겨울, 한설곡(寒雪谷 — 빙궁 아래 일곱 골짜기 중 가장 깊은 골)에 길 잃은 어린 사매 한 명이 사흘을 떨고 있었다. 시녀무사들이 구하러 가려 했으나 한설곡의 결계가 본인 외엔 풀리지 않아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설련하는 빈손으로 직접 골짜기로 내려가, 한 손 장세(掌勢)에 한빙심결의 결을 한 호흡 모아 손끝에서 한 송이 매화 모양 서리꽃을 빚어내 어린 사매 옆에 가만히 내려놓고 자기 도포를 한 자락 덮어 주었다. 시녀무사들이 도착했을 때 어린 사매는 잠들어 있었고, 그 옆 서리꽃 한 송이는 사흘이 지나도 녹지 않았다. 강호 야사에서는 그 한 송이를 「설련(雪蓮)의 한 호흡」이라 부르며, 빙궁 어린 사매들의 첫 장법(掌法) 의례에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손바닥에 서리꽃 한 송이를 빚는 관례가 그때 시작되었다.

    후대 빙궁의 여제들은 즉위 첫 새벽에 한설곡 그 자리를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청려검선(淸麗劍仙)

    검선(劍仙)

    맑고 고운 자태로 신선의 검을 휘두르는 자

    베지 않을 검이 가장 아름답다. 그대의 무릎이 먼저 꺾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검선은 검신(劍神)의 여성형 칭호로, 검 한 자루로 도(道)에 닿았다 일컬어지는 강호 최고의 여성 검객이다. 검신이 모든 적을 베어 정점에 섰다면, 검선은 베지 않고도 적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경지에 이른 자다. 그녀의 검은 베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고, 그녀가 검집에 손을 얹는 것만으로 사파 고수가 무릎을 꿇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절세 미모와 절세 무공을 함께 가졌으면서도 평생 누구의 청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산중 암자에서 어린 여제자들에게 검을 가르치며 "약해서 검을 드는 자는 많지만, 강해도 검을 거두는 자는 드물다"고 가르친다. 강호에서 그녀의 진짜 검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모두가 그녀를 가장 두려워한다.

    검선 사조의 빈 검집을 본 자는 많지만, 그 한 호흡을 듣고 사흘을 견딘 자는 흔치 않습니다. 그날 매화 한 그루가 사흘 만에 다 폈다고 하더이다.

    이대 검선 백연하(白蓮霞 — 검선 칭호를 받은 두 번째 여성 무인이며 매화로 검로를 다듬은 자)의 한 일화는 매화 암자(梅花庵 — 검선이 평생 머문 산중 작은 도량)의 어린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봄, 사파 흑선문(黑扇門 — 부채 한 자락에 살의를 숨겨 다니던 사파 결사) 문주가 매화 암자 산문 앞에 사흘 밤낮 검을 거꾸로 꽂고 결투를 청했다. 백연하는 산문 한 자락도 열지 않은 채, 매화 한 가지를 꺾어 검집 위에 얹고 그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사흘째 새벽 흑선문 문주는 자기 부채를 매화 가지 옆에 풀어놓은 채 산문을 등졌고, 사문 어른들에게 이르길 「검선의 빈 검집이 내 한 살의(殺意)를 사흘 만에 닦아 가더라」 하였다.

    백연하는 사흘 동안 그 자리의 매화 한 그루에만 한 호흡씩 물을 주었고, 그 매화는 사흘 만에 천 송이가 만개했다고 사문 안에 전한다. 매화 암자 어린 사매들은 첫 검 의례 새벽에 그 자리에서 한 호흡을 내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으며, 그 부채는 지금도 매화 가지 옆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

  • 매화일검(梅花一劍)

    화산매화검수

    한 잎 매화 향기에 한 줄기 검을 실어 보내는 자

    꽃잎이 떨어진 자리는 적의 급소다. 너무 황홀해 있다 베이지 마라.

    화산매화검수는 화산파의 정예 여검사 부대로, 매화 자수가 새겨진 청록색 검복과 머리에 꽂은 매화 비녀가 상징이다. 매화검법(梅花劍法)은 꽃잎이 흩날리듯 부드럽고 화려하지만, 한 번 꽃잎이 떨어지면 그 자리는 적의 급소다. 정혼자조차 그녀들의 검로(劍路)를 끝까지 따라가지 못해 청혼을 거두는 일이 흔하다.

    매화검수들은 사문 안에서 자매처럼 자라나, 강호에 나가서도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결속이 깊다. 봄이 오면 화산 절벽에 매화가 만개하는데, 그날만큼은 매화검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 모습을 본 강호 남자들은 "아, 저들은 우리에게는 영원히 닿지 않겠구나" 하며 술잔을 비운다.

    그 자수 한 폭은 지금도 매화 절벽 사매당(師妹堂 — 매화검수들이 첫 검을 받는 사문 한 칸)에 걸려 있어요. 사매들은 첫 검 의례 새벽 그 한 폭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지요.

    사대 매화검수장 진소영(陳小英 — 매화검수 부대를 네 번째로 이끈 여검사이며 한 자락 매화 자수에 검로를 새긴 자)의 한 일화가 화산파 여사매들 사이에 가장 곱게 전해진다.

    한 봄, 그녀의 친매(親妹) 사매가 흑매단(黑梅團 — 매화 향에 독을 섞어 다니던 사파 결사) 살수에 의해 한 자락 검에 베인 일이 있었다. 진소영은 흑매단을 쫓아 한 호흡에 결투를 청하지 않고, 대신 사매가 자수 중이던 매화 한 폭을 사매의 검집 위에 한 자락 덮어 사매의 마지막 한 호흡을 다듬어 주었다. 사매가 잠든 뒤 그녀는 흑매단주를 매화 절벽으로 청해, 매화 한 가지를 손에 쥔 채 단 한 합도 검을 뽑지 않고 한 호흡을 마주 섰다.

    흑매단주는 그 한 호흡 안에서 자기 단원 일곱의 이름을 정중히 들었고, 부채를 매화 가지 옆에 풀어놓은 채 산문을 등졌다고 한다. 매화 절벽 사매당에는 그 자수 한 폭이 지금도 같은 자리에 걸려 있고, 어린 사매들은 첫 검 의례 새벽에 그 자수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독화선의(毒花仙醫)

    독화 의원

    독꽃을 다루어 사람을 살리는 신선 같은 의녀

    차 한 잔 드시지요. 오늘은 해독제 쪽입니다 — 아마도.

    독화 의원은 강호의 수많은 의원 중에서도 독초만 다루는 여의사로, 살리는 약과 죽이는 약을 같은 손으로 만든다. 한 손에는 약병, 한 손에는 비수. 은혜를 입은 자에게는 천 가지 해독제를, 원수를 둔 자에게는 한 가지 무색무취 독을 처방한다.

    외양은 가녀린 미인이지만 강호 남자들이 그녀의 다과를 받을 때는 늘 손이 떨린다. 정작 본인은 환자에게 가장 잘 듣는 약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치는 진짜 의원이며, 독은 그저 자기 한 몸 지키는 부수입에 가깝다. 그녀의 진짜 무서움은 독이 아니라, 어떤 환자가 사실은 자기 가족을 죽인 원수임을 알아도 일단은 살리고 본다는 점이다. 살린 뒤에 천천히 처방을 바꾸면 된다는 게 그녀의 신조다.

    독화 사조의 그 다관 한 잔 처방은 강호 의원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이 되었지요. 살린 다음에 처방을 다듬는 자세, 그게 진짜 의원의 한 호흡입니다.

    칠대 독화 의원 유설란(柳雪蘭 — 독화당(毒花堂 — 강호 남방의 여성 의원 결사)을 일곱 번째로 이끈 여의)의 한 일화는 의원 사매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된다.

    어느 가을, 그녀의 가문을 멸문시킨 만독문(萬毒門 — 천 가지 독을 다루던 사파 결사) 부문주가 자기 모친 부고를 듣고 마지막 한 호흡을 다듬으러 독화당에 들었다. 유설란은 부문주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나 한 박자도 손을 흐트리지 않고 다관 한 잔에 해독제를 우려 그를 살렸다. 사흘 뒤 부문주가 모친 장례를 마치고 다시 독화당 문턱을 넘었을 때, 그녀는 차 한 잔을 더 따르며 「가문은 다 갚으셨소? 이번엔 본인 한 호흡을 다듬을 차례지요」라고만 한 마디 건넸다.

    부문주는 그 자리에서 만독문 인장을 풀어 두고 산문을 등졌고, 이후 독화당의 문턱을 한 해에 한 번씩 다관 한 잔을 사러 들렀다고 한다. 독화당 어린 사매들은 첫 진료 의례 새벽에 그 다관 한 잔을 한 호흡 우려내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일배다선(一杯茶仙)

    다관 다비녀

    한 잔의 차에 한 자락 강호 풍경을 담는 다비녀

    두 번째 잔은 위로일까요, 경고일까요. 잔 받으시는 분 마음에 달렸습니다.

    다비녀는 강호 길목 다관(茶館)에서 차를 우려내는 젊은 여인을 일컫는 호칭이다. 무공이라곤 작은 칼을 소매에 숨기는 정도지만, 차의 향과 온도만으로 손님의 지친 마음을 정확히 읽어낸다. 어느 협객이 검에 베인 자리를 어떻게 숨기고 들어왔는지, 어느 무사가 누구의 부고를 듣고 술 대신 차를 시켰는지 — 다비녀의 눈은 모든 것을 안다.

    사파 정찰병들도 그녀에게는 차 한 잔의 시간 동안만큼은 정체를 잊는다. 그래서 어떤 다비녀는 강호의 어떤 정보꾼보다도 사람의 마음에 가까이 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두 번째 잔을 따라줄 때, 그것은 위로이거나 경고이거나 — 둘 중 하나다.

    운향 언니가 따라준 그 두 번째 잔 이야기는 우리 다관 사매들 한 호흡의 본보기지요. 잔 한 번에 강호의 분기 한 줄이 한 박자 늦춰진 게 그 새벽입니다.

    청죽다관(靑竹茶館 — 강호 강남 길목에 자리한 작은 다관)의 다비녀 운향(雲香 — 청죽다관의 삼대 다비녀이자 두 번째 잔의 결로 이름이 알려진 자)의 한 일화가 다관 사매들 사이에 곱게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정혼 직전이던 무당파 청풍검녀(靑風劍女 — 무당파 여검 분파 청풍원의 정예 사매) 한 명이 정혼자 부고를 듣고 청죽다관 한 자락에 들었다. 운향은 한 잔째에 매화차(梅花茶 — 매화 꽃잎을 한 줄 띄운 청차)를 따랐고, 두 잔째엔 어떤 말도 없이 그 옆자리에 작은 명주 손수건 한 장을 두었다. 청풍검녀는 두 번째 잔이 식을 때까지 그 손수건 한 자락 위에 한 호흡 한 호흡을 옮겼고, 잔이 다 식자 검을 풀어 다관 안에 두고 갔다.

    사흘 뒤 청풍검녀가 다시 다관에 들었을 때, 그 검은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그대로 있었고, 그녀는 검을 가지고 가는 대신 손수건만 한 자락 가지고 산문으로 돌아갔다. 청죽다관에서는 그 자리에 두 번째 잔만은 누구에게도 따로 받지 않는 관례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어린 다비녀들은 그 자리에서 첫 차를 우려내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천화황녀(天華皇女)

    천화궁 궁주

    하늘의 꽃이 머무는 궁의 황녀 같은 궁주

    꽃은 베라고 피는 게 아니다. 그래도 검 끝에 묻은 꽃잎은, 그대 뜻이 아니라 내 뜻이다.

    천화궁 궁주는 강호 남방의 천화궁(千華宮)을 다스리는 여성 절대자로, 천 가지 꽃의 향과 천 가지 검의 결을 한 호흡에 묶어 부린다. 외형은 비단 자수 도포, 머리에 금사(金絲) 봉황 비녀, 허리에 한 자루 화검(華劍)이 표준이다. 그녀의 한 검은 결투의 승패가 아니라 그날 밤 강호의 술 한 잔의 자리까지 정한다고 일컬어진다.

    정파 무림맹주조차 그녀의 다과 초대장을 받으면 부단장에게 결재를 미루고 출발한다. 본인은 어린 시절 천화궁 시녀로 시작해 한 송이 꽃의 호흡을 평생 다듬어 궁주에 오른 자이며, 그래서 가장 어린 시녀의 이름까지 외운다. 강호에서 가장 무거운 한 잔은 그녀가 직접 따라주는 첫 잔이고, 가장 가벼운 한 잔은 마지막 잔이다. 그 사이의 한 호흡 동안 천하의 분기 한 줄이 결정된다.

    궁주 사조의 그 정원 한 자락 결재는, 우리 천화궁 시녀들 사이에 한 줄 본보기로 남아 있어요. 검을 뽑지 않으셔서 일곱 사문이 한 호흡으로 화해한 것이지요.

    오대 천화궁 궁주 묵향련(墨香蓮 — 천화궁을 다섯 번째로 이끈 자이며 천 송이 꽃의 호흡을 한 검에 묶은 자)의 한 일화는 천화궁 어린 시녀들의 첫 다과 의례 새벽에 늘 한 줄로 회자된다.

    어느 봄, 정파 일곱 사문이 정혼 결재를 두고 천화원(千華園 — 천화궁 안의 만 송이 꽃이 피는 정원) 한 자락에 모였으나 이레 동안 한 줄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묵향련은 회의장 한 칸도 열지 않은 채, 일곱 사문 장문녀들에게 각기 다른 꽃을 한 송이씩 손수 꺾어 다과 자리에 한 자수 비단 위로 한 송이씩 놓아 두었다. 일곱 사문 장문녀들은 자기 사문의 정혼 결재가 자기 앞 그 꽃 한 송이의 향에 한 박자 호흡으로 맞물려 있음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비단 위 일곱 송이를 한 자락으로 묶어 천화궁에 봉헌했다.

    일곱 사문이 한 호흡으로 화해한 것은 천화궁 사문 역사상 그 자리가 처음이었으며, 강호 야사에서는 이를 「칠화일심(七華一心)의 다과」라 부른다. 천화원 그 자리에는 지금도 일곱 송이 자수 비단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다.

  • 아미설검녀(峨嵋雪劍女)

    아미파 장문녀

    아미산의 눈처럼 차가운 검을 이끄는 장문녀

    여자가 검을 든다 하더이다. 그래, 그래서 어찌하시려오?

    아미파 장문녀는 여성 무문 아미파(峨嵋派)의 정점에 있는 자로, 아미 24결(訣)의 마지막 한 줄을 손에 쥔 사문의 어머니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도포, 가슴팍에 작은 옥패, 한 자루 가는 검이 표준이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한 달 동안 사문 제자들의 검로(劍路)가 흐트러진다는 격언이 있을 만큼, 사문 안에서의 무게가 검보다 무겁다.

    정파 회의에 참석하면 늘 마지막 한마디만 보태는데, 그 한마디로 정파 결재 라인이 한 칸씩 정리된다. 본인은 결투보다 어린 여제자가 처음 검을 잡는 자리에 더 정성을 쏟는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출정이 아니라, 첫 사매를 들이는 자리에 직접 차 한 잔을 따라주는 자세 위에 있다. 강호 남자들이 그녀를 어렵게 여기는 진짜 이유는 검이 아니라, 그 침묵의 길이다.

    그 한마디로 무림맹 결재 라인이 한 시진 안에 한 자세로 정리되었지요. 우리 아미파 사매들은 그 침묵 한 자락을 본받아야 한다 배웁니다.

    구대 아미파 장문녀 정현옥(靜玄玉 — 아미 24결의 마지막 한 줄을 가장 정중히 다듬은 자)의 한 일화는 무림맹 야사 단골 이야기다.

    그녀가 무림맹 춘계 회의(春季會議 — 무림맹이 봄마다 여는 정파 결재 회의) 자리에 처음 들었을 때, 일곱 정파 어른들이 「여자가 어찌 정파 결재에 한 줄을 얹느냐」 하며 자리를 흐트러뜨렸다. 정현옥은 회의 한 시진을 한 마디도 보태지 않은 채 차 한 잔만 우려냈고, 마지막에 「장로분들의 결재가 흐트러지셨소. 한 호흡 다시 다듬으시지요」라 한마디만 보태고 자리를 떴다.

    일곱 어른들은 그 자리에서 한 박자 침묵 끝에 결재 라인을 한 칸씩 다시 정리했고, 그 회의는 무림맹 역사상 가장 빨리 끝난 봄 회의로 기록되었다. 아미파 어린 사매들은 첫 출정 의례 새벽에 그 차 한 잔을 한 호흡 우려내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으며, 무림맹 회의장에는 그날 이후 아미파 자리 한 칸이 항상 비워져 있는 관례가 시작되었다.

  • 자영비검녀(紫影飛劍女)

    황실 자수위(紫繡尉)

    자줏빛 그림자처럼 황실의 비검을 휘두르는 자

    황후마마의 잠은 제 한 줄 자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한 땀도 흐트러지지 않게 두십시오.

    황실 자수위는 중원 황실 후궁의 호위와 자수(紫繡) 의례를 동시에 책임지는 여성 정예 무관이다. 외형은 보랏빛 자수가 놓인 단정한 갑주, 어깨에 봉황 문양 망토, 허리에 한 자루 가는 자수검(紫繡劍)이 표준이다. 황후·공주의 산책 한 줄·다과 한 시점·금기 출입 시각을 한 표로 외우고, 위협이 다가오는 순간 한 호흡 안에 검을 뽑는다.

    친위대장이 황제의 검이라면, 자수위는 후궁의 검이며, 둘은 결재 라인이 다르다. 본인은 평생 황후 한 분 곁에서 자수 한 폭을 함께 완성한 자이며, 자수의 마지막 한 땀은 황후가 직접 놓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호위는 큰 의례가 아니라, 황후가 잠든 새벽 자수 위에 한 번 더 손을 얹는 자세 위에 있다.

    그 자수 한 폭은 지금도 후궁 자수당(紫繡堂 — 자수위들의 첫 의례 자리)에 같은 자세로 걸려 있어요. 어린 자수위들은 그 한 땀 앞에서 첫 검을 받지요.

    황실 자수위 한설옥(韓雪玉 — 인종(仁宗) 시기 황후 곁을 평생 지킨 정삼품 자수위)의 한 일화는 후궁 자수당 안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새벽, 사파 흑봉문(黑鳳門 — 봉황 자수에 살의를 옮겨 다니던 사파 결사) 살수 셋이 황후 침전 한 자락을 노리고 봉황 문양 비단 한 폭을 가지고 자수당으로 잠입했다. 한설옥은 검을 뽑지 않은 채, 황후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놓던 한 땀 자수의 결을 손목에 옮겨 살수 셋의 호흡을 한 박자 안에 한 줄로 묶어 두고 자수검만 한 자락 살수의 어깨에 한 호흡 얹었다. 살수 셋은 한 합도 검을 뽑지 못한 채 한 자세로 묶여 새벽까지 자수당 한 자락에 그대로 있었고, 황후의 잠은 한 땀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자수당 어린 자수위들은 첫 검 의례 새벽에 그 한 땀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으며, 그 자수 한 폭의 마지막 한 땀은 한설옥이 황후를 대신해 평생 비워 두었다.

  • 무영선녀(無影仙女)

    무영비녀(無影飛女)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날아다니는 신선 같은 여인

    발자국은 안 남깁니다. 향(香)도요. 다만 그대의 잠든 머리맡엔, 한 송이 꽃을 두고 갑니다.

    무영비녀는 강호의 정상 여성 살수 결사 무영각(無影閣) 출신으로, 한 시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공 절기 무영보(無影步)를 익힌 자다. 외형은 검은 비단 야행복, 어깨에 가벼운 면사, 허리에 한 자루 짧은 비검(飛劍)과 작은 꽃 한 송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표적의 평소 동선·옛 분기 호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다른 살수가 시신을 남길 때, 그녀는 표적이 잠든 머리맡에 꽃 한 송이만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그래서 정파에서는 "꽃이 한 송이 발견되면, 그날 밤은 결재 한 줄이 비어 있다"는 격언이 돈다. 무영비녀가 한 번 표적을 거둔 적이 있었는데, 표적이 작은 아이의 부모였다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그 자란화 한 송이가 그 댁 마루에 일곱 해 동안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요. 무영각 어린 사매들은 첫 표적 의례 새벽에 그 자리를 한 번 보러 갑니다.

    사대 무영비녀 사월령(謝月鈴 — 무영각 사대 정예이자 자란화(紫蘭花 — 보랏빛 난초 한 송이)를 인장 대신 두고 다닌 자)의 한 일화는 강호 야사에서 가장 곱게 읽히는 한 줄이다.

    어느 가을, 흑풍단(黑風團 — 강호 최대의 사파 결사) 분단주가 정파 어느 부호의 부녀를 한 표 청부로 사월령에게 의뢰했다. 사월령이 자정 그 댁 마루 한 자락에 들었을 때, 부녀의 잠든 머리맡에 일곱 살 어린 사매가 어머니의 옷고름을 한 손에 쥔 채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비검을 한 자락도 뽑지 않은 채 자란화 한 송이만 어린 사매의 머리맡에 두고 자리를 떠났고, 무영각 결재 라인에 「표적 미수(未遂)」 한 줄을 정중히 올렸다.

    무영각 사문 어른들은 그 한 줄에 결재 도장을 찍는 대신 사월령의 자란화 한 송이를 사문 한 자락에 봉헌했고, 그 한 송이는 일곱 해 동안 시들지 않았다고 전한다. 무영각 어린 사매들은 첫 표적 의례 새벽에 그 자리에서 자란화 한 송이를 한 호흡 매만지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백봉표후(白鳳鏢后)

    백봉 표사

    흰 봉황의 자태로 표국을 호령하는 여 표사

    표물 위로 한 줄 면사(面紗)를 덮습니다. 도적이 보는 건 표사가 아니라 한 폭 그림이지요.

    백봉 표사(白鳳 鏢師)는 여성 표사 결사 백봉표국(白鳳鏢局)의 정예로, 강호의 귀물·여인 요인·후궁 의례 물품을 호위해 옮기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자수 도포, 어깨에 백봉 문양 망토, 허리에 한 자루 가는 표도(鏢刀)와 작은 호적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도적단의 야간 잠복 자리·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남성 표국이 받지 않는 후궁·여류 문인의 은밀한 의뢰가 늘 백봉 표국으로 흘러든다. 표두가 출발 전 표사들에게 따라주는 마지막 한 잔은 술이 아닌 차이며, 그 한 잔 안에 표국 한 시즌의 한 끼가 매달려 있다. 가장 무거운 표는 큰 보물이 아니라, 한 여인의 비밀일기 한 권이라는 격언이 있다.

    그 일기 한 권이 백봉 표국 결재 한 줄을 한 시대 다듬었지요. 우리 백봉 사매들은 그 한 권을 호위한 새벽을 첫 표 의례의 본보기로 삼습니다.

    육대 백봉 표두 임소설(林小雪 — 백봉표국을 여섯 번째로 이끈 표두이자 가장 가벼운 표를 가장 무겁게 옮긴 자)의 한 일화는 표사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봄, 정파 명문 청산문(靑山門 — 산서 일대의 정파 사문) 막내 낭자가 자기 비밀일기 한 권을 어머니가 잠든 멀리 강남 사가(私家)로 옮겨 달라 의뢰했다. 의뢰비는 은자 한 냥 — 그 낭자의 한 달치 손 자수 삯이었다. 임소설은 표사 일곱을 동원해 호남(湖南) 일곱 산을 사흘 길로 호위했고, 사파 흑풍단(黑風團 — 강호 최대의 사파 결사) 분대가 표국 길목 한 자락에 잠복한 새벽 한 호흡 안에 표도 일곱이 한 자세로 한 합 결재를 끝냈다.

    일기 한 권이 어머니의 머리맡에 닿았을 때, 임소설은 의뢰비 은자 한 냥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산문을 등졌다. 백봉 표국에서는 그 일기 한 권을 「가장 무거운 한 표」라 부르며, 어린 사매들은 첫 표 의례 새벽에 은자 한 냥을 손에 한 호흡 쥐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향림선향녀(香林仙香女)

    향림 향사(香師)

    향림(香林)에서 향(香)을 다스리는 신선 같은 향녀

    이 향(香)은 잠을 부르고, 이 향은 검을 늦춥니다. 어느 쪽을 원하시는지요.

    향림 향사는 강호 남방의 향림(香林)에서 천 가지 향을 다루는 여성 장인으로, 향 한 줄로 결투의 호흡을 한 박자 늦추는 자다. 외형은 비단 자수 도포, 어깨에 작은 향낭(香囊) 묶음, 한 손에 작은 향로(香爐)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향의 평소 효과·옛 분기 조합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정파 큰 결투의 입회 도인이 향림 향사를 함께 모시는 일이 야사에 흔하며, 향 한 줄이 결투의 한 합을 늦춰 한 사람을 더 살린 일화도 남아 있다. 본인은 큰 결투의 향보다, 어린 사매가 첫 검을 잡는 새벽의 한 줄 향에 더 정성을 들인다. 가장 무거운 향은 적의 검을 늦추는 향이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 한 줄 위에 있다.

    그 한 줄 청월향이 결투 한 합을 한 박자 늦추셨지요. 향림 사매들은 그 새벽의 향로 한 자락을 첫 향 의례의 본보기로 삼습니다.

    팔대 향림 향사 소청월(蘇靑月 — 향림을 여덟 번째로 이끈 향사이자 청월향(靑月香 — 푸른 달밤 한 줄에 다듬은 안식향)을 처음 다듬은 자)의 한 일화는 강호 입회록 안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여름, 정파 청풍원(靑風院 — 무당파 여검 분파)의 막내 사매와 사파 흑매단(黑梅團 — 매화 향에 독을 섞어 다니던 사파 결사) 부단주가 결투 입회 자리(立會 — 정파 결투의 정식 입회 의례)에 들었다. 양측 한 합이 시작되기 직전, 소청월은 청월향 한 자락을 향로에 한 호흡 얹었고, 그 한 줄 향에 양측 검로 한 박자가 동시에 한 호흡 늦춰졌다. 그 한 박자 안에 막내 사매가 부단주의 어깨 한 자락을 한 합도 베지 않은 채 결투를 거두었고, 부단주는 그 자리에서 흑매단 인장을 풀어 두고 산문을 등졌다.

    향림에서는 그 청월향 한 자락을 「한 박자 늦춘 향」이라 부르며, 어린 향사들은 첫 향 의례 새벽에 그 향로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면사천이녀(面紗千耳女)

    면사 정보각주

    면사 너머로 천 개의 귀를 모으는 정보각의 주인

    이 정보 한 줄, 은자 서른 냥. 단, 답을 듣고 면사를 들추지 마시지요.

    면사 정보각주는 강호 다관 이층에서 면사(面紗)를 쓴 채 손님을 받는 여성 정보 거간으로, 한 자리에서 천하의 결재 라인을 한 줄로 정리한다. 외형은 단정한 비단 도포, 얼굴에 가벼운 면사, 한 손에 작은 부채와 메모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문파의 옛 분기 결재·금기 출입 시각·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녀의 면사는 외모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정보 한 줄에 집중하도록 한 박자 호흡을 늦추는 장치다. 사파 척후도 정파 정보꾼도 면사 너머 그녀의 한 줄에 동전을 내려놓는다. 가장 무서운 거간은 큰 정보를 가진 자가 아니라, 면사 너머의 침묵을 가장 잘 다룰 줄 아는 자다.

    그 한 박자 침묵이 무림맹 결재 한 줄을 사흘 늦추셨지요. 우리 면사 사매들은 그 자리의 부채 한 자락을 첫 거래 의례의 본보기로 삼습니다.

    운하각주 류은비(柳隱緋 — 운하다관(雲霞茶館 — 강호 강북 길목 다관) 이층의 면사 정보각주)의 한 일화는 거간 사매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된다.

    어느 늦겨울, 무림맹 분파 청룡당(靑龍堂 — 정파 정보 거래 라인)과 사파 흑풍단(黑風團) 척후가 같은 한 줄 정보를 두고 운하다관 이층 같은 자리에 한 박자 차로 들었다. 류은비는 양측 모두에게 면사 너머 부채 한 자락만 한 호흡 펼쳐 보이고, 한 마디 답도 보태지 않은 채 차 한 잔만 우려냈다. 양측은 부채 한 자락 안에 같은 한 줄 정보를 같은 자세로 동시에 알아보았고, 그 한 박자 침묵 안에서 둘 다 그 한 줄 결재를 사흘 미루기로 한 호흡으로 결재 라인을 다듬었다.

    강호 야사에서는 그 한 박자 침묵을 「면사 한 자락의 사흘」이라 부르며, 운하다관 이층의 그 자리에는 부채 한 자락이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그대로 있다. 어린 면사 사매들은 첫 거래 의례 새벽에 그 부채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빙연일도(氷蓮一刀)

    빙궁 시녀무사

    얼음 연꽃 한 송이에 한 자루 칼을 함께 두른 시녀 무사

    여제 폐하의 머리카락 한 올, 제 한 호흡 안에서만 흐트러지셔도 됩니다.

    빙궁 시녀무사는 빙궁(氷宮) 여제의 시중과 호위를 동시에 맡는 정예 여성 무사로, 한빙심결(寒氷心訣)의 입문결을 익힌 자다. 외형은 푸른 비단 자수 도포, 어깨에 가벼운 흰 망토, 허리에 한 자루 가는 빙도(氷刀)가 표준이다. 본인은 빙궁 안의 모든 평소 출입 시각·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시녀라 불리지만 빙궁 안에서의 결재 권한은 일반 무사보다 무겁고, 여제의 한 호흡을 가장 가까이서 읽어내는 자리다. 본인은 평생 여제의 시중을 들면서 그 침묵의 길이를 검로(劍路)로 옮기는 절기를 다듬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호위는 큰 결투가 아니라, 여제가 잠든 새벽 머리맡 한 송이 꽃 위에 있다.

    그 한 새벽의 비녀가 빙궁 시녀당 한 자락에 같은 자세로 그대로 있어요. 어린 시녀무사들은 첫 호위 의례 새벽 그 비녀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지요.

    빙궁 일대(一隊) 시녀무사장 한설미(韓雪薇 — 빙궁 일대 정예 시녀무사들의 첫 무사장)의 한 일화는 빙궁 시녀당 안에 한 줄 격언으로 전한다.

    어느 한겨울 새벽, 만독문(萬毒門 — 천 가지 독을 다루던 사파 결사) 살수 다섯이 빙궁 침전 한 자락을 노리고 한빙곡(寒氷谷 — 빙궁 일곱 곡 중 가장 춥다는 한 자락) 결계 안으로 잠입했다. 한설미는 빙도(氷刀)를 한 자락도 뽑지 않은 채, 여제의 머리맡 매화 비녀 한 자락을 손목에 옮겨 한 호흡 안에 다섯 살수의 호흡을 한 줄로 묶어 두었다. 살수 다섯은 한 합도 검을 뽑지 못한 채 한 자세로 새벽까지 한빙곡 한 자락에 그대로 있었고, 여제의 한 호흡은 한 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시녀당 안에서는 그 매화 비녀 한 자락을 「한 호흡의 비녀」라 부르며, 어린 시녀무사들은 첫 호위 의례 새벽에 그 비녀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한설미는 이후 빙궁 일대 시녀무사장 자리에 평생 머물렀고, 그녀의 빙도는 단 한 합도 뽑힌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 일무비검(一舞飛劍)

    무희 검무사(劍舞師)

    한 번의 춤사위에 검을 띄우는 무희

    춤이라 부르세요. 한 합이 끝나면, 그게 무공이었음을 알게 되실 테니.

    무희 검무사는 강호 다관·궁중 연회에서 검무(劍舞)를 추는 여성 무인으로, 한 자루 검을 비단 띠처럼 휘둘러 적의 검로를 한 박자 늦추는 자다. 외형은 화려한 비단 무복, 어깨에 긴 비단 띠, 허리에 한 자루 가는 무검(舞劍)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연회의 평소 박자·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연회의 검무는 손님에게는 춤이지만, 검무사 본인에게는 평생 다듬는 한 줄 검로다. 그래서 어느 절세고수가 검무사의 한 자락 띠 끝에 검을 베인 일화가 야사에 남아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자락 춤은 큰 연회가 아니라, 어린 사매가 처음 비단 띠를 잡는 새벽 한 줄 위에 있다.

    그 비단 띠 한 자락은 지금도 무영원 사매당 한 칸에 같은 자세로 걸려 있어요. 검무사 사매들은 첫 띠 의례 새벽에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지요.

    무영원(舞影院 — 강호 강북 길목의 여성 검무 사문)의 검무사 황난주(黃蘭珠 — 무영원 사대 검무사이자 한 자락 띠로 무공을 옮긴 자)의 한 일화는 야사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봄, 황궁 연회(궁중 모란정(牡丹亭) 봄 연회)에 흑선문(黑扇門 — 부채 한 자락에 살의를 숨겨 다니던 사파 결사) 부문주가 부채 한 자락 안에 살의를 숨긴 채 들었다. 황난주는 한 자락 검무를 한 호흡 보태었고, 한 박자 비단 띠 끝이 부문주의 부채 한 결을 한 자락 휘감아 한 호흡 안에 살의를 한 줄로 풀어내었다. 연회 손님들은 그저 한 자락 곱고 화려한 검무로만 보았으나, 부문주는 그 한 박자 안에 자기 부채의 한 줄 살의가 한 호흡으로 흩어진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부채를 풀어 두고 산문을 등졌다.

    무영원 사매당에는 그 비단 띠 한 자락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고, 어린 사매들은 첫 띠 의례 새벽에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매화수녀(梅花繡女)

    매화 자수 비급사

    매화 자수 한 땀 한 땀에 비급을 새기는 여인

    이 자수 한 폭, 한 권 비급입니다. 알아보시는 분께만 — 한 줄 매화의 결로 읽히지요.

    매화 자수 비급사는 화산파 여성 사문의 비급(秘笈)을 책 대신 매화 자수 한 폭에 한 줄씩 옮겨 적는 평민 출신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비단 도포, 가슴팍에 작은 자수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작은 자수 바늘과 옛 비단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매화 자수의 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녀의 자수 한 폭은 한 줄 매화의 결로 비급의 호흡을 옮기며, 사문 외 사람에게는 그저 화려한 자수로만 보인다. 정파 큰 결재가 어느 자수 한 폭에 한 줄씩 숨어 한 시대를 건너간 일화가 사문 안에 전해진다. 가장 무거운 한 폭은 큰 비급이 아니라, 어린 여제자가 처음 매화 한 송이를 자수로 옮긴 그 한 줄 위에 있다.

    그 자수 한 폭이 사십 년을 한 자세로 걸려 있었지요. 어린 비급사 사매들은 첫 자수 의례 새벽 그 한 줄 매화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습니다.

    화산파 매화 자수당(梅花繡堂 — 화산파 여성 사문의 자수 비급 보관소) 비급사 정매홍(鄭梅紅 — 매화 자수 비급사 사문 사대(四代)이자 매화검법 마지막 한 줄을 자수로 옮긴 자)의 한 일화가 사문 안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가을, 사파 흑매단(黑梅團 — 매화 향에 독을 섞어 다니던 사파 결사) 부단주가 매화검법 마지막 한 줄을 노리고 자수당 한 자락에 잠입했다. 정매홍은 한 손목도 흐트리지 않은 채, 부단주가 들춘 자수 한 폭의 한 줄 매화 결을 한 호흡 안에 한 자락 풀어 두 매화 결로 다듬었다. 부단주는 자수 한 폭 위의 매화가 어느 한 줄이 진짜 비급인지 한 박자 안에 알아보지 못한 채 사흘을 자수당 한 자락에 그대로 머물렀고, 사흘째 새벽 자기 인장을 자수당 한 자락에 풀어 두고 산문을 등졌다.

    매화 자수당 한 자락에 그 자수 한 폭은 사십 년을 같은 자세로 걸려 있었고, 어린 비급사 사매들은 첫 자수 의례 새벽 그 한 줄 매화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무명일협녀(無名一俠女)

    떠돌이 여협

    이름 없이 강호를 떠돌면서도 의(義)를 지키는 여협

    면사는 안 씁니다. 강호에 얼굴을 가리는 건, 강호에게 미안한 일이지요.

    떠돌이 여협은 어느 사문에도 적을 두지 않은 채 강호 길목을 떠도는 여성 무인이다. 외형은 닳은 비단 외투, 어깨에 작은 봇짐, 허리에 한 자루 가는 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객잔의 평소 음식 가격·옛 결투 자리·금기 길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여협은 사문의 결재 라인에 매이지 않기에, 길에서 만난 약자—특히 여인과 아이—를 위해 가장 먼저 검을 뽑는 자이기도 하다. 정파 명문 여제자가 망설일 때 떠돌이 여협이 먼저 검을 뽑은 사례가 강호 야사에 백 번을 넘는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떠돌이 여협의 검이 가장 가벼운 검이자, 가장 무거운 검이라 한다. 본인은 자기 검에 한 줄 사문 이름을 새기지 않는 것이 자기 사문이라 말한다.

    단월 언니의 그 검 한 자루는 백 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세워져 있어요. 우리 떠돌이들은 그 자리 한 번 보고 강호에 들지요.

    떠돌이 여협 양단월(楊丹月 — 한 시대 강호에 「붉은 옷고름」으로 이름이 알려진 떠돌이)의 한 일화는 강호 야사에서 가장 곱게 회자되는 한 줄이다.

    어느 늦겨울, 산서(山西) 길목 청산 객잔(靑山客棧 — 강호 산서 길목 작은 객잔) 한 자락에 도적단 흑호단(黑虎團 — 산서 일대 도적 결사)이 들어 어린 모녀(母女)의 한 끼를 빼앗고 있었다. 그 자리에 든 정파 명문 청풍원 사매 셋이 결재 라인 때문에 한 박자 망설이는 사이, 양단월은 한 호흡 안에 검 한 자루를 뽑아 흑호단 일곱의 도(刀) 일곱을 한 자세로 한 자락 부러뜨렸다. 어린 모녀의 한 끼는 그 자리에서 한 박자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양단월은 자기 검을 객잔 마루 한 자락에 그대로 세워 두고 산문을 등졌다.

    청산 객잔에서는 그 검을 사문 이름 없는 한 자루로 같은 자리에 그대로 두었고, 강호 떠돌이 여협들은 강호에 처음 나서는 새벽에 그 검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묵계가 되었다.

  • 산령채화녀(山靈採花女)

    약초원 채화녀(採花女)

    산의 영기를 받은 꽃만을 골라 따는 채화녀

    이 한 송이 약초, 어느 검객의 한 호흡을 살립니다. 흥정은 그분 가족과 하시지요.

    약초원 채화녀는 강호의 절벽·심산·옛 동굴에서 영약(靈藥)과 약초를 채집하는 여성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비단 작업 도포, 어깨에 약초 가방, 한 손에 작은 채집용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영약의 위치·옛 분기 채집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큰 부상을 입은 절세 여검객의 머리맡에 가장 먼저 한 송이 약초가 도착하면, 그건 채화녀의 한 호흡이 그 자리에 닿은 것이다. 무공이 약하면 절벽 한 자리에서 미끄러져 시신이 되고, 무공이 강하면 그 자리의 영약을 다른 채화녀에게 양보한다. 가장 무거운 한 송이는 큰 영약이 아니라, 어린 사매가 처음 따 온 한 송이 위에 있다.

    그 자리에 천년설련 한 송이는 일곱 해를 다시 피지 않으셨지요. 우리 채화녀 사매들은 첫 채집 새벽에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청죽약초원(靑竹藥草園 — 강호 사천 길목의 여성 채화녀 사문) 채화녀 임소취(林小翠 — 청죽약초원 사대 채화녀이자 천년설련을 한 호흡에 양보한 자)의 한 일화는 약초원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봄, 매화검수 막내 사매가 흑매단(黑梅團 — 매화 향에 독을 섞어 다니던 사파 결사) 부단주의 한 합에 어깨를 베여 천년설련(千年雪蓮 —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영약 한 송이)이 절실한 처지에 놓였다. 임소취가 운남(雲南) 만년설벽(萬年雪壁 — 천년설련이 한 송이만 핀다는 만년설 절벽)에 닿았을 때, 그 자리 한 송이를 두고 사천(四川) 출신 채화녀 사매 호선아(胡仙娥 — 한 시대 채화녀 정예) 한 명이 같은 한 호흡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임소취는 한 박자도 흐트리지 않은 채 자기 채집용 단도를 한 자락 풀어 두고 그 한 송이를 호선아에게 그대로 양보했고, 호선아는 그 한 송이를 그 자리에서 절반으로 한 자락 갈라 임소취의 손에 한 호흡 얹었다.

    매화검수 사매와 또 다른 부상자 한 명이 같은 새벽 같은 자세로 한 호흡씩 살아났고, 만년설벽 그 자리에는 천년설련이 일곱 해를 다시 피지 않았다고 전한다.

  • 일현다선(一絃茶仙)

    다관 가야금 악사

    한 줄 가야금에 한 잔 차의 향이 흐르게 하는 악사

    한 줄 가야금이 한 합 검보다 길게 갑니다. 잔 받으시면서, 그 한 줄에 호흡을 맞추시지요.

    다관 가야금 악사는 강호 길목 다관 이층에서 가야금 한 줄로 손님의 호흡을 맞추는 평민 출신 여성 악사다. 외형은 단정한 비단 도포, 어깨에 작은 가야금 가방, 한 손에 작은 채(撥)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다관의 평소 손님 호흡·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검에 베인 자리를 숨기고 들어온 협객도, 부고를 듣고 술 대신 차를 시킨 무사도, 그녀의 한 줄 가야금 앞에서는 호흡 한 박자가 늦춰진다. 그래서 어느 절세고수는 평생 한 다관 한 줄 가야금만 들으러 강호를 거슬러 오기도 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연회의 가야금이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 위로 흐르는 한 줄 위에 있다.

    그 한 줄 가야금이 한 시진 결투 한 합을 한 박자 늦췄지요. 우리 악사 사매들은 첫 음 의례 새벽에 그 한 줄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습니다.

    매월다관(梅月茶館 — 강호 절강 길목의 작은 다관) 가야금 악사 양서연(楊瑞蓮 — 매월다관 삼대 악사이자 한 줄 가야금으로 결투 한 합을 늦춘 자)의 한 일화는 야사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정파 청풍원(靑風院) 사매와 사파 흑매단(黑梅團) 부단주가 매월다관 한 자락에서 결투 한 합 직전에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마주 앉았다. 양서연은 가야금 한 줄에 한 호흡을 한 박자 길게 얹었고, 그 한 박자 안에 양측 검로 한 줄이 동시에 한 호흡 늦춰졌다. 그 한 박자 끝에 청풍원 사매는 부단주의 어깨 한 자락을 한 합도 베지 않은 채 자리를 떴고, 부단주는 자기 단검을 그 자리에 풀어 두고 산문을 등졌다.

    매월다관 이층에는 그 가야금 한 줄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고, 어린 악사 사매들은 첫 음 의례 새벽에 그 한 줄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옥반홍병녀(玉盤紅餠女)

    객잔 떡장수 낭자

    옥쟁반 위 붉은 떡으로 객잔에 정을 더하는 낭자

    이 떡, 두 개 사 가시면 — 옆자리 어른 얘기는 안 들은 걸로 해 드려요.

    객잔 떡장수 낭자는 강호 길목 객잔 앞에서 떡과 다과를 파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무공이라곤 떡을 한 손에 다섯 개 쥐는 손목 힘 정도지만, 객잔 앞을 지나가는 모든 강호 인사의 평소 식성과 동선을 한 표로 외운다. 어느 협객이 어느 부고를 듣고 떡 대신 술을 사 갔는지, 어느 사파 척후가 어느 새벽 떡 두 개를 사 갔는지 — 떡장수 낭자의 눈은 모든 것을 안다.

    그래서 어떤 점소이는 떡장수 낭자에게 차 한 잔을 사며 그날의 분기 한 줄을 묻는다. 가장 가벼운 직무가 사실 한 객잔 한 시즌의 첫 한 끼를 굴러가게 한다. 점소이가 강호의 귀라면, 떡장수 낭자는 강호의 새벽이다.

    그 매화떡 한 점이 정파 결재 한 줄을 한 시진 늦추었지요. 객잔 낭자 사매들은 첫 새벽 그 떡 한 점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백화 객잔(白花客棧 — 강호 호남 길목 객잔) 떡장수 낭자 소연(蘇蓮 — 백화 객잔 사대 떡장수이자 매화떡(梅花餠 — 매화 한 송이 결을 새긴 작은 다과)의 결을 가장 곱게 다듬은 자)의 한 일화는 객잔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봄 새벽, 정파 한설곡(寒雪谷 — 빙궁 아래 일곱 골 중 한 자락) 출신 떠돌이 사매가 자기 사부 부고를 듣고 백화 객잔 마루 한 자락에 들었다. 소연은 매화떡 한 점에 매화 한 송이를 손수 새겨 한 자락 비단 위에 한 호흡 두었고, 한 마디도 보태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떡 두 개만 정중히 올렸다. 떠돌이 사매는 매화떡 한 점이 식을 때까지 한 호흡 한 호흡을 그 한 송이 결에 옮겼고, 떡이 다 식자 자기 검을 풀어 객잔 마루 한 자락에 그대로 두고 산문으로 돌아갔다.

    백화 객잔에서는 그 자리 한 자락에 매화떡을 누구에게도 따로 받지 않는 관례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어린 떡장수 사매들은 첫 새벽 그 떡 한 점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빨래터천이녀(千耳女)

    빨래터 강호 소식통

    빨래터에서 천 개의 강호 소식을 흘려듣는 낭자

    그 댁 도련님이 어느 문파에 입문하셨다고요? 어머나, 옷고름에 매화가 있더이다.

    빨래터 강호 소식통은 강호 길목 마을 빨래터에서 천 명의 옷을 빠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무공이라곤 빨랫방망이를 한 손에 단정히 잡는 정도지만, 마을 모든 가족의 평소 옷·옛 분기 혼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운다. 어느 댁 도련님 옷고름에 매화 자수가 보이면 화산파 입문, 어느 댁 낭자 도포에 푸른 띠가 보이면 빙궁 시녀무사 — 빨래터 한 자리에서 강호의 분기 라인이 한 줄씩 정리된다.

    그래서 어떤 정보 거간은 빨래터 한 자락 빨랫방망이 소리에 정보의 출처를 맞춘다. 가장 가벼운 한 줄 빨래는 큰 옷이 아니라, 어린 사매가 처음 입은 도포 한 자락 위에 있다. 다관 다비녀가 강호의 마음에 가깝다면, 빨래터 소식통은 강호의 옷고름에 가깝다.

    그 옷고름 한 자락이 무림맹 결재 한 줄을 한 박자 늦췄지요. 빨래터 사매들은 그 새벽 옷고름 한 자락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청수 빨래터(淸水洗濯場 — 강호 강서 길목 작은 마을 빨래터)의 빨래꾼 양순화(楊順花 — 청수 빨래터 사대 빨래꾼이자 옷고름 한 자락으로 강호 분기 한 줄을 가장 정중히 읽어낸 자)의 한 일화는 야사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여름, 사파 흑풍단(黑風團 — 강호 최대의 사파 결사) 부단주가 정파 청풍원(靑風院) 사매 옷으로 위장해 정파 큰 결재 자리에 들려 청수 빨래터 한 자락에 옷고름을 한 자락 맡겼다. 양순화는 한 손목도 흐트리지 않은 채, 옷고름 한 자락 매화 자수의 결이 청풍원 사매들의 한 자락 결과 한 박자 어긋난 것을 한 호흡 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옷을 그대로 정중히 빨아 돌려주면서 옷고름 한 자락에 청풍원 사매들의 진짜 한 줄 결을 정중히 한 자락 더 새겨 두었고, 부단주는 결재 자리에서 사매들의 한 호흡 안에 그 자수 한 자락이 한 박자 다른 것을 들켜 그 자리에서 산문을 등졌다.

    청수 빨래터에서는 그 옷고름 한 자락을 같은 자리에 그대로 두었고, 어린 빨래꾼 사매들은 첫 새벽 그 옷고름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마을 안 묵계가 되었다.

  • 남해인어녀(南海人魚女)

    남해 인어검녀(人魚劍女)

    남해의 인어처럼 물 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여인

    물결은 베지 않습니다. 다만 그대 검의 호흡이, 한 박자 늦으셨지요.

    남해 인어검녀는 남방 푸른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에 자리한 인어문(人魚門)의 정예 여검사로, 한 자루 가는 수검(水劍)을 파도의 결처럼 부린다. 외형은 푸른 비단 자수 도포, 어깨에 진주 자수 망토, 허리에 한 자루 가는 수검과 작은 조개 인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해상 표국의 평소 항로·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인어문의 검은 베는 검이 아니라 흘리는 검이며, 적의 검로 한 줄을 파도처럼 비껴내 그대로 바다에 떨어뜨린다. 그래서 정파의 어느 절세고수는 인어검녀와 한 합을 겨룬 뒤 평생 자기 검로에 한 박자 물결을 새겨 넣었다. 가장 무거운 한 자락 검은 큰 결투가 아니라, 어린 사매가 처음 파도 위에 검을 띄우는 새벽 한 줄 위에 있다. 강호 남자들이 인어검녀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그녀의 검이 아니라, 한 호흡 늦은 자기 자신이 그 파도 안에 비치는 것이다.

    그 흑풍 일곱 척이 한 호흡 안에 한 자락 물결로 흩어졌지요. 인어문 어린 사매들은 첫 파도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인어문 사대 검녀 해령아(海玲娥 — 인어문 사대 정예이자 한 자락 수검으로 일곱 척 사파 선단을 한 호흡에 흩어 놓은 자)의 한 일화는 남해 야사 단골 이야기다.

    어느 늦여름, 사파 해상 결사 흑풍선단(黑風船團 — 남해 일대 사파 해적 결사) 일곱 척이 인어문 본도(本島 — 인어문이 자리한 작은 섬) 한 자락 항구에 정박해 인어문 어린 사매 일곱을 노리고 한 합을 청했다. 해령아는 한 자루 수검을 한 박자도 휘두르지 않은 채, 일곱 척 사이 한 자락 물결의 결을 한 호흡 안에 한 줄로 다듬어 두었다. 일곱 척의 닻줄 일곱이 한 박자 안에 한 자락 물결에 같은 자세로 풀려, 일곱 척이 한 호흡 안에 한 자락 물결로 같은 자세로 표류했다.

    흑풍선단 단주는 한 합도 검을 뽑지 못한 채 자기 깃발 한 자락을 본도 항구 한 자락에 풀어 두고 산문을 등졌고, 그 깃발 한 자락은 일곱 해를 같은 자세로 그대로 있었다고 전한다. 인어문 어린 사매들은 첫 파도 의례 새벽 그 자리 한 자락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월하활빈녀(月下活貧女)

    월하 활빈낭(月下 活貧娘)

    달빛 아래 가난한 자를 살리는 의로운 낭자

    은자 한 냥, 댁의 곳간에서 한 줄 줄어들어도 — 달 한 자락은 그대로이지요.

    월하 활빈낭은 달이 뜬 밤 부호 가문의 곳간에 들어 가난한 마을의 한 끼를 채워 두는 여성 의적이다. 외형은 검은 비단 야행복, 어깨에 가벼운 면사, 허리에 한 자루 가는 비도(飛刀)와 작은 은자 주머니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부호의 평소 곳간 결재·옛 분기 호위 시각·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활빈낭의 한 줄 손길은 곳간의 은자 한 냥을 줄이고, 마을 어느 노모의 새벽 한 끼를 늘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파의 큰 어른들도 자기 곳간이 한 줄 비어 있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결재 라인에서 눈을 돌린다. 가장 무거운 한 줄 손길은 큰 곳간이 아니라, 어린 사매가 처음 의적의 길에 든 새벽 한 줄 비도 위에 있다. 활빈낭의 진짜 무서움은 곳간의 은자가 아니라, 곳간 주인의 가책 한 줄을 한 박자 흔들고 가는 그 침묵이다.

    그 매월 비녀 한 자락이 황보세가 곳간 한 자락에 백 년을 그대로 있었지요. 활빈낭 사매들은 첫 새벽 그 자리 한 줄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월하 활빈낭 단심옥(段心玉 — 한 시대 강호에 「달밤의 매월 비녀」로 이름이 알려진 의적)의 한 일화는 강호 야사에서 가장 곱게 회자되는 한 줄이다.

    어느 한가위 새벽, 산동(山東) 일대 부호 황보세가(皇甫世家 — 한 시대 강호 산동 일대 가장 큰 부호)의 곳간 한 자락에 단심옥이 들었다. 그녀는 곳간 안의 은자 한 자락만 한 호흡으로 가지고 나오면서, 자기 매월 비녀(梅月簪 — 매화 한 송이와 달 한 자락이 새겨진 그녀의 인장 비녀) 한 자락을 곳간 마루에 그대로 풀어 두고 자리를 떴다. 황보세가 가주는 새벽 곳간 한 자락에 매월 비녀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한 호흡 침묵 끝에 「그 한 자락은 손대지 마라」 한 마디만 보탰고, 다음 한가위 새벽부터 가주가 직접 곳간 한 자락 은자를 한 호흡씩 마을 노모의 한 끼로 한 자락 옮기기 시작했다.

    매월 비녀 한 자락은 그 자리에 백 년을 같은 자세로 그대로 있었고, 활빈낭 어린 사매들은 첫 의적 의례 새벽에 그 비녀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옥소청풍녀(玉簫淸風女)

    점창파 옥소(玉簫) 사매

    옥피리 한 곡조에 청풍이 깃드는 점창파의 사매

    한 줄 옥소 소리에, 그대 검의 합이 한 박자 늦으십니다. 이만 거두시지요.

    점창파 옥소 사매는 운남 점창산(點蒼山) 여성 사문의 정예 무인으로, 한 자루 옥소(玉簫)를 검 대신 부려 적의 호흡을 한 박자 늦추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청록 비단 도포, 가슴팍에 작은 옥소 매듭, 허리에 한 자루 가는 점창검(點蒼劍)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점창 절기의 평소 호흡 결재·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옥소 한 줄은 멜로디가 아니라 무공이며, 그 한 음이 닿은 적의 검로 한 줄은 본인도 모르게 한 박자 늦어진다. 사문 안에서 옥소 사매는 큰 결투의 입회보다 어린 사매가 처음 옥소를 잡는 새벽 한 줄에 더 정성을 쏟는다. 가장 무거운 한 음은 큰 연주가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 위로 흐르는 한 줄 위에 있다. 강호에서는 옥소 사매의 한 줄이 들리면, 그날 밤 결재 한 줄이 비어 있다는 격언이 돈다.

    그 옥소 한 자락은 점창산 옥소당 한 칸에 같은 자세 그대로 걸려 있어요. 어린 사매들은 첫 음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지요.

    점창파 옥소당(玉簫堂 — 점창산 여성 사문의 옥소 정예 분파) 사매 노청향(盧淸香 — 옥소당 오대 정예이자 한 자락 옥소로 결투 일곱 합을 한 박자 늦춘 자)의 한 일화는 점창산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사파 만독문(萬毒門 — 천 가지 독을 다루던 사파 결사) 부문주가 점창산 산문 한 자락에 들어 옥소당 막내 사매 일곱을 노리고 결투를 청했다. 노청향은 한 자락 옥소를 한 음 한 음 일곱 호흡 한 줄로 한 자락 늘렸고, 부문주의 검로 일곱 합이 그 한 음 한 음에 한 박자씩 한 자세로 한 호흡 늦춰졌다. 부문주는 마지막 한 합에서 자기 검로가 한 박자 늦은 것을 알고 한 합도 막내 사매들에게 닿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자기 단검을 점창산 산문 한 자락에 풀어 두고 산문을 등졌다.

    점창산 옥소당에는 그 옥소 한 자락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고, 어린 사매들은 첫 음 의례 새벽에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단심전서낭(丹心傳書娘)

    단심곡(丹心谷) 서신녀

    붉은 마음으로 강호의 서신을 전하는 낭자

    이 한 줄 서신, 봉랍 한 점에 한 사람의 평생이 들었습니다. 받으시는 손, 흐트리지 마시지요.

    단심곡 서신녀는 강호 산중 단심곡(丹心谷)에 자리한 여성 전령 결사의 정예로, 한 자루 가는 검과 한 통 봉랍 서신을 함께 들고 천하를 가로지르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붉은 비단 도포, 어깨에 작은 서신 가방, 허리에 한 자루 가는 전검(傳劍)과 봉랍 인주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문파의 평소 서신 결재·옛 분기 호위 시각·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서신녀의 한 통 봉랍에는 어느 정혼의 가부, 어느 사문의 마지막 한 줄, 어느 여인의 평생이 한 박자 호흡으로 들어 있다. 사파 척후가 서신녀의 봉랍을 한 번이라도 뜯으면, 단심곡 전체가 결재 한 줄을 그 자리로 옮긴다. 가장 무거운 한 통은 큰 사문의 결재가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으로 가는 한 줄 위에 있다. 강호에서는 봉랍 한 점에 한 줄 단심(丹心)이 들었다 한다.

    그 봉랍 한 점이 정혼 한 줄을 사흘 안에 한 자세로 다듬으셨지요. 단심곡 어린 사매들은 첫 서신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단심곡 서신녀 한단심(韓丹心 — 단심곡 사대 정예이자 가장 무거운 한 통 봉랍을 한 호흡에 옮긴 자)의 한 일화는 야사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봄, 무당파 청풍원(靑風院) 막내 사매와 화산파 매화당(梅花堂 — 매화 자수 비급 보관소) 막내 사매 사이에 한 통 정혼 가부 봉랍이 단심곡에 한 줄로 들었다. 한단심은 한 자락 가는 전검을 옆에 두고 한 통 봉랍을 한 호흡 안에 청풍원 산문 한 자락까지 사흘 길로 옮겼는데, 사흘째 새벽 길목 한 자락에 사파 흑풍단(黑風團 — 강호 최대의 사파 결사) 척후 일곱이 매복했다. 한단심은 한 합도 검을 뽑지 않은 채 봉랍 한 점만 손에 한 자락 호흡으로 받쳐 든 채 일곱 척후 사이를 한 박자 한 호흡으로 가로질렀고, 봉랍 한 점은 한 자락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막내 사매의 머리맡에 닿았다.

    청풍원과 매화당의 정혼 한 줄은 그 봉랍 한 점 위에 한 호흡으로 다듬어졌고, 단심곡 어린 사매들은 첫 서신 의례 새벽에 그 봉랍 한 점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비파은행녀(琵琶隱行女)

    비파 척후랑(琵琶 斥候娘)

    비파를 안은 채로 적진을 살피는 척후 낭자

    이 한 줄 비파, 한 박자 길어지면 — 사파 척후가 자리에 든 것이지요.

    비파 척후랑은 강호 길목 다관·객잔에서 비파(琵琶) 한 줄로 손님의 정체를 한 박자 안에 읽어내는 평민 출신 여성 척후다. 외형은 단정한 비단 도포, 어깨에 작은 비파 가방, 한 손에 가벼운 채(撥)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다관의 평소 손님 결재·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비파 한 줄의 음을 듣고 한 박자 흔들리는 손님은 사파 척후이며, 한 박자 그대로 잔을 받는 손님은 정파 정찰병이다. 그래서 어느 정보 거간은 비파 척후랑에게 차 한 잔을 사며 그날의 분기 한 줄을 묻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 비파는 큰 연회가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 위로 흐르는 한 줄 위에 있다. 비파 척후랑의 진짜 절기는 비파가 아니라, 비파 너머 한 박자 침묵을 가장 잘 다루는 그 자세다.

    그 비파 한 줄이 흑선문 척후 셋의 정체를 한 박자 안에 읽어내셨지요. 우리 척후랑 사매들은 첫 음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운하다관(雲霞茶館 — 강호 강북 길목의 다관) 비파 척후랑 진소비(陳小琵 — 운하다관 삼대 비파 척후랑이자 비파 한 줄로 사파 척후의 정체를 한 박자 안에 읽어낸 자)의 한 일화는 척후랑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겨울, 사파 흑선문(黑扇門 — 부채 한 자락에 살의를 숨겨 다니던 사파 결사) 척후 셋이 정파 청풍원(靑風院) 사매로 위장해 운하다관 한 자락에 들었다. 진소비는 비파 한 줄에 한 음을 한 박자 길게 한 자락 얹었고, 셋 중 둘이 그 한 박자에 한 호흡 흔들리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차 한 잔을 한 호흡 더 정중히 따른 뒤 메모장 한 자락에 그 자리 결재선 한 줄을 그어 정보 거간의 손에 정중히 한 자락 건넸고, 흑선문 척후 셋은 그날 밤 운하다관 한 자락을 한 호흡 안에 등졌다.

    운하다관 한 자락에는 그 비파 한 줄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고, 어린 척후랑 사매들은 첫 음 의례 새벽에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누의일협녀(縷衣一俠女)

    개방 여걸자(女乞者)

    누더기를 걸쳤어도 의(義)를 잊지 않는 개방의 여걸

    은자는 안 받습니다. 차 한 잔이면 됩니다 — 그 한 잔에 강호의 분기 한 줄이 따라옵니다.

    개방 여걸자는 천하 거지 결사 개방(丐幇)의 여성 분파 소속으로, 누더기 도포 한 자락 안에 한 시대 강호의 분기 한 줄을 외고 있는 자다. 외형은 닳은 회색 누더기 도포, 어깨에 작은 죽편(竹片) 묶음, 허리에 한 자루 가는 죽봉(竹棒)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길목의 평소 객잔 결재·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남성 개방 걸자가 술 한 잔에 한 줄을 흘린다면, 여걸자는 차 한 잔에 한 줄을 받는다. 그래서 개방 여걸자의 차 한 잔은 강호의 어느 정보 거간보다도 무거운 한 잔이다. 가장 무거운 한 자락 누더기는 큰 분기가 아니라, 어린 사매가 처음 개방에 든 새벽 한 줄 죽봉 위에 있다. 강호 남자들이 여걸자를 어렵게 여기는 진짜 이유는 누더기가 아니라, 그 누더기 안의 침묵이다.

    그 차 한 잔에 무림맹 결재 한 줄이 한 호흡 다듬어졌지요. 여걸자 사매들은 첫 누더기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개방 여걸자분파(女乞者分派 — 개방 안의 여성 결사) 사대 분주 양은랑(楊銀娘 — 개방 여걸자분파를 네 번째로 이끈 자이자 차 한 잔에 강호 분기 한 줄을 가장 정중히 받은 자)의 한 일화는 야사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여름, 무림맹 춘계 회의(春季會議 — 무림맹의 봄 정파 회의) 결재 라인 한 줄이 흐트러져, 일곱 사문 어른들이 회의 한 시진을 한 자락 한 호흡으로 풀어내지 못했다. 양은랑은 회의장 한 자락도 들지 않은 채, 회의장 산문 한 자락 작은 다관에 누더기 한 자락으로 앉아 어른 일곱에게 차 한 잔씩을 정중히 우려냈다. 일곱 어른은 차 한 잔씩을 한 호흡 받은 뒤, 회의장으로 돌아가 한 시진 안에 결재 라인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다듬었다.

    양은랑은 그 자리 한 자락에 죽편 한 매도 받지 않은 채 산문을 등졌고, 그 다관 한 자락에는 그 누더기 한 자락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사십 년을 그대로 있었다. 어린 여걸자 사매들은 첫 누더기 의례 새벽에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주인등화녀(朱印燈火女)

    등불장 인주녀(印朱女)

    붉은 인장과 등불로 강호의 약속을 새기는 여인

    이 한 줄 인주(印朱), 한 점이 어느 가문의 평생을 한 박자 늦춥니다. 천천히 찍으시지요.

    등불장 인주녀는 강호 길목 등불장(燈火場)에서 인주(印朱) 한 줄을 찍어 가문 결재의 한 박자를 다듬는 평민 출신 여성 장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붉은 비단 도포, 어깨에 작은 인주 묶음, 한 손에 가벼운 인장과 옛 인주 통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가문의 평소 인주 결재·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인주 한 점이 한 박자 흐트러지면 어느 가문의 결재 한 줄이 그날 밤 다시 쓰여야 한다. 그래서 인주녀의 한 손목은 가문 결재 라인 전체보다도 한 박자 무거운 호흡을 다룬다. 가장 무거운 한 점은 큰 가문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사매가 처음 인주를 잡는 새벽 한 줄 위에 있다. 강호에서는 인주 한 점이 흐트러지면 한 가문의 정혼이 한 줄 미뤄진다는 격언이 돈다.

    그 한 점 인주가 한 정혼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다듬으셨지요. 어린 인주녀 사매들은 첫 인주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홍련등불장(紅蓮燈火場 — 강호 강북 길목의 등불장) 인주녀 우홍련(于紅蓮 — 홍련등불장 사대 인주녀이자 한 점 인주로 한 정혼 한 줄을 다듬은 자)의 한 일화는 등불장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봄, 정파 명문 백수가(白水家 — 강호 강북 일대의 정파 가문)와 청풍원(靑風院) 사이 정혼 가부 결재 한 통이 홍련등불장 한 자락에 들었다. 우홍련은 한 손목도 흐트리지 않은 채, 백수가 가주의 인장 한 점에 한 호흡 인주를 한 박자 길게 한 자락 얹었고, 청풍원 사매의 인장 한 점에는 한 호흡 짧게 한 박자 한 자락 얹었다. 두 인주의 한 박자 차이가 두 가문의 정혼 한 호흡을 한 자락 같은 자세로 한 줄로 다듬었고, 정혼 한 통은 그 한 호흡 안에 한 줄 결재로 마무리되었다.

    홍련등불장에는 그 인장 두 점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고, 어린 인주녀 사매들은 첫 인주 의례 새벽에 그 두 점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호접몽선녀(蝴蝶夢仙女)

    호접몽 점복녀(占卜女)

    나비의 꿈처럼 운명을 점치는 신선 같은 점복녀

    그대의 정혼은 봄날에 한 줄 매화로 옵니다. 다만 그 봄, 한 박자 늦으실 수도 있지요.

    호접몽 점복녀는 강호 길목 다관·객잔 한 자락에서 손님의 한 호흡을 읽어 정혼·은원·결투의 분기 한 줄을 점치는 평민 출신 여성 점복가다. 외형은 단정한 보랏빛 비단 도포, 어깨에 작은 점복 도구 가방, 한 손에 가벼운 부채와 점목(占木)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정혼의 평소 분기·옛 분기 의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녀의 한 점은 단순한 점복이 아니라, 손님의 한 호흡 안에 든 망설임 한 줄을 한 박자 더 늦춰 주는 자세다. 그래서 어느 절세 여검객은 정혼 결재 전 호접몽 점복녀의 한 줄 점복 앞에서 한 박자 호흡을 다듬고 사문에 돌아갔다. 가장 무거운 한 점은 큰 정혼이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 한 줄 위에 있다. 점복녀의 진짜 절기는 점이 아니라, 점 너머 한 박자 침묵을 가장 잘 다루는 그 자세다.

    그 점목 한 자락이 한 정혼 한 줄을 한 박자 늦추셨지요. 어린 점복녀 사매들은 첫 점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호접몽 점관(蝴蝶夢 占館 — 강호 절강 길목의 점복 다관) 사대 점복녀 노접몽(盧蝶夢 — 호접몽 점관 사대 정예이자 한 자락 점목으로 정혼 한 줄을 한 박자 늦춘 자)의 한 일화는 점복녀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봄, 무당파 청풍원(靑風院) 막내 사매가 정혼 결재 새벽에 호접몽 점관 한 자락에 들었다. 노접몽은 점목(占木 — 한 자락 길이의 점복 나무 패) 한 자락을 한 호흡 정중히 펼쳤고, 한 마디 답도 보태지 않은 채 부채 한 자락만 한 박자 길게 한 호흡 한 자락 펼쳐 두었다. 청풍원 사매는 그 부채 한 자락 안에 자기 망설임 한 줄을 한 박자 한 호흡으로 알아보았고, 정혼 결재 한 통을 사흘 미루어 사문 어른들과 한 호흡으로 다시 한 줄을 다듬었다.

    사흘 뒤 그 정혼은 한 자세 한 호흡으로 곱게 다듬어졌고, 호접몽 점관 한 자락에는 그 점목 한 자락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다. 어린 점복녀 사매들은 첫 점 의례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사문 안 묵계가 되었다.

  • 야객등롱녀(夜客燈籠女)

    객잔 등롱 처녀

    밤손님의 길을 등롱 하나로 밝히는 처녀

    이 한 줄 등롱(燈籠), 새벽 두 시까지 켜 둡니다. 그 시각 들어오시는 분, 평소 분기 한 줄이 흐트러지신 분이지요.

    객잔 등롱 처녀는 강호 길목 객잔 앞에서 등롱 한 줄을 켜고 끄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무공이라곤 등롱 줄을 한 손에 단정히 잡는 정도지만, 객잔을 드나드는 모든 강호 인사의 평소 시각·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운다. 어느 협객이 새벽 두 시 등롱 아래로 들어오면 평소 분기가 한 줄 흐트러진 것이고, 어느 사파 척후가 자정 전에 등롱 옆을 지나가면 결재 한 줄이 그 자리에 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정보 거간은 등롱 처녀에게 차 한 잔을 사며 그날의 분기 한 줄을 묻는다. 가장 가벼운 한 줄 등롱은 큰 객잔이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 위로 비치는 한 줄 위에 있다. 빨래터 소식통이 강호의 옷고름에 가깝다면, 등롱 처녀는 강호의 새벽 한 줄 빛에 가깝다.

    그 등롱 한 자락이 한 떠돌이 사매의 한 호흡을 한 박자 받쳐 주셨지요. 등롱 처녀 사매들은 첫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모란 객잔(牡丹客棧 — 강호 사천 길목 작은 객잔) 등롱 처녀 백연정(白蓮汀 — 모란 객잔 사대 등롱 처녀이자 한 자락 등롱으로 떠돌이 사매의 한 호흡을 받쳐 준 자)의 한 일화는 객잔 사매들 사이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겨울 새벽 두 시, 빙궁(氷宮) 출신 떠돌이 사매 한 명이 자기 사부 부고를 듣고 모란 객잔 한 자락에 한 호흡 한 호흡으로 들었다. 백연정은 한 마디도 보태지 않은 채, 등롱 한 자락을 평소보다 한 박자 길게 새벽 다섯 시까지 한 호흡 한 자락 더 켜 두었다. 떠돌이 사매는 그 등롱 한 자락 빛 아래에서 한 호흡 한 호흡으로 사부의 마지막 한 줄 결재를 다듬었고, 새벽 다섯 시 등롱이 한 자락 한 호흡으로 꺼질 때 자기 검을 객잔 마루 한 자락에 그대로 두고 산문으로 돌아갔다.

    모란 객잔에서는 그 등롱 한 자락을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그대로 두었고, 어린 등롱 처녀 사매들은 첫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마을 안 묵계가 되었다.

  • 강월일선녀(江月一船女)

    강가 나룻배 사공녀

    강에 비친 달과 함께 한 척의 배를 모는 사공녀

    강 한 자락, 한 박자 늦게 건네 드립니다. 그 한 박자, 그대의 분기 한 줄을 한 번 더 다듬으시지요.

    강가 나룻배 사공녀는 강호 길목 큰 강의 나룻배를 한 자락 노로 다루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무공이라곤 노를 한 손에 단정히 잡는 정도지만, 강을 건너는 모든 강호 인사의 평소 호흡·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운다. 어느 절세 여검객이 한 박자 호흡을 다듬으러 일부러 사공녀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정보 거간은 사공녀에게 차 한 잔을 사며 그날의 분기 한 줄을 묻는다. 가장 가벼운 한 자락 노는 큰 강이 아니라, 잠 못 드는 한 여인의 머리맡 위로 흐르는 한 줄 위에 있다. 다관 다비녀가 강호의 마음에 가깝다면, 사공녀는 강호의 한 박자 호흡에 가깝다. 그녀가 노 한 자락을 한 박자 늦게 저을 때, 그 한 박자 안에 어느 정혼 한 줄이 다시 결재된다.

    그 한 자락 노가 한 정혼 한 줄을 한 호흡으로 다듬으셨지요. 사공녀 사매들은 첫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어요.

    양강나루(兩江津 — 강호 강남 일대 두 강이 만나는 큰 나루)의 사공녀 임천하(林淺霞 — 양강나루 사대 사공녀이자 한 자락 노로 정혼 한 줄을 한 박자 다듬은 자)의 한 일화는 야사에 한 줄 격언으로 남아 있다.

    어느 늦봄 새벽, 화산파 매화검수(梅花劍手) 막내 사매가 정혼 결재 자리로 가는 한 박자 호흡 안에 양강나루 한 자락에 들었다. 사매는 정혼자에 대한 망설임 한 줄을 한 박자 호흡으로 한 자락 다듬지 못한 채 노 한 자락에 손을 한 호흡 얹었다. 임천하는 한 마디도 보태지 않은 채 노를 평소보다 한 박자 한 자락 더 길게 한 호흡 저었고, 그 한 박자 안에 사매는 자기 망설임 한 줄을 한 호흡으로 한 자락 다듬어 정혼 결재 한 통을 사흘 미루기로 한 자락 결재했다.

    사흘 뒤 그 정혼은 한 자세 한 호흡으로 곱게 다듬어졌고, 사매는 다시 양강나루를 같은 노 한 자락으로 한 호흡 한 자락 건넜다. 양강나루에는 그 노 한 자락이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고, 어린 사공녀 사매들은 첫 새벽 그 자리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것이 마을 안 묵계가 되었다.

  • 만검여존(萬劍女尊)

    천하제일녀(天下第一女)

    모든 검을 거느리고 여인의 자리에 선 지존

    나를 이기러 오는 자에게는 먼저 차를 드리오. 이기고 나서 마음이 쓸쓸하면 돌아오기 편하도록.

    천하제일녀는 강호 역사상 단 한 시대에 한 명만 허락되는 칭호로, 어느 누구도 그녀의 검 앞에서 두 합을 버텨낸 일화가 없는 여성 최고 무인이다. 검신(劍神)이 고독의 절정이라면, 천하제일녀는 그 고독을 가장 우아하게 다스린 자다. 그녀의 검은 봄바람처럼 가볍고, 그 결과는 서리처럼 정확하다.

    문제는 세상이 그녀에게 끝없이 도전자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전자들은 지고 나서도 차 한 잔 받고는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사파 두목, 정파 검존, 황실 호위대장까지 — 그녀에게 진 자들이 모두 먼 친구가 되어버리니, 강호 역사상 적이 가장 적은 절세 고수라는 기묘한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천하제일녀께 진 자들이 왜 하나같이 사이가 좋아지는지 이유를 물으면, '진 다음 차 한 잔이 그렇게 달더이다'라고 하지요. 그 차 한 잔이 검보다 무서운 거요.

    이대 천하제일녀 매화정(梅花靜) — 강호 역사상 두 번째이자 가장 많은 사람과 결투하고 가장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된 여성 무인 — 의 일화는 '다관 한 칸의 결투'로 강호 야사에 전해진다.

    매화정이 천하제일녀 칭호를 받은 지 스무 해 되던 봄, 강호 남방 사파 결사 천독각(天毒閣, 당시 강호 독 무공 최고의 사파 결사) 각주가 삼 년을 준비한 결투를 청했다. 매화정은 결투 장소로 다관 한 칸을 제안했다. 각주는 당황했지만 그 다관에 들었고, 매화정은 차 한 잔을 먼저 따른 뒤 검집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각주가 독침을 꺼내드는 순간 매화정의 검집이 독침 묶음을 탁자 위에 정중히 고정시켰으며, 각주는 한 합도 뽑지 못했다. 매화정은 "이제 차를 드시지요"라며 두 번째 잔을 따랐고, 각주는 그 차를 받아 마신 뒤 천독각을 해산했다. 각주는 이후 다관 주인이 되었으며, 그 다관은 강호에서 가장 차 맛이 좋은 다관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천하제일녀의 가장 강한 검은 검집 안에 있다는 격언이 그날 다관에서 태어났다.

  • 만독화신(萬毒華神)

    화독 성녀(花毒 聖女)

    일만 가지 독을 한 송이 꽃처럼 다스리는 신녀

    꽃이 아름다운 이유와 독이 무서운 이유가 같다는 것을,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나중에야 안다오.

    화독 성녀는 강호 남방 화독교(花毒敎, 꽃과 독의 이치를 섬기는 특수 결사)의 정점에 선 여성 절대자로, 한 송이 꽃과 한 방울 독을 동시에 부리는 절기의 완성자다. 외형은 온몸에 꽃 자수가 새겨진 비단 도포, 머리에 살아있는 꽃 관, 한 손에 꽃 부채와 다른 손에 독침이 표준이다. 그녀의 한 걸음마다 꽃이 피어나고, 그녀의 한 호흡마다 적의 검이 느려진다.

    정파에서는 그녀를 사파의 정점으로 규정하지만, 화독교는 병자와 가난한 자에게 약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강호 민간에서는 화독 성녀가 가장 정파답지 않은 정파이자 가장 사파답지 않은 사파라는 역설적인 평가를 받는다. 어쨌든 그녀의 차 초대를 거절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인정한다.

    화독 성녀의 꽃 한 송이가 검 만 자루보다 강호에 오래 남는다는 걸, 그 자리에 있었던 정파 어른들이 가장 잘 알지요.

    오대 화독 성녀 화목란(花木蘭) — 화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 성녀 자리에 있었던 자이자 꽃 한 송이로 정파 회의 한 건을 무산시킨 자 — 의 일화는 '모란화(牡丹花) 한 송이의 결재'로 강호에 전해진다.

    어느 봄, 정파 무림맹이 화독교를 사파로 공식 지정하는 결재를 앞두고 있었다. 화목란은 무림맹 본단에 참석 요청을 하지 않고, 대신 각 사문 장문인들에게 자기 정원에서 피운 모란화 한 송이씩을 손수 보냈다. 서신에는 한 줄 — "이 꽃이 시들기 전에 한 번 보러 오시겠소?" — 만 적혀 있었다. 일곱 사문 장문인들이 모두 화독교 정원에 찾아왔고, 화목란은 한 시간 동안 꽃 이야기만 했다. 결재 당일 무림맹 회의장에서는 아무도 화독교 사파 지정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으며, 결재는 한 표도 없이 무산되었다.

    빙궁의 여제(앞서 20001 빙궁의 여제 일화에 등장한 그 여제)는 그 모란화 한 송이를 빙궁 가장 따뜻한 방에 한 해 동안 두었다고 전한다. 화독교 정원에는 지금도 그날 일곱 사문 장문인들이 심어간 꽃 일곱 종류가 같이 피어 있다.

  • 차하제이녀(次下第二女)

    여성 무림맹 부맹주

    천하제일녀 다음의 두 번째 자리를 잇는 여인

    여자가 결재를 한다고요? 그 결재가 흐트러진 적이 없다는 걸 아셔야지요.

    여성 무림맹 부맹주는 무림맹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맹주로, 정파의 실무 결재 전반을 사실상 혼자 굴리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자수 부맹주복, 어깨에 부맹주 인장 망토, 허리에 한 자루 가는 검과 결재 서류 묶음이 표준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의 초반에 목소리를 낮추는 어른들이 있지만, 그녀가 첫 결재 한 줄을 찍을 때면 소리가 딱 잦아든다.

    남성 부맹주가 현장에서 결재를 관철시킨다면, 그녀는 서류 위에서 사전에 결재를 완성해 두는 방식을 쓴다. 그래서 회의에서 이론이 나오면 이미 반박 서류가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전투가 아니라, 최초 여성 부맹주 자리에서 첫 서명을 올리는 그 한 획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 부맹주가 처음 결재 도장을 찍던 손이 한 박자도 떨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날 회의장에 있던 어른들이 평생 기억하는 장면이오.

    초대 여성 무림맹 부맹주 정청화(鄭靑花) — 무림맹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맹주이자 결재 정확도가 역대 최고라는 기록을 가진 자 — 의 일화는 '첫 결재 도장'으로 무림맹 문서고에 남아 있다.

    정청화가 첫 결재를 앞둔 날, 무림맹 회의장에는 일곱 사문 장문인들과 어른들이 그녀의 도장이 흔들리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서류를 꺼내기 전 차 한 잔을 따라 장문인들에게 먼저 내밀었다. 아미파 장문녀(앞서 20007 아미파 장문녀 일화에 등장한 그 장문녀)가 그 차를 가장 먼저 받았고, 나머지 어른들도 차를 받은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정청화는 그 한 시간 동안 서류 한 장 꺼내지 않고 차 이야기만 했으며, 마지막에 첫 결재 도장을 찍을 때 그녀의 손은 한 박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날 첫 결재 서류는 지금도 무림맹 문서고에서 가장 선명한 도장 자국으로 남아 있으며, 후대 부맹주들은 취임 첫날 그 서류 앞에서 한 호흡을 다듬는 관례를 따른다.

  • 무명방랑녀(無名放浪女)

    강호 여낭객(女浪客)

    이름 없이 강호를 떠도는 자유로운 낭자

    사문도 정혼도 내 검을 묶지 못했소. 강호의 바람만이 내 방향을 정하지요.

    강호 여낭객은 어느 사문에도, 어떤 정혼 관계에도 매이지 않은 채 강호를 자유롭게 유랑하는 여성 고수다. 외형은 시원하게 벌어진 비단 외투, 등에 큰 검 한 자루, 허리에 작은 약주 호리병이 표준이다. 무공은 A급 상위권이지만 어느 문파 계보에도 속하지 않아 강호 도전장이 쌓인다.

    그 도전장들에 답하는 방법이 독특한데, 결투 전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결투가 정말 필요한지 확인한다. 결투가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술 한 잔을 건네고 떠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한 합에 결판을 낸다. 강호에서 가장 빠른 결투와 가장 친절한 화해를 동시에 한 자리에서 진행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있다.

    그 낭객이 '결투가 필요 없소'라고 한 다음 떠난 자리마다, 남은 사람들이 결국 화해했다는 야사가 열 건이오. 검 대신 간파가 더 빠른 분이지요.

    강호 여낭객 홍예아(洪藝娥) — 한 시대 강호에서 결투 천 건을 받고 그중 칠백 건을 술 한 잔으로 무산시킨 전설의 낭객 — 의 일화는 '홍검(紅劍)과 술 호리병'으로 전해진다.

    홍예아가 강호를 유랑하던 어느 가을, 사파 결사 혈화단(血花團 — 강호 남방 꽃 무늬 자객 결사) 단주가 그녀에게 결투를 청했다. 홍예아는 결투 전에 단주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 안에서 단주가 사실 화산매화검수(앞서 20003 화산매화검수 일화에 등장한 그 부대)에서 파문당한 뒤 갈 곳 없어 사파에 든 검수였음을 알아챘다. 홍예아는 검을 뽑지 않고 술 호리병을 건네며 "파문은 검로의 끝이 아니오. 강호는 아직 길이 열려 있소"라고 한마디 했다. 단주는 그날 이후 혈화단을 해산하고 표국 호위로 자리를 옮겼으며, 홍예아의 그 술 호리병은 새 표국 본단 한 자리에 걸려 있다.

    강호에서 가장 강한 무기가 검이 아니라 술 호리병일 수 있다는 격언이 홍예아의 이름과 함께 야사에 남았다.

  • 설산빙마녀(雪山氷魔女)

    설산 빙마도주(氷魔道主)

    설산 빙마의 도(道)를 이끄는 마도의 여

    내 길을 막으려거든 먼저 그 눈 위에 발자국 한 줄을 남겨 보시오. 걸음 한 번 없이 반 합이오.

    설산 빙마도주는 북방 설산(雪山) 깊은 곳에 자리한 사파 결사 빙마도(氷魔道)의 수장으로, 설상(雪上) 경공과 빙한(氷寒) 무공을 결합한 절기의 달인이다. 외형은 흰 털 도포, 머리에 얼음 결정 관, 허리에 한 자루 빙도(氷刀)와 설산 지도가 표준이다. 그녀의 경공은 눈 위를 밟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 경지까지 다듬어졌으며, 그것이 곧 그녀의 신분이다.

    빙마도가 사파로 불리는 이유는 황실 세금 납부를 거부하기 때문이지만, 설산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는 겨울 폭설을 미리 알려주는 유일한 예보자이기도 하다. 마을 아이들은 그녀를 "눈 언니"라고 부르며, 그녀가 이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다.

    빙마도주가 설산 마을에 나타나는 날은 그 주 안에 큰 눈이 온다는 것을 마을 어른들은 다 알지요. 그 예보가 황실 기상관 백 명보다 정확하다고들 하오.

    사대 설산 빙마도주 한설화(韓雪花) — 빙마도 역사상 네 번째 도주이자 설산 경공을 가장 조용하게 완성한 자 — 의 일화는 '발자국 없는 길'로 북방 야사에 남아 있다.

    어느 겨울, 무림맹 토벌대 오십 명이 빙마도 본산을 찾아 설산을 올랐다. 한설화는 토벌대가 산을 오르는 동안 세 번이나 그들 앞을 지나쳤으나, 토벌대는 그녀를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침내 토벌대가 빙마도 본산에 도달했을 때, 입구에 차 한 주전자와 "기다리고 있었소"라는 한 줄 서신만 있었다. 토벌대 대장은 어처구니없어 하며 차를 받아들었고, 한설화가 그 자리에 나타나 차를 직접 따랐다. 빙궁의 여제(앞서 20001 일화에 등장한 그 여제)와 친분이 있는 한설화는 빙궁 첫 사매 에게 그 차 우리는 법을 배웠으며, 토벌대는 그날 차 한 잔을 받고 결재 없이 산을 내려갔다.

    설산 마을 어른들은 그날 이후로 빙마도주가 차를 끓이는 날은 폭설이 없는 날이라는 새 예보 법을 추가했다.

  • 자영여밀행(紫影女密行)

    황실 여밀탐

    자줏빛 그림자로 황실의 비밀을 행하는 여인

    내가 이미 세 번이나 지나갔다는 걸 모르셨소?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오.

    황실 여밀탐은 황실 내정부가 강호에 심어둔 여성 비밀 정보원으로, 남성 밀탐보다 더 다양한 신분으로 강호를 누빈다. 외형은 매번 다르며, 한 신분을 사 개월 이상 유지하는 법이 없다. 다관 다비녀부터 여행 상인까지 신분을 바꾸며, 그 모든 신분이 너무 자연스러워 강호 정보꾼들도 놓친다.

    그녀의 특기는 화장과 의상 변신 속에서도 한 번 본 사람을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이다. 그래서 황실 여밀탐이 수집한 정보는 남성 밀탐의 것보다 훨씬 사람 중심이며, 사람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읽어낸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신분이 발각될 때가 아니라, 자기가 진짜 그 신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황실 여밀탐이 다관 다비녀 신분으로 삼 개월을 지냈을 때, 그 다관의 차 맛이 달라졌다고 손님들이 말했소. 그게 이 직업의 가장 달콤하고 위험한 함정이오.

    황실 여밀탐 암호 '백매(白梅)' — 황실 기록에 실명이 없고 암호로만 남아 있는 자이자 강호 역사상 가장 많은 신분을 사용한 여밀탐 — 의 일화는 황실 비밀 문서고에 두 줄로 남아 있다.

    백매는 황실 파견 오 년째 되던 해 강호 남방 한 다관에서 다비녀 신분으로 일하고 있었다. 황실 자수위(앞서 20008 황실 자수위 일화에 등장한 그 자수위)가 귀환 명령을 들고 직접 찾아왔을 때, 백매는 차 한 잔을 따르며 "이 다관 손님 한 분이 내일 중요한 결재가 있는데 내가 없으면 차가 잘못 나올 것 같소"라고 했다. 자수위는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그 차 한 잔을 받아 마셨고, 다음 날 백매가 그 손님의 결재를 안전히 이끄는 것을 확인한 뒤 귀환 명령서를 전달했다. 황실 비밀 문서고에는 "백매 임무 완수, 귀환 일자 하루 연장 승인" 이라는 두 줄이 남아 있다.

    그 다관은 지금도 강호에서 차 맛이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그날 이후 황실 여밀탐 파견 기간에는 하루 연장권 한 장이 기본으로 포함되었다.

  • 남해철표후(南海鐵鏢后)

    남해 표후(南海 鏢后)

    남해 일대 표국의 강철 같은 후

    표국 깃발은 어디에나 꽂을 수 있소. 다만 내 이름 아래 있으면, 그 깃발은 절대 꺾이지 않소.

    남해 표후는 강호 남방 해상 표국들을 하나로 묶어 이끄는 여성 표두 연합의 수장으로, 백봉 표국(앞서 20010 백봉 표사 일화에 등장한 그 표국)에서 시작해 남해 전체 표국을 통합한 자다. 외형은 흰 비단 도포에 금실 자수, 어깨에 남해 표후 문양 망토, 허리에 한 자루 표후도(鏢后刀)와 호적 명부가 표준이다. 남해 표후의 이름이 붙은 표행은 어떤 해상 세력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 불문율이 생긴 이유가 재미있는데, 남해 표후가 해적 결사 하나를 표物로 붙잡아 해산시킨 뒤 그 해적 단원 전체를 표사로 채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직 해적이 현직 표사가 되면 누가 가장 겁나는지 바다의 다른 해적들은 잘 안다.

    남해 표후의 표사 명부에서 전직 해적 숫자가 절반을 넘는다는 소문이 있소. 그래서 그 깃발 아래 가장 빠른 배가 모이고, 가장 복잡한 사람들이 모이지요.

    초대 남해 표후 임소연(林小燕) — 백봉 표국에서 시작해 남해 일대 표국 열다섯 곳을 통합한 자이자 강호 역사상 가장 많은 해적을 표사로 채용한 자 — 의 일화는 '흑풍선단(黑風船團) 해산의 날'로 남해 야사에 전해진다.

    남해 인어검녀(앞서 20021 일화에 등장한 그 인어문의 검녀)가 흑풍선단 일곱 척을 물결로 흩어놓은 뒤, 남해 표후 임소연이 그 선단 주선(主船)에 직접 올라탔다. 임소연은 단주에게 "이 배와 이 사람들을 표국에 편입할 테니, 마지막으로 선단을 직접 해산시키겠소?"라고 물었다. 단주는 처음에 거절하려 했으나, 임소연이 단원 한 명 한 명의 고향과 가족 이름을 정확히 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한 호흡 멈추었다. 그 자리에서 단원 스물두 명이 표후 인장 아래 새 이름을 올렸으며, 그들이 탄 선단은 남해 표후 깃발을 달고 출항했다.

    임소연은 그날 "표국 깃발은 어디에나 꽂을 수 있소"라는 한마디를 남겼으며, 그 선단의 후손 표사들은 지금도 남해 가장 좋은 항로를 안다.

  • 해화선녀(解花仙女)

    독화 해독녀

    꽃 속에 든 독을 푸는 신선 같은 여의

    독을 만드는 것보다 해독하는 게 열 배 어렵소. 그러니 해독녀가 독녀보다 강한 것이오.

    독화 해독녀는 강호에 떠도는 각종 독에 대한 해독제를 전문으로 만드는 여성 약사로, 독화 의원(앞서 20004 독화 의원 일화에 등장한 그 결사)에서도 가장 해독에 특화된 분파의 수제자다. 외형은 흰 의원 도포에 녹색 약초 자수, 어깨에 해독 약재 가방, 한 손에 해독 약통과 작은 시험 잔이 표준이다.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독을 알아야 하고, 독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조금씩 맛봐야 한다. 그래서 해독녀의 혀는 강호에서 가장 많은 독을 기억하는 혀이기도 하다. 본인은 "의원의 진짜 직무는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다음 병을 막는 것"이라고 말하며, 해독제 연구를 위해 독 조금씩 맛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은 강호에 없다.

    해독녀가 모르는 독을 사용하면 해독이 안 된다고들 하지요. 그러니 새로운 독을 만드는 자는 먼저 해독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게 강호의 불문율이 되어버렸소.

    독화 해독녀 풍소월(馮小月) — 독화당(毒花堂, 강호 남방의 여성 의원 결사) 해독 분파 사대 수제자이자 강호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독을 알아보는 자 — 의 일화는 '이백 번째 해독'으로 독화당 안에 전해진다.

    풍소월이 해독녀 자리에 오른 지 십 년이 되던 해, 그녀의 스승 독화 의원 유설란(앞서 20004 독화 의원 일화에 등장한 그 의원)이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해독한 독이 몇 종이오?" 풍소월은 "이백 하나"라고 답했다. 스승이 왜 이백 하나냐고 묻자, 풍소월은 "이백 번째 독을 해독하면서 그게 제 몸에서 나온 독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오. 그 독은 두려움이었소"라고 답했다.

    스승은 그 말을 듣고 한 호흡 침묵했다가 해독녀 인장을 그 자리에서 건네주었다. 풍소월은 이후 해독 의뢰를 받을 때마다 먼저 "이 독을 처음 맡은 분이 두려움 때문에 만든 것인지 먼저 알아보겠소"라고 묻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질문 하나로 의뢰를 철회한 경우가 열일곱 번이었다.

  • 전장활인녀(戰場活人女)

    전장 야전 의녀

    전장의 핏물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의녀

    이 자리에 결투는 없소. 내가 있는 자리에는 다만 다음 숨이 있을 뿐이오.

    전장 야전 의녀는 강호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는 현장에 직접 들어가 부상자를 치료하는 여성 의원이다. 외형은 짙은 색 갑주 위에 흰 의원 조끼, 어깨에 커다란 약 가방, 허리에 침통과 봉합 도구가 표준이다.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먼저 쓰러진 자를 치료하며, 의녀를 건드리면 어느 쪽 편도 강호 전체의 적이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여성 의녀이기 때문에 전장에서 양측이 오히려 서로 먼저 치료받게 해주는 역설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남성 야전 군의관이 "어느 쪽부터 치료할 것이오?" 물으면 싸움이 나지만, 여성 의녀가 같은 질문을 하면 양측이 서로 "저쪽이 먼저"라고 양보한다는 게 강호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의녀가 전장에 들어서면 양쪽 다 잠깐 싸움을 멈추는 이유가 있소. 그 잠깐이 한 호흡씩 쌓여 결국 전장 하나가 끝나버린 경우가 야사에 셋이오.

    야전 의녀 운소현(雲素賢) — 강호 남방 큰 전투 현장 이십여 곳에 들어가 부상자 삼천 명을 치료한 자이자 한 번도 결투 중 치료를 멈추지 않은 의녀 — 의 일화는 '봄비 전장의 한 침통'으로 의녀들 사이에 남아 있다.

    청룡곡(앞서 여러 일화에 등장한 그 결투지) 전투 예정일 새벽, 운소현은 양측 진영에 미리 "오늘 치료 자리는 다리 옆 큰 나무 아래오"라는 서신을 보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양측 부상자들이 그 자리로 모이기 시작했고, 운소현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부상자를 치료했다. 그 자리에 정파와 사파가 같은 나무 아래 나란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광경이 연출되었으며, 이후 전투 지휘관들이 그 나무 아래를 직접 들러 "오늘 결투는 미루는 게 낫겠소"라고 합의했다.

    운소현은 그날 일 이후 매 전장마다 큰 나무를 미리 골라두는 습관을 들였으며, 강호에서는 큰 나무 아래 흰 조끼가 보이면 그 자리가 평화 협상 장소라는 새 격언이 생겼다.

  • 비단검리녀(緋緞劍理女)

    검결 비단 각자녀

    비단에 검의 이치를 한 땀 한 땀 새기는 여인

    글씨는 글씨가 아니오. 한 획 한 획이 검로(劍路)예요. 그러니 한 땀씩 새기는 게 맞지요.

    검결 비단 각자녀는 강호 사문의 비급·검결·계율을 돌 대신 비단에 자수로 한 땀씩 새기는 여성 장인이다. 외형은 비단 가루 묻은 짙은 작업복, 어깨에 자수 도구 가방, 한 손에 자수 바늘과 실 묶음이 표준이다. 남성 각자장이 돌에 새기는 비급을 여성 각자녀는 비단에 새기며, 비단 위의 검결은 돌 위의 것보다 가볍지만 훨씬 오래 살아남는다.

    한 자를 새기는 데 하루가 걸리는 것은 남성 각자장과 같지만, 비단 각자녀는 그 과정에서 자수의 결이 검결의 호흡을 더 정확히 담는다는 평을 받는다. 어떤 검결 자수 한 폭을 방에 걸어두면 그 방에 든 무인의 검로가 부드러워진다는 소문이 있으며, 정파 검존들이 자수 한 폭을 방에 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 각자녀가 새긴 비급 자수 한 폭을 보면 그 비급 주인의 숨 쉬는 결이 느껴진다고들 하지요. 그게 돌 위보다 비단 위 비급이 따뜻한 이유요.

    검결 비단 각자녀 진홍아(陳紅娥) — 화산파와 아미파 양 사문의 핵심 비급을 비단에 새긴 유일한 장인이자 무공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평민 — 의 일화는 '아미 24결 마지막 자수'로 전해진다.

    아미파 장문녀(앞서 20007 아미파 장문녀 일화에 등장한 그 장문녀)에게 아미 24결 마지막 결(訣)을 비단에 새기는 의뢰를 받은 진홍아는, 새기다가 비단 한가운데서 바늘을 멈추었다. 마지막 결의 마지막 획이 자기 손목 방향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손목을 바꾸는 방식을 선택했으며, 그 자세 변화로 마지막 결의 호흡이 자수 위에 그대로 살아났다. 장문녀는 완성된 자수를 보고 "이 자수는 아미결 비급이 아니라 아미결 한 호흡"이라 했다.

    매화 자수 비급사(앞서 20015 일화에 등장한 그 비급사)는 그 자수를 보고 자기 작업실에 같은 자세를 본보기로 걸어두었다. 진홍아는 이후 어떤 비급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손목을 바꾸는 자세를 평생 지켰다.

  • 천하호가녀(天下呼價女)

    강호 경매 사회녀

    강호의 모든 보물에 가격을 부르는 여 사회자

    은자를 세는 손보다 마음을 읽는 눈이 먼저요. 이 경매에서는 가격이 아니라 간절함이 낙찰을 결정하지요.

    강호 경매 사회녀는 정파·사파 양측 모두에게 귀물과 비급을 공개 경매로 판매하는 여성 중개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경매복에 금 자수, 어깨에 작은 목록 두루마리 가방, 한 손에 경매 목록 두루마리와 부채가 표준이다. 경매 자리는 무싸움 금지 구역이며, 그녀가 부채를 펼치면 어느 쪽 고수도 검을 뽑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녀의 특기는 경매 과정에서 낙찰자보다 탈락자를 더 기분 좋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오늘은 인연이 아닌 것 같소. 다음에는 꼭 인연이 닿을 거요"라는 한마디가 탈락자들이 다음 경매에 또 오는 이유다. 그래서 강호에서 경매 사회녀가 운영하는 경매장은 낙찰과 탈락 모두 기분 좋게 마무리되는 강호의 몇 안 되는 자리다.

    그 사회녀가 부채 한 번 펼치는 순간, 정파 검존과 사파 살수가 같이 박수를 쳤다오. 강호 역사상 그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박수 친 것은 그 경매가 처음이었지요.

    강호 경매 사회녀 채소봉(蔡小鳳) — 삼십 년간 강호 최고 물품 경매를 팔백 회 주재하고도 단 한 번의 분쟁도 없었던 전설의 사회녀 — 의 일화는 '검선의 빈 검집 경매'로 강호에 전해진다.

    채소봉이 주재한 경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대 검선 백연하(앞서 20002 검선 일화에 등장한 그 검선)의 유품으로 전해지는 빈 검집이었다. 경매 당일 빙궁의 여제와 천화궁 궁주(앞서 20006 일화에 등장한 그 궁주)가 같은 탁자에 앉았다. 채소봉은 경매 시작 전 두 분에게 차 한 잔씩을 먼저 따랐고, "이 검집은 검이 없기 때문에 가장 무겁소"라고 한마디 했다. 경매는 세 시진 동안 이어졌고, 최종 낙찰은 두 분이 아닌 개방 여걸자(앞서 20026 일화에 등장한 그 여걸자) 한 명이었다.

    채소봉은 그날 이후 경매 자리마다 가장 작은 지갑을 가진 사람의 자리를 앞줄에 배치하는 관례를 만들었으며, 그 빈 검집은 지금도 그 여걸자의 허리에 걸려 있다.

  • 사문비연녀(師門飛燕女)

    사문 전령 비연녀(飛燕女)

    사문의 전갈을 비연(飛燕)처럼 빠르게 나르는 여인

    서신은 발로 옮기는 것이 아니오. 호흡으로 옮기는 것이지요. 그러니 도착 시각이 아니라 도착 상태로 판단하세요.

    사문 전령 비연녀는 사문의 긴급 서신과 결재를 사람보다 빠르게 전달하는 여성 전령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비연복, 어깨에 봉인 서신 가방, 허리에 한 자루 전령검과 사문 인장이 표준이다. 경공 절기를 기반으로 하며, 사흘 길을 반나절에 주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신을 전달하는 것 외에 서신을 받는 상대방의 첫 표정을 외워 복명(復命)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사문 어른들은 비연녀가 돌아오면 서신 결과보다 "상대방의 표정이 어땠소?"를 먼저 묻는다. 강호에서 가장 정확한 외교 정보는 비연녀의 기억에 있다.

    비연녀가 돌아와 '웃으셨는데 눈은 웃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복명했을 때, 사부께서 그 말 한마디로 결재를 바꾸셨소. 표정이 서신보다 정직하다는 뜻이지요.

    사문 전령 비연녀 소운아(蘇雲娥) — 점창파(앞서 20023 점창파 옥소 사매 일화에 등장한 그 사문) 전령 비연녀로 이십 년을 강호를 달린 자이자 단 한 번도 서신 봉인이 뜯긴 적 없는 자 — 의 일화는 '이틀 반 서신'으로 전령 비연녀들 사이에 회자된다.

    어느 봄, 점창파 사매가 아미파(앞서 20007 일화에 등장한 그 사문)에 보내야 할 긴급 서신이 생겼다. 사흘 길이었으나 소운아는 이틀 반을 목표로 출발했다. 도중에 사파 흑매단(앞서 20003 일화에 등장한 그 결사) 척후 두 명이 잠복해 있었고, 소운아는 경공으로 척후 위를 넘어 단 한 합도 치르지 않고 통과했다. 아미파에 도착했을 때 장문녀가 첫 표정을 보였고, 소운아는 그 표정 — "미소 짓되 한 박자 뒤에 눈썹이 올라갔소" — 을 정확히 외워 복명했다.

    점창파 사매는 그 복명 한 줄로 아미파의 승낙을 한 박자 전에 미리 알아챘으며, 두 사문의 협약은 그날 오전 안에 결재되었다. 소운아의 이틀 반 기록은 이후 비연녀들의 기준 시간이 되었다.

  • 묵향해문녀(墨香解文女)

    밀서 해독 낭자

    먹의 향기 속에 숨은 글을 풀어내는 낭자

    이 암호는 글씨 안에 있는 것이 아니오. 글씨와 글씨 사이 공백에 있소. 저는 그 공백을 읽는 자입니다.

    밀서 해독 낭자는 강호를 오가는 암호 서신을 전문적으로 해독하는 여성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도포에 잉크 자국, 어깨에 작은 암호 사전 묶음, 한 손에 작은 렌즈와 붓이 표준이다. 남성 해독관보다 글씨체와 잉크 자국에서 더 많은 정보를 읽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특기는 암호를 해독하는 것뿐 아니라 암호를 쓴 사람의 당시 감정 상태까지 읽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서신, 쓴 분이 피곤하셨군요" 또는 "이 서신, 쓴 분이 결재에 확신이 없으셨소" 같은 부가 정보를 같이 제공한다. 의뢰인들은 해독 결과보다 이 부가 정보를 더 유용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그 낭자가 '이 서신, 쓴 분이 결재에 후회하고 계시오'라고 덧붙인 한 마디가, 사실 그 협약을 재검토하는 단초가 되었소. 글씨보다 그 사람이 더 많이 보이지요.

    밀서 해독 낭자 하연주(夏蓮珠) — 삼십 년간 강호 암호 서신 사천 통을 해독한 학자이자 그중 글씨체 분석으로 사파 침입을 스물두 건 사전에 막은 자 — 의 일화는 '글씨 한 획의 방향'으로 해독 낭자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해, 무림맹 분파 청풍원(앞서 여러 일화에 등장한 그 사문)이 의뢰한 사파 흑풍단(앞서 여러 일화에 등장한 그 결사) 서신 한 통을 해독하던 하연주는 암호 내용보다 글씨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신 특정 획들이 평소 흑풍단 단주의 글씨체와 달리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그것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쓴 흔적이었다. 하연주는 해독 결과와 함께 "이 서신을 쓴 자는 오른손을 다친 상태였으며, 원하지 않는 내용을 억지로 적은 것이오"라고 덧붙였다.

    청풍원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흑풍단 단주가 협박 상태에서 거짓 서신을 보냈음을 알아챘으며, 그 협박의 배후 결사를 먼저 처리했다. 하연주는 이후 어떤 서신이든 해독 전에 "글씨 방향을 먼저 보겠소"라고 말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 야호경녀(夜虎更女)

    표국 야경 낭자

    야밤에 호랑이처럼 깨어 표국을 지키는 낭자

    저는 밤을 지키는 것이 아니오. 밤새 깨어 있어서 낮이 편히 올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표국 야경 낭자는 표국 본단 마당을 야간에 지키는 여성 무인으로, 표두도 표사도 잠든 새벽 홀로 마당을 순찰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경비복에 가벼운 면사, 어깨에 등불 가리개, 허리에 단도와 작은 호각이 표준이다. 낮보다 밤이 더 고요하고 편하다는 독특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야경 낭자가 있는 표국에서는 야간 침입 시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유가 재미있다. 침입자들이 마당을 넘어들다가 야경 낭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자기도 모르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호에서 가장 무서운 야경은 검이 아니라 그 조용한 눈빛이라는 말이 있다.

    야경 낭자가 밤새 마당을 돈 흔적이 아침 이슬 위에 남아 있소. 그 발자국 한 줄이 표국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든든한 결재선이지요.

    표국 야경 낭자 백옥심(白玉心) — 백봉 표국(앞서 20010 백봉 표사 일화에 등장한 그 표국) 마당을 십오 년 밤새 지킨 자이자 야경 중 한 번도 순찰을 빠진 적 없는 낭자 — 의 일화는 '봄비 야경의 발자국'으로 표국 낭자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봄비 오는 새벽, 사파 흑봉문(앞서 20008 황실 자수위 일화에 등장한 그 사파 결사) 살수 셋이 백봉 표국 담을 넘으려 했다. 백옥심은 호각을 불기 전에 살수 세 명과 눈을 마주쳤고, 그 눈빛에 살수 두 명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담에서 내려갔다. 마지막 한 명이 칼을 뽑으려 하자 백옥심은 조용히 단도를 뽑아 살수의 도 자루만 정확히 건드렸고, 살수는 도를 발 앞에 떨어뜨린 채 담을 넘어 도망쳤다. 백옥심은 그날의 일을 야경 일지에 한 줄 — "봄비, 살수 셋, 도 한 자루 회수" — 만 적었다.

    그 일지 한 줄은 백봉 표국 야경 기록 중 가장 적은 글자로 가장 많은 일을 담은 줄로 알려져 있으며, 후대 야경 낭자들은 자기 일지를 한 줄 이내로 적는 관례를 따른다.

  • 관문일필녀(關門一筆女)

    관문 통행 결재녀

    관문의 통행을 단 한 번의 붓질로 결정하는 여서기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검이 아니라 서류예요. 제 눈도 결재선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관문 통행 결재녀는 강호 길목 대형 관문에서 통행 허가·인장 확인·서류 결재를 담당하는 여성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관문 제복, 어깨에 작은 인장 묶음, 한 손에 통행 서류 묶음과 붓이 표준이다. 본인은 강호 모든 문파의 공식 인장·위조 방법·금기 통행 시각을 손바닥처럼 외운다.

    여성 결재녀가 관문에 부임하면 처음에는 통행인들이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결재녀의 서류 검토 속도가 남성 서기의 두 배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후로는 줄을 더 가지런히 서게 된다. 관문 앞에서 가장 빠른 통과 방법은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이며, 그 기준을 가장 정확히 아는 자가 바로 결재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문 앞 서류 준비 시장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 결재녀가 서류 한 장을 '미비'로 처리했을 뿐인데, 사파 청부 결사 하나가 계획 전체를 바꿨다오. 붓 한 획이 검 백 자루보다 관문을 잘 지킨다는 게 그 뜻이지요.

    관문 통행 결재녀 문청화(文靑花) — 강호 남방 대관문 화봉관(花鳳關) 결재녀를 이십오 년 지킨 학자형 무인이자 위조 인장 식별로 사파 결사 여섯 곳의 침입을 막은 자 — 의 일화는 '자수 한 땀 차이'로 관문 결재녀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봄, 사파 흑매단(앞서 여러 일화에 등장한 그 결사) 단원 열다섯 명이 화산파 매화검수 복장으로 화봉관을 통과하려 했다. 문청화는 검복 소매 안쪽 자수 한 땀이 화산파 사문 규격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소매 자수 재확인이 필요하오"라는 한 줄을 결재 거부 사유로 적었고, 단원 열다섯은 이틀을 관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 이틀 동안 매화 자수 비급사(앞서 20015 일화에 등장한 그 비급사)가 관문을 통과하다 흑매단 단원의 얼굴을 알아보았고, 화산파에 경보를 전했다. 문청화는 이후 어떤 통행인이든 소매 자수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으며, 화봉관 결재 기준서에는 그날 이후 '자수 한 땀 확인'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 진상호위녀(進上護衛女)

    황실 진상 호위녀

    황실에 올릴 진상품을 호위하는 여인

    황실로 가는 길에 표물이 있는 게 아니오. 표물이 있는 자리 어디든 황실로 이어지는 길이 되는 거예요.

    황실 진상 호위녀는 강호 각 지방에서 황실로 들어가는 특산품을 책임지고 호위하는 여성 표사 결사의 수장이다. 외형은 단정한 금 자수 표복, 어깨에 황실 허가증 망토, 허리에 한 자루 가는 호위검과 운반 목록 서류가 표준이다. 황실 경로는 남성 표두보다 더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황실 내전(內殿)으로 들어가는 구간에서 남성 표두는 입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실 진상의 마지막 구간은 반드시 여성 호위녀가 담당하며, 이 자리가 황실과 강호를 잇는 사실상 유일한 여성 전용 결재선이다. 황실 자수위(앞서 20008 일화에 등장한 그 자수위)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으며, 두 직책 사이의 인수인계 자리가 강호에서 가장 엄격한 예절 자리로 알려져 있다.

    황실 내전 마지막 문 앞에서 진상 호위녀가 표물을 황실 자수위에게 인계하는 자세가, 그 순간만큼은 강호 그 어떤 결투보다 아름답다고들 하오.

    황실 진상 호위녀 매소설(梅小雪) — 백봉 표국(앞서 20010 일화에 등장한 그 표국) 출신으로 황실 내전 진상 구간을 이십 년 담당한 자이자 단 한 점도 진상품을 손상 없이 전달한 기록 보유자 — 의 일화는 '내전 마지막 인계'로 전해진다.

    어느 여름, 황실 진상품 자기(瓷器) 열두 점을 운반하던 매소설의 행렬이 내전 입구 직전 봄비를 만났다. 자기 손상을 막기 위해 매소설은 자기 호위복을 벗어 가장 취약한 자기 네 점을 직접 감쌌으며, 다른 호위녀들에게도 각자 외투로 나머지를 감싸도록 했다. 내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열두 점 모두 온전했고, 황실 자수위 한설옥(앞서 20008 일화에 등장한 그 자수위)이 인계를 받으며 매소설의 외투가 없는 것을 보고 자기 망토를 한 자락 건넸다.

    두 사람 사이의 그 인계 자리는 황실 내전 안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황실 진상 호위녀 인계 자리에는 여벌 외투 한 벌이 기본으로 준비되는 관례가 생겼다.

  • 천죽수목녀(千竹修木女)

    무관 죽검 장인녀

    천 그루 대나무에서만 죽검 재료를 가려내는 장인

    대나무 검이라 약하다고 하셨소? 대나무는 바람에 휘어도 부러지지 않아요. 그게 첫 자세의 마음이지요.

    무관 죽검 장인녀는 강호 무관에서 쓰이는 수련용 죽검(竹劍)을 손수 만드는 평민 출신 여성 장인이다. 외형은 대나무 가루 묻은 짙은 작업복, 어깨에 작은 죽공예 도구 가방, 허리에 조각도와 줄이 표준이다. 어린 수련자의 손 크기와 자세를 보고 가장 잘 맞는 죽검을 골라주는 안목을 평생 다듬으며, 남성 목검 장인과 달리 대나무의 탄성을 활용해 더 부드러운 검로를 익히게 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죽검이 목검보다 나은 점이 있냐는 질문에, 장인녀는 "대나무는 휘어도 부러지지 않소. 첫 자세를 익히는 아이에게는 부러지지 않는 자세가 먼저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죽검 장인녀에게 첫 검을 받은 수련자들이 나중에 더 부드럽고 유연한 검로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

    죽검 장인녀가 깎아준 검 한 자루가 그 아이 손목에서 부러지지 않은 날이 있소. 그날 그 아이는 자기가 유연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하지요.

    무관 죽검 장인녀 노죽선(蘆竹仙) — 강호 남단 큰 무관 거리에서 삼십 년을 죽검 팔천 자루를 만든 평민 장인녀 — 의 일화는 '처음 부러지지 않은 자세'로 장인녀들 사이에 전해진다.

    노죽선의 작업장에 어느 봄 열 살짜리 여아가 들어왔다. 빨래터 강호 소식통(앞서 20020 일화에 등장한 그 소식통) 딸이었다. 아이는 손이 작고 약해서 기존 죽검이 다 무거웠고, 노죽선은 그날 저녁 새로 죽검 한 자루를 그 아이 손 크기에 맞게 만들었다. 대나무 두께를 절반으로 줄여 탄성을 두 배로 높인 그 죽검 덕분에 아이는 첫 자세를 휘는 방향으로 익혔다. 무관 사범은 그 아이가 다른 수련자들보다 두 달 빨리 기본기를 완성했다고 했다.

    그 아이는 훗날 점창파 옥소 사매(앞서 20023 일화에 등장한 그 사문)의 제자로 들어가 옥소 무공을 익혔으며, 노죽선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아이는 처음부터 유연한 길로 가는 자였소"라고 했다. 그녀의 작업장 선반에는 그날 남은 대나무 부스러기 한 줌이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 강호채주녀(江湖債主女)

    강호 외상(外商) 낭자

    강호의 모든 외상값을 받아내는 낭자

    외상은 돈이 아니오. 다음에 꼭 올 거라는 약속이에요. 그 약속을 지켜온 단골이 제 가장 큰 재산이지요.

    강호 외상 낭자는 강호 길목 시장에서 작은 포장 음식과 다과를 팔되, 돈이 없는 손님에게는 외상으로 주는 것으로 알려진 평민 출신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시장 복장, 어깨에 작은 상품 가방, 한 손에 외상 장부와 작은 주전자가 표준이다. 무공이라곤 뜨거운 주전자를 한 손에 오래 들고 있는 손목 힘 정도지만, 강호 길목을 오가는 모든 사람의 사정을 가장 먼저 안다.

    외상 장부에는 강호 유명인들의 이름이 즐비한데, 어떤 표두는 신참 시절 외상으로 만두를 먹었고 지금도 매년 그 빚을 현금으로 갚으러 찾아온다. 사파 살수도 여기서는 의뢰비를 받으면 제일 먼저 외상 갚으러 온다. 강호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신용 평가는 외상 낭자의 장부에 이름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외상 장부에 이름 없는 자가 강호 제일 거지였고, 이름 제일 많이 올라간 자가 나중에 표왕이 됐다오. 빚이 있어야 돌아올 이유가 생기지요.

    강호 외상 낭자 계순(桂順) — 강호 북단 청성 시장(靑城市場, 강호 북단 길목 큰 시장)에서 이십 년을 외상 장부를 굴린 평민 여인이자 외상 장부에 강호 유명인 이름이 가장 많이 올라간 자 — 의 일화는 '외상 장부의 영웅'으로 시장 사람들 사이에 전해진다.

    계순의 외상 장부에는 강북 표왕 마청호(앞서 10037 강북 표왕 일화에 등장한 그 표왕)가 도적단 시절 진 외상 열두 냥이 기록되어 있었다. 마청호가 표왕이 된 첫 해, 그는 청성 시장을 직접 찾아와 외상 열두 냥에 이자를 더해 백이십 냥을 갚았다. 계순은 백이십 냥을 받으며 "이자는 필요 없는데" 하고 했지만, 마청호는 "그 열두 냥 외상이 내가 다시 여기 올 이유였소. 그 이유 값이 백 냥이오"라고 답했다. 계순은 그 백 냥으로 청성 시장 한쪽에 외상 손님 전용 자리를 만들었으며, 그 자리는 돈 없는 손님들이 가장 따뜻한 자리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계순은 그 자리에 지금도 매일 새벽 가장 따뜻한 주전자를 먼저 올린다.

  • 일교일수녀(一橋一守女)

    다리 처녀 지기

    다리 하나, 지킴이 하나, 그 자리를 지키는 처녀

    이 다리, 사람 하나하나 건너는 발자국 소리가 다 달라요. 저는 그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오늘 분기를 알 수 있소.

    다리 처녀 지기는 강호 길목 큰 강의 다리를 관리하고 통행세를 받는 평민 출신 여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수리 공구 가방, 허리에 작은 단도와 통행 장부가 표준이다. 무공이라곤 판자 고치기에서 나온 손목 힘 정도지만, 하루 수천 명의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고 그 사람의 기분 상태까지 파악한다.

    강호의 모든 도망과 추격은 다리 위에서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다리 처녀 지기는 그 순간마다 판자 한 장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린아이와 노인이 관련된 경우는 예외라는 불문율이 있다.

    다리 처녀 지기가 '오늘 이 판자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는 쪽이 강호 정의라는 이야기가 있소. 그 판자 한 장이 강호 분기를 결정한 셈이지요.

    다리 처녀 지기 홍화(紅花) — 강호 남단 청란교(靑蘭橋) 다리를 이십 년 지킨 평민 여인이자 그 다리 위에서 강호 검녀 둘의 결투가 무산되는 것을 직접 본 자 — 의 일화는 '청란교 빗속 판자'로 남단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어느 여름 빗속에, 떠돌이 여협(앞서 20016 일화에 등장한 그 여협 계보의 한 사람)이 사파 살수를 추격해 청란교 위로 달려 올라왔다. 홍화는 그날 새벽 다리 중간 판자 하나가 빗물에 미끄러워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추격자에게 "이 판자 미끄럽소"라고 소리쳤고, 살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수는 그 판자에서 미끄러져 강물에 빠졌고, 떠돌이 여협은 살수 대신 강으로 뛰어들어 살수를 건져내었다. 살수를 건져낸 뒤 여협이 그 얼굴을 보았더니, 자기 옛 사문 사매가 가난 때문에 사파에 든 것이었다.

    홍화는 그날 일을 장부에 한 줄 — "빗속, 판자 미끄러움, 사매 재회" — 만 적었다. 청란교에는 그 판자가 지금도 가장 먼저 점검되는 자리로 남아 있다.

  • 강호유도녀(江湖誘導女)

    강호 길잡이 낭자

    강호 길목마다 길을 가르치는 낭자

    길을 아는 사람은 많소. 하지만 그 길을 같이 걸어주는 사람은 드물지요. 제가 그쪽이오.

    강호 길잡이 낭자는 강호 길목 산길·강길·야간 경로를 잘 알아 여행자와 표사들에게 길 안내를 해주는 평민 출신 여성 길잡이다. 외형은 낡은 비단 외투, 등에 큰 지팡이와 지도 묶음, 허리에 작은 나침반과 물주머니가 표준이다. 무공이 없어도 지형 지식만으로 낯선 산중에서 표사들을 안전하게 이끈다.

    그녀의 특기는 길을 아는 것 외에도 함께 걷는 사람의 발 상태를 보고 "여기서 쉬어 가시는 게 좋겠소"라고 말하는 시점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강호 절세 여검객도 발이 아프면 그 말을 따르는 경우가 많으며, 그 덕분에 불필요한 결투를 피한 일화가 야사에 여럿 있다. 발이 아픈 채로 하는 결투가 좋은 결투일 리 없다는 이치를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이 길잡이 낭자다.

    길잡이 낭자가 '여기서 쉬어 가시오'라고 말한 그 자리에서 두 검녀가 화해했다는 이야기가 있소. 발이 편해야 마음도 편해지는 게 진리이지요.

    강호 길잡이 낭자 류초(柳草) — 강호 전역을 이십오 년 동안 도보로 두루 다닌 평민 여인이자 길 안내 의뢰 이천 건을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완수한 자 — 의 일화는 '설산 길의 쉬는 자리'로 표사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느 겨울 설산 길목에서, 류초는 빙궁 사매(앞서 20013 빙궁 시녀무사 일화에 등장한 그 사문의 한 사매)와 그녀를 추격하는 사파 살수 일행을 동시에 안내하게 되었다. 류초는 설산 길 한 중간 바위 옆 쉬는 자리에서 "여기서 모두 쉬어 가시오"라고 말했다. 추격자와 피추격자가 같은 자리에 앉아 쉬게 된 상황에서, 류초는 주전자를 꺼내 차를 따랐다. 두 집단이 차를 받아 마시는 동안 살수 단주는 빙궁 사매가 옛날 자기 고향 마을 사람임을 알아챘고, 그 자리에서 추격을 철회했다. 류초는 그날 이후 설산 길 그 쉬는 자리에 물주머니 하나를 항상 미리 두는 관습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물주머니는 지금도 같은 바위 옆에 걸려 있다.

  • 무극지존(無極至尊)

    천하제일인

    끝없는 무공의 끝에 도달한 자

    내일은 누군가 나를 이겨주었으면 한다. 강호의 정점은 늘 외롭다.

    천하제일인은 강호의 모든 고수가 인정하는 단 한 사람의 정점이다. 무림맹주가 정치의 정상이라면, 천하제일인은 무공 그 자체의 정상이다. 도전을 받아본 횟수보다 도전을 거절한 횟수가 더 많고, 그 거절은 늘 짧은 한 줄의 답서로만 이루어진다.

    강호 변두리 작은 객잔에 앉아 있어도 그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사파의 침공이 멈춘다. 정작 본인은 매일 새벽 검을 닦으며 "내일 누군가 나를 이겼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천하제일이 가장 외로운 자리라는 옛말은, 그 자리에 올라본 자만이 안다.

    그 사람이 도전을 받았던 게 아니오. 도전을 기다려준 거지. 우리 같은 자리에 앉아 본 사람만 그 차이를 알아챕니다.

    사대 천하제일인 한운각(寒雲閣) — 강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운정봉(雲頂峯) 정상에 평생 머문 검객 — 의 일화는 강호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한운각은 매년 한 번 운정봉 아래 작은 객잔 청천루(淸天樓)에서 한 자루 검을 탁자에 풀어놓고 사흘을 기다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첫해부터 십칠 년째까지 그 탁자 앞에 앉은 도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십팔 년째 되던 해, 외문 출신 어린 검객 호우(虎牛) — 사문 호적도 없이 거리에서 검을 익힌 십칠 세 청년 — 가 그 탁자 앞에 앉아 한 합도 청하지 않고 차 한 잔을 따라드렸다. 한운각은 그 차를 받고 그 자리에서 자기 검을 호우의 허리에 풀어 매어주었으며, 그것이 그가 청천루에 마지막으로 앉은 날이었다. 호우는 그 검을 평생 뽑지 않았고, 청천루 탁자 자리는 다음 천하제일인을 기다리는 빈자리로 백 년 넘게 남았다.

    강호에서는 한운각이 진 적 없는 자리에서 진 단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야사에 전해진다.

  • 만무지존(萬武至尊)

    무신(武神)

    일만 가지 무(武)를 모두 다스리는 지존

    검을 내려놓아라. 그게 가장 빠르다.

    무신은 도(道)의 경지에 닿은 무인을 일컫는 칭호로, 무공이 단순한 살수의 기예를 넘어 자연 법칙의 한 부분이 된 존재다. 무신의 일격은 산을 가르고 강을 멈춘다고 전해지지만, 정작 무신의 진짜 무서움은 일격을 내지 않고도 적을 항복시킨다는 점이다. 강호의 어떤 문파도 무신을 자기 사문에 묶어두지 못한다.

    무신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다만 잘못된 검을 든 자 앞에 우연처럼 나타나 그 검을 거두게 한다. 그래서 강호에는 "무신을 만나면 검을 내려놓아라, 그게 가장 빠르다"는 격언이 전해진다.

    그 격언의 진짜 출처가 무신 본인이 아니라 그날 검을 내려놓은 사파 두목의 한마디였다는 사실을, 우리들도 한참 뒤에야 알았소이다.

    삼대 무신 청허선(淸虛仙) — 한 시대 도가(道家)의 한 줄 검리(劍理)에 닿은 무인 — 의 일화는 강호 야사 단골 이야기다.

    청허선은 강북 사파 결사 적운회(赤雲會) — 당시 강호 동쪽 절반의 사파 결재선 — 가 정파 마을 백림촌(柏林村)을 도륙하러 나선 새벽에 그 길목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적운회 회주 부석산(浮石山)이 그를 보고 검을 뽑은 순간, 청허선은 검을 뽑지 않고 자기 짚신 한 짝의 끈만 다시 묶어주었다. 부석산은 그 한 동작을 보고 자기 검을 그 자리에 꽂은 채 회를 해산했고, 백림촌은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새벽을 넘겼다.

    후대 도사들이 부석산에게 왜 검을 거두었느냐 묻자, 부석산은 "짚신 끈을 묶는 자세가 내 검을 뽑는 자세보다 깊었다"고 답했다. 청허선은 그 사건 이후로도 평생 한 합도 휘두르지 않았으며, 강호에서는 그 짚신 한 짝이 적운회 한 시대를 멈춘 명검이라는 이야기가 야사에 남았다.

  • 의협일도(義俠一刀)

    강호 의협

    한 자루 칼로 의(義)를 행하는 협(俠)

    보상은 됐다. 다음 마을에 또 비명이 들리거든, 내 이름은 잊고 다시 부르라.

    강호 의협은 어느 문파에도 묶이지 않고 정의롭다 판단되는 일에만 검을 드는 자유 무인이다. 한 마을의 비명을 듣고 천 리를 달려가고, 한 푼의 보상도 받지 않은 채 다음 마을로 떠난다. 정파에게는 든든한 우군이고 사파에게는 가장 성가신 적이다.

    의협의 검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순하고 정확하며, 그래서 가장 많은 자가 이 검에 베였다. 의협이 늙어 죽으면 마을 어귀에 묘비 하나가 세워지는데, 누가 세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강호에서 진짜 사라진 적 없는 사람은 의협뿐이라는 말도, 아마 거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게 사실 가장 무거운 이름을 남긴 셈이지요. 우리 같은 떠돌이가 그 묘비 앞을 지나칠 때마다 한 호흡을 늦추는 이유가 그 때문이오.

    강호 의협 백시연(白柴煙) — 한 시대 강북 길목 일곱 마을의 비명을 모두 받아낸 무명 의협 — 의 일화는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백시연은 강북 작은 마을 도화촌(桃花村) — 흑수강(黑水江) 상류 일곱 가구짜리 마을 — 이 사파 결사 천랑단(天狼團)에 의해 통째로 끌려갈 위기에 놓였을 때 단신으로 길목에 섰다. 그는 한 합도 휘두르지 않고 다만 천랑단 부단주 마섬(馬閃)의 옛 이름을 한 줄 불렀고, 마섬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자기 도(刀)를 내려놓았다. 마섬은 사실 도화촌에서 자란 고아였으며, 그 옛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른 사람이 십이 년 전 죽은 자기 누이였다.

    천랑단은 그날 도화촌을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한 채 돌아갔으며, 백시연은 그 마을에 한 그릇 죽도 청하지 않고 다음 길로 떠났다. 도화촌 어귀에는 지금도 작은 묘비 하나가 서 있는데, 비석에는 이름 대신 "이름을 묻지 마시오"라는 한 줄만 새겨져 있다.

  • 천비집필자(千秘集筆者)

    비급 수집가

    천 권의 비급을 손에 모으는 수집가

    그대의 다음 한 수, 이미 비급 23권에서 본 것이다.

    비급 수집가는 강호에 흩어진 무공 비급, 무도(武圖), 검결(劍訣)을 사들이고 보관하고 거래하는 자다. 무공 자체보다 무공의 기록을 다루는 학자에 가까우며, 어느 비급이 진본인지 위본인지를 한눈에 가려낸다. 직접 대결에는 약하지만, 강호의 거의 모든 무공의 약점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닌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자객도 비급 수집가 앞에서는 다음 한 수가 미리 읽혀 멈춘다. 어떤 수집가는 일생 모은 비급을 죽기 전 모두 불태운다. "잘못된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낫다"는 신념 때문이다. 강호의 진짜 평화는 그런 손에서 지켜진다.

    비급을 모은 사람보다 비급을 태운 사람의 이름이 더 길게 남는다는 사실이, 우리 수집가에게는 일종의 직업윤리 같은 거지요.

    비급 수집가 노현(蘆鉉) — 한 시대 강호 비급 수집의 정점에 있던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노현은 평생 모은 비급 삼백 권을 자기가 머물던 호반장원(湖畔莊園) — 동정호(洞庭湖) 동쪽 작은 별채 — 의 누각에 보관해 왔다. 그가 임종을 앞둔 새벽, 강호의 모든 명문 사문이 그 비급을 받기 위해 호반장원 앞에 사신을 보냈다. 노현은 그 사신들을 모두 마당에 정중히 앉혀 차 한 잔을 따라준 뒤, 누각에 불을 붙였다.

    비급 삼백 권 가운데 그가 마지막까지 손에 쥔 한 권은 자기 사문도 사문 시조도 적혀 있지 않은 무명 검결(無銘劍訣)이었으며, 그 한 권만 그의 어린 제자 단주(丹珠)에게 건네졌다. 단주는 그 검결을 평생 한 줄도 펼치지 않은 채 다음 세대 어린 제자에게 그대로 넘겼고, 그 검결은 지금도 강호 어딘가 누군가의 손에 펼쳐지지 않은 채 있다고 한다.

  • 무명방객(無名放客)

    떠돌이 무사

    이름도 거처도 없이 떠도는 무사

    사문도 깃발도 없다. 다만 내일 묵을 객잔이 있으면 됐다.

    떠돌이 무사는 사문도 깃발도 없이 강호를 흘러다니는 무사다. 명검 한 자루, 보따리 하나, 그리고 늘 떨어지지 않는 노잣돈 걱정이 전부다. 마을에 들어서면 무공 시범으로 밥값을 벌고, 의뢰가 들어오면 호위·용병·도굴 가리지 않고 받는다.

    절세 고수도 아니고 절대 약자도 아닌, 강호의 진짜 두께를 이루는 가장 평범한 무인이다. 다만 떠돌이가 길에서 익히는 실전 감각은 어떤 사문 무공보다도 정직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무림 정상에 오르는 자는, 의외로 명문가의 자제가 아니라 이름 없던 떠돌이 무사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객잔 일층에서 졸던 모습을 본 게 우리 같은 떠돌이의 한 줄 자랑이오. 그게 명문가 출신이었으면 그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남지 않았을 거요.

    떠돌이 무사 단갈(單褐) — 강호 야사에서 갈색 외투 한 벌로 평생 떠돈 무명의 검객 — 의 일화는 강북 길목 객잔에서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된다.

    단갈은 강북 길목 작은 객잔 청풍루(淸風樓) 일층 구석 자리를 평생 단골 자리로 삼아, 노잣돈이 떨어지면 무공 시범 한 번으로 만두 두 그릇 값을 벌었다. 어느 새벽 청풍루에 사파 살수단 칠귀회(七鬼會) — 강북 일곱 길목의 청부를 도맡던 살수 결사 — 가 표국 행수 한 명을 노리고 들이닥쳤다. 청풍루 안에는 명문 사문의 큰 검객이 셋이나 있었으나, 정작 칠귀회 일곱을 한 합 안에 모두 무릎 꿇린 자는 구석 자리에서 졸던 단갈이었다.

    표국 행수가 사례를 청하자 단갈은 만두 값을 미리 받은 셈이라며 새벽안개 속으로 떠났고, 다음 날 청풍루 점소이는 그 자리에 단갈이 두고 간 동전 두 닢을 발견했다. 청풍루 그 자리는 지금도 떠돌이 무사 한 사람의 자리로 비워두는 관습이 남아 있다.

  • 검도원조(劍道元祖)

    검도(劍道)의 종주

    검의 도(道)를 처음 연 시조

    검은 이기는 도구가 아니라, 묻는 도구다. 그대는 무엇을 묻기 위해 들었는가.

    검도의 종주는 한 시대 검의 길 자체를 정의하는 한 사람으로, 문파의 정점이 아니라 검리(劍理)의 정점에 선 자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도포, 어깨에 옛 검결 두루마리, 허리에 한 자루 무명검(無銘劍)이 표준이다. 종주는 제자를 두지 않고, 다만 길에서 만난 검객 한 명에게 한 합의 가르침을 남기고 떠난다.

    그가 한 합 안에 남긴 한 줄은 다음 세대의 한 문파 전체 검결로 자라난다. 강호의 모든 명문은 사문 시조의 검결을 거슬러 올라가다 결국 종주의 옛 한 합 앞에서 멈춘다. 정작 본인은 검결을 글로 남기지 않으며, "검은 종이가 아니라 호흡 위에 적는 것"이라고만 말한다. 그래서 종주의 검은 한 시대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분이 한 합 보여주고 떠난 자리에는 사문 하나가 자라났소. 우리 검객들은 그 자리를 한 시대의 못자리라 부릅니다.

    검도의 종주 무명자(無銘子) — 한 시대 검리(劍理)의 정점에 있던 무명의 한 사람 — 의 일화는 강호 검결의 옛 결재 라인 그 자체로 남아 있다.

    무명자는 강북 작은 길목 도화관(桃花關) — 화북 일곱 사문의 길목이 모이는 옛 관문 — 에서 떠돌이 검객 한 명에게 한 합의 가르침을 남기고 떠났다. 그 떠돌이는 훗날 사문 천화문(天華門) — 한 시대 화북 검결의 정점에 오른 사문 — 의 시조 노한천(老漢天)이 되었으며, 천화문 검결 첫 줄은 그 한 합의 호흡을 옮긴 것이다. 무명자는 같은 해 강남 작은 객잔 매향객잔(梅香客棧)에서도 또 다른 검객에게 한 합을 보여주었으며, 그 검객은 강남 사문 청수문(淸水門)의 시조 청수옹(淸水翁)이 되었다.

    천화문과 청수문의 검결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한 줄 호흡 위에서 정확히 겹치며, 그 사실을 깨달은 후학들은 무명자의 한 합이 두 사문을 동시에 낳았다는 결론에 닿았다. 도화관 옛 관문 옆에는 작은 비석 하나가 서 있는데, 비석에는 검결 대신 한 줄 호흡 자국만 새겨져 있다.

  • 천기일책(天機一策)

    천기 군사(軍師)

    하늘의 기밀을 한 책(策)으로 풀어내는 군사

    검 한 자루로 정해질 일이라면 진작 끝났겠지요. 그러니 한 수 물러서 차부터 듭시다.

    천기 군사는 무림맹·문파·표국이 큰 분쟁 앞에 둘 모두에게 신뢰받는 한 사람을 부를 때 그 자리에 앉는 책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도포, 어깨에 옛 지도 묶음, 한 손에 작은 부채와 차 잔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분쟁의 결재 라인·옛 지형·금기 행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군사가 자리에 앉으면 양측이 검 대신 차 잔을 먼저 들게 되며, 분쟁의 절반은 그 첫 차 한 모금 안에서 가라앉는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천기 군사의 부채 한 번 펼침이 명검 한 자루보다 무겁다는 격언이 있다. 군사가 가장 자주 거절하는 의뢰는 큰 전투의 책략이 아니라, 사적 복수의 자리에 앉아달라는 청이다. 그 거절 한 줄이 사실 강호 한 시즌의 평화를 결정한다.

    큰 책략 한 줄을 정중히 거절한 그 한 호흡이, 사실 강호 한 시즌의 결재 라인을 다 다시 그렸다는 사실은 우리 군사들이 후학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한 줄이오.

    천기 군사 한청유(韓淸柔) — 한 시대 무림맹 본단의 한 줄 책사로 서른 해를 앉아 있던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강호 야사 단골 이야기다.

    한청유는 무림맹과 사파 결사 흑령단(黑鈴團) 사이에 큰 결투가 잡힌 새벽, 양측 모두에게 한 통의 짧은 편지를 보내 한 객잔 영춘루(迎春樓) — 강 가운데 작은 섬 위에 지어진 옛 객잔 — 한 자리에 차 한 잔만 청했다. 한청유는 양측 두목 앞에서 책략 대신 두 사람의 어린 시절 사문 호적을 정중히 한 줄씩 읽어주었고, 두 사람의 첫 사부가 같은 도사였다는 사실이 그 자리에서 밝혀졌다. 흑령단 단주 노군(老君)과 무림맹 호법 정엄(正嚴)은 그 자리에서 검을 풀고 차 한 잔씩 받아 갔으며, 그날 잡혀 있던 결투는 한 합도 없이 무산되었다.

    한청유는 사례를 청한 적이 없으며, 영춘루 그 자리는 지금도 어린 책사들이 처음 부채를 받는 날 한 번 들러 차 한 잔을 따라보는 관습이 남았다.

  • 사문백년객(師門百年客)

    사문 장로

    사문에서 백 년을 머무른 노장로

    검결은 가르칠 수 있으나, 검을 거두는 자세는 그대 스스로 다듬어야 한다.

    사문 장로는 한 문파의 가장 오래된 검결을 평생 갈고닦아 후학의 검로(劍路)를 다듬어 주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사문복, 가슴팍에 사문 인장 펜던트, 허리에 한 자루 가벼운 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사문 모든 옛 결투 자료·옛 분기 결재·금기 합공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장로의 진짜 직무는 검결 강의가 아니라, 어린 제자가 처음 검을 들고 우는 새벽에 그 옆에 말없이 앉아주는 일이다. 그래서 사문에서는 장로의 한 줄 침묵이 검결 한 권보다 무겁다는 격언이 있다. 본인은 평생 사문 외부에 자기 검을 보인 적이 거의 없으며, 강호의 큰 결투에 늘 한 발 늦게 도착한다. 늦게 도착한 그 한 발이 사실 사문 한 시대의 검로를 결정한다.

    그분이 새벽에 옆에 앉아준 그 한 줄 침묵이, 사실 우리 사문 한 시대의 첫 자세였소이다.

    사문 장로 도연자(陶淵子) — 한 시대 사문 백운문(白雲門)의 가장 오래된 검결을 이어받은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사문 안 어린 제자들에게 평생 전해진다.

    도연자는 백운문 어린 제자 소률(蘇栗) — 외문 출신으로 사문 호적을 가까스로 받은 십삼 세 수련자 — 이 첫 검결 한 줄을 외우지 못해 새벽 마당에서 검을 떨어뜨린 날, 한 줄 꾸짖음 없이 옆에 가만히 앉아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 그 차 한 잔이 도는 동안 도연자는 검결을 한 줄도 가르쳐주지 않고 다만 자기 사부 무림자(無林子)가 옛날 같은 자리에서 자기에게 따라준 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률은 그 차 한 잔 다음 날 검결 한 줄을 정확히 외웠으며, 훗날 백운문 한 시대의 장로가 되어 자기도 어린 제자 앞에서 같은 자세로 차 한 잔을 따라주게 되었다.

    백운문 사문 마당의 그 차 한 잔은 사대(四代)에 걸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따라지고 있으며, 사문 안에서는 그 차 자체가 한 시대의 검결이라 부른다.

  • 강호일판(江湖一判)

    강호 판관

    강호의 시비를 단 한 번의 판단으로 가르는 자

    이 자리는 누구의 검도 받지 않는다. 양측 모두 검을 풀고 한 줄 사정부터 적으시오.

    강호 판관은 정파·사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큰 분쟁의 옳고 그름을 정중히 가르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판관복, 가슴팍에 작은 인장 펜던트, 한 손에 옛 사정부(事情簿)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분쟁의 결재 라인·옛 결투 자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판관이 자리에 앉으면 무림맹주조차 검을 풀고 한 줄 사정부터 적게 되며, 그 한 줄이 한 시대 강호의 옛 결재로 남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분쟁의 결재가 아니라, 한 가족의 한 끼를 정중히 지키는 작은 사정부 위에 있다. 그래서 늙은 판관의 사정부에는 큰 결투의 결재보다 작은 사정 한 줄의 흔적이 더 많이 남는다. 강호의 진짜 평화는 결국 판관 한 사람의 한 줄 인장 위에 굴러간다.

    큰 결투의 결재가 아니라 작은 한 가족의 한 끼 위에 찍힌 그 한 줄 인장이, 사실 강호 한 시대의 결재 라인 그 자체였소이다.

    강호 판관 묵서(墨書) — 한 시대 정파·사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분쟁을 가르던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묵서는 무림맹 호법 한 사람과 사파 결사 청도회(靑刀會) 단주 사이의 큰 결투가 잡힌 새벽, 그 결투를 미루고 작은 마을 두촌(豆村) — 한 가구 다섯 식구짜리 산골 — 의 한 가족의 한 끼 분쟁을 먼저 가르러 갔다. 두촌의 노부부가 옆집과 한 마지기 밭을 두고 서른 해를 다투던 사정이었으며, 묵서는 두 가족의 옛 사정부를 한 줄씩 정중히 읽어준 뒤 자기 인장을 그 자리에 한 번 찍었다. 두 가족은 그 한 줄 결재 앞에서 서로 차 한 잔씩 받아 갔으며, 묵서는 다음 날 무림맹 본단으로 돌아갔다.

    그 결투는 끝내 무산되었는데, 호법과 청도회 단주가 그 사이 두촌에 한 번 다녀와 두 가족의 차 자리를 본 후 결투 의지를 정중히 거두었기 때문이다. 두촌 노부부 집 처마에는 지금도 묵서의 작은 인장 한 줄이 옛 종이로 걸려 있다.

  • 천리행수(千里行首)

    표국 행수

    천 리 길의 호송을 책임지는 행수

    표물 한 개에 표사 한 명의 가족 한 끼가 묶여 있소. 흥정은 출발 전에 끝내시오.

    표국 행수는 강호의 큰 표국을 평생 굴리는 정점의 운영자로, 표사·짐꾼·길목 객잔과의 관계를 모두 손에 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도포, 어깨에 표국 깃발 망토, 허리에 작은 호적 명부와 한 자루 표도(鏢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길목·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행수가 출발 결재를 한 줄 찍으면, 그 줄 뒤로 표사 십수 명의 한 시즌이 따라간다. 그래서 행수의 첫 새벽 결재는 검을 뽑는 일보다 무겁다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표물의 출발이 아니라, 표사 한 명의 부음을 가족에게 정중히 전하는 한 줄 편지 위에 있다. 늙은 행수의 손목에는 표도 든 자국보다 펜을 든 굳은살이 더 진하다.

    표국 안에서 가장 무거운 새벽은 출발 결재가 아니라 부음 한 줄을 쓰는 새벽이오. 우리 행수들이 펜 잡는 손목에 굳은살이 깊은 이유가 거기 있지요.

    표국 행수 양우경(梁雨慶) — 한 시대 강호 최대의 표국 만리표국(萬里鏢局) 본단을 서른 해 굴린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표국 안에서 평생 전해진다.

    양우경은 만리표국 표사 십칠 명이 사파 결사 적우당(赤雨黨) — 강북 일곱 길목의 도적단 — 에게 한 표물 운반 중 절반을 잃은 새벽, 그 부음 한 줄을 가족에게 전하는 일을 자기 손으로 직접 했다. 양우경은 표사 가족 한 집씩 일곱 가구를 한 새벽 안에 모두 돌며, 부음 편지 대신 표사 한 사람씩의 평소 한 줄 농담을 정중히 옮겼다. 그날 양우경의 손목에서 펜이 떨어진 횟수가 일곱 번이었으며, 그 일곱 번이 그의 손목에 평생 굳은살로 남았다.

    만리표국은 그 사건 이후 부음을 행수 본인이 직접 전하는 관습을 만들었으며, 그 관습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만리표국 안에 남아 있다. 양우경의 옛 손목 굳은살을 본 후학 행수들은 그 굳은살이 표도(鏢刀)의 흠집보다 깊다고 입을 모았다.

  • 야영비행객(夜影飛行客)

    야행 척후

    야밤의 그림자처럼 적진을 누비는 척후

    달이 너무 밝으면 그날 야행은 미루시오. 강호의 진짜 정보는 보름 다음 날 밤에 흐르오.

    야행 척후는 정파·사파 어느 한쪽이 아니라 의뢰인의 한 줄 결재로만 움직이며, 야간의 모든 정보를 한 발 먼저 가져오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야행복, 어깨에 작은 등불 가리개, 허리에 단도와 표창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야행 자리·옛 분기 잠복 결재·금기 시각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정파 정보꾼이 객잔 이층에서 정보를 사고팔 때, 야행 척후는 그 정보의 출발점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그래서 야행 척후의 한 줄 보고는 객잔 이층 한 시즌의 거래보다 정확하다. 본인은 의뢰인의 이름조차 한 시즌이 지나면 정중히 잊어버리며, 그 잊는 자세 자체가 야행의 가장 무거운 직무다. 강호에서 가장 가벼운 발자국이 사실 가장 무거운 한 줄을 옮긴다.

    그 사람의 발자국 한 줄이 객잔 이층의 한 시즌 거래보다 무거웠다는 사실은, 우리 척후들도 한 시즌이 지나서야 알아챘소이다.

    야행 척후 한해랑(韓海郞) — 한 시대 강호 야행의 한 줄 결재선이라 불린 무명의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한해랑은 무림맹 호법 한 사람과 사파 결사 흑우당(黑羽黨)이 동시에 같은 영약 — 운정봉 옛 동굴의 환단 한 알 — 을 노리던 보름 다음 날 밤, 양측보다 한 시진(時辰) 먼저 동굴 어귀에 도착했다. 한해랑은 그 환단을 가져가지 않고 다만 환단 옆에 작은 종이 한 장을 두고 떠났는데, 그 종이에는 "이 환단은 다음 세대가 클 때 펴라"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양측이 같은 새벽 동굴에 도착했을 때 두 두목 모두 그 한 줄 앞에서 한 호흡을 늦추었고, 그 자리에서 환단을 두고 정중히 발길을 돌렸다.

    한해랑이 누구의 의뢰로 그 자리에 갔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 환단은 지금도 운정봉 동굴 안 같은 자리에 같은 종이 한 장과 함께 있다. 강호 야행 척후들 사이에서는 한해랑의 발자국이 한 시대의 가장 가벼운 발자국이자 가장 무거운 한 줄이라는 격언이 남았다.

  • 검리해소(劍理解疏)

    검결 해설자

    검의 이치를 풀어 해설하는 자

    이 한 줄은 검로(劍路)가 아니라 호흡의 자리요. 한 호흡 늦추면 검이 알아서 답을 합니다.

    검결 해설자는 옛 비급의 한 줄 검결을 정중히 풀어내어, 후학의 검로 위에 정확히 얹어주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학자 도포, 어깨에 옛 검결 두루마리, 한 손에 작은 붓과 옛 종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검결의 옛 페이지·옛 분기 해설 결재·금기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직접 결투에는 약하나, 한 시대 검결의 한 줄이 어디서 어긋났는지를 한 호흡 안에 짚는다. 그래서 명문 사문 장로조차 큰 검결의 한 줄 막힘 앞에서는 결국 해설자에게 한 잔 차를 청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 해설은 큰 비급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제자가 처음 들고 온 닳은 검결 한 장 위에 있다. 그래서 해설자의 옛 종이에는 큰 비급보다 작은 한 장의 흔적이 더 많다.

    그 어른의 종이 한 장에 우리 사문 한 시대의 첫 자세가 다시 적힌 셈이오. 큰 비급은 옆방 함(函)에 있었지만, 그 한 장이 사실 사문의 옛 한 줄이었지요.

    검결 해설자 명서각(明書角) — 한 시대 객잔 이층 구석 자리를 평생 자기 작업실로 삼은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강호 야사 단골 이야기다.

    명서각은 사문 청송문(靑松門) 어린 제자 호림(虎林)이 사문 비급 청송검결(靑松劍訣) 한 줄 앞에서 일곱 해를 멈춰 있던 새벽, 그 비급 대신 호림의 닳은 연습 검결 한 장을 받아 들고 한 호흡 안에 한 줄을 정중히 짚어주었다. 명서각이 짚은 한 줄은 청송검결 본문이 아니라 호림이 평생 헛디딘 한 호흡의 자리였으며, 그 자리에 한 줄 작은 표시를 그어주는 것만으로 호림은 다음 새벽 청송검결을 정확히 풀어냈다. 명서각은 호림의 사례를 받지 않았고 다만 호림이 들고 온 닳은 연습 검결 한 장을 자기 종이 사이에 끼워 두었다.

    호림은 훗날 청송문 장로가 되었으며, 자기 사문 어린 제자에게 같은 자세로 닳은 연습 검결 한 장을 받아주는 관습을 만들었다. 명서각의 옛 종이 묶음에는 큰 비급의 한 줄보다 어린 제자의 닳은 한 장의 흔적이 더 많다.

  • 봉인천기사(封印天機師)

    봉인 진법사

    천기를 봉인하는 진법을 펴는 술사

    이 진법은 풀려고 만든 것이 아니오. 다음 세대가 풀 만큼 컸을 때 풀라고 만든 것이오.

    봉인 진법사는 절세 비급·영약·사패(邪牌)를 정중히 봉인해 두는 진법(陣法)을 짜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짙은 색 학자 도포, 어깨에 옛 진도(陣圖) 묶음, 한 손에 작은 묵필과 부적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진법 자리·옛 분기 봉인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굴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봉인 진법사의 옛 한 줄 결재이며, 그 결재 위에서는 절세고수의 한 합도 두 발자국 앞에서 멈춘다. 가장 무거운 봉인은 큰 비급이 아니라, 한 가족의 옛 한 줄 사연을 다음 세대에 정중히 넘기기 위한 작은 함(函) 위에 있다. 그래서 늙은 진법사의 옛 진도에는 큰 봉인보다 작은 함의 흔적이 더 많다. 진법사의 진짜 직무는 봉인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한 호흡을 기다려주는 자세 위에 있다.

    그 어른이 봉인한 함 안에 비급이 든 게 아니라, 한 가족의 한 줄 사연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진법사 후학들에게 가장 무거운 한 줄이오.

    봉인 진법사 도현묵(陶玄默) — 한 시대 강호 봉인 진법의 정점에 있던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도현묵은 강호 명문 사문 형산문(衡山門) 시조 한백(韓栢)의 옛 작은 함 — 검 한 자루도 들지 않는 한 자(尺) 짜리 옛 옻칠 함 — 한 개를 형산 산정에 정중히 봉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 함 안에는 비급도 영약도 들어 있지 않고, 한백이 어린 시절 죽은 누이에게 끝내 보내지 못한 한 줄 편지 한 장만 들어 있었다. 도현묵은 그 함을 봉인 진법으로 둘러싸 형산 산정 옛 바위 아래 정중히 묻었으며, 봉인 풀이 조건은 "한백의 이름이 사문에서 잊힐 때"라는 한 줄로 적어 두었다.

    형산문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한백의 이름을 사문 마당에서 매년 한 번 정중히 부르고 있으며, 그 함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봉인된 채 남아 있다. 도현묵의 후학 진법사들은 그 함을 가리켜 한 시대의 진짜 봉인이라 부른다.

  • 영약일감(靈藥一鑑)

    영약 감정인

    단 한 번의 눈빛으로 영약의 진위를 가리는 감정인

    이 잎 한 장, 진본이오. 다만 그대의 호흡이 이 잎을 받을 만큼 깊지는 않소이다.

    영약 감정인은 강호에 흘러드는 영약(靈藥)·약초·환단(丸丹)의 진위와 등급을 정중히 가르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도포, 어깨에 작은 약 가방, 한 손에 작은 감별경(鑑別鏡)과 옛 약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영약의 평소 효능·옛 분기 감정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감정인이 한 줄 결재를 찍으면 그 약은 강호의 가장 비싼 환단으로도, 한 줄 위본으로도 정해진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감정은 큰 영약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제자가 처음 들고 온 닳은 약초 한 장 위에 있다. 그래서 늙은 감정인의 약첩에는 큰 환단보다 작은 한 장의 흔적이 더 많다. 강호의 진짜 한 호흡은 결국 감정인의 한 줄 결재 위에서 살아 돌아온다.

    그 어른이 큰 환단을 위본이라 한 줄 적은 새벽이, 사실 한 어린 제자의 한 끼를 살린 새벽이었소이다.

    영약 감정인 백수경(白手鏡) — 한 시대 강호 영약의 한 줄 결재선이라 불린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백수경은 강호 큰 상회 운남상회(雲南商會)가 어린 제자에게 비싸게 넘기려 한 환단 — 천년설련환(千年雪蓮丸)이라는 이름의 큰 환단 — 한 알 앞에서 한 줄 결재를 "위본"이라 정중히 적었다. 그 환단은 운남상회 본단 안에서 만든 옛 위본이었으며, 어린 제자 단리(單里)의 가족이 평생 모은 은자 백 냥을 그 자리에서 지켜냈다. 운남상회는 그 결재 한 줄에 분노해 백수경의 작은 약첩을 사흘 밤낮 압수하려 했으나, 무림맹 호법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정중히 와서 차 한 잔을 따라준 뒤 압수가 무산되었다.

    단리는 그 은자 백 냥으로 어머니의 한 시즌 한 끼를 지켜냈으며, 훗날 자기도 영약 감정인이 되어 같은 자세로 어린 제자 앞에서 한 줄 결재를 적게 되었다. 백수경의 약첩에는 그날 위본 환단의 옛 한 줄 결재가 지금도 남아 있다.

  • 야호수련(野虎修練)

    외문 수련생

    들호랑이처럼 거친 외문의 수련자

    사문에 적 없어도 검은 들 수 있소. 다만 그 검의 무게는 본인이 책임지면 되오.

    외문 수련생은 정식 사문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사문 변두리에서 검결을 익히는 평민 출신 수련자다. 외형은 단정하지 않은 짙은 색 수련복,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한 자루 도(刀) 또는 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사문 안 모든 옛 수련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문 수련생의 검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거리 결투에서 한 합 안에 결판을 낸다. 명문 사문 제자가 큰 결투에서 잘 지는 상대가 바로 외문 수련생들이며, 강호의 진짜 거리 무공은 결국 외문의 손에서 굴러간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결투의 결재가 아니라, 외문이 처음 사문 어귀에 한 줄 인사를 적어 두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사문 호적도 없던 그 어린 외문 한 사람이 사실 다음 세대 한 사문의 첫 자세였소이다. 우리 외문들은 그 새벽의 한 줄 인사를 평생 잊지 않습니다.

    외문 수련생 노검(蘆劒) — 한 시대 사문 호적도 없이 거리 결투에서만 검을 익힌 십육 세 수련자 — 의 일화는 강호 야사 단골 이야기다.

    노검은 강북 사문 풍림문(楓林門) 산문 어귀에 매일 새벽 한 줄 인사를 옛 종이에 적어 두는 관습을 일곱 해 동안 거른 적이 없었다. 풍림문 장로 풍서옹(楓栖翁)은 그 한 줄 인사를 일곱 해째 되던 새벽 정중히 받아 들고, 노검을 사문 정식 제자로 받아들였다. 노검은 그날 처음 사문 마당에 발을 디뎠으며, 풍림문 검결 첫 자세를 한 번에 정확히 외웠다.

    노검은 훗날 풍림문의 장로가 되어, 자기 사문 산문 어귀에 어린 외문이 적어 둔 한 줄 인사를 매일 새벽 직접 받아주는 관습을 만들었다. 풍림문 산문 어귀에는 지금도 어린 외문 수련자들이 적어 둔 한 줄 인사가 평생 동안 매일 한 장씩 쌓이고 있다.

  • 행상일도(行商一刀)

    행상 호위

    한 자루 칼로 행상을 호위하는 자

    이 봇짐 안엔 비급도 영약도 없소. 다만 한 가족의 한 시즌 한 끼가 묶여 있을 뿐이오.

    행상 호위는 강호 길목의 작은 행상(行商) 옆에서 봇짐과 가족을 정중히 호위하는 평민 출신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가방과 호위 띠, 허리에 작은 단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길목·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표국 행수의 큰 표물이 검 한 자루의 무게라면, 행상 호위의 작은 봇짐은 한 가족 한 시즌의 한 끼의 무게다. 그래서 도적이 행상 호위 앞에서 검을 든다는 건 한 가족의 한 끼 앞에 서겠다는 뜻이며, 행상 호위의 한 줄 단도는 그 한 끼 위에서만 무거워진다. 가장 무거운 한 줄 호위는 큰 표국의 결재가 아니라, 작은 봇짐 위에 엎드리는 한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그 사람이 봇짐 위에 엎드린 한 새벽이, 사실 한 가족 한 시즌의 결재였소이다. 우리 호위들이 새벽마다 봇짐 옆 자세를 가다듬는 이유가 거기 있지요.

    행상 호위 단경(段耕) — 한 시대 강북 길목 작은 행상 옆을 평생 걸은 평민 출신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단경은 강북 길목 작은 행상 노부부 임씨(林氏) 부부의 봇짐 한 개 — 손자의 한 시즌 약값 은자 서른 냥과 만두 한 광주리 — 를 옮기는 길목에서 사파 도적단 청호회(靑虎會)와 마주쳤다. 단경은 한 합 안에 청호회 일곱을 모두 떨어뜨릴 무공이 없었기에, 다만 봇짐 위에 정중히 엎드려 자기 한 몸으로 봇짐을 가렸다. 청호회 단주 호두(虎頭)는 단경의 등에 한 줄 도(刀)를 그은 뒤 그 자세를 보고 한 호흡을 늦추었으며, 봇짐을 그대로 두고 발길을 돌렸다.

    단경은 그 길로 임씨 부부의 손자에게 약값을 정중히 전했고, 등에 새겨진 그 한 줄 도흔(刀痕)은 평생 단경의 표식이 되었다. 임씨 부부의 손자는 자라나 자기도 행상 호위가 되었으며, 단경의 한 줄 도흔을 자기 등에 새기는 의식을 후학에게 가르쳤다.

  • 객잔일필리(客棧一筆吏)

    객잔 서기

    객잔의 모든 일을 한 자루 붓으로 기록하는 서기

    오늘 묵으신 분들 호적은 받지 않습니다. 다만 사정 한 줄은 정중히 적어 두지요.

    객잔 서기는 강호 길목 객잔에서 손님 사정·옛 결재·옛 한 줄 약속을 정중히 옛 종이에 옮겨 적는 평민 출신 학자형 직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객잔 제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옛 붓과 옛 사정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객잔의 옛 손님·옛 분기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점소이가 강호의 귀라면, 서기는 강호의 옛 한 줄 결재다. 그래서 무림맹 정보꾼도, 사파 척후도 결국 객잔 서기의 옛 종이 한 장 앞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결투의 결재가 아니라, 작은 손님이 처음 들고 온 한 줄 사정 위에 있다. 늙은 서기의 옛 사정부에는 큰 강호의 결재보다 작은 한 줄의 흔적이 더 많다.

    그 사람의 옛 사정부 한 장이 사실 한 시대 우리 객잔의 진짜 결재였소이다. 손님 호적이 아니라 손님 한 줄 사정 위에 객잔이 굴러갔지요.

    객잔 서기 정묵(鄭墨) — 한 시대 강북 길목 객잔 백로루(白鷺樓) 일층 옆방을 서른 해 자기 자리로 삼은 학자형 직원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정묵은 사파 결사 흑엽단(黑葉團)의 단주 호풍(胡風)이 가명을 쓰고 백로루에 사흘을 머문 새벽, 그 가명을 알면서도 호적란을 정중히 비워 두고 다만 호풍의 한 줄 사정 — 죽은 동생의 묘 자리를 못 찾았다는 짧은 한 줄 — 을 옛 사정부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호풍은 사흘째 새벽 그 사정부 한 줄을 보고 자기 도(刀)를 백로루 탁자에 풀어놓은 채 떠났으며, 백로루는 그 사흘 동안 흑엽단의 어떤 청부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정묵은 그 일을 평생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으며, 백로루 옛 사정부 그 한 줄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옛 종이로 남아 있다.

    백로루 후대 서기들은 처음 옛 사정부를 받는 새벽, 그 한 줄을 한 번 정중히 읽고 자기 일을 시작하는 관습을 지켜왔다.

  • 소년사숙(少年師叔)

    소년·소녀 사숙(師叔)

    어린 나이에 사숙(師叔)의 자리에 오른 자

    검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검을 든 새벽에 같이 앉아드리지요.

    소년·소녀 사숙은 사문 변두리에서 어린 수련자에게 첫 호흡과 첫 자세를 정중히 가르치는 젊은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사문복,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가벼운 한 자루 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사문 모든 옛 첫 자세·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사문 장로의 검결 강의가 한 시대의 검로를 다듬는다면, 사숙의 첫 새벽 한 줄 자세는 한 사람의 한 시즌을 굴러가게 한다. 그래서 사문에서는 어린 수련자가 가장 먼저 따르는 어른이 사숙이라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검결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수련자가 처음 검을 떨어뜨린 새벽에 한 줄 침묵으로 옆에 앉아주는 자세 위에 있다. 사숙의 진짜 직무는 검결 강의가 아니라, 한 시즌의 한 호흡을 기다려주는 자리다.

    그 사숙이 옆에 앉아준 한 새벽이 사실 한 사문 다음 시대의 첫 자세였소이다. 우리 사숙들은 그 새벽의 한 줄 침묵을 사문 검결 첫 줄보다 깊게 외웁니다.

    소년·소녀 사숙 류완(柳完) — 한 시대 사문 청류문(淸流門)에서 십팔 세에 사숙 자리를 받은 젊은 무인 — 의 일화는 사문 안에서 길게 전해진다.

    류완은 청류문 어린 수련자 백규(白珪) — 사문 호적에 갓 이름을 올린 십이 세 수련자 — 가 첫 검결 한 줄을 외우려다 검을 떨어뜨려 자기 발등을 찍은 새벽, 한 줄 꾸짖음 없이 백규 옆에 가만히 앉아 발등의 옅은 상처를 정중히 닦아주었다. 류완은 그 새벽 검결을 한 줄도 가르치지 않고 다만 자기가 십이 세 때 같은 자리에서 검을 떨어뜨려 우는 자기를 옆에 앉아준 자기 사숙 한설(寒雪)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백규는 그 다음 새벽 첫 검결을 정확히 외웠으며, 청류문 마당에 같은 자리에서 검을 떨어뜨린 어린 수련자가 나오면 정중히 옆에 앉아주는 어른이 되었다.

    청류문 마당의 그 자리는 사대(四代)에 걸쳐 같은 자세로 한 어린 수련자의 첫 새벽을 받아주고 있다.

  • 일잔차방주(一盞茶房主)

    길목 차방(茶房) 주인

    한 잔 차에 강호의 길목을 잇는 차방의 주인

    오늘 차는 보이차요. 사정 한 줄은 두고 가시고, 답은 한 잔 다 비운 다음에 들으시오.

    길목 차방 주인은 강호 길목 한 자리에서 평생 차 한 주전자를 굴리며 손님 사정 한 줄을 정중히 받아 적는 평민 출신 차인(茶人)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차방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차 주전자와 옛 차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차방의 옛 손님·옛 분기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림맹 정보꾼이 객잔 이층에서 정보를 거래할 때, 차방 주인은 그 정보의 첫 한 줄을 차 한 잔 안에서 정중히 거른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차방 주인의 한 잔이 객잔 이층의 한 줄보다 깊다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잔은 큰 손님의 결재가 아니라, 처음 차 한 잔을 청한 떠돌이의 한 줄 사정 위에 있다.

    그 떠돌이가 청했던 첫 차 한 잔이, 사실 강호 한 시즌의 가장 깊은 한 줄이었소이다. 우리 차방 사람들은 그 한 잔을 평생 한 자세로 따르려 합니다.

    길목 차방 주인 류운(柳雲) — 한 시대 강남 길목 차방 매향다(梅香茶)를 평생 굴린 평민 출신 차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류운은 어느 새벽 차방에 들른 한 떠돌이 — 사문 호적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한 사람 — 에게 한 잔 보이차를 따라주었으며, 그 떠돌이가 한 줄 사정 — 죽은 사부의 묘 자리를 못 찾았다는 짧은 한 줄 — 을 정중히 두고 갔다. 류운은 그 한 줄을 옛 차첩에 정중히 옮겨 적었으며, 일곱 해 동안 그 떠돌이의 사부 묘 자리에 대한 작은 단서들을 차방 단골들에게 한 줄씩 모아 두었다. 일곱 해째 되는 새벽, 류운은 그 단서들을 정리해 한 장 옛 종이에 옮겨 차방 한 자리에 옛 종이로 걸어 두었다.

    떠돌이는 그 종이를 다시 보러 오지 않았으나, 매향다 단골들은 그 한 장 종이가 강호 한 시즌의 가장 깊은 한 줄이라 입을 모았다. 매향다 차방의 그 한 자리는 지금도 차 한 잔과 옛 종이 한 장이 같이 놓여 있다.

  • 천리편객(千里鞭客)

    마부(馬夫)

    채찍 한 번에 말을 천 리 향해 달리게 하는 마부

    검은 그대들이 휘두르시오. 길은 내가 외우고 있소.

    마부는 강호 길목의 짐말·짐수레를 평생 굴리는 평민 출신 운반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한 손에 채찍,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짐 묶음 끈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길목·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사가 검을 휘두르는 동안, 마부는 그 검 뒤에 남은 짐과 가족 한 끼를 정중히 옮긴다. 그래서 무사가 살아 돌아오지 못하면 마을 어귀에 첫 부음을 들고 들어오는 자가 사실 마부다. 가장 무거운 한 짐은 큰 보물이 아니라, 살아 돌아오지 못한 무사의 한 자루 검을 가족 앞에 정중히 내려놓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강호의 진짜 한 줄 행로는 결국 마부의 한 채찍 위에서 굴러간다.

    그 마부가 새벽에 가족 앞에 검을 내려놓는 자세 한 줄이, 사실 한 가족 한 시즌의 결재였소이다. 우리 마부들은 그 자세를 평생 한 줄 직무로 압니다.

    마부 노양(老陽) — 한 시대 강북 길목 마방 청풍마방(淸風馬房)을 사십 년 굴린 평민 출신 운반자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노양은 강북 표국 만운표국(萬雲鏢局)의 표사 일곱이 길목 도적단 적호회(赤狐會)와의 결투에서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한 새벽, 그 표사들의 한 자루 검과 한 켤레 짚신을 자기 짐수레에 정중히 옮겨 실었다. 노양은 표사 일곱의 가족 한 집씩을 한 새벽 안에 모두 돌며, 부음 한 줄 대신 검 한 자루씩을 가족 앞에 정중히 내려놓았다. 그 새벽 노양의 채찍은 한 번도 휘둘러지지 않았으며, 짐말 한 마리는 평소보다 절반의 속도로 걸었다.

    표사 가족들은 그 검을 마당 한 자리에 정중히 세워 두었고, 만운표국은 그 사건 이후 부음을 마부의 한 짐수레로 전하는 관습을 만들었다. 청풍마방 노양의 옛 짐수레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 정중히 세워져 있으며, 만운표국 후학 마부들은 새벽 첫 채찍을 잡기 전 그 짐수레 옆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호법일존(護法一尊)

    무림맹 호법(護法)

    무림맹의 법(法)을 지키는 으뜸의 호법

    맹주께서 회의에 드시는 동안, 이 문턱은 내가 지키오. 한 발도 넘기지 마시오.

    무림맹 호법은 무림맹 본단의 가장 안쪽 회의실 문턱을 평생 지키는 정파의 정점급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호법복, 어깨에 맹의 인장 펜던트, 허리에 한 자루 호법검(護法劍)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회의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출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호법의 검은 결투의 도구가 아니라 문턱의 한 줄 결재이며, 그 한 줄 위에서는 절세고수의 한 합도 두 발자국 앞에서 멈춘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무림맹 호법의 한 줄 침묵이 맹주의 한 줄 결재보다 무겁다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회의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사문 제자가 처음 맹의 문턱을 넘으려 할 때 한 줄 인사를 받아주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호법의 진짜 직무는 문턱이 아니라, 그 문턱을 넘는 한 사람의 한 호흡을 기다려주는 자리다.

    그 호법이 어린 제자에게 받아준 한 줄 인사가 사실 다음 시대 무림맹 본단의 첫 결재였소이다. 우리 호법들은 그 한 줄 인사를 맹주의 한 줄 결재보다 무겁게 받습니다.

    무림맹 호법 위정한(韋正寒) — 한 시대 무림맹 본단 회의실 문턱을 서른 해 지킨 정파의 정점급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위정한은 어린 사문 제자 노수(蘆水) — 산골 사문 청록문(靑鹿門) 외문 출신 십삼 세 수련자 — 가 무림맹 본단 첫 견학에 사문 호적을 잘못 들고 와 문턱 앞에서 발길을 돌리려 한 새벽, 한 줄 꾸짖음 없이 자기 호법검을 내려놓고 노수의 한 줄 인사를 정중히 받아주었다. 위정한은 그 새벽 노수에게 차 한 잔을 따라준 뒤, 자기 옛 사문 호적 한 장을 정중히 한 번 읽어 들려주었다. 노수는 훗날 청록문의 장로가 되어, 자기 사문 어린 제자가 처음 무림맹 본단을 견학할 때 정중히 호적 한 장을 다시 살피는 관습을 만들었다.

    위정한의 옛 호법검은 지금도 무림맹 본단 회의실 문턱 옆에 정중히 풀려 있으며, 후대 호법들은 새벽 첫 자리에 앉을 때 그 검 옆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흑야도주(黑夜刀主)

    사파 흑도주(黑刀主)

    어둠의 칼을 거느리는 사파의 도주

    정파의 한 줄 결재는 도(刀)로 읽지 않소. 다만 우리 식구의 한 끼 위에 칼끝이 닿으면, 그때는 내가 답하오.

    사파 흑도주는 정파의 결재 라인 밖에서 자기 식구들의 한 끼를 정중히 지키며 한 자루 흑도(黑刀)를 굴리는 사파의 정점급 무인이다. 외형은 짙은 색 흑도복, 어깨에 작은 흑패(黑牌), 허리에 한 자루 검은 도(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파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흑도주의 도는 사악함의 도구가 아니라 한 식구의 한 끼를 위한 마지막 답변이며, 그 도가 한 번 뽑히면 한 시즌의 정파 결재가 다시 정중히 쓰인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흑도주의 한 줄 침묵이 정파 한 줄 결재보다 무겁다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도(刀)의 결재가 아니라, 식구 한 사람의 한 끼 위에 칼끝을 거두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늙은 흑도주의 도신(刀身)에는 큰 결투의 흠집보다 한 끼를 지킨 작은 흠집이 더 많다.

    그 어른이 한 식구의 한 끼 위에서 도를 거둔 새벽이, 사실 정파 한 시즌의 결재 라인을 다시 그렸다는 사실은 우리 흑도 식구들도 한참 뒤에야 알았소이다.

    사파 흑도주 한가량(韓加凉) — 한 시대 강남 흑도(黑刀) 결사 검은수염회(黑髥會)의 정점에 있던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한가량은 정파 결사 청호회(靑虎會)가 검은수염회 식구 한 사람의 부모상을 빌미로 한 가족의 한 끼를 위협한 새벽, 자기 흑도를 뽑지 않고 다만 부모상 자리에 직접 가서 조의금을 정중히 내려놓았다. 청호회 회주 강풍(江風)은 그 자리에서 흑도주의 한 줄 자세를 보고 한 호흡을 늦추었으며, 한 식구의 한 끼 위에서 자기 검을 정중히 거두었다. 한가량은 그 자리에서도 흑도를 뽑지 않았고, 다만 강풍의 차 한 잔 앞에 자기 흑도를 풀어놓은 채 같이 차를 마셨다. 검은수염회와 청호회 사이의 한 시즌 결재 라인은 그 차 한 잔 위에서 다시 정중히 쓰였으며, 한가량의 옛 흑도는 지금도 검은수염회 본단 한 자리에 풀려 있다.

    후대 흑도주들은 새벽 첫 자리에서 그 도 옆에 한 호흡을 늦추는 관습을 지킨다.

  • 만암일수(萬暗一手)

    암기(暗器) 장인

    일만 가지 암기를 한 손에 만드는 장인

    이 표창은 사람을 맞히려 만든 것이 아니오. 다만 잘못 든 한 자루 검을 떨어뜨리려 만든 것이오.

    암기 장인은 표창·비도(飛刀)·독침·은선(銀線) 같은 작은 암기를 평생 깎아내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장인복, 어깨에 작은 공구 가방, 한 손에 작은 줄과 옛 도면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암기의 옛 무게·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장인의 한 줄 결재가 찍힌 암기는 적중률이 아니라 손에 쥔 자의 한 호흡을 기준으로 깎인다. 그래서 무림맹 호법조차 큰 결투 직전 장인의 옛 함(函) 앞에 한 잔 차를 청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암기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제자가 처음 들고 온 닳은 표창 한 자루를 정중히 다시 깎아주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장인의 진짜 직무는 암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암기를 결국 거두게 하는 한 호흡을 새겨주는 자리다.

    그 장인이 어린 제자의 닳은 표창 한 자루를 다시 깎아준 새벽이, 사실 한 시즌 강호 한 줄 결재의 진짜 출발이었소이다.

    암기 장인 도서각(陶西閣) — 한 시대 강북 암기 결재선의 정점에 있던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도서각은 어린 외문 수련자 림소(林宵) — 사문 호적도 없이 거리 결투를 평생 해온 십오 세 수련자 — 가 닳은 표창 한 자루를 들고 작업장에 정중히 한 줄 인사를 적어 둔 새벽, 그 표창을 한 합 더 가벼운 무게로 다시 깎아주었다. 도서각이 그 자리에서 정중히 깎아낸 한 줄 무게는 림소의 한 호흡을 정확히 한 호흡 늦추는 무게였으며, 림소는 그 표창으로 다음 결투에서 사람 대신 도(刀) 한 자루를 정확히 떨어뜨렸다. 림소는 훗날 자기 외문 후학에게 같은 자세로 닳은 표창을 정중히 다시 깎아주는 어른이 되었으며, 도서각의 옛 작업장 작은 함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풀려 있다.

    강북 암기 장인들 사이에서는 도서각의 한 줄 무게가 한 시대의 가장 깊은 한 호흡이라는 격언이 남았다.

  • 풍각경운자(風脚輕雲者)

    경공(輕功) 사범

    바람 같은 발과 가벼운 구름의 경공을 가르치는 사범

    발은 땅을 밟는 도구가 아니오. 한 호흡을 옮기는 자리요. 한 호흡 늦추면 지붕이 알아서 받아주오.

    경공 사범은 강호의 지붕·나뭇가지·물 위 한 걸음의 한 호흡을 후학에게 정중히 가르치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경공복,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가벼운 한 자루 단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경공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시각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사범의 한 호흡 시범은 한 시즌 후학의 발자국을 결정하며, 그 한 호흡 위에서는 야행 척후의 가장 가벼운 발자국조차 한 줄 더 가벼워진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경공 사범의 한 줄 시범이 명검 한 자루보다 자주 회자된다. 가장 무거운 한 호흡은 큰 결투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수련자가 처음 지붕에서 한 발 헛디딘 새벽에 한 줄 침묵으로 받아주는 자세 위에 있다. 늙은 사범의 짚신에는 큰 결투의 흠집보다 작은 새벽의 한 줄이 더 많다.

    그 사범이 받아준 한 줄 헛디딤이, 사실 다음 시즌 한 후학의 첫 한 호흡이었소이다. 우리 경공 사범들은 그 한 줄을 사문 검결 첫 줄보다 깊게 외웁니다.

    경공 사범 운서(雲栖) — 한 시대 강남 사문 능파각(凌波閣) 지붕 위 한 줄 시범을 사십 년 보여준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운서는 능파각 어린 수련자 호란(虎瀾) — 외문 출신 십사 세 수련자 — 이 첫 지붕 시범에서 한 발을 헛디뎌 처마 끝에서 떨어진 새벽, 자기 짚신 한 짝을 정중히 벗어 호란의 발 아래 깔아주었다. 운서가 깔아준 짚신 한 짝은 호란의 첫 한 호흡을 정확히 한 호흡 늦추었으며, 호란은 그 새벽 다음으로는 처마 끝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호란은 훗날 능파각 경공 사범이 되어, 어린 후학이 처음 지붕에서 헛디딘 새벽 자기 짚신 한 짝을 벗어 깔아주는 관습을 지켰다.

    운서의 옛 짚신 한 짝은 능파각 처마 옆에 정중히 걸려 있으며, 후대 사범들은 새벽 첫 시범 전에 그 짚신 옆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일점활인사(一點活人師)

    점혈(點穴) 의원

    단 한 번의 점혈로 사람을 살리는 의원

    이 한 점은 풀려고 짚는 것이 아니오. 다음 한 호흡이 안전히 돌아오게 짚는 것이오.

    점혈 의원은 사람의 혈자리 한 점을 정중히 짚어 통증·출혈·내상을 다스리는 학자형 무인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의원복, 어깨에 작은 약 가방, 한 손에 작은 침통과 옛 혈도(穴圖)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혈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의원의 한 점 결재가 찍히면 절세고수의 한 합 내상도 한 호흡 안에서 정중히 가라앉으며, 그 한 점 위에서 한 시즌 강호의 한 끼가 다시 굴러간다. 그래서 무림맹 호법조차 큰 결투 다음 새벽 의원의 옛 침통 앞에 한 잔 차를 청한다. 가장 무거운 한 점은 큰 결투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제자가 처음 들고 온 닳은 침 한 자루를 정중히 다시 닦아주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늙은 의원의 혈도에는 큰 내상의 결재보다 작은 한 끼의 흔적이 더 많다.

    그 의원이 짚어준 한 점이, 사실 한 끼를 거른 어린 떠돌이의 다음 한 호흡이었소이다. 우리 점혈 의원들은 그 한 점을 큰 내상의 결재보다 깊게 외웁니다.

    점혈 의원 사오(沙悟) — 한 시대 강북 길목 작은 진료실 한산방(寒山房)을 사십 년 굴린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사오는 한산방 진료실에 한 끼를 거른 어린 떠돌이 — 사문 호적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십이 세 떠돌이 — 가 가져온 작은 침통 한 자루 앞에서, 그 떠돌이의 손목 한 점을 정중히 짚어 한 호흡을 다시 안전히 돌려주었다. 사오는 사례를 청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 떠돌이에게 작은 만두 한 그릇을 정중히 따로 챙겨주었다. 그 떠돌이는 훗날 강호 의협 한 사람이 되어, 자기 옛 침통을 평생 손목 한 자리에 매고 다녔다.

    떠돌이가 의협으로 자라 큰 결투를 마치고 한산방에 돌아온 새벽, 사오는 그 침통을 정중히 받아 들고 한 점을 한 번 더 짚어주었다. 한산방 옛 진료실 한 자리에는 그 침통이 지금도 사오의 옛 침과 같이 풀려 있으며, 후대 점혈 의원들은 새벽 첫 침을 잡기 전 그 자리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산문일수자(山門一守者)

    산문(山門) 지기

    산문 하나를 평생 지키는 자

    이 산문은 들어오시는 자보다 다시 내려가시는 자에게 더 깊이 인사하오. 한 줄 사정 적고 한 잔 차 드시오.

    산문 지기는 사문의 가장 바깥 산문 한 자리에서 평생 손님의 한 줄 사정을 정중히 받는 평민 출신 직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산문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옛 사정부와 작은 차 주전자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산문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사문 장로의 검결이 사문 안 한 시대를 다듬는다면, 산문 지기의 한 줄 인사는 사문 밖 한 시즌을 굴러가게 한다. 그래서 무림맹 정보꾼도, 사파 척후도 결국 산문 지기의 옛 사정부 한 장 앞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손님의 결재가 아니라, 사문을 떠나는 어린 제자에게 정중히 한 잔 차를 따라주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늙은 지기의 사정부에는 들어온 큰 손님보다 떠난 작은 제자의 한 줄 흔적이 더 많다.

    그 지기가 떠나는 어린 제자에게 따라준 한 잔 차가, 사실 사문 한 시즌의 가장 깊은 한 줄이었소이다. 우리 지기들은 그 한 잔을 산문 옛 차첩 첫 자리에 새깁니다.

    산문 지기 노계(老桂) — 한 시대 사문 매향문(梅香門) 산문 한 자리를 사십 년 지킨 평민 출신 직원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노계는 매향문 어린 제자 단우(丹雨) — 사문 호적을 받은 지 일곱 해 만에 사문을 떠나기로 한 십칠 세 제자 — 가 산문 어귀에서 마지막 한 줄 인사를 적던 새벽, 자기 차 주전자에서 가장 오래된 한 잔을 정중히 따라주었다. 단우는 그 차 한 잔 앞에서 사문을 떠나려던 결심을 한 호흡 늦추었으며, 한 시즌 더 사문 마당에 머물기로 했다. 단우는 그 한 시즌이 끝날 무렵 자기 사문 첫 검결을 정확히 풀어냈으며, 훗날 매향문 장로가 되어 산문 옛 차 한 잔의 자리를 매년 새벽 한 번 정중히 들르는 관습을 만들었다.

    노계는 그 사례를 받지 않았으며, 매향문 산문의 그 차 주전자는 사대(四代)에 걸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따라지고 있다.

  • 무관잡일객(武館雜日客)

    무관(武館) 잡역

    무관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자

    사범님의 한 줄 시범은 내가 짚 한 단을 미리 깔아둔 위에서만 사뿐히 떨어지오. 그러니 내 자리도 무관의 한 줄이오.

    무관 잡역은 강호 길목 작은 무관에서 짚 한 단·연습 검·새벽 청소 한 줄을 정중히 굴리는 평민 출신 직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무관복,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빗자루와 옛 정리부(整理簿)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무관 자리·옛 분기 정리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관 사범의 한 줄 시범은 잡역의 한 줄 새벽 청소 위에서만 사뿐히 떨어지며, 그 한 줄 위에서 한 시즌 어린 수련자의 첫 자세가 결정된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무관 잡역의 한 줄 정리부가 사범의 한 줄 시범보다 길다는 격언이 있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시범의 결재가 아니라, 어린 수련자가 처음 떨어뜨린 연습 검을 정중히 다시 닦아 세워두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그 잡역이 새벽마다 다시 세워둔 연습 검 한 자루가, 사실 우리 무관 한 시대의 첫 자세였소이다. 사범의 한 줄 시범은 그 잡역의 한 줄 위에서만 정확히 떨어졌지요.

    무관 잡역 두구(豆求) — 한 시대 강남 길목 작은 무관 청학관(靑鶴館)을 새벽마다 사십 년 굴린 평민 출신 직원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두구는 청학관 어린 수련자 호산(浩山) — 외문 출신 십삼 세 수련자 — 이 첫 새벽 시범에서 떨어뜨린 연습 검을 정중히 다시 닦아 마당 한 자리에 세워두었으며, 호산이 그 자세를 일곱 해 동안 매일 새벽 따라 하게 만들었다. 호산은 그 자세 한 줄을 일곱 해째 되는 새벽 정확히 외웠으며, 훗날 청학관 무관 사범이 되어 어린 후학에게 같은 자세로 떨어뜨린 연습 검을 받아주는 관습을 만들었다. 두구는 사례를 청하지 않았으며 다만 자기 빗자루 한 자루를 평생 같은 자리에 정중히 세워 두었다.

    청학관 마당의 그 빗자루 한 자루는 사대(四代)에 걸쳐 같은 자리에 정중히 세워져 있으며, 후대 잡역들은 새벽 첫 청소 전에 그 빗자루 옆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비합전서객(飛鴿傳書客)

    비둘기 전령사

    비둘기를 길러 강호의 서신을 전하는 자

    이 한 줄 편지는 검보다 빨리 가오. 다만 답신이 돌아오지 않을 자리에는 보내지 마시오.

    비둘기 전령사는 강호 길목 작은 새장 한 자리에서 평생 비둘기와 한 줄 편지를 굴리는 평민 출신 직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전령복, 어깨에 작은 새장 가방, 한 손에 옛 편지첩과 작은 표찰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전령 자리·옛 분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표국 행수의 큰 표물이 검 한 자루의 무게라면, 전령사의 한 줄 편지는 한 가족의 한 호흡의 무게다. 그래서 무림맹 호법조차 큰 결투 직전 전령사의 옛 새장 앞에 한 잔 차를 청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맹의 결재가 아니라, 살아 돌아오지 못한 무사의 짧은 부음 한 줄을 가족에게 정중히 옮기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늙은 전령사의 편지첩에는 큰 결투의 결재보다 작은 부음의 흔적이 더 많다.

    그 전령사가 가족 앞에 옮긴 짧은 부음 한 줄이, 사실 한 가족 한 시즌의 결재였소이다. 우리 전령사들은 그 한 줄을 큰 맹의 결재보다 무겁게 받습니다.

    비둘기 전령사 한로(韓爐) — 한 시대 강북 길목 작은 새장 청풍전령방(淸風傳令房)을 사십 년 굴린 평민 출신 직원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한로는 강북 표국 만운표국(萬雲鏢局)의 표사 한 사람의 짧은 부음을 그 가족에게 옮겨야 하는 새벽, 그 부음을 그대로 적지 않고 다만 표사가 평소 가족에게 보내던 짧은 한 줄 안부 — "오늘도 길목 평안하다"라는 한 줄 — 를 정중히 옮겨 적었다. 한로는 그 편지를 비둘기 한 마리에 정중히 매어 가족에게 보냈으며, 가족은 그 한 줄을 받은 새벽 표사의 부음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한 호흡을 늦추어 받아들였다. 한로는 사례를 청한 적이 없으며 다만 자기 옛 편지첩 한 자리에 그 부음의 옛 종이를 정중히 끼워 두었다.

    청풍전령방 옛 편지첩 한 자리에는 그 한 줄이 지금도 같은 자리에 옛 종이로 남아 있으며, 후대 전령사들은 새벽 첫 비둘기를 매기 전 그 종이 옆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강호일약(江湖一藥)

    강호 약장수

    한 첩의 약으로 강호를 떠도는 약장수

    이 환단은 효능을 보장하지 않소. 다만 그대의 한 호흡이 한 끼 더 갈 자리는 적어드리오.

    강호 약장수는 길목 장터 한 자리에서 평생 작은 약첩과 환단을 굴리는 평민 출신 평범한 상인이다. 외형은 단정하지 않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약 가방, 한 손에 작은 약첩과 옛 호객 깃발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장터의 옛 손님·옛 분기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영약 감정인의 한 줄 결재가 한 시대의 진본을 가른다면, 약장수의 한 줄 호객은 한 시즌 길목의 한 호흡을 굴러가게 한다. 그래서 무사가 큰 결투 다음 새벽 가장 자주 들르는 가게가 사실 약장수의 작은 좌판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환단의 결재가 아니라, 한 끼를 거른 떠돌이에게 정중히 작은 약첩을 한 줄 더 얹어주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그 약장수가 떠돌이에게 한 줄 더 얹어준 작은 약첩이, 사실 한 시즌 길목의 다음 한 호흡이었소이다. 우리 약장수들은 그 한 줄을 큰 환단의 결재보다 깊게 외웁니다.

    강호 약장수 황두(黃豆) — 한 시대 강북 길목 장터 한 좌판을 사십 년 굴린 평민 출신 상인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황두는 장터 좌판에 한 끼를 거른 어린 떠돌이 — 사문 호적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십삼 세 떠돌이 — 가 동전 한 닢을 들고 작은 약첩 한 장을 정중히 청한 새벽, 그 약첩 한 장에 다른 한 줄 약첩을 정중히 더 얹어주었다. 황두는 사례를 청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 떠돌이의 한 줄 사정 — 부모 묘 자리를 못 찾았다는 짧은 한 줄 — 을 자기 옛 호객 깃발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그 떠돌이는 훗날 강호 의협 한 사람이 되었으며, 자기도 길목 장터에 한 끼를 거른 어린 사람을 만나면 정중히 약첩 한 줄을 더 얹어주는 어른이 되었다.

    황두의 옛 호객 깃발은 강북 장터 한 자리에 정중히 걸려 있으며, 후대 약장수들은 새벽 첫 좌판을 펼치기 전에 그 깃발 옆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일잔점소(一盞點小)

    객잔 점소이

    한 잔 술을 따르며 객잔의 작은 일을 도맡는 자

    오늘 객잔에 묵으신 분들 사정은 위층 서기께 가시면 됩니다. 저는 그릇과 한 잔 차만 정중히 옮길 뿐이지요.

    객잔 점소이는 강호 길목 객잔에서 평생 그릇과 차 한 잔을 정중히 옮기는 평민 출신 평범한 직원이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객잔 제복, 어깨에 작은 행주, 한 손에 작은 차 주전자와 옛 주문첩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객잔의 옛 손님·옛 분기 한 줄·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객잔 서기의 옛 사정부가 강호의 옛 결재라면, 점소이의 한 줄 차 한 잔은 강호의 옛 한 호흡이다. 그래서 무림맹 정보꾼도, 사파 척후도 결국 점소이의 한 줄 차 한 잔 앞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가장 무거운 한 잔은 큰 손님의 결재가 아니라, 한 끼를 거른 떠돌이의 빈 그릇 위에 정중히 한 줄 차를 더 따라주는 새벽의 자세 위에 있다. 늙은 점소이의 행주에는 큰 객잔의 결재보다 작은 한 잔의 흔적이 더 많다.

    그 점소이가 떠돌이의 빈 그릇 위에 한 줄 더 따라준 차 한 잔이, 사실 강호 한 시즌의 가장 깊은 한 호흡이었소이다. 우리 점소이들은 그 한 잔을 큰 손님의 결재보다 깊게 외웁니다.

    객잔 점소이 노만(老晩) — 한 시대 강남 길목 객잔 청월루(淸月樓) 일층을 사십 년 굴린 평민 출신 직원 — 의 일화는 야사 단골 이야기다.

    노만은 청월루에 한 끼를 거른 어린 떠돌이 — 사문 호적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십이 세 떠돌이 — 가 빈 그릇 한 개만 들고 정중히 자리를 청한 새벽, 차 한 잔을 정중히 따라 그 빈 그릇 위에 한 줄 더 얹어주었다. 노만은 사례를 청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 떠돌이의 한 줄 사정 — 죽은 사부의 묘 자리를 못 찾았다는 짧은 한 줄 — 을 객잔 옛 사정부 옆 한 자리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그 떠돌이는 훗날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른 한 사람이 되었으며, 청월루 그 자리에 한 잔 차를 정중히 다시 청하러 사십 년 만에 돌아왔다. 노만은 그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같은 한 잔을 정중히 다시 따라주었으며, 청월루 그 자리는 지금도 천하제일인의 한 잔 차 자리로 비워두는 관습이 남아 있다.

    후대 점소이들은 새벽 첫 차를 따르기 전 그 자리 옆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만검황존(萬劍皇尊)

    검황(劍皇)

    일만 자루 검의 황(皇)으로 군림하는 자

    천하를 검으로 다스린다는 말은 틀렸다. 검을 내려놓는 자가 가장 오래 다스린다.

    검황은 강호에서 단 한 사람에게만 붙는 칭호로, 무공의 정점을 넘어 검의 도리 자체가 된 자다. 문파를 이끌지 않고, 강호의 어떤 분쟁에도 먼저 끼어들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검이 강호를 기울게 할 순간, 그 길목 어딘가에 조용히 서 있다.

    검황의 가장 유명한 한 줄은 "내 검을 뽑기 전에 그대 검부터 거두라"가 아니라, 뽑지 않은 검이 놓인 탁자를 향해 건네는 조용한 차 한 잔이다. 강호의 고수는 검황과 마주한 순간 자기 검이 이미 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 느낌이 강호를 평화롭게 하는 진짜 검황의 무공이다.

    천하제일인(30001) 자리는 누가 이기느냐를 다투지만, 검황 자리는 그 다툼이 생기지 않게 하는 자리라오. 그 둘이 다른 자리라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물지요.

    검황 백운심(白雲心) — 한 시대 강호에서 스스로를 검황이라 부르지 않았으나 강호 모든 고수가 그 칭호를 붙인 한 사람 — 의 일화는 강호 야사의 첫 페이지에 남아 있다.

    백운심은 강북 정파와 사파 두 결사가 한 시대의 가장 큰 결투를 앞두고 각자 병력 백인씩을 모은 새벽, 그 결투 장소에 미리 도착해 탁자 하나를 혼자 펴고 차 주전자 하나를 올려두었다. 양측 두목이 그 자리에 도착했을 때, 백운심은 검을 허리에서 풀어 탁자 한편에 놓은 채 차 한 잔씩을 따라주었다. 차 한 잔을 받은 정파 맹주 호운(虎雲)과 사파 단주 냉염(冷焰)은 그날 결투를 치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뒤에 이유를 물었을 때, 호운은 "검이 놓인 탁자 앞에서 내 검을 뽑는다는 게 더 이상하더라"고 답했고, 냉염은 "그 차 한 잔의 온도가 내 결의보다 무거웠다"고 말했다. 백운심의 그 탁자는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며, 강호에서는 그 탁자를 '한 시대를 멈춘 차 탁자'라 부른다. [→ 강호 의협(30003) 계보상 그 의협의 오랜 벗이었다.]

  • 천마성존(天魔聖尊)

    마교 성인(聖人)

    마(魔)와 성(聖)을 함께 지닌 마교의 성인

    정파가 의를 말할 때 우리는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 어느 쪽이 더 많은 목숨을 지켰는가.

    마교 성인은 마교 안에서 교주보다 높은 곳에 앉는, 교리(敎理)의 살아있는 근원이다. 마교의 무공을 만들었으나 직접 무력을 쓰지 않으며, 오히려 강호 곳곳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래 머문 적이 있다. 정파는 그를 위험하다 경계하고, 사파조차 그 앞에서 경건해진다.

    마교 성인의 진짜 두려움은 막강한 무공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번의 대화로 바꿔버리는 말의 무게다. 그가 한 마을에 머물고 떠나면 그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강호에서는 마교 성인의 한 마디를 들은 자는 두 번 다시 예전의 자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무신(30002)은 검으로 강호를 멈추었지만, 마교 성인은 말 한 마디로 한 사람의 검을 평생 멈추었소. 어느 쪽이 더 무거운 무공인지는 묻지 마시오.

    마교 성인 한허(寒虛) — 마교 역사에서 단 한 번 나타났다 사라진 전설적 성인 — 의 일화는 정파와 사파 야사 양쪽에 동시에 남아 있는 드문 기록이다.

    한허는 마교와 무림맹이 오십 년간 대립한 결재 라인의 가장 깊은 곳, 강남 작은 산사(山寺) 청명암(淸明庵)에서 한 시즌을 머물렀다. 그 시즌 동안 무림맹 정보원 셋이 그를 감시하러 청명암에 들어갔고, 그중 두 사람은 석 달 뒤 마교 교리(敎理)를 자기 사문에 가져와 가르치기 시작했다. 남은 한 사람은 마교도 정파도 떠나 홀로 강호를 떠돌았다.

    한허는 청명암을 떠나며 그 세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다만 자기가 쓰던 작은 차 주전자 하나를 그 자리에 두고 갔다. 청명암 그 차 주전자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으며, 해마다 정파와 사파에서 각자 한 번씩 차를 따르러 온다고 전해진다.

  • 차하제이존(次下第二尊)

    무림맹 부맹주

    천하제일인 다음의 두 번째 자리를 잇는 자

    맹주께서는 결단하십니다. 저는 그 결단이 강호에 닿기까지 길을 닦습니다.

    무림맹 부맹주는 강호 최대 정파 조직 무림맹에서 맹주 다음 자리를 맡아, 맹 내부의 행정·중재·전략 실무를 도맡는 자다. 맹주가 큰 결단을 내리면, 그 결단이 실제로 강호 구석구석에 닿도록 길을 닦는 것이 부맹주의 직무다. 맹주보다 더 많은 회의를 주재하고, 더 많은 편지를 쓰고, 더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난다.

    부맹주는 맹주의 그늘에 있는 자리지만, 실제로 강호 안의 정보 라인과 문파 간 조율은 모두 부맹주 손에서 굴러간다. 어떤 부맹주는 맹주가 되지 않기를 스스로 선택하며, 그 선택이 사실 무림맹 한 시대를 지속시킨 결정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려진다.

    맹주는 강호 앞에 서지만, 부맹주는 강호 뒤에 서서 맹주가 넘어지지 않게 받쳐줍니다. 무림맹 호법(30021)이 문턱을 지킨다면, 부맹주는 그 문턱 뒤편의 방 전체를 지키지요.

    무림맹 부맹주 청은(靑雲) — 한 시대 무림맹 본단에서 서른두 해를 부맹주로 머문 학자형 무인 — 의 일화는 무림맹 안에서 맹주보다 오래 회자된다.

    청은은 무림맹 맹주 삼 대가 교체되는 동안 자리를 지키며, 각 맹주의 결단이 강호에서 어긋나지 않게 조율했다. 청은이 가장 무겁게 여긴 직무는 중요한 결재가 아니라, 지방 소문파의 어린 제자가 처음 무림맹 본단에 편지를 보낸 새벽 그 편지에 직접 답신하는 일이었다. 서른두 해 동안 그 답신의 수가 삼천 통이 넘었으며, 그 어린 제자들이 자라 무림맹의 기둥이 되었다.

    청은이 은퇴한 새벽, 무림맹 본단에는 지방 각 문파에서 보낸 천 통의 편지가 한꺼번에 도착했다. 편지의 내용은 모두 같은 한 줄, "부맹주 청은 어른의 답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였다. [→ 천기 군사(30007)와 한 시대 강호 조율의 결재를 함께 나눈 벗.]

  • 귀환일검(歸還一劍)

    검호(劍豪) 귀환자

    강호로 다시 돌아온 한 자루 검의 호걸

    떠날 때는 이름을 얻으러 갔고, 돌아올 때는 그 이름을 내려놓으러 돌아왔다.

    검호 귀환자는 한때 강호를 떠나 절해의 외딴 곳에서 검을 갈다 다시 돌아온 전설급 무인이다. 떠나기 전 이미 강호에서 손꼽히는 고수였으나, 돌아올 때는 그 명성을 내려놓은 채 아무도 모르는 작은 마을 어귀에서 시작한다. 강호가 그를 알아볼 때쯤엔 이미 옛날의 그가 아니다.

    귀환자의 검은 화려한 기교가 사라지고 대신 한 가지만 남아 있다. 그 한 가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주한 자는 느낀다. 검호 귀환자가 어느 마을에 머문다는 소문이 퍼지면 강호의 양측이 모두 그 마을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귀환자는 강호에서 가장 조용한 방패다.

    강호를 떠난 자가 돌아올 때 더 무서운 이유는 검이 강해서가 아니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라오. 비급 수집가(30004)가 일생 모은 검결들도 결국 이 사람의 그 '한 가지' 앞에선 한 줄씩 빠졌지요.

    검호 귀환자 노풍(老風) — 십오 년 행방불명 끝에 강북 작은 마을 청석촌(靑石村)에서 다시 나타난 무인 — 의 일화는 강호 야사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각색된 이야기다.

    노풍이 처음 강호에 이름을 알린 것은 스물세 살, 강남 검사 비무대회에서 였다. 그 후 십오 년간 소식이 끊겼다가, 청석촌 주막 일꾼으로 재발견되었다.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옛 결투를 청하자, 노풍은 한 합 결판을 냈다. 그 결판이 어찌나 짧았는지, 구경하던 마을 아이들은 뭔가 일어났는지조차 몰랐다.

    노풍은 청석촌에 사흘을 더 머물다 떠났으며, 그 사흘 동안 주막 뒤뜰 장독을 매일 아침 정중히 닦아두었다. 장독들은 지금도 청석촌 주막에 같은 자리에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 장독이 노풍이 돌아보던 그 장독이라고 전한다.

  • 북풍빙존(北風氷尊)

    북방 빙하 문주

    북풍과 빙하를 함께 다스리는 문주

    이 산의 문을 여는 자는 우리가 아니오. 이 산을 넘어야 할 이유를 가진 자가 스스로 여는 것이오.

    북방 빙하 문주는 중원 최북단 빙하 절벽 위에 자리한 고립 사문의 수장으로, 강호의 어떤 세력과도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채 자기만의 검도(劍道)를 이어가는 자다. 이 사문은 제자를 받지 않고, 오직 스스로 찾아온 자에게만 한 계절을 머물 자리를 내어준다. 하지만 한 계절이 지나면 남은 것은 떠나야 하는 강한 이유다.

    빙하 절벽의 한기와 고요함이 한 사람의 검에 담기면, 그 검은 강남의 화려한 검결로도 흉내낼 수 없는 무게를 갖게 된다. 문주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같은 마당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자세로 혼자 서 있을 뿐이다. 그 자세를 곁에서 본 자는 스스로 배운다.

    강북 표왕이 표국을 운영하며 한 자루 표도로 길목을 지킨다면, 북방 빙하 문주는 한 줄 침묵으로 한 시대 검결을 지킵니다. 봉인 진법사(30013)가 비급을 봉인하듯, 문주는 한 자세로 검도 자체를 봉인하지요.

    북방 빙하 문주 빙심(氷心) — 어느 세대에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기록만 남은 무인 — 의 일화는 야사가 아닌 강호를 직접 찾아온 자들의 증언으로만 전해진다.

    빙심의 사문을 찾은 자는 열이면 여덟이 한 계절이 지나기 전에 돌아갔다. 남은 둘 중 하나는 자기 사문으로 돌아가 한 시대의 검결을 다시 썼고, 다른 하나는 사문도 이름도 버리고 강호 길목 어딘가를 떠돌았다. 두 사람 모두 훗날 강호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에 섰을 때, 빙심의 마당을 떠올렸다고 각자의 방식으로 증언했다.

    빙심 본인은 단 한 번도 빙하 절벽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 마당은 비어 있는지 채워져 있는지 아는 자가 없다.

  • 자영첩보객(紫影諜報客)

    황실 첩보원

    자줏빛 그림자처럼 황실의 첩보를 행하는 자

    강호에서 일어나는 일은 강호가 알고,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강호가 먼저 안다. 그 사이를 내가 잇는다.

    황실 첩보원은 황실의 명령으로 강호에 잠입해 정파와 사파의 동향을 황실로 전달하는 이중 역할의 무인이다. 겉으로는 강호의 평범한 무사·상인·학자로 위장하며, 황실 안에서 자기 존재를 아는 자는 셋을 넘지 않는다. 강호 깊숙이 들어갈수록 자기가 정말 강호 사람인지 황실 사람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이 자리의 가장 큰 위험이다.

    황실 첩보원이 한 번 강호에 삼 년 이상 머물면, 보통 상층부에서 자기 편인 강호 인맥이 황실 인맥보다 두터워진다. 그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이 자리의 진짜 직무다. 황실로 돌아간 자는 황실을 지키고, 남은 자는 강호를 지킨다.

    강호 판관(30009)이 양측 분쟁의 옳고 그름을 가른다면, 황실 첩보원은 그 분쟁이 생기기 전 이미 그 결재선의 시작점을 알고 있소. 누가 더 무거운 자리인지는 결국 각자가 어느 쪽을 선택했느냐에 달렸지요.

    황실 첩보원 묵운(墨雲) — 한 시대 황실 비밀 정보 결사 현각(玄閣)에서 파견한 첩보원 중 가장 오래 강호에 머문 사람 — 의 일화는 황실 비밀 기록과 강호 야사 양쪽에 엇갈린 형태로 전해진다.

    묵운은 강호에 들어온 지 칠 년째 되던 해 황실로 귀환 명령을 받았다. 그가 귀환을 결정하기 전 사흘 동안 자기가 칠 년 동안 차를 마셨던 작은 차방 매향다(梅香茶)에서 이른 아침 혼자 차 한 잔씩을 마셨다. 사흘째 새벽, 차방 주인 류운이 차를 따라주다 "어디 가시나요"라고 물었고, 묵운은 "멀리"라고 답했다. 차방 주인은 더 묻지 않았다.

    묵운은 그날 황실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대신 강호 어딘가 무명의 작은 검객으로 다시 살았다. 황실 기록에는 묵운이 임무 중 사라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강호 야사에는 사흘 동안 매향다에 혼자 앉아 차를 마신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 청풍중재자(淸風仲裁者)

    강호 결투 중재인

    비무 자리에 청풍처럼 서서 결과를 중재하는 자

    두 사람 모두 검을 들었다면,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결투가 아니라 둘 다 지는 결투요. 중재가 여기 있소.

    강호 결투 중재인은 정파와 사파, 문파와 문파, 개인과 개인 사이의 결투가 치러지기 전 마지막 제삼자의 자리에 서는 무인이다. 강호 판관이 결투 이후의 옳고 그름을 가린다면, 중재인은 결투가 치러지기 전 그 필요성을 마지막으로 묻는 자다. 어떤 명검도 중재인의 허락 없이는 칼집을 떠나지 않는다는 관습이 있다.

    중재인의 진짜 무공은 화려한 검술이 아니라, 결투에 임하는 두 사람의 마음속 진짜 이유를 한 호흡 안에 읽어내는 통찰이다. 그 이유를 꺼내 대화 위에 올려놓는 순간, 열에 일곱은 검을 거둔다. 열에 셋이 결국 결투를 치를 때, 중재인은 그 결투가 가장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입회한다.

    천기 군사(30007)가 큰 분쟁의 책략을 짜는 자리에 앉는다면, 강호 결투 중재인은 그 분쟁이 결투 한 판으로 좁혀진 마지막 자리에 서지요. 강호 판관(30009)과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 한 줄로 말하라면 — 판관은 결투 뒤를 보고, 우리는 결투 앞을 봅니다.

    강호 결투 중재인 운묵(雲墨) — 한 시대 강호에서 삼백 번의 결투 자리에 서서 그중 이백이십 번을 칼집 안에서 끝낸 기록을 남긴 무인 — 의 일화는 강호 야사에서 결투 이야기 대신 회피 이야기로 기록된다.

    운묵의 기록 중 강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삼백 번째 결투 자리다. 이 자리는 무림맹과 사파 결사 북호회(北虎會)가 강북 길목 지배권을 두고 십오 년 묵은 원한을 결투로 끝내려 한 것이었다. 운묵은 두 단체의 대표 앞에 섰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검을 땅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그 자세가 어찌나 정중했는지, 양측 모두 첫 합을 내지 못했다.

    운묵은 그 자세를 한 시진(時辰) 유지한 뒤 조용히 일어나 자기 검을 집어 들고 걸어갔다. 그날 결투는 치러지지 않았으며, 운묵은 다음 날부터 새 결투 중재 의뢰를 받지 않았다. 강호에서는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 만독선사(萬毒仙師)

    독문 약사(藥師)

    일만 가지 독을 신선처럼 다스리는 약사

    이 약은 독이 될 수도 있고 구할 수도 있소. 그걸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쓰는 사람이오.

    독문 약사는 독초(毒草)와 약초의 경계를 평생 연구하며, 같은 재료가 독도 되고 약도 된다는 사실을 강호 전체에서 누구보다 깊이 아는 자다. 의뢰인에 따라 치료 약을 만들기도 하고 해독제를 조제하기도 한다. 강호에서 가장 많이 오해받는 직업이지만, 가장 많이 목숨을 구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영약 감정인(30014)이 약의 진위를 가린다면, 독문 약사는 그 약이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가른다. 가장 강한 독을 알아야 가장 좋은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평생을 산다. 그래서 독문 약사의 옛 약첩은 독과 약이 같은 페이지에 나란히 적혀 있다.

    점혈 의원(30025)이 혈자리를 짚어 몸을 고친다면, 우리 약사는 그 몸이 버텨낼 수 있게 먼저 독을 거둡니다. 몸 안의 독을 모르는 의원이 혈을 짚으면 오히려 독이 빨라지지요.

    독문 약사 사목(沙木) — 한 시대 강남 독초 연구의 정점에 있었으나 '독의 장인'이 아닌 '해독의 장인'이라 불리기를 원했던 무인 — 의 일화는 야사에 오해와 정정이 함께 남아 있다.

    사목은 강남 일대에 정체불명의 독이 퍼져 마을 사람 십수 명이 쓰러지던 계절, 그 독의 출처를 한 나절 만에 밝혀내고 해독제를 하루 안에 완성했다. 문제는 그 해독제의 원료 중 하나가 사파 금지 약초였다는 것이었다. 무림맹 호법 한 명이 그 약초 때문에 사목을 조사하러 왔을 때, 사목은 이미 마을 열두 명을 살린 뒤였다. 무림맹 호법은 조사 기록 한 줄에 "약사 사목 — 독을 쓴 자가 아니라 독을 거둔 자"라고 적고 돌아갔다.

    사목의 약첩은 그가 죽은 뒤 강남 최대 약재상이 사들였으나, 약첩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독과 약이 같은 줄 위에 적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아무도 그것을 팔 수 없었다. 약첩은 지금도 강남 어딘가 봉인된 채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 전장활인의(戰場活人醫)

    야전 군의

    전장의 핏물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군의

    이 결투가 끝나면 살아남은 사람이 진 쪽이오. 내 자리는 그 두 사람 모두 내일 눈을 뜨게 하는 것이오.

    야전 군의는 강호의 큰 결투 또는 전쟁터 뒤편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는 실전 의원이다. 점혈 의원(30025)이 한 사람을 섬세하게 다룬다면, 야전 군의는 한 번에 수십 명을 빠르게 분류하고 처치한다. 화려한 기술보다 빠른 판단과 손의 속도가 전부다.

    야전 군의는 정파 편도 사파 편도 들지 않는다. 쓰러진 자 앞에서 그가 어느 편이었는지를 먼저 묻는 야전 군의는 없다. 그래서 가끔 같은 날 정파와 사파 양측에서 동시에 적대와 감사를 동시에 받는다. 강호에서 가장 공정한 자리 중 하나가 야전 군의라는 격언이 여기서 나왔다.

    전장에서 목숨을 거두는 자가 검사라면, 목숨을 돌려주는 자가 야전 군의오. 우리 무사들은 좋은 군의를 옆에 두고 싶은 마음에 전투를 더 열심히 한다는 농담이 있지요. 마부(30020)가 뒤를 지킨다면, 군의는 그 전에 서 있습니다.

    야전 군의 청수(靑手) — 한 시대 강북 대전투 삼 개의 현장을 모두 따라다니며 사망자를 절반 이하로 줄인 것으로 기록된 무인 — 의 일화는 강호 전투 야사보다 이후 의학 서적에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청수는 세 번째 전투가 끝난 새벽, 정파 무림맹 진영에서 치료를 마치고 사파 진영으로 걸어가 거기서도 같은 자세로 치료를 계속했다. 사파 진영의 단주가 "왜 우리 편도 고쳐주느냐"고 묻자, 청수는 "내 손이 한 방향만 일한다면 반쪽짜리 군의오"라고 답했다.

    그 새벽 이후 청수는 강호의 어느 전투에서도 한쪽 편만 치료한 적이 없었으며, 그 자세는 후대 야전 군의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원칙이 되었다. 청수의 약 가방은 지금도 강북 의관 청풍원(淸風院)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정파와 사파 양측의 의뢰서가 나란히 들어 있다.

  • 검리필사장(劍理筆寫匠)

    검결 필사(筆寫) 장인

    검의 이치를 글로 옮겨 새기는 장인

    검결을 베끼는 게 아니라 검결의 호흡을 옮기는 거요. 붓이 아니라 손목으로 검을 쓰는 거지요.

    검결 필사 장인은 강호 각지에 흩어진 검결(劍訣)을 정확하게 베껴 보존하는 전문 장인이다. 단순한 필사가 아니라, 검결에 담긴 호흡의 자리와 필압(筆壓)의 강약까지 옮기는 학자형 무인이다. 검결 해설자(30012)가 이미 있는 검결을 풀어 가르친다면, 필사 장인은 그 검결이 후대에도 원형 그대로 전해지도록 지킨다.

    한 사문의 비급이 사라졌을 때, 필사 장인의 손에 남은 사본이 그 사문 검결의 마지막 증거가 된다. 강호에서는 "문파는 사라져도 검결은 남는다"는 격언이 있는데, 그 격언의 진짜 주인은 사실 필사 장인이다. 장인의 붓은 검보다 오래 간다.

    비급 수집가(30004)가 검결의 가치를 가린다면, 우리 필사 장인은 그 검결이 살아있는 동안 변질되지 않게 지킵니다. 강호의 한 시대가 지나도 검결이 남는 이유는 결국 우리 손목의 굳은살 덕분이지요.

    검결 필사 장인 묵암(墨巖) — 한 시대 강호에서 멸문된 사문 일곱의 검결을 유일하게 보존한 사람으로 기록된 무인 — 의 일화는 강호 서사 야사 중 가장 조용하고 가장 긴 기록에 속한다.

    묵암은 강북 소문파 일곱이 연달아 멸문될 당시, 각 사문의 마지막 제자들로부터 비급을 받아 자기 필사 작업실 청서루(靑書樓) 안에 보관했다. 당시 강호 어느 큰 문파도 그 소문파 검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묵암은 그 검결 일곱을 베끼는 데 칠 년이 걸렸으며, 원본은 각 사문 유일 생존 제자에게 돌려주었다.

    일곱 제자 중 셋은 그 원본을 받아 새 사문을 세웠고, 넷은 떠돌이 검객이 되었다. 묵암의 사본 일곱 권은 청서루 한 자리에 나란히 보관되어 있으며, 강호에서 어느 검결의 원형을 확인하려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자리가 된다.

  • 천하호가인(天下呼價人)

    강호 경매 진행자

    강호의 모든 보물에 가격을 부르는 진행자

    이 자리에서 거짓 값은 한 번만 허용됩니다. 두 번째는 없소.

    강호 경매 진행자는 희귀 비급·영약·명검·강호 정보를 공개 경매 자리에 올리는 전문 중재자다.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가장 높은 값을 낸 자에게 물건을 넘기는 원칙을 지키지만, 그 원칙 안에서도 물건이 잘못된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한 줄 장치를 마련해 둔다. 경매 진행자의 진짜 실력은 경매장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그 경매장을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중립 자리로 만드는 것이다.

    정파와 사파, 어느 쪽이든 경매 진행자의 자리에서 강제로 물건을 빼앗으려다 실패한 이야기가 강호 야사에 꽤 남아 있다. 그 실패의 이유는 대부분 진행자의 검 실력이 아니라 경매장 안에 이미 깔아둔 그물 때문이었다.

    영약 감정인(30014)이 약의 진위를 가린다면, 우리 경매 진행자는 그 약을 누구 손에 넘길지를 마지막으로 조율합니다. 강호 경매 자리는 중립이 생명이오.

    강호 경매 진행자 백락(白樂) — 한 시대 강호 최대 경매장 만보각(萬寶閣)을 이십 년 운영한 무인 — 의 일화는 경매 업계 야사의 절반을 차지한다.

    백락의 경매장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사파 결사 한 단체가 경매 중 검을 뽑아 물건을 강탈하려 한 일이다. 당시 경매장 안에는 정파 측 인사도 여럿 있었기에 결투가 날 뻔했으나, 백락은 경매 진행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 검을 뽑은 자와 정파 인사 사이에 서서 한 줄 말했다. "이 경매장에서 싸우는 자는 다음 경매에 입장할 수 없소."

    그 한 줄이 어찌나 조용하고 무거웠는지, 검을 뽑은 자는 칼집에 검을 다시 넣었다. 경매는 계속되었으며, 그날 경매 기록은 만보각 역사상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 사문일전사(師門一傳師)

    사문 전령 검사

    사문의 모든 전갈을 한 손에 맡는 자

    나는 사문 깃발을 달고 달리지 않소. 다만 이 편지가 닿는 속도만큼 사문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달고 달립니다.

    사문 전령 검사는 문파 본단과 지방 분단 사이를 오가며 중요 문서·명령서·비급을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전문 검사다. 비둘기 전령사(30028)가 작은 편지를 다루는 자라면, 사문 전령 검사는 편지보다 무거운 것들을 몸으로 옮기는 자다. 그 무거운 것 중 가장 무거운 것은 사문 내부의 비밀이다.

    전령 검사는 길에서 빠르고, 결투에서 한 합에 끝내며, 내용물보다 더 말이 없다. 강호에서 어느 사문이 건강한지 알고 싶으면 그 사문 전령 검사의 발자국이 며칠에 한 번 길에 보이는지를 보면 된다고 한다.

    야행 척후(30011)가 정보를 가장 먼저 가져온다면, 우리 전령 검사는 그 정보가 결정으로 바뀐 뒤 가장 빠르게 전달하지요. 경공 사범(30024)에게 배운 발자국 하나가 사문 한 시대의 결재를 이어줍니다.

    사문 전령 검사 단비(短飛) — 한 시대 무림맹 본단과 지방 육 개 분단을 연결하는 전령 결재선의 핵심이었던 무인 — 의 일화는 전령 업계 야사에 발자국 수로 측정된다.

    단비는 무림맹 본단에서 가장 먼 육 번째 분단 가흥문(嘉興門)까지의 거리를 당시 최단 시간인 이틀 반에 주파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기록이 세워진 날은 무림맹 긴급 명령서가 가흥문에 이틀 안에 닿지 않으면 사문 전체가 큰 결투에 휘말릴 상황이었다.

    단비는 정해진 길이 아닌 산을 넘었으며, 도착한 새벽 가흥문 분단장에게 편지를 전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흘 뒤 깨어난 단비가 처음 한 말은 "답신이 왔습니까"였다. 가흥문 분단장은 이미 답신을 보낸 뒤였고, 무림맹의 그 결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비의 짚신 한 켤레는 가흥문 본당 한쪽에 보관되어 있으며, 전령 검사들은 첫 임무 전 그 짚신 앞에서 한 호흡을 늦춘다.

  • 묵향해문관(墨香解文官)

    밀서 해독관

    먹의 향기 속에 숨은 글의 의미를 풀어내는 해독관

    이 종이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소. 하지만 내 손목이 말하는 건 다르오.

    밀서 해독관은 강호 각지에서 오가는 암호 문서·은문자(隱文字)·비밀 결재서를 해독하는 전문 학자형 무인이다. 무공이 뛰어난 자리가 아니라, 강호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아는 자리다. 그만큼 가장 위험하기도 하며, 해독관이 오래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읽은 것을 죽을 때까지 입 밖에 내지 않는 자제력이 가장 중요하다.

    밀서 해독관은 정파와 사파 양쪽의 의뢰를 모두 받기도 하는데, 이 경우 한쪽에서 의뢰받은 내용을 다른 쪽에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목숨을 지키는 방법이다. 강호에서 해독관에게 화를 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내 비밀도 같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객잔 서기(30017)가 손님의 한 줄 사정을 정중히 적는다면, 우리 해독관은 그 사정이 숨겨진 형태로 온 것을 읽어냅니다. 봉인 진법사(30013)가 비급을 봉인한다면, 우리는 그 봉인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를 읽지요.

    밀서 해독관 한석(寒石) — 한 시대 강호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으나 그 비밀 중 단 하나도 발설하지 않고 죽은 것으로 기록된 무인 — 의 일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읽었다고 알려진 문서 목록으로만 전해진다.

    한석은 마흔 해를 해독관으로 일하면서 무림맹·사파·황실·상회의 밀서를 합해 수만 통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죽던 날 강호의 큰 인물들이 한석의 작업실 앞에 모인 것은 유산을 받으러가 아니라 자기 비밀이 어떻게 처리될지를 확인하러였다. 한석의 작업실 청목방(靑木房)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것은 작은 종이 한 장이었으며, 그 종이에는 "읽은 것은 바람으로, 바람은 산으로, 산은 다시 침묵으로"라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그날 한석의 작업실 앞에 모인 큰 인물들 중 몇은 눈물을 흘렸고, 몇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야사는 적는다.

  • 야호경자(夜虎更者)

    표국 야경 초소병

    야밤에 호랑이처럼 깨어 표국을 지키는 초병

    이 초소는 표물이 아니라 밤을 지킵니다. 밤이 안전해야 표물도 안전하오.

    표국 야경 초소병은 표국 본단이나 창고 주변을 야간에 순찰하고 경비하는 전문 무인이다. 표국 행수(30010)가 큰 그림을 그린다면, 초소병은 그 그림이 밤새 흐트러지지 않도록 작은 선 하나하나를 지킨다. 결투 실력이 뛰어난 자리가 아니라, 한 발자국의 소리 차이로 적의 침입을 감지하는 집중력이 가장 중요한 자리다.

    야경 초소병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밤을 가장 잘 보낸 밤으로 여기며, 아무것도 못 봤다는 보고가 가장 좋은 보고라는 사실을 안다. 강호에서 이 직업이 가장 많이 과소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초소병 덕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야행 척후(30011)가 다른 사람의 정보를 가져온다면, 우리 초소병은 우리 자신의 경계를 지킵니다. 달이 밝은 날은 초소를 줄이고 달이 없는 날은 초소를 늘린다는 우리 격언을, 외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요.

    표국 야경 초소병 단목(端木) — 한 시대 강북 대형 표국 금오표국(金烏鏢局)을 이십 년 동안 밤마다 지킨 무인 — 의 일화는 표국 내부 기록에 단 한 줄로 남아 있다: "이십 년간 야간 침입 사례 없음."

    단목이 금오표국을 떠나던 날, 표국 행수가 "이 표국의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단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행수는 웃다가 그 한 줄이 진짜 가장 큰 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목은 은퇴 후 표국 산문 앞 작은 차방에서 차를 굽기 시작했으며, 매일 새벽 금오표국 방향으로 한 번 고개를 돌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금오표국 후대 초소병들은 교대 전 단목의 차방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시는 관습을 이어갔다.

  • 관문일필자(關門一筆者)

    관문 통행 서기

    관문의 통행을 단 한 번의 붓질로 결정하는 서기

    이 관문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건 검이 아니라 이름과 사정 한 줄이오. 그걸 정중히 적어두면 길은 열립니다.

    관문 통행 서기는 강호 각지의 중요 관문에서 통행자의 신원과 사정을 기록하는 행정 무인이다. 강호 정보가 이 한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이며, 그래서 관문 서기의 기록부는 한 시대 강호의 인물 지도가 된다. 겉보기엔 단순한 행정 직책이지만, 강호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자리다.

    서기의 진짜 실력은 통행을 막거나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자를 자연스럽게 지연시키고 중요한 자를 자연스럽게 통과시키는 판단이다. 그 판단이 강호의 한 시즌을 조용하게 만들거나 뒤집는다. 강호에서 가장 많은 권한을 조용하게 가진 자리 중 하나가 관문 서기다.

    객잔 서기(30017)가 객잔에 머무는 자의 사정을 받는다면, 우리 관문 서기는 강호를 이동하는 모든 자의 사정을 받습니다. 같은 직무처럼 보이지만, 관문 한 자리가 객잔 천 곳의 정보를 담지요.

    관문 통행 서기 하랑(霞郞) — 한 시대 강북과 강남을 잇는 주요 관문 청운관(靑雲關)에서 이십오 년을 일한 행정 무인 — 의 일화는 하랑이 작성한 통행 기록부 자체가 야사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하랑의 기록부에는 당대 강호 주요 인물 대부분이 한 번 이상 이름을 남겼다. 하랑은 그 기록에 이름 외에 반드시 "오늘 이 사람의 눈빛"이라는 짧은 감상 한 줄을 추가로 남겼다. 후대 역사가들이 그 기록을 보았을 때, 그 한 줄 감상이 그 사람의 그날 상태를 어찌나 정확하게 묘사했는지 기겁했다고 한다.

    하랑이 이십오 년 기록한 내용 중 가장 많이 되풀이된 한 줄은 "오늘 이 사람은 먼 길에서 방금 온 눈빛이다"였으며, 두 번째로 많은 줄은 "이 사람은 다음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였다. 그 두 번째 예언은 기록된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들어맞았다고 전한다.

  • 진상행수(進上行首)

    진상품 운반 행수

    황실에 올릴 진상품을 운반하는 행수

    황실에 올라가는 짐은 황실이 아니라 짐을 만든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소. 그걸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올리는 게 내 직무요.

    진상품 운반 행수는 황실이나 대형 귀족 가문에 바칠 고급 물품을 안전하게 운반하는 전문 운반 총책이다. 표국 행수(30010)가 강호 길목의 표물을 다룬다면, 진상품 행수는 그보다 훨씬 높은 긴장감과 규격으로 일한다. 흠집 하나가 목숨으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일하는 것이다.

    진상품 행수의 진짜 위협은 도적단이 아니라 자기 팀 안의 부주의다. 그래서 진상품 행수는 도착한 날 짐 상태 확인보다 팀원 상태 확인을 먼저 한다. 팀원의 손이 떨리면 짐이 흔들리고, 짐이 흔들리면 행수의 목이 흔들린다. 이 자리에서는 목숨을 거는 게 당연하기에, 오히려 가장 차분한 사람이 행수가 된다.

    표국 야경 초소병(30044)이 밤을 지킨다면, 우리 진상품 행수는 낮을 지킵니다. 우리 짐은 황실에 닿는 순간 만든 사람의 이름이 됩니다. 그래서 절대로 흐트러질 수 없지요.

    진상품 운반 행수 옥수(玉手) — 한 시대 황실 진상 경로를 삼십 년간 한 번도 사고 없이 완주한 것으로 기록된 무인 — 의 일화는 황실 기록과 강호 야사 양쪽에 남아 있다.

    옥수가 은퇴를 앞둔 마지막 진상 길에서, 운반 도중 팀원 한 명이 실수로 진상품 일부를 손상시켰다. 옥수는 그 자리에서 자기 짐에서 같은 등급의 물품을 꺼내 대신 채웠으며, 황실에 도착해서는 그 사실을 담당 관리에게 직접 보고했다. 그 정직한 보고로 인해 팀원은 처벌을 피했고, 옥수는 황실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옥수는 그 표창을 받은 날 "내가 삼십 년간 사고 없이 온 이유는 팀원을 믿었기 때문이오. 처음 사고가 난 것도 마지막 길에 처음 의심했기 때문이오"라고 말했다. 황실 표창은 옥수의 집 한쪽에 걸렸고, 그 옆에는 실수를 한 팀원이 보내온 사과 편지가 나란히 걸렸다.

  • 천목수목인(千木修木人)

    무관 목검 장인

    천 그루 나무 중에서만 목검 재료를 가려내는 장인

    좋은 목검은 한 어린 제자가 검결 한 줄을 다치지 않고 익힐 수 있게 깎는 거요. 명검은 나중에 깎아도 됩니다.

    무관 목검 장인은 강호 길목 무관에서 수련에 쓰는 목검을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이다. 진검이 아니라 목검을 만들기에 무기 장인 중 가장 낮게 여겨지지만, 무관의 첫 세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사실 목검 장인이다. 명문 사문의 위대한 검객들이 첫 검결을 익힌 것은 진검이 아니라 목검 위에서였다.

    목검 장인의 자부심은 자기가 만든 목검이 다음 세대의 어린 검사 손에 쥐어진다는 것이다. 그 목검이 수백 번 쓰이고 닳아 새 것으로 교체될 때, 장인은 그것을 성공이라 부른다. 암기 장인(30023)이 기예품을 만든다면, 목검 장인은 가장 많이 쓰이고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을 만든다.

    무관 잡역(30027)이 연습 검을 정리하고, 우리가 그 연습 검을 만들지요. 강호 최고 검황도 목검 한 자루로 첫 호흡을 익혔을 것입니다. 검황(30031)의 첫 목검이 우리 손에서 나왔을 수도 있는 일이지요.

    무관 목검 장인 한목(韓木) — 한 시대 강호 각지 무관에 목검을 납품하며 평생을 나무 깎는 일로만 보낸 장인 — 의 일화는 그가 만든 목검의 숫자로 기억된다.

    한목이 평생 만든 목검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가 은퇴하던 해 강호 각지 무관 사범들이 보내온 편지에는 한 가지 공통된 한 줄이 있었다. "우리 제자들이 처음 쥔 목검이 선생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목은 그 편지들을 받아 작업실 벽에 나란히 붙였다. 작업실 벽이 편지로 가득 찬 날, 한목은 마지막 목검 한 자루를 깎아 자기 집 마당에 세웠다. 그 목검 옆에는 작은 종이 하나가 있었는데, "이 목검은 아직 쓸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마을 아이들이 그 목검을 가져갔으며, 한목은 그것을 보고 웃었다.

  • 강호채인(江湖債人)

    강호 빚쟁이

    강호의 모든 빚을 끝까지 받아내는 자

    빚 받는 일이라고요? 아니오. 이건 강호에서 가장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이오.

    강호 빚쟁이는 강호 각지에서 무림맹·표국·상회를 대신해 밀린 채무를 회수하는 자다. 무공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사정을 읽는 눈치와 기다릴 줄 아는 인내다. 강제로 빼앗으면 한 번이지만, 기다려서 받으면 관계가 남는다는 철학을 가진 자들이다.

    강호 빚쟁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조금만 기다려 주오"이고, 가장 자주 하는 일은 그 조금을 실제로 기다리는 것이다. 강호에서 빚쟁이는 욕을 먹는 자리지만, 강호의 경제를 실제로 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강호 길목 객잔 점소이(30030)가 차를 나르듯, 빚쟁이는 돈을 나른다. 둘 다 강호의 기름이다.

    강호 약장수(30029)가 약을 팔며 한 끼를 버는 것처럼, 우리 빚쟁이도 강호의 신용을 이어주며 먹고삽니다. 욕을 먹는 자리지만, 우리가 없으면 표국도 상회도 반 년을 못 버티지요.

    강호 빚쟁이 노을(老乙) — 한 시대 강북 길목 무림맹 산하 상회의 채무 회수를 십오 년 담당한 무인 — 의 일화는 빚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돈을 쓰고 온 이야기로 가장 유명하다.

    노을은 강북 작은 마을의 채무자 한 가족을 찾아갔다가, 그 집의 농사가 석 달째 가뭄으로 망한 상황을 발견했다. 노을은 빚 독촉 편지를 전하는 대신 자기 노잣돈 절반을 빌려준 뒤, 가뭄이 끝나고 나서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상회 측은 노을이 제대로 일을 못 했다고 화를 냈으나, 반 년 뒤 그 가족은 빚 전부와 노을이 빌려준 돈까지 이자를 붙여 갚았다. 그것이 상회 역사에서 가장 높은 회수율로 기록되었다. 노을은 이후에도 같은 방식을 고수했으며, 그 방식이 강호 빚쟁이 업계 안에서 가장 무거운 교훈으로 남았다.

  • 일교수자(一橋守者)

    다리 지기

    다리 하나, 그 자리를 지키는 자

    이 다리는 넘어가는 게 아니라 건너는 것이오. 급히 뛰는 사람은 다리 중간에서 한 번 멈춰 강을 내려다보시오.

    다리 지기는 강호 길목의 큰 다리를 관리하고 통행료를 받으며, 다리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할하는 자다. 강호 길목의 다리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정파와 사파, 떠돌이와 상인, 전령과 피난민이 모두 지나가는 교차점이다. 그래서 다리 지기는 강호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자리 중 하나다.

    다리 지기가 보는 강호는 길에서 보는 강호와 다르다. 급히 지나가는 자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 발걸음의 무게만으로 오늘 강호가 어떤지를 안다. 결투도 없고 대단한 무공도 없는 자리지만, 강호의 흐름 자체를 읽는 눈은 어느 군사나 판관보다 정확하다.

    마부(30020)가 길을 따라 짐을 나른다면, 우리 다리 지기는 그 길이 시작되는 자리를 지킵니다. 강호가 조용한 날은 다리 위도 조용하고, 강호가 뒤집히는 날은 다리 위에서 먼저 느껴지지요.

    다리 지기 강만(江晩) — 한 시대 강남 가장 큰 강 남천(南川)을 가로지르는 대교(大橋) 남천교 위를 삼십 년 지킨 평민 — 의 일화는 다리 지기 중 가장 많이 회자된다.

    강만은 삼십 년 동안 남천교를 지나간 모든 사람의 발걸음을 기억하지 못했으나, 한 가지만은 정확히 기억했다. 급히 지나가던 사람 중 몇이 다리 중간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강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중요한 결단 앞에 선 자들이었으며, 강을 내려다본 뒤 발걸음이 달라졌다.

    강만은 다리 중간 난간에 작은 표지판 하나를 걸어두었는데, "한 번 멈추고 강을 보시오"라는 한 줄이었다. 그 표지판을 보고 멈춘 사람 중 몇이 돌아와 강만에게 차 한 잔을 청했으며, 강만은 늘 다리 옆 작은 솥에 차를 끓여 두었다. 남천교의 그 솥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걸려 있다고 전한다.

  • 강호유도객(江湖誘導客)

    강호 길도사

    강호 길목마다 떠도는 자에게 길을 가르치는 자

    길을 물으시오? 어디서 왔느냐에 따라 대답이 다르오.

    강호 길도사는 특정 사문도 문파도 없이 강호 각지 길목에서 방향과 사정을 알려주는 평민 출신 안내자다. 지도도 있고, 강호 길목의 지름길도 알고, 어느 마을에 가면 가장 좋은 객잔이 있는지도 안다. 강호의 큰 일들과는 거리가 멀지만, 강호를 실제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다.

    길도사는 무공이 없어도 사파의 공격을 거의 받지 않는다. 공격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사파도 길을 모를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강호 모든 세력의 절충점에 있는 직업이 사실 길도사다. 가끔 길도사의 방향 한 줄이 강호의 큰 결투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의도하지 않게.

    떠돌이 무사(30005)가 강호를 흘러다닌다면, 우리 길도사는 강호가 흘러가는 방향을 알려줍니다. 객잔 점소이(30030)가 강호 안에서 길을 잇는다면, 우리는 강호 밖 길목에서 첫 방향을 잡아주지요.

    강호 길도사 하풍(霞風) — 한 시대 강호 중원 길목 전체를 발로 걸어 지도를 만들었다는 전설적 길도사 — 의 일화는 그가 만든 지도가 강호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으로 시작한다.

    하풍은 길목마다 작은 표지석을 세우고 그 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방향과 거리를 새겼다. 그 표지석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려졌으며, 강호 각지의 평민들이 그 표지석을 보고 처음으로 낯선 길을 혼자 걸었다.

    하풍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세운 표지석은 강호 길목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길을 잃는 장소에 있었으며, 그 위에는 방향 대신 한 줄만 새겨져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 번 되돌아보시오." 그 표지석은 지금도 강호 어딘가 길목에 있다고 전해지며, 길도사들은 그 표지석을 찾는 것이 첫 번째 수련이라 여긴다.

Créer mon personn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