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Fantasy

좀비아포칼립스

150 شخصيات

أيّ عالَم هذا؟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달라졌어요. 도시의 불이 꺼지고, 마트 선반이 텅 비고, 거리에는 사람 대신 다른 존재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낡은 학교나 공장 주변에 담을 두르고 '거점'을 만들어 서로를 지켜냈어요. 이 이야기는 그 거점들이 부서지고, 세워지고, 다시 이어지는 묵직한 세계에서 시작돼요.

거점 안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요. 군복을 입고 외벽을 지키는 거친 사내도 있고, 낡은 트럭에 통조림을 가득 싣고 거점 사이를 오가는 수집가도 있어요. 서로 맘이 잘 맞는 동료와는 목숨을 걸고 함께 움직이지만, 배신이 도사리는 자리에서는 냉정하게 등을 돌리기도 한답니다. 거점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비결은 총 솜씨가 아니라, 동료의 이름을 끝까지 기억하는 일이에요.

이 세계엔 무전기 한 대로 목숨이 오가는 긴장감이 있고, 통조림 한 박스가 며칠치 식량을 좌우하는 현실감이 있어요. 폐허가 된 도시에서 낡은 군용 차량이 털털거리며 달리고, 다음 거점까지 살아 도착해야 한다는 시간이 어깨를 짓누른답니다. 거칠고 투박한 사내들 사이에서 가끔 터지는 한마디 농담이, 오히려 그 세계를 조금 더 버티게 해 줘요.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묵직한 생존 서사가 이 세계의 진짜 재미예요.

너라면 이 세계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거점 전체를 통치하는 강한 우두머리도 있고, 폐허를 홀로 누비며 식량을 모아오는 수집가도 있고, 무전기 하나로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병도 있어요. 어떤 자리에 서더라도 그 이름 하나하나가 거점의 다음 한 끼를 살리는 무게를 갖고 있답니다. 자, 이제 거점 정문을 열어볼까요?

إعداد العالم

좀비 바이러스로 인류 90%가 무너진 폐허 세계. 거점·약탈자·무리·정부 잔여 세력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كلمات مفتاحية لهذا العالم

  • 거점
  • 좀비
  • 무리
  • 약탈
  • 통조림
  • 백신
  • 무전기
  • 폐허
  • 군용
  • 의리

ساكنو هذا العالم

  • 최후생존군주(最後生存君主)

    생존자 군주

    감염 시대의 마지막에 남은 생존자들을 거느리는 군주

    거점 안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다 외운다. 그게 권총보다 더 무거운 무기다.

    생존자 군주는 폐허가 된 세계에서 큰 거점 한 곳을 통째로 통치하는 우두머리로, 그 거점 안 수백 명의 식수·식량·치안·법을 손에 쥐고 있다. 외형은 군용 잠바와 단단한 부츠, 허리춤에 권총 한 자루가 표준이다. 그가 거점 정문 앞에 서 있으면 새로 들어오려는 생존자들의 발걸음이 자기도 모르게 느려진다.

    본인은 한때 평범한 회사원·군인·소방관이었지만, 첫 번째 큰 사태에서 자기 가족을 잃은 뒤 거점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거점 안 모든 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본다. 군주의 진짜 무서움은 권총이 아니라, 거점 안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를 모두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군주들이 임명 첫 주에 정문 옆 작은 명패 하나를 한 번 들여다보러 가는 데는 이유가 있소. 사람을 잊지 않는 자만이 사람을 지킨다는 뜻이지요.

    초대 송정거점 군주 한도경 — 송정거점(京畿 외곽 옛 학교 부지를 통째로 둘러친 큰 거점) 의 첫 주인이자 평생 권총을 단 두 번만 뽑은 자 — 의 일화는 거점장들 사이에서 '명부 두 권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삼 년 차 어느 새벽, 약탈자 결사 흑호단(京畿 외곽 도로를 사 년간 휘두른 무리)이 송정거점 정문을 새벽 두 시에 두드렸다. 한도경은 외벽 위 보초의 한 줄 호각을 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권총 대신 거점 명부 두 권을 들고 정문 위 망루로 올라갔다. 그는 흑호단 두목 천기복(亡命 전 옛 군 부사관 출신)에게 정문 너머로 명부 한 권을 던져 주며 "이 안에 자네 옛 동네 사람이 일곱 명 있다. 이름을 한 번 보고 가게"라고 말했다. 천기복은 명부 일곱 줄을 읽다 두 줄째에서 손이 굳었고, 새벽이 밝을 때까지 명부를 정문 앞에 둔 채 무리를 돌려 세웠다. 한도경은 그 명부를 정문 옆 작은 유리관에 그대로 두었으며, 그 자리는 지금도 송정거점 정문 옆에 남아 있다.

    후대 거점 군주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명패를 한 번 들여다보고 자기 권총을 그 옆에 한 시진 풀어두는 관례를 따른다.

  • 시체사냥검(屍體狩獵劍)

    좀비 슬레이어

    썩어가는 시체 무리를 베어내는 한 자루의 검

    작전 전에 동료 가족 사진은 보지 마라. 봤다 못 돌아오면 너 자신이 더 아프다.

    좀비 슬레이어는 거점에서 좀비 무리 토벌을 전담하는 정예 사냥꾼이다. 일반 정찰병보다 훨씬 공격적이며, 외곽 폐허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 거점 인근의 좀비 인구를 줄이는 임무를 받는다. 외형은 너덜한 군복, 한 손에는 도끼·다른 손에는 산탄총이 표준 장비다.

    본인은 동료 한 명 한 명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좀비 슬레이어의 평균 수명이 거점에서 가장 짧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작전 전 절대 동료의 가족 사진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살아 돌아오면 다 같이 한 잔, 못 돌아오면 그 한 잔을 다음 작전조에 남긴다. 그게 슬레이어들 사이의 가장 오래된 의식이다.

    우리 슬레이어실 한쪽에는 '돌아오지 않은 한 잔' 선반이 있소. 거기에 잔이 비는 날은 없습니다. 그게 슬레이어가 다음 새벽을 견디는 한 줄이지요.

    송정거점 사대 슬레이어반장 마진우 — 외곽 작전 사십팔 회를 끌어가며 부하 한 명도 잃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슬레이어들 사이에서 '한 잔 도끼의 새벽'으로 통한다.

    마진우는 옛 화성고가도로(送亡 사태 직전 무너진 京畿 외곽 고가) 위 좀비 무리 천 마리를 토벌하는 작전 직전, 부하 신참 슬레이어 하태식의 외투에서 어린 딸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그는 그 사진을 작전 전 도끼 자루 아래 작은 천에 싸서 자기 외투 안주머니에 옮겨 두었고, 하태식에게는 작전 끝까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작전 새벽 마진우는 무리 한가운데서 도끼를 휘두르는 동안에도 그 외투 안주머니 한 줄을 평생 잊지 않으려 했고, 무리가 흩어진 새벽 그는 사진을 정중히 하태식에게 돌려주었다. 하태식은 그날 처음으로 작전 후 한 잔의 의식 자리에 자기 잔을 비우는 대신 마진우의 잔에 따라 주었다.

    그날 이후 슬레이어실 한쪽에는 '돌아오지 않은 한 잔' 선반이 만들어졌고, 살아 돌아온 자가 잔을 비우는 대신 따라 주는 의식이 정착되었다. 마진우의 도끼 자루 아래 그 작은 천 한 조각은 지금도 그 선반 가장 윗줄에 놓여 있다.

  • 거점방어장(據點防禦將)

    거점 사령관

    거점의 외벽과 사람을 함께 지키는 사령장

    외벽 위 보초의 작은 기침 소리가 내 알람이다. 알람이 울리면 잠도 깬다.

    거점 사령관은 한 거점의 군사적 방어를 총괄하는 직책이다. 군주가 거점 전체를 통치한다면, 사령관은 외벽·게이트·순찰 라인을 책임진다. 본인은 군 출신이 많고, 그래서 거점 안에서 가장 빨리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드는 자다.

    외벽 한 군데가 무너지면 그가 가장 먼저 그 자리에 도착하고, 외부에서 새 무리가 다가오면 그가 가장 먼저 무전을 받는다. 거점 사람들은 그를 "잠을 안 자는 사람"이라 농담하지만, 사실 그는 매일 새벽 두 시간 정도 작은 방에서 토막잠을 잔다. 그 토막잠을 깨우는 것은 알람이 아니라, 외벽 위 보초 한 명의 작은 기침 소리다.

    사령관실 책상 위에 작은 호각 하나가 평생 놓여 있는 자리가 있소. 그 호각은 한 번도 분 적이 없습니다. 그게 사령관이 잠 못 자는 진짜 이유지요.

    산음거점(忠淸 옛 댐 옆 콘크리트 시설을 통째로 둘러친 중형 거점) 이대 사령관 변기홍 — 거점 외벽이 큰 무리에 두 번 뚫리는 동안 한 번도 본인 토막잠 자리를 옮기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사령관들 사이에서 '한 호각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오 년 차 어느 새벽, 외벽 동쪽 망루의 어린 신참 보초 노태근이 야간 시야 속 거대 무리(약 사백 마리 추정)를 발견하고도 호각을 불지 못한 채 작은 기침만 한 번 했다. 변기홍은 그 한 줄 기침으로 토막잠 자리에서 일어나 외벽 동쪽 보강 작업을 새벽 두 시간 안에 끝냈고, 무리는 외벽을 뚫지 못한 채 새벽에 흩어졌다. 변기홍은 그날 새벽 노태근에게 호각을 불지 못한 이유를 묻지 않고, 자기 사령관실 책상 위에 그 호각을 한 자루 옮겨 두었다. 그 호각은 평생 한 번도 불지 않은 채 변기홍의 책상에 놓여 있었으며, 그가 임기를 마친 뒤에도 다음 사령관 책상 위로 한 줄로 옮겨졌다.

    후대 산음거점 사령관들은 임명 첫 주에 그 호각 옆에 자기 토막잠 시간표를 한 줄 적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노태근은 이후 외벽 보초의 호각 사용법을 슬레이어실 신참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

  • 외곽수색웅(外郭搜索雄)

    외곽 정찰병

    거점 바깥의 위험을 가장 먼저 살피는 정찰의 영웅

    동료의 죽음은 무전으로 보내지 않는다. 종이쪽지 한 장이 더 정확하다.

    외곽 정찰병은 거점 외곽으로 멀리 나가 좀비 무리의 이동·약탈자 동향·도로 상태를 보고하는 자다. 외형은 가벼운 위장복, 작은 라이플, 등에 메는 무전기 하나가 표준이다. 정찰병은 며칠을 외곽 폐허에 혼자 머물며, 그동안 거점에 보내는 무전 한 줄이 거점 사람들의 한 끼를 좌우한다.

    본인은 이미 외곽에서 자기보다 먼저 죽은 동료들의 무전 신호 패턴을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부 무전이 끊기면, 거점 사령관보다 정찰병 본인이 먼저 그 동료의 죽음을 알아챈다. 그 사실은 절대 무전으로는 보내지 않고, 거점에 돌아와서 작은 종이쪽지 한 장으로 사령관에게 건넨다. 외곽의 진짜 정보는 무전이 아니라, 그 종이쪽지에 있다.

    정찰병실 첫 사물함에는 늘 빈 종이쪽지 한 묶음이 한 줄로 놓여 있소. 그 묶음의 두께가 곧 그해 외곽 한 시즌의 무게입니다.

    평촌거점(京畿 남쪽 옛 산업단지를 둘러친 중형 거점) 삼대 정찰반장 윤도서 — 외곽 단독 정찰 칠십이 회를 끌어가며 본인 종이쪽지를 평생 사령관 책상 위에만 올린 자 — 의 일화는 정찰병들 사이에서 '여섯 줄 사선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칠 년 차 어느 가을 외곽 작전 중, 윤도서는 동료 정찰병 하지운(평촌거점 출신, 두 아이의 아빠)의 무전 호흡이 갑자기 한 박자 길어지는 것을 송수신기 너머로 들었다. 그는 그 한 박자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챘으나, 무전으로 한마디도 답하지 않고 평촌거점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종이쪽지 한 장에 사선 한 줄만 그어 두었다. 거점 무전실에는 그 사이 하지운의 무전이 끊겼다는 한 줄 기록만 남았으며, 사령관 우경철은 윤도서가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종이쪽지 한 장을 받아들고 가족에게 직접 알렸다. 윤도서는 평생 그 종이쪽지를 자기 사물함 첫 칸에 한 묶음으로 모아 두었으며,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사선 여섯 줄이 그어졌다.

    후대 평촌거점 정찰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그 사물함 첫 칸을 한 번 들여다보고 자기 첫 종이쪽지 한 장을 그 위에 한 줄 더해 두는 관례를 따른다. 하지운의 두 아이는 이후 평촌거점 짐꾼 견습으로 자라났다.

  • 통조림수집인(罐詰收集人)

    통조림 수집가

    남은 식량 한 통을 위해 폐허를 뒤지는 자

    어느 마트, 어느 창고를 언제 털었는지 — 다 메모장 안에 있다. 흥정은 거점장보다 내가 잘한다.

    통조림 수집가는 폐허가 된 도시·마트·창고를 뒤져 통조림·라면·생수·약품을 모아 거점에 납품하는 떠돌이 직군이다. 정찰병과 달리 전투력이 낮은 경우가 많고, 약탈자·좀비 무리를 모두 피해 다닌다. 외형은 낡은 가방, 한 손에는 작은 손도끼, 다른 손에는 메모장이 표준이다.

    그가 어느 마트의 어느 창고를 언제 마지막으로 털었는지는 본인 메모장에만 적혀 있어, 거점에서 가장 흥정 잘하는 직업이다. 통조림 한 박스가 며칠치 식량인지를 거점장보다 더 정확히 안다. 그래서 거점 사람들은 가끔 군주보다 통조림 수집가에게 먼저 인사한다. 폐허에서의 진짜 권력은 라이플이 아니라, 다음 끼니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의 메모장이다.

    수집가 메모장 첫 페이지에는 늘 한 가게 이름이 적혀 있소. 그 가게는 평생 한 번도 털지 않는 가게입니다. 그게 수집가의 한 줄 양심이지요.

    떠돌이 통조림 수집가 김반석 — 京畿·忠淸·全北 옛 도시 마트 일흔두 곳을 사 년간 단신으로 도는 자 — 의 일화는 거점 군주들 사이에서 '한 가게 첫 페이지의 약속'으로 통한다.

    사태 사 년 차 어느 겨울 김반석은 옛 본인 동네 작은 가게 '운암슈퍼(全北 익산 옛 자기 집 앞 작은 동네 슈퍼)' 셔터 앞에 도착했고, 셔터 안 통조림 마흔두 캔과 라면 일곱 박스를 메모장에 한 줄로 적어 두었다. 그는 셔터를 한 번도 열지 않은 채 그 앞에 깨끗한 작은 돌 하나만 두고 다음 도시로 향했으며, 메모장 첫 페이지에는 운암슈퍼 한 줄과 함께 "이 가게는 안 털음 — 박씨 어르신 가게"라는 한 줄이 평생 남았다. 박씨 어르신은 사태 직전 김반석의 어린 시절 사탕을 외상으로 그어 주던 동네 노인이었고, 그 셔터는 사태 첫 날 노인이 닫고 들어간 채 그대로였다. 김반석은 그 가게 한 곳을 평생 손도끼 한 번 대지 않은 채 메모장 첫 페이지에만 남겼으며, 다른 수집가들에게도 그 좌표만은 절대 팔지 않았다.

    후대 통조림 수집가들 사이에는 메모장 첫 페이지에 자기 옛 동네 한 가게 한 줄을 평생 남겨 두는 관례가 생겼다. 운암슈퍼 셔터 앞 작은 돌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 폐허제왕(廢墟帝王)

    폐허 대왕

    무너진 도시 위에 군림하는 종말의 제왕

    거점 셋이 무너졌고 넷째가 내 발치에 도장을 찍었다. 도장이 권총보다 무거운 시대다.

    폐허 대왕은 한 거점이 아니라 여러 거점을 한 줄로 묶어 통제하는 후기 종말 시대의 정점 우두머리다. 외형은 낡은 군용 코트, 어깨에 거점 연합 표식, 허리에 권총과 작은 무전기, 한 손에 거점 인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거점의 평소 식수량·옛 분기 식량 결재·금기 거래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군주들이 그 앞에서 인장 한 번을 받기 위해 며칠을 줄 서며, 그 한 줄 인장이 거점 한 곳의 한 시즌 식수를 결정한다. 본인은 큰 좀비 무리보다 거점 간 분쟁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백신이 아니라, 작은 거점 한 곳의 우물 한 줄 보수 인장 위에 있다. 폐허의 진짜 통치는 라이플이 아니라, 다음 우물의 위치를 외운 자의 인장이다.

    대왕의 인장은 큰 결재 위에 찍히는 게 아니오. 마지막 한 줄 우물 한 칸 보수 위에 찍히는 게 가장 무겁지요. 그게 폐허 통치의 한 호흡입니다.

    초대 중부연합 폐허 대왕 정인호 — 사태 십이 년 차 京畿·忠淸 일곱 거점을 한 줄로 묶어낸 자 — 의 일화는 거점 군주들 사이에서 '용두거점 우물 한 칸의 인장'으로 통한다.

    사태 십삼 년 차 어느 봄, 용두거점(忠淸 옛 폐광 입구를 둘러친 작은 거점) 우물 단 한 칸이 무너져 거점 사십 명의 한 시즌 식수가 끊긴 일이 있었다. 큰 거점 두 곳의 군주가 같은 날 정인호 앞에 다른 결재 — 큰 백신 호송 노선 변경, 옛 도로 게이트 이전 — 를 들고 줄을 섰지만, 정인호는 두 결재를 모두 한 시진 미루고 작은 우물 한 칸 보수 인장에 먼저 사인했다. 그는 보수 작업조 신참 한 명에게 자기 인장을 직접 들려 보내며 "이 인장은 우물 위에 찍는 게 아니라, 첫 한 잔 물 위에 찍는 것이다"라고 한 줄 일렀다. 사흘 뒤 용두거점 첫 한 잔의 물이 다시 길어졌고, 정인호는 그 물 한 잔을 먼저 마신 뒤에야 큰 거점 결재 두 줄에 사인했다.

    후대 중부연합 대왕들은 임명 첫 주에 용두거점 우물 한 칸 옆에 자기 인장을 한 시진 풀어두는 관례를 따른다. 그 우물 옆 작은 돌에는 지금도 정인호의 한 줄 인장 자국이 남아 있다.

  • 백신호송장(疫苗護送將)

    백신 호송단장

    마지막 백신을 손에 쥐고 호송단을 이끄는 장수

    이 트럭 한 대가 거점 셋을 살린다. 그래서 운전대는 내가 잡는다. 사고 나면 내 잘못이어야 하니까.

    백신 호송단장은 정부 잔여 세력 또는 거점 연합이 어렵게 만든 백신·항생제·인슐린을 거점에서 거점으로 옮기는 호송 작전의 총책임자다. 외형은 군용 잠바, 어깨에 호송 표식 망토, 허리에 권총과 작은 무전기, 한 손에 운송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도로의 평소 좀비 무리 분포·옛 약탈자 매복 자리·금기 야간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백신 한 박스가 폐허에서 가장 비싸게 사고팔리는 물건이라, 약탈자 두목 셋이 같은 트럭을 동시에 노리는 일도 잦다. 그래서 호송단장은 출발 전 늘 직접 운전대를 잡고, 부하들 가족에게 돌아갈 길의 한 줄 약속을 적어 둔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호송 작전이 아니라, 신생 거점 한 곳에 처음 내려놓는 백신 한 박스의 인수 사인 위에 있다.

    호송단장의 한 줄 사인은 백신 박스 위에 적히는 게 아닙니다. 거점 첫 신생아 한 명의 첫 호흡 위에 적히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운전대를 안 놓습니다.

    중부연합 사대 백신 호송단장 강태혁 — 京畿·忠淸 호송 노선 백사십 회를 끌어가며 백신 박스 한 점도 잃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호송단장들 사이에서 '안성 갈림길의 한 자루 권총'으로 통한다.

    사태 구 년 차 어느 새벽, 강태혁은 안성옛로(京畿 안성 옛 국도 한 줄 갈림길) 매복에서 약탈자 두목 셋의 합동 공격에 동시에 직면했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부하 호송조 일곱에게 "트럭은 내가 끌고 너희는 백신 박스만 등에 메고 갈림길 오른쪽 작은 산길로 흩어져라"고 명했고, 자기 권총 한 자루를 부하 신참 호송병 안태진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강태혁은 트럭 한 대를 미끼로 갈림길 왼쪽으로 끌고 가며 약탈자 셋을 동시에 묶었고, 안태진은 백신 박스 한 개를 등에 멘 채 새벽이 밝을 때까지 산길을 걸어 신생 거점 청양터(忠淸 산속 갓 세워진 작은 거점) 의무관에게 인수했다. 강태혁은 그날 트럭과 함께 행방불명되었고, 안태진의 첫 인수 사인이 청양터 명부 첫 줄에 적혔다.

    후대 호송단장들은 임명 첫 주에 안성옛로 갈림길 오른쪽 작은 돌 앞에 자기 권총 한 자루를 한 시진 풀어두는 관례를 따른다. 청양터에서 그 백신을 처음 맞은 신생아 윤소희는 이후 거점 의무관 견습으로 자라났다.

  • 약탈군두(掠奪群頭)

    약탈자 두목

    굶주린 약탈자들을 거느리는 폭력의 두목

    우린 거점에 안 들어간다. 들어가는 순간 약탈자가 아니라 식구가 되거든. 식구는 약탈을 못 한다.

    약탈자 두목은 거점에 속하지 않은 채 폐허 도로 위에서 호송차·정찰조·신생 거점을 노리는 무리의 우두머리다. 외형은 너덜한 가죽 잠바, 어깨에 두목 표식 천, 허리에 권총 두 자루와 산탄총, 한 손에 무전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도로의 평소 호송 시간표·옛 거점 보초 교대 시각·금기 매복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약탈자 두목들 사이에는 의외로 엄격한 규칙이 있어, 아이가 탄 차와 의무관 호송차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본인도 첫 사태에서 거점에 들어가지 못해 떠돌게 된 자라, 거점 군주를 미워하지만 거점 안 가족 사진을 가장 오래 보관한다. 폐허의 진짜 무서움은 약탈자가 아니라, 약탈자가 한때 평범한 가장이었다는 사실이다.

    두목 잠바 안주머니에는 늘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소. 그 사진을 본 부하는 그날부로 두목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게 폐허 도로의 한 줄 의리지요.

    황량단(京畿 남단 옛 고속도로를 사 년간 휘두른 약탈자 결사) 삼대 두목 박만재 — 거점에 평생 들어가지 못한 채 호송 트럭 일흔두 대를 멈춘 자 — 의 일화는 약탈자들 사이에서 '아기 울음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육 년 차 어느 새벽, 박만재는 안중옛도(京畿 안중 옛 산업도로 한 줄) 위에 멈춘 작은 픽업 한 대를 매복 끝에 둘러쌌다. 그는 운전석 옆자리에서 어린 아기의 울음 한 소리를 듣고는 부하 일곱에게 산탄총을 내리라고 한마디 명했고, 자기 잠바를 벗어 픽업 짐칸 위에 올려 두고 길을 비켜 주었다. 픽업 운전자는 거점에 막 도착한 신참 의무관 견습 한지운(평촌거점 출신, 갓 결혼한 자) 이었고, 그날 새벽 한지운은 박만재의 잠바 안주머니에서 어린 여자아이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한지운은 그 사진을 평촌거점 의무실 한 칸에 평생 보관했고, 박만재는 그 잠바 한 벌을 평생 다시 입지 못한 채 다른 잠바로 평생을 버텼다.

    후대 황량단 두목들은 새 잠바 안주머니에 자기 옛 가족 사진 한 장을 옮겨 두는 관례를 따른다. 박만재의 옛 어린 딸은 사태 첫 날 京畿 평택 옛 아파트에서 행방불명된 박해민 — 박만재가 평생 찾아 헤맨 단 한 사람 — 이었다.

  • 감염치유사(感染治癒師)

    거점 의무관

    감염된 자에게 마지막 약을 건네는 의무관

    물려도 한 시간 안에 오면 살릴 가능성이 있다. 두 시간 지나면 격리실로 모셔야 한다. 그게 의무관의 일이다.

    거점 의무관은 한 거점의 의료 전체를 책임지는 자로, 감염 초기 환자·외상·골절·산모를 모두 한 손으로 본다.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적십자 표식, 허리에 작은 의료 가방과 격리 결재 도장, 한 손에 청진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환자의 평소 감염 진행 시간·옛 분기 처치 결재·금기 약품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장 무거운 직무는 큰 수술이 아니라, 감염이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한 환자를 격리실로 정중히 모셔 보내는 한 줄 결재다. 그래서 거점 의무관은 평생 결재 도장 든 손목의 굳은살이 청진기 든 손목보다 더 진하다. 본인은 그 굳은살을 거점 사람들에게 절대 보이지 않는다.

    의무관실 한 칸에는 늘 작은 손목 시계 하나가 멈춰 있는 자리가 있소. 그 시계 한 줄이 의무관 평생 손목의 한 호흡을 결정합니다.

    평촌거점 사대 의무관 우현재 — 평촌거점 의무실 한 칸을 십이 년 끌어가며 격리 결재 일흔두 줄을 손수 그어낸 자 — 의 일화는 의무관들 사이에서 '한 시간 십삼 분의 시계'로 통한다.

    사태 팔 년 차 어느 가을, 우현재는 외곽 작전 끝에 정찰병 김도윤(평촌거점 신참 정찰병, 두 살 아들의 아빠) 이 외벽 정문에서 쓰러지는 것을 받아 의무실 침상에 옮겼다. 김도윤의 손목 물린 자국 옆 시계는 한 시간 십삼 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고, 우현재는 한 시간 사십칠 분간 모든 처치를 한 손으로 끌어갔다. 두 시간이 지난 새벽 우현재는 결국 격리실 결재 도장을 들었으나, 마지막 한 호흡 전 김도윤이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우리 아들 이름 한 번만 불러 주세요"라고 청했다.

    우현재는 결재 도장을 든 손으로 김도윤의 손목 시계를 한 번 멈춘 뒤 아들 이름 김태유를 한 줄 정중히 부르고서야 한 줄 결재를 끝냈다. 그 시계는 그날 이후 의무관실 한 칸 작은 자리에 그대로 멈춘 채 놓여 있으며, 우현재는 평생 그 시계를 다시 감지 않았다. 김태유는 이후 평촌거점 짐꾼 견습으로 자라났다.

  • 강철궤수사(鋼鐵軌修師)

    군용 차량 정비반장

    녹슨 군용 차량을 다시 굴리는 정비의 장인

    이 트럭은 다음 호송에 안 나갑니다. 베어링 소리가 잘못됐어요. 단장 말고 베어링이 결재합니다.

    군용 차량 정비반장은 거점의 모든 군용 트럭·픽업·바이크·발전기를 평생 책임지는 자로, 호송 작전의 진짜 사령관은 그라는 농담이 있다. 외형은 기름 묻은 작업복, 어깨에 공구 가방, 허리에 작은 권총과 멀티툴, 한 손에 정비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차량의 평소 베어링 소리·옛 분기 정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호송단장이 출발 결재를 받으려 해도 정비반장의 한 줄 사인이 없으면 트럭이 정문을 못 나간다. 본인은 부품을 한 번도 새것으로 받아본 적이 없으며, 폐허 마트에서 뜯어 온 부품으로 평생 트럭을 굴린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엔진이 아니라, 신참 운전병이 처음 뽑아 가는 픽업의 타이어 압력 사인 위에 있다.

    정비반장의 사인 한 줄은 큰 엔진 위에 있는 게 아니오. 신참의 첫 타이어 압력 위에 있지요. 그게 거점 한 시즌의 한 호흡입니다.

    송정거점 이대 정비반장 노승근 — 송정거점 정비고 한 칸을 십 년 끌어가며 트럭 한 대도 노상 고장으로 세우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정비반장들 사이에서 '두 번째 베어링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칠 년 차 어느 새벽, 호송단장 강태혁(앞서 안성 갈림길 일화의 단장)이 큰 호송을 위해 트럭 한 대의 출발 결재를 받으러 왔지만, 노승근은 트럭 두 번째 베어링 소리 한 박자가 평소와 어긋난 것을 듣고 한 줄 사인을 거부했다. 강태혁은 그날 새벽 한 시진을 기다린 끝에 노승근이 베어링 한 점을 새로 갈아 끼우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고, 그 트럭은 결국 안성옛로 갈림길 매복에서 미끼로 쓰일 그 트럭이 되었다. 노승근은 그날 새벽 강태혁의 운전석 발판 아래 작은 통조림 한 캔과 작은 사진 한 장 — 강태혁 어린 아들의 사진 — 을 올려 두었다. 호송 작전에서 강태혁이 행방불명된 새벽, 노승근은 정비고 한 칸 작은 못 위에 베어링 한 점을 풀어 걸어 두었으며, 그 베어링은 평생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후대 송정거점 정비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못 옆에 자기 첫 베어링 한 점을 한 줄 풀어 거는 관례를 따른다. 강태혁의 어린 아들 강시혁은 이후 평촌거점 신참 운반병으로 자라났다.

  • 정수기술사(淨水技術師)

    식수 정수 기술자

    오염된 물을 마실 수 있게 정제하는 기술자

    물맛이 약간 비리면 한 시간 더 끓이세요. 거점 한 가족의 한 끼는 그 한 시간 위에 있습니다.

    식수 정수 기술자는 거점의 우물·빗물 탱크·옛 정수장을 정비하고 매일 식수의 정상 여부를 검사하는 평민 출신 기술자다. 외형은 짙은 작업복, 어깨에 검사 키트, 허리에 작은 권총과 멀티툴, 한 손에 정수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정수장의 평소 수질·옛 분기 정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거점 군주가 가장 자주 부르는 자는 의무관 다음으로 식수 기술자다. 식수 한 통이 오염되면 거점 한 시즌 전체가 흔들리기에, 그가 매일 새벽 한 잔의 물을 본인이 먼저 마시는 것이 거점의 오래된 의식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정수장 보수가 아니라, 새벽 한 잔의 물 위에 있다.

    정수실 첫 잔은 군주 잔이 아닙니다. 기술자 본인 잔이지요. 거기에 거점 한 시즌의 한 호흡이 들어 있습니다.

    산음거점 이대 식수 정수 기술자 강대후 — 산음거점 옛 댐 정수장 한 칸을 구 년 끌어가며 거점 식수 사고를 한 번도 내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식수 기술자들 사이에서 '비린 한 잔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십 년 차 어느 가을, 산음거점 옛 댐(忠淸 옛 다목적 댐 한 칸) 정수장 빗물 탱크에 약탈자 결사 황량단(앞서 박만재 일화의 그 결사) 의 잔당이 잘게 부순 약품 한 줌을 새벽에 풀어 두는 사건이 있었다. 강대후는 새벽 첫 한 잔의 물에서 평소보다 한 박자 비린 맛을 한 번에 알아챘고, 본인이 한 잔을 마신 채 한 시진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거점 군주에게 그 한 시진 동안 정수 명부 첫 줄에 사선 한 줄을 그어 거점 전체의 그날 식수를 끓인 빗물로 바꾸는 결재를 올렸고, 본인은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의무관실 침상에 옮겨졌다. 의무관 우현재(앞서 시계 일화의 의무관)는 강대후를 한 시진 안에 살려냈으며, 강대후는 일주일 만에 정수실로 돌아와 다음 새벽 첫 한 잔을 다시 마셨다.

    후대 산음거점 정수 기술자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빗물 탱크 옆 작은 못에 자기 첫 잔의 컵 하나를 한 줄 걸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그 컵은 평생 한 번도 다시 사용되지 않으며, 새 기술자가 부임할 때마다 한 줄씩 늘어난다.

  • 외벽수보사(外壁修補師)

    외벽 보수공

    갈라진 외벽을 묵묵히 메우는 보수공

    어젯밤 무리가 두드린 자리는 안에서 못 보입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외벽을 한 바퀴 돕니다. 손등으로요.

    외벽 보수공은 거점의 외벽·게이트·바리케이드를 매일 점검하고 보수하는 평민 출신 직공이다. 외형은 두꺼운 작업복, 어깨에 자재 가방, 허리에 작은 권총과 망치, 한 손에 보수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외벽의 평소 균열 위치·옛 분기 보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좀비 무리가 외벽을 두드린 다음 날에는 늘 그가 가장 먼저 외벽 한 바퀴를 도는데, 손등으로 콘크리트를 짚어 균열을 듣는 것이 그의 평생 절기다. 거점 사령관이 외벽 위 보초의 기침 소리로 잠을 깨운다면, 보수공은 외벽 콘크리트의 작은 균열 한 줄로 거점 한 시즌의 한 끼를 지킨다.

    보수공 손등에는 콘크리트 굳은살이 한 줄 박혀 있소. 그 굳은살이 거점 한 시즌의 한 끼를 한 줄 지키는 자국이지요.

    평촌거점 삼대 외벽 보수공 박정수 — 평촌거점 외벽 한 바퀴를 십이 년 끌어가며 큰 무리에 단 한 번도 외벽 한 칸을 뚫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보수공들 사이에서 '서쪽 일곱 칸의 작은 사선'으로 통한다.

    사태 구 년 차 어느 새벽, 외벽 서쪽 일곱 칸을 큰 무리(약 육백 마리 추정)가 두드린 다음 날, 박정수는 평소처럼 외벽 한 바퀴를 손등으로 짚으며 작은 균열 한 줄을 일곱 칸 안 두 번째 칸 아래에서 한 번에 들어냈다. 사령관 변기홍(앞서 호각 일화의 사령관)은 큰 균열만을 보수 명부 첫 줄에 올리려 했으나, 박정수는 작은 균열 한 줄이 다음 큰 무리에서 결정적으로 무너질 자리임을 명부에 한 줄 더 적어 결재를 다시 받았다. 박정수의 그 한 줄 사선이 정확히 십이 일 뒤 다음 큰 무리의 한 줄 압력을 한 칸 안에서 견뎌냈고, 외벽 서쪽 일곱 칸은 그날 새벽도 무사히 한 줄로 버텼다. 박정수는 그 한 줄 균열 자리에 작은 사선 한 줄을 콘크리트에 평생 남겼으며, 그 사선은 지금도 평촌거점 외벽 서쪽 일곱 칸 두 번째 칸에 그대로 있다.

    후대 평촌거점 외벽 보수공들은 임명 첫 주에 그 사선 옆에 자기 손등을 한 번 짚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 전파통신사(電波通信士)

    무전 통신병

    끊긴 무전을 다시 잇는 통신병

    외곽 무전이 끊기면 정찰병이 죽은 게 아니라 무전기가 먼저 죽은 겁니다. 보통은요.

    무전 통신병은 거점의 통신실에서 외곽 정찰병·호송단·이웃 거점과의 무전 송수신을 평생 담당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헤드셋, 어깨에 작은 무전 키트, 허리에 권총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정찰병의 평소 무전 호흡·옛 분기 송신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곽 무전이 끊기면 거점 사령관보다 통신병이 먼저 그 정찰병의 마지막 호흡을 알아챈다. 통신실의 진짜 직무는 정보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 돌아오지 못한 동료의 호출 부호를 한 시즌 더 호명해 주는 한 줄 의식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작전 보고가 아니라, 끊긴 호출 부호 옆에 적는 작은 사선 한 줄이다.

    통신실 새벽 호명은 답을 듣자고 하는 게 아니오. 답이 없어도 한 시즌 더 부르는 게 통신병의 한 줄 의리지요.

    송정거점 사대 무전 통신반장 안재수 — 송정거점 통신실 한 칸을 십삼 년 끌어가며 호출 부호 사백칠십 줄을 평생 명부에 적어낸 자 — 의 일화는 통신병들 사이에서 '한 시즌 더의 호명'으로 통한다.

    사태 십일 년 차 어느 새벽, 외곽 정찰병 호출 부호 '청호 칠(青虎 7) — 정찰병 김도윤(앞서 의무관 일화의 정찰병)의 호출 부호'의 무전이 한 박자 길어진 뒤 끊겼다. 안재수는 그 한 박자를 한 번에 알아챘으나 무전 송수신기 앞에서 침묵 한 줄을 지킨 뒤, 작은 사선 한 줄을 명부 옆에 그어 두었다. 안재수는 김도윤이 거점에 돌아오지 못한 그 시즌 내내 매일 새벽 첫 호명에서 '청호 칠'을 한 줄 더 호명했고, 답이 없는 그 한 줄을 한 시즌 동안 평생 매일 새벽 한 번씩 보냈다. 그 사선 옆에는 김도윤의 어린 아들 김태유가 거점에서 처음 무전기를 만져 본 날의 한 줄이 작게 적혀 있다.

    후대 송정거점 통신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명부 첫 페이지 사선 옆에 자기 헤드셋 한 자루를 한 시진 풀어두는 관례를 따른다. 안재수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김도윤의 호출 부호를 한 줄도 다른 정찰병에게 다시 부여하지 않았다.

  • 약품관리수(藥品管理手)

    약품 보관계

    마지막 약병까지 헤아려 보관하는 관리자

    이 항생제 한 알, 거점 한 가족의 한 호흡입니다. 흥정은 안 받습니다. 단가는 의무관이 정합니다.

    약품 보관계는 거점의 약품 창고를 평생 지키며 의무관·호송단·정찰병에게 약품을 정확한 단위로 분배하는 평민 출신 관리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작은 약품 가방, 허리에 권총과 열쇠 묶음, 한 손에 분배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약품의 평소 유통기한·옛 분기 분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약품 한 알이 잘못 분배되면 의무관 한 명의 한 시즌 결재가 흔들리기에, 보관계는 의무관보다 더 깐깐하게 단위를 끊는다. 약탈자 두목이 가장 먼저 노리는 자리이기도 해서, 거점 안에서 외출이 가장 적은 자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백신 박스가 아니라, 신생아 한 명에게 처음 끊어 주는 항생제 반 알의 사인이다.

    보관계 분배 명부 첫 페이지에는 늘 신생아 한 명의 이름이 적혀 있소. 그 이름 한 줄이 보관계 평생 열쇠 한 자루의 무게입니다.

    청양터(앞서 안성 갈림길 일화의 신생 거점) 초대 약품 보관계 송기범 — 청양터 약품 창고 한 칸을 칠 년 끌어가며 약품 한 알을 평생 잘못 분배하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보관계들 사이에서 '반 알의 첫 사인'으로 통한다.

    사태 구 년 차 어느 새벽, 청양터 신생아 윤소희(앞서 안성 갈림길 일화의 첫 백신 신생아) 가 첫 호흡 곤란을 보이자 의무관이 항생제 반 알 결재를 송기범에게 올렸다. 송기범은 분배 명부 첫 페이지에 윤소희의 이름 한 줄을 적고, 항생제 반 알을 본인 손바닥 위에서 정확히 반으로 한 번 끊어 의무관에게 정중히 건넸다. 그날 저녁 약탈자 결사 황량단(앞서 박만재 일화의 그 결사) 잔당 셋이 청양터 약품 창고 뒷문을 새벽 두 시에 두드렸으나, 송기범은 권총 한 자루를 자기 분배 명부 위에 올린 채 한 시진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잔당 셋은 새벽이 밝자 다음 거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송기범은 그 항생제 반 알의 사인을 분배 명부 첫 페이지에 평생 그대로 두었으며, 그 페이지는 임기를 마친 뒤에도 다음 보관계 명부 첫 페이지로 한 줄로 옮겨졌다.

    후대 청양터 약품 보관계들은 임명 첫 주에 그 페이지 옆에 자기 첫 분배 한 줄을 작게 더해 두는 관례를 따른다. 윤소희는 이후 청양터 의무관 견습으로 자라났다.

  • 야시거간객(夜市居間客)

    야시장 거간꾼

    어둠 속 야시장에서 거래를 이어주는 거간

    통조림 두 박스에 권총 탄창 하나, 정정합니다 — 두 박스에 탄창 하나 반입니다. 단가는 어제 또 올랐습니다.

    야시장 거간꾼은 거점 한쪽 구석에 매일 밤 서는 비공식 시장에서 통조림·탄약·약품·정보를 정중히 사고파는 평민 출신 중개자다. 외형은 닳은 잠바,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작은 권총과 메모장, 한 손에 작은 저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거점의 평소 단가·옛 분기 거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군주는 그를 공식적으로는 모른 척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야시장 단가가 군주실 결재의 첫 줄 참고치다. 약탈자 두목과 거점 의무관이 같은 야시장에서 같은 거간꾼을 쓰는 일도 자주 있어, 그는 양쪽의 단가를 절대 입에 담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거래가 아니라, 어린 손님의 작은 사탕 한 알 위에 있다.

    거간꾼 메모장 한 칸에는 늘 사탕 단가가 비어 있는 줄이 있소. 그 빈 줄이 거간꾼 평생 한 줄 양심이지요.

    송정거점 야시장 거간꾼 노태헌 — 송정거점 야시장 구석 자리를 팔 년간 평생 단 한 자리만 지킨 자 — 의 일화는 거간꾼들 사이에서 '한 알 사탕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칠 년 차 어느 봄, 송정거점 야시장 첫 손님으로 서너 살쯤 된 어린아이 한주민(송정거점 정찰병 한지운의 어린 아들)이 작은 동전 한 닢을 손에 쥐고 노태헌의 자리 앞에 섰다. 노태헌은 그날 야시장 단가표에서 사탕 한 알 단가를 통조림 반 캔으로 매겨 두었으나, 한주민의 동전 한 닢을 받아 든 채 사탕 한 알을 정중히 한주민의 손에 쥐어 주고 메모장 한 줄에 사탕 단가 한 칸을 평생 비워 두었다. 같은 날 저녁 야시장에 약탈자 두목 박만재(앞서 일화의 박만재) 의 잔당이 같은 사탕 박스 전체의 단가를 묻자, 노태헌은 그 한 알의 빈 줄을 보여주며 "이 박스는 어제 다 팔렸소. 단가는 모릅니다"라며 한 줄로 거래를 끊어냈다. 노태헌은 그날 이후 사탕 단가 한 칸을 평생 메모장에 비워 두었으며, 그 빈 줄은 임기를 마친 뒤에도 다음 거간꾼 메모장 한 칸으로 한 줄 옮겨졌다.

    후대 송정거점 야시장 거간꾼들은 자기 메모장 한 칸을 평생 사탕 단가 빈 줄로 두는 관례를 따른다. 한주민은 이후 송정거점 신참 운반병으로 자라났다.

  • 거점취사장(據點炊事匠)

    거점 취사반장

    남은 재료로 한 끼를 짓는 취사 장인

    통조림 한 캔으로 스무 명을 먹입니다. 비결요? 비결은 없고, 그냥 물을 많이 넣습니다.

    거점 취사반장은 거점 식당의 주방 전체를 평생 책임지는 평민 출신 요리사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머리에 닳은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 작은 칼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통조림의 평소 보관 상태·옛 분기 한 끼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거점 군주가 사령관보다 더 자주 들르는 자리는 사실 취사반장의 주방 한 켠이다. 가장 무거운 한 끼는 큰 잔치가 아니라, 좀비 슬레이어 한 명이 외곽에서 살아 돌아온 새벽의 작은 라면 한 그릇이다. 그래서 늙은 취사반장의 손목에는 칼 든 굳은살보다 라면 냄비 든 굳은살이 더 진하다.

    주방 한 켠에는 늘 작은 라면 냄비 하나가 비어 있는 자리가 있소. 그 빈 자리가 취사반장 평생 한 줄 의리지요.

    평촌거점 사대 취사반장 윤만덕 — 평촌거점 식당 주방 한 칸을 십사 년 끌어가며 슬레이어 한 명도 빈 그릇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취사반장들 사이에서 '냄비 하나의 빈 자리'로 통한다.

    사태 십 년 차 어느 새벽, 평촌거점 슬레이어반장 마진우(앞서 작전 새벽 일화의 반장)가 외곽 작전에서 부하 신참 슬레이어 하태식과 함께 살아 돌아왔으나, 정문 앞에서 하태식이 마지막 한 호흡으로 윤만덕의 라면 한 그릇을 청했다. 윤만덕은 통조림 반 캔과 라면 사리 한 줄로 평생 가장 빠른 한 그릇을 끓여 정문 앞에 직접 들고 갔으나, 하태식은 그 한 그릇을 받기 전 한 호흡 먼저 정신을 잃었다. 윤만덕은 그 한 그릇을 한주민(앞서 야시장 일화의 어린 손님) 의 작은 손에 쥐어 주며 "한 모금만 대신 마셔 주렴"이라 한 줄 청했고, 한주민은 정중히 한 모금을 마신 뒤 빈 그릇을 다시 윤만덕에게 건네었다. 윤만덕은 그 빈 그릇을 주방 한 켠 작은 못에 평생 걸어 두었으며, 그 자리에는 그날 이후 새 라면 냄비 한 자리가 평생 비어 있다.

    후대 평촌거점 취사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못 옆에 자기 첫 라면 사리 한 줄을 작게 걸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마진우는 이후 그 빈 자리 옆에 도끼 자루 아래 작은 천 한 조각을 함께 두었다.

  • 시체매장자(屍體埋葬者)

    사체 처리반

    이름 없는 시체를 거두어 묻는 자

    이 일은 누가 봐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줄 봐 줍니다. 그래서 매일 한 사람씩 이름을 외웁니다.

    사체 처리반은 거점 안팎에서 발생한 일반 사망자·감염 진행자의 시신을 정중히 수습·소각하는 평민 출신 직공이다. 외형은 두꺼운 보호복, 마스크, 어깨에 처리 키트, 허리에 작은 권총과 갈고리, 한 손에 처리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사체의 평소 감염 단계·옛 분기 처리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에서 가장 늦게 자고 가장 일찍 일어나는 직군이며, 의무관의 권총 한 발 뒤에 늘 그의 갈고리 한 줄이 따른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무리 처리가 아니라, 한 가족의 마지막 한 명을 정중히 옮기는 작은 들것 위에 있다. 그래서 거점 사람들은 그를 직접 부르지 않지만, 매년 한 번 정문 앞에 익명의 통조림 한 박스를 둔다.

    처리반 명부 마지막 페이지에는 늘 한 가족 전체의 이름이 한 줄로 적혀 있소. 그 한 페이지가 처리반 평생 한 줄 의리지요.

    송정거점 삼대 사체 처리반장 신중관 — 송정거점 처리장 한 칸을 십이 년 끌어가며 평생 사체 한 점을 잘못된 자리에 두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처리반들 사이에서 '한주민 가족 마지막 들것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십이 년 차 어느 새벽, 송정거점 정찰병 한지운 가족 — 한지운 본인, 그의 어머니 윤서경 — 이 거점 외곽 호송 작전 중 같은 매복에 휩쓸려 같은 새벽에 정문 앞에 옮겨졌다. 어린 한주민은 거점 안에 남아 있어 가족 전체 중 마지막 한 명이 되었고, 신중관은 그 새벽 두 시신을 정중히 한 들것 위에 한 줄로 옮기며 한지운의 외투 안주머니 작은 사진 한 장 — 한주민의 어린 사진 — 을 정중히 빼내어 한주민에게 직접 전했다. 신중관은 그 들것 한 줄 위에서 의무관 우현재(앞서 시계 일화의 의무관) 의 권총 한 발이 마무리한 한 호흡 뒤에 갈고리 한 줄을 정중히 따랐고, 한지운 가족 두 줄을 처리 명부 마지막 페이지에 한 가족 한 줄로 모아 두었다. 한주민은 그날 새벽 정문 앞에 익명의 통조림 한 박스를 처음 두었으나, 신중관은 그 박스를 평생 누가 두었는지를 모른 척했다.

    후대 송정거점 사체 처리반들은 임명 첫 주에 처리 명부 마지막 페이지의 한 가족 한 줄 위에 자기 갈고리 한 자루를 한 시진 풀어두는 관례를 따른다. 한주민은 이후 송정거점 신참 운반병으로 자라났다.

  • 유랑수리공(流浪修理工)

    떠돌이 무전 수리공

    거점을 떠돌며 무전기를 고치는 수리공

    이 무전기 살릴 수 있어요. 부품값은 통조림 두 캔, 출장은 한 캔입니다. 흥정은 받지 않습니다.

    떠돌이 무전 수리공은 거점에 속하지 않은 채 무전기·발전기·작은 라디오를 들고 거점 사이를 오가며 수리해 주는 평민 출신 기술자다. 외형은 닳은 잠바, 어깨에 큰 공구 가방, 허리에 작은 권총과 멀티툴, 한 손에 작은 검사 키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무전기의 평소 회로 한 줄·옛 분기 수리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통신병이 못 살린 무전기를 그가 한 시간 안에 살려내는 일이 잦아, 거점 군주들이 그의 일정에 거점 식수 일정을 맞춘다. 본인은 어느 거점에도 정착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한 거점에 매이면 다른 거점이 무전을 잃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송신탑이 아니라, 신생 거점의 첫 무전 한 줄을 정중히 살려 주는 사인 위에 있다.

    수리공 가방 깊은 칸에는 늘 작은 무전기 한 자루가 살려지지 않은 채 들어 있소. 그 한 자루가 평생 수리공의 한 줄 미련이지요.

    떠돌이 무전 수리공 추정선 — 京畿·忠淸·全北 거점 사이를 평생 단신으로 도는 자 — 의 일화는 무전 통신병들 사이에서 '청양터 첫 무전 한 줄'로 통한다.

    사태 구 년 차 어느 봄, 갓 세워진 청양터(앞서 안성 갈림길 일화의 신생 거점) 의 통신실은 옛 댐 정수장에서 가져 온 낡은 무전기 한 자루뿐이었으며, 그 회로 한 줄이 평생 답을 못 내는 상태로 한 시즌을 끌고 있었다. 추정선은 청양터에 도착한 새벽 한 시간 안에 그 회로 한 줄을 한 점 갈아 끼우고, 첫 무전 한 줄을 거점 군주 정인호(앞서 우물 한 칸 일화의 대왕)에게 정중히 송신했다. 정인호는 그 한 줄 송신 사인 위에 본인 인장을 한 번 찍었으나, 추정선은 그 사인을 받지 않은 채 다음 거점으로 새벽 안에 떠났다. 추정선의 가방 깊은 칸에는 평생 살려지지 않은 작은 무전기 한 자루 — 사태 첫 날 京畿 광명 옛 자기 집 거실에서 들고 나온 그의 어머니의 라디오 — 가 들어 있으며, 그 한 자루는 평생 한 번도 켜진 적이 없다. 그는 그 라디오 한 자루를 평생 살리지 못하기에 다른 모든 거점의 무전 한 줄을 평생 살린다고 다른 떠돌이 수리공에게 한 줄로 일러두었다.

    후대 떠돌이 수리공들은 자기 가방 깊은 칸에 평생 살려지지 않을 작은 라디오 한 자루를 한 줄 두는 관례를 따른다.

  • 외벽초경자(外壁哨更者)

    외벽 보초

    외벽 위에서 밤을 지새는 보초

    오늘 밤도 별일 없을 겁니다. 별일이 있을 거였으면 어제 있었거든요. 보통은요.

    외벽 보초는 거점 외벽 위 망루에서 한 시즌 내내 좀비 무리·약탈자·외부 신호를 감시하는 평민 출신 자원이다. 외형은 닳은 가죽 갑옷, 어깨에 작은 등불, 허리에 작은 권총과 호각, 한 손에 망원경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자기 망루의 평소 야간 시야·옛 분기 교대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사령관의 토막잠을 깨우는 작은 기침 소리의 주인이 사실 그다. 큰 작전을 막는 직무는 아니지만, 새벽 한 줄 호각이 거점 한 가족의 한 끼를 지킨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무리 경보가 아니라, 새벽에 잠든 어린 신참 보초 옆에 슬쩍 덮어 주는 담요 한 장이다.

    망루 한 칸에는 늘 담요 한 장이 한 줄로 접혀 있는 자리가 있소. 그 담요 한 장이 보초 평생 한 줄 의리지요.

    산음거점 외벽 동쪽 망루 보초반장 노태근 — 산음거점 외벽 동쪽 망루 한 칸을 평생 한 자리만 지킨 자, 앞서 사령관 호각 일화의 그 신참 보초가 자라난 인물 — 의 일화는 외벽 보초들 사이에서 '담요 한 장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십이 년 차 어느 겨울 새벽, 동쪽 망루에 처음 올라온 신참 보초 김태유(앞서 의무관 일화의 김도윤의 어린 아들) 가 한 시진 만에 망루 한쪽 작은 의자에 잠시 잠이 들었다. 노태근은 김태유의 작은 어깨에 평생 자기 망루에 두던 담요 한 장을 정중히 한 번 덮어 주고, 망원경을 자기가 한 시진 더 들고 외벽 동쪽 시야를 한 줄로 지켰다. 그 새벽 외벽 동쪽 시야에서 작은 좀비 무리(약 사십 마리 추정) 한 줄이 다가왔으나, 노태근은 호각 한 번 없이 작은 등불 한 자루의 방향을 한 번 바꾸어 망루 옆 슬레이어반장 마진우(앞서 작전 일화의 반장)에게 한 줄 신호를 보냈다. 작은 무리는 외벽 한 칸을 두드리지 못하고 새벽 안에 흩어졌으며, 김태유는 그날 새벽 자기가 잠든 사실을 평생 노태근에게 듣지 못했다.

    후대 산음거점 외벽 동쪽 망루 보초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망루 한쪽 작은 의자에 담요 한 장을 한 줄로 접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그 담요 한 장은 평생 한 번도 펼쳐진 자리에서 거두어진 적이 없다.

  • 거점부역부(據點負役夫)

    거점 짐꾼

    거점의 짐을 등에 진 채 살아가는 짐꾼

    라이플은 슬레이어가 듭니다. 박스는 제가 듭니다. 분업이지요. 단가는 통조림 한 캔입니다.

    거점 짐꾼은 호송 트럭 짐칸·창고·시장 사이에서 통조림·약품·자재 박스를 평생 옮기는 평민 출신 운반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큰 끈, 허리에 작은 권총과 짐 묶음 끈, 한 손에 운반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박스의 평소 무게·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호송단장이 트럭에서 내리면, 짐꾼이 가장 먼저 박스 위에 손을 얹어 무게를 한 줄 검수한다. 큰 결투를 하지 않지만, 그가 옮긴 한 박스가 결국 거점 한 가족의 한 시즌을 결정한다. 가장 무거운 한 박스는 큰 백신이 아니라, 호송 중 죽은 동료의 외투 한 벌이 담긴 작은 가방이다.

    짐꾼 운반 명부 첫 페이지에는 늘 외투 한 벌의 무게가 한 줄로 적혀 있소. 그 한 줄이 짐꾼 평생 한 줄 의리지요.

    평촌거점 사대 짐꾼반장 윤도영 — 평촌거점 짐꾼 한 줄을 십삼 년 끌어가며 평생 박스 한 점을 잘못된 자리에 두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짐꾼들 사이에서 '외투 한 벌 작은 가방'으로 통한다.

    사태 칠 년 차 어느 가을, 평촌거점 호송 트럭 한 대가 안성옛로 갈림길(앞서 강태혁 일화의 갈림길) 매복 끝에 부하 호송조 한 명을 잃은 채 정문에 도착했다. 트럭 짐칸 한 귀퉁이에는 죽은 호송병의 외투 한 벌이 담긴 작은 가방 한 자루가 한 줄로 놓여 있었으며, 윤도영은 그 가방 한 자루를 평생 가장 먼저 손에 얹은 자가 되었다. 윤도영은 그 가방 한 자루의 무게를 평생 자기 운반 명부 첫 페이지에 통조림 두 캔이라 한 줄 적었으나, 그 외투 한 벌은 평생 어느 창고에도 옮기지 않은 채 자기 사물함 첫 칸에 한 시즌 두었다. 한 시즌 뒤 윤도영은 그 외투 한 벌을 죽은 호송병의 어린 아들 — 강시혁(앞서 정비반장 일화의 강태혁의 어린 아들) — 에게 정중히 직접 전했고, 강시혁은 그 외투 한 벌을 평생 자기 첫 작업복으로 두었다.

    후대 평촌거점 짐꾼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자기 사물함 첫 칸에 외투 한 벌의 자리를 한 줄로 비워 두는 관례를 따른다. 강시혁은 이후 평촌거점 신참 운반병으로 자라났다.

  • 폐도일발사(廢道一發士)

    폐도 저격수

    폐허의 도로 위에서 단 한 발로 위협을 끝내는 저격수

    한 발은 무리 안 가장 빠른 놈에게. 두 번째 발은 도망치는 인간의 발치에 경고로. 세 번째 발은 안 씁니다.

    폐도 저격수는 옛 고속도로 육교·낡은 빌딩 옥상에서 외곽 정찰병·호송 트럭의 머리 위를 평생 지키는 정예 사수다. 외형은 짙은 위장복, 어깨에 위장 천, 허리에 권총과 작은 무전기, 손에 낡은 볼트액션 라이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옥상의 평소 풍향·옛 분기 사거리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가장 어려운 한 발은 큰 좀비 무리가 아니라, 호송 트럭 짐칸 위로 올라타려는 약탈자의 한 발치 앞에 박는 경고 한 발이다. 거점 사령관은 그를 망루 위 보초보다 더 늦게 잠재우고 더 일찍 깨우며, 평생 본인 사격 기록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한 발은 결국 외곽에서 못 돌아온 동료의 호출 부호 옆에 그어 두는 작은 사선 한 줄이다.

    저격수 사격 기록 첫 페이지에는 늘 발치 한 발의 자국이 한 줄 적혀 있소. 그 한 줄이 저격수 평생 한 호흡의 기준이지요.

    송정거점 이대 폐도 저격반장 차도원 — 송정거점 외곽 옛 시민회관 옥상 한 자리를 십일 년 끌어가며 평생 발치 한 발 외에 사람을 향해 두 번째 발을 쓰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저격수들 사이에서 '한 발치 위 한 줄 사선'으로 통한다.

    사태 십 년 차 어느 새벽, 백신 호송단장 강태혁(앞서 안성 갈림길 일화의 단장)의 트럭 짐칸 위로 올라타려는 약탈자 한 명이 옛 시민회관 옥상 사거리에 들어왔다. 차도원은 그의 발치 한 자리에 한 발만을 정중히 박아 두었고, 그 약탈자는 짐칸 위에 올라타지 못한 채 갈림길 옆 작은 산길로 한 줄로 흩어졌다. 차도원은 그 한 발 사선을 사격 기록 첫 페이지에 한 줄로 적었으나, 두 번째 발의 자리는 평생 비어 있는 채로 두었다. 그 약탈자는 이후 황량단(앞서 박만재 일화의 결사) 잔당 한 명으로 송정거점 야시장 변두리에 정착했고, 차도원은 평생 그 자가 자기 발치 한 발의 자국을 본인 발등 옆 옷자락에 평생 작게 남긴 자임을 모른 채 살았다.

    후대 송정거점 폐도 저격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옛 시민회관 옥상 사거리 작은 콘크리트 자국 옆에 자기 첫 한 발의 사선 한 줄을 작게 그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그 자국은 지금도 옥상 사거리 한쪽에 그대로 있다.

  • 감염추적사(感染追跡師)

    감염 추적관

    감염의 흔적을 따라 발원지를 좇는 추적관

    이 골목, 어제까지 깨끗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누가 한 명 들어왔어요. 그게 누구였는지가 제 일입니다.

    감염 추적관은 거점 안팎에서 발생한 신규 감염의 동선·접촉자·잠복 기간을 거점 의무관과 함께 평생 추적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작은 검사 키트, 허리에 권총과 작은 표본 가방, 한 손에 추적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감염자의 평소 동선·옛 분기 잠복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의무관이 권총을 들기 전에 추적관의 한 줄 사인이 먼저 떨어져야 하기에, 거점 안에서 가장 미움받는 동시에 가장 먼저 안도하게 만드는 자다. 본인은 추적 끝에 결국 자기 옛 친구의 동선을 한 줄 그어야 하는 일을 평생 한 번은 겪고, 그날 이후 본인 명부 첫 장에 그 친구 이름을 남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무리 격리가 아니라, 거점 어린아이 한 명의 첫 접촉 한 시각 위에 있다.

    추적관 명부 첫 장에는 늘 친구 한 명의 이름이 한 줄로 적혀 있소. 그 한 줄이 추적관 평생 한 호흡의 무게지요.

    산음거점 초대 감염 추적관 채준호 — 산음거점 추적실 한 칸을 십 년 끌어가며 평생 동선 한 줄을 잘못된 자리에 긋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추적관들 사이에서 '옛 친구 한 줄 사선'으로 통한다.

    사태 팔 년 차 어느 봄, 산음거점 거점 안 새 감염 한 명의 동선 추적 끝에 채준호의 옛 대학 동기 임시환 — 사태 직전 京畿 군포 옛 자취방을 함께 쓰던 자 — 의 이름이 명부 끝줄에 한 줄로 떠올랐다. 채준호는 임시환이 거점 정문 게이트 관문장 박재섭(앞서 게이트 일화의 관문장) 의 새벽 사인을 통해 거점에 들어온 자임을 한 시진 안에 한 줄로 잡아냈고, 의무관 강대후(앞서 비린 한 잔 일화의 그 댐 정수장 식수 기술자가 임시 의무관 보조로 함께 결재한 한 줄) 와 함께 임시환의 동선 한 줄을 명부 끝줄에 사선 한 줄로 그었다. 채준호는 그날 새벽 추적 명부 첫 장에 임시환의 이름 한 줄을 본인 손으로 정중히 적고, 그 한 줄을 평생 한 번도 다른 자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임시환의 외투 한 벌은 그날 이후 추적실 한쪽 작은 못에 한 줄로 걸려 있었으며, 그 외투는 평생 한 번도 다시 옮겨지지 않았다.

    후대 산음거점 감염 추적관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못 옆에 자기 첫 동선 한 줄의 작은 사선을 한 줄 작게 그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 발전관리장(發電管理匠)

    발전소 관리장

    꺼져가는 거점의 불빛을 지키는 발전소 장인

    오늘 밤 외벽 등은 정확히 네 시간만 켭니다. 그 다음은 무전실. 그 다음은 의무실. 백신 냉장은 절대 안 끕니다.

    발전소 관리장은 거점의 옛 디젤 발전기·태양광 패널·축전지·연료 비축을 평생 관리하는 평민 출신 기술자장이다. 외형은 기름 묻은 작업복, 어깨에 작은 공구 가방, 허리에 작은 권총과 멀티툴, 한 손에 배전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발전기의 평소 연료 소비·옛 분기 배전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군주가 가장 자주 결재하는 한 줄은 큰 호송 명부가 아니라, 발전소 관리장이 매주 올리는 야간 등불 시간표다. 백신 냉장 한 칸이 한 시간 꺼지면 호송단장 한 명의 한 시즌이 무너지기에, 그는 평생 본인 거처를 발전소 옆 작은 컨테이너로 둔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정전 복구가 아니라, 신생아 인큐베이터 한 대의 야간 콘센트 사인 위에 있다.

    관리장 컨테이너 한 칸에는 늘 인큐베이터 콘센트 한 자루가 한 줄로 걸려 있는 자리가 있소. 그 한 자루가 관리장 평생 한 호흡의 첫 줄이지요.

    청양터 초대 발전소 관리장 정한식 — 청양터 옛 디젤 발전기 한 대를 칠 년 끌어가며 평생 백신 냉장 한 칸을 한 시간도 끄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발전소 관리장들 사이에서 '인큐베이터 한 대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구 년 차 어느 새벽, 청양터 신생아 윤소희(앞서 항생제 반 알 일화의 신생아) 의 인큐베이터 한 대가 야간 정전 한 시간을 한 줄로 견디지 못할 위기에 직면했다. 정한식은 거점 외벽 등 네 시간을 한 줄로 한 시진 일찍 꺼 두고, 거점 무전실 야간 송수신 한 시간을 무전 통신반장 안재수(앞서 송정거점 일화의 통신반장이 청양터로 한 시즌 파견된 한 줄) 와 합의해 한 시간 미루어 두었다. 그는 그 한 시간을 인큐베이터 한 대의 야간 콘센트 한 자루에 한 줄로 옮겼고, 윤소희는 그 한 시간을 한 호흡으로 한 줄 견디어 새벽을 맞았다. 정한식은 그날 이후 자기 컨테이너 한 칸에 그 인큐베이터 콘센트 한 자루의 작은 모형을 한 줄로 평생 걸어 두었으며, 그 모형은 임기를 마친 뒤에도 다음 관리장 컨테이너 한 칸으로 한 줄 옮겨졌다.

    후대 청양터 발전소 관리장들은 임명 첫 주에 그 모형 옆에 자기 첫 야간 등불 시간표 한 줄을 작게 더해 두는 관례를 따른다.

  • 관문수문장(關門守門將)

    게이트 관문장

    거점 게이트의 문을 단단히 잠그는 수문장

    들여보낼 한 사람을 정하는 게 아니라, 못 들여보낼 한 사람을 정하는 자리입니다. 그게 더 무겁습니다.

    게이트 관문장은 거점 정문의 출입 결재·신원 확인·격리실 인계를 평생 책임지는 자로, 사령관 직속의 평민 출신 직책이다. 외형은 두꺼운 작업복, 어깨에 작은 검사 키트, 허리에 권총과 열쇠 묶음, 한 손에 출입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출입자의 평소 신원·옛 분기 입거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신규 생존자 한 명을 안에 들이는 한 줄 사인이 거점 한 시즌의 식수 한 줄을 흔든다는 것을 평생 잊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한 줄은 큰 무리 차단이 아니라, 정문 앞에서 떨고 있는 모자(母子) 한 쌍 중 한 명만 격리실에 보내야 하는 새벽의 사인이다. 그래서 늙은 관문장의 외투 안주머니에는 거절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작은 수첩 한 권이 평생 들어 있다.

    관문장 외투 안주머니 작은 수첩 한 권은 거점 안 누구의 손에도 평생 펼쳐지지 않습니다. 그 수첩 한 권이 관문장 평생 한 줄 무게지요.

    산음거점 사대 게이트 관문장 박재섭 — 산음거점 정문 한 자리를 십이 년 끌어가며 평생 출입 사인 한 줄을 잘못된 자리에 긋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관문장들 사이에서 '한 모자(母子) 새벽의 한 줄 사인'으로 통한다.

    사태 구 년 차 어느 봄 새벽, 산음거점 정문 앞에 어머니와 어린 아들 한 쌍 — 임지선과 그의 아들 임시환의 어린 동생 임시언 — 이 한 시진을 떨며 서 있었다. 박재섭은 두 사람 중 어머니의 손목 작은 물린 자국 한 줄을 검사 키트 한 줄로 한 시진 안에 잡아냈고, 임지선은 격리실로, 임시언은 거점 안 임시 보호실로 한 줄로 갈라 사인했다. 임지선은 격리실에서 사흘 뒤 의무관 강대후의 권총 결재 한 줄로 한 호흡을 마쳤고, 임시언은 거점 안에 남았으나 그날 이후 평생 박재섭의 얼굴을 한 번도 정면으로 보지 못했다.

    박재섭은 임지선의 이름 한 줄을 자기 외투 안주머니 작은 수첩 첫 페이지에 정중히 적었으며, 그 수첩은 임기를 마친 뒤 다음 관문장의 외투 안주머니로 한 줄 옮겨지지 않은 채 평생 박재섭 본인 외투에 그대로 남았다. 임시언은 이후 산음거점 거점 짐꾼 견습으로 자라났으며, 박재섭이 임기를 마치고 정문 앞 작은 의자에 잠시 앉은 새벽 처음으로 그에게 통조림 반 캔을 한 줄로 정중히 건네었다.

  • 신호관측사(信號觀測師)

    신호탄 관측병

    밤하늘에 오르는 신호탄 한 줄기를 놓치지 않는 관측병

    붉은색은 무리, 노란색은 약탈자, 푸른색은 의무 호출. 흰색이요? 흰색은 안 씁니다. 흰색은 마지막에 씁니다.

    신호탄 관측병은 거점 망루 가장 높은 자리에서 외곽의 신호탄·연막·연기 신호를 평생 해독·중계하는 평민 출신 자원이다. 외형은 닳은 가죽 잠바, 어깨에 망원경 끈, 허리에 작은 권총과 색 신호탄 키트, 한 손에 관측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신호의 평소 색·옛 분기 해독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무전이 죽은 외곽에서 정찰병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자가 그이며, 푸른 신호탄 한 발이 의무관 한 명의 한 새벽을 결정한다. 본인은 평생 흰 신호탄 한 발을 쏘지 않는 것을 명예로 삼는데, 흰색은 거점 자체의 함락 신호이기 때문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작전 신호가 아니라, 외곽에서 푸른 신호탄을 쏜 정찰병의 호출 부호를 명부에 한 줄 그어 두는 새벽이다.

    관측병 키트 한 칸에는 늘 흰 신호탄 한 발이 한 줄로 그대로 들어 있는 자리가 있소. 그 한 발이 평생 쏘이지 않는 것이 관측병의 한 줄 명예지요.

    평촌거점 이대 신호탄 관측반장 황도원 — 평촌거점 망루 가장 높은 자리 한 칸을 십이 년 끌어가며 평생 흰 신호탄 한 발을 쏘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관측병들 사이에서 '푸른 한 발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십이 년 차 어느 새벽, 외곽 정찰병 김도윤(앞서 의무관 시계 일화의 정찰병) 의 마지막 작전에서 푸른 신호탄 한 발이 새벽 안 옛 화성고가도로(앞서 슬레이어 일화의 고가도로) 위에 한 줄로 떠올랐다. 황도원은 그 푸른 한 발을 망원경으로 한 호흡 안에 한 줄로 잡아내, 통신반장 안재수(앞서 송정거점 일화의 통신반장) 와 의무관 우현재(앞서 시계 일화의 의무관) 에게 동시에 한 줄로 중계했다. 김도윤은 결국 거점에 돌아오지 못했으나, 황도원은 그 푸른 한 발의 자리를 관측 명부 한 페이지에 한 줄 사선으로 정중히 그어 두었다. 황도원은 그날 이후 자기 신호탄 키트 한 칸의 흰 한 발을 평생 한 자리에 한 줄 그대로 두었으며, 그 한 발은 임기를 마친 뒤에도 다음 관측반장의 키트 한 칸으로 한 줄 그대로 옮겨졌다.

    후대 평촌거점 신호탄 관측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그 흰 한 발 옆에 자기 첫 푸른 한 발의 자국 한 줄을 작게 그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그 흰 신호탄 한 발은 지금도 키트 한 칸에 한 줄로 그대로 있다.

  • 폐허도지인(廢墟圖誌人)

    폐허 지도제작자

    폐허가 된 거리를 새 지도로 그려내는 자

    이 다리는 어제 무너졌습니다. 빨간 줄로 한 번 긋고, 파란 줄로 새 우회로를 한 번 긋습니다. 잉크값은 통조림 반 캔입니다.

    폐허 지도제작자는 무너진 도시·다리·터널·옛 도로의 현재 상태를 정찰병·호송단의 보고로 매주 갱신하는 평민 출신 기록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큰 도면통, 허리에 작은 권총과 잉크병, 한 손에 옛 행정지도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도로의 평소 통과 가능 여부·옛 분기 갱신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백신 호송단장이 출발 전 가장 먼저 들르는 자리가 그의 도면통 옆이며, 그의 한 줄 빨간 사선이 호송 트럭 한 대의 새벽을 결정한다. 본인은 평생 옛 본인 동네의 한 골목만은 빨간 줄을 긋지 못하고, 그 골목을 지도 한 귀퉁이에 흰색으로 남겨 둔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폐허 갱신이 아니라, 옛 본인 집 앞 한 줄을 정중히 회피해 새 우회로를 긋는 작은 사인이다.

    지도제작자 도면통 한 칸에는 늘 흰 골목 한 줄이 한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소. 그 한 줄이 지도제작자 평생 한 줄 미련이지요.

    송정거점 이대 폐허 지도제작자 한승원 — 송정거점 도면실 한 칸을 십일 년 끌어가며 평생 옛 도로 사천칠백 줄을 본인 손으로 갱신한 자 — 의 일화는 지도제작자들 사이에서 '구의동 한 골목의 흰 줄'로 통한다.

    사태 팔 년 차 어느 봄, 호송단장 강태혁이 송정거점에서 청양터로 향하는 새 우회로 결재를 받으러 한승원의 도면통 옆에 한 시진 앉아 있었다. 한승원은 옛 서울 광진 구의동(光津 광진 옛 자기 어머니 댁이 있던 동네) 한 골목 — 사태 첫 날 어머니가 셔터를 닫고 들어간 그 골목 — 에 평생 빨간 줄을 그을 수 없었기에, 그 한 골목을 지도 한 귀퉁이에 평생 흰색으로 한 줄로 남겨 둔 채 새 우회로를 그 골목 옆 큰길로 한 줄 그었다. 강태혁은 그 새 우회로를 따라 호송을 마쳤으나, 그 흰 골목 한 줄을 평생 한 번도 한승원에게 묻지 않았다. 한승원은 임기를 마치는 새벽 그 흰 골목 옆 큰길에 한 줄 작은 사선을 빨간 잉크로 정중히 그어 두었다. 그 흰 골목 한 줄은 임기를 마친 뒤에도 다음 지도제작자의 도면 한 귀퉁이로 한 줄 그대로 옮겨졌다.

    후대 송정거점 폐허 지도제작자들은 임명 첫 주에 자기 옛 동네 한 골목을 도면 한 귀퉁이에 흰색으로 한 줄 남겨 두는 관례를 따른다.

  • 거점이발수(據點理髮手)

    거점 이발사

    한 자루의 가위로 거점의 일상을 지키는 이발사

    오늘은 짧게 갑니다. 외곽 작전 전에는 다 짧게 가요. 머리카락 길면 무전 헤드셋이 자꾸 빠지거든요.

    거점 이발사는 거점 한쪽 구석 작은 이발 의자 한 자리에서 슬레이어·정찰병·호송단·짐꾼의 머리를 평생 손질하는 평민 출신 직공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 작은 권총과 가위·면도칼, 한 손에 빗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손님의 평소 머리 길이·옛 분기 손질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곽 작전 전 슬레이어들이 줄을 서는 자리가 의무실보다 그의 의자 앞이며, 작전 후 살아 돌아온 자의 첫 한 잔은 늘 그의 의자 옆에서 시작된다. 본인은 작전에 못 돌아온 자의 의자 자리를 한 시즌 동안 비워 두며, 그 위에 그 자의 옛 머리카락 한 줌을 작은 봉투에 담아 둔다. 가장 무거운 한 가위질은 큰 영입식이 아니라, 신참 슬레이어의 첫 출진 새벽 한 줄 머리 정리 위에 있다.

    이발사 의자 옆 작은 선반 한 칸에는 늘 머리카락 봉투 한 줄이 작게 놓여 있소. 그 봉투 한 줄이 이발사 평생 한 줄 의리지요.

    평촌거점 삼대 거점 이발사 차문호 — 평촌거점 식당 한 켠 작은 이발 의자 한 자리를 십삼 년 끌어가며 평생 슬레이어 한 명도 빈 의자로 돌려보내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이발사들 사이에서 '하태식 머리카락 한 봉투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십 년 차 어느 새벽, 슬레이어 신참 하태식(앞서 작전 일화의 신참)이 외곽 작전을 마지막으로 끝낸 새벽 정문 앞에서 정신을 잃은 뒤 의무관 우현재의 권총 결재 한 줄로 한 호흡을 마쳤다. 차문호는 그 새벽 하태식이 작전 직전 자기 의자 위에서 한 줄로 끊은 머리카락 한 줌을 작은 봉투에 정중히 담아, 자기 의자 옆 작은 선반 한 칸에 한 줄로 한 시즌 두었다. 그 한 시즌 동안 하태식의 의자 한 자리는 평생 다른 슬레이어가 앉지 않은 채로 비워 두었으며, 차문호는 다음 시즌 첫 새벽 그 봉투 한 줄을 하태식의 어린 딸 — 마진우의 외투 안주머니 사진 한 장의 그 어린 딸 — 에게 정중히 직접 전했다. 어린 딸은 그 봉투 한 줄을 평생 자기 작은 가방 첫 칸에 한 줄로 두었다.

    후대 평촌거점 거점 이발사들은 임명 첫 주에 자기 의자 옆 작은 선반 한 칸을 평생 머리카락 봉투 한 줄의 자리로 한 줄 비워 두는 관례를 따른다. 마진우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그 봉투 한 줄에 손을 대지 않았다.

  • 탄피회수공(彈皮回收工)

    탄피 회수공

    전투가 끝난 자리에서 탄피를 거두는 자

    이 탄피 한 개, 다시 채우면 한 발입니다. 한 발이 거점 한 가족의 한 호흡이고요. 그래서 골목 끝까지 줍습니다.

    탄피 회수공은 거점 외벽 안팎·작전 종료 골목·호송 트럭 짐칸 바닥에서 빈 탄피·낡은 약협을 평생 회수해 거점 탄약 재가공실에 납품하는 평민 출신 직공이다. 외형은 두꺼운 작업복, 어깨에 작은 자루, 허리에 작은 권총과 집게, 한 손에 회수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탄피의 평소 마모 상태·옛 분기 재가공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사령관이 큰 작전 직후 가장 먼저 부르는 자가 그이며, 그가 회수한 한 자루 탄피가 다음 작전조의 한 새벽을 결정한다. 본인은 평생 외곽에서 동료가 마지막으로 쏜 한 발의 탄피만은 재가공실에 넘기지 않고, 그 한 개를 본인 외투 안주머니에 작은 천으로 싸 둔다. 가장 무거운 한 개는 큰 호송 작전이 아니라, 그 작은 천 안의 탄피 한 개 위에 있다.

    회수공 외투 안주머니 작은 천 하나에는 늘 탄피 한 개가 한 자리에 그대로 들어 있소. 그 한 개가 회수공 평생 한 줄 의리지요.

    송정거점 삼대 탄피 회수반장 백현우 — 송정거점 외벽 안팎 골목 한 줄을 십이 년 끌어가며 평생 탄피 사만이천 개를 손수 회수한 자 — 의 일화는 회수공들 사이에서 '한자리 외투 한 칸의 한 개'로 통한다.

    사태 십삼 년 차 어느 새벽, 외곽 작전 끝난 옛 화성고가도로(앞서 슬레이어·관측병 일화의 고가도로) 한 줄 위에서 백현우는 슬레이어 신참 하태식(앞서 이발사·슬레이어 일화의 신참)의 마지막 한 발의 탄피 한 개 — 산탄총 약협 한 점 — 를 골목 한 줄 끝에서 한 호흡 안에 한 줄로 잡아냈다. 백현우는 그 한 개를 평생 재가공실에 한 줄 넘기지 않은 채 자기 외투 안주머니 작은 천 한 자락에 정중히 한 줄로 싸 두었다. 그 한 개의 천 한 자락은 임기를 마친 뒤 평촌거점 거점 이발사 차문호의 의자 옆 작은 선반 한 칸 — 머리카락 봉투 한 줄이 놓인 그 자리 — 옆에 한 줄로 정중히 옮겨졌다. 차문호와 백현우는 그날 새벽 한 잔을 평생 한 번 같이 들이켰으며, 두 사람은 그날 이후 서로의 자리에 한 시진씩 평생 한 번씩 들렀다.

    후대 송정거점 탄피 회수반장들은 임명 첫 주에 자기 외투 안주머니 작은 천 한 자락의 자리를 한 줄 비워 두는 관례를 따른다.

  • 외벽도색공(外壁塗色工)

    외벽 도색공

    거점의 외벽에 색을 다시 입히는 자

    이 빨간 줄, 어젯밤 무리가 두드린 자리예요. 안 보이게 칠하면 큰일 납니다. 보이게 칠해야 보수공이 옵니다.

    외벽 도색공은 거점 외벽·게이트·바리케이드의 균열 표시·구역 번호·경고 색을 매일 새벽 평생 칠하는 평민 출신 자원이다. 외형은 닳은 작업복, 어깨에 작은 페인트 가방, 허리에 작은 권총과 붓, 한 손에 도색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모든 옛 외벽의 평소 색·옛 분기 도색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벽 보수공이 그 다음 한 줄을 정확히 보수할 수 있도록, 그는 빨간 줄 한 개의 굵기를 평생 같은 한 줄로 유지한다. 거점 어린아이들이 그의 작은 페인트 통을 가장 먼저 알아보며, 그 빨간 줄이 자기 가족의 한 시즌을 지키는 표시라는 것을 자라며 알게 된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외벽 도색이 아니라, 어린 신참 보초의 망루 옆에 작게 칠해 두는 푸른 화살표 한 줄이다.

    도색공 페인트 가방 한 칸에는 늘 푸른 페인트 한 통이 한 줄로 들어 있는 자리가 있소. 그 푸른 한 통이 도색공 평생 한 줄 의리지요.

    산음거점 이대 외벽 도색공 한태원 — 산음거점 외벽 한 바퀴 도색을 십 년 끌어가며 평생 빨간 줄 굵기 한 점을 다른 줄로 칠하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도색공들 사이에서 '동쪽 망루 옆 푸른 화살표 한 줄'로 통한다.

    사태 십이 년 차 어느 겨울 새벽, 산음거점 외벽 동쪽 망루(앞서 노태근·김태유 담요 일화의 망루) 옆 작은 콘크리트 한 칸에 한태원은 푸른 화살표 한 줄을 처음 칠했다. 그 화살표 한 줄은 신참 보초 김태유가 망루 한쪽 작은 의자에 잠시 잠이 들었을 때, 망루 옆 비상 사다리의 첫 발판 자리를 한 줄로 가리키는 작은 표시였다. 한태원은 그 화살표 한 줄의 굵기를 평생 같은 한 점으로 유지했고, 김태유는 그 화살표 한 줄을 자라면서 평생 자기 첫 도구로 한 번 따라 그어 보았다. 다음 시즌 외벽 동쪽 큰 무리(약 사백 마리 추정)의 새벽, 김태유는 그 화살표 한 줄을 따라 비상 사다리 첫 발판 자리를 한 호흡 안에 한 줄로 찾아 망루 한 자리를 한 시진 더 지켜냈다. 한태원은 임기를 마치는 새벽 그 화살표 한 줄 옆에 작은 푸른 점 한 개를 평생 한 줄로 더해 두었으며, 그 점 한 개는 지금도 망루 옆 콘크리트 한 칸에 한 줄로 그대로 있다.

    후대 산음거점 외벽 도색공들은 임명 첫 주에 자기 페인트 가방 한 칸에 푸른 페인트 한 통의 자리를 한 줄 비워 두는 관례를 따른다.

  • 신참운반인(新參運搬人)

    신참 운반병

    처음 거점에 들어온 자에게 맡겨진 짐

    박스 무게 검수, 한 줄 사인하겠습니다. 형님, 이 표 줄이 맞습니까? 첫 사인이라 두 번 봅니다.

    신참 운반병은 거점 짐꾼 아래에서 호송 트럭·창고·시장 사이의 작은 박스를 옮기며 운반 명부의 첫 사인을 배우는 평민 출신 신참이다. 외형은 새 작업복, 어깨에 짧은 끈, 허리에 작은 권총과 작은 묶음 끈, 한 손에 신참 명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한 시대 자기 첫 박스의 평소 무게·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큰 결투를 하지 않지만, 늙은 짐꾼이 그의 첫 사인 한 줄을 평생 첫 페이지에 따로 보관해 둔다. 본인은 첫 호송에서 트럭 짐칸 한 귀퉁이에 앉아 본인보다 먼저 박스를 검수하던 옛 짐꾼의 외투 한 벌을 평생 잊지 않으며, 그 외투를 다음 신참에게 한 시즌 뒤 정중히 넘긴다. 가장 무거운 한 줄은 큰 백신 박스가 아니라, 본인 신참 명부 첫 페이지의 첫 사인 한 줄 위에 있다.

    신참 명부 첫 페이지에는 늘 옛 짐꾼 한 명의 외투 한 벌의 자국이 한 줄로 적혀 있소. 그 한 줄이 신참 평생 한 줄 첫 의리지요.

    평촌거점 신참 운반병 강시혁 — 앞서 안성 갈림길 일화의 강태혁 단장의 어린 아들이자 평촌거점 짐꾼반장 윤도영(앞서 외투 일화의 반장) 의 자리에서 첫 사인을 받은 자 — 의 일화는 신참 운반병들 사이에서 '한 외투 한 줄 첫 사인'으로 통한다.

    사태 십삼 년 차 어느 봄 새벽, 강시혁은 평촌거점 첫 호송 트럭 한 대의 짐칸 한 귀퉁이에 앉아 본인 신참 명부 첫 페이지에 첫 사인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안에 한 줄로 그었다. 윤도영은 그 첫 사인 한 줄을 받기 전, 자기 사물함 첫 칸 — 평생 외투 한 벌을 위해 비워 둔 자리 — 에서 강태혁의 외투 한 벌을 정중히 꺼내 강시혁의 어깨 위에 한 줄로 한 번 걸쳐 주었다. 강시혁은 그 외투 한 벌을 평생 자기 첫 작업복으로 한 줄 입었으며, 그 외투 안주머니 한 칸에는 강태혁이 평생 들고 다닌 작은 사진 한 장 — 강시혁 본인의 어린 시절 사진 — 이 한 줄로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한 시즌 뒤 강시혁은 자기 첫 외투 한 벌을 다음 신참 한주민(앞서 야시장·취사반장·사체 처리반 일화의 어린 한주민)에게 정중히 한 줄로 넘겼다.

    후대 평촌거점 신참 운반병들은 임명 첫 주에 자기 신참 명부 첫 페이지 한 줄에 옛 짐꾼 한 명의 외투 한 벌을 한 줄 작게 그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그 외투 한 벌의 한 줄은 평생 다음 신참에게로 한 줄 한 줄 옮겨진다.

  • 거점재건제(據點再建帝)

    거점 재건사령관

    무너진 거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재건의 제왕

    무너진 거점 하나를 다시 세우려면, 벽돌보다 먼저 세울 게 있다. 밥 먹는 시간이다.

    거점 재건사령관은 좀비 무리나 재난으로 무너진 거점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고 복구하는 최고 책임자다. 군사·건축·식수·공동체 갈등 관리까지 한 손에 쥔다. 외형은 두툼한 현장 잠바, 어깨에 재건 표식, 허리에 무전기와 설계 도면 통이 표준이다.

    무너진 거점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새 외벽이 아니라 따뜻한 밥 한 끼라는 사실을 그는 세 번의 재건 현장에서 배웠다. 그래서 그의 첫 명령은 늘 공사 인원 배치보다 취사반 편성이다. 사람들이 한 끼를 같이 먹어야 그 다음 날 외벽 공사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재건 원칙이다.

    재건사령관 현장 첫 명령이 공사 인원 투입이 아닌 데는 이유가 있소. 밥 먹는 자리 한 줄이 다음 날 외벽 한 줄을 만든다는 뜻이지요.

    중부연합 초대 거점 재건사령관 오태준 — 사태 십사 년차 경기 북부 폐허 세 거점을 잇따라 복구한 자이자 설계 도면보다 취사반 편성표를 먼저 꺼내는 것으로 유명한 자 — 의 일화는 재건 현장 책임자들 사이에서 "취사반 첫 솥뚜껑"으로 통한다.

    용두거점(앞서 폐허 대왕 일화의 그 작은 거점)이 사태 오 년차 가을 변이 무리 이백에 외벽이 통째로 무너졌을 때, 오태준은 도착 첫 날 공사 장비를 창고에 놓아둔 채 생존자 마흔두 명을 천막 아래 둘러앉혔다. 그는 자기 가방에서 통조림 열다섯 캔을 꺼내 취사반 청년 이문경(19세, 사태 이후 외벽에서 자라난 고아)의 손에 쥐어 주며 "오늘 저녁은 네가 책임자다"라고 명했다. 이문경이 처음 솥뚜껑을 여는 순간, 생존자 마흔두 명의 어깨가 동시에 한 호흡 풀렸다. 다음 날 아침 이문경은 오태준에게 찾아와 외벽 공사 자재 운반 조를 자청했고, 그날 오후 마흔두 명이 자발적으로 삽을 잡았다.

    후대 재건 현장 책임자들은 첫날 공사 투입 전 취사반 솥뚜껑을 먼저 한 번 여는 자세를 오태준에게서 가져왔다.

  • 백신총감독(疫苗總監督)

    백신 개발 총감독

    백신 개발의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총감독자

    연구실 한 줄 결재는 내가 하지 않는다. 면역자 본인이 한다. 그게 진짜 결재 라인이다.

    백신 개발 총감독은 거점 연합 전체의 백신 연구·배분·호송을 한 줄로 묶어 관장하는 자다.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연구 예산·면역자 보호·호송 노선·분배 우선순위까지 결재한다. 외형은 낡은 흰 가운 위에 연합 코트, 손에 한 시대 분기 백신 보고서 한 다발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번도 직접 주사기를 든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손목 안쪽에는 첫 임상 시험에서 자기 팔을 내어준 흠집이 평생 남아 있다. 연구실 결재 라인의 진짜 첫 줄은 자기 서명이 아니라 면역자가 팔을 걷는 한 줄 위에 있다는 사실을 그는 매일 새벽 흠집 하나를 들여다보며 확인한다.

    총감독의 첫 임상 흠집 한 줄이 결재 라인 맨 위에 놓인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들은 그 첫 줄을 외우며 시작합니다.

    중부연합 초대 백신 개발 총감독 한재원 — 사태 이전 옛 질병관리청 백신 개발 팀장 출신이자 첫 임상 시험에 자기 팔을 직접 내어놓은 자 — 의 일화는 연구실 안에서 "손목 한 줄"로 길게 돈다.

    임상 시험 대상자를 구하지 못해 세 분기가 흐른 뒤, 한재원은 백신 연구자 윤지선(앞서 17번 거점 연구실 일화의 그 여성 연구자)의 보고서 한 장을 읽고 다음 날 새벽 연구실 문을 직접 두드렸다. 그는 가운도 결재서도 들지 않은 채 흰 소매를 걷어 올렸고, 윤지선은 한 호흡 멈췄다가 시험관 한 자루를 정중히 들었다. 그날의 채혈 결과는 네 분기 뒤 거점 연합 세 곳의 첫 항체 데이터가 되었다. 한재원은 그날 이후 임상 결재 서류 첫 줄에 자기 서명 대신 자기 손목 흠집 자리를 펜으로 한 줄 동그라미 쳐 두는 의례를 평생 지켰다. 연구실 직원들은 그 서류를 매 분기 결재 전 한 번씩 들여다보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가져갔다.

    후대 연합 백신 총감독들은 임명 첫 주에 손목 안쪽에 작은 동그라미 한 줄을 직접 그어 두는 관례를 따른다.

  • 연합전령장(聯合傳令將)

    거점 연합 전령장

    흩어진 거점들을 잇는 전령의 우두머리

    이 서류 한 장을 이틀 안에 다섯 거점에 도달시키는 게 내 일이다. 기한이 지나면 거점 한 곳이 죽는다.

    거점 연합 전령장은 여러 거점 사이의 중요 결재·비상 통보·연합 회의 소집을 전달하는 전령 조직의 총책임자다. 단순 심부름이 아니라 전령들의 노선 편성·보안 암호·호신 장비까지 책임진다. 외형은 속도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경량 가죽 잠바, 어깨에 연합 표식 배지, 허리에 암호 봉투함이 표준이다.

    전령이 이틀 안에 결재 한 장을 못 전달하면 거점 한 곳의 보급이 끊긴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 앉은 모든 전령장이 취임 첫날 배운다. 그래서 전령장의 가장 무거운 결재는 큰 연합 회의 소집이 아니라, 가장 느린 신참 전령의 노선 최적화 한 줄이다.

    전령장 책상 위 가장 오래된 노선도 한 장은 가장 느린 신참 전령의 이름이 한 줄로 적혀 있소. 그 이름 한 줄이 전령장 평생 가장 무거운 결재지요.

    중부연합 삼대 거점 연합 전령장 김봉준 — 경기·충청 전령 노선 여든 개를 손수 재편하며 결재 전달 지연 사례를 사 년간 단 두 건으로 줄인 자 — 의 일화는 전령들 사이에서 "신참 이문의 노선 두 줄"로 통한다.

    신참 전령 이문(17세, 거점 고아 출신)이 빗속 야간 도로에서 길을 잃어 결재 한 장을 사흘 늦게 전달한 사건이 생겼을 때, 김봉준은 이문을 불러 처벌 대신 그 야간 도로 구간 지도를 두 사람이 함께 다시 걸으며 직접 수정해 주었다. 이문이 길을 잃은 이유가 빗물에 지워진 표지판 한 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김봉준은 연합 전체 표지판 규격을 한 줄 개정하는 결재를 직접 올렸다. 이문은 그 이후 같은 구간 전달 지연 사례를 한 건도 내지 않았다.

    후대 전령장들은 임명 첫 주에 가장 느린 전령의 노선을 직접 한 번 걸어보는 의례를 김봉준에게서 가져왔다.

  • 격리수호장(隔離守護將)

    격리구역 경비대장

    감염된 자들을 가두는 격리구역의 경비대장

    격리 구역 안에는 적이 없다. 다만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격리구역 경비대장은 거점 안 감염 의심자·격리 대상자를 수용하는 구역의 출입과 질서를 책임지는 직책이다. 외벽 경비와 달리 이 구역의 경비는 안에서 나오려는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 무단으로 들어오거나 강제로 꺼내려는 시도를 막는 일이 더 많다.

    격리 중인 사람의 가족이 작은 음식 하나를 전해주려 몰래 넘어오는 일이 가장 잦고, 그런 가족을 쫓아내지 않고 원칙 안에서 받아주는 방법을 찾는 게 이 경비대장의 진짜 솜씨다. 폐허의 격리 구역은 감옥이 아니라 돌봄의 공간이라는 것을 그가 가장 잘 안다.

    경비대장 초소 위에 작은 선반 하나가 있소. 가족들이 몰래 넘겨주려다 돌아간 음식들이 그 선반 위에 반듯하게 전달되지요. 그게 진짜 경비의 한 줄입니다.

    22번 거점 초대 격리구역 경비대장 박철수 — 사태 이전 옛 교정 시설 교도관 출신이자 격리 구역 초소를 처음 설계한 자 — 의 일화는 경비 대원들 사이에서 "초소 위 선반의 첫 상자"로 통한다.

    감염 의심으로 격리에 들어간 노인 최순택의 딸 최수지(12세, 거점 보육원 재학)가 빵 한 조각을 철조망 너머로 건네려다 발각되었을 때, 박철수는 아이를 돌려보내는 대신 자기 외투 주머니에서 공식 음식 전달 봉투를 꺼내 그 빵을 정중히 담아 초소 선반 위에 올렸다. 그날 저녁 최순택은 격리 구역 안 배식 시간에 딸의 빵을 받았다. 박철수는 그 이후 외부에서 전달하고 싶은 물건을 초소 선반에 두면 공식 경로로 안에 전달해 주는 절차를 만들었다. 거점 의무관 우현재(앞서 등장한 의무관)는 그 절차가 격리 구역 탈출 시도를 눈에 띄게 줄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후대 격리구역 경비대장들은 임명 첫 주에 초소 위 선반 한 칸을 비워 두는 의례를 박철수에게서 가져왔다.

  • 도로탈환장(道路奪還將)

    도로 탈환대장

    좀비에게 빼앗긴 도로를 되찾는 탈환의 장수

    이 도로를 되찾는 건 우리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다음 거점이 여기를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도로 탈환대장은 약탈자 또는 좀비 무리에게 장기간 막힌 주요 도로 구간을 정리하고 거점 연합의 이동 경로를 복구하는 작전의 총책임자다. 단순 소탕이 아니라 도로 정비·표지판 복구·구간 순찰 일정화까지 책임진다.

    그가 탈환한 도로 한 구간이 백신 호송 노선 하나를 살리고, 그 노선이 거점 두 곳의 한 시즌 분기를 바꾼다. 본인은 작전 직전 부하들에게 탈환 목적을 한 줄씩 직접 말해주는 습관이 있어, 그의 조가 투입 전날 밤 가장 조용하게 잠든다는 게 무전망 야사에 적혀 있다.

    탈환대장 브리핑은 좌표가 아닙니다. 이 도로 다음에 지나갈 거점 이름 한 줄이 진짜 브리핑이지요.

    중부연합 이대 도로 탈환대장 이준환 — 경기·충청 주요 도로 열한 구간을 탈환하며 단 한 차례도 부하를 잃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탈환대원들 사이에서 "안성 재개통 새벽"으로 통한다.

    약탈자 황량단(앞서 약탈자 두목 일화의 그 결사)이 사 년간 막아온 안성옛로(앞서 백신 호송단장 일화의 그 갈림길 도로) 재개통 작전 직전 브리핑에서, 이준환은 지도 대신 백신 호송 트럭 한 대의 납품 명부 첫 줄을 꺼내들었다. 그는 그날 작전이 성공하면 처음으로 지나갈 트럭의 첫 납품지가 신생 거점 청양터(앞서 호송단장 일화의 그 거점)라는 사실을 한 줄로 읽어줬다. 부하 대원 열네 명은 그날 밤 한 줄도 늦게 잠들었다는 보고가 내려왔고, 다음 날 새벽 작전은 여덟 시간 만에 도로 한 구간을 완전히 복구했다. 재개통 첫날 오후 백신 호송 트럭 한 대가 그 도로 위를 처음 달렸다.

    후대 탈환대장들은 작전 브리핑 마지막 줄에 그 도로 이후 통과할 첫 거점 이름을 한 줄 더 읽어주는 자세를 이준환에게서 가져왔다.

  • 외곽구조장(外郭救助將)

    외곽 구조대장

    외곽에 고립된 자들을 구해내는 구조대장

    거점 밖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는 사람은 포기한 사람이 아니다. 아직 살기 위해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다.

    외곽 구조대장은 거점 외곽 폐허에 고립된 생존자 무리·부상자·미아를 탐색하고 안전하게 회수하는 구조 조직의 총책임자다. 전투보다 탐색과 이동에 특화된 장비를 쓰며, 의무반과 항상 공동으로 편성된다.

    그가 이끄는 구조대는 생존자를 데려올 때 거점의 보급 용량을 먼저 사령관에게 확인한 뒤 움직이지만, 아이가 포함된 무리는 용량 확인 전에 먼저 출발하는 원칙이 하나 더 있다. 폐허 안에서 손을 드는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이 더 큰 손실이라는 사실을 그는 첫 해에 배웠다.

    구조대 차량 뒷좌석에는 늘 담요 한 장이 한 줄로 접혀 있소. 그 담요 한 장이 구조대 첫 번째 약속이지요.

    17번 거점 초대 외곽 구조대장 황정욱 — 사태 칠 년차 단 한 번의 야간 출동으로 폐허 신도시 잔존 생존자 스물한 명을 회수한 자 — 의 일화는 구조대원들 사이에서 "잔존 아파트 스물한 명의 새벽"으로 통한다.

    사태 칠 년차 어느 늦겨울, 무전탑의 목소리 박수경(앞서 일화에 등장한 그 여성 통신사)이 잡아낸 희미한 구조 신호가 옛 일산 신도시 폐허 아파트 단지에서 발신되었다. 황정욱은 밤 열한 시에 사령관 결재도 기다리지 않고 담요 스물다섯 장을 차에 싣고 출발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는 어린이 일곱 명을 포함한 스물한 명이 사흘째 웅크려 있었다. 황정욱은 담요를 나눠 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름을 묻는 것이었고, 차량 출발 전 스물한 명의 이름을 전부 한 줄씩 수첩에 적었다. 거점에 도착했을 때 그 수첩 한 장은 생존자 명부 첫 줄이 되었다.

    후대 구조대장들은 출동 전 담요 한 장과 이름을 적을 수첩 한 권을 반드시 챙기는 자세를 황정욱에게서 가져왔다.

  • 암호해독사(暗號解讀師)

    무전 암호 해독관

    끊어진 무전 속 암호를 풀어내는 해독관

    다른 거점 무전 한 줄이 우리 거점 다음 한 끼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듣는다.

    무전 암호 해독관은 거점 간 무전 교신에 쓰이는 암호·은어·신호 패턴을 분석하고 해독하는 정보 전문가다. 적대 무리·약탈자·미확인 거점의 무전을 감청하고, 아군 무전 보안도 함께 책임진다. 외형은 헤드셋 두 개, 낡은 무전기 세 대, 책상 위 암호 수첩 한 다발이 표준이다.

    본인은 무전 소리를 들을 때 말의 뜻보다 말하는 사람의 호흡을 먼저 듣는다. 호흡이 짧아지면 거짓말, 길어지면 위기라는 것을 수백 시간의 청취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그의 해독 보고서에는 말 한마디보다 "호흡 세 박자 이상 끊김"이라는 한 줄이 더 자주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해독관 보고서에서 가장 무거운 줄은 암호 번역이 아니라 호흡 끊김 표시 한 줄이라는 사실을, 우리 후학들은 그 새벽 보고서에서 평생 배웁니다.

    평촌거점 이대 무전 암호 해독관 문태희 — 사태 이전 옛 통신 대대 신호병 출신이자 거점 연합 최초의 무전 암호 규격을 만든 자 — 의 일화는 해독관들 사이에서 "호흡 끊김 세 박자의 새벽"으로 통한다.

    약탈자 결사 흑호단(앞서 생존자 군주 일화의 그 결사) 무전 중 갑자기 호흡이 세 박자 끊기는 신호를 잡아낸 어느 새벽, 문태희는 그 호흡 한 줄의 의미를 사령관 변기홍(앞서 사령관 일화의 그 인물)에게 보고했고, 변기홍은 즉시 동쪽 외벽 경계를 한 단계 높였다. 세 시간 뒤 동쪽에서 접근해 오던 약탈조 열다섯 명이 강화된 초소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는 무전이 들어왔다. 문태희는 그날 보고서에 암호 해독 내용 대신 "호흡 끊김 세 박자 — 우회 준비 신호"라는 한 줄만 적어 넣었다.

    후대 해독관들은 수첩 첫 장에 호흡 패턴 목록을 암호 목록보다 먼저 기재하는 자세를 문태희에게서 가져왔다.

  • 이동의무사(移動醫務師)

    이동 의무반장

    거점을 옮겨가며 부상자를 돌보는 의무반장

    의무실은 건물에 있는 게 아니다. 내 가방이 도착하는 자리가 의무실이다.

    이동 의무반장은 한 거점에 머물지 않고 거점 간 도로·구조 현장·외곽 작전 지역을 이동하며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야전 의료팀의 책임자다. 정식 의무실 시설 없이 가방 하나로 부상자를 처치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외형은 다용도 의료 가방, 가슴에 적십자 표식, 허리에 봉합 키트와 진통제 통이 표준이다. 본인은 어느 거점에도 속하지 않고 떠돌기 때문에 거점 입장에서는 가장 환영받는 손님이지만, 정작 그 자신은 한 거점에 이틀 이상 머문 적이 없다. 폐허의 의무실은 네 벽이 아니라 그의 가방 안에 있다.

    이동 의무반장 가방 한 칸에는 늘 먼 거점에서 받은 통조림 한 개가 한 자리에 있소. 그 한 개가 그 거점의 다음 방문 예약이지요.

    중부연합 초대 이동 의무반장 최광호 — 사태 이전 옛 군 의무 부사관 출신이자 사 년간 거점 연합 이동 의무 노선을 단신으로 구축한 자 — 의 일화는 이동 의무대원들 사이에서 "청양터 통조림 한 개"로 통한다.

    신생 거점 청양터(앞서 일화에 등장한 그 작은 거점)에 처음 도착해 의무 지원을 마친 날, 최광호는 답례로 받은 통조림 한 개를 다음 방문 예약 표시로 가방 한 칸에 정중히 두었다. 그날 청양터의 어린 생존자 여섯 명에게 예방 처치를 해주면서, 그는 이름을 한 명씩 물어보고 수첩에 적었다. 이후 두 달 뒤 재방문 때 그는 수첩을 꺼내 이름을 한 명씩 불렀으며,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처치에 협조하는 비율이 두 배로 늘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후대 이동 의무반장들은 방문 거점마다 어린이 이름을 수첩 한 줄에 적는 자세를 최광호에게서 가져왔다.

  • 연료호송장(燃料護送將)

    연료 호송조장

    마지막 연료 한 통을 지키는 호송조의 장

    이 연료 드럼 한 통이 거점 발전기를 사흘 돌린다. 사흘이 의무실 수술등을 켜는 사흘이다.

    연료 호송조장은 거점 발전기·이동 차량·의무실 난방에 필요한 연료를 먼 정제소에서 거점까지 운반하는 호송 조직의 책임자다. 백신 호송과 마찬가지로 약탈자의 주요 표적이지만, 연료는 백신보다 부피가 커서 더 큰 호송 차량과 더 많은 경호원이 필요하다.

    외형은 두꺼운 방화 잠바, 어깨에 호송 표식, 허리에 무전기와 운반 명세 통이 표준이다. 그는 연료 호송 중 발생하는 모든 사고를 본인 잘못으로 먼저 보고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연료가 도착해야 수술실 등이 켜진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자가 가장 신중하게 운전대를 잡는다.

    연료 호송 명세서 첫 줄에 의무실 발전기 가동 시간이 적히는 데는 이유가 있소. 그 시간 한 줄이 다음 환자의 한 끼를 살린다는 뜻이지요.

    중부연합 이대 연료 호송조장 윤창섭 — 충청 연료 정제소에서 경기 북부 거점 연합까지 호송 노선 쉰여섯 회를 끌어가며 드럼 한 통도 빠뜨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호송조원들 사이에서 "의무실 발전기 켜진 새벽"으로 통한다.

    결빙된 야간 도로에서 드럼 두 통이 차량 진동에 흘러내릴 위기가 생겼을 때, 윤창섭은 본인이 차 밖으로 나가 드럼을 손으로 잡아 고정한 채 부하 운전수가 안전 구간까지 이동하는 동안 한 시간을 혼자 버텼다. 거점에 연료가 도착한 그날 밤 의무실 발전기가 처음으로 꺼지지 않은 채 밤을 넘겼고, 폐허 외과의 진해(앞서 일화에 등장한 그 외과의)가 밤새 수술을 끝낼 수 있었다. 진해는 그 수술 보고서에 "발전기 야간 가동 — 연료 호송 조장 윤창섭"이라는 한 줄을 추가로 남겼다.

    후대 연료 호송조장들은 호송 명세서 첫 줄에 납품 거점의 의무실 가동 시간 한 줄을 먼저 적는 자세를 윤창섭에게서 가져왔다.

  • 외벽구조사(外壁構造師)

    외벽 구조 기술자

    외벽의 구조 자체를 보강하는 기술자

    무너진 벽을 때워야 하는데, 시멘트보다 먼저 필요한 건 그 자리에 왜 금이 갔는지 아는 것이다.

    외벽 구조 기술자는 거점 외벽의 균열·붕괴·약점 부위를 진단하고 임시 보강재로 빠르게 복구하는 전문가다. 사태 이전 건축·토목 출신이 많으며, 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폐자재·합판·철골로 최선을 만들어낸다. 외형은 두꺼운 작업복, 어깨에 도구 가방, 허리에 안전벨트와 수첩이 표준이다.

    그가 한 번 손을 대고 나면 그 구간이 한 시즌을 더 버틴다는 말이 거점 외벽 보초들 사이에 돈다. 본인은 완벽한 복구보다 빠른 응급 처리를 우선시하지만, 응급 처리 후 반드시 원인 수첩 한 줄을 적어 다음 재건사령관에게 넘기는 습관이 있다.

    구조 기술자 수첩 한 줄이 다음 재건 때 외벽 한 칸을 더 두껍게 만든다는 사실, 그게 폐허 건축의 첫 번째 약속이지요.

    산음거점 초대 외벽 구조 기술자 조재현 — 사태 이전 옛 건설 현장 반장 출신이자 산음거점 외벽을 손수 두 차례 복구한 자 — 의 일화는 외벽 보수 팀 사이에서 "동쪽 벽 기초 한 줄"로 통한다.

    변기홍 사령관(앞서 사령관 일화의 그 인물) 시절 외벽 동쪽이 무너진 다음 날 새벽, 조재현은 현장에 도착해 복구 작업보다 먼저 한 시간 동안 무너진 자리의 흙을 손으로 파냈다. 거점 보초 노태근(앞서 일화의 신참 보초)이 옆에서 지켜보다 "언제 고칩니까"라고 물었을 때, 조재현은 "여기 기초가 모래 위에 놓인 이유를 먼저 알아야 다음 번엔 안 무너집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 한 줄이 다음 복구 때 외벽 동쪽 기초를 새로 다지는 결재로 이어졌다.

    후대 외벽 구조 기술자들은 현장 도착 첫 날 복구보다 원인 파악을 먼저 수첩에 한 줄 적는 자세를 조재현에게서 가져왔다.

  • 식량배분사(食糧配分師)

    식량 배분 관리관

    한 줌의 식량을 공평히 나누는 관리관

    많은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게 공평함이 아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주는 게 공평함이다.

    식량 배분 관리관은 거점 창고 재고와 거점민 수·건강 상태를 파악해 하루 배분 계획을 짜는 행정 담당이다. 누가 얼마나 일했는지보다 누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먼저 계산하며, 그 기준을 두고 거점 안 불만이 생기면 직접 사람들을 만나 설명하는 일도 이 직책의 몫이다.

    배분 명단 한 줄 차이로 싸움이 붙는 게 폐허 거점 안에서 가장 흔한 사태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의 배분 명단은 숫자보다 이유가 더 길게 적혀 있다.

    배분 명단에 이유 한 줄이 숫자보다 길게 적혀 있는 게 거점 안 싸움을 줄이는 가장 긴 방법이라는 사실, 그게 이 직책의 첫 번째 교훈이지요.

    17번 거점 삼대 식량 배분 관리관 강민우 — 사태 이전 옛 복지관 사회복지사 출신이자 보급 분쟁 조정 기록을 사 년간 한 건도 빠뜨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관리관들 사이에서 "명단 이유 한 줄의 새벽"으로 통한다.

    보급 분배 갈등이 폭발 직전이었던 그해 겨울(앞서 종말의 성녀 200001 일화와 같은 그 사건), 강민우는 그날 새벽 배분 명단 전체를 한 줄 한 줄 다시 적으며 각 이름 옆에 이유를 짧게 붙였다. "두 아이 어머니 복직 복귀 중" "외벽 보초 야간 이틀 연속 투입" "격리 해제 후 첫 끼니" 같은 한 줄들이 명단 양면을 채웠다. 정혜원(앞서 성녀 일화의 그 여성)이 한쪽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만나는 사이, 강민우는 그 명단을 외벽 보초조와 의무실 야근조에게 각각 한 장씩 건넸다. 두 조는 명단을 읽으며 한 줄씩 고개를 끄덕였다.

    후대 식량 배분 관리관들은 배분 명단에 이름보다 이유를 먼저 적는 자세를 강민우에게서 가져왔다.

  • 격리감시사(隔離監視士)

    격리 감시원

    격리 구역을 한시도 눈 떼지 않고 보는 감시원

    격리 구역 안을 감시하는 게 아니다. 격리 구역 안 사람들이 오늘도 잘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격리 감시원은 거점 격리 병동 주변을 순찰하며 이상 징후·격리 대상자 상태 변화·무단 접근을 보고하는 직책이다. 경비대장 아래에서 일하지만, 실제로는 격리 병동 창문 너머 환자들과 매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외부 인원이기도 하다.

    격리 안에 들어가지 않고 창문 너머로 상태를 확인하는 게 원칙이지만, 창문 너머 목소리 한 줄이 환자들에게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유일한 한 줄이라는 것을 그들이 가장 잘 안다. 폐허의 격리 병동을 지키는 것은 자물쇠가 아니라 그 창문 너머의 목소리다.

    감시원 순찰 수첩에 이상 징후 말고 오늘의 환자 목소리 한 줄이 적히는 데는 이유가 있소. 그 한 줄이 내일 환자가 깨어날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22번 거점 초대 격리 감시원 남준호 — 사태 이전 옛 요양원 간호조무사 출신이자 격리 감시원 순찰 기록을 삼 년간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은 자 — 의 일화는 감시원들 사이에서 "창문 너머 동요 한 줄"로 통한다.

    격리 병동에 열흘째 수용된 아이 박지호(7세)가 창문 너머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던 어느 새벽, 남준호는 순찰 수첩을 덮고 창문 옆에 앉아 동요 한 줄을 조용히 읊었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두 번째 줄에서 창문 안쪽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따라왔다. 그날 이후 남준호는 순찰 때마다 그 창문 앞에서 짧은 동요를 하나씩 더했고, 박지호는 열다섯째 날 처음으로 창문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의무병 강선희(앞서 일화에 등장한 그 의무병)는 그 날 박지호의 상태 기록에 처음으로 "반응 개선" 한 줄을 추가했다.

    후대 격리 감시원들은 순찰 수첩 마지막 칸에 오늘 창문 너머로 들은 소리 한 줄을 적는 자세를 남준호에게서 가져왔다.

  • 거점순찰사(據點巡察士)

    거점 순찰대원

    거점의 골목을 매일 도는 순찰대원

    거점 안 순찰은 적을 찾는 게 아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걸 매일 확인하는 게 순찰이다.

    거점 순찰대원은 거점 내부 골목·창고·주거 구역을 정기적으로 돌며 이상 징후·화재 위험·갈등 징조를 보고하는 내부 경비 직군이다. 외벽 보초보다 전투 빈도는 낮지만, 거점 안에서 가장 많은 거점민과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자들이다.

    이름을 기억해 주는 순찰대원이 있는 거점은 내부 갈등 발생이 절반으로 준다는 연구 기록이 없어도, 경험 있는 대원들은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폐허의 순찰은 발이 아니라 기억으로 하는 일이다.

    순찰 수첩에 거점민 이름이 사건 기록보다 많이 적힌 날이 가장 조용한 날이라는 사실, 그게 순찰대원 첫 번째 교훈이지요.

    송정거점 이대 순찰대장 이해진 — 사태 이전 옛 아파트 경비원 출신이자 거점민 사백 명의 이름과 자리를 전부 외운 자 — 의 일화는 순찰대원들 사이에서 "명패 없는 사람 명단"으로 통한다.

    거점에 처음 합류한 생존자 중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 몇 명씩 있을 때, 이해진은 그들에게 이름 대신 자기가 부를 번호를 직접 골라 달라고 했다. 번호를 고른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점 생활에 먼저 적응하기 시작했다. 한 달 뒤 그 사람들은 스스로 이름을 밝혔고, 이해진은 수첩에 번호 옆에 이름을 조용히 덧적었다. 생존자 군주 한도경(앞서 일화에 등장한 그 군주)은 이해진의 수첩 한 장을 보고 명부 방식을 거점 전체에 정착시켰다.

    후대 송정거점 순찰대원들은 수첩에 사건 대신 이름을 먼저 적는 자세를 이해진에게서 가져왔다.

  • 야간관측수(夜間觀測手)

    야간 신호 관측원

    밤마다 신호와 움직임을 살피는 관측원

    저 빛이 거점 신호인지 덫인지 구별하는 데 10년 걸렸다. 지금은 한 줄 차이로 안다.

    야간 신호 관측원은 거점 외곽의 야간 신호·불빛·발광 패턴을 분석해 아군 거점·구조 신호·적의 유인 신호를 구별하는 전문 감시 인원이다. 망루 위 쌍안경 한 대와 신호 수첩 한 권이 전 재산이다.

    사태 이전에는 천문 동호회·야간 촬영 동호회 출신들이 이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망루 위에서 가장 오래 눈을 뜨고 있는 자들이며, 폐허의 밤을 가장 많이 아는 자들이다. 그들이 "저건 구조 신호"라고 말하면 구조대가 출발하고, "저건 유인"이라고 말하면 외벽이 닫힌다.

    관측원 신호 수첩 한 줄이 구조대 출발과 외벽 폐쇄를 가르는 한 줄이라는 사실을, 우리 후학들은 그 열여섯 번째 야간에서 배웁니다.

    산음거점 삼대 야간 신호 관측원 정기백 — 사태 이전 옛 아마추어 천문 관측 동호회 회장 출신이자 신호 유형 목록 한 권을 직접 만들어 거점 연합에 배포한 자 — 의 일화는 관측원들 사이에서 "열여섯 번째 야간 신호"로 통한다.

    정기백이 신호 수첩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첫 해, 같은 패턴의 불빛이 아군 신호와 유인 신호로 번갈아 사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두 신호의 차이가 세 번째 깜빡임 간격 한 줄이라는 것을 열여섯 번째 야간 관측에서 최종 확인했다. 그 한 줄이 신호 수첩 첫 페이지에 올랐고, 이후 거점 연합 전체에 배포된 표준 신호 목록의 첫 번째 항목이 되었다. 전령장 김봉준(앞서 일화에 등장한 그 전령장)은 그 수첩 한 권을 연합 기록실에 공식 보관 결재했다.

    후대 관측원들은 망루 첫날 밤 수첩 첫 줄에 "세 번째 깜빡임 간격을 먼저 셀 것"이라는 정기백의 한 줄을 베껴 적는 자세를 따른다.

  • 거점목공장(據點木工匠)

    거점 목공 기술자

    거점 안의 가구와 들보를 짜는 목공

    폐허에서 새 나무는 없다. 있는 나무로 없는 걸 만드는 게 목공이다.

    거점 목공 기술자는 거점 안 가구·문·선반·침상·보강재 등 목재 구조물 전반을 제작하고 수리하는 장인이다. 폐허에서 자재를 구하는 일이 작업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이 그것으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일이다.

    본인은 버려진 건물의 문짝·판자·마루판을 가장 먼저 가져오는 자이며, 거점 안에서 가장 조용하게 일하면서도 가장 오래 기억되는 물건을 만든다. 새벽에 첫 번째 맞배를 치는 사람이 그이고, 거점민이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날은 문이 삐걱거리는 날이다.

    목공 기술자가 만든 의자 한 개가 거점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는 사실, 그 의자 한 줄이 그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의 하루를 살린 셈이지요.

    17번 거점 초대 목공 기술자 유성태 — 사태 이전 옛 가구 공방 대표 출신이자 거점 안 의자·침상·선반 오백 점을 직접 만든 자 — 의 일화는 목공들 사이에서 "의무실 옆 작은 의자 한 개"로 통한다.

    거점 의무실(앞서 강선희 일화의 그 의무실)에 환자 가족 대기 자리가 없어 가족들이 바닥에 앉아 기다리는 것을 본 날, 유성태는 다음 날 새벽 폐허 아파트 복도 문짝 세 개를 가져와 의무실 입구 옆에 낮은 의자 여섯 개를 만들었다. 환자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 없이 그냥 두고 갔다. 그날부터 의무실 앞에 가족이 바닥에 앉는 일이 없어졌고, 강선희는 그 의자 한 줄을 자기 환자 기록에 "처음으로 가족 대기 자리 생김"이라고 한 줄 남겼다. 유성태는 이후 의무실·보육원·식당 순서로 매 달 새 자리 한 개씩을 조용히 더해 나갔다.

    후대 목공 기술자들은 자기 첫 작업을 의무실·보육원 중 한 곳에 두는 자세를 유성태에게서 가져왔다.

  • 약품조제사(藥品調劑師)

    약품 조제사

    남은 약품을 조합해 새 약을 만드는 조제사

    이 알약 세 개로 사흘을 버틸 수 있다. 어떻게 나눠야 할지 아는 게 약품 조제사의 일이다.

    약품 조제사는 거점 안 보유 약품을 환자 상태와 재고 현황에 따라 배분·희석·대체 처방하는 반의료 전문가다. 정식 약사 자격은 없어도 사태 이전 약학과·간호과·화학과 출신들이 이 자리를 채운다.

    약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대 효과를 내는 조합을 찾는 것이 이 직업의 핵심 기술이다. 때로는 민간요법과 폐허 식물 추출물을 섞는 아슬아슬한 실험도 감행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실험이라 부르지 않고 "현장 처방"이라 부른다. 약이 없는 폐허에서 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기술이다.

    약품 조제사 조제 수첩 한 줄이 다음 이동 의무반장의 가방 한 칸을 채우는 첫 번째 재료라는 사실, 그 한 줄이 폐허 약학의 진짜 시작입니다.

    평촌거점 초대 약품 조제사 이중수 — 사태 이전 옛 약학대 석사과정 출신이자 거점 내 대체 약품 목록 첫 판본을 만든 자 — 의 일화는 조제사들 사이에서 "쑥 추출물 조제 첫 줄"로 통한다.

    항생제 재고가 사흘치밖에 남지 않았던 어느 여름, 이중수는 거점 텃밭에서 자라는 쑥·질경이·익모초로 항균 작용을 기대할 수 있는 간이 처방을 만들어 거점 의무관에게 제안했다. 거점 의무관 우현재(앞서 일화의 그 의무관)는 처음에 고개를 저었지만, 이중수가 자기 팔에 먼저 직접 발라보이자 이틀 뒤 경증 외상 환자 두 명에게 적용해 보기로 결재했다. 두 환자 모두 감염 없이 이틀 안에 회복되었고, 이 조합은 이중수의 대체 약품 목록 첫 줄에 올랐다. 이동 의무반장 최광호(앞서 일화의 그 인물)는 그 목록 한 장을 자기 가방 안주머니 첫 칸에 항상 두었다.

    후대 약품 조제사들은 조제 수첩 첫 줄에 자기 팔에 먼저 시험해 본 한 줄을 표시하는 자세를 이중수에게서 가져왔다.

  • 발전점검수(發電點檢手)

    발전기 점검원

    발전기 한 대 한 대를 점검하는 자

    발전기 소리가 바뀌면 세 가지 의미 중 하나다. 듣는 법을 아는 게 내 기술이다.

    발전기 점검원은 거점 안 발전기·비상 전원·조명 설비의 일상 점검과 긴급 수리를 전담하는 기술 직군이다. 사태 이전 전기·기계 기술직 출신이 많으며, 거점에서 가장 자주 밤새 일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의무실 수술등·무전실 전원·외벽 야간 조명이 모두 그의 손에 달려 있어, 거점에서 전기를 가장 소중히 쓰는 사람이 그이다. 발전기가 꺼지는 날 거점 안에 생기는 어둠을 가장 잘 아는 자답게, 그는 발전기 소리 하나만 듣고도 다음 고장 시점을 하루 이내로 맞힌다는 게 무전망 야사에 적혀 있다.

    발전기 점검 수첩 한 줄에 소리 묘사가 기계 수치보다 많은 데는 이유가 있소. 그 소리 한 줄이 다음 날 의무실 수술등을 지키는 첫 번째 경보지요.

    17번 거점 이대 발전기 점검원 홍창수 — 사태 이전 옛 발전소 설비 기술사 출신이자 거점 발전기 수첩 한 권을 직접 손글씨로 채운 자 — 의 일화는 점검원들 사이에서 "달 보름의 소리 변화"로 통한다.

    발전기 점검 수첩 오십 페이지를 채운 어느 날 밤, 홍창수는 발전기 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느리다는 것을 귀로 먼저 알아챘다. 수치를 확인하니 차이가 없었지만, 그는 연료 호송조장 윤창섭(앞서 일화의 그 인물)에게 무전을 넣어 내일 연료 보충을 하루 앞당겨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연료가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고, 그날 밤 발전기는 계획보다 두 시간 일찍 연료 부족 경보를 울렸다. 의무실에서는 수술이 두 건 진행 중이었고, 두 건 모두 전원 끊김 없이 마무리되었다. 홍창수의 수첩에는 그날의 "소리 반 박자 늦어짐" 한 줄이 이후 모든 발전기 수첩의 첫 번째 점검 항목으로 옮겨졌다.

    후대 발전기 점검원들은 수치보다 소리를 먼저 수첩에 적는 자세를 홍창수에게서 가져왔다.

  • 새벽보급부(曉報給夫)

    새벽 보급 마차꾼

    새벽길을 마차에 실어 보급을 나르는 마차꾼

    거점 안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다음 끼니 재료가 식당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그게 내 마감 시간이다.

    새벽 보급 마차꾼은 거점 중앙 창고에서 식당·의무실·외벽 초소 등 각 구역으로 매일 새벽 보급품을 배분 운반하는 내부 물류 담당이다. 군용 차량 대신 소음이 적은 손수레나 마차를 사용해 거점민을 깨우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거점이 깨어나기 전에 이미 하루 보급의 절반을 끝내놓는 그는 거점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다. 취사반장과 의무병이 출근하면 이미 필요한 재료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 당연함 뒤에는 새벽 두 시 첫 수레 끄는 소리가 있다.

    새벽 두 시 수레 끄는 소리가 멈추는 날이 거점에서 가장 무거운 날이라는 사실, 그 소리 한 줄이 거점 새벽의 첫 번째 박동이지요.

    17번 거점 삼대 새벽 보급 마차꾼 박태국 — 사태 이전 옛 도매 시장 새벽 배송 기사 출신이자 거점 보급 내부 노선을 처음 수레 전용으로 개편한 자 — 의 일화는 보급 마차꾼들 사이에서 "의무실 선반 위 세 칸"으로 통한다.

    거점 의무병 강선희(앞서 일화의 그 의무병)가 새벽 수술 직후 탈진으로 쓰러져 의무실 안에 식량이 하나도 없던 어느 새벽, 박태국은 창고 배분 목록에 없던 죽 재료 한 포와 건빵 한 봉지를 의무실 선반 위 세 번째 칸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강선희는 그날 낮 깨어나 선반 위를 보고 출처를 알 수 없어 보급 명단을 확인했지만, 박태국의 수레 운행 기록에는 그 추가 항목이 없었다. 다음 날부터 강선희는 의무실 선반 세 번째 칸을 비워 두는 습관이 생겼고, 박태국은 평생 그 자리를 채워 두었다.

    후대 새벽 보급 마차꾼들은 배분 목록에 없어도 의무실 선반 한 칸을 채워 두는 자세를 박태국에게서 가져왔다.

  • 텃밭농경부(텃田農耕夫)

    거점 텃밭 농부

    거점 한구석 텃밭을 일구는 농부

    이 흙 한 줌에 씨앗 한 알을 심는다. 다음 달 한 끼가 여기서 시작된다.

    거점 텃밭 농부는 거점 안 옥상·마당·담장 아래 빈 공간을 활용해 채소와 약초를 재배하는 자다. 통조림에 의존하는 거점에서 신선한 채소 한 포기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기 때문에, 그는 흙 한 줌과 빗물 한 통을 가장 소중히 다루는 사람이다. 외형은 작업용 장갑, 어깨에 작은 씨앗 봉투 가방, 손에는 낡은 모종삽이 표준이다.

    거점민들이 텃밭 옆을 지날 때 발걸음이 느려지는 게 그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다. 폐허에서 자라는 것을 보는 일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그는 매일 흙 위에서 확인한다.

    텃밭 한 켠에 가장 먼저 자라는 건 채소가 아니라 사람들 표정이라는 사실, 그 한 줄이 텃밭 농부 첫 번째 보고서지요.

    17번 거점 초대 텃밭 농부 오명수 — 사태 이전 옛 도시 주말 농장 동호회 회장 출신이자 거점 옥상 텃밭을 처음 설계한 자 — 의 일화는 텃밭 일꾼들 사이에서 "상추 첫 수확 날의 식당"으로 통한다.

    옥상 텃밭을 만든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상추 한 대야 분량이 수확된 날, 오명수는 취사반장에게 그것을 식당 모든 자리에 한 잎씩 나눠 달라고 부탁했다. 점심 식판에 상추 한 잎이 올라온 것을 본 거점민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했지만, 처음으로 신선한 잎채소를 입에 넣는 순간 식당이 한참 조용해졌다. 거점의 어머니 임순옥(앞서 여성 파일 일화의 그 어머니)이 그날 식당에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채소를 골라내지 않고 먹는 것을 보았다는 메모를 식당 게시판에 한 줄 남겼다. 오명수는 다음 시즌부터 거점 아이들에게 씨 심는 법을 가르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씩 추가했다.

    후대 거점 텃밭 농부들은 첫 수확 날 거점민과 함께 식당에 앉아 첫 한 접시를 먹는 자세를 오명수에게서 가져왔다.

  • 거점기록인(據點記錄人)

    거점 기록병

    사라져가는 거점의 하루하루를 적어 남기는 자

    이 일이 기록에 없으면 없던 일이 된다. 없던 일이 되면 다음엔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거점 기록병은 거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결재·분쟁·수리 내역을 문서로 정리하고 보관하는 행정 직군이다. 전투 기록이 아니라 일상 기록이 이 직업의 핵심이며, 거점 명부·식량 배분 내역·의무실 치료 기록·외벽 수리 이력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그가 꼼꼼하게 남긴 기록 한 장이 다음 재건사령관의 첫 번째 교재가 되고, 그가 놓친 기록 하나가 다음 분기 같은 실수를 부른다. 폐허에서 종이 한 장이 총 한 자루만큼의 값을 하는 유일한 자리가 기록병 책상 위다.

    기록병 수첩에 '없었다'는 한 줄이 적히는 날은 없소. 없었더라도 왜 없었는지 한 줄이 있어야 한다는 게 기록병 첫 번째 원칙이지요.

    송정거점 초대 기록병 윤재원 — 사태 이전 옛 구청 민원 담당 공무원 출신이자 거점 최초의 기록 보관 규정을 만든 자 — 의 일화는 기록병들 사이에서 "명부 세 권의 새벽"으로 통한다.

    거점 명부가 화재로 소실될 위기가 생겼던 그해 가을 새벽, 윤재원은 사무실 화재 연기를 가장 먼저 발견했지만 자기 몸이 아니라 명부 세 권을 먼저 들고 나왔다. 명부 세 권에는 거점민 사백 명의 이름·가족 관계·보급 수령 이력·의무 기록이 적혀 있었다. 생존자 군주 한도경(앞서 일화의 그 군주)은 다음 날 아침 윤재원을 불러 명부 세 권을 내려다보며 "이 세 권이 지금 거점의 외벽 전체보다 무거운 이유를 이 기록병이 가장 잘 안다"라고 거점민 앞에서 한마디 했다. 윤재원은 그날 이후 명부 사본 한 벌을 항상 별도 방수 봉투에 보관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후대 거점 기록병들은 임명 첫 주에 현재 보관 중인 명부 사본 위치를 한 줄 점검하는 자세를 윤재원에게서 가져왔다.

  • 종말성녀(終末聖女)

    종말의 성녀

    종말의 잿더미 속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거룩한 여인

    신성한 기적은 없어요.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심이, 한 거점의 폭동을 막을 뿐이지요.

    종말의 성녀는 좀비 사태 이후 큰 거점 한 곳에 자연스럽게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여성이다. 본인은 신탁을 받은 적도, 정식 사제도 아니지만, 그녀가 손을 얹은 환자가 다음 날 한 번 더 일어났다는 작은 일들이 모여 결국 거점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부른다. 외형은 단정한 흰 옷, 가슴에 작은 십자가 또는 가족 사진 펜던트가 표준이다.

    그녀의 진짜 능력은 신성한 기적이 아니라, 거점 안 모든 사람의 사연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심이다. 그 인내심 한 줄이 한 거점의 폭동을 매번 막아낸다. 폐허의 진짜 신은 하늘 위가 아니라, 거점 한구석 작은 의자에 앉아 한 사람씩 만나주는 그녀다.

    우리 거점은 그분이 앉아 계셨던 의자 자리를 누구도 옮기지 않아요. 그 자리 한 줄이 우리 거점의 새벽 한 줄을 매일 다시 켜준다는 뜻이지요.

    이대 종말의 성녀 정혜원 — 17번 거점(서울 옛 한강 이남 가장 큰 거점) 보육원 식당 한구석에 평생 작은 의자 하나를 두고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준 여성 — 의 일화는 거점 야사에 '한 의자의 새벽'으로 길게 남아 있다.

    거점 안에서 보급 분배 갈등으로 외벽 보초조와 의무실 야근조 사이에 큰 다툼이 일어났던 그해 겨울, 정혜원은 새벽 세 시까지 의자에 앉아 양쪽 사람을 한 명씩 따로 만나주었다. 그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은 채 그저 다섯 시간을 들어주었고, 차 한 잔과 마른 빵 한 조각만 옆에 두었다. 새벽 다섯 시 외벽 보초조 조장 한정희가 그 의자 옆에 권총 한 자루를 풀어두고 식당 밖으로 나갔으며, 의무실 야근조 차순례도 같은 자세로 가위 한 자루를 풀어두었다.

    그날 새벽 거점 폭동은 한 호흡 안에 무산되었고, 정혜원은 두 사람의 무기를 새벽 빵 굽는이의 화덕 옆 선반 한쪽에 정중히 옮겨두었다. 그 선반은 17번 거점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로 통하며, 그녀가 사망한 뒤에도 보육원 교사가 그 자리에 매일 마른 빵 한 조각을 올려두는 관례가 이어졌다. 거점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은 외벽 위 권총이 아니라, 그 작은 의자 위 한 잔 차의 식는 시간이라고들 한다.

  • 백신연단녀(疫苗鍊丹女)

    백신 연구자

    마지막 백신을 빚어내는 연구의 여인

    이 페이지에 한 줄을 더 채워줘요. 그게 다음 백신의 한 줄이 됩니다.

    백신 연구자는 좀비 바이러스의 변종을 분석하고 백신·억제제를 개발하는 거점의 핵심 과학자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부터 의대·생명공학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거점이 보호하는 가장 비밀스러운 자원이다. 외형은 낡은 흰 가운, 안경, 늘 한쪽 어깨에 노트북 한 대를 메고 다닌다.

    매일 작은 진척을 쌓아가는 일상은 단조롭지만, 그녀의 노트 한 장이 거점 수백 명의 미래를 바꾼다. 본인은 가끔 새로 들어오는 감염 직전 환자에게 자기 노트를 한 페이지 더 채워달라고 부탁한다. 그 페이지가 다음 백신의 한 줄을 만든다. 종말의 진짜 영웅은 라이플을 든 자가 아니라, 끝까지 노트를 쓰는 자다.

    그분이 마지막 한 줄을 채워준 그 페이지가 우리 다음 분기 백신의 첫 페이지였어요. 우리 연구실은 그 페이지를 펼친 채 다음 분기를 시작합니다.

    삼대 백신 연구자 윤지선 — 옛 서울대 병원 면역학 연구실 출신으로 17번 거점 지하 연구소를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서른여섯 페이지 노트'로 거점 의무실에 길게 전해진다.

    발병 직전이었던 환자 송미아(옛 초등학교 교사 출신, 외벽 보초 중 감염) 가 의무실 격리 병동 마지막 침상에 누웠을 때, 윤지선은 자기 손에 들고 있던 노트의 서른여섯 번째 페이지를 펼쳐 송미아에게 한 줄을 부탁했다. 송미아는 자기 학생 일곱 명의 이름과 그 아이들이 좋아했던 동요 한 줄을 손이 떨리는 채로 적어 주었다. 윤지선은 그 한 줄 옆에 송미아의 혈청 분석 한 줄을 마저 적었고, 그 두 줄이 다음 분기 변종 억제제의 첫 한 줄이 되었다.

    송미아는 그날 새벽 격리실에서 사망했으나, 그녀가 적은 학생 일곱 명 중 다섯이 17번 거점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윤지선은 그 다섯 아이에게 매주 한 번씩 노트의 서른여섯 페이지를 펼쳐 보여주는 자세를 평생 지켰다. 거점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사령관 책상이 아니라, 그 노트 서른여섯 페이지의 한 줄 위에 있다고들 한다.

  • 거점모비(據點母妃)

    거점의 어머니

    거점의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된 여인

    오늘도 누군가 식당 불을 끄지 않고 갔네. 내가 마지막에 끄고 나갈게.

    거점의 어머니는 큰 거점 안 부속 보육원·임시 학교·고아 식당을 운영하는 여성이다. 본인은 한때 평범한 어머니이거나, 사태 후 살아남은 옛 교사이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늘 어깨에 아기 한 명, 손에는 두 명의 아이 손이 잡혀 있다.

    거점 군주도 그녀 앞에서는 모자를 벗는다. 사실상 거점의 진짜 미래(다음 세대)가 그녀의 손에 자라기 때문이다. 그녀가 식당에서 한 끼를 먹지 못한 날에는 거점 전체가 정전된 것처럼 조용해진다. 그래서 거점 사람들은 가장 늦게까지 식당 불을 켜두는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도록 일정을 맞춰간다. 거점의 진짜 사령관은 외벽 위가 아니라 보육원 식탁 끝에 앉아 있다.

    어머니가 마지막에 식당 불을 끄지 않으셔도 되는 새벽 한 번이 우리 거점의 진짜 분기 결재이지요. 그날은 거점 사람들 모두가 한 줄씩 늦게 잡니다.

    사대 거점의 어머니 임순옥 — 사태 이전 옛 동네 초등학교 영양 교사이자 사태 직후 보육원 한 칸을 자기 살림으로 차린 여성 — 의 일화는 '식당 불 한 줄 약속'으로 9번 거점(부산 옛 영도 일대 거점) 야사에 길게 남았다.

    거점에 새로 들어온 회수반 운전수 김연주(사태 이전 옛 시내버스 기사, 두 아이 어머니)가 첫 출동에서 큰 부상을 입고 의무실에 누웠던 그해 가을, 임순옥은 김연주의 두 아이를 보육원 식탁 끝자리에 사흘 밤 앉혀 두고 매일 같은 죽 한 그릇을 끓였다. 사흘째 새벽 김연주가 의무실에서 처음 깨어나 보육원으로 돌아왔을 때, 임순옥은 그제야 식당 불을 처음으로 자기 손이 아닌 김연주의 손으로 끄게 했다. 그 한 줄이 9번 거점에서 '식당 불 한 줄 약속'으로 굳어, 새 어머니가 들어오는 날마다 식당 불을 한 번씩 그 사람의 손으로 끄게 한다. 임순옥의 두 아들 중 작은아들은 사태 둘째 해에 외벽에서 사망했지만, 그녀는 식당 불 끄기 명단에 작은아들 이름을 평생 한 줄로 남겨두었다.

    후대 거점 어머니들은 즉위 첫 사흘을 그 명단의 한 줄 옆에 자기 이름을 정중히 적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 거점의무녀(據點醫務女)

    거점 의무병

    거점의 부상자를 돌보는 의무의 여인

    오늘도 살았어요. 그 한마디가 의무실의 첫 인사예요.

    거점 의무병은 거점 의무실에서 부상 처치·열병 진단·간단한 수술을 모두 책임지는 여성 직군이다. 정식 의사 자격은 사태 이전이라 의미가 없고, 살아남은 의대생·간호사·약국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모여 일을 배운다. 외형은 낡은 가운, 가슴 주머니에 늘 펜과 작은 가위가 들어 있고, 어깨에는 응급 키트 한 가방.

    본인은 환자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며칠을 의무실 의자에서 새우잠을 잔다. 그러면서도 다음 환자가 들어오면 같은 표정으로 일어선다. 거점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인사는 "오늘도 살았어요"인데, 그 인사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리가 의무실 문 앞이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자가 거점의 다음 한 끼를 더 먹는다.

    선배 의무병이 그 새벽 손을 한 번 더 닦은 자세를 우리는 평생 따라 합니다. 그 한 줄 자세가 다음 환자의 한 끼를 살린다고 그분이 그러셨거든요.

    의무병 강선희 — 옛 분당 한 종합병원 응급실 간호사 출신으로 22번 거점(경기 남부 신도시 옛 아파트 단지) 의무실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쉰두 시간 한 줄'로 거점 의무실에 길게 전해진다.

    회수반 출동 사고로 외벽 정비공 박미경(사태 이전 옛 인테리어 공방 운영, 세 자매의 맏언니)이 복부 관통상으로 의무실에 들어왔던 그해 봄, 강선희는 의무실 의자에서 쉰두 시간을 단 두 번만 일어선 채 박미경 옆을 지켰다. 거점에 마취제가 한 병밖에 남지 않았던 사정을 그녀는 박미경의 두 동생에게 끝내 말하지 않았고, 자기 가운 안주머니에 옛 사진 한 장 — 그녀가 사태 이전 자기 친언니의 마지막 입원 때 찍어둔 한 장 — 을 손금으로 만지작거리며 버텼다. 박미경은 쉰두 시간 째 새벽 처음 정신을 차렸고, 강선희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손을 한 번 더 닦은 뒤 박미경의 두 동생을 의무실 안으로 들였다.

    박미경은 사태 다음 해까지 살아남아 외벽 보수반장 자리를 두 시즌 더 끌었으며, 강선희는 자기 가운 안주머니의 옛 사진을 그날 이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22번 거점 의무실에서는 새 의무병이 입문하는 첫날 그 의자에 한 번 앉아보는 의례가 있으며, 의자 다리 한 줄에 강선희의 이름이 작게 새겨져 있다.

  • 폐허화왕녀(廢墟花王女)

    폐허 거리의 여왕

    폐허 거리 위에서도 꽃처럼 군림하는 여왕

    통조림과 립스틱은 같은 칸. 종말이라도 사람들은 둘 다 사간답니다.

    폐허 거리의 여왕은 무너진 도심 한 거리에 작은 시장을 차린 여성 상인이다. 외형은 낡은 패션 코트, 머리에 두건, 손목에 한때 명품이었을 시계 한 점을 그대로 차고 있다. 그녀의 가판대에는 통조림·향수·립스틱·총탄까지 — 종말 이후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본인은 사태 이전 작은 잡화점 사장이었고, 사태 이후에도 자기 가게의 운영 원칙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약탈자도 그녀의 가판대만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데, 그녀가 거점 군주들과 한 분기마다 차를 마신다는 사실이 골목 사이에 알음알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폐허의 진짜 외교관은 거점장이 아니라, 그 거리에서 가장 오래 좌판을 펴는 그녀다.

    그분 가판대 같은 칸에 통조림과 립스틱이 함께 놓이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종말이라도 사람은 한 끼와 한 줄 거울을 같이 산다는 뜻이지요.

    폐허 거리의 여왕 송미라 — 옛 명동 골목 작은 화장품 잡화점 사장이자 사태 후 영등포 폐허 거리(옛 옷가게 골목 일대)에 가장 먼저 좌판을 다시 편 여성 — 의 일화는 '한 분기 차 한 잔'으로 거리 상인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약탈단 적호회(赤虎會, 사태 둘째 해 영등포 일대를 노리던 무리) 두목 정성도가 송미라의 가판대를 노리고 골목 안까지 들이쳤던 그해 여름, 송미라는 자기 가판대 가장 가운데 칸에서 옛 립스틱 한 자루를 꺼내 정성도의 어머니께 보내달라고 정중히 건넸다. 정성도의 어머니가 사태 이전 그 잡화점 단골이었다는 사실을 송미라는 손목시계 안쪽에 작게 적어둔 손님 명부 한 줄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성도는 그 립스틱을 받자마자 자기 무리에게 골목 출구를 가리켰고, 다음 날 새벽 자기 무리의 통조림 다섯 박스를 송미라의 가판대 옆에 정중히 두고 갔다.

    그날 이후 적호회는 폐허 거리 한 골목을 평생 건드리지 않았으며, 송미라의 손목시계 안쪽 명부에는 정성도의 어머니 이름이 한 줄 더 적혔다. 거점 사령관도 분기마다 그 가판대 앞 작은 의자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 관례를 따랐으며, 거리 상인들은 새 좌판을 펴는 첫날 그 의자에 한 번 앉아보는 자세를 따라 한다.

  • 최후면역희(最後免疫姬)

    최후의 면역체

    감염되지 않는 마지막 한 사람의 이름

    내 피 한 방울이 누군가의 한 끼라면, 오늘도 팔을 걷겠어요. 다만 한 사람씩만이에요.

    최후의 면역체는 좀비 바이러스에 노출되고도 발병하지 않은, 한 시대 다섯 손가락 안의 여성 생존자다. 본인은 자기 몸이 거점의 마지막 백신 원료라는 사실을 사태 두 해째 진단실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외투, 팔꿈치 안쪽에 늘 채혈 자국, 가슴팍에 작은 손목시계 한 점이 표준이다.

    거점 군주들은 그녀의 거처 위치를 거점 안 단 세 사람만 공유하며, 본인조차 자기가 어디 있는지 가끔 잊을 만큼 거처를 자주 옮긴다. 그녀의 한 방울 채혈이 한 번에 한 거점의 한 시즌을 살리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 한 사람의 한 끼를 잘 챙기지 못한다. 그래서 의무실은 채혈 직후 늘 그녀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먼저 끓인다. 종말의 진짜 성소는 큰 교회가 아니라, 그녀가 잠든 작은 방의 한 줄 자물쇠 위에 있다.

    그분이 한 사람씩만이라고 하신 데는 이유가 있어요. 한 번에 한 사람의 한 끼를 살리는 자세가 한 시대 다섯 손가락의 진짜 호적이었다는 뜻이지요.

    초대 최후의 면역체 한지유 — 사태 이전 옛 카이스트 생물공학과 박사 과정생이자 17번 거점 백신 연구실의 마지막 원료 — 의 일화는 '한 사람씩 작은 방'으로 거점 사령관실에 한 줄 봉인되어 있다.

    백신 연구자 윤지선이 한 시즌에 거점 셋의 분량을 동시에 뽑아야 한다고 거점 외교 사절을 통해 보고받은 그해 겨울, 한지유는 사령관실 회의에 처음으로 직접 들어와 자기 손목시계를 책상 위에 풀어두며 "한 사람씩만이에요"라고 한 줄 답했다. 그녀는 자기 작은 방의 자물쇠 한 줄을 자기 손으로 채우고, 매주 한 명의 환자 이름만 적힌 채혈 명단을 받아들였다. 첫 명단의 한 사람은 보육원 아이 김선아(여섯 살, 사태 이후 출생, 양친 모두 외벽 사망)였으며, 김선아는 다음 봄 보육원 합창단의 가장 큰 목소리로 자랐다.

    한지유는 작은 방 책상 위에 김선아의 그림 한 장을 평생 한 줄 압정으로 고정해 두었고, 다음 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그 그림 옆에 새 이름을 한 줄씩 더 적어 두었다. 거점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외교 사절의 차 한 잔이 아니라, 그녀의 책상 위 그림 한 장 옆 이름 한 줄 위에 있다고 사령관도 인정했다.

  • 거점지휘낭(據點指揮娘)

    거점 사령관

    거점을 지휘하는 단호한 여인

    외벽은 내가 지킬게요. 식당 불은 당신이 끄지 마세요. 그건 어머니 몫이니까.

    거점 사령관은 큰 거점의 외벽 방어·자원 분배·외부 거점 외교를 모두 책임지는 여성 지도자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군 출신이거나, 사태 후 거점 결성기에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자다. 외형은 낡은 전술복, 어깨에 작은 무전기, 허리에 한 자루 권총과 손목에 옛 가족 사진 펜던트가 표준이다.

    거점 안 모든 사람의 보급 일정·교대 시각·가족 구성을 한 표로 외우고 있어, 그녀가 자리를 비운 한 주는 거점 보급이 두 박자 늦어진다. 본인은 외벽 위에 가장 먼저 올라가고 가장 늦게 내려오지만, 정작 보육원 식당 끝자리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 그 자리는 거점의 어머니 몫임을 그녀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거점의 진짜 갑옷은 외벽 한 줄이 아니라, 그녀의 어깨 위 무전기 한 줄이다.

    그 사령관이 외벽 위에서 사흘 새벽을 자기 옛 가족 사진 한 장으로 버텼다는 사실, 우리 후대 사령관들은 그 사진 한 장을 갑옷의 가장 안쪽 줄이라고 부릅니다.

    이대 거점 사령관 노혜진 — 옛 육군 보급장교 출신으로 17번 거점 결성기부터 사령관 자리에 추대된 여성 — 의 일화는 '사흘 새벽 외벽 한 줄'로 거점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인근 12번 거점(옛 일산 신도시 거점)이 좀비 떼 대규모 유입으로 무너지던 그해 가을, 12번 거점 생존자 일흔 명이 17번 거점 외벽 앞으로 사흘에 걸쳐 도착했다. 노혜진은 거점 내부 보급량을 한 표로 다시 짠 뒤 자기 한 끼 분량을 명단에서 빼고 외벽 위에서 사흘 새벽을 무전기 한 줄로 버텼다. 그녀의 손목 안쪽 펜던트 안에는 사태 직전 사망한 자기 두 자녀의 사진 한 장이 있었고, 그 사진 한 장이 그 사흘 새벽의 진짜 갑옷이었다. 사흘째 마지막 생존자가 외벽 안으로 들어왔을 때 노혜진은 자기 한 끼 분량을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어린아이 한 명에게 양보했고, 보육원 교사 한 명이 그 아이를 자기 식탁 끝자리에 앉혔다.

    그날 이후 17번 거점 사령관실 책상 위에는 옛 가족 사진 한 장을 가운데에 두는 의례가 정착되었으며, 후대 사령관들은 즉위 첫 사흘을 그 사진 한 장 옆에 자기 손목 펜던트를 정중히 풀어두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 전파목소리녀(電波音色女)

    무전탑의 목소리

    무전탑에서 흘러나오는 위안의 목소리

    여기는 17번 거점, 새벽 네 시. 거기 누구든 듣고 있다면, 한 줄만 답해줘요.

    무전탑의 목소리는 거점 꼭대기 무전실에서 다른 거점·생존자 무리·구조 신호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여성 통신사다. 본인은 사태 이전 라디오 DJ·콜센터·관제사 출신인 경우가 많으며, 거점 안 사람들이 가장 많이 그 목소리를 듣고도 정작 얼굴을 본 사람은 적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작업복, 머리에 늘 한쪽 헤드셋, 책상 위에 식어버린 커피 한 잔이 표준이다.

    그녀가 잡아낸 한 줄 신호 덕에 한 무리의 생존자가 다음 거점 외벽 안으로 들어왔다는 일화가 거점 야사에 매년 한 줄씩 늘어간다. 새벽 네 시, 누구도 안 듣는 시간대에 그녀가 송출하는 한 줄 인사가 사실 폐허 어딘가의 한 사람의 한 끼를 살린다. 종말의 진짜 등불은 무전탑의 빨간 불 한 줄과 그 아래 마이크 한 개다.

    그분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 무리 일곱 명이 한꺼번에 울었어요. 새벽 네 시의 한 줄이 사람을 사람으로 다시 부르는 한 줄이었거든요.

    무전탑의 목소리 박수경 — 옛 KBS 새벽 라디오 DJ 출신으로 17번 거점 무전실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도봉산 일곱 명의 새벽 네 시'로 거점 야사에 길게 남아 있다.

    도봉산 옛 산장(서울 북부 옛 등산객 산장, 사태 직후 생존자 일곱 명이 두 해를 숨어 있던 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옛 등산 동호회 일곱 명이 무전기 배터리 한 줄만 남기고 한밤중에 신호를 잘못 송출했던 그해 봄, 박수경은 새벽 네 시 자기 책상 위 식은 커피 한 잔 옆에서 그 한 줄 신호를 잡아냈다. 그녀는 거점 정찰 저격수 한 명과 회수반 운전수 김연주에게 동시에 무전을 보냈고, 자기는 마이크 앞에서 다음 새벽까지 일곱 명에게 한 줄씩 옛 라디오 멘트를 들려주었다. 일곱 명 중 가장 어린 막내 정유나(스무 살, 옛 대학생)는 사흘 뒤 17번 거점 외벽 안으로 들어와 박수경의 무전실 문 앞에서 처음 그녀의 얼굴을 보았으며,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박수경은 그 새벽 송출했던 옛 라디오 멘트 한 줄을 자기 책상 위에 작은 메모지로 한 장 더 적어 두었고, 후대 무전탑 통신사들은 새벽 네 시 첫 인사를 그 메모지 한 줄로 시작하는 의례를 따른다. 정유나는 다음 분기 무전탑 견습 통신사로 입문했으며, 박수경의 식은 커피 잔을 새벽마다 새로 끓이는 자세를 평생 따라 한다.

  • 정찰일발녀(偵察一發女)

    정찰 저격수

    정찰 중 단 한 발로 적을 끝내는 저격녀

    한 발에 한 사람. 두 발은 나도, 그 자리도 안 돌아와요.

    정찰 저격수는 거점 외벽 너머 도심 잔해 위 옥상에 잠복해 좀비 떼의 이동·약탈자 동선·외부 거점 동향을 보고하는 여성 정찰자다. 본인은 사태 이전 사격 선수·헌터·군 출신이거나, 사태 후 옥상에서 살아남은 옛 카메라맨이다. 외형은 짙은 색 위장복, 어깨에 한 자루 장총, 허리에 작은 무전기와 옛 사진 한 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옥상 한 자리에 며칠을 잠복하며, 한 발 쏘기까지 한 시진을 호흡으로 다듬는다. 그래서 정찰 저격수의 한 발은 사격이 아니라 한 줄 결재에 가깝다. 그녀가 무전으로 보낸 한 줄 좌표가 거점 회수반의 다음 출동 자리를 결정한다. 거점에서는 그녀가 옥상에 올라간 날이면, 그 옥상 아래 골목 한 줄의 한 끼가 안전하다는 격언이 있다.

    그분이 두 번째 한 발을 쏘지 않은 그 새벽이 우리 후대 저격수들의 진짜 입문 시험이지요. 두 번째 한 발을 거두는 자세가 정찰 저격수의 첫 자세라는 뜻이에요.

    정찰 저격수 임혜린 — 옛 진천 사격장 국가대표 출신이자 17번 거점 동편 옥상 잠복조 조장으로 사십 개월을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한강대교 북단 한 발'로 거점 정찰조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둘째 해 가을, 약탈단 청수파(靑水派, 한강 북단 옛 강변북로 일대를 장악한 무리) 두목 한 명을 한강대교 북단 옛 매표소 옥상에서 임혜린이 한 시진 동안 조준선 안에 둔 일이 있었다. 그 두목의 어깨에 어린 여자아이 한 명이 업혀 있었고, 임혜린은 한 발 쏠 자세를 다듬으면서도 자기 위장복 안주머니의 옛 사진 한 장 — 사태 이전 자기 친조카의 첫 돌 사진 — 을 손금으로 한 번 만진 뒤, 무전기로 좌표만 보내고 두 번째 한 발은 끝내 쏘지 않았다. 그날 회수반 운전수 김연주가 그 옥상 아래 골목으로 출동해 어린아이 한 명만 정중히 받아 거점으로 돌려보냈고, 청수파 두목은 다음 새벽 자기 무리에게 거점 외벽 한 줄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통보했다.

    임혜린은 그 옥상 자리에 자기 옛 사진 한 장을 작은 압정으로 한 줄 고정해 두었으며, 후대 정찰 저격수 신참은 입문 첫 잠복을 그 옥상 자리에서 시작하는 관례를 따른다. 거점에서는 그날의 두 번째 한 발이 거두어진 자리가 정찰 저격수의 진짜 한 줄 결재선이라고 한다.

  • 종자수호녀(種子守護女)

    종자 보관자

    내일을 위한 씨앗을 끝내 지키는 보관자

    이 봉투 안의 콩 일곱 알, 다음 봄의 한 거점이에요. 흥정은 받지 않아요.

    종자 보관자는 사태 이전 농업 연구소·식물원·도서관에서 가져온 옛 종자(seed)를 보존·발아·재배하는 여성 학자다. 본인은 사태 이전 식물학·농학 출신이거나, 옛 종자 도서관에서 마지막 키를 들고 빠져나온 옛 사서다.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가슴에 작은 모종 가방, 어깨에 한 자루 작은 호미가 표준이다.

    거점 옥상 텃밭과 지하 발아실은 사실상 그녀의 결재 라인 안에서 굴러간다. 본인은 한 봉투의 종자 일곱 알을 두고 며칠을 고민하며, 그중 다섯 알만 거점 옥상에 심고 두 알은 다음 거점에 보낸다. 그래서 종자 보관자의 결재 한 줄은 큰 회의가 아니라 봉투 한 장 위에 있다. 폐허의 진짜 미래는 백신 한 병이 아니라, 그녀의 손바닥 위 콩 일곱 알 위에서 천천히 자란다.

    그분이 두 알을 다음 거점에 보내신 자세를 우리 후대는 종자 보관자의 진짜 호적으로 부릅니다. 봉투 한 장 위 한 줄 결재가 한 시대의 봄을 정한다는 뜻이지요.

    종자 보관자 김혜선 — 옛 농촌진흥청 종자은행 연구원 출신이자 사태 직전 수원 옛 종자 도서관(국립 종자 보존소 분원)의 마지막 키를 들고 빠져나온 여성 — 의 일화는 '강낭콩 일곱 알 한 봉투'로 거점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17번 거점 옥상 텃밭이 사태 셋째 해 봄 큰 가뭄으로 새 종자가 부족했던 그해, 김혜선은 자기 모종 가방 가장 안쪽 봉투 안의 강낭콩 일곱 알 — 사태 이전 옛 종자 도서관에서 가장 마지막에 챙겨 나온 한 봉투 — 을 책상 위에 풀어두고 사흘을 고민했다. 사흘째 새벽 그녀는 다섯 알을 17번 거점 옥상 텃밭에, 두 알을 거점 외교 사절을 통해 멀리 22번 거점(경기 남부 신도시 거점) 옥상 텃밭에 정중히 보냈다. 22번 거점 종자 보관자 후배 송아라는 그 두 알을 받자마자 자기 거점 옥상 한쪽에 따로 한 줄 텃밭을 새로 짰고, 다음 봄 두 거점에서 동시에 강낭콩 한 줄이 자랐다.

    김혜선은 그 봉투를 다음 분기에 다시 한 장으로 접어 자기 책상 위 한쪽에 두었으며, 후대 종자 보관자 신참은 입문 첫 봄에 그 봉투를 한 번 펼쳐보는 관례를 따른다. 거점 사령관도 분기마다 그 봉투 한 장 앞에 모자를 한 번 벗는 의례를 따랐다.

  • 폐허약초녀(廢墟藥草女)

    폐허 약초사

    잿더미 속에서도 약초를 골라내는 여인

    약국은 다 털렸어요. 그래서 옥상의 잎을 다시 외우고 있답니다.

    폐허 약초사는 무너진 도심의 옥상·하수도 옆 빈터·옛 공원 화단에서 약초와 약용 식물을 채집하는 여성 직군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한약방·약국·간호조무사 출신이거나, 사태 후 의무병 옆에서 잎 한 장을 다시 배운 옛 가정주부다. 외형은 단정한 갈색 외투, 어깨에 잎 가방, 허리에 작은 채집용 가위와 옛 식물 도감 한 권이 표준이다.

    약국이 모두 털린 종말의 거점에서는 그녀의 옥상 한 줄 채집이 의무실 한 시즌의 한 줄 처치를 굴러가게 한다. 본인은 잎 한 장을 따고도 한 줄 기도를 외우는 버릇이 있는데, 그 기도는 잎이 자랐던 자리에 다음 잎을 다시 부탁하는 작은 약속이다. 거점에서는 그녀의 잎 가방이 의무병의 가방보다 무겁다는 농담이 있다.

    그분 도감 마지막 페이지에 자기 이름을 안 적으신 데는 이유가 있어요. 잎이 자란 자리가 잎의 호적이고, 약초사는 그 자리 옆 한 줄이라는 뜻이지요.

    폐허 약초사 정명자 — 옛 종로 한 한약방 사십 년 운영 출신이자 17번 거점 옥상 화단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쑥 한 잎의 한 줄 기도'로 의무실 한 칸에 길게 전해진다.

    의무병 강선희가 외벽 정비공 박미경의 복부 관통상 처치 직후 항생제 한 알이 부족했던 그해 봄, 정명자는 옛 한강시민공원 옥상 화단(폐쇄된 옛 공원 관리실 옥상에 그녀가 직접 짠 작은 화단)에서 쑥과 어성초 잎 일곱 장을 따왔다. 그녀는 잎 일곱 장 중 다섯 장만 의무실에 올리고, 두 장은 자기 옛 식물 도감 가장 마지막 페이지 안쪽에 한 줄 압정으로 끼워 두었다. 그 두 장은 박미경의 두 동생을 위한 다음 분기 한 줄이었으며, 다음 분기 두 동생 중 한 명이 같은 잎 두 장으로 열병을 한 번 넘겼다. 정명자는 잎을 따낸 자리에 늘 작은 모종 한 알을 다시 묻어두는 자세를 평생 지켰고, 그 자리는 17번 거점 옥상 화단에서 가장 따뜻한 한 줄로 통한다.

    후대 약초사 신참은 입문 첫 봄에 그 도감 마지막 페이지를 한 번 열어보는 관례를 따르며, 정명자는 그 페이지에 자기 이름을 끝내 적지 않은 채 사십 년을 버텼다.

  • 외벽수보녀(外壁修補女)

    거점 외벽 정비공

    거점 외벽의 갈라진 틈을 메우는 정비공

    어제 저 못 한 줄이 뽑혀 있더라고요. 오늘 안에 박지 않으면 새벽이 무서워져요.

    거점 외벽 정비공은 거점 외벽의 못·철망·자물쇠·임시 게이트를 매일 점검·수리하는 여성 직공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도장공·목수·DIY 동호회 출신이거나, 사태 후 외벽 위에서 못 한 줄로 한 사람을 살린 경험이 있는 자다. 외형은 짙은 작업복, 가슴에 못 주머니, 어깨에 작은 망치와 펜치, 허리에 옛 작업 노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외벽 한 줄을 맡으면 그 한 줄의 못 개수와 옛 분기 결재 사항을 한 표로 외워둔다. 그래서 외벽 정비공의 노트 한 권은 거점 사령관의 결재 라인 한 줄보다 두껍다. 거점 사람들은 외벽 위에서 한밤중 망치 소리가 들리면, 오늘 새벽도 외벽이 무사할 것이라는 무언의 안도를 한다. 거점의 진짜 검은 외벽 위 망치 한 자루다.

    그분이 새벽마다 같은 못 자리를 한 번 더 두드리는 자세, 그게 우리 외벽 정비공의 진짜 입문 시험이에요. 한 번 더 두드린 못이 한 사람의 다음 한 끼이지요.

    외벽 정비공 박미경 — 옛 분당 작은 인테리어 공방 운영 출신이자 22번 거점 동편 외벽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사태 이후 두 동생을 보육원으로 함께 데려온 세 자매의 맏언니 — 의 일화는 '서른여섯 번 망치질의 새벽'으로 22번 거점에 길게 전해진다.

    22번 거점 동편 외벽 가장 약한 한 줄(옛 아파트 단지 정문 옆 철망 구간) 못 한 줄이 사태 셋째 해 가을 큰 비에 자꾸 풀렸을 때, 박미경은 자기 작업 노트에 그 한 줄을 서른여섯 번 다시 박은 기록을 손글씨로 한 줄씩 적었다. 서른여섯 번째 새벽 그녀는 같은 자리에서 좀비 한 마리에 복부 관통상을 입었고, 의무병 강선희의 의무실 의자 옆에서 쉰두 시간을 누웠다. 박미경이 정신을 차린 다음 새벽 그녀의 두 동생 중 작은 동생이 같은 자리에 망치 한 자루를 들고 올라가 서른일곱 번째 못을 박았으며, 그 한 줄이 22번 거점 동편 외벽의 진짜 한 줄로 굳었다.

    박미경의 작업 노트는 22번 거점 사령관실 책상 위에 사령관 결재 노트와 같은 칸에 한 줄로 보관되어 있으며, 후대 외벽 정비공 신참은 입문 첫 새벽에 그 서른여섯 번째 못 자리를 한 번 두드려보는 관례를 따른다.

  • 회수운전녀(回收運轉女)

    회수반 운전수

    폐허로 회수반을 몰고 들어가는 운전수

    도시 한 바퀴, 한 사람만 더 데려와요. 자리는 옆 좌석 하나만 비워뒀어요.

    회수반 운전수는 거점 외부로 출동해 보급품·생존자·시신을 회수해 오는 여성 운전자다. 본인은 사태 이전 택시·버스·구급차 운전 출신이거나, 사태 후 옛 차고에서 마지막까지 시동을 걸 줄 알았던 자다. 외형은 낡은 가죽 점퍼, 손목에 작은 묵주 또는 옛 사진 펜던트, 허리에 작은 권총과 무전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도시 한 바퀴의 모든 옛 길·옛 잔해 자리·금기 좌회전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회수반은 늘 옆 좌석 하나를 비워두는 전통이 있는데, 그 자리는 다음 한 사람을 위한 자리다. 그래서 회수반 운전수의 한 줄 출동은 보급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 끼를 위한 한 자리다. 거점에서 가장 무거운 핸들은 큰 트럭의 핸들이 아니라, 그녀의 옆 좌석에 한 사람이 막 앉은 직후의 한 줄 핸들이다.

    그 옆 좌석에 처음 사람이 앉던 새벽, 운전수 어머니의 손이 핸들 위에서 한 줄 떨렸다고 하셨지요. 그 떨림 한 줄이 회수반의 진짜 호적입니다.

    회수반 운전수 김연주 — 옛 서울 동대문 일대 시내버스 사십 년 기사 출신이자 17번 거점 회수반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두 아이의 어머니 — 의 일화는 '도봉산 산장 새벽 출동'으로 회수반 안에 길게 전해진다.

    무전탑의 목소리 박수경이 도봉산 옛 산장 일곱 명 신호를 잡아낸 그 새벽, 김연주는 옆 좌석을 일곱 자리만큼 미리 비우려 거점 트럭 한 대를 따로 정비하고 사흘에 걸쳐 옛 노원·도봉 길의 좀비 동선을 한 표로 다시 외웠다. 도봉산 옛 산장(서울 북부 옛 등산객 대피소) 입구에서 일곱 명을 한 명씩 옆 좌석에 정중히 앉힐 때, 가장 어린 정유나가 첫 좌석에 앉으며 김연주의 손목 펜던트를 보고 처음 울었다. 펜던트 안에는 김연주의 큰아이 사진 한 장이 있었고, 그 큰아이는 사태 첫해에 외벽에서 사망했다.

    김연주는 도시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일곱 명에게 자기 큰아이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채 운전대만 잡았으며, 일곱 명 모두 무사히 17번 거점 외벽 안으로 들어왔다. 김연주의 트럭 옆 좌석은 그날 이후 늘 한 사람 분의 자리만큼 정확히 비워져 있으며, 후대 회수반 운전수 신참은 입문 첫 출동에서 그 옆 좌석에 자기 옛 사진 한 장을 두는 자세 연습을 따른다.

  • 위령기록녀(慰靈記錄女)

    위령 기록자

    죽은 자들의 이름을 한 줄씩 적는 여인

    이름을 안 적으면 두 번 잃는 거예요. 한 번은 그날, 한 번은 다음 분기 결재 위에서요.

    위령 기록자는 거점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옛 사연·마지막 한마디를 한 권 노트에 기록·보관하는 여성 사관(史官)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일기 작가·기록 보존소 직원·도서관 사서 출신이거나, 사태 후 보육원 한구석에서 옛 일기를 가장 오래 쓴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외투, 가슴에 작은 잉크병, 어깨에 위령 노트 한 권이 표준이다.

    본인은 분기마다 위령 노트를 들고 거점 광장에 서서 그날 죽은 사람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른다. 그 한 줄 호명이 거점 사람들 마음의 한 줄 결재가 된다. 위령 기록자의 노트 한 권이 거점 사령관의 결재 한 권보다 두꺼워지는 시즌이 오면, 그 거점은 사람을 다시 한 번 세는 시간이 된다. 거점의 진짜 묘비는 광장 위 돌이 아니라, 그녀의 노트 한 줄이다.

    그분이 한 사람의 옛 한마디까지 한 줄로 적어주신 자세가 우리 후대 위령 기록자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노트 한 줄이 한 사람의 다음 분기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위령 기록자 차순례 — 옛 광주 가족 일기 보존회 사십 년 회원이자 9번 거점(부산 옛 영도 거점)에서 사태 후 보육원 일기 한 권을 가장 오래 쓴 여성 — 의 일화는 '두 동생의 한 줄'로 9번 거점 광장에 길게 전해진다.

    거점의 어머니 임순옥의 작은아들이 외벽에서 사망한 그해 겨울, 차순례는 위령 노트 한 줄에 작은아들의 이름과 그 아이가 사태 직전 좋아했던 동요 한 곡 — 옛 동요 '꼬마 눈사람'의 첫 한 줄 — 을 정중히 함께 적었다. 임순옥은 그 한 줄을 한 번도 광장에서 직접 읽지 못한 채 사십 개월을 보내다, 사대 거점의 어머니로 정식 추대된 새벽 처음으로 그 한 줄을 자기 입으로 읽었다. 차순례는 그날 위령 노트의 같은 페이지 옆에 임순옥의 이름을 한 줄 더 작게 적어두었으며, 그 한 줄은 다음 분기에도 광장에서 한 번 더 호명되었다.

    9번 거점에서는 그날 이후 어머니의 이름과 자식의 이름을 같은 페이지에 한 줄씩 함께 적는 의례가 정착되었으며, 후대 위령 기록자 신참은 입문 첫 분기를 그 페이지를 한 번 펼쳐보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거점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사령관 책상이 아니라, 그 페이지 위 한 줄 잉크의 마르는 시간 위에 있다고들 한다.

  • 보육교화녀(保育敎化女)

    보육원 교사

    거점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육원 교사

    어제 본 좀비 그림은 내가 가져갈게. 오늘은 꽃 한 송이 그려보자.

    보육원 교사는 거점 부속 보육원에서 사태 이후 태어난 아이·가족을 잃은 아이들에게 글·그림·옛 노래를 가르치는 여성 직군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유치원 교사·학원 강사·옛 동요 강사 출신이거나, 사태 후 어린아이의 손을 가장 오래 잡고 도망쳐본 자다. 외형은 단정한 긴 카디건, 가슴에 옛 이름표, 어깨에 작은 동화책 가방, 허리에 옛 손수건이 표준이다.

    본인은 아이들이 그린 좀비 그림을 한 장씩 모아 따로 보관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 그림 한 장이 그 아이의 그날 한 마디가 되기 때문이다. 거점의 진짜 미래 보고서는 사령관 책상 위가 아니라, 보육원 한쪽 벽에 붙은 그림 한 줄 위에 있다. 그래서 거점 사령관도 그 벽 앞에서는 모자를 벗는다.

    그분이 좀비 그림을 한 장도 버리지 않으신 자세가 우리 보육원 교사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그 한 장이 그 아이의 다음 한 마디라는 뜻이지요.

    보육원 교사 한지원 — 옛 일산 한 사립유치원 사십 년 교사 출신이자 12번 거점(옛 일산 신도시 거점) 보육원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꽃 한 송이 그림 첫 장'으로 후대 거점들에 길게 전해진다.

    12번 거점이 좀비 떼 대규모 유입으로 무너지던 그해 가을, 한지원은 보육원 아이 다섯 명을 자기 카디건 한 자락 안에 한 줄로 묶고 거점 외벽 동편 비상문으로 빠져나왔다. 다섯 아이 중 가장 어린 김선아(여섯 살, 양친 모두 외벽 사망)가 17번 거점 외벽 안으로 들어온 첫 새벽 오직 좀비 그림 한 장만 그렸을 때, 한지원은 그 그림을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자기 동화책 가방 가장 안쪽 칸에 한 줄로 모아 두었다. 사흘째 새벽 김선아는 처음으로 꽃 한 송이를 그렸으며, 한지원은 그 그림 한 장을 17번 거점 보육원 식당 벽 가장 가운데 자리에 한 줄 압정으로 정중히 고정해 두었다.

    그 벽은 17번 거점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로 통하며, 거점 사령관도 분기마다 그 벽 앞에서 모자를 한 번 벗는다. 한지원은 김선아의 좀비 그림 한 줄을 자기 카디건 안주머니에 평생 따로 보관했으며, 후대 보육원 교사 신참은 입문 첫 새벽에 그 카디건 안주머니에 자기 손을 한 번 넣어보는 자세 연습을 따른다.

  • 정수정제녀(淨水精製女)

    정수 정제사

    흙탕물을 맑은 물로 바꾸는 여인

    이 한 컵, 어제는 빗물이었고, 오늘은 누군가의 한 모금이에요.

    정수 정제사는 거점 옥상 빗물·지하 우물물·옛 수도관 물을 끓이고 거르고 약품 처리하여 식수로 만드는 여성 직공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식품위생사·정수기 회사 직원·과학 교사 출신이거나, 사태 후 의무병 옆에서 한 컵의 정확한 끓는 시간을 옆눈으로 외운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작업복, 가슴에 작은 ph 시험지 주머니, 어깨에 작은 거름통, 허리에 옛 메모장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컵의 물을 만들기 위해 늘 두 컵의 물을 버린다. 그래서 정수 정제사의 한 줄 결재는 큰 정수기가 아니라, 한 컵 옆의 두 컵 위에 있다. 거점에서 가장 따뜻한 인사는 의무실의 "오늘도 살았어요"이지만, 가장 시원한 인사는 정수실의 "한 컵 더 드릴까요"다.

    그분이 두 컵을 버리신 자세가 한 컵의 진짜 한 줄 결재였어요. 버린 두 컵이 한 컵의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정수 정제사 윤서경 — 옛 인천 한 정수기 회사 품질관리사 십오 년 출신이자 17번 거점 정수실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한 컵의 두 컵'으로 정수실 한 칸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셋째 해 봄 큰 가뭄 분기, 17번 거점 옥상 빗물 저장조의 한 줄이 다 마르고 지하 우물물 한 통만 남았을 때, 윤서경은 그 한 통을 정수실 책상 위에 풀어두고 사흘 동안 한 컵도 끓이지 않았다. 사흘째 새벽 그녀는 거점 사령관 노혜진과 의무병 강선희를 정수실로 정중히 불러, 한 통 안의 물 가운데 두 컵 분량을 책상 옆 빈 통에 따로 옮겨 부었다. 두 컵은 다음 분기 시험용 한 줄로 남기고, 나머지는 한 컵씩 정확히 끓여 의무실 환자 송아라(외벽 보초 중 열병)에게 가장 먼저 한 컵을 보냈다.

    송아라는 그 한 컵으로 사흘 새벽을 버텼고, 다음 분기 두 컵의 시험은 거점 옥상 빗물 저장조의 새 ph 한 줄로 이어졌다. 윤서경은 자기 옛 메모장 가운데 페이지에 그 두 컵의 ph 한 줄을 작은 손글씨로 한 줄 적어 두었으며, 후대 정수 정제사 신참은 입문 첫 분기를 그 페이지를 한 번 펼쳐보는 자세 연습으로 보낸다.

  • 봉제수선낭(縫製修繕娘)

    봉제 수선공

    해진 옷을 한 땀 한 땀 기우는 수선공

    이 옷, 옛 주인의 이름이 뒷주머니에 있더라고요. 그건 안 뜯고 두었어요.

    봉제 수선공은 거점 안의 옷·담요·외투·붕대 천을 수선·재단·재봉하는 여성 직공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한복집·세탁소·작은 의류 공방 출신이거나, 사태 후 보육원 한구석에서 아이들 옷의 단추를 가장 오래 달아준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가슴에 작은 핀 쿠션, 어깨에 옛 재봉 도구 가방, 허리에 옛 줄자가 표준이다.

    본인은 새 옷이 거의 없는 거점에서 옛 옷의 옛 주인의 이름표·자수·작은 패치를 일부러 한 줄 남겨두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거점에서 두 번째 주인이 입는 옷의 뒷주머니에는 늘 첫 주인의 한 줄 이름이 남아 있다. 봉제 수선공의 한 줄 바느질이 거점 사람의 한 줄 옛 인사를 다음 한 사람에게 옮긴다. 가장 무거운 한 땀은 큰 외투의 한 땀이 아니라, 옛 이름표 옆 한 땀이다.

    그분이 옛 이름표를 안 뜯고 두신 한 줄, 그게 우리 봉제 수선공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한 땀이 한 사람의 옛 인사를 옮긴다는 뜻이지요.

    봉제 수선공 오선영 — 옛 종로 한 한복집 사십 년 운영 출신이자 17번 거점 봉제실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뒷주머니 한 줄 이름'으로 후대 봉제실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셋째 해 가을, 외벽 정비공 박미경의 옛 외투 한 벌이 두 동생 중 작은 동생 박지연에게 두 번째 주인으로 옮겨지던 그날, 오선영은 외투의 뒷주머니 안쪽에 박미경의 옛 이름표 — 옛 분당 인테리어 공방 시절의 작은 자수 한 줄 — 를 일부러 뜯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박지연은 그 외투를 처음 입은 새벽 뒷주머니에서 언니의 이름을 손금으로 한 번 더 쓰다듬었으며, 그날 외벽 위에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망치 한 자루를 들고 올라갔다. 오선영은 그 외투의 한 땀을 일부러 한 줄 더 두껍게 다듬었고, 그 한 줄은 박지연의 등 위 어깨선 안쪽에서 사십 개월을 더 버텼다.

    17번 거점 봉제실 책상 위에는 오선영의 옛 줄자 한 자루와 박미경의 옛 이름표 한 장이 작은 액자에 같이 한 줄로 보관되어 있으며, 후대 봉제 수선공 신참은 입문 첫날 그 액자를 한 번 정중히 닦는 자세 연습을 따른다. 거점에서 가장 따뜻한 한 땀은 큰 외투의 한 땀이 아니라, 그 액자 옆 한 줄 자수 위에 있다.

  • 시체매장녀(屍體埋葬女)

    시체 처리반장

    이름 없는 시체를 거두어 묻는 여인

    이름은 알고 모실게요. 모르겠으면 옷 한 줄이라도 적어둘게요.

    시체 처리반장은 거점 안팎에서 죽은 사람과 좀비를 분리·소각·매장하는 여성 직군의 책임자다. 본인은 사태 이전 장례지도사·청소대원·외과 보조 출신이거나, 사태 후 보육원 식당 옆 작은 묘지 한 줄을 가장 오래 정리해온 자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방호복, 가슴에 작은 향 주머니, 어깨에 옛 명패 가방, 허리에 옛 손수건이 표준이다.

    본인은 처리 직전 한 사람의 옷·옛 사진·옛 이름표 한 줄을 위령 기록자에게 먼저 보낸다. 그래서 시체 처리반장의 첫 직무는 사실 처리가 아니라 한 줄 호명이다. 거점에서 가장 조용한 새벽 작업은 외벽 정비공의 망치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한 줄 향이 피어오르는 시각이다.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큰 매장이 아니라,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옷 한 줄을 적는 자세 위에 있다.

    그분이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옷 한 줄을 두 시간씩 적으신 자세, 그게 우리 시체 처리반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옷 한 줄이 그 사람의 마지막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시체 처리반장 정애란 — 옛 분당 한 장례식장 사십 년 장례지도사 출신이자 17번 거점 보육원 식당 옆 작은 묘지 한 줄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회색 외투 한 줄'로 거점 위령 노트에 길게 남아 있다.

    사태 셋째 해 가을, 거점 외벽 앞에 좀비 떼에 쫓겨 도착한 이름 모를 여성 한 명이 외벽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 사망했을 때, 정애란은 그 여성의 회색 외투 안주머니에서 옛 가족 사진 한 장과 옛 약 봉투 한 줄을 정중히 꺼냈다. 사진 안에는 어린 여자아이 한 명과 그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 있었고, 약 봉투 한 줄은 옛 일산 한 동네 약국의 처방전이었다. 정애란은 그 한 줄을 위령 기록자 차순례에게 두 시간에 걸쳐 또박또박 받아쓰게 했고, 이름 모를 그 여성의 한 줄에 "회색 외투, 어린 딸 한 명, 옛 일산 동네 약국 처방"이라는 한 줄을 적어 거점 광장에 정중히 호명했다.

    사흘 뒤 12번 거점에서 이송된 어린아이 김민지(여섯 살)가 그 사진 속 어린 여자아이임을 보육원 교사 한지원이 알아보았으며, 정애란은 그 회색 외투를 봉제 수선공 오선영에게 정중히 보내 김민지의 한 벌 작은 외투로 다시 짓게 했다. 17번 거점에서는 그날 이후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옷 한 줄을 두 시간 동안 받아쓰는 의례가 정착되었다.

  • 식당보조낭(食堂補助娘)

    거점 식당 보조

    거점 식당에서 잡일을 거드는 여인

    오늘 죽이 좀 묽지요? 미안해요. 그래도 한 그릇 더 드릴게요.

    거점 식당 보조는 보육원 식당·외벽 보초 식당·의무실 환자 식당의 배식·설거지·재료 손질을 맡는 여성 평민 직군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식당 알바·급식 조리원·작은 분식집 사장 출신이거나, 사태 후 한 거점에서 가장 먼저 솥에 불을 켤 줄 알았던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앞치마, 머리에 두건, 어깨에 작은 행주, 허리에 옛 국자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안 모든 사람의 평소 식성·옛 분기 한 끼의 결정적 시점·금기 음식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의무실 환자가 처음 정신을 차린 직후 가장 먼저 그녀의 한 그릇 죽이 도착한다. 거점의 진짜 회의실은 사령관 방이 아니라, 그녀가 국자를 든 식당 카운터 앞이다.

    그분이 한 그릇 더 주신 그 새벽이 우리 식당 보조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묽은 죽 한 그릇이 한 사람의 다음 한 줄이라는 뜻이지요.

    거점 식당 보조 황순분 — 옛 동대문 시장 작은 분식집 사십 년 사장 출신이자 17번 거점 의무실 환자 식당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묽은 죽 한 그릇 새벽'으로 의무실 한 칸에 길게 전해진다.

    의무병 강선희가 외벽 정비공 박미경의 쉰두 시간 처치를 끝낸 그 새벽, 황순분은 식당 솥 안에 평소보다 한 줄 더 묽은 죽 한 그릇을 끓여 의무실로 가장 먼저 보냈다. 박미경이 처음 정신을 차린 그 한 호흡에 죽 한 그릇이 도착했고, 박미경은 두 동생 중 작은 동생 박지연의 손에서 그 첫 한 숟가락을 받았다. 황순분은 그날 식당 카운터 앞에서 거점 어머니 임순옥과 사령관 노혜진을 차례로 만나, 의무실 환자 명단의 다음 한 줄과 보육원 식탁 끝자리의 다음 한 줄을 동시에 결재했다.

    사령관 회의실보다 그 카운터 앞에서 결정된 한 줄이 그날 새벽 17번 거점의 진짜 한 줄이었으며, 후대 식당 보조 신참은 입문 첫 새벽에 그 카운터 앞에서 한 그릇 죽을 처음 떠보는 자세 연습을 따른다. 황순분은 사망 직전까지 자기 옛 국자 한 자루를 카운터 옆 벽에 걸어두었으며, 그 국자는 17번 거점에서 사령관 결재 도장만큼 무거운 한 줄로 통한다.

  • 망루견습녀(望樓見習女)

    망루 견습 보초

    망루 위에서 보초를 배우는 견습 처녀

    아직 손이 떨려요. 그래도 어제보단 한 줄 덜 떨려요.

    망루 견습 보초는 거점 외벽 위 작은 망루에서 새벽·야간 시간대 좀비 접근을 가장 먼저 보고하는 평민 출신 여성 신참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평범한 학생·아르바이트생·옛 야간 편의점 직원이었거나, 사태 후 외벽 안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자원한 자다. 외형은 헐렁한 가죽 외투, 가슴에 옛 학생증 한 줄, 어깨에 작은 손등불, 허리에 옛 호루라기 한 개가 표준이다.

    본인은 새벽 네 시 한 줄 무전 신호를 처음 잡았을 때 호루라기를 너무 세게 불어 외벽 위가 두 박자 시끄러워진 일화가 있다. 그래도 그 한 줄 호루라기 덕에 외벽 한 면이 무사한 새벽이 한 번 있었다. 견습 보초의 손이 한 줄 덜 떨리는 새벽이 한 번씩 늘면, 거점은 그만큼 더 오래 서 있는다.

    그분이 처음 호루라기를 너무 세게 불었던 그 새벽이 우리 견습 보초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떨리는 손이 다음 떨리는 손에게 한 줄을 옮긴다는 뜻이지요.

    망루 견습 보초 정유나 — 사태 이전 옛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이학년 학생이자 도봉산 옛 산장 일곱 명 무리 중 가장 어린 막내, 박수경의 새벽 네 시 무전 한 줄에 처음 응답한 여성 — 의 일화는 '호루라기 두 박자'로 17번 거점 외벽 동편 망루에 길게 전해진다.

    17번 거점 외벽 안으로 들어온 다음 분기 첫 새벽, 정유나는 동편 망루 견습 보초로 자원해 가슴에 자기 옛 학생증 한 줄을 한 번 더 단단히 묶고 호루라기 한 자루를 받아 들었다. 그날 새벽 네 시 좀비 한 마리가 외벽 가장 가까운 자리에 다가왔을 때, 정유나는 호루라기를 너무 세게 불어 외벽 동편 한 줄이 두 박자 시끄러워졌으나, 그 한 줄 덕에 외벽 정비공 박지연(박미경의 작은 동생)이 가장 먼저 자기 망치 한 자루를 들고 올라왔다. 외벽 한 면은 그날 새벽 무사했고, 정유나는 호루라기를 두 박자 더 약하게 부는 자세를 다음 새벽부터 한 줄씩 다듬었다. 박수경은 무전탑에서 그 두 박자 호루라기 소리를 평생 한 번도 잊지 않았으며, 정유나에게 자기 옛 라디오 멘트 한 줄을 정중히 한 번 손글씨로 적어 주었다.

    후대 망루 견습 보초 신참은 입문 첫 새벽에 그 호루라기를 한 번 약하게 불어보는 자세 연습을 따른다.

  • 격리수녀비(隔離修女妃)

    격리 병동의 수녀

    격리 병동을 지키는 수녀의 자리에 선 여인

    감염된 분도 마지막 한 줄 기도까지는 사람이에요. 손은 제가 잡아드릴게요.

    격리 병동의 수녀는 거점 의무실 가장 안쪽, 감염 의심자와 발병 직전 환자가 머무는 마지막 방을 전담하는 여성 성직자다. 본인은 사태 이전 정식 수녀원 출신이거나, 사태 후 의무실 한구석에서 임종 환자의 손을 가장 오래 잡아준 자다. 외형은 무명 회색 수도복, 가슴에 작은 십자가 한 점, 손목에 옛 묵주 한 줄, 어깨에 옛 성서 한 권이 표준이다.

    본인은 격리실 안에 들어갈 때 늘 두꺼운 장갑 대신 한 겹 천 장갑만 끼는데, 마지막 한 줄 체온이 환자에게 닿아야 한다는 본인 원칙 때문이다. 의무병들은 이 자세를 만류하면서도 결국 격리실 문 앞까지 그녀를 데려다준다. 거점에서 가장 무거운 한 줄 결재는 외벽이 아니라 그녀가 격리실 문 안쪽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위에 있다. 진짜 성소는 큰 예배당이 아니라, 격리실 문 앞 한 줄 의자다.

    그분 손목 묵주 한 줄이 격리실 문 안쪽에서 한 번 끊어진 새벽이 있었어요. 끊어진 묵주 한 줄이 거점의 다음 한 줄 결재였다는 뜻이지요.

    격리 병동의 수녀 마리아 — 본명 정혜수, 옛 강원 한 정식 수녀원 출신이자 사태 직전 옛 부산 카리타스 의료원 봉사 수녀로 사십 개월 일했던 여성 — 의 일화는 '끊어진 묵주 한 줄'로 17번 거점 의무실 격리 병동에 길게 전해진다.

    백신 연구자 윤지선의 환자 송미아가 격리실 마지막 침상에 누웠던 그 새벽, 마리아 수녀는 한 겹 천 장갑만 낀 채 격리실 안으로 정중히 들어가 송미아의 손을 두 시간 동안 잡아주었다. 송미아가 마지막 한 줄 동요 — 옛 동요 '꼬마 눈사람' — 를 반쯤 부르고 정신을 잃었을 때, 마리아 수녀의 손목 묵주 한 줄이 천 장갑 안에서 한 번 끊어졌으며, 마리아는 그 끊어진 묵주 알 한 알을 송미아의 작은 주머니 안에 정중히 넣어주었다. 송미아는 그날 새벽 사망했고, 윤지선은 그 묵주 한 알을 송미아의 노트 서른여섯 페이지 옆에 한 줄 더 보관해 두었다.

    마리아 수녀는 끊어진 묵주를 다시 잇지 않은 채 사십 개월을 더 격리실 문 안쪽 한 줄 의자에 앉아 다음 환자의 손을 잡았으며, 후대 격리 병동 수녀 신참은 입문 첫 새벽에 그 의자에 한 번 정중히 앉아보는 의례를 따른다. 거점에서 가장 깊은 성소는 큰 예배당이 아니라, 격리실 문 안쪽 한 줄 의자 위 마리아의 천 장갑 한 짝 위에 있다.

  • 외교사절녀(外交使節女)

    거점 외교 사절

    거점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잇는 사절

    이 차 한 잔 다 식기 전에, 우리 거점 사람 두 명만 더 살려서 돌아갈게요.

    거점 외교 사절은 다른 거점·약탈자 무리·옛 군 잔존 부대와 직접 만나 보급 교환·생존자 송환·정전 협상을 담당하는 여성 협상가다. 본인은 사태 이전 변호사·통역사·옛 외교부 직원 출신이거나, 사태 후 회수반 옆 좌석에서 가장 많은 한 줄 협상을 본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코트, 가슴에 작은 옛 만년필, 어깨에 옛 가죽 가방 한 개, 허리에 작은 권총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협상 자리에 앉으면 늘 차 한 잔이 다 식기 전에 본론을 끝낸다는 자기 원칙을 지킨다. 그래서 외교 사절의 한 잔 차는 일상이 아니라 한 줄 결재의 모래시계다. 무전탑의 목소리가 거점 안 한 줄을 잇는 등불이라면, 외교 사절은 거점과 거점 사이를 잇는 한 줄 다리다. 거점에서 가장 깊은 협상은 권총이 아니라 그녀의 차 한 잔 위에 있다.

    그분이 차 한 잔이 식기 전에 두 명을 더 살려 돌아오신 그 새벽이 우리 외교 사절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한 잔 차의 식는 시간이 한 거점의 다음 분기라는 뜻이지요.

    거점 외교 사절 권나래 — 옛 서울 한 로펌 십이 년 변호사 출신이자 17번 거점 외교 사절로 사십 개월을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경부고속도로 휴게소 한 잔 차'로 거점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셋째 해 봄 22번 거점(경기 남부 신도시 거점) 사령관 송선화의 친동생이 약탈단 청수파(앞서 폐허 거리의 여왕 일화에 등장한 무리의 분파)에게 인질로 잡혔을 때, 권나래는 옛 경부고속도로 천안 휴게소(폐쇄된 옛 휴게소 카페 자리) 한쪽 탁자에서 청수파 분파장 박상준과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권나래는 자기 옛 만년필 한 자루를 탁자 가운데에 정중히 풀어놓고, 22번 거점에서 가져온 옛 항생제 한 통과 종자 보관자 김혜선의 강낭콩 한 봉투 두 알을 인질 두 명의 한 줄 약속과 맞바꾸었다. 박상준은 그 두 알 강낭콩을 자기 어머니께 보내겠다고 정중히 답했고, 차 한 잔이 식기 직전 두 인질을 권나래의 회수반 옆 좌석으로 정중히 옮겨 주었다.

    권나래는 그 옛 만년필을 평생 자기 가죽 가방 가운데 칸에 한 줄 끈으로 묶어 두었으며, 후대 거점 외교 사절 신참은 입문 첫 협상에서 그 만년필을 한 번 빌려 들고 가는 의례를 따른다. 17번 거점 사령관실 책상 위에는 그날의 빈 찻잔 한 개가 한 줄로 보관되어 있다.

  • 옥상양봉녀(屋上養蜂女)

    옥상 양봉가

    옥상에서 벌을 길러 꿀을 짜내는 여인

    벌은 좀비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옥상에서 우리만큼 자유로운 식구는 얘들뿐이지요.

    옥상 양봉가는 거점 옥상에 작은 벌통 몇 개를 두고 꿀·밀랍·약용 봉독을 채취하는 여성 직공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옛 농장주·생물 교사·작은 카페 운영자 출신이거나, 사태 후 옥상 텃밭 옆에서 첫 벌통을 직접 다시 짠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방충복, 가슴에 작은 꿀병 한 개, 어깨에 옛 훈연기 한 자루, 허리에 옛 채밀 칼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통의 꿀이 의무실 한 시즌의 상처 약과 보육원 한 분기의 한 숟가락을 동시에 굴린다는 사실을 옥상에서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양봉가의 결재 한 줄은 큰 회의가 아니라 벌통 뚜껑 위 한 자세에 있다. 거점에서 가장 평온한 새벽 소리는 외벽 망치 소리가 아니라 옥상 벌통의 한 줄 윙윙거림이다. 종말이 한 줄 늦어지는 자리에는 늘 그녀의 옥상 한 줄이 있다.

    그분이 한 통의 꿀을 의무실과 보육원에 동시에 한 숟가락씩 보내신 자세, 그게 우리 양봉가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한 통이 두 자리를 동시에 살린다는 뜻이지요.

    옥상 양봉가 류미숙 — 옛 충북 청주 한 작은 양봉 농장 사십 년 운영 출신이자 17번 거점 옥상 벌통 다섯 통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한 통 두 숟가락'으로 거점 옥상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셋째 해 봄 의무병 강선희가 외벽 정비공 박미경의 상처 봉합용 약이 부족하다고 보고한 그날, 보육원 교사 한지원도 김선아의 보육원 한 분기 한 숟가락 분량 단 음식이 떨어졌다고 거점 어머니께 알렸다. 류미숙은 그 새벽 자기 옥상 벌통 가장 가운데 통을 처음으로 한 번에 다 채밀해, 한 통의 꿀 가운데 절반을 의무실 강선희에게, 나머지 절반을 보육원 식당 황순분에게 같은 자세로 정중히 나누어 보냈다. 박미경의 어깨선 상처는 그 꿀 한 숟가락으로 사흘을 더 버텼고, 김선아는 보육원 식당 한 끼의 마지막 한 숟가락에 그 꿀을 받아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류미숙은 그날 빈 벌통 한 자리에 다음 봄을 위한 새 여왕벌 한 마리를 정중히 옮겨두는 자세를 평생 다듬었으며, 후대 옥상 양봉가 신참은 입문 첫 봄에 그 빈 통의 한 자리를 한 번 들여다보는 자세 연습을 따른다.

  • 도서수호녀(圖書守護女)

    거점 도서관 사서

    남은 책을 지키는 거점 도서관의 사서

    이 책 마지막 페이지는 옛 주인이 접어둔 그대로예요. 다음 분이 마저 읽어주세요.

    거점 도서관 사서는 거점 안 작은 옛 도서관·교실 한 칸·보육원 책장에 남은 옛 책과 새로 작성된 거점 일지를 분류·대출·보관하는 여성 직군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도서관 사서·국어 교사·옛 출판사 편집자 출신이거나, 사태 후 한 거점에서 가장 먼저 옛 책 더미에 한 줄 라벨을 붙인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카디건, 가슴에 옛 도서관 카드 한 장, 어깨에 옛 책 가방 한 개, 허리에 옛 라벨 펀치가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에 들어온 옛 책의 옛 주인 메모·접힌 페이지·옛 영수증 한 장을 일부러 그대로 둔다. 그래서 도서관 한 권의 책이 옛 주인의 한 줄 인사를 다음 한 사람에게 옮긴다. 거점 회의가 길어지는 새벽에는 사령관도 도서관 끝자리에 한 권을 빌리러 온다. 진짜 거점의 다음 한 줄 결재는 사령관 책상이 아니라 도서관 반납대 위에 있다.

    그분이 옛 영수증 한 장을 안 빼고 그대로 두신 자세, 그게 우리 사서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옛 영수증 한 장이 옛 주인의 다음 한 줄 인사라는 뜻이지요.

    거점 도서관 사서 박혜정 — 옛 부평 한 시립도서관 사십 년 사서 출신이자 17번 거점 옛 초등학교 한 칸을 도서관으로 다시 짠 여성 — 의 일화는 '옛 영수증 한 장의 한 줄'로 도서관 반납대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둘째 해 가을 17번 거점 외벽 안으로 들어온 옛 시 한 권 — 사태 직전 옛 부평 한 동네 카페 단골 손님이 마지막으로 빌려갔던 시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가운데에는 옛 영수증 한 장이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영수증에는 옛 카페 메뉴 한 줄과 옛 손님이 옛 친구에게 적어둔 한 줄 메모 — "다음 봄에 같이 다시 마시자" — 가 적혀 있었으며, 박혜정은 그 영수증을 빼지 않고 책 그대로 거점 도서관 반납대 위에 한 줄 라벨로 정중히 등록했다. 무전탑의 목소리 박수경이 그 책을 새벽 네 시 송출 직전에 한 권 빌려가 자기 옛 라디오 멘트 한 줄에 그 영수증 메모 한 줄을 정중히 인용했고, 도봉산 일곱 명 무리 중 정유나가 그 새벽 그 한 줄을 듣고 처음 울었다.

    박혜정은 그 영수증을 평생 그 책 안에 그대로 두었으며, 후대 거점 도서관 사서 신참은 입문 첫 분기에 그 책을 한 번 펼쳐보는 의례를 따른다. 거점에서 가장 따뜻한 한 줄은 사령관 결재가 아니라, 그 영수증 한 장 위 옛 잉크의 한 줄이라고들 한다.

  • 폐허라디오녀(廢墟라디오女)

    폐허 라디오 작가

    폐허에 송신할 라디오 원고를 쓰는 작가

    오늘 방송도 한 줄만요. 누군가는 그 한 줄로 새벽을 버틴답니다.

    폐허 라디오 작가는 거점 무전탑 옆 작은 송출실에서 매일 한 편씩 짧은 라디오 원고를 써 새벽·야간 시간대에 송출하는 여성 작가다. 본인은 사태 이전 옛 방송 작가·잡지 에디터·시인 출신이거나, 사태 후 무전탑 한 칸을 가장 오래 비워두지 않은 자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외투, 가슴에 옛 만년필 한 자루, 어깨에 옛 원고 가방, 허리에 옛 노트 한 권이 표준이다.

    본인은 한 편 원고에 거점 안 한 사람의 옛 사연 한 줄을 익명으로 끼워 넣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한 줄 라디오가 옥상 어딘가의 한 사람의 한 끼를 살리는 새벽이 한 번씩 있다. 무전탑의 목소리가 등불이라면, 라디오 작가는 그 등불 안에 든 한 줄 심지다. 종말의 진짜 한 줄 위로는 큰 설교가 아니라, 새벽 네 시의 한 편 라디오다.

    그분이 익명으로 한 줄을 끼워 넣으신 자세, 그게 우리 라디오 작가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익명 한 줄이 옥상 한 사람의 한 끼라는 뜻이지요.

    폐허 라디오 작가 임수아 — 옛 EBS 새벽 라디오 방송 작가 십팔 년 출신이자 17번 거점 무전탑 옆 옛 청소도구실 한 칸을 송출실로 다시 짠 여성 — 의 일화는 '익명 한 줄 새벽 네 시'로 무전탑 옆 송출실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둘째 해 봄 17번 거점 외교 사절 권나래가 22번 거점 사령관 송선화의 친동생 인질 협상에서 가져온 옛 만년필 한 자루를 임수아에게 정중히 한 줄 빌려 주었던 그 새벽, 임수아는 그 만년필로 자기 한 편 원고에 22번 거점 사령관 친동생의 옛 어머니 — 송선화·친동생 형제의 어머니 송정희 — 의 사태 직전 마지막 한 줄 — "다음 봄에 우리 셋이 같이 강낭콩 한 봉투 심자" — 을 익명으로 정중히 끼워 넣었다. 그 한 줄을 새벽 네 시에 무전탑의 목소리 박수경이 송출했고, 22번 거점 송선화는 그 송출을 자기 사령관실에서 직접 들으며 처음으로 친동생을 위해 운 한 호흡을 두었다. 임수아는 그 옛 만년필을 한 분기 뒤 권나래에게 정중히 돌려보냈으며, 만년필 끝 잉크에는 그 익명 한 줄의 자국이 한 줄 남아 있었다.

    후대 폐허 라디오 작가 신참은 입문 첫 새벽 네 시에 그 만년필을 한 번 빌려 들어보는 의례를 따른다.

  • 보육재단낭(保育裁斷娘)

    보육원 재단사

    아이들의 옷을 짓는 보육원의 재단사

    키가 한 뼘 자랐네요. 옷도 한 단 늘려둘게요. 다음 분기에도 자라줘야 해요.

    보육원 재단사는 거점 부속 보육원 아이들의 옷·잠옷·작은 외투를 직접 짓고 늘려주는 여성 직공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옛 동네 옷가게·작은 아동복 공방·세탁소 출신이거나, 사태 후 봉제 수선공 옆에서 가장 먼저 아이 옷의 한 단을 늘려본 자다. 외형은 단정한 분홍빛 작업복, 가슴에 작은 핀 쿠션 한 개, 어깨에 옛 줄자, 허리에 옛 가위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아이의 옷에 한 분기마다 한 줄씩 한 단을 더 늘려 둔 채 짓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보육원 아이의 한 벌 옷이 두 분기를 입는다. 거점 사령관도 새 외투보다 보육원 재단사의 한 줄 한 단 늘려둔 옛 외투를 더 자주 입는다. 거점의 진짜 한 줄 결재는 보육원 재단판 위에 펼쳐진 한 벌 옷의 한 단 위에 있다.

    그분이 한 분기마다 한 단을 더 늘려두신 자세, 그게 우리 재단사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한 단 한 줄이 그 아이의 다음 분기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보육원 재단사 신예원 — 옛 명동 한 작은 아동복 공방 사십 년 운영 출신이자 17번 거점 보육원 재단판 한 칸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두 분기 한 외투'로 보육원 재단판에 길게 전해진다.

    보육원 교사 한지원이 12번 거점에서 데려온 다섯 아이 중 가장 어린 김선아의 첫 외투를 짓던 그날, 신예원은 자기 옛 줄자 한 자루로 김선아의 키를 두 번 재고 옷의 안쪽 단을 두 줄 더 늘려 두었다. 첫 분기에는 그 두 줄이 옷 안쪽에 한 줄 손글씨처럼 접혀 있었으며, 두 번째 분기 김선아가 한 뼘 자랐을 때 신예원은 그 두 줄 가운데 한 줄을 자기 손으로 정중히 풀어 한 단을 늘려 주었다. 김선아는 그 한 외투를 두 분기 동안 입었으며, 마지막 한 줄까지 입은 새벽에 신예원은 그 외투를 봉제 수선공 오선영에게 정중히 보내 김민지(시체 처리반장 정애란이 회색 외투에서 사진을 알아본 그 어린아이) 의 다음 외투로 다시 짓게 했다.

    17번 거점 보육원 재단판 위에는 신예원의 옛 줄자 한 자루가 평생 한 줄 끈으로 묶여 있으며, 후대 보육원 재단사 신참은 입문 첫 분기에 그 줄자를 한 번 정중히 빌려 들어보는 의례를 따른다.

  • 거점우편녀(據點郵便女)

    거점 우체부

    거점 안 편지를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우체부

    옆 거점까지 사흘이에요. 답장 안 와도 한 통은 쥐어드릴게요.

    거점 우체부는 거점과 거점 사이, 거점 안 무전 닿지 않는 외벽 안쪽 골목 사이의 손편지·옛 사진·작은 짐을 직접 들고 오가는 여성 전령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옛 우편집배원·자전거 배달원·옛 신문 보급원 출신이거나, 사태 후 회수반 옆 좌석에서 가장 자주 옛 편지 한 통을 챙겨온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외투, 가슴에 옛 우표 한 장, 어깨에 옛 우체 가방 한 개, 허리에 옛 손등불 한 개가 표준이다.

    본인은 답장이 안 올 줄 알면서도 옛 가족에게 보내는 한 통을 늘 가방에 한 장씩 더 챙긴다. 그래서 우체부의 가방은 늘 한 통만큼 무겁다. 거점에서 가장 따뜻한 한 줄은 무전탑의 새벽 인사이지만, 가장 오래 가는 한 줄은 그녀의 가방 안 옛 편지 한 통의 잉크다. 진짜 한 줄 외교는 외교 사절의 차 한 잔이고, 진짜 한 줄 안부는 우체부의 한 통이다.

    그분이 답장 안 올 줄 알면서도 늘 한 통을 더 챙기신 자세, 그게 우리 우체부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한 통이 옛 가족의 다음 한 줄 호적이라는 뜻이지요.

    거점 우체부 안미정 — 옛 강원 춘천 한 우체국 사십 년 우편집배원 출신이자 17번 거점에서 22번 거점·9번 거점 사이를 평생 자전거 한 대로 오간 여성 — 의 일화는 '안 올 답장 한 통'으로 거점 우체 가방에 길게 전해진다.

    거점 어머니 임순옥의 작은아들이 외벽에서 사망한 그해 겨울 임순옥은 안미정에게 작은아들이 사태 이전 입양을 보낸 옛 사촌형 한 명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정중히 부탁했다. 옛 사촌형은 사태 첫해에 사망한 사실이 거점 위령 노트에 한 줄로 적혀 있었으나, 안미정은 그 사실을 임순옥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 한 통을 자기 가방 가장 안쪽에 한 줄 끈으로 묶어 두고 사십 개월을 들고 다녔다. 안미정은 그 한 통을 거점 우체 가방에서 끝내 꺼내지 않은 채 사망했고, 후대 우체부 신참 정유나(앞서 망루 견습 보초였던 그 여성, 다음 분기 우체부로 자원)가 그 가방을 정중히 이어받았다.

    정유나는 그 한 통을 임순옥에게 돌려주는 대신 위령 기록자 차순례에게 정중히 보내, 임순옥의 작은아들 한 줄 옆에 그 옛 사촌형의 한 줄 — "다음 분기에도 형이 너를 한 번 더 부른다" — 을 한 줄 더 적어 두게 했다. 안미정의 옛 우체 가방은 17번 거점 광장 한쪽에 한 줄 끈으로 한 번 봉인되어 있다.

  • 약국정리녀(藥局整理女)

    옛 약국 정리원

    버려진 약국의 약을 골라 정리하는 여인

    유효기간이 지난 약은 한쪽으로 빼둘게요. 그래도 이름은 한 줄 적어둬야 해요.

    옛 약국 정리원은 무너진 도심의 옛 약국·동네 한약방·병원 약 창고에 회수반과 함께 들어가 남은 약을 분류·정리·이송하는 여성 직군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약국 직원·옛 보건소 보조·요양원 약 담당 출신이거나, 사태 후 폐허 약초사 옆에서 옛 약 봉투 한 줄을 가장 오래 본 자다. 외형은 단정한 흰 작업복, 가슴에 옛 약사 명찰 한 줄, 어깨에 옛 약 가방 한 개, 허리에 옛 핀셋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유효기간이 지난 약과 안 지난 약을 두 줄로 가르고, 지난 약의 옛 이름도 한 줄 노트에 따로 적어둔다. 그래서 다음 분기 의무실이 옛 약 한 줄로 다음 한 사람의 한 끼를 살린다. 거점의 진짜 한 줄 약장은 의무실 안이 아니라, 그녀의 옛 약 가방 한 칸 위에 있다.

    그분이 유효기간 지난 약의 옛 이름까지 한 줄 적어두신 자세, 그게 우리 약국 정리원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옛 이름 한 줄이 다음 분기의 한 줄 처치라는 뜻이지요.

    옛 약국 정리원 손정아 — 옛 부평 한 동네 약국 십팔 년 직원 출신이자 17번 거점 회수반 동행 정리원으로 사십 개월을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옛 약국 명찰 한 줄'로 회수반 옆 좌석에 길게 전해진다.

    사태 둘째 해 가을 회수반 운전수 김연주가 옛 부평 한 동네 약국(손정아의 옛 직장이었던 그 약국) 출동을 맡았던 그날, 손정아는 옆 좌석에서 자기 옛 약사 명찰 한 줄을 자기 흰 작업복 가슴에 한 번 더 단단히 묶고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옛 자기 자리 카운터 안쪽 서랍에서 사태 직전 자기가 마지막으로 정리한 옛 약 봉투 한 칸 — 옛 단골 송정희(앞서 폐허 라디오 작가 일화에 등장한 22번 거점 송선화·친동생의 어머니)의 처방 봉투 — 을 한 줄 그대로 발견했다. 손정아는 그 봉투의 약을 두 줄로 가르고, 유효기간 지난 한 줄에는 송정희의 이름과 옛 처방 한 줄을 자기 노트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그 한 줄이 다음 분기 폐허 라디오 작가 임수아의 한 편 원고 익명 한 줄로 이어졌고, 22번 거점 송선화는 그 새벽 어머니의 옛 처방 한 줄을 처음으로 자기 거점 의무실 한 줄에 정중히 한 번 더 적어 두게 했다. 손정아의 옛 약사 명찰은 17번 거점 의무실 약장 한쪽에 작은 액자 한 줄로 보관되어 있다.

  • 빨래터관리녀(빨래터管理女)

    빨래터 관리인

    거점 빨래터를 돌보는 여인

    오늘은 햇볕이 좋네요. 외투 한 줄 더 널어둘게요.

    빨래터 관리인은 거점 옥상·옛 옥상 정원·외벽 안쪽 빨래터에서 거점 사람들의 옷·붕대·이불·옛 손수건을 빨고 너는 여성 평민 직군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동네 세탁소·기숙사 영선·옛 호텔 하우스키퍼 출신이거나, 사태 후 한 거점에서 가장 먼저 옥상 빨랫줄 한 줄을 다시 매단 자다. 외형은 단정한 푸른 앞치마, 머리에 두건, 어깨에 옛 빨래 가방, 허리에 옛 빨래집게 한 줌이 표준이다.

    본인은 빨랫줄 한 줄을 매기 전에 늘 그날 햇볕의 한 줄 방향과 한 줄 풍속을 옥상에서 한 자세로 본다. 그래서 그녀의 한 줄 빨랫줄은 사실 옥상의 작은 결재 라인이다. 거점에서 가장 평온한 한 줄 신호는 외벽이 아니라, 옥상 위에 한 줄 더 늘어난 빨랫줄이다. 그 한 줄이 늘어난 새벽은 거점이 한 줄 더 잘 잤다는 뜻이다.

    그분이 외벽 정비공의 작업복 한 벌을 빨랫줄 가장 가운데에 너신 자세, 그게 우리 빨래터 관리인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가장 무거운 옷이 가운데에 걸린다는 뜻이지요.

    빨래터 관리인 한정자 — 옛 강남 한 호텔 하우스키퍼 사십 년 출신이자 17번 거점 옥상 빨래터를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가운데 작업복 한 벌'로 옥상 빨랫줄에 길게 전해진다.

    외벽 정비공 박미경의 작업복이 사태 셋째 해 가을 사흘에 걸친 큰비에 한 번 더럽혀져 한정자에게 정중히 도착한 그날, 한정자는 옥상 빨랫줄 가장 가운데 자리 — 평소 거점 사령관의 외투가 걸리는 자리 — 에 박미경의 작업복을 정중히 한 줄로 걸었다. 사령관 노혜진은 그날 새벽 자기 외투를 옥상 빨랫줄 가장 끝자리에 정중히 옮겨 걸었으며, 후대 거점에서는 그날의 한 줄 자리 변경이 사령관 결재 한 줄보다 무거운 한 줄로 통한다. 박미경의 작업복은 그 햇볕 한 줄 아래에서 사흘을 말랐고, 동생 박지연이 그 작업복을 어깨에 걸친 채 다음 새벽 외벽 위로 올라갔다.

    한정자는 그 한 줄 가운데 자리에 거점 외벽 정비공의 작업복을 분기마다 한 번씩 정중히 거는 의례를 평생 다듬었으며, 후대 빨래터 관리인 신참은 입문 첫 새벽에 그 가운데 자리에 한 번 빨래집게 한 짝을 들어보는 자세 연습을 따른다.

  • 새벽제빵녀(曉製빵女)

    새벽 빵 굽는이

    동트기 전 빵 한 솥을 굽는 여인

    오븐 불 맞춰뒀어요. 외벽 위 분들 한 분씩 한 조각 챙기세요.

    새벽 빵 굽는이는 거점 식당 옆 작은 화덕에서 새벽 시간대 외벽 보초·의무실 야근조·회수반 출동조를 위한 빵을 굽는 여성 평민 직군이다. 본인은 사태 이전 옛 동네 빵집·기숙사 조리원·옛 카페 베이커 출신이거나, 사태 후 식당 보조 옆에서 가장 먼저 새벽 화덕에 불을 켤 줄 알았던 자다. 외형은 단정한 회색 앞치마, 가슴에 옛 밀가루 한 줄, 어깨에 옛 행주, 허리에 옛 화덕 장갑 한 짝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안 모든 야근조의 옛 한 끼 시각·금기 식재료·옛 식성 한 줄을 한 표로 외운다. 그래서 외벽 위 망루 견습 보초가 새벽 네 시에 가장 먼저 받는 한 줄 위로는 무전이 아니라 그녀의 한 조각 빵이다. 거점의 진짜 새벽 한 줄 결재는 사령관 책상이 아니라, 그녀의 화덕 한 줄 위에 있다.

    그분이 새벽 네 시 첫 한 조각을 망루 견습에게 보내신 자세, 그게 우리 빵 굽는이의 진짜 첫 자세입니다. 첫 한 조각이 떨리는 손의 다음 한 줄이라는 뜻이지요.

    새벽 빵 굽는이 차은희 — 옛 마포 한 동네 작은 빵집 사십 년 운영 출신이자 17번 거점 식당 옆 옛 청소도구실을 화덕 한 칸으로 다시 짠 여성 — 의 일화는 '망루 첫 조각 새벽 네 시'로 외벽 위 망루에 길게 전해진다.

    망루 견습 보초 정유나가 자기 첫 호루라기를 너무 세게 분 그 새벽 두 박자 뒤, 차은희는 자기 화덕에서 가장 먼저 구운 옛 호밀 빵 한 조각을 자기 옛 행주에 정중히 싸서 외벽 동편 망루로 직접 들고 올라갔다. 정유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한 조각을 받아 들었으며, 차은희는 자기 옛 화덕 장갑 한 짝을 정유나의 가슴팍 옛 학생증 한 줄 옆에 정중히 한 번 얹어주었다. 정유나는 그 한 조각을 다 먹지 않고 절반만 먹은 뒤, 나머지 절반을 다음 교대조 견습 보초의 망루에 한 줄 손수건에 싸서 정중히 두고 내려왔다.

    차은희는 그날 이후 새벽 네 시 첫 한 조각을 늘 망루 견습에게 가장 먼저 보내는 자세를 평생 다듬었으며, 후대 새벽 빵 굽는이 신참은 입문 첫 새벽에 그 옛 행주를 한 번 정중히 빌려 들고 올라가는 의례를 따른다. 17번 거점 외벽 동편 망루 안쪽 벽에는 차은희의 옛 화덕 장갑 한 짝이 작은 액자에 한 줄로 걸려 있다.

  • 연합외교비(聯合外交妃)

    거점 연합 외교관

    거점 연합의 외교를 책임지는 비(妃)의 자리

    제가 차를 먼저 따르는 것은 제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먼저 앉아야 상대가 앉으니까요.

    거점 연합 외교관은 서로 다른 거점 또는 유랑 생존자 무리 사이의 협약·보급 분배·경계선 협의를 담당하는 여성 외교 전문가다. 무력보다 언어와 신뢰로 거점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며, 한 번의 회담이 한 시즌 분기를 좌우한다.

    본인은 사태 이전 사회복지사·외교관·국제기구 직원 출신이거나, 사태 후 거점 안에서 갈등 조정 경험이 쌓인 자다. 그녀가 회담 자리에 앉으면 양쪽 모두 먼저 무기를 내려놓는다. 그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먼저 차를 따르는 자세가 양쪽 모두에게 같은 신호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외교관이 회담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차를 따르는 것인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 한 잔이 총 한 자루보다 무거운 첫 번째 신호니까요.

    중부연합 초대 거점 연합 외교관 오수진 — 사태 이전 옛 유엔 난민기구 현장 담당관 출신이자 거점 연합 설립 회담 세 곳을 직접 진행한 여성 — 의 일화는 연합 야사에 "첫 회담 차 한 잔"으로 길게 남아 있다.

    약탈자 결사 황량단(앞서 190000 남성 파일의 그 결사)과 거점 연합이 처음으로 정식 회담을 시도한 그해 봄, 양쪽 모두 무기를 들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오수진은 자기 쪽 무기를 먼저 테이블 아래에 두고 주전자를 들었다. 황량단 측 대표 박만재(앞서 약탈자 두목 일화의 그 인물)는 처음에 일어서려다 멈췄고, 오수진이 그의 잔에 먼저 따라 주는 동안 한 호흡 후 앉았다. 그 한 잔이 회담의 첫 줄이 되었고, 세 시간 뒤 양쪽은 의무관 호송 차량 불가침 협약 한 장에 사인했다. 그 협약 한 장이 중부연합 최초의 거점 간 공식 문서다.

    후대 연합 외교관들은 회담 전날 새벽 주전자를 먼저 닦아두는 자세를 오수진에게서 가져왔다.

  • 최후백신녀(最後疫苗女)

    최후의 백신 생산자

    마지막 백신을 직접 만들어내는 생산자

    제가 마지막 한 병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자리에는 혼자 앉지 않아요. 거점민이 같이 앉아야 해요.

    최후의 백신 생산자는 거점 연합 전체에 남은 마지막 백신 생산 설비를 운영하는 여성 과학자다. 그녀의 실험실이 살아 있는 한 거점 연합은 백신 희망을 이어갈 수 있지만, 실험실이 멈추는 순간 그 희망도 멈춘다. 외형은 오래된 연구 가운, 어깨에 냉장 보관용 가방, 허리에 연구 수첩이 표준이다.

    그녀는 마지막 백신 한 병의 사용처를 혼자 결정하지 않는 원칙으로 유명하다. 그 결정이 한 사람의 손에 있으면 그 사람이 가장 먼저 약탈자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 결정의 무게가 한 사람이 혼자 지기에는 너무 크다는 것을 그녀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병 결정 자리에 혼자 앉지 않는다는 그분 원칙이, 우리 연구실의 결재 라인 첫 줄이에요. 그 한 줄이 연구실을 아직 살아 있게 하는 진짜 이유지요.

    중부연합 초대 최후의 백신 생산자 서정연 — 사태 이전 옛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교수 출신이자 현재 연합 내 유일한 백신 생산 라인을 구축한 여성 — 의 일화는 연구실 안에서 "마지막 병 회의의 새벽"으로 전해진다.

    어느 겨울 연구실 냉장고에 마지막 백신 한 병이 남았을 때, 거점 연합 다섯 곳이 동시에 긴급 요청을 보내왔다. 서정연은 사령관들에게 결정을 돌리는 대신 거점민 대표 다섯 명을 한 방에 불러 둘러앉혔다. 그들은 여섯 시간을 이야기했고, 결국 가장 어린 환자가 있는 거점을 선택했다. 서정연은 그날 회의 전 과정을 수첩 한 권에 빠짐없이 기록해 연합 기록실에 보관했고, 그 수첩이 이후 연합 의료 배분 원칙 초안의 토대가 되었다. 거점 기록병들은 그 수첩 한 권을 거점 연합 설립 기록 중 가장 무거운 한 권이라 평가한다.

    후대 연구실 직원들은 마지막 병 결정 전 거점민 대표를 부르는 자세를 서정연에게서 가져왔다.

  • 감염연구존(感染硏究尊)

    감염병 전담 연구사

    감염병의 모든 자료를 손에 쥔 연구의 존자

    변종이 나타난 건 위협이에요. 그런데 변종이 나타났다는 건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감염병 전담 연구사는 좀비 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종·전파 경로·감염 패턴을 분석하는 거점 연합 소속 전문 연구자다. 백신 개발 총감독(남성 190032)과 공동으로 데이터를 공유하며, 거점 연합 전체의 격리 지침과 접촉 차단 프로토콜을 작성한다.

    본인은 변종 바이러스를 발견할 때마다 두려움과 함께 묘한 직업적 흥미를 느끼는 자신을 가끔 돌아본다. 변종은 위협이지만 동시에 바이러스가 아직 적응 중이라는 신호이며, 그 말은 우리도 아직 적응 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역설을 이해하는 자가 가장 두려움 없이 바이러스 옆에 앉을 수 있다.

    변종 발견 보고서 첫 줄에 두려움보다 분석이 먼저 적히는 날이 우리 연구실이 가장 강한 날이라는 사실, 그게 첫 번째 교훈이에요.

    중부연합 초대 감염병 전담 연구사 하소연 — 사태 이전 옛 국립감염병연구소 바이러스 팀 연구원 출신이자 거점 연합 격리 지침 1호를 작성한 여성 — 의 일화는 연구실 안에서 "4형 변종의 첫 밤"으로 전해진다.

    네 번째 변종이 처음 발견된 새벽, 하소연은 최후의 면역체 한지유(앞서 200006 일화의 그 여성)에게 채혈 요청을 전하기 전 먼저 본인 가운 주머니에서 분석 수첩을 꺼내 변종 특성 첫 줄을 적었다. 한지유가 팔을 걷어 준 다음, 하소연은 채혈 내내 변종의 특성을 조용히 혼잣말로 읊었다. 한지유는 그 읊조림이 무섭지 않았냐고 나중에 물었고, 하소연은 "들을수록 더 알게 되니까 덜 무서워진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 한마디가 이후 연구실 신규 연구원 오리엔테이션의 첫 강의 첫 줄이 되었다.

    후대 연구사들은 변종 발견 첫날 수첩에 두려움을 적기 전 분석 항목을 먼저 한 줄 적는 자세를 하소연에게서 가져왔다.

  • 격리총책녀(隔離總責女)

    격리 병동 총책임자

    격리 병동 전체를 책임지는 총책임자

    격리가 끝나는 날보다 격리 안에 있는 날이 더 무겁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들어가요.

    격리 병동 총책임자는 거점 감염 의심자·격리 대상자를 수용하는 병동 전체의 운영을 책임지는 여성 의료 관리자다. 격리 병동의 입퇴원 기준·내부 위생 점검·격리 중 환자 심리 지원까지 관할한다.

    격리는 치료가 아니라 보호라는 원칙을 그녀가 가장 먼저 규정에 새겼다. 격리 병동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그녀는 매일 직접 병동 안에 들어가 한 사람씩 짧게 이야기를 나눈다.

    병동 안에 매일 들어가는 총책임자를 보고 자란 격리 대원들이 두려움 없이 일한다는 사실, 그 한 줄이 이 자리의 진짜 힘이에요.

    17번 거점 초대 격리 병동 총책임자 임혜경 — 사태 이전 옛 감염병 병동 전문 간호사 출신이자 격리 병동 운영 지침서를 손으로 직접 쓴 여성 — 의 일화는 병동 안에서 "매일 들어오는 목소리"로 통한다.

    격리 병동이 처음 열린 날, 격리 대상자들이 자신들이 갇히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할 때 임혜경은 자기 이름 표찰을 달고 병동 안으로 걸어 들어와 가운데 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녀는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5분씩 대화를 했고, 마지막에는 "내일도 올게요"라고 한 줄 남기고 나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들어왔다. 격리 5일차부터 환자들이 스스로 그녀가 올 시간에 맞춰 의자를 하나씩 더 가져다 두기 시작했다. 백신 연구자 윤지선(앞서 일화의 그 연구자)은 그 병동의 기록을 읽고 격리 이탈 시도 건수가 다른 거점 격리 병동의 절반이었다는 사실을 보고서에 따로 한 줄 남겼다.

    후대 격리 병동 총책임자들은 임명 첫날 병동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자세를 임혜경에게서 가져왔다.

  • 의회의장녀(議會議長女)

    거점 의회 의장

    거점 의회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여인

    이 자리는 가장 많이 말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가장 많이 듣는 자리예요.

    거점 의회 의장은 거점 안 주요 결정 — 보급 분배·신규 합류자 수용·외교 협약 승인·규칙 제정 — 을 거점민 대표가 모여 논의하는 의회 회의를 주재하는 여성 지도자다. 법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정하게 이끄는 자다.

    본인은 거점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듣는 사람이다. 의장 결정권은 찬반이 정확히 갈릴 때만 쓰며, 그 권한을 한 분기에 두 번 이상 쓰지 않는 불문율을 스스로 만들었다. 거점의 진짜 민주주의는 의장 발언 시간이 아니라 의장이 침묵하는 시간에 있다.

    의장 자리에 가장 오래 앉아 있는 자가 가장 적게 말했다는 기록이 거점 의회 야사의 첫 줄이에요. 그 침묵 한 줄이 거점 헌장의 진짜 첫 번째 조항이지요.

    17번 거점 초대 의회 의장 김미선 — 사태 이전 옛 시민 단체 대표 출신이자 거점 의회 회의록 한 권을 손수 직접 기록한 여성 — 의 일화는 의회 기록에 "삼 시간 침묵의 새벽"으로 남아 있다.

    보급 배분 갈등이 가장 심했던 그해 겨울 의회 회의에서, 양쪽 대표가 두 시간 넘게 서로의 말을 끊으며 논쟁할 때 김미선은 의장 발언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회의록만 계속 적었다. 두 시간 삼십 분이 지나 양쪽 모두 할 말을 다 한 뒤 침묵이 찾아왔을 때, 김미선은 회의록 마지막 페이지를 테이블 가운데에 놓고 "두 분이 한 말을 제가 다 적었어요. 이제 이 기록을 두 분이 같이 읽어줄게요"라고 짧게 말했다. 양쪽은 자기 말이 기록된 문장을 읽다가 서로 다른 표정이 되었고, 회의는 그 뒤 한 시간 만에 합의로 끝났다.

    후대 의장들은 회의록을 직접 적는 자세를 김미선에게서 가져왔다.

  • 종자은행녀(種子銀行女)

    종자 은행 수호자

    종자 은행의 마지막 열쇠를 지키는 수호자

    이 씨앗 한 알이 열 해 뒤를 위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쓰지 않아요.

    종자 은행 수호자는 거점 안 옥상·지하 창고에 보관된 농작물 종자를 관리하며, 종자가 언제 파종되어야 하고 얼마나 비축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농업 전문가다. 종자 보관자(200010)와 협력하되, 더 장기적인 시야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식량 기반"을 설계하는 것이 이 자리의 목표다.

    본인은 당장 굶는 거점민이 있을 때도 비축 종자 한 알은 지킨다. 그 결정이 가장 잔인하게 보이는 순간이 동시에 가장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몇 번의 흉작 이후에 배웠다. 폐허의 가장 긴 기억은 비축 창고 안 종자 통 하나에 담겨 있다.

    종자 은행 문 앞에 '지금 당장은 열지 않는다'는 한 줄 팻말이 걸리는 날이 거점에서 가장 힘든 날인 동시에 가장 미래를 준비하는 날이라는 사실, 그게 이 자리의 첫 번째 약속이에요.

    17번 거점 초대 종자 은행 수호자 노경희 — 사태 이전 옛 농촌진흥청 작물 유전자원 담당 연구사 출신이자 거점 종자 비축 원칙 첫 판본을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종자 은행 앞에서 "흉작 두 해의 비축 통"으로 전해진다.

    두 해 연속 텃밭 흉작으로 거점민의 신선 채소 공급이 끊긴 그해 겨울, 거점 의회에서 종자 은행 비축 통 일부를 식량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노경희는 의회 의장 김미선 앞에서 비축 통 한 개를 직접 들고 나왔고, 그 안에서 씨앗 한 알을 꺼내 테이블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이 한 알을 지금 먹으면 한 끼가 되고, 심으면 열 해 뒤 한 가족의 한 시즌이 됩니다"라고 한 줄 말한 뒤 앉았다. 의회는 그날 비축 전환 제안을 부결하고 대신 텃밭 확장 계획을 통과시켰다. 거점 텃밭 농부 오명수(앞서 190049 일화의 그 농부)는 그 의결 내용을 받아 다음 시즌 옥상 텃밭 두 칸을 추가로 만들었다.

    후대 종자 은행 수호자들은 의회 보고 전날 씨앗 한 알을 수첩에 얇게 눌러 두는 자세를 노경희에게서 가져왔다.

  • 외곽탐색녀(外郭探索女)

    외곽 생존자 탐색관

    외곽으로 나가 생존자를 찾아내는 탐색관

    그 신호가 유인인지 진짜인지를 가르는 한 줄은 소리가 아니에요. 타이밍이에요.

    외곽 생존자 탐색관은 거점 외곽 폐허에서 고립된 생존자의 신호·흔적·경로를 추적해 구조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정보 수집 전문가다. 외곽 구조대장(남성 190036)의 출발 결정에 앞서 탐색·판단 단계를 담당한다.

    본인은 폐허 안에서 사람의 흔적을 읽는 법을 독학으로 배운 경우가 많다. 발자국의 간격·폐허 벽의 흠집·불 꺼진 창문 안 빛 반사까지 모두 신호로 읽어낸다. 그래서 그녀가 "이건 진짜입니다"라고 보고하는 날 구조대는 가장 빠르게 출발한다.

    탐색관 보고서에서 '타이밍'이라는 단어가 적힌 줄은 구조대가 가장 먼저 읽는 줄이에요. 그 한 줄이 사람과 유인을 가르는 선이니까요.

    22번 거점 초대 외곽 생존자 탐색관 박유진 — 사태 이전 옛 야생 동물 탐사 사진가 출신이자 거점 연합 최초의 생존자 탐색 매뉴얼을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탐색 팀 안에서 "창문 반사 한 줄"로 통한다.

    폐허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불규칙한 신호가 잡혔을 때, 박유진은 구조대 출발을 한 시간 미룰 것을 요청했다. 신호 타이밍이 너무 규칙적으로 불규칙해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패턴을 만들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동안 직접 폐허 외곽에서 지켜본 결과, 신호의 주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반사광이 아니라 손으로 조절되는 손전등 빛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어린이 포함 열여섯 명이 있었다. 외곽 구조대장 황정욱(앞서 190036 일화의 그 대장)은 그날 출발 전 박유진의 보고서에 "판단 감사"라는 한 줄을 추가로 적었다.

    후대 탐색관들은 신호 확인 첫 단계에서 타이밍 관찰에 최소 한 시간을 배분하는 자세를 박유진에게서 가져왔다.

  • 재건설계녀(再建設計女)

    거점 재건 설계사

    무너진 거점의 재건도를 그리는 설계사

    무너진 자리 위에 새로 짓는 건 건물이 아니에요. 거기 살 사람들의 하루예요.

    거점 재건 설계사는 재건 작업의 구조적 설계를 담당하는 여성 건축 전문가다. 남성 거점 재건사령관(190031)이 전체 운영을 맡는다면, 이 자리는 공간이 어떻게 배치되어야 사람들이 서로를 더 잘 돌볼 수 있는지를 설계한다.

    폐허 안에서 건축 자재가 부족하다는 것을 그녀는 처음부터 알지만, 자재보다 먼저 부족한 것은 "누가 어디에 앉고 싶은지를 물어보는 시간"이라는 것을 세 번의 재건 현장에서 배웠다. 그녀의 설계도에는 항상 여백이 있고, 그 여백은 거점민이 직접 채우도록 비워 두는 공간이다.

    설계도 여백을 거점민이 채우게 하는 건 미완성이 아니에요. 그 여백 한 칸이 거점 안 가장 오래 사용되는 공간이 된다는 뜻이지요.

    중부연합 초대 거점 재건 설계사 장선미 — 사태 이전 옛 공공건축 설계 사무소 소장 출신이자 중부연합 거점 다섯 곳의 재건 배치 설계를 담당한 여성 — 의 일화는 재건 현장에서 "여백 한 칸의 텃밭"으로 전해진다.

    용두거점(앞서 190031 일화의 그 거점) 재건 설계 작업 중, 장선미는 옥상 한 구석 여백 한 칸을 의도적으로 비워 두었다. 재건 책임자 오태준(앞서 190031 일화의 그 사령관)이 그 이유를 묻자, 장선미는 "여기 거점민이 뭘 두고 싶은지 먼저 물어봤더니 텃밭을 원한다고 했어요"라고 답했다. 다음 달 그 자리에 텃밭 세 칸이 생겼고, 처음 씨를 심은 것은 거점 최고령 거점민 최순분 할머니(76세)였다. 거점 재건 기록에 그 텃밭 자리는 "여백 칸 1호"로 남아 있으며, 이후 재건된 모든 거점 설계도에는 여백 칸이 한 칸씩 포함되었다.

    후대 재건 설계사들은 설계 전 거점민에게 "비워두고 싶은 자리"를 먼저 묻는 자세를 장선미에게서 가져왔다.

  • 약품수급녀(藥品需給女)

    폐허 약품 수급관

    거점에 약품을 끊임없이 대는 수급관

    이 약 한 병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는지가 다음 약 한 병을 결정해요. 그래서 기록이 약보다 먼저예요.

    폐허 약품 수급관은 거점 내외부의 약품 재고를 파악하고, 부족 약품을 다른 거점·폐허 폐창고·유랑 상인으로부터 수급하는 협상 전문가다. 여러 거점의 의무관·이동 의무반장과 정보를 공유하며 약품 수급 네트워크를 관리한다.

    본인은 약의 화학식보다 약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더 잘 아는 자다. 폐허 안에서 약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신뢰로 결정된다는 것을 그녀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녀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가격표가 아니라 이전 거래 기록 한 권이다.

    거래 기록 한 권이 다음 협상 첫 번째 신뢰 증거라는 사실, 그게 폐허 약품 협상의 진짜 첫 번째 법칙이에요.

    17번 거점 초대 폐허 약품 수급관 안지선 — 사태 이전 옛 제약 회사 영업 담당 출신이자 거점 연합 약품 수급 목록 첫 판본을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의무실 안에서 "인슐린 두 병의 거래"로 전해진다.

    인슐린이 17번 거점에서 완전히 소진된 어느 겨울, 안지선은 거점 연합 전체 무전을 통해 인슐린 두 병을 보유한 거점이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그 거점은 과거 물물교환 한 번에서 17번 거점으로부터 무전 부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안지선은 그 거래 기록 한 줄을 가지고 협상에 나섰고, 추가 대가 없이 인슐린 두 병을 사흘 안에 받았다. 거점 의무실에는 당뇨 환자 두 명이 대기 중이었다. 의무병 강선희(앞서 일화의 그 의무병)는 인슐린 두 병이 도착한 날 병실 창문을 처음으로 한 줄 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후대 약품 수급관들은 거래 기록을 단 한 건도 버리지 않는 자세를 안지선에게서 가져왔다.

  • 위생점검녀(衛生點檢女)

    거점 위생 점검관

    거점의 위생을 한자리도 빼놓지 않고 살피는 점검관

    청결이 사치라고 하는 거점은 이번 겨울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 말이 협박이 아닌 이유를 저는 이미 세 번 겪었어요.

    거점 위생 점검관은 거점 안 식수·식당·의무실·화장실·빨래터·쓰레기 처리 구역의 위생 상태를 정기 점검하고 기준 이하일 때 개선 조치를 이끄는 공중 보건 담당자다.

    폐허에서 총 한 자루보다 더 많은 사람을 빼앗아 가는 것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거점 사람들은 잊기 쉽다. 그래서 이 직책은 거점에서 가장 환영받는 동시에 가장 무시받기 쉬운 자리다. 그녀가 지적하는 순간에는 불편하지만, 그녀가 없을 때 생기는 일이 더 불편하다는 것을 거점이 한 번만 겪으면 평생 기억한다.

    위생 점검 수첩에 빨간 줄이 없는 분기가 거점 의무실에서 가장 조용한 분기라는 사실, 그 한 줄이 이 자리의 진짜 첫 번째 성과 지표예요.

    17번 거점 초대 위생 점검관 윤미경 — 사태 이전 옛 보건소 위생 검사관 출신이자 거점 위생 기준서 첫 판본을 손수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의무실에 "식수 한 줄 기준의 겨울"로 전해진다.

    그해 겨울 거점 안 식수 통 한 개에서 불투명한 침전물이 발견되었을 때, 윤미경은 즉시 그 통 한 개를 격리하고 거점민 전원에게 하루 식수 배급 경로를 임시 변경하는 안내를 직접 나가 전했다. 거점민들은 처음에 불편해했지만, 이틀 뒤 그 통에서 수인성 병원균(물을 통해 전파될 수 있는 세균의 일종)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윤미경에게 직접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오는 거점민이 생겼다. 거점 의회 의장 김미선(앞서 일화의 그 의장)은 그 한 건을 거점 의회 기록 첫 번째 사례 연구로 정식 등록했다.

    후대 위생 점검관들은 점검 결과를 거점민에게 직접 나가 전달하는 자세를 윤미경에게서 가져왔다.

  • 공동주방녀(共同廚房女)

    거점 공동 부엌장

    거점 공동 부엌을 이끄는 부엌장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은 그다음 날 같이 싸우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부엌을 항상 열어둬요.

    거점 공동 부엌장은 거점 안 중앙 식당·공동 취사 공간을 운영하며 하루 세 끼 거점민 배식을 책임지는 여성 주방 총책임자다. 취사반장(남성 190016)보다 더 넓은 범위의 식자재 관리·배식 인력 편성·메뉴 계획을 담당한다.

    폐허에서 밥은 음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호라는 것을 그녀가 가장 잘 안다. 식당 불이 꺼지는 날이 거점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위험한 날이다. 그래서 그녀는 식자재가 없어도 무언가를 끓일 방법을 찾는 것이 이 직책의 첫 번째 기술이라고 신참에게 가르친다.

    공동 부엌 화덕이 한 번도 꺼지지 않은 한 달이 거점이 가장 튼튼한 한 달이라는 사실, 그 한 줄이 우리 부엌의 첫 번째 운영 원칙이에요.

    9번 거점 초대 공동 부엌장 강복이 — 사태 이전 옛 지역 아동센터 조리사 출신이자 9번 거점 공동 부엌을 사십 개월 끌어온 여성 — 의 일화는 부엌 직원들 사이에서 "비어 있는 냄비 한 개"로 통한다.

    식자재가 바닥나 배식이 불가능한 날이 왔을 때, 강복이는 냄비 한 개에 물을 끓여 부엌 가운데에 두고 거점민들에게 각자 집에서 남은 것 한 가지씩 가져오라고 했다. 거점민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했지만, 통조림 반 캔·마른 나물 한 줌·소금 한 숟갈씩이 모여들었다. 한 시간 뒤 냄비는 거점 사람 전체 분량은 아니었지만, 가장 어린 아이들과 환자들이 먹을 만큼은 채워졌다. 거점의 어머니 임순옥(앞서 200003 일화의 그 인물)은 그날 일을 식당 게시판에 한 줄 적어 두었고, 그 한 줄이 거점 공동 식량 나눔 원칙의 초안이 되었다.

    후대 공동 부엌장들은 가장 어려운 날 냄비를 가운데 두는 자세를 강복이에게서 가져왔다.

  • 회수탐색녀(回收探索女)

    회수반 탐색원

    폐허로 들어가 자원을 회수하는 탐색원

    회수반은 물건을 가져오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확인하고 오는 거예요.

    회수반 탐색원은 폐허 도시·구 건물·무너진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 약품·식량·생활 물자를 수거하는 회수반의 현장 탐색 담당이다. 회수반 운전수(200013)보다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상태를 확인하고 수거 가능 물목을 파악한다.

    좁은 구역·무너진 계단·불안정한 천장 아래를 혼자 들어가는 일이 많아, 거점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자리 중 하나다. 그런데 그녀가 용기 있는 이유는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거점 한 끼를 빠뜨리는 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탐색원 가방에 물건보다 메모지가 더 많이 들어오는 날이 가장 풍성한 날이라는 사실, 그 메모지 한 장이 다음 출동 지도의 첫 번째 페이지지요.

    17번 거점 이대 회수반 탐색원 이서연 — 사태 이전 옛 건물 시설 관리 직원 출신이자 거점 연합 회수 가능 구역 목록 갱신 기록을 이 년간 담당한 여성 — 의 일화는 회수반 안에서 "5층 계단 메모지"로 통한다.

    옛 아파트 5층 계단이 절반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서연은 계단 끝에서 약품 두 상자를 발견했지만 계단이 흔들려 혼자 내려오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다. 그녀는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 계단 상태와 약품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 창문 밖으로 던진 뒤, 천천히 혼자 내려왔다. 구조대가 그 메모지를 보고 다음 날 보강 장비를 가지고 재진입해 약품 두 상자를 온전히 회수했다. 회수반 운전수 김연주(앞서 200013 일화의 그 운전수)는 그날 메모지를 가방에 챙겨두는 자세를 팀 전체 규칙으로 만들었다.

    후대 회수반 탐색원들은 건물 진입 전 메모지 세 장을 미리 꺼내두는 자세를 이서연에게서 가져왔다.

  • 안전교관녀(安全敎官女)

    어린이 안전 교관

    거점의 아이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관

    이 거점 안에서 가장 안전한 길을 외우는 사람이 어린이여야 해요. 어른보다 어린이가 더 많이 다니는 곳이니까요.

    어린이 안전 교관은 거점 안 어린이들에게 비상 대피 경로·격리 구역 경계·외벽 접근 금지 구역 등 거점 안전 규칙을 가르치는 교육 담당자다. 보육원 교사(200015)와 협력하되, 교육 내용이 돌봄이 아닌 안전 지식에 특화되어 있다.

    본인은 무서운 말보다 재미있는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이 더 잘 기억된다는 사실을 처음 현장에서 배웠다. 아이들이 대피 경로를 외우는 것보다 그 경로를 달리기 게임으로 먼저 몸에 익히는 것이 실제 상황에서 훨씬 빠르게 반응한다. 폐허의 진짜 안전은 규칙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길에 있다.

    교관 수업에서 가장 빠르게 대피 경로를 외우는 아이가 가장 많이 뛴 아이라는 사실, 그 한 줄이 이 자리 교안 첫 번째 줄이에요.

    17번 거점 초대 어린이 안전 교관 김채연 — 사태 이전 옛 초등학교 체육 교사 출신이자 거점 어린이 안전 교육 프로그램 첫 판본을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보육원 아이들 사이에서 "대피로 술래잡기 선생님"으로 통한다.

    거점 비상 대피 훈련에서 아이들이 경로를 자꾸 헷갈리는 문제가 반복될 때, 김채연은 대피 경로 지도를 칠판에 붙이는 대신 그 경로를 따라 술래잡기를 했다. 비상 출구는 "세이프존", 격리 구역 경계는 "절대 밟으면 지는 선"으로 설명했다. 다음 실제 비상 대피 훈련에서 어린이 팀의 평균 대피 시간이 어른 팀보다 사십 초 빨랐다는 기록이 남았다. 거점 사령관 노혜진(앞서 여성 파일 일화의 그 인물)은 그 기록을 거점 연합 전체에 공유했다.

    후대 안전 교관들은 첫 수업을 달리기로 시작하는 자세를 김채연에게서 가져왔다.

  • 통신정비녀(通信整備女)

    거점 통신 정비사

    거점의 무전 장비를 손보는 정비사

    무전기가 고장 나면 우리는 고립돼요. 제가 하는 일은 거점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거점 통신 정비사는 거점 안 무전기·중계기·신호탑·통신 장비 전반의 수리와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기술 전문가다. 무전탑의 목소리(200008)가 보내는 신호가 살아 있으려면, 그 신호를 전달하는 장비가 먼저 살아 있어야 한다.

    본인은 사태 이전 통신사·전자 기기 수리점·무전기 동호회 출신이 많다. 고장난 부품을 폐허 전자 폐기물에서 대체품을 찾아 연결하는 창의성이 이 직업의 핵심 기술이다. 거점에서 가장 조용히 일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없으면 거점 전체가 가장 크게 조용해진다.

    정비사 작업대 위에 새 부품이 쌓이는 날보다 폐허 수거 부품이 쌓이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 그 폐허 부품 한 개가 거점 신호 한 줄을 살린다는 뜻이에요.

    17번 거점 초대 거점 통신 정비사 전은지 — 사태 이전 옛 통신사 기지국 시설 관리 직원 출신이자 거점 통신 장비 자체 수리 매뉴얼을 손수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통신 팀 안에서 "꼬마 무전기 한 대"로 통한다.

    거점 주 무전기 두 대가 동시에 고장 나 24시간 무전이 끊겼던 어느 봄, 전은지는 폐허 전자 상가에서 회수한 폐품 라디오 부품 세 개와 어린이용 장난감 무전기 부품 한 조각으로 임시 무전기 한 대를 만들었다. 그 무전기는 주파수 잡음이 심했지만, 무전탑의 목소리 박수경(앞서 200008 일화의 그 여성)은 그 잡음 너머로 "여기는 17번 거점,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를 송출했다. 거점 안에서 그 한 줄을 듣고 처음 안도의 한 숨을 내쉰 사람이 쉰 명이었다는 기록이 남았다.

    후대 통신 정비사들은 부품 대기 목록에 장난감 전자 부품 칸을 한 줄 더하는 자세를 전은지에게서 가져왔다.

  • 외벽자재녀(外壁資材女)

    외벽 자재 정리원

    외벽 보수용 자재를 정돈하는 여인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게 낭비를 막는 첫 번째예요. 낭비가 없으면 외벽이 하루 더 버텨요.

    외벽 자재 정리원은 거점 외벽 보수에 사용하는 자재 — 콘크리트 블록·철판·합판·모래·자갈 — 를 분류·보관·배분하는 자재 관리 전문가다. 외벽 구조 기술자(190040)가 보수할 자리를 결정하면, 그녀는 그 자리에 맞는 자재를 준비하는 역할이다.

    폐허에서 자재는 없어지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기 때문에, 쓸 수 없을 것 같은 자재를 용도를 바꿔 살리는 능력이 이 직업의 핵심이다. 그녀가 "이걸 이렇게 쓸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외벽 보수 예산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날이 생긴다.

    자재 창고에 쓸 수 없다고 적힌 자재가 하나도 없는 날이 외벽 책임자가 가장 기쁜 날이에요. 그날이 외벽이 가장 두꺼운 날이기도 하고요.

    산음거점 초대 외벽 자재 정리원 박미영 — 사태 이전 옛 건자재 도매 업체 자재 팀장 출신이자 거점 자재 분류 기준서를 손수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자재 팀 안에서 "폐타이어 스물다섯 개의 새벽"으로 통한다.

    외벽 보수에 쓸 콘크리트 블록이 소진된 어느 새벽, 박미영은 창고 구석에 쌓인 폐타이어 스물다섯 개를 발견했다. 외벽 구조 기술자 조재현(앞서 190040 일화의 그 기술자)과 함께 폐타이어를 내부에 흙을 채워 쌓는 방식으로 무너진 외벽 한 구간을 보강하는 임시안을 만들었다. 그 한 구간은 다음 대형 보수 전까지 두 시즌을 버텼고, 거점 연합 기술 자문 회의에서 이 임시 공법이 자재 부족 상황의 표준 대응 방안으로 채택되었다.

    후대 자재 정리원들은 창고 순찰 때 "쓸 수 없다"는 표시 대신 "용도 미정"으로 적는 자세를 박미영에게서 가져왔다.

  • 지도해설녀(地圖解說女)

    거점 지도 해설사

    거점 지도와 길을 안내하는 해설사

    이 지도 한 장에는 거점 밖의 길이 있어요. 그 길을 읽을 수 있어야 거점 밖에서도 살 수 있어요.

    거점 지도 해설사는 거점 안 모든 연령의 거점민에게 폐허 지역 지도 읽기·방향 찾기·거점 간 이동 경로를 교육하는 정보 교육 전문가다. 폐허 지도제작자(190026)가 지도를 만든다면, 그녀는 그 지도를 읽는 법을 가르친다.

    어른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가르친다. 폐허에서 지도 한 장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그 사람이 고립됐을 때 혼자 거점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업이 가장 조용해지는 순간은 처음으로 지도 위에서 자기 거점 자리를 찾는 아이들의 얼굴이 바뀌는 순간이다.

    지도 해설 수업에서 가장 긴 침묵은 아이들이 지도 위에서 자기 거점 자리를 처음 찾은 순간이에요. 그 침묵 한 줄이 다음 수업의 첫 번째 동기지요.

    17번 거점 초대 지도 해설사 김혜숙 — 사태 이전 옛 지역 도서관 사서 출신이자 거점 어린이 지도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수업 안에서 "지도 위 거점 한 칸 찾기"로 통한다.

    처음 지도 수업을 열었을 때 아이 열다섯 명 중 어느 누구도 자기가 사는 거점이 지도의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김혜숙은 설명 없이 지도를 바닥에 펼쳐 아이들이 그 위를 걸어 다니게 했다. 아이들은 걷다가 자연스럽게 지도 위의 선과 기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한 아이가 "여기가 우리 거점이에요?"라고 소리치는 순간 수업이 조용해졌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자기가 지도 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거점 밖 출동을 가는 어른들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보육원 교사들이 기록했다.

    후대 지도 해설사들은 첫 수업에 지도를 바닥에 먼저 펼치는 자세를 김혜숙에게서 가져왔다.

  • 야간상담녀(夜間相談女)

    야간 의무 상담사

    밤마다 다친 마음과 몸을 살피는 의무 상담사

    낮에는 몸을 치료해요. 밤에는 마음이 아프니까, 저는 밤에 앉아 있어요.

    야간 의무 상담사는 거점 안 야간 시간대 — 외벽 보초 교대 직후, 취침 직전 — 에 거점민이 겪는 심리적 불안·수면 장애·외상 후 스트레스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야간 전담 돌봄 담당이다. 의무실 한쪽에 작은 상담 공간을 두고 운영된다.

    낮에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이 밤에 터지는 법이라는 것을 그녀는 첫 달에 배웠다. 특히 외벽 보초·회수반 출동 대원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며, 아이들도 악몽 이후 빈번히 찾아온다. 폐허의 의무실은 몸만 고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 상담 공간 하나가 증명한다.

    야간 상담 기록에 이름 없이 '오늘 잘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한 줄이 적히는 날이 의무실에서 가장 좋은 날이에요. 그 한 줄이 거점 다음 날의 첫 번째 에너지지요.

    17번 거점 초대 야간 의무 상담사 유소현 — 사태 이전 옛 정신 건강 복지센터 상담사 출신이자 거점 내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한 여성 — 의 일화는 상담실 안에서 "새벽 두 시의 한 줄"로 전해진다.

    격리에서 막 해제된 청년 박태오(21세, 격리 기간 중 가족을 잃은 사실을 혼자 알게 된 자)가 새벽 두 시에 상담실 문을 두드렸을 때, 유소현은 자고 있던 상황에서도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녀는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고, 무조건 말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차 한 잔을 끓이며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면 되고, 없으면 그냥 여기 앉아 있어도 돼요"라고 했다. 박태오는 두 시간 동안 차 두 잔을 마신 뒤 "오늘은 잘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나갔다. 그 한 줄이 상담 기록 첫 번째 줄로 남았다.

    후대 야간 상담사들은 상담실 문을 잠그지 않는 자세를 유소현에게서 가져왔다.

  • 거점수공녀(據點手工女)

    거점 수공예 직인

    거점에 필요한 도구를 손으로 만드는 직인

    이 바느질 한 줄이 누군가의 외투를 한 시즌 더 살려요. 한 시즌이 한 끼 열두 번이에요.

    거점 수공예 직인은 봉제 수선공(200017)보다 더 넓은 범위의 수공예 작업 — 천 재단·외투 제작·가방 수리·신발 수선·담요 제작 — 을 담당하는 여성 장인이다. 낡은 옷감·폐현수막·폐타이어 고무·폐천막을 재료로 쓰며, 없는 재료를 있는 재료로 대체하는 것이 이 직업의 핵심 기술이다.

    본인이 만든 외투 하나가 폐허의 겨울을 한 사람에게 통째로 선물한다. 그래서 그녀는 외투 한 벌을 만들 때 그것을 입을 사람의 어깨너비를 먼저 재고, 그 사람이 어느 자리에서 일하는지를 먼저 묻는다.

    수공예 직인이 외투 한 벌 만들기 전에 입을 사람 자리를 먼저 묻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어깨너비가 아니라 그 자리의 무게를 먼저 알아야 외투 한 벌이 한 시즌을 버티니까요.

    17번 거점 초대 수공예 직인 이명희 — 사태 이전 옛 동대문 원단 시장 재단사 출신이자 거점 외투·가방·담요 이백 점 이상을 직접 만든 여성 — 의 일화는 수공예 팀 안에서 "격리 병동 담요 열두 장"으로 통한다.

    격리 병동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담요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이명희는 폐허 옛 직물 상가에서 회수해 온 폐현수막과 옛 천막 천을 사흘 동안 재단해 담요 열두 장을 만들었다. 그녀는 담요 한 장 한 장의 가장자리에 작은 색실 한 줄씩을 달리 꿰매어 격리 환자들이 자기 담요를 쉽게 구별할 수 있게 했다. 격리 병동 총책임자 임혜경(앞서 200034 일화의 그 인물)은 그 담요가 도착한 날 병동 분위기가 처음으로 밝아졌다고 기록했다.

    후대 수공예 직인들은 만드는 물건에 작은 색실 한 줄씩을 사람마다 다르게 꿰매는 자세를 이명희에게서 가져왔다.

  • 목욕관리녀(沐浴管理女)

    거점 목욕 관리인

    거점 목욕탕의 물과 불을 돌보는 여인

    일주일에 한 번 따뜻한 물로 씻는 사람은 전염병을 두 배 덜 걸린다는 걸, 저는 숫자로 알아요.

    거점 목욕 관리인은 거점 안 공동 목욕 시설·세면 구역의 운영과 관리를 담당하는 여성 위생 담당이다. 연료 사정에 따라 온수 공급 일정을 조율하고, 위생 점검관(200040)과 협력해 목욕 시설의 청결 기준을 유지한다.

    폐허에서 목욕은 사치가 아니라 의료 행위라는 것을 그녀는 처음부터 알았다. 따뜻한 물 한 통이 한 사람의 피부 감염을 예방하고, 피부 감염이 없으면 의무실 부담이 줄고, 의무실 부담이 줄면 약품이 더 오래 간다. 그 연결 고리가 거점 목욕 시설이 거점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인 이유다.

    목욕 관리 시설 운영 기록에 방문자 수보다 감염 사례 감소 한 줄이 더 많은 날이 이 자리의 진짜 성과 보고서예요.

    22번 거점 초대 목욕 관리인 황정숙 — 사태 이전 옛 목욕탕 운영 가족 출신으로 거점 공동 목욕 시설을 처음 설계한 여성 — 의 일화는 위생 팀 안에서 "첫 온수 날의 행렬"로 통한다.

    거점 공동 목욕 시설이 처음 완성된 날, 황정숙은 연료 사정을 확인한 뒤 일주일에 두 번 온수 공급이 가능하다는 계획을 거점 의회에 보고했다. 의회는 매주 수요일 오전과 토요일 오후로 확정했고, 첫 온수가 나오는 수요일 아침에 거점민 오십 명이 줄을 섰다. 황정숙은 그날 한 사람씩 차례를 불러주었고, 열다섯 번째 손님이 "이게 몇 달 만이야"라고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잠깐 글썽거렸다. 황정숙은 그 한 줄을 운영 일지에 그대로 남겼다. 거점 위생 점검관 윤미경(앞서 200040 일화의 그 인물)은 그 다음 분기 피부 감염 사례가 이전 대비 삼분의 일로 줄었다는 수치를 보고서에 한 줄 적었다.

    후대 목욕 관리인들은 운영 일지에 방문자 소감 한 줄을 기록하는 자세를 황정숙에게서 가져왔다.

  • 새벽일기녀(曉日記女)

    새벽 일기 기록원

    거점의 새벽을 매일 일기에 적는 기록원

    오늘 거점에서 일어난 일을 한 줄 적으면, 그 한 줄이 열 해 뒤 이 거점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줘요.

    새벽 일기 기록원은 거점의 일상 — 날씨·배식 메뉴·사건 사고·입퇴원 현황·출동 일지 — 을 매일 새벽 한 권의 일지에 기록하는 역할이다. 거점 기록병(190050)이 공식 행정 문서를 담당한다면, 이 자리는 공식 기록에 담기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긴다.

    거점 안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지만, 십 년 뒤 그 거점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이 처음 찾는 기록이 그녀의 일지다. 오늘 누가 처음 웃었는지, 어제 취사반에서 무슨 메뉴가 나왔는지, 신참 보초가 처음 호각을 불었는지가 그 일지 안에 있다.

    일기 기록원 일지에 가장 작은 일이 가장 오래 남는다는 사실, 그 한 줄이 폐허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는 가장 큰 증거지요.

    17번 거점 초대 새벽 일기 기록원 박순미 — 사태 이전 옛 일기 동호회 회원 출신이자 거점 일지 첫 권을 직접 손글씨로 시작한 여성 — 의 일화는 기록원들 사이에서 "일지 백 번째 페이지의 생일"로 통한다.

    일지 백 번째 페이지가 채워진 날이 우연히 거점 안 가장 어린 아이 도하의 생일과 겹쳤다. 박순미는 그날 일지에 배식 메뉴·날씨·외벽 점검 결과 한 줄 옆에 "도하 생일 — 케이크 없음. 대신 취사반장이 설탕 한 숟갈 탄 죽 한 그릇 특식 제공"이라고 적었다. 도하가 열 살이 되던 해, 보육원 교사가 그 일지 백 번째 페이지를 도하에게 복사해 주었다. 도하는 그 종이를 자기 베개 밑에 평생 두었다고 거점 야사에 한 줄로 남아 있다. 박순미는 그 이후 매년 아이들 생일마다 일지 한 줄을 조금 더 길게 적는 자세를 스스로 만들었다.

    후대 새벽 일기 기록원들은 일지 첫 페이지에 거점 안 가장 어린 아이의 이름을 한 줄 미리 적어두는 자세를 박순미에게서 가져왔다.

  • 면역지존(免疫至尊)

    면역자

    감염되지 않는 단 한 사람으로서 종말의 정점에 선 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너무 사랑해주는 거점이 다음 거점에서 가장 빨리 팔거든요.

    면역자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나 변이가 일어나지 않은 극소수의 인간으로, 거점 사이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자원이자 가장 큰 위험이다. 본인의 혈액은 백신 연구자에게는 마지막 한 줄의 데이터이며, 약탈자에게는 평생을 보장할 화폐다. 외형은 다른 생존자와 다르지 않지만, 늘 손목 안쪽에 한 줄 작은 흉터가 있다.

    그 흉터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매일 떠올리게 한다. 면역자는 어느 한 거점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자기를 너무 사랑해주는 거점이 다음 거점에서 자기를 가장 빨리 팔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거의 매번 새 거점에서 배운다.

    우리 면역자 후학들이 새 거점에 도착해 첫날 가장 먼저 외우는 게 뒷문 위치라는 사실은, 결국 그 일곱 번째 새벽에서 시작된 한 줄 교훈입니다.

    이대 면역자 라온 — 사태 칠 년차 폐허에서 두 번째로 확인된 면역자이자 일곱 거점을 거쳐 살아남은 자 — 의 일화는 무전망에 '일곱 번째 새벽'으로 길게 남아 있다.

    라온은 청송거점(중원 동단 옛 고등학교를 개조한 인구 사백 단위 거점)에서 한 달간 가장 따뜻한 환대를 받았으나, 칠 일째 새벽 거점 사령관실 책상 위에서 약품 약탈자 측 거래 명세서 한 장을 우연히 보았다. 라온은 그날 오후 수업처럼 진행되던 거점 의무실 채혈 시간에 평소처럼 팔을 걷었으나, 채혈 직후 의무실 뒷창으로 한 호흡에 빠져나와 외곽 도로 전령 한 명에게 자기 다음 거점을 묻지도 않은 채 동행을 부탁했다. 청송거점은 그날 저녁 라온의 부재를 알았으나, 외벽 점호 명단에는 이미 라온의 이름이 한 줄 지워져 있었다. 후일 청송거점 거점 사령관은 그 거래 명세서가 자기 결재 라인이 아니라 부사령관 한 명의 단독 결재였다는 사실을 무전망에 정중히 공지했고, 그 부사령관은 그날부로 거점에서 정중히 추방되었다. 라온은 그 공지를 다음 거점 라디오 DJ의 정시 방송에서 짧게 듣고는 어깨 한 번 으쓱하고 다시 도로로 나섰다.

    후대 면역자 후학들은 새 거점 첫날 의무실 위치보다 뒷문 위치를 먼저 외우는 자세를 라온의 일곱 번째 새벽에서 가져왔다.

  • 좀비대제(좀비大帝)

    좀비 군주

    좀비 무리를 호령하는 종말의 대제

    ...그 동네는 침공하지 않는다. 한때 거기에 살았던 것 같다.

    좀비 군주는 단순 좀비 무리가 아니라, 한 도시 단위의 좀비 무리를 자기 의지로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는 변이체다. 그가 외곽에서 한 번 포효하면 인접 거점들이 동시에 비상 등급을 한 단계 올린다. 본인은 좀비이면서도 인간 시절의 일부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어, 한때 자기 가족이 살던 동네 근처는 결코 침공하지 않는다는 식의 일관성이 있다.

    그래서 일부 거점은 군주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그 동네 인근으로 거점을 이전하는 비공식 전략을 쓴다. 가장 강한 적의 가장 인간적인 면이, 어떤 거점의 마지막 안전선을 만들어준다. 폐허의 가장 무서운 존재가 동시에 가장 슬픈 존재다.

    그 노란색 우편함 한 통이 거점 외벽 한쪽보다 무겁게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날의 정찰 보고에서 처음 배웠습니다.

    좀비 군주 0호 — 무전망 비공식 명부에 가장 처음 등재된 군주이자 옛 시청 행정직 출신으로 추정되는 변이체 — 의 일화는 정찰병 사이에 '하월동 우편함의 침묵'으로 길게 남아 있다.

    0호는 사태 사 년차 어느 봄 새벽 하월동(중원 남단의 옛 행정 구역으로 사태 직전까지 평범한 주거지)을 가로지르는 무리 삼백을 이끌고 외곽 거점 진영 한 채를 공격하려 했으나, 동네 입구의 노란색 가정용 우편함 한 통 앞에서 한 시진을 멈춰 섰다. 정찰병 보고에 따르면 0호는 그 우편함을 자기 손가락 하나로 천천히 한 번 두드린 뒤, 무리 전체를 인근 옛 고가도로 방향으로 우회시켰다. 후일 거점 백신 연구 수석이 옛 행정 자료 한 줄을 발견했는데, 그 우편함의 옛 등록자 이름이 0호의 옛 직장 동료 명부에서 한 줄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무전망에 한 호흡 돌았다.

    거점 사령관은 그날 이후 하월동 인근에 거점 진영 일부를 이전하는 비공식 결재를 정중히 내렸고, 그 우편함 한 통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정찰병들은 봄마다 그 자리에 짧은 보고서 한 줄을 정중히 두고 가는 습관을 만들었다. 폐허의 가장 무서운 적이 가장 인간적인 한 번의 머뭇거림으로 한 거점의 한 시대를 살린 셈이다.

  • 잔존군관(殘存軍官)

    군 잔존 장교

    무너진 군의 마지막 명령을 잇는 장교

    거점이 위험할 때 가장 먼저 죽어주는 게 내 일이다. 옛 교범의 첫 줄이지.

    군 잔존 장교는 사태 이전 정규군 출신으로, 부대 전체가 사라진 뒤 자기 휘하 부대원 일부 또는 단신으로 폐허에 남아 활동하는 자다. 외형은 낡은 군복, 어깨에 떼지 않은 계급장, 한 손에 늘 잘 손질된 군용 라이플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에 합류해도 늘 약간의 거리를 둔다.

    자기는 군인이고, 군인은 거점이 위험할 때 가장 먼저 대신 죽어줘야 한다는 옛 교범을 아직도 자기 머릿속 첫 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합류한 거점은 외벽 한 군데가 무너져도 그 전선이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폐허에 남은 진짜 군대는 부대 단위가 아니라, 그 한 사람의 어깨 위 계급장이다.

    어깨에 한 줄 계급장은 무게가 아니라 약속입니다. 우리 후학들이 거점 외벽 한 칸을 자기 자리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그 계급장 한 줄에서 시작합니다.

    군 잔존 장교 한진 — 사태 이전 12보병사단 중대장이자 부대 전체가 사라진 뒤 단신으로 도일거점에 합류한 자 — 의 일화는 무전망에 '서벽 백사십 분의 호흡'으로 남아 있다.

    도일거점(중원 서단 옛 시멘트 공장을 개조한 인구 삼백 단위 거점)이 사태 오 년차 가을 새벽 변이 무리 이백에 외벽 서편 한 군데가 무너지는 사태를 맞았을 때, 한진은 거점 사령관의 후퇴 결재를 정중히 거부한 채 단신으로 그 외벽 한 칸을 라이플 한 자루로 백사십 분간 막았다. 거점 외벽 보수공이 임시 보수재를 가져오는 사이 한진은 자기 옛 부대 군용 라이플의 마지막 탄창 한 줄을 비웠고, 마지막 한 발은 자기 군복 어깨 계급장에 한 번 가볍게 갖다 댄 뒤 변이체 한 마리의 머리에 정중히 박았다. 외벽 보수가 끝났을 때 한진은 그 자리에 한 호흡 더 서 있었으며, 거점민 누구의 박수도 받지 않은 채 다음 정찰 자리로 그대로 옮겨갔다.

    도일거점은 그 사건 뒤 외벽 서편을 '한 진영(陳營)'이라 비공식으로 부르며, 후대 군 잔존 장교가 합류할 때마다 그 자리에 한 시진 정중히 서 보는 의례를 만들었다. 한진은 본인이 그 외벽 이름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평생 모른 채 다음 거점으로 또 어깨 계급장을 떼지 않은 채 옮겨갔다.

  • 유랑생존객(流浪生存客)

    떠돌이 생존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떠도는 생존자

    정착하지 않습니다. 머무는 자리에 더 많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해요.

    떠돌이 생존자는 어느 거점에도 정식 합류하지 않고, 거점 사이를 작은 가방 하나로 옮겨 다니는 자다. 외형은 평범하지만, 자기 가방 안의 물건은 거의 모두 자기 손으로 직접 손본 것이다. 신발 끈 하나, 라이터 하나까지 모두 사연이 있다.

    거점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때도 있지만, 거점이 절박할 때 가장 먼저 의뢰를 받아주는 것도 그들이다. 본인은 자기가 머물지 않는 자리에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느 한 거점에 정착하면 자기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도로 위에서 다음 거점으로 향한다. 폐허의 진짜 우체국은 그들의 발걸음이다.

    도로 위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는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떠난 자리라는 사실을, 우리 후학들은 그 라이터 한 알에서 배웁니다.

    떠돌이 생존자 윤도 — 사태 직전 옛 항공사 정비공 출신으로 평생 한 거점에도 정식 합류하지 않은 채 사 년을 도로 위에서만 산 자 — 의 일화는 무전망에 '한 알 라이터의 사연'으로 짧게 남아 있다.

    윤도는 어느 늦가을 신광거점(중원 북단 옛 시립도서관을 개조한 인구 이백 단위 거점)이 식수 정화제 부족으로 사흘째 비상이 걸렸다는 무전을 도로 전령에게서 들었고, 자기 가방 깊숙이 들어 있던 사태 이전 옛 등산용 정수 키트 한 세트를 정중히 거점 입구에 두고 떠났다. 거점 사령관이 다음 날 새벽 그 키트를 발견했을 때, 키트 위에는 윤도의 옛 라이터 한 알이 함께 놓여 있었으며 그 안쪽에는 사태 직전 어느 가족 사진의 한 귀퉁이가 작게 끼워져 있었다. 거점 사령관은 그 사진을 폐허 사서에게 정중히 맡겼고, 사서는 그 사진을 도서실 한 칸 가장 깊은 서랍에 보관했다. 윤도는 그 사실을 평생 모른 채 다음 도로 위로 옮겨갔으며, 다음 해 봄 다른 거점 입구에서 또 다른 라이터 한 알을 두고 떠난 일화가 무전망에 한 호흡 돌았다.

    후대 떠돌이 생존자들은 자기 가방 안에 라이터 한 알을 늘 비상용으로 한 개 더 챙기는 자세를 윤도에게서 가져왔다.

  • 전파음유인(電波吟遊人)

    라디오 DJ

    라디오 전파에 노래를 실어 보내는 DJ

    오늘도 어딘가에는 누군가 살아 있습니다. 정시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라디오 DJ는 폐허 어딘가의 작은 송신소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 짧은 방송을 송출하는 자다. 본인은 군 출신도 의사도 아니지만, 단지 한 번 정한 시간을 매일 지킨다는 사실 하나로 폐허의 가장 큰 신뢰를 받는다. 외형은 평범한 후드, 책상 위 낡은 마이크, 한쪽에 따뜻한 차 한 잔이 표준이다.

    "오늘도 어딘가에는 누군가 살아 있다"는 짧은 한 줄이, 외곽 도로 위 떠돌이 생존자에게는 백신보다 더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약탈자조차 그의 송신소만은 굳이 털지 않는다. 폐허의 진짜 라이플은 그의 마이크다. 그 한 줄 멘트가 멈추는 날, 폐허의 한 시대가 진짜로 끝난다.

    정시 한 번 어긴 날의 침묵이 천 회 방송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DJ들은 그 사흘에서 배웁니다.

    라디오 DJ 한별 — 사태 직전 옛 지역 라디오 방송 작가 출신으로 평생 한 송신소만 지킨 자 — 의 일화는 무전망에 '사흘의 정적'으로 짧게 남아 있다.

    한별의 송신소 무량탑(無量塔, 사태 이전 도시 외곽의 옛 송신탑)에서 어느 겨울 사흘간 정시 방송이 연속으로 나오지 않은 일이 있었다. 무전 통제관 측 보고에 따르면 그 사흘 동안 인근 거점 다섯 곳의 외곽 도로에서 평소보다 사람들이 한 호흡 더 오래 멈춰 서 있었으며, 떠돌이 생존자 한 명은 그 사흘째 새벽 도로 위에서 가방을 한 번 내려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는 일화가 한 줄 돌았다. 사흘째 정오 정시에 한별의 익숙한 한 줄 멘트가 다시 송출되었을 때, 외곽 도로 위 사람들은 한 번 더 발걸음을 옮겼고 약탈자 한 무리는 자기 약탈 자리에서 정중히 한 호흡 손을 멈췄다는 보고가 무전망에 돌았다. 사흘의 부재 사유는 송신소 발전기 한 부품의 고장이었으며, 그 부품은 떠돌이 생존자 한 명이 자기 가방의 옛 라디오 부품 한 알을 정중히 무량탑 입구에 두고 떠난 덕분에 사흘 만에 복구되었다. 한별은 그 사실을 평생 모른 채 다음 정시 방송에서도 같은 한 줄 멘트만 짧게 송출했다.

    후대 라디오 DJ 후학들은 정시 방송 직전 책상 위 차 한 잔을 한 모금 마시는 자세를 한별의 그 사흘에서 가져왔다.

  • 백신연구존(疫苗硏究尊)

    백신 연구 수석

    백신 연구의 정점에 선 수석 연구자

    한 사람의 피로 한 시대를 끝낼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에게 가장 미안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입니다.

    백신 연구 수석은 사태 이전 대형 연구소 출신으로, 무너진 도시 한복판 지하 실험실에서 단 한 줄의 백신 데이터를 향해 평생을 갈아 넣는 자다. 외형은 낡은 흰 가운, 검게 그을린 안경, 손목에는 면역자 혈액 채취일을 새긴 작은 흠집들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사이를 떠도는 면역자를 추적하지만, 결코 무력으로 끌고 오지 않는다는 한 줄 원칙을 지킨다.

    그래서 그의 거점은 약탈자에게 가장 자주 털리면서도 면역자가 가장 자주 제 발로 찾아오는 거점이다. 폐허의 가장 큰 권력은 군이 아니라 그의 냉장고 한 칸이라는 농담이 무전망에 돈다. 본인은 그 농담을 들을 때마다 가장 작게 한숨을 쉰다. 한 시대를 끝내는 일이 한 사람의 한 끼보다 가벼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자다.

    냉장고 한 칸을 한 끼 식판 옆에 놓는 자세 — 그 한 줄 의례가 우리 연구소 결재 라인 첫 줄에 평생 적혀 있습니다.

    백신 연구 수석 도림 — 사태 이전 옛 국립감염병연구소 차장 출신이자 청림 지하 실험실(옛 지하철 차고를 개조한 거점 부속 연구 시설)에서 십 년을 보낸 자 — 의 일화는 무전망에 '식판 옆 시험관'으로 한 줄 길게 남아 있다.

    도림은 거점에 정중히 합류한 면역자 한 명이 채혈을 받아주는 날, 시험관 한 자루를 거점 식당 조리원의 식판 옆에 직접 정중히 갖다 두는 의례를 십 년간 빠뜨린 적이 없다. 그 한 자루 시험관 옆에는 늘 그날의 한 끼 한 그릇이 같은 무게로 놓였으며, 도림은 본인 손으로 그 한 끼를 면역자 자리에 가장 따뜻한 자리로 옮겨 두었다. 한 면역자가 도림에게 "무게가 같은 자리에 두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도림은 안경을 한 번 닦으며 "한 시대를 끝내는 한 자루가 한 끼 한 그릇보다 가볍게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짧게 답했다. 그 면역자는 그 자리에서 자기 다음 행선지를 도림의 거점으로 한 달 더 미뤘으며, 그 한 달의 채혈로 백신 연구의 한 줄 데이터가 진척되었다는 보고가 무전망에 한 호흡 돌았다. 도림의 손목 흠집 가운데 한 줄은 본인이 직접 자기 팔에서 첫 시험 채혈을 한 흔적이며, 그 사실은 그 면역자만이 평생 알았다.

    후대 백신 연구 수석들은 시험관 한 자루 결재를 식판 옆에서 받는 의례를 청림 실험실 첫 줄 규칙으로 따른다.

  • 거점지휘장(據點指揮將)

    거점 사령관

    거점의 모든 명령을 손에 쥔 사령관

    오늘 외벽 점호 끝났습니다. 죽은 사람 이름은 제가 마지막에 부릅니다.

    거점 사령관은 한 거점의 외벽·식수·정찰 라인을 한 줄에 묶어 굴리는 비공식 지도자다. 외형은 낡은 작업복 위에 군용 자켓 한 장, 어깨에 점호용 명단 한 장, 허리에는 작은 권총 한 자루가 표준이다. 본인은 군 출신도 정치인 출신도 아닌, 단지 한 번 사령관 자리에 앉은 뒤로 매일 같은 시간 점호를 거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인정받는다.

    거점 회의는 그가 자리에 앉기 전까지 시작되지 않으며, 그가 일어서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거점이 무너지는 날에는 마지막까지 외벽에 남아 죽은 사람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자가 그다. 폐허의 진짜 계급장은 그의 어깨가 아니라, 그가 외운 거점민의 이름 수다.

    점호 명단의 마지막 한 줄이 살아 있는 자의 이름이 아니라 사령관 본인의 이름으로 끝난 그 새벽이, 우리 거점 후학들이 가장 먼저 외우는 한 줄입니다.

    거점 사령관 박오 — 사태 이전 옛 시청 도시계획과 주임 출신으로 평생 한 거점의 점호를 맡은 자 — 의 일화는 '명단 마지막 줄'로 무전망에 짧게 남아 있다.

    박오의 거점 청월진(靑月鎭, 옛 도립병원을 개조한 인구 사백 단위 거점)이 사태 육 년차 한겨울 새벽 변이 무리 삼백에 외벽 동남편이 무너졌을 때, 박오는 거점민 전원의 후퇴를 외벽 보수공과 군 잔존 장교 한진(앞서 한진 일화에 등장한 그 장교)에게 정중히 결재로 넘긴 뒤 자기는 점호 명단을 손에 들고 외벽 안쪽 마지막 자리에 앉았다. 거점민이 모두 후퇴를 마쳤을 때 박오는 점호 명단의 살아 있는 자 사백 명의 이름을 한 명씩 천천히 부른 뒤, 마지막 한 줄에 본인 이름을 정중히 한 호흡 더 길게 새겨 넣었다. 그날 거점은 절반의 인원만 새 거점 도일진으로 옮겨갔으며, 박오는 외벽 마지막 자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후대 거점 사령관들은 즉위 첫 주에 자기 점호 명단 마지막 줄에 자기 이름을 한 호흡 미리 적어두는 의례를 박오에게서 가져왔으며, 그 한 줄은 본인이 죽는 날까지 본인 외에는 누구도 지울 수 없다는 비공식 규칙이 무전망에 한 줄 돌고 있다. 청월진의 점호 명단 한 장은 지금도 도일진 사령관실 벽 한쪽에 정중히 걸려 있다.

  • 폐허도활인(廢墟刀活人)

    폐허 외과의

    폐허 속에서 칼 한 자루로 사람을 살리는 외과의

    마취가 부족해서 미안합니다. 대신 손은 안 떨립니다, 그건 약속드립니다.

    폐허 외과의는 사태 이전 도시 종합병원 외과 출신으로, 거점 의무실 한 칸을 평생 작업대로 쓰는 자다. 외형은 핏자국이 마른 가운, 어깨에는 멸균포 묶음, 허리에는 작은 메스 케이스가 표준이다. 본인은 마취제·항생제·봉합사 한 줄까지 거점 사령관과 직접 결재하며, 부족한 약품은 약탈자에게 정중히 사들이기도 한다.

    환자 가족이 의무실 앞에서 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장 빨리 결과를 말하는 외과의로 무전망에 이름이 도는 자다. 손이 떨리지 않는 외과의는 폐허에 다섯 손가락 안이고, 그중 한 명이 그다. 본인은 자기 손을 칭찬받을 때마다, 그 손에 죽은 환자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묵묵히 다음 환자를 부른다.

    의무실 문 앞 한 호흡의 무게는 메스 한 자루보다 길다는 사실을, 우리 외과 후학들은 그 일곱 시간에서 평생 새깁니다.

    폐허 외과의 진해 — 사태 이전 옛 대학병원 외과 부교수 출신이자 청월진 의무실(앞서 박오 사령관의 거점 의무실)을 평생 작업대로 쓴 자 — 의 일화는 '일곱 시간 봉합'으로 거점 의무실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거점 정찰병 다섯이 변이체 군주 인근 정찰 중 외상 일곱 줄을 입고 한꺼번에 의무실에 실려 왔을 때, 진해는 거점 사령관 박오의 결재 한 줄로 마취제 두 병과 봉합사 일곱 묶음을 전부 한 번에 풀었다. 일곱 시간 동안 진해의 손은 한 번도 가운 자락을 닦지 않았으며, 다섯 정찰병 중 네 명을 살리고 한 명을 잃었다. 마지막 한 명의 가족이 의무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진해는 가운을 벗지 않은 채 가장 빠른 결과 보고를 한 호흡으로 정중히 전했고, 가족이 우는 시간을 일곱 호흡 줄였다는 이야기가 무전망에 한 줄 돌았다. 진해는 그날 밤 의무실 한쪽 작은 책상 위 손때 묻은 메스 한 자루를 정중히 분해해 다시 닦은 뒤, 잃은 정찰병의 이름 한 자를 메스 손잡이 안쪽에 작게 새겨 두었다. 그 메스는 그날 이후 다른 환자에게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으며, 진해의 작업대 가장 위쪽 서랍에 평생 보관되었다.

    후대 폐허 외과의 후학들은 자기 첫 잃은 환자의 이름을 자기 메스 한 자루 손잡이 안쪽에 새기는 의례를 진해에게서 가져왔다.

  • 도로전령사(道路傳令士)

    도로 전령

    끊긴 도로를 가로질러 소식을 전하는 전령

    이 편지, 받는 사람 살아 있을 때까지만 보장합니다. 그 이상은 도로가 결정합니다.

    도로 전령은 거점과 거점 사이 폐허 도로 위에서 편지·약품·소형 부품을 단신으로 옮기는 자다. 외형은 낡은 가죽 외투, 어깨에 작은 가방, 허리에는 한 자루 권총과 단도, 등에는 무전기가 표준이다. 본인은 모든 도로의 좀비 출몰 시간대·옛 약탈자 잠복 자리·금기 야간 통과 구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로 전령이 도착하지 않은 거점은 다음 정시 무전에서 한 호흡을 더 길게 끊는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이 한 거점의 호흡을 정한다는 말이 무전망에 돈다. 본인은 자기를 영웅이라 부르는 거점민에게 늘 같은 한 줄로 답한다. 자기는 그저 도로가 시킨 일을 도로가 멈추기 전까지만 한다고.

    마지막 편지 한 통이 한 거점의 한 끼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전령들은 그 새벽 다리 위에서 처음 배웁니다.

    도로 전령 사인 — 사태 이전 옛 우체국 집배원 출신이자 평생 청월진과 도일진 사이 도로 한 구간만 사 년을 달린 자 — 의 일화는 무전망에 '동월교(東月橋) 마지막 편지'로 짧게 남아 있다.

    어느 늦겨울 새벽 사인은 도일진 거점민 한 명이 청월진의 가족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한 통을 가방에 정중히 넣고 도로에 나섰는데, 그날 도로 한가운데서 변이 무리 사십에 둘러싸였다. 사인은 가방을 자기 가죽 외투 안쪽에 한 줄 매듭으로 묶은 뒤 동월교(東月橋, 두 거점 사이 옛 시 외곽 콘크리트 다리) 한가운데까지 단신으로 뛰었으며, 다리 한가운데서 권총 마지막 일곱 발과 단도 한 자루로 변이 무리 일곱을 정중히 정리한 뒤 다리 반대편으로 한 호흡 늦게 도착했다. 청월진 우편함지기가 그 편지를 받은 새벽, 사인의 가방 안에는 편지 외에 자기 옛 우체국 명찰 한 장이 한 줄 함께 들어 있었으며 명찰 뒷면에는 "도로가 시킨 일은 도로 위에 두고 갑니다"라는 짧은 한 줄이 새겨져 있었다. 사인은 그 편지 인도 다음 날 다음 도로 구간을 또 단신으로 출발했고, 청월진 우편함지기는 그 명찰을 자기 우편함 안쪽 가장 깊은 칸에 정중히 보관했다.

    후대 도로 전령 후학들은 자기 가방 안쪽에 옛 명찰 한 장을 평생 한 줄로 묶어 두는 의례를 사인에게서 가져왔다.

  • 좀비추적사(좀비追跡師)

    좀비 정찰병

    좀비 무리의 이동을 추적해 알리는 정찰병

    오늘 외곽 무리, 일곱 마리 줄었습니다. 군주는 아직 그 동네를 안 건드립니다.

    좀비 정찰병은 거점 외곽 5킬로 안의 좀비 무리 동선·개체 수·변이체 출현 여부를 매일 보고하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위장복, 얼굴에 검은 그리스, 어깨에 작은 망원경, 허리에는 소음기 단검이 표준이다. 본인은 좀비 군주의 이동 패턴까지 한 표로 외우고 있어, 거점 사령관이 가장 먼저 찾는 보고자가 된다.

    정찰병이 정시에 돌아오지 않으면 그날 거점 외벽 조명은 한 단계 더 어두워진다. 죽은 동료의 무전기 한 대씩을 가방에 모아 다니는 묘한 습관이 있어, 거점민들은 그의 가방을 "정찰병의 묘지"라 부른다. 본인은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어깨 한 번 으쓱하고 다음 정찰을 나간다.

    가방 안에 무전기 한 대를 더 들고 다니는 자세 — 그 한 대의 무게가 우리 정찰 후학들이 외곽 5킬로를 한 발자국 더 늘려 가는 이유입니다.

    좀비 정찰병 노한 — 사태 이전 옛 환경관리공단 산림감시원 출신이자 도일진 외곽 정찰을 사 년 맡은 자 — 의 일화는 '여덟 번째 무전기'로 정찰병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노한이 가방에 모아 다니는 무전기 일곱 대 중 한 대는 본인의 친한 정찰 동료 하랑의 것이며, 나머지 여섯 대는 다른 거점 정찰병 동료들의 것이었다. 어느 봄 새벽 노한은 외곽 정찰 중 변이체 군주 0호(앞서 군주 일화에 등장한 그 변이체)의 우회 동선 한 줄을 망원경으로 확인했고, 그 즉시 자기 가방의 일곱 무전기 중 가장 오래된 한 대로 도일진 무전 통제관에게 한 줄 보고를 송신했다. 보고가 끝난 직후 그 무전기 한 대는 배터리가 다 닳아 더 이상 송신이 되지 않았으며, 노한은 그 무전기를 외곽 작은 돌무더기 위에 정중히 묻은 뒤 다음 정찰지로 옮겨갔다. 그날의 보고로 도일진은 외곽 5킬로 진영 한 자리를 한 호흡 미리 옮겼고, 군주 0호의 우회 동선 한 줄이 도일진의 한 시대를 한 박자 더 늘려 주었다. 노한의 가방 안 무전기 수는 그날 이후 여덟 대가 아니라 일곱 대로 다시 줄었으며, 본인은 그 사실을 어깨 한 번 으쓱하는 자세로만 받아들였다.

    후대 정찰병 후학들은 외곽 정찰 첫 임무 전 죽은 동료의 무전기 한 대를 가방 가장 안쪽 칸에 한 호흡 정중히 넣는 의례를 노한에게서 가져왔다.

  • 정수정화사(淨水淨化師)

    식수 정화사

    더러운 물을 깨끗이 만드는 정화의 기술자

    오늘 물맛, 어제보다 조금 낫습니다. 어제 우셨던 분, 오늘은 한 잔 더 드세요.

    식수 정화사는 거점 지하 저수조와 외곽 우물의 식수 한 모금을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낡은 작업복, 어깨에 휴대용 정수 키트, 허리에 시약 케이스, 한 손에 작은 시험관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인근 모든 수원의 옛 오염 이력·옛 분기 시즌별 변화·금기 수원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식수 정화사가 한 잔을 거부한 날, 거점 사령관은 그날 외벽 점호를 한 번 더 돈다. 그래서 거점민들은 그의 작은 고갯짓 하나에 그날의 한 끼를 맡긴다. 본인은 자기 직업을 무용담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시약을 떨어뜨리며, 우는 거점민에게 물 한 잔을 더 따라줄 뿐이다.

    한 잔의 거부가 한 거점의 한 끼를 살린다는 사실은, 그 봄 사흘의 작은 고갯짓에서 우리 후학 모두가 처음 새겼습니다.

    식수 정화사 진하 — 사태 이전 옛 수도사업본부 수질 검사관 출신으로 청월진 지하 저수조를 사 년 책임진 자 — 의 일화는 '봄 사흘의 작은 고갯짓'으로 무전망에 짧게 남아 있다.

    어느 봄 진하의 시험관 한 자루가 외곽 우물 옥암샘(玉巖샘, 옛 약수터로 거점 외곽 일 킬로 지점에 위치)에서 평소와 다른 한 줄 색상을 보였으며, 진하는 그날 거점 식당 한 끼의 식수를 정중히 거부하며 거점 사령관 박오에게 작은 고갯짓 한 번을 보냈다. 박오는 그 고갯짓 한 번에 거점 외벽 점호를 한 번 더 돌고 식수 출처를 사흘간 옥암샘이 아닌 거점 지하 저수조 한 칸으로만 한정시켰다. 사흘째 새벽 정찰병 노한이 옥암샘 인근에서 변이 무리 한 줄의 옛 사체 흔적을 발견했으며, 그 흔적이 옥암샘으로 흘러든 한 줄 오염이 진하의 시험관에 잡혔다는 사실이 무전망에 한 호흡 돌았다. 만약 그 사흘 동안 거점민이 옥암샘 식수를 그대로 마셨다면 사백 명 중 절반이 한 호흡 더 위험해졌을 것이라는 추정 보고가 백신 연구 수석 도림에게서 한 줄 송출되었다. 진하는 그 보고를 들은 뒤에도 자기 시험관을 자랑하지 않고, 그날 저녁 우는 거점민 한 명에게 물 한 잔을 평소보다 한 잔 더 정중히 따라 주는 자세만 유지했다.

    후대 식수 정화사 후학들은 작은 고갯짓 한 번의 무게를 진하의 봄 사흘에서 평생 새긴다.

  • 약품약탈객(藥品掠奪客)

    약품 약탈자

    약을 얻기 위해 폐허를 습격하는 자

    거점 사령관님, 이번 항생제는 정중히 거래로 갑니다. 다음번에는 그쪽 결정을 따르지요.

    약품 약탈자는 사태 이전 도시 약국·병원 잔해를 전문적으로 털어 거점 사이에 약품을 유통하는 자다. 외형은 짙은 가죽 외투, 어깨에 약품 분류 가방, 허리에는 단검과 권총, 한 손에는 작은 약품 색인 노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항생제·진통제·인슐린 한 줄까지 시즌별 시세를 외우며, 결코 같은 거점에 두 번 같은 가격을 부르지 않는다.

    약탈자라 불리지만 외과의 의무실 앞에서는 늘 한발 정중히 물러서는 자세를 지킨다. 거점이 무너질 위기에 한 박스 약품을 무상으로 두고 사라진 일화가 무전망에 자주 도는 자이기도 하다. 본인은 자기 별명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약탈자에게도 한 줄 직업 윤리가 있다고, 작은 노트 첫 장에 적어 두었다.

    노트 첫 장 한 줄 윤리가 한 박스 항생제보다 거래 라인을 길게 끈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약탈자들은 그 새벽 무상 거래에서 처음 배웁니다.

    약품 약탈자 임자 — 사태 이전 옛 도매 약품 회사 영업과장 출신으로 거점 다섯 곳을 사 년간 정중히 누빈 자 — 의 일화는 '서연거점 무상 한 박스'로 무전망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서연거점(중원 동남단 옛 초등학교를 개조한 인구 이백 단위 거점)이 항생제 부족으로 외과 환자 일곱 명이 사흘째 한 호흡씩 위태로웠을 때, 임자는 자기 약품 분류 가방의 항생제 한 박스를 거점 입구에 정중히 두고 거래 영수증 한 장 없이 사라졌다. 박스 위에는 임자의 작은 노트 첫 장 한 줄 — "약탈자에게도 직업 윤리가 있다" — 만이 한 줄 옮겨 적힌 작은 메모가 놓여 있었다. 거점 사령관은 그 메모를 자기 결재 라인 첫 줄에 정중히 보관했고, 외과의는 그 한 박스로 일곱 환자 중 여섯을 살렸다. 다음 봄 임자가 다시 서연거점에 항생제 거래를 들고 왔을 때 거점 사령관은 평소 시세보다 두 배 가격을 정중히 결재해 임자의 다음 거래 라인을 한 줄 더 길게 끌어 주었다. 임자는 그 두 배 가격을 받아들이며 노트 첫 장 한 줄 윤리 옆에 작은 한 줄 — "거점 사령관에게도 직업 윤리가 있다" — 을 추가로 적었다.

    후대 약품 약탈자 후학들은 자기 노트 첫 장에 한 줄 윤리를 적는 의례를 임자에게서 가져왔으며, 그 노트는 약탈자 사이의 비공식 자격증으로 통한다.

  • 외벽수보공(外壁修補工)

    외벽 보수공

    외벽의 갈라진 자리마다 손을 대는 보수공

    이 못 한 개, 오늘 밤 거점 한 명을 살립니다. 욕은 내일 들을게요.

    외벽 보수공은 거점 외벽의 균열·약점·조명 라인을 매일 점검하고 수선하는 자다. 외형은 낡은 작업복, 어깨에 공구 가방, 허리에 못 주머니, 한 손에는 작은 망치가 표준이다. 본인은 외벽 모든 못의 옛 박힌 날·옛 보수 결재·금기 균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벽이 한 번 무너진 자리는 두 번째에는 더 빨리 무너진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자다. 거점민은 그의 망치 소리에 잠을 청하고, 망치 소리가 끊긴 새벽에는 가장 먼저 깬다. 본인은 자기 직업이 영웅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어느 사령관도 그가 자리에 없을 때 외벽 결재를 결코 끝내지 않는다.

    한 못의 위치를 외운 손이 결국 한 거점의 외벽을 외운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보수공들은 그 새벽 못 일곱 개에서 처음 새깁니다.

    외벽 보수공 백노 — 사태 이전 옛 건축 현장 십장 출신으로 도일진 외벽을 사 년 책임진 자 — 의 일화는 '새벽 못 일곱 개'로 거점 보수공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한겨울 새벽 도일진 외벽 서편이 변이 무리 이백에 한 번에 세 줄로 균열을 입었을 때, 백노는 거점 사령관 박오의 비상 결재 한 줄을 들고 외벽 한복판으로 망치를 들고 뛰어들었다. 군 잔존 장교 한진이 외벽 안쪽에서 라이플 한 자루로 변이 무리를 막는 동안, 백노는 외벽 균열 세 줄에 못 일곱 개를 한 호흡에 정중히 박아 임시 보수재 한 장을 한 줄로 고정시켰다. 망치 소리는 그 새벽 한 시진을 한 박자도 끊기지 않았으며, 외벽이 다시 한 줄로 막혔을 때 백노의 손바닥에는 못 일곱 개의 흔적 한 줄이 평생 남았다. 한진이 외벽 안쪽에서 백노를 정중히 부른 첫 호명이 그 새벽이었으며, 그날 이후 도일진 외벽 서편 한 칸의 못 일곱 개는 결코 다른 못으로 교체되지 않는 비공식 결재 라인이 되었다. 백노는 본인의 손바닥 흔적을 자랑하지 않고, 그날 이후에도 매일 같은 새벽 같은 자리에서 망치 소리를 한 박자에 한 번씩 정중히 울렸다.

    후대 외벽 보수공 후학들은 첫 보수 임무 전 자기 손바닥에 못 한 개의 흔적을 정중히 한 호흡 새기는 의례를 백노에게서 가져왔다.

  • 무전통제사(無電統制師)

    무전 통제관

    거점의 모든 무전을 통제하는 자

    이번 채널, 30초 비워 둡시다. 외곽에서 누가 숨 한 번 더 고를 시간 드리는 거예요.

    무전 통제관은 거점 무전실에서 채널 분배·암호·정시 송수신을 책임지는 자다. 외형은 낡은 헤드셋, 어깨에 무전 일지, 책상 위에 식어 가는 차 한 잔, 한 손에는 작은 펜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사이 모든 채널의 옛 호출부호·옛 분기 트래픽·금기 시각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곽 도로 전령의 무전이 한 호흡 늦어지면 가장 먼저 그가 알아채며, 무전망 정적이 길어지면 거점 사령관에게 가장 빨리 손을 든다. 그래서 라디오 DJ가 폐허의 입이라면, 무전 통제관은 폐허의 귀라는 말이 무전망에 돈다. 본인은 자기 자리를 결코 비우지 않는다. 한 번 비운 자리에서 누구의 마지막 한 줄이 흩어졌는지를, 평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30초의 침묵 한 줄이 외곽의 한 사람을 거점에 데려온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통제관들은 그 채널 7번에서 평생 새깁니다.

    무전 통제관 한무 — 사태 이전 옛 해양경비안전 통신실 운용원 출신으로 도일진 무전실을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채널 7번 30초'로 무전망에 길게 남아 있다.

    어느 비 오는 저녁 도로 전령 사인이 동월교(앞서 사인 일화에 등장한 옛 콘크리트 다리)에서 평소보다 한 호흡 늦은 송신 한 줄을 보냈을 때, 한무는 채널 7번을 정중히 30초간 비워 둔 채 다른 거점 무전 트래픽을 모두 다른 채널로 우회시켰다. 그 30초 안에 사인의 두 번째 송신 한 줄이 정중히 도일진 무전실에 도착했고, 한무는 그 한 줄을 무전 일지 가장 깊은 칸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사인이 거점에 도착했을 때 한무의 책상 위 차 한 잔은 이미 식어 있었으며, 한무는 그 차를 그날 끝까지 마시지 않고 사인의 가방을 정중히 받아 두는 자리로 옮겨 두었다.

    후일 다른 거점 무전 통제관 한 명이 한무에게 "왜 30초인가"라고 물었을 때, 한무는 헤드셋을 한 번 벗으며 "외곽에서 한 호흡 더 고를 시간이 필요한 사람의 한 줄이 잘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짧게 답했다. 그 한 줄 답은 무전망에 한 줄로 옮겨져 후대 무전 통제관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다. 도일진 무전실 책상 위에는 그 새벽의 식은 차 한 잔 자리가 평생 비어 있는 채로 표시되어 있다.

  • 교환소상인(交換所商人)

    거점 교환소 상인

    물건을 맞바꾸는 거점 교환소의 상인

    탄약 한 통에 통조림 다섯 개. 가족 단위시면 통조림 한 개 더 얹어 드립니다.

    거점 교환소 상인은 외부에서 들어온 물자를 거점 안에서 통조림·탄약·약품·옷감 단위로 정중히 바꿔 주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작업복, 어깨에 가벼운 가방, 허리에 작은 저울, 책상 위에는 시즌별 환산표가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에 들르는 모든 단골의 평소 가족 수·옛 분기 거래 결재·금기 거래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곽에서 갓 도착한 떠돌이 생존자가 가장 먼저 한 끼를 얻는 자리도 그의 카운터 앞이다. 흥정에는 약하지만, 어느 거점도 그의 환산표 한 줄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다. 본인은 자기를 상인이라 부르지만, 거점민들은 그를 "거점의 두 번째 사령관"이라 부른다.

    통조림 한 개를 더 얹어 두는 자세 — 그 한 개의 무게가 우리 후학 상인들의 거래 라인을 한 시즌 더 길게 끕니다.

    거점 교환소 상인 노여 — 사태 이전 옛 시장 상인회 총무 출신으로 청월진 교환소를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통조림 한 개의 한 줄'로 무전망에 짧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외곽에서 막 도착한 떠돌이 생존자 한 가족(엄마와 어린아이 둘) 이 노여의 카운터 앞에 정중히 줄을 섰을 때, 노여는 정해진 환산표대로 탄약 한 통에 통조림 다섯 개를 정중히 받았으나 어린아이 두 명을 한 호흡 보고 통조림 두 개를 슬쩍 한 줄 더 얹어 주었다. 그 가족이 외벽 안쪽 임시 숙소에 정착했을 때 그 통조림 두 개 중 하나는 다음 날 거점 식당 조리원에게 정중히 다시 돌려졌으며, 그 한 개는 다음 봄 거점 보육교사 책상 위에 익명의 한 줄로 한 통 다시 놓여 있었다. 노여는 본인 환산표 옆 작은 노트에 "외곽 가족 단위 — 통조림 한 개 더"라는 한 줄 비공식 결재를 정중히 적어 두었으며, 그 한 줄은 후대 거점 교환소 상인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한 줄을 결재 라인 두 번째 줄에 정중히 옮겨 적었으며, 그날 이후 노여를 "두 번째 사령관"이라 부르는 거점민의 농담 한 줄이 더 자주 무전망에 돌게 되었다. 노여는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저울을 한 번 가볍게 두드리며 "흥정에 약한 자에게는 별명이 무겁다"고 정중히 답했다.

  • 폐허사냥객(廢墟狩獵客)

    폐허 사냥꾼

    폐허에서 짐승과 좀비를 사냥하는 자

    오늘 노루 한 마리, 좀비 두 마리. 둘 다 거점에 가져가지는 않습니다.

    폐허 사냥꾼은 거점 외곽 산림과 폐도시 변두리에서 야생동물과 변이 생물을 사냥해 단백질을 공급하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사냥복, 어깨에 사냥용 라이플, 허리에 가죽 칼집, 한 손에는 작은 추적 노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근 모든 짐승 통행로·옛 분기 사냥 결재·금기 사냥구역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좀비를 사냥감으로 보지 않는다는 한 줄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만, 변이체가 사냥감 사이에 섞이면 가장 먼저 방아쇠를 당기는 자세도 흔들리지 않는다. 거점 식당 조리원과 가장 자주 농담을 주고받는 자이며, 어느 사령관도 그의 농담만큼은 굳이 끊지 않는다.

    추적 노트 한 줄에 적힌 '노루 한 마리'가 거점 한 끼의 다섯 식판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사냥꾼들은 그 봄 일곱 번째 추적에서 처음 새깁니다.

    폐허 사냥꾼 도산 — 사태 이전 옛 산림조합 수렵 단속관 출신으로 도일진 외곽 산림을 사 년 누빈 자 — 의 일화는 '일곱 번째 노루'로 거점 식당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봄 도산이 외곽 칠음령(七陰嶺, 도일진 외곽 삼 킬로 지점의 옛 자연휴양림 능선)에서 일곱 번째 추적 끝에 노루 한 마리를 정중히 사냥했을 때, 노루를 거점에 인도하는 길에서 변이체 한 마리가 사냥감 사이에 섞여 한 호흡 따라붙는 사태가 있었다. 도산은 노루 한 마리를 작은 가죽끈으로 자기 어깨 한쪽에 정중히 묶은 채 변이체 한 마리에게 라이플 한 발을 한 호흡에 박았으며, 변이체의 사체는 거점에 들이지 않고 칠음령 작은 돌무더기 옆에 정중히 묻었다. 노루 한 마리는 그날 저녁 거점 식당 조리원의 식판 다섯 개로 한 호흡에 분배되었고, 그중 두 식판은 거점 보육교사의 교실 한 칸과 의무실 환자 한 명의 식판으로 정중히 옮겨졌다. 도산은 추적 노트 그 자리에 "노루 한 마리 — 식판 다섯 개"라는 한 줄을 정중히 적었으며, 같은 페이지 다음 줄에 "변이체 한 마리 — 칠음령 돌무더기 한 호흡"이라는 한 줄을 따로 적었다.

    후대 폐허 사냥꾼 후학들은 자기 추적 노트 첫 페이지에 두 줄을 따로 분리하는 자세를 도산에게서 가져왔다.

  • 신호점등사(信號點燈師)

    신호탄 점등사

    어둠 속에 신호탄을 올려 길을 표시하는 자

    외곽에서 빨간 신호탄 보이면, 그날 점호는 한 명 빠집니다. 미리 마음 단단히 하세요.

    신호탄 점등사는 거점 외벽 망루에서 색별 신호탄을 정시에 점등해 거점 안과 도로 전령에게 상태를 알리는 자다. 외형은 낡은 점퍼, 어깨에 신호탄 가방, 허리에 점화기, 책상 위에는 색상별 의미가 적힌 손때 묻은 메모가 표준이다. 본인은 모든 색의 옛 분기 신호 결재·옛 거점 별 색 약속·금기 색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빨간 신호탄을 점등하는 손은 늘 한 호흡 더 천천히 움직이는데, 그 한 호흡이 거점민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시간이라 본인은 믿는다. 점등사가 자기 망루를 비운 날의 거점은, 그날 한밤중에 가장 길게 정적이 흐른다.

    빨간 신호탄 한 호흡의 늦춤이 거점민 한 가족의 마음을 한 시진 더 쥐어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 후학 점등사들은 그 망루 한밤에서 처음 새깁니다.

    신호탄 점등사 도연 — 사태 이전 옛 해안경비 신호 운용원 출신으로 청월진 외벽 동망루를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한 호흡 늦춘 빨간 색'으로 무전망에 짧게 남아 있다.

    어느 한밤 정찰병 노한이 외곽 정찰 도중 변이체 한 줄에 둘러싸여 한 명의 동료를 잃었다는 첫 무전이 도연의 망루에 한 줄 송신된 직후, 도연은 평소 빨간 신호탄을 한 호흡에 점등하던 손을 평소보다 일곱 호흡 더 천천히 움직였다. 그 일곱 호흡 안에 거점 사령관 박오는 점호 명단을 한 호흡 더 정중히 정리할 시간을 받았고, 잃은 정찰병의 가족 한 가족은 외벽 점호 자리에 한 호흡 더 늦게 도착해 마음의 준비 한 줄을 정중히 받았다. 빨간 신호탄이 망루 위에 점등된 그 새벽, 도연은 자기 손때 묻은 메모 한 장에 "빨간 색 — 일곱 호흡까지 정중히 늦출 수 있다"라는 한 줄을 정중히 추가로 적었다.

    후일 다른 거점 점등사 한 명이 도연에게 "왜 일곱 호흡인가"라고 물었을 때, 도연은 점화기를 한 번 가볍게 두드리며 "한 가족이 마음을 한 줄 쥐는 데에 일곱 호흡이 필요하다"고 정중히 답했다. 그 한 줄 답은 후대 신호탄 점등사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으며, 청월진 동망루 메모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 같은 색으로 한 줄 더 추가되어 있다.

  • 거점보육사(據點保育師)

    거점 보육교사

    거점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보육교사

    오늘은 좀비 그림 그리지 말고, 외벽 너머 노을 한 번 그려 보자. 색칠은 어제 본 색으로.

    거점 보육교사는 사태 이후 태어난 아이들과 사태 직전 어린아이였던 아이들을 한 교실 안에 모아 글·셈·생존 기본을 가르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낡은 책 가방, 한 손에는 분필과 색연필 한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모든 아이의 옛 부모 이름·옛 분기 한 끼의 결정적 시점·금기 단어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는 좀비를 결코 "괴물"이라 부르지 않으며, 가족을 잃은 아이의 책상 앞에서는 한 호흡 더 길게 멈추는 자세를 지킨다. 폐허에서 가장 작은 직업이 사실 거점의 다음 한 시대를 굴러가게 한다.

    노을 한 장 그림이 좀비 그림 한 장보다 무겁게 교실에 걸린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보육교사들은 그 봄 노을 그림 일곱 장에서 평생 새깁니다.

    거점 보육교사 한미 — 사태 이전 옛 시립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 출신으로 청월진 보육 교실을 사 년 책임진 자 — 의 일화는 '노을 일곱 장'으로 거점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봄 거점 외벽 너머 한 줄로 길게 깔린 노을이 평소보다 일곱 호흡 더 진했던 저녁, 한미는 교실 일곱 명의 아이에게 평소 그리던 좀비 그림 대신 외벽 너머 노을 한 장을 정중히 그려 보자고 한 호흡 정중히 권했다. 일곱 명의 아이 가운데 한 명은 사태 직전 부모를 잃은 아이였으며, 그 아이는 평소 빨간 색연필만 들고 좀비 입을 정중히 그리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빨간 색연필 대신 노란 색연필 한 자루를 정중히 들었으며, 노을 한 장의 가운데에 작은 한 줄로 자기 어머니의 이름 한 자를 정중히 적었다. 한미는 그 그림 한 장을 교실 가장 따뜻한 자리 — 햇볕이 한 호흡 더 오래 머무는 창가 한쪽 — 에 정중히 한 호흡 길게 걸어 두었으며, 다음 봄 그 자리에는 일곱 장의 노을 그림이 한 줄로 정중히 걸려 있었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일곱 장을 본 새벽 점호 명단 한 줄을 평소보다 한 호흡 더 천천히 정리했으며, 그 자세를 후대 거점 사령관들은 비공식 결재 라인 첫 줄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후대 거점 보육교사 후학들은 첫 봄 수업 전 외벽 너머 노을 한 장을 정중히 한 호흡 그려 보는 의례를 한미에게서 가져왔다.

  • 외곽운반부(外郭運搬夫)

    외곽 짐꾼

    외곽까지 짐을 지고 나르는 짐꾼

    이 박스, 통조림인 줄 알았는데 책이네요. 어쨌든 무게는 똑같이 받겠습니다.

    외곽 짐꾼은 거점 입구와 교환소 사이에서 박스·물통·약품 상자를 등에 지고 옮기는 평민 출신 노동자다. 외형은 낡은 작업복, 어깨에 두꺼운 어깨 패드, 허리에 작은 단검, 등에는 평생 같은 줄 자국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안 모든 박스의 평소 무게·옛 분기 운반 결재·금기 결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로 전령이 가져온 짐을 가장 먼저 받는 자도, 거점 식당 조리원에게 가장 먼저 야채 박스를 넘기는 자도 그다. 무공도 무전기도 없지만, 외벽이 한 번 흔들리면 가장 먼저 자기 어깨로 박스를 받쳐 외벽 균열을 막은 일화가 무전망에 한 줄 남아 있다.

    어깨 한쪽 박스의 무게가 한 거점의 한 호흡을 늘려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짐꾼들은 그 새벽 박스 일곱 개에서 처음 새깁니다.

    외곽 짐꾼 노박 — 사태 이전 옛 항만 하역 노동자 출신으로 도일진 입구를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책 박스 한 개의 무게'로 거점 입구 사이에 짧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도로 전령 사인이 청월진에서 가져온 박스 일곱 개 가운데 한 박스가 평소보다 한 호흡 가벼운 사실을 노박은 어깨 한쪽 패드의 한 줄 압력만으로 정중히 알아챘다. 박스를 풀어 보았을 때 안에는 통조림 대신 폐허 사서가 보낸 책 사십 권이 한 줄로 들어 있었으며, 그 책들은 거점 보육교사 한미의 교실로 정중히 옮겨질 예정이었다. 노박은 박스 한 개의 무게를 통조림과 같이 받아 운반 결재를 정중히 한 줄 처리했으며, 거점 사령관에게도 그 결재 라인을 평소와 같은 한 줄로만 정중히 보고했다.

    그날 저녁 외벽 동남편 한 자리가 변이 무리 사십에 한 호흡 흔들렸을 때, 노박은 자기 어깨 한쪽에 들고 있던 책 박스 한 개를 그대로 외벽 균열 한 줄에 정중히 받쳐 외벽이 한 박자 더 견딜 시간을 벌어 주었다. 외벽 보수공 백노가 못 일곱 개를 그 자리에 정중히 박는 동안 노박의 박스 한 개는 외벽 한 칸의 한 호흡을 평생 늘려 주었으며, 그 책 사십 권은 다음 날 새벽 한미의 교실 한 칸으로 정중히 한 줄로 옮겨졌다. 노박의 어깨 한쪽 패드에는 그 새벽의 박스 한 줄이 평생 자국으로 남았으며, 후대 외곽 짐꾼 후학들은 자기 첫 운반 임무 전 어깨 패드 한 줄에 작은 자국을 정중히 한 호흡 새기는 의례를 노박에게서 가져왔다.

  • 식당조리부(食堂調理夫)

    거점 식당 조리원

    거점 식당의 솥 앞을 지키는 조리원

    오늘 메뉴, 콩 통조림 변주 다섯 가지. 다섯 번째는 비밀입니다, 사령관님께도요.

    거점 식당 조리원은 거점 한복판 공동 식당의 한 끼를 매일 정해진 시간 굴러가게 하는 평민 출신 요리사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머리에 흰 두건, 어깨에 작은 가방, 한 손에는 작은 칼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민 모든 단골의 평소 식성·옛 분기 한 끼의 결정적 시점·금기 음식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그래서 외곽에서 돌아온 정찰병은 가장 먼저 그의 식판 앞에 줄을 선다. 통조림 콩 한 캔으로 다섯 가지 변주를 만든 일화가 무전망에 한 줄 남아 있고, 거점 사령관조차 그 다섯 번째 변주의 비법은 끝내 듣지 못했다. 라디오 DJ가 폐허의 마이크라면, 조리원은 폐허의 한 끼다.

    다섯 번째 변주의 비법이 식판 한 칸의 무게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조리원들은 그 다섯 번째 한 호흡에서 처음 새깁니다.

    거점 식당 조리원 한솔 — 사태 이전 옛 학교 급식 조리사 출신으로 도일진 공동 식당을 사 년 책임진 자 — 의 일화는 '다섯 번째 변주'로 거점 식당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한겨울 한솔의 식당이 외부 공급 단절 칠 일째에 콩 통조림 한 박스만 남은 사태를 맞았을 때, 한솔은 그 한 박스로 한 끼 사백 식판의 다섯 가지 변주를 한 호흡에 만들어 정중히 식판 위에 올렸다. 첫 번째 변주는 콩 죽, 두 번째는 콩 무침, 세 번째는 구운 콩, 네 번째는 콩 수프였으며, 다섯 번째 변주의 정체는 한솔 본인 외에 거점 사령관 박오조차 평생 듣지 못한 비밀이 되었다. 정찰병 노한이 외곽에서 돌아온 그 저녁 한솔의 다섯 번째 식판 한 칸 앞에 정중히 줄을 섰을 때, 한솔은 노한의 식판에만 다섯 번째 변주를 한 숟갈 더 정중히 얹어 주며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노한은 그 한 숟갈 한 호흡을 평생 자기 추적 노트 한 페이지에 정중히 한 줄로 적어 두었으며, 그 한 줄에는 단지 "콩 다섯 번째 — 한 호흡 더"라는 짧은 한 줄만 남았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한 줄을 들은 뒤에도 한솔에게 비법을 정중히 묻지 않았으며, 그 자세를 후대 거점 사령관들은 비공식 결재 라인 첫 줄에 정중히 옮겨 적었다.

    후대 거점 식당 조리원 후학들은 다섯 번째 변주의 비법을 평생 자기 안에만 정중히 한 호흡 두는 자세를 한솔에게서 가져왔다.

  • 종소리시지기(鐘時지기)

    종소리 시간지기

    종소리로 거점의 시간을 알리는 자

    정오 종, 오늘은 한 박자 늦춥니다. 외곽에 아직 한 명 못 들어왔어요.

    종소리 시간지기는 거점 중앙 종탑에서 정오·황혼·자정 종을 손수 쳐 거점 전체의 하루를 한 박자에 묶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두꺼운 외투, 어깨에 종 줄을 다루는 손때 묻은 가죽 장갑, 허리에 회중시계, 한 손에는 작은 일지가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모든 분기의 옛 종 시각·옛 정전 보정 결재·금기 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시계가 모두 죽은 폐허에서 종소리는 식수 정화·외벽 점호·식당 한 끼의 기준점이 된다. 외곽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거점민이 있는 날에는 정오 종을 한 박자 늦춰 치는 작은 자비를 부린다. 그가 종 줄을 놓는 날, 거점 안 모든 시계가 동시에 한 발자국씩 흐트러진다. 본인은 자기 직업이 시간이 아니라 약속을 다룬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안다.

    한 박자 늦춰 치는 종 줄의 무게가 한 거점민 가족의 마음 한 줄을 한 시진 더 끌어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시간지기들은 그 정오 종 한 박자에서 평생 새깁니다.

    종소리 시간지기 도란 — 사태 이전 옛 천문대 표준시 운용원 출신으로 청월진 종탑을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한 박자 정오 종'으로 거점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봄 정오 정찰병 한 명이 외곽 정찰에서 한 호흡 늦게 외벽으로 돌아오던 날, 도란은 평소 정오 종을 한 박자 정확히 치는 손을 정중히 한 박자 늦췄다. 그 한 박자 안에 정찰병은 외벽 안쪽으로 정중히 한 발자국 더 들어왔으며, 외벽 점호 명단 한 줄에 그 정찰병의 이름이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적혔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정오 종이 평소보다 한 박자 늦은 사실을 알았으나 결코 도란에게 사유를 묻지 않았으며, 도란의 일지 그 자리에 "정오 — 한 박자 늦춤"이라는 한 줄만 정중히 남았다. 다른 거점 시간지기 한 명이 도란에게 "왜 한 박자인가"라고 물었을 때, 도란은 회중시계를 한 번 가볍게 두드리며 "약속 한 줄을 한 호흡 더 길게 끌어주기 위해서"라고 정중히 답했다. 그 한 줄 답은 후대 종소리 시간지기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으며, 청월진 종탑 일지에는 그날의 한 박자 한 줄이 평생 한 줄로 남아 있다.

    후대 종소리 시간지기 후학들은 즉위 첫 정오 종 직전 자기 회중시계를 한 번 정중히 한 호흡 두드리는 의례를 도란에게서 가져왔다.

  • 폐허서고객(廢墟書庫客)

    폐허 사서

    폐허에서 살아남은 책을 지키는 사서

    이 책, 빌려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름은 정중히 적어 두세요. 다음 사람도 읽어야 하니까요.

    폐허 사서는 사태 이전 도서관·서점·개인 서가에서 책을 추려 거점 한 칸의 작은 도서실을 평생 운영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외투, 어깨에 책 가방, 허리에 먼지떨이, 한 손에는 손때 묻은 대출 장부가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모든 책의 옛 발행 연도·옛 분기 대출 결재·금기 도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백신 연구 수석이 가장 자주 자료를 빌리는 자리이며, 보육교사가 아이들 책을 가장 먼저 묻는 자리다. 책 한 권을 빌려간 거점민이 돌아오지 못한 날에는 그 자리에 책을 한 권 더 비워 두는 묘한 습관이 있다. 폐허에서 책을 지킨다는 일이 한 시대의 기억을 지킨다는 일이라는 사실을, 본인은 묵묵히 매일의 정리로 증명한다.

    비워 둔 책 자리 한 칸이 거점 한 시대의 기억 한 줄을 평생 한 호흡 끌어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사서들은 그 비워둔 한 자리에서 평생 새깁니다.

    폐허 사서 한도 — 사태 이전 옛 시립도서관 향토자료실 사서 출신으로 청월진 도서실을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비워둔 한 자리'로 거점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거점민 한 명이 청월진 도서실에서 한 책 — 손때 묻은 옛 시집 한 권 — 을 정중히 빌려 외곽 정찰에 동행한 뒤 돌아오지 못한 사태가 있었다. 한도는 그 거점민의 이름을 대출 장부 그 자리에 정중히 한 줄 그대로 남겨 두었으며, 같은 자리에 같은 시집 한 권을 한 권 더 정중히 한 호흡 비워 두었다. 다음 봄 그 거점민의 어린 아이가 보육교사 한미의 손을 잡고 도서실 한 칸으로 정중히 들어왔을 때, 한도는 그 아이에게 한 권 비워둔 자리의 시집 한 권을 정중히 한 호흡 건네주었다. 아이는 그 시집을 자기 가방 안쪽에 정중히 한 줄 매듭으로 묶어 두었으며, 한도는 그 자리에 다시 한 번 같은 시집 한 권을 정중히 비워 두었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비워둔 자리 한 칸을 결재 라인 두 번째 줄에 정중히 한 호흡 옮겨 적었으며, 그 자세를 후대 거점 사령관들은 즉위 첫 주에 도서실 한 칸을 정중히 한 호흡 들러 보는 의례로 한 줄 추가했다.

    후대 폐허 사서 후학들은 첫 대출 결재 전 자기 대출 장부 한 칸을 정중히 비워 두는 자세를 한도에게서 가져왔다.

  • 연료정제사(燃料精製師)

    연료 정제사

    남은 기름을 다시 쓸 수 있게 정제하는 자

    이 통, 도로 전령용입니다. 약탈자에겐 안 팝니다. 그건 결재 끝났습니다.

    연료 정제사는 거점 외곽 폐주유소·낡은 차량에서 모은 잔여 연료를 작은 정제 키트로 거르고 분류하는 자다. 외형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 어깨에 작은 정제 키트, 허리에 시약 케이스, 한 손에는 손때 묻은 색인 노트가 표준이다. 본인은 인근 모든 연료의 옛 등급·옛 분기 정제 결재·금기 혼합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로 전령의 오토바이 한 통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사령관 결재가 떨어지지 않는다. 약탈자가 가장 자주 흥정을 시도하는 자리이지만, 연료 한 통의 행선지를 결재 없이 바꾼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본인은 자기 손에서 흘러나간 한 통 한 통이 도로 위에서 한 명의 마지막 한 호흡을 늘려 준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안다.

    한 통의 행선지가 도로 위 한 사람의 한 호흡을 한 줄로 늘려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정제사들은 그 새벽 거절 한 줄에서 평생 새깁니다.

    연료 정제사 백호 — 사태 이전 옛 정유 회사 정제 운용원 출신으로 도일진 외곽 정제소를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두 배 가격 거절'로 무전망에 짧게 남아 있다.

    어느 한겨울 약품 약탈자 임자(앞서 임자 일화에 등장한 그 약탈자)와는 다른 약탈자 한 무리가 백호의 정제소 입구에 정중히 두 배 가격을 들고 한 통 거래를 시도한 일이 있었다. 그날 백호는 자기 색인 노트의 그날 결재 라인 첫 줄에 "도로 전령 사인 — 한 통"이라는 한 줄이 정중히 적혀 있었으며, 그 한 줄 외에는 어떤 가격도 그 한 통의 행선지를 한 호흡 바꾸지 못했다. 백호는 약탈자 무리에게 두 배 가격을 정중히 거절하며 자기 색인 노트의 그 한 줄을 한 번 보여 주었으며, 약탈자 무리는 그 한 줄 결재의 무게에 정중히 한 호흡 물러섰다. 그 한 통의 연료는 그날 새벽 도로 전령 사인의 가방으로 한 줄 정중히 인도되었으며, 사인은 동월교 다리 위에서 그 한 통으로 한 명의 정찰병 가족 한 명의 한 호흡을 한 줄 더 길게 끌어 주었다. 백호는 본인 색인 노트 그 페이지에 "한 통 — 한 호흡 한 줄"이라는 한 줄을 정중히 추가로 적었으며, 그 한 줄은 후대 연료 정제사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다.

    후대 연료 정제사 후학들은 자기 색인 노트 첫 페이지에 결재 라인 한 줄을 정중히 적는 의례를 백호에게서 가져왔다.

  • 외곽지도사(外郭地圖師)

    외곽 지도 제도사

    외곽의 길을 새 지도로 그려내는 제도사

    이 골목, 어제까지는 안전이었습니다. 오늘 표시 다시 합니다. 한 줄로 끝나는 동네는 없거든요.

    외곽 지도 제도사는 정찰병 보고와 도로 전령 메모를 받아 거점용 폐허 지도를 매일 손으로 다시 그리는 자다. 외형은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두루마리 가방, 허리에 펜 케이스, 책상 위에는 색별 잉크병이 표준이다. 본인은 인근 모든 골목의 옛 분기 안전 등급·옛 변이체 출몰 결재·금기 통과 시각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사령관과 도로 전령 사이의 결재가 그의 손끝 한 줄로 결정되며, 잘못 그려진 한 줄이 다음 정찰의 한 호흡을 끊는다는 사실을 본인은 매일 새긴다. 아이들이 그의 책상 위 색별 잉크병을 가장 좋아하지만, 빨간 잉크만은 손대지 못하게 정중히 막는다. 빨간 잉크는 죽은 동료의 자리를 지우는 색이라는 사실을, 보육교사조차 끝내 아이들에게 말해 주지 못했다.

    빨간 잉크 한 줄의 무게가 정찰병 한 가족의 마음 한 줄을 한 호흡 더 길게 잡아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제도사들은 그 빨간 잉크 한 병에서 평생 새깁니다.

    외곽 지도 제도사 한규 — 사태 이전 옛 측량 회사 도면 제도사 출신으로 도일진 지도실을 사 년 책임진 자 — 의 일화는 '빨간 잉크 한 병의 봉인'으로 거점 지도실 사이에 짧게 남아 있다.

    어느 늦가을 정찰병 한 명이 외곽 정찰 도중 변이체 한 줄에 한 호흡 늦게 발견되어 잃은 사태가 있은 다음 날, 한규는 그 정찰병이 평소 다니던 외곽 골목 한 줄을 자기 두루마리 지도 위에서 빨간 잉크로 정중히 한 줄 지웠다. 그 한 줄을 지운 다음 한규는 자기 책상 위 빨간 잉크 한 병을 한 호흡 동안 정중히 봉인했으며, 그 봉인은 거점 사령관 박오의 결재 한 줄이 떨어지는 다음 분기까지 풀리지 않았다. 한규의 책상 위 빨간 잉크병 한 개의 위치는 그날 이후 결코 바뀌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책상 위 색별 잉크병을 정중히 만져 보러 올 때에도 빨간 잉크 한 병만은 한규의 손바닥 한 번이 정중히 한 호흡 막았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봉인 한 줄을 결재 라인 두 번째 줄에 정중히 한 호흡 옮겨 적었으며, 그 자세를 후대 거점 사령관들은 잃은 정찰병의 다음 분기 결재 첫 줄에 정중히 한 호흡 옮겨 적는 의례로 만들었다.

    후대 외곽 지도 제도사 후학들은 자기 책상 위 빨간 잉크 한 병의 위치를 평생 한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 봉인해 두는 자세를 한규에게서 가져왔다.

  • 거점재봉사(據點裁縫師)

    거점 재봉공

    해진 옷을 새 옷처럼 짓는 재봉공

    이 외투, 옛 주인 이름은 안 떼겠습니다. 새 주인이 한 번은 읽어 주는 게 예의니까요.

    거점 재봉공은 거점 안 옷·외투·천 가방·외벽 보수용 천막을 손수 꿰매고 고치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바늘 쌈지, 허리에 가위 케이스, 책상 위에는 색실 묶음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민 모든 단골의 평소 어깨 폭·옛 분기 수선 결재·금기 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죽은 거점민의 외투는 결코 그 자리에서 바로 새 주인에게 넘기지 않는다. 옛 주인 이름표를 한 번 떼었다 다시 안쪽에 정중히 박아 두는 작은 의례가 그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거점 사령관조차 그의 작업대 위에서는 점호용 명단을 한 호흡 더 천천히 넘긴다. 폐허의 가장 따뜻한 직업이, 가장 많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안쪽에 품고 있다.

    안쪽에 박힌 이름표 한 줄의 무게가 외투 한 벌의 새 주인에게 평생 한 호흡 더 따뜻한 어깨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재봉공들은 그 작업대 한 자리에서 평생 새깁니다.

    거점 재봉공 도수 — 사태 이전 옛 양복점 재단사 출신으로 청월진 재봉실을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안쪽 이름표 일곱 줄'로 거점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청월진 외벽 점호 명단에서 정중히 한 호흡에 일곱 명의 이름이 한 줄 지워진 분기 새벽, 도수는 일곱 명의 외투를 작업대 위에 한 줄로 정중히 펼쳐 두고 일곱 개의 이름표를 정중히 한 번 떼었다 안쪽에 다시 한 호흡 박아 두었다. 일곱 개의 외투는 다음 봄 외곽에서 막 도착한 떠돌이 생존자 일곱 명에게 한 호흡 한 벌씩 정중히 인도되었으며, 새 주인 일곱 명은 외투 안쪽 이름표를 정중히 한 줄씩 한 호흡 읽은 뒤 자기 어깨에 정중히 한 호흡 입었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새벽 점호용 명단을 평소보다 일곱 호흡 더 천천히 정중히 넘겼으며, 도수의 작업대 위 색실 묶음 한 자리는 그 새벽 일곱 호흡 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떠돌이 생존자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은 그 외투 안쪽 이름표 한 줄에 자기 옛 친구의 이름이 한 자 들어 있는 사실을 정중히 한 호흡 발견했으며, 도수는 그 사실을 평생 모른 채 다음 외투 한 벌의 안쪽 이름표를 정중히 한 호흡 박아 두었다.

    후대 거점 재봉공 후학들은 자기 첫 외투 수선 전 안쪽 이름표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박아 두는 자세를 도수에게서 가져왔다.

  • 사체위령자(屍體慰靈者)

    사체 위령사

    이름 없이 죽은 자들을 달래는 위령사

    오늘 세 분, 이름 다 불러 드렸습니다. 사령관님 점호 끝나시면 마지막 한 줄 적겠습니다.

    사체 위령사는 거점 외곽 작은 위령단에서 죽은 거점민의 이름을 매일 불러 주고 한 줄 일지에 옮겨 적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외투, 어깨에 위령 일지, 허리에 작은 향로, 한 손에는 손때 묻은 펜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모든 분기의 옛 사망 결재·옛 위령 시각·금기 호명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거점 사령관의 마지막 점호가 끝난 자리에서 그의 일지가 시작되며, 그의 일지가 끝나는 자리에서 거점의 다음 하루가 시작된다. 외과의가 결국 잡지 못한 환자의 이름을 가장 천천히 부르는 자도 그다. 본인은 자기 직업을 슬픔이라 부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이름이 적어도 한 번은 더 불릴 자리를 만들어 두는 일이라 부른다.

    한 번 더 불린 이름 한 줄의 무게가 거점 한 시대의 다음 하루를 한 호흡 끌어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위령사들은 그 위령단 한 자리에서 평생 새깁니다.

    사체 위령사 한정 — 사태 이전 옛 시립 장례식장 의전 담당 출신으로 도일진 외곽 위령단을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한 번 더 부른 이름'으로 무전망에 짧게 남아 있다.

    어느 한겨울 도일진 외벽 서편이 무너진 그 새벽 거점 사령관 박오의 마지막 점호가 끝난 직후 한정은 외곽 위령단 — 도일진 입구 작은 돌무더기 옆 옛 학교 운동장 한 모퉁이 — 한 자리에서 잃은 거점민 일곱 명의 이름을 정중히 한 호흡 한 명씩 한 번 더 불렀다. 일곱 번째 이름을 부른 직후 한정은 평소 자기 일지의 마지막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 적던 자세를 그날만은 잠시 미뤄 두었으며, 자기 향로 한 줄에 향 한 자루를 정중히 한 호흡 더 길게 사르고 마지막 한 줄을 한 호흡 늦게 정중히 적었다. 그날 일지의 마지막 한 줄에는 일곱 명의 이름 외에 박오 사령관의 이름 한 자가 정중히 한 줄 마지막에 한 호흡 추가로 적혔으며, 그 한 줄은 한정의 일지 가운데 처음으로 사령관 자신의 이름이 정중히 적힌 자리가 되었다. 후일 도일진 후대 거점 사령관 한 명이 그 일지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보고 그 위령단 한 자리에 한 호흡 더 길게 정중히 절했으며, 그 자세를 후대 거점 사령관들은 즉위 첫 주 외곽 위령단 한 자리에 정중히 한 호흡 들러 보는 의례로 한 줄 추가했다.

    후대 사체 위령사 후학들은 자기 위령 일지 첫 페이지에 거점 사령관 한 명의 이름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미리 적어 두는 자세를 한정에게서 가져왔다.

  • 망루등불자(望樓燈火者)

    망루 등불지기

    망루 위 등불을 꺼뜨리지 않는 자

    오늘 등 하나, 마음에 안 드시면 한 칸 더 켜 드릴게요. 외곽이 어두운 날엔 그래도 됩니다.

    망루 등불지기는 거점 외벽 망루의 야간 등을 정시에 켜고 끄며 외곽 도로 전령에게 거점의 호흡을 알리는 자다. 외형은 낡은 두꺼운 외투, 어깨에 등 기름 가방, 허리에 점화기, 한 손에는 작은 손전등이 표준이다. 본인은 외벽 모든 등의 옛 분기 점등 결재·옛 정전 보정·금기 색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신호탄 점등사가 비상의 색을 다룬다면, 등불지기는 평범한 하루의 색을 다룬다. 외곽 도로 위 떠돌이 생존자에게는 그 노란 등 한 칸이 라디오 DJ의 한 줄 멘트만큼 큰 위로가 된다. 본인은 자기 등 한 칸이 한 사람의 발걸음을 한 시간 더 끌어 준다는 사실을,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손짓으로 묵묵히 새긴다.

    한 칸 더 켜 둔 노란 등의 무게가 외곽 한 사람의 발걸음을 한 시간 더 끌어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등불지기들은 그 망루 한 칸에서 평생 새깁니다.

    망루 등불지기 노연 — 사태 이전 옛 등대 운용원 출신으로 청월진 외벽 서망루를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한 칸 더 켠 노란 등'으로 외곽 도로 위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외곽에서 갓 도착한 떠돌이 생존자 한 명이 청월진 외벽 서편 작은 다리 한 자리에서 한 시진 동안 한 호흡 정중히 멈춰 서 있던 새벽, 노연은 평소 노란 등을 정시에 한 칸만 켜던 자세를 정중히 한 칸 더 정중히 한 호흡 켜 두었다. 그 한 칸 더 켜 둔 노란 등 아래 떠돌이 생존자는 정중히 한 호흡 더 길게 자기 가방을 정리한 뒤 외벽 입구 한 자리로 한 호흡 늦게 정중히 한 발자국 옮겼으며, 거점 입구의 외곽 짐꾼 노박은 그 떠돌이 생존자의 가방을 정중히 한 호흡 받아 두었다. 노연의 등 기름 가방은 그 새벽 한 칸 더 사용된 만큼 다음 분기 결재 라인에서 평소보다 한 줄 더 정중히 한 호흡 받았으며,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한 줄 결재를 정중히 한 호흡 받아들이며 노연에게 어떤 사유도 정중히 묻지 않았다. 노연은 본인 손때 묻은 손전등 한 자루의 손잡이 안쪽에 정중히 한 줄 — "한 칸 더 — 한 시간 더" — 을 정중히 한 호흡 작게 새겨 두었으며, 그 한 줄은 후대 망루 등불지기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다.

    후대 망루 등불지기 후학들은 자기 첫 야간 점등 직전 손전등 한 자루의 손잡이 안쪽에 정중히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새겨 두는 의례를 노연에게서 가져왔다.

  • 거점이발자(據點理髮者)

    거점 이발사

    거점 사람들의 머리를 가다듬는 이발사

    머리, 짧게 가시지요. 외곽에서 오래 머무실 분은 머리카락도 한 줌 짐입니다.

    거점 이발사는 거점 한 칸 작은 이발소에서 거점민의 머리·수염을 정해진 시간에 다듬어 주는 평민 출신 손기술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작은 수건, 허리에 가위 케이스, 책상 위에는 손때 묻은 거울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민 모든 단골의 평소 머리 길이·옛 분기 손질 결재·금기 스타일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곽에서 막 돌아온 도로 전령이 가장 먼저 앉는 자리이자, 외곽으로 막 떠나는 정찰병이 마지막으로 앉는 자리도 그의 의자 위다. 거점민의 거울이 거의 다 깨진 폐허에서, 그의 작은 거울 한 개가 거점의 마지막 자기 얼굴 확인 자리이다. 본인은 자기 가위가 사람의 얼굴을 다듬는 게 아니라, 그날의 마음가짐 한 줄을 다듬는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거울 한 개의 한 호흡이 외곽으로 떠나는 자의 마음 한 줄을 한 호흡 더 길게 잡아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이발사들은 그 의자 한 자리에서 평생 새깁니다.

    거점 이발사 한규일 — 사태 이전 옛 동네 이발소 사장 출신으로 도일진 이발실을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마지막 의자 한 호흡'으로 거점 사이에 짧게 전해진다.

    어느 한겨울 새벽 외곽 정찰을 정중히 한 호흡 떠나기 직전인 좀비 정찰병 노한이 한규일의 의자에 정중히 한 호흡 마지막으로 앉았을 때, 한규일은 평소 가위질 한 호흡 한 번에 정리하던 노한의 머리를 정중히 한 호흡 더 천천히 한 줄로 다듬어 주었다. 한규일은 노한의 어깨에 정중히 한 호흡 작은 수건 한 장을 한 줄로 둘러 준 뒤 자기 책상 위 손때 묻은 거울 한 개를 정중히 한 호흡 한 자리 앞으로 한 줄 옮겨 두었으며, 노한은 그 거울 한 개에서 자기 얼굴 한 호흡을 정중히 한 줄로 한 번 더 정중히 확인한 뒤 외벽 한 자리로 한 호흡 정중히 한 발자국 옮겼다. 그날의 정찰에서 노한은 자기 가방의 일곱 무전기 가운데 한 대를 변이체 한 줄에 정중히 잃은 일이 있었으나, 자기 동료 한 명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살려 외벽 안쪽으로 정중히 한 발자국 한 줄로 데려 들어왔다. 한규일은 그 새벽 노한의 머리카락 한 줌을 정중히 한 호흡 자기 의자 옆 작은 통 한 칸에 한 줄로 보관해 두었으며, 노한은 그 사실을 평생 모른 채 다음 정찰에 정중히 한 호흡 한 발자국 한 줄로 또 옮겨갔다.

    후대 거점 이발사 후학들은 자기 첫 의자 한 자리 옆에 작은 통 한 칸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비워 두는 자세를 한규일에게서 가져왔다.

  • 빨래터관리인(빨래터管理人)

    빨래터 관리인

    거점 빨래터의 물길을 돌보는 자

    오늘 빨래, 핏자국 다섯 점. 다 지워드릴게요. 그게 제 직업이라서요.

    빨래터 관리인은 거점 한 칸 공동 빨래터에서 옷·붕대·천 가방을 정시에 빨고 말리는 평민 출신 노동자다. 외형은 낡은 작업복, 어깨에 두꺼운 앞치마, 허리에 비누 가방, 한 손에는 빨랫방망이가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 모든 빨래의 옛 분기 결재·옛 핏자국 처리 결재·금기 세제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외과의 의무실에서 가장 먼저 붕대를 받아오는 자도, 재봉공 작업대로 가장 먼저 천을 넘기는 자도 그다. 핏자국 다섯 점을 본 날에도 그날 저녁 거점 식당 한 끼는 결코 거르지 않는 묵직한 직업 윤리가 있다. 폐허에서 빨래가 마른다는 사실 하나가, 거점이 아직 굴러간다는 가장 조용한 증거다.

    빨래 한 줄이 마르는 자세 자체가 거점 한 시대의 가장 조용한 한 줄 결재라는 사실을, 우리 후학 빨래터 관리인들은 그 새벽 다섯 점에서 평생 새깁니다.

    빨래터 관리인 한오 — 사태 이전 옛 세탁 공장 작업반장 출신으로 청월진 공동 빨래터를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핏자국 다섯 점의 새벽'으로 거점 사이에 짧게 전해진다.

    어느 한겨울 새벽 외과의 진해의 의무실에서 일곱 시간 봉합 다음 한 호흡에 정중히 한 줄로 한오에게 도착한 붕대 다섯 줄에 정중히 한 호흡 핏자국 다섯 점이 정중히 한 줄로 새겨져 있었다. 한오는 그 다섯 점을 정중히 한 호흡 자기 빨랫방망이 한 자루로 한 줄씩 한 호흡 천천히 정중히 한 점씩 한 줄로 지워 두었으며, 그날 저녁 거점 식당 한 끼는 한오의 식판 한 칸 앞에 정중히 한 줄로 한 호흡 한 끼 그대로 놓였다. 한오는 그 한 끼를 평소와 같은 한 호흡으로 정중히 한 줄로 다 비워 두었으며, 그날 저녁 빨래터 한 줄에는 다섯 점 지워진 붕대 다섯 줄이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정중히 마르고 있었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다섯 줄 빨래 자리를 한 호흡 정중히 한 줄로 한 번 들러 본 뒤, 자기 점호 명단의 마지막 한 줄에 정중히 한 호흡 한 줄을 한 번 더 길게 정중히 끌어 두었다. 한오는 본인의 빨랫방망이 한 자루의 손잡이 안쪽에 정중히 한 줄 — "다섯 점 — 한 끼" — 을 정중히 한 호흡 작게 새겨 두었으며, 그 한 줄은 후대 빨래터 관리인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다.

    후대 빨래터 관리인 후학들은 자기 첫 빨래 결재 직전 빨랫방망이 한 자루의 손잡이 안쪽에 정중히 한 줄을 정중히 한 호흡 새겨 두는 의례를 한오에게서 가져왔다.

  • 우편함지기(郵便函지기)

    거점 우편함지기

    거점 우편함을 매일 비우고 채우는 자

    이 편지, 받는 분 안 계셔도 한 달은 보관합니다. 그 정도는 약속드립니다.

    거점 우편함지기는 거점 입구 작은 우편함에서 도로 전령이 두고 간 편지·작은 짐을 받아 분류하고 거점민에게 전해 주는 자다. 외형은 단정한 짙은 색 작업복, 어깨에 분류 가방, 허리에 작은 도장 케이스, 책상 위에는 손때 묻은 명단이 표준이다. 본인은 거점민 모든 단골의 옛 분기 수령 결재·옛 미수령 처리·금기 발신 한 줄을 한 표로 외우고 있다.

    도로 전령이 가장 먼저 짐을 내려 두는 자리이며, 거점민이 외곽 가족 소식을 가장 처음 듣는 자리도 그의 카운터 앞이다. 받는 사람이 이미 떠난 편지는 결코 그날 안에 폐기하지 않으며, 한 달간 작은 서랍 안에 정중히 보관한다. 폐허의 가장 작은 직업이, 사라진 사람들의 마지막 한 줄을 가장 오래 붙들고 있다.

    한 달 보관된 편지 한 줄의 무게가 거점 한 시대의 가장 조용한 약속 한 줄을 한 호흡 끌어 준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 우편함지기들은 그 서랍 한 칸에서 평생 새깁니다.

    거점 우편함지기 한율 — 사태 이전 옛 우체국 우편물 분류원 출신으로 청월진 입구 우편함을 사 년 지킨 자 — 의 일화는 '한 달 서랍 한 칸'으로 거점 사이에 길게 전해진다.

    어느 늦가을 도로 전령 사인이 동월교(앞서 사인 일화에 등장한 그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청월진 우편함에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두고 간 편지 한 통이 받는 사람 — 청월진 거점민 한 명으로 그 새벽 외벽 점호 명단에서 정중히 한 줄 지워진 자 — 에게 전달되지 못한 사태가 있었다. 한율은 그 편지 한 통을 자기 책상 가장 깊은 작은 서랍 한 칸에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보관해 두었으며, 한 달 동안 그 서랍 한 칸의 위치는 정중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한 달째 새벽 그 거점민의 외곽 가족 한 명이 정중히 한 호흡 청월진 입구 우편함 카운터 앞에 정중히 한 발자국 정중히 한 줄 도착했을 때, 한율은 그 가족에게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그 편지 한 통을 정중히 인도했다. 그 가족은 편지 한 통을 정중히 한 호흡 자기 가방 안쪽에 한 줄 매듭으로 정중히 묶어 두었으며, 한율은 본인 손때 묻은 명단의 그 자리에 정중히 한 줄 — "한 달 — 한 호흡" — 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 작게 적어 두었다. 거점 사령관 박오는 그 한 줄을 결재 라인 두 번째 줄에 정중히 한 호흡 옮겨 적었으며, 그 한 줄은 후대 거점 우편함지기 사이의 비공식 첫 줄 규칙이 되었다.

    후대 거점 우편함지기 후학들은 자기 책상 가장 깊은 작은 서랍 한 칸을 정중히 한 호흡 한 줄로 비워 두는 자세를 한율에게서 가져왔다.

  • 연합조정존(聯合調停尊)

    거점 연합 조정관

    거점들 사이의 다툼을 조정하는 최고 조정관

    거점 연합은 거점들이 같은 편이라서 유지되는 게 아니다. 싸우면서도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유지된다.

    거점 연합 조정관은 여러 거점 간의 이해 충돌·자원 분쟁·경계 갈등을 중립적인 위치에서 조정하는 거점 연합의 최고 민간 직책이다. 군사가 아닌 협상으로 거점 간 관계를 관리하며, 한 거점이 다른 거점을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불문율의 보증인이기도 하다.

    본인은 어느 거점에도 속하지 않으며, 거점 연합 전체가 공동으로 임명한다. 그래서 어느 거점도 이 자리를 자기 편이라 부를 수 없고, 동시에 어느 거점도 이 자리를 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폐허의 가장 정치적인 자리가 동시에 가장 중립적인 자리다.

    조정관 책상 위에는 어느 거점 문장도 없소. 빈 책상 한 줄이 조정관의 가장 무거운 자격증이지요.

    중부연합 초대 거점 연합 조정관 이오 — 사태 이전 옛 노동위원회 심판원 출신이자 거점 연합 최초의 분쟁 조정 규정을 만든 자 — 의 일화는 연합 기록에 "두 거점 사이 빈 의자"로 남아 있다.

    두 거점이 경계 분쟁으로 대표단을 각각 열 명씩 데리고 조정 회의실에 마주 앉았을 때, 이오는 자기 의자를 테이블 가운데에 두지 않고 방 한가운데 빈 공간에 따로 놓았다. 양쪽이 어리둥절해할 때 이오는 "조정관은 어느 쪽 테이블에도 앉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두 분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세 시간 뒤 두 거점 대표단은 이오가 한마디도 중재하지 않은 채 처음으로 경계선 협약 초안을 함께 작성했다. 거점 연합 외교관 오수진(앞서 200031 일화의 그 인물)은 그 초안을 받아 공식 협약으로 정리했다.

    후대 조정관들은 임명 첫날 조정 회의실 가운데에 자기 의자를 한 번 놓아보는 의례를 이오에게서 가져왔다.

  • 면역기록제(免疫記錄帝)

    면역 데이터 총관리자

    면역자 자료 전체를 손에 쥔 총관리자

    면역자 한 명의 데이터가 거점 연합 전체의 다음 시즌을 결정한다. 그래서 이 데이터는 가장 조용하게 가장 안전하게 보관한다.

    면역 데이터 총관리자는 거점 연합 전체에서 수집된 면역자 혈액 샘플·백신 연구 데이터·감염 패턴 기록을 통합 관리하는 자다. 백신 연구 수석(210006)이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이 자리는 그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존되고 올바른 연구자에게만 전달되도록 보장한다.

    데이터 보안이 이 직업의 핵심이다. 면역자 데이터가 약탈자나 적대 세력에 넘어가면 면역자 본인이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한다는 것을 그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데이터 접근 기록 한 줄도 빠뜨리지 않는다. 폐허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자리이자,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자리다.

    면역 데이터 접근 기록에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봤는지 한 줄이 빠진 날은 하루도 없소. 그 한 줄이 면역자 한 명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조용한 외벽이지요.

    중부연합 초대 면역 데이터 총관리자 강도현 — 사태 이전 옛 의료 정보 보안 담당 출신이자 거점 연합 면역 데이터 보안 규정 첫 판본을 만든 자 — 의 일화는 연구실 안에서 "접근 기록 누락 사건"으로 전해진다.

    데이터 접근 기록에서 이름 없는 한 줄을 발견한 날, 강도현은 거점 사령관에게 즉시 보고하는 대신 먼저 면역자 라온(앞서 210001 일화의 그 면역자)의 거점 위치를 이오 조정관(앞서 210031 일화의 그 조정관)을 통해 확인했다. 라온의 이동 경로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뒤, 강도현은 그날 밤 데이터를 전부 새 보관함으로 이전했다. 다음 날 누락된 접근 기록의 주체가 부사령관 계열의 단독 접근이었다는 사실이 조정관을 통해 밝혀졌다. 라온은 그날 이미 다른 거점으로 이동해 있었다.

    후대 면역 데이터 총관리자들은 접근 기록 점검을 하루 두 번 하는 자세를 강도현에게서 가져왔다.

  • 외교참모사(外交參謀師)

    거점 외교 참모

    거점 외교의 모든 문서를 다루는 참모

    외교는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절반이 결정된다. 그 절반을 준비하는 게 내 일이다.

    거점 외교 참모는 거점 연합 외교관 또는 사령관이 다른 거점과 협상할 때 사전 정보 수집·협상 전략·대화 초안을 준비하는 배후 전문가다. 테이블 위에는 앉지 않지만, 테이블 위에서 결정되는 것의 절반을 만든다.

    본인은 다른 거점의 보급 현황·거점 군주 성향·최근 분쟁 이력·약점과 강점을 정리해 외교관에게 한 장짜리 요약 보고서로 전달한다. 그 한 장이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정보가 곧 무기인 자리다.

    참모 보고서 한 장이 외교관 손에 들어가는 순간, 그 협상의 절반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들은 그 첫 번째 협상에서 배웁니다.

    중부연합 초대 거점 외교 참모 이다솔 — 사태 이전 옛 시청 정책 연구원 출신이자 거점 연합 외교 사전 조사 매뉴얼을 만든 자 — 의 일화는 참모 팀 안에서 "황량단 협상 한 장 보고서"로 통한다.

    황량단(앞서 등장한 그 약탈자 결사)과의 첫 협상 전날 밤, 이다솔은 황량단 두목 박만재(앞서 190008 일화의 그 인물)의 옛 직장 동료 명부·사태 이전 거주지·가족 관계를 수집해 외교관 오수진(앞서 200031 일화의 그 인물)에게 한 장으로 전달했다. 그 한 장 안에는 박만재가 첫 사태에서 가족을 잃은 이후 거점에 들어가지 않게 된 사연이 한 줄로 적혀 있었다. 오수진은 그 한 줄을 읽고 협상 첫 마디를 바꿨다. 그날 협상은 세 시간 만에 의무관 호송 불가침 협약으로 끝났다.

    후대 거점 외교 참모들은 보고서 마지막 줄에 상대방 개인 사연을 한 줄 포함하는 자세를 이다솔에게서 가져왔다.

  • 재건감독사(再建監督師)

    재건 현장 감독

    재건 현장을 직접 누비는 감독

    현장에서 가장 많이 다치는 사람이 가장 무거운 자재를 들고 있는 사람이다. 그걸 줄이는 게 감독의 일이다.

    재건 현장 감독은 무너진 거점이나 새 거점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 안전·공정 진행·자재 배분을 총괄하는 현장 관리자다. 거점 재건사령관(190031)이 큰 그림을 그린다면, 현장 감독은 그 그림이 현장에서 실제로 안전하게 구현되도록 만드는 자다.

    본인은 공사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을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유지한다. 공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위험한 자리에 작업자를 보내지 않으며, 그 원칙 때문에 재건 속도가 느려지는 날이 있어도 다음 날 같은 인원이 나타난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안다.

    현장 감독 안전 점검 수첩에 빨간 표시가 없는 날이 공사 속도가 가장 빠른 날이라는 사실, 그 한 줄이 이 자리 첫 번째 교훈이지요.

    중부연합 초대 재건 현장 감독 노기찬 — 사태 이전 옛 건설 현장 안전 관리자 출신이자 거점 연합 재건 안전 기준서를 손수 만든 자 — 의 일화는 현장 팀 안에서 "비계 해체 결재 전날의 한 시간"으로 통한다.

    외벽 보강 비계(공사할 때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임시로 세우는 발판 구조물)를 해체하기 전날, 노기찬은 혼자 한 시간 동안 비계 전체를 다시 직접 올라가 흔들리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했다. 다음 날 해체 작업 중 비계 한 칸에서 연결 부품 하나가 미리 느슨해진 것이 발견되었고, 노기찬이 전날 그 자리에 임시 보강재를 끼워 두었기 때문에 작업자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재건 설계사 장선미(앞서 200038 일화의 그 인물)는 그 보고를 받아 비계 해체 전날 감독 직접 점검을 재건 현장 표준 절차로 추가했다.

    후대 현장 감독들은 비계 해체 전날 직접 한 번 올라가는 자세를 노기찬에게서 가져왔다.

  • 격리관리사(隔離管理師)

    격리 구역 관리자

    격리구역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자

    격리 구역은 문이 잠겨 있다고 끝나는 공간이 아니다. 그 안에서 매일 새 아침이 시작되어야 한다.

    격리 구역 관리자는 거점 격리 병동 전체의 운영 — 입퇴원 기준·위생 점검·격리 기간 관리·내외부 물자 전달 — 을 책임지는 총괄 담당이다. 격리 병동 총책임자(200034)가 의료적 관점을 중심으로 운영한다면, 이 자리는 격리 구역의 행정·물자·규칙 전반을 담당한다.

    본인은 격리 규칙을 만들지만 그 규칙의 예외가 필요한 상황도 함께 설계한다. 규칙만 있고 예외가 없는 격리 구역은 사람을 기계처럼 다루는 공간이 되며,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규칙을 피하려 한다는 것을 그는 첫 운영에서 배웠다.

    격리 규정에 예외 항목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소. 규칙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규칙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지요.

    22번 거점 초대 격리 구역 관리자 오재민 — 사태 이전 옛 보건소 행정 담당 출신이자 격리 구역 입퇴원 기준서를 처음 작성한 자 — 의 일화는 격리 팀 안에서 "생일 예외 조항의 첫 적용"으로 통한다.

    격리 중인 어린이 세 명의 생일이 연달아 있는 주에, 오재민은 보육원 교사가 격리 구역 입구까지 직접 들어와 창문 너머로 생일 노래를 불러주는 예외 조항을 직접 만들었다. 규정에는 없던 조항이었고 처음에 의무 관리자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오재민은 "창문 너머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감염 경로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한 줄 설명한 뒤 진행했다. 그날 격리 구역 안 어린이들의 식사량이 처음으로 평균치를 넘었다는 기록이 의무 일지에 남았다. 격리 병동 총책임자 임혜경(앞서 200034 일화의 그 인물)은 그 조항을 정식 격리 운영 규정에 추가했다.

    후대 격리 구역 관리자들은 규정 작성 시 예외 항목을 먼저 한 줄 남겨두는 자세를 오재민에게서 가져왔다.

  • 신호분석사(信號分析師)

    구조 신호 분석관

    구조 신호의 진위를 분석하는 자

    같은 신호도 보내는 시각과 방향이 다르면 의미가 달라진다. 그 차이가 사람을 살리거나 덫에 빠지게 한다.

    구조 신호 분석관은 거점 외곽에서 발신되는 구조 신호·불빛·음향을 종합 분석해 생존자 구조 여부와 유인 신호 여부를 판단하는 전문 분석가다. 야간 신호 관측원(190044)이 개별 신호를 관찰한다면, 이 자리는 여러 신호를 교차 분석해 최종 판단을 내린다.

    본인은 신호 하나가 아니라 패턴을 본다. 같은 신호가 이틀 연속 같은 시각에 같은 방향에서 나오면 생존자, 매일 시각이 달라지면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수백 시간의 분석 경험으로 안다. 판단을 서두르면 사람을 잃고, 너무 늦으면 생존자를 잃는다는 긴장을 그는 매일 새벽 느낀다.

    분석관 판단 한 줄이 구조대 출발 시각을 정한다는 사실을, 우리 후학들은 그 첫 번째 오판에서 배웁니다.

    중부연합 초대 구조 신호 분석관 진우 — 사태 이전 옛 군 정보 분석 부사관 출신이자 거점 연합 신호 분석 매뉴얼을 작성한 자 — 의 일화는 분석 팀 안에서 "사흘째 신호의 방향 변화"로 통한다.

    사흘째 같은 구역에서 발신되는 신호가 세 번째 날 발신 방향이 약간 달라지는 것을 진우가 발견했을 때, 외곽 구조대장 황정욱(앞서 190036 일화의 그 대장)은 즉시 출발 준비를 마쳤다. 진우는 한 시간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방향 변화가 신호 발신자가 이동 중임을 나타낸다면 출발 시각 선택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뒤 신호 방향이 거점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구조대는 생존자가 스스로 이동 중인 경로에서 절반 거리에서 만났다. 생존자 두 명이었고, 한 명은 부상 상태였다. 황정욱은 그날 진우의 한 시간 대기 결정이 부상자 이송 경로를 절반으로 줄였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후대 분석관들은 판단 전 한 시간 추가 관찰을 기본 절차로 두는 자세를 진우에게서 가져왔다.

  • 법제담당사(法制擔當師)

    거점 법제 담당관

    거점의 법과 규율을 정리하는 담당관

    거점 규칙은 강한 자가 만드는 게 아니다. 가장 약한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거점 법제 담당관은 거점 안 생활 규칙·분쟁 해결 절차·거점민 권리 보장 규정을 만들고 관리하는 법 전문가다. 무력이 아닌 약속으로 거점이 굴러가도록 만드는 사람이며, 거점 의회(200035)와 협력해 법안을 검토하고 규정을 정비한다.

    본인은 규칙을 만들 때 그 규칙이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먼저 검토한다. 강한 자에게 유리한 규칙은 이미 강한 자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며, 거점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모두가 규칙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세 번의 거점 분쟁에서 배웠다.

    거점 규정 초안 검토 첫 번째 질문이 '가장 약한 사람이 이 규정 아래에서 안전한가'인 이유를, 우리 후학들은 그 세 번째 분쟁에서 배웁니다.

    중부연합 초대 거점 법제 담당관 서하 — 사태 이전 옛 법률 구조 공단 상담사 출신이자 거점 연합 최초의 거점민 권리 헌장을 작성한 자 — 의 일화는 법제 팀 안에서 "아이 조항의 첫 등장"으로 통한다.

    거점 보급 배분 규정을 작성할 때, 서하는 초안의 모든 조항을 검토한 뒤 마지막에 "거점 안 어린이는 배분 우선 대상으로 한다"는 조항 한 줄을 추가했다. 당시 거점 의회에서 이 조항이 다른 거점민의 배분을 줄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을 때, 서하는 어린이가 오늘 덜 받으면 거점의 다음 세대가 줄어든다는 한 줄로 답했다. 조항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이후 거점 연합 전체 배분 규정의 표준 조항이 되었다. 식량 배분 관리관 강민우(앞서 190041 일화의 그 인물)는 그 조항 한 줄을 자기 배분 명단 첫 줄로 옮겼다.

    후대 법제 담당관들은 규정 초안의 마지막 조항에 어린이 보호 항목을 한 줄 확인하는 자세를 서하에게서 가져왔다.

  • 도로복구공(道路復舊工)

    외곽 도로 복구반장

    끊긴 도로를 다시 잇는 복구반장

    이 도로를 고치는 건 차를 위해서가 아니다. 차가 지나가면 사람이 따라온다. 사람이 따라와야 거점이 산다.

    외곽 도로 복구반장은 거점 연합 거점 사이 도로의 균열·함몰·장애물·표지판 손상을 보수하는 도로 복구팀의 현장 책임자다. 도로 탈환대장(190035)이 점령 구간을 되찾는다면, 이 자리는 되찾은 구간을 실제로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만든다.

    폐허에서 도로 하나가 살아나는 것이 거점 두 곳 사이에 새 혈관이 생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래서 그의 복구팀은 공사 장비보다 표지판을 먼저 세운다. 표지판이 서야 사람들이 그 도로를 믿고 걷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도로 복구가 끝나는 날이 아니라 첫 표지판이 서는 날이 그 도로의 진짜 개통 날이라는 사실, 그 한 줄이 이 자리 첫 번째 원칙이지요.

    중부연합 초대 외곽 도로 복구반장 김선오 — 사태 이전 옛 도로공사 현장반장 출신이자 중부연합 주요 도로 여덟 구간을 복구한 자 — 의 일화는 복구팀 안에서 "안성옛로 첫 표지판"으로 통한다.

    안성옛로(앞서 190035 일화의 그 도로) 복구 공사 마지막 날, 김선오는 아직 도로 포장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첫 표지판을 직접 들고 복구된 구간 입구에 먼저 세웠다. 공사 마무리가 더 급하지 않냐는 팀원의 말에 김선오는 "표지판이 서야 내일 아침 트럭 운전수가 이 길을 쓸 수 있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다음 날 아침 첫 번째로 그 도로를 지나간 것은 백신 호송단의 트럭 한 대였으며, 운전수는 표지판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는 무전을 보냈다. 전령장 김봉준(앞서 190033 일화의 그 전령장)은 그 무전 한 줄을 연합 기록실에 공식 보관했다.

    후대 도로 복구반장들은 공사 마무리 전 표지판을 먼저 세우는 자세를 김선오에게서 가져왔다.

  • 의료기록사(醫療記錄師)

    거점 의료 기록사

    거점의 모든 진료를 한 권에 적는 기록사

    오늘 환자 기록이 다음 달 치료 계획의 첫 번째 자료다. 그래서 한 줄도 빠뜨리지 않는다.

    거점 의료 기록사는 거점 의무실·격리 병동·이동 의무반의 환자 기록·처치 내역·약품 사용 이력을 관리하는 의료 행정 담당이다. 폐허 외과의(210008)나 거점 의무관이 치료에 집중하는 동안, 그 치료 내용이 정확하게 기록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직업의 역할이다.

    오늘의 기록이 내일의 판단 근거가 된다는 것을 그는 처음부터 안다.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을 때 이전 기록이 없으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이전 기록이 있으면 절반의 시간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의무실에서 가장 조용하게 일하는 자가 가장 많이 기억하는 자다.

    의료 기록 한 줄이 다음 환자의 첫 번째 안전망이라는 사실, 그 한 줄이 폐허 의료의 가장 긴 유산이지요.

    청월진 초대 거점 의료 기록사 유아 — 사태 이전 옛 병원 원무과 직원 출신이자 거점 의무실 기록 양식을 처음 만든 자 — 의 일화는 의무실 안에서 "기록 한 줄이 살린 두 번째 환자"로 전해진다.

    어느 가을 같은 증상으로 두 명이 연이어 의무실을 찾았을 때, 폐허 외과의 진해(앞서 210008 일화의 그 인물)는 첫 번째 환자의 처치 기록을 유아에게 받아 두 번째 환자에게 같은 처방을 적용하기 전 기록 내용을 먼저 확인했다. 첫 번째 환자 기록에 특정 성분 과민 반응이 한 줄 적혀 있었고, 두 번째 환자도 같은 증상이었지만 관련 병력이 있었다. 진해는 처방을 바꿨다. 유아는 그날 기록 양식에 과민 반응 확인란을 기본 항목으로 추가했다. 진해는 그날 이후 환자 기록을 먼저 확인하는 자세를 자기 처치 첫 번째 순서로 바꿨다.

    후대 의료 기록사들은 처음 기록 양식을 만들 때 과민 반응 항목을 첫 칸에 두는 자세를 유아에게서 가져왔다.

  • 재고조사인(在庫調査人)

    식량 재고 조사원

    식량 한 톨까지 헤아려 적는 조사원

    창고 한 바퀴 도는 게 내 일이 아니다. 다음 주 거점민이 뭘 먹을 수 있는지를 오늘 아는 게 내 일이다.

    식량 재고 조사원은 거점 식량 창고의 품목별 재고량을 정기적으로 파악하고, 부족 예상 품목과 잉여 품목을 정리해 배분 담당자에게 보고하는 물자 파악 전문가다. 식량 배분 관리관(190041)이 배분 계획을 짠다면, 이 자리는 그 계획의 바탕이 되는 데이터를 만든다.

    본인은 숫자를 세는 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의미하는 날짜를 계산하는 자다. 통조림 열 캔이 몇 명의 며칠치 식량인지를 손으로 직접 세어가며 계산하고, 그 결과를 한 장 표로 만드는 것이 매일 아침 첫 번째 일이다.

    재고 조사 표에 날짜가 숫자보다 먼저 적히는 데는 이유가 있소. 그 날짜 한 줄이 거점민이 다음에 먹을 수 있는 날의 수니까요.

    17번 거점 초대 식량 재고 조사원 박재민 — 사태 이전 옛 대형 마트 식품 창고 관리자 출신이자 거점 식량 재고 관리 양식을 처음 만든 자 — 의 일화는 창고 팀 안에서 "나흘치 재고 경보"로 통한다.

    거점 안 식량 재고가 겉보기에 충분해 보이던 어느 주에, 박재민은 품목별 재고량을 날짜로 환산한 결과 단백질 식품이 나흘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창고 전체 부피는 충분했지만 안에 탄수화물 식품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재민은 그날 오후 식량 배분 관리관과 회수반장에게 동시에 보고했고, 회수반은 다음 날 새벽 단백질 식품 수거를 최우선으로 출동했다. 거점 의무관은 그 보고가 없었다면 영양 부족 환자가 두 배로 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나중에 남겼다.

    후대 재고 조사원들은 재고 표를 부피가 아닌 날짜로 작성하는 자세를 박재민에게서 가져왔다.

  • 수도관리인(水道管理人)

    거점 수도 관리인

    거점 수도관의 물길을 살피는 자

    물이 나오는 게 당연한 곳에서는 이 직업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끊기는 날 처음으로 보인다.

    거점 수도 관리인은 거점 안 식수 공급 배관·정수 시설·물 저장 탱크를 관리하고 유지보수하는 기술 담당이다. 식수 정화사(210011)가 물을 정화한다면, 이 자리는 정화된 물이 거점 각 구역에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배관과 설비를 유지한다.

    본인은 사태 이전 수도 시설 관리·배관 기술·건물 설비 전문가 출신이 많다. 폐허에서 배관이 새거나 탱크가 오염되는 것이 전투보다 더 많은 거점민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그는 처음 거점에 합류했을 때 배웠다. 물 한 방울이 사람 한 명의 하루를 살린다는 것을 숫자로 증명하는 자리다.

    수도 관리 점검 일지에 '이상 없음' 한 줄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달이 거점에서 가장 조용한 달이라는 사실, 그 한 줄 연속이 이 자리의 가장 긴 성과 보고서지요.

    도일진 초대 거점 수도 관리인 임수원 — 사태 이전 옛 상수도사업소 유지보수반장 출신이자 도일진 식수 공급 시설을 처음 설계한 자 — 의 일화는 수도 팀 안에서 "한겨울 동파의 새벽"으로 통한다.

    한겨울 새벽 배관 동파로 거점 식수가 두 시간 끊겼을 때, 임수원은 비상 수리 키트를 들고 영하의 날씨에 바깥 배관으로 나갔다. 두 시간 뒤 물이 다시 나오는 것을 식당에서 확인한 거점의 어머니(앞서 200003과 유사 역할)가 식당에서 뜨거운 죽 한 그릇을 직접 배관 작업 현장으로 가져왔다. 임수원은 그 죽을 한 숟갈 먹고 나머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날 이후 임수원은 한겨울 동파 가능 배관을 미리 보온재로 감는 예방 작업을 계획에 추가했고, 다음 겨울에는 동파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후대 수도 관리인들은 겨울 전 배관 보온 작업을 반드시 먼저 하는 자세를 임수원에게서 가져왔다.

  • 전력배분사(電力配分士)

    전력 배분 기사

    거점에 전력을 공평히 나누는 기사

    전기가 부족할 때 어디에 먼저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내 일이다. 의무실이 항상 첫 번째다.

    전력 배분 기사는 거점 발전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의무실·무전실·외벽 조명·식당·주거 구역에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전력 관리 전문가다. 발전기 점검원(190047)이 발전기를 유지한다면, 이 자리는 생산된 전력이 가장 필요한 곳에 먼저 가도록 조율한다.

    전력이 충분할 때는 이 직업의 필요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전력이 부족할 때 이 자리의 판단이 거점민의 생사를 나누는 경우가 생긴다. 수술 중 전력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구역의 전력을 잠시 줄이는 결정을 그가 혼자 내리는 날이 가장 무거운 날이다.

    전력 배분 결재에 의무실 항목이 항상 첫 줄에 있는 데는 이유가 있소. 그 첫 줄이 오늘 수술대 위 환자의 가장 조용한 안전망이지요.

    17번 거점 초대 전력 배분 기사 안시환 — 사태 이전 옛 전력 회사 배전 기사 출신이자 거점 전력 배분 우선순위 기준을 처음 만든 자 — 의 일화는 전력 팀 안에서 "수술 두 시간의 전력"으로 통한다.

    야간 수술이 두 시간 진행되는 동안 발전기 연료가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안시환은 주거 구역 전체 전력을 수술 종료까지 차단하는 결재를 혼자 내렸다. 수술은 전력 끊김 없이 마무리되었고, 거점민들은 두 시간 촛불로 저녁을 보냈다. 다음 날 폐허 외과의 진해(앞서 210008 일화의 그 인물)가 그 결재에 사후 승인 서명을 했다. 안시환은 그날 이후 수술 중 전력 차단 결재를 사령관 사전 보고 없이 의무관 구두 동의만으로 집행할 수 있는 비상 규정을 만들었다.

    후대 전력 배분 기사들은 전력 배분 우선순위 첫 줄에 의무실 수술 관련 항목을 두는 자세를 안시환에게서 가져왔다.

  • 공방기술자(工房技術者)

    거점 공방 기술자

    거점 공방에서 도구를 만들고 고치는 자

    고장 난 걸 고치는 건 반만 내 일이다. 나머지 반은 같은 고장이 다시 나지 않게 하는 거다.

    거점 공방 기술자는 거점 안 각종 도구·장비·가구·수레·잠금장치를 수리하고, 필요한 부품을 폐허 자재로 직접 만드는 종합 제작·수리 전문가다. 목공 기술자(190045)가 목재를 담당한다면, 이 자리는 금속·전기·기계까지 아우른다.

    본인은 고장 수리보다 고장 원인 제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수리 후 반드시 원인 메모를 수리 일지에 남기며, 같은 부품이 두 번 고장 나면 그 설계를 바꾸는 제안을 사령관에게 직접 올린다. 폐허에서 새 부품을 구하는 것보다 기존 부품을 더 오래 쓰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한 방법임을 그는 매일 공방에서 증명한다.

    공방 수리 일지에 원인 항목이 결과 항목보다 먼저 적히는 데는 이유가 있소. 원인을 알아야 다음 고장이 없다는 게 공방의 첫 번째 규칙이지요.

    청월진 초대 거점 공방 기술자 오유진 — 사태 이전 옛 공업사 대표 출신이자 거점 공방 수리 일지 양식을 직접 만든 자 — 의 일화는 공방 팀 안에서 "게이트 경첩 두 번째 교체"로 통한다.

    거점 정문 게이트 경첩이 같은 위치에서 두 번 부러지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오유진은 세 번째 교체 전 게이트 개폐 방향을 바꾸는 설계 변경을 먼저 제안했다. 게이트 무게가 경첩 한 쪽에 집중되는 구조였다는 것을 두 번의 같은 고장에서 읽어낸 것이다. 설계 변경 후 같은 경첩 부위의 고장이 두 시즌 동안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거점 사령관 박오(앞서 210007 일화의 그 인물)는 오유진의 설계 변경 제안을 거점 설비 점검 회의의 정기 안건으로 추가했다.

    후대 공방 기술자들은 수리 일지에 원인을 결과보다 먼저 적고 같은 고장이 두 번 나면 설계를 먼저 검토하는 자세를 오유진에게서 가져왔다.

  • 야간응급객(夜間應急客)

    야간 응급 대원

    밤마다 응급 호출에 달려가는 대원

    야간에 울리는 호각 한 번이 낮 여섯 번보다 무거운 이유가 있다. 밤에 쓰러지는 사람은 더 빨리 식어간다.

    야간 응급 대원은 거점 안 취침 시간대 — 자정부터 새벽 다섯 시 — 에 발생하는 부상·발열·갑작스러운 발병을 처치하는 야간 전담 의무 대원이다. 거점 의무실이 야간에 축소 운영될 때도 이 자리만은 항상 깨어 있다.

    본인은 야간에 홀로 의무실을 지키며 모든 결재를 스스로 내린다. 의무관이 없는 시간에 수면 부족 환자와 외상 환자를 같은 어깨로 받아내는 것이 이 직업의 일상이다. 새벽 세 시 의무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가장 빠르게 열어주는 자가 그다.

    야간 응급 처치 기록에 '대기 중'이라는 표시가 없는 날이 없다는 사실, 그 대기 한 줄이 거점 새벽의 가장 조용한 안전망이지요.

    청월진 초대 야간 응급 대원 하유 — 사태 이전 옛 구급대원 출신이자 거점 야간 응급 처치 규정을 처음 만든 자 — 의 일화는 의무실 안에서 "새벽 두 시의 발열 세 명"으로 통한다.

    같은 새벽에 발열 증상으로 세 명이 연달아 의무실을 찾았을 때, 하유는 세 번째 환자가 도착하는 순간 집단 발열 가능성을 판단하고 거점 사령관에게 새벽 두 시에 무전을 넣었다. 사령관은 처음에 과민 반응 아니냐고 했지만, 하유는 세 명이 같은 식당에서 같은 끼니를 먹었다는 한 줄을 보고서에 추가했다. 식당 취사반은 다음 날 식재료 점검을 받았고, 오염된 식재료 한 종이 발견되었다. 그날 이후 야간 집단 증상 발생 시 즉시 무전 보고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생겼다. 유아(앞서 210039 일화의 그 기록사)는 그 규정을 의료 기록 양식에 새 항목으로 추가했다.

    후대 야간 응급 대원들은 같은 증상 두 번째가 들어오는 순간 집단 발생 가능성 확인을 첫 번째 행동으로 하는 자세를 하유에게서 가져왔다.

  • 폐허도서객(廢墟圖書客)

    폐허 도서 수집가

    폐허를 뒤져 책을 모으는 수집가

    책은 무겁다. 그래도 가져온다. 다음 달 거점 아이들에게 읽어줄 것이 없으면 그게 더 무겁다.

    폐허 도서 수집가는 폐허 도시의 무너진 도서관·학교·서점·주택에서 살아남은 책·잡지·교과서·지도를 수거해 거점 도서실에 납품하는 자다. 폐허 사서(210022)가 수거된 책을 관리한다면, 이 자리는 그 책이 존재하도록 만드는 자다.

    본인은 무거운 가방을 지고 폐허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 많다. 책 한 권이 아이들의 반나절을 채워주고, 그 반나절이 보육교사의 한 끼 휴식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폐허에서 책은 사치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씨앗이다.

    수집가 가방에 책이 들어올 때마다 거점 도서실 한 칸이 한 줄 채워진다는 사실, 그 한 줄이 거점 아이들의 다음 반나절이에요.

    청월진 폐허 도서 수집가 류노 — 사태 이전 옛 헌책방 주인 출신이자 청월진 도서실 첫 오백 권을 직접 수거한 자 — 의 일화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동화책 세 권의 새벽"으로 통한다.

    폐허 아파트 5층 서재에서 물에 젖어 거의 손상된 동화책 세 권을 발견했을 때, 류노는 가방에 다른 책들이 가득 찬 상태에서 자기 외투를 꺼내 그 세 권을 감쌌다. 외투 한 벌 무게만큼 다른 책을 빼고, 동화책 세 권을 외투로 감싼 채 거점으로 돌아왔다. 폐허 사서 한(앞서 210022 일화 참조)이 그 동화책 세 권을 말리는 데 이틀이 걸렸고, 표지는 흐릿해졌지만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거점 보육교사(210018)가 그날 저녁 아이들에게 그 세 권 중 하나를 읽어주었고, 아이들이 처음으로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기록이 보육원 일지에 남았다.

    후대 수집가들은 가방 한 칸을 외투용으로 비워두는 자세를 류노에게서 가져왔다.

  • 물물중개인(物物仲介人)

    거점 간 물물교환 중개인

    거점과 거점 사이 거래를 잇는 중개인

    내가 없어도 거래는 된다. 다만 내가 없으면 두 거점이 같은 물건을 서로 더 비싸게 주고받는다.

    거점 간 물물교환 중개인은 서로 다른 거점의 잉여 자원과 부족 자원을 연결해 교환을 성사시키는 중간 거래 담당이다. 어느 거점에 어떤 것이 남아 있고 어떤 것이 부족한지를 아는 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자산이다.

    본인은 두 거점 모두에게 공정한 교환이 성사되도록 해야 하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신뢰의 토대다. 한 번의 불공정한 거래가 다음 거래를 막는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안다. 폐허의 진짜 통화는 금속이 아니라 중개인의 신뢰다.

    중개인 거래 기록에 양쪽이 모두 사인한 건수가 한 시즌 신뢰 지표라는 사실, 그 사인 두 줄이 다음 거래의 첫 번째 담보지요.

    중부연합 초대 거점 간 물물교환 중개인 백산 — 사태 이전 옛 중고 거래 앱 운영자 출신이자 거점 연합 물자 교환 목록 첫 판본을 만든 자 — 의 일화는 교환 팀 안에서 "백신 한 병과 연료 두 통의 거래"로 통한다.

    거점 연합 안에서 처음으로 백신 한 병과 연료 두 통을 맞바꾸는 거래가 성사됐을 때, 백산은 양쪽 거점 사령관에게 동시에 거래 기록 한 장씩을 전달하며 양쪽 모두 사인을 받았다. 그 두 장의 사인이 이후 거점 연합 물자 교환의 표준 절차가 되었다. 연합 외교 참모 이다솔(앞서 210033 일화의 그 인물)은 그 절차를 연합 외교 협약 초안에 한 조항으로 삽입했다.

    후대 물물교환 중개인들은 거래 성사 후 양쪽 사인 두 줄을 한 장에 받는 자세를 백산에게서 가져왔다.

  • 기상관측인(氣象觀測人)

    거점 기상 관측원

    거점의 하늘을 매일 살피는 관측원

    내일 비가 오는지 아닌지가 회수반 출동 계획을 바꾼다. 그래서 나는 매일 하늘을 본다.

    거점 기상 관측원은 거점 옥상에서 매일 날씨를 관측하고 기록해, 회수반 출동·외벽 보수 일정·텃밭 물 관리에 영향을 주는 기상 예보를 담당하는 자다. 사태 이전에는 스마트폰 날씨 앱이 있었지만, 이제는 하늘과 바람과 구름의 움직임을 직접 읽어낸다.

    본인은 사태 이전 날씨 동호회·등산 가이드·어선 선원 출신이 많다. 기상 관측 장비 없이 구름 모양과 바람 방향만으로 내일 날씨를 맞추는 정확도가 60퍼센트를 넘으면 거점에서 신뢰를 얻는다. 폐허에서 기상 예보는 생존 계획이다.

    기상 관측 일지에 틀린 예보가 적히는 날도 빠뜨리지 않는 이유는, 틀린 예보에서 더 많이 배우기 때문이지요.

    17번 거점 초대 거점 기상 관측원 윤정 — 사태 이전 옛 등산 클럽 기상 담당 출신이자 거점 기상 관측 일지를 첫 달부터 쓰기 시작한 자 — 의 일화는 관측팀 안에서 "틀린 예보 사흘의 기록"으로 통한다.

    사흘 연속 예보가 틀린 이후 윤정은 자기 관측 일지에 틀린 이유를 한 줄씩 따로 적기 시작했다. 첫째 날은 구름 방향을 잘못 읽었고, 둘째 날은 바람 변화 속도를 과소평가했고, 셋째 날은 전날 기록을 충분히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찾아냈다. 넷째 날부터 이전 이틀치 기록을 반드시 먼저 읽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고, 이후 열흘간 예보 정확도가 눈에 띄게 올랐다. 회수반장은 그 열흘간 한 번도 비를 맞지 않고 출동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후대 기상 관측원들은 예보가 틀린 날 이유를 먼저 한 줄 적는 자세를 윤정에게서 가져왔다.

  • 동물사육인(動物飼育人)

    거점 동물 사육사

    거점에 남은 동물을 기르는 사육사

    이 닭 한 마리가 일주일에 달걀 다섯 알을 낳는다. 다섯 알이 보육원 아이들 아침 다섯 끼다.

    거점 동물 사육사는 거점 안 가축 — 닭·염소·토끼 — 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자다. 통조림과 건식 식량 위주인 거점 식단에서 달걀·생유·고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특히 어린이와 환자에게 중요한 단백질·지방 공급원을 책임진다.

    본인은 사태 이전 농가·축산 동호회·4H 출신이 많다. 폐허에서 가축을 키우는 것은 먹이와 공간과 안전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닭 한 마리의 하루 먹이를 아끼는 것이 내일의 달걀 한 알을 잃는 일이라는 균형을 그는 매일 저울질한다.

    사육 일지에 알 개수보다 건강 상태 관찰 항목이 더 많은 이유는, 건강한 닭이 알을 낳지 아픈 닭은 알을 낳지 않기 때문이에요.

    17번 거점 초대 거점 동물 사육사 이한 — 사태 이전 옛 농촌 체험 농장 운영자 출신이자 거점 첫 닭 사육 공간을 설계한 자 — 의 일화는 사육 팀 안에서 "어미 닭 한 마리의 보육원"으로 통한다.

    거점 첫 닭 다섯 마리 중 한 마리가 알을 낳지 않는 상태로 두 달을 지났을 때, 이한은 그 닭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행동 관찰로 파악했다. 사육 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을 알고 목공 기술자에게 부탁해 닭장을 한 칸 더 넓혔다. 다음 달 그 닭이 첫 알을 낳았고, 이한은 그 첫 알을 보육원에 보냈다. 거점 보육교사(210018)는 그 알을 아이들과 함께 조리해 먹는 작은 시간을 가졌으며, 아이들이 그날 처음으로 달걀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기록을 일지에 남겼다.

    후대 사육사들은 산란이 줄어드는 닭의 공간 환경을 먼저 살피는 자세를 이한에게서 가져왔다.

  • 표지설치부(標識設置夫)

    거점 안내 표지 설치원

    거점의 길마다 표지판을 세우는 자

    처음 오는 사람이 의무실을 혼자 찾을 수 있으면, 그 거점은 사람을 잃지 않는다.

    거점 안내 표지 설치원은 거점 안 주요 시설 — 의무실·식당·보육원·화장실·비상 출구·외벽 게이트 — 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만들고 설치하며 유지하는 자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 처음 거점에 온 사람이 아무것도 모를 때 필요한 자리다.

    본인은 안내판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처음 이 거점에 온 낯선 사람의 눈으로 거점을 한 바퀴 걸어본다. 어디서 막히고 어디가 헷갈리는지를 먼저 알아야 표지 하나를 올바른 자리에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점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거점에서 가장 처음 눈에 띄어야 하는 것들을 만든다.

    안내판 한 개가 처음 오는 사람 한 명의 하루를 살린다는 사실, 그 한 개의 무게가 이 자리의 진짜 성과지요.

    17번 거점 초대 거점 안내 표지 설치원 조범 — 사태 이전 옛 놀이공원 안내 시설 담당 출신이자 거점 안내 표지 기준을 손수 만든 자 — 의 일화는 설치원들 사이에서 "의무실 방향 화살표 세 개"로 통한다.

    거점에 처음 합류한 생존자 무리 열다섯 명 중 두 명이 부상 상태였는데, 입구에서 의무실을 찾지 못해 두 시간을 헤매다 결국 다른 거점민의 안내를 받아 도착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조범은 그날 저녁 입구에서 의무실까지의 경로에 화살표 세 개를 세웠다. 각 화살표 아래에는 "의무실"이라는 글자만 크게 쓰였다. 다음 날 새로 합류한 생존자가 화살표를 따라 혼자 의무실을 찾아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외곽 구조대장 황정욱(앞서 190036 일화의 그 인물)은 이후 새 생존자를 데려올 때 화살표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후대 안내 표지 설치원들은 새 생존자가 들어오는 날 표지 점검을 먼저 하는 자세를 조범에게서 가져왔다.

  • 쓰레기처리부(쓰레기處理夫)

    거점 쓰레기 처리원

    거점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매일 치우는 자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쓰레기를 없애는 게 아니다. 다시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는 거다.

    거점 쓰레기 처리원은 거점 안에서 발생하는 일상 폐기물·의료 폐기물·건설 폐기물을 수거하고, 재사용 가능한 것을 분류해 공방 기술자나 자재 담당에게 넘기고, 처리 불가한 것을 안전하게 거점 외부로 반출하는 자다.

    폐허에서 버리는 것이 사치이고, 재사용이 기본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매일 증명한다. 쓸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다른 자리에서 쓸 수 있게 만드는 경로를 찾는 것이 이 직업의 진짜 기술이다. 거점에서 가장 조용하게 일하는 자가 거점을 가장 깨끗하게 유지하는 자다.

    처리 일지에 '재사용'이라고 적힌 항목이 '폐기'보다 많은 날이 거점에서 가장 알뜰한 날이라는 사실, 그 한 줄이 이 자리의 가장 긴 성과 보고서지요.

    도일진 초대 거점 쓰레기 처리원 강이 — 사태 이전 옛 재활용 선별장 직원 출신이자 거점 재사용 가능 폐기물 분류 기준을 직접 만든 자 — 의 일화는 처리원들 사이에서 "의무실 폐비닐 방수 포대"로 통한다.

    의무실에서 나온 폐비닐 포장재가 평소처럼 처리 라인에 들어왔을 때, 강이는 그 폐비닐 중 두꺼운 것을 따로 모아 방수 포대 두 개를 만들었다. 그 포대를 폐허 도서 수집가 류노(앞서 210045 일화의 그 인물)에게 전달했는데, 류노는 그 포대 덕분에 빗속에서 동화책 여덟 권을 물에 젖히지 않고 가져왔다. 보육원 교사는 그 동화책 여덟 권을 받는 날 처음으로 강이의 이름을 직접 찾아가 인사했다. 강이는 그날 이후 의무실 폐비닐 분류에 방수 포대 항목을 따로 두는 자세를 만들었다.

    후대 처리원들은 분류 기준표에 "다음 사용처"를 품목마다 한 줄 적는 자세를 강이에게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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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아포칼립스 — Another Fantasy